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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주의

원리주의자에서 넘어옴


1. 설명
1.1. 다른 사상과의 학술적 구분
2. 현황3. 관련 문서

1. 설명

"근본인 것들을 지킬 수 있다면, 목숨을 걸고라도 한판 붙을 작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
1920년대 미국 저널리스트 커티스 리 로우스, 당시 새로 등장한 종교 성향에 대한 논평 中
/ Fundamentalism

다른 이름으로는 원리주의(原理主義)라고도 한다.

독실한 신앙이 종교 교리에 충실한 것이라면 근본주의는 전통주의 보수주의 또는 종교 극단주의 또는 각 종교의 구원론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비교적 이해의 역사가 짧다. 매니토바 대학교에서 재직하면서 권위주의 연구로 유명해진 정치심리학자 밥 알테마이어(B. Altemeyer)는 근본주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근본주의는 신념의 한 종류로서, 인간과 신에 관해 오류가 없는 유일무이한 종교적 가르침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이 진리가 시대적, 공간적 배경과 무관하게 적용 및 규칙에 따라 준수되어야만 한다고 믿는 것을 말한다.
Altemeyer & Hunsberger, 1992 #
이들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매우 확실히 알고 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이들의 경직된 태도는 특정한 세계관이나 신념에 대해서 그것 하나만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믿기 때문에 나타난다. 언뜻 보면 확신에 차 있고 자신감 넘쳐 보이는 이들의 믿음의 이면에는 뜻밖에도 죽음에 대한 실존적 공포와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내면의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공포와 불안 때문에 근본주의자들이 그들과 다른 생활 양식이나 문화에 거부감을 보이고[1] 성소수자 및 다른 인종에 대해 차별적인 행동을 하는 호모포비아 인종 차별적 특성을 가진다고 본다. 성경의 내적 모순들 및 성경과 현상(world knowledge) 사이의 모순[2]에 대해서 더 히스테릭하게 반응하고, 특히 공포와 불안이 심해지면 신앙치료에 대해 심정적으로 더 매달리게 되고, 심지어는 군국주의 역시 더 심하게 옹호한다고 보고하였다.[3]

1.1. 다른 사상과의 학술적 구분

흔히 같이 나타나는 권위주의와도 사뭇 다르다. 바실리스 사로글로우(V.Saroglou) 등의 연구자들에 따르면 근본주의자들은 공격적인 교리나 구절을 접하면 권위주의자들보다 더 심한 배타성과 공격성을 보이지만, 반대로 박애와 사랑을 강조하는 교리나 구절을 접할 때에는 권위주의자들보다 덜 배타적이며, 심지어 근본주의자이자 권위주의자인 사람들에게서도 그 배타성이 일정 부분 상쇄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4] 이들은 자신과 같은 종교를 믿는 신자들에게 한해서는 매우 친절하다고 한다.[5] 짧게 말하면, 이들은 선한 교리를 접하면 한없이 선해지고, 위험한 교리를 접하면 한없이 위험해지는 반면, 권위주의는 이런 영향이 덜하다는 것이다.

물론 실질적으로 근본주의 세력은 여러 분야에서 권위주의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일반적이라 (특히 정치학계에서는) 자유주의와 대비되는 권위주의 세력의 일부로 보기도 한다.

2. 현황

안 그런 집단들도 있긴 하지만 흔하게 알려진 근본주의 집단들은 대부분 세속 사회와 충돌하여 해를 끼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교리를 확대해석한 나머지 경전의 내용을 자신들이 가장 잘 지키고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서술된 것처럼, 종교계에서 근본주의가 나타날 경우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생활양식이나 가치판단 등에 있어 교리에 근거한 자신들의 기준을 절대화하는 자체는 개인 차원에선 큰 문제가 되지 않으나 그것을 사회 전반에 강요하고 뜯어고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문제이다. 아미시 같이 아예 고립적인 근본주의적 집단들은 사회에 물의를 끼치지 않는다는 일각의 주장도 있는 모양인데, 아미시 공동체 내에서 작은 사회의 전형적인 성폭력, 근친 문제를 보고 그런 말이 나올지 의문이다.

예를 들어 유대인 하레디들은 과거 자신들의 조상들도 현실에 맞춰 지키던 600여 개 계율을 현대 문명을 거부하며 지키는데 이들이 이어받았다고 주장한 순수 유대인, 그러니까 수천 년 전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언어, 토라 뿐만 아니라 세속 지식까지 다 배웠다. 팔레스타인 땅에 무력으로 원주민을 쓸어버리고 유대인만을 위한 신정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는데, 19세기까지 정통 유대교 랍비들은 회당에서도 히브리어만 쓰고 개신교식으로 찬송가를 만들어서 활용하자는 진보적인 주장에도 반대했지만, 과격적인 시온주의는 그저 미친소리로 여기고 회당 안에서 시온주의를 선동하는 무리들을 빗자루를 휘둘러 쫓아낼 정도였다. 그러나 19세기부터 시작된 유럽의 반유대주의, 동유럽의 포그롬이나 나치의 유대인 박해로 유럽에서 보수 정통 신학을 가진 유대인 공동체가 파괴되자 2차대전 전후 평소에 회당에도 나오지 않던 과격 급진 무리들이 자신들이 정통이라 주장받기 위해 극단적 종교 근본주의자가 되었다는 시각도 있다.

개신교에서도 우리가 오늘날 근본주의라고 생각하는 많은 이미지들은 사실 근본주의가 아니다. 18세기까지 유럽의 개신교 학자들에게 있어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 는 문구는 1~2세기 사도 시절에만 해당된다고 보는 게 통설이었으며 성령체험, 방언은 역시 성서시대에만 나오는 것으로 보는 은사중지론이 19세기까지 통설이었다. 왜냐하면 종교개혁시기 칼로 전도하는 과혁혁명론자와 성령을 직통으로 받는다는 토마스 뮌처를 비롯한 재세례파들을 이단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은사중지론을 설파한 대표적 인물인 벤저민 워필드(B.B.Warfield)는 실제로 장로회의 유명한 신학자이기도 하다.

