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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16:20:19

아라시(구축함)

카게로급 구축함
카게로 시라누이 쿠로시오 오야시오 하야시오
나츠시오 하츠카제 유키카제 아마츠카제 토키츠카제
우라카제 이소카제 하마카제 타니카제 노와키
아라시 하기카제 마이카제 아키구모
1. 개요2. 함생
2.1. 초기2.2. 일본에게는 안 좋은 의미로 역사를 만들다2.3. 포로 학살2.4. 최후
3. 평가4. 기타5. 대중매체의 아라시6. 관련 링크


荒らし[1] / USS IJN Arashi

1. 개요

일본 해군의 가게로급 구축함이다.

2. 함생

2.1. 초기

마이즈루 해군공창에서 1939년 5월 4일에 기공, 1941년 1월 27일에 취역한 후 제4구축대의 일원으로 제4 수뢰전대(기함 나카)에 소속되어 남방작전을 지원했고, 다수의 상선과 미군 건보트 애쉬빌을 격침시키는데 조력했으며 전쟁범죄도 저질렀다.
여기까지만 보면 흔한 일본 구축함 A 정도였을 테지만....

2.2. 일본에게는 안 좋은 의미로 역사를 만들다

나구모 함대의 일원으로 미드웨이 해전에 참전했으며, 나왈급 잠수함 SS-168 노틸러스가 나구모 함대를 공격하려는 것을 발견하면서 폭뢰 공격을 가해서 쫓아냈는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노틸러스 계속 쫓다가 본대에서 뒤쳐지게 된다. 이후 본대와 합류하기 위해 서두르는 바람에 대규모의 항적을 남기는데[2] 이게 일본 항모 위치를 몰라서 망망대해 상공에서 헤메고 있던 미 엔터프라이즈 소속 제6급강하폭격대와 제6정찰비행대대에게 목격된다.

나구모 함대를 찾고 있던 미군 급강하폭격기 편대의 지휘관인 C.웨이드 멕클러스키 소령은 이 항적을 발견하고 아라시를 추적, 나구모 함대를 발견했다. 극적인 점은 복귀까지 감안하면 연료가 아슬아슬했기 때문에 맥클러스키 소령도 "마지막으로 남서쪽이나 한 번 둘러보고 없으면 돌아가자."는 생각으로 왔다가 아라시의 항적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마침 나구모 함대를 엄호하던 A6M들은 미군 뇌격기[3]들을 추격하느라 수면 가까이로 내려온 상태였고, 하늘이 텅 빈 것을 본 멕클러스키는 급강하 총 공격명령을 내린다. 그 뒤는 그 유명한 ' 운명의 5분'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아카기 카가, 소류까지 정규항모 3개가 전부 박살이 난다. 이후 겨우 살아남은 히류가 미드웨이 이전에 긴급수리하여 투입된 요크타운을 대파시키지만 위에서 언급된 바로 그 급강하폭격기들이 히류를 덮쳤고, 히류는 결국 격침되고 야마구치 다몬도 사살되었다. 운명의 5분 당시에 요크타운 소속의 급강하폭격기들이 소류를 격침시킨 것을 제외하면 나구모 함대의 모든 항공모함이 아라시의 트롤짓 덕분에 격침된 것이다. 이 쾌거로 일본군의 예봉은 크게 꺾이게 되었다. 미국 입장에서는 정면으로 붙으면 백전백패인 상황에서 아주 훌륭한 반격을 해내면서 전황을 5:5로 만들어버렸다.

다만, 일본군의 처참한 전파 통신기술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적 잠수함을 놓친 상황에서 함대에서 이탈해버리는 것보다는 다시 합류하는 게 상식적인 판단일 수 밖에 없고, 이 당시 공중물을 제대로 탐지할 만한 레이더조차 없었던 상황에서 당연히 이렇게 진행되었을 뿐이다. 본의아니게 적을 아군 함대로 끌어들였다고 욕을 하는 것은 일본 특유의 책임 전가, 꼬리 자르기일 뿐이고, 원인을 따진다면 요크타운에서 발진해 소류를 격침시키고 귀환하던 미군 조종사들에게 있다는 논리다. 히류에서 발진한 비행대는 이 귀환하는 요크타운의 비행대를 따라와서 요크타운을 공격했기 때문.

