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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 문서: 제1보병사단/신병교육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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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 | 해체된 사단 |
<colbgcolor=#F2D53C><colcolor=#C21D2B> 제1보병사단 第一步兵師團 The 1st Infantry Division |
|
국군의 First 우리는 전진부대 | |
창설일 |
1947년
12월 7일(제1여단) 1949년 5월 12일(제1보병사단) |
상징명칭 | 전진(前進)부대 |
소속 | 대한민국 육군 |
상급부대 | 제1군단 |
경례구호 | 전진 |
규모 | 사단 |
역할 |
경기도
파주시 일대 방위 및 수색 최전방 서부전선 GOP 및 강안 경계 개성공단 관련 임무, 공동경비구역(JSA) 지원 |
사단장 | 소장 양진혁 (육사 52기) |
작전부사단장 | 준장 조웅 (학사 21기) |
행정부사단장 | 대령 OOO (육사 48기) |
참모장 | 대령 김상근 (학군 36기) |
위치 |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
[clearfix]
1. 개요
|
제1보병사단 소개영상 |
사단령 제1조(설치) ① 육군에 사단을 둔다. ② 사단은 관할구역의 작전·훈련 및 군 행정에 관한 사항을 관장한다. |
대한민국 육군 제1군단 예하 제1보병사단. 상징명칭은 전진부대[1]. 경례구호는 전진. 사단사령부는 정문 기준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에 위치하고 있다.
2. 역사
미군정이 1946년 1월 15일 창립한 국방경비대는 동년 6월에 조선경비대로 명칭을 바꾸고서 1947년 12월 1일에 3개 여단을 창설하였는데 그중 '제1 여단'(서울)이 1949년 5월 12일 '제1사단'으로 승격된 것이 제1보병사단의 시작이다. 초대 여단장은 중국 국민혁명군 및 독립군 출신의 송호성[2] 준장이었다. 그러나 일본군 출신이 군을 장악함에 따라 김구와 가까웠던 송호성 준장이 밀려나고 1948년 2월 5일에는 일본 육사 26기 이응준 대령이 제2대 여단장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1949년 1월 7일에 일본 육사 27기 출신의 김석원[3] 대령이 3대 여단장으로 부임하였고 1949년 5월 12일에 여단이 사단으로 승격됨으로써 여단장 김석원 대령이 그대로 초대 사단장에 취임했다. 같은 해인 1949년 5월에는 11연대가 북한군과 개성에서 5.4 송악산 충돌( 육탄10용사) 국지전을 벌이게 된다. 이후 개성등을 포함하는 38선을 경비하는 임무를 맡았다. 1949년 10월 1일에는 일본 육사 26기 유승렬 대령이 제4대 사단장을 맡았으며, 1950년 4월 22일에는 역시 만주군 간도특설대 출신의 백선엽 대령이 제5대 사단장으로 취임하였다.6.25 전쟁 발발 이후에는 개성과 임진강 및 파주에서 방어전을 펼쳤고, 개성에서 방어전을 펼치다가 김포 및 파주로 분산 후퇴한 12연대를 제외하고 11연대 및 13연대, 증원된 5사단 15연대는 한강교 폭파이후 에는 한강을 도하하여 시흥지구방어사령부까지 후퇴하였다. 비록 한강도하철수 당시 변변한 도하장비가 없어 중화기는 모두 파기한채 시흥지구까지 철수하였지만, 이곳에서 분산된 12연대 및 타 연대병력까지 최대한 수습하고 중화기도 다시 보충받아, 사단 및 연대 건제를 유지한 채 지연전을 벌이며 낙동강까지 철수해 대구 다부동 전투에서 승리하여 낙동강 전선을 지켰다.
인천 상륙 작전 이후 10월 19일 평양 탈환작전에서 북한군들을 물리치고 평양시에 가장 먼저 입성하는 부대가 되었다. 이때 선봉에 섰던 미1군단에 소속된 부대 중 미 제1기병사단과 미 제24보병사단, 1보병사단 간에 평양 선봉 입성을 위한 경쟁이 붙었다. 1보병사단에는 미군 전차부대가 사단에 배속되어 있었는데, 속도에 맞추기 위해 전차부대는 낮에는 이동하고 밤에는 휴식, 보병부대는 낮이나 밤이나 그냥 걸었다. 당시 미군 전차병들도 '우리는 미군이지만 지금은 1사단이다'라며 협동을 강조했고, 이후 1사단 연대들간 선봉 경쟁이 붙어 동평양(11/12연대)과 본평양(15연대) 전역을 점령한 부대가 되었다. 평양 입성 다음 날인 10월 20일에 이승만 대통령이 평양 선봉 입성을 기념하여 '계속 전진하여 통일의 위업을 달성하라'는 의미로 전진이라는 부대 명칭을 내린다.