근본주의 하면 보통 이슬람이나 기독교(그 중에서도 특히 극단주의 계통) 등 유일신교 계통 종교들을 떠올리기 쉬우나 실제로는 다른 종교에도 근본주의는 당연히 존재한다. 근본주의자들은 나라에 따라서 권유 수준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 막장스런 나라들은 아예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서 아예 나라 전체나 특정지역 이미지에 손상을 입히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힌두교 근본주의자들은 자경단을 조직하여 이슬람 도축업자들을 살해하고 다니며 미얀마와 태국의 극단주의 불교도들은 소수 종교인 이슬람과 소수 민족들을 탄압한다.

간혹 아미쉬 공동체들을 근본주의라고 여기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생활 방식이나 종교를 절대화하거나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지도 않고 자신들이 반대하는 현대문명에 대해 위협을 느끼지도 않는다. 이들은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체계를 갖고 살아가는 타인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근본주의라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는데, 일단 당장 아미시 공동체가 그렇게 외부에서 보는 것처럼 털어도 먼지 안 나오는 사람들인지 부터 의문이고[6] 애초에 근본주의의 정의에서 사회적 민폐는 부차적 요소고, 17세기 이민 당시의 종교관, 사회관을 의식적으로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에서 아미시는 근본주의 맞다. 이바디 이슬람 처럼 그냥 외부와 차단 자체를 끊고 사는 것이지, 외부 전파를 안한다고 해서 근본주의가 아닌 게 아니다.

한국에서는 매우 보수적인 가톨릭의 모더니즘 비판을 통한 근본주의와 개신교 대다수 교파에서 정통주의적 태도를 통해 근본주의와 비슷하게 보이는 문제[7]는 분명 있을지언정 다른 나라들처럼 타 종교인을 상대로 살해나 테러 등의 종교 분쟁이 미약한 수준이다. 이는 좋은 치안에 기여하고 있다.

근본주의가 한국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 도올 김용옥은 한국은 샤머니즘 기복신앙과 유가적 현실주의가 뿌리깊게 내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보였다. 즉, 종교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복신앙적 요소는 종교 내부에서 크게 비판하고 있기도 하고 적대시하는 경향도 있기 때문에 무조건 옳은 주장이라고 하기엔 아니다. 이러한 주장은 주기철을 비롯해서 신사참배 문제로 일제에게 희생당한 아픈 역사가 있는 기독교인들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 이런 근본주의 회귀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200여년 동안 분명히 있었다. 이 시기에 성리학 교조주의로 인해 여성인권이 급격하게 후퇴한 것도 사실이다.

한국에서 근본주의가 자리잡기 힘든 또다른 이유는 일본[8], 러시아[9], 중국[10], 몽골[11], 영국[12], 아랍권[13], 그리스[14], 에티오피아[15], 이탈리아[16], 동유럽을 제외한 서양권 공통[17], 스페인[18], 포르투갈[19], 프랑스[20], 오스트리아[21]와 달리 돌아가고 싶은 근본에 대한 향수가 희미하다는 점에 있다. 원래 근본주의는 그 존재 자체가 과거 회귀의 성격을 갖는다. 전세계적으로 원리주의와 근본주의가 횡행하는 국가나 지역의 특징은
1)내부 모순이나 외침 등으로 국력이 쇠락하거나 핵심권력이 쇠락하여 혹은 외세의 지속적인 이권 침탈로 장기적인 존폐의 위기를 느낄 때,
2)그리고 그 국가나 핵심권력이 가장 강성해서 타국을 압도했던 역사적 전성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라떼는 말이야의 국가버전 내지는 민족버전이 근본주의이다. 한국의 역사적 전성기가 언제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돌아갈 근본인데 현재 한국인들에게는 너무 멀거나, 내 역사같지 않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한국이 강성했다고 생각한 시기는 고구려와 해동성국 발해, 고려 전기에서 중기 정도로 여기지만 현대 한국인들은 자랑스러웠던 시기인 것은 인정하지만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는 점도 있다. 이는 TV 및 여러 매체로 접하는 사극이 대부분 조선시대이고 사료 및 상세한 자료도 조선시대가 가장 많이 남겼다는 점에서 영향이 크다.[22] 중국의 역사서 및 한국의 역사서에서도 고구려와 발해에 대해 기술한 내용이 부족한 점이 있지만, 현재 한국이 각종 역사, 철학, 설화, 과학기술, 음식, 문화 등 한국적인 가치를 발굴하고 표현할 때 가장 많이 응용되고 활용되는 시대가 조선시대이다. 그러므로 한국인들에게 고구려와 발해는 강성했던 나라였다는 점에서 인지는 하지만 평소 일상적으로 크게 느껴지지 않고, 드라마와 영화 등을 통해 조선시대의 모습을 자주 접한 까닭으로 조선시대를 더 친숙하게 여긴 점에서 근본주의의 세가 약하다는 점이 한 몫한다고 본다.[23]

마라타 동맹이나 프라티하라 왕조 시절 힌두 통일왕조시대로 돌아가겠다고 길게는 1천년 시간을 거슬러올라가는 현 인도 인민당 프로파간다 오스만 제국의 부활을 주장하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의 튀르키예주의 같은 것도 허황되다고 생각하는 마당에 2천년도 넘은 우리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은 역사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한국인들이 받아들일리가 만무한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국력은 비록 실효지배 영토는 과거의 반토막이 났을지언정 지난 천년을 통틀어도 가장 강력한 세계 10위권의 경제적, 군사적 선진국 수준으로 국력이 성장했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 이후에는 오히려 전세계적으로 선망과 주목의 대상이 되고, 한국산 제품이라는 이유로도 이전보다 높은 가격에 팔리는 프리미엄을 누릴 정도로 국력에 맞먹는 국격 상승이 이루어졌다. 지금 한참 잘나가고 앞으로 더 잘나갈 사람이나 민족이 한참 멀리 있던 과거나 근본 따위 신경쓸 이유가 없다. 거기다 대비효과로 길게는 17세기 초(양란으로 인한 국토 초토화), 가까이는 지난 100년 동안 대한민국의 과거는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돌아가고 싶은 리즈 시절이 아니라 다시 겪고 싶지 않은 흑역사쪽에 가깝다.[24] 한국인이라면 조선말기 외세로 인한 혼란, 일제강점기, 6,25 전쟁으로 초토화된 국토, 피로 얼룩진 군사독재정권의 지배를 당했던 지난 100년 중 누구도 이 역사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 때문에 한국에서는 국가나 집단 전체의 근본주의 성향을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대중적 지지도 받지 못한다.[25] 한국의 노년 보수층이 '그때가 좋았지'라고 이는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전성기인 2~30대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지, 그 시절의 경제적 절대빈곤,사회적 경직성까지 다시 돌리고 싶은 생각은 없을 것이다. 설혹 그 시절을 부러워해도 그건 "라떼는 말이야~ 물질적으로는 가난해도 정신적/심리적으론 퐁요로웠어~" 식이지 절대 그시절의 처참한 절대빈곤까지 좋아하는 건 아니다. 애초에 그런 가난도 좋아했다면 산업화 시기에 그렇게까지 악착같이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지도 않았을것이다.

