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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01:18:16

현대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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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174df><colcolor=#ffffff> 현대전자
現代電子 | HYUNDAI ELECTRON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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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명 정식: 현대전자산업 주식회사
영문: Hyundai Electronics Co., Ltd.
한문: 現代電子産業 株式會社
국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설립 1949년 10월 15일[1]
1983년 1월[2]
해체 2001년 4월 9일[3]
후신 [[SK하이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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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K하이닉스 로고.svg
]](반도체사업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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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택&큐리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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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단말기사업부)[5]
[[현대모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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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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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사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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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시스템사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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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오토시스템사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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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보증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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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사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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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SL사업부)

1. 개요2. 역사
2.1. 설립2.2.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2.2.1. 김대중 정부의 빅딜 정책2.2.2. 현대전자의 몰락
2.3. 2001년 당시 독립한 자회사 목록
3. 제품
3.1. 현대 컴퓨터3.2. 게임 사업3.3. 휴대폰3.4. 국산 CPU 개발3.5. 인터넷 사업3.6. 전장 사업
4. KBO 리그와의 관계5. 기타6.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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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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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 계열 전자 제품 제조사로 SK하이닉스, 팬택&큐리텔, 현대모비스 등 35개 분할사의 전신이다.

2. 역사

2.1. 설립


▲1988년 현대전자 기업 PR 광고 황금 거북선 편.

파일:external/img.g2b.go.kr:7070/CD_Vision_2000.jpg
▲ 당시 현대전자에서 만들었던 CD비전

전신은 1949년 국도건설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건설업체이다. 1983년 현대전자산업으로 사명을 변경하여 가전제품 제조업체로 탈바꿈하였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현대에서 새로운 사업 추진하기 위해 다른 회사를 인수해서 간판과 업종을 갈아치운 격이었다. 우회상장 의도도 있었겠지만 국도건설이 경기도 이천군(현 이천시)에 30만 평 정도의 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한다.

당시 전자제품 시장 상황은 금성사, 삼성전자, 대우전자의 3강 체제로 가고 있었기[7] 때문에 이미 전자제품으로 파고 들어갈 여지가 많지는 않았다.[8] 그래서 현대전자에서 채택한 길은 당시에는 최신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컴퓨터(현대 멀티캡) 및 반도체 산업이었다. 반도체의 경우 이미 아남산업과 삼성전자가 진출하기는 했지만 아직 신생 산업에 가까웠기 때문에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듯 하다.

하지만 자체 기술이 빈약한 현대전자가 대단한 물건을 만들 수 있을 리 만무하니 일단 그나마 간단한 TV와 모니터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한다. 1995년에는 CRT로 HD 수준의 화질을 구현하는 정도의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 외에도 ADSL 사업이나 TFT-LCD나 컴퓨터나 휴대폰 등 당시 돈이 될 것 같고 좀 투자가 필요해 보이는 사업에 과감하게 투자하면서 진출했다. 이 과정에서 애플이 찬사를 아끼지 않은 FFS식 광시야각 디스플레이 기술도 96년도에 개발되었을 정도.

1985년부터 메모리 양산 체제에 들어갔고 1986년에는 반도체 연구소를 설립하고, 1989년 미국 알렌 브래들리와 합작해 ' 현대알렌브래들리'를 세웠다. 1993년에는 유명 하드 업체인 맥스터를 인수하는 등 초창기부터 반도체 부분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이 부분이 나중에 이어져 하이닉스가 된다.

2.2.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이러한 공격적인 투자는 호경기가 계속되었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겠지만 불행하게도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지는 바람에 망했다. 이미 반도체 산업이라는 돈이 무지하게 들어가는 분야를 시작한 데다가 여기저기 벌인 사업이 너무 많아서 그룹이 휘청대기 시작했다.

2.2.1. 김대중 정부의 빅딜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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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딜 부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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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말에 흔히 말하는 ' 빅딜' 정책의 일환으로 세계 시장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 5위였던 현대전자가 4위였던 LG반도체를 합병했다. 정확히는 인수 후 ' 현대반도체'로 변경한 것을 1999년에 흡수한 것이다.

