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전철 1호선의 전철역에 대한 내용은 종각역 문서 참고하십시오.
한양도성의 성문 및 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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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의 기념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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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의 기념물 제10호 | |
보신각 터 普信閣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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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colbgcolor=#fff,#191919>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54 |
분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조경건축 / 누정 |
수량 / 면적 | 토지 2,881.7㎡ |
지정연도 | 1990년 6월 18일 |
시대 | 조선 시대 |
관리자 (관리단체) |
종로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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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각의 전경 |
[clearfix]
1. 개요
보신각( 普 信 閣)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54 ( 관철동)[1]에 위치한 누각이다.[2] '종각( 鐘 閣)'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과 매우 가까운데, 1974년 서울 지하철 1호선 최초 개통 당시 종로1가 사거리에 만들어진 종각역의 명칭도 이 누각에서 따왔다. 특히 매년 12월 31일에 열리는 ' 제야의 종 소리'의 서울 지역 타종 행사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건물 자체는 여러 번의 변화를 거쳤다. 최초의 종루는 2층 구조였는데, 임진왜란으로 종루와 종이 모두 소실된 이후 광해군 때 1층 종각으로 다시 중건돼 광복 때까지 보존되었다. 그러나 이 두번째 종각은 6.25 전쟁으로 인해 종만 남긴 채 사라졌고, 1979년에 이르러 옛 보신각 터 옆에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2층 누각으로 새 보신각을 지었다. 이 콘크리트 건물이 바로 우리가 아는 현재의 보신각 건물이다.
서울특별시에서 1990년 6월 18일에 '보신각 터'를 서울특별시의 기념물 제10호로 지정했다. 현재의 보신각 건물은 복원도 아닌 아예 새로 지은 것이기 때문에 건물 그 자체는 문화재로 지정받을 수 없고, 원래 보신각이 있던 자리만 기념물로 지정받은 것이다. 물론 위치상으로는 원래 보신각이 있던 자리 바로 뒷편에 현재 보신각 건물을 지은 것이기는 하다.
2. 역사
조선 태조 5년(1396)에 경기도 광주에서 만든 종을 청운교 서쪽 종루에 설치한 것이 시초이다. 이후 태종 13년(1413년)에 2층 종루를 새로 짓고 위치를 통운교(現 종로 네거리) 쪽으로 옮겼다. 그리고 세종 22년(1440)에 기존의 종루를 헐고 동서 5간 남북 4간에 2층으로 고쳐 지었고, 세조 7년(1458)에 새로 대종(大鐘)을 만들어서 설치했으나,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왜군들이 한양을 점령한 동안 종루는 소실되고 대종도 파괴되었다.광해군 11년(1619)에 종각을 다시 짓고 종도 새로 달았는데, 명례동 고개[3]에 있는 종각에서 종을 옮겨왔다. 원래 이 종은 원각사(圓覺寺)[4]에 있었지만 연산군 10년(1504)에 장악원을 옮긴다고 연산군의 명령으로 원각사를 폐찰했다. 그리하여 그 자리에 덩그러니 있던 종을 중종 31년(1536)에 숭례문 안으로 옮겼고, 선조 30년(1597) 임진왜란 때문에 다시 명례동 고개로 옮겼던 것을 광해군 때 종각을 복구하면서 이동시켰다. 새로 중건된 종각은 본래보다 작게 1층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종각은 고종 연간에 여러 변화를 겪었다. 첫 번째 변화는 고종 1년(1864) 4월 19일 밤 4시경 지전에서 발생한 화재가 번졌으나, 급히 진압하여 종은 피해가 없었으나 종각이 모두 타버려 5월 24일쯤부터 종각의 제 기능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지어졌다. 그로부터 5년 뒤 고종 6년(1869) 9월 4일 두 번째 화재가 인근 시전에서 발생해 종각으로 번졌다. 그러다 10월 29일에는 완전히 제 모습을 찾으며 또다시 조금 변화하게 된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자리가 뒤로 밀려나는 등의 변화도 있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경복궁창덕궁내상량문(소장번호 古朝44-가35)"에서는 종각의 상량문이 필사본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국역 번역이 아직 되어 있지는 않아 내용을 알아보기는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사라진 상량문 원래의 내용을 확인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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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보신각의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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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시기 파괴당한 보신각의 잔해 속에서 회수된 종의 모습 |
그 후 보신각은 1950년 6.25 전쟁 때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휴전 후인 1953년에 중건하였다. 1971년 서울 지하철 1호선 공사 과정에서 세종 때 지은 옛 종루의 초석이 발굴되었는데, 정면 5칸 측면 4칸 2층 누각이었다고 파악되었다. 이를 토대로 1979년 철근 콘크리트 구조[5]로 종루를 새로 지었다. 발견된 주춧돌은 서울역사박물관으로 옮겨졌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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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4월 촬영한 보신각의 사진 |
1985년에 본래의 보신각종[7]이 노후화되어 종을 새로 주조하고 교체하여 오늘에 이른다.[8] 보신각에 새로 건 종은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을 복제했다.[9] 종루도 앞서 말한 것처럼 현대에 다시 지은 건축물로 정면 5간 측면 4간의 콘크리트 2층 건물인데, 다시 말해 오늘날의 보신각은 종까지 포함하여 전통 양식을 빌린 현대식 건축물인 셈이다. 안타깝게도 건물은 뒤로 더욱 더 밀려났고, 일제강점기에 바뀐 바라보는 방향 그대로 지었다. 편액도 조선시대에 쓴 것이 아니라 이승만의 글씨를 모각한 것이다.
