이름 |
이호르 야로슬라보비치 보우찬친 ([ruby(Ігор, ruby=I g o r)] [ruby(Ярославович, ruby=Y a r o s l a v o v y c h)] [ruby(Вовчанчин, ruby=V o v c h a n c h y n)]) |
생년월일 | 1973년 8월 6일 ([age(1973-08-06)]세) |
소련 우크라이나SSR 하르키우주 졸로치 | |
국적 |
[[우크라이나| ]][[틀:국기| ]][[틀:국기| ]] |
입식 전적 | 63전 61승 2패 (48KO) |
종합격투기 전적 | 67전 56승 10패 1무효 |
승 | 41KO, 7SUB, 8판정 |
패 | 3KO, 4SUB, 3판정 |
체격 | 172cm / 105kg / 173cm |
링네임 | Ice Cold |
주요 타이틀 | MPS 1996 토너먼트 우승 |
IFC 1 토너먼트 우승 | |
IAFC 러시아 오픈 우승 | |
IAFC 1st 토너먼트 우승 | |
WVC 5 토너먼트 우승 | |
기타 | Pride 2000 무차별급 그랑프리 준우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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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크라이나의 전 종합격투기 선수.2. 전적
- 주요 승: 애디우손 리마, 로만 디쿠노프, 이고르 게르스, 폴 베얼랜스, 존 딕슨, 닉 뉴턴(2), 개리 굿리지(2), 카를로스 바헤토, 타카하시 요시키, 프란시스코 부에노, 사타케 마사아키, 알렉산더 오츠카, 후지이 카츠히사, 쇼지 아키라, 마츠이 다이지로, 사쿠라바 카즈시, 엔센 이노우에, 타카다 노부히코, 마크 커, 길버트 아이블, 발렌타인 오브레임, 밥 슈리버, 댄 보비쉬, 콘도 유키
- 무승부: 레오나르도 카스텔로 브랑코
- 무효: 마크 커
3. 커리어
3.1. 초창기
1995년 10월 UCMAL에 출전한 보브찬친은 2차전에서 세르게이 본다로비치를 18초만에 펀치로 KO시키며 결승에 진출하지만 안드레이 베세딘에게 니바로 패배하며 탈락한다. 한 달 후 11월에는 IAFC 토너먼트 3차전에서, 미하일 일류힌와 혈전을 벌인 끝에 그라운드에서 패배했다.[1]하지만 일류히네전의 패배를 마지막으로 미친듯한 연승행진을 이어간다. 1996년 1월 MPS에서 우승하였고, 3월 우크라이나에서 열린 DNRF 결승에서도 이고르 게르기스를 1분 30초만에 펀치로 압도하며 KO승을 따냈다. 이어 키예프에서 벌어진 IFC 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한다. 특히 IFC 준결승에서는 190cm 140kg의 거구인 폴 베얼랜스를 화끈한 난타전으로 제압하며 주목을 받았다.
1997년 8월 IAFC 러시안 오픈 결승에서는 레슬러인 닉 뉴튼에게 승리하며 우승한다. 테이크다운을 허용하며 톱 포지션을 내줬지만 하위에서 박치기를 날려 탭을 받아냈다.[2] 1998년 WVC 5에서도 결승에서 닉 뉴튼을 만나 14초만에 니킥으로 승리하며 월드 발리투도 우승을 거머쥐었다.
3.2. Pride
1998년 10월에는 PRIDE에 진출, UFC 8 토너먼트 준우승자인 ' 빅 대디' 개리 굿리지와 맞붙었다. 압도적으로 불리한 체격차였으나 스탠딩 상황에서 연발 훅을 작렬시키며 빅 대디를 침몰시켜 레프리 스톱에 의한 TKO승을 거둔다. 이후 WVC 대회에서도 연승을 이어갔고 다시 돌아온 PRIDE 무대에서도 쇼지 아키라, 카를로스 베네토를 연파했다.1999년 9월 PRIDE 7에서는 영장류 최강의 사나이이자 UFC 토너먼트 2관왕인 '스매싱 머신' 마크 커와 대결했다. 보브찬친은 수차례 커의 안면에 강력한 훅을 꽂아넣으며 경기를 주도해 갔다. 커는 시합을 그라운드로 끌고가 우세를 잡지만 보브찬친이 스윕에 성공하며 그라운드 니킥으로 커를 실신시켰다. 하지만 당시 PRIDE에서는 그라운드 니킥이 반칙이었기 때문에 경기는 무효로 처리되었다. 세계최강의 사나이로 불리던 커는 비록 패배는 면했으나, 이 경기 이후로 안면타격 공포증을 보이며 급격한 기량의 하락을 보이게 된다.
