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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 漢灘江 | Hantangang Riv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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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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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 주상절리길 잔도 |
漢灘江
대한민국과 북한에 걸친 경기도, 강원도 지역의 강으로 임진강의 지류이다. 길이 136km. 북한 평강군(광복 당시 행정구역으로 평강군 현내면 상원리)에서 발원하여 철원군, 연천군을 지나 임진강에 합류한다.
이름의 유래는 궁예가 왕건의 쿠데타 당시 도망가던 도중 이 강을 건너면서 한탄을 했다는 민간전승에서 유래했다고 잘못 알려져 있으나,[1] 실제로는 크다는 의미의 순우리말 한, 여울 탄(灘)의 '큰 여울이 있는 강'이라는 뜻을 지녔으며, 김정호의 대동지지를 보면 대탄강(大灘江)으로 적혀 있다. 한국지리에서 주요 강을 표시할 때는 이름을 찾아볼 수 없지만 철원평강용암대지를 흐르며 그 지역의 벼농사를 가능하게 해주는 강이기에 비중은 어느 정도 차지하고 있다.
이어지는 임진강과 함께, 북한과 위치도 가깝고 흐르는 방향도 위아래를 가르기에 최전방과 전방을 가르는 상징과도 같은 강이다. 건너기 전부터도 전방이라는 감각이 있긴 하나, 넘어간 뒤로는 본격적으로 전쟁에 대비하는 지역들이 있다.
2. 경치 및 지질학적 가치
대표적인 화산암 지형으로 응회암과 주상절리가 많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2020년), 국가지질공원[2]으로 등재됐다. 한탄강 일대는 많은 부분이 용암 대지로, 주상절리 등 기암괴석과 절벽이 어우러져 고석정 등 주변 경치가 무척 멋지다. # 상단 사진은 주상절리가 무너지며 이루어진 직탕폭포이다. 역시 주상절리 지대에 있지만 그 모양은 다른 재인 폭포, 비둘기낭 폭포도 유명하다. 자세한 것은 한탄강 지질공원 홈페이지를 확인하자.[3]
경기도 일대의 인기 여름 피서지 중 하나이며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곳. 현무암 용암대지인 철원군을 지나는 강으로, 만수기에는 박력있는 래프팅이 가능한 곳으로 많은 업체들이 영업하고 있다. 용암대지라는 지형 특성상 대지에서 보면 강이 안 보이고 물길만 푹 파인 곳을 지나기 때문에 영월군 동강, 봉화군의 낙동강 상류 같은 다른 래프팅 장소와 달리 주변 경관은 전혀 보이지 않고 오로지 물과 양 옆의 기암절벽만 보이는 곳이 많다. 비 오면 물이 주변으로 빠져 나가지 못하고 위가 열린 ㄷ자 단면 관개수로에 물 차듯 차오는 모양이 된다. 덕분에 비가 어느 정도 와 주면 거센 물살과 굴곡으로 고난도의 박력있는 코스가 되나, 너무 많이 오면 래프팅 영업을 중단한다.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특히 물이 불면 강 양 옆 진출입로 대부분이 막혀버려 길과 민가로 갈 수도 없게 되어[4] 절벽 밑, 강 속 바위 위 같은 데에 몸을 덥힐 것도, 불 피울 것도, 식수도 없이 고립될 가능성이 꽤 있다.
제5보병사단, 제6보병사단, 제28보병사단 등 많은 곳이 군사 지역이라, 특히 야간에 아무 데나 잘못 들어갔다간 경계병의 총에 맞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 조심하자. 해당 경우 군은 배상 책임이 없고 보상도 제대로 못 받는다.
3. 역사
후삼국시대 태봉의 수도였던 철원성을 끼고 도는 강이었기 때문에 수도를 감싸는 강의 지위를 얻었지만, 활용성이 너무 낮았다. 궁예의 대표적인 실책으로 지적받는 부분으로 한탄강은 유량도 부족한 뿐더러 급류가 너무 세고 강의 고저차마저 심한데다가 폭포까지 존재해서 대규모 물자가 오갈 수 있는 수운의 활용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모름지기 수도라는 곳은 많은 인구와 국가 기반 조직들이 모이는 곳이니 필연적으로 많은 인구가 몰릴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당시 철원이 위치한 철원평야는 유량이 부족한 한탄강 때문에 척박한 벌판에 불과했고[5], 결국 식량과 각종 물자들을 외부에서 실어날라야 하는데 그 수송로 역할을 해야 할 한탄강이 저 모양이니 결국 수도 철원의 쌀값이 폭등했으며, 민심은 흉흉했다고 전해진다. 심지어는 이로 인해 왕건의 쿠데타가 쉽게 성공할 수 있었다는 추측도 있을 정도다.철원은 궁예가 점거했던 곳으로서 태봉국(泰封國)이라 불렀는데, 지금도 겹성[重城]의 옛 터전과 궁궐의 층계가 남아 있으며 봄이면 꽃이 어지러이 핀다. 땅의 형세가 험하고 막혔으므로 강을 따라 물건을 운반하기가 어렵다.
