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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명승 제24호 | |
<colbgcolor=#943b58><colcolor=#fff> 부산 오륙도 釜山 五六島 | Oryukdo Islets, Busan |
|
소재지 |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 936 등 |
분류 | 자연유산 / 명승 / 문화경관 |
면적 | 28,189㎡ |
지정일자 | 2007년 10월 1일 |
소유자 | 해양수산부 |
관리자 | 남구 |
[clearfix]
1. 개요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 앞 바다에 있는 섬. 대한민국의 명승 제24호 부산 오륙도로 지정되어 있다. 조수간만 및 보는 사람의 위치와 방향에 따라 어떨 때는 5개(서쪽에서 볼 때에), 어떨 때는 6개(동쪽에서 볼 때에)로 보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방패섬과 솔섬의 아랫부분이 거의 붙어 있어 썰물일 때는 1개의 섬으로 보이고, 밀물일 때는 2개의 섬으로 보인다는 데서 유래하였다는 설은 19세기에 일본 사람이 잘못 기록한 내용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1] 다만 19세기에 일본 사람이 잘못 기록했다는 내용이 아직 주장 수준에서 그친다는 내용도 있다.[2]
가덕도, 을숙도, 영도와 함께 거론되는 부산의 대표적인 섬이며, 최근에는 광안대교나 마린시티 같은 새로 떠오르는 상징들에 약간은 밀린 듯 하지만 자연물이란 점에서 여전히 부산의 대표적인 랜드마크 중 하나이다. 1962년부터 2023년까지 사용된 부산직할시 휘장에는 오륙도가 표기돼 있었고[3] 디지털부산카드의 초도발행분에도 부산타워[4]와 함께 인쇄되어 있었다.
섬들의 이름은 육지에서 가까운 것부터 방패섬, 솔섬,[5] 수리섬(비석섬)[6], 송곳섬, 굴섬[7], 등대섬이다. 등대섬은 원래 밭섬이라고 불렀는데, 6개의 섬 중에 유일하게 평지가 있었기 때문. 이후 6개 섬 중에 등대공사 부지가 있는 곳이 밭섬 뿐이어서, 등대를 지었고, 이후에 등대섬으로 이름이 바뀐다.
오륙도는 육지에서 이어진 하나의 작은 반도였으나,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거센 파도에 의한 침식 작용으로 육지에서 분리되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륙도라는 이름은 1740년에 편찬된 ' 동래부지 산천조'에서 비롯되었다.
해양수산부 산하 국립해양조사원 기준으로는 오륙도와 승두말[8]을 기준으로 동해와 남해를 나눈다.
2. 관람
주로 오륙도를 보기 위해서 일반 관람객들은 오륙도 해맞이공원을 찾는다.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다. 오륙도 해맞이공원에는 절벽 바깥쪽으로 투명한 유리바닥 위를 걸어 나갔다 올 수 있는 스카이워크[9]를 비롯해 오륙도를 가까이서 볼 수 있어 관광버스가 많이 찾는다. 관광객은 거의 다 외국인이다.이기대 해안 산책로의 한쪽 시작점이며,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통일전망대까지 한반도 동해안을 종단하는 대한민국 최장의 걷기여행길인 해파랑길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여느 섬들이 그렇듯 유람선을 타고 오륙도를 관광하는 코스가 있는데, 해당 유람선에서 조용필의 노래 ‘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오륙도를 단순히 바라보는 게 아니라 독도처럼 배 타고 가서 섬 근처를 돌거나 섬 위에 상륙하는 것도 가능하다. 오륙도 섬들은 해맞이공원 쪽에서 보면 작아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상당히 커서 웅장하다. 해운대 미포 등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은 오륙도를 단순히 한 바퀴 돌고 돌아가므로 만약 섬에 내릴 생각이라면 해맞이공원 아래의 오륙도 선착장에서 출발하는 작은 배를 이용해야 한다. 성인 기준 요금은 2만원이고 한 시간 간격으로 출발한다. 주말과 공휴일 기준 마지막 유람선 운항 시각은 16시 20분이니 참고바란다. 대부분 낚시꾼들이 등대섬을 많이 찾는다. 참고로 유람선 시스템이 섬 근처에 왔을 때 선장 가까이 가서 여기에 내리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말해야 선착장에 배를 대서 내릴 수 있다. 원하는 섬에 내릴 수 있으며 여기서 바라보는 경치도 괜찮고 섬 안에 오륙도등대 전시실과 화장실 같은 시설이 있다.
4월에 유채꽃을 보러 방문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 편.
