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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네급 중순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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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Japanese_cruiser_Tone.jpg
利根型巡洋艦

1. 개요2. 제원3. 개발4. 특징
4.1. 8인치급 주포 8문의 탑재4.2. 대공화력의 지속적 추가4.3. 함재기 다수 탑재4.4. 일본군 중순양함중 가장 두꺼운 장갑과 강력한 출력4.5. 어뢰 탑재
5. 문제점
5.1. 주포의 과집중 및 성능의 열세5.2. 2연장 주포탑 사용5.3. 역행배치의 3,4번 주포탑5.4. 종이장갑 주포탑을 비롯한 방어상의 약점5.5. 함재기 과다 탑재의 허실5.6. 결론
6. 실전7. 평가
7.1. 1번함 토네7.2. 2번함 치쿠마
8. 대중문화에서의 토네급9. 유사품10. 관련 링크

1. 개요

일본 제국 해군 중순양함 토네급 중순양함(利根型巡洋艦).

모가미급 중순양함 처럼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런던 해군 군축조약 경순양함 배수량 쿼터의 허점을 이용하여 건조하기 시작한 1만 톤급 중순양함이다. 후속함으로 예정된 이부키급 중순양함이 취소되는 바람에 일본군 해군 최후의 중순양함으로도 불린다. 흔히 처음부터 수상기 운용에 집중한 항공순양함으로 설계되었다고 알려졌으나, 그냥 공간이 남아서 수상기를 배치한거다.

총 2척이 건조되었으며 명칭의 경우에는 서류상으로는 경순양함이었으므로 일본 본토의 하천 이름을 따서 토네(利根), 치쿠마(筑摩)라는 이름을 붙인다.[1]

2. 제원

파일:external/wiki.gcdn.co/IJNTonePicture.png
토네급 중순양함
利根型重巡洋艦
이전함급 모가미급 중순양함
다음함급 이부키급 중순양함
구분 취역시(1938 년) 최종사양(1945 년)
기준 배수량 11 213 t 유지
공시배수량 13 320 t 유지
전장 201.6 m 유지
전폭 19.4 m 유지
흘수선 6.23 m 유지
보일러 로호함본식 중유보일러 8 기 유지
추진기 함본식 기어드 증기터빈 4 조 4 축 유지
출력 152 189 shp 유지
연료 중유 2 700 t 유지
속도 35.55 knot(65.84 km/h) 유지
항속거리 18 knot(33 km/h)시 9 240 해리(17 110 km) 유지
승무원 874 명 유지
주포 3년식 2호 20 cm 50 구경장 함포 연장 4기
(총 8 문)
유지
대공포 89식 12.7cm 40 구경장 함포 연장 4 기
(총 8 문)
유지
대공기관포 96식 25mm 고각기총 6 기
(총 12 문)
96 식 25 mm 3연장 기관포좌 14 기
(총 42 문)
96 식 25 mm 연장 기관포좌 2 기
(총 4 문)
96 식 25 mm 기관포좌 18 - 21 기
(총 18 - 21 문)
대공기관총 93 식 13 mm 연장 기관총좌 2 기
(총 4 문)
제거
어뢰 61 cm 3연장 수상어뢰발사관 4 기
(총 12 문)
유지
장갑 측면주장갑 150 mm
갑판장갑 35 mm ~ 60 mm
주포탑 전면 25 mm, 측면 25 mm,
후면 25 mm, 천장 25 mm
주포탑 바벳 갑판돌출상부 75 mm, 갑판하부 25 mm
탄약고 측면 225 mm
현상유지
함재기 수상기 6 기, 캐터펄트 2 기 제거(캐터펄트는 제외)
레이더 없음 2호 2형 3기, 1호 3형 1기

3. 개발

파일:Tone_1942.jpg 파일:Japanese_heavy_cruiser_Chikuma.jpg
토네급 중순양함 1번함 토네 토네급 중순양함 2번함 치쿠마

일본 제국 해군은 해군 함대의 수색용으로 수상기를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순양함에 해상용 정찰기를 탑재하는 노력을 많이 기울였다. 그러나 기존의 순양함들은 작거나 무장을 많이 탑재하는 바람에 정찰용 항공기까지 충분히 탑재할 여유가 부족한지라 일본군의 입장에서는 나날이 증가하는 수색요구량에 비해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게 된다.

이런 이유로 인해 1934년에는 모가미급 중순양함을 개량한 형태로 토네급 중순양함의 설계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15.5cm 주포탑을 5기나 탑재하는 계획이었으나 곧 주요 요구사항이 크게 변경하여 주포의 탑재문수를 약간 줄이는 타협을 하는 대신, 함재기의 숫자를 6기로 늘려서 당시 일본군 해군이 예상했던 미국 순양함의 함재기 탑재숫자인 4기를 능가함으로서 함대의 수색활동을 크게 증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토네급 중순양함을 설계하기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아직 일본 제국은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과 런던 해군 군축조약을 준수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가미급 중순양함처럼 위장을 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따라 토네급 중순양함을 건조 시작하는 시기인 1935년에는 서류상에서는 경순양함으로 표기하고, 기준배수량 8,636톤, 수선전장(水線全長) 187.21m, 흘수선 4.42m, 함포의 최대 구경 15.5cm 이라는 내용을 타국에 통보했다. 그리고 실제로 토네급 중순양함에 설치할 15.5cm 함포를 마련해놓았다.

그리고 1936년에 군축조약에서 탈퇴하면서 더 이상 외국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지자 주포부터 다른 일본군 중순양함이 사용하는 3년식 2호 20.3cm 50구경장 2연장 함포로 교체해서 중순양함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었으며, 토모즈루 사건 제4함대사건으로 일본함선의 과무장 설계사상이 잘못되었음이 드러났고, 이에 따라 선체 구조의 재검토 및 개선이 필요했기에 설계가 변경되면서 배수량의 증가 및 이에 따른 속력 저하가 발생했다. 그리고 가급적 검증된 설계와 익숙한 기술을 이용해서 운용시 문제점을 줄이려고 노력했다.

이런 우여곡절끝에 토네는 1938년 11월에 취역하고 치쿠마는 1939년 5월에 취역한다.

4. 특징

4.1. 8인치급 주포 8문의 탑재

이전까지의 일본군 중순양함은 8인치급 주포를 10문을 탑재했으나, 토네급 중순양함은 함재기의 숫자 및 관련시설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에 주포를 함수 방면에만 집중해야 하므로 기존 방식으로 주포를 배치할 수 없었다. 따라서 함수에 2연장 주포탑 4기를 배치했는데, 기존의 중순양함보다는 함포의 문수가 2문 줄었지만, 주포를 설치할 위치가 함수쪽으로 국한되는 협소한 공간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다른 중순양함보다 화력이 별로 줄어들지 않은 셈이다.

주포는 원래 모가미급 중순양함의 초기형이 사용하던 3년식 15.5cm 60구경장 3연장 함포를 사용할 예정이었으나, 설계변경으로 다른 일본군 중순양함도 사용하는 3년식 2호 20cm 50구경장 2연장 함포를 사용한다. 주포의 구경은 203mm로 정확하게 8인치를 맞추었다. 주포의 성능은 125.85kg의 철갑탄을 포구초속 840m/s로 발사하며, E형 포탑에서 앙각을 70도까지 잡을 수 있지만 토네급 중순양함은 E3형 포탑을 사용하므로 앙각이 55도로 제한되므로 대공사격에는 불리점이 있다. 해당 주포는 45도의 각도에서 29,400m까지 포탄을 날릴 수 있으며, 관통력은 10,000m에서 측면장갑 190mm를 관통하며, 29,400m의 거리에서 측면장갑 74mm를 뚫는다.

주포탑은 2연장으로 E3형 포탑을 사용한다. 해당 포탑은 -5도에서 +55도까지 포신을 1초당 6도의 속도로 상하조절할 수 있으며 포탑 선회속도는 초당 4도다. 장전은 +5도에서 포신을 고정하고 장전하며 발사속도는 분당 3발 정도지만 숙련된 승조원이 조작할 경우에는 단시간에 한해서 분당 5발을 발사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포탑 내부에 탑재한 포탄양은 120 ~ 126발이며 포신 수명은 320 ~ 400발 정도다. E3형 포탑은 기존의 E형과 형상은 비슷하지만, 1,3,4번 포탑의 포탑링 부위의 모습이 상부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원뿔 사디라꼴 모양을 한 것이 특징이다. 그 이유는 설계 변경으로 인해 주포가 변경되었기 때문으로 15.5cm 3연장 주포탑의 롤러 경로 지름이 20cm 2연장 주포탑의 롤러 경로 지름보다 크기 때문이다. 포탑의 중량은 1기당 177톤으로 토네급 중순양함의 2,4번 주포탑은 새로 만들어진 8미터 거리측정기를 장착한다.