참고로 7사단도 부대 역사에 이승만 대통령의 밀명에 따라[4] 18일 오후 평양에 입성한 건 사실이지만 이것은 평양 점령이라기 보다는 평양 강행정찰에 가까운 성격이다. 실제 평양에 선봉 입성한 7사단의 부대는 8연대 9중대 하나뿐이고, 뒤따라 들어온 8연대와 3연대, 그리고 8연대를 얼떨결에 따라와 임시 배속되었던 1사단 15연대 1개 대대는 1사단의 전투지경선을 멋대로 침범해 정당성이 부족했고, 게다가 이 명령을 내린 이승만 대통령조차 1사단만 치켜세웠기에 정식 인정되지 않고 있다. 자세한 건 평양 탈환작전 참고.[5]
이후 중공군의 개입 이후에도 사단 건제를 유지한 채 후퇴하였다가 다시 북진해서 개전 직후 방어하였던 임진강-파주 지역에 돌아오게 된다. 이 시기 1사단이 겪은 주요 전투로는 중공군 5차 공세의 주공을 저지한 파평산 전투가 있다. 이후 6.25 전쟁이 휴전될 때까지 후방 재편성 및 일부부대 전용을 제외하고는 해당진지를 고수한 채 휴전을 맞는다. 물론 그동안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밀려오는 중공군을 상대로 격전을 벌인 것은 다른 지역과 동일했다.[6]
6.25 전쟁에서는 미군이 가장 신뢰한 국군 사단으로 유명했다. 그 결과 다부동 전투 이후 미 육군 군단에 배속되어 강력한 포병 및 전차 지원을 받았으며, 정전 때까지 사단 건제를 끝까지 유지한[7] 정예사단으로 평가받았다. 미군이 항상 신뢰하는 유일한 국군 사단이었다. 백선엽 장군이 1년여의 전쟁 전반 기간 동안 사단을 안정적으로 계속 이끌기도 했다. 사단장이 승진과 보직변경으로 물러날 때는 이미 타 사단의 사단장들은 다른 인물로 여러번 교체된 이후였다.[8]
전두환 사단장이 재임하던 시기인 1978년에는 제3땅굴을 발견하기도 했다. 도라산 바로 밑에 있기에 도라산역 관광코스로 끼어있기도 한다. 참고로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당시 작업반으로 위장한 특전사가 진입할 때 판문점을 둘러싸고 수색대대, 중대 병사들이 전투태세를 취한 채 수풀 안에 매복해있었다.
2020년 국방개혁으로 인해 12월 1일부로 예하 연대(11, 12, 15, 포병)들이 여단으로 변경되었다.
2024년 1월부로 신병교육대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3. 예하부대
제1보병사단의 예하부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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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병여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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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SA 경비대대는 1사단 예속이 아니나 행정지원으로 엮여 있다. |
3.1. 사단직할대
- 본부근무대
- 수색대대
- 공병대대[9]
- 제7전차대대[10]
- 정보통신대대
- 군수지원대대
- 군사경찰대대[11]
- 의무대대[12]
- 화생방대대[13]
- 방공중대
- 정보중대
- 보충중대
- 서해지구군운영단( CIQ)
- 전진회관
- 지원부대
3.2. 제11보병여단 육탄
- 여단본부
- 제1대대 일월성
- 제2대대 율곡
- 제3대대 백학(GOP)
- 포병대대
- 군수지원대대
자세한 내용은
제11보병여단 문서 참고하십시오.
3.3. 제12보병여단 쌍용
- 여단본부
- 제1대대 마정
- 제2대대 운천
- 제3대대 도라(GOP)
- 포병대대 풍익
- 군수지원대대
자세한 내용은 제12보병여단 문서 참고하십시오.
3.4. 제15보병여단 무적칼
- 여단본부
- 제1대대 으뜸 (방미)
- 제2대대 필승 (장단(강안경계))
- 제3대대 여우고개
- 포병대대 무적칼
- 군수지원대대
자세한 내용은 제15보병여단 문서 참고하십시오.
3.5. 포병여단 으뜸
- 여단본부
- 통신중대
- 표적흭득포대
- 다련장사격대
- 제17포병대대 백곰(K55A1) [15]
- 제58포병대대 백호(K55A1)
- 제59포병대대 사자(K55A1)
- 제629포병대대 독수리(K9)
자세한 내용은 제1보병사단 포병여단 문서 참고하십시오.
4. 과거부대
- 신병교육대대
- 정비대대
- 토우중대
5. 출신인물
5.1. 사단장
볼드체는 대장 진급이 된 사단장. |
||<-6><bgcolor=#F2D53C> 역대 제1보병사단장 ||
신현돈 대장 이후로 부대 명성에 비해 사단장들 대부분이 소장으로 전역하는 등 예후가 영 좋지 않았다. 허나 최근 박정환 사단장과 강호필 사단장이 대장 진급에 성공했고, 서진하 사단장도 중장 진급에 성공하여 이전보다 예후가 좋아지는 모습을 보였다.역대 | 이름 | 계급 | 임관 | 비고 | 기타 |
