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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8 14:57:46

작위 요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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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분석3. 생활4. 현재 작위 요구자 목록5. 가상의 작위 요구자

1. 개요

작위 요구자란 작위 계승의 법칙에 따라 작위를 계승할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자를 가리킨다. 본인이 작위를 원하는 지와는 상관이 없으며, 작위를 계승할 수 있는 정통성이 있다면 작위 요구자로 분류할 수 있다. 그래서 그 반대로 단 한 번도 요구자 가문의 수장이 작위를 공식적으로 포기하지 않으면, 여전히 해당 작위의 요구자로 간주된다. 하지만 중도에 조상이나 요구자 본인이 공식적으로 스스로의 작위를 철폐했거나 작위 요구를 중단한다면, 그 후손이 재차 작위 요구를 해오지 않는 이상에야 더 이상 그 작위의 요구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2. 분석

원어인 영단어 프리텐더(pretender)는 반드시 '왕' 또는 '황제'여야만 할 필요는 없고, (군주와 봉신계약을 맺은) 영주에게도 적용되는 용어이다(제왕 또한 그 연장선에 있는 지위이므로 당연한 것이다). 세습 영주의 성격을 갖고 있다면 추장(酋長)의 프리텐더도 있을 수 있으며[1], 특정한 방식으로 세습되는 종교 지도자위의 요구자라면 그 역시 작위 요구자로 간주할 수 있다.[2]

후대에는 프리텐더라는 단어에 '정당한 소유권이 없거나 소유권을 잃었음에도 주장하는 자', '~인 척하는 사람' 등 '가짜'나 '부당함'을 암시하는 뉘앙스가 붙기도 했지만[3] 원래의 뜻은 단순히 '요구하는 자'이다.[4] 작위를 상속받는 과정에서 그 작위를 가져야 하는 것은 자신이라며 작위를 요구하는 것이다. 중립적인 '작위 요구자'라는 뜻으로는 프리텐더 대신 같은 의미의 클레이먼트(claimant)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프리텐더 또한 아직도 널리 사용되는 용어이다.

특정한 상속법 아래서 작위를 계승한 인물과 가까운(계승 순위가 높은) 인물일수록 상속을 받을 명분은 강해지고, 반대로 계승 순위가 끄트머리에 있는 먼 친척들은 요구의 명분을 거의 갖지 않는다. 계승 명분을 가짜로 만들어내 왕위를 사칭하는 경우까지도 왕위 요구자에 포함된다. 장미 전쟁 이후 요크 왕조의 후계자임을 자칭해 반란을 일으켰던 램버트 심넬이나 퍼킨 워벡은 정황상 가짜임이 거의 확실했지만 프리텐더로 불렸다. 물론 이들은 프리텐더를 넘어 사기꾼(imposter)으로 취급받았다.

대립왕이나 대립교황처럼 작위의 상속을 주장하면 당연히 작위 요구자로 불리겠지만, 본인이 작위를 요구하지는 않아도 계승권에 들어있는 인물도 프리텐더의 범위에 들어간다. 작위가 폐지되어 사라졌어도 '만약 왕조가 계속 이어졌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작위를 상속받았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이 프리텐더가 된다. 브라질의 페드루 카를루스 같은 경우 공화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브라질 왕위 요구자로 불린다. 작위의 폐지로 작위 요구자가 된 경우, 계승 1순위인 인물이 작위 요구자로 있게 되므로 대부분 일가의 수장의 자리를 겸한다.