한국은 근본주의로 퇴행해서 외세의 침탈을 비롯한 국제 정세의 풍파를 겪은 역사도 이미 있는 데다 그 근본주의 퇴행으로 인해 나라가 망해 고통받았기 때문에 아무리 지금 당장 못살아도 그때의 과거를 반복했다가 또 망할 거라는 공포가 사람들에게 내재되어 있어 더 거부감이 심할 수도 있다.[26] 흔히들 조선시대는 전반에 걸쳐서 유교에 목매단 시대로 여길 수도 있지만 그건 후기 얘기고 전기까지만 해도 시집살이도 하고 신사임당의 사례에서도 보듯 마냥 여성이 남성에게 눌려지내기만 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세종대왕이 주자라고 다 맞는 건 아니지 않는가? 라는 말을 할 정도로 그래도 국가적으로 밀어주는 게 유교니까 유교를 제일 앞세우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유교를 우선적으로 앞세우는 거지, 그것만이 옳고 그것만을 따르라고 강요하는 시대는 아니었다. 허나 양란(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친 뒤 뒤이어지는 경신대기근 등 기후변화로 닥친 재앙으로 인해 조선의 사회질서가 흔들리면서 기존의 지배층인 양반[27]은 다시 기존의 지배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유교를 끌어왔고 덕분에 조선후기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조선의 모습이 되었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사회질서가 잘 잡히고 조선이 다시금 조선전기의 영광을 누렸냐면 역사에서 보듯 그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의 역사는 영조, 정조 시기만 평가가 좋은 편이고 정조 이후부터는 우리가 다 아는 막장 시대가 열린다. 한국에서의 유교가 현대 한국인들에게 욕을 먹는 대부분의 이유가 조선후기와 이후 변질된 유교적 전통에서 유래되니 이미 근본주의에 데여본 역사와 여파가 남아있는 현실이 근본주의의 싹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이유일 수도 있는 것이다.

거기에 한국 개신교도 이러한 유교 근본주의를 밀어내 버리고 가장 교세가 큰 종교가 되었다. 이들은 개신교 정통 신학을 근본이라고 자칭하면서 다양한 서양의 기술과 사조들을 개신교의 시각으로 갖고 왔다. 이들은 오히려 민주주의와 페미니즘을 금지하는 근본주의는커녕 개신교의 중요 교리들만 강경하게 지키고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 것들은 방조하는 보수주의 신학이 주류를 점해버렸고, 자신들의 신앙을 유지하고 교세를 더욱 키우기 위해서 성경과 충돌하지 않는 선에서 새로운 시도를 꾸준히 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미국을 비롯한 제1세계와 크게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을 제1세계에 편입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고, 한국의 황금기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이승만, 김구, 안창호, 함석헌, 길선주 등 개신교 신자였던 독립운동가들도 왕조와 유교 근본주의가 대한제국을 말아먹는 것을 직관했기 때문에 개신교 신자들을 자신들의 지지기반으로 삼긴 했어도 대한민국을 건국할 때 진지하게 정교일치를 시도하지 않았다.[28] 오히려 이들은 개신교 정통 신학의 영향으로 중요 교리만 잘 지키고 나머지를 너무 널널하게 허용한 탓에 몇몇 교회 행정과 실생활에서 성경의 일부 내용들을 안 지켜서 비판받고 있다.[29]

근본주의나 극단주의와 같은 말의 문제는 이것이 일부 이단 논리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가령 종교적 가르침에 의한 범죄가 일어났다 하면 해당 종교인들이 발벗고 나서서 자신들이 따르는 종교의 이름값을 지키기 위해 "이건 근본주의자들이나 극단주의자들이 책임이지 온건(moderate)주의자들은 상관없음"이라고 하면서 비판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특히 종교에 의한 테러가 많이 발생하는 서구권 등지의 경우 근본주의와 극단주의에 책임을 돌리지 특정 종교의 명백히 존재하는 교리에 대해서는 가치판단이나 비판이 쉽게 무력화된다는 폐해가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일부 이단 논리가 지지를 얻는 순간 세를 확장하여 자신들과 믿음의 방향이 조금 다른 집단에 이단이라는 식으로 낙인을 찍는다는 것에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원천봉쇄의 오류에 빠져선 안 된다. 근본주의와 극단주의의 극단적 태도를 해당 종교의 평화적 교리로 비판하려는 운동도 존재한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근본주의와 극단주의의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행동을 통해 해당 종교의 궁극적인 목표가 옅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온건주의자가 근본주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이런 극단적인 행동을 교리에 대한 곡해와 왜곡으로 해석하여 근본주의를 비판한다. 이런 경우엔 온건주의자들은 근본주의가 근본이란 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매우 불쾌해한다. 해당 종교의 근본이 그런 폭력적 태도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종교들이 과학과의 공존을 추구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런 온건주의가 주류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아래 내용은 근본주의와 극단주의를 구분하지 못하고 서술된 부분이 더러 있고, 무엇보다 종교적 교리와는 상관없는 민족주의 또는 부족주의적 동기에 의한 행동의 결과물을 근본주의 탓으로 돌리는 오류가 많이 범해지고 있다. 이런 사례에서 근본주의는 어디까지나 민족주의자들이 자기 민족의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해 끌어들이는 수단일뿐, 본질적으로는 자기 민족이 가장 강한 힘의 논리일 뿐이다. 가령 불교 문서에 있는 이슬람 대 불교라든지 힌두교 문서에 나와 있는 힌두교 대 타 종교라든지 하는 문제들은 신도들이 불교나 힌두교의 교리를 근본주의적으로 실천한다기보다는 부족주의나 민족주의에 더욱 강한 동기를 두고 있다. 따라서 이 문서는 읽는데 주의를 요하며 꽤 많은 수정이 필요하다.