이 포탑들은 기본적으로는 360도 선회포탑이지만, 배치된 위치로 인해 함수방향을 기준으로 할 경우 1,2번 포탑은 좌우로 150도까지 선회가 가능하며, 역행배치된 3,4번 포탑은 좌우로 160도까지 선회가 가능하지만 함미방향을 기준으로 좌우로 0도에서 20도 위치에서는 발사버튼을 눌러도 함포가 발사하지 않는 사각(死角)이다. 그 이유는 해당 각도에서 포탄을 발사할 경우 함교같은 선체구조물에 포탄이 명중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본의아닌 자폭을 막기 위해서다.

4.2. 대공화력의 지속적 추가

토네급 중순양함은 건조 당시부터 89식 12.7cm 40구경장 대공포좌 4기를 장착해서 대공화력에 신경을 썼다.

대공기관총의 경우에는 건조 당시에는 96식 25mm 2연장 기관포좌 6기와 93식 13mm 2연장 기관총좌 2기였으나, 전쟁이 터진 후 현장의 요구에 의해 지속적인 대공화력 증대를 한 결과 최종형에는 96식 25mm 3연장 기관포좌 14기 (총 42문)와 96식 25mm 2연장 기관포좌 2기 (총 4문), 96식 25mm 단장 기관포좌 18 - 21기 (총 18 - 21문)로 크게 늘어난다. 그리고 레이더도 2호2형 3기, 1호3형 1기를 장착한다.

물론 대공화기로 떡칠하고 제대로 된 레이더와 레이더 연동식 사격관제장치를 장비한 미국의 중순양함을 생각해본다면 토네급 중순양함의 대공무장은 전쟁시기의 기준으로는 강화했도 아직 부족한 수준이었지만, 적어도 일본군의 중순양함중 대공화력은 최고수준이었다.

4.3. 함재기 다수 탑재

함의 집중방어구역을 줄이기 위해 선수에 모든 포탑을 몰아넣자, 선미에 잉여 공간이 생겼다.
이 잉여 공간에는 일본이 중요시한 순양함의 항공기 운용 능력을 위해 수상기와 이를 위한 설비들이 설치됐다.

수상기의 이함을 위해 화약식 캐터펄트를 2기 장비했으며, 수상기를 위한 레일과 회전판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함재기 최대 탑재수량은 6기였고 6기의 함재기를 탑재하더라도 여유가 있어서 약간 무리수를 쓰면 8기까지 탑재가 가능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집중방어구역을 꽉 채우지는 않았다. 전쟁 전에는 3좌수정(三座水偵) 2기, 2좌수정(二座水偵) 4기를 탑재했고, 1940년에는 3좌수정 1기, 2좌수정 3기를 탑재했고, 레이테 만 해전시에는 영식수상정찰기1(零式水上偵察機) 5기를 탑재했다.

그러나 격납고가 없어서 모든 수상기를 갑판 위에 얹고 운용해야 했다는 점은 흠이었다.

4.4. 일본군 중순양함중 가장 두꺼운 장갑과 강력한 출력

공격력뿐 아니라 방어력 측면에서도 준비를 했다. 군축조약의 제약을 벗어났고, 앞서 언급한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선체를 강화하면서 방어력이 늘어났다. 최대 145mm 두께의 측면장갑을 경사장갑으로 붙였으며 탄약고 부위는 추가장갑을 붙여서 측면장갑 총합계가 225mm까지 강화되었다.

갑판장갑은 기본적으로는 35mm의 수준이지만 일부 중요 구획은 60mm까지 강화했다. 수중방어 측면에서도 모가미급 중순양함의 개량점을 본받아서 수선하부의 장갑 위에 대형 벌지를 부착함으로서 처음부터 강화했다.

기관의 경우에는 강력한 모가미급 중순양함의 것을 그대로 본받았기 때문에 매우 강력했으며 모가미급 중순양함의 시행착오를 받아들였기에 문제가 적었다. 해당 기관의 예상 출력은 152,000SHP이며 이런 출력을 바탕으로 해서 35knot의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했고, 시운전시에는 토네가 35.55knot를 달성한다. 이런 출력을 내는 로호함본식 중유보일러의 증기압력은 섭씨 300℃ 22기압이며, 보일러의 배치는 8기 8실이다. 함본식 증기터빈은 4기 4실로 배치했다.

4.5. 어뢰 탑재

비록 개발시의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일본이 생각하는 수뢰전에 참가하는 함선들은 어뢰발사능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고, 정찰순양함이지만 61cm 산소어뢰를 발사가능한 3연장 어뢰발사관 4기를 탑재하여 동시에 12기의 산소어뢰를 발사할 수 있었다. 따라서 공격력면에서는 어뢰의 유효사정거리까지 근접할 경우 중순양함이 더 큰 순양전함이나 전함을 이론상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다.

5. 문제점

일본군 중순양함 문서를 차례대로 열람했다면 눈치 채겠지만, 문제점 항목에 기재된 내용이 복붙수준으로 일치한다. 그말인즉슨, 토네급까지 오기까지 일본은 자국 중순양함의 문제점이 뭔지도 깨닫지 못했고, 해결도 못했단 소리다. 차이가 있다면 문제점이 더 늘어난 것이다.

5.1. 주포의 과집중 및 성능의 열세

정찰순양함으로서 8인치급 주포 8문의 탑재 자체는 화력면에서는 일반 중순양함에 비해 화력이 크게 감소하지 않는다는 이점을 가진다. 하지만 집중방어구역을 줄이기 위해 주포를 모두 함수방향에 몰아넣었으므로 무거운 장비의 집중으로 인해 중량배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렇게 탑재한 주포가 다른 열강들의 동급 주포를 능가하거나 동등하지 않고 약간 열세하다는 것도 문제로 작용한다. 특히 토네급 중순양함은 주포가 8문이므로 9문을 탑재한 미국 중순양함에게 함포 숫자로도 밀린다.

당장, 미국의 구식 중순양함의 주포는 8인치 55구경장 Mark 9인데 ### 118kg의 중량을 가지는 철갑탄을 포구초속 853m/s로 최대앙각 41도에서 29,131m까지 포탄을 날릴 수 있으며, 관통력도 11,340m에서 현측장갑 203mm를 관통하고 27,070m에서 현측장갑 76mm를 관통한다. 발사속도도 분당 3-4발이며 포탄탑재량도 150발이고 포신수명도 715발이므로 근소한 차이로 일본의 3년식 2호 20cm 50구경장 주포를 능가한다.

게다가 미국의 신형 중순양함의 주포인 8인치 55구경장 Mark 12부터는 ### 포신수명과 포탄탑재량을 그대로 유지한 채 152kg의 중량을 자랑하는 8인치 초중량탄인 Mark 21을 포구초속 762m/s로 최대앙각 41도에서 27,480m까지 날릴 수 있으며, 관통력도 9,880m에서 현측장갑 254mm를 관통하고, 26,150m에서 현측장갑 102mm를 관통하는데다가 갑판장갑 타격력도 25,240m에서 갑판장갑 102mm를 뚫어버리므로 이미 위력면에서 일본의 8인치 주포를 능가한다. 설상가상으로 1943년에 설계가 완료된 후 디모인급 중순양함에 사용한 주포인 8인치 55구경장 Mark 16의 경우에는 ### Mark 12의 함포 위력을 그대로 유지한 채 발사속도를 8인치 속사포 소리를 들을 수준인 분당 10발로 늘리고, 포신수명을 780발로 늘리면서 포탄탑재량을 150발로 유지했으므로 일본의 동급 주포와의 격차를 압도적으로 늘렸다.