초대[16] | 송호성 | 준장 | 보정군관학교 | 前 태백산지구 전투사령관 | |
2대[17] | 이응준 | 예) 중장 | 일본육사 26기 | 前 육군참모총장 | |
3대[18] | 김석원 | 예) 소장 | 일본육사 27기 | 前 수도사단장 | 前 국회의원 |
4대 | 유승렬 | 예) 소장 | 일본육사 26기 | 前경남지구 계엄사령관 | |
5·7대[19] | 백선엽 | 예) 대장 | 군사영어 | 前 합동참모의장, 육군참모총장, 제1야전군사령관 | 前 교통부장관 |
6대[20] | 최영희 | 예) 중장 | 군사영어 | 前 합동참모의장, 육군참모총장, 제2작전사령관 | 前 국방부장관 |
8대 | 강문봉 | 예) 중장 | 군사영어 | 前 제2작전사령관 | |
9대 | 박임항 | 예) 중장 | 육사 특7기 | 前 제1야전군사령관 | |
24대[21] | 전두환 | 예) 대장 | 육사 11기 | 前 국군보안사령관 | 前 대한민국 대통령 |
00대 | 최연식 | 예) 중장 | 육사 11기 | 前 육군사관학교장 | |
00대 | 김을권 | 예) 소장 | 육사 13기 | 前 사단장 | [22] |
00대 | 최평욱 | 예) 중장 | 육사 16기 | 前 국군보안사령관 | 前 산림청장, 철도청장 |
00대 | 김동진 | 예) 대장 | 육사 17기 | 前 합동참모의장, 육군참모총장, 한미연합군부사령관 | 前 국방부장관 |
00대 | 길형보 | 예) 대장 | 육사 22기 | 前 육군참모총장, 제3야전군사령관 | |
00대 | 송영근 | 예) 중장 | 육사 27기 | 前 기무사령관 | 前 19대 국회의원 |
39대 | 정승조 | 예) 대장 | 육사 32기 | 前 합동참모의장, 한미연합군부사령관, 제1야전군사령관 | |
40대 | 황중선 | 예) 중장 | 육사 32기 | 前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 |
41대 | 이성호 | 예) 중장 | 육사 33기 | 前 국방대학교 총장 | 前 국민안전처 차관 |
42대 | 신현돈 | 예) 대장 | 육사 35기 | 前 제1야전군사령관 | |
43대 | 서형석 | 예) 소장 | 육사 37기 | 前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참모장[23] | |
44대 | 하창호 | 예) 소장 | 육사 39기 | 前 육군교육사령부 부사령관 | |
45대 | 장경수 | 예) 소장 | 육사 41기 | 前 국방부 국방정책실장 직무대리 | |
46대 | 이종화 | 예) 소장 | 육사 42기 | 前 육군학생군사학교장 | |
47대 | 박정환 | 예) 대장 | 육사 44기 | 前 육군참모총장 | |
48대 | 김홍석 | 예) 소장 | 육사 46기 | 前 국방대학교 총장 | |
49대 | 강호필 | 대장 | 육사 47기 | 現 지상작전사령관, 前 합동참모차장 | |
50대 | 서진하 | 중장 | 육사 49기 | 現 제3군단장 | |
51대 | 최창수 | 소장 | 육사 51기 | 前 사단장 | |
52대 | 양진혁 | 소장 | 육사 52기 | 現 사단장 |
5.2. 장교/부사관
5.2.1. 6.25 전쟁 전후[24]
- 송석하 : 6.25전쟁 이전(1948년) 12연대장 → 6.25전쟁기 사단 포병단장 역임
- 채명신 : 6.25전쟁 이전 개성 송악산 전투 당시 11연대 4중대장 역임
- 최경록 : 6.25전쟁 발발 당시 11연대장 역임(후임 김동빈)[25]
- 김동빈 : 6.25전쟁 초반 11연대장 → 6.25전쟁 중반 사단 참모장 역임
- 전성호 : 6.25전쟁 발발 당시 12연대장 역임(후임 김점곤)[26]
- 김점곤 : 6.25전쟁 발발 당시 12연대장 역임[27]
- 박기병 : 6.25전쟁 초반 12연대장 역임[28]
- 김익렬 : 6.25전쟁 발발 당시 13연대장 역임(후임 최영희)
- 조재미 : 6.25전쟁 초반 15연대 1대대장 → 15연대 부연대장 → 15연대장 역임(후임 김안일)
- 노재현 : 6.25전쟁 발발 당시 사단 포병대대장 역임
- 박영식 : 6.25전쟁 초반 사단 포병대대장 역임
- 김영석 : 6.25전쟁 초반 사단 공병대대장 역임
- 석주암 : 6.25전쟁 초반 사단 참모장 역임
- 김덕준 : 6.25전쟁 발발 당시 사단 작전참모 역임(후임 문형태)[29]
- 문형태 : 6.25전쟁 초반 사단 작전참모[30] → 6.25전쟁 중반 11연대장 역임
- 박경원: 6.25전쟁 초기 사단 군수참모 역임
- 동홍욱 : 6.25전쟁 초반 사단 통신중대장 역임
- 윤혁표 : 6.25전쟁 초반 사단 통신참모 역임
- 김판규 : 6.25전쟁 초반 사단장 부관 역임
- 최재명 : 6.25전쟁 초반 15연대 작전참모 역임
- 이무중 : 6.25전쟁 초반 12연대 예하 3대대장 역임. 38선 돌파 당시 11연대 예하 3대대장을 역임했으나 전사.
