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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양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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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해군 어드미럴급 순양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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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제국 해군 데어플링어급 순양전함
1. 개요2. 명칭 번역 문제3. 특징4. 비슷한 함종과의 차이5. 장점
5.1. 평상시5.2. 전시
6. 단점
6.1. 평상시6.2. 전시
7. 역사
7.1. 개발7.2. 확산7.3. 그냥 전함입니다.7.4. 2차 대전 이전, 각 열강국들의 순양전함
7.4.1. 미국의 순양전함7.4.2. 일본의 순양전함7.4.3. 독일의 순양전함
7.5. 제2차 세계 대전에서의 순양전함7.6. 2차 대전 이후
8. 각국의 순양전함들
8.1. 마지막으로 건조된 순양전함 후드8.2. 애매한 경우들
9. 기타10. 각종 매체의 순양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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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巡洋戰艦, Battlecruiser

제2차 세계 대전 당시까지 존재하던 해상 군함 함급.

전함의 변종이라 보는 견해와 장갑순양함의 최종형이라는 견해가 공존한다. 함선 분류 기호는 미국에서 CC로 사용했으며 군축조약으로 취소된 렉싱턴급 순양전함이 CC로 시작되는 헐 넘버를 받았다. 일부 매체에서 BC로 표현되는 경우도 있으나 공식적인 건 아니다. CB는 알래스카급 대형순양함과 같은 대형순양함(Large Cruiser)에 쓰이는 기호이다.

유틀란트 해전의 전훈 분석과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의 체결으로 전함에 비해 유용성을 상실하면서 신규 순양전함 건조는 중단되었고, 2차 세계대전 중 남은 순양전함 대다수가 격침된 데다 전후 전함이 효용을 잃고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사라졌다.

2. 명칭 번역 문제

밀리터리 매니아들을 중심으로 2012년 즈음에 Battlecruiser에 대한 역어를 순양전함으로 할 것인가 전투순양함으로 할 것인가의 논쟁이 있었다. 여기에서는 번역 문제에 대한 양측의 의견을 소개한다. 국립국어원에서는 둘 다 표준어가 아니니까 아무 것이나 써도 상관없다는 듯하다. 한국 해군이 이 함급을 가진 적도 정확한 규정도 한 적이 없고 전 세계적으로 안 쓰인지 꽤 지난 함종이며 민간에게는 전함이나 항공모함 같이 딱 구분가는 점이 없는 함선이었으므로 당연한 일이지만. 예시

이하의 논쟁에는 순양전함의 번역 논쟁과 순양전함의 분류가 전함인지 순양함인지 여부 논쟁이 서로 혼합되어 있으므로 읽고 편집함에 있어 주의를 요한다. 일반적으로, '전투순양함'을 번역어로 지지하는 입장은 해당 함급이 순양함의 일종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때문에 상기 두 주제를 혼합하여 주장하게 된다. 그러나 순양전함을 번역어로 지지하는 입장 중에는 순양전함이 전함이라는 입장과 순양함이라는 입장이 모두 존재하므로, 순양전함의 번역어 논쟁과 분류 논쟁은 비록 관련성은 있더라도 서로 별개의 주제임에 유의해야 한다.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는 한국 내에 스타크래프트가 크게 성공하면서, 당시 국내 정발판 한글 매뉴얼에서 Battlecruiser를 전투순양함이라고 번역했고 이를 받아들인 세대가 밀리계에 들어오면서 기존의 세대에서 사용되었던, 즉 밀리터리계에서 일본 용어를 그대로 번역하여 사용하던 순양전함 용어대신 이 번역을 들이밀다가 충돌하였기 때문이다. 2010년 대 초반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현재는 순양전함으로 불리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이런 논쟁 자체가 크게 의미가 없다고 보는 이들도 꽤 된다. 순양전함의 개발지는 당대 최강의 해군 열강국이었던 영국이었고, 해군의 함선이라면 몽땅 man of war라고 쓰고 주력함이라고 읽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의 변태성이 악명높기 때문이다. 이 변태성이 얼마나 심한가 하면 16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카락, 갤리온, 전열함에 상관없이 당대 해군 주력함은 함선의 종류, 등급, 크기에 관계없이 모두 맨 오브 워로 싸잡아서 불렀다. 호레이쇼 넬슨 기함인 104문의 함포를 탑재한 당당한 1급 전열함 빅토리도 맨 오브 워라 불렸고 프리깃과 비슷한 크기에 동일한 2층갑판에 함포수도 10여문 정도 더 많이 탑재한 정도인 60문의 함포 탑재 4등급 전열함도 맨 오브워라 불렸으며, 헨리 8세의 중카락 메리 로즈도 맨 오브 워로 불렸다. 따라서 그 당시에는 우리가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명확한 개념 정의 없이 뉘앙스로 붙였을 가능성이 더 높다. 주지할 사실은 순양전함의 명명시기는 아직 전근대의 꿈과 로망이 살아 숨쉬던 시대였다는 점이다. 지금 시대의 엄밀성으로 그 시대에 접근해봐야 시대의 로망이라고 쓰고 노망이라고 읽는 시대의 벽 앞에 좌절할 뿐이다.

한국 해군의 경우 두 용어가 혼재되어 쓰이고 있다. 가령, 2020년 한국해양전략연구소의 논문집에 등재된 해군사관학교 조성진, 전윤재의 논문 예시에서는 순양전함이라고 언급된다. 반면 2013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의 논문집에 등재된 국방대학교 정광호의 논문 예시에서는 전투순양함으로 언급된다.

3. 특징

순양함의 분류
방호순양함 / 정찰순양함 장갑순양함
경순양함 중순양함 순양전함

순양함 함급의 기원에서 볼 수 있듯이, 순양전함 역시 평시, 준전시에 대양해군으로서 필요한 함급이었기 때문에 등장하였다.

순양함의 경우, 전세계에 식민지를 경영하면서 열강 및 피지배층과의 분쟁에 대응하려면 구축함보다는 당연히 좋은 함대함 전투력과 함께 대지상 타격력도 갖추어야 하고, 항로를 유지하기 위해선 오대양을 장기간 순회해야하므로 충분한 대양 항해 성능과 선체 크기가 필요해서 등장하였다. 그러나, 전쟁에서는 일꾼인 구축함이나 주력부대인 전함에 비해 명확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 보기 힘들었고, 그나마 막대한 국가 예산을 퍼붓는 전함을 모든 전쟁터에 배치할 수 없으니 대신 배치한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예산에 속박된 군대, 그 중에서도 전 세계에 식민지를 경영하던 열강의 해군으로서는, 당연히 순양함의 평시 역할을 수행하면서 전시에는 전함과 비슷한 수준의 기여를 하는 함급을 구상하는건 자연스러운 발상이었다.

그리고 전함 역시 그 나름대로 문제였다. 우선, 전함은 개별 항목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기술과 설계의 발전에 따라 끊임없이 도태되던 함종이다. 덤으로 재활용도 매우 힘들었다. 이는 철갑선이나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을 보면 알 수 있다. 반면 구축함이나 순양함은 구식이 되어도 초계, 훈련 등의 용도로 여전히 쓸모가 있었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 더해서 전함 한척을 건조하는데 엄청난 국가 예산을 퍼부어야 했고, 그리고 나서 현재의 최신예함을 구식으로 만드는 신규 전함을 끊임없이 개발해야 했으며, 그 시간 간격도 전시가 아니었음에도 어마무시하게 짧았다. 이는 산업혁명이 주요한 원인으로 기술력 발전이 너무 컸던 것이 원인이며 전간기의 전차나 소총, 전투기가 세대교체되던 속도와 비교해보면 알기 쉽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로, 전함의 경우는 그 이전 세대의 전열함과 마찬가지로 전략 병기였기 때문에 비용, 정치적 부담, 전력 공백등의 사유로 쉽게 굴릴 수 없어서 평화시에는 잉여에 가까웠다. 당연히 예산에 속박된 열강의 해군에서는 평화시에도 전세계로 투사해 굴릴 수 있으면서, 전함이 필요한 해전에는 발빠르게 달려오되, 승리를 책임질 주력함의 부담까지는 가지지 않는 전함을 구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여기에 더해서 순양전함이라는 것을 구상하던 극초기에는 주포를 254mm (10인치)나 279mm (11인치) 급으로 장착하여 장갑순양함을 제압가능한 수준을 만족하는 선에서 조금 저렴하게 만들려고 하였으나 일본의 쿠라마급 장갑순양함이 305mm (12인치) 주포를 장착해서 당대의 전함과 동급의 주포를 장착하였으므로 결국 전함과 동급의 구경인 12인치로 주포를 정하게 된다.

그 결과 등장한 일반적으로 알려진 순양전함의 컨셉은 중장갑, 거포로 무장한 전함에 비해 주포나 주포탑의 수를 약간 줄이고, 방어장갑을 엄청나게 희생시켜, 전함급의 공격력을 유지하면서도 좀 더 빠른 속력을 내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드레드노트를 개발한 존 피셔 경이[8] 내다본 장래 해전의 컨셉에서, 빠른 발과 강한 화력으로 바다를 제압한다라는 마치 아웃복서와 같은 방식으로 무장한 전함의 일종으로, 주요임무는 전 세계에 퍼진 영국 해군의 해군기지 수를 줄여 비용을 절감하고 필요시 빠른 발로 필요지점에 가서 전함급 화력으로 무력시위를 하거나 대부분 열강이 아닌 국가의 장갑순양함 이하의 적을 조지는 것을 상정했으며 열강끼리의 함대전에서는 함대의 전위를 담당하여 장갑순양함 이하의 적을 제거하며, 적의 전함과 같은 강력한 상대는 일격이탈 같은 제한적인 대응을 하면서 괴롭히거나 상처를 주고 해역에 못박히도록 만들어서 전함 간의 결전에서 아군이 우위를 차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원래 기본적으로 중장갑을 유지해서 대응방어가 가능한 전함은 필연적으로 장갑이 얇은 다른 함선, 특히 순양함과 같은 급의 함정에 비해 느릴 수밖에 없다. 특히 순양전함이 진수되던 시절의 함선 기관은 석탄 보일러를 사용하는 증기터빈이었다. 중유 - 석탄 혼소 보일러나 중유 전용 보일러에 비해 출력이 상대적으로 많이 낮으므로 속도 차이가 더 심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여 순양전함은 적의 전위 함대를 포착해서 아군 주력 함대가 도착할 때까지 적절한 펀치력과 속도를 가지고 적 전위 함대 소속의 빠르고 작은 함선 정도는 쉽게 제압할 수 있으며 적의 전함과 전투할 때는 아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경우에 한해서 일격이탈이나 원거리 포격전으로 적당하게 상대해주면서 어느 정도 타격을 입히고 후퇴하거나, 아군 전함이 올 때까지 전장에 적 전함을 못박아 놓을 수 있는 형태의 함선으로 개발된다. 이와 같은 목적을 가지고 미래 영국 해군의 실질적인 주력함으로서 기대를 모으며, 당시로서는 최종병기 취급을 받았던 최초의 현대적 전함 드레드노트의 건조가 시작된 직후 건조 계획이 올라갔다.

최초의 순양전함인 인빈시블급 순양전함은 최초의 드레드노트급 전함인 드레드노트의 장점을 수용하여 전반적인 형상은 드레드노트와 비슷하고 주포는 동등한 305mm (12인치) Mk X 2연장 주포탑을 보유했으나 주포탑이 1기 적은 4기를 탑재하였으며 장갑도 측면장갑이 152mm (6인치), 주포탑 정면도 178mm (7인치)로 매우 얇은 대신 속력은 25노트 (46km/h)로 빨랐으며 고속을 유지할 수 있는 기간도 며칠 수준으로 늘어났다. 주포탑 숫자를 줄이고 장갑을 깎은 대신 31기의 보일러와 4기의 증기 터빈을 탑재하는 등 동력기관에 많이 투자했기 때문이며 그래서 드레드노트보다 선체의 길이도 12.2m 정도 더 늘어났다.

사실 피셔 경의 최종 희망사항은 순양전함이 아니었다. 동력기관의 기술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현실에 맞춘 것이다. 이후 터빈기술의 발전으로 군함의 출력이 엄청나게 올라가고 전함이 자신의 공격력과 방어력을 희생시키지 않는 선에서 내놓을 수 있는 좁은 공간에도 충분한 출력의 동력기관 설치가 가능해졌으며, 주포탑의 기술도 발전해서 더이상 장갑을 줄일 필요도, 주포탑을 줄일 필요도 없게 된다. 그렇게 피셔 경의 꿈의 전함은 고속전함으로서 완성된다.

4. 비슷한 함종과의 차이

흔한 오해지만, 순양전함은 순양함보다는 크고 전함보다는 작은 중간 크기의 군함을 뜻하는 개념이 결코 아니다. 1910년대에 처음 등장하고 1930년대부터 주로 건조되기 시작한 고속전함과도 다른 존재다.