추축국 한정으로 생각하더라도 아드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에 사용한 SK C/34 20.3cm 60구경장 함포가 있다. ### 60구경장이라는 포신은 미국의 동급 화포가 가지는 55구경장과 일본의 동급 화포가 가지는 구경장인 50구경장을 훨씬 뛰어넘는 장(長)포신이다. 그래서 장포신에 걸맞게 포구초속 925m/s의 속도로 122kg이라는 중량급 포탄을 +37°에서 33,500m까지 날릴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다. 사정거리만 따지자면 2차대전 시기의 최신예 전함을 제외한 나머지 전함의 주포 사정거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포탄이 멀리 날아간다는 것이다. 관통력의 경우에도 9,500m에서 240mm의 현측장갑이나 50mm의 갑판장갑을 관통해버리므로 일본만 초라해진다.

그리고 3년식 2호 20cm 50구경장 주포의 경우에는 사격시 8인치 포탄의 살포계가 너무 넓어졌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건 2기 이상의 인접한 대포를 동시에 사격할 경우 날아가는 포탄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조준한 곳으로 날아가지 않고 멋대로 흩어진다는 현상 때문이다. 특히 토네급 중순양함은 주포가 한 곳에 밀집해서 이런 증상이 심했다. 이 문제는 98식 지연발포장치의 도입으로 포신중 하나를 0.03초 정도 지연발사하는 능력을 추가하면서 해결했지만, 이미 러일전쟁에서 전함의 2연장 주포탑을 운용해본 일본 해군이 더 큰 대포도 아니고 보조함의 소형 주포에서 이런 어이없는 실수를 경험했다는 것 자체가 더 신기한 일이다. 게다가 지연발포장치의 효과도 100% 문제점을 해결한 것은 아니라서 기존에 장착했던 주포와 비교해본다면 8인치 포탄의 살포계가 아직 넓었다.

5.2. 2연장 주포탑 사용

이 항목에 제기된 문제는, 당시 참전국의 중순양함 중 유일하게 3연장 주포탑 3기 = 9문 화력을 보유한 미군의 후기 중순양함과 비교하기 때문에 생긴 문제며, 이 계열의 시초인 묘코급이 타국의 2연장 주포탑 4기 구성인 중순양함을 화력에서 이기기 위해 2연장 주포탑 5기를 탑재하면서 역방향 마운트가 생긴 것이 각종 구설의 원인이라 할 수 있겠다. 개전 시점에서 경쟁국들이 2연장 주포탑 4기를 함수 함미에 나누어 배치하는 것으로 만족했고, 전방주포탑 3마운트는 스케치에 머무르거나 많아야 한두 함급에서 구현해 본 정도지만, 일본은 전간기에 계획했거나 건조에 들어간 전함과 순양함 모두가 동급 최강의 화력을 추구해선지 3~4마운트짜리로 계획된 배와 실제로 그렇게 건조된 배가 많다.

함포의 성능이 경쟁국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도 문제인데, 2연장 주포탑을 사용하는 바람에 주포탑을 4기나 배치해야 하므로 장갑판으로 방어할 면적이 늘어나고 함내 공간을 많이 차지하며, 배수량도 증가하는 삼중고를 겪게 된다. 일반적인 중순양함이라면 주포탑 4기 배치는 적당한 편이지만, 토네급 중순양함은 주포탑 4기를 선수 부분에 밀집해야 하기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2연장 주포탑을 고집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원래 일본은 주포탑의 장갑에 사용될 배수량을 덜어내서 선체의 장갑에 덧붙이는 식으로 조약에서 할당된 배수량을 활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의 조약형 중순양함들은 동시의 타국의 순양함보다 상대적으로 두꺼운 선체 장갑을 보유하지만 반대급부로 주포탑 장갑이 종잇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름대로 공수면에서 밸런스를 맞춰보려고 했던 셈으로 선체의 강화을 위해 주포탑을 희생한 것이다. 덕분에 일본군의 중순양함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포탑이 종이장갑급 장갑만 보유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종잇장 장갑이 된 주포탑은 파괴되기가 매우 쉬웠고, 이렇게 파괴되기 쉬운 주포탑을 3연장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3연장 주포탑 하나가 파괴되면 주포 3문이 동시에 무력화되는 결과가 초래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 해군의 포격 방식은 일제소사가 아닌 교차사격을 애용했다. 함포 사격시 2연장 주포탑의 포신중 하나만을 발사한 뒤, 그 사격의 결과를 반영해서 곧바로 나머지 포신이 발사. 그리고 재장전을 마친 다른 한쪽의 포신이 재발사. 이런식으로 사격간의 간격을 줄이고 명중률을 높히는 방식이다. 해당 방식에서는 주포탑 하나에 포신이 3개 달려있다고해서 그 포신 3개를 일제히 동시에 발사하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순간화력면에서 오히려 마이너스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전쟁 내내 포격전에서 치고받는 단순한 화력 싸움만을 생각하고 있던 일본군에게 있어 최대한의 타협점은 어디까지나 2연장 포탑이었다.

그래서 일본이 2연장 포탑을 채용한 이유는 8인치 3연장포의 개발에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일본은 자기네 해전 교리에 3연장 포탑은 필요가 없었기에, 8인치 3연장포의 개발을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다는 것이 정답이다. 기술자들이 3연장 포탑에 대해 여러 연구를 하고 군부에 제안을 해봤지만, 당시 미국을 제외하면 3연장 포탑을 그렇게 신뢰하지 않던 분위기랑 3연장포가 2연장포에 비해 단점인 요소를 이유로 거부했다. 일본군 해군 함선의 대표적인 3연장 포탑으로는 모가미급 중순양함의 15.5cm 3연장 주포와 야마토급 전함의 46cm 3연장 주포가 있긴하지만, 사실 이것들도 전자는 조약하의 배수량 한계에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포신을 달기 위해 나온 결과물이고, 후자는 단순히 경량화가 목적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다연장화의 필요성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셈이다. 물론 1941년식 갑형 순양함에선 3연장 포탑 4기를 사용하려 했으나 설계조차 해보지 못하고 공중분해 되었기에 그리 큰 의미는 없다.

이러한 일본군의 생각은 군축조약이 붕괴되면서 바로 한계점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일본군은 전쟁에서 패배할 때까지 이 문제점을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조약의 붕괴로 배수량의 제한이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함선들을 제대로 고치지 않고 조약시의 한계점을 그대로 남겨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한계점을 극복한 새로운 함선을 건조하지도 않고, 토네급 중순양함처럼 아직 건조중이라 수정이 가능한 함선들도 조약시의 한계점을 그대로 끌고 갔다.

덕분에 미국 해군만 유리해졌다. 원래 미국 해군의 중순양함은 조약이 파기되기 전부터 주포탑 장갑에도 신경을 쓴 데다가 조약이 깨진 이후에 등장한 15,000톤급의 볼티모어급 중순양함부터는 주포탑도 튼튼하고 선체장갑도 일본군 중순양함을 능가하는 상황이었으며 조약형 순양함의 문제점을 해결한 함선들을 막 찍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해군의 생각에는 큰 문제점이 존재한다. 왜 타국에서는 주포의 다연장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는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것이다.

5.3. 역행배치의 3,4번 주포탑

역행배치한 전방 주포탑 자체는 일본은 묘코급 전부터 있었고, 타국 함선에서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었지만, 묘코급 이후 토네급까지는 기본 배치가 되었다.

앞서 설명했듯이 주포탑을 다연장화해서 3기 배치할 경우에는 모가미급 중순양함처럼 주포탑을 배치하면 2번 주포탑이 1번 주포탑 때문에 함수 방향으로 저각도 사격을 하지 못한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사격각도의 방해를 받지 않는 등 선수에 주포탑을 집중하더라도 나름대로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2] 하지만 2연장 주포탑을 고집한 덕분에 묘코급 중순양함에서 사용한 일본군 중순양함의 기본적 주포배치인 3번 주포탑 역행배치를 한 것도 모자라서 4번 주포탑도 역행배치를 했다.
토네급이 이런 주포 배치를 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일본 해군의 전통적인 순양함 디자인을 그대로 가져가면서, 정찰기 운용 방식을 개선하지 않으면서, 정찰기 댓수를 늘리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토네급이 정찰기를 기본 6대, 최대 8대를 수용할 수 있다지만, 브루클린급이 기본 4대, 최대 6대를 수용한 것을 생각하면 이렇게 무리한 방식을 쓰기보다, 함미 베란다 구조를 개량하고 격납고를 설치하고 탑재기의 날개를 접어 격납하는 게 답이 아니었을까. 다만, 이 시기 일본의 기술제휴선이라 할 독일도 정찰기를 미국처럼 격납하지는 않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날렸다.

