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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8 13:11:53

오스카르 타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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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르 타바레스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대표팀
파일: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44대, 57대
클럽
파일:AC 밀란 로고.svg

60대
}}} ||
우루과이의 축구 감독
파일:external/www.conmebol.com/tabarez_1.jpg
이름 오스카르 타바레스
Óscar Tabárez
본명 오스카르 와싱톤 타바레스 스클라보
Óscar Wáshington Tabárez Sclavo
출생 1947년 3월 3일 ([age(1947-03-03)]세)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국적
[[우루과이|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우루과이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신체 174cm
직업 축구 선수 ( 수비수 / 은퇴)
축구 감독 은퇴
소속 <colbgcolor=#eeeeee> 선수 수드 아메리카 (1967~1971)
스포르티보 이탈리아노 (1972~1973)
몬테비데오 원더러스 (1975)
센트로 아틀레티코 페닉스 (1976)
푸에블라 FC (1976~1977)
CA 베야 비스타 (1977~1979)
감독 CA 베야 비스타 (1980~1983 / 코치)
우루과이 U-20 대표팀 (1983)
다누비오 FC (1984)
몬테비데오 원더러스 (1985~1986)
CA 페냐롤 (1987)
우루과이 U-20 대표팀 (1987)
데포르티보 칼리 (1988)
우루과이 대표팀 (1988~1990)
CA 보카 주니어스 (1991~1993)
CA 페냐롤 (1993~1994)
칼리아리 칼초 (1994~1995)
AC 밀란 (1996)
레알 오비에도 (1997~1998)
칼리아리 칼초 (1998~1999)
CA 벨레스 사르스필드 (2001)
CA 보카 주니어스 (2002)
우루과이 대표팀 (2006~2021)
우루과이 U-23 대표팀 (2012)
국가대표 없음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
3.1. 우루과이 리그, 우루과이 시절3.2. 아르헨티나 리그, 세리에 A 시절3.3. 우루과이 대표팀 2기
3.3.1. 2006~20103.3.2. 2011~20133.3.3. 2014~20183.3.4. 2018~2021
4. 전술 특징5. 감독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
6. 어록7. 이야깃거리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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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루과이 축구 선수 출신 감독. 2006년부터 2021년까지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맡았다.

침체에 빠졌던 우루과이 축구의 중흥기를 이끌면서 15년 동안 우루과이 대표팀을 이끌었던 명장이다.[1] 별명은 스페인어로 선생님을 뜻하는 '엘 마에스트로(El Maestro)'이다.

2. 선수 경력

1947년 3월 3일,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태어났다. 풀 네임은 오스카 와싱톤 타바레즈 스클라보(Óscar Wáshington Tabárez Sclavo)이다. 대부분의 명장들이 그러하듯 오스카르 타바레스도 선수 시절은 보잘 것 없었다. 20세였던 1967년에 프로에 데뷔해 우루과이 리그, 아르헨티나 리그, 멕시코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현역 때 포지션은 수비수였다. 32세 때인 1979년에 우루과이 리그인 베야 비스타[2]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3. 지도자 경력

3.1. 우루과이 리그, 우루과이 시절

그가 처음으로 지도자에 입문한 때는 1980년으로 그 때 그의 나이 33세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했던 우루과이 리그의 베야 비스타에서 코치를 맡은 게 첫 지도자 경력이었다. 그곳에서 3년간 코치 생활을 한 후 1983년에 우루과이 U-20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아 멕시코에서 열린 1983 월드 유스 챔피언십에 출전했다. 그 대회에서 우루과이는 미국, 폴란드, 코트디부아르와 함께 B조에 속했는데 1차전 미국과의 경기에서 3 : 1 승리를 거두었고 2차전에서 폴란드를 3 : 2로 물리쳐 일찌감치 8강 진출을 확정지었고 3차전 코트디부아르전도 0 : 0으로 비겨 2승 1무라는 준수한 성적으로 조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8강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대한민국에 1 : 2로 패배하며 탈락했다. 그 때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사람이 그 이름도 유명한 박종환이었다! 대회가 끝난 후 그는 감독직에서 물러나 1987년까지 우루과이 리그에서 감독 생활을 계속하였고, 자국의 최고 명문 구단인 페냐롤을 이끌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차지한 후, 1988년 드디어 41세의 나이에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에 취임하게 되었다. 그는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해 1990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3] 대한민국, 벨기에, 스페인과 함께 E조에 속한 우루과이는 1차전에서 난적 스페인과 0 : 0으로 비겼으나 2차전에서 벨기에에 1 : 3으로 패해 코너에 몰렸다. 3차전에서 조 최약체로 꼽혔던 대한민국을 1 : 0으로 83년 월드 유스 챔피언십에서 패배를 복수하였고[4]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 승리는 1970년 월드컵 이후 무려 20년 만에 거둔 것이다. 펠레의 예측과 달리 우루과이와 이탈리아의 만남은 턱도 아닌 16강전에서 이루어졌고 결국 0 : 2로 패해 탈락하게 되었다.

