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이전에 있었던 미얀마의 내부 갈등에 대한 내용은 미얀마 내부갈등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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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내전 | |
<colbgcolor=#536349> 배경 | 2020년 11월 미얀마 총선거 |
2021년 미얀마 쿠데타 | |
경과 | 2월ㆍ 3월ㆍ 4월ㆍ 5월ㆍ 6월ㆍ 7월ㆍ 8월ㆍ 9월ㆍ 10월ㆍ 11월ㆍ 12월ㆍ 2022년ㆍ 2023년ㆍ 2024년 |
관련 인물 및 단체 |
민 아웅 흘라잉ㆍ
아웅 산 수 치ㆍ
윈 민 카렌 민족해방군ㆍ 미얀마 국민통합정부ㆍ 미얀마 시민방위군 · 민주주의민족동맹 · 버마 공산당 |
미얀마 내전 မြန်မာနိုင်ငံ ပြည်တွင်းစစ် Myanmar Civil W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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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자지라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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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황 지도(2024.01.02) | |||||||
민트색: 미얀마 군사 쿠테타 세력 통제 그 외 색[3]: 미얀마 시민방위군 등 반쿠데타 세력 통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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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
2021년
5월 5일 ~ 진행 중 (개시일로부터 [dday(2021-05-05)]일 / [age(2021-05-05)]주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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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
미얀마 전역 | |||||||
교전 세력 | |||||||
미얀마 연방공화국군 |
미얀마 시민방위군 민주주의민족동맹 국민통합정부 # 연방의회 대표위원회(CRPH)[4] 카렌 민족해방군 카친 독립군 미얀마 인민해방군[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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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 |||||||
민 아웅 흘라잉[6] | 두와 라시 라[7] | ||||||
병력 | |||||||
군 병력 | 약 543,000명 | 반군연합[8] | 약 75,000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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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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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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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 피해 | |||||||
경찰 47~103명 이상 사망 미얀마군 1,562~10,000명 이상 사망 41명 생포 |
최소 5,688명 사망검증된 사망자[AAPP] 2,500명 이상 추가 사망 추정검증되지 않은 사망자[AAPP][21] 최소 27,424명 구금[AAP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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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3]
2021년 군부가 아웅 산 수 치를 구금하고 실권을 장악한 군사 쿠데타에 반발해 미얀마에서 벌어진 내전이다. 1988년 8월 8일부터 9월 16일까지 있었던 8888 항쟁에 빗대어 22222 항쟁(2021년 2월 22일)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외에도 봄 혁명(နွေဦးတော်လှန်ရေး) 등 여러 명칭이 있다.
평화주의를 고수하며 시위 등을 통해 군사반란을 반대하는 뜻을 펼치는 시민들을 군경이 지속적으로 살해하는 등, 군 반란세력이 양보와 타협을 끝끝내 거부하고 폭동적 시위진압을 고수하자 끝내 시민들도 저항권을 발동시키면서 자체적으로 무장하기 시작했고, 5월 5일, 미얀마 시민방위군이 창설되면서 내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2021년 9월 7일에 반군부 민주진영인 국민통합정부가 군부에 공식적으로 전쟁을 선포하였다.
2. 원인
자세한 내용은 2021년 미얀마 쿠데타 문서 참고하십시오.3. 상세
아웅 산 수 치를 지지하는 이들부터, 국민민주연맹과 사이가 좋진 않았지만 연대를 하는 소수민족들까지 다양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반군부라는 하나의 이념을 가지고 모였고 오랜 군부독재에 지친 사람들이 많은지라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다.미얀마는 2010년대에 단계적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수치와 NLD(국민민주연맹)가 2012년에 합법화되었으나, 친군부계 통합단결발전 당(USDP)이나 쿠데타군 소속 땃마도(Tatmadaw)가 남아 있었기에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군부의 영향력이 강한 나라였다. 2015년 총선에서 수치가 이끄는 야당의 압승이 확정되며 선거 의석(전체 의석의 75%. 나머지 25%는 군부 몫의 직능 비례대표) 중에 88%를 쓸어담으며 53년만에 문민정부 수립(전체 의석 중에 67% 이상)에 성공했지만 수치는 외국 국적의 배우자를 가진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헌법 조항 때문에 대통령에 오르지 못했다. 즉, 형식상의 민주화는 진행하겠지만 기득권을 계속 지니고 있겠다는 것이 군부의 속뜻으로 단독 정부 수립 이후에는 수치가 실질적인 권력을 가질 것으로 보였지만 여전히 막강한 군부의 권력과 군부의 직능 비례대표나 정치적 영향력을 인정하는 헌법 체계로 인한 이중적 권력 체제 때문에 미얀마에서 정치불안과 쿠데타 우려는 상존해왔다. 사실 치안 및 안보, 국방 관련 등 실질적인 권력은 여전히 군부가 쥐고 있었다. 국제 사회에서는 미얀마에서 문제가 터지면 수치를 향해 비판하기 일쑤였으나, 실질적인 권력은 군부가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즉, 민주화 이후에도 군부 보수 세력이 여전히 강하게 유지되고 있던 것이다. 미얀마에서는 대통령과 총리는 군부에 명령할 권한이 없다.[24]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얀마 군부는 정치가 자신들의 기득권에 도전할 때마다 쿠데타 위협을 가하여 정부를 하수인 삼아왔고 2021년 쿠데타는 이것이 터진 것이다.
