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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보병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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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도 [ruby(白, ruby=백)][ruby(骨, ruby=골)] 죽어도 [ruby(白, ruby=백)][ruby(骨, ruby=골)]
[ruby(必, ruby=필)][ruby(死, ruby=사)][ruby(卽, ruby=즉)][ruby(生, ruby=생)] [ruby(骨, ruby=골)][ruby(育, ruby=육)][ruby(之, ruby=지)][ruby(情, ruby=정)]
<colbgcolor=#254aa5><colcolor=#fff> 창설일 <colbgcolor=#fff,#191919> 1947년 12월 1일 (제3여단)
1949년 5월 12일 (제3보병사단)
상징 명칭 백골(白骨)부대
소속 대한민국 육군
상급 부대 제5군단
경례구호 백골
규모 사단
역할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일대 수색 및 방위,
최전방 중부 전선 GOP 경계
사단장 소장 박진희(3사 29기)
위치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서면

1. 개요2. 역사3. 상징
3.1. 사단 마크3.2. 사단가3.3. 구호
4. 예하 부대
4.1. 사단 직할대4.2. 제18보병여단 진백골4.3. 제22보병여단 혜산진4.4. 제23보병여단 맹호4.5. 포병여단 금성지구 화력사수4.6. 신병교육대
5. 과거 부대6. 출신 인물
6.1. 사단장6.2. 장교/부사관6.3. 병
7. 근무 환경8. 사건 및 사고
8.1. 보도연맹 학살사건8.2. 병사 자살사건
9. 기타

[clearfix]

1. 개요

제3보병사단 소개 영상
사단령
제1조(설치) ① 육군에 사단(이하 "사단"이라 한다)을 둔다. ② 사단은 관할구역의 작전·훈련 및 군 행정에 관한 사항을 관장한다.
파일:external/cfs11.blog.daum.net/48a44d5c8665f&filename=DSC_4436.jpg
제3보병사단의 이정표
제3보병사단 철원에 가다
백골!
대한민국 국군 육군 제5군단 예하 제3 보병사단. 상징 명칭은 백골(白骨)부대. 주로 철원에 위치하여 최전방 GOP, GP를 지키는 철책 사단.

메이커 사단답게, 이곳의 사단장이 되면 3스타를 넘어 4스타도 노릴 수 있을 정도이다.

2. 역사

1947년 12월 1일 부산광역시에서 제5, 6, 9 연대[1] 이응준 대령을 초대 여단장으로, 조선경비대 '제3보병여단'으로 창설되었으며, 이후 1949년 5월 12일 최덕신 대령을 초대 사단장으로 하여 '제3보병사단'으로 승격되었다.[2]

별개로, 해당 사단의 핵심 부대인 18연대(진백골연대)는 3여단 창설에 맞춰 3여단 내에서 창설되기도 했으며, 자원입대한 서북청년회 회원들이 중심이 된 부대였다. 따라서 극도의 반공 성향과 전투적 기질[3]을 자랑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철모 좌우에 "죽어 백골이 되어서라도 고향 땅을 되찾겠다."라는 의미로 백골(白骨) 마크를 그려 넣었다고 한다.[4]

다만 6.25 전쟁 초기에는 뱅뱅 돌다가 황해도 옹진을 찍고 수도경비사령부에 들어가 수도사단( 김석원 준장) 소속이었다. 개전 1개월도 못 되어 엄청난 손실에 부대 건제를 도저히 유지할 수가 없어 7월 24일에 18연대는 재편되어 산하의 1대대로 격하되고, 같은 사령부 내에 있던 3연대는 2대대, 8연대는 3대대가 되는 등 18연대 내부로 포함되며 부대 편제가 1/3로 줄어들었다. 이 모든 게 5, 7, 수경사 3개 사단이 1개 사단으로 통폐합되는 과정에 발생된 일이다. 하지만 3개 연대의 핵심 요원들이 제18연대로 재편되자 이후 막강 연대로 변모하였다. 한때 수도 사단 봉급의 태반을 차지할 정도로 고참 하사관들이 많아 BAR 사수까지 중사, 상사로 짜여 있었다고 한다. 당시 연대장이 임충식(국방부 장관)[5], 부연대장이 한신(합참의장), 3대대장이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이다.[6]

어쨌든 부대 통합으로 18연대에서 서북청년회원의 비중은 확 줄어 들었다. 그래도 '백골부대'라는 명칭은 여전히 사용했는데, 워낙 용맹하다 보니 수도사단의 궂은일은 다 도맡아 하여 스스로 '등골부대', '산골부대'라고 자조했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백골부대 놈들은 미국 놈들보다 더 악독하여 사람만 보면 죽인다"고 선전하여 국군을 보면 '백골부대'는 지금 어디쯤에 있냐며 걱정했다고 한다. 또한 국군 포로 중에 백골부대원이 있으면 무조건 총살했다고 한다. 북한군 내 백골 공포증이 얼마나 심했는지 1950년 11월 22일~24일 주을 전투 중에는 너무 치열한 교전에 질린 하사관 한 명이 벌떡 일어나 "이 새끼들아! 백골부대다!"하고 외치며 뚜벅뚜벅 걸어가니 그토록 완강하게 버티던 북괴군이 삽시간이 무너졌다는 일화도 있다.[7]