3.2. 아르헨티나 리그, 세리에 A 시절

이탈리아 월드컵이 끝난 후 1991년, 본격적으로 우루과이를 벗어나 타국에서 감독 생활을 하게 되었다.[5] 1991년 아르헨티나 리그의 명문 구단 CA 보카 주니어스의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그가 감독으로 부임하고 불과 1년 뒤인 1992년에 보카 주니어스는 아르헨티나 1부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보카 주니어스를 우승시킨 후 타바레스는 다시 우루과이 리그로 돌아와 1년 간 페냐롤이란 구단에서 감독 생활을 했다. 그리고 1994년 이탈리아로 건너가 세리에 A 칼리아리 칼초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1990년에 세리에 A로 승격된 이후 줄곧 강등권에 머물러 있던 칼리아리 칼초는 오스카르 타바레스의 지휘 아래 순위를 끌어올려 중위권까지 치고 올라갔다.[6] 이 같은 성적을 인정받아 1996년 파비오 카펠로의 후임으로 세리에 A의 명문 AC 밀란 감독에 선임되었다. 그러나 AC 밀란 감독에서 그는 큰 좌절을 맛보게 된다. 시즌 개막 전에 치른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 AC 밀란은 피오렌티나에 1 : 2로 패해 우승에 실패했다. 리그에서도 저조한 성적을 거두어 결국 경질되고 아리고 사키로 교체되었다.[7] AC 밀란에서 경질된 이후 그는 스페인으로 건너가 2부 리그 레알 오비에도 감독으로 취임해 1년간 감독 생활을 한 후 1999년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와 칼리아리 칼초 감독으로 복귀했다. 당시 칼리아리 칼초는 1997-98 시즌에서 세리에 B로 강등되었다 바로 다음 시즌에 세리에 A로 복귀했는데 또 강등권에 놓여 구원투수로 타바레스를 긴급 호출한 것이다. 그러나 칼리아리 칼초로 복귀한 이후 치른 경기에서 1무 3패를 기록하면서 강등권 탈출에 실패해 단 4경기 만에 경질되고 말았다. 2년간 휴식을 취한 그는 2001년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가 벨레스 사르스필드의 감독에 취임했다. 그리고 불과 몇 달 후 다시 보카 주니어스 감독으로 복귀했으나 2002년에 물러나 4년간 휴식을 취했다.

3.3. 우루과이 대표팀 2기

3.3.1. 2006~2010

그렇게 4년간 백수로 있던 그에게 일을 준 곳은 다름 아닌 우루과이 축구 협회였다. 2006 독일 월드컵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거스 히딩크가 이끄는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승부차기로 패배하면서 본선 진출 실패[8]에 따른 책임을 지고 사임한 후안 페린의 후임으로 우루과이 축구 협회가 그를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한 것이다.

이 당시 우루과이는 1970 멕시코 월드컵 4강 진출을 끝으로 월드컵 예선에서 탈락하거나 월드컵에 진출해도 조별리그나 전전하는 그저 그런 팀으로 전락했던 시기였다. 그나마 1986년과 1990년에 두 차례 모두 16강에 오르기는 했지만 경기력은 형편없었고 각각 대회 우승국 아르헨티나와 개최국 이탈리아에게 패해 16강 진출에 만족해야만 했었다. 게다가 1974년부터 2006년까지 월드컵 본선에서 1승 6무 7패라는 초라하기 그지 없는 성적을 냈는데, 그 1승 상대가 바로 1990년에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만난 대한민국. 그나마도 경기 종료 직전 다니엘 폰세카의 골로 힘겹게 이긴 것인데다가 이 골이 오프사이드였음에도 골로 인정되는 오심 덕에 운 좋게 얻은 승리라는 점에서 우루과이 입장에서는 망신살 뻗치는 결과였다. 2002년에도 2무 1패로 1라운드에서 허무하게 탈락해 남미의 2류 팀으로 전락해 버렸다. 2010 남아공 월드컵 때에도 대회 치르기 전까지 우루과이는 잘 가야 16강 정도, 혹은 프랑스를 위협할 복병 정도로 인식됐을 뿐이었다.