4. 논란 및 사건 사고
2021년 미얀마 쿠데타 이후 미얀마 민주화 운동이 2월에 발발하고 군부와 시민사회, 여당 정치계의 대립이 장기화되면서 각종 사건 사고들이 발생하고 있다.4.1. 군부의 집단 파티 사건
조선일보 - 피의 토요일, 미얀마 군부는 호화파티 즐겼다
2021년 3월 27일 시민 100명 이상이 학살된 날 1945년 미얀마가 일본의 점령에 항거해 저항군을 시작한 날을 기념하는 미얀마 창군기념일기를 맞아 행사를 진행한 후 호화 파티를 열어 논란이 되었다. #
2월 1일 군부 쿠데타 이후 최악의 학살이 일어난 날에 군부는 연회를 즐긴 것이다.
4.2. 미얀마 사관생도 춤 영상 유포
숨진 시민 700명 넘는데…미얀마 사관생도 모여 '춤판'
2021년 4월 15일에 보도된, 미얀마 만달레이에 있는 사관학교 생도들이 집단으로 미얀마의 명절이자 최대 물축제인 '틴잔'을 즐기며 집단 춤을 춘 사건.
시위 등에서 미얀마 시민 700여명의 목숨이 희생돼 많은 시민들은 축제 없이 조용히 보내고 있기에 논란이 되었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하던 시민 중 일부에서 분개하여 "생도들이 살인 기계로 훈련받고 세뇌당하고 있다"거나 "그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라는 성토가 쏟아졌다.
민주진영 임시정부격인 '연방의회 대표위원회'(CRPH)에서는 해당 영상을 공유하면서 "민간인들은 공포 속에서 살고 있는데, 군인들은 띤잔 축제를 기념하고 있다. 불법적인 미얀마 군부는 미얀마를 침략한 외국 군대에 더 가깝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코로나19 규칙도 신경 쓰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
4.3. 민주화 운동가 4명 사형 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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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집행 소식을 듣고 교도소 수감자들이 군부에 반발하는 시위를 벌였다. # 양곤 인세인 교도소 수감자들이 군부에 반발하는 단식 투쟁에 나섰다. #
군부는 자신들은 정의의 이름으로 사형했다고 주장했다. 아세안에서도 비판을 가했다. #
시민군과 반군부 시위가 다시 커지고 있다. #
5. 경과
5.1. 2021년
5.1.1. 2월~10월
5.1.2. 11월
- 10월에 1,300명의 미얀마군이 목숨을 잃었다고 국민통합정부(NUG)가 주장했다. #
- 중국과 일본 그리고 태국 정부의 고위 관계자가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 등 군정 지도자들을 만난 바 있다. #
- 군부는 오토바이를 이용한 반군부 세력의 폭발물 투척 공격을 막기 위해 오토바이 탑승자를 제약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당연히 미얀마의 주요 교통수단이라서 반발이 매우 크다.
- 국민통합정부(NUG)는 지난 한 달 간 군인 155명과 경찰 161명이, 9월에는 군인 429명과 경찰 334명이 각각 시민 불복종 운동(CDM)에 참여하였다고 밝혔다. #
5.1.3. 12월
-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가 쿠데타 한 달여 뒤인 지난 3월 양곤 외곽에서 시위대 및 시민 수십명이 숨진 참사는 군경이 의도적으로 시위대를 한 곳에 몰아넣은 뒤 발포한 데 따른 것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
- 영국의 시민단체인 '미얀마 책임 규명 프로젝트'(MAP, Myanmar Accountability Project)는 군정이 자행한 고문 등 가혹행위가 체계적일 뿐 아니라 정책에 따른 것이라는 여러 증거를 최근 ICC에 제시했다. #
- 국민통합정부(NUG)의 기획재정투자부가 기존 짯(Kyat)화 대신 암호화폐인 테더를 공식통화로 대체한다고 발표했다. #
- 반군부 시위를 취재하던 한 프리랜서 사진기자가 군경에 체포된 뒤 며칠 만에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
-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를 인용해 삼성전자와 LG전자, 포스코 등 한국업체 관계자들이 11월 주 미얀마연방공화국 대한민국 대사관이 주최한 고위급 회의에 미얀마 공무원들과 함께 참석했다고 밝혔다. #
- 미얀마군과 KNU 간에 벌어진 치열한 전투를 피해 2,500여명의 주민이 국경을 넘어 북부 탁주의 매솟 지역으로 들어왔다. #
- 7월에 미얀마 중부 사가잉 지역의 반군부 세력 근거지인 카니구(區)에서 4차례에 걸친 대량학살은 군부 소행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
- 수도 네피도에 있는 유엔 특사 사무실을 폐쇄했다고 밝혔다. #
- 군부가 반인류 범죄로 비판받는 각종 폭력 행위에 대한 국제법정의 조사에 응하지 않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
5.2. 2022년
자세한 내용은 미얀마 내전/2022년 문서 참고하십시오.5.3. 2023년
자세한 내용은 미얀마 내전/2023년 문서 참고하십시오.5.4. 2024년
5.4.1. 1월
- 미얀마 군사정권이 독립기념일을 맞아 재소자 약 1만명을 사면했다. #
- 카친독립군이 미얀마군 Mi-17 헬기를 중국제 FN-6 맨패즈로 격추했다. #
- 1월 5일, 라오카이시가 끝내 중국계 반군 MNDAA에 의해 점령되면서 미얀마군은 라오카이시를 포함한 북부 코캉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모두 상실했다. #
- 1월 7일, 인도와 접한 미얀마 사가잉주 캄빳 지역 까난 마을에 미얀마군이 오전 공습을 가해 어린이 9명 등 최소 17명이 숨졌고 20여명이 다쳤다. #
- 1월 12일, 미얀마 군사정권과 소수민족 무장단체들이 중국 중재로 공식 휴전에 합의했다. #