3. 한센병 환자촌, 용호농장
현재 해맞이공원이 있는, 오륙도와 가장 가까운 육지 부분은 옛날에 나병 환자촌이 있던 지역이었다. 태평양 전쟁 때에 부산 해안에 수많은 해안포 진지를 세워놓았는데[10], 전쟁 후에 무기가 빠진 해안포 진지 동굴에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살기 시작하면서 나병환자촌이 들어서게 된다. 이후에 나병환자들은 농업과 축산업[11]으로 인근 시장에 식료품을 공급하면서 살아가다가, 농장과 주거지가 낙후되기 시작하면서, 한센병 환자들은 소록도 같은 다른 한센병 환자촌으로 이전을 한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2005년부터 SK건설에서 재개발을 추진하여 2008년에 27~47층짜리 초고층 고급 아파트인 오륙도 SK뷰가 세워지고 과거의 낙후한 모습은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으며 그 옆에는 오륙도 해맞이공원이 조성되었다.당시 농업과 축업으로 생계를 이어나갔기에 용호농장이라고 이름이 붙였졌는데, 시작은 감만동에 1910년에 세워진 상애원(相愛園)이라는 한센병환자촌을 기원으로 한다. 호주 기독교선교부에서 운영한 시설[12]은 1935년에는 650여명이 모여살다가[13], 손양원 목사가 1926~1934년에 여기서 전도사 생활을 했다. 1940년 12월부터 시작된 소록도로 한센병환자 390명의 강제이주로[14][15] 상애원은 사라졌다가, 해방 후에 1946년 3월부터 일본군 포진지를 중심으로 다시 상애원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한센병 환자촌이 설립된다.
이후 1948년 경상남도 도립 나요양소가 되고, 1961년에는 국립용호병원으로, 1968년에는 국립 소록도 나병원 용호분원이 되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외지의 한센인이 이주하면서 규모가 커지고, 생계를 위해 교회[16]와 주택, 채소·양계·양돈을 위한 농장이 형성되었다. 이렇게 마을이 확대되자 1975년 용호 농장으로 명칭이 변경한다.
최고로 번성했을 때에는 7,000여명의 주민이 돼지 20만~30만 마리, 닭 200만 마리 이상을 사육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이후 점차 인구가 줄면서 재개발 직전에는 1,200명이 살았다.
참고로 부산의 나병환자 거주지는 여기 말고 을숙도에도 있었으나, 태풍 사라호로 인해 조기 이주가 진행되어 부산에 어지간히 오래 산 사람들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4. 대중교통
오륙도 경유 버스 노선 |
131경유
|
마을버스는 오륙도선착장 안까지 들어오니 참고할 것.
5. 참조
[1]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부산 오륙도
[2]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3]
1995년에 폐기된 휘장에는 상단에 표기된 봉우리가 오륙도를 의미했고 2023년에 폐기된 휘장에는 갈매기가 날아가는 뒤편의 다섯개 봉우리가 오륙도를 뜻했다.
[4]
광안대교는 당시 공사중.
[5]
썰물이 되어 이 두 섬이 하나가 되면 우삭도라고 한다.
[6]
임진왜란 이후에 명나라 장수인 만세덕(萬世德, 1547-1602)의 공을 기리는 비석을 세웠다. 하지만 폭우에 의해 현재는 소실되었는데, 1709년 동래부사 권이진이 이를 보고해 자성대에 새로 비를 세웠다. 이에 따라 소실된 시기는 확실치는 않으나 1709년 이전에 소실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7]
이 섬 안에 커다란 굴이 있어, 굴섬이라고 한다. 이 굴 안에는 어민들이 설치한 무속신앙의 종교물품이 설치되어 있다. 참고로 오륙도 중에서 가장 큰 섬이다.
[8]
오륙도에서 가장 가까운 육지 부분. 실제로
동해와
남해가 이 곳을 기점으로 나뉜다는 안내문도 설치되어 있다.
[9]
의외로 다른 곳에 비해 무섭지 않다. 스카이워크 부분이 참고로 승두말에 해당한다고 한다.
[10]
해안포 진지가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곳이 있다.
[11]
양계장으로 닭고기와 계란 등
[12]
처음에는 영국의 선교회에서 운영을 했지만, 1911년에 호주 기독교 선교부가 인수한다.
[13]
당시 경산남도에만 한센병 환자 수를 6천으로 추산하니, 거의 경남 한센병 환자의 10%가 모여살은 셈
[14]
나머지는 뿔뿔이 흩어진다.
[15]
일본에서 적국인 호주, 영국의 사업기관을 철거했기에, 상애원이 사라진 것
[16]
상애원이 기원이다보니 상애교회로 이름이 지어졌다가, 이후 창대교회로 교회명을 변경 후에 용호농장이 사라지면서 지금은 정관신도시로 이전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