그러나 아라시가 미드웨이 해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의견은 일본 극우들만의 주장이 아니다. 당장 미국의 다큐멘터리인 배틀 360에서도, 영문 위키에서도 아라시는 미드웨이 해전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취급된다. 아라시 때문에 급강하폭격기들이 아카기와 카가의 상공에 도착한 순간에 미드웨이 해전의 승패는 갈렸고, 일본은 세계 최강이라고 자랑했던 1항공전대를 통째로 잃었다. 일본 해군의 대들보가 통째로 날아간 것이다. 아라시가 없었다면 소류 한 척만 날아갔을 것이고, 거기서 일본군이 퇴각했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아니면 반격해서 미 항공모함 전단에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도 있었다. 배 한 척이 해전의 승패를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흔한 게 아니며, 태평양 전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미드웨이 해전에서 그렇게 했다면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이게 다 아라시 때문이다!"라고만 몰아붙일 수는 없다. 일본군은 처음부터 나구모 함대의 편성을 잘못 짜놓았기 때문이다. 적보다 강력한 함대를 만들어서 출동시켰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패배의 원인이다. 원칙대로라면 아라시가 그런 사고를 치더라도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고 일본군에는 그 정도로 배가 많았다. 나구모 함대의 항공모함 4척 외에도 항공모함 류조 준요, 즈이카쿠가 있었다.[4] 야마토와 나가토를 비롯해서 강력한 전함 전력도 있었다. 그들을 데려가지 않고 항공모함 4척만 앞으로 내보낸 상황에서 승부는 이미 결정되었다. 요크타운의 참전을 일본이 몰랐다고 해도,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을 따돌렸다고 착각했다고 해도 전쟁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미 항공모함 전단을 격멸하려고 출동했다면, 미 항공모함 전단 전체를 박살낼만큼 강력한 함대를 출격시켜야 했다.

그러나 일본 해군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것은 일본해군이 미드웨이 공략을 위해 지불해야 했던 댓가이기도 했지만, 알류산 열도 공략 등에 함대가 분산되었다. 그 결과, 당시 미드웨이해전을 전후해 태평양의 4/4분면 해역에서 공세에 참가 중인 일본 해군 함대는 220여 척에 달했다는데, 그 중 일부만이 미드웨이 해역에 투입됐으며 항공모함 전력의 전부를 투입한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그 함대가 그나마도 시간적 공간적으로 분산되어 있어서 결정적인 그날의 아침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 오만에 대해 훗날 일본과 미국의 전사가들은 '승리병'이라고 불렀다.

그렇다고 해도 아라시는 앞으로도 도마 위에 남아있을 것이다. 미드웨이 해전을 다루면 아라시의 행동은 분명히 언급될 수밖에 없고, 많은 사람들이 "아라시가 다른 행동을 취했다면?"이라는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아라시가 잘했다면 위에서 문제가 되는 1을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라시가 노틸러스에게 격침당했다면?"라는 가정을 안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양측 조종사들의 실력차이, 함재기 성능의 열등함, 불량품 어뢰 등으로 인해 문제의 1은 엔터프라이즈의 급강하폭격기들이라는 매우 작은 전력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이것만 피했다면 이길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당연히 "이게 다 아라시 때문이다!"라는 주장이 나올 수 있고, 정황상 어쩔 수 없는 판단을 내렸던 것에 심하게 욕을 하고 진짜 부도덕한 행위는 되도록 감춘다며 한국 밀리터리계를 비판하는 주장도 나올 것이다. 역사에 거대한 발자국을 남긴 배의 업보다.

굳이 따지자면 요크타운의 급강하폭격기들도 1에 포함되겠지만 이들은 아라시의 행동과는 관계없이 나구모 함대에 도달했다. 그리고 쇼류 한 척만 잃는다면 곧바로 반격해서 미 항공모함 3척을 박살낼 수 있으니까 전력이 열세에 처하는 것은 피할 수 있다. 아라시의 행적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라시와 일본을 동정할 수 없게 하는 요인이 하나 더 있다. 운명의 5분 당시의 행동이 너무나도 강렬해서 잊기 쉬운 문제인데, 아래에 나오는 전쟁범죄 문제다. 이쪽은 진짜로 부도덕한 행위인 만큼, 감춰도 되는 일화가 아니다.

