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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1 17:28:03

미스터 션샤인/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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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장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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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등장인물 및 특별출연은 등장인물 문서 참고.
[ 방영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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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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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그날 (The Day)
박효신
2018. mm. dd.
Part 2

슬픈 행진 (Sad March)
일레인
2018. mm. dd.
Part 3

눈물 아닌 날들
김윤아
2018. mm. dd.
Part 4

소리
이수현
2018. mm. 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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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미스터 션샤인 OST Part 7.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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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5

좋은 날
멜로망스
2018. mm. dd.
Part 6

My Home (Eugene's Song)
사비나 앤 드론즈
2018. mm. dd.
Part 7

바람이 되어
하현상
2018. mm. dd.
Part 8

이방인
박원
2018. mm. 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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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9

Shine Your Star (Prod. by ZICO)
오존 (O3ohn)
2018. mm. dd.
Part 10

And I
뉴이스트 W
2018. mm. dd.
Part 11

See You Again (Feat. 리처드 용재 오닐)
백지영
2018. mm. dd.
Part 12

불꽃처럼 아름답게
신승훈
2018. mm. 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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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3

정인
세정
2018. mm. dd.
Part 14

If You Were Me

2018. mm. dd.
Part 15

어찌 잊으오
황치열
2018. mm. dd.
OST

Limited Edition Album
2018. mm. dd.
[ 관련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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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총론2. 무기 및 군사 관련
2.1. 등장 무기 및 방어구
2.1.1. 총기류2.1.2. 냉병기2.1.3. 방어구2.1.4. 군사 관련
2.2. 그 외
3. 시대 배경 관련4. 기타 배경 관련5. 기타 옥에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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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총론

부족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다양한 국가들의 근대 총기가 등장한 작품임을 감안하면 나름대로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할만 하다.
1화의 광성보 전투에 등장한 소총이 좋은 예인데 당시 미군이 사용한 레밍턴 롤링블럭 소총과 비슷하게 생겼으나 가늠자와 가늠쇠도 없는 총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비슷하게 만든 모조 총기로 보인다. 기존 한국 드라마라면 그냥 아무 총이나 쥐어 줬겠지만 이 정도로 신경쓴 작품은 처음인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래도 진품 롤링블록 소총은 골동품으로 거래될 확률이 높고 그렇게 되면 소품으로 쓰기에는 터무니 없이 비싸다.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총기도 아니고 단 한 전투에서만 나오는 데다가 많은 인원이 사용해야 하니 적당히 잘 타협한 듯. 영상물 제작에 있어 예산과의 싸움은 제작 자체를 좌우하는 중요요소이며 고증 또한 적절한 타협의 산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다른 드라마에서는 멀쩡히 등장하던 일본군 총기 아리사카를 모신나강으로 대체했다든가, 연발로 나가는 화승총 따위는 지적해야 할 문제이다.[1] 그리고 주인공들의 배경에 관한 부분은 역사엔 맞지 않아도 설정을 짜기 위해 고증을 무시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다만 기획의도를 보면 역사가 단순히 로맨스의 배경으로 설정된 것이 아니라 (1) 이름없는 의병을 조명 (2) 구한말의 독특하고 다이나믹한 시대상을 조명하는 데 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적어도 의병에 대한 부분은 좀 세밀하게 고증을 했어야하는 거 아닐까란 아쉬움이 드는 부분이 있다. 특히 구한말은 남아 있는 역사자료가 많이 있다.

그래도 발전한 것이 있다면 캐릭터에 맞추어 복식과 주무장을 설정한 것이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아니지만 포스터와 극중 대사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어느 정도 신경을 쓰기는 한 것 같다. 시티헌터 드라마 판에서 주인공이 시티헌터의 상징인 콜트 파이슨을 제대로 사용한 일도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한국드라마로서는 이례적인 편이다.

2. 무기 및 군사 관련

2.1. 등장 무기 및 방어구

2.1.1. 총기류






다만 리-메트포드 라이플의 대용품이면, 어느정도 맞다. 1902년에 베이징에 주둔한 미해병대의 사진을 보면, 이들은 리-메트포드 라이플을 장비하고 있다.