순양전함은 동시대 건조된 전함과 비슷한 배수량에 같은 크기의 주포를 탑재하는 동급의 군함이다. 개발 과정에서 시초는 장갑순양함의 강화판이었으나 결과물은 전함과 동등한 크기와 겉모습과 무장을 가진 군함이었으며 이런 이유 때문에 이미 1906년 10월부터 영국 해군성이 순양전함을 주력함(Capital ship)으로 분류했으며 인빈시블급 순양전함은 등장 당시부터 기존의 장갑순양함과 구별하기 위해서 순양함 - 전함 (cruiser-battleship)이나 드레드노트급 순양함 (dreadnought cruiser)등으로 따로 불리고 있었고 순양전함이라는 이름은 존 피셔가 1908년에 사용을 시작한 후 1911년 11월 24일의 해군성 주간명령 351에서 확정되었다.

순양전함과 전함의 차이는 순양전함이 기동성을 중시한 반면에 전함은 방어력이 더 충실한 설계를 했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1920년대까지 영국 기준에 따르면 순양전함은 최소 24노트의 최고속력을 하루 이상 유지할 수 있어야 하지만, 전함은 21노트 정도의 속력을 1시간 동안만 내면 되는 수준이었다. 최고속력이 빠른 대신 순양전함의 장갑은 장갑순양함의 중구경 주포를 방어하는 수준이었던 반면에, 전함의 장갑은 같은 전함이나 순양전함의 대구경 주포에 대한 대응방어가 가능해야 했다.

순양전함은 최고 속력과 가속력을 얻기 위해 형상을 바꾸고 더 많은 엔진을 탑재했다. 순양전함의 형상에서 전함보다 세장비라고 하는 함선의 앞뒤 길이와 좌우 함폭의 비율이 더 큰 이유가 물을 헤치고 나갈 때의 세장비가 클수록 조파저항이 작는 점과 고속을 내기 위한 다수의 엔진을 탑재할 공간을 위해 허리가 길어야 했다는 점이었다. 저항이 줄어들고 출력이 상승한만큼 가속력이 좋아졌으며 최고 속력도 더 높아졌다.

또한 전함과 같은 배수량에서 더 높은 기동성을 얻기 위해서 장갑을 희생했다. 이 당시 사용하던 증기보일러는 기본적으로 크기가 소형 건물만한 쇳덩이었으며 인빈시블 순양전함의 경우 이러한 보일러를 31개나 탑재했다. 그래서 인빈시블과 동시에 건조된 드레드노트가 18기의 보일러만 탑재하고 최대 22,500마력을 낼 수 있었던 반면에 인빈시블의 31개 보일러와 연결된 증기 터빈은 41,100마력을 낼 수 있었다. 여기서 만약 10개의 보일러만 빼는 대신에 같은 무게만큼의 장갑을 현측에 펴서 바른다면 3인치 이상의 장갑을 추가할 수 있는 수준이다. 여기에 더해서 많은 보일러에서 생성된 증기를 받아 동력을 만들어낼 더 큰 증기 터빈과 여기서 나온 수만 마력에 달하는 출력을 프로펠러에 전달할 수 있는 동력 전달 장치 등의 무게도 엄청났으며, 보통 기관부는 추가적인 장갑으로 보호되었기에 기관부가 커질수록 추가 장갑의 무게도 더 증가해야 했다. 군함을 설계할 때는 주어진 총중량 혹은 배수량에서 공격력, 방어력, 기동성의 세 가지 요소를 배분해야 하는데, 순양전함의 공격력은 일반 전함과 거의 같았기에 방어력과 기동성 사이에 조절을 해야 했고, 여기서 순양전함은 방어력을 낮추어서 얻은 무게를 동력부에 투자하여 기동성을 높인 형태였다.

그리고 전함과 같은 배수량 안에서 지지고 볶아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전함에서 크기를 늘려 배수량을 확보하고 최신예 고출력 동력기관을 투입하거나 아예 방법이 없으면 동력기관을 순양전함급으로 더 집어넣어서 기동성을 높여보자"는 컨셉으로 만든 것이 이후 등장한 고속전함이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의 아이오와급 전함은 이전급인 사우스다코타급 전함과 똑같이 16인치 주포 9문을 탑재하고 방어력도 거의 동등하였지만, 속력을 확실하게 높이기 위해서 제2차 런던 해군 군축조약의 에스컬레이터 규정을 준수하는 기준배수량 4만5천롱톤의 한계내에서 배수량을 1만2천톤 정도 더 넉넉하게 확보하고 그만큼 엔진을 때려박아 최고속력을 사우스다코타급의 27.5노트에서 33노트로 높일수 있었다.[9]

5. 장점

5.1. 평상시

평상시의 활용도가 매우 높아서, 1차 대전 이후에 순양전함에 대한 기대치가 예전 같지 않던 영국에서도 순양전함은 다양한 업무에 끊임없이 동원되며 끊임없이 굴렀다.

일단 전함이기 때문에 격식을 갖춰야하는 자리에 내보내기 딱 좋았다. 그래서 순양전함이 있으면 다른 함들은 대규모 관함식이거나 순양전함 스케쥴이 꽉 찬 게 아닌 이상, 높으신 분들에겐 신경을 끄고 훈련과 정비에 전념하면 되었다. 만일 순양전함이 없다면 현재 한국 해군의 독도급 대형수송함이 그렇듯이 진짜 주력함이 사열받거나 순방을 나가야야 하는데, 이는 해군을 넘어서 전반적인 국방에도 지장을 준다.

전함 급으로 격이 높은 배가 속도도 빨랐으므로 높은 사람들이 순방을 다닐때 아주 적절했다. 그래서 리나운급 순양전함 리나운은 프린스 오브 웨일즈였던 에드워드 8세를 태우고 전세계를 방문하며 로열 요트라는 별명도 얻었다. 당시에는 아예 진짜 요트마냥 선체를 하얗게 도색하고 다녔다. 이는 타국도 마찬가지라서 일본의 경우에는 공고급 순양전함 히에이가 군축 조약에 따라 장갑을 모두 해제한 이후 덴노가 일본 해군 순시를 위해 타며 어소함(御召艦, 오메시)으로 불리게 되었고, 일본 본토에서의 인기는 나라의 자랑이라던 나가토, 무츠와 나란히 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특유의 아주 길쭉한 선형은 중세의 고전적인 미적 기준을 가지고 있던 대중과 정치인들, 외국인들은 물론 해군 장병들이 보기에도 정말 멋있어 보였으므로 해군 홍보용으로 유용했다. 그래서 영국해군의 최후의 순양전함인 후드는 해군장병들은 물론이고 대중들에게도 'Mighty HOOD'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영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후드가 격침되자 수많은 군함이 자기 원래 임무도 때려치우고 복수하겠다고 몰려들어 비스마르크 추격전을 벌였다.

전함이면서도 순양함 수준으로 빨랐기 때문에 어떤 함종과도 서로에게 아무런 지장없이 초계나 대양 항해를 함께 다닐 수 있었고, 그러면서도 전함의 화력과 통신시설, 편의시설을 가졌기 때문에 어떤 구성에서도 기함 노릇이 가능했다. 또한 그와는 반대로 전함을 호위하는 것도 가능했다. 이러한 장점은 모든 국가가 전시 평시할 것 없이 잘 써먹었고, 현대 해군에서는 어떤 함급의 기함은 동형함이거나 그보다 딱 한 칸만 높은 함급이어야만 하는것은 아니라는 개념이 당연하게 여겨지게 된다.

또한 군축조약으로 전함의 수가 줄어든데다가 신규 고속전함의 건조도 제약된 상황에서 영국은 태평양에까지 전함을 상시 주둔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순양전함을 왕실 순방이라는 미명(?)하에 전세계를 빙빙 돌렸고, 그렇지 않을 때는 북대서양, 북해, 지중해를 무한 로테이션을 돌렸다.

사실상 현대 미국 해군의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이 가진 미덕 중에서 이지스 시스템이 제공하는 것을 제외한 거의 모든 것을 제공한 셈이다.

5.2. 전시

전쟁이 터질 것 같거나 위기시에는 전함 전력은 함대 결전을 위해 본국에 집결하지만 그 외의 중요 거점에는 순양전함과 고속함으로 이루어진 함대를 파견해서 전력의 공백을 일단 메꾸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개전 후에 적국의 전략으로 인해 적이 노리는 해역이 달라질 때도 쉽게 대응가능할 수 있게 한다.

여기에 더해서 아무래도 전함보다는 전략 무기로서의 가치가 약간 떨어진다고 당대의 사람들이 판단했으므로 전함보다는 쉽게 여러 해역에 파견이 가능했고 상실해도 타격이 적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공고급 순양전함이 개량 후 빨라진 속력과 전함보다 낮은 중요도 때문에 일본 전함 중에서는 제대로 일했다.

전투시에도 전함 수준의 화력에 전함보다 빠른 속도와 기동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장점으로, 이 기동성 덕분에 의외로 이런저런 다양한 상황에서 주도권을 잡기 유리했으며,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속도를 이용해서 교전을 회피하거나 적이 교전을 회피할 수 없도록 강요하는 것, 또한 적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싸우거나 가능한 한 짧은 시간 동안에 불리한 위치를 벗어나는 것도 포함되었다. 아울러 전술적으로 저런 기능이 있다면 전략적으로는 우세한 속력을 통해 상대적으로 빠른 시간 내에 필요한 장소에 전개가 가능하다는 강점이 있었다. 즉 적이 취약한 상태에 있을 때 압도적 무력을 조기 투사하는 데도 순양전함이 유리했다. 따라서 순양전함은 온갖 위험하고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함대의 일꾼이 되었다.

이 컨셉대로 적 순양함을 상대했던 포클랜드 해전에선 영국 해군의 초기형 순양전함 2척이 독일 동양함대의 장갑순양함 2척을 거의 일방적으로 때려잡았다. 독일 장갑순양함들이 영국 순양전함들의 12인치(305mm) 주포에 걸레짝이 될 때 영국 순양전함들도 독일 장갑순양함들의 210mm 주포탄을 몇 발 맞기는 했지만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거기다 영국 순양전함이 더 빨라 독일 장갑순양함들은 도망칠 수도 없었다.

6. 단점

6.1. 평상시

평상시의 경우, 순양전함에도 문제가 있었다. 전술했다시피 예산 대비 활용성을 찾기 위해 개척된 순양전함이었으나, 그 건조비용은 전함과 같거나 더 비싼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 영국의 후드처럼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이나 리벤지급 전함 같은 주력급 전함보다 더 큰 경우도 있었다.

건조 비용이야 일단 넘길 수 있다고 해도 그 뒤의 운용비용과 유지비용도 전함보다 더 컸다. 상대적으로 유지와 운용비용이 더 들어가는 동력기관을 더 많이 탑재하는데다가 전함급 거체를 움직이기 위해 동력기관의 질과 기술력도 높은 것이 들어가며 앞서 말한 평상시의 장점을 쓰기 위해 장거리 원양항해를 반복하게 되므로 동력기관이 빠르게 낡아가게 되므로 말 그대로 수시로 점검 및 수리, 부품교환이 필요하게 된다. 이게 다 엄청난 비용이 된다.

설상가상으로 속력을 고속으로 유지하지 않으면 그 순간 그냥 느리고 장갑이 얇아서 적에게 포격을 신나게 두들겨맞는 사격표적 1호 신세가 되므로 오버홀도 자주 해야 하고 현대전에 대비하기 위해서, 그리고 전함들도 고속화하면서 순양전함의 입장에서도 대규모 개조를 하면서 동력기관을 완전한 신형으로 교체해야 하는 비용까지 추가되므로 점점 더 비용이 대규모로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군축조약에서 살아남은 순양전함들은 대부분 2회 이상의 대규모 개장을 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너무나 돈이 들어가는 나머지 대규모 개장때 동력기관을 완전교체하지 않는 꼼수를 쓰다가 공격력과 방어력등의 향상을 위해서 배수량은 늘었는데 동력기관이 그대로거나 성능이 더 떨어져서 느려지는 바람에 비판을 거하게 먹고 다시 배를 뜯어서 동력기관을 완전하게 신형으로 갈아버리면서 추가적으로 대개장을 해서 돈을 더 쓰는 사태도 종종 발생하였다.

그리고 순양전함은 보통 전함보다 긴 선체를 가지는데다가 본국에서 멀리 떨어진 거점을 순회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중요 거점에 순양전함을 정비 및 수리하기 위한 시설이 대규모로 필요해진다. 이 때문에 영국은 전간기 시절 어려운 경제사정에도 불구하고 당시 식민지였던 싱가포르에 순양전함 후드가 들어갈 수준의 도크를 건설했는데 그 크기가 영국 본국에 있는 것보다 더 컸다.

6.2. 전시

전시의 경우, 영국식 순양전함은 날이 갈수록 기술이 발전하면서 제대로 된 중유 보일러가 개발되고, 과거의 순양전함과 대등한 속도를 가지면서도 전함의 공방능력을 그대로 보유하여 대응방어가 되는 두꺼운 장갑을 가진 고속전함이 등장하면서 개념 자체가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1차 세계 대전 직전 등장한 최초의 고속전함인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이 그런 경우로 전함이 가지는 장갑을 그대로 갖추면서 구형 순양전함과 비슷한 속력을 내고 신형 순양전함들보다 조금 느린 수준으로 달릴 수 있었다. 결국 순양전함은 장갑능력의 부족으로 인해 거리를 제압하지 못하는 형태의 전투에서는 큰 손해를 보게 되고, 이도저도 아닌 주제에 맷집만 약하고 예산만 막대하게 퍼먹는 배 취급을 받게 되었다.