2.1. 유대교

파일:external/www.maozisrael.org/0212-argue-with-police.jpg

경찰과 맞장 뜨는 하레디 유대인. 이들은 평소에도 경찰을 자주 무시하고 세속법을 더럽다(!)면서 언젠가는 자신들이 아이들을 많이 낳아서 이스라엘을 하레디 국가로 바꾸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이스라엘 강경파 중에서 가장 강경한 집단이 바로 이들이다. 자세한 내용은 하레디 문서 참조.

이들은 매년 진행되는 텔아이브와 예루살렘의 프라이드 프레이드[30][31]마다 반동성애 항의시위를 하며 축제를 방해하는 걸 막는 경찰과 충돌하기도 한다.

흔히 이들을 바리사이파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지만 AD 1세기경의 바리사이파는 어디까지나 평신도 신학운동이었을 뿐 정계의 주류와는 거리가 먼 집단이었으며 신학적 경향이 딱히 근본주의적이지도 않았다. 이들이 근본주의적이었다면 예수가 율법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교리를 만드냐는 비난도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기본적으로 율법은 해석이 필요한 면이 있다. 토라의 '안식일을 범하지 말라'는 규정만 해도, 그것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 예외는 무엇인지에 대해 논쟁이 벌어지게 마련이며, 특히 율법 규정이 일상생활의 규범이 되는 1세기 유대인의 경우, 그러한 해석의 필요성은 더욱 강해진다. 바리사이파는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토라 이외의 전통까지 폭넓게 받아들여 율법을 해석한 학파다.

게다가 자기들과 해석이 다르다고 해서 배척하거나 죽인 것도 아니고[32], 모두에게 이러한 해석을 따르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었다. 다른 학파들과 논쟁이야 자주 벌였지만, 이건 모든 경전의 종교에서 흔한 모습이다. 이런 면에서 바리사이파는 근본주의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토라 이외의 전승을 일체 인정하지 않고, 토라의 준수만을 주장하여 바리사이파와 극단적으로 대립 사두가이파가 진짜 근본주의에 가깝다.[33] 그럼에도 사두가이파는 영혼멸절설을 주장했다는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인지 전문 학계가 아닌 곳에서는 여전히 오해가 널리 퍼져 있다.

본래 초기 유대교에는 죽은 영혼이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는 내세 개념이 희박했다. 초기의 유대교는 지극히 현세적인 종교였고, 죽은 자의 혼백은 지하세계인 셔올로 내려가 잠자는 것처럼 머문다고 믿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서는 사람이 죽었다는 것에 대한 관용 표현으로 '조상들과 함께 잠들었다'고 종종 표현한다. 영혼의 부활 같은 개념은 상당히 후대에 생긴 것이며, 바리사이파는 이를 받아들였지만 토라 외에는 인정하지 않았던 사두가이파 영혼이나 내세에 큰 관심을 두지 않은 전통적인 신앙 형태를 고수했던 것에 불과하다.

현대 유대교에서 사두가이파와 가장 교리가 근접한 분파로는 카라이파가 있으며, 이들도 하레디 못지 않게 근본주의적 성향을 갖고 있다.[34] 하지만 1세기경의 사두가이파와 다른 점들도 많으며,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이라면 토라 외에도 이사야 다니엘로 대표되는 네비임, 욥기 시편 등 케투빔이 포함된 유대교 경전[35] 전체를 인정한다는 점과 카라이파 사두가이파와 달리 부활 심판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 링크1), ( 링크2) 애초에 이들은 사두가이파가 단절된지 오랜 시간이 지난 9세기쯤에 가서 생긴 분파이니 당연할 수밖에 없다.

2.2.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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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이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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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근본주의는 15세기까지 기독교 문명보다 더 잘 살던 이슬람 문명이 계속 기울면서 이들도 기독교 문명의 산물인 입헌정치, 민주주의와 같은 제도를 수입해서 부흥하려 했으나 결과가 영 좋지 않았다. 그래서 20세기에 들어서자, 이런 와중에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이슬람 본연에 충실하라, 샤리아가 아닌 모든 외세의 이념은 악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시작했다. 이를 풀려는 의무가 바로 지하드[36]다. 쿠란 자체가 시대에 뒤처지지 말라고 하라는 후대의 해석에 따름을 생각하면 굉장한 모순이다. 오히려 역주행 이슬람 근본주의의 설명은 이슬람 근본주의 문서 참고.

이슬람 근본주의는 교리적 근본주의와 공격적인 극단주의가 둘 다 짬뽕된 형태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 명확히 분리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전 지구적 관점에서 보면 다른 종파에 비해 문제가 되는 그 빈도가 굉장히 높다. 물론 꼴통들 하는 짓거리는 어느 종교, 어느 사회에도 있지만 이쪽은 워낙 스케일이 범지구적이고, 사회, 경제적 저개발, 정치적 권위주의와 깊게 맺혀 있으며, 열강들도 입으로는 테러와의 전쟁 운운하지 필요에 따라선 수니파 사우디아라비아, 시아파 이란을 통해 얼마든지 야합하며 세력을 뿌려댈 수 있음으로 21세기 작금에선 전 지구적 골치로 자리잡았다. 물론 이게 얼마나 이슬람의 본질적인 폭력성, 억압성의 발현이냐, 아니면 한정적인 작금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 의해 증폭된, 본질이 아닌 근대적 비극이냐는 끊임없는 이슬람 혐오주의자와 다원주의자간의 논쟁 여부이다.

반유대주의가 심해서 유대인에 대한 살인, 테러를 자주 한다. 특히 이스라엘에선 일부 근본주의 팔레스타인인들이 한 달에만 유대인에 대한 수십 건의 흉기, 폭발물 테러를 일으킨다.[37]

2.4. 무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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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무종교도 신과 종교 현상에 대한 다양한 견해(= 교리)가 있기에 근본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리처드 도킨스처럼 무신론에 가까운 불가지론 근본주의 성향을 강하게 보이는 불가지론자들도 존재하며 강경한 무종교 단체들도 근본주의 성향을 보인다. 무종교 근본주의 정책이 국가적으로도 실행된 경우도 많았다. 소련, 북한, 중국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국가 무신론을 실행했거나 하고 있으며 프랑스 같이 강력한 세속주의 기조로 무종교 근본주의를 방조하기도 한다.[38]