파일:레밍턴 1858-6연발컨버터.jpg
레밍턴 M1858권총의 컨버전 킷.
파일:미스터 션샤인-레밍턴 1858 유진1.jpg
총의 모양 자체는 콜트 SAA와 많이 달라서 서부극 냄새가 없기는 하다. 총잡이이자 서부극쇼기획자인 버팔로 빌이 애용해서 유명하기도 하고.
파일:미스터 션샤인-레밍턴 1858 애신1.jpg
난동을 부리는 일본군 하사관을 저지하기 위해 애신이 유진에게서 빌려서 사용했다.

파일:미스터 션샤인-레밍턴 1858 애신2.jpg
파일:미스터-션샤인-애신장전움짤2.gif
한글을 못읽는 애신이 '자신의 편지를 무시했다'고 화가 나서 유진의 총을 빼앗아 유진에게 겨누는 애신. 해당 장면은 연인간의 애정 싸움 중인데, 권총이 격발 상태가 아니어서 유진이 여유를 부리는 와중, 작중 싱글 액션 리볼버를 처음 만져본다는 애신이 이리저리 만지는 과정에서 해머 코킹을 해서 격발 준비, 즉 장전 상태가 되자 당황하는 장면[11]이다. 당시의 권총은 싱글 액션[12] 방식이라 공이치기가 전진하기 위해서는 수동으로 뒤로 잡아당겨줘야 했다. 안 그러면 공이치기가 전진이 안 돼서 방아쇠가 안 당겨지기 때문에 격발이 불가능하다[13]. 서부영화에서 카우보이들이 권총을 쏠 때 손으로 권총 뒷부분을 빠르게 두드리는 듯한 동작을 보이는 것이 바로 공이를 뒤로 당겨주는 것이다.
* 유진 초이가 사용하는 권총은 레밍턴 M1858이다. 남북전쟁때도 사용된 권총으로 금속탄피를 사용하는 리볼버가 아닌 약실에 일일이 화약을 재어넣고 탄두를 장착한 뒤 퍼거션캡을 씌워서 장전하는 구세대의 설계를 가진 권총이다. 물론 개량된 실린더로 교체하면 금속탄피를 사용할 수 있으나 재장전이 무척 복잡하다.[14]

* 이미 스윙아웃리젝터를 채용한 리볼버를 군에 보급하고 있던 미군 장교가 굳이 불편한 이 권총을 사용할 이유는 없지만, 추측컨대 시그니처 웨폰의 개념으로 주인공에게 쥐어준 것 같다. 달리 말하면 그냥 뽀대나서? [15] 또한 미군 장교의 경우 개인화기의 선택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므로 불편하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 선택한 것이라면 무리없는 설정이라고 극초반에 추측했었으나 17화에서 대한제국 군관학교의 교관이 된 유진이 이 총을 '미해군에서 주로 사용하는 해군용 콜트'라고 소개했으며 지급품이라는 설정인 모양이다. 레밍턴을 레밍턴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차라리 콜트 싱글 액션 아미를 등장시켰다면 별 탈이 없었을 것이다. 작중 시점으로도 10년 이상 된 권총이니 적당히 클래식한 맛도 내고 금속제 탄피를 쓰는 권총이라 위 내용처럼 탈 날 일도 없다. 아마 콜트 싱글액션 아미를 사용하는 카일 무어 소령과 차별을 두기 위함인 듯. 싱글 액션 아미를 쓰면 카우보이가 연상돼서 그런지도... 어차피 잘 모르는 비 밀덕이 보면 리볼버 다 그게 그거다





2.1.2. 냉병기



하지만 보통 영화,드라마에서 자주 범하는 오류이지만 레이피어는 저렇게 휘두를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21]