이들 요구자들의 존재는 왕위 등 작위를 가진 쪽에게는 큰 부담이 되었으며, 작위를 이어받을 가능성이 높은 형제 사이에 가족 살해가 일어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적장자의 계승이 원칙인 종법제 아래서 우여곡절 끝에 작위를 계승한 서자인 형이 자신의 왕위에 위협이 되는 적자인 동생을 제거한다던가, 모반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먼 종실 친척이나 이전 왕조의 후손들을 죽이는 것은 동양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유럽의 경우 왕위 요구자가 갖는 의미는 다른 지역과 다르다. 여러 왕가가 혼인으로 이어져 있고, 한 왕가가 여러 나라의 왕위를 갖기 때문에 A국의 왕위 요구자이면서 B국의 왕위 계승권 순위에 드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5] 보르본 왕조 스페인 국왕이 프랑스 부르봉 왕조 왕위 요구자를 만찬에 초대하는 등 귀족이 있는 나라에서는 왕위 요구자를 귀족과 같은 급으로 대우한다. 일례로, 現 프랑스 왕위 요구자이자 부르봉 왕가를 비롯한 전 카페 왕조(Dynastie des Capetiéns)의 수장인 루이스 알폰소 데 보르본(자칭 루이 20세)은 스페인 국왕인 펠리페 6세의 6촌 동생[6]이기 때문에 공적으로는 프랑스 왕위 요구자 (명목상의 프랑스 국왕)가 스페인 국왕의 만찬에 초대된 것이나 실제로는 친척 모임을 가진 셈이다.[7]

실제 재위 중인 군주가 명목상 다른 칭호의 왕위 요구자인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스페인 국왕의 전체 칭호를 보면 현재 스페인 국왕이 지배하지 못하는 나라의 군주를 자칭하고 있으므로, 엄밀히 말하면 왕위 요구자라고 할 수 있다. 과거라면 이런 이름뿐인 작위도 충분히 상대국의 영토를 요구하는 전쟁의 명분이 될 수 있었겠지만,[8] 근현대가 되어 이런 칭호들은 폼으로만 쓰고 있을 뿐이라 실제로 진지하게 해당 왕위를 요구하고 있는 건 아니다.[9] 또한 룩셈부르크 대공 역시 1866년까지 실존했던 나사우 공국 공작위를 명목상으로 겸임하고 있으므로 나사우 공국의 공위 요구자로 볼 수 있다. 영국 국왕도 1799년까지 프랑스 국왕의 칭호를 썼으니[10] 명목상 프랑스 국왕의 왕위 요구자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바부르를 포함한 역대 무굴 제국 황제들은 티무르 제국 아미르가의 후예였으며 그에 따라 무굴 제국이 티무르 제국의 후신을 칭했던 관계로 역대 무굴 제국 황제들은 모두 티무르 제국의 왕위 요구자였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실제 군주가 다른 칭호의 군주위 요구자였다가 쫓겨날 경우 실제로 요구하는 칭호와 폼으로만 달고 있는 칭호가 공존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예를 들어 과거 자코바이트 왕위 요구자들은 선조가 썼던 대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프랑스, 아일랜드[11]의 국왕을 사칭했지만 실제 진지하게 요구한 왕위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국왕[12]이었고 프랑스 국왕은 폼으로 달고 있는 칭호였다.

군주국의 공화주의자들 중에서는 사실상 전리품으로 보는 시각이 일부 존재한다.

3. 생활

작위 요구자들 중의 상당수는 물려받는 재산도 꽤 있고 해서 그럭저럭 유력인사로 살아가는 듯하다. 재산의 대부분은 선조 때부터 물려 받은 부동산이다. 독일 호엔촐레른 황가처럼 폴란드에 성, 영토 및 각종 부동산을 몰수당한 이들조차도 사촌들과 저 유명한 호엔촐레른 성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것을 빼도 독일 황실 수장의 총재산은 약 5천만 파운드 정도라고 한다. 그 외에도 역사책에 들어봤을 법한 왕가나 귀족 가문 혹은 선제후 가문은 지금도 대부분 그럭저럭 잘 먹고 잘 산다. 옛 하와이 왕실도 하와이 주 최고의 땅부자들이며, 만일 이들이 다시 왕위를 인정받을 경우, 엄청난 면적의 부동산의 소유권을 가지게 되므로 미국 정부에 하와이 주 한정으로 입헌군주제를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귀족 제도를 불인정하는 미국 헌법의 조항 때문에 연방 정부와 주 정부는 하와이 왕실을 우대하는 대신, 입헌군주제 도입은 결사반대하고 있다.[13] 물론 하와이 주의 주민들 사이에서는 왕실에 대해선 안중에도 없어서, 연방 정부의 반응과는 별개로 왕실 부활의 가능성은 0으로 수렴한다.[14]

