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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5 20:45:24

징비록(드라마)/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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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비평론
2.1. 비교
2.1.1. 조선 조정 무능론 타파의 개연성2.1.2. 임진왜란의 초기 전황
2.2. 구성
2.2.1. 캐릭터 묘사 충족성 문제2.2.2. 느린 이야기 전개
2.3. 인물
2.3.1. 정체된 주인공2.3.2. 인물묘사 다양성 문제
2.4. 제작진
2.4.1. 작가 교체2.4.2. 자문 위원 문제
3. 옹호론
3.1. 시류와 방향성3.2. 적은 제작비에 따른 전투 장면3.3. 지상전을 중심으로 한 전개3.4. 서인 프리메이슨 구도 탈피
4. 결론

1. 개요

2015년의 KBS 대하드라마 《 징비록》의 평가를 다룬 문서.

2. 비평론

2.1. 비교

2.1.1. 조선 조정 무능론 타파의 개연성

징비록이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드라마는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역사의 과오를 꾸짖고(懲) 미래의 위기에 대비(毖)하는 지혜와 통찰을 구하는 것"[1]을 근본적인 기획의도로 삼고 있다. 따라서 스토리라인을 통해 왜 조선이 임진왜란에 대한 대응에 실패하였고, 왜 조선군이 개전 초기에 일방적으로 패하였으며, 왜 전국이 불바다가 되기에 이르렀는지에 대해 나름대로의 해석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역사로부터 실패의 이유를 돌아보고 그 책임을 따져보는 것 자체는 사극으로서 의미 있는 주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2015년 당시에는 2014년 세월호 사건의 사회적 여파가 쭉 이어졌던 시기이기도 했고.

종전의 임진왜란 관련 드라마에서는 조선조정의 무능이 전란을 못 막고 확전시켰다고 묘사했다. 예를 들자면 국방력이 해이했다, 당쟁으로 일본 돌아가는 사정에 무지했다, 당파싸움만 하고 대비는 하였지만, 당쟁의 이해 때문에 통신사간의 보고가 엇갈렸다 등 모두 조선의 책임으로 전적으로 돌렸었다. 그러한 자의적인 해석이 역사적 사실의 영역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드라마에서는 임진왜란에 대응하지 못한 책임을 조선 내부에서 고정시키지 않는 진보됨을 보인다. 즉 1회 ~ 13회까지를 보면 이유가 타당성 있게 상세히 묘사되고 있다. 왜 통신사의 의견이 엇갈렸는가? 왜 전란에 대해 전폭적으로 축성과 군비증강, 명과의 공조가 이루어 지지 못했는가를 세밀히 설명한다. 김성일이 당파이해의 잇속으로 허위보고를 한 것이 아닌 점, 축성과 관련민생에서의 붕당의 대응방식차이 등 종전의 사극에서는 간과한 차이를 놓치지 않고 짚어간다. 논쟁의 차이중에 조선의 사회상에 관해 보자면 전작 정도전(드라마)에서 조선을 민본의 이상이 담긴 나라로, 사대부를 재능만 있다면 누구든지 오를 수 있는 신분으로 묘사[2]하여 긍정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전작 징비록(드라마)의 조선 시대는 조선 초기와 조선 중기라는 200년간의 차이가 있다. 조선 전기는 양천제를 기본으로 역동적인 사회였다. 하지만 중기로 가면서 양천제 대신 4신분제로 기득권과 신분제가 공고해진 면에서 사회상이 큰 차이가 있으니 드라마에서 사회상을 왜곡한 것이 결코 아니다. 조선중기 사회상을 서술한 사서와 연구성과에 반영되어 있는 사실이지 조선 사회상을 왜곡해 그린 것이 아니다. 그래서 드라마에서 임진왜란 전후기에 국가와 조정이 백성을 착취한 것이 아니라 붕당을 초월해 방식의 차이가 있었음을 보여 주었다. 드라마의 기획의도대로 극 중에서 임진왜란 발발전후 류성룡이 적극적으로 나서 누란의 시기이니 개혁이 절실함을 조정에 자세히 인지시킨다. 실제로도 임진왜란 중 류성룡을 중심으로 갖가지 개혁이 나왔고 추진했으니, 극의 기획의도대로 극 중에서 충실히 그려낸 것이다. 각 에피소드마다 면천법, 작미법, 훈련도감설치, 속오군제등 류성룡이 주축이 되 한 개혁을 상세히 풀어 전개했다.
또한 그간 진행된 임진왜란기 연구성과를 드라마에 반영하려는 노력도 많이 보였다. 초반부에 조선 조정이 일본 사정을 파악하려 시도하거나 붕당간 당파의 이해에 얽매이지 않고 전쟁에 대비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며 진보했다. 대표적으로 축성, 군비증강, 군역강화를 진행할 때다. 하지만 제작비 대폭 삭감문제로 전쟁 진행과정은 생략이 잦다. 올바른 정책은 협치보다, 반대를 무릅쓰고 충돌 끝에 류성룡에 1인이 힘들게 수행한 것으로 나온면은 아쉽다. 관련 연구결과가 에피소드마다 전투와 정책이 연결지어 나왔으면 정도전 만큼 큰 호평으로 이어질 수 있었을 텐테 제작여건상 아쉬운 점이다. 그 외에 스토리라인에서 전쟁경과의 생략이 많아 이 드라마는 그 플롯을 통해 많은 난관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로써 주제의식은 나타냈지만 그것을 나타내는 캐릭터성은 작가의 교체와 열악한 실시간 제작촬영 때문에 말미암아 표류하기 시작하였고, 이후로도 극 연출에 있어 난관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전 드라마와 달리 지휘관들의 인간적인 면과 재평가도 여럿 보인다. 병사들과 훈련을 하며 다독이는 부산진첨사 정발, 이순신이 병사가 군량미를 훔치자 군율에 따라 처형했지만 뒤로는 그 병사의 가족에게는 전사했다 하고 군량미를 주라고 한 점, 정운이 전사하자 병사들에게 엄격히 대하지만 혼자 있을때 정운의 갑옷에 술을 따르며 슬퍼하는 이순신, 행주산성 전투에서 병사들과 백성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도원수 권율, 그리고 진주성 전투중 한 병사가 자신을 대신해 총에 맞아 전사하자 분노하는 진주목사 김시민 등 인간적인 면을 극 중에서 나타냈다. 그동안 잘 다루지 않았던 사야가의 귀화과정이나, 도원수 김명원이 비록 신각을 처형한 가해자이나, 임진강 전투의 허점을 분석하거나 명군의 비위를 맞추고 장수들을 통솔하며 평안도에서 2만의 군사를 양성하는 뛰어난 군사행정가로서의 모습도 다루었다.
자세한 고증 관계는 징비록(드라마)/고증 문서 참조.