2.1.3. 방어구

2.1.4. 군사 관련

2.2. 그 외

파일:264F56D8-D7C4-4FEA-AB0F-397E6AD07353.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Young_Tojo.jpg
극 중 일본군 육군 대좌 모리 타카시가 군복을 입은 모습 육군 보병 소위 시절의 도조 히데키
파일:8699F9D8-BA4A-404E-9BDE-E9D2026CDBE4.jpg
* 극 중 모리 타카시가 입은 군복은 러일전쟁 당시 전투복이었던 메이지 37년식 군복이다. 원래 메이지시대 일본군 장교들은 늑골복이라는 훨씬 화려한 군복을 입고다녔지만 싸우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기존의 여름용 하복 군복을 색깔만 바꾸어서 지정을 하게 된 것(원래 하복의 색깔은 하얀색이었으나 기존의 군복 색깔이었던 남색으로 색깔만 바꾸어 메이지 37년식 군복으로 지정한 것이다). 메이지 37년식 군복의 경우 소매의 문양으로 계급을 구별짓는데 육군 보병 대좌 모리 타카시가 입은 군복의 경우 소매에 줄이 3줄 쳐져있고 별이 2개 박혀있는데, 줄이 3줄 쳐져있는 건 , , 를 나타내고 별 2개가 박혀있는 건 좌관급 장교, 즉 대좌라는 걸 뜻한다( 위관급 장교는 별 1개, 장군은 별 3개). 옆의 사사키의 경우 모리 타카시와 같은 좌관급 장교이기때문에 똑같이 소매에 별이 2개 박혀져있지만 계급이 소좌인 관계로 소매에 줄이 1줄만 쳐져 있다. 다만 계급을 나타내는 소매줄의 색깔이 노랑색인건 고증오류이고 실제로는 검은색이었다. 계급을 나타내는 소매줄이 노랑색인 경우는 하사관 이하의 계급의 군인들이 입은 군복 한정이고 그 위의 장교들부터는 검은색 소매줄이 박힌 군복을 입었다. 다만 극 중 모리 타카시 러일전쟁 발발 훨씬 이전부터 메이지 37년식 군복을 입고다니는데다가 직접적으로 참전을 하지도 않았던만큼 기존의 늑골복을 착용하는 것이 고증에는 더 맞다.
파일:9885953D-3540-468F-9603-CA71BC931CD2.jpg
* 초반부 한정으로 모리 타카시가 쓰고 나온 군모는 고증이 잘못 된 군모다. 저 당시 메이지시대 일본군 군모의 경우 졸병과 하사관은 줄이 쳐져있지 않은 반면, 위관급 장교는 1줄, 좌관급 장교는 2줄이 쳐져있어야 하는데 사진 속 모리 타카시는 계급이 대좌인데도 불구하고 졸병과 하사관들이 쓰는 군모를 쓰고 있다. 하지만 제작진측에서 고증오류라는 걸 알아냈는지 그 이후로는 고증에 맞는 2줄이 쳐진 군모를 쓰고 나오긴 한다.

3. 시대 배경 관련

4. 기타 배경 관련

파일:5247444A-AC30-46CE-9E08-AD02EE2FE008.jpg
파일:D532C167-37C1-4BDE-8AB8-D747DCFFA58D.jpg * 22화에서 등장한 도쿄 시가지로 나오는 장면은 합천영상테마파크에서 촬영된 장면이다.

5. 기타 옥에 티

파일:658905_334533_118.jpg 파일:2016081001308_0.jpg
미스터 션샤인 엄비 덕혜옹주 양귀인
* 미스터 션샤인에 나오는 엄비의 첩지는 퓨전사극에나 나오는 첩지이다. 실제로는 영화 덕혜옹주에 나오는 양귀인의 첩지 형태처럼 나왔어야 했다. 그리고 두 작품 모두 고증 오류인 것이, 당의를 착용한 상태라면 첩지 위에 족두리 화관을 쓰고 다녀야 하는데 이걸 무시해 버렸다.


