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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 연예인 유재석의 활동 내역을 다루는 문서다.2. 연도별 활동
2.1. 과거
여러 프로그램들을 통해 밝혀진 바에 의하면 과거 아버지가 공기업을 다니고, 퇴사 후에 하던 사업이 있어서 크게 부족한 것 없이 유년기를 보냈으나 초등학교 즈음 아버지 사업이 기울어져 약 20억 정도 까먹고 일명 ' 빨간 딱지'를 경험할 뻔했다고 한다. 이에 아버지가 고모부의 권유로 치킨 사업을 시작하였는데, 이 사업마저 실적이 영 신통치 않았다고 한다.이 사실을 몰랐던 어린 시절의 재석은 친구들에게 무상으로 치킨을 뿌리다가 아버지에게 혼난 일도 있었다고 한다. 무한도전 여름방학 특집(2009년)에 나온다. 아버지가 유재석의 뺨을 내리치고 울먹거리며 하는 말이 "네놈이 우리 집을 다 말아먹으려고 하는구나!" 였다고 한다.[1] 훗날 유재석이 네네치킨 광고 모델로 된 것은 실적이 영 신통치 않았던 치킨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의 인맥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지금도 유명한 닭고기 가공 업체 마니커의 상무로 재직하다가 퇴임하였고, 네네치킨 창업주 현철호 회장은 그 당시 마니커의 직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유재석의 아버지가 직접 네네치킨을 방문하여 아들의 명성에 해가 되지 않는지 체크를 한 뒤에 광고 모델 자리를 허락했다고 한다.
런닝맨을 통해 명량의 안위 장군, 태양의 후예의 송닥터로 이름을 알렸던 배우 이승준과 고등학교 동창임이 밝혀지기도 했다. 말 그대로 절친으로서 같이 어딘가로 놀러 가거나, 유재석이 이승준의 집에 놀러 가기도 했을 정도로 절친이었다고 한다.[2]
서울예전 방송연예과 91학번으로 입학했지만 방송을 하느라고 졸업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방송에서 밝히기를 학교에다 방송한다고 결석한다 그랬는데 방송 출연도 잘 안 나와서 학교 측에서 의아해했다고. 그리고 당시 친구 집에서 자주 개그 연습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그 친구가 지금은 성우가 된 전태열. 대학 시절 전태열의 집에서 개그도 짜고 같이 어울려 다니다 밤늦게 갈 곳이 없으면 전태열의 집에 있다가 잠도 자고 했는데, 유재석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전태열의 어머니에게 반찬투정을 일삼으며 여러 차례 버릇없이 군 일이 있다고 한다.
하루는 전태열의 어머니가 밥상을 차려주시며 오늘은 별로 차린 게 없다고 하자, "정말 차린 게 없습니다, 어머니"라고 했다고 한다.(...) 김용만의 집에서는 하도 반찬으로 나물만 나오자 "어머니 밥상에서 뱀 나오겠어요" 라고 하기도 했다고. 이렇게 철이 없던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들을 대학 동기나 개그맨 공채 동기들이 예능 나와서 자주 이야기하는 편이다.
서울예대 졸업은 못 했지만 국민 MC답게 엄청난 예우를 해준다. 무한도전 뉴욕상륙작전 특집 때 서울예대 학생들이 광고에 나왔는데[3], 그때 모두가 고개 90도로 숙여서 선배님이라고 인사하고 크게 열광했다.
젊은 시절[4]엔 나이트 죽돌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방송 동기인 김용만, 남희석, 김수용 등의 증언, 제보가 줄줄이 나오는 데다가 유달리 클럽풍 음악을 즐기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는 사실인 듯 하다. 본인도 단기사병으로 군 복무를 하던 시절에 클럽에서 밤새 놀다가 차에서 제복으로 갈아입고 출근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5] 무한도전에서 선보인 곡 '압구정 날라리' 제작비화를 보면 압구정에 있는 클럽에 자주 들락거렸는데 당시 살던 곳은 수유리였다고.(...)
클럽 하면 이성과의 만남을 목적으로 가는 사람도 많지만, 유재석의 동기였던 박병득 목사와 엄정필이 2014년경에 해피투게더에 출연했을 때 언급한 바로는 유재석 본인은 여자에겐 관심이 없고 그저 춤추고 노는 게 좋았던 타입이라고 한다.[6] 실제로 당시 얘기를 방송에서 할 때 많이 놀았다는 얘기는 나와도, 여자 꼬셨다거나 차였다거나 하는 얘기는 신기할 정도로 안 나온다.[7] 주위 형들이 당시 무명시절의 유재석을 클럽 술자리에 자주 불러줬던 이유도 "술 안 마시니 차 운전 시킬 수 있고 여자에게 관심 없고 분위기를 잘 띄워서" 라고 했다.
후에 2017년경에 런닝맨에서 지석진 역시 "얘를 먼저 보내서 자리 잡게 해놓으면 포도알이나 몇 개 까먹고 있어서 술값 아낄 수 있었다" 라고 하며, 헌팅 성공한 적 있냐는 하하의 질문에는 유재석이 아무 말도 못 하자 지석진이 "여자들이 옆에 앉지도 않았어" 라고 쐐기를 박았다. 송은이는 "유재석은 대학 시절 너무 찌질해서 연애를 할 수가 없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친한 대학선배였다는 이선 역시 유재석이 요즘말로 인싸이기는 했지만 이성적으로 호감을 표하는 여자는 전혀 없었다고 회상했다. 좋아한다고 매달렸던 연상한테 싸다구를 맞은 적도 있다는 걸 보면 20대 연애사가 참 험난했던 모양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클럽에서 놀고 싶어 하는 유재석을 형들이 여자 꼬시는데 방해도 안되겠다 싼값에 꼬드겨서 잘 부려먹었다고도 볼 수 있을 듯... 이 이야기를 들은 양세찬이 그럼 대체 왜 클럽을 가는 거냐고 기가 막혀하자, 유재석은 형들이 회비를 적게 받아줬다고 말했다. 조동아리 말로는 그냥 사준 적도 많은 모양이다. 그래서 박수홍은 직설적으로 빵셔틀이었다고 표현한 적도 있다.
2.2. 1990년대
용문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인 1989년 비바! 청춘이라는 프로그램에 1번 나온 것을 통해 PD의 주목을 받고[8][9]( 당시 출연 영상) 20살 (만 18세[10])의 나이로 최연소로 KBS 공채 개그맨에 합격했다.[11] 유재석은 공채 7기에 해당한다. 동기로는 최승경, 양원경, 전효실, 김수용, 김용만, 박수홍, 남희석, 김국진, 윤기원[12]이 있다.당시로서는 어린 나이에 성공을 맛본 것이라 데뷔 초기엔 다소 건방진 인물로 소문이 났었다. 1991년 KBS 대학개그제에 최승경[13]과 콤비로 나와 "개그칼럼"이라는 시사 풍자 개그를 하였다. 당시 KBS 대학 개그제+유머 1번지 단역 출연 영상[14] 이때 당시 유재석은 최소 은상은 받을 것이라고 확신 했다고 한다.[15]
그러나 기대와는 다르게 장려상에 그치자 크게 실망하여 대놓고 뚱한 표정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고 반대편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면서 상 받으러 나왔다. 이 장면은 가끔씩 예능에서 회자된다. 가뜩이나 군기가 센 개그계에서 이런 모습이 선배들에게 좋게 보였을 리가 만무하다. 결국 찍혀서 매우 혼났다고 한다. 유재석이 회고하기를 개그제가 끝나고 선배 개그맨들과 상견례를 하러 희극인실에 갔는데 고참 개그맨 한 명이 "아까 시상식 때 주머니에 손 찔러넣고 한 손으로 귀 후비면서 상 받으러 나온 놈 누구야?"라고 묻길래 자신이라고 대답하자 선배들의 야단이 융단폭격처럼 쏟아졌다고 한다. 일설에는 "귀 후비고 나온 놈 누구야?" 라고 물어본 선배가 유명한 군기반장 김정식이라는 설이 있다.
훗날 술회하기를 "그때는 정말 철이 없었어요. 선배님들께 예의라고는 인사 밖에 할 줄 몰랐거든요."라고 이야기를 했다. 위의 전태열과 에피소드에서도 알 수 있 듯, 철이 얼마나 없었는지 남의 집 가서 밥 얻어 먹을 때 반찬투정을 자주 한 듯. 김용만과 그의 어머니도 유재석 반찬 투정의 피해자다. 무명 시절 유재석은 김용만의 집에서 친한 동료들과 자주 자곤 했는데, 끼니 때가 되면 김용만의 어머님께서 꼭 밥상을 차려주셨다고 한다. 어머님은 "아이구~ 수고들 했네~" 라며 늘 친절하게 밥상을 차려주셨는데, 어느 날 고기가 무척 먹고 싶었던 유재석은 밥상에 고기가 없자 반찬을 놓고 계신 어머님 앞에서 "반찬이 풀밖에 없네.." 라고 했다고... 지금 유재석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충공깽이 아닐 수 없는 일이다. 이는 해피투게더 조동아리 특집에서 유재석이 직접 일화를 이야기했던 내용이다.
1998년 연예가 중계 리포터로 활동할때 긴장해서 여러번 실수를 하기도 했다. # 당시 MC 였던 임백천도 얘는 안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 어쨌든 지석진은 유재석이 생방송 울렁증을 이겨냈다고 대단하다고 했다. # 이 시절에도 유재석은 짧은 멘트도 느낌이 다르게 여러가지로 준비할 정도로 노력파였다. #
아무튼 20대 무명 시절에는 철 없고 개념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반성했다고 한다. 그 결과 지금은 성실하고 반듯한 이미지로 국민 MC 반열에 들었다. 지금도 친한 선후배 사이에선 허물 없고 직설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해 은근히 얄미운 캐릭터로 보이기도 하나 성실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훈훈한 마인드의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
유재석이 데뷔 초기에 안하무인한 사람으로 찍혔던 이유는 개그맨 사이의 강한 위계질서 때문도 있다. 워낙 데뷔년도가 빨라서 주변 사람들보다 확연히 나이가 어리다보니 애매한 위치였으며 세상물정 모르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TV에 나오던 매우 희귀한 사례였다.
예를 들어 김국진, 남희석, 김용만과는 동기에 심지어는 대학교에서는 한참이나 선배인 양원경(87학번)도 개그 공채로는 동기, 강호동, 박명수, 조혜련, 김구라, 김현철 등 현재 방송하는 웬만한 중견 개그맨들의 경우 방송국은 다를지언정 유재석에 비해 나이는 더 연상이지만 후배 위치에 있다. 공채 코미디언, 개그맨 시대에 유재석과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사례는 주병진, 최양락, 이경래, 최효종, 정범균 등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실제로 당시 유재석에 대해 동료 연예인들에게서 착함이 부각되는 일화도 적잖게 나왔는데 천성은 착하지만 철이 없는, 악의없이 민폐주는 친구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장난꾸러기같은 친구들이 30대를 넘어서 늦깎이로 철드는 모습은 주변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유재석이 데뷔하던 시기는 하필 심형래가 한창 영화에 매진하던 시기였고 심형래는 유재석이 데뷔하자마자 유재석을 불러다가 자기 영화에 계속 보조출연자로 출연시켰다.( 영구와 우주괴물 불괴리, 티라노의 발톱 등) 유재석은 심형래 밑에서 일하다가 군대에 입대하게 된다.
군 제대[16] 후 다시 꽁트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무명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데( 기사), 대체로 꽁트에서 맡은 역할은 지금의 그의 초중딩 팬들은 상상도 하지 못 할 '찌질이', '백수' 등 대체로 무능력한 인물 역을 맡았다.
특히 늦은 밤시간대에 방영되었던 ' 코미디 세상만사'에서 '남편은 베짱이'에선 게으르고 무능력한 남편 역할을, 그 뒤 '귀농일기'에서는 귀농한 백수사위 역을 맡아서 맨날 장인 김학래에게 구박을 받는 연기와, 최양락과 같이 진행한 '순대국 형제' 에서 최양락에게 순대국을 만드는 비법을 좀 알려달라면서 애걸복걸하고 떼를 쓰는 연기에서도 찌질함과 무능한 연기의 극치를 보여주었다.[17] '왜 (자꾸 저한테만) 그러세요' 라고 처절하게 내뱉는 대사는 그가 맡는 역할마다 말하지 않은 적이 거의 없다. 이런 이미지는 훗날 시트콤 '멋진 친구들'이나 출발 드림팀 출연 시기 때까지도 계속 유재석의 아이덴티티 中의 하나였다.