2.1.2. 임진왜란의 초기 전황

이 드라마가 정말로 상술한 바와 같은 기획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왜 임진왜란의 초기 전황에서 조선군이 무너지고 말았는지를 세밀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건만, 정작 이 드라마는 제작비 문제로 가장 중심적으로 다루었어야 할 임진왜란의 초기 전황과 조선의 초기 대응 상황을 불충분한 전황묘사로 이해를 충분히 시키지 못했다. 오죽하면 탄금대 전투가 묘사된 15회부터 5회 연속으로 비판 평가가 내려질까. 물론 21회 이후부터는 조정과 붕당, 광해군과 선조에 관한 묘사에서 정치적인 재미가 극적으로 부활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로 선회해 다행이지만 말이다. 아니 애당초 징비록이라는 드라마가 임진왜란 개전부터 파천까지 고작 4회밖에 안 걸린 것도 무리다. 전황이 상세하지 못해 시청자가 이해를 못하는 경우도 있다. 개전 초기 조선군의 초동대응이 늦어지게 된 원인은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정보전달 속도의 한계와 홍여순으로 대표되는 관료제의 문제점이었다. 이런점이 두각되지 않고 늦어진 것으로만 상황이 묘사된다, 당시 군사체계였던던 제승방략에 대한 연출은 8회와 마찬가지로 2회에 걸쳐 언급되었다. 이때 앞선 회처럼 제승방략을 진관체제와 한 번 더 비교해 주었더라면 더 이해가 빨랐을 수는 있겠다는 아쉬움이 든다.[3] 당시 실제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전략을 수립하고 지휘했던 류성룡이 선조 앞에서 '이건 전쟁이다'라고 한것은 단순 왜변이 아니라 국가간 전쟁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인지시키기 위한 행동이었다. 게다가 유생의 유건에 칼질을 한 것도 조정과 마찬가지로 특권만 누리려 하고, 국가의 위기를 외면하며 병역의 의무는 이행치 않고 자기보신만 하는 유생들에 대한 준엄한 가르침이니 개연성 있는 설정이다.
정작 류성룡을 정당하게 띄워줄 수 있는 일화들은 모두 생략된 점이 안타깝다 . 류성룡이 체찰사가 되어 직접 모병에 나서자 순식간에 8천 명의 장사가 모집되었던 일이나, 이들을 신립에게 양도해 주었던 일, 중장갑옷을 만들자는 주장에 너무 무거워서 쓰지 못한다며 류성룡 홀로 반대했던 일 따위는 생략되었다. 또한 극중의 류성룡은 조선군의 한심한 군사동원 능력을 한탄하는데, 앞선 내용이 이러한 에피소드에 추가되었으면 훨씬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1592년 4월 28일, 삼도순변사 신립이 탄금대 전투에서 패배했다. 신립은 기마군을 이용해 4차례에 걸쳐 왜군을 격퇴했지만, 결국 강변에 습지대가 기마병의 발목을 잡으며 전세가 역전되고 말았다. 신립 김여물 충주목사 이종장 등이 마지막까지 용전분투하고 최후를 맞았지만, 왜군 또한 절반에 가까운 병력을 잃었고 이는 소서행장이 북쪽으로 몽진한 선조를 곧바로 추격하지 못하고 잠시 한양에 머물게 되는 계기가 된다.
- <징비록> 15회, 나레이션
이같은 구도의 절정은 탄금대 전투 묘사로, 기병들이 도 아니고 그렇다고 도 아닌 칼을 들고 적진으로 반자이 돌격을 하는데다가 일본군의 피해가 8천에 달했다고 나오는데 탄금대 전투에서의 왜군 피해 많이 잡아봐야 수백이다. 현대전이든 고대전이든, 실제 사람이 진행하는 전투는 컴퓨터 게임처럼 유닛이 반만 남아도 끝까지 싸우다 다 죽어나가지 않는다. 대부분 20-30퍼센트의 사상자만 발생해도 그 부대는 전투를 수행할수 없을정도로 만신창이가 된다.[4]

여기에 비밀리에 파천을 준비하다가 기습적으로 터뜨려서 의사를 관철시킨 선조는 조정과 흥정을 하고, 실제 역사에서 류성룡은 선조가 은밀히 피난을 준비하는 것을 알면서도 묵인했고 간접적으로 지지하기까지 했는데 정작 극중에서는 '왕은 백성의 어버이이니 도망칠 바에 싸우다 죽어라'라는 논란이 되는 말을 하기도 한다..

자세한 고증 관계는 징비록(드라마)/역사적 사실과의 비교 문서 참조.

2.2. 구성

2.2.1. 캐릭터 묘사 충족성 문제

정도전의 성공요인 중 하나는 주인공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들을 마냥 찌질한 악역으로 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몽주는 정도전과 다른 또 다른 정의였고 간신 이인임도 정도전을 몇번이나 좌절시킨 막강한 정치적 역량에 나름의 관용과 품위를 갖춘 악역이었다. 그러나 징비록은 류성룡과 그에 동조하는 아군을 제외하면 캐릭터 묘사가 부족하다. 특히 일본과 명에 대한 묘사는 류성룡의 활약에 집중되다보니 상세성이 많이 줄었다. 처음에는 나름대로 입체적으로 그리나 싶던 일본진영은 제작비용 여건상 분량한정으로 소수중심이 되어 에피소드가 많지 않다. 그런 이유로 일본장수들은 비정상적인 면에 집중되었다. 명군에 대한 묘사도 강화에 많이 치우쳐 있다. 명 자체에 대한 부정적 반응은 아닌 송응창 개인의 안하무인과 비열함에 많이 집중된다.[5] 직산 전투나 울산성 전투같이 명군이 분전한 전투는 상세함이 부족하고[6] 2차 평양성 전투나 벽제관 전투같은 명군이 패한 전투도 많이 나온다. 그렇긴 하나 사실 임진왜란기에 4차 평양성 전투의 전공을 빼놓고는 나머지 전투에서는 명은 미온적이었다. 그러한 점은 정유재란기에 예교성 전투, 사천성 전투가 조선과 명의 합동작전에서도 그다지 명군이 큰 전적을 거두지 못한 것으로도 이어진다. 정유재란기는 이순신 장군과 조선군의 주도하에 각고의 노력으로 수습된 전쟁이다. 사실 명군의 난행과 횡포는 당대에 사료인 실록과 쇄미록, 징비록에도 기록된 사실이다. 중요한 점은 당대에 사람들도 명군의 부정적인 점은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명군에 대해 긍정적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 모두 고증을 반영해서 적절히 다뤄 한쪽에 치우치 않도록 표현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 측의 캐릭터성이 부족한 것은 아쉽다.
그렇다고 해도 조선쪽 묘사가 아주 충분하지는 않다. 선조의 말이 고려할만 해도 이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기도 하며 긍정적 관점으로만 보지 않았다. 특히 강화반대 같은 조치들은 숙고할 만한데도 드라마는 선조를 비난하고 광해군의 입장을 반영했다. 또 KBS는 방송사 차원에서 의병의 관군편입 및 의병홀대에서 극중 백성과 광해군의 관점을 중심으로 연구한 학설을 채택한 모습이 보인다. 역사저널 그날 6월 7일 방영분에선 의병을 다뤘는데 선조가 의심병에 걸려 의병장들을 숙청해서 의병이 위축되고 병자호란때는 의병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이론을 수용했다.[7][8][9]