5.4. 종이장갑 주포탑을 비롯한 방어상의 약점

앞서 설명했듯이 선체장갑등 방어력에 신경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선수에 주포를 8문이나 배치하고 2연장 주포탑을 4기나 장착하는 바람에 주포탑의 장갑은 그야말로 종이장갑 수준이었다.

일단 주포탑 자체는 전면,측면,후면,상면을 가리지 않고 고작 25mm의 장갑이라서 깡통전차로 유명한 치하와 동일한 수준이었다. 주포탑 바벳의 경우에도 갑판위로 돌출한 부분만 75mm며, 갑판 아래에 있는 부분은 25mm로 역시 치하와 동일하다. 따라서 이런 장갑으로는 적 중순양함의 주포탄을 막는 것은 절대 무리이며, 이 점은 일본도 해당 장갑이 포탄 파편을 막는 수준이라고 인정할 정도다.

동급 중순양함의 주포탄을 못 막는 것도 문제인데 여기에 더해서 경순양함이나 구축함이 쏘는 포탄에도 주포탑이 관통당한다. 경순양함의 경우에는 굳이 미국 경순양함의 6인치 주포를 따지지 않더라도 일본군 해군의 3년식 15.5cm 60구경장 3연장 함포가 20,000m에서 현측장갑 100mm를 관통하는 것만 생각해봐도 이미 게임이 끝난다. ###

그리고 미국의 구축함이 사용하는 5인치 함포를 생각해보자. 해당 5인치 함포는 양용포인데다가 대공능력을 상대적으로 더 중시했으므로 38구경장이라는 중(中)포신을 가지기 때문에 대수상능력은 일본 구축함의 5인치 함포보다 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인치 양용포의 포탄은 10,060m에서 현측장갑 51mm를 관통하고, 12,620m에서 갑판장갑 25mm를 관통하기 때문에 ### 미국 구축함이 근접하지 않고 중거리 이상에서 발포하더라도 충분히 토네급 중순양함의 주포탑을 박살낼 수 있다.

더 참담한 것은 이론상으로는 미국 함재기가 발사하는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에게 주포탑이 관통당할수도 있다는 것이다. M2 중기관총은 경전차 장갑차같이 장갑을 가진 물건을 상대할 목적으로 만들어지고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 사용했으며 대량보급된 50구경 철갑탄 M2 철갑탄을 사용할 수 있는데, 이 탄환을 사용할 경우 500m에서 19mm를 관통하고 1,200m에서 10mm를 관통한다. 따라서 함재기같이 고속으로 비행하는 물건이 토네급 중순양함에 근접해서 기총소사를 할 경우에는 원래 탄환의 관통력 + 함재기의 속도가 합쳐지는 바람에 지상에 거치해놓고 쏘는 중기관총보다 관통력이 더 높아지므로 25mm 정도의 장갑은 관통될 위험성이 매우 높아진다. 다만 이건 이론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실전 상황에서 항공기 기관총에 주포탑이 관통당할 확률은 낮은데, 미군 항공기들은 소이탄과 예광탄이 주력이었고 이 탄들은 관통력이 일반 탄보다는 모자랐다. 관통력을 높인 철갑탄을 사용할 경우 500m에서 관통력 19mm가 나와 얼핏보면 위험해보일지 모르지만 저정도 거리면 급강하폭격기가 폭탄을 투하할 정도의 매우 근접한 거리로, 목숨이 간당간당할 정도로 낮은 고도기에 설령 포탑에 구멍을 뚫는다 해도 자기가 해수면과 충돌할 위험이 있어 파일럿들이 이런 일을 시도하게 되는 경우의 수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 그렇다고 물장갑이라는 사실이 사라지는건 아니지만 말이다.

덕분에 토네급 중순양함은 미국의 중순양함의 경우라면 다 튕겨내고 끝날 소구경 함포나 대공용 기관포에게 주포탑을 관통당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포격능력을 상실할 위험성이 매우 높다.[3] 이런 설계는 대응방어를 중시하는 기존의 설계개념은 물론, 그 뒤에 나온 함선의 방어력은 해당 함선의 전투력을 유지가능할 수준까지 확보한다라는 법칙에도 위배된다. 그나마 포탑의 숫자가 많으니 포탑 1~2개가 날라가도 어느정도 전투력이 유지되기는 하겠지만 전투력 손실은 분명히 문제가 되는 부분이다.[4]

다만 이런 문제의 1차적인 원인은 조약형 순양함 자체의 한계에 가깝다. 영국의 카운티급 중순양함의 포탑과 바벳 장갑도 1인치(대략 25.4mm) 수준으로 25mm보다 조금 두꺼운 수준밖에 안되며 후계함인 요크급도 별로 다르지 않다. 미국의 경우 포탑장갑에 신경을 쓴 편이지만 대신 현측 장갑에서 타협을 하거나 3연장 포탑을 올려서 포탑의 수를 줄이고 포탑 장갑을 강화한 케이스이다. 그나마 미국의 경우 포틀랜드급 중순양함부터는 구축함의 주포 정도는 막아내는 수준으로 올라갔고 뉴올리언스급 중순양함에 와서는 대응방어가 되는 수준으로 올라갔다.[5] 물론 일본의 경우 포탑을 주렁주렁 올린 결과 함체와 바이탈파트가 더 넓었으니 이 문제가 더 심각했고 끝까지 해결하지 못했다는 차이가 있는건 사실이다. 영국은 요크급 이후 중순양함을 건조하지 않았으니 패스.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난 이유는 앞서 설명한 주포탑 과다적재 + 2연장 주포탑만 사용가능 + 선수부위에 주포탑 집중이 안좋은 방향으로 시너지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주포탑을 강화하고 싶어도 충분한 장갑을 붙이면 배수량 폭증은 물론이거니와 중량물이 너무 수면 위로 올라와서 무게중심이 흔들리는 바람에 전복될 위험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토네급 중순양함은 주포탑의 장갑강화를 시행할 경우 선수부에 하중이 집중되면서 항해시에도 지장이 올 정도로 함체 밸런스가 흐트러진다. 그래서 해결이 어려웠다.

한편 이 문제를 일본이 일부러 인식하지 않은 측면도 있다. 태평양 전쟁중에 등장하기 시작한 아가노급 경순양함도 주포탑 장갑이 25mm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급의 8인치 포탄이라면 비록 100mm 이상의 장갑이라도 유효사정거리인 20km 내에서 관통당한다는 이유였는데, 한마디로 오로지 동급함종간의 전투만을 염두에 두었던 것. 망망대해 한가운데에 비행기가 날아오거나 구축함 같은 소형 함선이 포격을 하는 등의 문제는 전혀 신경쓰지 않던 셈이었다. 덕분에 주포탑의 종이장갑 문제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6]

어뢰발사관의 경우에도 산소어뢰를 사용한데다가 유류와 함재기용 탄약이 배치된 함재기 발진시설과 인접한 관계로 유폭시 대형사고가 날 위험성이 높았다. 물론 어뢰발사관에 장갑을 충분하게 주면 해결가능하지만, 주포탑도 종이장갑을 유지하는 판국에 어뢰발사관에 그렇게 할 이유는 없다.

함체 내부에서도 문제점이 있었다. 기관부 중앙 세로 격벽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격벽은 함체 자체의 강도 강화 및 포격전시 주포 포격에 따른 흔들림 및 충격을 이겨내기 위해 넣은 것이지만, 한쪽 측면만 침수가 발생하게 되면 무게 균형을 깨뜨리고 심하면 배를 전복시킬 위험성이 높았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해당 격벽중 일부를 철거하는 선으로 잠정적인 조치를 취했을 뿐이며, 일본군 순양함의 전통으로 토네급 중순양함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덕분에 일본군의 순양함들은 한쪽 측면에 침수가 시작되면 즉시 반대편에 역침수를 가하는 등 신속한 조치를 취해야 했다. 당장 토네급 중순양함인 치쿠마가 지근탄에 의해 침수가 시작되었을 때 침수량을 900톤으로 제어하며 신속한 조치로 침몰을 막았다. 그러나 이 정도의 침수로도 14,000여톤의 함선이 일시적으로 경사각이 30도에 달하는 바람에 전복의 위험성에 노출되었다.