동시에 무명 시절에 만든 자신만의 캐릭터로는 바로 메뚜기. 유재석의 별명이 된 메뚜기는 1998년에 방영된 자유선언! 오늘은 토요일 60년을 이어라[18] 라는 프로그램에서 메뚜기 탈을 쓰고 메뚜기 춤을 추면서 처음 생겨난 것이었다. 원래 유재석은 이창명과 더블 MC로 캐스팅됐으나 이창명의 스케줄이 너무 많아서 2회부터 그냥 유재석 혼자서 진행하게 되었는데 이창명이 빠지고 난 후 아무도 유재석을 알아보지 못해서 캐릭터 부여를 위해 작가와 피디가 억지로 메뚜기탈을 씌운 것이었다고 한다. 이 코너에서 유재석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자, 손녀에게 친근하게 다가가 깔끔하게 진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PD들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코너가 바뀌어도 계속 진행자를 맡았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던 무명 당시의 유재석은 매주 파격적인 복장으로 무리수를 두는 기믹을 잡아 무대 등장시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상승시키는 시도를 했었는데 이것은 아는 사람들만 안다.
그러나 유재석이 훗날 인터뷰에서 회고하기로는 지방 촬영을 갈 때 짐에 메뚜기탈을 직접 챙겨 가지고 다니는 것이 남보기 무척 창피했고 "그냥 개그맨 그만둘까..." 같은 생각도 많이 했다고 한다. 이 때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던게 바로 핑클인데[19], 이효리의 말로는 매니저나 코디 등 스탭도 없이 혼자서 메뚜기탈을 가방에 구겨서 넣고 다니는데, 심지어 가방이 작아서 메뚜기 더듬이가 튀어나와서 정말 볼품없어 보였다고 한다. 심지어 이 때는 진행 실력도 별로였던 시기인데다 이미 대스타였던 핑클과는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쳤던 지라, 유재석을 못 미덥게 생각한 핑클 멤버들이 모여서 수근거리는 모습을 보고 자신을 비웃는 거라고 생각했고 더더욱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었다고 한다. #
사실, 유재석은 메뚜기라는 별명을 무지 싫어했다. 좀 더 고상한 이미지로 개그를 하고 싶었고 굳이 메뚜기 탈을 쓰며 몸을 굴리면서까지 살신성인하면서 개그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지금은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건지 이제는 유재석 본인이 스스로 메뚜기 이미지를 자발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중이다. X맨에서도 적극적으로 메뚜기 춤을 추기도 했고, 런닝맨에서도 수영장에서 메뚜기가 물에 빠져죽어있는 것을 발견하자 기겁하고 놀라면서 "안 돼!!!! 그렇게 잡는거 아니야!!!" 라고 외치면서 물에 빠져서 죽어있는 메뚜기를 비통한 표정으로 직접 정성스럽게 손으로 잡아올려 수습하면서 크게 안타까워하고 슬퍼했을 정도였다.
그동안 유재석이 무명시절에 주목을 못 받은 이유는 개그가 재미없었기 때문이다. 무능력, 메뚜기라는 캐릭터는 정착했지만 정작 개그맨의 본분인 개그가 별로 재미없었다(...). 그래도 최악 수준은 아니라는 의견이 어느 정도 있어서 이 시절의 유재석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나중에 언젠가는 유재석이 반드시 잘 되면서 유명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꽤 많았다. "이름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TV에서 메뚜기 탈을 쓰고 나왔던 재미있는 개그맨이 나중에 예능 프로그램에서 MC를 하더니 엄청 유명해졌는데 그게 유재석이었더라." 정도였다.
어쨌든 방송에서 맨날 깨지고 까이고 치이면서 인지도를 점차 쌓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유재석은 크게 웃기지는 못 하더라도 일단은 '부담 없다'는 이미지를 얻었고 이를 바탕으로 유재석은 1999년 ' 서세원쇼'의 토크박스라는 인기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이것이 인기 개그맨 유재석 탄생의 시작이었다. 카메라 공포증은 그리 나아지지 못 해 심한 울렁증 때문에 시선도 한 곳에 못 맞추고 손도 벌벌 떨면서도 자신의 친구 찍새[20]와의 에피소드 등을 재미있게 풀어내서 순식간에 인기 스타로 오르기 시작한다. 토크 박스 역대 결산에서 토크왕 1위를 차지했을 정도. '자, 1000원 출발!', '그래! 이놈들이야!' 등의 에피소드는 워낙 유명해서 유튜브에서 자세히 검색하면 아직도 찾아볼 수 있다.
한편,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유재석은 자유선언! 오늘은 토요일의 코너 '잠을 잊은 그대에게'에서 남희석 로드매니저 출신이었던 방송인 김종석과 호흡을 맞추며 나름 인기를 끌었다. 프로그램의 주요 컨셉은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중 가장 마지막까지 공부하는 학생을 찾아 격려하는 것이었는데 이 내용보다는 도서관 불꺼지는 시간 동안 유재석과 김종석은 '밤을 잊은 퀴즈대결'이란 타이틀로 퀴즈 대결을 벌인 것이 시청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처음에는 7주 연속으로 패하며 맨날 유재석이 담당 고원석 PD와 김종석한테 당하고 열받은 유재석은 최종벌칙을 받으면서[21] 담주에 꼭 이기고 말리라는 컨셉이 주요 웃음거리였다. 8주차에 처음으로 승리한 후 조금씩 승률이 올라가기 시작했다.[22] 국어, 국사, 상식 분야에서 문제가 출제되었는데 국어는 둘이 비슷했고 상식은 유재석, 국사는 김종석이 우세를 보였다. 맞힌 갯수만큼 핫바, 소세지 등의 야식이 제공되었는데 서로 야식을 하나라도 더 먹기 위해서 아등바등하고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주요 웃음 포인트였다.
2.2.1. 무명 시절
상술되어 있듯 유재석의 경력에서 1991년 데뷔 후 약 10년간 긴 무명 생활을 했다는 것에 관한 이야기는 빠질 수 없다. [23][24]지금이야 자타 공인 국내 최고의 톱스타로 손꼽히지만 무명 생활이 상당히 길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신인시절인 90년대 중반 즈음부터 한국 정통 코미디계가 신식 예능에 밀려 사실상 붕괴하는 비극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MC로 전향, 뼈를 깎는 노력 끝에 지금에 이르렀다. 이 글만 봐도 그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피 나는 노력과 쓴 실패를 많이 겪어왔는지 알 수 있다.[25]그나마도 첫 5년 동안은 말이 공채 출신 코미디언이지 사실상 보조출연자나 다름없었다. 툭하면 심형래한테 불려가서 이런저런 영화에 진짜로 보조 출연을 했기 때문. 무한도전 이산 보조 출연 특집에서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무명 시절 사극 보조출연자도 꽤 해봤다고.
초반 나름 유망주의 모습을 보여줬지만 브라운관에선 거의 임팩트를 주지 못 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심각한 카메라 울렁증 때문에 방송에선 제대로 웃기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PD 등의 높으신 분들을 좀 어려워하던 유재석이 데뷔 초기 '풀뿌리 의사당'이란 코너에서 매우 간단한 역[26]임에도 몇차례 NG를 되풀이하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500명이 넘는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쫓겨났고, 그게 그대로 트라우마가 되었던 것이 컸다고 한다.[27]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 사건 당시의 대사를 전부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유재석에겐 안타까웠던 기억인 모양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훗날 유 퀴즈 온 더 블럭 200회에서 김용만이 직접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 뒤로 PD 앞에만 서면 덜덜 떠느라 아무리 연습해도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이를 안타까워한 입사 동기 박수홍이 유재석과 함께 코너를 열심히 짰는데, 당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던 박수홍에게만 여성 팬들의 환호가 쏟아지는 바람에 장장 반년에 걸쳐 준비했던 코너를 하지도 못하고 강판을 당하는 사건이 생겼고, 이로 인해 더더욱 슬럼프에 빠졌다.
게다가 동기인 김용만, 박수홍, 김국진, 남희석 등이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는 모습을 보면서 몇 번이나 개그맨을 관두려고 했다고 한다. 자신은 뜨지 못했다는 열등감 때문에 TV를 보고 있기도 힘들 정도였다고.[28] 한 번은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29] 김용만과 김태균의 설득으로 다시 개그를 시작했다고 한다.
한편 세월이 지나면서 이 당시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 오늘날에는, "유재석에게 무명 시절이 있었다고?" 라며 놀라움을 표시하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나온다. 어쨌든 각종 개그 프로그램이나 예능 프로그램에 꾸준히 얼굴을 비추기는 했고, 1993년에는 KBS 코미디대상 신인상 후보에 올랐다거나, 코미디 세상만사에서 유재석의 동기 양원경이 토크 코너에 게스트로 초대되었을 때, 자기 동기들이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하락세도 없이 계속 유명하다며 살짝 자랑을 한 적이 있었는데, 김미화가 동기가 누구누구인지 물어봤고 듣자마자 '남희석, 김용만, 박수홍, 유재석까지"라고 답했고 김미화도 "역시 공채 7기는 다르네. 모두 스타네.' 라고도 했다.[30] 즉, 아예 방송에 얼굴도 못 내비치는 연예인들에 비하면 인기가 있는 편이 아니었냐는 것이다.
그러나 유재석 본인을 시작으로 유재석의 동료 연예인들, 주변의 예능 PD들은 누구 하나도 유재석의 무명 시절이 매우 길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는 사실 표면적인 활동 기록만 보고 느낄 수 있는 착각에 가깝다. 유재석이 여러 프로그램에 꾸준히 얼굴을 비출 수 있었던 것은 유재석 본인이 출연할 수 있을만한 소위 '급'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주변 동료들과 PD들이 속된 말로 꽂아주었다는 게 크기 때문이다. 사석에서 워낙에 웃기는 재능이 넘치고[31], 성실하고 착한 유재석을 동료들이 안타깝게 여겼기 때문에 꾸준히 불러줬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김석윤 감독과의 사이에 있었던 일화들을 들 수 있다. 유재석이 당시 개그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있었던 건 김석윤이 어떤 역할이건 유재석을 불러줬던 덕분이고, 김석윤이 연출을 맡지 않으면 유재석은 원래 하기로 했던 역할조차 당일 출근길에 강판당할 정도로 입지가 위태로웠다. # 1997년에 남편은 베짱이 코너를 할 때 조차 송은이를 비롯한 동료들이 다 같이 모여서 유재석의 앞날을 걱정했으며 유재석을 칭찬하는 위장 댓글을 단 적도 있다는 일화도 있다. # 김석윤이 버라이어티 예능을 시작하면서 자유선언 오늘은 토요일의 한 코너인 '60년을 이어라'에 유재석을 기용하고 메뚜기 탈을 씌운 이유도, 유재석을 시민들이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금은 메뚜기 탈을 쓰지 않아도 유재석을 누구나 알아볼 정도니 상전벽해같은 일이다. 1997년 남편은 베짱이에 출연한 시점부터 1999년 토크박스에 출연 하기 전까지의 시기는 사람들이 개그맨인것은 인지하지만 유재석 이름 세글자까진 완전히 각인 시키던 시절은 아니었다. 완전 아무도 모르는 무명 개그맨까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당히 인기얻으며 이름을 알리던 단계까지는 올라가지 못했던 시기였다.
게다가 같은 프로그램에서 '잠을 잊은 그대에게'라는 스튜디오 예능에 유재석이 출연할 수 있었던 것도, 원래 스튜디오에는 유명하지 않으면 부르지 않는데 한 번 불러본 것이라고 언급했다. # 최진실의 추천 덕분에 스타 챔피언이란 목표달성 토요일의 코너를 맡아 괜찮은 반응을 얻었고 이것이 훗날 동거동락의 진행자 자리로 이어졌지만, 동거동락 문서에서도 적혀있듯 기획상으로는 임시직이었던 것을 자리를 맡고 난 후 보여준 활약 덕분에 계속 MC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에 가깝다. 김영희 PD는 유재석을 이 동거동락도 아니고 그 후의 공포의 쿵쿵따 즈음에 와서야 차세대 MC감이라고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 그 공포의 쿵쿵따 역시 유재석을 각별히 아끼고 밀어준 김석윤 PD가 맡은 프로그램이었다.
