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 대전의 독일 해군 군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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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제국 해군과 오스만 제국 해군의 순양전함.2. 제원[1]
몰트케급 순양전함 Schlachtkreuzer der Moltke-Klasse |
||
이전급 | 폰 데어 탄 | |
다음급 | 자이틀리츠 | |
설계배수량 | 22,979톤 | |
만재배수량 | 25,400톤 | |
전장 | 186.6m | |
전폭 | 29.4m | |
흘수 | 9.19m | |
항속거리 | 14노트 (약 26km/h) 순항 시 7,630km | |
출력 | 51,289SHP | |
최고 속력 (설계안 기준) |
25.5노트 (약 47.2km/h) | |
동력 | 기관 | 수관식 보일러 24기 |
증기 터빈 4기 | ||
추진 | 4축 프로펠러 | |
승조원 | 장교 | 43명 |
수병 | 1,010명 | |
무장 | 주포 | 2연장 28cm SK L/50 함포 5기 |
부포 | 15cm SK L/45 함포 12문 | |
8.8cm SK L/45 함포 12문 | ||
어뢰 | 500mm 어뢰 발사관 4문 | |
장갑 | 측면 | 76 ~ 280mm |
포좌 | 230mm | |
포탑 | ||
갑판 | 25 ~ 76mm |
3. 동형함 목록
함명 | 취역 | 비고 |
몰트케 (Moltke) | 1911년 8월 30일 | 1919년 6월 21일 자침 |
괴벤 (Goeben) → 야부즈 술탄 셀림 (Yavuz Sultan Selim) |
1912년 7월 2일 | 오스만 제국이 1914년 8월 16일부터 1954년 11월 14일까지 운용 후 1971년 스크랩 |
4. 개발
Moltke-Klasse Großer Kreuzer
1907년 5월, 독일해군은 당시 보유하고 있던 유일한 순양전함(독일기준 장갑순양함)인 폰 데어 탄의 설계를 확장한 신형 순양전함의 건조를 결정한다. 이에 따라 그 이듬해인 1908년, 4천 4백만 마르크에 달하는 예산이 할당되었으며, 해군본부에서 무장을 강화하자는 의견이 제출되면서 폰 데어 탄의 무장인 11인치 포를 전함급의 무장인 12인치(30.5cm) 포로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가 진행된다. 그러나 해군의 수장이었던 알프레트 폰 티르피츠 제독과 해군설계국은 다수의 중구경 포 > 소수의 대구경 포 이론을 주장하면서 종전의 11인치 포 10문이 12인치 포 8문보다 낫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해군본부는 초기에는 12인치 안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결국 이에 따라 11인치 2연장 포탑 5기를 탑재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다시 잡히게 된다.
또한 순양전함이라는 개발 컨셉에 맞게, 해군은 최소한 24노트 이상의 속력을 요구했는데 이러한 고속화는 다른 순양전함과 다를 바 없으나 정통적인(=영국식) 순양전함과는 달리 장갑 또한 폰 데어 탄보다 강화되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 하다.
이무렵에는 영국과 독일이 군비 경쟁의 일환으로 경쟁적으로 건함을 진행할 시점이었으며, 독일은 그 악명 높은 함대법으로 영국의 해군 절대강국으로서의 지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에 따라 보다 강력한 함선을 보유해야 한다는 해군의 거듭된 요구에 신형 순양전함의 설계는 계속 변경되었고, 이에 따라 배수량이 크게 증가하게 되었으며, 건조 척수도 2척으로 결정된다.