사실 함포가 해전의 주력이던 시절에는 주포의 사정거리를 이용한 아웃레인지 공격을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제압하지 못한 적이 근접하면서 인파이터처럼 서로 맞고 때려야 하는 식의 전투를 해야 했다. 문제는 상대가 장갑순양함이하라면 순양전함의 장갑이 그럭저럭 충분하므로 서로 맞고 때리면서 적을 완전히 제압하는 게 가능하지만 상대방이 전함인 경우에는 그게 안된다는 이야기다.

특히 전 세계를 들쑤시고 다녀야 했던 영국이 가장 먼저 개발하기 시작한 함급이라서 경장갑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빠른 순양함을 따라잡아야 할 정도의 속도가 요구되었기에 안정성, 방어력 등이 전함에 비해 많이 약했다. 그리고 장갑이 약했다뿐이지 화력은 전함급 주포를 장착하고 단지 주포의 숫자가 전함보다 약간 적은 경우가 많아서 전함과 사실상 동일하거나 비슷했으므로 영국은 비스마르크 추격전에서처럼 순양전함을 전함처럼 사용하는 상황도 발생했고 이 과정에서 순양전함 후드를 손실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물론 이 경우는 영국이 바보라서 그렇게 한것은 아니고 후드의 경우 측면 방어력은 좀 약한 전함 수준은 되는 데다가 영국도 이 문제를 인식하고 방어력 개선을 위한 개장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타이밍이 안맞았고 더럽게 재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비스마르크 추격전은 영국의 고속전함 전력의 부재로 부득이하게 순양전함으로 때우려고 한 경우이다. 당연히 순양전함만 덜렁 보낸 것은 아니고 투입할 수 있는 고속전함들은 같이 투입했다. 당장 후드와 같이 투입된게 고속전함인 프린스 오브 웨일즈이고 이후 로드니가 비스마르크를 추격할때 킹 조지 5세도 같이 갔다.

애초에 영국이 순양전함을 만들 때만 하더라도 전함같이 강력한 적의 경우에는 순양전함이 가진 우월한 사격통제장치를 이용해서 일격이탈이나 괴롭히기를 충분히 실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여기서 상정한 적 전함은 전(前)드레드노트급 전함이었다는 점에서 현실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게 된다. 바로 영국이 순양전함과 동시에 만들어낸 드레드노트급 전함 전드레드노트급 전함 이상의 무장과 장갑 + 순양전함과 동등한 수준의 사격통제장치, 중유 보일러 덕분에 20노트 이상의 속도를 가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순양전함이 드레드노트급 전함과 포격전을 벌이는 순간, 동시에 드레드노트급 전함도 순양전함을 자신의 사정권 안에 넣기 때문에 오히려 드레드노트급 전함이 순양전함을 정확하게 포격해서 주포탄을 명중시킨 다음, 손상으로 느려진 순양전함을 추적해서 역관광 보내는 일이 충분히 가능했다.

게다가 이런 경우에는 순양전함은 장갑이 얇고 주포탑이 1-2기 부족하기 때문에 서로 동일한 숫자의 명중탄을 기록하더라도 순양전함은 주포탄에 명중당하면 대부분 장갑을 관통하고 내부에서 작렬하는 유효탄이 되므로 화력을 거의 상실하거나 항행능력을 많이 상실하는 등 만신창이가 되는데 반해, 드레드노트급 전함은 대응방어가 가능하므로 주포탄을 장갑으로 막아내서 거의 피해가 없거나 주포탑 1기 정도가 충격으로 고장 등의 손상을 입어서 화력이 약간 까지는 정도에 그칠 가능성이 높으므로 순양전함이 더 코너에 몰리게 된다. 여기에 더해서 영국이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등장시킨지 몇 년도 지나지 않아서 열강들은 전력을 기울여서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건조했기 때문에 적의 신형전함은 순양전함의 속력으로 전투를 회피한 다음에 나머지 구식전함만 상대한다는 전략도 작동하기 힘들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예상과는 달리 순양전함이 전함을 일격이탈 전술이나 원거리 포격전으로 괴롭히더라도 가능한한 교전시간을 짧게 한 후, 일단 잽싸게 후퇴했다가 재도전 하는 식으로 운용해야 하므로 적 전함들에게 만만치 않은 타격을 주거나 아군 전함이 올 때까지 적 전함들을 일정 해역에 붙잡아놓기에는 능력적으로 한계에 도달했다.

그래도 이것은 약과였다. 순양전함이 전함과 정면대결을 하지 않으면 되기 때문이다. 전함을 제외한 다른 함종은 순양전함과 정면대결을 할 수 없으므로, 운용의 묘를 살리면 어떻게든 써먹을 수는 있다.

그러나 적이 순양전함을 만들 경우 정말로 큰 문제에 직면한다. 상기된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순양전함도 영국만 만들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독일 해군만 해도 순양전함을 열심히 만들어서 함대의 선두에 세웠고 영국 순양전함들과 피터지게 싸웠다. 그리고 영국과 독일의 순양전함들이 전장에서 만나자 양쪽 모두 큰 문제에 직면했다. 속도의 우위를 상실하므로 도망칠 수도 없고, 적의 공격을 막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해군장관을 지냈던 윈스턴 처칠이 유틀란트 해전에서 벌어진 영국과 독일의 순양전함들의 싸움을 망치를 든 계란들이 상자 안에서 싸우는 상황에 비유한 것도 이래서다.

요약하면, 통상파괴전에서는 어떻게든 쓸만 했을지도 모르지만 함대결전 상황에는 절대 어울리지 않았던 함급이다.

7. 역사

순양전함이 개발된 직접적인 이유는 장갑순양함의 대형화와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의 비효율성에 따라 양자의 위치가 뒤집어지기 시작했던 시대적인 배경이 존재한다.

7.1. 개발

순양전함을 처음 고안해낸 국가는 20세기 초의 영국이었다. 이보다 이전인 19세기 중후반에는 장갑함 기술과 증기기관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등장한 과도기적 장갑함이 강대국 해군의 주역이었다. 이런 기술이 어느정도 성숙한 1880년대 군함의 배수량은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의 경우 1만톤 내외, 순양함은 6천톤 미만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최고속력은 10 노트대 후반이었으며, 함포는 주로 배의 양측면을 따라 배치된 203mm ~ 254mm (6인치 ~ 10인치) 구경의 대구경 함포와 다수의 37mm ~ 57mm 구경의 소구경 속사포를 사용했다. 속사포의 구경이 주력함의 함포에 사용하기에는 의의로 작았던 이유는 1880년에 25.4mm (1인치) 구경의 속사포가 처음 개발된 이후로 이 기술은 한동안 소구경 함포에만 사용될 수 있었고, 1900년을 전후해서야 중대구경 함포에도 적용되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연사력과 명중률이 처참했던 대구경 함포보다 소구경 속사포를 화력전의 주력으로 보았는데, 속사포의 경우 비록 1발당 파괴력이 부족했지만 빠르게 포탄을 난사하여 상대의 장갑을 걷어내고, 기관부와 같은 주요 부위에 피해를 누적시키며, 탄약의 유폭이나 연료의 발화를 유도하고, 인명 피해를 강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890년대에 독일의 크루프 사에서 개발한 크루프 장갑(Krupp armor) 등의 표면경화 강철 장갑이 도입되면서 군함 설계의 판도가 본격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 이전의 군함의 장갑은 의의로 약점이 많이 존재했는데 그걸 많이 해결한 것이다.

원래 1860년을 전후로 근대적인 철갑선이 등장한 이후 한동안 군함의 장갑은 두꺼운 티크(teak) 목재 위에 연철 장갑판을 덧댄 형태였다. 이런 연철 - 목재 장갑은 철판이 일차적으로 포탄을 저지하고 남은 충격을 목재가 흡수하는 형태였으며, 연철판의 방어력이 부족한 덕분에 목재 부분도 엄청나게 두꺼워야 해서 나무의 무게만으로도 후대의 크루프 장갑보다 더 무거울 지경이었다. 그러다가 1880년대에 이탈리아에서 경도가 높은 주철판을 탄성이 좋은 연철판 위에 붙인 합성장갑(compound armor)를 개발했는데, 이러한 구조는 포탄이 장갑을 파고드는 착탄 초기에는 장갑의 경도가 중요하고 이후 포탄이 지속적으로 관통하는 과정에서는 장갑의 강도가 높을수록 효과적이라는 현상을 이용했다 (하지만 합성장갑의 방어력이 충분하지 못해서 여전히 두꺼운 티크 목재를 뒤에 덧대어야 했다).

1894년 공개된 크루프 장갑도 기본적으로 합성장갑과 같은 원리를 이용한 것으로, 1890년대 초반부터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 니켈 - 크롬 합금강의 한쪽 표면에 석탄 가스로 탄소를 침투시키고 열처리를 가해 표면 경도를 높여서, 경도가 높은 표면과 강도가 높은 내부를 하나의 두꺼운 강철판에 구현한 것이었다. 크루프 장갑이 등장한 이후 건조된 군함들은 티크 목재를 아예 안쓰거나, 쓰더라도 아주 얇은 두께를 대었다. 신형 장갑은 강도 경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하여 기존의 철제 장갑재보다 더 적은 무게로도 훨씬 더 강력한 방어력을 제공했다.

이때부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까지 " 대응방어를 위한 장갑의 두께는 함포의 구경과 거의 같아야 한다"는 공식이 성립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표준 교전 거리에서 12인치 주포를 방어하기 위해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현측 장갑은 11인치, 포탑 장갑은 12인치 두께를 가졌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표준 교전 거리는 점차 길어졌는데, 이러한 현상이 벌어진 이유 중에 하나는 소형 어뢰정에서 발사하는 어뢰의 사거리가 점차 증대되자 예전처럼 대형함이 적의 함대에 가까이 접근해서 포격전을 시도하는 것이 너무 위험하다고 여겨졌고, 동시에 광학 기술의 진보 덕분에 측정 기기가 빠르게 발전했기 때문이다.[10]

표면경화장갑 균질압연장갑을 같이 쓰기 시작한 것도 눈여겨볼만 하다. 두 장갑을 비교한다면 장갑 표면에 거의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적 포탄이 직격할 경우에 표면경화장갑이 더 높은 방어력을 보여주고, 마치 경사장갑의 경우처럼 비스듬하게 각도를 주고 포탄이 착탄할 때는 균질장갑이 더 높은 방어력을 보인다. 그래서 제2차 세계 대전기까지 미국제 전함의 설계를 보면 포탄이 직격할 측면에는 표면경화장갑 (미해군의 분류상으로 Class A)을, 포탄이 비스듬히 낙하하여 착탄할 갑판에는 균질압연장갑(Class B)을 사용했다.

이러한 장갑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1890년대 후반에 프랑스와 독일은 소구경 속사포를 막아낼 수 있는 진보된 장갑순양함을 건조하기 시작했다. 1870 ~ 1880년대까지는 프랑스 해군에서 "대형함 대신에 어뢰정 등의 소형 함정을 다수 운용하는 것이 더 낫다"는 청년학파 교리가 지배적이었지만, 1890년대부터 청년학파의 영향력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갑순양함은 청년학파와 전함을 건조하자는 반대 진영 모두가 만족할 만한 크기였기에 다수가 건조되었다.

그래서 프랑스 제3공화국 러시아 제국은 기존의 순양함보다 더 크고 빠른 장갑순양함을 대량건조하기 시작했으며 독일 제국도 해외 식민지에서 항로를 보호할 목적으로 1897년부터 1906년까지 대형 장갑순양함을 8척이나 건조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행동이 유사시에 영국의 해양 항로를 위협할 것으로 판단되었기에 영국도 맞불을 놓아서 1892년부터 영국도 순양함 경쟁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당시 대영제국이던 영국은 순양함의 경우에도 자국의 잠재적인 적들의 합산보다 2배나 많은 숫자의 순양함이 필요하다고 기준을 세운 다음 1899년부터 1905년 사이에 장갑순양함을 7개 함급을 합쳐서 35척이나 건조하는 건함을 시작했다.

그리고 전함쪽도 소홀히 하지 않아서 8척의 전드레드노트급 전함도 동시에 찍어냈다. 애초에 영국 해군의 기본 방침이 해군력 2위와 3위가 연합하더라도 버틸 수 있는 수준이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이와 동시에 장갑순양함이 점점 크고 강력해지면서 건함비용도 늘어났다. 영국의 경우만 따져봐도 장갑순양함 건조비용이 1889년부터 1896년까지는 730만 파운드가 들어갔으나 1897년부터 1904년까지는 2690만 파운드가 소모될 정도였다. 여기에 더해서 최신형 장갑순양함의 건조비용이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의 건조비용보다 더 비싸지는 현상까지 발생했다. 설상가상으로 영국의 행보에 프랑스, 독일, 러시아가 자극받아 이들도 군함을 더 찍어내면서 건함 경쟁에 불이 붙었다.