- 그럼에도 아라칸군(AA)은 1월 14일 방글라데시 국경에서 약 20㎞ 떨어진 친주 팔레트와 타운십(구)을 점령했다. #
- 1월 25일 미얀마군이 북동부 핵심 도시를 반군에 넘겨준 지휘관들에게 사형이나 종신형을 선고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
5.4.2. 2월
- 2월 1일 미국 국무부와 재무부는 미얀마 군사 정권에 협력한 개인 4명과 단체 2곳을 새롭게 제재 대상에 포함한다. #
- 2월 9일 미얀마 국경수비대 경찰과 군인 340명이 아라칸군와 교전 중 방글라데시로 탈출했다고 밝혔다. #
- 군사정권의 강제 징집을 피해 나라를 떠나려는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수천 명이 여권사무소에 몰려 2명이 숨지는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
5.4.3. 3월
- 시민방위군이 Sagaing 지역의 Kani 마을을 점령했다. #
- 27일,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수도 네피도에서 열린 '국군의날' 행사에서 "무장단체들이 민주적 가치와 연방주의에 기반을 둔 연방국가 건설로 가는 길을 파괴하고 있다"고 말했다. #
5.4.4. 4월
- 미얀마 저항군이 수도 네피도 군 기지에 대한 드론 공격을 감행했다. #
- 카렌국민연합이 카렌 주의 먀워디 마을을 점령했다. #
- 미얀마 육군사관학교가 있는 중부 만달레이주 핀우린 지역에서 전투기 공습으로 4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부상을 입었다. #
- 카렌민족연합(KNU)은 미야와디에서 철수했다. #
- 미얀마 군사정권이 사용하지 않는 농지를 몰수해 피란민 등에게 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5.4.5. 5월
- 미얀마 군사정권이 자국민 해외 취업 허가 절차를 잠정 중단했다. #
- 카친독립군(KIA)은 5일 미얀마 최북단 푸타오 지역 숨푸라붐 마을을 장악했다.
- 9일 미얀마군이 마궤 지역 쏘 타운십(구) 짜우크투 마을 인근 사원에 폭격을 가해 최소 16명이 숨지고 약 50명이 다쳤다. #
- 11일 미얀마군이 북부 사가잉 지역 민무 타운십(구)에 있는 불교 사원 2곳을 급습해 민간인 최소 33명을 살해했다. #
- 미얀마 국제 전문가 모임인 '미얀마 특별자문위원회'(SAC-M)는 펴낸 보고서에서 미얀마 행정구역인 타운십(구) 중 86%가 군정의 안정적 통제하에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인구 기준으로는 67%에 해당한다. #
- 미얀마군이 북서부 한 마을 결혼식장을 공습해 신랑을 포함해 약 6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
5.4.6. 6월
관련 분석글- 미얀마 군사정권이 국제사회 제재로 무기 도입에 타격을 받았지만, 태국 기업·은행 등의 도움으로 여전히 대량의 무기를 외국에서 조달하고 있다는 유엔 보고서가 나왔다. #
5.4.7. 7월
- 미얀마 북부 샨주의 샨주진보당이 중국계 반군의 공세에 관여 중이란 사실이 알려졌다. 당초 샨주진보당은 군부와의 협상노선을 견지해 평화회담에 참여했지만 이 노선을 뒤집고 미얀마의 미래를 위해선 연방제 민주주의가 해법이라는 미얀마 국민통합정부의 노선이 옳다고 동참한다는 것. 샨주는 군부의 수도인 네피도가 있는 네피도주와 접하고 있기 때문에 군부 입장에선 악재인 셈이다. 또한 미확인 정보지만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의 와족 군대인 와방 연합군도 반군 측에 가담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와방 연합군은 상당한 전투력을 갖췄다는 평가라서 사실이라면 미얀마 군부에게는 골칫거리가 는 셈이다. #
- 7일, 아라칸군(AA)은 서부 라카인주 탄드웨 공항을 점령했다. 미얀마 민주진영이 공항을 점령한 것은 이번에 처음이라 고무적이 성과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그에 비례하여 군부의 보복도 더욱 잔혹해지고 있어 우려되는 상황이다. # #
-
10일, 타앙민족해방군(TNLA)은 정부군과 교전 끝에 북동부 샨주의 나웅초 마을을 장악했다.
#
- 12일, 아라칸군(AA)이 마웅다우 남부의 여러 군부 캠프를 점령하면서 방글라데시와의 국경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했다. #
- 16일, 반군이 수도 네피도 공항에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
- 20일, 미얀마 시민방위군이 만달레이 북쪽 91km에 위치한 싱구마을을 점령했다. 만달레이 방면에서 거둔 첫 점령이다. #
- 21일, 한국미얀마연대에서 혁명군이 72개의 도시를 장악하고 174건의 학교 피해가 있었다는 점을 밝혔다. #
- 25일, 현지 매체 이라와디에 따르면 내전이 격화되면서 한 달간 15만명의 피란민들이 만달레이로 유입되었다고 밝혔다. #
5.4.8. 8월
관련 분석 글- 1일, 상쿠 마을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Aung Min 중령을 포함한 군인과 경찰 29명이 사망했고 군인 100명이 항복했다. 무기 73개가 압수되었다. #
- 3일, 미얀마민족민주주의동맹군(MNDAA)은 샨주 라시오에 있는 미얀마군 북동부사령부를 완전히 점령했다고 밝혔다. #
- 5일, 아라칸군(AA)은 라카인주 마웅다우 마을에서 드론과 포병으로 로힝야 민간인을 공격했다. 8월 5일 단 하루 만에 여성, 어린이, 노인을 포함한 로힝야 민간인 최소 200명이 사망했고 많은 사람이 부상을 입었다. #
- 14일, 타공시을 함락시키기 위한 전투에서 군사위원회 군인 64명이 사망하고, 20명이 생포되었으며, 83개의 총이 압수되었다. # 또한 쿠데타 정부 지도자인 민 아웅 흘라잉이 물러나야 했다는 주장이 최근 며칠 동안 소셜 미디어에 널리 퍼졌다.