이후 흥남 철수작전 기간 중 당시 3사단 26연대와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흥남 철수 전 함흥으로 철수하는 과정에서, 18연대는 수도사단과 같이 철수하다가 폭설로 길이 막히는 바람에 배편으로 흥남으로 이동, 다시 수도사단과 만날 예정이었고, 3사단 또한 22,23연대가 배편으로, 26연대가 기차편으로 흥남으로 이동, 집결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18,22,23연대가 배에 올라있던 그 순간에 흥남철수가 결정되면서, 배에 탄 연대들이 그냥 부산으로 직행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결국 수도사단하고 26연대를 바꾸기로 결정하며, 18연대는 3사단으로 예속 전환되었다.[8]

전환 직전에는 수도 사단장은 송요찬이고 3사단장은 백남권. 연대장은 임충식 대령으로 그대로였다. 그리하여 비로서 18연대가 22·23연대와 만나게 되었다. 이 때문에 "백골부대" 명칭으로 더 자주 불리게 되었으며,[9] 이 와중에 3보병사단의 별명은 "사자부대(獅子部隊)" 였는데, 6.25 전쟁 이후 여력이 생기자 보다 전투적인 명칭을 원하는 사단장의 의향에 따라 "백골부대"가 사단의 공식 명칭이 되었고, 18연대 역시 자신들이 원조 백골이라는 의미로 명칭을 진백골로 바꾸었다.

그리고 본진인 3사단에 대해 살펴 보자면 6.25 전쟁 발발 초창기 진짜 어이없는 일들을 겪어왔다. 서울 지원을 위해 22연대를 서울로 보내어 축차투입되었고 후에 영덕지구에서 3사단을 이끄는 이준식 준장의 혼성 3사단으로 편성되어 한강선 방어 이후 지연작전을 펴게 된다. 3사단의 구성연대인 22,23연대가 건제를 유지한채 유지되고 있음에도 7월 5일부 3사단은 해편되었다가 단 이틀 후인 7월 7일 재건되었다. 이에 대한 후속조치로서 종전의 유승렬 사단장이 경남관구사령부로 보임되고 이준식 준장이 3사단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이후 1개월간 영덕지구 전투를 훌륭히 이끌어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는 시간을 얻는데 큰 공을 세웠다.[10] 8월 9일부로 김석원 준장이 사단장으로 보임하여 포항지구 전투를 훌륭히 이끌고 이후 군관민 전원 철수로 유명한 포항철수작전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이후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다가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진하여 특히 '10월 1일' 대한민국 국군 최초로 삼팔선을 돌파해(사단 예하 23연대 10중대) 현재 국군의 날의 유래가 되었다. 이때 3사단장이 참군인으로 이름 높은 이종찬이었다. 이종찬은 1950년 11월 12일에 최석 준장으로 사단장이 취임할 때까지 3사단장직에 있었다. 그러나 1951년 그 유명한 현리 전투에서 부대원 2/3가 전사, 실종당하는 참패를 당하기도 했다.[11] 6.25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에 당시 3사단 사단장이 전장병 외출 및 귀가 통제 조치를 하여 전쟁이 터지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휴전 후에는 1973년 3월 7일 전방에서 군사분계선 푯말 보수 작업을 실시하던 중 인민군 육군 초소에서 총격을 가하자, 사단장 박정인 장군의 지휘로 예하 71포병대대가 도발을 가한 인민군 초소를 제압하고, 부대원들을 구출하는 전과를 거두기도 했다. 3.7 완전작전은 휴전 이후에 전방에서 발생한 30여 건의 북한군 침투에 가장 성공적, 모범적으로 대응한 '완전작전'의 사례로 손꼽힌다. 매년 3월 7일에는 3.7 완전작전 선봉 대대 영내에서 기념 행사를 실시한다.[12]

현재는 제5군단 예하 사단으로 중부전선 철원 지역에서 제6보병사단과 함께 GOP 경계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아래에는 국군 최초의 기갑여단인 제1기갑여단과 국군 최강의 화력을 자랑하는 제5포병여단이 있으며, 대한민국 육군을 대표하는 메이커 사단이다. 전통적으로 해골을 좋아하는지라, 자체 행사나 내부 구조물, 현판 등에는 무수히 많은 해골을 그려넣고 있다.

훈련소에서 퇴소하는 이등병들에게 주는 술도 백골주라고 부른다. 해골 모양 잔에 술을 담아서 백골주였다.[13] 경례 구호도 다른 부대와 달리 "백골!" 이라고 한다. 1972년까지 경례 구호가 "돌격"이었는데, 제25대 박정인 사단장이 '살아 국가에 충성하고 죽어 백골이 되어서라도 나라를 지키자'는 의지를 나타내기 위해 "백골"로 변경했다.