이 합병 당시에는 국민의 정부의 대북사업에 매우 협조적인 현대그룹에 준 특혜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 이를 두고 LG 구자경 명예회장은 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인터뷰 기사에 쓰인 표현은 “반도체를 잘하고 있는데 누가 욕심을 부려서 빼앗아갔어요. 자기 욕심 때문에 우리 반도체를 한번 먹어보겠다고 나선 겁니다. 소떼를 몰고 북으로 가고 돈을 쓰더니…. 우린 안 된다고 버티다가 결국 포기했어요. 그래서 정치적으로 얻어맞지는 않았지요.” 굉장히 아쉬운 이유는 단순히 LG반도체를 현대그룹한테 빼앗겼기 때문만은 아니다. 현대가 김대중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LG반도체를 가져가놓고선 경영 악화로 2년 뒤에 다시 팔아버렸기 때문이다. 현대전자(현대반도체)의 몰락

당시 빅딜 평가 관련 컨설턴트 기업이었던 Arthur D. Little(ADL)은 현대전자를 고평가를 했고 정부는 이를 근거로 빅딜 성사시에 LG반도체가 현대전자로 넘어갔다고 한다. 1996년 DRAM 시장 점유율은 근소한 차이로 현대전자 4위, LG반도체 6위였다. # 게다가 당시 LG반도체는 본사와 삼성전자, 아남반도체에 비해 역사가 짧아[9] 3위였던 히타치 팹을 그대로 들여와 생산하고 있었다. 때문에 삼성, 현대 두 회사에 비해 저용량 DRAM이 주였다. 자료에 보면 당시 고용량이던 128Mbit DRAM 이상의 업체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았고, 그것이 심사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을 듯. 그런데 이것도 수 년 뒤에 나온 후속 보도들을 보면 말이 많은데, 고위층에서 "LG가 현대에게 팔도록" 보고서를 만들어올리라 했다고. LG는 반도체 빅딜에 앞서 LG반도체와 현대전자의 평가 기관 선정 과정을 밝혔다. LG는 “당시 업계에서는 반도체 합병 무용론이 제기됐으나, 정부의 강경 방침으로 1998년 11월 11일 반도체 통합을 위한 외부전문 평가기관으로 친정부 성향이 강한 전국경제인연합회[10]가 추천한 미국 컨설팅업체인 ADL이 선정됐다”면서 “그해 12월 24일 ADL 평가보고서가 공개되자 내용이 편파적이라는 시비를 부르기도 했다”고 기술했다. 당시와 뒷날 민자 사업에서 큰 잘못을 저지른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사업 타당성 용역이 발주처 입맛에 따라 작성되는 건 드물지 않았기 때문에 개연성은 높다.

현대전자의 수익 규모는 삼성전자의 10%에 불과했지만 1987년도부터 꾸준히 수익을 내고 있었다. 반면 LG반도체는 처음 수익을 낸 시기가 1994년도부터라는 점이 평가상 크게 작용했다. 부채는 둘 다 비슷했다. 그런데 LG반도체가 오랫동안 적자를 내면서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LG그룹 내에서 보증과 출자를 통해 계속 자금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11] 즉, 덩치는 비슷했지만 수익 구조는 LG반도체가 나빴다. 다만 LG그룹은 전자 분야가 주력 사업이었던데 반해 현대그룹은 전자 분야가 주력 사업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근시안적 안목으로 평가했으면 안됐고, LG그룹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LG반도체가 오히려 현대전자를 가져갔어야 했다는 의견이 있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 반도체 치킨게임 이후 반도체 업사이클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엄청난 수혜를 입은 것만 봐도 LG에게 있어서 정부에 의한 LG반도체 강제 매각은 매우 아쉬운 일이었다.