3.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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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각종을 본떠 만든 종로구 CI |
매년 12월 31일이 되면 총 33번에 걸쳐 보신각종을 치는 제야의 종 타종 행사를 여는데,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새해맞이 행사로 꼽힌다.[11] 이 시간에는 종로를 지나는 차량이 전면 통제되고 10~20만명의 수많은 시민들이 보신각 앞으로 운집하며, 지하철은 종각역을 무정차 통과한다. 이로 인해 1·3·5호선 종로3가역, 5호선 광화문역, 2호선 을지로입구역 등 인근의 지하철역에서도 많은 시민들이 하차하게 된다. 1979년 보신각이 현재의 형태로 중건된 이후 줄곧 제야의 종 타종 행사가 열려왔는데,[12] 2020년[13]과 2021년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영향으로 타종 행사가 취소되었다.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 행사가 취소된 것은 1953년 제야의 종 행사의 연례화 이후 처음이다. 2022년에는 다시 제야의 종 타종 행사가 재개되었다.
새해 타종행사는 매년 KBS 1TV에서 생중계하며, 1993년부터 2005년까지는 MBC 연말 가요제를 통해서도 중계되었다.[14] 2017년과 2023년에도 MBC 가요대제전을 통해 보신각 타종행사를 중계하였다.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정오에 종을 12번 타종한다. 예전에는 덕수궁 수문군이 이 곳까지 와서 행사를 했는데, 이제는 그냥 종만 타종한다.
12월 31일 이외에도 3.1절, 광복절 등 국경일이나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일 등 국가적으로 특별히 경축해야 할 날이 되면 타종 행사를 열기도 한다.[15] 이로 인해 윤석열 대통령 임기 개시일인 2022년 5월 10일 0시에 타종하였다.
4. 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
서울특별시의 시도등록문화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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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대교 | 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 | 구 통계국 청사 |
서울특별시 시도등록문화재 제2호 | |
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 | |
소재지 | <colbgcolor=#fff,#191919>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54 |
분류 | 등록문화재 / 기타 / 산업시설 |
수량 / 면적 | 1/0.1㎡ |
지정연도 | 2020년 9월 10일 |
시대 | 1970년 |
소유자 (소유단체) |
서울특별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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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 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水準點)[16] |
4.1. 해설
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은 수도권 전철의 높이 및 깊이의 척도가 되는 원점이다. 종로의 이 수준점을 기준점으로 지하철 선로의 깊이와 터널의 높이, 역사(驛舍)의 상하축 높이가 가늠되었다. 1960년대 인구 과밀화와 차량 증가로 교통체증 문제를 겪던 서울특별시는 1970년 3월 17일 서울특별시 조례 제609호 《서울특별시지하철건설본부설치조례》가 국무총리[17]의 승인을 얻어 공포된 후 6월 9일에 서울지하철 건설본부를 신설했다. 이후 7월 제4차 한일각료회담을 거쳐 9월에 일본 지하철건설 기술용역단이 서울을 방문하였다. 이를 통해 지하철 건설은 기존의 철도망을 전철화하는 한편 서울역-청량리역 구간을 지하로 연결하는 수도권 고속전철사업으로 추진되었다.