이들은 종교를 가지는 것을 내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나약해지는 것이라고 치부하며, 종교의 폐단을 강조하여 종교의 유익함을 무조건 부정하려고 든다. 어떻게든 종교 신자들이 신앙을 포기하게끔 선동하며, 공산주의의 종교 핍박 정책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한다. 자신들을 마치 우매한 종교 신자들을 계몽할 수 있는 선지자처럼 생각하여 지적 우월성을 뽐내려고 하며, 세속주의를 더욱 강화하여 종교의 자유 자체를 폐지하자는 주장을 밥먹듯이 한다. 웃긴 것은 자신들이 무종교 성향을 가질 수 있는 근본적인 원인이 종교의 자유라는 사실은 철저히 외면한다.[39]

자신들의 무종교 교리에 입각하여, 신학 및 종교학에 대한 월권과 역사 왜곡을 수없이 시도한다. 그래서 이들은 종교가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교리를 형성해 왔고 발전시켜왔는지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고, 모든 종교 신자들을 근본주의자로 치부한다. 그래서 자신들의 주장이 가장 과학적이고 가장 지적이라는 환상에 빠져서 자신들의 무종교 교리로 종교와 신학을 쉽게 부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큰 착각에 빠져있다.[40] 결국 멋모르고 신학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도 가지지 않고 신학자들에게 도발하다가 탈탈 털리는 경우가 많다. 결국 무종교 근본주의자들은 무종교의 교리조차 신이 없거나 모른다고 가정하는 도그마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결국 자신들의 주장이 자신들의 교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근본주의와 하등 다를 게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혼란스러워한다. 결국 이들은 기존의 주장을 철회하고 온건주의자로 선회하거나[41][42], 내세를 과학적으로 부정할 수 없음을 깨닫고 종교에 입교하게 되거나, 독한 케이스는 무신론적 기반을 확립하기 위해 종교 공부에 매진한다

만약 계속해서 무종교 근본주의 노선을 고집한다면 자신들이 그렇게 증오해온 종교의 신학과 종교 현장을 그대로 미러링한다. 이들 중 대부분은 따라하기 쉬운 개신교의 예배와 예배당의 형식을 십자가와 성경과 신에 대한 찬양만 제거하고 그대로 갖고오며, 자신들의 신학적 정체성을 대실망파 중에서 예수의 재림을 더이상 믿지 않는 개신교적 무신론자들로 정해둔다. 그리고 인간성 그 자체를 숭배하며 인본주의 인간 찬양을 설파한다.

주체사상도 시작은 이러한 무종교 근본주의였다. 그러나 김씨 일가에 대한 숭배가 점점 심해져서 무종교에서 완전히 이탈하고 사실상 개인 숭배로 변화했다.

무종교도 상당히 다양한 종류가 있으나, 사실 무종교 근본주의자들은 무신론 근본주의이거나 불가지론 근본주의가 대부분이다.

2.5.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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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힌두교

파일:external/www.redian.org/RSS-e1404112529780.jpg

RSS(민족의용단)의 집회 모습.

힌두교 근본주의는 '힌두 민족주의'(또는 ' 힌두트바')라고도 많이 불리는데, 이들은 인도에서 힌두교가 아닌 이슬람 기독교에 굉장히 배타적이다. 현재는 그 세력이 상대적으로 소수였던 과거에 반해 점점 더 부상한다. 이들은 인도의 국가 정체성이나 인권을 중시하는 서구적인 민주주의 체제를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카스트를 포괄하는 힌두교의 결집을 추구하기 위해서 과거였다면 생각도 못할 하위 카스트와 상위 카스트들이 모여 함께 식사도 하고 하위 카스트 우대 정책도 그대로 지킬 정도다.[43] 단 이들은 언제까지나 힌두교 이념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므로 하위 카스트를 차별하는 태도나 하급 카스트 및 달리트들에 대한 폭력 행위를 저지르기도 한다. 우대 정책을 유지하는 건 국민들의 눈치를 봐서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인도에서 세속주의 성향인 국민회의당과 함께 가장 큰 양대 정당인 인도인민당(BJP)[44]이 힌두교 근본주의 성향이 심한데, 이들은 이슬람과 기독교를 배척하고 위협하는 일종의 종교 민병대인 RSS를 모체로 하고있다. 이들은 1980년대부터 이슬람, 그리고 자유운동가들 및 타종교인들과 극심한 종교 갈등을 일으켜 왔다. 농담이 아니고 이들이 하는 짓을 보면 정말 인도판 황금새벽당, 아니 그 이상이다. 인도 힌두교 극우주의자들의 횡포

심지어 이들은 역사도 가위질하려고 든다. 대표적인 예가 이슬람을 믿은 무굴 제국은 인도 역사가 아니다!하는 식. 무굴 제국뿐만 아니라 델리제국 등 이슬람 인도 국가 및 비힌두교 나라들을 인도사가 아니라며 전부 부정한다. 마이클 우드가 쓴 인도이야기라는 책에 실제로 나오는 내용이다! 정작 인도에 집권했던 제국들 중 가장 융성한 문화를 자랑하고 경제적 파워가 강했던 나라가 바로 그 무굴제국인 것은 함정이다.

2.7. 종교적 페미니즘

1993년 캘러 S. 밴스에 의하여 페미니즘의 근본주의적 성격에 대해 논의된 바 있다.

아래에서는 주로 극단적 종교여성주의에 대해서 설명한다. 사실 종교적 페미니즘은 대중적으로 별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생각보다 꽤 지지자가 많다. 한국에서 가톨릭은 낙태 문제에 대해 극단적으로 반발하고, (대다수의) 개신교는 동성애 문제에 대해 극단적으로 반발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의외로 꽤나 관대한 편이다. 가톨릭 성당이나 개신교 보수교단 소속 대형교회에서는 일부 여성 신자들의 페미니즘 신학 서적 읽기 모임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교회가 아닌 이상 그것을 완전히 금지하지는 않는다. 또한 유명한 페미니스트들 중에서도 종교가 있다고 밝히는 경우는 생각보다는 많다. 다만 여성학계에서 아무래도 주류는 아니다.