덕분에 주력함의 크기가 점차 커져서 1901년에 진수된 영국의 크레시(Cressy) 장갑순양함의 경우 만재배수량이 1만2천톤, 1905년에 진수된 영국의 에드워드 7세(King Edward VII) 전함의 경우에는 1만7천톤에 달했다. 함포의 구경 역시 거대해져서 순양함의 주포로 152mm ~ 240mm (6인치 ~ 9.4인치) 함포를, 전함의 주포로는 279mm ~ 330mm (11인치 ~ 13인치) 함포를 사용하였고, 대구경 주포의 느린 연사력을 보완해줄 더 소구경의 중간포와 속사포 역할을 해줄 부포 (전함의 경우 주로 6인치포) 역시 다수 탑재하였다. 방어력의 경우 상술했던 크루프 장갑의 도입에 힘입어 어느정도 동급 적함에 대한 대응방어 능력을 갖추었는데, 예를 들어 6인치 주포를 가진 장갑순양함의 현측 벨트 장갑은 표준 교전 거리에서 6인치 함포를 방어하는 수준이었다. 아무래도 장갑순양함은 공격력과 방어력 측면에서 전함보다 뒤떨어지는 대신 기동성은 더 좋아서, 전함의 최고속력이 보통 18 ~ 19 노트 수준이었던 것에 비해 장갑순양함은 21 ~ 23 노트 정도였다.

이렇게 일이 돌아가기 시작하자 아예 장갑순양함으로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을 대체하자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이 장갑순양함보다 나은 점은 12인치 (305mm) 함포와 중장갑밖에 없던 상황인데 1900년 이후에는 그나마 가진 장점도 퇴색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의 경우에는 주포를 원거리에서 명중시킬 수 있는 사격통제장치와 기술이 없었으므로 주포를 제대로 명중시키려면 목표와의 거리를 1,829m (2천야드) 이내로 초근접시켜야 가능했으며 해당 거리 밖으로 목표가 이동하면 매우 느린 연사속도 덕분에 주포를 명중시킬 확률이 급격하게 낮아지므로 사실상 주포를 초근접거리에서 치명타를 날리는 막타용으로 사용하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기술발전이 불균등하게 이루어지면서 순양함이나 구축함도 운용 가능한 어뢰가 1,829m (2천야드) 이내에서는 명중을 보장할 수준까지 발전해버렸다. 이렇게 되면 주포를 사용하기 위해 목표에 초근접했다가는 어뢰 맞고 역관광당할 확률이 크게 높아진다. 당대에는 아직 벌지와 같은 방뢰장치가 제대로 발전되지 못한 상황이므로 어뢰에 정타를 제대로 맞으면 전드레드노트급 전함도 살아남기가 어려운 시절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속사포의 숫자는 동등하고 속도가 더 빠르며 주포도 전드레드노트급 전함보다 소구경이라서 원거리 명중률도 좋은 장갑순양함이 전드레드노트급 전함보다 더 우월해지게 된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당대의 해전 양상이 서로 근접하다가 속사포 능력이 있는 부포를 다량으로 맞춰서 상대방을 느려지게 만든 후 주포로 마무리를 가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신형 장갑순양함이 더 우월한 속도와 속력을 유지하는 지속시간의 우월성으로 능동적으로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에 접근해서 부포 사격을 날린 후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의 12인치 주포는 명중률이 떨어지는데 장갑순양함의 주포는 명중률을 유지하는 적절한 거리에서 사격전을 해서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의 상부구조물을 파손시키고 화재를 일어나게 해서 전투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만든 다음 어뢰의 유효사정거리까지 빠르게 근접해서 어뢰를 막타로 날려주고 바로 원거리로 회피하면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은 12인치 주포를 제대로 활용해보지도 못하고 만신창이가 된 채 어뢰를 맞고 침몰하는 엿같은 상황에 놓이게 될 수 있던 것이다. 전드레도느트급 전함이 속도로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기본적인 속력이 느린데다가 최고속력을 유지하는 시간도 잘해봐야 2시간 이내고 보통은 1시간 정도라서 답이 없었다.

이렇게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반의 기간 동안에는 너무 빠른 함형의 발전으로 인해 영국처럼 대규모 함대를 보유해봤자 얼마 지나지 않아 순식간에 낙후되어 버렸으므로, 지속적으로 많은 돈을 투자하지 않으면 후발주자에게 쉽게 따라잡히게 되었다. 특히 장갑순양함의 크기가 점차 커지고 위력도 강해지자 적국 장갑순양함의 통상파괴전으로부터 무역로를 지키는 것은 구형 중소형함의 숫자만 많다고 해서 달성할 수 없게 되었으며, 결국 영국 해군은 신형 장갑순양함을 압도할 수 있는 고속 함종을 연구하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서 1900년 경이 되자 영국의 경제력은 더 이상 예전처럼 돈으로 타국을 찍어누를 수 없었고, 덕분에 영국이 타국과의 해군력 격차를 유지하는 것도 점차 어려워져 갔다. 1850년까지만 해도 유럽 내에서 영국 : 프랑스 : 독일 : 러시아의 상대적인 경제력 비율은 70 : 12 : 7 : 4로 영국이 유럽의 다른 국가들을 전부 합친 것보다 부자였지만, 1900년에는 37 : 11 : 34 : 10로 상대적 비율이 많이 균일해 졌으며, 1910년에는 30 : 12 : 39 : 10이 되어 독일이 영국을 제치고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유럽에 한정되지 않고 전세계로 범위를 넓히자면 이 시기에 가장 부유한 국가로 떠오른 것은 미국이었다. 덕분에 영국의 경제력은 미국, 독일에 이은 세계 3위권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다만 미국이 전통적인 고립주의로 인해 유럽 국가들 사이의 분쟁에 끼어들려고 하지 않았고 육해군의 규모도 아직까지는 작았기에, 영국이 미국을 당면한 위협으로 보지 않았다.

이 때문에 1900년대 초에 영국은 화끈한 투자를 통해 한번에 타국과의 해군력 격차를 확 벌여 놓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904년 영국의 제1해군경(First Sea Lord)[11]으로 임명된 피셔 제독은 해군 내부의 의견을 모아 이러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새로운 대형함 2종, 바로 드레드노트급 전함과 이 문서의 주인공인 순양전함을 계획했다.

피셔 제독의 첫 제안은 순양전함이라기보다는 차세대 장갑순양함이라고 할 수 있는 설계 시안을 내놓게 된다. 해당 시안의 경우에는 배수량은 14,000톤에서 15,000톤 정도이고 주포는 234mm (9.2인치) 2연장 주포탑 2기를 함수와 함미에 1기씩 장착하며 중간포로 190mm (7.5인치) 2연장 중간포탑 6기를 양쪽 측면에 3기씩 장착하며 장갑은 측면장갑은 152mm (6인치), 장갑함교는 254mm (10인치), 주포탑은 152mm (6인치), 중간포탑은 102mm (4인치), 갑판장갑은 64mm (2.5인치)로 방어되며 속력은 25노트 (46km/h) 였다.

이렇게 초기 시안이 만들어진 이유는 피셔 제독은 처음에 비싼 순양전함 대신에 장갑순양함의 크기를 최대한 키워 9.2인치 주포를 장착하고 25노트의 속력을 낼 수 있는 1만5천톤급 순양함을 다수 건조하고자 하였으나, 영국 해군 내부에서 차기 대형함은 대구경포로 가야 한다는 믿음이 강했고, 결정적으로 1905년 쓰시마 해전에서 대구경 함포가 최신 측정 장비의 도움을 받아 원거리에서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전훈을 얻었으며 이로부터 어중간한 크기의 대포보다 확실한 화력을 낼 수 있는 거포가 더 낫다는 결론이 도출되면서, 피셔 제독이 원하던 대형 장갑순양함의 건조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앞서 언급했듯이 이미 일본이 장갑순양함에 12인치급 주포를 장착했으므로 이에 대응하려면 순양전함도 전함급 주포를 장착해야 했다.

여기에 더해서 영국 해군은 피셔의 고속 장갑순양함보다는 거포와 중장갑을 보유한 전함을 더 선호하고 있었으며 1890년대부터 전포거포함인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개발도 진행중이었으므로 피드백을 받을 필요도 있었다. 그래서 피셔는 해군의 전문가와 민간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설계위원회를 구성해서 피셔의 취향이 들어간 구체적인 드레드노트급 전함과 순양전함의 개발안을 확정했다.

먼저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을 대체할 신형 전함은 중구경 부포라고 볼 수 있는 중간포를 모두 제거하는 대신에 12인치(305mm) 주포의 수를 최대로 늘리고 당시 최신 기술이었던 증기 터빈 엔진을 도입하여 순양함 수준으로 빠른 최고 21노트의 속력을 내기로 했으며, 이 설계를 따라 건조된 신형 전함이 바로 전함의 역사를 바꾼 것으로 유명한 드레드노트이다.

그리고 장갑순양함을 대체할 완전히 새로운 함종의 경우 주포는 역시 12인치로 탑재하는 전포거포함이지만 장갑을 덜어내는 대신에 기관부를 더 키워서 최고 25노트 (46km/h)의 속력을 낼 수 있도록 했는데, 이것이 세계 최초의 순양전함인 인빈시블이었다. 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쓰던 드라이 도크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기에 두 함종 모두 만재배수량이 약 2만1천톤 이내, 흘수는 9m 이내로 결정된다. 1905년 내려진 건함 결정에 따라 1906년부터 1척의 드레드노트급 전함과 3척의 순양전함을 최대한 비밀리에 건조하기 시작해 1908년부터 차례로 진수하였다.

인빈시블 순양전함이 한창 건조되고 있을 때만 해도 그 압도적 크기로 인해 영국 해군에서는 주력함으로 편입을 이미 지정하였고 인빈시블을 cruiser-battleship (순양함-전함), dreadnought cruisers (드레드노트 순양함), 또는 battleship-cruiser (전함-순양함)으로 불렀는데, 유독 피셔 제독은 1908년부터 battlecruiser라고 명명했고, 1911년 "인빈시블급과 이후에 건조될 동형의 함정을 battle cruiser로 분류할 것"이라는 해군성 훈령이 내려져서[12] battlecruiser라는 이름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7.2. 확산

최초의 순양전함인 인빈시블이 나올때만 해도 드레드노트급 전함보다 순양전함을 더 많이 건조했지만, 영국과 독일 사이에 거함거포주의에 입각한 건함 경쟁이 심화되자 순양전함의 중요성이 떨어져서, 나중에는 전함 대 순양전함의 건조 비율이 3 : 1 수준으로 수직낙하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다수의 장갑순양함을 보유했던 프랑스와 러시아가 1907년 삼국 협상의 타결로 인해 사실상 영국의 동맹이 되었기에, 이제 유럽 강대국 해군의 목표는 전세계로 퍼져 활동하는 순양함들이 아니라 북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한판 붙게 될 영국과 독일의 주력 함대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순양함을 때려잡는데 최적화된 순양전함보다 주력함대 사이의 결전에 최적화된 일반 전함의 중요성이 올라간 것이다.

순양전함을 건조하고 운영했던 국가는 영국(총 15척), 독일(7척), 일본(4척),[13] 호주(1척)이다. 그리고 호주의 1척은 소속만 호주군이지 건조부터 운용까지 모두 영국이 담당하고 평시에만 호주에 배치하였다.

그리고 건조 계획을 잡았다가 완공하지 못하거나 취소한 숫자도 상당하다. 영국은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어드미럴급 순양전함이 건조 중이었으나, 종전으로 인해 3척의 어드미럴급 순양전함이 건조 중단 크리를 먹고 해체 되었으며, 이후 전간기에 G3급 순양전함을 계획하기도 했지만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에 의해 취소되었다. 독일 제국은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7척이 더 건조 중이었지만 완성을 보지 못하고 독일 제국의 패전으로 인해 해체 되었다. 일본 제국 88함대 계획에 따라 1920년부터 아마기급 순양전함 4척의 건조에 들어갔으나,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때문에 완성을 보지 못한채 해체하고 2번함인 아카기만 항공모함으로 개장했다. 미국은 1920년대 초에 비로소 렉싱턴급 순양전함 6척의 준공에 들어갔지만 1922년 타결된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때문에 실제 운용하지 못하고 2척만 항공모함으로 개장했다. 프랑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의 경우에는 계획까지는 세웠으나 실제로 건조하지 못했으며, 러시아는 이즈마일급 순양전함 4척의 건조까지는 들어갔지만 적백내전에 따른 혼란 속에 완성을 보지 못했다.

독일은 영국이 처음 순양전함의 건조에 들어가자마자 이를 따라가기 시작했는데, 독일의 첫 순양전함 4척은 "소수의 305mm (12인치) 포보다 다수의 280mm (11.1인치) 포가 더 강력하다"는 해군 수뇌부의 판단에 따라 영국의 12인치 함포보다 작은 11.1인치 주포를 탑재한 것이 특징이었다. 실제로 11 ~ 13인치 주포의 경우 1인치 정도의 구경 변화는 당시 기준으로는 1발당 화력에 있어서는 큰 차이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14]

독일의 건함 계획이 빠르게 쫒아오자 위협을 받은 영국은 드레드노트급이 진수된지 1년 만에 더 거대한 전함을 건조하기로 결정, 1909년 더욱 거대해진 함체에 343mm (13.5인치) 함포를 탑재하고 장갑도 강화한 오라이언급 전함 4척과 함께 라이온급 순양전함 2척을 건조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압도하기 위해 건조된 신형 전함들을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이라고 부른다. 영국이 슈퍼 드레드노트급 순양전함을 건조하자 독일도 데어플링어급 순양전함부터는 12인치 또는 그 이상의 주포를 탑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거함거포주의 레이스의 한복판에 있던 순양전함의 끝판을 보여준 것이 영국에서 마지막으로 건조된 순양전함이 되는 후드였다. 제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건조에 들어가 전쟁이 끝난 뒤인 1920년에 완공된 이 슈퍼 드레드노트급 순양전함은 무려 만재배수량 4만6천톤에 31노트의 고속을 냈으며,[15] 제2차 세계 대전 시절까지 영국 해군의 표준적인 전함 주포 구경이 되는 381mm (15인치) 함포를 2연장 주포탑으로 4기 탑재하여 총 8문을 확보함으로서 당대의 1급 전함인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과 동등한 화력을 확보했다. 장갑도 순양전함치고는 준수해서 현측방어의 경우에는 순양전함답지 않게 12인치급으로 두껍고 경사장갑을 채용하여 드레드노트급의 12인치 주포에 대한 방어는 기대할만 했으나, 갑판장갑이 얇아서 원거리에서 대낙각으로 날아오는 슈퍼 드레드노트급의 13 ~ 15인치 주포탄을 방어하기에는 힘들었다.