서울 지하철 계획의 첫 작업은 수도권 전철 1호선의 기준이 될 수준점을 설정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이 수준점을 기준으로 서울시내 지하철 공사를 위한 모든 측량작업이 이루어졌다. 보신각 울타리 안에 설치된 직경 7cm, 길이 12cm의 놋쇠 못이 한가운데에 박힌 사방 25cm의 화강암 수준점은 지상 20cm 높이로 묻혀 있으며, ‘수도권 고속전철 수준점. 1970.10.30.’이라는 글씨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이날 양택식 시장이 수준점을 설치한 후 첫 측량에 나섰고, 측량 작업은 그해 11월 30일까지 진행되었다.
도로 확장에 따라 보신각이 현 위치로 이전되면서 수준점도 이전되어 수준 기점의 역할은 상실했으나, 여전히 보신각 구역 내에 위치하고,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지하철 1호선 사업의 시발점이었다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서울시등록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다.
서울특별시 시도등록문화재
서울 지하철 계획의 첫 작업은 수도권 전철 1호선의 기준이 될 수준점을 설정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이 수준점을 기준으로 서울시내 지하철 공사를 위한 모든 측량작업이 이루어졌다. 보신각 울타리 안에 설치된 직경 7cm, 길이 12cm의 놋쇠 못이 한가운데에 박힌 사방 25cm의 화강암 수준점은 지상 20cm 높이로 묻혀 있으며, ‘수도권 고속전철 수준점. 1970.10.30.’이라는 글씨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이날 양택식 시장이 수준점을 설치한 후 첫 측량에 나섰고, 측량 작업은 그해 11월 30일까지 진행되었다.
도로 확장에 따라 보신각이 현 위치로 이전되면서 수준점도 이전되어 수준 기점의 역할은 상실했으나, 여전히 보신각 구역 내에 위치하고,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지하철 1호선 사업의 시발점이었다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서울시등록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다.
서울특별시 시도등록문화재
5. 여담
6. 대중매체에서
- 2002년 ~ 2003년에 방영한 SBS 드라마 〈 야인시대〉에서 꽤 모습을 비추었다. 아무래도 극중 주 무대가 종로 2가, 관철동이다보니 당연한 것. 부천 판타스틱 스튜디오에 있던 〈야인시대〉의 보신각 세트는 2012년 3월에 판타스틱 스튜디오를 철거한 이후에도 한동안 남아있었으나 2010년대 말에 헐렸다.
7. 관련 문서
[1]
의외로 법정동
종로1가에 속해있지 않다.
[2]
출처:
《매일경제》 1978년 5월 26일 기사 - 〈「보신각」 중건공사 2억들여 6월착공〉.
[3]
오늘날의
명동 일대이다.
[4]
현재의
탑골공원에 있었다. 탑골공원 내에는 지금도 국보 제2호인
원각사 터 10층 석탑과
원각사비가 남아있다.
[5]
이에 앞서 인근의
광화문도 철근 콘크리트로 지었다가 해체하고 다시 전통 방식으로 만든 바가 있다. 사실 당시만 하더라도 전통 방식의 건축물을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하는 일은 흔한 결정이었으며, 지금도 그렇게 복원된 전통 방식의 건축물이 몇몇 남아있다.
[6]
박물관 입구에 나열되어 있는데 상당히 거대한 크기를 자랑한다.
[7]
보물 제2호, 현재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다.
[8]
교체 이후 첫 타종은 1985년 광복절 때 일이다. 지금도 첫 타종 날짜로 된 기념비가 앞에 있다.
[9]
지금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에밀레종을 더 이상 치지 않지만 80년대에는 에밀레종도 자정에 타종했고, 이를 TV에 생중계했다.
[10]
이전에 쓰인 로고 역시 보신각에서 따왔다.
[11]
보신각종 외에도 전국 주요 도시에 설치된 종루에서 각 지방자치단체 주관으로 제야의 종 타종 행사가 열린다. 다만, 보신각종의 상징성이 워낙 크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새해맞이 순간으로 이 종의 타종을 꼽는다.
[12]
야간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에도 12월 31일 밤은 통금이 예외적으로 해제된 덕에 제야의 종 타종을 구경하기 위해 많은 인파가 보신각 주변에 몰려들기도 했다. 다만, 최근처럼 종로 일대 도로 교통을 전면 통제하고 종로1가 사거리에 인파가 몰려드는 풍경이 연출된 것은 1990년대 이후의 일이다.
[13]
12월 31일
[14]
그 이후부터 2018년까지 임진각 평화의 종 타종행사를 중계했다.
[15]
국경일 경축 타종 행사는 국경일 오후 12시에, 신임 대통령의 임기 개시를 고하는 타종 행사는 취임일 오전 0시에 연다.
[16]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17]
당시 총리는
정일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