2.2.2. 느린 이야기 전개

가장 심각하고 큰 문제점. 방영초기 60부작 정도로 예상되다 제작진이 협의로 중반쯤 50화 완결로 결정된 정도전과 달리 이쪽은 제작 단계부터 50화로 못을 박았다. 헌데 스토리 전개가 너무 느렸다. 1화가 1589년이었는데 12화까지 1591년이라는 지독하게 느린 진행을 보여줬다. 임진왜란 이후에도 전혀 개선되지 않아[10] 완결을 단 한주 남긴 48화 시점에서 노량해전은 고사하고 명량해전조차 시작되지 않았다. 특히 송응창의 갑질 파트로 10여회를 잡아먹는 등, 이야기 전개는 거의 하지 않아 정유년 여름부터 무술년, 류성룡 탄핵 이후의 행적까지 달랑 2화에 다 담아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완결을 위해 내달렸고, 자연히 스토리 전개가 매끄럽지 못해졌다.

47화 말미에 화의결렬, 48화에서 칠천량 해전, 49화에서 직산 전투매우 짧게 묘사되었으며, 바로 뒤인 50화에 노량해전이 나왔다. 정유재란을 약 3회분이란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볶아 먹는 듯한 속도로 진행시켰다[11]. 수작이란 평가를 들은 전작 정도전도 조선건국~무인정사를 단 10화로 마무리짓는 바람에 지나친 급전개라는 비판을 받고 평가가 깎였는데 징비록은 그보다 심각했다. 드라마의 원작격인 징비록에서는 정유재란의 분량이 매우 적어서 원작 재현을 위해 그리되었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 목표는 징비록을 베이스로 임진왜란기 조선조정을 그리는 것이었지, 징비록을 영상화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2.3. 인물

2.3.1. 정체된 주인공

중반 이후 류성룡이 조정문제와 전란극복수행에서 어려움을 주도적으로 해결하고[12] 작중에 벌어지는 거의 모든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면서 이로인한 편중도가 커졌다

극의 중심이 되어야 할 류성룡이 중점이 못 되기도 한다. 역사 속 류성룡은 인간관계 무난하고, 할말 하고 사는 소신 있는 정치인이나, 그렇다고 당파간 이해관계에서 초탈한 인물은 결코 아니었고, 공이 크지만 임진왜란 발발의 책임도 과오도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제작진은 류성룡을 당파간 이해관계에서 초탈한 이상주의자 캐릭터[13]로 묘사하여 캐릭터 자체의 입체성을 떨어졌다. 그래도 40회이후로 윤두수와 이항복을 무군사로 좌천시키며 강하고 독단적인 입체적인 모습도 조명되기도 한다. 허나 작품의 입체감에서 정도전과 비교된다는 말도 나오지만, 정도전과 류성룡이 성격이 달랐던 만큼 감안해야 한다. 이 드라마는 정도전처럼 생애전체에 중심을 둔 것도 아니다. 류성룡일대기도 아니고 시점이 종계변무로 시작하니까 류성룡 성격형성과 변화에 집중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성공한 사극들의 경우 주인공의 어린시절이든 사회초년병이든 그 캐릭터가 이러한 성격을 가지게 된 배경을 짧든 길든 다뤄서 시청자를 납득시킨다. 하지만 시청자의 집중도를 높이고 임진왜란에 배경과 발발,전개에 집중조명하다 보니 류성룡 인물됨 형성에 대한 묘사는 길게 할 수 없었다. 이는 역사에서 류성룡자체의 선한 면모가 대부분인 성격에서도 기인하는 점도 크다. 이런 면에서 정도전과는 입체적인 면 조명에서 차이를 지닐 수 밖에 없다. 전작이자 역시 정치권이 주무대였던 정도전이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도 없다는 기치 아래, 악역 캐릭터들의 긍정적인 모습과 주인공 캐릭터들의 부정적인 모습들을 가감없이 드러내며 입체적으로 묘사하려 노력했던 것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임진왜란 도입부에서는 일본군과 대응 때 선조와 갈등하며 애를 먹는다. 예를 들어 15화에서 대신들이 파천을 논의할때 류성룡은 자신도 정말로 한양 사수를 고집하려는게 아니라 선조가 한양을 사수하려는 의지를 보이는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은 지키고 싶은데 선조가 영 지킬 생각이 없어보이니까 백성들의 사수결집의지를 위해서 그렇다며 이를 강하게 밀어 붙인다. 다음씬에서 진지하게 병력 4천 5백으로 3만은 되어야 지킬 수 있는 성을 사수하려 들더니 16화에선 현실적으로 소수로 대군인 일본을 맞설 수 없는데 왕에게 한양을 버리고 어디로 가냐고 울부짖는다. 17화에선 한양 함락 소식에 한양과 가까운 개성을 떠나 평양으로 가려는 선조를 제지하며 전라감사 이광과 임진강 유역의 북병을 합치면 왜적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근데 18화에서는 반드시 평양을 지키겠다며 백성들을 위무하는 선조에게 다가가 임진강 방어선 무너지면 어쩔거냐며 헛된 희망을 주지말라 일침을 놓는다.[14] 선조가 평양사수를 자신한 이유는 전라도군 5만과 북병, 김명원 휘하의 군사를 합쳐 7만에 달하고 군량도 충분해 임진강에서 적을 막을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으로 이는 바로 전화에서 류성룡이 주장한 내용이다. 이 와중에 류성룡이 해야할 역할[15]은 윤두수가 하고 있다.
또한 조정 대신들이 뭔가 논의를 하고 있을때 훈계를 하며 정적이 감돌게 하는 전개가 많이 나온다. 조정대신들이 사안을 잘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일 때 중심을 잡아 준 것이다. [16] 쟁쟁한 조정 대신들을 다 침묵하게 한 것은 류성룡이 사안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있고 행동으로 과감히 옮기며 정국을 중심인물로 끌고나간다는 의도도 있다. 그래도 작중 류성룡이 보여주는 논리나 수준에서 더 설득력있게 에피소드와 논거를 제시했으면 금상첨화 일 것이었을 것이다.