연려실기술
연려실기술 '총지리'에는 한반도 과거 국가들의 도읍지들을 소개하는 파트가 있는데 여기서 궁예가 도읍했던 태봉국 수도 철원을 언급하면서 대놓고 한탄강이 수도를 잇는 강으론 부적합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연려실기술
서울을 끼고 도는 한강은 하류 쪽으로 가면 폭만 1km를 넘는 크고 거대한 강이라 수운 교통에 전혀 무리가 없으며, 현대에는 오히려 서울의 도로 교통을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대교들이 들어서야 할 정도의 강이다. 평양의 대동강과 개성의 예성강도 수운 교통을 활용하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공주, 부여도 금강( 백마강)이 흐르고 있으며, 경주도 형산강이 있어 이를 활용할 수 있었다. 이렇듯 한반도에 들어섰던 대부분의 국가들은 전부 강을 끼고 발달하였는데 이는 산지가 많고 평야가 좁은 한반도 특성상 수운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었고 물류와 유통의 중심지가 되어야 하는 수도의 특성상 뱃길은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헌데 궁예는 이를 무시했던 것. 궁예가 철원 천도 이전에 수도로 삼은 송악( 개성시)은 고려 왕조 500년간 수도였던 점만 봐도 알겠지만 양쪽으로 예성강과 임진강을 끼고 있고 방어하기에도 좋은 수도로서 손색없는 곳이었다.
궁예가 철원으로 무리하게 천도한데에는 개성 세력 귀족들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천도 자체는 기득권을 압박하고 자기 세력을 늘리는데에 매우 좋은 카드였다. 하지만 궁예가 개성을 대신하여 택한 철원은 도저히 수도로 써먹을 지역이 아니었다는 것이 크나큰 실책이었다. 철원이 거점으로 제대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때 경원선과 금강산선 철도가 부설되고 평강 봉래호저수지 등 대규모 수리시설의 축조로 철원평야가 옥토로 개간되고 난 이후부터다.
4. 위험성
수심이 깊고 강폭이 좁아 유속이 빠르다. 게다가 암초도 많다. 물가에서 조금만 떨어져도 수심이 갑자기 깊어지고 물살이 센 급류와 여울목이 많고 수온까지 무척 낮다. 한탄강역 철교부근만 넓고 얕은 것이고, 다른 데는 폭이 좁고 바위가 많아 깊이가 멋대로인 데다가 물살이 빠르다. 그래서, 물놀이를 할 만한 곳은 철교 부근 국민관광지 포함 몇 군데밖에 없다. 거꾸로 얘기하면, 비가 적당히 와서 물이 조금 불어나면 래프팅을 할 때 대단히 거칠고 박력있는 코스로 보트를 타기에는 최적의 장소가 된다. 그래서 한탄강은 래프팅의 명소로도 유명하다. #
1990년대 이전에는 매년 사건·사고가 났지만, 최근에는 주요 장소마다 감시원을 배치하는 노력 끝에 인명사고는 많이 줄었다. 그래도 잊을 만하면 물놀이 사고사례가 매년 한 건씩 매스컴을 타기도 한다. 한탄강의 '한탄'은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한탄에서 따왔다는 도시전설같은 이야기도 있다. 래프팅을 하는 급류 지역에서 수영하거나, 얕고 잔잔해 보인다고 밤에 들어가면 자살행위와 같다.
구 한탄강역 인근 한탄강 철교 바로 아래는 평소엔 수심이 어른 키만한 데가 별로 없을 만큼 얕다. 그런데도 사망자가 많은데, 교각 아래에서 물이 갑자기 소용돌이쳐서라고 한다. 다른 다리도 그건 마찬가진데, 유독 그 다리 아래서만 사람이 많이 죽는 까닭을 모른다.
철교에서 약 1km 하류의 여울진 곳은 고운 모래밭이 있고 물살이 약하고 아주 깊지도 않은데(가장 깊은 데는 성인 키보다는 한참 깊지만) 사람이 많이 죽기로 유명했던 곳으로, 물놀이 철엔 키를 넘어가는 깊이엔 줄을 쳐 놓고 못 들어가게 하며 구조 요원이 감시했다. 사람들 살림살이가 나아지며 놀이객이 대폭 늘었던 1980년대엔 특히 사망 실종자가 많이 나와서, 한탄강 여울에는 물귀신이 잡아당긴다는 흉한 소문이 돌았다. 그런데 한탄강 철교를 중심으로 위아래로 약 2킬로미터 정도 지역은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있었다.