- 15일, 마웅도 도심은 불타고 있다. 아라칸군(AA)이 마웅도의 도심을 장악했다. #
- 18일, 미얀마 시민방위군(PDF)이 타바인 마을과 주변 시골을 점령했다. 타바인은 사가잉 평원에서 가장 먼저 점령된 마을이다. #
- 21일, 미얀마 시민방위군(PDF)이 만달레이 남쪽의 군부 기지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즉, 이제 만달레이와 네이피도 사이의 중앙 건조 평야에서 영토를 확장하고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
- 21일, 아라칸군(AA)은 방글라데시와 접한 라카인주 북부에서 군정이 마지막으로 통제하고 있던 마웅도 타운십(구)을 장악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
- 26일, 미얀마 시민방위군(PDF)이 타베이킨 마을과 그 근처 군사 캠프를 점령했다. 이 점령으로 저항 세력은 만달레이 북쪽에 있는 마지막 남은 군부대를 완전히 점령했다. #
5.4.9. 9월
- 2일, 미얀마 군사정권이 반군의 공세로 전력난이 심해지자 전기세를 2배 이상 올렸다. #
- 18일, 인도 정부가 미얀마 인민공화국에 100만 달러 상당의 긴급 홍수 구호 지원물품 53톤을 지원했다. #
- 20일, 미얀마민족민주주의동맹군(MNDAA)은 전날 민주진영 임시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와 군사·정치적으로 협력하지 않겠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 미얀마에서 가장 강력한 소수 민족 단체들이 군부 정권 이후 민주적 연합 연방 국가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는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
- 20일, 양곤 거리에서 자발적인 반 군부 시위가 터졌다. 수십 명의 시위대가 횃불과 저항 깃발을 들고 정부의 몰락을 요구하며 행진했다. 이 활동가들은 이렇게 행진함으로써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그들은 죽을 수도 있다. #
- 21일, PDF 저항 세력이 사가잉 지역 북쪽에 위치한 칸발루 타운십 시골에서 군부 세력과 충돌했다. #
- 21일, 몬 주, 캬이크토 타운십 인근에서 KNU/KNLA 매복 공격으로 13명의 군부 군인이 사망했다.
- 25일, 군부의 폭격으로 저항 세력이 점유한 라시오(산 주 북부) 도시가 심각한 파괴를 입었다. 이는 MNDAA가 적대 행위를 중단하고 중국 중재 휴전을 고수하겠다고 발표한 데도 불구하고 발생했다. #
- 30일, KIA와 PDF 저항군이 카친주 북동쪽의 외딴 산악 마을 칩위와 주변 군부 캠프 여러 곳을 점령했다. 카친 뉴스 그룹에 따르면 저항군이 점령한 군부 기지는 총 5곳이다. #
5.4.10. 10월
- 아웅산 수치 국가 고문의 측근 인사가 사면된 직후 사망했다. #
- 3일, 양곤 예우진 경찰서에 대한 드론 공격으로 군사위원회 군인 4명이 사망하고 경찰서는 화재로 소실되었다. # 보이경 마을에서 미얀마 군인을 태운 차량에 지뢰 공격이 발생해 군 장교 1명을 포함해 3명이 사망했다. # 파폰 시에서 군대의 공습으로 민간인 여성 1명이 사망했다. #
- 4일, 사가잉 지역 부달린 타운십의 마웅타웅 마을에 군부 항공기 2대가 폭탄 8개를 투하해 민간인 2명이 부상당했고 수도원, 병원, 학교가 피해를 입었다. #
- 5일, 미얀마 군부가 친 주 반대 세력과의 전투에서 탄틀랑에 대한 여러 차례의 폭격을 감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부는 전국적으로 과도하게 확장된 병력이 고군분투하면서 공습에 더 주력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
- 13일, 시민방위군(PDF)이 군부 거점을 급습하여 타닌타리 지역 예퓨 다리 근처에서 여러 명의 군인을 사살했다. 전투원들은 MA-3 MK 2 카빈과 BA-203 유탄 발사기가 달린 MA-4 MK 2 소총으로 무장했다. # 한국미얀마연대는 NUG 발표 등을 종합해 혁명군이 82개의 도시를 점령했다고 밝혔다. #
- 15일, 군대는 이전에 공습과 포병에 주로 의존했지만, 군부는 최근 몇 주 동안 칸발루 타운십의 마을에 전례 없는 일련의 드론 공격을 가해 민간인을 죽였다. #
- 17일, 공습으로 AA 구성원 약 300명이 사망했고 많은 사람이 중상을 입었다. 미얀마 군부는 AA 구성원의 존재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받은 후 북부 마웅다우의 Aungmingalar Rakhine 마을에서 공습을 실시했다. # Palaw PDF와 KNDO 구성원들이 Meelaungchaung 마을의 Junta와 Pyusawhti 민병대 위치를 공격했다. #
- 18일, 북부 카렌족이 미얀미군의 공습, 드론 폭탄, 지뢰 공격으로 민간인 9명이 사상자를 냈고 클레르웨흐투와 무트라우 지구의 여러 주택이 파괴되었다. #
- 19일, 아라칸 군대(AA)는 최근 며칠 동안 마웅다우에 있는 미얀마 군대의 제5국경경비대 경찰 대대에 대한 공격을 강화했으며, 정권은 포병과 공중 지원을 통해 이 민족 무장 단체의 공격에 대응했다. # 카친 독립군(KIA) 본부가 있는 라이자 인근에서 토요일 아침 군부의 공습으로 한 부부가 사망하고 집이 파괴됐다고 KIA가 밝혔다. # 타딩유트 축제 기간 중 토요일 아침, 북부 샨주의 타앙 민족해방군(TNLA) 통제 하에 있는 나웅키오 마을을 겨냥한 군부 공습으로 한 아버지와 두 자녀가 사망했다. #
- 21일, 미얀마 군부가 아라칸 주 마웅다우 타운십에서 대규모 공습을 감행하고 있다. 폭격이 너무 심해서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의 로힝야 난민 캠프까지 느껴질 정도이다. #
- 23일, TNLA가 통제하는 Namhsan 및 Nawnghkio 타운십에 대한 공습으로 8명이 사망하고 최소 12명이 부상당했다. #