5.5. 함재기 과다 탑재의 허실

함재기 관련 시설이 대폭 늘어난 것이 문제다. 나름대로 신경을 많이 쓰기는 했지만 위험성이 높았다. 일단 격납고가 없어서 함재기를 다 노천에 계류해야 하며, 포격전시 함미 부위 전체가 취약점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주포탄이 명중하거나 공습을 당할 경우 수상기를 날려먹는 것도 문제지만, 화재가 발생하게 되면 인접한 함재기용 물품창고에 항공기용 연료와 함재기 탑재용 소형 폭탄이 적재된 상태이므로 재수없으면 유폭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했다. 그리고 함재기만 불탄다고 해도 다른 중순양함보다 함재기의 숫자가 많기 때문에 한번에 잃어버리는 함재기의 숫자도 많고, 화재발생시 불길의 위력도 더 커진다. 이건 항공순양함이라는 함종 자체의 문제점이라 개선이 불가능에 가깝다.

함재기 운용도 힘들어진다. 이함시에는 캐터펄트를 쓰면 되지만 착함이 곤란하므로 물 위에 내려야 한다. 이건 다른 중순양함의 수상기들도 가진 문제였지만, 토네급은 여러 대의 수상기를 보유하고 있으므로 회수작업에 걸리는 시간도 길어지며, 이는 취약한 시간을 늘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파도가 심할 경우에는 아예 수상기의 착수가 불가능해지므로, 함재기의 수가 많다는 이점을 활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적 항공모함과 대결할 경우, 토네급의 수상기로는 바퀴 달린 함재기에 맞설 수가 없다. 수상기 특유의 플로트 때문에 공중전 성능이 뒤지기 때문이다. 적은 바퀴만 달린 데다가 인입식 랜딩기어를 쓰면 공기저항을 0에 가깝게 떨어뜨릴 수 있지만, 토네급의 수상기들은 거대한 플로트 때문에 공기저항이 극대화되므로 속도가 느려진다. 정찰에만 수상기를 투입한다고 해도, 적기와 만나면 목숨이 위태롭다. 정찰임무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항공순양함 특성상 함 후방에 포탑을 달 수가 없으므로 적이 뒤에 나타나면 대응하기가 힘들다. 이걸 보완하려면 항공순양함을 만들지 말고 그냥 중순양함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일본군은 정찰도 포격도 전부 다하겠다며 끝끝내 토네급을 항공순양함으로 만들었고, 화력부족문제를 최소화한다며 포탑을 전방에 4개씩이나 얹었으며, 그로 인해 역행배치된 포탑이 하나에서 둘로 늘었다. 신형 중순양함이면 문제를 개선해야 하는데 악화시키면 답이 없다.

5.6. 결론

모가미급 중순양함의 후계함이라면 모가미급의 문제를 개선해야 하는데,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켰다. 후루타카급부터 모가미급까지 문제점이 복붙수준으로 이어져 오던 상황이 바뀐 것은 좋지만, 복붙수준을 면한 이유는 문제를 줄여서가 아니라 문제가 늘어서 그런 것이다. 문제점을 복붙수준으로 붙인 후, 여기에 새로운 문제점을 덧붙이는 게 토네급 중순양함의 문제점 문단이 가진 특징이다. 이것은 매우 곤란하다.

이런 식이면 차라리 중순양함과 항공모함을 따로 건조하고, 중순양함은 포격전과 뇌격전에 집중하고 항공모함에 정찰기를 가득 싣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항공모함이니까 정찰기의 수도 늘릴 수 있고, 전투기를 추가로 배치할 수도 있으며, 중순양함 쪽도 항공순양함이 아니니까 설계하기도 쉽고 공격력과 방어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그냥 모가미급의 결함을 개선하고 덩치를 불린 신설계를 도입했더라면 좀 나았을 텐데, 일본군은 그러지 못했다.

6. 실전

토네급은 항모전단의 눈으로서 진주만 공습부터 레이테 만 해전까지 참가했으며, 항모전단의 정찰능력 향상에 크게 기여했지만, 그 실상은 참담한 수준이었다.

6.1. 개전 초기

1941년 12월 7일, 토네와 치쿠마는 제8전대 소속으로 나구모 함대에 참여했으며, 진주만 공습을 위해 정찰기를 날려 진주만의 날씨를 확인하고 함대 남방을 순찰한다. 귀로에 오른 토네와 치쿠마는 제2차 웨이크섬 전투에 참여, 역시 정찰기를 날렸다.

1942년 1월 14일, 토네와 치쿠마가 속한 제8전대는 트럭 섬을 근거지로 삼게 된다. 1월 24일에는 애드미럴티 제도를 수상기로 공습했으며, 2월 1일에는 콰잘레인을 공습한 엔터프라이즈를 추적하지만 실패한다. 다윈 공습에서도 정찰 임무를 수행.

6.2. 어디에다 대고 신성한 우리 기함 포격이야

1942년 3월 1일, 크리스마스 섬 부근에서 미군 구축함과 조우한 토네와 치쿠마는 공고급 순양전함 히에이, 키리시마와 함께 포격을 가하지만 한 방도 못 맞추고 쩔쩔매다가 아카기의 99식 함폭이 폭격을 가해 상대를 손상시킨 후에야 간신히 상대를 침몰시킨다. 그 다음으로 만난 네덜란드 화물선을 상대로는 함대 소속의 구축함 4척이 덤벼들어 포격을 가했지만, 역시나 한 방도 못 맞춘다. 그런데 치쿠마가 사격지시없이 독자적으로 사격을 가했고, 이번에는 화물선을 격침시키는데 성공한다. 문제는 당시 기함이던 아카기 사선에 두고 함을 넘겨 사격을 가했다는 점. 사령관 나구모 중장이 사격중지 명령을 해도 격침할 때까지 계속 쏴댔다고.

여담으로 토네와 치쿠마의 수상기는 공습에 참가하기도 했으며, 3월 6일에는 토네의 수상기가 배를 잃고 표류중이던 영국 선원을 구출하기도 했다.

1942년 4월 5일에는 실론 해전에 참가했고, 여기서도 정찰임무를 수행했다.

6.3. 미드웨이 해전

개전 이래 계속 나구모 함대의 일원이었기에, 토네와 치쿠마도 항공모함 4척을 호위하며 미드웨이로 진격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토네급이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으니, 나구모 제독이 색적을 명령해서 다른 순양함들이 정찰기를 발진시켰지만, 토네의 캐터펄트가 갑자기 고장을 일으켜서 정찰기를 30분 늦게 발진시킨다. 그리고 이 4번 정찰기는 출격도 늦게 한 주제에 무슨 생각이었는지 당초 코스보다 훨씬 일찍 비행경로를 꺽어서 귀환하려 했는데, 바로 이 코스 변경 과정에서 미국 함대를 발견한다. 4번 정찰기가 적함 발견이라는 보고를 하면서 일본군의 계획은 단단히 꼬이게 된다. 원래는 미군 항공모함을 찾아내서 괴멸시키려고 함재기에 대함병장을 달아놨는데, 미드웨이의 저항이 거세서 육상공격용 무장으로 바꿔 달고 있었던 것. 나구모 제독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일단 무장교체작업을 중단시켰고, 정찰기는 "수상함만 있음. 항공모함 없음"이라고 보고를 해서 무장전환작업을 재개한다. 그런데 이 정찰기가 갑자기 항공모함 1척 발견이라는 보고를 해버렸고, 나구모 제독과 참모들은 다시 대함병장으로 무장을 교체하라는 명령을 내려야 했으며, 겨우 작업을 끝마치고 함재기를 출격시키는데 미군 구축함 아라시의 인도를 받은[7] 미군 급강하 폭격기 편대가 일본 함대를 습격한다. 일본 항모에서는 무장전환작업을 빨리 하라는 상부의 독촉을 못 이긴 정비병들이 폭탄과 어뢰를 격납고 여기저기에 방치했는데, 바로 거기에 미군의 폭격이 가해진 것. 당연히 폭탄이 폭발하면서 격납고에 널려있던 일본군의 폭탄과 어뢰들도 연쇄폭발했고, 일본 항모들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일본군은 불을 끄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실패했고, 간신히 살아남은 히류도 수적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미군의 폭탄을 맞고 침몰했다. 결과는 일본 항모 4척 침몰.