- 김재명 : 6.25전쟁 중 다부동 전투 당시 11연대 예하 대대장 역임
- 이두황 : 6.25전쟁 중 다부동 전투 당시 11연대 예하 대대장 역임
- 차갑준 : 6.25전쟁 중 다부동 전투 당시 11연대 예하 대대장 역임
- 정영홍 : 6.25전쟁 중 다부동 전투 당시 11연대 예하 대대장 역임
- 김소 : 6.25전쟁 중 다부동 전투 당시 11연대 예하 대대장 역임
- 한순화 : 6.25전쟁 중 다부동 전투 당시 12연대 예하 대대장 역임
- 조성래 : 6.25전쟁 중 다부동 전투 당시 12연대 예하 대대장 역임
- 박병수 : 6.25전쟁 중 다부동 전투 당시 12연대 예하 대대장 역임
- 김진위 : 6.25전쟁 중 다부동 전투 당시 15연대 예하 대대장 역임
- 유재성 : 6.25전쟁 중 다부동 전투 당시 15연대 예하 대대장 역임
- 안광영 : 6.25전쟁 중 다부동 전투 당시 15연대 예하 대대장 역임
- 최병순 : 6.25전쟁 중 다부동 전투 당시 15연대 예하 대대장 역임
- 김국주 : 6.25전쟁 중 다부동 전투 당시 15연대 6중대장 역임[31]
- 유흥수 : 6.25전쟁 중반 부사단장 역임
- 박진석 : 6.25전쟁 중반 사단 작전참모 역임
- 김안일 : 6.25전쟁 중반 15연대장 역임
- 문중섭 : 6.25전쟁 정전 이후(1955년) 12연대장 역임[32]
5.2.2. 6.25 전쟁 이후
- 이익수 : 1.21 사태 당시 15연대장 역임 중 전사. 사후 준장 추서
- 김태영 : 59포병대대 A포대 관측장교/전포대장 역임(초임)
- 박영하 : 11연대장 역임
- 박성훈 : 11연대장, 부사단장 역임
- 권혁순 : 대대장 역임
- 김영식 : 작전처 부대훈련장교 → 11연대 1대대장 역임
- 전인범 : 작전부사단장 역임
- 김용우 : 수색대대 소대장 역임
- 김현섭 : 수색대대장, 11연대장 역임
- 이종명 : 수색대대장 역임
- 김운용 : 12연대장 역임
- 서정열 : 포병연대장 역임
- 서욱 : 11연대 2대대장, 작전참모 역임
- 남영신 : 11연대 3대대장 역임
- 안영호 : 11연대장 역임
- 김승겸 : 12연대장 역임
- 김정수 : 15연대장 역임
- 김성일 : 작전부사단장 역임
- 박진영 : 수색대대장, 정보참모 역임
- 문병삼 : 11연대장, 참모장 역임
- 이승오 : 12연대장 역임
- 김기홍 - 59포병대대장 역임
- 정상환 - 58포병대대장 역임
- 황진하 - 58포병대대장 역임
- 고성균 - 12연대 중대장 역임
- 최진원 - 15연대 중대장 역임
- 김창섭 - 629포병대대 본부포대장 역임
5.3. 병
-
기미티 - BJ
12연대 전투지원중대에서 복무 도중 GOP에 올라가지 못하여 본부중대로 전입 후 점심시간 방송병(정훈과)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
김광현 - 프로게이머
사단 군악대 출신.
-
김수현 - 배우
2017년 10월 23일, 파주시 소재 1사단 신교대로 현역 입소했다. 원래는 심장질환으로 4급 판정을 받았지만 꾸준한 관리로 재검결과 1급 현역 판정을 받아 입대하게 된 것이다. [YTN] 공익에서 현역으로.. 김수현, 오늘(23일) 군 입대 신교대 수료후 사단 수색대대로 자대배치를 받았다. 원래는 특전병으로 지원하려고 했으나 특전병은 만 28세 이하만 지원이 가능해 수색대로 바꿨다.
-
김원태 -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1983년 2월 9일 입대, 소총수, 1985년 8월 8일 병장 만기전역.
-
박건호 - 농구선수
629포병대대 2포대 출신
-
박정우 - 배우
제15보병여단 여단본부 수색중대에서 복무중이다.
- 박지수 -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
백상현 - 스트리머
1사단 15연대 수색중대 출신이라고 한다. 원래 잠복고환이 있어 병역면제 대상이었으나 본인이 잠복고환이 병역면제가 되는 병인지 몰라서 그냥 현역복무를 했다고 한다.
-
배호영(작가) - 연구인, 작가
1사단 수색대대 출신.
-
손주영 - 야구선수
12연대 경의선 경비대 출신.
-
승냥이 - 유튜버, 범죄자
탈영 전과가 있다.
- 싱호 - 코미디언
-
안진 - 야구선수
15여단 수색중대 출신, 한화 이글스 선수이다.
-
얍얍 - 스트리머
1사단 전진회관 회관병
-
위대한 - 전 야구 선수
11연대 1대대 1중대 출신
-
윤상 - 가수
1993년 12월 입대, GOP 근무
-
이규한 - 배우
포병연대에서 근무했다.
-
이중석 - 해커스 공무원 한국사 강사
신병교육대대 조교로 복무했다고 강의에서 언급한 바 있다.
-
이창율 - 전 야구선수
12연대 경의선 경비대 출신.
-
이현우 - 배우
사단 수색대대 복무
-
임원희 - 배우
11연대 소속 GOP 근무병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
장진 - 영화 감독
11연대 3대대 11중대에서 대대 천주교 군종병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 제황 - 유튜버, 스트리머
-
조훈 - 코미디언
신병교육대대 조교로 근무
-
차서원 - 배우
-
최욱 - 방송인, MC
GOP 행정병[34]으로 군 복무. 상병 시절 TV 내무반 신고합니다에 출연하여 김장종 예비역 병장을 대역한 연기를 보이기도 하였다.
-
최원홍 - 배우
2020년 10월 26일 입대
-
최학범 - 경상남도의회 의원
1987년 4월 29일 입대, 통신병(유선가설병)으로 복무, 1989년 10월 26일 병장 만기전역.
-
홍학표 - 배우
사단 문화선봉대에서 병사로 복무하며 부대 행사의 사회자로 활약.
6. 특징
경기도 파주시에 주둔하고 있으며 주둔 지역은 임진강을 넓게 끼고 있다. 개성공단 출입인원을 관리하는 서해지구 군 운영단(舊 도라산 CIQ)와 임진강을 건너는 통일대교도 관리하고 있어서 각종 미디어에 출연 빈도가 아주 많은 부대다.사단이 수도권에서 가까운 최전방 지역이어서 안보견학 및 어르신들의 효도관광 코스로도 인기 있는 지역. 수도권에서 제일 가까운 최전방 부대라는 이유로 정치인, 국빈들의 외부 부대방문도 잦은 편이다. JSA 경비대대 또한 1사단의 지역에서 행정 지원 및 보급을 받지만 이쪽은 1사단 소속이 아니며 일단 유엔사에 정보작전권한이 있다. 물론 JSA 근처에 국빈이 오면 며칠 동안 그 지역엔 비상경계가 내리는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미국 국빈방문이 종종 있기도 하다. 아님, 중립국감독위원회 측 외빈이 찾아오거나 군생활 동안 외빈들이 절대로 안 오길 기도하자. 또한 1사단은 담당하는 곳이 제일 많은 사단이라 할 수 있다. DMZ수색작전, 개성공단 출입관리, GP 및 GOP경계, 임진강 및 통일대교 경계, JSA 작전지원 등 임무가 많은 부대다.