1999년 11월의 PRIDE 8에서는 '치코' 프란시스코 부에노를 1분만에 선 채로 실신시켜버렸다. 통나무가 쓰러지듯 정면을 향해 고꾸라지는 부에노의 모습을 관중들을 경악시켰다.
2000년 5월에 열린 PRIDE 무차별급 그랑프리에서는 개리 굿리지와 사쿠라바 카즈시를 연파하며 결승에 진출한다.
그러나 결승에서 UFC 헤비급 초대 챔피언 ' 해머' 마크 콜먼에게 석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1995년 이래 23경기만의 패배였다. 당시 보브찬친은 굿리지와 사쿠라바를 상대로 접전을 치른 후 올라왔으나, 콜먼은 준결승에서 만난 후지타 카즈유키(효도르를 럭키훅으로 이길뻔했던)가 무릎부상으로 2초만에 기권한 탓에 체력을 온전할 수 있었다.
비록 콜먼에게 패했으나 엔센 이노우에와 타카다 노부히코를 연파했고, 다시 만난 마크 커는 판정으로 꺾으며 끝내지 못했던 승부를 결정지었다. 트레이 텔리그먼[3]과 마리오 스페리에게 패하면서 전성기가 지났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으나 길버트 아이블, 발렌타인 오브레임에게 승리하며 여전히 헤비급의 강호임을 입증했다.
엔센 이노우에는 이고르와의 정면 대결을 택했고, 링 위에서 장렬하게 산화했다.
하지만 노화에 의해 신체능력이 저하되고 무리한 경기일정에 부상이 쌓이게 되면서 하락세를 걷게 된다. 2002년 2월 '텍사스 광마' 히스 헤링에게 패한 것을 시작으로 9월에는 다시 '람페이지' 퀸튼 잭슨을 상대로 그의 우월한 신체조건과 타격센스에 압도당하다 초크를 시도했으나, 오히려 그의 주특기인 슬램을당한뒤 갈비뼈 부상을입으며 패했고 2003년 8월 미르코 크로캅에게 하이킥으로 패배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PRIDE 미들급(UFC 라이트헤비급)으로의 전향을 결심한 보브찬친은 타카하시 카즈오와 콘도 유키를 쓰러뜨리며 성공적으로 미들급에 안착,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되는줄 알았으나 당시 PRIDE 미들급 챔피언이었던 반달레이 실바의 유력한 대항마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2005년 6월 알리스타 오브레임에게 초살 길로틴패를 당하며 기세가 한풀 꺾이게 된다. 2005년 8월 당시 떠오르던 일본의 에이스 나카무라 카즈히로에게 판정패하게 된다.
나카무라전 이후로는 사실상 은퇴한 상태. 사실 이때 양쪽 손이 회복불능 수준으로 골절된게 쌓여서 주먹을 날리면 자기가 더 고통스러울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고 한다. 스타일 자체가 주먹부상이 많이 나올수 밖에 없는 유형이었고. 지금도 양손에 나사가 수십개나 박혀있다고 한다.
4. 파이팅 스타일
전설적인 러시안 훅[4]으로 유명한 타격가. 2009년 INSIDE MMA에서 선정한 'MMA 사상 최고의 타격가'에서 6위에 랭크될 정도의, MMA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스트라이커이다.[5]17세에 복싱을 시작했는데 마침 우크라이나에 킥복싱 붐이 일어서 킥복싱을 수련했고 각종 대회에서 타이틀을 차지하기도 했다.
90년대 초창기 MMA는 그래플러들의 독무대였다. 그레이시 가문의 브라질리언 주짓수를 필두로 유도, 레슬링 등 그래플러들이 스트라이커를 압도하고 있었던 당시, 보브찬친의 존재는 이색적이었다. 게다가 172cm의 비교적 단신으로 헤비급의 거구들을 날려버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였다.
여기에는 짧은 키, 리치와는 별개로 굉장히 두꺼운 상체 및 코어, 하체 프레임이 한몫했다. 즉 키가 작지만 몸 프레임 자체가 웬만한 180cm대 사람들은 씹어먹을 정도의 인자강이었기에 가능했던 일. 보브찬친과 마찬가지로 상대적으로 체급에 비해 작은 키로 중량급에서 활약하는 많은 선수들은 보통 프레임이 해당 신장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엄청나게 두껍고 튼튼한게 특징이다.
야금야금 갉아 먹기나 점수 쌓기 스타일이 아닌 정공법 스타일이지만 리치가 짧고 킥공격력의 부재가 아쉬웠던 선수. 결국 왜소한 신장이 그의 발목을 잡았고 시간이 갈수록 진화하는 MMA의 흐름을 뒤로 하고 사라져갔다.
5. 기타
- 172cm의, 일반인 기준으로도 평균보다 작고 헤비급 선수 기준으로는 엄연한 단신에 짧은 리치로 무체급 경기였던 90년대 MMA를 제패했던 초인. 전설적인 러시안 훅의 강타자로 유명했으며 MMA계의 명예의 전당에 관한 떡밥이 나오면 초창기 파이터로써 절대 빠지지 않는 이름이다.