- 24일, 카친독립군(KIA)이 북부 카친주의 희토류 생산지인 판와를 장악했다. KIA 측은 현재는 판와 관리에 집중하고 있으며 희토류 생산 등 경제적 사안에 대해서는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 군부와 동맹군이 남부 샨주 산악지대에서 카렌니 저항군이 점령한 핀룽과 페콘 사이의 마을을 습격하는 대규모 작전을 강화하면서 양측 모두 큰 사상자가 발생하고 민간인들이 고향을 떠나야 했다. #
6. UN의 반응
2021년 2월, UN 인권이사회는 미얀마 군부가 일으킨 쿠데타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유엔 인권대표사무소는 "군부의 권력 장악은 미얀마가 어렵게 얻어낸 민주주의로의 이행에 심각한 차질을 빚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2021년 3월 10일, 안보리에서 미얀마 군부의 시위대 폭력 진압을 규탄하는 성명에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다만 미얀마 '쿠데타'라는 표현은 빠졌다. #
한편, 前 정권에서 임명된 UN 미얀마 대사(초 모 툰)와 UN 아프가니스탄 대사(굴람 이삭차이)는 탈레반과 미얀마 군사정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자리를 지킬 것으로 보인다. 12월 6일 UN총회에서 이들 대사의 직위가 유지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2021년 12월 1일, 미얀마 쿠데타 군사정권과 탈레반이 나란히 UN 회원자격 심사에 탈락했다. 추후 위원회 보고서와 권고안에 따라 결정한다고 연기했지만, 미국, 러시아, 중국이 포함된 9개국 UN 회원자격심사위에서 UN 개별국가의 자리를 이들 정권에게 부여하는 것은 현 시점에서 옳지 않다는 판단을 내린 이상, UN 회원자격 인정이 사실상 거부된 셈. #, #
7. 한국 정치권의 반응
정부나 타 정당의 공식 입장이 나오기 전부터 정의당은 미얀마 민주화운동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정의당 조혜민 대변인은 2021년 2월 16일자로 우리나라 역시 군부독재에 맞선 시민의 저항이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나라인 만큼 결코 이 사안을 외면할 수 없다. 정부는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쿠데타 세력 규탄을 앞장서 촉구하라는 메시지를 내고, 지지 행동을 이어나갔다. 3월 5일, 정의당 계열 청년 단체 모멘텀은 "한국의 진압무기가 미얀마 군부로 흘러들어가고 있으며, 정부가 아직도 군부 계열 단체와 경제협력을 이어오고 있다"며 한국정부의 민주화 지지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대한민국 외교부는 2021년 3월 대변인을 통한 성명으로 "정부는 미얀마에서 다수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에 매우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으며 "정부는 국제사회와 함께 미얀마 상황을 주시하며 우리의 향후 조치를 강구해 나갈 것" 이라고 밝혀 미얀마 군부의 행태를 규탄했다. 그리고 유사시 현지 교민을 철수할 수 있도록 군 수송기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결국 미얀마 군부에 대해 제재하기로 하였다. 군, 경과의 협력을 중단하고 전략물자 수출을 까다롭게 하기 위해 국방과 치안, 전략물자 수출, 개발협력 등 3분야의 대응조치를 발표했다. #
2021년 2월 26일 박영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미얀마 쿠데타 규탄 결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 박영순 의원은 한국-미얀마 의원 친선협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 아웅산 수지 국가 고문을 비롯한 구금자들의 즉시 석방 * 민주질서 원상회복과 즉시 군부로 원대 복귀할 것을 촉구하고 * 유엔 및 국제사회와 함께 미얀마 국민의 민주화 노력에 연대와 지지를 보낼 것 등을 결의하였다. 2021년 2월 18일에는 미얀마 민족민주동맹( NLD) 한국지부 얀나이툰 회장을 초청하여 고영인 의원이 규탄 토론회를 열었다. #
2021년 6월 9일 여야 국회의원 63명은 3인 공동대표 체제로 '미얀마의 평화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모임'을 결성했다. 소속 위원으로는 더불어민주당 출신 의원이 53명, 국민의힘 출신 의원이 4명, 열린민주당 의원이 2명, 정의당 소속 의원이 2명, 국민의당과 기본소득당 의원이 1명씩 참여했다. 참여 63명 의원 명단
2021년 7월 8일 국민의힘 국제위원회 주최로 '미얀마 민주주의와 인권회복을 위한 라운드테이블'이 열렸다. 해당 행사에는 사단법인 아시아인권의원연맹 회장이자 국회인권포럼 공동대표인 하태경 의원, '미얀마의 평화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의 운영위원인 지성호 의원이 국민의힘 국제위원회 위원장인 조태용 의원, 이준석 당대표와 함께 참석하였다. 해당 행사에서 미얀마 국민통합정부의 두와 라시 라 부통령 등이 화상으로 참석하였으며 인도적 관점에서 공적개발원조와 관련된 지원방안을 논의하였다. # 이준석 대표는 과거 정부가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한 지지성명을 내는 것을 정부와 정당이 주저했다고 했으며 이와 다르게 미얀마에 대해서는 정부가 신속하게 제재를 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여야의 불화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실질적인 조치가 뒤따르지 못한다면 문재인 정부의 진정성이 의심 받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기사
