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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5 16:03:20

안현수

빅토르안에서 넘어옴
안현수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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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올림픽 남자 5000m 계주 금메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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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1994 1998 200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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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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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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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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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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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김기훈 마르코 부일레르민 에릭 베다르 마크 가뇽 송석우
이준호 마우리치오 카르니노 마크 가뇽 조나탕 길메트 안현수
모지수 오라치오 파고네 데릭 캠벨 마티외 튀르코트 서호진
송재근 후고 헤른호프 프랑수아 드롤렛 프랑수아루이 트랑블레 이호석
에릭 베다르 오세종
2010 2014 2018 2022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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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에 쟝 블라디미르 그리고리에프 리우 샤오앙 파스칼 디옹
프랑수아루이 트랑블레 빅토르 안 리우 샤오린 샨도르 스티븐 뒤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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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바스티유 막심 라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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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올림픽 남자 1000m 금메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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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1994 1998 200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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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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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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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브래드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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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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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올림픽 남자 1500m 금메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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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2006 2010 2014 2018
파일:미국 국기.svg 아폴로 안톤 오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안현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정수 파일:캐나다 국기.svg 샤를 아믈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임효준
2022 2026 2030 2034 2038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황대헌 파일: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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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올림픽 남자 500m 금메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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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1998 2002 2006 2010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채지훈 파일:일본 국기.svg 니시타니 다카후미 파일:캐나다 국기.svg 마크 가뇽 파일:미국 국기.svg 아폴로 안톤 오노 파일:캐나다 국기.svg 샤를 아믈랭
2014 2018 2022 2026 2032
파일:러시아 국기.svg 빅토르 안 파일:중국 국기.svg 우다징 파일:헝가리 국기.svg 리우 샤오앙 파일:국기.svg 파일: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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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선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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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우승제: 1회(1976년) ~ 47회(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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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종합 우승제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24회 1999 소피아 파일:중국 국기.svg 리자쥔
1회 1976 섐페인 파일:미국 국기.svg 앨런 래트레이 25회 2000 셰필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민룡
2회 1977 그르노블 파일:캐나다 국기.svg 가에탕 부셰르 26회 2001 전주 파일:중국 국기.svg 리자쥔
3회 1978 솔리헐 파일:호주 국기.svg 제임스 린치 27회 2002 몬트리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동성
4회 1979 퀘백 파일:일본 국기.svg 토다 히로시 28회 2003 바르샤바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안현수
5회 1980 밀라노 파일:캐나다 국기.svg 가에탕 부셰르 29회 2004 예테보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안현수
6회 1981 뫼동 파일:캐나다 국기.svg 브누아 바릴 30회 2005 베이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안현수
7회 1982 멍크턴 파일:캐나다 국기.svg 기 데이뇨 31회 2006 미니애폴리스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안현수
8회 1983 도쿄 파일:캐나다 국기.svg 루이 그르니에 32회 2007 밀라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안현수
9회 1984 피터버러 파일:캐나다 국기.svg 기 데이뇨 33회 2008 강릉 파일:미국 국기.svg 아폴로 안톤 오노
10회 1985 암스테르담 파일:일본 국기.svg 카와이 토시노부 34회 2009 빈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호석
11회 1986 샤모니 파일:일본 국기.svg 이시하라 타츠요시 35회 2010 소피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호석
12회 1987 몬트리올 파일:캐나다 국기.svg 미셸 데이뇨
파일:일본 국기.svg 카와이 토시노부
36회 2011 셰필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노진규
13회 1988 세인트루이스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피터 판데르벨데 37회 2012 상하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곽윤기
14회 1989 솔리헐 파일:캐나다 국기.svg 미셸 데이뇨 38회 2013 데브레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신다운
15회 1990 암스테르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준호 39회 2014 몬트리올 파일:러시아 국기.svg 빅토르 안
16회 1991 시드니 파일:영국 국기.svg 윌프 오레일리 40회 2015 모스크바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싱키 크네흐트
17회 1992 덴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기훈 41회 2016 서울 파일:중국 국기.svg 한톈위
18회 1993 베이징 파일:캐나다 국기.svg 마크 가뇽 42회 2017 로테르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서이라
19회 1994 길드퍼드 파일:캐나다 국기.svg 마크 가뇽 43회 2018 몬트리올 파일:캐나다 국기.svg 샤를 아믈랭
20회 1995 요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채지훈 44회 2019 소피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임효준
21회 1996 헤이그 파일:캐나다 국기.svg 마크 가뇽 45회 2020 서울 취소 COVID-19
22회 1997 나가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동성 46회 2021 도르드레흐트 파일:헝가리 국기.svg 리우 샤오앙
23회 1998 빈 파일:캐나다 국기.svg 마크 가뇽 47회 2022 몬트리올 파일:헝가리 국기.svg 리우 샤오앙 }}}}}}}}}
종합 우승제 폐지: 48회(2023년) ~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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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48회 2023 서울 500m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피에트로 시겔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회 500m 파일:국기.svg
1000m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박지원 1000m 파일:국기.svg
1500m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박지원 1500m 파일:국기.svg
49회 2024
로테르담
500m 파일:중국 국기.svg 린샤오쥔 500m 파일:국기.svg
1000m 파일:캐나다 국기.svg 윌리엄 단지누 1000m 파일:국기.svg
1500m 파일:중국 국기.svg 쑨룽 1500m 파일:국기.sv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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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bordercolor=#fff,#1f2023>
유럽선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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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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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우승제: 1회(1997년) ~ 26회(2022년)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1회 1997 말뫼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파비오 카르타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15회 2011 헤이렌베인 파일:라트비아 국기.svg 하랄드 실로우스
2회 1998 부다페스트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파비오 카르타 16회 2012 믈라다볼레슬라프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싱키 크네흐트
3회 1999 오버스트도르프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파비오 카르타 17회 2013 말뫼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프레이크 판데르바르트
4회 2000 보르미오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파비오 카르타 18회 2014 드레스덴 파일:러시아 국기.svg 빅토르 안
5회 2001 덴 하흐 파일:프랑스 국기.svg 브루노 로스코스 19회 2015 도르드레흐트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싱키 크네흐트
6회 2002 그르노블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파비오 카르타 20회 2016 소치 파일:러시아 국기.svg 세묜 옐리스트라토프
7회 2003 상트페테르부르크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파비오 카르타 21회 2017 토리노 파일:러시아 국기.svg 세묜 옐리스트라토프
8회 2004 주테르메이르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니콜라 로디가리 22회 2018 드레스덴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싱키 크네흐트
9회 2005 토리노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파비오 카르타 23회 2019 도르드레흐트 파일:헝가리 국기.svg 리우 샤오린 샨도르
10회 2006 크르니차즈드루이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니콜라 로디가리 24회 2020 데브레첸 파일:헝가리 국기.svg 리우 샤오앙
11회 2007 셰필드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니콜라 로디가리 25회 2021 그단스크 파일:러시아 국기.svg 세묜 옐리스트라토프
12회 2008 벤츠필스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니콜라 로디가리 26회 2022 드레스덴 취소 COVID-19
13회 2009 토리노 파일:라트비아 국기.svg 하랄드 실로우스
14회 2010 드레스덴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니콜라 로디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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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우승제 폐지: 27회(2023년) ~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27회 2023
그단스크
500m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피에트로 시겔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회 500m 파일:국기.svg
1000m 파일:벨기에 국기.svg 스테인 데스멋 1000m 파일:국기.svg
1500m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옌스 판트바우트 1500m 파일:국기.svg
28회 2024
그단스크
500m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피에트로 시겔 500m 파일:국기.svg
1000m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피에트로 시겔 1000m 파일:국기.svg
1500m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피에트로 시겔 1500m 파일:국기.sv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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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월드 투어 남자부 종합우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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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98 1998-99 1999-00 2000-01 2001-02
파일:중국 국기.svg 리자쥔 파일:중국 국기.svg 리자쥔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동성 파일:미국 국기.svg 아폴로 안톤 오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동성
2002-03 2003-04 2004-05 2005-06 2006-07
파일:미국 국기.svg 아폴로 안톤 오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안현수 파일:미국 국기.svg 아폴로 안톤 오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안현수 파일:독일 국기.svg 타이슨 흥
2007-08 2008-09 2009-10 2010-11 2011-12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호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성시백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정수 파일:프랑스 국기.svg 티보 포코네[1]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노진규
2012-13 2013-14 2014-15 2015-16 2016-17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노진규 파일:캐나다 국기.svg 샤를 아믈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신다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곽윤기 파일:헝가리 국기.svg 리우 샤오앙
2017-18 2018-19 2019-20 2020-21 2021-22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황대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임효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박지원 취소 COVID-19 파일:중국 국기.svg 런쯔웨이
2022-23 2023-24 2024-25 2025-26 2026-27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박지원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박지원 파일:국기.svg 파일:국기.svg 파일: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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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주니어 세계선수권 남자부 종합우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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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1994 1995 1996 1997 1998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승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승준 파일:캐나다 국기.svg 장 프랑수아 모네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상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동성 파일:캐나다 국기.svg 프랑수아루이 트랑블레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상준
<rowcolor=#ffffff> 1999 2000 2001 2002 2003
파일:미국 국기.svg 아폴로 안톤 오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민룡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승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안현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호석
2004 2005 2006 2007 2008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호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호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정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신우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윤재
2009 2010 2011 2012 2013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엄천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노진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서이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박세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박세영
2014 2015 2016 2017 2018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문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다겸 파일:중국 국기.svg 런쯔웨이 파일:헝가리 국기.svg 리우 샤오앙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홍경환
* 2019년 종합 우승이 폐지되면서 2018년의 우승자가 마지막이 되었다. }}}}}}

''' 파일:팀 코리아 워드마크.svg '''
<rowcolor=#fff> 남자
안현수 이호석 송석우 서호진 오세종
<rowcolor=#fff> 여자
진선유 최은경 변천사 강윤미 전다혜

''' 파일:팀 코리아 워드마크.svg '''
<rowcolor=#fff> 남자
안현수 송경택 김현곤 김병준 이호석
<rowcolor=#fff> 여자
진선유 전지수 변천사 정은주 김민정

<colbgcolor=#0033a0><colcolor=#ffffff> 안현수(빅토르 안)
安賢洙 | Ahn Hyun-soo
[1]
파일:3A4C5DB6-AB1B-404D-A059-A9E5D142768B.jpg
본명 빅토르 안 (Victor An, Viktor An, Виктор Ан)[2]
출생 1985년 11월 23일 ([age(1985-11-23)]세)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1985 ~ 2011)

[[러시아|]][[틀:국기|]][[틀:국기|]](2011 ~ 현재)
신체 172.3cm, 70kg[3], O형
학력 명지초등학교 (졸업)
명지중학교 (졸업)
신목고등학교 (졸업)
한국체육대학교 (체육학 / 학사)
종목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주종목 : 1,000m, 1,500m → 500m, 1,000m[4]
소속 성남시청 (2007 ~ 2010)
CSKA 모스크바 (2011 ~ 2020)
종교 불교
수훈 러시아 대조국공훈훈장 (2014)
현직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코치
가족 아버지 안기원(1957년생)
3남 1녀 중 첫째[5]
배우자 우나리(1983년생)[6]
안제인(2015년 12월 29일생)[7]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평가3. 수상 기록
3.1. 주요 국제대회 성적3.2. 올림픽 성적3.3. 세계선수권 성적3.4. 월드컵 성적
4. 개인 기록5. 선수 시절
5.1. 대한민국 선수 시절5.2. 대한빙상연맹과의 관계와 귀화5.3. 쇼트트랙 파벌 갈등
5.3.1. 개요5.3.2. 2002 - 20035.3.3. 2003 - 20055.3.4. 20065.3.5. 2010
5.4. 귀화
5.4.1. 귀화 과정5.4.2. 귀화 원인, 그리고 말들
5.4.2.1. 안현수의 글과 인터뷰들5.4.2.2. 안현수의 아버지5.4.2.3. 안현수의 코치였던 황익환 감독5.4.2.4. 빙상관계자들의 인터뷰들5.4.2.5. 업계 언론인들과 언론 보도5.4.2.6. 정치권의 언급5.4.2.7. 안현수의 부상과 빙상 스포츠의 현실
5.5. 러시아 선수 시절
6. 지도자 시절
6.1. 2020-22 중국 국가대표팀 지도자6.2. 2023 한국체육대학교 지도자
7. 관련 어록8. 루머9. 논란10. 수훈과 명예 대사11. 방송 활동12. 광고와 화보13. 그 외 활동14. 여담

[clearfix]

1. 개요

파일:안현수 토리노.jp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쇼트트랙 국가대표 시절
2001-02~2007-08 (7시즌)
파일:빅토르 안 소치.jpg
파일:러시아 국기.svg 러시아 쇼트트랙 국가대표 시절
2011-12~2014-15, 2016-17~2017-18, 2019-20 (7시즌)[8]
빅토르 안은 전 한국 출신의 러시아의 쇼트트랙 지도자이며 은퇴한 쇼트트랙 선수이다. 한국과 러시아 두 나라 국가대표로 활동한 선수 시절엔 쇼트트랙 역사상 유일하게 올림픽 전종목에서 금메달을 땄고, 쇼트트랙 종목 최초로 한번의 올림픽에서 전종목 메달을 땄으며[9], 세계선수권 최다 우승 기록(6회)과 남자부 최다 연속 우승 기록[10]을 가지고 있다. 2001-02 시즌 솔트레이크 시티 동계올림픽 대표팀에 특별 차출된 이후 2007-08 시즌까지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활동했다. 이후 러시아로 귀화하여 2011-12 시즌부터 러시아 국가대표로 활동하다가 2020년 4월 27일, 고질적인 무릎 부상과 추가적으로 이어진 부상으로 은퇴를 선언했고 지도자의 길을 가겠다고 밝혔다. 은퇴 후 2020년 10월부터 2022년 2월까지 중국 국가대표팀의 테크니컬 코치 및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수석코치로 활동했다. 2023년부터는 한국에서 쇼트트랙 지도자로 활동 중이다.

2. 평가

두 번의 올림픽에서 3관왕을 달성하며 메달 스윕을 달성한 선수이자 세계선수권 최다 우승기록과 5연패 기록 보유자로 쇼트트랙 역대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다. 쓸데없는 움직임으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경우가 없고 가볍게 기술로만 스피드를 끌어올려 앞에 있는 선수들을 쉽게 따돌린다. 가장 이상적인 스케이팅 자세와 어렸을 때부터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며 쌓은 노련함, 그리고 같이 완성됐던 인코스, 아웃코스, 코너링 기술뿐만 아니라 순발력, 스퍼트, 그리고 안정성, 지능적인 경기 운영과 시야, 지구력도 모두 최정상급이라 선두 자리를 지키는 것에도 굉장히 능하다. 유일한 약점은 스타트와 초반 가속이 약했다는 것인데, 이 때문에 한국 선수 시절에는 상대적으로 단거리 종목과 인연이 없었다. 러시아로 귀화한 이후부터는 기존 본인의 스타일에 더해 약점이었던 스타트를 개선하며 단거리 종목 기량을 향상시켰지만 대신 부상과 노쇠화로 인해 지구력을 포함한 전체적인 능력치는 전성기였던 한국 시절보다는 떨어졌다. 시기별로 요약하면 대한민국 대표 시절에는 역대 최고의 중장거리 기량과 준수한 단거리 기량을, 러시아 대표 시절은 준수한 중단거리 기량과 나쁘지 않은 장거리 기량을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성시백, 이호석과 함께 2000년대 중후반은 물론 한국 역대 최고의 스피드스터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순발력이 뛰어나 피치를 올리는 속도나 스퍼트 능력에서 이호석과 쌍벽을 이뤘다. 중장거리에서는 두말할 것도 없고, 500m에서는 스타트와 초반 가속이 약해 다른 종목에 비해 큰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최고 스피드는 그 어느 단거리 스프린터보다도 뛰어났다. 계속해서 속도가 붙어서 진행되는 5,000m 계주에서는 외국의 가장 빠른 에이스들에게도 공포 그 자체였던 선수다. 특히나 계주에서 한국의 가장 큰 라이벌이었던 캐나다는 안현수를 의식해 수년 간 다양한 작전들을 써가며 그를 상대했지만 앞서 있는 상황에서는 번번이 추월을 당하거나 추격을 하는 상황에서는 제대로 거리도 좁혀보지 못하고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지며 그가 2008년 부상으로 이탈하기 직전까지도 해법을 찾지 못한 채 1위를 내주기 일수였다. 한국 선수 시절에도 순간 속도가 좋았지만, 러시아 귀화 이후에는 발목 힘을 강화해 스타트 능력과 초반 가속에서 엄청난 발전을 보여주었음은 물론 순간 속도마저 한국 시절보다도 더 향상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크로스 기술을 사용할 때 코너 진입 구간에서의 스피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다만 최대 스피드는 전성기 때보다 떨어졌다.
그의 전성기 시절에는 노진규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지구력도 역대 최강이라고 평가받았다. 체력 자체만을 놓고 보자면 노진규가 위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지만, 안현수는 기술과 경기 운영이 워낙 뛰어났기에 체력적인 효율이 더 뛰어났다는 차이점이 있다. 전성기에는 그가 레이스 중반에 1위로 치고 나오면 사실상 승패가 결정되었다고 봐도 될 정도로 선두 자리를 지키는데 능했고, 엄청난 체력을 자랑하며 빠른 스피드를 결승선을 통과할 때까지 유지하는데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동시대에 가장 강력한 라이벌들이었던 이호석 아폴로 안톤 오노를 상대로도 추월을 허용하지 않으며 이런 운영을 여러 차례 성공시켰다. 러시아 귀화 이후로는 지구력이 많이 약해졌고 체력과 연관이 큰 스퍼트 능력이 약화된 만큼 1,500m에서 한국 시절만큼의 강력함은 보이지 못했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역대 최고의 테크니션이라는데 이견이 없을 정도로 테크니컬 스케이팅의 정점을 보여줬으며, 그가 롱런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도 그의 기술에 있다. 불필요한 움직임으로 인해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 없는 가장 이상적인 스케이팅 자세를 가졌는데, 당연한 얘기지만 자세가 좋으면 좋을수록 공기에 대한 저항을 줄일 수 있으며 속도를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 전이경 해설위원도 그의 레이스를 보며 '자세가 완벽해 체력이나 속도가 새는 일이 없다'라고 코멘트 한 적이 있다.