이전에는 토네가 4번 정찰기를 30분 늦게 발진시킨것과, 4번 정찰기가 함종 식별을 제대로 못한것이 미드웨이 해전 대참패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어 왔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는 그 과정이 무엇이든간에, 결과적으로 토네 4번기가 발진을 30분 지연한 덕분에 그나마 미 항모부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게 정설로 자리잡고 있다.

치쿠마도 미드웨이에서 5번 정찰기를 내보냈는데, 토네처럼 30분 늦게 출발하지는 않았지만 구름 때문에 바로 밑에 있는 미군 함대를 못 보고 지나갔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치쿠마 5번기는 미 항모부대 바로 상공을 통과했는데도 정찰에 실패한 것이다. 오늘날은 토네 4번기보다는 오히려 치쿠마 5번기의 정찰 실패가 미드웨이 해전 패배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 실패는 미군 함재기들의 발진을 일본군이 막을 가능성을 완전히 없애버렸으며, 이 사실이 알려진 후 치쿠마는 "정찰기가 눈이 삐어서 패배했다"는 비난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나마 운명의 5분 이후 요크타운을 탐지해서 히류의 공격대를 유도해주고, I-168에게 요크타운의 위치를 알려서 격침에 도움을 줬지만 이후 5번 정찰기는 행방불명이 되고 말았다. 어차피 토네의 정찰기가 미 항모들을 발견한 시점에서 일본군 수뇌부도 치쿠마의 5번 정찰기가 사고를 쳤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으므로 돌아와도 무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토네와 치쿠마의 정찰 실패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링크 참조. #

6.4. 과달카날 전역

과달카날로 진출한 토네와 치쿠마는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 항공모함 류조를 호위하게 된다. 류조 자체가 미끼로 내던져진 물건이긴 해도 어쨌든 토네와 치쿠마는 정찰임무를 수행했고, 치쿠마의 정찰기가 미군 함대를 발견하지만 보고하기도 전에 격추된다. 내려갈 치쿠마는 내려간다 이후 미군은 공습을 감행해서 류조를 격침시켰고, 토네도 미군의 공습을 받지만 전부 피하고 기지로 돌아간다. 이후에는 해역 정찰임무를 수행한다.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토네와 치쿠마는 정찰임무를 수행하지만, 토네의 정찰기 4대 중 2대가 격추되었고 치쿠마는 폭탄 3발을 얻어맞고 대파되었다. 이후에도 정찰임무를 수행하다가, 1943년 1월 21일에 마이즈루로 돌아가 대공화력 증강 개수를 받는다. 이후에는 트럭으로 복귀했지만,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의 유해를 실은 야마토급 전함 무사시의 호위를 맡아 일본으로 돌아간다. 이후에는 트럭으로 돌아와서 병력 수송과 초계 임무에 종사한다.

1944년 1월 1일에 제8전대는 해산하고, 토네와 치쿠마는 제7전대의 일원이 된다. 제7전대 멤버는 토네와 치쿠마, 그리고 모가미급 중순양함 스즈야 쿠마노였다.

2월에는 트럭에서 팔라우로 철수하는 일본군을 지원한다.

6.5. 베허호 사건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군의 전쟁범죄와 그로 인한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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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기소 피의자, 재판 전 사망자 포함. 공식적으로는 이들은 무죄이다.
[2] 개별 사건의 중복 피고인까지 합계되었으며, 이 밖에 추축국 피점령지 내 부역자, 기소유예자가 포함된 수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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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2월 27일, 인도양 통상파괴전을 위해 16전대가 출항했을 때 토네와 치쿠마의 제7전대는 전력상승을 위해 16전대와 동행했다. 그러나 토네 함장 마유즈미 하루오는 영국으로 향하던 상선 베허호에 접근하면서 성조기를 게양함으로서 국적을 속였다. 국제법 위반이지만 마유즈미 하루오는 위법이 아니라며 강변했다. 그러나 베허호에서 토네가 일본 군함임을 알아차리자 닥치고 침몰시켰고, 16전대장 사콘조 나오마사는 베허호가 침몰하기 전에 무전을 보냈으니 연합군 측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알아차렸다고 판단하고 작전을 취소한다. 토네는 일본군 최후의 인도양 통상파괴전을 멋지게 말아먹은 셈이다.

이후 베허호의 선원들은 토네에 수용되었으나, 토네 승조원들은 포로들을 학대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이후 포로 일부는 16전대 기함 아오바에 보내져서 살아남았으나, 잔여인원은 토네에 남겨진다. 16전대와 헤어진 지 사흘 후인 3월 18일 밤, 토네 승조원들은 함장 마유즈미 하루오의 명령으로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시체를 바다에 버렸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6.6. 필리핀 해 해전

1944년 3월 20일, 치쿠마는 제7전대의 기함이 되었다.

태평양으로 돌아온 토네와 치쿠마는 오자와 지사부로의 기동부대에 소속되었고, 공고급 순양전함 공고와 하루나와 함께 항공모함 치요다를 호위하게 되었지만, 결과는 위대한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이었고 치요다도 폭탄을 얻어맞았다. 이후 회항하여 대공화기를 증강한다.

7월에 싱가포르로 간 치쿠마는 수리중인 아타고를 대신해서 제4전대의 기함 역할을 대행하기도 했다.

6.7. 레이테 만 해전

레이테 만 해전에서 토네, 치쿠마, 스즈야, 쿠마노의 제7전대는 항공모함으로 구성된 오자와 함대가 아니라, 수상함으로 구성된 구리다 함대에 편성되어 레이테 만 해전에 참가하지만, 시부얀 해전에서 무사시는 침몰하고 묘코는 대파되고 토네 역시 폭탄을 맞는다. 그래도 구리다 함대는 전진했고, 홀시 제독이 오자와에게 낚여서 북쪽으로 가는 바람에 생겨난 빈틈을 통해 레이테 만으로 진격하다가 테피 3과 포격전 거리에서 마주친다. 테피 3는 호위항공모함과 소형 구축함 몇 척으로 이루어진, 그야말로 숫자든 질이든 한 줌밖에 안 되는 함대였으므로 정상적이라면 구리다 함대의 압승이었다.

사마르 해전에서 치쿠마는 태피 3의 카사블랑카급 호위항공모함 갬비어 베이 격침에 기여했지만, 자기보다 훨씬 아래 체급인 존 C. 버틀러급 호위구축함 새뮤얼 B. 로버츠와 근접포격전을 벌였다. 호위구축함은 웬만한 전함 포탑보다도 작은, 그야말로 호위 임무만을 전문으로 하는 함정이며 대함 무장은 5인치 포 2문에 어뢰 3기. 그나마 어뢰는 초카이에게 다 쓴 상태였다. 이 정도면 무난하게 이겨야 하는데, 치쿠마는 제대로 반격도 못해보고 포탑 하나가 날아가는(…) 망신을 당했다. 구축함에도 뚫리는 종이장갑 포탑의 약점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이 때 로버츠는 철갑탄이 소진되자 고폭탄을, 고폭탄이 소진되자 마지막에는 신호용 조명탄까지 쏘면서 항전하는 악착같은 근성을 보여주었는데, 조명탄의 백린이 연소하면서 함선 전체에 화재까지 발생했다. 이 용감한 호위구축함은 다른 순양함들의 포격을 얻어맞고 결국 순양전함 공고의 주포에 격침당한다.