[1] 다만 이는 주인공의 사격훈련을 강조하기 위해 불필요한 장전 장면은 생략한 것(정확히 말하면 발사 장면만 강조한 것)이므로 고증오류로 보기에는 애매하다 [2] 여담으로 이 사진의 조선군 엑스트라는 작중 2번이나 이러한 장전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첫 번째 장전시에는 완전히 장전해 총을 쏘았고, 두 번째에는 장전중에 미군의 총을 맞아 전사. 이 두 장면으로 이 엑스트라는 화승총의 장전 모습과 단점(장전시간이 오래 걸려 그 사이에 공격당하기 쉽다)를 잘 보여주었다. [3] 개중에는 진짜 화승총도 많이 나오기는 하는데 어디서 구했는지 조선식 화승총이 아닌 서양식 격발 구조를 보여주는 물건이 나타기도 했다. [4] 풍산그룹의 창업주 류찬우 회장이 징비록을 저술한 인물이자 드라마 징비록의 주인공인 서애 류성룡의 12세손이기 때문에 협찬해 준 것이다. [5] 감아둔 모양이 방아쇠를 당겼을때 과연 점화장치가 움직일 수 있을것인가 하는 의문은 든다 [6] 다만 이 문제는 애신이 총을 좀 커스텀해서 저 장전손잡이 윗부분이 아닌, 앞쪽 나무 덮개에 탈착식인 얇고 긴 쇠판을 대각선으로 대어서 고정한 건데 천 때문에 안 보이는 거라고 우기면 해결되긴 한다.굳이 이리 고정할 이유가 없다는 게 문제지만... [7] 다만 이 문제는 애신이나 승구가 총을 좀 커스텀해서 저 장전손잡이 윗부분이 아닌, 앞쪽 나무 덮개에 탈착식인 얇고 긴 쇠판을 대각선으로 대어서 고정한 건데 천 때문에 안 보이는 거라고 우기면 해결되긴 한다. 굳이 이리 고정할 이유가 없다는 게 문제지만... [8] SMLE는 No.1 Mk.III이다. No.4 Mk.I은 SMLE라고 부르지 않는다. [9] 크라그-에르겐센 소총은 미육군의 제식소총이다 미해병대는 리-네이비 소총을 제식으로 사용하였다 [10] 스프링필드 M1873은 미국-스페인 전쟁을 끝으로 퇴역하는 소총이며 1890년대에 크라그-에르겐센 또는 리-네이비로 대체된다. 유진 초이는 미국-스페인 전쟁의 공로로 특진하여 조선에 왔으므로 두 소총의 교체기에 온 셈이어서 병사들이 둘 중 어느 것을 들고 있더라도 말이 된다. 그러나 두 소총 모두 국내에서 레플리카를 구하기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바로 뒷세대 소총인 스프링필드 M1903이 시대상으로도 더 가까운 소총이고 흔하기도 해서 더 적합한 대안이었을 것이다. [11] 게다가 싱글 액션 리볼버의 방아쇠압은 굉장히 낮다. 오죽하면 툭 쳐도 나갈 정도. 애신은 싱글 액션 리볼버를 처음 만지는 것이므로, 레버액션 소총이나 화승총의 방아쇠압을 생각하고 살짝 손가락만 걸친다는 게 격발되어서 진짜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12] 공이치기가 앞으로만 전진 가능. 반대로 방아쇠를 한 번 당길 때 공이치기가 자동으로 뒤로 갔다가 앞으로 때리는 현대 권총의 기본 동작은 더블 액션. [13] 이는 일종의 안전 장치 역할이기도 하다. 기술력의 발달로 현대 권총이 더블 액션 방식으로 바뀌면서 공이를 잠그는 안전 장치가 별도로 개발된 것이다.쉽게 말해 움짤 속 애신은 권총의 안전 장치를 풀어버림과 동시에 장전해서 자기 애인 얼굴에 겨눈 것이다 [14] 현대의 리볼버와는 달리 재장전을 위해서는 실린더를 아예 분리해야 하며, 이 총의 경우는 실린더를 2개로 나눈 특수실린더를 사용해야 금속탄피를 사용할 수 있으므로 신속한 재장전 따위는 불가능하다 [15] 시그니처 웨폰은 등장인물의 개성을 상징하는 무기를 소품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워킹 데드의 그라임즈나 시티 헌터의 사에바 료가 사용하는 콜트 파이슨, 더티해리의 S&W M29, 바람의 검심의 역날검 고든 프리먼의 빠루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16] 물론 일본군 장교들은 권총을 사비로 마련해야 했으므로 따로 구해다 썼다고 하면 틀린건 아니다. [17] 유진과 카일이 홍파의 주막 단골인지라 홍파는 카일 무어와도 안면이 있는 사이여서 카일도 상당히 화가 나있던 상황이었다. 유진에게 홍파가 조리돌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도 카일. 카일은 1화에 나오는 미서전쟁에서의 전상으로 인해 오른팔을 사용하지 못한다. 정확히는 펜 정도의 가벼운 물체를 들 수 있는 정도. [18] 위 사진은 극중 이완용이다. [19] 무사들은 카타나를 풀어놓아도 와키자시는 풀어놓지 않았다. [20] 일본의 무사들이 카타나와 와키자시를 함께 패용하는 것. [21] 정확한 고증된 레이피어 대련방식으로 대결장면이 나온다면 오히려 지루하게 연출되었을 수도 있다. [22] 애초에 군자의 여섯가지 기본 소양인 육예 중 하나가 활쏘기다. 