추월 기술도 아웃코스와 인코스 모두 최정상급이다. 순간 가속이 좋아서 아웃코스를 추월할 때 빠르게 스피드를 끌어올리고 속도가 붙은 상태로도 깔끔하고 안정적으로 코너를 돈다. 당연히 아웃코스로 선수를 추월하는 것은 인코스로 추월하는 것보다 몇 배로 힘이 들며 잘하지 않는 이상 안 하느니만 못하다. 굳이 언급하자면 세계 무대에서 안현수 정도의 아웃코스 추월 기술을 갖췄다 할 수 있는 선수는 이호석 밖에 없다. 러시아로 귀화한 이후로는 체력이 전성기 시절만큼 강력하지 않아 중장거리에서 보여주던 아웃코스 추월을 예전만큼 많이 선보이지 못했다. 또한 무릎부상의 후유증으로 체력훈련을 과거 한국 시절처럼 소화할 수 없는 몸상태이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지구력이 안현수의 약점이 되었다.[11]

인코스 기술도 모든 패턴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가장 흔한 추월 패턴인 코너를 돌아나오며 직선 구간에서 추월하는 기술은 말할 것도 없고, 코너 진입 구간에서 탄력을 받아 추월하는 크로스 기술은 그를 대표하는 기술이라 칭할 만하다. 러시아 귀화 후 아웃코스보다는 인코스를 훨씬 많이 사용하다보니 더 잘 알려진 기술이긴 하지만 그가 한국 선수 시절에도 자주 사용하던 기술일 뿐만 아니라, 사실 크로스기술 자체가 원래부터 쇼트트랙에 존재하던 개념이다. 물론 안현수가 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안정적이고 정석적인 움직임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건 사실이고, 제대로 구사하기에는 고난이도의 기술이기에 스케이터의 실력 또한 출중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다른 선수들이 코너 진입 직전에 추월을 시도할 때는 보통 몸으로 밀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지만 안현수는 다른 선수들보다 2번 정도 더 많은 스텝을 쳐서 코너를 깔끔하게 빠져나온다.[12]

대부분의 가속이나 추월등이 코너를 도는 구간에서 일어나는 것을 감안하면 쇼트트랙에서는 코너링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할 정도로 과장이 아닌 가장 기본기이자 중요한 기술이다. 그의 코너링이 특히나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전속력으로 아웃코스를 달리면서 원심력을 이겨내고 안정적으로 돌 수 있다는 것이며 원하는 코스를 자유자재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 강력한 코너링 능력이 그의 추월 기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같은 최정상급 스케이터였던 이호석이나 곽윤기의 추월 기술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13] 크로스기술이 주로 인코스에 바짝붙어서 코너링을 하다보니 코너를 돌고 나서 원심력 때문에 바깥으로 세어나갈 수 있는 확률이 높은데, 안현수는 속도를 유지하면서도 코너를 돈 후에도 인코스 쪽에 붙어있는게 가능했던 선수다.
지능적인 경기 운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경쟁하는 상대 선수들의 장단점과 스타일을 모두 파악하는 것은 물론 경기 흐름을 읽어 어떤식으로 레이스를 풀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도 뛰어나며, 긴박한 상황에서도 순간마다 빙판 컨디션을 외운다던지 선수 견제를 위해 앞뒤로 시야를 수시로 체크할 정도로 꼼꼼하다. 견제 능력이나 코스방어가 뛰어났던 것도 그에게 도전했던 주 경쟁에게 우위를 점할 수 있게 해준 중요 요소이기도 했다. 특히 전략을 잘 생각하고 들어가야 하는 세계선수권 슈퍼파이널에서 그의 경기 운영 능력이 더욱 잘 드러난다.[14]
빠른 스피드로 고난도 추월 기술을 구사하면서도 최정상급 안정감을 갖춘 스케이팅을 선보였다. 화려한 스케이팅 기술이나 스피드에 비해 잘 언급되지 않는 부분이지만 안현수가 역대 최고의 선수가 되는데 굉장히 중요했던 분야로, 그가 스케이팅 도중 불안한 모습을 보이거나 넘어지는 장면은 손에 꼽을 정도이며 이마저도 대부분이 본인 실수가 아닌 다른 선수에 의한 것이다.[15] 이호석이나 성시백 같이 고평가받는 선수들도 안현수와 비교했을 때 가장 쳐지는게 안정성으로 언급될 정도로 안현수는 그 긴 선수 경력 동안 넘어지거나 미끄러지는 장면을 찾아보기 굉장히 힘들다. 또한 다른 선수와 접촉하는 것도 드물고 순간 판단력이 뛰어나서 기회를 확실하게 포착하는데 능해 무리하거나 위험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빌미 자체를 제공을 안하는 편이었다.
한국 선수로 뛰던 시절에는 압도적이던 1000m와 1500m 기량에 비해 500m 활약상은 부족한 편이었다. 그가 갖췄던 스피드는 당연 세계 최강이 맞았지만 문제는 좋은 성적을 거두기에는 스타트 능력이 너무 떨어졌다. 물론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전관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500m에 꽤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고 월드컵에서는 4번의 결승에 모두 진출해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를 따내어 랭킹 1위에 오를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성시백이 등장하기 전까진 500m 종목에서 대한민국 선수 중에서는 강자에 속했다. 안현수가 500m를 공략하던 방식은 스타트에서 좋은 자리를 거의 반쯤 포기하고 레이스 후반 추월로 승부를 뒤집는 식의 레이스였다.[16][17]

러시아로 귀화하고 나서는 발목 힘을 강화해 단거리 능력에서 큰 발전을 이뤘고 2013-14시즌 기준 500m 종목에서 세계랭킹 1위에 오를 정도가 되었다.[18] 그러나 앞서 언급되었든 지구력이 한국 시절보다 현저히 떨어진 것이 보였으며 2012-13시즌 1500m 경기에서 선두에서 끄는 작전을 많이 시도해보기도 했으나 경기 후반에 뒤처지거나 스피드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1500m는 경기를 뛰는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아웃코스 추월이 상당히 중요한데, 문제는 아웃코스 추월은 체력 소모가 심해서 1500m에서 한국 시절급의 압도적인 경기를 펼친적은 거의 없다. 결론적으로 장거리 종목에서 경쟁력은 있었지만 전성기만큼의 퍼포먼스를 기대할 수는 없었으며 파워를 제외한 전반적인 신체 능력치도 최전성기였던 한국 대표 시절보다는 떨어졌다.

여러 논란들에도 오랜 선수생활 동안 쇼트트랙 역사에 있어 국내외로 발전에 공헌한 바는 상당히 크며 전설이라 평가 받는다. 관련 업계 외신도 쇼트트랙 역대 최고의 선수로 인정하고 있다.
파일:Ahn hyun-soo_2006.jpg
파일:shorttrack.sportresult_com.jpg 복사.jpg
2006년 토리노 올림픽 때의 안현수 ISU shorttrack.sportresult.com 상단 화면[19]
파일:올림픽 채널 쇼트트랙.jpg
IOC 공식 웹사이트 캡쳐화면

3. 수상 기록

3.1. 주요 국제대회 성적

대회 합계
올림픽 6 0 2 8
세계선수권 18 7 3 28
세계 팀선수권 2 3 1 6
유럽선수권 7 5 2 14
아시안 게임 5 1 0 6
유니버시아드 3 0 1 4
주니어 세계선수권 4 0 0 4
총 합계 45 16 9 70
개인종목 메달 성적
대회 합계
올림픽 4 0 2 6
세계선수권 14 5 3 22
합계 18 5 5 28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대표
파일:오륜기(여백X).svg 올림픽
금메달 2006 토리노 5000m 계주
금메달 2006 토리노 1000m
금메달 2006 토리노 1500m
동메달 2006 토리노 500m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세계선수권
금메달 2002 몬트리올 5000m 계주
금메달 2003 바르샤바 5000m 계주
금메달 2003 바르샤바 종합
금메달 2003 바르샤바 1500m
1위 2003 바르샤바 3000m S.F
금메달 2004 예테보리 5000m 계주
금메달 2004 예테보리 종합
금메달 2004 예테보리 1000m
금메달 2004 예테보리 1500m
1위 2004 예테보리 3000m S.F
금메달 2005 베이징 종합
금메달 2005 베이징 1500m
금메달 2006 미니애폴리스 종합
금메달 2006 미니애폴리스 1000m
금메달 2006 미니애폴리스 1500m
금메달 2007 밀라노 5000m 계주
금메달 2007 밀라노 종합
금메달 2007 밀라노 1000m
은메달 2002 몬트리올 종합
은메달 2002 몬트리올 1000m
2위 2002 몬트리올 3000m S.F
은메달 2003 바르샤바 1000m
은메달 2005 베이징 5000m 계주
은메달 2005 베이징 1000m
2위 2005 베이징 3000m S.F
2위 2007 밀라노 3000m S.F
동메달 2005 베이징 500m
동메달 2007 밀라노 500m
동메달 2007 밀라노 1500m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세계 팀선수권
금메달 2004 상트페테르부르크 단체전
금메달 2006 몬트리올 단체전
은메달 2003 소피아 단체전
은메달 2005 춘천 단체전
은메달 2007 부다페스트 단체전
동메달 2002 밀워키 단체전
파일:아시안 게임 로고.svg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03 아오모리 5000m 계주
금메달 2003 아오모리 1000m
금메달 2003 아오모리 1500m
금메달 2007 창춘 5000m 계주
금메달 2007 창춘 1000m
은메달 2007 창춘 1500m
파일:FISU 로고.svg 유니버시아드
금메달 2005 인스브루크 5000m 계주
금메달 2005 인스브루크 1500m
금메달 2005 인스브루크 3000m
동메달 2005 인스브루크 1000m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주니어 세계선수권
금메달 2002 춘천 종합
금메달 2002 춘천 1000m
금메달 2002 춘천 1500m
금메달 2002 춘천 2000m 계주
동메달 2002 춘천 1500m S.F

[[러시아|]][[틀:국기|]][[틀:국기|]] 대표
파일:오륜기(여백X).svg 올림픽
금메달 2014 소치 5000m 계주
금메달 2014 소치 1000m
금메달 2014 소치 500m
동메달 2014 소치 1500m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세계선수권
금메달 2014 몬트리올 종합
금메달 2014 몬트리올 1000m
은메달 2013 데브레첸 5000m 계주
은메달 2013 데브레첸 500m
3위 2014 몬트리올 3000m
3위 2017 로테르담 3000m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유럽선수권
금메달 2013 말뫼 5000m 계주
금메달 2014 드레스덴 5000m 계주
금메달 2014 드레스덴 종합
금메달 2014 드레스덴 500m
금메달 2014 드레스덴 1000m
1위 2014 드레스덴 3000m
금메달 2015 도르드레흐트 5000m 계주
금메달 2015 도르드레흐트 500m
은메달 2015 도르드레흐트 종합
은메달 2013 말뫼 1000m
2위 2015 도르드레흐트 3000m
은메달 2017 토리노 5000m 계주
은메달 2018 드레스덴 5000m 계주
은메달 2018 드레스덴 500m
동메달 2013 말뫼 500m
동메달 2017 토리노 500m

3.2. 올림픽 성적

파일:오륜기(여백X).svg 올림픽 수상 성적
대회 포디움
올림픽 개인 메달 4 0 2 6
올림픽 계주 메달 2 0 0 2
합계 6 0 2 8
파일:오륜기(여백X).svg 올림픽 메달 종목 통계
대회 500 m 1000 m 1500 m 계주 합계
2006 4
2014 4
메달 500 m 1000 m 1500 m 계주 합계
1 2 1 2 6
- - - - -
1 - 1 - 2
합계 2 2 2 2 8
파일:오륜기(여백X).svg 올림픽 상세결과
대회 날짜 종목 랭킹 비고
2002 솔트레이크시티
2002년 2월 16일 1000m 4위
2002년 2월 20일 1500m 13위 준결승 PEN DQ
2002년 2월 23일 5000m 계주 - DNS
2006 토리노
2006년 2월 12일 1500m 금메달
2006년 2월 18일 1000m 금메달 OR, 1:26,739 분 (결승)
2006년 2월 25일 500m 동메달
2006년 2월 25일 5000m 계주 금메달 OR, 6:43,376 분 (결승)
2014 소치
2014년 2월 10일 1500m 동메달
2014년 2월 15일 1000m 금메달
2014년 2월 21일 500m 금메달
2014년 2월 21일 5000m 계주 금메달 OR, 6:42,100 분 (결승)
1000 m 2006년 올림픽 기록 OR 보유자
5000 m 계주 2006년 올림픽 기록 OR 보유자
5000 m 계주 2014년 올림픽 기록 OR 보유자

3.3. 세계선수권 성적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세계선수권 수상성적
대회 포디움
세계선수권 개인 메달 14 5 3 22
세계선수권 계주 메달 4 2 0 6
합계 18 7 3 28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세계선수권 성적 기록
시즌 종합랭킹 포인트 500 m 1000 m 1500 m 3000 m 계주
2002 42 - - 2위
2위 - 21 - 21 -
2003 89 7위 1위
우승 PEN 21 34 34 -
2004 102 4위 1위
우승 PEN 34 34 34 -
2005 89 2위
우승 13 21 34 21 -
2006 68 4위 8위 -
우승 PEN [22]
34 34 PEN [23] -
2007 81 2위
우승 13 34 13 21 -
2013 6위 23 4위 - 7위
21 - - 2 -
2014 63 4위 4위 3위 -
우승 8 34 8 13 -
2017 7위 23 7위 - 4위 3위 -
2 - 8 13 -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세계선수권 성적 종목 통계
메달 종합 500 m 1000 m 1500 m 3000 m 계주 합계
6 - 4 4 2 4 20
1 1 3 - 3 2 10
- 2 - 1 2 - 5
합계 7 3 7 5 7 6 35

3.4. 월드컵 성적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월드컵 우승 기록
종합 우승 2003-04 시즌, 2005-06 시즌
500 m 1위 2005-06 시즌, 2013-14 시즌
1000 m 1위 2003-04 시즌, 2007-08 시즌
1500 m 1위 2003-04 시즌, 2005-06 시즌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월드컵 성적
월드컵 랭킹 8 12 4 24
월드컵 메달 67 37 25 129
합계 75 49 29 153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월드컵 수상 기록
월드컵 랭킹 우승 2위 3위 포디움
종합 2 3 1 6
500 m 랭킹 2 1 1 4
1000 m 랭킹 2 4 1 7
1500 m 랭킹 2 4 1 7
합계 8 12 4 24
월드컵 메달 포디움
종합 7 3 5 15
500 m 6 4 2 12
1000 m 13 10 5 28
1500 m 16 7 5 28
3000 m 6 6 2 14
개인전 합계 48 30 19 97
5000 m 계주 18 6 6 30
2000 m 혼성계주 1 1 0 2
계주 합계 19 7 6 32
메달합계 67 37 25 129
랭킹 + 메달 합계 75 49 29 153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월드컵 랭킹
시즌 종합 500 m 1000 m 1500 m
2002-03 2위 3위 3위 2위
2003-04 1위 2위 1위 1위
2004-05 3위 10위 2위 2위
2005-06 1위 1위 2위 1위
2006-07 - - 19위 12위
2007-08 2위 - 1위 2위
2012-13 - - 2위 2위
2013-14 2위 1위 2위 3위
2014-15 - - 5위 18위
2016-17 - 7위 - -
2019-20 - 14위 18위 -
랭킹 20위까지 표기[26]

4. 개인 기록

안현수에게 유일하게 없는 것은 세계선수권 500m 금메달이다. 한국 선수들 중에서는 500m 강자였고, 2005-06 시즌에는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하기 까지 했으나, 가장 약한 종목도 역시 500m 종목이었다.[28] 러시아 국가대표가 된 이후 과거에 수많은 메달을 따냈던 1500m[29] 보다는 한국 대표 시절 성과가 가장 적었던 500m와 체력적 부담이 1500m보다는 적고 자신의 최대 장점인 기술과 경기 운영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1000m에 더 집중했다. 2013-14시즌 기준 500m 종목에서 세계랭킹 1위에 올랐고, 세계선수권 은메달과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게된다. 이후 선수로서 노쇠해져가는 과정에서도 기록을 유지 혹은 향상시켰던 것은 안현수가 얼마나 꾸준하고 성실하게 훈련을 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30]
500 m 최고 기록
개인 기록 500 m 대회 개최지 메달
PB 39.961 초 2019-20 월드컵 파일:미국 국기.svg 솔트레이크시티
2. 40.334 초 2016-17 월드컵 파일:캐나다 국기.svg 캘거리
1000 m 최고 기록
PB 1:23.487 분 2013-14 월드컵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토리노
2. 1:24.134 분 2019-20 월드컵 파일:미국 국기.svg 솔트레이크시티
1500 m 세계기록 WR 보유자
전, WR 2:10.639 분 2003-04 월드컵 파일:미국 국기.svg 미시간
2. 2:11.586 분 2003-04 월드컵 파일:중국 국기.svg 베이징
3000 m 세계기록 WR 보유자
전, WR 4:32.646 분 2003-04 월드컵 파일:중국 국기.svg 베이징
2. 4:39.485 분 2005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인스브루크
1000 m 올림픽 기록 OR 보유자
전, OR 1:26,739 분 2006년 동계 올림픽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토리노
5000 m 계주 올림픽 기록 OR 보유자
전, OR 6:43,376 분 2006년 동계 올림픽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토리노
전, OR 6:42,100 분 2014년 동계 올림픽 파일:러시아 국기.svg 소치