드라마는 21 ~ 22화를 기점으로 드라마에서 정치적인 중심과 재미를 회복했다. 그런데 그 주역은 류성룡 보다도 선조와 광해군과 조정대신들이다. 류성룡 캐릭터가 이들과 갈등하고 어울리는 에피소드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았을 듯 하다
극이 진행되면서 류성룡의 캐릭터는 국난극복에 앞장서고 큰 도움이 되는 데도, 내용이 생략된 것도 있어서 그런 지 몰입에서 이해 못하는 시청층도 있다. 역사에서의 명은 싸울 의욕은 있지만 보급이 안 돼서 행패를 부린 것도 있고, 정유재란에서는 지휘권 문제도 중요한 문제로 부각 되었다. 명과 조선의 관계를 긴밀하게 협조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할 류성룡이 보기에 따라서는 오히려 명과 조선의 갈등을 일으키는 데 원인도 되어가고 있다. 내놓은 계책들도 명의 횡포를 조목조목 지적하다 보니 협력보다 명의 불만을 사는 일들이었다. 실제 역사적인 사실이지만 배경을 모르면 이해에 힘이든다.

류성룡이 실제 역사와 달리 파천을 강경하게 반대하는 장면이나 당파에 전혀 연연하지 않는 이상주의자 모습과 마치 삼국지 제갈량처럼 모든것을 예측하고 지시하는 각색 등 긍정적으로만 그리려고 하는 모습 때문에 안동시와 풍산그룹의 지원으로 제작되는 것을 두고 류성룡을 우상화와 미화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것 까지는 아니고 다만 무인시대와 정도전 정도만 제외하고, 모든 KBS 대하사극이 주인공을 부정적 면이 없는 초인적 영웅으로만 그리려고 하는점에서 기인한 행태라 볼 수 있다. 류성룡은 실제 역사 그대로 나와도 이순신과 함께 임진왜란을 극복하는데 가장 크게 공헌한 인물로 평가될 수 있는데도 평면적인 모습만 그린것은 대하사극의 고질적 행태가 아쉽다고 평가할 수 있다.

추가로 드라마에 나오진 않았지만 밑에서 언급할 백작가의 '초기 각본'에서는 류성룡이 명에 구원병을 요청하는 것을 반대하는 부분도 있었다(...)[17]

2.3.2. 인물묘사 다양성 문제

징비록은 이순신 등장 이후로 스토리의 중심을 주인공인 류성룡의 행보가 아닌 선조를 비롯한 인물들이 그려내는 조정 내의 정치적 갈등에 맞추고 있다는 점이 호평을 받았다. 조정의 사건이 선조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진행되는데다가 김태우가 선조라는 캐릭터가 지닌 내적 고뇌를 매우 입체적으로 표현해낸지라 시너지가 폭발해 제목을 징비록이 아닌 선조실록으로 하는게 낫겠다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다.

선조 이외에도 광해군이나 류성룡의 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윤두수나 정철도 심도 있는 내적 고뇌를 겪는 입체적인 캐릭터로 묘사되는데 이 모든 고뇌에는 그들의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부여된다.

하지만 정작 류성룡은 극을 이끌어가야하는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인물묘사에 있어 입체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분명 류성룡은 7년여의 전란 속에서 나라를 구한 명재상이나 당쟁에도 적극적이고 치열하게 임했으며, 실록에 남아있는 기록에 의하면 시류에 편승하기만 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고,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고 필요에 따라 물러설 줄도 아는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정치가였다. 이에 따라 인물을 입체적으로 묘사하는 대목이 39회~41회에 걸쳐 상세히 보강되었다. 즉 윤두수와 이항복은 강화를 파기하고 조선군 단독으로 작전을 수행해 종전을 이루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류성룡은 이에 대해 조선군의 전력과 보급문제가 충분히 상쇄되지 않았다고 반대한다. 이에 대해 반대파나 정적과 노선에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가차없이 이들을 무군사로 좌천시키는 비정한 모습을 보인다. 여기서 제작진이 류성룡을 절대선으로 보지 않고 양면성을 잘 그려냈다는 많은 호평을 이끌어 냈다.

오히려 비중 크지 않다던 이순신은 초기엔 우리가 잘 아는 성웅의 모습을, 때로는 군율에 철저한 이순신의 모습을, 때로는 병사들과 백성들의 삶에 신경쓰는 목민관의 모습[18]을, 때로는 부하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벌이고 아끼는 부하의 죽음에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다양하게 묘사되고 있는 상황. 이 드라마는 불멸의 이순신 시즌 2가 아닙니다. 물론 다 사서에 있는 내용이라 왜곡은 아니고, 이 정도 묘사가 이뤄지는게 정상이긴 하지만 이건 난중일기가 아니다! 극의 초점이 주인공 이외에도 다양하게 전개됐으면 더 바람직했을 것이다.

일본측도 논란은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 개전 후 매번 이순신 타령만 하는 종래의 잔혹한 캐릭터로 고정[19]되었고 가토 기요마사는 임진록에서부터 전해오는 돌격대장 캐릭터를 그대로 답습했다. 그나마 입체적인게 고니시 유키나가와 소 요시토시 정도인데 비중이 크지 않을 뿐더러 고니시는 평양성 전투 이후론 종래의 성격으로 돌아갔고 요시토시는 공기 수준. 어떻게 된게 1985년 작품인 조선왕조 500년 임진왜란 편의 일본 캐릭터들이 에피소드들이 많이 전개되는 통에 훨씬 입체적이었다.

백성의 묘사도 조선시대에 나오기 어려운 소리를 백성들이 한다는 논박이 있다. 중세 전제왕조국가의 백성이 더군더나 양반 앞에서 백성도 왕을 버릴 수 있다 운운한다. 조선의 민중이 왕이 임명한 수령을 탐학하니 죽이겠다고 나선건 19세기 말 고부민란 때였고, 그때조차 외세와 지배층이 표적이었지 왕은 예외였다. 그 이전 최대의 민란이었던 임술민란때까지만 해도 수령이 워낙 탐욕스러워서 내버려둘 순 없지만 나라님이 내려보낸 사람을 죽일 수도 없다며 고을 밖으로 쫓아낸게 조선민중의 의식구조였다. 류성룡이 이들을 대하는 태도도 조선시대엔 나오기 힘든 행동이다. 하지만 사화동에 관해서는 모호한 태도라 보기 어렵다. 사화동의 매국에 국가와 지배층이 사화동을 매국으로 몬 것을 동정하고 이해하면서도, 옥사에 만나러 가서는 꾸짖는다. 어디서 흥정을 하려드냐면서 매국을 했으니 일본에 이용당하다가 버려질 수도 있다고 각인시킨다. 그래도 전작 정도전에서 시대적 배경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을 보여준 것에 비하면,[20] 징비록도 에피소드가 더 많았으면 상세히 이해키고 공감하기 좋았을 것이다.