대한민국 정부는 2022년 예산에서 쿠데타 군사정권이 들어선 미얀마의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를 큰 폭으로 삭감하기로 했다. #
하지만 2023년 5월 12일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미얀마 대사의 한국군 무기수출 박람회 공식 초청 사실을 폭로했다. 5월 13일 이정미 대표는 SNS 긴급 메시지로 " 윤석열 정부가 미얀마 군사독재정권 대사를 무기 수출 박람회에 초청한 사실이 밝혀졌다"며 "경제적 무능함의 초조함으로 이성을 상실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반인도적 전범 집단에게까지 무기 수출 박람회에 초청하고, 미얀마 군부와 국내 기업의 거래를 방조하고 있는 윤석열 정권에게 과연 제정신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강한 수위로 비판했다. #[26]
이후 참여연대 등이 미얀마의 대사를 무기홍보 행사에 들이곤 K2 전차에 탑승시키는 사진을 공개했으며, 2023년 8월 UN 또한 윤석열 정부에 "군부정권 제재의 의사가 있기는 한가" 내용의 강한 우려가 담긴 주의를 전하기도 했다. #
8. 신냉전 시대에서
중국은 UN의 미얀마에 대한 간섭을 반대했고, 군부에 의해 폐쇄되었었던 양곤 국제공항에 중국 화물기가 새벽 착륙을 하였다는 이유로 중국 정부와 미얀마 군부가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주장이 돌았다. 하지만 중국은 이 화물기에 실린 게 군수물자가 아니라 수산물이라고 해명하였다. 또한 중국 정부가 미얀마 쿠데타의 배후라기에는 NLD 정권을 대놓고 비토하기는 커녕 오히려 투자사업을 확대하는 등 사이가 나쁘지 않았기에 쿠데타의 직접적인 배후라고 보기는 어렵다. 아웅산 수치 정권 역시 친중 성향이 강했으며, 쿠데타 이전 미얀마인들은 로힝야 탄압에서 미얀마를 지지하는 중국에 호의적인 입장이었다. 다만 중국이 미얀마 군부 기업에 투자를 하는 등 경제적 이권으로 맺어진 것이 많기도 하고 항구 이용권과도 연관이 있기 때문에 군부를 반대해서 손해를 보기 싫다는 스탠스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이러한 태도로 미얀마 내에서 민심을 잃었다. 결국 6월 12일, 중국인이 운영하는 의류공장에서 폭탄이 터지는 사태까지 벌어졌다.이 때문에 현지 한인회가 중국인 공장 오인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태극기를 배포하기도 했다. # 시위대가 태극기가 달린 사업체는 공격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에 일부 중국인 공장주들은 태극기를 어디선가 구해다가 달아놓고 있다고 한다.
미얀마 화교들도 민주화운동에 나선 일이 있다. # 사실 군부가 중국 당국이나 중국기업들과 이권을 나눠가진다는 점 때문에 쉽게 간과되는 사실이지만 한족들이 사는 코캉자치구[27]의 경우에는 해당지역 반군이 미얀마에 소속되느니 독립을 하거나 차라리 중국에 편입되겠다면서[28] 미얀마 군부와 싸우고 이 때문에 중국 본토에까지 미얀마군이 들어와서 오폭을 하는 사건이 벌어진다거나 미얀마 출신 난민들이 중국 본토로 흘러들어오는 등 마냥 우호적인 분위기가 아니다. 과거의 일이기는 하지만 네 윈이 화교 출신이었음에도 화교들의 경제활동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해서 화교들이 미얀마를 빠져나가는 일도 있었다. 즉, 단순히 친중 반중 대결로 보기에는 상황이 복잡하다.
다만 미얀마가 중국의 해상 무역과 인도 견제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위치인지라[29] 이러한 트러블에도 중국 당국이 전략적인 차원에서 미얀마 군부와 손을 잡고 있다고 보면 된다.[30] 아웅산 수치도 로힝야 문제 때문에 중국과 가까워지는 경향이 있었다. 경향신문
이 때문에 미국은 내심 이러한 반중정서를 반가워 하고 있는데, 미얀마만 미국의 진영으로 넘어온다면 중국의 해양진출을 억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얀마 시민 방위군 부대들의 무기를 보면 M16 같은 미국제 무기들이 많이 보이고 시민 방위군이나 국민통합정부가 미국과 접촉하는 케이스가 많아 이들의 뒤에 미국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중국도 미얀마 시민에게서 민심을 얻기 위해 카친족 반군 국민통합정부 시민방위군 같은 반군부 진영에 시노백이나 시노팜 등의 백신을 나누어 주고 있다. 그리고 2023년 하반기부터는 중국이 본격적으로 친중 반군부 진영을 지원하고 있다. 그 이유는 중국계 친군부 군벌[31]의 마약 등의 범죄행각 때문.
9. 기타
시민들 사이에서 세 손가락 경례가 저항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 소설 헝거 게임에서 따 온 것이라고 하며, 2014년에 쿠데타가 일어난 태국에서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먼저 사용한 바 있는 유서 깊은 표현이다.한국에 체류 중인 미얀마 유학생 및 노동자들도 타국에서 민주화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현 미얀마의 상황은 마치 과거 대한민국의 5.18 민주화운동이 전국적인 단위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을 만큼 그 진행 상황이나 모습이 유사하여, 5.18이 쉽게 연상될 만큼 닮아있다. 미얀마인들도 '이기면 한국이 되고, 지면 북한이 된다'라며 한국의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8888 항쟁 당시 불려졌던 Kansas의 《Dust in the Wind》를 버마어로 개사한 《비록 세상이 끝날지라도 (Kabar Makyay Bu, 가바 마째 부)》라는 민중가요가 시위대 사이에서 다시 불려지고 있다.