5. 선수 시절

5.1. 대한민국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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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대한빙상연맹과의 관계와 귀화

"사실 안현수가 러시아로 귀화를 결심하게 되는 과정에서 여러 일들이 있었다. 부상과 재활 문제도 있었고, 소속팀이던 성남시청이 해체되기도 했고,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르는 방식과 관련, 논란도 있었다."
- 2018년 2월 28일 미디어스, '임재훈의 스포토픽' #
"부상만 해도 안현수 다치면 안되는 거에요. 미끄러질 수 있잖아요. 미끄러지는 걸 대비해서 펜스에 쿠션을 해야 하는데 그게 다 얼어 있었어요. 그럼 당연히 (무릎이) 나가죠".
- 2014년 2월 23일 JTBC 뉴스룸 정용철/서강대 스포츠심리학 교수의 인터뷰 #

안현수는 2022년 3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한빙상경기연맹과의 '불화설'과 '불이익'을 공식적으로 "아니다."라고 했다. # 그의 귀화 원인으로 국내외적으로 가장 오랫동안 언급된것은 대한빙상연맹과의 갈등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빙상연맹과의 갈등이 계속된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의 귀화에 빙상계의 오랜 파벌의 상황과 갈등이 작용되었다 할지라도 그 이후 안현수와 한국빙상계가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니었고, 선수들이나 관계자들하고도 대체적으로 잘 지냈다. 2017년 10월 러시아빙상연맹은 안현수와 한국빙상계쪽과의 관계 덕분에 한국에서 훈련이 수월했다고 러시아 언론매체 스포츠 익스프레스 를 통해 밝히기도 했다. # 또한, 은퇴를 앞두었을 2018년 전후로 국가대표 지도자 논의[31]도 잠시 있기도 했다. #1 #2

하지만 2023년 1월 빙상지도자 연맹이 그의 국내지도자 활동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내어 여론으로 낙마시켰던 것으로 본다면 갈등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성남시청 빙상팀 코치 채용과정에서 그의 한국 지도자 활동을 반대한 빙상지도자 연맹에 대해 2월 9일 한겨례는 한국 빙상 지도자 전체의 의견이 아니며,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폐쇄적인 단체라고 지적하고 있다. KBS 및 일부 언론에서는 파벌갈등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1 #2

파벌문제와 관련해서는 2005-2006년 안현수가 여자팀에서 따로 훈련했던 것이나,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때의 상황이나 2006년 세계선수권에서의 충돌과 관련된 일화들이 언급된다. 그러나 이것은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왔던 사건들이고 실제적인 문제는 2005년 안현수가 구타당했던 폭행사건과 그와 관련된 빙상연맹 지도자들의 부도덕함이 컸다. 하지만 이런 모든것은 '선수의 인권문제'나 '구타사건 문제'보다 파벌 갈등으로 평가 및 거론되었다. #

이후 성남시청 실업팀을 택하면서 한국체육대학교 지도교수 전명규와의 불화 또한 겪은 것으로 확인된다. 아래 글은 당시 빙상계의 상황에 대한 2014년 쇼트트랙계의 한관계자와 언론의 언급이다. #1 #2

쇼트트랙계의 한 관계자는 "전 교수가 실업 팀을 창단하고 스카우트한다고 해서 안현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실업 팀이 잘 진행이 안 돼 대학원 다니면서 잠깐 기다리라고 했는데 그 사이 성남시청이 좋은 조건에 꾸준히 입단 제안을 한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다. 안현수의 성남시청 입단은 곧 전명규 라인에서 본인 스스로 '이탈' 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한번 말을 듣지 않으면 등을 돌려버린다"가 철칙인 전 부회장에게 안현수의 행동은 '하극상' 처럼 여겨졌을 것이라는 평이 빙상계 안팎에서 자자했다. #

2010년에는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씨는 벤쿠버 승부담합(짬짜미) 사건을 공론화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된다. 그리고 안현수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짬짜미 파장의 내부고발자 입장이 되었다. 2014년부터 2022년 전후 일부 언론이나 세간의 말들은 이때의 아버지의 역할로 당시 빙상계 파장을 안현수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판단이다. 안현수 아버지 안기원의 폭로는 안현수의 의지와 상관없는 것이었다. 또한 안기원씨가 당시 공론화했던 것은 선수들의 짬짜미가 아니었다. 안기원씨는 이정수 선수가 대한빙상연맹 윗선들의 외압에 의해 세계선수권 종목 출전 포기를 해야했던 병폐를 알린 것이었는데, 이런 문제가 제기되자 마자 바로 대한빙상연맹은 선수들이 자의로 출전을 포기했다며 각서를 언론을 통해 유포했다. 즉, 대한빙상연맹의 언론플레이 이후 '선수의 출전포기외압' 문제는 '선수들이 짬짜미 했다'로 사안이 바뀌어지게 된다. #1 #2 #3

안현수의 의사와 상관없었던 이 벤쿠버 승부담합 사건의 파장으로 당시 국가대표 선발전이 연기되게된다. 이때문에 안현수는 기초 군사훈련 시기와 겹치게 되어서 훈련 계획에 차질을 빚었다. 그리고 선발전 연기 결정이 안현수를 견제하기위해, 혹은 안기원씨가 빙상연맹의 병폐를 공론화 했다는 보복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의혹들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리고 성남시청 빙상팀이 해체 된후 안현수는 다른 실업팀들에 스카웃 제의를 받지 못했고 혼자 훈련해야했다. 어느 하나가 안현수의 러시아 귀화를 선택하게 했냐로는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들은 안현수가 한국에서 선수로서 설자리가 좁아지게 만들었고 러시아 귀화로 이어졌다는 것은 확인이 가능하다. #1 #2

안현수는 2022년 인터뷰 외에도, 귀화이후 여러 인터뷰들에서 제기되었고 언급되었던 '대한빙상연맹과의 불화설', '불이익'과 관련된 논란에 관련해서는 "아니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가 스포츠를 할수 없게 만든 상황들이 있었음을 간접적으로는 언급한 부분들이 있다. 2011년 4월 안현수는 귀화직전 다음과 같은 인터뷰를 하였다. "선배에게 맞는것보다 더 아팠던 건, 그렇게 강요하는 선배의 상황과 그런 강요가 허락되는 현실이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러시아로 떠나는데 과연 1년 후 한국으로 돌아와서 대표팀 선발전을 잘 치를 수 있을까요?." "연맹과 오랫동안 잡음을 일으키는 바람에 저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는 거 잘 알고 있거든요. 전 이제 눈치 안 보고 살고 싶어요." #

2015년 MBC 휴먼다큐사랑 에서는 러시아 귀화 직전, "이 선수는 한국에서 문제가 많은 선수이니 절대로 받아들이시면 안된다." 는 전화를 러시아빙상연맹 회장이 받아 귀화당시 한국에서의 압력이 있었다는 것을 직접 밝히기도 하였으며, # 2020년 4월 안현수는 러시아 관영 통신 리아 노보스티를 통해 '은퇴 성명'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 당시 나는 이미 많은 것을 성취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를 그만 둘 것을 권고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런 말이 너무 거슬렸고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만 컸습니다." #

2022년 2월 빙상 관계자들은 당시 빙상계의 파벌 논란 속에 부상과 팀 해체까지 겹친 상황에서 그의 귀화 원인을 '어느 하나를 꼭 집어 찾기는 어렵다.' 고 지적했다. YTN 뉴스 보도에서 익명의 빙상연맹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

"국적을 옮긴다는 게 단 한 가지 이유로 옮길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당시에 제가 알기에는 현수한테 우호적이었던 팀들은 없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5.3. 쇼트트랙 파벌 갈등

5.3.1. 개요

안현수가 2002년 한국 국가대표가 되기 전과 2010년 귀화직전까지 빙상사건들과 쇼트트랙 파벌과 큰 사건들을 정리 하면 아래와 같다. 빙상계의 파벌갈등은 상당히 복잡하게 오랫동안 인과관계로 이어져왔으며, 파벌갈등에 대한 이분법적인 판단은 모순에 가깝다고 할수 있겠다.

당시 빙상계 파벌 대립은 외형적으로는 한국체육대학교와 비한국체육대학교의 대립으로 거론되었으나 속내는 훨씬 복잡했다. 1990년대 빙상계 1세대 지도자들의 권력 싸움, 빙상계의 자행되던 금품 비리 문제, 폭행, 승부조작과 자신들이 지도하는 선수들과 다른 선수들을 갈라놓는 등 여러문제들이 제자들로 이어졌고, 그것은 그들에게 어렸을때부터 지도받은 선수들이 휘말리고 서로를 견제하고, 피해를 받을수 밖에 없게 되는 상황을 만들었다.
파벌싸움은 외형적으로 한국체대와 비(非)한국체대의 양상으로 보이지만 속내는 훨씬 복잡하다. 과거 한국 쇼트트랙을 이끌던 J씨와 Y씨의 끊임없는 알력이 그들의 제자들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양상으로 번졌다는 게 빙상계 정설이다. (J와 Y는 전명규와 유태욱으로 추정된다.)
2006년 4월 5일 헤럴드경제 #
과거 쇼트트랙계를 이끈 실력자들과 그의 제자들, 한국체대와 비한국체대 등 인맥과 학맥이 얽힌 데다 학부모들까지 가세해 첨예한 경쟁구도를 형성해왔다. 이 때문에 코칭스태프 선임, 대표선수 선발을 놓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고 선수들의 선수촌 이탈, 비방과 투서가 난무하기도 했다.
2006년 4월 5일 경향신문 #

단, 이시기 선수들을 폭행했거나 구타를 방조했던 일련의 사건들은 파벌이라는 프레임에 선수들은 피해자였다는 본질이 묻혀버렸고, 묻혀버리고 있다. 또한 항의와 폭로를 한 선수들은 이것이 선수의 인권문제와 직결 됨에도 '선수와 학부모의 유난', '파벌 에이스 선수들의 갑질 시위나 폭로' 정도로 치부했고, 일부 언론들도 그러한 보도경향을 보이기도 하였다.

안현수가 2002년 국가대표가 되었을 당시 빙상계는 대학입시 특기생 비리 사건이 터진 바로 직후였다. 그리고 이것은 2000년대 이후 한국체대와 비 한국체대의 빙상파벌의 분리의 시작 중 가장 큰 하나의 사건이라 볼수 있다. 세간에는 2002년 안현수의 국가대표팀 특별차출을 파벌의 분리로 지목하는 경향들도 있으나 실제로 안현수는 당시 고등학생이었다. 이는 당시의 지도자들의 권력싸움과 병폐를 고등학생 하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잘못된 단정이다. 안현수 이전에도 한국에 쇼트트랙의 역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대한빙상연맹은 존재했고, 빙상에는 권력과 기득권들이 있었다. 그리고 선수구타와 금품비리 등의 여러병폐와 선수선발 관련 잡음들은 계속 있어왔던 것이다. 이것을 안현수가 스포츠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한명이기에 그리고 그가 활동하던 시기에 이와 같은 문제들이 세간에 크게 공개되어 알려졌다고 2002년 당시 만 16세였던 고등학생 그리고 그가 대한민국 국가대표와 대한민국 선수로 활동했던 시기는 10대 후반과 20대 초중반이었다. 애초에 고등학생이 파벌을 만들었다는 말도 안되는 억지 주장들은 고등학생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당시 어른이었던 빙상계 권력자들의 잘못과 병폐를 회피하려는 경향으로 볼수 있겠다.

실제로 빙상권력 파벌싸움의 분리는 안현수가 국가대표가 되기 이전의 여러 사건들로 이미 시작이 되어 있다 볼수 있다. 몇가지를 언급해보면 다음과 같다.

5.3.2. 2002 - 2003

이런 상황 속에서 안현수는 당시 대표팀에서 부상당한 이재경 선수를 대신해서 대한빙상연맹 임원들의 대표 선수 특별추천으로 2002년 국가대표가 될수 있었다. 실제로 한국체대와 비한국체대 파벌로 분리시켜서 안현수가 전명규의 한체대 파벌의 특혜로 국가대표가 된것으로 세간에 잘못알려져 있는데, 안현수를 당시 국가대표팀에 추천했었던 것은 비한체대를 대표했던 유태욱 부회장과 삼성가의 박성인 회장이었다. #1 #2 실제 전명규는 안현수를 추천받았을 때는 관심있어 하지 않았는데 안현수가 종합우승한 2002 주니어 세계선수권 대회를 직관한 다음에 대표팀 선수로 불러들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전명규는 히든카드라고 하며 2002년 올림픽 개인전에 출전하는 선수를 안현수로 결정한다. # 올림픽 이후 전명규는 한국체육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였고, 2003년 6월 안현수는 다른 대학교들의 교수직 보장 등 파격적인 조건들에도 불구하고 한국체육대학교에 입학한다. #

5.3.3. 2003 - 2005

안현수의 전성기가 시작되었을 2003-2004년, 빙상계의 갈등과 지도자들의 선수 폭행과 전횡은 심각했다. 국가대표 선발전 판정 실격 논란으로 장철수 심판 이사와 유태욱 경기 이사가 지목되기도 하였고, 여자국가대표팀 폭행논란으로 이준호 코치가 사임하였다. #1 #2 2004년 9월에는 김기훈 코치가 선수들에게 스케이트날을 강매하였다는 비한체대쪽 선수들의 폭로로 사임하였다. 단 김기훈은 이것을 반대편의 음해와 연맹의 압박이라고 반박하였다. # 2004년 11월에는 교체된 최광복(단국대 출신) 김소희(계명대 출신) 코치진의 상습구타에 못이겨서 최은경, 여수연, 변천사, 허희빈, 강윤미, 진선유 여자대표팀 선수 6명의 선수촌 무단 이탈 사건이 일어났다. #1 #2 코치진은 박세우(한체대 출신), 전재목(단국대 출신)으로 변경되었다. #

여자 쇼트트랙 코치진 교체이후 딱 2달뒤, 2005년 1월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는 안현수 구타 사건이 일어난다. 이 일로 윤재명 감독은 당시 제기된 승부조작 논란과 폭행파문 책임으로 3월 세계 팀 선수권 이후 감독직에서 물러난다. #1 #2 그리고 윤재명 감독대신 2006년 토리노 올림픽을 위해 남자팀 코치에 김기훈이 재선임 되었으며, 여자팀에는 전재수 코치가 임명된다. 그러나 1차 선발전이 끝난 이후 2005년 4월 안현수를 제외한 비한체대 출신인 나머지 7명의 선수들이 선수촌 입촌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들은 "주인공은 정해져있다. 특정선수를 편애하는 감독은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재입촌 하고서도 학부모 7명은 선수촌에서 소란을 피워서 결국 김기훈은 "더이상 이런 선수들을 가르칠 수 없다" 며 사임한다. #1. #2

2018년 김기훈은 그때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인터뷰 하였다. "안현수만 특별히 더 가르친것이 아니었는데, 안현수가 다른 선수들보다 더 나를 자주 찾아와서 배웠다. 안현수의 기량은 정말 뛰어나서 하나를 가르치면 정말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

대한빙상연맹은 2005년 7월 윤재명 감독을 총감독으로 재선임하려 했지만, 대표팀 선수 구타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안현수 등[32] 폭행 피해 선수들의 반대로 선임이 되지 않았다. # 빙상연맹 지도부의 사퇴를 주장했던 전재수 코치는 학부모 선동이라는 명목으로 오히려 빙상연맹에서 징계를 받게 되었는데 이때 안현수는 비한체대 남자 선수들과 송재근 코치가 있던 남자대표팀이 아닌 여자팀에서 훈련을 해야 할 정도로 곤란을 겪었다. # 2005년 당시 안현수는 한국체육대학교에 자퇴서를 제출하고 캐나다 유학을 가려고 하기까지 하였고, 2006년에도 쇼트트랙을 그만 두려고 할 정도로 당시의 파벌 갈등은 극단으로 향했다. 또한 당시 대표팀 선수들의 나이가 10대와 20대 초반의 어린 선수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권문제가 좋지 않았다. 선수 구타 사건 등이 빈번했음에도 그에 대해 선수들이나 학부모들의 발언권 또한 당시의 파벌 갈등으로 인해 묻히거나 파벌행위로 치부되고 무시되었다. #1 #2

이와 반대로 여자팀은 한체대 코치진인 박세우와 진선유의 갈등이 있었고, 진선유를 견제하라는 지시를 폭로한 한체대 변천사와 진선유는 비한체대 파벌인 남자대표팀에서 훈련을 해야만 하였다. 2014년 빙상계 일부에서는 이에 대해 회자했는데, “2005년과 2006년 사이 안현수의 마음은 이미 국내를 떠나 있었을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

5.3.4. 2006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 5000m 남자 계주 경기에서 안현수는 완벽한 막판 '대 역전극'을 보여주며 대한민국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 그러나 경기 직후 이호석, 송석우, 오세종, 서호진 등의 다른 선수들이 따로 자신들을 지도했던 전, 현직 코치인 KBS 이준호 해설위원과 송재근 코치에게 빙판 위에서 큰절을 올리는 세레모니를 할때 안현수는 그들과 멀찌감치 떨어져 혼자서 박세우 코치 쪽으로 가있었던 특이한 광경이 2006 토리노 동계 올림픽에서는 일어났다. #1 #2

안현수와 이호석은 중학교 때부터 같이 운동을 했고, 신목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로 선수촌에서 한 방을 썼던 친한 사이 였다. #1 #2 안현수의 귀화이후와 2014년 올림픽 이후에 이호석과 안현수의 사이가 당시의 불화로 인해 세간에 알려졌던 것과 다르게 나쁘지 않았던 것이 여러번 공개 혹은 인터뷰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또한 안현수는 실제로 오세종, 송석우와의 사이도 나쁘지 않았다. #1 #2 2022년 6월 송석우는 한 유튜브 개인방송에 출연해서 당시의 파벌 관련 언급을 하였는데 선수들 사이는 문제가 없었고 어른들의 싸움에 휘말려 든 것이라 밝혔다. # 하지만 파벌 갈등과 지도자들의 이간질로 당시 선수들의 사이는 갈라졌었다.