7.3. 그냥 전함입니다.

순양전함의 실전은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이루어졌다. 1914년 포클랜드 해전과 같이 멀리 해외로 장갑순양함을 때려잡으러 가는 상황에서는 순양전함이 기대했던 위력을 발휘한 반면에, 1916년 유틀란트 해전에서 전함이나 상대방 순양전함을 상대할 때는 얇은 장갑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며 독일 - 영국 양측을 합쳐 총 4척의 순양전함이 침몰되기도 했다. 많은 전쟁사 연구자들이 유틀란트 해전부터 순양전함이라는 개념이 내리막길을 걷게되었다고 지목하고 있다.

유틀란트 해전에서 영국과 독일의 순양전함들은 여기저기서 터져나갔고, 이때 영국 순양전함이 입은 피해는 너무나도 심각했다. 그래서 '이를 메우려는 용도로 이미 건조 중이던 리나운, 리펄스, 그리고 차세대 순양전함으로 건조를 시작해서 취소하기 어려웠던 후드'를 제외한 순양전함들, 다른 말로는 후드를 제외한 어드미럴급 순양전함 3척의 추가 건조를 중단했다.

그리고 이미 착공해서 취소가 어려워진 후드를 개량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쥐어짠 결과, 대응방어 가능한 순양전함을 만들면 된다는 해답을 찾아서, 후드를 대응방어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버틸만한 방어력을 확보한 역대급 크기의 초대형 순양전함으로 세상에 내놓아 열강 국가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순양전함의 문제가 적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는 장갑이므로, 장갑을 보완하고 속도를 유지하면 쓸모있는 군함으로 만들 수 있다고 계산한 것.

기존의 전함 역시 유틀란트 해전에서 큰 문제를 드러냈다. 원래대로라면 순양전함이 적의 주력을 붙들고, 주력 전함들이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데 주력 전함이 너무 느려서 전투에 참가하기도 전에 독일군이 줄행랑을 놓았던 것. 물론 진짜로 포탄도 못쏜 건 아니고 영국 주력함대는 2차례 독일 함대를 T자로 가로지르면서 포격을 가했고 2차 공격은 그냥 일방적으로 난타했지만 전장에 더 빨리 도착했으면 당연하게도 전과가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투에 참가하지도 못하는 전함은 쓸모가 없으며, 제대로 활약한 건 순양전함만큼 빠르고 대응방어가 가능한 고속전함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 뿐이었다. 해당 해전에서 퀸 엘리자베스급은 주력 함대와 동행하는 대신 순양전함 함대와 함께 움직인다는 막강한 장점으로 독일 함대를 압도해야 했지만 데이비드 비티 중장과 휴 에번토마스 소장 사이의 의사소통 문제로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전대가 순양전함 전대와 분리되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그러한 압도적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주력 전함과 동등한 장갑과 무장에 순양전함에 버금가는 속도를 갖춘 고속전함이 어디 간 것은 아니었고, 최종적으로는 발빠르게 움직여 적과 조우하여 패배에 직면한 순양전함 전대를 구원할 수 있었다. 구세대 전함이었다면 느린 발로 인해 순양전함 전대가 전멸하는 상황에 개입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해전 결과 영국은 순양전함만큼 빠른 전함을 만들면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미 최초의 순양전함인 인빈시블급 건조 논의가 진행되던 1905년 순양전함의 아버지 피셔 제독이 고속전함을 만들자는 의견을 내놓은 적이 있었다. 이 시기 조함국 또한 22,500톤 가량의 배수량에 고속성능을 갖춘 드레드노트 전함의 설계안을 내놓았지만 예산 문제로 인해 건조된 적이 없었다. 결국 뒤늦었지만 옳은 길로 나아가게 된 셈이다.[16]
영국뿐만 아니라 영국식 순양전함을 건조했거나 건조하려고 시도했던 모든 나라들이 동일한 결론을 내렸다. 대응방어가 되는 순양전함은 곧 순양전함만큼 빠른 전함, 즉 고속전함이다. 그래서 고속전함은 기존의 전함과 순양전함을 모두 대체하는 새로운 주력 전함이 되었다.

1차 대전의 마지막 시점부터 1920년대 사이는 추진부 기술이 빠르게 발전한 시기로, 예를 들어 더 높은 과열(superheated) 수증기 압력을 만들어 내는 보일러, 더 효율적인 증기 터빈, 발전된 감속 기어 기술 등이 등장하여 예전보다 더 작아진 동력 계통으로 더 높은 출력을 낼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일본의 아마기급 순양전함이나 미국의 렉싱턴급 순양전함 등 406mm (16인치) 주포를 탑재하고도 30노트 이상의 속력을 내는 거구의 순양전함이 계획되었다. 그리고 순양전함답지 않게 장갑도 전함만큼은 아니지만 전함의 방어구조를 도입하고 장갑의 재질을 개선했으며 점점 두꺼워지기 시작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전함과 순양전함은 그 시작점에서는 명확히 구분되는 고유의 특징이 있었지만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이 영국 함대의 주력이 되고 후드와 1차 개장이 완료된 리펄스가 출현한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 시점에 와서는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영국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전함 워스파이트[17]와 순양전함 리펄스를 이리저리 개장하면서 여러 아이디어를 시험한 후 그 결과물을 반영해 퀸 엘리자베스급 '퀸 엘리자베스'와 '밸리언트', 그리고 리나운급 순양전함 리나운의 최종 개장을 실시했고, 그 결과 1차 세계 대전 시기에 진수된 이들 전함들이 2차 세계 대전에서도 킹 조지 5세와 동일한 수준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수상함 세력과 정면으로 맞붙어도 전혀 밀리지 않는 성능을 갖추게 되었다. 이런 개장을 통해 얻게 된 교훈을 모두 반영한 후드의 개장안은 순양전함이라는 플랫폼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전함 기준에서도 준수한 성능을 갖춘 함선으로 탈바꿈하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의 결과, 실제로 1920 ~ 1930년대에 체결된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런던 해군 군축조약에서 전함과 순양전함은 한데 묶여 주력함(Capital Ship)이라는 분류에 속하여 똑같은 규제가 적용되었다. 국내에서는 어째서인지 군축조약을 피하기 위해 순양전함을 많이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순양전함에 적용되는 제약도 똑같았기 때문에 제한된 배수량 쿼터 안에서는 장갑이 강력한 전함만 보유하기에도 빠듯했다. 때문에 영국의 라이온급 순양전함 등 대부분의 순양전함들은 전함 대신 폐함되거나 렉싱턴급 순양전함 커레이저스급 순양전함, 아마기급 순양전함처럼 항공모함 등으로 개조되었다. 군축 조약의 제약을 피하여 많이 생산된 함선은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시기에는 중순양함이었고, 그 이후 런던 해군 군측조약 체결 후에는 중순양함에도 배수량 제한이 적용되면서 주포 구경만 작고 나머지는 중순양함과 다를 바 없는 대형 경순양함이 건조되기 시작했다.

1930년대에 들어와서 워싱턴 군축 조약 체제가 붕괴되면서 많은 신규 전함이 건조되었는데, 발전된 동력계 기술 덕분에 1930년대에 신규 건조된 전함들이 오히려 구식 순양전함보다 더 높은 최고 속력을 낼 수 있었다. 물론 이때 발전된 엔진 기술을 적용하여 순양전함을 새로 건조했다면 일반 전함보다 훨씬 더 높은 기동성을 보였겠지만, 당시 상한선이 없던 무한 건함 경쟁은 방어력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전함의 선체를 더 키우고 최신예 고출력 동력기관을 넣어서 쓸만한 속력을 얻으며 만일 속력을 더 많이 확보할 필요성이 있다면 전함의 공방능력을 유지하는 선에서 순양전함급으로 더 많은 엔진을 때려넣어 기동성을 추가로 확보한다는 고속전함의 개념을 만들었고, 덕분에 순양전함이 건조되는 일은 없었다.

이와 같은 고속전함의 순양전함 대체 현상에 대해서 순양전함이 고속전함으로 발전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물론 이미 고속전함도 한참 앞서서 따로 존재하는 개념이었으므로 해석 자체에 무리가 있으나 한때 유행했던 시각이라서 여기에 소개한다. 이런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은 순양전함의 최종 발전 형태가 미국 아이오와급 전함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오와급은 자탄 방어가 부족하기 때문에 역시 무장에 비해 장갑이 빈약하던 순양전함이나 다를 바 없는 취급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미군에서 사용하던 16인치 초중량탄의 관통 성능이 17인치급이라 동급 포탄 중 유달리 뛰어났던 것이 원인이었고, 아이오와급의 장갑은 타국 전함의 일반적인 16인치급 철갑탄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대응방어력이 모자란 것이지 없는게 전혀 아니다. 아이오와급은 16인치 45구경장 MK 6에서 AP Mark 5(포구속도 768mps, 중량 1,016kg)를 사용했을 경우 17,600야드에서 31,200야드까지(16.1 ~ 28.5km), 16인치 50구경장 MK 7에서 AP Mark 5(포구속도 823mps, 중량 1,016kg)를 사용했을 경우 21,700야드에서 32,100야드(19.8 ~ 29.3km), 16인치 45구경장 MK 6에서 사용하는 AP Mark 8(포구속도 701mps, 중량 1,225kg)에 대해서는 20,400야드에서 26,700야드(18.7 ~ 24.4km), 16인치 50구경장 MK 7에서 사용하는 AP Mark 8(포구속도 762 mps, 중량 1,225kg)에 대해는 23,600야드에서 27,400야드까지(21.6 ~ 25km)의 대응방어력을 가졌다.[18]

이런 점에서 아이오와급 전함은 사우스다코타급에서 1만톤 늘린 배수량을 속도에 투자하여 미국의 전통적인 전함과 다소 이질적인 형태로 만들어진 고속전함으로, 순양전함 분류에 속하지는 않는다.

위에서 언급한 것들과 함선의 임무 특성으로 볼 때, 비록 순양전함이 장갑순양함에서 발전한 것은 사실이나, 전함의 하위 무기체계 분류하기보다는 아종으로 분류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 영국 해군 순양전함들은 장갑이 얇더라도 동시기에 건조된 비슷한 크기의 자국군 전함들보다 배수량이 비슷하거나 더 무거웠고, 방어력이 비슷한 전함에 비해 더 큰 경우가 많았다. 고속 성능을 갖추기 위해 기관을 늘리면서 기관 중량과 부피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순양전함의 건조비용이 전함보다 비싸지는 경우도 생겼다. 이처럼 서로 구분되는 선이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탄약고와 기관부, 포탑 등 중요 구역이 자함 포탄에 대한 대응방어능력을 갖추었는가, 전체 배수량에서 장갑재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등 두 함종을 구분할 기준은 많다. 일본에서는 일본 해군 기술사관이었던 후쿠이 시즈오가 일본의 순양전함은 영어로 번역할 경우 Cruiser battleship으로 번역하는게 옳다고 말한 바 있었고, 또 아마기급을 처음부터 고속전함으로 건조하려는 목적으로 설계 및 개발하며 기존 순양전함과 구별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최종적으로 1차 세계대전 후로는 순양전함과 고속전함을 딱 떨어지게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고, 일본에서는 1931년부터 순양전함 등급을 아예 삭제하고 공고급을 전함에 편입시켰다.

군축조약에서 살아남은 순양전함들은 주력함의 부족 및 쓸만한 고속함의 필요성 때문에 대부분 대규모 개장을 2회 이상 받으면서 간신히 1선급 전력의 지위를 유지하였다. 공고급 순양전함 4척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전함으로 함종이 변경되고 대규모 개장으로 30노트의 속도를 얻어서 일본의 기준으로는 고속전함이 되었다.

영국의 경우에는 타이거급 순양전함 타이거, 어드미럴급 순양전함 후드, 리나운급 순양전함 리나운, 리펄스의 4척이 남았으나 타이거는 런던 해군 군축조약에서 제거대상으로 지목되는 바람에 해체당해서 3척이 되었다. 이들 순양전함들은 당시 영국의 경제적 문제 및 상황과 각 군함의 개장 계획 덕분에 차이가 났는데 리나운은 철저한 대개장을 2차례나 받아서 2차대전에서도 1선에서 일단 활약가능할 수준의 근대화가 이루어졌으나 리펄스는 대개장을 2차례 받은 것은 동일하나 그 수준이 낮았다. 후드의 경우에는 정비시 대체할 군함이 없어서 제대로 된 대개장을 받을 수 없었기에 노후함으로 전락한다.

