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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1-07 16:19:54

학살/목록



1. 개요2. 한국3. 그 외 국가4. 가공매체에서의 학살

1. 개요

학살 사건들을 정리한 문서. 테러 사건이나 제노사이드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작성시 시대순으로 정리할 것.

2. 한국

3. 그 외 국가

☆: 한국과 관련된 국외 발발 학살들

4. 가공매체에서의 학살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학살/가공매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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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200년 신종 3년 4월 경남 진주에서 공·사노비들이 향리들의 탄압과 착취에 반발하여 난을 일으켰는데 엉뚱하게도 이 난리통에 집이 불탄 정방의가 난의 주모자로 오해받아 옥에 갇혔다가 아우에 의해 구출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형제는 노비 반란을 등에 업고 불평분자들을 끌어모아 진주 고을을 흽쓸고 다니며 무려 6400여명을 학살했다고 전해진다. 기가 막힌 것은 이때 정방의 일당에게 끔찍한 피해를 입은 진주 백성들이 국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일개 도적떼 무리에게 의탁하여 정방의 세력과 대결했지만 패퇴해 전멸했고 정방의는 더더욱 날뛰면서 경남 지방을 휘젓고 다니다가 이듬해 3월에 가서야 진주 사람들에 의해 제거되었다고 한다. [2] 목호의 난 공민왕 집권 당시의 고려에서 원나라와 관련된 '목호'들이 명나라에 말을 바치는 것을 반대하며 저항하자 최영, 염흥방 등이 지휘하는 고려군이 무력으로 진압한 사건이다. 그러나 진압 와중에 목호들과 연루되어 많은 수의 제주도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하여 이 사건을 고려판 4.3 사건이라고 하기도 한다. 더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3] 제노사이드의 성격을 띄는 사건 [4] 현 파주시 파평면이다. [5] 당시 78세였던 주민이 언론에서 얘기하길, 산속에서 한쪽 팔을 제대로 못 가누는 사람이 내려와서는 쇠스랑을 빌려달라 했다고 한다. 왜 그러냐고 되묻자 자신은 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람인데, 인민군이 철수하면서 자신의 처자식은 물론 마을 주민들과 청년들을 세워두고 기관총으로 사살했으며, 자기 자신은 운 좋게 팔 관통상으로 끝나 확인사살을 피하기 위해 죽은 척 하고 살아남았다며 사정을 얘기했다고 한다. 그래서 주민들이 학살의 생존자가 알려준 지점으로 가 보니 시체 썩는 냄새가 참혹하다 못해 코가 삐뚤어질 지경이었고, 인민군의 잔혹함에 주민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고 증언한 기록이 남아있다. [6] 좌·우익 대립에 의한 민간인 학살 [7] 국군과 북한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8]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9] 북한군의 자국민 학살 [10] 후술할 대약진 운동, 벵골 대기근과 같은 인의적인 대기근. [11] 정치범수용소의 운영 방침 자체가 "당과 수령과 조국을 배신한 배반자로서 곱게 죽어서는 안 되고, 뼈에 사무치도록 아픔과 고통을 처절하게 느끼다 서서히 죽음에 이르도록 해야 한다."인 만큼( #) 정치범수용소 운영 자체를 반체제 인사에 대한 조직적, 계획적인 학살이라고 봐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A] 한국인 희생자 발생 [A] [14] 한국인 공식 사망자 1명, 한국계 미국인 사망자 28명. [15] 장애인에 대한 국가기관의 학살. [16] 다른 이름으로는 간도 참변이며 강조하여 경신 대참변이라고도 한다. [17] 스코틀랜드의 글렌코 지역에서 잉글랜드군이 스코틀랜드의 맥도널드 가문 일원 78명을 학살한 사건이다. [18] 정확히는 학살 행위 자체에 대한 긍정보다는 나치에 대한 반감에 의해 긍정적인 여론이 생긴 것이다. [A] [20] 숙청과 고려인 강제이주 과정에서 희생자 발생. [A] [22] 학살도 많았지만 정확히는 대 반달리즘. [23] 1928년 12월 6일, 콜롬비아의 바나나 플랜테이션 노동자들이 더 나은 처우를 요구하며 벌인 파업을 군인을 동원하여 진압한 학살이다. [24] 1929년 2월 14일, 경찰관으로 위장한 알 카포네 파 조직원들이 라이벌인 조지 모런 파 조직원들을 살해한 사건. [25] 1958년 남베트남 정권이 푸로이 수용소에 있던 베트민 죄수들을 독살 및 총살한 사건이다. 6,000명의 죄수들 중 최소 1,000명이 학살당했다. [26] 직접 학살한 것은 아니지만 영국의 주요 식민지 정책인 이간질이 사태를 수습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27] 1943년 7월 14일, 시칠리 침공 당시 71명의 이탈리아군 포로와 독일군 포로 2명이 미군에 의해 사살된 사건. [28] 肅清大虐殺.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에 싱가포르를 점령한 일본군이 2월 18일에서 3월 4일 사이에 싱가포르에 거주하던 중국인 화교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29] 1차 세계대전 중 일어난 학살로 오스만이 동원한 비정규군 + 쿠르드족이 주도했다. [30] 프랑스군이 저지른 학살이 대부분이지만 알제리인들이 프랑스인들을 학살한 사건도 있었다. 그나마 알제리인들이 보복 학살은 상대적으로 옹호 받는 편이다. [31] 단, 이 경우는 당시의 전쟁법 기준으로는 전쟁범죄가 아니다. [A] [A] [A] [35] 내전 초기 한국인 희생자 발생. 한국인이 필리핀에서 ISIL 연계조직 아부 사야프에 의해 피랍되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36] 하마스의 선제공격으로 전쟁이 시작되었으나, 이후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폭격과 지상군 투입으로 인해 라파흐 난민촌 등에서 다수의 민간인이 학살당했다. [37] 1960년대 수하르토의 쿠데타 이후 공산당 토벌을 빌미로 100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한 사건. [38] 2차대전 때 세르비아에서 일어난 학살. 체트니크 항목도 참조. [39]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같은 편인 독일 민간인들을 학살했다. [40] 1943년 이탈리아 카니카티에서 미군에 의해 민간인이 살해당한 사건. [41]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버마의 칼라공에서 벌인 학살. [42] 특히 방데 전쟁 진압 과정에서의 학살은 근대적 학살, 제노사이드의 효시로 보는 시각도 있을 정도로 잔혹했다. 해당 항목 참조. [43] 1932년 일본군이 게릴라 토벌을 벌인다며 중국에서 저지른 학살. [A] [45] 다만 피해자가 마약사범이란 의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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