지방 정부의 군주위 요구자들은 자신의 원래 영토에서 실권없는 실질적인 군주로 살기도 하는데, 이는 중앙 정부의 정책에 의한 것으로, 대개 중앙 정부가 공화정을 택한 경우에 귀족 계급을 폐지하고 그 특권을 박탈하는 조치의 일환으로, 그 대신 현지인들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군주위 요구자가 된 지역 번왕에게 현지의 얼굴 마담 역할을 맡기는 것이다.[15] 대표적으로 인도네시아 인도, 파키스탄 네팔, 서아프리카 국가들이 있다.

하지만 모두가 이렇게 잘 사는 것은 아니다. 오스만 제국의 왕위 요구자였던 바예지트 오스만 튀르키예 공화국 출범 이후로 미국에서 살았는데, 그동안 미군에 입대하거나 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 어렵게 살았다고 한다. 대한제국의 왕위 요구자 황사손 이원의 경우 각종 제례에서 활동하느라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대동종약원에서 활동비는 나온다고 하나 구체적인 경제적 상황이 어떤지는 불명. 황사손이 되기 전에 홈쇼핑 및 광고업체에서 일했기 때문에 현재도 관련 회사들의 컨설팅을 도와주는 일을 겸업하고 있다고 한다. 대한제국의 또다른 왕위 요구자였던 이해원의 경우는 6.25 전쟁이나 박정희나 전두환 등의 군사독재 체제 등으로 점철된 격랑의 현대사 속에서 많은 재산을 잃은 뒤에, 그 재산을 반환해내라는 소송을 정부로부터 수도 없이 제기했지만, 번번히 패소하면서 그나마 남은 재산마저 소송비로 몽땅 잃어서 월세방에서 비루하게 살다가[16] 요양병원에서 사망했다.

다른 나라로 망명생활을 전전하는 사람도 있다. 본국의 정부와 마찰이 빚어지는 여러 왕위 요구자는 입국이 불허되어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본국 정부가 공화국일 경우라면, 공화정 체제를 부정하지만 않는다면 자국의 군주위 요구자를 받아주기도 하며[17], 왕정복고의 여론이 높고 실제로도 정계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발칸반도의 공화국들[18]은 아예 자국의 왕위 요구자들을 비공식적으로 자국의 국가원수로 대우하기도 한다. 하지만, 프랑스 대혁명같은 공화혁명을 통해 직접 군주를 몰아내었거나[19], 샹보르 백작 앙리(앙리 5세)의 경우처럼 군주위 요구자가 공화국 정부의 존재를 부인하는 경우라면, 그대로 군주위 요구자를 추방해버리기도 한다.[20] 또한, 상술한 동유럽 국가들의 경우를 제외하면 공화국 정부에서 추방을 풀어주고 왕실의 귀국을 허용한 경우에도 왕위 요구자는 경제적으로는 잘 살아도 정치적으로는 실권이 없는 일반인으로만 남는 경우가 많다. 사보이아 가문이 대표적인 예.

