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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9 13:39:31

복성

1. 개요2. 용례3. 한국의 복성
3.1. 주요 복성3.2. 일본계 귀화성3.3. 유래 불명 복성3.4. 과거 기록에는 있으나 지금은 사라진 복성
4. 중국의 복성5. 북방민족계 복성6. 그 외 복성7. 복성을 쓰는 인물
7.1. 근현대7.2. 근대 이전
7.2.1. 한국7.2.2. 중국7.2.3. 유목민족
8. 대중매체에서

1. 개요

複姓

두 글자로 된 성씨.

2. 용례

대한민국(+ 북한)과 중국의 성씨는 대체로 한 글자 성이 대부분이지만 가끔 두 자로 된 성씨가 존재한다.[1] 이를 복성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반대로 두 글자 이상의 복성이 흔하며 한자 한 글자 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2]

한국인은 보편적으로 중국식의 세 글자 이름[3] 쓰는 관습이 있다. 드물게 복성을 가진 사람들은 이에 맞춰 자식의 이름을 외자 작명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복성인 남궁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대표적인 케이스. 성명 기입이 필요한 서류 및 온라인 양식도 일반적으로 세 글자를 작성할 것이라 가정하고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4] 긴 이름을 갖고 있으면 의외의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5] 어쨌든 세 글자 성명에 복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풀네임은 무난하게 받아들여지지만 성과 이름 각각을 설명할 때에는 귀찮은 일을 자주 겪고, 복성을 사용한 네 글자 이름은 한국인들에게 매우 독특하다는 인상을 준다.

원래 복성이던 성씨 이외에 2000년대에 아버지 성씨와 어머니 성씨를 합쳐 복성으로 네 글자 이름을 쓰는 사람들이 늘어났는데,[6] 이는 페미니즘 운동 중 ' 부모 성 함께 쓰기'의 영향이다. 한국인은 성씨를 자신의 아버지 가문에서 물려받는 관습이 있는데, 이를 가부장제라 부조리하다 여기고 개명하거나 가명을 지어 성씨를 어머니의 성씨로 바꾸거나 어머니의 성씨를 넣어 복성을 쓰는 것이다. 한자가 같다고 해도 가문이 다를 경우도 해당된다. 이 방식으로 복성을 쓴 사람들의 이름은 대부분 아버지 성씨 + 어머니 성씨 + 자신의 이름, 아니면 어머니 성씨 + 아버지 성씨 + 자신의 이름이 된다. 그 의도를 따지고 보면 어머니의 성씨도 어머니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이기에 온전히 가부장제를 벗어나지는 못하지만, 요점은 어머니의 성씨를 받았다는 당사자의 행동이기에 페미니스트들은 딱히 문제 삼지 않는다. 이를 처음 주장한 인물은 이이효재·고은광순 등이 있고, 2018년 가장 유명인은 윤김지영일 것이다. 행정적으로는 외국인 귀화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기존 한국인이 새로운 성씨를 창설하는 것이 안 되기 때문에 본명으로 이런 복성을 쓸 수는 없고, 이름의 첫 글자에 부모의 성 하나를 넣어서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 수 있다. 즉 행정적으로는 세 글자 이름이 되는 것이다.

중국에는 북방민족에서 비롯된 복성들도 많다. 모용씨, 독고씨, 우문씨, 야율씨, 완안씨, 도단씨 등이 대표적. 이런 케이스는 욱구려(郁久閭)[7], 보륙여(普六茹)[8], 흘석렬(紇石烈), 오림답(烏林答), 보르지긴(博爾濟吉特), 아이신기오로(愛新覺羅) 같이 3글자 이상인 경우도 많다. 현대까지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경우도 있지만 허서리(Heseri[赫舍里(혁사리)])씨 등을 거쳐 현대에는 강(康)씨로 개성한 거란 계통 성씨나 신해혁명 이후 금(金)씨로 개성한 일부 만주족 성씨 같은 사례가 존재한다.[9]

그런데 이 경우 성과 이름을 붙여 써 놓으면 복성인지 아닌지를 헛갈리는 경우가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맞춤법상 이름과 성은 붙여 써야 하지만 복성이거나, 혹은 글자가 복성과 겹쳐서 혼동할 수 있을 때에는 예외적으로 이름과 성을 띄어쓰는 것을 허용한다. 예) 남궁억(표준어) - '남궁 억'(허용). 황보미(표준어) - '황 보미'(허용). 과거에는 성과 이름을 띄어 쓰도록 규정하였는데 1988년 맞춤법 개정 때에 성과 이름을 붙여 쓰도록 바뀌었다. 1988년 이전의 문서를 보면 복성에 대한 오역이 심심치 않게 나오며, 개정 이후에도 복성을 사용하는 개드립이 존재한다. 무협 소오강호의 주인공인 영호충(令狐冲)은 복성인 '영호' 씨인데, 한국에서는 특히 영화 등에서 '영'씨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10] 공손찬 '손찬이 형'이라고 부르거나 호연작, 서문경을 '호 연작', '서 문경'[11]이라고 오역해둔 서적이 드물지 않았다. 한국인 캐릭터인 독고탁도 '독 고탁'이라고 출판된 만화책이 적지 않았다.

복성에 대한 지식이 없는 비한국인들은 복성 + 한 음절( 외자) 이름을 제대로 나누지 못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남궁민을 성씨 '남' + 이름 '궁민'으로 잘못 이해하고 Koongmin Nam(또는 Nam Koongmin)으로 잘못 나눠 버린다. 성씨 '남궁' + 이름 '민'이므로 당연히 Min Namkoong(또는 Namkoong Min)으로 나눠야 한다. 또한, 우리 결혼했어요에서는 홍진영 남궁민궁민이 오빠라고 한 예화도 있다. 또한 남궁민이 어릴적에 친구들이 남궁민의 집에 전화를 했는데 아버지가 받았고 친구들이 "궁민이 있어요?" 라고 하자 남궁민의 아버지가 "궁민이라는 애는 없다!" 라고 하시고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이름 잘못 부르는걸 매우 싫어하신다고 남궁민이 밝혔다.