종교적 페미니즘 중에서도 일부는 종교적인 래디컬 페미니즘 성향을 띤다. 이럴 경우 종교적 근본주의까지 더해지는 경우가 많다. 다만 페미니즘의 분파가 매우 다양한 만큼, 래디컬 페미니즘의 근본주의적인 성격도 매우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기독교 래디컬 페미니즘의 근본주의적인 특징은 페미니즘을 강경하게 지키느라 기독교신학을 취사선택 및 왜곡한다는 점이다. 즉, 이들에게 있어 성경과 기독교 전통이 도그마가 아니라 페미니즘이 도그마이다. 야훼의 여성성 강조하고(어머니 하느님을 즐겨 사용)[45], 토마스 복음서를 아예 정식 성경으로 공인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인다.[46] 왜냐하면 토마스 복음서에서 나타난 예수의 성 관념이 페미니즘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해당구절] 그나마 정경으로 공인하려고 주류 기독교계와 대화하려는 곳은 신사적인 편이고, 대부분 자신들 마음대로 아예 정경에 추가시켜 5복음서로 묶어부르며, 예배(미사)에서 토마스 복음서를 오남용한다. 하지만 주류 기독교에서는 야훼의 성별을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을 공인했으며, 성경을 추가하자는 주장과 위경을 예배에서 사용하는 것을 이단시하므로 이들을 이단으로 규정하였다.

가끔 기독교계에서 토마스 복음서의 전승이 끊긴 이유가 고대, 중세의 래디컬 페미니즘 성향 기독교 종파들과 토마스 복음서가 기록 말살되어서 그런게 아니겠느냐는 의견도 있다. 다만 이를 뒷받침해줄 정황증거가 없어서 가설로 남아있다.

사실 이러한 근본주의적 종교여성주의자들과 주로 싸우는 대상이 근본주의적인 종교인들이라는 점을 보면 근본주의자들끼리의 싸움이라고도 볼 수 있다.

2.8.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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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최고의 학문으로 취급하며 과학이 모든 분야를 규명할 수 있다는 사상이다.[48] 이들 중 대부분은 과학적 방법론만 학문적 방법론으로 여기고, 과학적 방법론으로 탐구할 수 없는 분야는 학문이 아니라고 치부해버리는 도그마를 갖고 있다. 이들은 경험주의 철학에 큰 영향을 받았으며, 경험주의와 그 이후의 과학적 방법론만 사용하는 학문만 인정하고 다른 분야는 모조리 사료로만 취급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당연히 통섭적 방법론을 주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형이상학에 기반을 두고 있는 신학과 고대, 중세 학문, 연성과학적 방법론과 비과학적 방법론을 사용하는 인문학 및 사회과학 및 예술학과 크게 대립하는 사상이다. 신학 문서에서 신학을 비롯한 형이상학과 고대와 중세 학문을 학문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 기술되어 있는데, 이 주장이 이들의 입장에 꽤 가깝다. 이들은 신학 뿐만이 아니라 인문학, 그리고 상당수의 사회과학조차 그 필요성을 부정하거나 경시한다.[49]

여기서 더욱 극단적인 분파는 아예 귀납적 탐구방법론만 강요하며, 연역적 탐구방법론은 아예 학문성이 없다며 배제해버린다. 가설을 설정하는 것 자체가 연구자의 주관을 형성시켜 학문을 오염시킨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과학적 연구를 위해서 수학이 빠질 수가 없는데, 수학은 연역적인 학문이다.

이러한 과학만능주의는 특성상 반종교 혹은 반신론과 같이 가는 경우가 많다보니 인본주의와도 연관이 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인본주의는 신본주의와 대비되는 근대 서구적 지적 전통에서의 이성적 인본주의이며,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의미에서의 인본주의와는 관계가 없음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현대에 과학만능주의적 태도를 지닌 사람들은 인간애를 강조하는 사람들과 대립적 관계에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21세기에 와서는 (일부 예외는 있지만) 상당수의 과학만능주의자들은 이념적 중립성을 내세우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이데올로기적인 성향을 보일 때가 많다.[50]. 그들은 좌파적 학문, 마르크스주의등을 비과학적이라고 주장하며 그 가치를 부정하거나 멸시하는 편향성을 보이며, 일부는 소수자, 약자의 권리에 대한 운동에 대해 회의적이거나 차별을 과학적으로 정당화하려는 경우까지도 있다. 물론 우생학적인 주장은 하지 않는다. 우생학은 과학적으로도 틀린 것으로 증명된 지 오래기 때문이다. 철학 분야에서는 분석철학만을 인정하고 대륙철학을 (근대 이후의 것이라 할지라도)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고, 경제학, 사회학 등의 사회과학에서는 인문주의적인 유럽의 학파들보다 계량주의적인 미국의 주류 학파를 추종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런 경우 매우 높은 확률로 우파적 전제와 조망에서 사회를 바라보게 된다. [51]

학문 자체가 경성과학적인 면이 꽤 많은 심리학에서도 이러한 과학만능주의자들은 극단적인 경성과학적 관점'만'을 강요하여 임상심리학자들에게 현실을 모른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52]

하지만 과학만능주의자들 중의 극소수는 (다중우주론을 비롯한 과학 내부의 형이상학적 분야도 다 긍정하기에) 과학적 방법론보다 과학 그 자체를 신성시해서 형이상학의 영역도 다 기술적 발전을 통하여 규명할 수 있다고 바라보며, 신성을 과학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신과학을 긍정한다. 즉, 극소수 분파는 오히려 형이상학을 어느 정도는 긍정한다는 것.

2.8.1. 반론

과학이 모든 분야를 규명할 수 있다거나, 모든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의미에서 과학만능주의는 이미 사멸한 지 오래이다. 과학 내부에서도 수십 년간 정체된 분야가 있다거나 [53], 그 진실성이 의심되는 분야[54]가 있다거나, 내부적인 한계를 증명하는 주장[55]이 나온다. 과학만능주의가 존립할 수 있는 토양은 과학이 직접 파괴한 지 오래이다. 위에서 든 예시는 과학의 만능을 주장하는 집단이 아니라 과학적 회의주의에 근거하여 인문학 무용론을 주장하는 집단이다. 인문학적 논리를 사용하여 점술의 허구성을 비판한다면 그것은 점술 무용론이지 인문학 만능론이 아닌 것과 같은 논리다.