본국 정부도 군주제 국가고 그 군주가 군주위 요구자와는 다른 계파 출신인 경우, 즉, 같은 가문 내의 다른 계파나,[21] 아예 다른 가문일 경우[22]라면 자국의 왕권에 도전할 위험성 때문에 국외 추방해버린 후에 입국을 불허하는 경우도 많다. 입국을 허용하더라도 왕위를 요구하는 순간, 도로 추방해버리는 조건을 달아놓기도 한다. 드물게도 왕위 요구자가 내국인인 경우도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모국 내부의 작위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보니, 잘못하면 국가 체제를 부정하는 것으로 의심받아 제거될 수도 있다. 조선 초기에 개성 왕씨 사람들을 학살한 것이 그 예다. 하지만, 작위 요구를 공식화하지만 않으면, 무난하게 살기도 한다.[23] 영국의 애브니-헤이스팅스 가문[24] 요크 공작 가문의 먼 후손이라서 현재 관행적으로 영국 국왕 또는 전임 영국 국왕의 둘째 아들이 사용하는 요크 공작위의 요구자이고, 동시에 요크 공가 자체가 장미 전쟁의 종전 이전까지 잉글랜드의 왕을 배출한 가문인지라, 이 가문은 잉글랜드 왕위의 요구자이기도 하다. 만일 이 가문이 노골적으로 잉글랜드의 왕위를 노리고 공작을 벌였다면 영국 정부에 의해 가문 전체가 테러 조직으로 몰려서 토벌되었겠지만[25], 애브니-헤이스팅스 가문은 자신들이 한때 잉글랜드의 왕가였다는 역사적 사실만 기억할 뿐 직접 왕위 탈환을 위해 나서지 않으므로, 2022년 현재까지도 백작 가문으로서 영국 왕실과 무난하게 공존하고 있다.

한편 본인이 왕가의 직계 후손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물론 본인이 모를 정도면 타인도 알지 못하고 기록도 실전돼 영원히 밝혀낼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멸망한 지 오래 된 한국사의 백제, 발해, 신라, 고려 같은 왕조의 경우가 중간에 사고로 혈통이 끊기지 않았다면 이에 해당할 것이다.[26]

어차피 웬만한 나라들의 경우, 정세가 급변하지 않는 한 진지하게 왕실이 복고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실제로 1990년대 혼란스러웠던 편인 동유럽 국가들도 왕정복고 이야기가 나왔으나 끝내 실패했을 정도였다. 물론, 왕위 요구자가 실제로 즉위한 사례도 있는데 그게 스페인이다. 스페인의 경우 프란시스코 프랑코라는 독재자가 즉위시켰는데 이후 개념있는 행동으로 인정을 받은 매우 운이 좋은 사례다. 대개 독재자가 쫓겨나더라도 왕이 복위하는 게 아니라, 실무자들이 자기들끼리 협의해서 다른 사람을 지도자에 앉히고 과두정 형태로 통치를 이어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경우는 왕실이 그대로 복귀한 매우 보기 드문 사례다.[27] 그래서 공화국에서 벌어지는 군주위 요구의 대부분은 해당 군주위를 명목상으로 보유한 가문 측에서 자신들에게 기존에 행사하던 재산권을 인정해달라고 시위하는 데에 명분을 삼은 것에 불과하며[28], 진짜로 군주위를 요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단, 동유럽 쪽의 일부 구 왕국 출신의 공화국들은 사실상 왕가를 인정하고는 있는데, 이 나라들이 대체로 아직 경제, 사회적으로 안정적이지 않다보니 공식적으로는 왕정복고에 대한 논의를 보류한 상태다. 대표적인 나라가 루마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알바니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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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현재 작위 요구자 목록

4.1. 등재 기준


주의할 점은 다음과 같다.
  1. 작위 요구자는 '요구하는 사람'보다는 '요구가 가능한 사람'에 가까운 개념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따라서 실제 왕위 요구를 위한 활동의 여부와 별개로 '해당 작위가 실질적으로 계속 유지되었다면 누가 해당 정권을 이어받게 되는가'에 가깝다.
    • 원론적으로는 세습직이 아닌 경우라도 해당이 되지만, 세습직이 아닌 선출직인 경우엔 기본적으로 '만약 계속 이어졌다면 누가 해당 정권을 이어받게 되는지'라는 예측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목록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2. 연속성을 가지고 있는 정권이 중간에 국가체계/작위 등 '국체'자체를 바꿔버린 경우엔 이전의 체제에 대한 작위 요구는 등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조선 왕실이 스스로 '대한 제국'으로 바꾼 다음 멸망하였기 때문에, 조선 왕실의 후손에서 나올 수 있는 왕위 요구자는 '조선국'이 아닌 '대한제국'의 황제위요구자를 적는다. 위안스카이는 중화제국을 설립한 이후 스스로 군주를 칭하고서 이후 스스로 중화제국과 왕위를 포기하고 중화민국 총통직만을 유지하고자 했으므로 중화제국의 왕위 요구자는 있을 수 없다.