그리고 안현수 본인은 올림픽 금메달을 땄고 이미 군면제도 받았기 때문에 단체전인 '계주는 열심히 안탈것이다.', '일부러 자빠져서 메달 따는 것을 포기할 것이다'라는 이야기들이 올림픽 당시 대표팀 내부에서 돌았으며, # 급기야는 2006년 올림픽 쇼트트랙 경기 당시 이준호 해설위원의 해설을 왜곡해서 보도한 아름다운 양보라는 일부 언론의 왜곡된 보도는 안현수와 이호석의 사이를 더욱 멀어지게 하였다. 이와 관련해서 안현수는 "운동 선수로서 저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도 많은 비난을 받고,...누가 4년에 한번 열리는 올림픽에서...인생에 한번 올까 말까 하는 경기에서 양보를 합니까"라고 억울해 했으며, 그는 또 "저는 금메달을 따고도 속상해 했고 양보가 아니란 걸 보여주기 위해 남은 경기 열심히 준비했다"고 하기까지 하였다. 이호석은 이후 인터뷰들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했기에 은메달도 값진 성과이며 양보는 한적이 없다고 하였으나 파벌로 인한 오해로 2006년 올림픽 직후 선수들의 사이는 악화되었다. #1 #2 이것은 안현수와 이호석의 2006년 세계선수권 충돌과 안현수 아버지와 대한빙상연맹 부회장과의 다툼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 당시 안현수, 이호석과 경쟁했던 아폴로 안톤 오노의 미국 쇼트트랙 대표팀의 코치였던 '장권옥의 인터뷰'에서 올림픽 당시 일부 언론들의 보도들이 왜곡되어 있었으며, 파벌문제와 엮이면서 이때문에 안현수와 이호석의 사이가 당시 더 악화되었음을 확인할수 있다. 2006년 3월 장권옥은 대한민국 쇼트트랙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렸던 토리노 올림픽을 선수들이 양보나 희생이 전혀 없었던 완벽한 진정한 승리였다고 평가하였다. # 당시 장의 인터뷰는 빙상계 내부의 파벌싸움이 도리어 양보와 희생이 전혀 없이 최고의 성적을 내는 결과를 가져온면도 있다고 한것이었다.

안현수와 이호석의 갈등은 2006년 세계선수권에서의 충돌로 이어졌다. 먼저 500m 결승에서 안현수는 2위로 들어왔으나 '오프트랙' 판정으로 실격되었다. 안현수와 같이 결승을 뛰던 이호석이 마지막 코너를 돌던 중 블럭을 건드렸고 이 블럭이 바깥으로 밀려났는데, 당시 주심이었던 제임스 휴이시는 안현수가 블록 안으로 지나간 것으로 판단해 안현수를 실격시킨 것이었다. 당시 안의 코치였던 박세우는 안현수의 실격판정에 대해 심판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 박 코치는 안현수가 다른 선수에 의해 트랙 바깥 쪽으로 옮겨진 블록을 건드렸기 때문에 오프트랙 반칙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제임스 휴이시의 판정으로 안현수는 포인트를 모두 잃었고, 이호석은 대신 동메달을 획득했다. 그리고 3000m 슈퍼파이널에서는 안현수는 이호석, 오세종과 충돌하였고 1위로 들어왔으나 '임페딩' 판정을 받아 실격되었다.

그럼에도 2006년 세계선수권의 종합 우승자는 안현수였다. 선수들이 귀국하던 인천국제공항 선수단 환영식에서 안의 아버지 안기원씨는 당시 대한빙상연맹 간부들에게 항의를 하다가 김형범 부회장과 싸움을 하였다. 그는 "안현수가 우승하는 것을 막기위해 선수들과 코치가 작전을 짰던 것이라며 대한민국 선수들이 외국선수들보다 안현수를 더 견제했다고."고 주장하였다. 이 공항사건은 파벌문제와 함께 언론과 세간을 시끄럽게 하였다. 안기원씨의 주장에 대해 당시 지목되었던 남자대표팀의 코치인 송재근은 이에 반박하며 "현수가 스포츠에 도전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라는 뉴스 인터뷰를 하기도 하였다. #1 #2 그리고 싸움 중 폭행을 당했던 김형범 부회장과 안기원씨가 서로를 고소하겠다고 입장을 밝히기도 하였다. # 이로인해 대한빙상연맹은 2006년 4월 5일 상벌위원회를 열어 선수단 징계를 검토한다고 하였다. #

2006년 4월 26일, 상벌위원회는 안현수, 이호석, 오세종 모두 고의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내었다. 당시 대한빙상경기연맹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동국대학교 체육교육과 교수 채환국은 세계쇼트트랙선수권대회 3,000m 결승 당시 이호석과 안현수의 충돌장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디오 판독 결과를 발표하였다. "100여 번 이상 비디오를 재생한 결과 고의적인 충돌이 아니었으며, 안현수의 스케이트 앞날이 빙판에 걸리면서 이호석과 부딪혔고, 오세종 역시 캐나다 선수의 반칙으로 밀리면서 안현수와 충돌하였다." #

그러나 이런 양대 파벌싸움과 갈등이 극심했던 속에서도 안현수와 진선유의 사이는 좋았었다.
파일:2006 토리노 올림픽 안현수 진선유.jpg 파일:34921853.1.jpg
2006년 안현수와 진선유 2011년 진선유와 안현수
진선유> "나보다 부상이 심했는데 재기한 걸 보면 현수 오빠는 정말 대단해요."
안현수> "저도 하는데…. 선유는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전성기로 돌아갈 수 있어요. 아직 은퇴할 때가 아니죠."
- 2011년 동아일보 2월 16일 '안현수와 진선유' #

5.3.5. 2010

2010년 3월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씨는 "이정수 선수가 세계선수권 출전과 관련해서 빙상연맹의 압박을 받았다."고 폭로한다. 그리고 이로인해 '벤쿠버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 승부담합 짬짜미파문'이 공론화 되게된다. 당시 안현수의 아버지는 빙상계를 움직이는 유라인(유태욱)과 전라인(전명규)이라는 빙상계 양대 파벌을 언론에 공개하기도 하였다. #1 #2

안현수의 아버지가 2010년 당시 사건을 공론화 하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았다. 이정수의 가족들은 이정수가 발목 부상을 당하지 않았음에도 발목 부상을 이유로 세계선수권 개인전 종목 출전을 못했음을 알게된다. 이정수의 아버지는 당시 국가대표 선수를 지냈던 권수현 선수의 아버지인 권금중에게 이 사건을 알렸고 그들은 대한체육회 조사위에 대한빙상경기연맹에 대한 감사를 신청하기로 결정하고, 사건의 조사를 위해 200명의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았다. 하지만 대한체육회 조사위에 감사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300명 이상이 필요했다. 그들은 영향력이 있는 안현수의 팬 카페에 안현수의 아버지가 이 사건을 써서 공개해주길 요청한다. 안현수의 아버지 주변에서는 아들을 위해서 사건을 밝히지 마라 했으나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한국 사회와 대중들에게 완전하게 공개된다. #1 #2

아버지의 이러한 '빙상연맹의 선수 출전과 관련한 윗선 외압 관련 발언'이후 곧 대한빙상연맹은 '이정수와 김성일 선수가 자의로 출전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썼음을 언론에 내세웠다. 그리고 이후 '윗선 외압과 관련된 폭로'는 선수들의 '벤쿠버 올림픽 선발전 짬짜미 사건'으로 바뀌어 흘러갔다. '선수들과 대한빙상연맹의 진실게임', '코치들과 선수들간의 진실게임', '선수와 선수들의 폭로전과 진실게임' 등등의 파장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파장들은 안현수의 의사와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빙상연맹의 선수 출전포기 외압 폭로와 그와 관련된 대표선발선수들의 짬짜미 파문'의 파장은 안현수를 향했다. 국가대표 선발전이 연기되었고, 기초 군사훈련 시기와 겹쳤던 안현수는 훈련 계획에 차질을 빚었다. 그리고 선발전 연기 결정이 안현수를 견제하기위해, 혹은 안기원씨가 폭로한 '빙상연맹의 선수외압'과 관련되어 보복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의혹들이 당시 제기되었다. #1 #2

2010년 당시 안기원씨의 폭로 및 공론화는 안현수의 의지와는 다른 것이 그의 아버지 인터뷰에서도 확인된다. 당시 안현수의 팬들도 안현수가 이로 인해 받을 불이익을 걱정했으며, 심지어는 당시 기자조차 이 점을 지적했다. #
기자> "이정수 건은 안기원씨가 제기했다. 안현수 선수가 또 불이익을 당하지 않겠느냐는 팬들의 염려도 있다. 솔직히 당사자도 아니고 왜 나섰나."
안기원> "빙상인들이 직접 나서야지 부모들이 이래서 될 문제는 아니다. 선수들은 공감하지만 불이익 생각해 나서기가 쉽지 않다. 현수도 불만이 있어도 그래서 잘 얘기 안한다. 현수도 왜 나서냐고 했다. 가만히 있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게 됐다. 누군가는 나서야 제대로 바로 잡히지 않겠느냐."
2010년 당시 다수 빙상인들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2010년 2월 올림픽에 나설 선수들을 10개월 전인 2009년 4월에 뽑은 이유가 석연치 않다" 실제 미국과 중국은 2009년 12월에 선발전을 치렀다. 한국이 지난해 4월에 서둘러, 그것도 단 한 차례 선발전으로 끝낸 것은 안현수(25)와 진선유(22)를 배제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빙상인들은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이 부상 중에 선발전을 치르는 바람에 둘은 태극마크를 다는 데 실패했다. 실업팀 진출을 두고 빙상연맹 핵심 인사가 희망하는 팀으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미운털이 박혔다는 수군거림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2010년 3월 1일 중앙일보 #
안현수(성남시청)와 이정수(단국대) 등 일부 선수들과 코치들은 선발전 연기를 철회해 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안현수가 내달 기초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한 달 동안 입영해야 하는 상황에서 9월로 대표선발전이 미뤄지면 훈련 시간과 컨디션 회복 시간이 부족해 최상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용인시청의 소속 선수가 발목을 다쳐 대표선발전에 제대로 나설 수 없는 상황에서 대표선발전 연기는 용인시청 선수들을 봐주려는 빙상연맹 수뇌부의 의도가 깔린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2010년 4월 11일 조선일보 #
2010년 4월 12일 경인일보 #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이번 사태에 대한 조사를 이유로 4월 23~24일로 예정된 2010~ 2011국가대표 선발전을 9월 이후로 미뤄 새로운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빙상연맹이 선발전을 미룬 조치는 짬짜미 의혹을 처음 제기한 안현수 선수(안현수 아버지)나 이정수 선수 등 특정 선수에 대한 보복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안현수의 팬들도 “9월 선발전은 다음 달 기초 군사훈련을 받는 안현수의 컨디션을 흐트러뜨려 대표팀에서 탈락시키려는 의도이다”라고 반발했다.
2010년 4월 14일 시사IN #
토리노올림픽 3관왕인 안현수는 파벌 수장의 뜻을 어겨 밴쿠버올림픽 출전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는 뒷말이 무성했습니다.
2010년 4월 23일 MBN #

5.4. 귀화

5.4.1. 귀화 과정

귀화 과정을 살펴보면, 2010년 12월에 성남시청 쇼트트랙팀이 해체된다. # 안현수는 소속팀도 없어지고, 새로운 팀을 구하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부상여파가 있다 하더라도 국내대회에서 꾸준히 메달을 따면서 상위권의 성적을 내고 있었는데, 팀을 구할수 없었다. 그는 2022년 3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자신을 둘러싼 시끄러운 이슈때문에 원하는 실업팀이 없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밝히었다.

안현수는 홀로 훈련을 하면서 2011년 2월 평창 동계체전 일반부에 경기도대표로 출전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를 획득 했다. #1 #2 2011년 4월 16일에는 국가대표 선발전을 겸한 종합선수권에 출전했다. # 국가대표 선발전 결과는 공동 4위였다. 하지만 동률인 경우에 우선시되는 3000m 슈퍼파이널에서 우승한 이정수에 밀려 5위가 되었으며, 선발되지 못하였다. # 이때 러시아에 안가고 한국에 머물렀으면 대표팀에 뽑혔을 것이다. 이정수가 2차 월드컵에서 부상당하면서 선발전 차순위자였던 안현수가 대체 선발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선발전이 열리기 전 4월 11일 발탁되어도 태극마크를 달지 않을 것이라고 러시아행 을 언론에 밝히고 뛰었다.[33] 그리고 러시아 진출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면서 2011년 6월 러시아로 출국 했다. # 이 당시만 해도 러시아에 간 건 1년 일정이었다고 대외적으로 발표했지만 러시아 측이 원한 건 처음부터 귀화였고 결국 안현수는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2011년 8월 17일부로 러시아 귀화 신청을 했다. #

러시아는 2009년부터 안현수에게 관심을 가지고 영입제안을 하고 있었다. 러시아에서 안현수에 '러브콜'을 보낸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었다. # 대표적으로 그들은 쇼트트랙에서 우월한 실력을 내고 있는 '한국 스케이트 장비 기법'과 '쇼트트랙 훈련 기술'을 원했다. # 또한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성장한 국력을 보여주려는 러시아는 그를 스카웃하려고 끊임없이 세계 최정상급 선수의 실력이 필요하다고 러브콜을 함과 동시에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고 #[34] 모스크바 시청에서는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 대가로 파격적인 보상이 주어졌다. 1억 8,000만원의 연봉과 통역사 등을 제공했다.[35] 이와 같은 보상 때문에 국내 언론과 일부 빙상계에서는 한국의 기술을 유출 한다는 비난을 하기도 했다. #[36] 2014년 올림픽 당시 올림픽 외신 기자들 또한 직접적으로 러시아가 올림픽을 위해 '안현수를 구매했냐', '미국과의 흥정이 있었냐'라는 식의 질문을 여과없이 러시아에게 던지기도 하였다. #1 #2 이런 질문들에 당시 러시아는 불쾌해하며 '그런것은 아니었다.'고 언급했다. # 실제로 러시아 귀화 전 또 다른 후보지는 미국이었다. 하지만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는 것보다 올림픽을 앞두었던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 쉬웠다.[37] # 이후 실적에 따라 러시아 빙상연맹과 러시아 연방 정부로부터 포상금과, 차량, 세차례 저택을 지급 받았다. #1 #2

2011년 12월 28일에 러시아 대통령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안현수에게 직접 러시아 국적을 부여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고 안현수는 러시아 이름을 소련 시절 명성을 떨친 고려인 출신의 록 가수 빅토르 초이의 이름을 따 빅토르 안으로 정했다. # 이후 미니 홈피에다가 '러시아 국적을 획득하면 우리나라 국적은 자동 소멸된다고 들었다. 이중국적이 가능할 줄 알았는데 신중하지 못했다' 고 한국 국적이 상실되는 걸 모르고 러시아 국적을 취득한 것처럼 적었다.

2011년부터 2023년까지 한국언론에서는 당시 그가 연금을 일시불로 신청 수령한 후에 러시아로 귀화한 것으로 기사를 보도했고, 이후 안현수가 이중국적이 안되는것을 알면서도 계획적으로 수령해서 귀화한 후 언론플레이를 했던것으로 논란이 되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2023년 1월 성남시청 빙상팀 코치직을 지원했을 때 빙상지도자 연맹에서는 성명서를 내어서 올림픽 메달 연금 일시불 수령으로 안현수의 '도덕성'을 지적하면서 비난했고, 성남시청 코치직에서 낙마했다. 하지만, 2023년 2월 7일 계속되는 비난과 이슈로 인해 12년만에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중국적 발언과 연금 수령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

그의 입장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011년 6월 러시아 빙상연맹 회장으로부터 귀화제안을 받았고, 러시아 팀에 있는 러시아-호주 이중국적자 타티야나 보로둘리나와 같은 이중국적이 가능한 줄 알아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해당되지 않는 것을 알게 된 이후 7월에 귀화 결정을 했다. 그리고 일시금으로 받았던 연금은 돌려드리는게 맞다 판단되어 <심장수술이 필요한 아이와 재활 및 치료가 필요한 운동선수 후배>에게 기부를 했다. 그의 입장문 이후 익명의 대한빙상연맹 관계자는 기부한 금액의 일부가 고 노진규 가족에게 전달되었다고 언론을 통해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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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의 안현수

5.4.2. 귀화 원인, 그리고 말들

2014년 이후로 안현수는 "파벌은 귀화의 직접적 원인이 아니다." "정말 좋아하는 쇼트트랙을 마음편히 하기위한 환경이 필요했다."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었고 러시아 귀화는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라고 인터뷰를 직접 여러번 하였다. 그리고 2011년 귀화직전 인터뷰에서도 안현수는 선수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이야기 한바있다.[38] 하지만 많은 언론들은 '빙상연맹과 전명규의 책임론' 을 강조했는데 특히 당시 안현수의 아버지가 공개적으로 전명규를 비난하였고, 빙상계의 몇몇 인사들은 전명규 혹은 대한빙상연맹을 지목하였다.
5.4.2.1. 안현수의 글과 인터뷰들
안현수는 2009년과 2010년 러시아와 일본, 미국 등 여러 다른 나라들에서 귀화와 영입제안이 들어와 있었다. 하지만 2010년 까지만 해도 그는 귀화를 할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한 언론에서 2010년 이에 대해 그에게 직접 물었는데 그는 인터뷰에서 국적변경을 해서 올림픽을 뛴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 하지만 이후 성남시청 빙상팀이 해체 수순을 밟게되고 안현수를 원하는 팀들이 없어서 혼자 훈련을 하게되면서 심경 변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확인할수 있다. 2011년 4월 러시아 행을 결정했던 출국직전의 인터뷰에서는 "내 가슴에 어느 나라 국기가 달리든 크게 상관 안 하겠다고." 말하였다.