아무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복귀한 그는 침체되어 있던 팀 분위기를 빠르게 추스르고 첫 국제대회인 2007년 베네수엘라에서 열린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루과이를 4강에 올려놓으며[9] 우루과이 축구 부흥의 신호탄을 쐈다. 그러나 남아공월드컵 남미 지역예선에서는 볼리비아,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등 남미의 중하위권 팀을 상대로만 승리했을 뿐 상위권 팀을 상대로는 파라과이와의 홈 경기에서 승리한 게 고작이었다.[10] 그렇게 불규칙한 레이스를 치른 끝에 6승 6무 6패(승점 24점)의 성적을 거두어 또 5위를 차지해 대륙간 플레이오프에 나서게 되었다. 상대는 북중미 4위 코스타리카. 산호세에서 치른 1차전 경기에서 우루과이는 1 : 0 승리를 거두었고 몬테비데오에서 치른 2차전 경기에서 1 : 1로 비겨 합계 2 : 1로 코스타리카를 누르고 본선 진출팀 중 가장 마지막인 32번째로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본선에 진출한 우루과이는 개최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포함해 유럽의 강호 프랑스, 북중미의 강호 멕시코와 함께 A조에 속했다. 예선에서 다소 막장스런 경기력을 보인 탓에[11] 우루과이의 16강 진출을 예상하는 이는 드물었다. 잘해야 복병 정도로 예상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1차전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탄탄한 경기력을 보이며 오히려 프랑스를 압도하였다. 그러나 공격진의 마무리가 부족했고 후반 막판에 니콜라스 로데이로가 퇴장당해 수적 열세에 놓이는 바람에 불리함에 놓여 결국 0 : 0으로 비기고 말았다. 2차전 개최국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경기에서는 90분 내내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며 골잡이 자블라니 마스터 디에고 포를란의 2골과 수비수 알바로 페레이라의 1골을 더해 3 : 0으로 대파했다.[12] 사실상 조 1위 결정전이었던 3차전 멕시코와의 경기에서도 전반 43분에 넣은 루이스 수아레스의 결승골을 끝까지 잘 지켜 1 : 0 승리를 거두어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2승 1무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어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더욱이 조별리그 3경기에서 우루과이는 무실점을 기록했다.

16강 상대는 천신만고 끝에 16강에 올라온 대한민국. 월드컵 무대에서는 20년 만에 재회하는 것이었다. 우루과이는 전반 8분 만에 루이스 수아레스의 선제골로 1 : 0으로 앞서가며 손쉽게 경기를 풀어나가는 듯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경기는 예상과 달라졌다. 우루과이는 1골을 앞서갔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대한민국의 매서운 공격력에 밀리며 수비하기에 급급했다. 후반전 들어서는 아예 노골적으로 라인을 끌어내리며 우주방어 태세에 돌입해 1골 지키기에 나서기까지 했다.[13] 그리고 후반 23분, 대한민국이 얻은 결정적인 세트피스 찬스에서 이청용이 헤딩으로 동점골을 터뜨려 1 : 1로 균형추를 맞추었다. 기세가 오른 한국은 계속해서 우루과이를 몰아붙였고 우루과이는 간간이 역습으로 나섰다. 후반 35분, 역습 상황에서 루이스 수아레스 김정우의 수비를 따돌리고 파 포스트(Far post)로 절묘하게 감아찬 볼이 골문 안으로 빨려들어가며 접전 끝에 결국 2 : 1로 승리해 1970년 이후 40년 만에 8강 진출에 성공했다. 경기를 마친 후 타바레스는 "상당히 힘든 경기였으며 중원을 한국에 지배당했다. 우리가 운이 좋아서 이길 수 있었다"라고 밝히며 한국의 경기력을 극찬했다.

8강전에서 아프리카 최강자 가나를 만나 전반 막판에 설리 문타리에게 중거리슛 득점을 허용해 0 : 1로 끌려갔으나 후반 10분, 디에고 포를란의 환상적인 프리킥으로 동점골을 터뜨려 1 : 1로 균형추를 맞추었다. 그러나 우루과이 공격진들은 계속해서 추가 득점 기회를 놓쳤고 연장전으로 이어졌다. 연장전 막판 가나에 결승골을 허용할 뻔한 걸 루이스 수아레스 신의 손으로 막아내고 가나의 주포 아사모아 기안 페널티킥을 날려먹으면서 기사회생했다. 그리고 승부차기에서 골키퍼 페르난도 무슬레라가 가나의 킥 2개를 선방하는 기염을 토하며 4 : 2로 승리해 1970년 대회 이후 40년 만에 4강 진출에 성공했다. 4강전에선 네덜란드와 치열한 접전을 벌였으나 2 : 3으로 패했고 3위 결정전에서도 독일에 2 : 3으로 석패를 당하며 4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비록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40년 만에 4강 진출을 이룬 업적을 인정받아 우루과이 축구협회는 계약을 더 연장했고 자블라니 마스터 디에고 포를란은 4위를 기록한 국가에서는 최초로 월드컵 골든볼 수상자가 되었다.

3.3.2. 2011~2013

월드컵이 끝난 다음 해에 치른 2011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루과이는 페루, 칠레, 멕시코와 함께 C조에 속해 페루, 칠레와는 모두 1 : 1로 비겼고 3차전에서 멕시코를 1 : 0으로 꺾어 1승 2무의 성적으로 조 2위를 차지해 8강에 진출했다. 8강 상대는 개최국 아르헨티나였는데 우루과이는 탄탄한 수비력과 수문장 페르난도 무슬레라의 활약에 힘입어 1 : 1로 비겼고 승부차기에서 5 : 4로 승리해[14] 4강 진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4강전에서 루이스 수아레스의 활약에 힘입어 페루를 2 : 0으로 물리치고 결승에 올라왔다. 결승전 상대는 일명 '과이' 형제 파라과이. 결승전에서 우루과이는 무재배로 올라온파라과이를 3 : 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이전까지 우루과이는 아르헨티나와 공동으로 최다 우승팀의 타이틀을 갖고 있었는데 15회 우승으로 단독 최다 우승팀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2012년 중반까지 브라질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도 5차전까지 3승 2무의 성적으로 한때 1위를 달렸다. 그러나 2012 런던올림픽에서 8강 진출에 실패하면서[15]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고 공격진의 주포 디에고 포를란과 수비의 핵심 디에고 루가노 등이 노쇠하면서 점차 전력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이는 남미 지역 예선에도 영향을 미쳐 2012년 9월, 콜롬비아에 0 : 4로 대패한 걸 기점으로 우루과이는 부지런히 조개양식을 하며 순위가 쭉쭉 내려가기 시작했다.[16]