LG반도체가 살아있었어도 램버스 D램 위주로 개발하고 있었으니까 훗날 램버스 사태로 망했을거라는 말이 많다. 그런데 램버스 사태는 2003년 쯤 인텔이 램버스 D램을 공식적으로 버리면서 일어난 일이다. 반면 LG반도체는 1999년에 정부 빅딜에 의해 강제 매각 당했으므로 4년의 격차가 있으며, 그해 1999년 말에는 삼성전자, 현대전자(LG반도체 흡수), 인텔, 마이크론, 인피니언(구 지멘스), NEC-히타치 등 6개사 컨소시엄이 차세대 초고속 D램으로 불리는 램버스 D램 후속 제품을 개발키로 합의할 정도로 램버스 D램이 유행인 시기였다. 2년 뒤엔 인텔, 삼성전자, 마이크론은 DDR D램으로 돌아섰는데 LG반도체도 살아있었다면 똑같이 DDR D램으로 선회했을 가능성이 높다. 덧붙여서 LG반도체의 주 종목은 DRAM이 아닌 비메모리 반도체였으며, 아직까지도 가전 제품 등 컴퓨터 외적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 Z80등 저렴한 8비트 CPU를 라이선스 생산하거나 PC나 전자제품에 들어있는 다양한 비메모리 반도체 칩들을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에, LG반도체가 지속적으로 유지되었다면 DRAM 및 NAND 플래시 메모리에 편향된 현재의 국내 반도체 생산 품목의 다양화를 이루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현재 LG반도체의 음원 칩이나 IO칩은 매니아들에게 꽤 고평가를 받고 있으며, 특히 음원 칩의 경우 야마하 Roland 수준에는 약간 못 미치더라도 근접한 수준까지 따라갔고, 옥소리 카드나 국내 노래방 기기에서 많이 사용되던 프랑스의 드림칩보다는 평가가 많이 좋은 편이다. 실제로 486(금성)~펜티엄1(여기부터 LG) 당시의 컴퓨터 내부를 보면 CPU와 메인 칩셋, GPU를 제외하면 거의 국산화가 되어 있다.

이렇게 LG반도체를 예고없이 강제로 현대에 매각해 버린 덕분에 LG 전경련에서 사실상 탈퇴했다. 당시 LG그룹 회장이었던 구본무는 빅딜 안을 낸 전경련에 반발하여 1999년부터 2013년 11월까지 무려 14년 가까이를 그룹 사옥과 5분 밖에 안 떨어진 전경련에 발길 한 번 안 딛었었다. 그러다가 2013년 말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새 전경련회관에 방문하자 그때서야 전경련을 방문, 사진 촬영을 했었다. 다만, 그때는 대통령이 행사 차원으로 방문했기에 어쩔 수 없이 갔을 뿐 이후엔 안 갔다. 그리고 2016년에 LG는 전경련을 공식 탈퇴했다. 하지만 새옹지마라고, 그런 덕에 이 기간동안에 정경유착 의혹이 터질 때 LG그룹은 예외처럼 여겨졌다.

여담으로 앞서 언급한 Arthur D. Little(ADL)의 핵심 평가단원 중 한 명이 바로 이장석이었다. 현대 유니콘스의 대주주가 이 현대전자의 후신인 하이닉스였고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된 뒤 남은 인원들을 모아서 히어로즈 구단을 재창설한 사람이 이장석 본인이다. 게다가 당시 LG반도체의 사장이 이후 LG 트윈스의 구단주가 되는 구본준이었고, 이장석의 히어로즈가 LG 트윈스와의 선수 트레이드 과정에서 큰 이득을 거둔 것을 생각하면 정말 질긴 악연이다.

2.2.2. 현대전자의 몰락

2001년 4월 9일 부로 현대전자에서 하이닉스 반도체로 사명을 바꾸면서 메모리 사업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부를 전부 분사시켰다. 그리고 동년 8월 1일을 기해 하이닉스 자체가 공정거래법상 현대그룹에서 분리된다. 다만, 현대멀티캡과 현대통신산업은 그 전인 1998년과 1999년에 이미 사원주주업체로, 현대오토넷은 2000년에 독립하여 2008년 현대모비스에 흡수합병되었다.