이런 입지였으니 제대로 된 수입이 있을 리도 만무해서 서른 살이 될 때까지도 부모님께 용돈을 받았다고 했으며 # 무한도전 인도 편에서는 20대 후반 당시는 가정 형편도 점점 어려워져서 개그맨을 그만두고 기술을 배워서 취직이나 해야겠다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기였다고 밝힌 적도 있다.[32]
즉, 유재석이 여러 프로그램에 꾸준히 얼굴을 비춘 것을 가지고 당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었다고 판단하는 건 이면의 실상을 알지 못하는, 인과관계를 잘못 파악한 것이다. [A]
인지도가 있어서 출연이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인지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잠재성을 높이 판단한 동료들이 꾸준히 기회를 줬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를 체감하는 본인과 동료들은 그 기간이 무명이었다고 소회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이 바로 유재석이 국민 MC가 된 후 수많은 신인들과 후배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기회를 주고, 이끌어주게 된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2021년
유 퀴즈 온 더 블럭 105화, 유재석의 데뷔 30주년 특집에서 스스로 이렇게 언급했다.
제가 그랬듯이, 한 사람의 관심과 애정이 어떤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겠구나
만약에 김석윤 PD님이 저를 버라이어티로 이끌어주지 않았다면....
그 한 분이 아니었으면, 그때 그분의 생각에 함께해주는 제작진이 아니었으면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없었을 수도 있죠.
신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바로 그런거죠. 때로는...답답해요. 나만 이렇게 방송을 하면 되나? 내 일이 잘 되면 내 역할을 한 건가?
그렇다고 제가 코미디 프로그램을 만들 순 없잖아요.
현실적으로는 굉장히 가능성이 희박해요.
그래도 관심을 갖는 것과, 아예 안된다고 제껴 놓는 건 정말 천지차이거든요.
만약에 김석윤 PD님이 저를 버라이어티로 이끌어주지 않았다면....
그 한 분이 아니었으면, 그때 그분의 생각에 함께해주는 제작진이 아니었으면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없었을 수도 있죠.
신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바로 그런거죠. 때로는...답답해요. 나만 이렇게 방송을 하면 되나? 내 일이 잘 되면 내 역할을 한 건가?
그렇다고 제가 코미디 프로그램을 만들 순 없잖아요.
현실적으로는 굉장히 가능성이 희박해요.
그래도 관심을 갖는 것과, 아예 안된다고 제껴 놓는 건 정말 천지차이거든요.
2.3. 2000년대
유재석이 본격적으로 MC로서 경력을 쌓기 시작한 것은 2000년 MBC 목표달성 토요일의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 유재석의 인지도에 부스터를 달아주었던 코너다. 그 당시에는 그다지 안면이 없던 최진실이 PD에게 같은 목표달성 토요일의 코너 <스타 챔피언>의 MC 자리에 유재석을 적극 추천해서 진행을 맡았는데 반응이 좋아 이를 발판으로 맡게 된 코너라고 한다. 유재석 본인도 그 덕분에 지금의 자신을 있게 했다고 밝혔다. 당시 나이로 보나 인기로 보나 주말 예능 메인 MC로서 중량감이 많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당대 스타들이 총출동한 동거동락을 깔끔하고도 맛깔나게 진행하였다. 동거동락은 투표를 통해 매주 한명씩 탈락하는 시스템이라 투표로 진행자인 유재석도 프로그램에서 하차할 뻔했는데, 도저히 대체할 사람이 없어서 MC 역할로 끝까지 남았다. 29살의 나이에 주말 예능 단독 MC를 맡았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파격이다. 이때부터 유재석의 장기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 만들기가 빛을 발하였다. 예능 신인이자 무명이었던 이범수, 강현수와 특급 캐미를 보이며 이들을 웃음의 핵으로 부상시켰다.
유재석은 같은 소속사인 싸이더스에서 남희석, 이휘재, 김한석, 정준하, 이혁재 등과 함께 활동했는데 이를 통해서 시트콤 멋진친구들의 주연도 했고 초특급 일요일 만세, 한국이 보인다의 메인MC, 싸이더스 소속 개그맨들이 공연한 '2001 개그폭력단' 공연도 겸하며 왕성한 활동을 했다.
2001년에는 '슈퍼 TV 일요일은 즐거워'에 고정으로 출연했는데, '사랑의 쌀 나누기' 코너에선 무의탁 노인들에게 쌀배달을 갔다가 할머니에게 지금의 당신의 처지를 듣고 눈물을 펑펑 흘렸고 그 뒤 몰래 개인적으로 밑반찬류를 잔뜩 싸서 다시 찾아가 할머니께 드린 일이 알려지면서 호감도가 대폭 상승하게 된다.
2002년부터 출연한 KBS의 프로그램 일요일은 즐거워의 MC 대격돌도 유재석의 이름을 알리는 데 크게 한몫 했다. 여기서는 MC라기보다는 고정 멤버에 가까웠다. MC대격돌에서 강호동이 힘을 이용해서 다른 출연자들을 제압하는 캐릭터였다면 공포의 쿵쿵따 에서의 유재석은 주로 강호동을 약올리다가 매번 응징 당하고 맞기를 반복하는 모습으로 강호동과 이런 콤비를 보여준 모습이 대다수였다.[34]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당시 유재석은 엄청난 까불이에 깐족거리고 촐랑거리는 분위기 메이커 역할이나 괜히 쓸데없이 썰렁한 몸개그나 펼치며 그냥 막 까부는 철부지에 개구쟁이 같은 가볍고 단순한 약골+무식 이미지가 강해 현재 국민 MC로써의 모범적이고 만능인 인 모습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으며 또 거기다가 다소 경박하고 부담스러운 웃음소리를 냈었고, 깐죽거리기까지 해서 다소 비호감 이미지로 각인되던 개그맨이었다. 웃음소리는 지적이 많이 들어오자 차츰 줄여서 현재는 이렇게까지 오버하면서 웃지는 않는다. 하여튼 당시의 공포의 쿵쿵따나 위험한 초대를 보면 지금과는 달리 상당히 찌질하고 깐죽거리면서 말이 많은 캐릭터임을 알 수 있다. 찌질하거나 깐족대는 이미지는 베짱이 시절부터 유재석이 가진 캐릭터의 아이덴티티 중 하나였다.[35] 이런 모습들 때문에 유재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몇몇 존재했다.
특히 강호동은 공포의 쿵쿵따와 강호동의 천생연분이 연속으로 히트를 치면서 국민 MC로 발돋움하는 결정적 프로그램이 되었다. 실제로 이 둘은 서로의 장단점을 잘 살리고 보완을 해줬다. 쿵쿵따가 가장 인기있던 시기가 강호동과 유재석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호동은 거칠고 강한 개그를 구사하고, 유재석은 깐죽거리고 경박한 개그를 보여주면서 유재석이 까불면 강호동이 응징하고, 강호동이 간혹 압제를 펼치면 유재석이 골탕을 먹이는 식으로 재미를 만들어냈다[36]. 그래서 2021년이 된 지금도 쿵쿵따와 천생연분은 재미있었다는 의견이 많다. 또한 오랜 친구이자 대학 동기인 이휘재, 김한석이 함께 하였기 때문에 여러 조합의 콤비 플레이를 펼칠 수 있었다. 쿵쿵따는 가식과 격식, 예의를 차리지 않는 유재석의 가장 날 것의 개그, 날 것의 웃음을 볼 수 있는 유일한 프로가 아닐까 싶다.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 공포의 쿵쿵따, 느낌표[37] 등 맡은 프로그램들이 연이어 성공하면서 버라이어티계에서 승승장구하던 유재석은 2002년 겨울, 돌연 이휘재, 송은이, 김한석, 정준하 등과 SBS에서 코미디타운이란 프로그램으로 콩트로의 귀환을 시도한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고 이로 인해 유재석은 6개월 동안 무명 시절의 설움을 다시 맛봐야 했다.[38] 이때의 실패를 교훈 삼아 유재석은 더 이상 절대로 타 장르로의 외도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그래도 태생이 개그맨인지라 콩트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모양이며 2013년도에 했던 인터뷰에서도 잘 나오는데, 다시 개그 프로에 도전할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 언젠가 다시 콩트를 하겠다고 말할 정도였고 2014년과 2020년 대상 수상 소감을 말하면서 코미디 프로그램이 다시 생겼으면 한다는 말을 했다. 또한 개그맨 후배들을 상당히 잘 챙겨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다시 예능으로 돌아와서는 위험한 초대와 천하제일외인구단, 진실게임 등으로 성공적으로 복귀하였다. 그리고 2003년 말, 김제동과 함께 KBS 해피투게더를, 강호동과 함께 SBS 실제상황 토요일의 X맨을 찾아라의 MC를 맡게 되면서부터 다소 막 나가는 깐족컨셉에서 탈피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을 수 있는 친근하고 자상한 이미지로 진일보하면서 강호동과 함께 유강체제 or 국민 MC라고 불리기 시작한다.[39] 사실 그 당시 예능MC계 톱이었던 신동엽이 사업한다고 스스로 프로그램들을 줄줄이 자진하차한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사업의 결과는... 유재석과 신동엽, 그리고 소속사 편 참고.
상기한 90년대의 기나긴 무명 시절과 더불어 2000년 대 초반의 가파른 성장, 그리고 2000년대 중반 무한도전의 폭발적인 히트는 '유재석이 언제, 어떻게 떴냐'는 부분에 대해 젊은 시청자들이 오해 아닌 오해를 하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무한도전 직전에도 유재석은 충분히 인기 연예인이었지만 무한도전 이후의 위상은 그때와도 또 큰 차이가 있다보니, 무한도전을 통해 유재석을 알게 되고 막연히 '유재석도 무명이 길었다'는 것을 썰로만 접한 젊은 시청자들은 '유재석은 무한도전으로 떴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었던 것.
그러나 실제로는 본 문단과 마찬가지로 유재석은 무한도전 전 2000년대 초반 이미 기회를 잡으며 탑 MC로 자리매김한 상태였고, 특히 무한도전 런칭 당시에는 탑급이 아닌 독보적인 1인자로 자리매김한 상태였다. 무한도전이 자리잡은 후에 무한도전 초창기를 돌아보는 여러 에피소드에서도 방송 관계자들로부터 무한도전은 '이미 S급이었던 유재석'을 믿고 런칭한 프로그램이었음 증언하는 내용이 많이 나왔으며, 초기에는 사실 그 당시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유재석이 왜 저런 멤버들과 저런 고생을 하나'[40] 라는 반응이 있었을 정도였으니.
즉 유재석은 데뷔 직후의 10여년의 무명을 극복하고, 2000년대 초 불과 수 년 사이에 매우 가파른 속도로 단숨에 탑급 MC가 되었으나, 정상급에 서자마자 무한도전이라는 인생작을 만나며 2000년대의 상승세마저도 상대적으로 묻히게 되는 커리어 곡선을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이렇다보니 아무리 무한도전 이전에 X맨이나 해피투게더를 이끌던 유재석의 위상이 이미 높았다 한들, '유느님'으로 불리며 한국 연예계 역대급 연예인 내지는 준 위인의 입지에까지 오른 무한도전 이후의 유재석에 익숙한 젊은 시청자 층은 2000년대 초의 유재석 마저도 '저때가 무명에서 갓 벗어난 시기에 연장선 정도인가보다'하고 오해 아닌 오해를 하는 경우가 있었던 것이다.[41]
진행 능력만이 계속 부각되어 개그맨 출신으로서 정체성이 희미해졌었으나 SBS 일요일의 좋다의 옛날 TV에서 심형래와의 콩트 호흡, 무한도전 내의 역할 바꾸기 '체인지'에서 뛰어난 관찰력으로 박명수를 완벽하게 흉내 내어 개그 센스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공포의 쿵쿵따와 X맨으로 입지를 다져놓은 유재석이지만, 2004년까지는 현재 자타공인 국민MC 자리에 비해서는 약간 부족한 감이 있었다. 그러나 2005년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은 예능 무(모)한도전에 들어가게 되며, 2005년 해피투게더 프렌즈에서의 활약으로 데뷔 14년만에 첫 연예대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달성한다. 무한도전의 공전절후 대히트를 거둔 후 유재석은 2006, 2007[42], 2009, 2010년 MBC 대상을 수상했고, 2008년에는 SBS 예능 패밀리가 떴다로 2008년, 2009년 SBS 대상을 수상하면서 KBS를 제외한 방송사를 꽉 휘어잡았다.[43] 연도로 따지면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연속으로 대상을 수상한 셈이다.