그리고 2013년 컨페더레이션스컵을 치르게 되었다. 그 대회에서 순위는 비록 4위에 불과했지만 스페인, 브라질, 이탈리아 등과 대등한 경기력을 보이며 저력을 과시했다. 그 때를 기점으로 다시 반등하여 페루 콜롬비아를 연파하며 순위를 회복했다. 그리고 15차전 에콰도르와의 경기. 우루과이로서는 반드시 에콰도르를 잡아야 본선에 직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끝내 에콰도르의 고산 축구의 벽을 넘지 못하며 0 : 1로 패했다. 우루과이가 본선에 직행하기 위해서는 마지막 경기에서 칠레가 에콰도르를 5점 차 이상으로 꺾어주는 전제 하에 아르헨티나를 최소 2점 차로 꺾어야 했다.[17] 물론 이 미션 임파서블 같은 미션이 이루어질 리는 없었다. 우루과이는 마지막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를 3 : 2로 제압하긴 했지만 칠레가 에콰도르를 5점 차 이상으로 대파해야 순위가 뒤집히는데 고작 2 : 1로 이겼기 때문. 그래서 우루과이는 7승 4무 5패(승점 25점)의 성적으로 에콰도르와 승점은 동률을 이루었으나 득실차에서 4점이 밀려 또 5위를 차지해 대륙간 플레이오프에 나서게 되었다. 우루과이 : 우리는 플레이오프를 안 치르면 뭔가 찝찝해. 대륙간 플레이오프 상대는 아시아의 요르단. 플레이오프에 이골이 난 우루과이는 요르단 따위를 손쉽게 처바르고 합계 5 : 0으로 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18] 우루과이가 본선 진출에 성공하면서 덤으로 톱 시드를 따내는 성과도 이루었다. 거기까진 좋았다.

그런데 조 추첨에서 그만 헬게이트가 열렸다. 유럽의 강호인 이탈리아, 잉글랜드 그리고 북중미의 코스타리카와 함께 죽음의 조인 D조에 편성된 것. 우루과이가 톱시드를 얻었지만 포트 X가 이탈리아로 선정되었고 그 이탈리아가 우루과이가 속한 D조에 들어가면서 헬게이트가 열린 것. 톱시드로서 이득을 얻은 게 전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데다 주포 루이스 수아레스는 리그에서 입은 부상으로 출전이 불투명했다. 또 우루과이가 전통적으로 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그 다음 대회에서는 폭망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우루과이의 16강 진출을 비관적으로 보는 견해가 꽤 있었다.

3.3.3. 2014~2018

마침내 치러진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 코스타리카와의 경기. 이 경기에서 우루과이는 반드시 이기고 봐야 했는데 그만 1 : 3으로 지며 이변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 루이스 수아레스가 없었다고는 하지만 우루과이는 너무도 형편없는 경기력을 보인데다 막시 페레이라가 비매너적인 반칙으로 퇴장을 당해 경기에서도 매너에서도 졌다고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2차전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타바레스는 결국 부상이 아직 다 낫지 않은 루이스 수아레스를 투입시키기에 이르렀다. 2차전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우루과이는 90분 내내 밀리는 내용을 보였지만[19] [20]잉글랜드의 허접한 골 결정력과 역습 찬스를 잘 살린 루이스 수아레스의 맹활약에 힘입어 2 : 1로 승리를 거두었다.[21] 그리고 단두대 매치가 된 3차전 이탈리아와의 경기. 양 팀 모두 코스타리카의 돌풍에 일격을 당한 바 있다. 이 경기에서 우루과이는 탄탄한 수비와 빠른 역습으로 이탈리아를 괴롭혔고 마침내 루이스 수아레스 핵이빨과 함께 후반 35분, 세트피스 찬스에서 터뜨린 디에고 고딘의 결승골로 1 : 0으로 이탈리아를 물리치고 2승 1패(승점 6점)의 성적으로 조 2위를 차지해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주포 루이스 수아레스가 핵이빨 사건으로 징계를 받으면서 전력에 큰 타격을 입었고 죽음의 조에서 너무 힘을 많이 뺀 탓인지 16강전에서 콜롬비아를 상대로 무기력한 경기력을 보인 끝에 0 : 2로 패하며 탈락했다. 에딘손 카바니의 부진과 디에고 포를란의 노쇠화가 아쉬웠다.