그리고 농구단 대전 현대 걸리버스도 형제 기업인 금강고려화학에 넘어가고 연고지도 전주로 변경해 전주 KCC 이지스가 되었다.

이후 하이닉스는 거대 부채 기업이 됐다가, 2011년 SK에 인수되어 SK하이닉스로 사명이 변경된다. 그 외 상세 내용은 SK하이닉스 문서를 참고할 것.

2.3. 2001년 당시 독립한 자회사 목록

독립한 자회사의 수만 35개이다. 목록에 있는 사업부는 그 일부이다.

3. 제품

3.1. 현대 컴퓨터

개그맨 김국진을 광고 모델로 써서 "밤새지 마란 말야~!"란 말을 하게 하던 방송 광고를 내보낸 적이 있다. 1980년대 후반 사무자동화(OA)바람이 불 때 거의 모든 대기업집단들이 자체 OA기기 회사를 만들어 사내 하드웨어와 업무용 소프트웨어를 자체 조달했다. 자체수요말고도 당시 공공, 기업, 소비자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고 소프트웨어의 복잡도가 낮았던 시절이라 그런 시도는 당연한 일이었다.

1998년 종업원지주사인 '현대멀티캡'으로 분할되어 현대그룹 품을 벗어났고, 2000년 현대전자 지분까지 매각해 완전 독립했다.

3.2. 게임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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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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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전자 시절이던 1980년대 후반부터 북미판 패미컴(NES)를 '현대 컴보이'라는 이름으로 출시 후, 게임보이, 슈퍼 패미컴, 닌텐도 64(현대전자 발매명은 각각 미니컴보이, 슈퍼 컴보이, 컴보이 64)까지 닌텐도의 하드웨어를 정식 수입했다. 패미컴은 유럽·북미판 베이스, 슈퍼패미컴은 유럽·일본판 베이스.[12][13] 게임 소프트웨어는 패미컴부터 닌텐도 64까지 나온 시절에 나온 게임소프트인데, 슈퍼 마리오 닌자 거북이,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등을 수입했다. 드래곤볼Z 초무투전은 한글화까지 했다. IMF라던지 여러가지 외부적 요인이 없었다면 이후의 닌텐도 가정용 및 휴대용 콘솔인 닌텐도 게임큐브, 게임보이 컬러, 게임보이 어드밴스도 수입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컴보이 돌핀이라고 명명됐던 닌텐도 게임큐브가 그것이다.

전 기종의 소프트웨어는 미국판으로 발매되었다. 하드웨어는 미국판(컴보이, 미니컴보이, 게임보이), 일본판(슈퍼 컴보이, 컴보이 64) 기반. 하드웨어의 박스아트는 미국판(컴보이, 미니컴보이, 게임보이), 유럽판(슈퍼 컴보이), 일본판(컴보이 64)을 따라가며 소프트웨어 패키지는 슈퍼 컴보이를 제외하고 모두 미국판을 따라가나 슈퍼 컴보이 한정으로 팩 프린팅은 유럽판, 커버아트는 유럽판( 슈퍼 마리오 요시 아일랜드까지), 일본판( 동키콩 컨트리 2부터)을 따라간다.

게임보이용 게임 중 포켓몬스터 레드·그린은 현대전자가 닌텐도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수입하던 시절인 1996년(북미판은 1998년)에 나왔는데, 정식발매는 하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현대전자에서 발매한 닌텐도 관련 상품 판매가 부진해지고, 동시에 IMF 외환위기가 터진 이후 게임 사업에서 철수했다.[14] 만약 현대전자가 게임 사업 철수를 몇 년 더 늦게 했다면 포켓몬스터, 동물의 숲 게임도 현대전자에서 발매했을 뿐만 아니라 포켓몬, 동물의 숲이 일찍 발매되었을 수도 있고, 적어도 한국닌텐도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대원씨아이보다는 괜찮은 성적을 낼 수 있었을지도?[15]

이 시기 정발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정발되지 않았다고 알고있거나 서술된 곳이 많다.[16] 발견 즉시 정정해주도록 하자.