2011년 8월 러시아 국적 신청을 한 이후 안현수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 " 좋아하고, 하고 싶어하는 운동을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마음 편히 집중해서 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됐다.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의 선택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각오하고 있었다...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쇼트트랙 선수가 되겠다."

2014년 2월 22일 올림픽 모든 쇼트트랙 경기를 끝마친 후, 기자회견에서는 파벌이 귀화의 직접적 원인은 아니라고 밝혔다. 러시아 귀화이후 안현수는 '귀화선택과 관련된 인터뷰'를 여러번 하였다. 이에 대해 안현수 본인의 입장들을 종합해보면 "성남시청 빙상팀 해체이후 훈련할 곳이 사라졌으며, 자신을 둘러싼 여러이슈들 때문에 마음 편히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다. 러시아는 그를 믿어줬고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기에 귀화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39]
"제가 훈련할 수 있는 공간들이나 환경적인 부분들이 힘들었습니다. 어떻게든 여기서 해보고 싶었으나 결정을 하고 나서는 미련을 버렸습니다." #
"한국 선수들과 불편할 게 없는데 자꾸 언론들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 같다." #
"짧게 말씀드리자면 제가 정말 좋아하는 운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다. 저를 위해서, 운동하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다. 예전에 어떤 일이 있었던 다 잊고 내가 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서 귀화를 했다. 이로 인해 (한국 빙상에 대해) 안 좋은 기사가 나는 걸 원치 않는다. 한국 후배들에게도 좋지 않다. 경기에만 집중해야 하는데 이런 일 때문에 후배들한테도 많이 미안하다. 앞으로 제가 직접 말하지 않는 이상 그런 기사들이 안 났으면 좋겠다. 경기에만 집중하고 싶다." #
"아버지가 너무 많은 인터뷰를 했다. 그런 부분에 대해 나와 의견충돌이 있었다. 내가 말하지 않은 게 자꾸 부풀려졌다. 아버지가 나를 너무 아끼는 마음으로 한 것 같다. 그러나 내가 피해를 보는 부분도 있었다."
"파벌은 있었지만 그게 내가 귀화를 결정한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다. 내가 분명히 말했듯이 제가 정말 좋아하는 운동을 하고 싶었고 나를 믿어주는 곳에서 마음 편히 운동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한국에서 나 때문에 시끄러워지는 거 나도 원치 않는다. 한국선수들과 부딪히는 기사가 나가는 것도 아쉽다."
"2008년 무릎을 다쳤고 그 부상 여파로 1년 동안 4번 수술을 받았다. 밴쿠버올림픽 선발전에 앞서 한 달 밖에 운동하지 못했다. 한국 룰에 맞춰 준비하는데 시간이 부족했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특혜를 누릴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2010년 12월 성남시청이 해체된 뒤 내가 부상을 당한 상태라서 나를 원하는 국내 팀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올림픽에 나가고 싶었고, 러시아행은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1 #2
"난 항상 쇼트트랙을 생각하며 내 앞길을 선택했다. 2011년 러시아 귀화 과정도 그랬고, 2020년 중국 대표팀 코치로 부임했을 때도 그랬다."
"당시 소속팀인 성남시청 빙상팀이 재정 문제로 해체됐고, 난 부상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당시 이런 나를 받아줄 팀은 없었다. 성적이 안 좋았고, 나를 둘러싼 시끄러운 이슈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때 러시아에서 좋은 제안을 했고, 진정성을 느껴 선택했다."
"난 국내에서 불공정한 대우를 받지 않았고, 대한빙상경기연맹과 불편한 관계도 아니었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파벌 논란으로 귀화를 선택한 것도 절대 아니다" #
5.4.2.2. 안현수의 아버지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씨는 공개적으로 전명규와 대한빙상연맹을 강도높게 비난하는 발언을 여러번 인터뷰 한 바있다. 아버지의 인터뷰를 종합 해보면 "전명규와 그로 인한 전횡과 불이익 때문이다."라고 발언을 하였다. 특히 그는 "성남시 빙상팀이 해체가 안되었어도 러시아 가기로 벌써 결정이 되어 있었다. 모든 것은 전명규 때문이었다." 이런식으로 2010년과 2014년에 기자들에게 밝혔다. # 그러나 안현수의 2010년 인터뷰와 그 이후의 인터뷰들에 따르면 성남시청 빙상팀 해체로 인해 훈련할수 있는 환경이 사라졌던 것선수생활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었던 것이 안현수 본인으로는 가장 큰 이유였음을 알수 있다.

2022년 2월 안현수의 귀화문제가 정치권의 정쟁이슈가 되면서 2022년 2월 9일 원희룡에의해 안기원씨의 2011년 라디오 인터뷰 부분이 언급되었다. 안기원씨는 당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부분이 있다. "2018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겠다는 우리나라에서 쇼트트랙 빙상부만은 없애지 않을 거란 생각을 했다."며 "그래서 성남시장님의 선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팀이 부활되지 못하고 없어졌고, 마음이 아프다." #

그리고 2022년 2월 안기원씨는 YTN 뉴스의 제작진과의 통화에서 "당시 팀 해체가 귀화 결정에 전혀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는 답변을 하였다. #
"현수가 성남시청에 입단하게 되면서 전명규 부회장과 거리가 멀어졌다. 전 부회장은 현수가 계속해서 자기 밑에 있길 바랬다. 하지만 성남시청이 현수를 강하게 원했고, 전 부회장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 대안없이 성남시청에 가지 말라고 하는 전 부회장이 답답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우린 전 부회장이 어떤 대안을 제시해주길 기다렸지만 끝내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성남시청에 입단하게 됐는데 전 부회장은 그때 현수에게 인연을 끝내자는 소리까지 했다."
"한체대파라는 이유로 가장 심하게 고생한 선수가 현수인데, 실업팀 입단 문제로 스승과 인연이 끝난 것이다." #
안기원> "옛날에 국가대표 선발전도 (안)현수가, 우리 아들이 다쳤을 때, 두 번 하던 걸 한 번으로 바꿔버리고. 대표코치 선발전 이런 내용들도 수시로 자기네들이 마음만 먹으면 다 바꿀 수 있다는 얘기죠."
김현정> "룰을 막 바꿔요?"
안기원> "네, 룰을 바꾸죠." #
"(안)현수가 성남시청 빙상단 입단을 결정했을 때 전 교수가 제게 엄포를 놓았던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한번 가 보세요. 어떻게 되나 봅시다'란 말이었다." "그런데 현수가 2008년 성남시청에 입단하자마자 큰 부상을 입었다. 부상을 회복한 뒤 한국 빙상계엔 더 이상 현수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한 2011년, 전명규 교수가 안현수에게 코치직을 제의했다. 하지만 선수 생활을 향한 안현수의 의지가 강했다." #
5.4.2.3. 안현수의 코치였던 황익환 감독
안현수와 성남시청 빙상팀에서 그를 지도했던 황익환 감독의 말의 따르면 귀화의 원인은 성남시청 팀 해체로 인한 실업자인 현실, 훈련을 할 곳이 없어서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그는 안현수가 "국가대표팀 시설의 문제로 부상을 당했음에도 대한빙상연맹이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직장운동부 1명이면 가난한 아이 3명을 도울 수 있다, 나는 인권변호사 출신이라 이런 데 돈 못 쓴다. 아무리 그 분이 운동을 모르시는 분이지만, 안현수 같은 선수를 잘라내서 뭘 얻자는 건지 모르겠습니다."..."안현수 같은 선수가 하루아침에 청년실업자가 된 거예요. 대회에서는 계속 성적을 내고, 해외에서는 계속 연락이 오는데…." "정 국내에서 더 이상 뛸 수 없다면 나를 불러주는 곳으로 가겠다는 거죠.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세요." #
"현수가 2008년 1월 성남시청 빙상팀에 입단한 뒤 보름 뒤 국가대표팀에서 훈련하다 부상 당했다". "그럼에도 빙상연맹이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있을 때 성남시가 현수의 병원치료비와 급여 등 재활을 지원했다". #
"운동선수가 운동을 하고 싶은데 운동을 할 수 없게 됐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안현수가 떠나기 전날 저와 같이 부둥켜 안고 울면서 한 말이 그거다. '가지 않을 수 있다면 가고 싶지 않다'는 거다." #
5.4.2.4. 빙상관계자들의 인터뷰들
장회장은 이날 빙상연맹의 한 고위 임원을 '원흉'으로 지적하며 “추종하는 세력은 잘못도 용서해주고, 눈 밖에 나면 출전 선수를 수시로 바꾸는 등 불이익을 준다”면서 “제왕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선수가 불이익을 당해도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강하게 성토했습니다. 장회장은 러시아로 귀화한 쇼트트랙 선수 안현수의 사례 등을 거론하며 이 임원이 전횡을 부렸다는 다른 의혹을 줄줄이 제기했습니다. #
이준호> "안현수와 연맹이 등을 돌렸던 가장 기본적인 것이 실업팀을 들어가면서부터일 거예요. 성남시청에 들어가게 되는데 연맹과 약간 집행부에 계시는 그 분 파벌이 아니었죠. 거기를 가길 원치 않으셨죠."
기자> 현재 빙상연맹 최고 실세로 꼽히는 인물과 안현수가 서로 등을 돌리게 됐다는 겁니다.
이준호> "한 분의 너무나 강한, 그 분의 천하가 돼버리니까 누구도 그 분의 눈 밖에 벗어나면은 큰일나죠." #
"안현수가 대표팀 훈련에서 큰 부상을 당했다. 성남시청에 입단한 지 16일 만의 일이었습니다. 재활에만 2년이 걸리는 큰 부상이었죠. 성남시청은 안현수가 부상 당한 뒤 실업팀 운영을 중단하게 됩니다. '빙상 대통령'으로 불리는 전명규 부회장에게 미운털이 박힌 안현수가 국내에서 뛸 곳을 찾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
2022년 2월 빙상 관계자들은 당시 빙상계의 파벌 논란 속에 부상과 팀 해체까지 겹친 상황에서 그의 귀화 원인을 어느 하나를 꼭 집어 찾기는 어렵다. 고 지적했다. YTN 의 보도에서 익명의 빙상연맹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국적을 옮긴다는 게 단 한 가지 이유로 옮길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당시에 제가 알기에는 현수한테 우호적이었던 팀들은 없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5.4.2.5. 업계 언론인들과 언론 보도
"그(안 코치)가 러시아로 가게 된 이유는 타의에 의해서다. 당시 성남시장에 취임한 이재명 전 시장이 팀을 해체했던 까닭이다." #
2014년과 2022년 2월 전 대한빙상경기연맹 관리위원이자 언론인인 성백유는 안현수의 러시아 귀화 원인으로 성남시청 팀의 해체 이후 어디도 갈수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지적했다. 2022년 2월에는 여야정쟁의 정치공방 당시 이재명 전 성남시장이 빙상팀을 해체했던 것을 강조하였고, 2014년 2월에는 "안현수는 성남시청 팀이 해체된 이후 실업팀 어디라도 갔어야 했다. 그런데 안현수를 데려간 팀이 없다. 이유는 안현수 아버지가 알것이다."라면서 안현수의 아버지에 대해서 언급을 한바가 있다. #

2010년 2월 인터뷰만 봐도 안현수는 국적을 바꿔서 올림픽을 뛴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곧 이어서 그의 아버지는 2010년 이정수 측의(이정수 부친)의 요청으로 세계선수권 출전 외압 관련을 공론화 했고, 이는 이후 벤쿠버 올림픽 짬짜미 논란으로 이어지면서 대한빙상연맹과 빙상계는 혼란과 큰 비난을 사회적으로 맞게된다. 그리고 국가대표 선발전이 연기되었고, 선발전의 방식이 바뀌었으며, 성남시청 팀이 해체된 이후 안현수를 원하는 팀이 없었다.

그리고 안현수의 2022년 3월 인터뷰를 본다면 "성남시청 빙상팀 해체가 원인중 하나이며, 팀의 해체 이후 자신을 둘러싼 여러 시끄러운 이슈들로 인해 소속팀이 없었고, 이때 러시아가 좋은 제안을 해왔다. 그들의 제안이 진심으로 느껴져서 귀화를 선택했다." 고 하고 있다. 즉 안현수가 말했던 '그를 둘러싼 시끄러운 이슈'들은 2010년 그의 아버지의 역할로 공론화가 된 선수의 세계선수권 출전권과 관련된 '대한빙상연맹의 외압 논란'들과 이것이 이후 벤쿠버 승부담합(짬짜미) 사건 논란으로 이어진 그 이후의 과정들과 크게 거리가 멀지 않다고 하겠다.

2018년 1월 스포츠서울에서는 '안현수의 러시아 귀화는 2010년 벤쿠버 승부담합과 이후 과정이 촉발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2010년 밴쿠버 대회를 거치면서 파국으로 치닫았다. 같은 파벌 선수끼리 밀어주는 '짬짜미 사건'이 알려져 해당 선수들이 1년 이상의 자격 정지 중징계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대표선발전 방식이 바뀌었고, 안현수의 러시아 귀화를 촉발했다. #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안현수가 당시 빙상계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선수로 인식되어 불이익을 받았을 수도 있다. 단, 이와 관련 해서는 이후 안현수도 한국 빙상계도 모두 계속 불이익과 관련된 언급은 일축했다. #1 #2

아래는 2014년과 2018년 언론에서 보도한 당시의 선발전 논란과 성남시청 팀 해체 등과 관련된 관련된 보도이다.
대다수 종목은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을 여러 차례 치르고 마지막 선발전의 배점을 가장 높게 매겨 평가한다. 쇼트트랙 역시 과거 올림픽 선발전을 두 차례 치렀다. 그러나 당시 대한빙상연맹은 올림픽을 10개월 앞둔 4월, 단 한 차례의 선발전만으로 출전 선수를 확정지었다. 안현수 선수가 부상에서 미처 회복되기 전이었다. 선발된 대표 선수들은 모두 비한체대 출신이거나 재학생이었다. #
사실 안현수가 러시아로 귀화를 결심하게 되는 과정에서 여러 일들이 있었다. 부상과 재활 문제도 있었고, 소속팀이던 성남시청이 해체되기도 했고,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르는 방식과 관련, 논란도 있었다. 이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을 안현수에게 구원의 손을 내민 곳이 러시아였던 셈이다. 문제는 러시아로 가는 과정에서 안현수 본인이 직접 한 말은 한 마디도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그의 거취에 관한 정보는 아버지 안기원 씨가 '독점공급' 하였다. #
5.4.2.6. 정치권의 언급
2018년 대한빙상연맹이 여러 논란에 휩싸이면서 안현수의 귀화와 관련된 문제도 재거론되었다. 이와 관련해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소속 안민석은 2018년 2월 CBS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다음과 같은 부분을 지적하였다.
"안현수와 전명규 부회장은 서로가 신뢰하는 그런 사제지간이고 지금도 관계가 좋아요. 최근에 안현수 선수가 한국에 와서 훈련을 했을 때 한체대 빙상장에서 했거든요. 한체대 빙상장에서 했다는 거는 전명규 감독 부회장의 허락이 있었다는 얘기거든요. 이 문제는 안현수 선수가 직접, 직접 이야기를 해야 되는 겁니다." #
이러한 지적에 안현수는 안민석에게 '전명규 때문에 귀화한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문자를 보낸다. 그리고 안민석은 이를 다시 언론에 공개하였다. # 또한 대한빙상연맹의 파벌문제에 대해서는 크게는 과거의 장명희 회장을 중심으로하는 빙상인들과 한체대의 전명규 교수를 중심으로 하는 빙상인들과의 세력이 나뉘어 졌다고 언급한다.

단 안민석의 발언에 대해 2018년 3월 성남빙상인인 권금중은 반박을 하였는데, 그것은 "안현수가 '빅토르 안'의 길을 택한 배경에 전명규 부회장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안현수가 성남시청에 입단한 지 16일 만에 대표팀 훈련에서 큰 부상을 당했고, 이후 성남시청 빙상팀까지 해체되면서 국내에서 선수생활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장명희와 전명규로 파벌이 나뉘어져 있다는 안민석의 발언 또한 프레임일 뿐이다."라며 반박하였다. #

2019년 2월 안현수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전명규와의 사이를 다시 언론에 밝힌다.
"저는 전 교수님과 사이가 나빴던 적이 없었어요. 2008년 한체대 대학원에도 입학해 한 한기 다녔고요.성남시청 소속이 된 것은 같은 해 1월1일부터였는데, 보름 만에 부상을 당했어요. 전 교수님이 병원도 알아봐주시고 재활이나 훈련 여건이 한체대에서 하는 게 나으면 그렇게 하라고도 말씀하셨어요."
"성남시청 소속일 때는 제 입장이 애매해 전교수님을 찾아뵙지 못했어요. 원래 친형제처럼 가까웠던 성남시청 손세원 감독님과 전 감독님 사이에 오해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러다가 2013년 3월 헝가리에서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렸을 때 교수님이 오셨고, 아내와 같이 인사 드렸어요. 이후 한국에 올 때마다 교수님을 찾아뵈었습니다." #

안현수의 귀화와 관련된 문제는 2022년 2월 대선정국 정치권에서 언급되면서 정쟁의 이슈가 되었다. 원희룡은 안현수가 귀화를 하게 된 게 이재명이 성남시청 빙상 팀을 해체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고, 민주당과 이재명 측에서는 이재명의 문제가 아니며, 올림픽을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고 하였다. 사실 이는 2014년에도 이재명 측의 문제로 거론된 부분이 있는데, 그때 이재명은 지자체 시장보다는 국가가 감독하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이 더 큰 책임이 있다고 하였다. #
5.4.2.7. 안현수의 부상과 빙상 스포츠의 현실
안현수의 귀화는 당시 빙상 스포츠의 상황과 어두운 면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었었다.