그러나 우루과이 축구 협회는 두 대회 연속으로 토너먼트에 진출시킨 그의 업적을 높이 사 2018 러시아 월드컵까지 또 계약을 연장하였다. 월드컵이 끝나고 1년 후 치른 2015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루과이는 주포 루이스 수아레스의 징계 때문에 공격력에 타격을 입어 수비 중심의 전술로 경기에 임했다. 우루과이는 자메이카, 아르헨티나, 파라과이와 함께 B조에 속해 자메이카를 1 : 0으로 꺾고 아르헨티나에 0 : 1로 패했으며 파라과이와 1 : 1로 비겨 1승 1무 1패로 조 3위로 8강 진출에 성공했다. 8강 상대는 개최국 칠레. 칠레의 닥공 축구에 맞서 우루과이는 그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우루과이 특유의 늪 축구를 발동하였다. 칠레는 조별리그에서 무려 10골을 터뜨려 경기당 3.3골이라는 무시무시한 공격력을 자랑했지만 악명 높은 우루과이의 늪 축구 앞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22]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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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팽팽하게 이어지던 경기가 갑자기 반전된 건 이른바 곤살로 하라의 똥침 사건. 후반 17분, 곤살로 하라가 우루과이의 공격수 에딘손 카바니에게 몰래 다가가 중지 손가락으로 똥침을 먹였는데 이에 격분한 카바니가 싸대기를 때린 것.[23] 크게 때린 것도 아니었건만 곤살로 하라가 심판 앞에서 마치 죽빵이라도 맞은 양 오버스럽게 뒹구는 바람에 심판은 카바니를 퇴장시켰다. 우루과이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들은 당연히 카바니의 퇴장에 크게 격분했고 벤치 클리어링 직전까지 갈 정도였다. 이 와중에 오스카르 타바레스 감독은 벤치에서 퇴장 명령을 받았다. 겨우 패싸움까지 가는 일을 막긴 했으나 우루과이의 멘탈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수비로 칠레의 공격을 막고 또 막아냈으나 후반 36분, 수문장 페르난도 무슬레라의 볼 처리 미스를 놓치지 않은 칠레의 이슬라가 중거리 슛으로 결승골을 터뜨려 결국 0 : 1로 패해 탈락하고 말았다.

코파 아메리카에서 다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으나 오스카르 타바레스는 계속해서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에 남게 되었고 현재 러시아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 우루과이는 3차전 에콰도르와의 경기에 1 : 2로 패한 걸 제외하고 볼리비아, 콜롬비아, 칠레, 페루를 상대로 모두 승리하고 강호 브라질과 비겨 4승 1무 1패(승점 13점)로 에콰도르와 승점은 같으나 골 득실에서 앞서 1위에 랭크되어 있다. 지난 대회 예선에서도 초반에 잘 하다가 중반부터 불규칙한 레이스를 치른 끝에 플레이오프로 밀려난 바 있어서 본선 직행을 낙관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제 주포 루이스 수아레스의 징계가 해제되어 3월 25일 브라질과의 5차전 경기부터 출전할 수 있게 된 게 우루과이로서는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러나 2016 코파 아메리카에서 조별리그 탈락을 한 지라 그의 거취에도 변동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루과이는 멕시코, 베네수엘라, 자메이카와 함께 C조에 속했다. 전력을 고려할 때 멕시코 외에는 딱히 경쟁자가 없어 무난히 8강 진출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우루과이는 1차전에서 형편 없는 졸전을 벌인 끝에 1 : 3으로 참패했다. 그리고 2차전에서는 베네수엘라에 마저 0 : 1로 패배하는 굴욕을 당했다. 더군다나 베네수엘라는 현재 러시아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 꼴찌를 달리고 있는 팀이고 우루과이는 1위를 달리고 있는 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배한 것이다. 결국, 우루과이는 2패로 일찌감치 탈락이 확정되었다. 아무리 주포 루이스 수아레스가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다고는 하나 2경기 모두 내용이 좋지 않아 오스카르 타바레스의 거취에도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감독 자리를 지킨다고 해도 이미 루이스 수아레스 원맨 팀으로 전락한 우루과이의 체질 개선을 이뤄야 할 과제를 안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는 초반 루이스 수아레스의 공백에도 꾸준히 승수를 쌓아 상위권을 유지하더니 마침내 9승 4무 5패(승점 31점)의 전적으로 브라질에 이어 2위로 본선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하여 오랜만에 플레이오프를 치르지 않게 되었다. 우루과이 감독으로서 4번째 월드컵 도전기인 셈이다. 본선에서는 이집트와 사우디를 1:0으로 누르고 홈팀인 러시아를 상대로 무려 3:0으로 이기면서 조별리그 승점 9점으로 깔끔하게 16강 진출을 확정시켰다. 그리고 16강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이끄는 포르투갈 대표팀을 질식시키는 수비와 빠른 역습으로 2:1로 꺾고 우루과이를 8강에 진출시켰다. 그러나 8강전에서 카바니의 공백과 아쉬운 실점으로 프랑스에게 패하였고, 타바레스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월드컵을 이렇게 마무리하게 되었다.