의외로 회관 이름은 삼성회관인데 삼성회관 옆에 영외 PX인 삼성마트가 있다.[14] 진백골연대의 회관 이름이 백골회관이다.[15] 2020년 국방개혁으로 인해 12월 1일부로 예하 연대들이 여단으로 변경되었다.

한편 임무변경등으로 인해 강원도에 있었던 사단본부가 근시일 내 경기도 포천시로 이전할 계획이다. 다만 철원군 주민들이 수입 감소를 이유로 반발하고 있다.

3. 상징

3.1. 사단 마크

제3보병사단 부대마크
파일:제3보병사단 부대마크(구).svg 파일:제3보병사단 부대마크.svg
<rowcolor=#fff> 2012년 이전 부대마크 현재 부대마크
부대마크 해설
<colbgcolor=#254aa5><colcolor=#fff> 삼각형 3개 보병연대의 강력한 전투의지.
백색 백의민족, 평화
3개의 별 별과 같은 영원한 조국의 발전.
청색 청결, 순수
백골 백골정신
'죽을 각오로 싸우면 반드시 산다!'는 필사즉생(必死卽生)의 정신
'죽을 수는 있어도 패(敗)할 수는 없다!'는 수사불패(雖死不敗)의 정신
'전우가 내 형제요, 내 자신이라 생각하는 마음!'의 골육지정(骨肉之情)의 정신

과거 부대마크에는 해골과 대퇴골 마크가 빠져있었다. #[16]

해골마크가 민간인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부대 이미지에 타격이 생긴다는 이유로 부대 마크에 넣지 않았다[17]는 낭설이 있지만 애초에 전투복 상의에 부착하는 연대 비표에 해골 마크가 들어가는데 부대 마크에 넣지 못할 이유가 없다. 거기에 부대 측에서도 해골 마크를 '죽을 각오로 싸우면 반드시 산다'는 필사즉생(必死則生)의 정신, '죽을 수는 있어도 패할 수는 없다'는 수사불패(雖死不敗)의 정신을 담는 것으로 정의하는 등 상당히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실제로도 부대를 거쳐 간 지휘관이나 장병들이 북한과 대치하는 최전방의 부대임에도 부대 마크가 용맹성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며 개선을 요구하는 건의를 꾸준히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덕분인지 몰라도 2012년 12월 3일부터 부대 마크에 다시 해골이 들어가게 되었다. 이때부터는 대한민국 육군본부 마크와 완전 구별이 가능해져서 위장색 마크도 기존 연두색 바탕에서 육군본부 마크와 동일한 검은색 바탕으로 바뀌었다.

연대 비표 때문에 육군본부 독극물처리부대나 화생방부대로 오인받기도 한다. 실제로 DC인사이드 백골부대 갤러리에 가보면 23연대 병사는 육군본부 독극물처리부대로 포병연대 병사는 육군본부 폭발물처리반으로 오인받았었다고 한다. 또 해골이 가진 상징성 덕분인지 외국인들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부대 마크 중 하나이며, 미군들과 교류할 때도 부대 마크를 주면 엄청 좋아한다 카더라.

3.2. 사단가

돌격 명령 내리면 비호와 같이
적을 쳐 무찌르는 조국의 방패
백골혼 이어받아 죽음을 겁내지 않고
조국 통일[18] 선봉에서 싸워 이겼다!

조국 산천 울리는 우리의 함성
승리의 깃발 들고 전진 또 전진!
오랑캐 무찌르고 보무(步武)도 당당하게[19]
화랑의 후예들이 싸워 이겼다!

우리는 백골이 되어도 싸워서 이기는
무적의 정예란다, 우리 3사단!

파일:제3보병사단 부대마크.svg

3.3. 구호

먼저 경례구호는 다른 부대와 달리 "백골!" 이라고 한다. 다른 부대와 겹치지 않는 전군 유일한 구호 경례다. 1972년까지 경례 구호가 "돌격"이었는데, 제25대 박정인 사단장이 '살아 국가에 충성하고 죽어 백골이 되어서라도 나라를 지키자'는 의지를 나타내기 위해 현재의 경례 구호인 "백골"로 변경하였다.
살아도 [ruby(白, ruby=백)][ruby(骨, ruby=골)]! 죽어도 [ruby(白, ruby=백)][ruby(骨, ruby=골)]! [ruby(必, ruby=필)][ruby(死, ruby=사)][ruby(卽, ruby=즉)][ruby(生, ruby=생)] [ruby(骨, ruby=골)][ruby(育, ruby=육)][ruby(之, ruby=지)][ruby(情, ruby=정)]![20] [ruby(白, ruby=백)][ruby(骨, ruby=골)]! [ruby(白, ruby=백)][ruby(骨, ruby=골)]! 파이팅!
일명 백골 구호. 현재 사용 중인 사단 정식 구호이며, 그만큼 대내외적 행사에도 가장 널리 사용된다.