나머지 다섯 예절, 말타기, 글쓰기, 음악, 셈하기 [23] 영정조 시기만 가도 기병만이 활을 썼다. [24] 사실 별로 놀라운 것이 아닌게, 애신이 사용하는 Winchester Model 1894도 외부로 노출된 공이가 있다. 애신이 비슷한 원리라고 생각하는게 당연하다. [25] 고종의 친서를 가지고 왕의 대리인 자격으로 백악관을 찾았던 백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 루스벨트 대통령과의 면담을 거절당했다. [26] 조선인 의병 김인수가 제정 러시아군의 대령이 된 일이 있었다 # [27] 미국 남북 전쟁 당시 세네카족(원주민) 출신인 엘리 파커 미 육군 중령[59]의 사례가 있긴 하다. 그렇지만 북군 총사령관인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의 친구였고, 본인의 행정 능력을 발휘한 기회도 주어졌다. 이후 남군의 항복 문서를 작성하기도 하는 등 요직에 있었다. 헨리 플리퍼(Henry Ossian Flipper)가 1877년 흑인 최초로 장교가 되긴 했다.[60] 최초의 미 해군사관학교 출신 아시아계 미국인은 중국계 미국인 Gordon Chung-Hoon(1910년 하와이 태생)으로 1934년 해군 소위로 임관하여 미 해군 제독에 오른 최초의 아시아계 미국인이 되었다. 최초의 웨스트포인트 미국 육군사관학교 출신 아시아계 미국인은 역시 중국계인 Wing Fook Jung으로 1940년 임관했다. 미국인 아버지와 하와이계 어머니를 둔 앨버트 리먼(Albert Lyman, 1885-1942)은 1909년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해 임관했고 1942년 준장에 진급하면서 최초의 아시아-하와이-태평양 도서지역 출신 (Asian-Hawaiian-Pacific Islander American,AHPIA) 미 육군 장성이 되었다. [28] 즉, 당시 한국을 칭하던 명칭들은 현대 대한민국에서 쓰는 명칭들과 거의 같았다는 것이다. [29] 위에도 설명했지만, 당시 조선/대한제국을 로마자로 Joseon이라고 적은 예는 없다. [30]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당시에 만연해 있던 인종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필요하면 무력을 동반해서라도 앵글로 색슨 문화를 확산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필리핀을 '문명화'시키기 위해서 미국의 지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서 '백색함대'를 건설해서 태평양으로의 영향력 확대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개인적인 제국주의자로서의 모습과는 별개로 미국 외교 정책의 기본적인 틀은 먼로주의가 여전히 우세했고, 따라서 그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뒤로 미국의 태평양 방면에 대한 관심은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질 때까지 후퇴하게 된다. [31] 당시 미국 주류의 해외 진출에 대한 시선은 태평양이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에 머물러 있었다. 당시 미국의 외교정책은 먼로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 상황이었고, 중국이 이미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고, 일본의 근대화가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성공하게 되자, 미국은 굳이 태평양, 특히 동아시아에서 무력까지 동원해가며 열강들과 식민지 쟁탈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32] 스페인과의 전쟁에 소극적이였던 전임 윌리엄 매킨리와는 달리 그는 대스페인 개전론에 속하여 미서전쟁이 터지자 해군차관직을 때려치고 직접 전쟁터에서 활약해 전쟁 영웅이 되기까지 했으며 그 경력을 바탕으로 부통령이 되었다. 물론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집권 당시 대외 정책은 먼로 독트린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식민지에 반대하는 반제국주의자들의 주장에 반박하고 필리핀의 식민지화를 강하게 주장하는 등 고립주의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대외 정책은 관련 논문을 조금만 찾아보면 전통적인 고립주의와는 거리가 멀었음을 알 수 있으며 나무위키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항목에서도 대략적으로 나온다. [참고문헌] 《韓國政治外交史論叢 