비록 아쉬운 패배를 했다고는 하지만 우루과이가 못했다기 보다는 프랑스가 잘 한거라 졌지만 잘 싸웠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전 대회 16강에서 탈락한 것에 비하면 우루과이는 호성적을 낸 것 이다. 특히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루과이는 5위라는 성적으로 마감한 것이 브라질이랑 아르헨티나보다 순위가 높았다. 1990년 마지막으로 16강 진출에 성공한 후에는 단 한 번의 본선 진출 그것도 2002년에 조별리그 탈락을 거둔것이 그나마 좋은 결과였던 나라였다. 하지만 오스카 타바레스의 부임 이후 연달아 월드컵 4위 - 16강 - 8강을 찍었으며,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16년 만에 우승을 선사해 준 타바레스 감독은 이미 역대 최고의 감독으로 불릴만한 업적을 달성하였다. 2018년 현재 우루과이는 공격수 골키퍼를 제외하면 세대교체에 성공한편이라 앞으로의 대회들이 기대되는 추세이다.

3.3.4. 2018~2021

월드컵 직후 멕시코와의 9월 A매치는 파비안 코이토 대행 체제로 치렀다. 그리고 9월 21일 그는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과 4년을 더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10월 12일 한국전이 그의 186번째 A매치가 된다. 이 경기에서 한국에 1 : 2로 패배하며 36년 간 이어온 한국전 무패 기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흘 후 일본한테도 3 : 4로 패배해서 아시아 팀에게 2연패를 당했기 때문에 이때만큼은 자국에선 욕 좀 시원하게 드셨다.

2019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C조에 속해 2승 1무 조 1위로 8강에서 올랐으나, 8강에서 페루를 상대로 승부차기에서 4:5로 패배해 탈락했다. 우루과이는 1999년 대회 이후 2011년 대회에서 우승을 거두기 까지 5번 연속 준결승에 진출했으나, 우승을 거둔 이후에는 이상하리만치 8강을 뚫지 못하고 있다.

2021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A조에 이어 아르헨티나에 이어 조 2위로 8강에 진출했으나, 8강에서 콜롬비아한테 승부차기 끝에 패하면서 8강에서 대회를 마쳤다.

한편 러시아 월드컵 종료 이후로는 정상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보인다. 위의 2번의 코파컵도 그렇고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남미 지역예선에서도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특히 2021년의 마지막 경기인 14차전 볼리비아전에서 충격의 3대0 완패까지 당하며 예선 통과권 바깥인 7위로까지 순위가 내려가고 말았다. 물론 이 날 경기가 볼리비아 원정경기였고, 알다시피 볼리비아 원정에서는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같은 최강자들도 고전하고 참패하는 일이 꽤 있어서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현재 닥치고 본선직행만이 목표인 우루과이의 입장에서는 이것도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초장부터 부진해서 순위도 상당히 낮은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 앞으로 남은 4경기의 상대들이 파라과이, 베네수엘라, 페루, 칠레 같은 본인들과 순위가 엇비슷하거나 아랫계단에 쳐져 있는 국가들이라는 것이지만, 최근 우루과이의 페이스를 보면 전망이 마냥 밝지만은 않아 보인다.

이후 2021년 11월 19일, 결국 15년의 집권을 끝내고 경질되었다[24]. 오랜시간 주축이 되었던 수아레스, 카바니, 고딘, 카세레스의 노쇠화, 그리고 유망주들의 생각보다 더딘 성장과 경험 부족이 결국 타바레스 감독을 경질로 이끌었다. 오랜 시간 침체되었던 우루과이 대표팀을 부흥기로 이끈 명장이지만, 결국 말년에 쓸쓸한 퇴장을 하게 되었다.

한편 타바레스 경질 이후 우루과이는 살아나서 남아공 월드컵 이후 4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후임자가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루과이를 조별리그 탈락으로 이끌면서 과거 타바레스의 지도력이 재조명 되기도 하였다.[25]

그 이후에는 건강 문제와 나이 문제 등으로 사실상 축구계에서 은퇴한 것으로 보인다.