2.3.1. 유재석과 무한도전
자세한 내용은 유재석/무한도전 문서 참고하십시오."유재석"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유재석의 대표작을 넘어선 인생작으로, 무한도전과 놀러와의 활약으로만 MBC에서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대상을 무려 네 번이나 수상하였다.[44]
시작인 무모한 도전-무한도전 초창기만 해도 시청률이 허공답보 상태에 이르렀지만, 뉴질랜드 특집을 계기로 시청률이 떡상하며 당시 KBS 토요일을 지배했던 스펀지를 누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전성기인 2007~2009년까지는 높은 화제성-시청률을 달성하며 MBC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45] 다른 예능계의 발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받는다.
유재석 역시 무한도전을 자신의 대표 예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시작은 김태호 PD의 팬심으로 유재석의 전화번호를 얻어 섭외한 것이지만, 이것이 그대로 전설이 되어버린 것. 또한 1회 당시 내세운 평균 이하 슬로건에서부터 시작해 대상 수상, 나경은과의 결혼 등 정말 유재석 인생의 한 부분을 차지했다.
2.4. 2010년대
2010년에는 패밀리가 떴다가 갖은 논란과 1박 2일의 건재함으로 폐지되는 수모를 겪었으나, 그 해 신설된 런닝맨이 방영, 초기에는 1박 2일이 건재한 상황이었으나 2011년 강호동의 하차를 시작으로 1박 2일의 시청률 지분을 빼앗으며 인기 예능에 오르게 된다. 런닝맨의 흥행 덕분에 2011년, 2012년에도 연속으로 SBS 연예대상을 가져가는 데 성공하였다. 반면 사실상 유재석의 본진이었던 MBC에서는 다소 상황이 좋지 못 했는데, 이미 2010년 김재철 사장의 선임 후 노골적인 무도 죽이기가 진행되고 있었으며, 무한도전 2차 전성기인 2011년에도 나는 가수다가 대상을 수상하면서 크게 논란이 일었고, 2012년에는 놀러와가 폐지되고 말았다. MBC에서는 2014년이 되어서야 겨우 수상하는 데 성공했다.2013년에는 연속 대상 수상이 끊겼지만[46] 예능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인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47] 2005년부터 2016년까지 무려 12년 '연속'으로 대상 트로피를 가져간 유일한 사람이다. 그리고 백상예술대상 역사상 최초로 TV부문 엔딩을 장식하였다.
2014년 4월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방영되었고 8월부터는 정규 편성되는 KBS의 새로운 수요일 예능 프로그램 나는 남자다의 메인 MC로 발탁되었지만 부진했고 시즌제였기 때문에 그 해 12월에 종영되었다. 또한 해피투게더가 대거 개편된다는 소식이 있었으나 제작진 회의 결과 결국 기존 멤버 그대로 가는 걸로 결정되었다...였는데 최종적으로 신봉선이 빠지고 김신영과 조세호가 고정 게스트로 합류했다.
2015년에는 SBS에서 김구라와 함께 투톱 체제로 신 예능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를 맡았다. 또한 같은 해 처음으로 종편 채널인 JTBC와 계약 #,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을 유희열과 함께 진행한다.
2018년에는 1월달에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2로 화려한 포문을 열고 5월에는 넷플릭스의 최초 예능인 범인은 바로 너를 맡았다. 두 프로 모두 화제성을 이끌었고 슈가맨은 동시간대 1위를 했지만 모두 시즌제인지라 현재는 종영하였다. 또한 3월달에 13년간 진행했던 무한도전이 종영하게 되었다.
2018년 하반기에는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미추리 8-1000, 요즘애들이 편성되었다. 이 중 두 개는 2019년 상반기에 시즌 2로 편성되었지만 요즘애들은 시청률 저조와 화제성도 없어 결국 6개월도 못 채우고 폐지되었다.
동년 9월 19일, 데뷔한지 10,000일이 되었다.
2019년 하반기에는 놀면 뭐하니?로 김태호 PD와 같이 1년 4개월 만에 컴백하였다. 범인은 바로 너!(시즌 2)가 11월 8일 동시 공개되었다. 11월 29일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3이 첫방송을 하였다.
2019년 SBS 연예대상에서 장수 프로그램 런닝맨을 9년 동안 이끌어 온 공로를 인정받아 SBS 연예대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더불어, 런닝맨은 6관왕을 차지하며, SBS 예능프로그램 중 가장 많은 상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 때를 기점으로 2017-2018년에 잠시 끊겼던 대상 수상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2.4.1. 유재석과 런닝맨
자세한 내용은 유재석/런닝맨 문서 참고하십시오.무한도전과 더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유재석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런닝맨 초창기에 폐지가 거론되었을 때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발판이 되어 런닝맨을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게 만든 일등공신이라고 평가를 받는다.
현재 런닝맨이 무한도전을 꺾고 국내 최장수 버라이어티 예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으며 현재도 유튜브 등지에서 꾸준한 화제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 10년 넘게 동고동락한 멤버들과의 케미도 한 몫 했다.
2.5. 2020년대
2020년이 유재석의 한 해가 될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MBC의 놀면 뭐하니의 경우 지난해 트로트 가수 유산슬 열풍부터 시작해서 서서히 예능쪽에서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KBS의 해피투게더는 비록 4월에 종영하긴 했지만 그래도 마무리는 잘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JTBC의 슈가맨 시리즈는 그대로 이어갔으며, tvN에서는 런닝맨과 미추리에서 호흡을 맞춘 정철민 PD와 새 예능인 식스센스를 런칭하기도 하였다. 또한 tvN의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장수 토크 프로그램으로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2020년 7월 11일 SBS의 런닝맨은 10주년을 맞이했다. 런닝맨이 10주년을 맞이하면서 유재석은 대한민국 방송 역사상, 예능 역사상 최초로 3사 모두 20년이상 활동하면서 10년 이상 진행한 사람으로 최초의 트레블을 달성하게 되었다.[48] 거기에다 2020년은 유재석이 데뷔한지 29주년, 1972년생 쥐띠로서 경자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유재석에게는 데뷔 29주년과 개인적인 영예(3사 방송 10년 진행 트레블), 런닝맨으로서의 영예를 2배가 아닌 무려 3배로 얻게 되는 기쁨을 맛보며 2020년을 화려하게 맞이했다. 그리고 유재석 데뷔년도와 SBS 창사년도가 같다. 2020년은 유재석이나 SBS나 런닝맨이나 모두 샴페인을 터뜨리며 경사스러운 날을 맞이하는 보기 드문 풍경을 연출한 셈이다.
한편 놀면 뭐하니의 부캐 열풍은 이효리와 비를 다시금 소환하며 혼성그룹으로 만들었고 2020년 7월 25일[49] 부캐인 유두래곤으로 싹쓰리로 정식 데뷔하였다. 싹쓰리의 다시 여기 바닷가로 엠 카운트다운서 생애 첫 음방 1위를 차지했고, 쇼! 음악중심에서는 지상파 음방 최초 1위도 차지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오랜만에 대박 여름 시즌송이 나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후 환불원정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역시 큰 호응을 받았다.
이러한 열풍에 힘입어 시사저널이 선정하는 2020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방송연예 인물 부문에서 60%가 넘는 압도적 지목률로 1위를 차지했다. # 데일리 스포츠한국 조사 한국인이 좋아하는 연예인 3년 연속 1위, 한국갤럽 조사 올해의 예능방송인ㆍ코미디언 9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2020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여 2000년대 - 2010년대 - 2020년대 세 시대에 걸쳐 대상을 수상한 인물이 되었다.
2021년 1월 5일에는 김광수 CP 해투 제작진들이랑 손잡고 해투 종영 1년 만에 KBS 예능에 복귀한다는 기사가 올라왔으며 #, 청춘, 초심, 공감을 키워드로 토크쇼가 아닌 야외 예능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
2021년 1월 22일, 대미를 장식하는 범인은 바로 너!의 완결판인 범인은 바로 너!(시즌 3)가 공개되었다. 앞선 시리즈들과는 달리 총 8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즌4를 염원하는 듯이 실시간 검색어에 장시간 등극해 있었다. 이에 제작진은 시즌4는 아니고 스핀오프를 해보고 싶다며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
2021년 1월 28일에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스핀오프 프로그램인 난리났네! 난리났어가 공개되었다. 총 2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반응이 좋으면 정규 편성이 된다고 한다. 또한 이 프로그램에서는 유퀴즈에서 쓰던 자기님 대신에 난리님으로 호칭했다.
2021년 2월 8일, 상대 MC로는 이영지, 이용진이며( #), 당초 해피투게더 시즌5로 예상했으나 정식 프로그램명은 그냥 컴백홈으로 확정되었다.
2020년 백상예술대상 남자예능상 수상에 이어 2년 연속으로 남자예능상 후보에 들었다.
2021년 5월 5일, 1991년 5월 5일로부터 데뷔한지 30주년을 맞이하였다. 같은 날 유퀴즈에서 30주년 스폐셜 방송을 내보냈다.
2021년 5월 14일[50], 자정 넘어 제57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수상하였다. 남녀 예능인 통틀어 예능인 최초의 2관왕이다.
2021년 7월 15일 FNC 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이 종료됐다. 이에 카카오 엔터테인먼트 산하 레이블인 안테나로 소속을 옮겼다.
2015년에 무한도전으로 팀 대상을 거머쥔 한국방송대상에서는 유재석 개인으로서는 사상 최초로 연예오락 부문에서 놀면 뭐하니?로 TV 연예오락 부문 남자 최우수 예능인상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51] 이로써 유재석은 한국방송대상 진행자상을 제외하고 받을 만한 상은 거의 대부분 휩쓴 셈.
대한민국 연예인으로는 최초로 크리스마스 씰의 주인공이 됐다. #
방송ㆍ연예 관계자들이 뽑은 2021 최고 예능인 1위를 161표로 획득하며 여전히 최고의 자리에 올랐음을 보여주었다. "역시는 역시" 유재석, 2021 최고 예능인 1위[52]
2021년 12월 13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1 #2 따라서 같은 날 진행된 런닝맨 녹화는 불참했으며 그 후 개최되는 SBS 연예대상과 MBC 연예대상에도 불참이 예상된다. 또한 놀면 뭐하니?에서 12월 15일에 녹화 예정이었던 도토리 페스티벌도 잠정 연기, 2022년 1월 초 개최를 목표로 준비 중이다.
2021년 12월 18일 개최된 SBS 연예대상에 불참하였다. 대상 후보로써 '올해의 예능인상'을 받았는데, 런닝맨 멤버로써 대상 후보에 오른 지석진&김종국이 대리 수상하였다.
12월 21일 완치 및 격리 해제되어 런닝맨, 놀면 뭐하니?, 유퀴즈 촬영을 곧 재개할 예정이며 12월 29일 MBC 방송연예대상 참석이 확정됐다. 2021년에 KBS에서 이렇다 할 활약이 없었던 만큼 KBS 연예대상은 불참한다. #1 #2
2021년 12월 29일 MBC 연예대상에 참석하여,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MBC 연예대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더불어서 MBC 연예대상 최다 수상 기록,2년 연속 대상 수상 3회 기록을 쓰게 되었다.[53]
2022년 12월 17일 진행된 SBS 연예대상에서 지난 2019년에 마지막으로 대상을 수상한 후 3년 만에 다시 한번 더 거머쥐며 SBS에서만 무려 7번, 통산 19번째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쾌거를 달성했다.