이렇게 건조가 결정된 두 척의 신형 순양전함은 "순양함 G"와 "순양함 H"라는 계약 이름을 부여받아 블롬 & 포스에서 건조가 진행된다. "순양함 G"는 1908년 9월 17일 예명으로 건조번호 200번을 부여받고 최종적으로 1910년 4월 7일 진수되었으며, 1911년 9월 30일 취역, 이 1번함에는 헬무트 폰 몰트케 원수의 이름이 부여되었다. 한편 "순양함 H"는 1909년 4월 8일 건조번호 201번을 부여받고 최종적으로 1911년 3월 28일 진수, 1912년 7월 2일 취역,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활약한 프로이센 장군 아우구스트 카를 폰 괴벤(August Karl von Goeben) 장군의 이름을 따 SMS 괴벤으로 명명된다. 이렇게 완성된 순양전함들은 기존에 영국이 보유한 순양전함들보다 우수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들이 건조되기 시작한 이후 영국 또한 이들에 대응하기 위해여 신형 순양전함을 건조하게 된다.
5. 활동
2번함 괴벤의 후방포탑
네임쉽인 SMS 몰트케와 SMS 괴벤이 건조되었는데, 이중 몰트케는 전쟁전에는 원래 독일 순양전함 함대의 기함이었으나 자이들리츠급 순양전함이 건조되면서 기함자리를 내준다. 빌헬름 2세가 러시아쪽으로 요트타고 유람할 때 호위함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후, 프란츠 폰 히퍼 소장의 제1 정찰함대 소속으로 활동하며 영국 해군을 도발하려고 영국 서부해안가를 포격한다. 1914년, 헬리골란트-바이트 해전에서 조류탓에 뒤늦게 전장에 도달했고 기함을 잃고 후퇴하는 아군 순양함과 어뢰정을 호위했다. 이후에도 꾸준한 도발활동으로 발발한 도거 뱅크 해전에서 영국함대를 공격했지만 전황을 불리했다. 다만 몰트케보다는 기함 자이들리츠가 샌드백이 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무사했고, 자이들리츠가 라이온에게 명중타를 낸 뒤 비티제독의 함대가 무력화된 장갑순양함 블뤼허를 표적을 바꿨고 나머지 제1 정찰함대는 겨우 후퇴 할 수 있게 되었다. 독일이 동쪽에서 거슬리게 하는 러시아 발트함대를 압박하기 위해 발트해로 이동했고 러시아 전드레드노트 전함 슬라바를 향해 포탄을 날렸고 러시아 해군이 무력화되었다고 판단, 독일 함대가 독일로 귀항한다.[2] 1916년, 유틀란트 해전에서 몰트케는 영국 순양전함 HMS 타이거에게 2발을 명중시켰지만 별 피해가 없었고 다시 사격해 포탑에 피해를 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의 고속전함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이 등장했고 HMS 말라야, HMS 밸리언트, HMS 워스파이트의 강력한 15인치포에 맞아 큰 피해를 입고 겨우 후퇴한다. 야간전 중 몰트케는 자이틀리츠와 함께 이동하다 자이틀리츠가 뒤처져 시야에서 사라진 이후 독자적으로 행동했다. 대함대의 전함 전열 사이로 몰래 지나가려던 몰트케는 여의치 않자 빠른 속도를 활용해 대함대를 앞지른 후 탈출에 성공했다. 몰트케는 겨우 2개의 포탑이 작동했고 1,000톤의 물이 배안으로 들어오는 피해를 입었다.[3] 유틀란트 해전 이후, 독일 해군은 큰 해전없이 않고 종전되었고 다른 독일제국 전함들과 같이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스캐퍼 플로에서 자침했다.