그리고 부대 정문이나 그 인근에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등에 대한 거친 격문들이 쓰여진 플래카드가 달려 있고 부대에 따라서는 연병장 같은 부대 시설에도 걸려있다. 아예 김씨 삼부자 사진을 영정마냥 검은 테두리 쳐서 걸어두는 부대도 있고 대치 중인 북한군 부대의 지휘관들의 사진도 살생부로 걸어놓은 부대도 있다.

대적관 구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멸북통일 최선봉 천하무적 백골사단
쳐부수자 북괴군 때려잡자 김정은
김정은은 미친개 몽둥이가 약! 약! 약!
부관참시 김일성 김정일 능지처참 김정은
북괴군의 가슴팍에 총칼[21]을 박자! 박자! 박자!

위의 구호는 김정일 사망 이후에 변경된 버전이고 대적관 구호의 초창기 버전은 다음과 같았다.
' 멸북통일! 최선봉! 천하무적! 백골사단!
쳐부수자! 북괴군! 때려잡자! 김부자!
김부자는! 미친개! 몽둥이가 약! 약! 약!
부관참시! 김일성! 능지처참! 김정일! 김정은!
북괴군의 가슴팍에 총칼을 박자! 박자! 박자![22]

이는 대적관(對敵觀) 구호라고 하며 식사 시간 때 취사장 앞에서 이 구호를 외치고 입장해야 한다. 위 구호는 2011년 12월 김정일이 죽자 바뀐 구호다. 2010년 12월에 신원식 사단장 재임 당시 최초로 제정되었는데 만들어질 당시에는 '멸북통일 최선봉 천하무적 백골사단, 쳐부수자 북괴군 때려잡자 김부자, 김부자는 미친개 몽둥이가 약!(3회 반복), 부관참시 김일성 능지처참 김정일! 김정은! 북괴군의 가슴팍에 총칼을 박자!(3회 반복. 단. 포병연대는 총칼 대신에 포탄이다.) 였다.

천하무적 백골 구호는 다음과 같으며 주로 분·소대 이동 시 쓰인다. 인솔자가 묻고 나머지 인원들이 대답하여 주고받는 형태.
아래에 있는 진격 구호와 함께 2009년 12월에 만들어졌었다.
천하무적 백골! / 천하무적 백골!
천!하!무저~억! 백골! / 천!하!무저~억! 백골!
삼팔선 최초 돌파부대는? / 이십삼연대!
혜산진까지 돌격부대는? / 이십이연대!
최북단 부령[23] 진격부대는? / 십팔연대!
적에게 가장 무서운 포병은? / 백골포병연대!
천!하!무저~억! 백골! / 천!하!무저~억! 백골
진격구호 역시 천하무적 백골과 마찬가지로 주고 받는 형태이며 다음과 같다.
우리 선배들이 지켜낸 자유 / 우리가 지켜 물려준다
우리 조국땅을 침범한 놈은 / 한 방에 날려버려
오늘은 걷고 내일은 뛰고 / 백두산 까지 진격
살아도! / 백골!
죽어도! / 백골!
필사즉생! / 골육지정! 백골! 백골! 파이팅!

근데 이러한 백골부대의 부대 내부 구호가 2013년 3월 일부 언론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고, 당시에는 한미 연례 연합군사훈련 '키 리졸브'가 진행 중이었다. 이에 북한과 국내 종북 세력들은 '최고존엄 모독' 운운하면서 맹비난을 퍼부었고, 자신들의 관영 TV에 이명박 대통령 국방장관, 합참의장 이름을 붙인 허수아비 표적에 사격을 가하는 선전 영상을 내보냈다.[24]

하지만 2018년 4월 이후, 북한에 유화적인 문재인 정부에 의해 대적관 구호가 폐지되고 말았다.

4. 예하 부대

제3보병사단 예하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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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단 신병교육대는 제3보병사단/신병교육대 참고.

4.1. 사단 직할대

4.2. 제18보병여단 진백골[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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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제22보병여단 혜산진[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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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제23보병여단 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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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포병여단 금성지구 화력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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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신병교육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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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과거 부대