또한 전쟁이 진행될수록 광해군과 류성룡이 의도적으로 의사결정 과정에서 노선을 두고 계속 선조와 충돌이 이어지고, 선조가 이에 대해 진노하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데 이 또한 문제이다. 현대 국가에서도 전시에 명령계통을 무시하는 것은 범죄에 해당한다. 하물며 그런 행위를 옹호한다는 것은 바로 대역죄에 해당할 수 있는 것이다. 서로가 합리성에서 큰 이견차를 보여서 그렇긴 해도 그렇다. 의병의 관병편입과 사병화 문제 역시 선조의 우려도 이유가 있다. 하지만 류성룡뿐 아닌 때론 서인들과도 충돌한다. 이 모든 것들은 아마도 선조를 비판하기 위한 묘사로 보이나 실상 이러한 묘사는 선조 특유의 왕권강화 및 왕조시대 정당화하는 점도 있다. 물론 전란 중에 왕의 권한이 평시처럼 온전할 수는 없겠다. 그 예로 어전에서 필부라느니 한심하게 생각하는 묘사는 실록에 기술된 사실이지만 전개를 더 상세히 해 주었어야 한다.

인물묘사에 대한 단적인 예로, 주요 캐릭터 몇 몇을 제외하면 인물들이 맡고있는 역할이나 대사는 차이가 많다. 윤두수나 정철의 대화나 행동을 바꿔도 이항복, 이원익, 이덕형등의 대화나 행동을 서로 바꿔도 별로 문제될게 없을 정도로 대신들간에 차별화된 캐릭터가 없다! 어떤 대신은 왕에게 필부 운운할 정도로 강경한 면이 있었고[21] 정철은 전란 중에도 술 취해 회의에 빠질만큼 소위 무개념이 있었다. 그래도 정철에 대해서는 극 중에서 모습을 그대로 나온 것이다. 이항복은 전란 중에도 농담을 던질 정도로 베짱이 대단했으며, 이덕형은 능력은 나무랄데가 없었지만 사려깊은 성격에 이항복만큼 능글맞지 못해 곤란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극중에선 이런 인물들의 개성이 발휘되지 못한다. 선조가 말하면 사안이 심각해 한숨이나 쉬고 류성룡이 말하면 감복이나 하는 모습이 이어지고 있다. 오히려 홍여순이 그나마 개그캐릭터로써 확실한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을 뿐.

그리고 초반에 비중있게 나오던 김성일, 조헌 등의 캐릭터는 전쟁 발발 후 나오지 않는다. 처음부터 비중이 없었다면 몰라도 김성일은 대중이 가진 당파씨움에 눈이 멀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 비겁한 정치인이란 이미지가 아닌 강직한 선비의 이미지를 보여 처음으로 그의 임진왜란 중 행적을 제대로 다루는 사극이 될 거란 기대가 있었고, 조헌도 도끼를 들고 상소를 올리는 강경한 이미지를 보여 의병장 활동도 잘 그릴 것으로 기대됐지만, 별다른 설명없이 이들의 활약을 생략하며 분량이 한정되어 있어 평가가 좋을 수 있었을 부분을 넘어갔다. 전작인 정도전의 경우 여기서 별 언급없이 안 나온 인물은 이첨처럼 드라마 종료 시점에 유배나 파직으로 중앙 정계에 없었지만 아직 죽지 않은 인물이었고, 대부분은 넘어간 세월 사이에 죽은 사람이 아닌 한 주요인물의 퇴장은 착실히 묘사했고, 최무선의 예처럼 주요 행적을 다루지 않을 거라면 그냥 대사로만 처리하고 등장시키지 않았다.

선조가 직접 싸우는 장졸들보다 호종공신들이나 명나라를 더 우대하는 등 백 번 비난 받아도 할 말이 없는 부분들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특히 왕 앞에서 직접 실랄하게 하는 반박은 당연히 당시 사회상에서 논란이 일 수 있는 행위이다. 선조가 이에 대해 우려를 제기했을 때 중신들이 왕 앞에서 거침없이 반박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위의 민중의식 묘사와 더불어 정도전 제작진이 전쟁과 권력, 전근대사회에 대하여 비록 세세한 고증까지 완벽하게 지킨 것은 아니지만 합리적인 권력관계 및 인물 묘사로 호평을 받았던 전작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2.4. 제작진

2.4.1. 작가 교체

방영 전 처음에는 백운철 작가[22]가 집필하기로 했으나 다모- 주몽(드라마), 계백(드라마) 정형수 작가, 정도전(드라마)의 정지연 작가로 교체되었다(2014년 12월 15일 기사). 그런데 백운철 작가가 각본가에서 교체되기 전에 집필한 대본 내용들이 역사 왜곡인데다가 여러모로 충격과 공포로 다음 징비록 카페에 있는 백운철 작가의 대본들을 누군가가 징비록 갤러리에 올려놓았다.[23] 정도전은 고사하고 기황후 따라갈 뻔했다 결정적으로 작가가 교체된 이유는 역사 왜곡 투성이로 되어있는 대본 때문인 듯 보이며 전작과 같이 역사적 고증에 충실하게 위해 교체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덧붙여서 백작가의 대본은 정통 사극의 불씨를 꺼뜨리는 행위이자 정통 사극의 명성을 포기한 행위이다. 백운철이 제작진에게 빅엿을 주고 갔다.

그러나 이 작가 교체는 여러가지로 안 좋은 점을 낳았는데, 일단 방영 직전에 작가가 교체된지라 쪽대본이 나올 수 밖에 없었고 그 결과가 15 ~ 20화까지의 소위 말하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물론 21회 이후로 극적으로 정치드라마의 묘미를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아 다행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대본 수정 과정에서 제작진의 실수도 있었다. 백작가가 만든 가상 캐릭터들은 캐릭터성이나 분량상 삭제돼도 아무런 지장이 없는데 설정 바꿔 그냥 남겨놔서 시청자의 몰입만 방해하였다. 극이 진행됨에 따라 이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게다가 시간에 쫒겨가며 대본을 쓰다보니, 역사에 대한 모든 관련사건을 조명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여유로운 시간이 있어야 고퀄리티의 대본이 나오는데, 당장 다음회 방영분 대본부터 확보하기 위해 급하게 집필하다 보니 스토리에서 회마다 시간에 압사했다.