사실 한국인들조차 복성 + 한 음절 이름을 잘못 나누는 경우가 있다. 황보름별은 성이 '황', 이름이 '보름별'이고, 가상 인물 중에서는 웹툰 GM 시리즈 선우영은 성이 '선', 이름이 '우영'이라 상관없으나, 애니메이션 플라워링 하트 시리즈의 선우민은 '선우' 씨, 이름이 '민'인데 영문 이름이 Woomin Sun이라고 잘못 적혀 있다. 당연히 Min Sunwoo라고 적어야 한다. 2003년 3월 6일에 방영한 쟁반노래방 69회에서 남궁연이 자리 선정 및 이름만 표기하는 소절 막대에 올바르게 만 표기했듯이. 영화 설국열차에서 남궁민수가 자신의 이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남궁'과 '민수'로 나눠 알려주는데 이것도 예시.

복성을 예명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희귀하고 독특한 성씨라 대중에 오래 기억이 남고 강렬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희귀한 성씨가 유명인이 돼 이름을 드높이면 해당 종친회에서 감사패가 온다거나 초청장이 왔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고 한다. 복성을 예명으로 쓰는 유명인의 대표적 인물로 남궁원, 독고성· 독고영재· 독고준[12], 선우용여, 선우선, 서문탁이다.[13] 또한 창작물에도 등장인물의 성씨로 자주 쓰이곤 한다. 독고진[14]것이나 무협소설 오대세가 등이 있다.

외자이름인데 돌림자가 있으면 그 항렬의 이름은 다 똑같아지므로 부수로 돌림자를 대신한다.

3. 한국의 복성

3.1. 주요 복성

3.2. 일본계 귀화성

일본식 성을 그대로 한국 독음으로 읽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3.3. 유래 불명 복성

3.4. 과거 기록에는 있으나 지금은 사라진 복성

4. 중국의 복성

5. 북방민족계 복성

6. 그 외 복성

7. 복성을 쓰는 인물

공손, 남궁, 독고, 사마, 서문, 선우, 제갈, 황보는 각각 항목을 참고.

7.1. 근현대

7.2. 근대 이전

7.2.1. 한국

7.2.2. 중국

7.2.3. 유목민족

8. 대중매체에서



[1] 선비족 부족 이름에서 유래한 구목릉, 보륙고 등 세글자 성씨도 있었으나 북위 효문제 시절 한화의 일환으로 각각 목씨, 육씨로 성본변경을 했다. 이때 독고씨도 유씨로 바꾸게 했으나 후에 다시 독고씨로 복성하기도 했다고 한다. [2] 그 밖에 일본의 성씨는 한자 서너 자는 물론 심지어 다섯 자로 이루어진 것도 있다. 일본의 성씨 참조. [3] 성씨 + 두 글자 이름 [4] 일상생활에서 네 글자 이름까지는 대응이 가능한 경우도 많다. 다섯 글자부터는 매우 불편해진다. [5] 정확하게 확인된 건 아니나, 남궁씨와 황보씨는 (시조가 황보제공 즉 두 자 이름임에도)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에서 해당 본관으로 기재된 인물이 전부 외자 이름을 쓰지만 제갈씨는 근대 이후 전부 두 글자 이름 인물로 나오는 것이 확인된다. [6] 중국어 위키백과에서는 이런 경우 복성이 아니라 '쌍성'(雙姓)이라 하여 구별한다. [7] 유연(柔然) 왕실의 성씨 [8] 수나라 황실의 원래 성씨로, 수문제 역시 어린 시절 이름은 보륙여견(普六茹堅)이다. [9] 완안씨 같은 경우 금나라 시대에 중국 성으로 왕씨(王氏)를 사용했으며 금나라 멸망 후 왕씨로 개성하기도 했다. 물론 완안씨를 그대로 자신의 성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현대에도 중국과 대만에 있으며 집성촌도 있다. [10] 원작에서는 본문 중에 복성인 영호 씨라고 직접 언급한다. [11] '호연 작', '서문 경'이 되어야 한다. [12] 여기는 3대가 배우이면서 예명으로 같은 성씨를 쓰고 있는 경우로, 원래 성씨는 전씨이다. [13] 각자 본명이 홍경일, 전원윤, 전영재, 전성우, 정용례, 정유진, 이수진이다. [14] 이쪽은 소속사 사장이 이름이 아닌 성인 독고로 부를 정도. 일본이나 서양에서는 매우 흔하지만 한국에서 성으로 사람을 지칭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 [15] 이 두 성씨는 한자 표기가 같으며 독법만 다르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한자 표기가 같더라도 독법이 다르면 별도의 성씨로 간주한다. [16] 한국은 법적으로 성씨는 두 글자 까지밖에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3글자 이상의 성씨를 사용하던 일본인이 귀화하면서 자신의 성씨를 그대로 사용하고 싶을 경우 원래 성씨에서 2글자만 잘라 사용해야 한다. [17]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당시 거평 사마씨가 존재했고 이천 사마씨는 사라진 성씨로 기록됐다. [18] 서진의 무장 맹관을 체포하여 살해한 인물. [19] 진희(陳豨)가 난을 일으킬 때 그의 장수로 있었는데, 난을 진압하던 주발(周勃)에게 죽었다. [20] 표준중국어로도 Mòqí라고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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