6.1. 근무환경
지리적인 조건은 휴전선의 서쪽 끝이기도 하고 좋은 축에 속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엄밀히 말하면 1사단 전 지역이 지형적으로 좋은 건 아니다.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는 12여단과 15여단의 섹터가 임진강을 끼고 있고 비교적 평야지대기 때문에 생긴 이미지다. 11여단의 경우 담당 경계구역의 상당부분이 산악지형이라 물자 보급을 케이블카로 받아야만 하는 소초들도 있고 지형 면에서 강원도 저리가라 할 곳도 있다. 더불어 1사단 내에서는 가장 추운 곳 중 하나. 임진강과 서해안이 가까워 겨울에 강바람이 무척 강하게 부는 편이다.GP, GOP의 후방에는 FEBA 부대가 자리잡고 있는데, 적의 공격을 저지해야 하는 최전방 사단답게 훈련량과 강도가 있는 편이다. 또한 장병들의 체력 증진을 위해 기초체력단련과 군장 뜀걸음, 레그턱, 베어워크 등 전장순환운동을 포함한 전투체력단련을 매일 실시한다.
서울에서 매우 가깝기도 한데, 사단 위수지역 내로 서울 소속 버스와 서울로 가는 전철이 둘 다 들어오는 유일한 최전방 사단이기도 하다.[35] 이 때문에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 거주하는 경우에도 굉장히 출타여건이 좋다. 오히려 후방에 애매한 지역에 갈 바에야 여기로 오는게 더 좋을 수도 있다.
위수지역이 2011년까지는 파주시 시내, 그중에서도 금촌역까지가 대부분이었으나, 2012년에 하창호 사단장[36]이 부임한 이후 상급부대인 제1군단과의 협의를 통해 1사단 전 부대의 위수지역을 고양시까지 확장하였다. 이에 따라 일산신도시까지 합법적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현재는 서울 강북 일부 지역까지 출타가 가능하다.
여름철에는 파주의 유명한 모기와 사투를 벌이며 클로로퀸이라는 아주 독성이 강한 말라리아 약을 먹어야 한다. 약의 부작용이 심한 사람은 차라리 말라리아에 걸릴 각오로 약을 버리기도 하지만 말라리아가 잘 걸리는 지역이다보니 간간히 말라리아에 걸려서 실려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거기다 말라리아의 경우 잠복기간이 6개월~1년이 넘기도 하므로 전역후 발병하는 재수없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헌혈의 집에서도 이쪽에서 복무했던 사람을 잘 안받아준다.[37] 이곳은 들쥐로 인해 전염되는 제2종법정전염병인 유행성 출혈열로 유명하다. 한탄바이러스의 한탄강이 이곳 관할이다.
임진강 하류를 넓게 끼고 있다 보니 GOP 경계와 동시에 강안 경계도 맡고 있다. 실제로 95년 임진강 벼락바위 일대에서 임진강 하류로 침투하는 간첩을 격멸한 벼락바위사건도 있다. 사단가에도 언급되듯이 제3땅굴 발견 등과 함께 부대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게다가 이 부대는 전방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거점인 관계로 완벽한 진급코스이다. 그래서 장교라면 이 부대에서 한 번 이상은 복무해야 장성까지 무난하다. 이 부대에서 복무했던 장교 중 예비역 대장들이 상당히 많은 것은 괜한 이유에서가 아니다. 병들 역시 1사단의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메이커 사단임에도 불구하고 선호한다.
6.2. 전진회관
전진회관 前進會館 Jeon Jin Ha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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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임당로 104 |
6.3. 사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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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내 조국 삼천리를 지켜서 싸워가는 우리는 맹호 같은 필승의 용사로다[38] 송악산 10용사의 투혼을 본 받아서 옹진전투 싸워 이긴 명예로운 1사단 청사에 찬란히 길이 빛날 전공을 세기에 휘날리는 당당한 사단 1사단 1사단 천하의 1사단 승리의 개가를 높이 불러라 (2절) 세계에 이름떨친 평양성 공략작전 서울을 재탈환한[39] 우리의 장한무훈 임진강 대반격전 신벽제 봉일천들 차례로 싸워이긴 승리의 1사단 청사에 찬란히 길이 빛날 전공을 세기에 휘날리는 당당한 사단 1사단 1사단 천하의 1사단 승리의 개가를 높이 불러라 (3절) 인류의 자유평화 위하여 전진하는 제1의 용사들이 굳세게 뭉치었다 조국의 통일위해 들끓는 이 가슴들 화랑의 정신으로 단결한 1사단 청사에 찬란히 길이 빛날 전공을 세기에 휘날리는 당당한 사단 1사단 1사단 천하의 1사단 승리의 개가를 높이 불러라 (4절) 충성과 명예로써 단결된 전진부대 우리의 가슴에는 통일의 굳은 의지 3땅굴 발견하여 드높은 이 기상을 통일의 그날까지 떨쳐가는 1사단 청사에 찬란히 길이 빛날 전공을 세기에 휘날리는 당당한 사단 1사단 1사단 천하의 1사단 승리의 개가를 높이 불러라 |
7. 사건 사고
- 2002년 2월 19일 1사단 12연대 1대대 2중대 3소대가 소초장 중위 조현권, 부소초장 하사 장학선이 경계임무중이던 GOP부근 000초소에서 경계병 병장 하재훈, 이병 양승섭에 의해 북한군 주성일(22) 상급병사(우리군 병장)가 19일 오후 11시 18분께 경의선 남측 최북단 도라산역 인근으로 귀순 https://www.mk.co.kr/print/2707815
- 2007년 3월 9일 15연대 모 대대에서 대대장과 대대 주임원사가 반환미군기지에서 나온 고철을 무단으로 매각했다는 이유로 군사경찰대에 연행되는 일이 있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이 횡령을 하거나 한 것은 아니다. 고철을 매각한 대금은 대대장과 대대 주임원사가 개인적으로 유용하지 않고 부대 시설개선(주로 운동기구 마련)에 사용했다.