- 무규칙 룰에서도 많은 시합을 했는데 글러브를 착용하지 않고 싸웠기 때문에 만성적인 부상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한다. 오른손에 나사를 3개나 박았고 왼손에도 1개 박았다. 나중에는 펀치를 날리는 것조차 고통스러워졌다고 회고했다.
- 그러나 펀치력은 마크 헌트를 능가할 정도로 엄청났는데 수많은 강타자와 싸웠던 게리 굿리지가 싸워본 상대들 중 가장 펀치가 강했고 쇠몽둥이로 맞는 느낌이었다고 했으며 사쿠라바 카즈시 역시 프라이팬으로 맞는 느낌이었다고. 그리고 엔센 이노우에는 트럭에 치인 거 같다고 표현했으며 미르코 크로캅 역시 승리하긴 했지만 펀치 교전에서 얼굴에 펀치가 스쳤는데 순간 어지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 글러브 없는 격투기 단체에서도 활약을 했다는 점이 특이할 만하다. 글러브는 타격가에게 날개를 달아준 도구였다. 흔히 글러브를 상대를 보호해주는 장비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더 큰 의의는 때리는 사람의 주먹 골절의 위험을 줄여준다는 데 있다. 주먹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잘 부러지고, 의외로 꽉 쥐기도 어렵다. 단순히 밴디지만 제대로 해도 주먹은 훨씬 안정적이고 튼튼해지며, 글러브는 더하다. 특히 보브찬친처럼 무지막지하게 체중을 실어서 날려대는 펀치는 상대의 단단한 두개골에 맞으면 약한 주먹 뼈가 버티지 못하고 부러질 위험이 있기에[6] 마음 놓고 주먹을 날려대기가 쉽지 않다.
- 실제 핵펀치로 유명한 마이크 타이슨도 다른 복서와 시비가 붙어 싸우다가 주먹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은 적이 있다. 즉, 타이슨이 마음 놓고 핵펀치를 난사할 수 있었던 데에는 글러브가 한몫했던 것이다. 프라이드에서 '얼음 파운딩'으로 유명했던 효도르도 파운딩을 체중을 실어서 강하게 날렸었는데 글러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주먹부상에 시달렸었다. 즉, 보브찬친은 글러브가 없으면 페널티를 안고 싸우는 상황이었음에도 러시안 훅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이름을 날려 프라이드에 입성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파이터는 언제 어디서든 싸울 수 있어야 한다는 명제에 충실했던 파이터다. 글러브 없이도 '공포의 러시안 훅'을 유감없이 날려대며 '러시안 훅의 황태자'로서의 명성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 UFC 우승자인 마크 커와 라이벌 플래그가 있었다. 미국 vs 구 소련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대결에서, 일본의 팬들은 그에게 '영장류 최강'에 대항하는 '북의 최종병기(北の最終兵器)'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커는 보브찬친과의 경기 후 안면타격 공포증 증세를 보이며 급속하게 몰락한다. 물론 커의 몰락은 금지약물복용의 부작용에 의한 측면도 크다. 실제 K-1 챔피언 출신인 마크헌트와 UFC에서 5라운드 내내 격렬하게 난타전을 벌이며 최고의 경기로 극찬을 받았던 안토니오 실바 역시 약물적발 이후에 맷집이 급속도로 약해지며 KO패를 몇번 당했는데, 마크헌트와의 재대결에서는 1차천의 혈전이 무색하게 뒷통수를 보이며 도망가는 등 심한 안면타격 공포증 증세를 보이며 무기력하게 KO패했다.
- 심성이 매우 착한 선수로 알려져 있다. 시합 전후에는 항상 공손하게 예의를 갖췄고, 경기 중에 반칙이 나오면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7]
- 러시아의 에밀리아넨코 효도르도 보브찬친이 훌륭한 선수이며 인격적으로도 그를 존경한다고 밝혔다. 레드데빌에서 함께 훈련을 한 적도 있다.
- 젊은 시절에는 매우 난폭한 성격이어서 그가 살던 마을에는 그가 나타난 것을 알리는 종이 있었다고 PRIDE 시절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지만 이후에 가진 다른 인터뷰에서 이를 부정했고 그냥 농담이었다고 한다. 다만 자기가 살던 마을 중앙에 종이 있었던 건 사실이라고 한다. 사실을 적절하게 과장해서 만들어낸 농담인 셈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보신각 종을 가지고 내가 무서워서 서울 시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설치된 거라고 하는 것과 같다. 당시 프라이드가 사이타마 프로레스라고 불릴 정도로 스토리 만들기를 좋아했던 걸 감안하면 프라이드 때 저 인터뷰와 스토리는 일종의 기믹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 격투기를 해서 번 돈으로 고향에 작은 식당을 냈다. 이름은 딸 이름과 같은 '즐라타'.