한국어 번역 가사[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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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이 미얀마어로 올라왔다.
제78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바실리라는 가명을 쓴 미얀마인이 '새드 필름'이라는 이 사건을 기록한 단편 다큐멘터리를 공개했다.
1년 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발발하면서 전세계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리다 보니 상대적으로 세계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었으나 2024년 기준, 미얀마군이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실패하고 우크라이나군의 전황이 교착상태에 빠져 점점 어려워지는데 반해 미얀마 저항군은 지속적으로 선전하면서 차근차근 쿠데타 세력을 밀어내며 다시 세간에 조금씩 그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참고자료(미얀마 양곤에는 봄이 올까?)
10. 관련 문서
- 2021년 미얀마 쿠데타
- 제2차 냉전
- 아웅산 수치
- 민 아웅 흘라잉
- 미얀마군
- 람보 4: 라스트 블러드
- 천안문 6.4 항쟁
- 홍콩 민주화 운동
- 동유럽 혁명
- 5.16 군사정변
- 대만 계엄령
- 아프간 사태
- 5.18 광주 민주화운동
- 6월 민주항쟁
- 8888 항쟁
- 미얀마 내부갈등
- 태국 민주화 운동
- 아랍의 봄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1]
People's Defence Force
[2]
영상 속 남성은
M16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으나 기능고장 혹은 탄의 불량으로 인해
볼트액션 소총처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적색(시민방위군), 암적색(친족 반군), 회녹색(카친족 반군), 회청색, 연청색(카렌 반군), 노란색(남부 샨주군), 청색(아라칸군), 갈색(코캉족 반군), 암녹색(북부 샨주군), 녹색(따앙족 반군), 자주색 등
[4]
군부가 무효 처리한
2020년 11월 총선의 당선자들 중 비군부파 의원모임. 주로
국민민주연맹 소속이지만
무소속이나 기타 정당도 있다.
[5]
버마 공산당이 조직했으며, 중국 망명 중이었으나 군부 쿠데타 이후 돌아와 미얀마 군부를 상대로 인민전쟁을 선포하고 게릴라를 침투시켰다.
[6]
미얀마 국가행정위원회 의장(2021.02.~)
미얀마 대통령 권한대행(2024.07.~)
총리(2021.08.~)
미얀마군 총사령관(2011.03.~) [7] 미얀마 국민통합정부 대통령 권한대행 겸 부통령 [8] EAOs 소수민족 반군 [9] 2021년 3월 기준으로 유일하게 CRPH를 승인하고 있다. NLD 한국 지부장 인터뷰 [10] ~2023년 말 경까지 지원함 [물자지원국] [물자지원국] [13] 현재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국가들 중 미얀마 민주화 운동 시위대가 공식적으로 자기들을 지지해달라고 지목해 호소한 국가다. 사실 한국도 전후 군부 독재에 대항해온 공통점이 있고, 끝끝내 민주화를 이루었기에 각별할 수밖에 없다. [14] 미얀마 군부를 수차례나 제재하였다. [15] 2023년 말 경부터 미얀마 군부와의 갈등으로 인해 노선을 바꿔 지원하기 시작함 [16] 비록 2016년에 에르도안과 관해서 서방이 쿠데타 간접 주도한 사례는 있었지만 에르도안은 미얀마 군부를 강력히 비판하였다. [17] 일본은 미얀마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가 19년 한해에만 1,893억엔(약 1조 9,400억원)에 달하는 미얀마 최대 원조국이다. 공식적으로는 미얀마 군부에 반대하는 입장이나, 기존 ODA 사업을 철수하지 않고 신규 ODA만 보류하는 등 서방의 경제제재 동참에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18] 미얀마군의 날에 대표단을 보내는 등 군부에 지지 의사를 나타냈으나 여론이 악화되자, 4월 3일 어떠한 형식의 폭력도 비난하며 민주주의를 지지한다고 표명해 민주화 운동 세력을 간접적으로나마 지지했다. [AAPP] AAPP 2024년 9월 23일 기준 [AAPP] [21] 기반시설이 열악한 미얀마의 특성과, 반군의 교전이 대부분 게릴라전인 상황으로 인해 객관적인 집계나 검증이 어려워 명단에 집계되지 않은 추가 사상자들도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AAPP] [23] 5월 25일에 찍은 쿠테타군 vs 시민군 교전 영상이다. 영상을 보면 교전을 벌이던 시민군이 경찰서를 개집이라고 부르며 경찰서가 불타고 군경을 사살한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에서 시민군한테 미얀마 군경에 대한 적개심이 극도로 강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4] 개헌을 막기 위해 개헌저지선 수준의 의석이 군부에 할당되어 있다. [25] Phyo Zayar Thaw. 미얀마 1세대 힙합 아티스트였다. 그가 속했던 그룹 Acid에서 낸 데뷔 앨범은 미얀마 차트 1위를 2개월 동안 차지하는 등 미얀마 내의 톱스타였다. # [26] 정의당은 2019년부터 캄보디아, 미얀마, 태국 등의 동남아시아 민주화 운동 세력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에 원색적인 발언을 들어가며 규탄한 것으로 보인다. 