29회부터 쪽대본의 영향인지 인물들 대사가 약간씩 어색하게 들릴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명나라군이 평양성을 수복하는 장면에서 열심히 일본군을 베고 난 뒤 부장이 이여송에게 "장군 수고 많았습니다"라고 하는데, 수고 많았다는 대사는 적어도 동급의 장군들끼리 할 수있는 대사지, 일개 부장이 하는건 어색하다. 애초에 "수고했다"라는 표현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거나 동급의 친구간, 동료간에나 쓰는 말이지 상급자에게는 써서는 안되는 말이다. 물론 최근 들어서는 "수고하셨습니다"나 "수고하십시오"가 흔히 인삿말로도 쓰이긴 하지만 연장자나 상급자에게는 실례되는 말이다. 그 뒤 내 오늘 널 뜨끈한 술로 목욕시켜주마란 대사도 배우 음성 때문인지 몰라도 어색하게 들리기도 한다.[24]

2.4.2. 자문 위원 문제

제작진이 출간한 '징비록, 못 다한 이야기'를 보면 본작에 참연한 자문진은 최희수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25]와 조경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연구원, 김재욱 고전철학연구원이었다. 그런데 현재 사학계에 전쟁사를 전문으로 하는 연구자는 많지 않지만 임진왜란 동안 벌어졌던 개별적인 전투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으며 정치사 연구자는 말 그대로 넘쳐나는 상황인데, 굳이 고구려사 전공자, 세종대왕 연구원, 철학 연구원을 불러온 이유를 알기 어렵다. 물론 연구원 직함을 달 정도라면 전문적인 학자일 테지만 자신이 전공하지 않은 분야까지 깊이 알고 있으리라는 것은 오산이다.[26]

3. 옹호론

3.1. 시류와 방향성

하나의 '기업'인 방송사는 무엇보다 이윤(시청률)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그 다음에 고증을 하고 스토리를 짜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자면 사극이 순수문학이 아닌 이상에야 어떤 극을 만들어야 이윤이 창출될 수 있는지, 드라마가 방영되는 사회의 분위기를 고려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작금의 한국 사회는 오랜 취업난과 이념 갈등을 주 요소로 보조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회적 신뢰가 붕괴된 데다 극단적인 자기 연민 상태에 빠진 상황으로 심지어 헬조선 담론 및 사회의 전면적인 붕괴와 재구성을 요구하는 주장이 서민, 특히 20대 청년층 사이에서 받아들여지기까지 하고 있는데[27]이런 상황에서 시청자들이 원하는 주인공은 악과 맞서는 선의 영웅이라는 판단이 내려진 것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류성룡 본인이 이순신 등과 더불어 한국사에서도 손꼽힐 만큼 오점이 적은 인물인 것도 사실이니 만큼, 방송사나 제작진 입장에서는 기왕 제작할 바에야 선한 면모가 주된 류성룡을 주인공으로 만들자는 생각을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리고 선한면모의 류성룡을 주인공으로 만들기로 했다면, 그와 갈등할 선조와 조정 관료들은 진짜 선량하다는 게 증명된 극소수를 빼고는 대립각을 세우게 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대표되는 적대관계인 일본은 거의 모두를 절대악으로 만들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도 전쟁을 발발하게 한 일본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역사에 과오를 저지른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들에 맞서는 '백성의 편'이자 '민중의 지팡이'인 류성룡을 등장시키면 시청자의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28]

3.2. 적은 제작비에 따른 전투 장면

아무리 조정이 중심이라도 임진왜란이 배경인 이상 황산대첩과 개경 시가전 정도만 다루면 되었던 정도전보다는 많은 전투씬이 필요한데도 제작비는 비슷한 수준이라는 점, 작가 교체로 여유있게 준비를 할 수 없다는 점 등 시간과 예산이 부족하다는 점은 이해해야 한다. 110억원의 제작비로 전작 보다 훨씬 많은 전투를 찍어낸 제작진의 역량도 크게 인정해줘야 할 것이다. 몇몇 전투신을 제외하면 죄다 내레이션 처리되어 넘어가거나 특히나 해전 같은 경우는 불멸의 이순신에서 사용한 장면을 조금의 편집을 거쳐 내보냈다. 전투씬 연출에서 잦은 슬로우 모션 사용과 2% 부족한 CG사용은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이다. 정도전도 그대로 답습했던 전투시 대오에서 이탈한 전투신 연출은 아쉽다.[29]

다만 제작비 관련해서 잘못된 얘기가 돌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불멸의 이순신과 비교하며 징비록이 불멸의 1/3도 안 되는 비용으로 만들어져서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글들이 인터넷 상에 많이 퍼져 있다. 하지만 이건 총제작비만 봐서 나오는 함정으로 불멸은 1부 당 방영시간 1시간, 총 104부작인 데 비해 징비록은 1부 당 방영시간 50분, 총 50부작으로 불멸의 절반 이하의 분량이다. 실제 KBS 사업부에서 밝힌 편당 제작비로 평가하면 불멸은 편당 제작비가 2억 7천만, 징비록은 2억 2천만이다. 다만, 거의 3배 가까이 상승한 인건비와 1.5배 이상 상승한 물가를 고려한다면 확실히 불멸보다 압도적으로 열악한 여건에서 제작된 것은 틀리지 않다.

3.3. 지상전을 중심으로 한 전개

10년전 불멸의 이순신은 주인공이 주인공이다 보니 수전에 포커스가 맞춰질 수 밖에 없었기에 지상전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다.[30] 징비록에서는 불멸의 이순신에 비해 지상전을 집중적으로 다루었으며, 특히 행주 대첩은 변이중화차와 비격진천뢰 등 임진왜란기에 등장한 신무기를 재현하며 조선왕조 500년 이후 30년만에 다뤄졌다. 박진감 넘치는 전투를 재현해냈다. 지상전을 중심으로 보여주겠다는 기획의도[31]를 어느정도는 실현한 것이다. 또한 임진왜란 관련 사극 중에서 최초로 경주성 전투를 다루었으며, 비격진천뢰에 대해서도 제작 원리는 무엇이며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상세하게 보여준 최초의 사극이다. 주요 대첩을 비롯해 종전 사극들에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경주 전투, 평양성 전투, 행주대첩 등을 전략적으로 다루고 전투 장면을 구현한 점은 높이 평가받을 만 하다.

조선과 일본의 전투로만 본 것이 아니라 명과의 합동작전으로 수행하게 된 것으로 그려낸 것도 많은 의미가 있으며, 강화과정도 세세히 다루어 3국 국제관계로 확대해 조명했다.