3.3. 휴대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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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국산 CPU 개발

1990년대 즈음에 국산 CPU 개발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당시에 K-DOS라는 것도 나왔을 무렵인데다가 삼성전자도 참여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지고 나서 삼성전자는 시장성이 없을 것이라 예언하여 빠지고 DEC Alpha 생산 계약을 맺었다. 혼자 남은 현대전자가 독립적으로 연구하다가 결국 CPU 개발은 포기하고 그냥 메모리 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컴퓨터에 들어가는 x86 호환 CPU이며 연구 중단 전까진 500MHz급 CPU를 개발하는데 성공한 모양.

여담으로 1990년대 중반 미국 현지법인에서 Axil이라는 브랜드로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워크스테이션 호환 기종을 만들어 판매한 적이 있다. 국내에도 들여와서 주로 현대그룹 관련 기업에서 사용했고 일반 판매도 했었다. 전자 분야에서 이것 저것 많이 손댄 편.

3.5. 인터넷 사업

PC통신이 대중화되던 시절인 1995년에 대기업으로서 처음으로 '아미넷'이라는 이름으로 PC통신 시장에 뛰어들었다. 아직 인터넷조차 우리나라에 생소했던 시절에 최초로 인터넷 기반 PC통신 서비스를 개발했다. 당시 개발팀장이 바로 엔씨소프트 창업주 김택진이었다.[17] 이 서비스는 1996년 3월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상용서비스를 시작하여 5월 27일부터 전국 상용서비스를 개시했다. 그해 8월부터 현대정보기술로 넘어가면서 1997년부터 신비로로 이어지게 된다.

1990년대 후반 아직 ADSL 시대가 열리지 않고 코넷과 ISDN 정도가 최고속일 때, 당시 현대정보기술이 전화선을 통한 SLIP/PPP 인터넷 연결을 무료로 개방해서(물론 전화요금은 개인부담이라 야간정액제가 필요했다), 아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좋은 평을 받기도 했다.

3.6. 전장 사업

그 시절 현대차에 들어가는 카오디오 등 전장 부품이 바로 현대전자 제품이였고 나중에 대우전자와 함께 타사 차량에서도 장착할 수 있게 뿌리기도 했다. (당시 광고) 2000년에 '현대오토넷'[18]으로 분사됐다가 2002년 현대기아자동차그룹으로 합류된 후, 2008년에 현대모비스로 합병되었다.

4. KBO 리그와의 관계

현대 유니콘스를 해체하게 만든 주범이기도 하다. 1995년 현대그룹이 프로야구단 태평양 돌핀스를 470억에 인수해 현대 유니콘스를 창단하는 과정에서 야구단의 지분 46.1%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있었고, 2000년 그룹 계열 분리 당시 현대자동차가 보유한 야구단 지분 45%의 2/3 정도에 해당하는 30.1%의 지분을 추가로 인수하여 76.2%의 지분을 구단 해체 시점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문제는 현대그룹이 구단 창단과정에서 대주주를 정하는 것부터 실수를 저질렀다. 스포츠단, 특히 프로야구 구단의 경우 운영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이 드는 탓에 최대의 순수익을 올리는 기업이 운영을 맡아야 한다. 그래야 선수단 운영비와 구장 사용료, 인건비와 선수 연봉 등을 감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에 대주주로 현대자동차 현대백화점을 선정하는 게 맞았는데, 현대자동차는 K리그 울산 현대 호랑이[19] 전북 현대 다이노스를 동시에 운영하고 있었고, 현대백화점은 계열분리 예정이었던 데다가 오너인 정몽근 회장이 다른 형제들과 달리 스포츠에 큰 관심이 없었다.[20] 게다가 돌핀스 인수의 주체가 재계의 대표적인 야구광인 정몽헌 현대전자 회장이었고. 그래서 현대전자가 대주주를 맡았는데, 반도체 사업부를 뺀 모든 사업부가 적자투성이에 재정마저도 부실한 기업인 현대전자가 운영을 했으니 처음은 그룹차원에서도 지원이 있었다고 하지만 곧 1997년 외환 위기 현대그룹에 위기가 오자 현대전자는 점점 휘청대기 시작했고, SK 와이번스로부터 받았던 현대 유니콘스의 서울 입성금 54억을 회사 지원금으로 사용하였고 구단 운영비는 한 푼도 주지 않았다. 심지어 2001년 초 현대자동차그룹에서 유니콘스 구단을 인수하려 했지만 사실상 거절할 목적을 담아 인수대금으로 무려 900억을 부르는 바람에 결렬, 결국 현대자동차그룹은 해태 타이거즈 인수로 방향을 돌리게 된다.