그 외에 튀르키예의 야부즈 술탄 셀림(Yavuz Sultan Selim)은 2차대전이 터질 때까지 현상 유지 수준의 소소한 개량만 받았으며 전쟁 중에 튀르키예가 중립국이었으므로 대공포 장착이나 새로운 사격통제장치 장착등의 소규모 개량만 받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7.4. 2차 대전 이전, 각 열강국들의 순양전함

식민지를 가진 거의 대부분의 열강 국가가 순양전함 건조를 시도하였는데, 이 항목 전체에서 서술되는 영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순양전함은 아래와 같다.

서술되지 않은 러시아, 이탈리아와 같은 국가들은 나름대로 유용하게 써먹을 구석이 있었겠지만, 각국의 사정과 함께 해상전의 메타(?)가 바뀌면서 그대로 건조를 포기하고 만다.

7.4.1. 미국의 순양전함

미국 역시 태평양 너머 동남아에 식민지를 경영하고 있었고, 전함이 파나마 운하를 통해 대서양과 태평양을 오가야 할 필요성이 있었으므로, 순양전함을 유용하게 쓸 수 있었던 열강 국가였다. 하지만 평시의 가성비가 월등했던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인해 건조는 취소되었고, 도크에 있던 렉싱턴급 순양전함 렉싱턴급 항공모함이 되었다.

그리고 나서 1936년에 제2차 런던 해군 군축조약의 조인이 미국, 영국, 프랑스만 조인하는 식으로 사실상 실패하고 전운이 감돌자, 미국은 순양전함을 건조하는 대신, 전쟁에 더 유용한 고속전함인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을 1937년부터 건조하고, 그 후로도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아이오와급 전함이라는 걸출한 물건을 만들어 냈다.

7.4.2. 일본의 순양전함

일본의 경우, 1차 세계대전까지 조선과 만주에서만 식민지를 경영하였으므로 순양전함은 굳이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쓰시마 해전의 전훈으로 대구경 주포와 충분한 속도가 있으면 방어력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컨트롤과 진형으로 함대결전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대구경 주포의 경우 공고급의 14인치, 나가토급의 16인치 주포는 미국이나 영국보다도 앞서 실전배치되었다. 야마토급의 18.1인치는 인류 역사상 최대 구경의 함포를 개발해서 배치하는 식으로 실천했으며 방어력 쪽은 태생이 순양전함인 공고급과, 영미의 16인치 전함군에 비해 장갑 두께가 확연히 얇은 신조시 나가토급의 스펙에서 잘 드러나게 된다. 하지만 이는 쓰시마 해전 당시 러시아 전함의 방어력이 과적과 텀블홈 선체 탓에 문제를 안고 있었다는 것을 간과한 시각이었으므로 야마토급 전함에서 다시 방어력을 증대시키고 다른 전함들도 개장을 통해 일본의 기준에서는 어느 정도 방어력을 올리게 된다.

이에 나가토급 전함, 카가급 전함, 키이급 전함을 포함하는 8척의 전함과 아마기급 순양전함, 13호급 순양전함을 포함하는 8척의 순양전함을 보유하자는 목적의 88함대 계획이 추진되지만, 일본 내부의 경제력 한계와 워싱턴/런던 해군 군축조약으로 인해 주력함의 신규 건조는 중단된다. 이 때 88함대 계획의 일환으로서 건조되고 있던 아마기급 순양전함 2번함 아카기와 카가급 전함 1번함 카가가 항공모함으로 변경되어 완성되었다. 본래 목적으로는 아마기급 순양전함 2척을 항공모함으로 개장하고 카가급 전함은 모두 폐기할 예정이었지만 관동 대지진에 의해 도크에서 개장 작업중이던 아마기의 함체가 심하게 파손되어 어쩔 수 없이 아마기를 폐기하고, 아마기를 개장할 때 사용할 예정이었던 자재를 가지고 카가를 대신 개장하게 되었다.

탈조약 체제 이후의 야마토급 전함은 27노트로서 탈조약형 신전함으로서 최소한의 기동력은 충족했지만 오히려 순양전함의 사상보다도 더 후진적인 함대결전사상 속에서 일본의 전함들은, 너무 구식이라는 이유로 결전 전력에서 제외된 공고급을 제외하면 애지중지하며 아껴두기만 하느라 활약할 장소가 거의 주어지지 못했다. 그 결과 역설적으로 일본의 전함들 중 가장 강했던 나가토급 전함과 야마토급 전함은 전과는 커녕 함생의 대부분을 항구에 처박혀있기만 하다가 하나같이 허무하고 무의미한 최후를 맞이했다. 나가토는 일단 전후생존함이 되었지만 그 탓에 핵실험의 표적함으로 사용되면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고, 무츠는 항구에 정박하고 있던 도중 3번 주포탑에서 원인불명의 폭발사고가 발생해 허망하게 침몰했다. 야마토는 제대로 싸우기 위한 것도 아니고, 패전 이후 해군이 "이렇게 열심히 싸웠지만 지고 말았다"는 식으로 자신들의 위신을 세우려는 목적으로 야마토를 가라앉히기 위한 작전이었던 천일호 작전에 투입되어 무의미하게 침몰했다. 그나마 이들 중에서는 무사시가 가장 군함다운 최후를 맞았는데, 미끼가 되어 미군의 공격을 받아내는 탱커 역할을 수행하다가 미 해군 소속 항공기들의 공격을 받아 격침당했다. 물론 미 해군의 항공기들이 2시간이 넘는 긴 시간동안 6차례의 공습을 가해 격침시켰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무사시의 방어력은 대단한 수준이었지만 미군의 공격력은 그를 훨씬 상회했고, 이 전투가 전략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어 내지도 못 했다. 역설적으로 보면 이렇게나 튼튼한 전함을 가지고서 제대로 써먹을 생각은 안하고 허구헌날 항구에 처박아놓기만한 일본 제국 해군의 무능이 잘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구식이고 약했던 공고급 순양전함은 속도가 가장 빠르다는 이유로 다수의 순양함과 구축함들과 함께 발을 맞추며 수뢰전대의 탱킹 노릇을 착실히 수행하며 일본의 전함들 중 가장 많은 전과를 올렸고, 최후 역시 적과 싸우다 침몰하는 군함다운 최후를 맞았으며 자매들 중 가장 오래 살아남은 3번함 하루나는 직접적인 전투가 아닌 구레 군항 공습 당시에 격침당했으나 공고급에 속한 만큼 이미 이런저런 전과를 올린 후였다.

7.4.3. 독일의 순양전함

독일의 순양전함은 영국과는 또 다른 개념이다. 그래서 독일의 순양전함은 전혀 다른 부류에 넣기도 한다. 독일에는 Schlachtkreuzer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는 2차대전기 독일의 영국 Battlecruiser에 대한 분류 명칭이며, 1차대전 전 건조된 독일제 Battlecruiser는 Großer Kreuzer(대형 순양함)으로 분류하였다.

독일의 순양전함은 처음에는 말 그대로 전함을 고속화시키는데 치중했기 때문에 방어력에 대한 투자가 영국식 순양전함보다는 높았다. 영국 순양전함들에 비해서 화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졌지만 이는 순양전함의 화력을 낮게 잡으려고 의도한 게 아니라 초기에는 연사력이 높은 11인치급 주포가 12인치급 주포보다 좋다고 보았고 나중에는 슈퍼 드레드노트급의 등장으로 자국 군함에도 대구경 함포를 급하게 달려고 보니까 당시 독일의 대구경 함포 생산에 문제가 있어서 실천이 느려졌을 뿐이다. 독일 순양전함들은 대부분 11인치 주포를 사용하고 1915년에 취역한 데어플링어급 순양전함에서 처음으로 12인치를 사용하는데 1914년에 취역한 쾨니히급 전함도 12인치 주포를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방어력을 튼튼하게 해봐야 영국 순양전함에 비해서 방어력이 튼튼하다는 것이지 전함과 비교하면 더 얇은 것은 변함이 없다. 가령 쾨니히급의 측면이 350mm이고 몰트케급의 측면은 280mm이다. 물론 영국의 라이온급의 측면은 230mm가 안되니 영국 순양전함보다는 두껍지만 전함에 미치지는 못한다. 물론 영국 전함의 측면 방어력은 독일 전함보다는 약하므로(대신 갑판은 영국 전함들이 더 튼튼한 편이다) 측면 한정으로는 영국과 비슷한 수준까지 뽑아내는 경우도 있다. 가령 아이언 듀크급의 측면 방어력은 305mm 수준이라 몰트케보다는 두껍지만 데어플링어의 경우 거의 동급이다. 퀸 엘리자베스급은 측면이 330mm 수준으로 독일 전함보다 얇기는(대신 갑판은 QE급이 더 두껍다) 하지만 순양전함보다는 두껍다.

그 대신이라기는 뭣하지만 독일 순양전함들은 영국 순양전함들보다는 느렸다. 구체적으로는 라이온급같은 순앙전함에 비해서는 1 ~ 2노트 느리고 중유 보일러를 사용하는 리나운급이 나오면 7 ~ 8노트로 벌어진다. 한편 독일은 기존에 쓰고 있던 석탄 보일러인데, 석탄질이 전쟁중에 나쁜 것도 써서 계획보다 속력이 줄기도 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영국 해군을 따라잡고 싶다는 빌헬름 2세의 해군 오덕후질 컨셉에 맞춰 해군을 급격히 팽창시키던 독일 해군의 상황 때문이다. 유능한 기술자와 설계자들을 모아서 '쟤네가 이러이러한 물건 만드는 것 같은데 우리도 한 번 만들어봐라'라는 물주의 요구에 따라 만든 것이 원인인데 잘 모르는 상태에서 막연히 알고 있는 정보로 만들다 보니 시대를 앞서간 고속전함의 개념까지도 약간 섞여 들어갔다.

그리고 이후에 만들어진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은 독일측에서 고심끝에 고속전함으로 만들었으나, 독일 해군의 어려운 사정때문에 28cm (11인치) 3연장 주포탑을 3기 장비하는데 그쳐서, 영국측에서는 순양전함으로 분류되는 굴욕을 겪는다. 다만 방어력은 갑판이 취약해서 그렇지 현측만큼은 16인치 대응방어를 찍었기에, 정말 칼같이 분류한다면 얄짤없이 최신예 고속전함으로 분류되는 케이스이다. 그리고 샤른호르스트를 순양전함으로 알려지게 한 이유 중에는 영국 해군의 샤른호르스트급 최초 분류가 순양전함이었던 것 또한 한몫 했다. 이는 약한 주포와 고속성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영국 해군이 저런 놈한테 정규항모가 직접포격으로 격침당한 것과 자꾸 수송선단만 쓸어버리고 다니는 것 때문에 자존심 상한 것도 있지 않나 싶다.

그러나 11인치 주포는 근거리 관통력은 충분했으나 포탄 자체의 중량과 그에 따른 작약량의 부족으로 장갑관통은 했으나 내부 피해를 제대로 주지 못하므로 결국 전함은 전함으로만 저지할 수 있다라는 것이 전략병기였던 전함의 1차 존재 이유라는 것을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2번함 그나이제나우는 비스마르크급 전함과 같은 15인치급 2연장 주포탑 3기 장착으로 환장할 계획이라도 세워지긴 했지만 실현되진 못했다. 1번함 샤른호르스트의 경우 해당 계획이 발의되기 이전에 HMS 듀크 오브 요크를 위시한 영국 함선들과 싸우다 격침당했다.

7.5. 제2차 세계 대전에서의 순양전함

제2차 세계 대전 시기까지 남아서 현역으로 뛴 순양전함은 영국 3척, 튀르키예 1척으로 총 4척 뿐이었다. 게다가 손해도 막심해서 영국은 전쟁기간중 2척을 상실했다. 영국의 후드(Hood)는 1941년 비스마르크 추격전에서 격침, 리펄스(Repulse)는 1941년 말레이 해전에서 격침당한다.

그래서 전후까지 살아남은 순양전함은 2척이다. 영국은 리나운(Renown)만 종전까지 살아남았다가 1948년에 해체된다. 튀르키예의 야부즈 술탄 셀림(Yavuz Sultan Selim)은 1차 대전기에 독일로부터 튀르키예로 인도되었던 몰트케급 순양전함이다. 무려 1971년까지 현역으로 뛰다가 1973년에 해체되어 최장수 드레드노트급 순양전함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으나 2차대전 기간에는 튀르키예가 중립국이었으므로 2차대전 중에 실전투입은 못해보고 끝난다.

이렇게 순양전함의 숫자가 줄어든 이유는 영국은 1차 대전에서 3척의 순양전함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전간기에는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때문에 여러 순양전함을 해체하거나 항공모함으로 개장했고, 독일은 1차 대전에서 패망하면서 순양전함을 모두 잃었으며, 일본은 남아있던 공고급 순양전함 4척을 여러 차례 개장하여 고속전함으로 탈바꿈 시켰기 때문이다. 이중에서 독일 제국의 순양전함들이 참 허무하게 사라졌는데 데어플링어급 순양전함 1척은 1916년 유틀란트 해전에서 큰 손상을 잃고 자침, 1척은 1914년 튀르키예에 공여, 남은 5척은 1차 대전에서 항복한 뒤 협상국에게 빼앗기기 전에 자침하고 건조중이던 군함들은 그대로 스크랩되면서 튀르키예로 넘어간 1척 빼고는 생존자가 없다.