6. 출신 인물

6.1. 사단장

볼드체 대장 진급이 된 사단장.
역대 제3보병사단장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최덕신 예) 중장 육사 특3기 제1군단장 [30]
00대 채원개 예) 준장 황포군관학교 사단장
02대 이응준 예) 중장 군영 1기 사단장
03대 김백일 중장(추서) 군영 1기 사단장 [31]
04대 유승렬 예) 소장 육사 특8기 사단장
05대 이준식 예) 중장 육사 특8기 사단장
06대 김석원 예) 소장 육사 특8기 사단장
07대 이종찬 예) 중장 육사 특7기 사단장 [32]
08대 최석 예) 중장 군영 1기 사단장
09대 김종오 예) 대장 군영 1기 사단장 [33]
10대 백남권 예) 소장 군영 1기 사단장
11대 임선하 예) 소장 군영 1기 사단장
12대 신응균 예) 중장 특별임관 사단장
13대 정래혁 예) 중장 육사 7기 사단장
14대 이희권 사단장
15대 김상복 사단장
16대 유의준 사단장
17대 최택원 사단장
18대 장우주 사단장
19대 이동화 사단장
20대 조혁환 사단장
21대 유근국 사단장
22대 최철 사단장
23대 육장균 사단장
24대 오일수 사단장
25대 박정인 준장 예편 육사 6기 사단장 [34]
26대 곽응철 사단장
27대 권익검 사단장
28대 오철 사단장
29대 박세직 소장 예편 육사 12기 사단장 [35]
30대 최인수 예) 소장 사단장
31대 정일섭 사단장
32대 박익순 사단장
33대 이기룡 사단장
34대 손병익 사단장
35대 구태도 사단장
36대 박영일 육사 23기 사단장
37대 조영래 갑종 177기 사단장
38대 안충준 육사 25기 사단장
39대 박흥근 육사 26기 사단장
40대 이성규 예) 중장[36] 육사 28기 국방정보본부장 [37]
41대 고기원 육사 29기 사단장
42대 박수근 3사 4기 사단장
43대 김종해 육사 32기 사단장
44대 김요환 예) 대장 육사 34기 [38]
45대 유영조 예) 소장 육사 36기 사단장
46대 신원식 예) 중장 육사 37기 국방부장관 [39]
47대 윤완선 예) 소장 육사 38기 사단장
48대 김운용 예) 대장 육사 40기 지상작전사령관 [40]
49대 남영신 예) 대장 학군 23기 육군참모총장 [41]
50대 김현종 예) 중장 육사 44기 지상작전사령부 참모장 [42]
51대 신상균 예)소장 육사 45기 사단장
52대 손식 예)대장 육사 47기 지상작전사령관
53대 박진희 소장 3사 29기 사단장

6.2. 장교/부사관

6.3.

7. 근무 환경

아무래도 별명도 그렇고, 부대 이미지가 상당히 험악해서인지 갓 입소한 장정들에겐 빡센 부대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306 보충대 같은 곳에서 훈련소와 자대를 통보받을 때, "훈련소 3사단, 자대 3사단!" 소리를 들은 장정이 있으면 옆에 같이 있던 다른 장정들이 조롱하는 게[46] 국룰 마냥 여겨진다. 그도 그럴 것이, 306보충대에서 충원하는 병력은 제3야전군사령부 예하 부대들로 배치되었는데, 3사단의 경우 이들 중 가장 빡센 지형 조건에서 주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메이커 부대라 군기를 강하게 잡는 데다 무릎과 허리도 많이 망가지고, 복귀하면 훈련 때문에 할 건 또 짜증나게 많고, 부대 전통 때문에 다른 육군 보병사단보다 훨씬 전투적인 자세를 요구하며 그렇다고 내무 생활이 편한 것도 아니다.

물론 그 빡세다는 지형 조건이라는 것도 과거 제3야전군 예하의 경기도 쪽 사단들에 비해서 그렇다는 것이고, 그래 봤자 진짜 강원도 중동부전선의 산악 지대에 비하면 3사단이 선녀로 보이고. 바로 옆 사단인 15사단과 비교해 봐도 상당히 완만한 지형이다. 철원이 상당힌 넓은 평야 지대인데 화천과 경계가 시작되는 지점부터 험준한 산악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고, 15사단이 담당하는 섹터가 이 험준한 산악 지형이 시작되는 철원과 화천의 경계에 걸쳐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겨울에는 동부전선보다 더 춥다. 철원이 남한에서 가장 추운 지역이기도 하다. 실제로 한파가 몰아치는 해에는 철원이 동시베리아보다 더 추운 경우가 많은데 상황실에서 겨울에 새벽 근무 하다가 뉴스의 아침 날씨를 보면 분명 훨씬 북쪽인 블라디보스토크보다 추운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MBC 주말 예능프로그램인 일밤의 병영 체험 예능 코너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해군 제2함대 다음 부대로 선정되어 12월 10일부터 5박 6일간 촬영을 하였으며 물론 시기가 시기인 만큼 혹한기 훈련도 실시하였다. 이후 진짜 사나이 300의 부대들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의외로 외출/외박 시 가볼 만한 명승지가 많다. 도피안사, 직탕폭포,[47] 임꺽정 바위 등. 일반인들은 겉으로만 보이는 해골과 관련된 이미지만 보고 빡세다고 생각하지만 철원-포천 지역이 강원도와 경기도 사이에 넓게 펼쳐진 분지 평야 지대[48]다 보니 강원도 산악 지대에 위치한 부대나 원래부터 훈련량이 장난 아닌 기계화부대에 비하면 이미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편한 부대에 속한다. 험준하다는 것도 3군 예하의 경기도 쪽 사단들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고, 철원이 15사단이 관할하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강원도에서 유일하게 3군 관할인지라 주로 경기도 쪽 전방 사단들과 비교해서 그런 듯하다. 같은 강원도 철원 지역의 바로 옆 사단인 15사단에 비하면 훨씬 지형이 평탄하다고 할 수 있다. 15사단이 관할하는 철원과 화천의 경계 지점부터 험준한 산악 지형이 시작된다. 직할대, 18여단, 22여단, 23여단, 포병연대 중 18여단과 22여단은 GOP를 담당하는 부대인데 18여단은 담당 작전 지역 중 일부 구간의 지형이 강원도보다는 상대적으로 편하며[49] 심지어 22여단의 담당 구역 중 절반 정도는 넓찍한 평야 지역이다.[50]