2022년에도 역시 과반수가 넘는 득표율 52%를 달성하면서 무려 11년 연속이나 올해를 빛낸 예능인 1위에 선정되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
2023년에는 데일리스포츠에서 주관하는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 1위에 6년 연속으로 이름을 올렸으며, 한국갤럽에서는 12년 연속으로 올해를 빛낸 예능인 1위를 차지했다. #1, #2
3. 출연 프로그램
3.1. 방송 중
방영 기간 | 방송사 | 제목 | 비고 |
2010년 7월 11일 ~ 현재 | 런닝맨 | [54] | |
2018년 8월 29일 ~ 현재 | 유 퀴즈 온 더 블럭 | ||
2019년 7월 27일 ~ 현재 | 놀면 뭐하니? | [55] | |
2022년 11월 17일 ~ 현재 | 핑계고 | ||
2024년 9월 16일 ~ 현재 | 싱크로유 | ||
2024년 10월 22일 ~ 현재 | 틈만나면, |
3.2. 방송 예정
방영 기간 | 방송사 | 제목 | 비고 |
2024년 11월 24일 ~ (예정) | 풍향GO |
3.3. 방송 종료
출연 기간 | 방송사 | 제목 | 비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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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 1999년 | ||||||
1991년 ~ 1992년 | 유머 1번지 | ||||||
1991년 ~ 1994년 | 한바탕 웃음으로 | ||||||
1992년 ~ 1994년 | 젊음의 행진 | ||||||
1993년 | 웃음 한마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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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 웃음은 행복을 싣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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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채널@21 | [57] | ||||||
1999년 ~ 2000년 | 한국이 보인다 | [58][59] | |||||
로드쇼 힘나는 일요일 | [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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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 ||||||
2000년 11월 4일 ~ 2002년 5월 25일 | 목표달성 토요일 -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 | [6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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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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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대격돌 | [6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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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열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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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9일 ~ 2006년 4월 29일 | 무리한 도전 | ||||||
2006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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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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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 |||||||
8월 24일 ~ 10월 26일 | 일로 만난 사이 | ||||||
11월 8일 | 범인은 바로 너! 시즌 2 | ||||||
11월 29일 ~ 2020년 3월 6일 |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3 |
2020년대 | |||
2020년 | |||
9월 3일 ~ 10월 29일 | 식스센스 1 | ||
2021년 | |||
1월 22일 | 범인은 바로 너! 시즌 3 | ||
1월 28일 ~ 2월 4일 | 난리났네! 난리났어 | [스핀오프1] | |
3월 19일 ~ 4월 23일 | 컴백홈TV | [스핀오프2] | |
4월 3일 ~ 6월 5일 | 컴백홈 | ||
6월 25일 ~ 9월 24일 | 식스센스 2 | ||
8월 13일 ~ 8월 26일 | 리얼 마케팅 쇼 시즌1 [프로덕션Z] | [81] | |
10월 1일 ~ 12월 20일 | 더듬이TV : 우당탕탕 안테나 | [82] | |
2022년 | |||
2월 11일 ~ 3월 12일 | 리얼 마케팅 쇼 시즌2 [프로덕션522] | [83] | |
3월 18일 ~ 6월 17일 | 식스센스 3 | ||
4월 12일 ~ 6월 28일 | 플레이유 | [84] | |
9월 8일 ~ 10월 12일 | 더 존: 버텨야 산다 | [85] | |
11월 25일 | 코리아 넘버원 | ||
12월 15일 ~ 2023년 2월 23일 | 스킵 | ||
2023년 | |||
6월 14일 ~ 7월 19일 | 더 존: 버텨야 산다 시즌 2 | ||
5월 23일 ~ 8월 8일 | 플레이유 레벨업 : 빌런이 사는 세상 | ||
2024년 | |||
2월 23일 ~ 4월 12일 | 아파트404 | ||
8월 7일 ~ 9월 11일 | 더 존: 버텨야 산다 시즌 3 |
3.4. 게스트
예능 프로그램의 메인 MC가 되면서 TV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하는 일은 매우 뜸해졌다. 제시의 쇼!터뷰에 출연해서 밝힌 바로는 일부러 피하는 것 보다는, 워낙 경력이 오래되다 보니 아는 사람들이 이래저래 너무 많아서 하나를 하면 다른 하나도 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될까봐 그렇다고 한다. 다만 라디오 게스트로는 한 번씩 출연하고는 한다. 주로 지석진이나 남창희 등 절친한 지인들이 라디오 진행자를 맡을 때 부탁받으면 출연하는 듯하다. 물론 그 프로그램 MC는 유재석에게 진행을 빼앗기지 않도록 긴장 바짝 해야 한다. 어느새 MC가 유재석으로 바뀌는 상황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정식 게스트
- 코미디 청백전 - 명절마다 방영되던 프로그램으로 최근에는 아육대가 있다면 1980년대 ~ 1990년대에는 코미디 청백전이 있었다. KBS 코미디언들이 모두 나와 청팀과 백팀으로 출연하였고 유재석은 1992, 1993, 1994년 코미디 청백전에서 청팀으로 참여하였다.
- 도전 차차차 - 1993년 출연, 옆에 있는 사람은 전혜진 1993.1.31
- 체험 삶의 현장 - 98, 99년 나뉘어서 출연했는데 첫 출연에는 스티로폼 공장에 가고 99년도에는 지석진과 같이 수박밭에 갔다.
- TV는 사랑을 싣고 - 99년도에 짝사랑한 여자를 찾으려고 출연했다.
- TV쇼 진품명품 - 1997년,1999년 쇼감정단 출연
- 출발 드림팀 - 99~00년도에 게스트로 종종 출연하였다. 여기서 부상을 당해 동거동락 첫주차에서 휠체어를 타고 등장한다.
- 서세원쇼 - 실루엣토크에서 아나운서가 이상형임이 폭로된다. 지금 봐도 매우 재밌는 영상이어서 링크한다.
- 김혜수의 플러스유 - 당시 유재석의 프로그램이었던 로드쇼 힘나는 일요일을 홍보하기 위해 같은 프로그램 출연진인 이훈, 이휘재와 같이 나왔다.
- 쟁반노래방 - 2002년 11월 28일 56회 방송분에서 홍록기, 송은이와 함께 출연했다. 이로부터 정확히 1년 전인 2001년 11월 29일 4회 방송분에서도 출연했지만 이때는 스페셜 MC 자격으로 출연했다.
- 신동엽 김원희의 헤이헤이헤이 - 강호동과 함께 출연했다.
- 야심만만 만명에게 물었습니다 - 2003년 22회 방송분에 출연했다.
- 스펀지 - 2004년 3월 20일에는 쟁반노래방 세트장에서 스펀지 MC들과 바뀐 노래가사 맞히기를 함께 진행했고, 2004년 5월 29일에는 실험 도우미로 등장했다.
-
박명수의 거성쇼[86] - 현장토크쇼 TAXI - 박명수와 함께 출연. 이것이 정식 케이블 첫 출연이다.
-
유희열의 스케치북 - 박명수와 함께 출연. 게스트로 나가서 진행을 하려 했다고 한다.
만약 진행했다면 유재석의 스케치북이 됐겠지 - 스타주니어쇼 붕어빵 - 은률군의 만나고 싶다는 내용의 손편지를 받고 출연. 메인 녹화에 등장하지는 않고 사전 녹화 방식으로 방영되었다.
- 라디오 노홍철의 친한친구 - 무한도전 전 멤버와 함께 이동 라디오 스튜디오로 무한도전 시크릿 바캉스와 연계해서 강제 출연했다.
- 식신원정대 - 이휘재&유재석 특집. 무한도전 출연자인 정준하가 MC인 프로. 정형돈, 노홍철과 함께 등장했다.
- 정선희의 정오의 희망곡 - 2000년대 초중반 강호동과 함께 정선희와의 친분으로 특집성 기획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2005년 신년특집으로 나가서 어마어마하게 웃겨놓고 제작진과 정선희의 1년에 걸친 공작 끝에 2006년 신년특집에 또 나왔는데 2005년보다 더 웃겼다. 2006년 출연분 링크
- 유재석과 꿈꾸는 라디오 - 무한도전 라디오 스타 특집으로 방영됐는데 유재석은 꿈꾸는 라디오에 일일 DJ로 진행을 했다. 게스트로 라디오 출연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메인으로 진행하는 건 처음이었으나 방송에서도 그랬듯이 라디오에서도 안정적으로 진행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토크 본능을 자제 못해 사연이나 신청곡을 많이 받아주지 못했고 본인이 선곡해 온 노래도 많이 못 틀었다. 이적이 게스트로 출연해서 처진 달팽이를 재결성 하며 '압구정 날라리'와 '말하는 대로'를 같이 불렀고 유재석이 진행하는 라디오를 듣기 위해서 라디오 어플들이 폭주하고 1부에서 라디오 6만 건이나 돌파했다고 한다.
- 개그콘서트 - 400회 특집 내 인생에 내기 걸었네에 특별출연. 10주년 특집에도 고음불가 코너로 특별출연했다. 그리고 900회 특집에서도 출연해서 축사를 했다.
-
두 시의 데이트 지석진입니다 -
2019년
4월 18일 라디오 생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지석진과의 의리로 게스트 출연했다. 원래 더 빨리 나오고 싶었으나
목요일 스케줄 때문에 못 나오다가 정리가 되면서[87] 드디어 출연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세 시의 데이트 유재석입니다가 되었다[88] 같은 시각 두시탈출 컬투쇼에는 하필 이광수가 영화 홍보차 출연 중이었다는 걸 방송 시작하기 직전에야 두 사람 다 알게 되었다고 한다. -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 -
김신영이 여러 차례 유재석에게 러브콜을 한끝에 출연 약속을 받았고 마침내 2020년 1월 2일에 게스트로 출연하였으며, 오로지
합정역 5번 출구와
사랑의 재개발으로 2시간을 채웠다.
유재석: 아니, 왜 토크 중간에 노래를 트세요. 저 토크 몸살 앓아요. 내가 유재석인지 유산슬인지 헷갈려요
- 놀면 뭐하니? 콜라보
- 6시 5분전[89] - 뽕포유 프로젝트 일환으로 발매되는 앨범을 홍보하기 위해 출연하였다.
-
아침마당 - 2019년 11월 18일 방송에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출연했다. 제작진 측에서 밝히기를 본인의 의사를 묻지 않고 흔쾌히 출연하기로 했다고.
아니 어디가 흔쾌하냐고요 - 영재 발굴단 - 2019년 12월 18일 방송에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다시 출연했다. 트로트 영재 정동원군의 첫 콘서트에 깜짝 등장하면서 함께 무대를 펼쳤으며 특히 이번 무대는 정동원군을 응원하기 위해 비밀리에 제작진과 유산슬의 콜라보가 성사됐다고 한다.
- MBC 가요베스트 - 2020년 1월 26일에 여수MBC에서 순천 편이 방영됐고 유산슬은 무대에 올라와서 '사랑의 재개발'과 '합정역 5번 출구'를 불렀다.
-
자이언트 펭TV - 놀면 뭐하니에 출연했을 때
펭수가 유산슬에게
EBS로 한번 와달라고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제안을 수락하더니 유산슬이 아닌 유재석으로 변신하며 EBS에 최초로 출연하기로 했다. 2월 7일 방영이 된 이 날에는 유튜브 골드버튼을 받은 기념으로 100개의 붕어빵을 나눠주기로 하면서 펭수네 붕어빵을 열었는데 방송 후반부에 유재석이 등장했다. 유산슬이 잠시 쉬기로 해서 본인이 나왔다고 했고 유재석뿐만 아니라 김태호 PD한테도 붕어빵을 나눠주는 모습을 보였다.
유재석에게 깨알같이 골드버튼 받았다고 자랑한 건 덤. - 최고의 요리비결 - 유라섹 셰프 특집으로 2월 10일부터 2월 12일까지 방영하고 방송에서 선보였던 유산슬 라면 등의 요리 비법을 모두 공개한다. 이로써 EBS에 게스트로 두차례 출연했다.
- 맛있는 녀석들 - 놀면 뭐하니와 합작했고 최초로 코미디TV에 출연했다. 방송 내내 네 사람의 남다른 식성에 유재석은 기겁을 했고 맛있는 녀석들이 '유산슬의 인생라면'에 있는 모든 메뉴들을 시켜 먹으면서 진땀을 빼기도 했다. 모든 메뉴를 해치우고 나서 이중에 특선짬뽕라면이 제일 맛있었다고 극찬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고생한 유재석을 위해 김준현이 비빔라면을 끓여주고 문세윤이 설거지까지 도와주면서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 쇼! 음악중심 - 놀면 뭐하니에서 기획한 프로젝트 그룹 싹쓰리가 기획사의 자사 프로그램 쇼! 음악중심에 7월 25일 데뷔무대를 하게 됐다. 유재석에게는 퓨쳐라이거의 ' Let's dance' 무대 후 본인의 또 다른 부캐로 만 11년 7일만에 출연이 이뤄지게 됐다. 이 날 사전 인터뷰를 잠시 했는데 본캐의 본능을 숨기지 못했는지 사실상 거의 진행을 했고 MC들이 싹쓰리와 대화에 끼지 못할 정도로 웃기는 상황들이 나왔다.[90] 무대에서는 ' 여름 안에서'와 타이틀곡 ' 다시 여기 바닷가'를 불렀고 1위 후보에도 뽑혔으나 아쉽게도 2위를 하면서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 엠 카운트다운 - 싹쓰리가 이번에는 타 방송사 음악 프로까지 뚫게 됐는데 이번에 7월 30일 엠카운트다운에도 나와서 데뷔 무대를 하게 됐고 이와 더불어 유재석은 엠넷에 최초로 출연하게 됐다. 한편 싹쓰리는 타이틀곡 ' 다시 여기 바닷가'와 ' 그 여름을 틀어줘'를 불렀고 1등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 MBC 뉴스투데이 - ' 1분 튼튼건강'에 유재석, 정준하, 하하, 이이경이 조혜련과 함께 등장했다.