과학을 기반으로 자신의 전공분야에서 인문학을 비판하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원자력발전에 반대하는 지식인의 기술적 무지를 지적하거나, 여성학이 부정하는 생물학적 차이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제시하거나, 이념가들의 허황된 경제정책이 수학적 근거가 부족함을 지적하거나, 비판자에게 인신공격을 하는 반지성적인 태도[56]를 비난하는 집단은 분명히 있다. 그리고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에서 과학적 방법론[57]을 바탕으로 기존의 인문학적 주장을 도태시키고 과학의 진보를 이루어내는 집단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의 사상을 이루며 인문학 전체의 가치를 부정하는 활동을 하는 집단이 사회에 낳았다는 근거는 부족하다. 거기에 반신론적인 태도를 바탕으로 인간애에 대립한다거나, 그것이 주로 우파로만 이루어져 있다거나 하는 조건까지 더하면 지나친 망상이 되어 되어버린다. 그런 의미해서 윗 문단은 비실재 집단을 비판하는 오류에 불과하다.

이와 반대로 인문학계에는 과학에 적개심을 가진 반지성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집단이 실존한다. 이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소칼 사건이다.

3. 관련 문서


[1] 제노포비아 [2] 성경/논란 [3] 이상의 내용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Altemeyer, 2003; Nelson & Milburn, 1999; Saucier & Cawman, 2004; Laythe, Finkel, & Kirkpatrick, 2001; Fisher, Derison, Polley, Cadman, & Johnston, 1994; Rothschild, Abdollahi, & Pyszczynski, 2009; Friedman & Rholes, 2007; Vess, Arndt, Cox, Routledge, & Goldenberg, 2009. [4] e.g. Blogowska & Saroglou, 2011; 2012. [5] 이와 유사한 모습을 보이는 게 심슨 가족 네드 플랜더스로 기본적으로는 기독교의 좋은 면모를 실천하기에 선량하며 좋은 이웃이지만 기독교 외 타 종교에는 관용적이지 못한 면모를 많이 보인다. [6] 해당 문서에 나와 있는 성폭력 같은 문제는 외부에게 피해주지 않으니 근본주의적 민폐와는 다르다는 현대 보편 인권의 개념을 아예 물말아 먹는 신박한 반론도 가끔있다. [7] 물론 근본주의 종파도 존재하지만 한국에서는 정통주의, 신정통주의 교단에 비해 찾아보기 매우 힘들다. [8] 메이지 유신부터 버블경제 시기까지의 일본. [9] 러시아 제국 또는 소련. [10] 아편전쟁 이전 특히, 명나라를 비롯한 한족계 중화제국. [11] 몽골 제국. [12] 대영제국. [13] 아바스 왕조 또는 우마이야 왕조. [14] 마케도니아 제국, 동로마 제국. [15] 에티오피아 제국. [16] 로마 제국. [17] 벨 에포크 시대. [18] 스페인 제국. [19] 포르투갈 제국. [20] 프랑스 식민제국. [21] 오스트리아 제국. [22] 옛날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조선시대의 복장이 떠오르는가, 삼국시대 복장이 먼저 떠오르는가? 여기에서 인식하는 차이점이 달라지는 것이다. [23] 대체로 조선이 정조 이후 삼정의 문란으로 약해지는 시기이고 이 시기는 현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시대이다 보니 근본주의에 대해 회의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24] 반대로 일본은 오히려 이 때가 적어도 영토적으로나 자체적으로 리즈 시절에 가깝다. 물론 일본도 외려 국가의 부나 국민의 풍요 등과 종합적인 국력의 면에서 1980년대가 최전성기지만 동맹국인 미국에 따라다니는 면이 많았다. 반면 일본 제국 시절은 대만, 조선, 만주 등을 점령하고 중국 정복에 나서며 동남아시아까지 점령하는 등 '영토상으로는' 전성기처럼 보이며 강대한 미국과 전쟁을 벌여서 겉만 보면 일본 제국이 전성기 같다. [25] 한국 기독교계도 근본주의보다 온건한 복음주의 성향이 강하다. 전통 가톨릭이나 성경침례교나 한국에서는 교세가 거의 없다. 보수 개신교계에서 자신들의 전통 신학을 근본주의라고 자칭하기도 하고, 종교다원주의에서 각 종교계의 중요 교리를 지키려는 노력을 근본주의라고 매도해서 한국에서는 보수주의 신학 = 근본주의라고 크게 잘못 알려졌다. 게다가 북미와 제3세계에서 크게 흥행하고 있는 오순절 신학이 한국 개신교계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을 보면 한국의 복음주의 기독교계가 몰락할 것이라고 보기에는 큰 무리가 있다. [26] 이는 멸망한 조선을 계승한 현재의 민주공화주의자들이 자신의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선을 의도적으로 폄하하는 내용도 있다. 거기다 겉으로는 미국식 공화주의자였지만 자신을 마지막 조선의 왕처럼 생각했던(조선의 왕이라고 생각했다고 씌어져 있었는데 이승만은 조선 왕실의 후손이고 왕처럼 행세하는 등의 면모가 있지만 자신이 공화국 원수라는걸 잊지 않았다.) 이승만을 몰아낸 4.19 혁명을 통해 조선의 복고를 노리던 세력은 완전히 힘을 잃었다. 아니, 애초에 이승만부터가 조선 복고의 싹을 깨끗이 잘라내 버렸고 오히려 그 뒤에 들어선 박정희 정부가 구 황실에 온정적이었다. [27]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경신대기근 당시의 양반들은 임진왜란 이전과 달리 교조적인 성향의 사림 계열이 주류이다. [28] 2차세계대전과 냉전 때문에 영미권 국가들이 종교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개신교 신자들을 도와줘서 그런지 개신교 쪽의 독립운동가들은 대부분 영미권 국가들에게 큰 영향을 받아 민주주의&공화주의 성향을 띄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천도교와 대종교가 가장 교세가 컸기에 오히려 개신교 신자들이 국교 지정을 반대했다. [29] 한국의 유일한 기독교 정당인 국민혁명당이 근본주의와 보수주의 신학을 내세우고 온 사회에 어그로를 끄는 것만 보면 와닿진 않겠지만, 사회적인 통념과 다르게 세속적인 일반인 입장에서는 개신교계에서 보수주의 신학이 주류를 점하지 않으면 귀찮아질게 굉장히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개신교의 전통을 지키려는 보수주의 신학은 세속 정치에서 집권하자는 정치적 기독교 이데올로기와 다른 개념이다. 애초에 개신교는 태동기부터 가톨릭에게 살아남기 위해 세속 정부를 지지하는 전략을 취했고, 이를 통해 정교분리 종교의 자유가 등장했다. [30] 약 수만 명 규모로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중동 주변국을 포함해 해외 각지의 동성애자들이 모인다.