제26집 제2호 :러일전쟁과 데오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대 한국 정책》, 《미국사연구 제15집 : 알프레드 마한(Alfred T. Mahan)의 帝國의 戰略과 美西戰爭》, 《아시아리뷰 제4권 제2호(통권 제8호) : 1등 (혹은 2등) : 1894~2014년간의 동아시아 질서에서 일본에 대한 미국의 선호》, 《해항도시문화교섭학 제9호 : 『바다에서 바다로: 미국 패권의 역사』 - 논제: 커밍스와 미국의 태평양 전략》, 《미국사연구 제19집 : 19세기 미국 오리엔탈리즘과 미국의 정체성》 [34] 정확히는 조선의 지리적 위치상 일본과의 충돌이 불가피하고 상기했듯 열강과의 충돌을 피하다보니 그런 것이다. [35] 대표적인 사례가 러일전쟁. 러일전쟁 당시 미국은 영국 이상으로 일본에 대한 차관 지원에 적극적이었다. [36] 미국은 당시 한국에서 제일 먼저 철수한 나라였다. [37] 그런데 유진이 본국 복귀를 명받은건 1904년이다... 카일의 "유진을 조선에 놔두면 무슨 짓을 할지 뻔하기 때문에 자신이 요청해 본국 철수를 명 받게 되었다."는 말에 따르자면 아직 공사관 까지 철수를 결정한건 아니고 그저 카일, 유진 등의 인력 재배치를 명했을 수도 있다. 그 후 유진은 관수에게 도미와 함께 현실적으로 가장 안전한 곳인 미국 공사관에 계속 남아 있으라는 당부를 받는다. [38] 병인양요, 신미양요 [39] 프랑스인 사제들은 부득이 밖에 다녀야 할 때면, 상복을 입고 얼굴을 다 덮는 삿갓을 쓰고 다녔다. 이렇게 하면 서양인임을 들키지 않을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이 말을 걸어오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40] 정식으로 입국한 경우 기준이다. 이보다 앞선 1850~1860년대에 몇 차례 미국인 포경선 선원들이 동해상에서 표류하다가 강원도 등지의 해안가로 떠밀려와 단기간이지만 조선 땅을 밟은 적이 있으며, 이것이 조선과 미국인이 최초로 조우한 사례이다. 이들은 대개 청나라를 거쳐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41] '억장이 무너진다', '내 코가 석 자' 같은 관용 표현까지 유창하게 구사한다. [42] 그래서 일본은 수출에서 재미를 보지 못하고 철도산업과 1차 산업의 기계화 등을 통해 산업혁명을 이어간다. 잊지 않고 옆나라의 피를 살뜰히 빨면서 청일전쟁의 승전으로 받은 배상금 등으로 경공업을 일으키고, 1901년 야하타 제철소(八幡製鐵所)의 준공을 시작으로 중공업을 일으킨다. [43] 문서 수정 전,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가 아닐까 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금문교와는 건설 시기도 맞지 않을 뿐더러, 회색 돌을 쌓아올린 두 개의 아치를 가진 주탑 모습을 보면 다리 전체가 금속으로 이루어진 금문교와는 모양 자체가 다르다. [44] 그리고 퀸즈버러 교가 보이는 장면에서 자세히 살펴보면 뒤쪽에 아치형 교량인 헬게이트 교( 맨해튼의 랜달스아일랜드와 퀸스를 잇는 다리)도 보이는데, 이 헬게이트 교는 퀸즈버러 교보다도 늦은 1912년에 착공되어 1916년에 완공된 다리이다. 즉, 작중 주 시대적 배경인 대한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존재하지도 않았던 셈. 고증오류에 고증오류 더하기 [45] 정확히는 합병보다는 속국화하는 게 여러 모로 더 이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어떤 방법이 일본에게 더 이득이 되는지에 대한 방법론의 차이였을 뿐이지 결코 조선을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46] 다만 19세기 이후의 조선 말기의 실상이 워낙에 대환장파티였다는 사실이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고 공공연하게 인식되어 있기 때문에, 조선 말기를 다룬 미디어에서 이와 같은 장면이 묘사되어도 대중에게 별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는 점은 있다. 당장 현대 한국인들에게 19세기 중후반의 조선의 모습에 대해 떠올려 보라고 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삼정의 문란 동학농민운동의 도화선이 된 조병갑의 횡포 등 지배계층의 수탈과 횡포로 인해 일반 백성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것이다. [47] 신자체가 오늘날처럼 일본에서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이고, 이전까지는 여전히 구자체가 통용되었다. 