- 꼭두의 계절 - ' 놀뭐 인력' 특집에서 유재석, 정준하, 이미주의 특별출연이 성사되었다.
- 연인 - '놀뭐X연인' 특집에서 유재석을 비롯한 놀뭐 멤버들이 드라마 12,13,15회에 특별출연하게 되었다.
- 2023 MBC 가요대제전 - 원탑으로 연말 가요제 무대에 서게 되었다.
- 지나가다 출연
- 위기탈출 넘버원 - 노홍철 심폐소생술 관련 기습 촬영 도중 박명수와 함께 출연했다.
- 도전 1000곡 - 태진아가 런닝맨 촬영 중인 유재석 보고 노래 부르고 가라 해서 얼떨결에 노래 부르고 갔다. 김종국도 함께 출연.
- 인간의 조건 - 허경환과 해피투게더 찍다가 찍혔다.[91]
- 나를 돌아봐 - 박명수가 해피투게더 촬영 현장에서 찍은 탓에 꽤 많은 분량을 출연.
- 나 혼자 산다 - 전현무의 30대 마지막 생일 날 방송국에서 만났다. #
- 님과 함께2 - 최고의 사랑 - 김영철 & 송은이의 가상 결혼식 청첩장을 받는 것으로 출연했다. 슈가맨 출연 후 오랜만의 JTBC 출연. #
- 한끼줍쇼 - 슈가맨 촬영장에서 이경규와 강호동과 잠시 재회. #
- 살림하는 남자들 - 율희가 해피투게더 4 촬영으로 인해 대기실 앞에서 촬영. #
- 나 혼자 산다 - '2017 MBC 방송연예대상' 시상식장에서 나 혼자 산다 멤버들과 잠시 만났다. 당시 대상 후보였던 전현무와 대화를 나눴다. #
- 미운 우리 새끼 - 김종국의 9년 만에 단독 콘서트에 이광수, 전소민과 함께 격려차 대기실을 방문하면서 잠시 등장. 금일봉을 쾌척했다는 미담도 덤으로 뿌리고 갔다. #
- 온앤오프 - 온앤오프의 고정 출연자 조세호의 ON이 유퀴즈이다 보니 어쩌다 우연히 출연. #
- 문명특급 - '제57회 백상예술대상', '2021 올해의 브랜드 대상' 시상식장에서 재재와 짧은 만남을 가졌다. #, #
- 공부왕찐천재 홍진경 - '2021 올해의 브랜드 대상' 시상식장에서 홍진경과 짧은 만남을 가졌다. #
- 공부왕찐천재 홍진경 - '제58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장에서 홍진경과 짧은 만남을 가졌다. #
- 쇼! 음악중심 - WSG 워너비 가야G의 1위를 축하하기 위해 이미주와 함께 깜짝 등장했다. #
- 조선의 사랑꾼 - 오나미 결혼식장에 조세호와 함께 등장. #
- 식빵언니 - 김연경의 은퇴식을 축하하기 위해 이광수와 함께 깜짝 등장했다. #
- 영상 출연
- 힐링캠프 - 이적에게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92]
- 나 혼자 산다 - 400회 특집에서 축하 인사를 했다. #
- 비디오스타 - 205회에서 트로트 가수 진성에게 영상 편지를 보냈다. #
- 비디오스타 - 마지막회에서 조세호와 함께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
- TMI SHOW - 이미주의 첫 MC를 축하하는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
- 미운 우리 새끼 - 최양락의 환갑잔치를 축하하는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 갓파더 - 최민수의 생일을 축하하는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
- 실화탐사대 - 영상 편지를 통해 박수홍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
- 히든싱어7 - 엄정화에게 축하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
- 목소리 출연
- 히든싱어3 - 이적 편에 전화 통화. 2라운드에서 실제로 전반부를 듣고 투표에도 참여하고 이적이 어디 있는지도 찍었다. 실제로 출연을 하고 싶었으나 스케줄이 안 맞아서 전화 통화로 출연.[93]
- 상상플러스 - 송은이와 전화 통화
- 전무후무 전현무쇼 - 전현무와 전화 통화
- 유희열의 스케치북 - 유희열과 전화 통화
- 마이 리틀 텔레비전 - 정준하, 이경규와 전화 통화
- 집사부일체 - 이승기와 전화 통화 #
- 뇌피셜 - 김종민과 전화 통화 #
-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 - 송은이, 김숙과 전화 통화 #
- 전지적 참견 시점 - 황광희와 전화 통화[94]
- 2시의 데이트 지석진입니다 - 청취자 2명과 지석진과 전화 통화
- 윤정수 남창희의 미스터라디오 - 윤정수, 남창희와 전화 통화
- 빅픽처 - 하하, 김종국과 전화 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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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출연
- 영구와 우주괴물 불괴리 - 반장 역.
- 티라노의 발톱 - 원시인 역.
- 피원에이치(P1H): 새로운 세계의 시작 - 한 역.
- 파일럿 - 유재석 역.
- 드라마 카메오 출연
- 싱싱 손자병법 - 8화 김밥집 주방장 역.
- 올드미스 다이어리 - 155화 도둑 역.
- 이산 - 무한도전 멤버들과 함께 35화~36화 특별출연. 특히 유재석과 정준하는 주막에서 대사까지 하기도 했다.
- 김치 치즈 스마일 - 5화 결혼식 사회자 역.
- 내조의 여왕 - 마지막화에 무한도전 멤버들과 함께 신입사원 면접생 역으로 특별출연.
- 냄새를 보는 소녀 - 런닝맨 멤버들과 함께 MC 역으로 특별출연.
-
내 딸, 금사월 -
무한도전의
무도드림 특집 문서 참고. 무려 2회 동안 등장했다.
2000만 원 뽕을 뽑는 순옥 킴그림자 역할 -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 재연배우로 참가. 무도드림 문서 참고.
- 사랑은 뷰티풀 인생은 원더풀 - 조윤희와의 인연으로 첫 회에 TV 화면으로 특별출연했다.
- 좀비탐정 - 6화 강시 역.
- 유튜브 채널 출연
- 대범한TV - 밥먹다가 우연히만난 국민MC 유재석(선배님)과 조세호
- 진용진 - 연예인들은 자기가 광고찍은 걸 자기가 사용할까?
- 제시의 쇼!터뷰 - 🏆SBS 연예대상 특집 1탄🏆 쇼터뷰 게스트로 유재석 등판?[95]
- 이지금 [IU Official] - '라일락(LILAC)' MV ReactionㅣWith 유재석, 조세호
- 공부왕찐천재 홍진경 - 사람 홍진경의 진솔한 이야기(유재석,이금희) [공부왕찐천재]
- 걍밍경 - 다비치 첫째 시집가는 날
- 짐종국 - 추석이니까 재석..(진), 유산소 토크...(Feat. 유재석, 지석진), 토크는 고 반복, 운동은 저 반복… (Feat. 유재석, 지석진)
- 식빵언니 - 넷플릭스 '코리아 넘버원' 제작발표회 브이로그 (with 유재석,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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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편한세상 - "데려다주는건, 핑계고🐔" | 유재석, 김종국 편
- 조동아리 - [EP.1-1] 유느님을 '긁'을 수 있는 유일한 형들!, [EP.1-2] "야! 재발아~ 우리가 언제 부탁하디?"
4. CF
한창 국민 MC로 불렸던 전성기 시절에는 인기에 비해 CF를 거의 찍지 않았다. 당시 개인으로 찍은 CF는 아버지의 지인이 운영하는 네네치킨이나 홈쇼핑 기업 홈&쇼핑, 유재석 개인이 좋아하는 자동차 관련 제품인 불스원샷, 국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이미지라는 공통점으로 2014년부터 계약을 맺은 고려은단 등이 다였다. CF를 너무 많이 찍거나 업체를 잘못 선택했다가 이미지가 떨어진 연예인들을 생각해보면, 본인이 대외 이미지 문제나 광고 단가 등 여러 이유로 인해 CF 선택을 상당히 조심스럽게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듯 하다.하지만 2019년 즈음부터는 자신의 위치에 대한 부담을 어느정도 덜은 것인지 단독으로 CF에 출연하는 빈도수가 상당히 많이 늘었고, TV 광고 외의 브랜드 모델로 활동하는 경우도 꽤 잦아졌다.
CF 찍을 때 자주 나오는 특유의 표정이 있다. 일명 유재석의 자본주의 미소 그 예시.
<rowcolor=#fff> 기업명 | 브랜드명 | 분류 | 공동 출연 |
1998년 | |||
오비맥주 | OB라거 | 맥주 | |
1999년 | |||
정보통신부 | 한국정보문화센터 이동전화예절캠페인 | 공익광고 | 강호동, 정선희, 홍진경 |
2000년 | |||
세원종합상사 | 인난찌 | 의류 | 임수정, 이훈, 이휘재 |
신세기통신 | 아이터치017 | 통신사 | 전지현 |
롯데삼강 | 바꿔바꿔 | 아이스크림 | |
2002년 | |||
해태음료 | 써니텐 | 음료 | 강호동, 이휘재, 김한석 |
반도스포츠 | 반도스포츠 | 의류 | 이휘재, 김한석 |
2003년 | |||
골드필 | 골드필 | 쥬얼리 브랜드 | 지면광고 |
2005년 | |||
해태제과 | 젤루조아 | 아이스크림 | 강호동 |
2007년 | |||
공문교육연구원 | 구몬학습 | 학습지 | 박명수, 노홍철 |
2007년 ~ 2008년 | |||
TG삼보 | TG삼보컴퓨터 | 컴퓨터 | 박명수, 노홍철, 하하 |
2007년 ~ 2010년 | |||
신한금융그룹 | 기업 PR | 금융 |
이영애(2007) 배용준(2008) 차태현, 구혜선(2009) 강호동(2010) |
2007년 ~ 2019년 | |||
혜인유통 | 네네치킨 | 치킨 브랜드 |
정준하,
노홍철(2007 ~ 2008) 티아라(2009 ~ 2010) 시크릿(2011) 스윙스(2014) 오마이걸(2016)[96] |
2008년 | |||
S-OIL | S-OIL | 정유 | 차승원, 장미란, 김병만 |
2009년 | |||
지오다노 | Cheer you up 캠페인 | 의류 | 장동건 |
2010년 | |||
ABC마트 | ABC마트 | 신발마트 | |
한국닌텐도 | Wii Sports Resort | 게임기 | 현정화, 유소연, 윤옥희 |
2010년 ~ 2015년 | |||
애경산업 | 리큐 | 세제 | 정범균(2012) |
2012년 ~ 2016년 | |||
홈&쇼핑 | 홈&쇼핑 | 홈쇼핑 |
정범균(2012) 전인화(2016) |
2013년 | |||
삼성물산 | 에버랜드& 캐리비안베이 | 놀이공원 | |
2013년 ~ 2015년 | |||
코카콜라 | 코카콜라 | 음료 | 길을 제외한 나머지 무한도전 멤버 |
2014년 | |||
이앤비인터내셔널 | 쉐펠 | 의류 | 송지효 |
2014년 ~ | |||
고려은단 | 비타민 브랜드 | 비타민 | |
2015년 | |||
킹 코리아 | 캔디 크러쉬 소다 | 게임 | 무한도전 전체 멤버들 |
2015년 ~ 2016년 | |||
시원스쿨 | 시원스쿨 | 영어강좌 |
류현진(2015) 강호동(2016) |
2016년 | |||
우리은행 | 위비톡 | 금융 | |
2016년 ~ 2023년 | |||
불스원 | 불스원샷 | 차량용품 | 마동석(2018) |
2017년 ~ | |||
에이피알 | 메디큐브 | 화장품 | |
2019년 ~ | |||
메가스터디교육 | 엘리하이 | 초등인강 | 홍진경(2022) |
2020년 | |||
빙그레 | 슈퍼콘 | 아이스크림 | [97] |
릴리스 게임즈 | AFK 아레나 | 게임 | |
2021년 | |||
삼성전자 | 갤럭시 S21 시리즈 | 스마트폰 | 펭수 |
갤럭시 Z 폴드3 시리즈 | 김희철, 이미주, 승희, 정세운 | ||
삼성화재 | 삼성화재 다이렉트 | 자동차보험 | |
SPC삼립 | 삼립호빵 | 식료품 | |
2021년 ~ 2023년 | |||
(주)에이치씨에이에스(HCAS) | 케이카 | 중고차 | |
2021년 ~ | |||
농심 | 배홍동 비빔면 | 식료품 | |
2022년 | |||
삼성전자 | 갤럭시 S22 시리즈 | 스마트폰 | 차승원, 조세호, 김희철, 이미주, 승희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디즈니+ 데이 | 스트리밍 서비스 | |
2022년 ~ 2023년 | |||
코웨이 | 룰루 비데 | 가전제품 | 김성철, 박세완, 장혜진 |
2023년 ~ | |||
7번가사람들 | 7번가 피자 | 패스트푸드 |
5. 더빙
더빙 작품 | ||
<rowcolor=#fff> 연도 | 작품명 | 역할 |
2007년 | 꿀벌 대소동 | 베리 B 벤슨 역 |
2015년 | 비긴 어게인(MBC 자체더빙) | 데이브 콜 역 |
6. 홍보대사
홍보대사 경력 | |
2000년 | |
이투비 연예인 주주단원 | |
2001년 | |
국무조정실 교통안전 홍보대사 | |
2002년 | |
한게임 스타클럽 1기 | |
2003년 | |
문화관광부 청소년 책읽기 홍보대사 | |
2006년 | |
중소기업청 중소기업 성공을 돕는 사람들 회원 | |
2014년 | |
보건복지부 제5회 대한민국 나눔대축제 홍보대사 | [98] |
송해 헌정공연 집행위원 |
[1]
박명수의 평가는
IMF 때 너무 무리한 사업 확장을 하다가 아예 말아먹었다고 한다. 물론 장난으로 한 말이다. 애초에 시간대가 다르다. 유재석의 가게가 흔들린 것은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이고 IMF는 1990년대 말이다. 이때는 이미 유재석이 성인이 되어 개그맨 데뷔까지 끝낸 시점이었다.