- 연평도 포격전 후 당시 1사단 포병연대의 모 포병대대[40]에서 북 도발에 대한 훈련이라는 명목하에 155mm 견인포로 실탄 장전 연습 도중 실수로 적 GP 부근 DMZ를 향하여 실탄을 발사하였다. 당시 1사단장은 당장 전 병력 방탄착용 후 대피하라 지시를 하였고, 다행히도 큰 일없이 잘 넘어갔다.[41]
- 2015년 10월 29일 새벽 5시, 경기도 파주시 육군 1사단 GOP에 근무하던 박 모 일병이 후임과 같이 경계근무를 서던 중에 화장실 간다고 자리를 비운 뒤 가지고 있던 수류탄을 터트려 자살했다. 박 일병이 군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자살한 것으로 보고 조사했지만 “가족에게 미안하다” 등 선임들의 구타와 부대 내 부조리를 암시하는 내용의 메모를 발견되면서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로 인해 자살한 걸로 밝혀졌다. 보도 기사 자세한 내막의 기사
- 2015년 DMZ 목함지뢰 매설 사건이 일어난 부대이기도 하다. 항목 참조.
- 2024년 6월 7일, 2024년 북한 대남 오물 풍선 살포 사건 추가 살포 예정 당시, 1사단장과 참모들이 음주 회식을 진행했다는 제보를 접수하고, 지상작전사령부에서 감찰에 착수했다고 한다. # 이후 6월 8일, 최창수 사단장은 직무배제 되었으며, 6월 19일 최종 보직해임되었다. # 후임으로는 양진혁 준장이 임명되었는데 준장이 직무대리가 아닌 정식 상비사단장으로 임명된 것으로 보아 양진혁 본인은 하반기 인사에서 소장 진급이 99% 정도로 매우 유력해졌다.
8. 여담
- 제1보병사단이 선봉으로 평양에 입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예하 여단들이 서로 자기가 평양에 선봉으로 입성한 부대라고 자랑질을 하고 있다. 15여단은 부대 정문에 "평양선봉입성부대", 12여단은 부대 정문에 "평양입성선봉부대" 라는 팻말을 걸고 있다. 전시상황에서 사단장이었던 백선엽 장군의 기록에 따르면 15여단이 선봉 입성이다. 그런데 2016년 8월 기준으로 12여단 정훈장교가 기록을 모조리 뒤져 12여단이 먼저 입성했다는 증거를 찾았다며 예하부대를 돌아다니면서 교육했다. 12여단에 배속된 미군 전차부대를 선두로 평양 외곽에 입성하여 15여단에 안전하게 입성할 수 있게 방비해줬다고 한다.
- 메이커 사단 중에서도 최상위로 꼽힌다. 그리고 이 사단 자체가 요직이며 이 곳에 배치되는 장교들은 진급이 정말 잘 된다.
- 6.25 다큐멘터리에서 자주 제1보병사단이 등장하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미군과 자주 붙어다녀서이다.
- 자주국방네트워크 신인균 대표는 2013년 7월 종편 채널A의 시사프로 쾌도난마에 출연하여 정전 60주년 기념특집으로 6.25 전쟁에서 가장 잘 싸운 5대 국군부대를 꼽았는데, 전진부대는 2위로 평가했다. (참고로 신인균의 개인의견일 뿐이다.)
- 1위-육군 제6사단(청성부대.
춘천 전투,
용문산 전투 등)
- 2위-육군 제1사단(전진부대. 다부동 전투, 평양 탈환 등)
- 3위-해병대(진동리 전투, 통영 상륙작전, 인천 상륙 작전, 도솔산 전투 등)
- 4위-육군 제3사단(백골부대. 38선 첫 돌파, 원산 전투, 현리 전투[42] 등)
- 5위-육군 수도사단(맹호부대. 진천 전투, 안강-기계 전투 등)
- 2위-육군 제1사단(전진부대. 다부동 전투, 평양 탈환 등)
- 3위-해병대(진동리 전투, 통영 상륙작전, 인천 상륙 작전, 도솔산 전투 등)
- 4위-육군 제3사단(백골부대. 38선 첫 돌파, 원산 전투, 현리 전투[42] 등)
- 5위-육군 수도사단(맹호부대. 진천 전투, 안강-기계 전투 등)
-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진태, 진석 형제의 소속은 이 1사단이다. 다만 진석의 경우 마지막 두밀령 전투에서 형을 찾기 위해 인근 부대(정황상 8연대)로 자진 전출가는 바람에 기록이 꼬여버렸다. 그나마 감식단이 전화할 때 8연대 부분은 빼고 불렀다. 그리고 말이 씨가 된다고, 진석 역의 원빈은 이후 7사단 8연대 GOP로 전입 후 진석과 마찬가지로 다리에 문제가 생겨 의병전역했다.