선수가 선수촌에서 훈련 도중 대표팀 훈련 시설의 부실 문제로 인해 부상을 당했음에도, 당시 빙상 연맹 측으로서는 그 어떤 지원도 없었다. 재기하고 싶어 하는 선수의 의지는 무시 되었고, 은퇴를 권유받았다. 선수가 부상을 입으면 또 다른 더 어린 선수를 바로 내세웠고 부상당한 선수는 소외되었다. 또한, 선수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빙상계 권력자들의 싸움에 선수들이 휘말렸고, 그 책임과 비난은 모두 선수들에게 향했다. 그리고 실업 팀의 해체 이후 길을 잃었다.'

2014년 한겨레 JTBC는 당시 국가기관이자 국가대표팀 훈련장의 선수를 보호해야할 펜스와 부상관리문제에 대해 안현수의 러시아 귀화문제와 함께 거론하였다.

* 2014년 2월 16일 한겨레
안현수는 2008년 1월 세계대회를 앞두고 태릉에서 훈련 중 미끄러지면서 펜스에 왼쪽 무릎을 부딪혀 슬개골이 골절됐다. 충격 흡수를 해야 하는 펜스는 물기를 머금고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얼어 충격을 완화해주기는커녕 심각한 부상을 입혔다. #
"부상만 해도 안현수 다치면 안되는 거에요. 미끄러질 수 있잖아요. 미끄러지는 걸 대비해서 펜스에 쿠션을 해야 하는데 그게 다 얼어 있었어요. 그럼 당연히 (무릎이) 나가죠" #

5.5. 러시아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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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지도자 시절

은퇴를 번복하다가 2020년 4월, 공식적인 은퇴를 선언했다. # 2018년 당시 은퇴를 하고 한국에 복귀했을 당시 국내에서 지도자 생활을 준비했지만 환경이 여의치 않았다. #1 #2

안현수는 한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할 생각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2018년 은퇴를 선언했을 때 안현수는 한국과 러시아 양측으로부터 코치직 제안을 받았고, 러시아의 제안을 거절하고 한국에 복귀해서 지도자 생활을 준비했다. 2018-2019년 한국체육대학교에서 플레잉코치를 하면서 지도자 수업에 들어갔다는 언론보도들이 있었다. #1 #2 하지만 당시의 빙상계의 여러 상황으로 인해 한국체대가 정부조사를 받게되었으며, #1 #2 안현수 본인 스스로도 선수 생활을 계속 하려는 의지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2019-20 시즌 선수로 러시아 팀에 복귀하면서 무산되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1 #2 그가 완전히 은퇴를 결심했을 때는 결정적으로 국가대표 지도자 응시자격 '지도자 경력' 조항에 해당이 안되었다. #

6.1. 2020-22 중국 국가대표팀 지도자

2019년, 2018년부터 안현수에게 지도자 제안을 해왔던 중국의 러브콜을 받아들였다. #1 #2 그리고 2020년 8월 중국행을 결정한다. # 러시아에서 감독 제의가 있었지만, 중국 코치를 받아 들였다고 한다. 안현수의 중국 코치 당시 연봉은 300만 위안(5억6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40]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코치로 활동 중에 안현수는 베이징 올림픽내내 언론에 이슈로 떠올랐다, 오성홍기 마스크를 쓴 채 중국 팀의 1위에 환호하는 사진이 찍히기도 했다.

단, 남자 1000m 경기에서 중국이 편파판정으로 금메달을 획득한 후 환호하는 사진이 보도되어 한국에서 많은 비난을 받았는데, 사실 이는 잘못된 보도였다. 당시 2가지의 보도사진들이 올라왔었다. 하나는 안현수와 외모가 비슷한 중국 여자 코치의 사진 이틀 전 혼성 계주에서의 사진이었다. 남자 1000m 경기 당시 안현수의 사진은 둘다 아니다. 남자 1000m 경기 당시 동영상을 보면, 김선태와 다른 중국 코치들은 환호하고 있지만, 안현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안현수는 경기가 끝난 후 sns을 통해 판정이슈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자신이 관여할 수 없는 영역 밖의 일이며, 자신에 대한 비판은 달게 받겠으나 가족을 향한 욕설과 악플을 삼가달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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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올림픽 당시 2000m 혼성계주 때의 안현수

올림픽 당시 한국과 중국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갈렸다. 중국은 2022년 올림픽 당시 안현수를 전설의 거성이라 하면서, 그의 삶은 소설보다 더 찬란하고 흥미진진하다고 찬사했다. # 또한, 우다징 과 안현수를 경쟁자에서 제자와 스승으로 다시 만났다면서 집중조명 하기도 하였다. #[41]
"안현수는 위대한 운동선수입니다. 두번째 안현수는 없습니다." - 2022년 2월 베이징 올림픽 당시 왕멍의 인터뷰 #
'타고난 재능이 정말 뛰어나다. 평소엔 상냥하지만, 진지함을 잊고 소극적으로 훈련하면 따끔하게 혼을 냈다. 부정적인 한국 여론에 압박감을 많이 느낄 땐 안타까웠다.' - (베이징올림픽 중국쇼트트랙 선수단)
'안현수 코치는 2년 동안 제자들과 무난한 관계 수준을 넘어 '좋은 친분' 을 쌓았다.'- (중국빙상연맹) #

그러나 한국의 미디어와 여론은 좋지 않았다. 안 그래도 중국의 한국 문화 예속화 시도와 갖은 중국의 도발 따른 반중 정서가 극히 심화된 상태인데다 안현수에게 코치직 제의를 한 사람이 왕멍이라 알려지고, 그 왕멍이 "한국은 안현수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 나는 그를 러시아에서 데려왔다." 라고 한국을 저격하면서 여론은 더욱 안 좋아졌다. # 특히 한국언론들은 그의 국가정체성에 대해서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1 #2 #3

혼성 계주에서 최종적으로 중국이 금메달을 따자 러시아 또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안현수가 원하면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고, 지도자 자리도 제안했는데 거절당했다.' '특정 국가에 얽매이지 않는 진정한 세계인'이라 평가하기까지 했다. # 하지만, 중국빙상연맹으로부터 '지금까지 대표팀 지도자 중 가장 유능하다'고 칭찬받았다. 라는 언급도 하면서 러시아 쇼트트랙에 다시 활력을 주려면 안현수가 필요하다고 분석하기도 했고, 2026년 밀라노 올림픽을 위해 다시금 지도자 영입을 제안할 거라는 의사를 밝혔다. #
"선수 시절 대표팀에 매우 확실하고 유익한 도움을 줬다. 그는 중국을 지도하고 있고, 우리가 그의 관심을 끌 수 없었다는 것은 유감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유인이며 의심할 여지 없이 그가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 2022년 2월 러시아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금메달 리스트이자 국회의원 스베틀라나 주로바 #1 #2

안현수는 베이징올림픽이 막바지에 이르러 계약 만료가 임박하자 중국빙상연맹에 재계약 의사가 없음을 통보했다. 그리고 당분간 가족들과 휴식을 취하면서 천천히 거취를 결정하겠다는 계획을 중국 매체를 통해 밝혔다. #1 #2 한국 입국 이후 3월 인터뷰에서 중국을 선택한 이유, 러시아를 선택한 이유, 대한빙상연맹과의 관계, 황대헌과의 관계[42] 도핑 논란 등에 대해 해명했고, 휴식을 취하면서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1 #2

이후 1년의 휴식기에 들어갔다.[43] 2022년 7월, 러시아 관영 통신 타스는 안현수가 러시아 빙상연맹 고문을 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2023년 러시아 빙상연맹 측에 따르면 러시아 측의 이 제안은 가족문제로 성사가 되지 않았다. #1 #2 2022년 11월 3일, 러시아 스케이팅 유니온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딴, 빅토르 안 컵 «Кубок Виктора Ана»[44] 참가 선수들에게 축전을 남겼다. 러시아의 주요 매체들은 뉴스와 기사로 보도했다. #

6.2. 2023 한국체육대학교 지도자

2022년 1월, 성남시 쇼트트랙 팀 코치에 지원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중국, 러시아 외 타 국가 대표팀에서도 장기 계약을 제안 받았지만 거절하고 성남시청 코치직에 지원한 것이라고 한다. # 중국 대표팀 코치 시절 여론과 이미지가 악화되었기 때문에 반응이 좋지 않았다. 특히 빙상지도자연맹이라는 단체는 그의 '도덕성'을 지적하며 성명서를 내었는데, 이중국적이 되는줄 알았다고 했으나 연금을 일시불로 수령하자 마자 귀화를 선택했다며, 귀화 과정 중에 거짓말을 하고 한국을 버린 것이라면서 비난했다. # 그들의 성명서 이후 이슈는 더 확산되었다. 1월 12일에 진행된 면접에 참석했으나 1월 29일 코치직에서 낙마했다. 그리고 1월 31일 성남시청은 후보자 중 누구도 채용하지 않았다. #1 #2

같이 코치직에 지원해 이슈가 되었던 김선태도 탈락했다. 둘이 탈락한지 얼마 안되어 최민정을 비롯한 성남시청 선수들이 코치 채용 과정 관련해서 인스타그램을 통해 선수들은 '역량있는 지도자를 원한다' 성명을 내며 논란이 커지기도 했다. # 이후 '안현수와 김선태의 반대 성명서'를 내면서 국내지도자 활동에 반대했던 빙상지도자연맹이 일부 언론들을 통해 당시 지원했었던 특정 후보자의 측근이며 특정 후보자의 징계이력이 있음에도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 알려진다. # 또한 빙상계에 파벌 권력싸움과 정치적 개입들도 코치선임에 개입되어 있었다는 지적들도 나왔다. #1 #2

한편 러시아는 성남시 코치 채용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1월 30일 러시아 빙상연맹 회장 니콜라이 굴랴예프는 러시아 관영 통신사 타스를 통해 "러시아에는 안현수가 필요하다."고 했고, #1 #2 러시아의 주요언론은 지도자로서 러시아로 복귀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

안현수는 2월 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빙상지도자연맹이 도덕적 문제로 지적한 '선수연금 일시금을 받고' 러시아 귀화 논란과 이후 '이중국적 발언'에 대해 러시아 귀화 이후 12년만에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혔다. 아래는 그의 입장문 중 일부이다.
2011년 6월 러시아 빙상연맹 회장으로부터 귀화제안을 받았고, 러시아 팀에 있는 러시아-호주 이중국적자 타티야나 보로둘리나와 같은 이중국적이 가능한 줄 알아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해당되지 않는 것을 알게 된 이후 7월에 귀화 결정을 했다. 그리고 일시금으로 받았던 연금은 돌려드리는게 맞다 판단되어 <심장수술이 필요한 아이와 재활 및 치료가 필요한 운동선수 후배>들에게 기부를 했다.'
그의 입장문 이후 익명의 대한빙상연맹 관계자는 기부한 금액의 일부는 고 노진규 가족에게 전달되었다고 언론을 통해 밝힌다. #

성남시청은 이후 빙상팀 코치 선발 추가 2차 지원공고를 하였으나 안현수는 재지원하지 않았다. # 안현수는 모교인 한국체육대학교에서 대한민국에서의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4월 13일자 언론 보도를 통해 2023-2024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에 후배 선수들의 코치자격으로 이름을 올렸다는 것이 알려졌다. #1 #2

2023년부터 안현수는 한국체육대학교에서 한체대 선수들 지도 및 해외전지훈련 외국선수들의 코치를 하고 있다. #1 #2

2024년 3월 한국체육대학교 입학식에 참여해서 신입생들에게 축사를 남겼다. 안현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항상 겸손하며 실패를 두려워 말고 도전하세요. 그리고 꿈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1 #2

7. 관련 어록

"존경의 대상이면서 가끔은 화가 나기도 한다. 김동성이 없으니 안현수… 거기다 안현수는 김동성보다 더 강하고 꾸준하다. 나에겐 재앙이면서도 축복이다. 그로 인해 수많은 골드를 놓쳤지만 또 그와 같은 시대에 경기하고 있다는 것 말이다."
- 프랑수아루이 트랑블레
"그는 마치 제트기 같다. 그가 바깥쪽으로 날 추월할 때면 머리가 하얘진다. 항상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그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그의 스케이팅에서는 아름다운 오로라가 나오는 것 같다."[45]
"기술과 스케이팅적인 부분에서 봤을때 안현수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쇼트트랙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아직 데뷔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 한번은 페이스가 느린 3000m 경기에서 그를 관찰하기 위해 그의 뒤에서 스케이팅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생각했습니다. '정말 엄청난 재능을 타고 났다. 만약 내 약점을 모두 파악하게 된다면 이 선수를 레이스에서 이기는건 정말 어렵겠군.' 이라고 말이죠."
"만약 쇼트트랙을 위해 태어난 운동선수가 있다면 안현수일 것이다. 안현수가 뛰는 자세를 보면 골반이 약간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온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스케이터로서 완벽한 자세다. 안현수는 엄청난 기술과 경험을 겸비했다."
"전설적인 안현수, 그는 2006년 최고였고, 2014년에 무적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날은 우리의 날이었다고 합시다. "
- 아폴로 안톤 오노
"특히 1500m에서는 그는 앞에서 뒷짐을 지고 타고 있는데 나를 비롯한 다른 선수들은 양손을 흔들어도 격차가 점점 벌어진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몰랐었지만 이젠 그를 따라잡는 걸 체념했다. 선배인 마르크가 안현수가 어떠냐고 묻길래 그에게 복귀할 생각은 절대 하지 말라고 말했다."
- 에릭 베다르
"2002년 월드컵에서 (이탈리아가 한국에) 패했을 때 난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강할 리가 없다고 단언했었다. 그러나 안현수를 보고 난 후엔 그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보고 있으면 편하지가 않다. 무언가 말하기 어려운 감정이 생긴다. 굳이 말하자면 아마 존경심일 것이다."
- 니콜라 로디가리
"가장 존경하는 선수는 안현수 선수다. 최고의 위치에 있을 때도 굉장히 열심히 했고 그런 걸 보면서 '최고는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구나' 라는 걸 생각하게 됐다."
- 성시백
"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아쉬웠던 건 안현수 같은 해결사가 없었다는 것이다."
"안현수는 쇼트트랙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전 속력 아웃코스로 달리다 밖으로 흐르지 않고 안으로 탈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선수이다."
"꼭 현수가 나가면 앞에 있는 선수들이 알아서 비켜주는 것 같다는 얘기를 하죠. 레벨 자체가 아예 한두 수 이상 차이가 나는 것 같은데, 이런 모습들이 흉내 낼 수 있는 것들도 아니고 어떤 안정감이 있고 자기 자신을 믿어야겠죠. 한마디로 얘기하면 결승에서 타는 모습을 보면 그 경기의 지배자입니다."
- 이준호
"현수는 누가 가르쳤다고 주장하기도 뭐할 만큼 천재적인 선수다. 지도자 생활을 하다보니 선수 무릎 구조나 무릎 각, 발목 각 등 뼈대를 많이 보게 되는데 현수는 그런 면에서도 쇼트트랙에 타고 났다"
- 모지수
"안현수는 쇼트트랙을 위해 타고난 선수. 타고난 천재인데 노력도 남들보다 배로 한다."
- 손세원 (前 성남시청 쇼트트랙 감독)
저는 2002년부터 안현수를 알고 있었고 어떤 코치에게 물어봐도 저와 같은 모든 사람들이 그에 대해 가장 높은 평가를 내릴 것입니다. 그가 러시아 팀과 보낸 첫 달에 이미 우리는 큰 진전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그들은 그의 기술, 그의 태도를 모방하려고합니다.
나는 안현수를 러시아 팀의 진정한 "롤 모델"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 장권옥
"안현수의 천부적인 재능 뒤에 성실함이 자리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1년 6개월을 보내며 현수에 대해 나쁜 말, 싫은 소리하는 선수들을 본 적이 없다. "모두가 현수를 좋아하고 존경하면서 같은 선수임에도 현수에게 사인을 받고 사진 찍기를 청한다. 만약 현수가 불평 불만을 늘어놓고, 잘난 척 하면서 불성실하게 생활했다면 그들도 현수를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의 말 하기 좋아 하는 사람들은 러시아가 안현수의 기술만 빼먹고 버릴 거라는 얘기를 하더라. 물론 현수의 기술을 알려준 부분이 있지만, 그 기술들이 특별히 비밀스런, 현수만 하는 기술이 아니다. 현수가 하기 때문에 특별하게 보일 뿐이다."
- 황익환 (前 성남시청 쇼트트랙 감독)
"안현수는 지금까지 내가 본 선수 중 가장 아름다운 스케이팅 을 구사하는 스타다. ."
- 채지훈
"안현수를 보는 순간 그만 입이 딱 벌어졌다. 그의 스케이팅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을 만큼 테크닉이 뛰어나다 ."
"안현수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이다."
"군더더기 없는 스케이팅 기술을 가졌다. 역대 최고."
- 전이경
"내가 점찍은 선수들 중 가장 오래 선수 생활을 할 사람은 안현수이다."
"큰 대회에 나가도 오히려 나를 안심시킬 정도로 흔들리지 않는 선수가 안현수 이다."
- 전명규
"현수는 테크닉이 있고 화려하다. 하지만 체력이 월등한 것은 아니고, 인코스와 아웃코스로 모두 추월이 가능한 스케이팅을 한다. 그런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며 "현수는 스케이팅은 물론 축구 등 다른 운동도 잘 한다. 그런 운동 신경도 기술과 많은 연관을 맺었을 것."
- 박세우 (전북도청 감독)
"현수는 경기 운영 능력과 순간 스퍼트가 뛰어나다"
"나나 현수나 힘으로 하는 게 아니고 테크닉 쪽으로 스케이팅을 했다 작전이나 순간적인 공간 지각이 유연했다. 적재적소 원하는 위치에 가 있었고, 힘보다는 기술이나 작전 쪽으로 생각을 많이 했다. 운동도 그렇게 했던 것 같다"
"안현수의 기량은 정말 뛰어났다. 하나를 가르치면 정말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안현수만 특별히 더 가르친 건 아니다. 대표팀에서 모든 선수를 똑같이 지도했는데 안현수가 더 자주 나를 찾아와 많은 얘기를 나눴고 다독여줬다."
- 김기훈
"세계에서 제2의 안현수는 없다. 이 아이스링크에는 많은 전설이 있을 수 있지만, 쇼트트랙을 이끌고 쇼트트랙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안현수의 시대였다."
- 왕멍
"안현수는 쇼트트랙의 달인이다. 경기중 트랙을 지배하는데 능숙하다. 그는 항상 최고의 순간을 포착하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을 추월할 수 있다."
- 우다징
"쇼트트랙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 안카이
"개인적으로 쇼트트랙에서 이런 선수는 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 그는 독특한 근육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인간의 언어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안은 쇼트트랙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멀리서 보면 날아가는 것 같다."
"저는 그가 쇼트트랙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평생 빅토르 안에게 감사할 것이다. 올바르게 훈련하고, 문제에 접근하고, 추론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등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 루슬란 자하로프
"빅토르 안은 나의 멘토이자 스타다. 그는 우리의 리더임이 분명하다."
"빅토르 안은 세계 쇼트트랙 역사에 자리 잡았습니다. 이에 대해 아무도 논쟁하지 않을 것입니다."
- 세묜 옐리스트라토프
"엄청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각 전술을 미묘하게 계산합니다. 전술을 결정할 때 그와 세계에서 대등한 사람은 없습니다."
"빅토르 안은 은퇴를 선언할 때까지 훈련 계획과 주행 전술 수립 등 선수단 내부에서 황제 같은 절대적인 존재였다."
- 블라디미르 그리고리에프
"그는 한 사람이지만 모든 사람을 정상으로 끌어들입니다." "선수들은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싶어하며, 논쟁의 여지가 없는 최고의 쇼트트랙 테크니션입니다."
- 세바스티앵 크로 (Sebastien Cros, 2014 올림픽 러시아 쇼트트랙 감독, 2022 올림픽 캐나다 쇼트트랙 감독)
"그가 경기를 할 때 항상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을 보면서 너무 신기했어요. 스케이팅 선수로서 완벽 그 자체였죠. 훌륭한 기술과 기교를 갖췄지만 동시에 폭발적이었고 거의 자유자재로 추월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선행과 후행에도 모두 뛰어났습니다. 토리노 올림픽 당시 나는 겨우 여덟, 아홉 살이었지만 아직도 5000m 계주 결승전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한국팀은 마지막 바퀴까지 2위였는데, 갑자기 안현수가 격차를 줄이고 순식간에 캐나다를 제치고 자신의 3관왕을 달성했습니다."
- 토머스 홍
"그 토리노 계주 결승전은 정말 환상적이었어요. 안현수는 마지막 두 바퀴에서 캐나다 선수를 바깥쪽으로 추월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뒤쳐진 중국 선수까지 피해갔어야 했는데 그 공간의 간격이 굉장히 작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내가 본 추월 중 최고의 추월이었습니다."
- 처버 부리안
" 2006년 토리노 계주의 마지막 주자,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보았었다."
- 마르크 타위터르트
"현수형은 여러 논란과 일들을 겪고도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현수 형을 보고 많은 힘을 얻는다. "
- 이정수
" 노진규 선수와 안현수 선수를 존경한다. 그들은 훌륭한 테크닉과, 강한 신체적 조건, 빠른 스피드를 가지고 있으며 경기를 어떻게 다룰지 아는 선수들이다 "
- 황대헌
" 함께 훈련할 때 현수형이 형이 토리노 때 했던 것처럼 너도 충분히 잘할 수 있어. 하던 대로만 하면 된다고 용기를 많이 주었다. 토리노 올림픽 때 현수형의 경기를 보면서 올림픽 금메달을 향한 꿈을 키웠다."
- 임효준
"안현수 코치가 와서 우리 대표팀에 여러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 특히 정신적으로 자신감이 확실히 생겼다."
- 장위팅
"안현수 코치와 김선태 감독의 지도 덕에 과거에 비해서 자세가 좋아지고 근육 단련 등의 효과가 생겼다. 안현수 코치는 나에게 자신감을 가지라고 했다. 그는 나에게 목표를 잃으면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 자신감을 심어주기도 했다"
- 런쯔웨이
"빅토르 안은 실제로 ' 선수 겸 코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선수들에게 전하고 자신의 전술을 그들과 공유했습니다. 우리 쇼트트랙 역사에 큰 흔적을 남겼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를 쇼트트랙의 신이라 기억한다. 그는 러시아에서 쇼트트랙이란 스포츠의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 스베틀라나 주로바
" 그는 언제나 스포츠의 영웅이자 아이돌이었다. 그로부터 축하한다와 잘했다는 말을 들은 것을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46]
- 아리안나 폰타나
" 많은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억해야할 단 하나 GOAT."
- 폴 마케이지[47]