[2]
이승준이 농담 삼아 밝히기를, 사이가 틀어져서 싸움을 했는데 때린 기억은 있지만 맞은 기억은 없다고 해서 큰 웃음을 줬다.
[3]
그때 서울예대에 다니던
김슬기가 짧지만 한 컷 잡혔었고 실질적인 첫 데뷔작이었다.
[4]
방송 데뷔 초창기 포함
[5]
이 때 같이 방위 근무를 했던 동기가 배우
이정재였다. 이정재가
힐링캠프에 출연해 말했던 에피소드가 있는데, 유재석과 이정재는 격일로 돌아가면서 카풀로 출근을 했다고 한다. 이때 당시에 이정재는
모래시계로 급부상하는 신인이었기에 여기저기 술 약속이 많았었는데, 하루는 술이 덜 깬 이정재가 자신이 차를 몰고 출근할 차례가 되어도 늦잠을 잤고, 유재석이 오히려 이정재를 모시러(?)갔다고 한다. 자고 있던 이정재를 깨워서, 군복 챙겨서, 당시 방위병의 업무 중 하나인
국방일보를 수령까지 해서 부대에 도착하면 옷을 갈아입히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정재가 언급하기로 유재석은 예나 지금이나 착하고 성실한 친구라고 한다. 유재석의 인성을 알 수 있는 점은, 이런 톱스타와의 에피소드를 자신이 탑 MC로 올라갈 때까지 한 번도 본인 입으로 이야기를 한 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그 옛날
서세원쇼같은 토크쇼에서 이런 에피소드로 1위를 하게 되면 엄청난 이익을 볼 수 있었음에도, 군대 동기이자 톱스타였던 이정재의 흑역사(?)를 방송에서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물론, 유재석은 성격이 성격인만큼 이정재가 아니라 다른 친분이 있는 연예인이었어도 함부로 사생활을 이야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항상 방송에 나와서 다른 연예인들 사생활이나 뒷이야기하는거 미친듯이 좋아하는
어떤 연예인과 참 비교된다.
[6]
유재석이 부끄러워하는 김용만, 남희석, 박수홍, 최승경과 같이 춘 그 Step by Step도 사실 춤을 가장 잘 추는 유재석이 나머지 4명의 안무까지 지도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유재석 본인은 무대 울렁증 때문에 나머지는 다 잘하는데 혼자서만 안무를 계속 틀리는 굴욕을
겪었다.
[7]
으레 이런 얘기를 할 때 화려한 과거 편력을 들먹이며 "내가 입만 뻥긋하면 너는 연예계 은퇴야" 라는 드립이 주를 이루지만, 유재석은 그런 건 없고 그냥 당시에 여자들에게 처절하게 무시당했다고 놀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자신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는 식으로 얘기하긴 한다만 이럴 때마다 주위에서 "자존심 땜에 뻥치지 마요" 라고 일축당한다.
[8]
이 장면은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하는데 노을이 여태껏 나온 사람 중 가장 웃기다고 코미디언이 되고 싶다하자 성동일이 TV를 보면서 코미디언 되기가 어디 쉽냐고 쟤는 저 정도가 한계라고 말한다. 정말 비바청춘 방영 당시엔 몰랐을 일이다.
[9]
사실 유재석은 비바! 청춘에 합격하지 않았지만 함께 신청해 합격한 고등학교 친구
이석준이 PD에게 부탁해 출연할 수 있다고 한다.
[10]
1991년 5월 5일에 합격했고 생일 지나기 전에 합격했으므로 만 18세가 맞다. 유재석의 생일은 1972년 8월 14일
[11]
현재 최연소 공채 개그맨 타이틀은 SBS 공채 7기
김홍준이 가지고 있다. 1986년 12월생인데 2003년 공채에 합격해서 만으로 17세도 되기 전에 공채 개그맨이 됐다.
[12]
군 전역 후 SBS 6기 공채 연기자로 전환. 공채 동기로 김명민, 류진 등이 있다.
[13]
봉숭아 학당에서
오서방 아들로 나왔던 개그맨이다. 그러나 개그맨으로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사실상 조연 전문 탤런트가 되어
영광의 재인을 비롯한 각종 드라마에 조연으로 나왔고 그 인연으로 탤런트
임채원과 결혼에도 성공했다. 다만 개그계를 떠나게 된 계기는
박수홍과 싸움을 하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4]
이 개그는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을 풍자하는 내용의 개그였으며, 유재석이 어린아이를 흉내내며 손발이 오그라드는 개그를 하였다. 그 개그는 1990년도 당시 CF를 패러디 한 것으로 그 CF에서 어린아이가 나와서 "우리 엄마는요"하며 엄마를 자랑하는데 유재석이 그 아이를 모사한 것이다. 그 CF에 나온 아역배우가
김민정이다.
1990년 카스타드CF
[15]
만약 정말 그때 생각이 그랬다면, 당시 방송계나 코미디를 몰라도 한참 몰랐던 것이다. KBS는 공영방송이라는 이미지에
시사개그를 굉장히 꺼리는 성향이 있었고, 아무리 군부정권이 끝났다 해도 당시에는
노태우 정부였던 지라, 회장님 우리 회장님의
김형곤이나 맹구나 달용이로 유명한
이창훈같은 고참 코미디언도 시사개그 함부로 쳤다가 프로그램 자체가 날아갈뻔한게 몇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시사풍자 개그를 하고 그걸로 상위권을 차지하려고 했다는건 방송국 생리를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 그리고 이후로도 유재석은 시사풍자개그에 대해서는 정말로 꺼린다.
[16]
1994년 12월 26일 입대한 이른바 '마지막 방위' 세대. 52사단
방위병 출신으로 동기였던
이정재와 함께 출퇴근 했고 한다.
출처. 또한
공포의 쿵쿵따에서 내무반을 컨셉으로 한 무대가 나왔는데, 이 때 이휘재가 유재석이 입영 때부터 쓴 모자를 공개하기도 했다.
근거 영상 이 모자에는 복무 1달이 지날 때마다 점을 찍어서 제대를 기다린 유재석의 흔적을 볼 수 있다.
[17]
다시 봐도 정말 재미있는 개그 코너다. 유재석과 최양락의 명연기를 볼 수 있는
꽁트이므로 유투브에서 꼭 찾아보도록 하자.
[18]
미션이 손자, 혹은 손녀와 할아버지, 혹은 할머니 간에 끝말잇기를 해서 5단어 이상 성공하는 것이었다.
[19]
자유선언 오늘은 토요일에서 함께 통영으로 촬영을 갔었는데, 이효리와 유재석의 인연이 시작된 것도 이 때부터였다고 한다.
[20]
많은 사람들이 웃기려고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낸 게 아닌가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있었지만 자신이 실존인물이라고 확실히 못 박았다. 대충 내용은 찍새와 학창 시절 때 놀러갔다가 홀로 잠깐 돌아다니고 찍새와 자리를 잡아놓은 곳으로 돌아가다가 여자 일진들에게 걸려서 얻어맞자 아파서 우니 여자 일진들은 "여자한테 맞았다고 꼴에 분해서 우냐?"라고 갈구자 "진짜 아파서 울었어요."라고 항변했다고 하며, 덩치도 좀 있고 인상도 무서운 친구 찍새가 나타나자 속으로 좋아했으나 알고보니 찍새는 진작에 당하고 라면 끓여주는 신세가 되어서 일진들에게 보고하러 왔다는 이야기다. 다음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주 낮은 확률로 불쌍해서 그냥 보내줬거나 뜯어먹을 만한 것이 없어서 라면 셔틀만 시키고 쫓아냈을 가능성이 높다.
[21]
주로 대학교의 제일 높은 계단을 오리걸음으로 올라가기, 산 등산 등 육체적으로 힘든 벌칙이 많았다.
[22]
최종적으로는 종영 당시 8승22패로 마무리 했다.
[23]
유재석 본인조차 9년 혹은 10년에 가깝다고 표현을 했지만 실제 10년이라기 보다는 그 만큼 오래 걸렸다는 관용적 표현으로 러프하게 말한듯 싶다. 현재도 마찬가지지만 더 경직된 사회였던 당시엔 무명 연예인이 연예 매체가 아닌 일간지와 단독 인터뷰 하는건 많이 어려운 일인데 남편이 베짱이를 출연하던 97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미 선언적이나마 유명세를 얻었다는 말을 들었고 그 후 98년 kbs 자유선언 토요일의 보조 엠씨 및 코너 엠씨 시절,시청률 40퍼센트를 상회하던 99년 서세원쇼등에 출연했던 기간을 전부 무명으로 보기는 어렵다
[24]
유재석이 소회하며 저 당시에도 수입이 적었다는 말은 종종 했지만 여러 히트곡이 있었던 플라이투더스카이나 사랑일뿐이야,입영열차 안에서로 큰 인기를 얻었던 김민우등도 활동은 많이 했지만 수입은 0 에 가까웠다는 기사가 종종 올라 오듯이 당시는 인기와 수입이 비례하지 않았던 시기로 보는게 합당하다.소집 해제 이후인 남편은 베짱이 시절을 기준 삼으면 대략 6년 , 좀 더 기준을 높여 서세원쇼 이후로 기준 잡으면 데뷔 8년 이후부터는 어느 정도 인기를 얻은 개그맨의 범주에 들어섰다고 할만하다
[25]
이런 게 존재했다는 사실마저 알기 힘든 온갖 프로그램들을
이경규의 프로그램들에 밀려 말아 먹은 기록이다.
[26]
단체장 역을 맡은 김용만의 보좌관 역이었다고 한다. 김용만이 추천해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27]
김용만 말로는 NG 사고를 친 이후 관객들이 웅성거리는 시점에서 멘붕이 와서 이미 눈이 풀렸었다고 한다.
[28]
이 일화는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 6번째 탈락자로 유재석이 선정된 직후 나온 '그는 누구인가'에서도 나온다. 다른 프로그램에서 말한 걸 짜깁기한 거 같다.
[29]
그 커피숍 알바 자리를 알아봐준 게 대학 동기인 김태균이다.
[30]
실제로 KBS 개그맨들 중 7기가 가장 오랜 연예활동의 생명을 이어간 사람이 많은 케이스다.
[31]
해피투게더에서 박수홍이 밝힌 바에 따르면 유재석이 나이도 어리고 돈도 없으니 같이 밥을 먹어도 계산에서는 빼주고 대신 밥값 몰아주기 사다리타기의 진행을 시켰는데 밥을 못 먹을 정도로 웃겼다고 한다. 슈가맨에 나왔던 군대 동기인 혼성그룹
ZAM의 황현민에 따르면 방위시절에도 사석에선 정말 웃겼는데 심지어 19금 개그도 자유자재였다고 한다.