- 캐나다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에서 동현은 아버지의 유품이 들어있는 배낭에서 아버지의 군복을 찾는데, 이 군복에 1사단 마크가 붙어있다.
- 도라산 정상의 도라전망대도 같이 관리하는데, 도라전망대에서 망원경쪽 벽을 월담하면 바로 DMZ다. 덤으로, 도라전망대엔 군인들만을 위한 공짜 망원경이 있는데, 민간인도 몰래 이용한다. 보다보면 중국인 관광객도 와서 구경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12.12사태 당시 신군부 측에서 동원된 전차부대가 1사단 전차대대 소속이라는 오해가 있는데, 당신 동원된 전차대대는 제1군단 황영시 중장 예하 제2기갑여단 이상규 준장(하나회)의 16전차대대이다. 1사단 관할지역은 서울 근교가 아닌 최오지 전방이라 12.12사태에 낄 수 없는 부대이다.[43]
- 이 부대의 위수지역에 초평도라는 섬이 있다. 이 섬은 임진강 중류에 위치한 하중도이며 현재는 민통선 내에 있어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다. 원래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섬의 규모도 상당히 넓은 섬이였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후 휴전이 성립되어 휴전선이 결정되자 이 섬은 민통선 내에 들어가 버려 그 이후 주민들이 모두 떠나고 현재는 무인도가 되었다.
- 무한도전 자유로 가요제 때 협조 해줬다. 가요제가 임진각에서 했는데 가뜩이나 대중교통이 불편한 이곳에 사람들이 그렇게 몰리니 별수 있나. 제1보병사단 군인들이 인원통제를 도와줬었다.
- 일본 방송국에서 제1보병사단 전방을 방문, 다큐멘터리를 촬영한 적이 있다. 내용이 크게 잘못된 것은 없었고 한국의 징집된 장병들이 이전에는 각자 사회에서 했던 일들을 보여주는 것으로 분단의 비극을 보여 주려 했다.
- 단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 군사경찰대대와 공병대대는 한 위병소 두 집 살림을 살고있으며(유격대 및 사단법무부 또한 영내에 위치해 있다), 한때 정비대대,보급수송대대, 의무근무대가 한 위병소 세 집 살림을 하였으나 현재는 의무근무대가 신병교육대대로 이사갔다. 의무대와 전차대대, 신교대가 모두 한 울타리 안에 있다. 다리로 건너다닐 수 있다.
- 같은 시기에 서욱 중령(육사 41기)은 11연대 2대대장, 서욱과 같은 해에 임관한 남영신 중령(학군 23기)은 11연대 3대대장을 역임했다. 두 사람은 1985년에 임관한 동기이다. 두 사람 모두 문재인 정부에서 중용되었고 결국 대장까지 진급하여 순서대로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했다.
- 또한 같은 시기에 안영호 대령(육사 42기)은 11연대장, 김승겸(육사 42기) 대령은 12연대장, 김정수(육사 43기) 대령은 15연대장을 역임했다. 이 세 사람도 군인으로서 성공했는데 안영호 대령은 25사단장과 1군단장 등을 거쳤고 합참 작전본부장을 끝으로 전역하여 예비역 중장이 되었다. 김승겸 대령은 28사단장, 3군단장을 거쳐 대장 진급 후에 한미연합사부사령관을 지내고 현재 합참의장을 맡고 있다. 김정수 대령은 22사단장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중장에 진급하여 특전사령관과 육군사관학교장을 마치고 전역했다.
- 육군사관학교 출신만 계속 사단장을 맡았다. 이 점은 제22보병사단과 동일하다.
- 매년 5월 4일 파주시 파주읍에 위치한 통일공원 내 육탄10용사충용탑 앞에서 육탄10용사 추도식이 열리는데 사단 장병 중 일부가 참석한다.
- MBC <우정의 무대>는 1990년 6월 3일, 1994년 2월 13일 및 8월 21일, 1997년 2월 16일에 총 4번 다루었고, KBS1 <TV 내무반 신고합니다>는 2000년 2월 14일 및 2001년 12월 17일, <청춘 신고합니다>는 2003년 10월 6일, MBC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는 2014년 12월 14~21일에 걸쳐 각각 다루어졌다.
- 11보병여단 일월성대대가 2022년 tvN 백패커 5화에 출연하였다.
[1]
공식별칭은 천하제일 전진부대. 천하제일은 직속 상급부대인 1군단의 별칭이다.
[2]
김구가
장제스에 위탁 교육을 맡긴 조선 청년들 중 하나로 국부군에서 장교를 하고 이후
독립군에 편입하였다. 해방 이후 미군정 아래 국군 창립군의 장교가 되고 제주
4.3 사건을 진압하였으나 이후
여순사건 진압 등에서의 책임을 물어 일본군 출신들(이응준, 채병덕 등)에 밀려 점차 요직에서 밀려났다. 그리하여
6.25 전쟁 발발 후 청년방위대 고문이었던 장흥 대령의 권유에도 피난을 가지 않다가 한강 철교를 건너지 못한 3명의 장교 중 하나가 되었다. 이후에 북한에 납북되었고 대남방송을 하거나 북한에 투항한
국군포로부대인 해방사단을 지휘하기도 했으나 후에 반혁명분자로 몰려 북한 양덕의 수용소에서 죽었다. 위에 대남방송과 거꾸로 총을 돌린 것 때문에 초대 조선경비대사령관이었던 송호성은 대한민국 국군에서 사실상 병적이 말소되어 버렸다. 하지만 최근 송호성이 북한에 납북된뒤 한 대남방송 등은 자의로 한 것이 아니라는 의견이 있어 논란이 있다.