4.2.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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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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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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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아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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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오세아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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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가상의 작위 요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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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제로 유럽의 작위 요구자 문서들에는 각종 백작이나 공작위의 요구자 그리고 카자크 대수령위 요구자도 등재되어 있으며, 아메리카 오세아니아의 작위 요구자 문단에는 각각 미스키토 족 추장위 요구자와 코코스 제도 영주위 요구자, 피지 대추장위 요구자도 등재되어 있다. [2] 특정한 고승의 환생자로 간주되는 사람에게 지위를 세습하는 티베트 불교의 종교 지도자 지위나, 세속 군주와 똑같이 혈연에 의한 세습을 하는 이슬람교 칼리프 이맘 직위가 대표적이다. [3] 현재 집권중인 왕이나 권력자의 경우 프리텐더가 아무리 강력한 상속 근거나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위치를 위협하는 이상 부당한 가짜 취급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4] 프랑스어 어원인 prétendre와 라틴어 praetendo는 '주장하다' 정도만을 원래 뜻으로 포함했다. [5] 아시아에서도 한 왕위 요구자가 둘 이상 국가의 왕위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유럽에 비하면 매우 적다. 그나마 아시아의 동군연합 끝판왕격인 청나라의 왕위 요구자가 대표적이었지만(청나라 황제위+ 몽골 제국 대칸위+ 전륜성왕 칭호) 현재는 합의에 따라 하위 항목인 왕위 요구자/아시아에서 청나라의 왕위 요구자가 삭제된 상태다. [6] 펠리페 6세의 할아버지인 바르셀로나 백작 후안이 루이스 알폰소의 할아버지인 세고비아 공작 인판테 하이메의 동생으로 루이스 알폰소와 펠리페 6세는 증조할아버지가 같다. [7] 왕위 요구자의 사례는 아니지만, 멸망한 하와이 왕국의 왕족인 로버트 윌콕스가 왕국이었을 당시의 이탈리아를 방문했는데, 당시의 국왕이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로부터 귀족으로 대우받은 바가 있었다. [8] 스페인 국왕이 자칭하는 작위 중 하나인 예루살렘 왕국 왕위를 예시로 살펴보자면, 근대 이전에는 실제로 예루살렘 왕국이 재건될 가능성은 없더라도 유사 시 해당 작위를 팔레스타인 지역 정세에 개입할 수 있는 근거로 내세울 수 있었기 때문에 잠재적인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때문에 예루살렘 왕국과 관련된 상속권을 가진 다른 가문인 사보이아 가문 합스부르크 가문도 이런 잠재적 가치 때문에 이 작위를 명목상으로 칭하였다. [9] 현재 스페인 국왕이 자칭하는 작위는 예루살렘 국왕, 알가르브 국왕, 에트루리아 국왕, 파르마 피아첸차 공작인데, 각각의 작위에 해당하는 영토는 순서대로 이스라엘, 포르투갈의 알가르브 지방,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와 에밀리아로마냐주에 해당한다. 근데, 만약에 스페인 정부가 이를 핑계삼아서 정말로 이 지역들을 내놓으라고 한다면, 당장 이들로부터 선전포고를 당해도 할 말이 없어진다. 