[32]
당시의 시대상을 생각해야 한다. 유재석이 20대였던 90년대는 남성의 평균 초혼 연령이 20대 후반이었던 시기로, 그만큼 사람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자리 잡고 가정을 꾸리는 것이 빨랐던 시기다. 30살 넘어서도 결혼 못하면 꽤나 멸시 받던 게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이런 시대에 나이가 서른이 다 되어가도록 자리도 잡지 못하고 용돈을 받으면서 생활했다는 것이 심적으로 굉장히 부담이 심했을 것이다. 남들은 다 결혼하고 빠르면 애도 볼 나이였으니까.
[A]
다만 현재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무명 연예인은 진짜 얼굴이나 이름을 거의 모르는 경우를 말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반해 윗 단락에서도 설명 했듯이 이유가 어쨌든 간에 유재석은 티비에는 꽤 자주 출연하는 연예인이었다.꽁트의 보조 출연자 정도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93년도에도 이미 kbs 2tv 달려라 고고등의 버라이어티 쇼를 통해 인기 최정점이던 서태지등을 상대로하는 진행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물론 당시에 인기나 위상은 보잘 것 없긴 했지만 동료의 추천이든 감독의 선택이든 티비에 자주 나오던 사람인지라 얼굴은 어느정도 알린 케이스였다.인기가 없다는것과 무명을 동의어로 생각한다면 잘못된 표현으로 볼 순 없겟지만 현재 쓰이는 개념의 무명의 용례와는 좀 다른 경우라 할 것이다.
[34]
한 번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구호가 나오는 동안만
수박을 먹는 미션을 강호동과 했는데, 강호동이 게임 도중 웃음이 터져서 분비물을 그대로 유재석의 얼굴에 강타하는 씬은 2002년 내내 이슈가 되었다.
[35]
어찌 본다면 유재석을 스타급 예능인으로 만들어준 건 이 깐족이다. 사실 깐족대는 건
X맨이나 무한도전, 런닝맨에서도 나온다. 2022년 현재도 마찬가지인데, 나이로 엄연한 형들인
지석진,
박명수,
정준하나 본인보다 훨씬 강골인
김종국에게 항상 깐족대는 모습이 있다. 특히 김종국에게
윤은혜 드립을 날리는 건 여전하다. 그러나 결국 깐족을 해도 본인이 당하기 때문에 나쁘게 보지는 않는 편이다. 일종의
티키타카인 격.
[36]
강호동이 유재석을 때리며 폭력적인 이미지를 쌓을 때 유재석이 깐족거리며 강호동도 때릴 만 했다는 여론을 만들었고, 유재석이 깐족거리며 비호감 이미지를 쌓을때 강호동에게 맞으며 동정 여론으로 상쇄했기 때문
[37]
유퀴즈언더블럭에서 느낌표 연출자였던 김영희 PD와 인터뷰를 통해, '느낌표 출연 당시 김용만과 함께 하며 진행능력이 엄청나게 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유재석은 당시 동거동락에서 MC를 맡아 진행능력을 선보였지만, 당시 MC 유재석은 지금 국민들이 갖고 있는 편안하면서 공감능력이 뛰어난 바른생할 사나이보다는 개그욕심이 많고 까부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공동 MC였지만 실질적인 메인 진행자(이자 당시 유재석보다 인지도와 인기가 월등했던) 김용만 특유의 편안하고 부드러운 진행스타일을 보조하면서 오늘날 유재석 스타일의 진행능력을 갖추게 된 것.
[38]
동거동락, 쿵쿵따 후 유재석은 무명은 벗어났지만 아직 ‘국민 MC’ 정도의 위치에는 오르지 않았던 때이다.
[39]
엄연히 따지면 국민 MC라는 칭호와 명실상부 업계 1인자로 자리 잡은 건 확실히 유재석이 먼저였다. 연예대상 수상도 강호동에 비해 2년 먼저 2005년도에 수상했으며 예능/코미디 조사 역시 이전 시대의 톱이었던 신동엽,김용만등을 제치고 선호도 조사인 리스피아르에선 2004년,활약도를 묻는 갤럽에서는 2005년 이후 쭉 1위를 고정으로 차지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유강체제가 시작된 시기는 스타킹, 무릎팍도사로 기반을 다지고 1박 2일로 강호동이 완전히 국민 MC 자리에 오른 2007~2008년부터이다.
[40]
무한도전 런칭 당시만 해도 탑급 MC들은 상대적으로 훨씬 편한 토크쇼를 주력으로 하던 시절이었다.
[41]
이는
1박 2일로 유강체제를 이룬 강호동과도 차이를 보이는 부분인데, 강호동 역시 2000년대 중반 예능인으로서 폭발적인 상승세를 그렸지만 젊은 시청자들을 상대로는 유재석처럼 그 전까지의 커리어를 상대적으로 묻히게 할정도의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고 보긴 힘들며, 중장년층은 예능인 이전에 씨름스타 강호동 시절부터 기억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보니 강호동에 대해서는 1박2일로 비로소 떴다고 오해하는 케이스는 거의 없다
[42]
무한도전(박명수, 정준하, 정형돈, 노홍철, 하하)팀과 공동 수상
[43]
유재석이 데뷔한 KBS는 강호동의 1박 2일이 꽉 휘어잡고 있어 수상은 무리였다. 강호동 역시 MBC 출신임에도 유재석의 무한도전에게 밀리는 것과 같은 이치.
[44]
무도를 진행했던 2014년, 2016년 역시 유재석이 수상했으며, 2011년 역시 MBC의 농간이 없었더라면 유재석이나 무한도전 프로그램이 대상을 받았을 것이하고 여겨진다.
[45]
아닌 게 아니라 무한도전 쪽은 다른 예능과 다른 특별 대우를 받는다고 했고, 광고 판매율도 굉장히 높다고 한다.
[46]
KBS-김준호, MBC-아빠 어디가 팀, SBS-김병만 수상
[47]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대상의 수상 대상은 드라마, 감독, 작가, 예능인 등 그 범위가 연예대상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넓다.
[48]
해피투게더(
KBS, 2003~2020),
무한도전(
MBC, 2006~2018),
런닝맨(
SBS, 2010~). 유재석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알 수 있듯이 KBS는 1991년 데뷔부터 현재진행형(1991-2021), MBC는 2000년 동거동락부터 현재진행형(2000-), SBS는 로드쇼 힘나는 일요일부터 현재진행형(1999-)으로 삼사모두 20년 이상 활동을 하였다.
[49]
무한도전 가요제 우승 특전으로 2009년 7월 18일에 출연하기도 했으니 만 11년 7일만에 출연한 셈
[50]
제57회 백상예술대상은 5월 13일 오후 9시에 개최되었고 TV부문 대상 시상은 5월 14일 자정을 넘은 시각에 이루어졌다.
[51]
기존의 예능인상을 최우수 예능인상으로 격상 및 개편하여 시행된 시상식으로 개편 후 최초의 연예오락 부문 수상자는 유재석과 김숙이다.
[52]
작년에도 139표로 1위를 차지하였다.
유재석, 올 최고 예능인 1위…슬기로운 '국민MC'
[53]
연말 시상식 때마다 일침 멘트로 유명한
김구라가 병마를 극복하고 왔다며, 유재석의 2년 연속 대상 수상을 점치기도 했다,
[54]
유재석/런닝맨 문서 참고.
[55]
유재석/놀면 뭐하니? 문서 참고.
[56]
<60년을 이어라>, <스타 서바이벌 미팅[객원MC]>, <잠을 잊은 그대에게> 코너 출연.
[57]
박명수의 흑역사. 훗날
해피투게더 200회 특집에서 또 다시 언급되었다.
[58]
보쳉과 브루노의 국토대장정 코너가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프로그램. 남희석의 하차 후 메인 MC자리를 꿰찼다.
[59]
<지존을 찾아서>,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코너 출연.
[60]
유재석의 첫 SBS 출연작.
[61]
유재석의 첫 MBC 출연작이자, 그를 인기 MC로 만들어준 작품이다.
[62]
<유재석의 장롱면허 탈출대작전>, <유재석의 조용한 가족>, <스타 서바이벌 만찬>, <날아라 번자왕>, <황금보물선을 찾아라>, <헌혈합시다> 코너 출연.
[63]
<
공포의 쿵쿵따>, <
위험한 초대>, <
운명의 바퀴> 코너 출연.
[64]
한 인터뷰에서 본인이 진행했던 프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라고 언급했다.
#
[65]
진실게임 후반기의 대표 MC. 초기 이경실, 이성미 시대 이후 흔들리던 진실게임을 다시 인기 프로그램으로 올려놓았다.
[66]
초창기부터 진행하진 않았고
신동엽과
이효리의 후임으로
김제동과 함께 진행하게 되었다.
[67]
당시 사장이었던
김재철은 유재석에게 시청률 부진을 핑계로 함께 진행을 맡아온
김원희를 제외시키고
리뉴얼을 하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유재석이 이를 거부하자 강제로 폐지를 시켰으며 이로 인해 마지막 인사도 없이 오로지 자막으로만 마지막 인사를 해야만 했다.
[68]
같은 코너였던 <유재석과 감개무량>은 정보가 없으나 예전 영상에 올라온 정보를 보면 04년 5월 즈음으로 기재되어 있기에 같이 기재.
[69]
이 프로그램으로 첫 대상 수상.
[70]
유재석을
국민MC로 만들어준 작품이자 유재석 본인이 언급한 자신의 대표작.
[71]
유재석/무한도전 문서 참고.
[72]
역대
해피투게더 시즌들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방영된 시즌.
[73]
런닝맨과 함께 SBS에서의 대표작.
[파일럿]
동년 4월 9일 선공개
[파일럿2]
동년 3월 31일 선공개
[파일럿3]
먼저 파일럿으로 방영되었으며, 유재석의 첫 종편 진출작이다.
[77]
유재석의 첫 OTT 플랫폼(넷플릭스) 진출작.
[78]
<시즌1> 2018년 11월 16일 ~ 12월 21일 / <시즌2> 2019년 2월 15일 ~ 3월 22일. 각 6부작 씩, 총 12부작 방영.
[스핀오프1]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스핀오프 프로그램.
[스핀오프2]
컴백홈의 스핀오프 프로그램.
[81]
리얼 예능 프로그램 컨셉을 접목한 광고 영상, 총 6부작.
[82]
유재석의 첫 카카오TV 출연작.
[83]
리얼 예능 프로그램 컨셉을 접목한 광고 영상, 총 8부작.
[84]
유재석의 카카오TV 첫 메인 출연작.
[85]
유재석의 첫 디즈니+ 출연작.
[86]
무한도전 네 멋대로 해라 특집 때 박명수가 기획한 코너였다. 결국 MC와 게스트가 역할이 바뀌는 상황은 덤.
[87]
무도가 종영한지 1년이 지났는데 싶을 수 있으나, 이전에 무도 종영 후에도 목요일 스케줄은 따로 잡아두고 있다고 밝혔다
[88]
실제 방송 중에 나온 드립으로 기사화까지 되었다. 그럴 만도 한 게 PD에 작가들, 시청자 사연이나 선정곡에 심지어 광고까지 전부 유재석이 먼저 챙기다 보니...
[89]
네이버 플랫폼 라디오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90]
특히
김민주는 버벅거릴 정도.
[91]
말이 지나가다 출연이지...매주 허경환 나올 때마다 고정 출연진 뺨치게 같이 찍혔다. 옆에 항상 박명수도 딸려오는 건 덤
[92]
복장을 보면 해피투게더 촬영 중 찍은 영상 메시지로 보인다.
[93]
이 때 전현무가 유재석에게 "유재석 씨는 언제 JTBC로 오실 거예요?"라고 물었다가 오히려 유재석에게 "전현무 씨는 언제 KBS 오실 거예요?"라고 역풍을 맞았다. 물론 지금은 둘 다 이루어졌다.
[94]
당초 이 부분은 영상이 있었으나 광희 매니저의 논란으로 인해 광희 영상분은 모두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
[95]
SBS 연예대상 특집으로 이 날 유재석이 게스트로 대상 후보 중에 먼저 출연했다. 본인의 진솔한 이야기들을 털어놓기도 했고 특히 이번 연예대상 전망에 대해서 본인은 작년에 받았으니 올해는 SBS에서 못 탈 것 같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96]
유재석 본인은 공동출연, 단독출연 합하여 2007년 ~ 2019년 출연.
[97]
2020~2021.3.까지이며 그 후의 모델은 네네치킨을 같이 찍은 적이 있는 오마이걸이다.
[98]
무한도전 팀 전체가 홍보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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