2011년 때려잡자 김정일 구호가 북으로 유출되면서 한동안 북한이 완전히 뒤집어진 적이 있었다. 당연히 북에선 게거품을 물며 책임자 처벌하라, 괴뢰당국의 호전광들은 광란의 댓가를 치를 것이다! 라고 패악을 부려댔다. 입만 열면 남한 대통령들을 비방하고 서울 불바다에 갖은 협박질을 하는 놈들이 저러니 웃긴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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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모히칸 스타일과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강조하던 적이 있었다. 일명 백골컷(백골형두상)이라고 하며, 윗머리 9mm, 옆머리 1mm이다. 사단-연대-대대를 거치면서 계속 압박이 들어오고 간부들부터 머리가 잘려나가서 단기복무 간부 및 말년 병을 제외하고는[51] 병, 간부 할 것 없이 사이좋게 빠박이로 생활하는 수준이다. 정작 저걸 시킨 사단장은 백골컷을 안 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안한다.

8. 사건 및 사고

8.1. 보도연맹 학살사건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보도연맹 학살 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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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6.25 전쟁 당시 보도연맹 사건에 연관되어 있는 부대 중 하나이다. 주로 부산과 포항, 대구를 비롯한 영남 일대[52]에서 벌어졌다.

8.2. 병사 자살사건

2024년 7월 25일, 국군포천병원으로 진료를 보러간 상병이 병원 화장실에서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원인은 불명이며, 수사당국이 조사중에 있다. 기사