2001년 이후에는[21] 구단 대주주로서 지분 소유만 했지 지원금 한 푼도 주지 않는 등 말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고, 결국 현대 유니콘스가 타 기업에 인수되지 못하고 해체, 히어로즈로 재창단 과정을 거치며 삼청태현 계보, 우승 4회 기록이 모두 끊어지게 되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로 인해 과거 현대-히어로즈를 응원해온 팬들에게 여전히 좋지 못한 취급을 받는다. 더군다나 2군 경기장이었던 원당야구장(당시 현대전자 연수원 내 야구장)마저 하이닉스의 소유임에도 전혀 수리하지 않았었다. 설립 당시에는 최신식 시설이었지만 구단 해체 직전에는 실내 연습장 지붕에 구멍이 나 있었을 정도로 보수조차 되지 않았던 상태였다. 그 와중에 경기장 임대료는 매년 꼬박꼬박 걷어갔다. 현대전자 연수원 자체는 하이닉스를 거쳐 현재는 NH투자증권 산하 NH인재원 소속이 되었다.

다만, 2000년대 초반 '자금난으로 워크아웃 중'이며 인수기업을 찾아야 하는 상태인 모기업의 입장에서 보유 당시 만성적자 분야인데다가 사양산업 취급을 받았던 프로야구에서도 가장 인기가 적은 팀이었던 현대 유니콘스는 애물단지로 여겨졌을 수도 있다. 또한 당시 야구단 운영에 대해 채권단과 주주들의 항의도 계속 이어진 바 있다. 당시 재무제표 상에서는 야구단 운영 자금을 충분히 댈 수 있을 만큼의 순이익은 계속 나오고 있었으나 워크아웃 중인 기업에서 이러한 순이익을 야구단에 대기에는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었을 수 있다.

하지만 프로야구단에 쓰라고 있던 돈을 제멋대로 가져간 것은 까임을 피하기 어렵다. 아무리 사정이 어려웠다 해도 야구단의 자금을 멋대로 사용한 것은 모기업으로서 하지 말았어야 할 짓이다.

당시 천덕꾸러기이던 하이닉스가 SK에 인수되어 결과적으로는 사필귀정이 됐지만, 꼬일 대로 꼬인 실타래를 풀기에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 SK 인수 이후 SK하이닉스의 광고가 SK 와이번스의 홈구장인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 걸리게 된다.[22] 2021년 2월부로 SK텔레콤이 야구단을 신세계그룹에 매각을 하게되어 다시금 야구와는 연을 끊게 되었으므로 SK하이닉스 광고도 내려졌다.