3.4. 서인 프리메이슨 구도 탈피

이덕일의 영향을 받은 사극에서는 서인들이 만악의 근원, 수구꼴통, 악의 축 등으로 묘사된다. 반면 본작에서는 동이 화정처럼 주인공의 편이 아님에도 악의 축으로 나오지 않았으며, 윤두수 정철같은 서인 측의 영수들도 자신들 나름대로 나라를 걱정하며 유교적 이상정치를 이루어 내고 싶어하는 자들로 나온다. 실제로 작중에서도 자신들 동인들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이산해에게 류성룡이 왜 우리들만이 옳다고 생각하는냐 저들에게도 율곡같은 선비가 있었다고 평가하는 모습이 있다. 또한 서인 의병장이었던 고경명이 아들까지 참전시켜서 싸우다 전사하자 높게 평가하기까지 하였다.

4. 결론

열악한 제작 환경, 작가 교체, 촉박한 시간, 제작비 대폭 삭감에도 불구하고 정통사극으로서의 면모는 충실히 갖춘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불멸의 이순신 고증과 비교해 볼 때도 많이 발전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가령 임진왜란을 다룬 종전의 한국 사극들은 조정과 붕당과 관련된 묘사를 할 때 선과 악을 가르는 이분법적인 묘사를 한 반면 이 작품은 이분법이나 역사 왜곡에서 벗어났다. 이런 부분은 KBS 대하드라마의 명맥이 잠시 끊긴 동안 역사적 사실에 집중한 마지막 정통 사극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32] 하지만 입체적인 전개와 극적 몰입도를 자랑하던 정도전보다 시청률이 못 미친 점은 안타깝다.

이후 고려 거란 전쟁이 엄청난 비판을 받게 되자, 징비록에 대한 재평가 여론이 많아지고 있다. 비슷하게 열악한 상황에 놓였음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왜곡을 제외하면 전투 장면을 어떻게든 묘사했던 징비록과 달리, 고려 거란 전쟁은 그마저도 연출을 무성의하게 했기 때문이다.