8. 루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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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수가 러시아 귀화를 선택한 원인 중 하나로 꾸준히 거론되었던 것은 대한빙상경기연맹과의 관계와 파벌논란이었다. 여기에서는 첫째, 대한빙상경기연맹에 의해 안현수가 배제 혹은 불이익을 받았다는 2010년부터 러시아 귀화 이후 계속 제기되었던 논란들과 이에 대한 언론보도들을 정리한다. 둘째, 꾸준히 언급되었던 쇼트트랙에서의 타임레이스 선발 방식 논란을 확인한다. 셋째, 이러한 논란들에 대한 안현수 본인의 공식 입장을 확인한다. 넷째, 대한빙상경기연맹 측의 입장과 안현수를 배제하려고 했었다는 세간의 말들을 루머라고 생각하는 시각의 견해들을 정리한다.

9. 논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었던 선수 생활 막바지에는 러시아 도핑 스캔들에 연루된다. 안현수는 공식적으로 도핑과 공개적으로 연결된 점은 밝혀진 바가 없다. 하지만 평창 올림픽 당시 출전 불허 처분을 받았다. # 이후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는 문제 없이 중국 국가대표 테크니컬 코치로 참가했다. 그가 중국 코치직을 제의 받은 것은 2018년이었다. 또한 한국과 러시아의 언론 뿐만 아니라 관련 업계 외신들을 통해 2018년 안현수가 한국과 러시아에서 국가대표 지도자 제안을 받았고 논의가 있었음을 확인 할수 있다. # 이는 그가 당시 올림픽에 출전이 허락되지 않은 것 외에는 공식적으로는 선수와 코치직 활동에 문제가 없었음을 확인할수 있는 부분이다.

2016년 러시아 선수단의 도핑 이슈가 시작되었을 때 안현수는 이탈리아와 러시아 언론이 공개한 명단에 없었고, 이때 안현수는 국제빙상경기연맹 ISU에 자신이 맥라렌 보고서에 없다는 것을 답변 받았었다. # 2017년 12월 데니스 오스왈드 위원회가 샘플 재분석이후 확인하고 IOC가 선수 개개인에 대한 소송을 진행한 43명에도 없다. 2018년 1월 당시 한국의 한 언론은 익명을 요구한 국제전문가를 통해 안현수는 '의심되는 대상'으로 명단에 올라간것이며, 애초 맥라렌 보고서에 이름이 없다가 올림픽을 앞둔 직전에 추가되었다며 단정할수 없다고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맥라렌 보고서는 금지약물 복용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어도, 고발, 증언 등 정황 증거만 있는 선수도 이름이 올라가 있다. 억울한 개인이 발생할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으나, 러시아는 특수한 상황 이었고, IOC와 CAS는 보고서에 거론된 선수들을 전원 올림픽 출전을 불허했다. # 2018년 9월 은퇴했을 당시 AP통신은 다음과 같이 보도한 부분이 있다. 러시아의 특수 상황으로 안현수가 반드시 클린한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출전이 허락되지 않았다. # 하지만 안현수는 IOC와 IOC 산하 스포츠 연맹에 공식적으로 기소되거나 징계를 받지 않았다.[48]

2018년 당시 안현수는 IOC 위원장인 토마스 바흐에게 자신의 올림픽 출전 제외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를 공개해달라고 공개 서한을 썼다. # 그러나 안현수의 출전불허를 결정한 IOC는 이유를 공개하지 않았다. # 2018년 추측성 확장 보도들[49]이 쏟아졌는데, 안현수는 도핑과 공개적으로 연결된 점은 밝혀진바가 없으며, 당시의 출전불허이유는 공개되지 않았고, 이후에도 밝혀진바 없다.[50] 2018년과 이후에 한국 언론들에선 보도하지 않은 부분인데, 2020년 올림픽 기사를 다루는 NBC 스포츠 Greatest라 언급한 안현수의 은퇴기사에서 2018년 1월 러시아 선수단에 대한 참가명단을 결정한 IOC의 입장을 재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명시했다. #

2018년 당시 IOC 의장 발레리 푸르네롱은 "참여 가능 명단에 없다고 해서 반드시 그 선수가 도핑을 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처분이 그들이 자동으로 의심돼서는 안된다."라고 밝힌바있다. 또한 참가가 허락되지 않은 선수들에 대한 추가 조사가 있을 것임을 언급했다.[51]

2018년 올림픽당시 IOC 위원장인 토마스 바흐는 안현수의 출전금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선수 개개인에 대한 데이터와 여러 방법으로 조사한 자료를 검토해 내린 결정이다."라고 답변했다. # 이후 IOC와 WADA는 러시아 선수단의 모스크바 연구소 데이터 LIMS 포렌식 조사를 2019년 1월부터 시작했는데, #1 #2 2024년까지 5년동안 WADA가 조사한 모스크바 연구소 데이터 조사에서 무려 250명이 넘는 러시아인들이 확인되었고 선수들의 자격정지 처분 및 입상 기록 무효화가 이루어졌다. #1 #2 이 조사로 2012년과 2014년의 올림픽 메달리스트들도 추가로 적발되어 징계를 받았으나 # 안현수에 대한 것은 그 어떤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2021년 11월 러시아 관영 매체 타스에 따르면 WADA는 러시아 인 올림픽 지원자 목록을(선수와 코치 모두 포함된다.) LIMS 데이터 포렌식 조사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참석여부를 결정시켰다. #[52]

이후 안현수에 대한 추가적인 공식 징계가 일어나지 않았던 점, 그리고 선수 복귀를 결정했을 당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출전을 준비한다는 것이 한국과 러시아의 언론들과 외신들을 통해 공개가 되었던 점, 2022년 올림픽 당시 러시아가 '안현수가 원했으면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다.'면서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던 것, 중국 국가대표 팀 코치로 문제 없이 올림픽에 참가가 가능했던 것으로 볼때 추가 조사가 끝난이후 그에 대한 처분은 2018년 평창올림픽 출전불발로 끝난 것으로 보인다. #1 #2
안현수는 2018년 구체적인 이유를 알려달라고 했던 IOC에 보낸 공개서한 이후에도 인터뷰들로 이와관련된 자신의 입장을 발언한 바있다.

2019년 2월 경향신문과 11월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IOC가 러시아 선수들에게만 적용한 규정 항목이 까다로왔다는데 내가 어떤 이유로 출전을 못했는지 모른다. IOC는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다. " "실제로 미리 제소되어서 따로 징계를 받은 선수들이 있었는데 난 거기에 포함도 안 됐는데 평창 대회 직전 출전 불가가 결정됐다." #1 #2

그리고 2022년 3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내게 도핑 문제가 있다면, 그동안의 쌓아온 국제대회 입상 기록이 모두 무효화되었을 것이다."라며 단정지어 말했다. #

