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宇文部
1. 개요
선비족의 집단 중 하나로 시라무렌 강 유역에 거주했다. 흉노를 조상으로 하며 특히 (우문태는) 남선우의 후예이다. 본래 음산陰山 지역에 거주하였다가 1세기경 요동 일대로 이주하면서 점차 선비화 되었고, 마침내 우문선비라 불리게 되었다. 이후 서위를 건설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고 북주의 지배집단을 형성하였다.수렵을 하다가 옥새 3개를 얻었는데, 그들의 풍속에는 천자를 우문이라고 해 하늘의 뜻이라 여겨 우문을 성씨로 삼아 탄생되었으며, 이후 요서로 이주했다가 서진때 단부와 함께 강성해져 모용부와 사이가 험악하면서도 그들로부터 공물을 받았다.
319년, 고구려 및 단부와 연합해서 모용부의 수도인 극성을 포위했지만, 모용부가 연합군을 이간질하는 바람에 고구려와 단부는 철수하고, 우문부는 모용부에게 크게 패배했다.
344년 우문부는 모용부에게 패배한 후 소멸되었다. 이후 우문일두귀는 막북으로 달아났다가 뒤에 고구려로 도주했고, 모용황의 휘하 장수가 부락민 5,000여 호를 창려로 옮김으로써 우문부는 그 무리가 흩어져 망하게 되었다.
이후 우문부가 약화된 시라무렌 강 주변을 거란족이 차지했다.[1]
훗날, 그들이 세운 국가인 북주에서 다시 우문씨가 나타난다.
2. 우문부 관련 인물
우문부가 세운 국가의 인물들은 제외- 막천혼(寞淺渾) - 재상으로 343년에 우문일득귀의 명으로 전연을 공격했고, 연나라의 군사가 일부러 대응하지 않자 모용황이 두려워한다고 생각해 술을 마시고 사냥을 나가면서 방비 시설을 두지 않았다. 이때 모용한의 공격을 받아 대패했다.
- 섭야간(涉夜干) - 선비족 남라의 대인. 섭혁간(涉奕干)이라고도 한다. 우문부의 삼군에서 용감하기로 유명했으며, 우문일두귀의 명령으로 344년에 전연이 공격할 때 이를 맞아 싸웠다. 모용한의 군사와 싸우다가 모용패의 군사들에게 옆에서 공격당했고, 섭야간은 참수되었다.
- 우문걸득귀(宇文乞得龜) - 325년에 석륵으로부터 관작을 받고 325년에 그의 명령으로 모용외를 공격했으며, 요수를 점거해 모용황을 막으려 했지만 모용황, 모용인의 공격으로 패퇴했다. 우문걸득귀가 군사를 버리고 달아날 때, 모용황과 모용인 등의 추격을 받아 나라의 귀중한 보배 및 가축 100만 두를 빼앗기고 백성 수만 명이 모용부에 항복했다. 333년에 우문일두귀의 공격을 받자 밖으로 달아났다.
- 우문굴운(宇文屈雲) - 우문막규의 동생으로, 형 우문막규의 지시로 302년에 모용외를 공격했다.
- 우문막괴(宇文莫槐) - 선비족의 선우로 부하에게 살해당하자 부락 사람들이 동생 우문보발을 대인으로 삼았다.
- 우문막규(宇文莫圭) - 선비족의 선우로 부족이 강성해지자 모용외를 공격했다.
- 우문보발(宇文普撥) - 선비족의 선우로 우문막괴의 동생이었다.
- 우문소노연(宇文素怒延) - 우문굴운의 별수로 302년에 모용외에게 격파되었다가 군사 100,000명을 발동해 극성에서 모용외를 포위했다. 그러나 모용외가 우문부의 군사가 많아 통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공격하자 격파되어 10,000명이 사로잡히거나 죽는 피해를 입었다. 303년 천하가 혼란해지자 왕준은 이민족들과 관계를 맺어 그들의 원조를 받고자, 두 명의 딸을 시집보냈는데, 그 중의 딸 한 명을 우문소노연에게 보냈다.
- 우문실독관
- 우문실발웅(宇文悉拔雄) - 우문걸득귀의 조카. 325년에 모용외를 공격하기 위해 요수를 점거하고, 모용걸득귀의 지시로 모용인을 막으려 했지만 그의 공격에 패배해 참수되었다.
- 우문일두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