4. 전술 특징

전술적인 유연성이 대단히 탁월한 인물로 상대에 따라 맞춤형 전술을 짜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지만 그래도 주로 써먹는 전술이 있긴 한데 그가 주로 쓰는 포메이션은 4-4-2와 4-3-1-2이다. 4-4-2는 수비적으로 풀어나갈 때 주로 쓰고 4-3-1-2는 공격적으로 풀어나갈 때 쓴다. 우루과이의 공포의 삼각편대[26][27]가 위력을 발휘한 포메이션도 바로 4-3-1-2. 이 중에서는 4-4-2를 쓰는 경우가 좀 더 많다. 1가지 특징을 들자면 감독이 수비수 출신이라 그런지 4-4-2의 중앙 미드필더 라인을 모두 수비적인 선수들로 넣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4-4-2 포메이션을 쓸 때는 공격, 수비 만능인 미드필더를 투입시키는 게 보통이다. 어쨌든 이와 같이 투 볼란치 전술을 쓰는 탓에 다소 지루한 면은 있지만 성과는 뚜렷했다. 우루과이는 전통적으로 팀의 성향이 공격적이었다 보니 공격은 강하나 수비가 약해 득점에 비해 더 많은 실점을 해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오스카르 타바레스 감독이 부임한 이후 투 볼란치 체제를 정착시켜 강한 공격력에 치중한 팀 컬러에다 수비력을 더해 공수 균형을 잡게 한 것이다. 그래서 과거에 비해 우루과이의 수비력이 더욱 끈끈해졌고 실점도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 특히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 3경기 내내 무실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월드컵 본선에서도 주로 탄탄한 수비를 바탕으로 루이스 수아레스를 비롯한 공격진들의 빠른 역습을 통해 득점을 노리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다만, 2014년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지나친 늪축구와 세대교체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28] 답답한 축구를 일관하였고 이는 이후 치러진 두 번의 코파 대회에서도 여실히 나타나게 되었다. 허나, 타바레스와 우루과이 국대는 절치부심을 하여 우루과이 국대의 체질개선과 리빌딩을 하였고 이는 월드컵 남미예선을 아주 훌륭한 성적으로 돌파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29]

5. 감독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어록

축구에서 전술은 짧은 담요와 같다.[31]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전을 앞두고 한 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만이 실수를 하지 않는다.
2018 러시아 월드컵 8강전에서 결정적인 실수로 실점을 초래한 페르난도 무슬레라를 위로하며.