특히 포르투갈, 이탈리아, 이스라엘은 전부 친미 국가인 관계로 군주의 왕위 요구를 들먹여서 영토 분쟁을 일으켰다간 미국한테 깨강정이 나도록 두들겨 맞는 수도 있다(…). 그래서 현대에 각국의 군주나 왕위 요구자들이 특정 작위를 자칭하는 것은 오랜 전통에서 기인한 외교적 관례로 간주할 뿐, 국제 사회에서는 그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는다. [10] 백년전쟁 이후의 관행이었다. 그런데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 제1공화국에서 영국 국왕더러 프랑스 국왕 칭호를 쓰지 말고 문장(紋章)에서도 프랑스 왕국을 상징하는 백합을 삭제하라고 강하게 요구한다. 이에 영국은 종전 프랑스 국왕들도 모른 척하고 그냥 넘어간 관행이라며 그냥 씹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런 외교적 관행에 익숙하지 않은 프랑스 혁명 세력이 끝까지 걸고 넘어졌다. 혁명 세력의 입장에선 기껏 웬수 같은 의 목을 쳤는데 영국 국왕이 버젓이 자신들의 왕이라고 행세하는 격이었기 때문. 그래서 결국 이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영국이 눈물을 머금고 프랑스 국왕 칭호와 문장의 사용을 포기했다. 영국 왕실이 프랑스의 상징인 백합을 다시 쓰게 된 건 프랑스계 주민들이 최대 소수민족인 캐나다가 세워지면서부터였는데, 이마저도 프랑스 국왕 칭호가 부활한 건 아니고 그저 캐나다의 국왕으로서만 백합을 쓰는 정도다. [11] 실제로 이 네 나라의 국호는 항상 이 순서대로 표기했다. 실제로 의미가 있던 국가 중 가장 강하고 국왕이 상주하는 잉글랜드, 그 잉글랜드의 파트너로 여겨진 스코틀랜드, 그리고 실제 지배하는 건 아니었고 명목상으로만 왕위를 주장했지만 멋은 있는(…) 프랑스, 그리고 그냥 잉글랜드의 덤(…)이라 별 신경 안 썼던 아일랜드 순으로 적은 것. [12] 근데 영국 현지에서는 1707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합병돼 그레이트브리튼 국왕으로 칭호가 병합됐고, 1800년 그레이트브리튼과 아일랜드가 통합돼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국왕으로 병합되면서 프랑스 국왕 칭호는 버렸다. 하지만 이건 자코바이트 입장에선 '가짜' 국왕에 의해 불법적으로 행해진 것이기 때문에 계속 옛날처럼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프랑스, 아일랜드 국왕을 자칭했다. 물론 시간이 오래되면서 자코바이트 왕위 요구자가 후손은 남겼어도 그들이 더 이상 영국 왕위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는 별 의미 없다. [13] 사실 그것 이외에도 하와이 주 한정으로 입헌군주제를 인정하면 부동산 소유권 문제로 인해 왕실이 실권을 가지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미국의 건국 이념에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에, 연방 정부가 입헌군주제 도입을 더더욱 인정해줄 리가 없다. [14] 하와이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현재 하와이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이들은 한국계, 일본계 등의 아시아계 미국인들과 하와이 원주민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다. 백인들이 기득권을 차지했던 옛날에는 그에 대한 반발심으로 왕실 부흥 운동이 일어났나 싶어도, 백인들이 기득권을 잃은 것도 모자라서 인종차별 까지 당하는(...) 작금의 현실에선 더 이상 왕정복고를 희망하는 여론은 전무한 상황이다. [15] 물론 드물기는 하나, 번왕들이 실권을 회복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은 왕위 자체는 인정이 안 되는 대신 국회의원 선거구나 현지 지방관 직위를 세습하는 것을 중앙 정부로부터 묵인받은 경우에 속한다. 이런 경우는 이미 왕정복고가 이루어진 경우이므로, 왕위 요구자로 간주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인도네시아 발리 욕야카르타가 있다. 