5. 기타

파일:현대 CD비전 광고.jpg * 1993년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을 기용해서 광고를 찍은 적도 있으며 이 외에도 배우 이재룡, 개그맨 김국진, 현 국민의힘 소속 경기도 성남시 갑 국회의원이자 당시 안철수연구소의 CEO였던 안철수 등도 이 회사의 광고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6.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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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등기상의 구 국도건설 창립일. [2] 우회 상장으로 피합병 법인으로 전환된 기존 법인 현대전자 출범일. [3] 법인은 하이닉스반도체로 승계됐다. [4] 원래 하이닉스반도체라는 이름으로 분사했으나 이후 SK에 매각해 SK하이닉스로 사명을 변경했다. [5] 원래 현대큐리텔이라는 이름으로 분사했으나 이후 팬택에 매각해 팬택&큐리텔로 사명을 변경했다. [6] 원래 현대오토넷이라는 이름으로 분사했으나 같은 범현대가의 일원인 현대자동차그룹 소속 현대모비스에 합병됐다. [7] 그 외 영상기기는 아남, 음향기기는 인켈- 태광- 롯데 3강이었다. [8] 당시 재계 1위의 현대그룹 포스라면 파고들려면 충분히 들 수는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이유, 즉 이미 선발업체가 자리잡고 있는데 후발기업이 모그룹 돈지랄로 진흙탕 경쟁을 만들수 있다는 재계의 우려 및 선발업체의 반발 때문에 알아서 소비재 전자제품으로의 진출을 포기하고 산업전자제품으로 포지셔닝을 했다. 야구단 돈지랄 잘만 했으면서 [9] 그러나 LG의 반도체 사업 내공은 1979년 대한전선으로부터 대한반도체를 인수하면서 쌓여왔다. 1989년에 금성사와 금성반도체가 반도체 부문을 '금성일렉트론'으로 넘긴 뒤, 금성반도체 법인은 이듬해 '금성정보통신', 1995년 'LG정보통신'으로 각각 바꾸어 전산장비 및 휴대폰 사업에 주력하다 2000년 LG전자에 합병되었다. [10] 정부의 정책이 기업들에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영향을 많이 주기 때문에 정부와 매우 가까운 사이를 유지한다. [11] 대기업들의 이런 문제점과 다양한 외부 환경의 변화로 한국은 1997년 IMF 구제 금융 체제로 들어가게 된다. [12] 소프트웨어의 디자인의 경우 북미·유럽판의 디자인을 따라갔으나, 나중에 가면 일본판에 가깝게 나온다. [13] 노린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한국닌텐도에서 정식 발매한 닌텐도 스위치 클래식 컨트롤러는 이 시절에 맞춰 북미판 NES 패드와 유럽판 SNES 패드로 나왔다. [14] 여담으로 SK하이닉스에 문의해본 결과, 관련 서류들은 전부 폐기되었다고 한다. 고증 관련으로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없는 셈. [15] 다만 게임이 제대로 한글화 되지 않는, 현대강점기가 더 길어질 수도 있다. 실제로 현대~대원 시절에 한글화 된 게임을 보면 닌텐도 퍼스트 파티 게임은 없으며, 대부분 세컨드~서드 파티이다. 패미컴 본체도 일본 현지에서 생산 후 받아오는 방식이라 위키피디아에 서술되어 있고, 중국 진출도 자회사를 세워서 진출한 것을 보면, 닌텐도라는 기업 자체가 타사에 소스코드 공개를 매우 꺼렸던 것으로 분석된다. 그래도 잘만하면 바톤 넘겨주기는 잘되었을듯 하다. [16] 나무위키도 예외는 아니다. [17] 당시 진득하게 일만 하던 청년이었는데 업무시간에 슬리퍼신고 다니다 욕먹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게임 좋아서 게임만든다고 하면서 만든 것이 리니지이다. [18] 이때 브랜드는 폰터스(PONTUS) [19] 1998년까지는 현대자동차가 구단 운영 주체였고 전북 창단 이후에도 한동안 두 구단을 같이 운영했지만 1998년 이후 현대중공업에 구단 운영권을 넘기면서 현대자동차는 전북 현대 모터스 1개 구단만 운영하게 된다. [20] 현대백화점그룹은 2022년 기준 재계 서열 22위임에도 불구, 실업 여자양궁단을 운영하는 것을 제외하면 스포츠계와 거리를 두고 있다. [21] 이 때는 사명도 현대전자에서 하이닉스로 바꾸고 현대그룹 계열사에서 사실상 분리되어 남남인 상태였다. [22] 공교롭게도 현대 유니콘스 숭의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쓰던 시절 전광판 아래에 걸린 광고는 SK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였다. 대를 이어서 인천 연고 프로야구팀 홈구장 전광판에 광고를 새기게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