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유일하게 동성애가 합법이며,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프라이드 퍼레이드를 정부가 전액 지원까지 해주는 성소수자 인권을 존중하는 국가다. [31] 다만 이스라엘 정부의 친성소수자 기조에는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는 지적이 항상 따라다니는데, 자세한 것은 핑크워싱 항목 참고. [32] 사실 위에 나온대로 바리사이는 평신도 신학 운동이었기 때문에, 그럴 권력도 없었다. [33] 출처: E. P. Sanders, The Historical Character of Jesus, pp. 44-47, 213-219 [34] 하지만 경전 외 전통을 일체 인정 안 하므로 오히려 다른 유대인들보다 편한 점도 있는데, 일례로 고기와 우유를 같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35] 케투빔은 시가(詩歌)서, 네비임은 예언서이다. 즉 개신교에서 말하는 구약성경 39권 배치가 유대교에서는 좀 다르게 나타나며, 히브리어로는 각각 첫 글자를 따서 타나크(Tanakh)라고 부른다. [36] 물론, 십자군 전쟁 때의 그 지하드와는 좀 다름. [37] 2019년 3월의 경우 12일엔 가자에서 이스라엘 본토로 폭발물을 단 풍선들을 보내 민간인 무차별 테러, 서안지구서 차량 테러로 군,경2명부상. 20일엔 총기테러로 2명 사망, 2명 중태. 27일엔 흉기,총기난사 테러로 민,군 2명 사망. [38] 프랑스도 공공장소에서 개인의 기도나 성호 긋기나 종교적 장식물 착용을 금지했을 때도 있었을 정도로 무종교 근본주의 성향이 강하다. [39] 실제로 종교의 자유가 없는 국가들은 물론 국가 무신론을 따르는 국가처럼 종교를 금지하고 무신론만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현 아랍권 국가들처럼 특정 종교만 강요하고 종교를 믿지 않을 자유 및 무신론을 전면 금지하는 나라도 존재한다. 특히 이런 식으로 종교가 득세하는데다 사회적으로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국가에서는 타 종교보다도 무신론이 더 억압받는다. 즉 종교의 자유가 없다고 무신론 세상인건 아니라는 것. [40] 심슨 가족에서 네드 플랜더스가 무종교의 주장을 보고 신앙을 포기하는 장면이 가끔 등장하는데, 이게 종교를 비판하는 장면과 같이 등장해서 심슨 가족 제작진이 무종교 근본주의가 아니냐는 추측도 있지만, 이 장면은 무종교 근본주의자들의 환상을 그대로 영상화시켜 비판하는 것이다. 우와 정말 데단해~~와 맥락이 완전히 같다. [41] 그래서 국가 무신론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비록 공산당에만 충성하는 어용 교단이긴 하지만 교단을 허용하고 종교 기관을 설치한 경우가 많다. 괜히 대부분의 국가에서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는 게 아니다. [42] 다만 이러한 조치는 신앙을 허용하는 게 아니다!! 사실상 선전용인 셈이다. [43] 물론 더욱 막나가는 힌두교 근본주의자들은 이러한 모습조차 싫어한다. [44] 나렌드라 모디 현 총리가 소속된 집권 여당이다. [45] 주류 기독교는 아버지 하느님을 자주 사용하지만 신을 지칭하는 의미의 아버지는 남성적 의미에 국한되지 않은 가치중립적인 단어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기독교 페미니스트들은 야훼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강조하거나 특정 성별에만 국한시키는 것을 기피하면서 이단 시비를 피하기 위해 아버지이자 어머니인 하느님 혹은 창조주 하느님을 즐겨 사용한다. [46] 일반적인 기독교 페미니스트들은 토마스 복음서를 어디까지나 야사로 취급하며, 기존의 4복음서(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 복음서)에서 나타난 예수의 여성에 대한 존중과 배려심을 강조한다. 한편 성서비평학계에서 토마스 복음서에 대해 호의적인 시선도 보인다는 점 때문에 일부 기독교계에서는 성서비평학계가 기독교 래디컬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물론 기독교 래디컬 페미니즘의 움직임과 성서비평학계의 학술적 움직임은 별개이다. 이를 유의할 것. [해당구절] 예수께서 아기들이 젖을 빨고 있는 것을 보시었다. 예수께서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젖을 빨고 있는 이 아기들은 나라에 들어가는 자들과 같다.” 그들이 예수께 말씀드렸다, “그러면 우리도 아기일지라도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둘을 하나로 만들 때, 그리고 너희가 속을 겉과 같이, 겉을 속과 같이, 그리고 위를 아래와 같이 만들 때, 그리고 너희가 남자와 여자를 하나된 자로 만들어 남자는 남자가 아니며 여자는 여자가 아닐 때, 그리고 너희가 한 눈 대신 눈들을 만들고, 손을 위해 손을 만들고, 발을 위해 발을 만들고, 그리고 모습을 위해 모습을 만들 때, 그러면 너희는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토마스 복음서 22장) [48] 영어로 된 용어 자체는 미국의 신조어이나, 과학+만능주의라는 보편적 조어로 이해해도 무리가 없다. [49] 이러한 태도는 입시위주교육과 경제성장 만능주의, 능력주의 등의 이유로 편향된 인식이 생기기 쉬운 한국에서 특히 대중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50] 물론 당연히 우파라고 꼭 과학만능주의자라는 말은 아니다. [51] 전통적으로 연구 과정에서의 과학성을 강조해 왔고, 무신론을 지지한 경우가 많았던 좌파들이 21세기에 와서 과학만능주의자(+반신론자) 등을 경계하고 비판하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아직은 기독교 우파 등의 세력이 강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전선이 그쪽에 형성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말이다. [52] 정작 경성과학 전공자들이 볼 때는 컴플렉스처럼 보인다는 의견도 있다. [53] 제약분야의 Eroom의 법칙이 있다. [54] 초끈이론이 여기에 해당한다 [55] 힐베르트 10번 문제가 여기에 해당한다. [56] 상식적으로 타학문을 비판적 사고에 입각해 비난하는 것은 입시교육에 경도된 자세가 아니라 탈피한 자세다. 그리고 이것은 경제성장이나 능력주의와는 별 상관없다. [57] 주로 양적 연구와 수학적 모델이라는 연역법을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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