9. 기타


[1] 이 초기 배치 연대 번호는 3사단 내에 존재하지 않는데, 5와 9연대는 현재는 전부 다른 사단 예하 부대이고, 6연대의 경우 대구에서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해체 후 22연대로 재창설되었기 때문이다. [2] 그래서 부대 최초 창설과는 별개로 이 승격일을 사단 창설 기념일로 하고 있다. 부산광역시 중앙동에 창설 기념비가 있다. [3] 18연대 창설 요원이었던 김구현 백골원로전우회 회장(6.25 전쟁 발발 당시 정보과 선임하사, 기계 안강 전투 후 한신 장군을 따라 수도사단 1연대로 전출)의 인터뷰에 따르면 월남 전 가족들이 공산주의자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데서 반공주의가 발현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4] 백골 도안은 지금의 모습과 다른데 한신 장군(창설 당시 부연대장 & 1대대장 겸직)이 고안하였다고 한다. [5] 연대장 시절 전투를 앞두고 훈시 중 "만약 전투 중에 내가 도망간다면 너희가 날 총으로 쏴 죽여라"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6] 당시 수도 사단은 백골 외에 제1연대(이후 연대장 한신), 기갑연대가 있었다. 이들은 공격은 백골, 방어는 1연대, 잔적 소탕은 기갑연대로 역할 분담이 되어 있었다. [7] 이후 북한군으로 복무했다가 귀순한 한 탈북민이 백골부대로 강연갔을 당시 "북한에 있을때 '치가 떨리도록 악랄한 놈들'이라고 듣던 백골부대로 강연을 오니 무척이나 떨렸다"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8] 3사단장이었던 최석 장군이 18연대 창설 연대장으로 3사단장 부임 후 이왕 26연대와 바뀐거 18연대를 3사단으로 26연대를 수도사단으로 전환하자고 육본에 건의하여 받아들여졌다. [9] 채명신 장군의 백골병단은 또 다른 월남자들이 같은 동기로 자칭한 것 외엔 공통점이 없다. [10] 이준식 준장은 영덕지구의 군공으로 태극무공훈장 수여 [11] 그런데 부대 역사 배울 때는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고 배운다. [12] 이 일이 있은 후 박정인 사단장은 보직 해임 되었는데, 그 이유는 박정인이 이 작전 이후에 북한군을 골탕 먹이려고 사단 모든 차량을 DMZ까지 진출시킨 것이 문제가 되었다. 이 일로 북한은 전시동원령까지 선포하였고, 여차하면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였다. 그것을 독자적인 작전권을 가지는 야전군사령관이나 군령권을 가지는 육군참모총장의 허락 없이 사단장 "단독"으로 한 것이다. 사실 DMZ로 군 병력을 보내는 것은 유엔군사령부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당시에는 평시 작전통제권도 대한민국 국군이 단독으로 행사할 수 없었다. 그런데 전술한 규정들을 다 무시하고 실시한 것이다. 아무리 실제 병력이 없었다고 해도, 군 차량도 결국 군 병력의 일부이므로 이는 명백한 지휘 통제 위반이다. 쉽게 비유하면 한국군의 한 소대장이 병력을 이끌고 철책 경계 중 북한군의 공격으로 아군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치자. 소대장이 '응사하고 부상자를 후송하라'까지는 흠잡을 데가 없는 정상적인 대응이지만, '전투 가능한 총원 휴전선을 넘어가 북진해 보복한다'라는 명령을 내린다면 내심 통쾌하기는 하겠지만 그 어떤 장교도 옳게 대처했다고 보지 않을 것이다. [13] 물론 진짜 술을 줄 수는 없으니 잔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맛스타였고 2011년 1월 1일부로 생생가득 혹은 맹물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14] 실제로 3사단 부대 애칭이 삼성대(三星臺)로 자매결연이 맺어져 있다. 1970년대 이건희 전 삼성회장이 부대에 방문한 사진이 부대 역사관에 남아있다. [15] 병 감축과 함께 이제는 사단에서 관리한다. [16] 이때의 부대 마크는 은근히 대한민국 육군본부의 부대 마크를 닮아서 전투복에 원색 마크로 오바로크를 치던 시절에는 멀리서 보면 헷갈리기도 했다. 큰 차이점은 가운데에 큰 별이 있으면 육군본부 부대 마크, 없으면 제3보병사단 부대 마크였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육본 마크는 하단 두 개의 별이 상단 별과 같이 정위치되어 있지만 백골부대는 별의 꼭짓점이 삼각형의 꼭짓점을 향해 있다. 그리고 외곽 삼각형의 삼변의 중간 지점이 육군본부 마크는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있지만, 백골부대의 경우는 쐐기 문양으로 끊겨 있다. 끊긴 부분끼리 이어보면 역삼각형이 나온다. 삼각형 안에 이렇게 역삼각형을 만들면 위와 양 옆에 삼각형이 3개 생긴다. 하지만 전반적인 부대 마크 디자인이 상당히 비슷하고 중앙의 별표만으로는 구별이 잘 되지 않았고, 이 때문인지 2000년대 중반부터는 전투복에 오바로크 치는 부대 마크가 위장색 마크로 변경되면서 같은 파랑 원색 계열임에도 불구하고 위장색에서 색상 배열의 차이를 두어, 검은색 계열의 바탕을 사용하는 육군본부 마크와 달리 연두색 계열의 바탕을 사용해서 원색 마크와 상당한 차이점을 두었다. [17] 또는 육영수 여사가 부대 마크를 보고 섬뜩하다고 해서 바뀌었다는 카더라도 있었다. [18] 연평도 포격전이후 대적관 구호 생성과 함께 '조국통일'에서 ' 멸북 통일'으로 바뀌었었다. 2018년 7월 1일부터 다시 '조국 통일'로 바뀌었다. [19] 신교대에서 훈련병들 군가 교육을 시킬 때 첫 '당' 자에 스타카토를 넣어 '당! 당하게' 라고 불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20] 해당 사자성어 부분은 한 박자에 한 글자씩 끊는다. [21] 포병연대는 특성상 '총안구에 포탄'으로 대체했다. [22] 포병연대 한정 '북괴군의! 