2.3. 포로 학살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군의 전쟁범죄와 그로 인한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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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급 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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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타 슌로쿠 호시노 나오키 히라누마 기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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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C급 전범
일반 전쟁범죄, 인도에 반한 죄
피의자 약 5,700여 명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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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다 순 배열
[1] 불기소 피의자, 재판 전 사망자 포함. 공식적으로는 이들은 무죄이다.
[2] 개별 사건의 중복 피고인까지 합계되었으며, 이 밖에 추축국 피점령지 내 부역자, 기소유예자가 포함된 수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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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4일의 전투에서 나구모 함대를 날려버린 후, 아라시의 일본군은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다. 비행기가 추락해서 바다에 표류하던 미국 제3뇌격비행대대의 웨즐리 프랭크 오스무스(Wesley Frank Osmus) 소위를 포로로 잡은 후에 심문해서 미국의 함대가 항공모함 3척으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낸 후, 6월 5일 오후에 갑판 위로 오스무스 소위를 끌어내서 소방용 도끼로 뒷목을 쳤다. 오스무스 소위는 충격으로 배에서 떨어졌으나, 난간을 붙잡고 가까스로 매달린 걸 다시 한번 밀쳐내어 바다에 떨어뜨려 기어코 살해하고 말았다.

당연히 이런 끔찍한 짓은 전범 행위이며, 아라시의 함장인 와타나베 야스마사(渡辺保正) 중좌는 일본이 패전한 후 미국이 전범 재판에 피고인으로 올리기 위해 찾다가 살해된 것을 확인한 후에야 중지했다. 일본어 위키 아라시 문서(2021년 6월 20일자)에서는 아라시의 승조원들이 이 전쟁범죄의 책임자로 아루가 코사쿠 사령관, 와타나베 함장, 마츠우라 츠토무(松浦勉) 포술장[5]을 지목했다는 사실이 기재되어 있다. 그 외에도 #1 #2 #3 참조.

위에 지목된 세 사람은 '우연하게도' 모두 전쟁 중에 사살됐거나 자살한 자들이다. 아라시 승조원들의 이런 진술은 전형적인 죽은 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김으로서 처벌을 피하려는 시도로 보이나, 부하들의 잘못은 상관의 책임이긴 하므로 위에 지목된 세 사람 모두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전쟁 후에 미군이 이 문제로 조사를 했지만 용의자가 모두 죽었다는 이유로 재판까지는 가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이 전범 행위를 빌미로 "이게 다 아라시 때문이다!"라는 목소리를 키우는 것이기도 하다. 운명의 5분으로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긴 후에 저런 만행을 저질러버리면 "자기 잘못으로 패배해놓고도 창피한 줄도 모르고 화풀이로 포로를 학살하는 나쁜 자식이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아라시와 그 전쟁범죄자 승조원들을 옹호하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2.4. 최후

아라시는 이후 과달카날 전투에 참전하였고, 1943년 8월 7일에 솔로몬 제도에서 벌어진 벨라만 해전[6]에서 격침된다.

3. 평가

미드웨이에서 일본침몰급 삽질을 저지른 탓에 아라시는 일본 패망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아라시가 삽질만 안했어도 멕클러스키의 급강하폭격기부대는 나구모 함대를 찾지 못하고 돌아갔거나, 바다에 빠졌을 가능성이 컸다. 아라시 때문에 일본이 이길 전쟁을 패한 건 아니지만, 아라시가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이 패배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아라시에 탑승하고 있던 생존자로 구성된 아라시 전우회는 아라시는 항공모함 아카기의 호위임무를 맡고있어서 옆에서 한치도 떨어진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일본 측의 기록에서는 잠수함 '노틸러스'를 아라시가 공격한 것은 오전 6시 10분부터 30분에 걸친 시간이고, 공습을 받기 전인 오전 7시(공습은 7시 20분 이후)에는 기함 아카기의 호위에 복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의 기록은 최소한 두 개의 부대가 언급한 것이 공통적으로 일치하며, 굳이 거짓 증언을 해서 얻을 이득도 없고, 아라시가 없었다면 나구모 함대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답할 수 없으므로 미국쪽 증언의 신빙성은 높다. 게다가 아라시 승조원 입장에서는 미국 기록을 인정하면 패전의 직접적 원인을 불러온 것이 되고, 일본 전역에서 생명이 위험할 정도의 이지메를 당하게 된다. 당연히 그런 일은 없었다고 할 강력한 이유가 존재하므로 일본 쪽 증언의 신빙성은 낮다.