이 두 곳은 군주가 주지사직을 겸하며, 인도네시아 정부도 발리와 욕야카르타의 주지사직을 세습직으로 공인했다. 다만 이 경우 주지사직이 모종의 이유로 세습직에서 선출직으로 바뀌어버리거나 정통 후계자가 아닌 방계에서 쿠데타로 세습주지사직을 찬탈한다면 그 때부터는 군주위 요구자로 간주될 것이다. [16] 큰아들과 셋째 아들은 미국으로 이주한 뒤에 그곳에서 택시 기사 노릇을 하면서 근근히 살고 있고, 둘째 아들은 어머니를 모시면서 함께 소송전에만 매달리는 중이다. 그나마 막내딸이 정신을 차리고 경제 활동에 뛰어들었지만, 1990년대에 사망하고 말았다. [17] 신해혁명 이후에 청나라가 해체되면서, 자금성 내에서만 한정적으로 구 황실의 관련 칭호를 인정하고 우대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18]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루마니아가 대표적이다. 특히 몬테네그로와 루마니아는 자국의 왕위 요구자를 비공식적인 국가원수로 대우하는 등, 이미 '실질적인' 왕정복고는 이루어졌고, 이제 헌법 단계에서 왕정복고를 공식화하는 논의에 돌입한 상황이다. [19] 다만, 프랑스 대혁명 당시에는 처음부터 군주를 폐하자는 여론은 소수였고, 영국의 선례를 따라서 왕의 권력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자는 주장이 대다수를 이루었다. 그러던 것이 아예 루이 16세 일가를 처형하고 왕실을 철폐해서 공화정으로 가자는 주장이 힘을 얻은 것은 바렌느 배신사건 때부터인데, 국왕이 국민들을 버리고 몽진을 시도했다는 사실에 여론이 들끓어 올랐기 때문이다. [20] 그래도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왕위계승자의 경우는 스페인으로 넘어가서 왕족 대접을 받으며 잘 살고있다. [21] 스페인 왕실의 카를리스타 세력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22] 옛날 루이 필리프 1세 시절의 부르봉 가문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루이 필리프의 출신 가문인 오를레앙 가문도 넓게 보면 부르봉 가문의 일원이지만, 먼 방계 가문이라서 사실상 관련없는 남남으로 취급했다. 분가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가문인 케이스로는 역성혁명을 통해 왕조가 교체되는 케이스들이 대표적이다. [23] 다만 앞서 말한 개성 왕씨의 경우 본인들은 고려 왕위 요구를 공식화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지배층이 자신의 불안함을 참지 못한 나머지 꼬투리가 잡히자마자 학살해버린 케이스다. [24] 2022년 현재는 가문 전체가 호주로 이민간 상황이다. [25] 동남아시아 술루 술탄국 왕실이 실제로 이런 이유로 말레이시아 정부로부터 주적 1호로 꼽힌 상황이다. [26] 특히 고려 조선 왕조를 제외하면 가장 최근까지 존속한 왕조인 만큼, 왕위 요구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을 특정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조선 초에 개성 왕씨들을 색출해서 죽인 까닭에 대다수가 성씨를 갈아버리거나, 조상 대에서 개성 왕씨를 사성받은 사람들은 원래의 성씨로 되돌아가면서 왕씨 자체도 보기 힘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고려 왕실의 정통 후계자라고 특정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졌다. 만일 개성 왕씨의 정통 종가의 계보가 계속 이어졌으면, 그 사람을 고려 왕조의 왕위 요구자로 볼 수 있다. [27] 실제로 나치 독일이 붕괴되고 나서, 독일 제국의 황가였던 호엔촐레른 가문을 복고시키자는 주장이 일부 있었으나 연합국 측은 이를 무시했고, 독일 내에서도 제정복고를 지지하는 여론은 전무했다. 결국에는 공화국 서독 동독이 출범하고 독일 재통일 또한 제정복고를 통해 독일 제국을 재건하는 형식이 아니라 서독이 동독을 흡수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지면서, 제정복고는 시도조차 못하고 무산됐다. [28] 인도 무굴 제국 황실 가문과 미국 하와이 왕국 왕실 가문이 대표적이다. 대한제국의 황제위 요구자도 실은 이쪽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