지중해에서 활동하는 괴벤과 경순양함 브레슬라우
튀르키예 해군 소속 야부즈 술탄 셀림
2번함인 괴벤은 발칸 전쟁당시 독일 제국이 경순양함 브레슬라우와 함께 파견되었고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몰려온 프랑스 해군에게 쫓겨서 독일로 귀환하기 어려워지자 오스만 제국이 독일 편에 서서 1차대전에 참전하는 조건으로 경순양함 SMS 브레슬라우와 함께 오스만 제국 해군에 인도되어 야부즈 술탄 셀림(Yavuz Sultan Selim ; 냉혹왕 셀림)으로 개명되었다.[4] 흑해에 위치한 러시아 해군의 전함 포템킨(!)[5]과의 교전과 러시아의 신형 전함인 임페라트리사 마리야급 2척, 임페라트리차 마리야(Imperatritsa Mariya)와 임페라트리차 예카트리나 벨리키야(Imperatritsa Ekaterina Velikaya)과 혈전을 벌이기도 했다.[6] 러시아 제국이 붕괴하고 나서 적백내전 발발 이후에도 별 대단한 활동을 하지 않았고 제2차 세계 대전때도 큰 활동을 하지 않고 소련 해군이 튀르키예 영해로 오지 못하게 하는 정도로만 운항했다. 튀르키예가 NATO에 가입한 뒤 프랑스에서 근대화 개장을 했고 무려 1960년대까지 현역(!!!)으로 활동, 최장수 드레드노트급 순양전함으로 역사에 남게 된다. [7] 결국 1971년, 스크랩된다.
이스탄불에 정박한 야부즈 술탄 셀림
적백내전때 세바스토폴에서 찍은 사진
튀르키예에 남아 있는 야부즈 술탄 셀림의 프로펠러
6. 매체에서의 등장
월드오브워쉽에서 4티어 전함티어로 등장한다.
[1]
몰트케 기준
[2]
다만 독일이 더 많은 피해를 입었고(어뢰정 피해가 컸다.) 이 전투는 러시아가 이겼다. 하지만 독일은 러시아 해군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작전을 달성했다고 판단했다. 러시아 전함 슬라바(Slava)는 보로디노(Borodino)급 전드레드노트급 전함(5척이 건조되었고 3척이
러일전쟁에서 격침되고 1척이 나포되었다) 중에 건조가 늦어져서
러일전쟁에 동원되지 않아 유일하게 러시아에 남아있었고 부실한 발트 함대에서 많은 활약을 했다. 리가 만 해전에서 독일 전함 4척에 순양전함 3척과 맞서 싸왔다. 하지만 1917년, 문 사운드(Moon Sound, 러시아에서는 몬준트(Moonsund) 해전에서 결국 격침된다. 참고로 문 사운드니 몬준트같은 표기는 전부 현재
에스토니아 무후(Muhu) 섬을 말하는 것이다.
[3]
다만 모든 주포가 고장난 떠다니는 표적
폰 데어 탄과
데어플링어, 반잠수정
자이틀리츠에 비하면 몰트케는 전투 능력과 항해 능력 모두 잘 보존된 편이다.
[4]
원인은
영국이
오스만 제국을 적성국으로 보고 오스만에게 팔 전함, 오스만 1세(
HMS 애진코트)와 레샤디에(
HMS 에린)을 강제 압류하고 배 값의 100분의 1도 안되는 임대료를 지급한 탓이다.
윈스턴 처칠탓을 하자.
[5]
다만 이때의 이름은 보레츠 자 스보보두(Borets za Svobodu)였다.
[6]
여담으로 임페라트리차 마리야급은
강구트급 전함의 개량형이다. 그러니까 야부즈 술탄 셀림은 드레드노트 전함 2척과 전투한 것. 무모해보이지만 승무원과 함장은 여전히 독일 승무원이었고 러시아 전함의 장갑이 몰트케급 수준으로 얇다는 것을 생각하면 속력이 빠르고 더 정밀한 포를 장착한 괴벤이 마냥 불리하지 만은 않다.
[7]
이때
독일연방공화국에서 먼저 구입을 요청한 것을 거부하였다가 다시 팔려고 했다. 하지만
독일 내부의 정서에 변화가 생겨 군국주의역사에 대한 거부감이 많았던 탓에 거부하였다.
[8]
글로벌 서버는 오픈 초기 2 해역을 뚫어야 획득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