그나마 쇼와 시대에는 사람들이 한자를 쓰다가 획을 긋기 너무 귀찮다 싶을 때는 종종 신자체를 약자(略字)로 쓰는 경우가 있었지만(그래도 책이나 논문 같은 출판물에서는 구자체가 통용되었다), 근대화가 이루어진 지 얼마 되지 않고 아직 봉건적 잔재들이 많이 남아 있던 메이지 시대에는 구자체가 많이 통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가나 표기법도 사실 헨타이가나 표기법이 많이 나와야 시대상 고증에 맞지만, 헨타이가나 고증은 현지 일본인들에게도 극악의 난이도인지라 한국 드라마 제작진에게 그 정도의 기대를 하는 건 무리이긴 하다.애초에 역사적 가나 표기법의 존재 자체를 인지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이미 한국 작가 상위 1%이다.(...) [48] 두 대통령의 재임 기간 사이에는 20~30년 정도 되는 간격이 있다. 러일전쟁이 발발한 1904년 당시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로스쿨을 다니고 있던 20대 초반의 학생이었으며 아직 정계에 입문하기도 전이었다. [49] 겉에서 보기에 2층으로 보이나 지붕만 두 겹이고 실제 내부는 단층이며 천장이 높은 구조이다. 경복궁 근정전이나 창덕궁 인정전도 마찬가지이다. [50] 단, 데드비트가 반드시 쿼츠 무브먼트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1600년대에 이미 기계식 무브먼트에서 데드비트 세컨드를 구현하였다. [51] 다만 당시 일본군의 계급 명칭은 현대와 같은 대·중·소 체제로 일본군에는 대위 계급이 있긴 했다. 작중 유진은 일본어에도 능통한 등 여러 모로 일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설정으로 나오고, 또한 당시 막 근대화를 시작하는 군사적으론 걸음마 단계였던 대한제국군과 일찍이 근대화를 이루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연달아 승리하며 국제적으로도 꽤나 인정받던 일본군의 군사적 역량 및 위상 차이를 감안하면 유진이 군사적으로 좀더 익숙하고 (대한제국군에 비해) 체계가 좀더 잡혀 있던 일본군의 계급 명칭을 기준으로 말한 것이라고 본다면 어느 정도 말이 되긴 한다. [52] 이게 어느정도냐면, 무려 비행기로 이동하면 1시간 40분이 걸리고 신칸센으로 이동하면 5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다(…). 오히려 부산~ 후쿠오카 구간의 거리가 이것보다 더 가까운 사실을 알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장면인지 바로 와닿을 것이다. [53]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기 이전에 아시아에서 배를 타고 바로 미국 동부로 가려면 남아메리카 대륙을 빙 돌아서 가야 했고, 이 경우 당연하게도 이동에 걸리는 시간이 미친듯이 늘어났다. [54] 차라리 뉴욕으로 갈 때 먼저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유럽까지 간 다음 유럽에서 뉴욕행 여객선을 타고 대서양을 건너는 것으로 묘사되었다면 시대상 고증과 핍진성 면에서는 더 나았을 것이다. [55] 한국인들 역시 마찬가지 였던지라 대표적으로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대한제국에선 이등박문이라고 불렸다. 이런 경향은 지금도 약간이나마 남아 있어 특히 중~노년층 한국인들은 마오쩌둥을 모택동, 장제스를 장개석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젊은 층의 한자에 대한 관심이 많이 줄어들고 언론에서도 본래 발음을 존중하는 식으로 표기하는 지금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많이 줄어든 편. 시진핑(习近平, 習近平)을 습근평이라고 부르는 한국 사람은 거의 없다. [56] 다만 이는 군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칼 대신 총을 들게 한 것일 수 있다. [57] 그의 저서에 "... that I was an Englishman (really I am a Scots-Canadian, but to them it was all the same) who must not be injured." (번역) "나는 다쳐서는 안 될 잉글랜드인(실제로 나는 스코틀랜드계 캐나다인이지만 그들(조선인들)에겐 차이가 없었다)이었다."라고 나온다. [58] 게다가 당시의 캐나다는 캐나다 자치령 시절로, (실질적으로는 자치권이 보장되었긴 했지만) 명목상으로는 아직 영국의 자치령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