또 강 자체가 좁아서 비가 많이 올 때면 금세 물이 확 불어난다. 특히 여름철 장마나 집중호우 기간엔 절대로 한탄강 주위엔 가지 말자. 수면에 가까이 세운 다리들은 그냥 물에 잠길 만큼 강물이 불어나며[6] 한탄강을 지나는 철교까지 침수될 우려가 크기에 경원선 통근열차 운행이 전면 중단될 정도다. 1996년도 이 주변에 기록적인 집중호우가 왔을 때는 근홍교와 같은 강 위쪽에 만든 다리들도 대부분 잠겼었다. 물의 범람 자체가 흉흉한데 여기에 재수없으면 최전방에서 매설했던 지뢰가 흘러와 인명피해도 종종 나니, 뭔가 떠내려왔다면 함부로 다가가지 말아야 한다. 물 불어났을 때 래프팅 하며 물 위로 겨우 드러나 보였던 바위가 다음에 물 빠졌을 때 가 보니 물 위로 어른 키만큼 나온 큰 바위였을을 알고 놀랄 정도로, 비 왔을 때와 평소 수량 차이가 심하다. 강이 굴곡진 곳에는 여울과 모래밭이 있는데, 연결된 길이 없는 경우가 꽤 있기 때문에 래프팅 때 보트를 놓치면 강기슭으로 올라와 봤자 절벽이거나 우거진 숲이라 탈출도 못하고 물이 빠지거나 동력 보트가 와서 구해 줄 때까지 고립되기도 한다. 비가 오면 한두 시간만에 고립, 조난될 만큼 물이 불어나고, 비 그쳐도 물이 빠질 때까지는 적어도 서너 시간 더 걸린다. 한탄강 래프팅이 그래서 비 오는 날은 안 하는 거다.
수질도 상당히 좋지 않다. 계곡에서 사람들이 놀고, 음식을 흘린 물이 내려올 뿐더러 연천군이 농업·축산업 지역인 만큼 몰래 투기된 온갖 폐기물과 부산물이 강으로 방류된다. 녹조가 만연할 뿐더러, 들어갔다가 피부가 약한 사람들은 피부병에 걸리는 경우도 있어 현지 사람들은 입수를 꺼리는데 관광객들은 이 사실을 몰라서 무심코 들어가곤 한다. 물놀이를 하다 발이 이상한 돌에 걸려 넘어질 뻔 했는데 꺼내어 보니 깨진 좌변기였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수질오염이 심각하다.[7] 임꺽정 전설로 유명한 고석정 부근은 넓고 물도 잔잔해 유람선이 다니는데, 평소 물빛이 녹색이고 강 바닥이 거의 비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탁하다. 장마 때는 거의 전 지역이 누런 흙탕물이 된다. 맑고 깨끗한 물을 볼 수 있는 곳은 상류/지류 발원점 부근인 재인폭포, 비둘기낭 폭포 등 폭포 주변 뿐이다. 그런데 그런 데는 위험하여 관광객 접근이 금지되어 있어 깨끗한 물을 직접 접할 수 없고, 전망대에서 바라보기만 하여야 한다.
이호왕 박사가 유행성 출혈열의 원인 바이러스를 한탄강에서 찾고, ' 한탄 바이러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렇게 해서 녹십자에서 만든 백신의 이름도 '한타박스'.
[1]
궁예의 몰락 과정이 워낙 임팩트가 커서 지금까지도 우스개로 전해 내려온다. 게다가
휴전선까지 이 강을 지나게 되면서부터는 흘러들어가는 본류인
임진강과 더불어
한(恨)이
맺힌 강이라는 이미지가 더욱 커졌다.
[2]
등재 세부 목록은 문서 참조
[3]
주요 명소 및 각 생성 원리를 소개하고 있다.
[4]
강 양쪽 대부분이 바위 절벽이며, 가끔 있는 진출입 통로도 물이 어느 정도 이상 불어나면 나갈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진출로 부근도 다 절벽이나 급경사라서 보트를 세울 데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강 폭이 넓어져 흐름이 느려지는 하류로 흘러가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래프팅 코스로 이용하는 구간 하류에는 다리가 있으므로, 아주 비가 많이 와서 다리를 물살이 넘어갈 정도가 아니면 보트가 다리에 걸려 더 이상 떠내려 가지는 않는다.
[5]
철원평야가 제대로 된 옥토가 된 것은 일제강점기에 봉래호저수지 등 대규모 수리시설이 축조되고 난 이후부터다.
[6]
많은 다리들이 처음부터 장마 때 물에 잠기는 잠수교로 설계된다.
[7]
90년대 이전에는 물을 마실 만큼 깨끗하진 않았어도 철교 부근이 족대 들고 물고기를 잡을만큼 깨끗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