[1] 근데 사실 여기서부터 한자가 틀렸다(...). 대비한다는 뜻의 '비'는 '備(갖출 비)'라고 쓰고, 이에 비해 징비록의 '毖(삼갈 비)'는 조심한다거나 경고한다는 의미에 더욱 가깝다. 징비라는 말의 출처인 시경 소비의 '予其懲而毖後患'란 구절도 나 자신을 꾸짖어서 후환을 경계한다는 뜻이지, 이를 후환에 대비한다고 해석하는 책은 없다. 비슷하지만 분명히 다르다. [2] 극중 정도전은 "왕은 하늘이 내리지만 재상은 백성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여 신분이 천해도 재능과 노력만 있다면 조선의 재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 실제로 신분이 타인의 사유재산에 속하는 노비만 아니었다면 조선의 법제상으론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고 세조대를 거치면서 훈구파의 형성과 함께 이러한 건국 이상이 상당히 퇴색됨에도 조선전기 과거급제자의 4할 가량은 평민이었다. 하지만 조선중기를 거쳐 등용에서 사대부층이 아니고서는 평민이 관직에 등용되기 어려워 졌다. 후기의 세도정치기에는 아예 과거제자체가 유명무실해졌다.. [3] 왜란 초기의 전면패주는 상상을 뛰어넘는 왜군의 규모와 급속히 확산된 전쟁공포 때문이다. [4] 당연한 말이지만 일단 죽어서 쓰러진 병사는 다시 싸울 수 없으며 부대의 2,3할이 죽어나갈 정도라면 이미 그에 준하는 치명상을 입은 병사는 훨씬 더 많을 것이고 그보단 덜하지만 전투를 속행할 수 없을 정도의 경상, 부상을 입은 병사는 그보다도 많을 것이다. 그 시점에선 대부분의 병사들이 매우 체력 소모가 심한 상태일 것이므로 제대로 무기를 들고 있기도 버거운 것은 덤. 그리고 이 정도로 부대의 피해가 누적되기 시작한다면 겁에 질린 병사들이 대열을 이탈하는 경우도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더불어 전투가 지속될 수록 혼잡화되는 전장의 상황과 시시각각 변하는 대열의 문제로 지휘체계의 혼선이 가중되고 부대의 지휘가 힘들어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5] 휴전 협상 기간이라 전쟁이 정체 되고 비중이 낮아지자 송응창과 심유경에다가 악역을 넘긴 걸로 보일 지경이다. 보면 알겠지만 30화 중후반의 악역은 일본측 장수들이 아니라 송응창이다 심지어 송응창은 실제 역사에선 강화에 반대했던 인물이어서 고증오류이다. [6] 직산전투는 대사와 내레이션으로 언급만 되었을 뿐더러 류성룡과 권율이 작전계획을 주도하고 실제론 참전하지도 않았던 조선군이 참여하는걸로 명의 공을 축소시켰다. 울산성 전투는 명군의 분전을 빼버리고 전투의지 없는 명군이 조선군 수뇌부의 독전요구를 무시하고 퇴각하는걸로 했다. [7] 정유년에 들어 의병활동이 와해된건 의병장 태반이 임진~계사년간에 전사하고 남은 의병대는 전쟁 장기화에 따른 물자부족으로 해산되거나 관군에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의병장을 숙청했으면 의병활동을 적극 내세웠던 북인이 무슨수로 집권당이 된단 말인가. 선조가 죽인 의병장은 이산겸과 김덕령 둘인데 이산겸은 군사들을 한곳에 주둔시키고 움직이지 않아 온건성향의 류성룡조차 딴 뜻있는거 아닌가 의심했었고 김덕령은 송유진의 난때도 이름이 거론되었고 살인사건으로 압송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역모에 연루되었는데 관계자 증언이 말 그대로 쏟아져 나온탓에 전근대 왕조국가에선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김덕령과 함께 거론된 곽재우 홍계남은 아예 불문에 붙여 압송도 하지 않았고 김덕령 휘하에 있다 함께 압송된 최강과 최담령은 무혐의로 방면되지 아니한다. 최담령은 선조의 지시로 김덕령이 이끌던 군사들을 그대로 이끌게 되지 아니한다. 그런 사람이 의병장들을 의심하고 숙청했다? [8] 병자호란 당시의 의병으론 정홍명을 중심으로 한 호남의병대, 평안도의 최효일, 황해도 김응남, 용강 박철산, 경상도 김제회, 각성과 명조의 승군 등이 있다. 청이 오직 인조를 목표로 기동전을 벌여 전쟁기간이 짧았고 도원수 김자점의 실책으로 조정이 전황을 파악하는 것 자체가 늦었으며, 근왕을 독려해야할 왕이 남한산성에 갇혀 있었고 광해군때에 폭정으로 무너진 향촌경제가 회복되기 전이었던지라 두드러지지 않은 것이지 없었던게 아니다. [9] 의병숙청설은 여러 이론이 있고 의병들이 모두 북인에 소속된것도 아니었다. 정작 광해군 대에 집권한 세력이 북인 중에서도 대북인 정인홍일 뿐이므로 심도있는 연구는 필요하다. [10] 이게 가장 심했던 15~16화는 파천 하나로 한 주를 때웠다. 100분 분량 중 90분 가량을 4월 28~30, 3일에 쏟아부은 것. 그리고 설령 드라마가 200화짜리라고 하더라도 파천과 같은 급한 상황을 묘사하는 데 두 화를 쓴 것도 작중의 급박한 분위기가 시청자에게는 전혀 체감되지 않을 수 있었다. 불멸의 이순신 같은 경우 이러한 분위기를 잘 살린 편인데, 58화 21분 즈음에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한다는 선조의 명이 떨어지고 47분경에 58화가 끝날 때까지 26분 동안 세자 책봉과 파천 결정, 한양이 불태워지기까지를 모두 담아냈다. [11] 불멸의 이순신 같은 경우 정유재란에 18회를 할애했다. 그것도 이쪽은 이순신과 그 주변을 주로 다루는 반면 징비록은 임진왜란 전체를 다루는 작품인데도. [12] 물론 이는 실제 류성룡이 총책임자인 삼도도체찰사로 활약했으니 실제역사에 부합한다. [13] 태조 왕건부터 대왕의 꿈까지 무인시대, 정도전을 제외한 모든 작품에서 나타난 설정이자 한국 사극의 고질병이다. 그나마 태조 왕건때는 궁예와 견훤이란 개성강한 군주 캐릭터가 왕건과 공동주연이었기에 이 문제점이 어느정도 상쇄되었지만 후대 사극들은 이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큰 마이너스 요소가 되었다. [14] 고증대로면 벌써 임진강 전투 끝난 시점인 건 차치한다. [15] 왕을 다독이고 힘든 상황에서 최대한 할 일을 하고자 한다. [16] 네티즌 시청자들은 이런 식으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류성룡에 대해 '찬물룡'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기도 했다. [17] 이는 불멸의 이순신에도 나온다. 처음 광해군과의 대화에서 명나라의 원군이 보면 조선은 명의 복속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라 결국 명나라의 읍소에 가까운 부탁을 한다. [18] 군량미 절도로 사형시킨 병사들을 전사자로 예우하고 그들의 가족들에 절도범들이 훔친 곡식을 지급하였다. [19] 다만 임진왜란 때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자체가 반쯤 맛이 가서 일본 측 연구자들조차 당시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할 지경이라 이 정도 각색에는 큰 문제가 없기는 하다.극의 완성도보다 고증에 충실했을 따름입니다 [20] 왕이 무능하면 신하든 누구든 나서서 백성을 돌봐야 하지 않느냐고 일갈하는 이성계에게 신하의 임무는 왕이 빛나도록 돕는 것이며, 왕조국가에서 신하가 왕보다 앞에 나서는 것은 혼란과 분열을 조장하는 일임을 지적하는 정몽주 등의 인물묘사에서 이런 점이 잘 드러난다. [21] 선조실록에 사관이 필부발언자에 대해서는"대신들이"라고 기술했다. [22] 최강칠우》를 집필했다. [23] 현재 7개의 게시물들은 삭제된 상태이다. [24] 역시 정도전에서도 엄연히 관료인 정도전에게 아직 출사전의 신분인 조준이 수고하십시오 라고 말하는 실수가 나온다 [25] 고구려사를 전공하고 역사를 이용한 콘텐츠쪽에 많이 참여하고 있다. 징비록에선 후자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26] 가령 이순신은 뛰어난 군인임에는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화가나 유학자로서는 평균 미만인 것과 같은 이치. [27] 실제로 네이버 뉴스 다음 아고라, 루리웹 등 포털사이트들을 보면 좌우를 막론하고 헬조선 드립이 없는 곳이나 당장 나라 전체를 갈아엎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없는 곳을 찾기 힘들다. 그나마 이글루스 정도가 온건한 비판에 머물고 있는 수준. [28] 위의 말처럼 사회 불만이 가득한 사람으로 제일 좋은 캐릭터가 바로 정도전이다. 실제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소리친 단순한 인물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했다. 드라마 정도전은 이런 인물의 좌절과 성공 그리고 무리수를 잘 보여준다. 그런 반면, 징비록은 권력 유지와 보위보전에 예민해진 선조가 묘사되지 아니한다. 그의 반면 류성룡은 역사에서도 선한 면모가 주되다 보니 드라마에서 정도전이 변해가는 것과는 같이 흘러가게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현실적으로 그냥 착하기만 한 캐릭터에 몰입성이 있을까. 단순 착하다고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얼마나 그런 착한 신념을 가혹한 상황에서 지켜 나갈 수 있는지 잘 묘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유성룡이라는 캐릭터가 선해 주위인물과의 긴장감이 떨어졌다는 점이다. [29] 전투장면을 연구해 반영하는 것에서 삼국기 시절에는 장군들이 칼들고 소리지르는 대신 지휘를 하고 병사들은 대오를 이뤘는데 , 그 때보다 제작환경이 달라진 지금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백번 양보해 난전 전투씬은 엑스트라들 교육시키기 힘들고 시간 없어서 그렇다쳐도 장군들이 지휘하는 대신 칼들고 전투하는건 대본만 수정해도 얼마든지 해결가능한 부분이다. [30]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거지, 이치 전투 평양성 전투, 진주 대첩 행주 대첩을 제외한 중요 육전들은 비중있게 다 다뤘다. 특히 진주 대첩은 수군의 주요 해전에만 쓰던 나레이션 형 예고까지 곁들였다. [31] 다만 조선 왕조 500년 시리즈의 임진왜란처럼 육전과 해전을 균형감 있게 다룬 작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32] 2021년 태종 이방원이 공개될 때까지 KBS의 마지막 대하드라마는 장영실이었지만, '과학 드라마'를 표방한 주제에 과학적 오류가 나왔고, 드라마 편수도 적었다. 또한 가상의 악역을 대거 등장시키는 등 평면적인 선과 악의 대립 구도를 그리는 가운데, 정작 가장 중요하게 다루었어야 할 주인공 장영실의 업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장영실과 비슷하게 가상의 악역이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해서 논란이 많았던 근초고왕 광개토태왕조차 장영실에 비하면 주인공의 업적이 비중 있게 다뤄진 편이며, 대왕의 꿈은 출연진이 대거 안전사고에 휘말린 악재 때문에 참작의 여지라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