치쿠마가 이런 꼴을 당한 이유는 호위항모에 정신팔린 사이에 새뮤얼 B. 로버츠가 죽을 각오로 치쿠마가 포탑을 내려서 조준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했기 때문에 제대로 반격을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체급 차이가 너무 나고 작은 쪽이 잽싸면 이런 경우가 있다. 울산급 호위함의 함포가 높게 자리한 이유 중 하나기도 하다. 설계담당이던 장교가 북한군 소형정에게 당한 경험을 고려해 그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소위 깡통 구축함 따위에게 중순양함이 얻어터지는 건 비웃음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이후 치쿠마는 전함 야마토와 나가토를 쫓아낸 구축함 USS 히어만과 맞붙었고, 구리다 함대의 다른 배들과 협력하여 히어만을 대파시키지만 미군 함재기 4대의 어뢰 공격을 당한다. 어뢰 1발에 맞은 치쿠마의 속도는 18노트로 떨어졌고, 곧 9노트로 떨어진다. 덤으로 조종불능이 된다. 문제의 어뢰는 치쿠마의 고물에 심각한 손상을 입혔고, 좌현 스크류와 키를 날려버렸다고 한다. 재수가 없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치쿠마가 몇 차례나 대공화기를 증강했었고, 비록 일본군의 대공화기와 방공 능력이 강력한 대공화기과 체계적인 방공시스템을 갖춘 미해군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준이었다고 해도, 사마르 해전에서 출격한 미군 함재기들 대부분은 제대로 된 무장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거기다 그 수도 고작 4기. 화망이라도 제대로 형성했다면 이런 피해를 면할 수도 있었다.

이후 치쿠마는 오전 11시에 5대의 함재기에 공습당해 기관부가 침수되고, 오후 2시에 3대의 함재기에게 공습당해 어뢰를 맞는다. 결국 치쿠마는 10월 25일에 침몰했고, 구축함 노와키가 생존자를 구출했지만 노와키도 미해군에게 걸려 격침되어서 치쿠마에서 살아남은 승무원은 단1명(노와키가 구조하지 못한 승무원이 있었는데 그 승무원이 표류하다가 미군에게 구출되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다고 한다.) 토네는 치쿠마가 상대하던 USS 히어만에게 덤벼들었지만, 미군의 공습을 받고 후퇴했으며 히어만은 끝내 살아남는다.

이 전투에서 제 7전대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쿠마노는 선두에서 전진하다 미군 구축함 존스턴에게 패배해서 함수가 박살났고, 스즈야는 대파되어 속도가 느려진 쿠마노를 피하려고 속도를 늦추고 선회하다가 미군기의 공습으로 박살난 후 침몰했다. 전장에서 속도를 늦추면 죽는다는 냉엄한 현실을 보여준 셈이다. 치쿠마 역시 침몰한 데다 타고 있던 승조원은 대부분 전사했고, 노와키가 구조했던 인원도 거의 모두 익사하고 1명만이 살아남았다. 제원 문단에 나온 대로라면 토네급의 승조원은 874명이니까 치쿠마 승조원 873명이 전사한 셈이다. 반면에 히어만의 전사자는 6명(...). 토네를 제외하면 제 7전대의 중순양함 3척이 가라앉거나 대파된 것이다. 구축함보다 약한 중순양함이라는 오명이 역사에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어차피 토네와 치쿠마는 1942년 3월 1일부터 이런 오명을 달고 있었지만, 레이테 만 해전은 세계 최대의 해전이었으므로 유명해질 수밖에 없기에 토네급 중순양함 치쿠마는 미군의 호위구축함한테 얻어터졌다는 사실을 세계가 알게 되었다. 구축함한테 지는 것도 서러운데 호위구축함보다 약한 배로 추락한 셈이다.

굳이 따져보면 토네와 치쿠마만 오명을 남긴 건 아니다. 같은 날 침몰한 초카이와 스즈야, 대파된 쿠마노 역시 굴욕을 당한 건 마찬가지였다. 초카이는 호위항공모함 화이트 플레인즈의 좁쌀만한 포탄에 얻어맞고 산소어뢰가 유폭하면서 대파되었다고 알려지는 바람에 '호위항공모함에게 포격전으로 패배한 중순양함'이라는 오명을 썼고, 스즈야와 쿠마노도 구축함한테 패배했다는 조롱을 당했다. 토네와 치쿠마, 초카이, 스즈야, 쿠마노 모두 미군 구축함이나 호위항공모함보다 약하다는 낙인이 찍혔으니 외롭지는 않게 된 셈이지만... 이런 건 자랑이 아니다! 게다가 초카이는 잠수정의 탐사 결과 산소어뢰 유폭이 아닌 공고의 오인사격 혹은 함재기의 공습, 구축함의 뇌격으로 인해 침몰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스즈야도 함재기의 공습에 침몰했지 구축함에게 얻어터진 끝에 격침당한 건 아니었다. 결국 초카이와 스즈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었지만 토네와 쿠마노는 구축함에게 패배한 중순양함이라는 기록을 남겼고, 치쿠마는 호위구축함에게 패배한 중순양함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해전 이후 구리다 함대는 그 유명한 구리다 턴을 시전하며 후퇴했다. 레이테 섬의 일본군 병사들, 레이테 섬에 증원병력을 이끌고 돌입에 성공한 16전대는 물론이고 일본의 운명까지 팽개친 선택이었다. 후퇴 도중에 미군의 대규모 공습을 받았지만, 16전대가 레이테 섬에서 탈출하다가 미군의 공습을 받고 침몰하면서 미군의 공격력을 일부 흡수한 덕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이때 16전대장은 사콘조 나오마사였다. 16전대가 없었다면 구리다 함대에 더 많은 공격이 가해졌을 것이고, 그 중 일부는 토네에게 가해졌을 것이니만큼 토네 승조원들은 사콘조에게 은혜를 입은 셈이다. 그렇게 해서 토네는 일본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이 과정에서 쿠마노를 포함해 대파된 군함들이 필리핀에 남겨졌으며, 그들 대부분은 일본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6.8. 최후

아오바와 더불어 일본에 돌아온 유이한 중순양함이었지만, 일본군은 토네를 끝까지 경순양함으로 분류했으므로 '살아서 일본에 돌아온 중순양함'이라는 영예는 아오바 혼자서 차지하게 되었다.

제7전대는 토네를 제외하면 전멸했기에 해대되고 토네는 11월 21일에 중순양함 쿠마노와 함께 제5전대에 들어가지만, 쿠마노는 일본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11월 25일에 침몰했기에 둘이 제5전대에서 활동할 일은 없었다. 이후 토네는 대공화기를 증강배치하고 훈련함이 되었지만 1945년 3월 19일의 공습으로 손상을 입은 후 히로시마 에타지마 시의 섬으로 이동한다. 도망간 거 아냐?

7월 24일, 미군은 구레 군항 공습을 가했고 토네는 9대의 함재기로부터 폭탄 3발을 먹고 착저한다. 7월 28일에 미군은 다시 공습을 해왔고, 토네는 샌드백마냥 두드려맞고 7월 28일에 침몰했다.

그러나 일본은 대파착저(大破着底), 선체만수(船体満水)라는 용어를 써가며 토네를 전후생존함으로 분류했고, 착저 장소 부근에 위령비를 세우고 근처에 자료관을 세워서 토네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당연한 소리지만, 진주만 공습 문서에도 나오듯이 이런 식으로 표현하면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은 격침 전적이 거의 없다. 왜냐 하면, 배가 쪼개져 스크랩된 게 아닌 이상, 침몰한 배는 "선체만수"해 "대파착저"한 거니까.

6.9. 전쟁 이후

일본이 패망한 후, 토네 함장 마유즈미 하루오는 베허호 사건을 일으킨 죄로 재판에 불려갔다. 여기서 그는 "군기와 문장을 숨기고 포로 학살을 저지른건 사실이나, 작전 중에 포로를 잡거든 신속히 처리하라는 상부의 엄중한 지시가 있었다."라고 진술했다. 문제의 상부는 남서방면 함대사령관 다카츠 시로 대장이었지만 이 작자는 전쟁 중에 병으로 죽었고, 토네가 잠시나마 16전대와 같이 행동했다는 이유로 16전대장 사콘조 나오마사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사형에 처해졌다.

문제는 마유즈미 하루오는 고작 7년의 노동형만 받았고, 그나마도 4년만 살고 석방되었다는 점이다. 마유즈미 하루오가 성조기를 게양함으로서 국제법을 어겼고, 토네 승조원들의 포로 학대를 방조했고, 3월 18일 밤에 학살명령을 내렸고, 학살을 지켜본 당사자임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가벼운 처벌이었다. 더욱 황당하게도 포로들을 직접 학살한 토네 승조원들은 제대로 된 처벌도 받지 않았다. 재판이 왜 이래 레이테 만 해전 당시에 토네 승조원들이 사콘조에게 은혜를 입은 걸 생각하면 뭐라 할 말이 없다.