2016년 3월의 일본어 위키 아라시 항목에서는 아라시 승조원들의 증언을 소개하고 있지만, 그 신빙성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당연히 아라시가 미드웨이 해전에서 행한 공로를 첫 번째로 소개하며, 영문위키 아라시 항목에도 "제2차 세계대전에서 vital role(치명적인 역할)을 했다"고 소개한다. 포로학살에 대해서도 분명히 언급하고 있으나, 미드웨이에 대해 다룰 때는 포로학살보다는 운명의 5분 쪽이 강조되는 편이다. 애초에 일본군은 포로학살을 밥먹듯이 했으니까

4. 기타

미드웨이 해전 당시, 아라시가 소속된 제4구축대의 사령관을 맡았던 아루가 코사쿠는 나중에 야마토급 전함 1번함 야마토 최후의 함장을 지냈다. 아이러니한게 아루가 코사쿠는 아카기가 침몰할 당시, 아카기의 함장인 아오키 타이지로가 퇴함을 거부하고 함선과 함께 죽겠다고 하자 몸싸움까지 하며 말려서 구조했다. 그런데 정작 야마토가 침몰할 때는 탈출을 거부하고 야마토와 함께 가라앉았다.

아루가 코사쿠의 전범행위에 대해서는 영문위키 아라시 항목은 물론이고, 영문위키와 일본어 위키의 아루가 코사쿠 문서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어 위키 아라시 항목에서는 아라시 승조원들이 이미 사살되어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아루가 코사쿠, 와타나베 함장, 마츠우라 츠토무 포술장을 책임자로 지목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차피 부하 잘못은 상관책임이므로, 학살이 벌어졌다면 아루가 코사쿠는 책임을 피할 수 없기는 하다.

베허호 사건과 관련된 토네급 중순양함도 비슷하게 전쟁범죄를 저지르면서 정신나간 운영으로 패전의 원인 중 하나로 함께 꼽히고 있다.

5. 대중매체의 아라시

역사상의 활약(?)에 비해 유명하지 않아서 대중매체에 자주 나오지는 않는다.

엔터프라이즈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배틀 360' 2화에서 주연으로 등장하며, 토네와 치쿠마의 정찰 실패가 언급도 되지 않는데 비해 아라시의 행적은 매우 중요하게 취급된다. "함대의 운명을 결정지었다"는 나레이션이 나올 정도이니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다만 해전 이후 벌어진 아라시의 전범 행위는 나오지 않으며, 구축함 마키구모가 벌인 포로 학살만 소개된다.

전함소녀에서 미드웨이 이벤트의 키 플레이어로 등장. 아라시(전함소녀) 참조.

함대 컬렉션에도 등장한다. 관련 내용은 아라시(함대 컬렉션) 참조.

영화 미드웨이 에서도 그 존재가 언급되는데 미군의 잠수함에게 공격을 당하자 일본군 함대에서 아라시를 불러 추적하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 때문에 아라시는 뒤쳐지고 항적을 남기며 함대로 급하게 합류하러 가는 것을 지나가던 엔터프라이즈에서 발함한 주인공인 리처드 베스트 편대의 돈틀리스 급강하 폭격기 부대에 발견된다. 이후 장면은 현실의 역사처럼...

파일:월드_오브_워쉽_아라시.jpeg.jpg

월드 오브 워쉽에서 8티어 프리미엄 구축함으로 등장할 예정이다.

6. 관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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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트롤링을 의미하는 일본의 인터넷 신조어. 공교롭게도 발음이 아라시로 동일하다. [2] 다리 위에서 조그만 보트가 지나간 길을 잘 보면 주변과 다른 형태의 수면이 길게 이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게 항적. 배가 지나간 곳의 뒤에 생기는 물보라 흔적으로 항주파 라고도 불리는데, 작은 보트도 은근히 긴데 구축함급이면 말 다했다. [3] VT-3(제3뇌격기대대). VT-8은 스텐호프 링 중령으로 인해 윌드론 소령의 휘하를 제외하고는 전혀 다른 곳으로 몰려갔고, VT-6는 거의 전멸이었으나, VT-3는 타치 위브를 통해 그나마 연계작전을 펼침으로써 제로센의 활동 범위와 일본군 견시병들의 시야를 저공으로 묶어두고 있었다. 한창 이러고 있을 때 VB-6(제6급강하폭격비행대대)가 도착한 것. [4] 쇼카쿠 어디갔냐고 물어볼 수도 있는데, 쇼카쿠는 당장 미드웨이 바로 전에 일어난 산호해 해전에서 미군에게 개박살나서 죽다 살아났기 때문 [5] 사건당시 중위, 최종 계급은 소좌. 일본 항복 직후 자살했다. http://hush.gooside.com/name/Biography/61133matsu.html [6] 미합중국 해군 구축함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의 클래스명이기도 한 알레이 버크 제독과 직접적으로 관계있는 전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