- 한국에서 루저의 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본의아니게 이고르 보브찬친, 션 셔크가 함께 여러가지로 화제에 오르기도 했었다. 특히 이고르 보브찬친은 170cm 정도의 루저 (키가 작다고 뭐라고 하는게 아니다) 신분으로 수많은 180cm 이상의 위너들을 압살했다는 점에서 더더욱 부각되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셔크는 라이트급에서도 작은 키이긴 하지만 그나마 키에 맞는 체급에서 선수 생활을 했지만, 이고르 보브찬친은 미들급이나 라이트급은 고사하고 페더급에서도 크다고 보기 힘든 키로 무제한급 강자로 명성을 날렸으니... 물론 이고르 보브찬친이나 션 셔크 둘다 키와 별개로 골격이 크기 때문에, 웬만한 180cm 대 남성들은 씹어먹는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
-
무지막지한 펀치력으로 프라이드에서 이름을 날리자 K-1에도 야심차게 도전했으나
어네스트 후스트를 상대로 제대로 펀치도 못맞히고 킥의 부재라는 단점에다 입식룰에서 이해도 부족까지 겹쳐 후스트에게 전방위로 무자비한 펀치와 살인 로우킥을 눈물나게 얻어맞으며 쩔뚝거리기까지 하다 결국 KO패를 당했다. 종합격투기에서의 타격 명성 덕분에 K1 팬들에게도 입식격투기에서 잘 활약할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종합격투기에서도 약점이었던 킥의 부재가 입식룰에서는 치명적으로 다가온데다 하필 상대가 미스터 K-1 그 자체였던 입식의 최강자 후스트였으니... 더군다나 해비급만 존재하는 K1에서 173cm에 불과한 그의 신장에 짧은 리치는 입식격투기에서 커다란 핸디캡이 되었다. 당장 상대인 후스트는 무려 189cm였고 K-1 무대에서 언더 사이즈로 통해 좋은 기술을 가지고도 고전했던 니콜라스 페타스도 180cm 언저리는 된다는걸 감안하면 헤비급 입식격투기에서는 통할 타입이 아니었던 셈.
그러나 상단의 전적을 보면 알겠지만 보브찬친은 MMA만 한것이 아니라 입식에서도 어마어마한 전적(61승 2패)을 쌓았으며 이는 심지어 MMA 전적(56승 10패)보다도 훨씬 좋은 것이다. 물론 이 전적들은 3류 대회에서 쌓은 전적들일 가능성이 높고 당대 최고의 입식 무대였던 K-1과 비할 바는 아니었겠지만 입식에서는 통할 선수가 아니었다 보는건 무리가 있다. K-1 같은 메이저 대회에서도 전적은 단 한번 뿐이니 만약 몇 번 더 도전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1]
일류힌은 턱으로 보브찬친의 눈을 비벼서 탭을 받아냈다.
[2]
역시 무규칙 룰이기에 가능했던 플레이다.
[3]
실수로 상대에게 로블로를 날렸는데 오히려 본인이 흐름을 잃고 판정패했다. 그리고 이 시합에서 보브찬친은 텔리그먼에게 평소 잘 쓰던 바디블로를 전혀 날리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텔리그먼이 심한 사고로 왼쪽 흉근과 갈비뼈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아 왼쪽 가슴쪽이 푹 꺼진 상태에 심장이 있는곳이라 의사로부타 절대 격투기를 하지 말라고 권고를 받았으나 텔리그먼은 이 심한 핸디캡을 안고 커리어를 이어나갔고 보브찬친은 차마 흉골이 없어 맞으면 생명을 잃을수도 있는 텔리그만의 왼쪽 가슴 핸디캡 때문에 바디를 노리는 공격을 전혀 하지 않았다.
[4]
팔이 크게 뻗어 나오면서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훅을 러시안 훅이라고 부른다. 이고르 보브찬친의 주특기로 유명하다.
[5]
참고로 1위는
앤더슨 실바.
[6]
손은 많은 뼈가 정교하게 결합된 구조여서 충격에 약한 반면, 두개골은 중요한 뇌를 보호해야 하기에 비교도 안되게 단단하다. 체중을 실은 숙련된 펀치를 날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도, 성인 남성들이 홧김에 벽을 쳤다가 손이 부러지거나 금이 가는 경우는 흔하다. 반면 두개골은 실신할 정도로 세게 부딪혀도 멀쩡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7]
PRIDE 13에서 트라 텔리그만에게
로블로를 날린 후에는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대개의 경우 기세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시치미를 떼는 경우가 많지만 보브찬친은 주위 사람들이 민망해질 정도로 텔리그만의 상태를 신경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