7. 평가

전후 일본 자위대의 헬기 탑재 구축함들의 선조로 보이는 외형을 갖고 있으며, 전쟁 중에도 나름대로 정찰임무에 충실했으며, 주포를 전방으로 몰아넣은 독특한 배치도 겉보기에는 상당히 호평이었던 듯, 위에서 치쿠마와 교전한 사뮤엘 B. 로버츠의 함장으로부터 "아름다운 배였다(It was a beautiful ship)."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겉만 화려했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런 문제점은 토네급 중순양함을 일본이 의도한 대로 포탄을 쏘아대는 전통적인 수상전에 투입할 경우 허우대만 멀쩡했지 실력을 절반도 발휘할 수 없는 지경에 몰리게 만들 수 있었다.

정찰능력에도 문제가 있었다. 수상기를 다수 탑재하므로 수상기 모함의 단점도 고스란히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전쟁 초기에는 일본군이 제공권을 잡고 있었기에 활발한 정찰활동을 벌일 수 있었지만, 전쟁 후기의 혹독한 환경에서 일본군의 수상정찰기가 살아남는 건 불가능했다.

그나마 괜찮은 점을 꼽아보자면 기술적으로는 상당히 안정적인 함선이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실제로 이전 함급인 모가미급의 경우 새로운 설계가 많이 도입된 만큼 건조 초기에 이런저런 기술적 문제가 발생했다고 하지만,[8] 3번함 스즈야부터는 그러한 문제점이 상당부분 해결되었고, 그보다 더 후속 함급인 토네급에 이르러서는 중대한 기술적 문제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안정성을 확보하게 되었다. 실제로 토네급 2척은 전쟁 내내 이런저런 트러블을 일으키긴 했으나, 대부분의 문제는 기술적인 요소 때문이 아니라, 엇나간 설계사상과 그로 인한 태생적인 결함에 의한 애매한 성능 때문이거나, 사용자였던 일본군 해군의 뿌리깊은 병폐와 휴먼 에러 때문이었다. 물론 아무리 기술적 안정성을 확보했다 하더라도 설계상의 근본적 결함이 너무 크기 때문에 실패작에 가까운 순양함이 되어 버렸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7.1. 1번함 토네

정찰 쪽에서 세운 전공은 많지만, 미드웨이 해전에서 벌인 엄청난 삽질이 모든 전공을 다 까먹는다. 위에 나오듯이 토네의 정찰기가 함종식별만 제대로 했어도 함대의 혼란은 없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항모가 전멸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것만으로도 일본 패망의 원흉으로 지탄받을 이유가 되며, 포격전과 통상파괴전에서도 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상관까지도 박살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레이테 만 해전에서 토네 같은 머저리들의 졸전 때문에 구리다 제독은 구리다 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이 일로 평생 비난을 받았다. 게다가 16전대장 사콘조 나오마사에게 받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실로 대단한 의리를 보여주었다. 전 살아야 하니 님이 죽어주세요 자매함 치쿠마가 가라앉는데도 원수를 갚기는 고사하고 줄행랑을 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래놓고도 토네 함장 마유즈미 하루오는 전후에 레이테 만 해전 당시의 일본군 수뇌부의 작전을 비난했고, 일본 해군의 항공주병 전환은 잘못되었고 함포 중심의 함대결전사상으로 가야 했다고 주장했으며, 일본 해군의 원거리 포격 명중률은 미군의 3배라고 발언하는 등 황당한 주장을 거듭했다. 그 굉장한 명중률로 어떻게 구축함한테 패배하고 작전을 말아먹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레이테 만 해전에서 일본군이 진 이유가 토네만 탓할 일은 아니지만, 졸전을 벌인 당사자가 그런 소리를 하면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 니나 잘하세요[9]

특히 베허호 사건으로 민간인들을 학살해놓고도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며 변명하는 추태를 보였으며,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으므로 과오는 더욱 크다. 다른 전범함의 승조원들이 나름대로 대가를 치렀음을 감안하면, 전쟁에 참여한 일본군 군함 중에서도 최악이라 할 수 있다.

7.2. 2번함 치쿠마

일단 학살과 같은 전쟁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으므로 토네보다는 낫지만, 함대 사령관의 중지명령을 무시하고 기함 아카기의 머리 위로 포격을 가한데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정찰에 실패하면서 일본 패망의 원흉 중 하나로 등극했고, 함대전에서도 미군의 호위구축함에게도 쩔쩔매거나 대공사격도 제대로 하지못하는 추태를 보였다. 그나마 사마르 해전에서는 미군 호위항모 1척을 공동격침하는 전공을 올렸지만, 미군 구축함들을 돌파하는 데에는 실패했으므로 빛이 바랜다.

8. 대중문화에서의 토네급


* 1943 미드웨이 해전에서는 1스테이지 보스로 나오는데, 이름은 토네면서 생김새는 어째선지 모가미급 중순양함이 나온다. 1943 改에서는 1스테이지 보스 자리를 카가가 차지.

9. 유사품

10. 관련 링크



[1] 토네는 군마현의 오오미나카미야마(大水上山)에서 발원해 간토지방을 북쪽에서 동쪽 방향으로 훑으며 태평양으로 흘러들어가는 일본에서 가장 큰 강중 하나인 토네가와(利根川)에서, 지쿠마는 나가노현에서 발원해서 니가타에서 동해로 흘러들어가는 일본에서 가장 긴 강인 치쿠마가와(千曲川、筑摩川)에서 이름을 따 왔다. [2] 영국의 넬슨급 전함을 보면, 심지어 3번 주포탑이 2번 주포탑보다 낮지만 후방이 아니라 전방을 향하고 있다. [3] 미국 구축함의 5"/38 (12.7 cm) Mark 12가 대공포탄을 사용할 경우 9,140m 에서 38mm를 관통할 수 있으니 근접전일 경우 재수없게 포탑에 맞기라도 하면 진짜로 뚫린다. 그것도 철갑탄도 아니고 대공포탄에! [4] 포탑이 뚫리면 유폭돼서 폭침하게 될것 같지만 안전수칙만 지킨다면 정말로 더럽게 운이 나쁘지 않은 이상은포탑을 날려먹는 선에서 끝난다. 유틀란트 해전에서 영국 순양전함들이 포탑이 날라간게 원인이 되어 폭침한 이유는 속사에 주력하기 위해서 포탑 안에까지 탄약을 잔뜩 쌓아두는등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5] 포틀랜드급의 포탑 장갑은 최대 64mm로 일본 경순양함 주포인 15.5 cm/60 (6.1") 3rd Year Type의 관통력이 20,000m에서 100mm이라서 막아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나마 구축함의 주포는 막아내는점에서 타국보다는 상황이 양호한편. 뉴올리언스급의 포탑 전면 장갑은 200mm 수준이고 주포인 8"/55 (20.3 cm) Marks 12 and 15의 측면 관통력은 15,400 야드(14,080 m)에서 203mm 이므로 아슬아슬하게 버틸만한 거리가 시작된다. 다만 갑판 타격능력이 16,820m에서 51mm이니 이보다 멀어지면 슬슬 포탑 천장이 뚫릴 위험이 있기는 하다. 게다가 이것도 위치타급으로 넘어가면 20,000m까지는 포탑 천장이 버틸만하다. [6] 여담으로 일본은 모가미급에 사용된 포탑을 그대로 야마토급에 가져다썻는데 그 결과 해당 부포탑은 심각한 물장갑이되었다. [7] 아라시가 지나가면서 생긴 물결을 추격해왔다. [8] 물론 신형함의 1번함은 원래 프로토타입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기술적 문제가 일어나는 것 자체는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이며, 오히려 이러한 문제점들을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 가며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후속함을 건조하고 운용하는데 적용하게 되는 것이다. [9] 약간 첨언하자면 일본군 전함들이 잉여 신세가 된 것은 일선 함장보다는 수뇌부의 보신주의가 더 큰 문제라는 시각은 일본 내부에도 있고, 이 문제에 대해서는 레이테 만 해전 항목에도 서술되어 있다. 또한 마유즈미가 자타가 공인하는 일해군 최고의 포술 전문가였던 것은 사실로, 3배라는 명중률은 전간기의 연습 데이터에서 나온 것이지만 실전에서는 전혀 그런 명중률이 나오지 못한 것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 어딜 가나 가라치기가 문제 [10] 처음에는 8티어로 알려졌으나 이후에 7티어로 변경된 것이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