10. 수훈과 명예 대사

11. 방송 활동


파일:Ahn2.jpg
진짜사나이 300에서의 안현수

12. 광고와 화보

13. 그 외 활동

14. 여담


[1] 러시아로 귀화한 후 개명했으므로 한국명은 소멸되었기에 법적인 이름은 아니다. 다만 ISU 웹사이트 뿐만 아니라 관련 업계의 선수 바이오에 한국 Ahn Hyun-soo와 러시아 명 Victor An 혹은 Viktor An을 같이 사용하고, 한국과 러시아 선수 명단에 같이 등재되어 있다. [2] 국제빙상경기연맹 바이오에 등록되어 있는 선수명은 Victor An 이다. 하지만, 올림픽 IOC 웹사이트나 관련 업계에서는 Viktor An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외신들은 Viktor Ahn 혹은 Victor Ahn으로 기사를 내고 있으며, ISU 기사에서는 Victor An, Viktor An, Viktor Ahn 모두 사용한다. 베이징 올림픽 당시 중국 언론들은 안현수를 안셴주(An Xianzhu)라 불렀는데, 이는 안현수의 중국어 발음이다. 중국 미디어들은 한국 국적일 때도 러시아 국적일 때도 안현수의 중국어 발음인 안셴주(安贤洙)라고 불렀다. [3] 진짜 사나이 300 1화에서 신체검사를 했다. 현역 기준 한국 시절에는 60kg대 초반, 러시아 시절에는 60kg대 중반을 유지했다. [4] 한국 선수 시절에는 1000m와 1500m가 주 종목이었지만 러시아 선수 시절에는 나이와 체력적인 부담을 이유로 1,500m보다는 스타트와 순발력 훈련에 초점을 맞춰 500m와 1,000m로 주종목을 변경했다. [5] 여동생 안현숙은 동복 동생이고, 2명의 남동생은 이복동생이다. [6] 2022년 SNS에서 자신은 대한민국 국적이며, 러시아로 귀화했다가 다시 대한민국으로 국적회복을 했다는 루머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2014년 러시아에서 그동안 비자를 받아 거주했으며 러시아 영주권도 아직 없다고 언급했다. 2015년 MBC 휴먼 다큐에서 남편을 따라 귀화했다고 발언했다는 언론 오보도 있었지만, 역시 해당 다큐에서 그런 발언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러시아 언론도 У На Ри(우나리) 또는 Ю На Ри(유나리, U라는 글자만 보고 '유'로 오기한 것으로 추측)라는 한국 이름을 그대로 쓴다. 참고로 화가 우나리(본명 이은나)는 다른 사람이다. [7] 어머니의 인스타그램 스토리 Q&A에 따르면 대한민국 러시아 이중국적이다. 만 22세 전까지 하나의 국적을 선택하거나, 또는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을 하고 복수국적을 유지할 수 있다. [8] 2011-12 시즌은 계주 멤버로만 출전했고 2015-16 시즌은 부인의 출산과 무릎 통증을 이유로 스킵했다. 2017-18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했으나 2019-20 시즌에 은퇴를 번복하고 선수로 복귀했다. [9]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2014 소치 동계올림픽 각각에서 3개의 금메달과 1개의 동메달을 땄다. 이 기록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쉬자너 스휠팅이 여자 선수 최초로 달성하게 된다. [10] 2003년부터 2007년까지 5연패를 달성했다. 최다 연승 기록은 중국 양양(A)(6연패)가 가지고 있다. [11] 체력 소모가 심한 아웃코스 추월은 비교적 여유롭게 진행되는 중장거리 종목의 초반이 아니면 거의 시도를 하지 않는 편이고 철저하게 인코스의 타이밍을 포착하여 특유의 스케이팅 기술로 부딪침 없이 깔끔하게 추월하는데 집중하는 편이었다. [12] 스케이트 날로 빙판을 치는 스트로크 회수가 늘어날수록 속도가 더 많이 붙는다. 최민정의 아웃코스 추월과 안현수의 인코스 추월 기술이 뛰어난 이유는 다른 선수들보다 코너에서 스트로크를 더 많이 치기 때문이다. [13] 계주 주자 중 한명이었던 이호석이 넘어지고도 우승한 경기로 유명한 2007-08 시즌 3차 월드컵 계주 영상을 보면 마지막에 안현수가 이 기술을 사용한다. 또한 2008-09 시즌 영상을 보면 이호석과 곽윤기가 이 기술을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4] 특히나 6번째 세계선수권을 우승했던 2014년에는, 샤를 아믈랭이 기량에서 우위라고 평가받던 시즌이었고, 3000m 슈퍼파이널에서도 체력적으로도 더 강한 모습을 보이던 아믈랭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예상되었지만, 안현수가 스퍼트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잡았음은 물론, 아믈랭의 추월기술이 약함을 잘 파악하고 인코스 방어에 집중하여 결국 승리하기까지 했다. [15] 그가 넘어진 경기 중 가장 임팩트 있었던 것은 2002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1000m 결승이며, 이건 희대의 반칙왕들인 아폴로 안톤 오노 리자쥔의 깽판에 말려든 게 원인이었다. [16] 이는 2010년대 중반에 등장한 최민정이 500m를 타는 방식과 굉장히 흡사하며, 곽윤기 또한 500m에서 이런식으로 꾸역승을 쏠쏠하게 챙긴 전적이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상향평준화가 이뤄지면서 500m 경기에서 스타트의 중요성이 점점 커졌기 때문에 남자부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여자부의 최민정처럼 꾸준하게 성적을 낸다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그 최민정조차 2020년대에 들어서는 부상 여파가 있다지만 단거리에서의 활약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걸 생각하면 단거리에서 스타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체감할 수 있다. [17] 재밌게도 스타트를 비롯한 초반 능력치가 좋아졌다는 평가를 들은 러시아 시절에도 정작 금메달을 따낸 올림픽 결승전에서는 4위로 스타트 해서 후반에 뒤집는 한국 시절의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18] 안현수가 기량이 떨어지기 시작한 이후에도 500m에선 월드컵과 유럽선수권에서 동메달과 은메달을 획득한것으로 볼때 단거리 위주로 훈련했던 것이 보인다. [19] 2024년 부터 shorttrack.swisstiming.com 으로 변경 [20] 이전에는 본인, 아폴로 안톤 오노, 아리안나 폰타나가 역대 공동 최다 메달리스트였으나, 아리안나 폰타나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기록을 갱신하며 단독으로 역대 최다 메달리스트로 떠올랐다. 남자부 한정으로는 아직까지 오노와 더불어 올림픽 최다 메달(8개) 보유자다. [21] 남자부에서는 최다 연속 우승 기록이자 남녀부 통틀어 역대 2위이며, 1위는 6연패를 달성한 양양(A)다. [22] 안현수/대한민국 선수 시절 제임스 휴이시 : 안현수가 속도를 받기 위해 트랙을 크게 탈 때 이호석이 인으로 파고 들어 안현수가 계속 아웃으로 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졌다. 마지막 코너를 크게돌며 중국 선수와 이호석의 안쪽으로 파고들어 2위로 통과하였다. 하지만 같이 결승을 뛰던 이호석이 마지막 코너를 돌던 중 블럭을 건드렸다. 이 블럭이 바깥으로 밀려났는데, 당시 주심이었던 제임스 휴이시는 안현수가 블록 안으로 지나간 것으로 판단해 안현수에게 실격을 주었다. 이로 인해 500m에서 쌓았던 포인트를 모조리 잃었다. 4위로 골인한 이호석에게는 동메달이 주어졌다. [23] 1. 안현수/대한민국 선수 시절 : 3000m 경기 막판에 안현수가 앞에 있던 이호석과 충돌하였고 이호석이 중심을 잃으면서 엉덩방아를 찧게 된다. 안현수가 마지막 코너를 돌기 전 직선 구간에서 안쪽으로 코스를 바꿔 인코스로 추월을 시도하려 했지만 이를 잘 주시하고 있던 이호석이 때에 맞춰 살짝 안쪽으로 움직여 인코스를 틀어막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속도가 많이 붙었던 안현수가 이호석이 안쪽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주춤하지만 결국 충돌했다. 2. 대한빙상경기연맹 진상조사위원회 비디오 판독 결과 : 안현수의 스케이트 앞날이 빙판에 걸리면서 이호석과 부딪혔고, 오세종 역시 캐나다 선수의 반칙으로 밀리면서 안현수와 충돌했다". 당시 3000m 충돌에 대한 비디오 판독결과는 대한빙상경기연맹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 채환국 동국대 체육교육과 교수가 발표하였다. [24] 2007-08 시즌, 부상으로 시즌 아웃하면서 3회 월드컵 우승기록에는 실패한다. [25] 아폴로 안톤 오노 박지원과 동률의 기록. [26] 랭킹 표기 : 20위까지 표기 (전체 랭킹기록 38개중에 85%인 32개까지 표기), 선수들의 월드컵 랭킹 표기는 20위까지와 ISU 바이오 80% 표기를 기준으로 한다. [27] ISU 웹사이트 누락사항 : ISU 랭킹 통계 페이지 월드컵 랭킹 종합 2위 2회 누락, ISU 월드컵 메달 통계 페이지 금메달 3개 누락, 월드컵 계주 금메달 2개가 누락된 이유는 ISU가 당시 국가명들만 표기해놓고, 참가한 선수들 이름을 누락시켰기 때문이다. ISU 통계는 유럽 선수권 메달도 누락되어 있는데, 이는 ISU가 2013년 유럽 선수권 결과를 ISU 바이오의 선수명인 Victor AN이 아닌 Viktor Ahn으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선수 바이오에는 확인되는데 통계는 누락되어 있다. 이때문에 올림픽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olympedia에는 유럽 선수권 메달집계가 누락되어 있다. [28] 2006-07 시즌부터 캐나다 선수들이 단거리 트렌드를 주도하며 스타트가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안현수의 500m에서의 영향력이 적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2007 세계선수권에서 500m 동메달을 따낸 것을 보면 큰 대회에서 보여주는 집중력이 엄청났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 밖에도 2005 세계선수권에서도 동메달을 획득했고, 2006 세계선수권에서는 제임스 휴이시의 어이없는 판정이 아니었다면 500m 은메달을 따냈을 것이다. [29] 세계선수권 성적만 언급해보자면 2003년부터 2006년까지 1500m를 총 4번이나 연속 우승했으며, 한 종목을 4연패 한 기록은 남자부에서는 최다 기록이다. 여자부는 양양(A)가 1000m 종목에서 6연패를 해낸 기록이 존재한다. [30] 단, 솔트레이크시티는 세계 최고의 빙질로 유명한 만큼 최고 기록이 정말 잘나오는 곳이다. 하지만 빙질이 너무 좋아서 오히려 잘 넘어지는 경우도 많으며, 이 때문에 솔트레이크시티를 좋아하지 않는 선수들도 많다. [31] 2018년 2월 대한빙상연맹은 러시아 관영 매체 이즈베스티야와의 인터뷰에서 "안현수는 우리선수들에게 조언을 해주고, 그는 여전히 우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비공식적으로는 이미 협력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아직 공식 협상까지는 가지 않았다. 결정은 안현수에게 달려있다." 고 말한 바 있다. 이후 안현수가 선수생활을 지속하려 했던 점, 은퇴를 결정한 2019/2020 시기에는 지도자경력이 없어 국가대표 지도자 지원 자격이 되지 않았던 점, 그리고 당시 2018-2019년의 빙상계의 혼란한 상황으로 인해 흐지부지 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32] 당시의 선수들은 2004년 여자대표팀 구타사건 폭행 피해선수였던 최은경과 2005년 동계유니버시아드에서 안현수와 함께 폭행을 당했던 성시백 등의 부모들이었다. 윤재명 감독은 2004년 여자 쇼트트랙 구타 사건때 남자 대표팀 감독으로 당시 최광복, 김소희 코치의 폭행이 가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이것을 방조한 부분이 있었으며, 성시백 아버지는 2005년 기사 타이틀에 나오지 않지만, 기사 영상에서 확인된다. [33] 결국 선발전에서 안현수 다음으로 6위를 한 서이라가 대신 뽑혔다. [34] 안현수만을 위한 전용 팀(코치, 스태프, 연습 상대 등), 연봉은 한국의 10배에 심지어는 전용 트랙(안현수 혼자 쓸 수 있음)까지 준다고 했고 선수 은퇴 후에 코치직까지 보장했다. 실제로 러시아는 안현수에게 2018년, 2019-2020년, 2022년 총괄 고문직 혹은 감독직을 제안했다. # [35] 언론에 보도되었던 그의 러시아 선수 시절 연봉은 12만 달러와 1억 8천만원으로 나뉘어 진다. 2007년 안현수가 성남시청 입단할 당시 연봉은 3년간 5억원이다. # [36] 귀화 당시 빙상계에서 안현수에 대해 비난을 공개적으로 한것은 김동성이었는데, 당시 김동성은 러시아는 안현수의 기술을 뽑아먹을 것이며, 올림픽에 나설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고 발언했다. # 그러나 2013년 10월 쇼트트랙 월드컵에서 안현수를 포옹 하며 격려해주기도 했고, 2014년 2월 KBS 방송에서 안현수를 응원할것이라고 언급을 했다. #1 #2 그리고 실제로 KBS 해설당시 애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37] 그러나 일반 외국인이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전직 미국 중앙정보국(CIA) 미국 국가안보국(NSA)에 근무했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러시아로 망명을 하고 영주권을 얻었던 것은 2020년이었으나 그가 러시아 시민권을 얻게 된 시점은 2022년이다. [38] 안현수의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선수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계속 말했던 것이다. 하지만 2014년 당시 네티즌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대한민국 대표팀선수들에게 악성 댓글을 달았다. 그리고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이후 인터뷰에서는 '이젠 파벌 때문이 아니라고 하네?' 라는 식으로 댓글을 달았다. 이슈가 터지는 방향으로 악플을 옮겨다니면서 편한대로 기억망각을 하는 증상들이 일부 한국의 커뮤와 댓글 등의 사회문화로 자리잡은 것으로 보여진다. 2022년 한 기자는 2014년 소치 올림픽 당시 파벌싸움에 희생당한 동정론과 2022년 반중감정의 인터넷 공격의 대상이 된 안현수에 대해 당시 안현수는 파벌싸움에 희생되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오히려 그는 솔직하게 "올림픽 출전을 위해 러시아를 선택했다."고 말했다면서 "안현수는 죄가 없다."고 기사를 써서 기자 또한 광기 분풀이의 대상이 되었다. [39] 그의 인터뷰에서 언급하던 환경은 여러 가지를 의미할 수 있다. 경쟁자이자 동료인 선수들, 코칭 스탭, 훈련장, 훈련 프로그램, 러시아에서도 한국인 코치들의 강압적 훈련에서 벗어나자 실력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본인의 정신적 안정, 미래 진로, 돈 문제, 생활비+훈련 비용이며, 먹고 살아야 한다. 행정적인 지원, 국민들의 기대감, 언론의 취재 등등이다. [40] 2019년 당시 러시아가 제시한 안현수에 대한 보수는 한국의 한 언론사에 따르면 월 2만 5000달러 이다. # [41] 당시 베이징 올림픽에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러시아가 또 다른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분위기라고까지 표현할정도로 올림픽 당시 거스 히딩크 급으로 중국 인터넷 사용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1 #2 또한 한국의 여론과는 반대로 중국의 영웅 왕멍의 지지는 안현수의 중국 인기에 긍정적인 작용을 했다. #1 #2 [42] 실제로는 박장혁인데, 언론에서 황대헌으로 오해했다. [43] 2022년 휴식기때 중국 웨이보 활동을 하기도 하였는데, 2022년 7월 8일 중국 웨이보에 따르면 한달만에 1억뷰를 돌파했을 정도로 중국 웨이보에서 활동하는 스포츠 인들 중에서 최상위권 셀럽 인기를 누렸다. 주로 육아생활, 트레이닝 운동 영상, 쇼트트랙 관련 영상이 업로드 되었다. # [44] 2022년 11월 4일, 18-19세 선수들을 대상으로한 러시아 내셔널 쇼트트랙 대회가 모르도비야 공화국 사란스크에서 시작되었다. 대회 명칭은 빅토르 안 컵 [45] 오노는 자서전에서까지 김동성이 자신을 최고라고 인정했었다는 말을 지어낸 적이 있는 선수. 이런 선수가 안현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물론 김동성과는 자신이 조금 실력이 딸리더라도 (반칙도 조금씩 써가며) 그리 큰 차이는 아니었으나, 안현수에게는 반칙을 써볼 기회도 없이 매번 속수무책으로 당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실력을 인정하는 셈이다. [46] 외신에 따르면 안현수는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 당시 아리아나 폰타나에게 다가가 축하해주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47]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부터 2006년 토리노, 2010년 벤쿠버, 2014년 소치 올림픽까지 미국 올림픽 대표팀의 스피드 스케이팅 코치를 맡은 경력이 있으며, 유명 스케이트 부츠 제작 업체인 마케이지 레이싱(Marchese Racing)의 대표이다. [48] 한국 일부 언론들은 당시 코치로도 자격이 정지된다는 기사들을 내보내기도 하였는데, 이는 확대해석된 잘못된 보도였다. 연맹으로부터 자격정지를 공식적으로 받았다면, 자격정지 기간동안 선수로서 뿐만 아니라 코치, 경기관련 스텝, 관계자 어떤 직책에서도 일할수 없게된다. 그리고 국가대표 훈련장소와 공적인 공식 장소에서 훈련을 할수 없다. 하지만 안현수는 평창 올림픽 출전 불발 외에 공식적으로 자격정지를 따로 받은 적이 없다. 그리고 2018년 당시 한국과 러시아의 코치직 논의가 이루어졌고, 한국 일부 언론들이 그런 기사를 내보내던 2018년에 중국은 안현수에게 코치직을 제의했다. 2018년 올림픽 출전 불발 외에 이후 선수활동에 그 어떤 제한이 없었으며, 또한 당시의 외신들은 안현수의 이후 올림픽 코치 활동 가능 등등의 그러한 보도는 하지도 않았는데 유독 한국에서만 그러한 오보들이 나왔다. [49] 안현수의 출전불허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를 IOC는 공개한 적이 없다. 2017년 12월까지 IOC 오스왈드위원회가 직접 올림픽 공식 계정에 '개별적인 구체적인 이유와 함께 실격 처분을 공개한 43명'의 사례를 확장하여 일부 한국 언론이 확장추측해서 보도한 부분이 있다. 안현수는 43명의 명단에는 없다.(기소여부를 심의했었거나 기소가 된 러시아 선수들 46명에 대해서는 다음에서 확인할수 있다.) 또한 당시 안현수와 함께 출전이 허락되지 않았던 러시아 선수들 중에서 러시아 쇼트트랙 팀의 데니스 아이라페티안 아르템 코즐로프는 2015년, 2016년 주니어세계선수권 출전 선수였으며, 2014년 소치 올림픽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즉 2017년 IOC가 개별적인 구체적인 이유를 공개했던 43인과 달리 올림픽 직전에 IOC가 이유를 공개하지 않고 출전불발된 선수들이 어떠한 기준으로 출전허락을 받지 못했는지 알수 없다. 이는 안현수 또한 본인이 어떤 이유로 출전하지 못했는지 모른다고 IOC가 이를 알려주지 않았다고 2019년과 2022년의 인터뷰들에서 밝힌 바 있다. 이때 출전이 허락되지 않았던 선수단에 대해서 한국언론에서는 누락시켰으나 2018년 해외의 올림픽 외신들은 안현수의 기사에서 "참여가능 명단에 없다고 해서 선수가 도핑을 했다는 것은 아니며, 참여가 허락되지 않은 선수들에 대해서 조사가 있을 것이다."라고 이때의 IOC 측의 의견을 보도하였는데, 이 조사는 이후의 과정들을 참고한다면, 2018년에 확정된 결과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2019년부터 조사가 이루어진다. 한국의 한 언론에서만 도핑과 공개적으로 연결된 것이 확인되어서 출전이 불발된 것이 아닌, 의심되는 대상으로 올림픽 직전 출전이 불발된 것이라고 당시 익명을 요구했던 국제전문가를 통해 밝혔을 뿐이었다. 즉, 2018년 한국 언론들의 안현수의 보도들은 IOC는 공개하지도 않았던 출전 불발 사유를 언론들이 확장 추측해 보도한 부분이 있다. [50] 스포츠와 올림픽 뉴스를 전문적으로 보도하는 영국 스포츠 매체 인사이드 더 게임즈는 2018년과 2020년에 이를 명시했다. 또한 2020년 안현수의 은퇴당시 조선일보 역시 영문판에는 이부분이 명시되어 있다. # [51] NBC 스포츠 AP통신등 여러 올림픽 기사를 다루는 외신에서 2018년과 2020년 안현수의 기사에서 보도한 부분이다. # 하지만 한국의 언론에서는 IOC의 이 발언은 보도하지 않았다. [52] 2018년 당시 안현수와 같이 출전불허 처분이 되었던 소치 올림픽 멤버 루슬란 자하로프, 2018년 팀 멤버 데니스 아이라페티안도 2022년 베이징 올림픽에는 ROC로 참가가 가능하였다. 2022년 6월에 ISU는 조사를 종결했다. # [53] 민간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가장 최고위 훈장이다. 러시아 국가의 강화, 국가의 사회 경제적 발전, 연구 활동, 문화 및 예술의 발전, 뛰어난 스포츠 성과 탁월한 공헌 또는 조국 수호에 대한 상당한 공헌에 대해 수여된다. 1998년 사도 성 안드레이훈장이 설립 될 때까지 최고의 국가 훈장이었다. [54] 러시아 국방부 산하 메달 중 순위로 따지면 상위 5번째이다. 민간인이 받을수 있는 최고위 메달이며, 군인과 민간인에게 모두 수여된다. 운동선수가 이러한 메달을 수여받은 이유는 소속 클럽이었던 CSKA 모스크바가 러시아 연방 국방부 소속이기 때문이다. [55] 러시아 체육인 중 가장 높은 등급의 스포츠 타이틀이다. 2013년 세계선수권 은메달과 유럽선수권 메달 획득이후 타이틀을 수여받았다. [56] 2020년 안현수가 은퇴했을 당시 스베틀라나 주로바의 인터뷰 내용이다. 러시아의 성공한 운동선수들 처럼 안현수에게 정치인 제안도 말이 나왔던 듯 하다. 하지만 스베틀라나 주로바는 그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으며, 그는 운동선수이며, 다른 나라의 코치로 갈 가능성이 많다는 인터뷰를 했고, 빅토르 안(안현수)은 러시아를 존중하고 러시아어를 배웠으나, 그의 본성은 한국인이라고 지적했다. [57] 참고로 어지간한 나라들은 귀화한 외국인 출신들은 징집하지 않으며,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중에도 축구선수들을 군대에서 빼주고 해외 이적도 시켜준 것처럼 스포츠 스타들은 어지간하면 군대로 끌고가지 않는다. 이 사람들은 국가 이미지 홍보용으로도 쓰이기 때문에 2차 대전의 일본이 프로야구 선수들을 징집한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스포츠 스타들이 전투에 투입되었다가 사상자라도 나오면 국가의 인적 손실이며 해당 선수가 배치된 부대의 사기 저하는 말할것도 없다. 전쟁이 일어나면 나라는 100% 실리대로 돌아간다. 평등이니 뭐니 하는 것은 없다. [58] 이 유제품기업은 중국의 유명 스포츠스타들이 광고 모델을 맡고 있는데, 안현수도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당시 중국 쇼트트랙팀 지도자를 맡게 되면서 이 유제품기업 광고모델로 발탁된 것이다. [59] 하지만 그때는 화제가 되지않다가 화제가 된것은 이전 선수들은 한국 대표 선수를 크게 능가하지 못했다가 안현수가 3관왕을 하고, 한국쇼트트랙이 부진하면서 화제가 된것이었다. 반대로 중국 국적의 화교였지만 한국으로 귀화,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금메달의 주역으로 활약한 후인정이나 화교 3세로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3000m 계주 금메달의 주역 중 한 명인 공상정, 한국으로 귀화하여 한국 탁구계의 새로운 활력소가 된 곽방방, 당예서, 석하정, 전지희 같은 수많은 귀화 선수들에게 매국노라는 소리는 할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