7. 이야깃거리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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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루과이가 다시 월드컵에서 톱시드를 받고 피파 랭킹에서도 10위 안에 들 정도로 성장한 건 오스카르 타바레스 덕분이다. [2] 팀의 연고지는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다. [3] 이 때 활약했던 선수가 바로 우루과이의 스타 플레이어 엔조 프란체스콜리였는데 월드컵보다 더 어렵다는 남미 예선에서 맹활약을 하여 펠레가 우루과이를 우승후보로 지목했고 이탈리아와 우승컵을 놓고 다툴 것이라고 예측했을 정도였다. 물론 이는 처참한 저주가 되어 돌아왔지만.... [4] 사실 이 경기는 0 : 0 무승부였어야 한다. 당시 경기 주심을 맡았던 이탈리아인 툴리오 라네세는 노골적인 편파판정을 보였고 심지어는 석연찮은 판정으로 윤덕여를 퇴장시켜버렸다. 10명이 뛰는 악조건 속에서도 한국 선수들은 분전했으나 경기 종료 직전 다니엘 폰세카에게 헤딩 결승골을 허용했다. 그러나 폰세카의 위치는 명백히 오프사이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심 툴리오 라네세와 가봉, 튀니지 국적의 부심들은 모두 모른 척했다. 우루과이는 주심의 편파 판정에 힘입어 1 : 0으로 힘겹게 한국을 꺾고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에 대해 개최국 이탈리아가 16강전에서 다소 만만한 우루과이와 대전하기 위해 고의로 편파판정을 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5] 사실 1988년에 콜롬비아의 데포르티보 칼리에서 감독 생활을 한 적이 있으나 단기 알바 형식이라 사실상 이 때가 본격적으로 타국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보는 게 맞다. [6] 1994-95 시즌에 9위, 1995-96 시즌에 10위였다. [7] 그 시즌은 AC 밀란의 흑역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전 시즌인 1995-96 시즌에서 우승한 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996-97 시즌에선 동네북 신세로 전락해 잦은 감독 교체가 이어졌고 끝내 11위로 마쳤다. [8] 이 때 우루과이가 예선에서 거둔 성적은 6승 7무 5패였는데 공격에 비해 수비가 구멍일 정도로 숭숭 뚫려서 5위에 그쳤고 플레이오프에서 명장 거스 히딩크가 이끄는 호주와 맞붙어 1차전 홈 경기에서 1 : 0으로 승리했으나 원정에서 0 : 1로 패했고 연장전에서 승부를 내지 못해 승부차기까지 갔으나 2 : 4로 패하며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9] 4강전 상대는 바로 남미 최강 브라질이었는데 이 팀과 2 : 2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7번 키커까지 가는 접전 끝에 4 : 5로 패해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10] 브라질과 아르헨티나한테는 모두 졌다는 말인데 당시 아르헨티나 감독은 아르헨티나 역사상 최악의 감독 디에고 마라도나였다! 그런데도 우루과이는 홈에서 0 : 1로 패해 본선 직행에 실패했다. 심지어는 그 대회 예선 꼴찌였던 페루에도 패배했다. 물론 페루 원정은 다른 팀한테도 어렵다. 왜냐? 고산지대니까. 볼리비아: 야 뛰기 편하다 [11] 우루과이가 본선 직행에 실패한 이유는 수비가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우루과이는 전형적인 강공약수(强攻弱守)의 모습을 보였는데 플레이오프를 포함해 20경기에서 30득점, 21실점을 기록했다. 이는 본선 진출국 중에서 3번째로 많은 득점이고 2번째로 많은 실점이었다. [12] 이 1패로 남아공은 금세 조 꼴찌로 추락해 광탈 위기에 놓였다. 그리고 3차전에서 프랑스를 2 : 1로 꺾었지만 이 패배의 영향으로 득실차에서 멕시코에 밀려 사상 최초로 개최국이 1라운드에서 탈락(20위)하는 오명을 뒤집어 써야 했다. [13] 후반 초반 볼 점유율이 7 : 3까지 벌어졌다. 못 믿겠지만 대한민국이 7이다. 그리고 볼도 대부분 우루과이 진영에서 놀았고 우루과이 선수들은 중앙선 넘는 것도 거의 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14] 카를로스 테베스가 실축했다. [15] 당시 타바레스 감독은 올림픽 팀 감독도 겸임하고 있었다. 그 대회에서 우루과이는 1차전에서 아랍에미리트를 2 : 1로 꺾었으나 2차전에서 세네갈에 0 : 2로 패했고 3차전에서 영국에 0 : 1로 패하며 1승 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16] 6차전부터 12차전까지 7경기에서 불과 1승 2무 4패의 성적을 거두는데 그쳤다. [17] 15차전까지 4위 에콰도르의 성적은 7승 4무 4패(승점 25점)에 득실차는 +5였고, 5위 우루과이는 6승 4무 5패(승점 22점)에 득실차는 -1로 승점 3점, 득실차 6점이 차이 나는 상황이었다. [18] 역시 본선 진출국 중 가장 마지막인 32번째로 확정지었다. 여담으로 개최국 브라질을 제외하고 최초로 본선 진출을 확정 지은 팀은 일본. [19] 이 때 양팀의 볼 점유율은 62% : 38%로 잉글랜드가 더 높았고 슈팅 횟수도 잉글랜드가 더 많았다. [20] 다만 그렇다고해도 우루과이가 마냥 밀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타바레스의 우루과이는 점유율을 높게가져가는 팀이 아니고 단단한 수비를 바탕으로 카바니나 수아레스를 활용한 역습을 구사하는 늪철퇴축구 스타일이기때문이다. 실제로 이경기에서 점유율이나 슈팅수는 잉글랜드가 높게 가져갔지만 효율적인 찬스는 오히려 우루과이가 더 가져가며 철저하게 잉글랜드를 늪에 빠뜨리며괴롭혔다. [21] 참고로 이 승리는 우루과이가 무려 44년만에 유럽 팀을 상대로 승리한 것이다. [22] 칠레는 주로 짧은 패스에 기동력을 앞세운 콤팩트한 축구를 구사하는데 이 날 경기에서는 그렇게 패스를 돌려 뚫고 뚫어도 우루과이 수비수들이 양파 껍질처럼 계속 등장해서 성과가 없었고 세트피스 찬스에서도 평균 신장이 더 큰 우루과이 선수들이 공중볼을 따내 버려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23] 문제는 곤살로 하라의 이 같은 성추행이 초범이 아니었다는 것. 2013년 브라질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는 핵이빨로 악명 높은 루이스 수아레스 곧휴를 만진 적도 있다. [24] 한해 전에도 코로나 19라는 이유로 일시 경질됐다가 복귀한 적이 있지만, 이번엔 성적 부진으로 인한 진짜 경질이다. [25] 물론 디에고 알론소가 초보 감독이고, 팀을 맡은지 1년 밖에 안 된 시점이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하긴 한다. [26] 예선에서는 디에고 포를란, 루이스 수아레스, 세바스티안 아브레우가 이 삼각편대에 속했고 본선에서는 아브레우 대신 에딘손 카바니가 들어갔다. [27] 참고로 예선에서의 삼각편대는 우루과이가 득점한 30골 중 18골을 합작해 넣었다. [28] 선수 명단을 보면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뛰었던 선수들을 대부분을 데려갔는데, 특히 중원의 경우 디에고 페레스, 왈테르 가르가노, 에히디오 아레발로등 연령층이 다소 높게 형성되어있었다. [29] 반면에, 두번의 코파 우승을 한 칠레는 리빌딩을 제때에 하지 못하면서 월드컵 본선 무대 진출을 하는데 실패하였다. [30] 아페르투라 [31] 자세한 말은 "축구는 짧은 담요와 같아서 머리를 덮으면 발이 드러나고 발을 덮으면 머리가 드러난다."이다. 즉, 라인을 올리면 배후 공간을 노출해 상대의 역습에 약점을 보이게 되고 라인을 너무 내리면 중원이 텅 비어서 공격에 약점을 보인다는 뜻이다. [32]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전에서 승리를 거둔 후 한국의 경기력을 칭찬하기도 했고 2018년 평가전에서도 손흥민과 한국 대표팀에 덕담을 해주는 등 명장으로서 훌륭한 인격을 보여주었다. [33] 아이러니한 건 그 대회에서 우루과이는 유럽 팀을 상대로만 승리했고 북중미, 남미 팀을 상대로는 모두 패했다는 거다. [34] 참고로 해당 대회에서 2018년 기준 71세로 최고령 감독이었고, 또한 유일한 70대 감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