[3]
초대 1사단장. 김석원은 중일전쟁의 공로로 히로히토 천황에게서 공3급 훈장을 받은 일본 육사 27기 출신이며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어있는 인물이다. 1945년 8월 해방 당시에는 일본군 평양병사부에서 대좌로 근무하고 있었다. 말년에는 성남중고등학교 재단이사장을 지냈다.
[4]
이는 서울 탈환 선봉을 미 해병대에게 빼앗긴 트라우마가 있는데다 미군에
배속된 1사단이 미 1기병사단과 엎치락 뒤치락한다는 소리까지 들리자 미군과 협의 없이 국방장관과 육군참모총장에게 지시한 결과이다.
[5]
당시 대동강을 기준으로 우측을 동평양, 좌측을 본평양이라고 하며 12여단은 동평양에, 15여단은 본평양에 먼저 입성하였으며 북한의 주요시설이 본평양에 위치하여 있어 15여단의 입성시기 기준으로 선봉입성했다. (12여단과 15여단에서 모두 복무한 정훈장교가 확인)
[6]
김만술 소위 지휘하의 국군 1개
소대(11연대 6중대 2소대)가 중공군 1개 연대와 싸워서 이긴 베티고지 전투가 대표적인 예. 참고로 2소대는 24명이 전사하고 12명이 생환하였다.
[7]
일단 빛나는 전공의 6사단조차
사창리 전투에서 간부고 병사고 무질서하게 패주해 이 오욕을 씻기 위해
용문산 전투에서 분투했을 정도다.
[8]
한 부대를 계속 이끌어 나가면 예하 부대들 상황이 어떤지 잘 파악할 수 있으며, 예하 장병들도 큰 사고없이 잘 이끌어 나가면 신뢰감이 쌓이는 등 유리한 점이 많다.
[9]
군사경찰대대와 사단 법무부, 유격대와 함께 주둔하고 있다.
[10]
보병사단 전차부대 중 최초로
K-1 전차를 장비하였으며, 반대로 7사단은 최초 전차대대인
제1전차대대를 예속받았다.
[11]
헌병대에서 2014년 대대 편제로 개편되었다.
[12]
의무근무대에서 대대급으로 격상.
[13]
화생방지원대에서 대대급으로 격상. 22.9.1부
[14]
지상작전사령부 직할 부대이다. 다만 제1보병사단에서는 행정지원을 받는 형식. 신병도 제1보병사단 신병교육대의 훈련병 일부(기수당 10명 정도)를 차출한다. 여담으로 제1보병사단장도 JSA로 출입 하려면 1주일 전에 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
[15]
대한민국 최초로 창설된 6개의 포병부대 중 하나다.
[16]
초대 제1여단장
[17]
2대 제1여단장
[18]
3대 제1여단장 겸 제1사단장
[19]
6.25 전쟁 초기 사단장
[20]
6.25 전쟁 초기 15연대장 및 13연대장 → 부사단장 → 사단장 역임. 백선엽이 2군단장 전출 후 3일 만에 1사단으로 복무하면서 사단장 역임 기간은 3일 천하로 종결.
[21]
제3땅굴 발견
[22]
아들은 학사 28기 출신의 김충기 준장(진)이다.
[23]
UN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한국군 수석대표로서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참모장 및 지상구성군사령부 참모장 겸직
[24]
6.25전쟁 당시의 장교 보직 자료는 백선엽의 "老兵이 걸어온 길"(국방일보 연재) 19~69 참조
[25]
김석원 장군 수도사단장 부임시 수도사단 전보
[26]
전투 중 중상을 입어 후방으로 후송
[27]
6월 26일자 부임
[28]
"老兵이 걸어온 길" 28편에 따르면 잠시 동안 김점곤과 함께 12연대장을 동시 역임
[29]
김석원 장군 수도사단장 부임시 수도사단 전보
[30]
전쟁 발발 당시에는 5사단 작전참모였으나 "老兵이 걸어온 길"에 따르면 전쟁 초기에 1사단과 5사단이 통합되면서 1사단에 합류함.
[31]
후일 제17대 광복회장 역임
[32]
예비역 소장. 제12대 국방대학교 총장
[33]
모종의 사유로 잔여기간은
공익 대체 복무
[34]
정확히는 작전화학병
[35]
'서울 가는 전철' 한정으로는
수도권 전철 1호선이 다니는
제5보병사단과
제28보병사단도 있다.
[36]
육사 39기,
춘천제1고 졸업.
[37]
복무 후 2년 동안 헌혈 불가 대상으로 분류되며 예외적으로 혈장헌혈만 가능하다. 이 때문에 입대 전까지 전혈헌혈만 해왔던 사람은 전역 후 혈장헌혈을 처음 해보는 경우가 많은데 소요시간이 오래 걸린다.
[38]
이 부분을 동요
뽀뽀뽀를 패러디하여 우리는 귀염둥이 뽀뽀뽀 친구로다로 개사하여 부르는 용사들도 여럿 있다.
[39]
1951년 3월 14일 2차 서울 재수복을 의미한다.
[40]
629포병대대
[41]
이게 그때 당시에 사격제원으로 로켓탄(RAP)에 장약을 8호를 사용해 실제로 적 GP 부근 DMZ를 타격할 수 있었으나, RAP탄의 로켓추진마개가 분리되지 않은 상태로 발사되어 넘어가지 않고 남측 구역에 낙하하며 끝이 났다. 낙탄 직후 남측에서는 북측에 오발 사고임을 즉각 통보하였고 북측에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42]
다만 이건 사단 전체가 와해돼 패주한 경우라 자랑거리가 아니다.
[43]
당시 전방병력을 빼려면
한미연합사 사령관(주한미군 사령관)의 승인이 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