다만 미국의 경우 대형순양함이라는 개념 하에 전함보다는 작고 중순양함보다는 작은 알래스카급 대형순양함 2척을 건조해서 2차 대전 중에 사용했는데, 이것을 순양전함의 후손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다만 알래스카급 대형순양함은 만재배수량이 3만5천톤으로 동시대 전함이 최소 5만톤 근처에서 놀던 것에 비해 크기가 많이 작고, 12인치 주포를 탑재해서 동시대 전함의 356mm ~ 457mm (14인치 ~ 18인치) 주포에 비해 화력도 빈약하며, 최고속력도 33노트로 동시대 중순양함과 비슷한 수준이라서, "동시대 전함과 같은 크기에 같은 무장을 하고, 최소 동시대 순양함보다 비슷하거나 가능하면 더 빠른 군함"이라는 순양전함의 정의에 들어맞지 않는다. 애초부터 미국의 대형순양함은 중순양함 이하의 보조함들을 사냥하는 담당용으로 만들어졌으며 함체의 기본도 중순양함을 확대한 것이라 순양전함으로 보기가 매우 어렵다. 네덜란드는 소형 순양전함을 계획했고 일본 제국은 미국과 개념이 조금 다른 대형순양함을 계획하기는 했지만 모두 완성을 보지 못했다.

그리하여 2차 세계 대전기에는 이미 사장된 함급이었고 일부 국가에 구식 군함으로 남아있었던 순양전함이지만 특유의 고속성능은 의외의 국면에서 진가를 드러내게 된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구식 전함들은 무용지물에 가까운 신세로 전락했다. 일본군의 나가토급 전함 무츠 동부 솔로몬 해전에 참가했지만 너무 느려서 순양함들을 쫓아가지 못하고 낙오되었고, 영국군의 리벤지급 전함도 너무 느려서 선단 호위나 항구를 지키는 부유포대 등으로 쓰이는 등 영 좋지 않은 대우를 받았다. 미국의 표준형 전함 같은 구식전함들도 다를 게 없어서, 주력함대와 함께 바다를 누비는 것은 아예 불가능했다. 느린 속도 때문에 다른 배들의 발목을 잡는다는 이유로 미드웨이 해전에 참가하지도 못할 정도였다. 그 대신 미 해군은 느린 표준형 전함들을 지상화력지원함으로 알뜰하게 써먹었다. 이 전함들은 구식이었지만 그만큼 사격훈련을 통한 제원만큼은 잔뜩 쌓여있었고 이것을 활용하여 상륙 전 사전포격을 담당하면서 더욱 숙련도가 쌓여 이 표준형 전함들은 이후 고속전함들이 지상화력지원에 참여했을 때도 기존에 누적된 제원과 그로인한 더 우수한 명중률을 기반으로 고속전함들보다 더 많은 유효타를 냈다. 아예 결전병기랍시고 활약상 자체가 없는 일본 전함들과는 다르다.

그러나 순양전함은 빠른 속도 덕분에 항공모함을 쫓아갈 수 있었고, 화력도 상당했기에 모조리 전선에 투입되었다. 아무리 개장해도 본판이 순양전함이라 방어력이 떨어졌지만, 연합군도 추축군도 그런 단점은 무시했다. 신형 고속전함과 비교해도 더 빠르고, 화력도 전함급인 군함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동시대에 만들어진 구식 전함들이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한 것과 비교하면 천지차이다.

태평양에서는 미국과 일본의 항공모함들이 주력이었기에 조연으로 밀렸지만, 일본군의 공고급 순양전함은 일본 전함 중에서는 가장 활약한 수훈함이었다. 구식이란 이유로 함대결전에서 제외되었지만, 어차피 기존 전함들중에서는 가장 빠른 배가 야마토급 전함의 27노트라 속력을 감안하면 일본군에서 30노트급 속력을 내는 정규 항공모함을 호위할 수 있는 전함은 공고급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본군에는 공고급과 동행할 수 있는 고속전함이 한 척도 없었기에, 공고급만 죽어라 굴러야 했다.

미군은 결국 방어력이 부족한 순양전함을 만들지 않았지만, 만약 한 척이라도 있었다면 항공모함을 호위하기 위해서라도 분명히 전선에 투입했을 것이다. 고속전함이라는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조차도 엔터프라이즈를 따라가지 못해서 호위임무 수행이 어려웠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미국이 순양전함 이상의 속력을 지닌 고속전함 아이오와급 전함을 손에 넣는 건 전쟁 말기의 일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있었다면' 그랬을 것이라는 정도지 미국이 순양전함이 반드시 필요했다고 여겼던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전쟁이 터지고 나서 미국 조선소들의 최우선순위는 항공모함으로 거의 즉시 넘어갔고 전함들은 후순위로 밀렸으며 그나마도 순양전함은 설계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 중순양함 킬러로 알래스카급 대형순양함이라는 묘한 함종이 등장했다.

미국에 순양전함이 없어서 중순양함을 써먹은 바람에 인디애나폴리스 침몰사건이 발생했다는 주장도 있는 모양이지만 인디애나폴리스가 격침된 사건은 순양전함과는 관련이 없다. 인디애나폴리스가 단독으로 움직인 것은 기밀작전이었던데다 당시 일본군 잠수함들이 거의 씨가 말랐다고 여겼던 오판 탓이 더 크다. 다만 순양전함은 주력함으로 분류되므로, 스크랩하러 가는게 아닌 이상은 전투력이 0인 상태에서도 절대 혼자 다니지 않으므로, 격침은 될지언정 구출조차 못받는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대서양에서는 항공모함이 조연이었기에 순양전함들도 전장에 나설 기회가 꽤 많았고 매우 소중한 전력이었다. 고속 순항이 가능했던 리나운급 순양전함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은 전투와 초계는 물론, 전쟁터 뒷편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보급 작전과 요인 수송 업무를 평시처럼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영국 해군의 수훈함이 된다.

그러나 약한 방어력을 극복하지는 못했기에, 적의 전함과 충돌하면 큰 피해를 면할 수 없었다. 영국군의 후드가 비스마르크 추격전에서 격침되고, 일본군의 키리시마 과달카날 해전에서 미군 전함 워싱턴에게 격침된 게 그 예다. 양쪽 모두 최신형 고속전함을 상대하다가 당한 케이스다. 그리고 심지어 공고급 히에이는 겨우 뉴올리언스급 중순양함의 8인치포에 측면을 뚫려 중파당했다. 이는 개장시 갑판장갑만 강화하고 측면장갑은 떼어낸 장갑 도로 붙인 거 외에는 거의 손대지 않은 것과 장갑이 두꺼워봤자 152mm급인데다 포구까지 크게 여러 곳 뚫린 부포곽을 그대로 유지했다는 약점을 보유한 상태에서 야간의 초근접전 겸 난전, 그리고 뉴올리언스급 중순양함의 8인치의 초근접화력 위력까지 감안해야 하지만 그걸 생각해도 좀 어이없는 결과였다.

7.6. 2차 대전 이후

현대에 와서는 비행기와 대함 미사일의 발전으로 인해 고속전함도 힘을 못쓰는지라 사실상 순양전함의 맥이 끊어진 상태다. 게다가 만재배수량 5만톤이나 그 이상가는 거대한 군함을 만들 자원과 돈이 있다면 순양전함보다는 항공모함을 만드는 쪽이 훨씬 낫다.

전함의 시대가 끝난 전후에는 모든 순양전함이 사라졌지만, 터키에 남은 독일산 순양전함 야부츠는 원래 몰트케급 순양전함 2번함 괴벤이라 매우 오래되었으나 전후에도 상당기간 활동하면서 터키 해군의 상징으로 있다가 해체된다.

그러나 2차 대전에서 방어력을 희생한 대신 화력을 유지하며 고속성능을 발휘한 순양전함은, 수훈함으로 활약하며 각국 해군에 좋은 인상을 남겼고, 항공기와 어뢰의 발달로 방어력의 향상이 유의미하게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에, 전후에 건조된 강대국 해군 주력함들의 방향성을 결정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아이러니한 것은 대부분의 현대 군함들의 특징이 순양전함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우선 속도가 옛날 군함보다 훨씬 빠른 것은 당연하고, 함포보다 훨씬 강한데다 사거리와 정확도도 비교가 안되는 대함 미사일의 탄생과 발전으로 옛날 전함처럼 장갑을 두껍게 해도 대응방어가 불가능에 가깝게 되었다. 때문에 현대 해전은 일단 미사일을 한 방 만이라도 맞추는데 성공한다면 일격에 적함을 무력화할 수 있지만, 자신도 한 방만 맞으면 박살나는 유리대포간의 싸움에 가까운 양상을 보인다.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 구축함이 엑조세 미사일 1발에 격침되고, 모스크바함 격침 사건에서도 1만 톤이 넘는 슬라바급 순양함이 미사일 한 방에 격침되는 등, 체급이 큰 함선도 미사일에 맞으면 끝장이다.

그래서 현대 군함은 순양전함의 컨셉인 강한 화력, 빠른 속도, 약한 장갑이라는 특징에 모두 들어맞는다. 다른 점이 있다면, 과거 순양전함은 적이 공격하면 피하거나 맞거나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지만, 현대 군함은 2차 대전 시기 군힘들보다 더 발전한 레이더[19], 적이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게 하는 스텔스, 적이 쏜 미사일에 맞기 전에 파괴하는 함대공 미사일, CIWS 등이 있어서 순양전함보다 교전 중 선택지가 다양하다.

그래도 1970 ~ 1980년대 소련에서 건조한 만재배수량 2만8천톤의 키로프급 핵추진 순양함 4척을 대체로 순양전함으로 분류하고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 영문 위키피디아의 관련 항목명이 Kirov-class battlecruiser (키로프급 순양전함)이다.

8. 각국의 순양전함들

사실 순양전함을 운용한 나라는 별로 많지 않다. 자체 건조해 운용한 나라는 영국과 독일뿐이며, 외국에서 도입해 운용한 나라도 일본과[20] 터키 두 나라뿐이다. 건조 시도를 한 나라까지 포함해도 미국과 러시아가 추가되는 정도다.

계획 단계에서 취소되었거나 건조 도중에 중단되어서, 함급 자체가 완성되지 못한 경우는 † 표기[21]
함급의 일부 혹은 전부가 항공모함으로 개장된 경우는 ☆ 표기[22]

8.1. 마지막으로 건조된 순양전함 후드

파일:attachment/HMS_Hood_March_17_1924.jpg
1924년. 후드

순양전함들 중 유명한 것은 나치 독일 전함 비스마르크에게 격침당한 것으로 유명한(…) 영국 해군 어드미럴급 순양전함 후드(HMS HOOD)가 있다.

후드의 전장은 262.3m이며 전폭은 31.8m이고, 이는 동시대의 다른 군함들을 뛰어넘는 수치이며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각국의 건함이 억제되던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세계 최대의 전함으로 군림했다. 이게 얼마나 큰지 실감이 안 나면 배의 크기를 결정하는 배수량 기준상 역사상 최대의 전함인 야마토가 전장 263m, 전폭 38.9m라는 것을 상기해보자. 함체의 길이만 본다면 미국의 아이오와급 전함이 전장 270m로, 실제 건조된 전함 중 가장 긴데도 별로 차이가 나지 않을 지경이다.

후드는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과 짝을 이루는 순양전함으로 계획되었으며,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과 동일한 주무장인 15인치 2연장 주포탑 4기 총 8문을 장비했고, 무려 31노트라는 어마어마한 속력을 낼 수 있었다. 이러면서도 12인치 경사장갑이라는 상당한 수준의 장갑을 둘렀기에 그 방어력은 순양전함치고는 대단했고, 사실상 고속전함에 가까운 군함이 되었다. 전함급의 화력과 방어력을 유지하면서 31노트의 속력을 내다 보니 세계 최대의 전함급 주력함이 되고 말았지만.

후드가 이렇게 된 것은 원래 후드가 독일 해군이 계획한 막켄젠급 순양전함에 대항해서 건조되었다가, 기공 후 얼마되지 않아 유틀란트 해전이 터지자 그 전훈을 교훈삼아 대대적인 설계변경으로 상당한 방어력 강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렇게 장갑을 둘렀어도 1920년에 31노트, 낡아서 출력이 떨어진 1941년에는 28노트였다. 최대배수량이 47,430톤임을 감안하면 대단히 빠른 셈이다. 그저 수치만으로 보면 거의 아이오와급 전함과 화력 빼고는 거의 대등해보이는 수준의 고속전함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같은 시대에 최강급 전함들과 비교해보면, 미국 전함은 방어력이 좋지만 속도가 20노트 정도여서 너무 느리고, 영국의 넬슨급 전함도 23노트 정도에 불과하며, 일본의 나가토급 전함조차 26노트여서 후드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주포가 15인치이므로 16인치급 주포를 가진 전함보다 화력 면에서 뒤지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방어력이 강화된 데다가 속력이 워낙 압도적이니 충분한 가치를 지닌 셈이다. 덤으로 외형까지 멋지게 생겼기에, 영국 국민들로부터 마이티 후드(Mighty Hood)라 불리며 사랑받았으며, '가장 아름다운 군함'이라고 불리기도 했을 정도였다.
파일:attachment/Sinking_of_HMS_Hood.jpg
굉침하는 후드

하지만 어디까지나 건조 중의 설계변경이었기 때문에 유틀란트 해전의 전훈을 완전히 반영하지는 못했고, 대전종료 후 해군의 휴일 기간동안 약간의 개장을 받기는 했으나 2차대전 발발직전까지 영국 해군의 사실상 최강의 전함이었고 동급함도 없었던 탓에 전력에서 하루라도 제외할 수 없어 결국 전쟁발발 때까지 실질적인 장갑 강화 개장은 커녕 제대로 된 대정비 한번 받지 못했다. 넬슨급의 경우 16인치 주포를 가져서 일단 화력은 더 강력하지만 속도가 치명적으로 느리다는 등의 각종 이유로 인해 후드의 대체역할을 담당할 수 없었다.