가슴팍에! 포탄을! 박자! 박자! 박자!' [23] 함경북도 부령군 [24] 맹비난을 해도 어차피 북한한테만 최고존엄이지, 대한민국을 포함한 타 국가들에겐 그냥 반국가단체의 수장일 뿐이다. [25] 한국전 당시 수도사단 소속으로 활약했으나, 원산 입성 이후 흥남 철수 과정에서 26연대와 배를 바꿔타는 바람에 3사단 소속이 되었다. 또한 서북청년회 병사들이 부대 내에 상당했고, 죽어서도 공산당과 싸우겠다며 백골 명칭을 쓰는 게 곧 부대 명칭이 되었다. 다만 휴전 이후 사단 이름을 보다 전투적으로 바꾸겠다는 사단장의 의지에 힘입어 백골이 사단 명칭이 되면서 이들은 원조 백골이라는 뜻으로 명칭을 진백골로 바꾸었다. [26] 원래는 쌍둘연대였는데 진격로 중 최북단에 위치한 함경남도 혜산진(현 량강도 혜산시)까지 갔다고 해서 바꿨다. 6•25전쟁 당시 3사단 소속이었던 26여단도 혜산진을 애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27] 실제로는 선자인 선돌대대 보대는 후자인 육군최초창설 포병대대로 많이 불린다. [28] 과거 71대대 시절에는 3.7완전작전 포병대대. [29] 흥남 철수 과정에서 18연대와 배를 바꿔탔는데, 이 때문에 두 배의 목적지를 바꿀 수 없어 수도사단과 연대를 맞바꿨다. [30] 동백림 사건으로 박정희 정권에서 내쳐진 후 천도교 교령이 되었고 한국전쟁 북침설을 주장하는 등 친북 활동을 벌이다가 월북한다. 11사단장 재직 당시 거창 양민 학살사건의 주범이다. [31] 6.25 전쟁 당시 군단장으로 3.8도선을 최초 돌파했다. 흥남 철수를 주도했다. 2009년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친일파로 지정됐 [32] 38선 돌파 당시 사단장. 참군인으로 유명한 군인. 김백일과 같이 2009년 정부에 의해 친일파로 지정됐다. [33] 8대 합참의장. 15대 육군참모총장. 6사단장으로 춘천-홍천지구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지만, 3사단장으로 현리전투에서는 대패한다. 이후 9사단장으로 백마고지 전투에서 대승한다. [34] 1973년 사단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북한의 대남 도발에 포병 대응 사격을 지시했었다. 2016년 2월 3일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35] 12.12 군사반란 당시 사단장으로 재직했다. 하나회의 핵심 인물임에도 최전방 사단장이었기에 쿠데타에 가담할 수가 없었다. 이 덕분에 결과적으로는 김영삼 정부 출범 때 화를 면할 수 있었다. [36] 2007년 11월 30일 전역 당시 추운 날씨에 부하 장병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며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전역식을 고사했다. [37] 아버지는 육사 7기인 이만복 예비역 소장이고 장인어른은 육사 9기인 안병욱 예비역 소장이다. 육사 졸업 당시 대표화랑상을 받았고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한미연합사 작전차장으로 한미연합 대테러 대비 태세를 총괄했다. [38] 육군참모총장, 제2작전사령관 [39] 연평도 포격전 당시 대적관 구호를 만들었다. [40] 사단장, 2군단장 역임. 前 제3야전군사령관. 합참 시절 아덴만 작전 기획. 처제가 중견 탤런트 윤현숙인 줄 알았으나 처의 8촌 여동생이다. 김운용 대장의 장인과 윤현숙의 아버지는 동명이인인데 둘의 관계는 6촌 관계이고 김운용의 장인은 윤용남 전 합참의장과는 동갑내기 사촌 관계이자 육사 동기(육사 19기)이다. [41] 사단장 재임 시절 백골컷 탄생의 장본인. 비육사 출신 최초의 특전사령관이자 육군참모총장. [42] 사단장 역임 후 국방개혁비서관으로 영전하였다가 2019년 11월 8일 중장으로 진급하였는데 진급 후에도 6개월간 국방개혁비서관으로 있다가 직속상관인 제5군단장에 취임하였으며, 취임 다음 날 자신의 후임 사단장이었던 신상균 소장의 이취임식을 주관하였다. [43] 관련 기사 # [44] 조교로 뽑혔다는 루머가 있었으나, 평범한 군생활을 하고싶다는 본인 의사에 따라 포병으로 자대 배치를 받았다. [45] 사실은 조교로 지원했다가 문신 때문에 조교에서 떨어졌다는 말도 있다. [46] 축하한답시고 박수를 치거나 환호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나마 나은 축은 위로의 말을 건네는 케이스. [47] 번지점프도 가능하다. [48] 철원이 산으로 유명한 강원도에서 뜬금없이 양질의 쌀로 유명한 지역임을 생각해 보자. 다만 담당하는 GOP 섹터만큼은 험준한 걸로 유명하다. [49] 하지만 철원의 강설량은 강원도 지역 못지않으며 추위로는 강원도 일부 지역도 한 수 접어줄 정도이다. 단지 근무를 서는 섹터의 일부 지형만 편하게 되어있을 뿐이다. [50] 편한 섹터도 22여단이 18여단보다 덜 주목받는 이유에 포함되기도 한다. 물론 북한의 주 침공로로 예상되는 평야 지역도 전시에 탱크들이 밀고 들어오는 곳이라 엄청나게 중요하다. [51] 자대에 따라서 말년은 물론이고 제대 하루 전날에도 밀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52] 당시 강원도 소속이였던 울진군에서도 발생 [53] 한국군에서 호랑이를 용맹의 상징, 상남자의 상징으로 여기듯 미군이나 외국군들은 해골하면 무언가 마초적인 이미지로 여기는게 많다. 특히 미군들이 비번때 입는 티셔츠 가운데 서양판 저승사자인 그림 리퍼가 디자인된 부대 티셔츠는 최애 굿즈이기도 하다. 그림 리퍼의 얼굴은 대개 없거나 해골로 처리된 그림들이 많기 때문. 더러는 뱀이 해골의 안구의 구멍으로 나오는 마초적인 그림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