태국 행동전진당 등 원내 1당이 정의당에 감사 인사를 보내기도 할 정도. [27] 원나라 시대에 운남지역이 중국의 영역에 완전히 편입된 이래로 청나라 때까지 중국의 영역이었지만 청나라 말기에 영국에 의해 영국령 미얀마에 편입되었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한족들의 비율이 90% 이상으로 추정된다. [28] 오늘날 미얀마의 1인당 GDP는 중국의 8분의 1, 방글라데시의 2분의 1 수준에 불과하며 더욱이 소수민족들이 사는 변경 지대는 소득 수준이 훨씬 더 낮은 편이다. [29] 특히 미얀마의 항구 사용권을 얻으면 이를 거점으로 인도양에서 무역/어업도 활발해지고, 해군 강국이자 중국의 눈엣가시 중 하나인 인도 해군을 견제하기가 수월해진다. 그래서 미얀마의 항만 사용권 확득과 철도 건설이 일대일로의 핵심 과제이기도 했다. [30] 벵골 만을 통해서 원유 수송하는게 쉽고, 이걸 못 하면 사이가 좀 안 좋은 베트남을 지나거나 남중국해에 있는 미국 해군과 충돌할 수 있다. [31] 과거 국공내전 당시의 국민당군의 잔당이다. 출신이 이렇기 때문에 반중정서를 가진 대만과 연계할 가능성이 있어 중국 입장에서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32] 독음은 적지 않음. [33] 미얀마의 독립운동가이자 문학가 평화주의자 #
미얀마 대통령 권한대행(2024.07.~)
총리(2021.08.~)
미얀마군 총사령관(2011.03.~) [7] 미얀마 국민통합정부 대통령 권한대행 겸 부통령 [8] EAOs 소수민족 반군 [9] 2021년 3월 기준으로 유일하게 CRPH를 승인하고 있다. NLD 한국 지부장 인터뷰 [10] ~2023년 말 경까지 지원함 [물자지원국] [물자지원국] [13] 현재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국가들 중 미얀마 민주화 운동 시위대가 공식적으로 자기들을 지지해달라고 지목해 호소한 국가다. 사실 한국도 전후 군부 독재에 대항해온 공통점이 있고, 끝끝내 민주화를 이루었기에 각별할 수밖에 없다. [14] 미얀마 군부를 수차례나 제재하였다. [15] 2023년 말 경부터 미얀마 군부와의 갈등으로 인해 노선을 바꿔 지원하기 시작함 [16] 비록 2016년에 에르도안과 관해서 서방이 쿠데타 간접 주도한 사례는 있었지만 에르도안은 미얀마 군부를 강력히 비판하였다. [17] 일본은 미얀마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가 19년 한해에만 1,893억엔(약 1조 9,400억원)에 달하는 미얀마 최대 원조국이다. 공식적으로는 미얀마 군부에 반대하는 입장이나, 기존 ODA 사업을 철수하지 않고 신규 ODA만 보류하는 등 서방의 경제제재 동참에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18] 미얀마군의 날에 대표단을 보내는 등 군부에 지지 의사를 나타냈으나 여론이 악화되자, 4월 3일 어떠한 형식의 폭력도 비난하며 민주주의를 지지한다고 표명해 민주화 운동 세력을 간접적으로나마 지지했다. [AAPP] AAPP 2024년 9월 23일 기준 [AAPP] [21] 기반시설이 열악한 미얀마의 특성과, 반군의 교전이 대부분 게릴라전인 상황으로 인해 객관적인 집계나 검증이 어려워 명단에 집계되지 않은 추가 사상자들도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AAPP] [23] 5월 25일에 찍은 쿠테타군 vs 시민군 교전 영상이다. 영상을 보면 교전을 벌이던 시민군이 경찰서를 개집이라고 부르며 경찰서가 불타고 군경을 사살한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에서 시민군한테 미얀마 군경에 대한 적개심이 극도로 강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4] 개헌을 막기 위해 개헌저지선 수준의 의석이 군부에 할당되어 있다. [25] Phyo Zayar Thaw. 미얀마 1세대 힙합 아티스트였다. 그가 속했던 그룹 Acid에서 낸 데뷔 앨범은 미얀마 차트 1위를 2개월 동안 차지하는 등 미얀마 내의 톱스타였다. # [26] 정의당은 2019년부터 캄보디아, 미얀마, 태국 등의 동남아시아 민주화 운동 세력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에 원색적인 발언을 들어가며 규탄한 것으로 보인다. 태국 행동전진당 등 원내 1당이 정의당에 감사 인사를 보내기도 할 정도. [27] 원나라 시대에 운남지역이 중국의 영역에 완전히 편입된 이래로 청나라 때까지 중국의 영역이었지만 청나라 말기에 영국에 의해 영국령 미얀마에 편입되었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한족들의 비율이 90% 이상으로 추정된다. [28] 오늘날 미얀마의 1인당 GDP는 중국의 8분의 1, 방글라데시의 2분의 1 수준에 불과하며 더욱이 소수민족들이 사는 변경 지대는 소득 수준이 훨씬 더 낮은 편이다. [29] 특히 미얀마의 항구 사용권을 얻으면 이를 거점으로 인도양에서 무역/어업도 활발해지고, 해군 강국이자 중국의 눈엣가시 중 하나인 인도 해군을 견제하기가 수월해진다. 그래서 미얀마의 항만 사용권 확득과 철도 건설이 일대일로의 핵심 과제이기도 했다. [30] 벵골 만을 통해서 원유 수송하는게 쉽고, 이걸 못 하면 사이가 좀 안 좋은 베트남을 지나거나 남중국해에 있는 미국 해군과 충돌할 수 있다. [31] 과거 국공내전 당시의 국민당군의 잔당이다. 출신이 이렇기 때문에 반중정서를 가진 대만과 연계할 가능성이 있어 중국 입장에서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32] 독음은 적지 않음. [33] 미얀마의 독립운동가이자 문학가 평화주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