그나마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이후에도 타이거급 순양전함 타이거를 은근슬쩍 남겨서 부족하나마 후드의 정비시 대체품으로 사용했으나 런던 해군 군축조약으로 타이거가 조약상 반드시 해체하라고 지적을 받아서 해체되었다. 그 이후에는 제대로 정비를 받는 일도 어려워져서 점점 노후화된 낡은 군함이 되고 말았다.

결국 영국도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을 비롯하여 낡은 군함들을 대개장하기 시작하면서 후드도 대개장 대상에 올랐다. 하지만 대개장 노하우도 있어야 하고 후드가 부재시 대체할 함선도 필요하므로 일단 리나운급 순양전함 1번함 리나운이 1936 ~ 1939년에 먼저 개장이 되면서 후드의 빈자리를 어느 정도 메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그래서 리나운의 대개장이 완료되는 1939년부터 1942년까지 리펄스와 함께 후드도 대개장을 받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대개장을 받을 시기가 오자 2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리펄스와 후드의 개장은 무산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실전에 계속 투입되면서 고장난 부위를 2 ~ 3개월 수준의 긴급수리로 대강 움직일 수준으로 때우다가 비스마르크 추격전에 참가해 비스마르크와 직접 교전하나 결국 머피의 법칙대로 갑판장갑과 현측장갑에서 약점으로 지적당해왔던 곳을 근거리에서 2 ~ 3발 피탄당했다. 특히 흘수선 아래에 명중한 비스마르크의 주포탄이 그대로 4인치 양용포 탄약고를 관통후 유폭시켰으며 양용포 탄약고가 폭발하면서 후방 주포탑 탄약고가 연쇄폭발하면서 거대한 대폭발이 일어나면서 함선이 두동강이 나서 3분만에 순식간에 격침당했다.

그러나 개장 계획의 내용을 보면, 개장이 되었어도 후드의 운명을 바꿀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특히 흘수선 아래에 맞은 주포탄의 경우에는 포탄의 피탄확률이 매우 적어서 보통 어뢰공격에 대비하는 구역이라 군함이 급선회를 하면서 약간 기울어져야 수면위로 드러나는 곳인데 말 그대로 잠깐 보인 약점을 정확하게 저격당한 꼴이라 동일한 사태가 일어나면 침몰을 막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상세한 것은 후드(순양전함) 항목을 참고할 것.

8.2. 애매한 경우들

9. 기타

구 일본 해군의 야마토급 전함 야마토는 모든 면에서 전함이 틀림없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일본 매체에서 심심하면 Battlecruiser로 번역하곤 한다. 대표적인게 ' 우주전함 야마토'를 'Space Battlecruiser Yamato'로 번역하는 것.

10. 각종 매체의 순양전함

실제의 순양전함은 일시적으로 쓰인 함종에 불과했으나, 의외로 미디어에서는 'Battlecruiser'라는 명칭의 부류는 상당히 흔히 볼 수 있다. 어감이 좋아서인듯 하다. 한국어로도 그냥 순양함이나 전함보다는 순양전함이라고 하면 좀 더 뭔가 있어보이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는데 영문으로도 비슷할 듯 하다. 사실 순양함도 전함도 안 나오고 함급 분류도 엄밀히 하지 않는 성 싶은데 대형함이라고는 순양전함만 나오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스타크래프트. 스타워즈나 스타 트렉 등 우주배경의 SF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SF 에서는 주로 초대형 전투함으로 나오지만 항공모함처럼 우주전투기가 배틀크루저의 베이에서 발진하는 경우도 있다.

원래는 전함과 체급 차이가 애매하지만 미디어에 등장할 때는 전함과 순양함 사이의 존재로 등장하기도 한다.

10.1. 홈월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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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의 테란 전투순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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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EVE 온라인

순양함과 전함 사이의 함급으로 크기는 순양함과 비슷하거나 약간 크다. Combat Battlecruiser와 Attack Battlecruiser로 나뉘는데, 전자는 순양함의 능력을 강화한 전투순양함에 가깝고, 후자는 순양함 체급에 전함 함포가 달려 화력은 매우 뛰어나고 어쨌든간 체급이 순양함이라 기동성도 뛰어나지만 탱킹은 동 레벨 전투순양함보다 약한 순양전함에 가깝다. 전자의 함급은 3렙 미션에서 무난무난하게 쓰이고, 후자의 함급은 미션에서는 절대 못 써먹으면서 PVP에선 쓸만하다.

10.4. 스타워즈

퍼스트 오더가 운용하는 리서전트급 순양전함이 유일하다. 리서전트급 순양전함 외에는 순양전함이 없다.

10.5. 메탈슬러그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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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모니터함에 가깝다.


[1] 독일은 Schlacht(battle) Kreuzer(cruiser), 프랑스의 경우 Croiseur(cruiser) de(of) bataille(battle), 러시아의 경우 Линейный(linear) крейсер(cruiser)(전열순양함), 중국은 전열 순양함 [2] 영국 해군성 주간명령 351호, 1911년 11월 4일자의 내용: 4 November 1911, Admiralty Weekly Order No. 351 laid down the decision that "All cruisers of the Invincible and later type are, for the future, to be described and classified as battlecruisers to distinguish them from armoured cruisers of the older type."(구식 장갑순양함들과 구분하기 위해 인빈시블과 같은 순양함(All cruisers of the Invincible and later type)들은 Battlecruiser로 분류한다.) [3] 하지만 보통 워리어같은 배수량 큰 장갑함이나 전 드레드노트급 전함부터는 한 번 해역에 배치되면 어지간해선 연료비와 정비비 등의 이유로 다른 쪽으로는 잘 안 가고 출항하는 것 자체도 큰일이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Battlecruiser의 건조 목적 자체가 군비경쟁이 가속화되는 시대에 건조하고 배치하는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장갑에 대량으로 투자했기에 속도와 연비가 떨어지는 전 드레드노트와 드레드노트급 전함 대신 필요할 때 순양함들과 팀을 이뤄 원하는 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쓸 수 있으며 운용에 필요한 기지 수도 줄일 수 있는 전함급 화력을 가진 순양함급의 속도와 항속거리를 가진 함을 원했기에 나온 함종이다. [4] 예컨대 '물리', '경제' 같은 한자 단어들은 한자 자체의 뜻과는 무관하게, 서양 물리학 및 경제학을 선도적으로 도입하여 번역한 일본의 번역례를 그대로 따라 중국어나 한국어에서도 쓰이고 있다. [5] 비록 '함' 자가 붙은 선박에도 전투 목적이 아닌 지원 목적으로 건조된 배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순양함'이라는 함급은 분명하게 일정 이상 구경의 함포를 탑재하고 적과의 직접적인 교전을 주목적으로 탄생한 함종이다. [6] 참고로 전함(battleship)이라는 단어는 근대적인 전함 개념이 정착되기 전까지의 옛 문헌에서 '전함'은 군함과 동의어로 쓰였다. 지금도 전함을 이런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엄밀히 말해서 틀린 것은 아니다. 국어사전에 실린 전함의 뜻에는 군함 전반을 통칭하는 의미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근대 해군의 함종 중 하나인 전함과 혼동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특히 밀리터리 및 전문성 높은 역사 관련 문헌에서는 구별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며, 이런 책에서는 전함을 군함 전반을 통칭하는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전차에 charriot라는 의미가 있다고 해서, 현대군사학에서 그 의미가 엄밀하게 정의된 '전차'라는 단어를 군용차량 전반으로 말하지 않는다. [7] 전투함은 구축함, 프리깃, 순양함, 전함 등 전투에 사용되는 모든 해군함정을 일반적으로 부르는 단어이다. [8] John Arbuthnot "Jacky" Fisher, 1st Baron Fisher of Kilverstone [9] 사우스다코타급 전함도 최고속력이 24노트 이상인 관계로 고속전함으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이것은 1910 ~ 1920년대의 옛날 기준을 그대로 가져다 썼기 때문이고, 엔진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이미 1930년대부터 모든 신규 전함이 27노트를 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아이오와급이 등장한 1940년대에 "동시대 일반 전함보다 빠르고 동시대 순양함과 같은 수준의 속력을 내는 전함"이라는 고속전함의 일반적인 기준을 대입한다면 최고속력이 33노트는 되어야 했다. 다만 이렇게 되면 비스마르크급 전함, 리토리오급 전함, 리슐리외급 전함같은 당대의 1급 전함들이 모조리 탈락하는 등 고속전함에 들어가는 전함의 종류와 숫자가 너무 한정적이라서 옛날 기준으로 적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10] 참고로 2차 대전 시기 육군 전차 장갑의 경우에는 대응방어를 위해 최소한 주포 구경의 2배, 가능하면 3배 두께 이상이 되어야 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전차의 경우 표준 교전 거리를 짧게 잡는 관계로 공기 저항에 의한 포탄의 감속이 적어 착탄시 철갑탄의 속력이 빠르고 그만큼 관통력도 높기 때문이다. [11] 현대의 한국 해군에 대입하자면 해군참모총장에 해당되는 자리이다. 해군성 장관(First Lord of the Admiralty) 자리를 내각의 정치인이 차지하는 것과는 달리 제1해군경 자리에는 전문성이 있는 해군 제독이 임명되었다. [12] 참고로 이 당시 해군성 장관은 젊은 시절의 윈스턴 처칠이었다. [13] 4척 모두 공고급 순양전함이다. [14] 1인치 수준의 구경차이가 큰 영향을 주는 초중량탄이나 고속탄의 개념을 대구경 함포에 제대로 적용 및 실용화한 시기는 아무리 빨리 잡아도 전간기 시대부터다. [15] 동시대 순양함의 최고속력이 보통 25노트였기 때문에, 후드에게서 도망칠수 있는 군함은 사실상 없다시피 했다. [16] 출처: British and German Battlecruisers, pp. 88-89 [17] 그래서 워스파이트의 개장 스펙이 퀸 엘리자베스나 밸리언트보다 약하다. [18] Iowa Class Battleships: Their Design, Weapons and Equipment, 128쪽, Battleships: United States Battleships, 1935-1992, 147쪽. [19] 어드미럴급 순양전함, 리나운급 순양전함등 2차대전때의 개장된 순양전함에도 초기형 레이더는 탑재되어 있었다. [20] 공고급 순양전함 중 1번함 공고를 제외한 나머지 함은 일본에서 건조되긴 했지만, 기술과 설계도는 영국에서 제공받았으니 자체 건조라 보기는 다소 무리가 있다. 일본의 독자적인 기술을 가지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체 건조가 이루어질 예정이었던 아마기급 순양전함은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에 의해 계획대로 건조되지 못하고 2번함 아카기가 건조 도중 항공모함으로 설계가 변경되어 완성됐기 때문에 순양전함은 공고급밖에 없게 되었다. 다만 군축조약이 아니었다면 실제로 아마기급을 건조해서 운용했을 것이기 때문에 당시의 일본은 순양전함을 건조할 능력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21] 해당 함급에서 한 척이라도 완성된 경우 표기하지 않는다. [22] 고속의 대형함이라는 특징 때문에,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칼을 맞게 된 많은 순양전함들이 건함 도중 항공모함으로 개조됐다. 지못미스런 일이지만, 이렇게 개조된 항공모함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대활약을 하거나, 선체 자체가 넉넉해서 전쟁기간의 최신예 정규 항공모함과 동등한 성능을 자랑한 덕분에 전간기부터 종전시까지 현역으로 활동한다던지, 대혈투나 난투극에서 목숨걸고 싸우는 등 밥값은 했다. 참고로, 순양전함은 빠른 속력을 내기 위해 비슷한 체급의 전함보다 훨씬 더 길이가 길게 설계되며 강력한 기관부가 탑재되기 때문에 순양전함이 항공모함으로 개장될 경우 비행갑판을 보다 길게 할 수 있고, 기동력도 빨라 진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순양전함의 고질적 단점인 약한 방어력은 항공모함이라는 함종 자체가 애초에 방어력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함종이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러다보니 전함의 함체보다 순양전함의 함체가 항공모함으로 사용하기에는 더 적합했다. [23] 전함에는 A를, 순양전함에는 B를 붙였다. 전자의 예시로는 흔히 '슈퍼 야마토급'이라고 불리는 A-150 전함을 들 수 있고, 후자의 예시는 공고급 순양전함의 설계에 영향을 주었던 B-40 순양전함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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