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 제61대 황제
율리우스 네포스 IVLIVS NEPO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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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F0807><colcolor=#FCE774,#FCE774> 이름 |
플라비우스 율리우스 네포스 아우구스투스 (Flavius Julius Nepos Augustus) |
출생 | 미상 |
서로마 제국 달마티아 | |
사망 | 480년 5월 9일 |
서로마 제국 사보나 | |
재위 기간 | 로마 황제 |
473년 ~ 475년 (1년)[1] | |
전임자 | 글리케리우스 |
후임자 |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
부모 | 아버지: 네포티아누스 |
종교 | 기독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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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서로마 제국)의 61대 황제이자 분할 통치인 서로마의 11대 황제.2. 생애
동로마 제국의 황제 레오 1세에 의해서 이탈리아를 통치하기 위해 파견됐고 오스티아 근교의 포르투스(Portus) 항에 상륙 후 서로마의 10대 황제인 글리케리우스가 저항 없이 항복함에 따라 즉위했다.[2]쇠약한 서로마의 특성상 동로마 및 타 세력의 지원이 절실했고 실제로 본인 외에 동로마 황제인 제노와 레오 2세의 모습을 담은 주화도 발행하여 동로마에 대한 감사와 유대를 드러냈다. 또한 그의 치세 때 갈리아 최후의 로마 세력인 수아송 왕국의 시아그리우스 역시 그의 모습을 담은 주화를 발행하여 그의 즉위를 인정했다.
475년 동로마의 제노가 바실리스쿠스의 반란으로 쫓겨나자 네포스의 입지는 약화됐다. 그리고 서고트족이 갈리아로 침공하자 옛 서로마 황제 아비투스의 아들인 에크디우스를 마기스테르 밀리툼으로 삼아 아를을 지겨냈지만 중과부적으로 서고트족에게 오베르뉴를 주고 독립을 승인했다.
또한 반달족의 해적 행위가 잦자 이미 빼앗긴 북아프리카, 시칠리아 일부, 코르시카, 사르데냐, 발레아레스 제도를 반달의 영토임을 인정하여 평화협정을 맺었다.
같은 해 에크디우스 대신하여 등용한 오레스테스가 반란을 일으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옹립하자 달마티아로 도주하였다. 그는 살로나에 머물며 서로마가 오도아케르에 의해 멸망한 이후에도 서로마 황제를 자칭했으며 제노 역시 군사적, 금전적 지원은 하지 않았지만 그를 서로마 황제로 인정했고 오도아케르 역시 제노의 뜻에 따라 네포스의 이탈리아 입성은 막을지언정 그를 황제로 인정했다.
끈질기게 이탈리아 입성 및 오도아케르 타도를 노리던 그는 480년에 살로나의 궁전 근처에서 자신의 휘하 코메스인 오비다와 비아토르에 의해 살해 당했다. 이는 이전에 그에게 폐위 당해 원한이 있고 마침 살로나의 주교가 된 글리케리우스의 사주 또는 근거지 달마티아를 떠나 싸우는 것에 반감을 품은 부하들의 독단으로 추정된다.
대립했을지언정 그를 황제로 인정하던 오도아케르는 네포스 살해를 빌미로 481년 또는 482년에 달마티아를 침공해 오비다를 죽이고 별다른 저항 없이 달마티아를 점령했다.
당시의 동로마 황제 제노는 그를 정통으로 인정하였으며, 역사학자에 따라서 그를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로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