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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06:59:09

수문장 교대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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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진흥원의 주요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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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성문 개폐의식 궁중조회 상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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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종 수문장 임명의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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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행사 시간3. 직책
3.1.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3.2. 덕수궁 수문장 교대의식3.3. 창덕궁 수문장 호위의식3.4. 숭례문 파수의식
4. 파수의식
4.1. 광화문 파수의식4.2. 숭례문 파수의식4.3. 돈화문 파수의식
5. 역사
5.1.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수문장5.2. 경국대전에 기록된 수문장의 근무와 교대
6. 절차 및 영상
6.1.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6.2. 덕수궁 수문장 교대의식6.3. 창덕궁 수문장 호위의식
7. 체험행사 및 기념품
7.1. 체험행사
7.1.1. 경복궁7.1.2. 덕수궁7.1.3. 어린이 수문장 교대의식
7.2. 기념품
8. 고증
8.1. 의복
9. 취타대
9.1. 경복궁 수문군 취타대9.2. 덕수궁 수문군 취타대9.3. 창덕궁 수문군 취타대
10. 채용과 운영
10.1. 채용10.2. 운영
11. 공항 수문장 교대의식12. 전주 경기전 수문장 교대의식13. 제주목관아 수문장 교대의식14. 여담
14.1.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 여담14.2. 덕수궁 수문장 교대의식 여담
15. 경복궁 수문장 임명의식16. 경복궁 수문장 특별행사 17. 왕궁수문장교대의식 20주년 기념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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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시대, 수문장청 소속 무관의 당직을 순번에 따라 교대하는걸 재현한 행사이다. 서울시에서는 경복궁과 덕수궁, 창덕궁에서 실시하며, 이를 벤치마킹해 전주시 한옥마을 경기전, 순천시 낙안읍성, 진주시 진주성, 안동시 웅부공원 대도호부 수문장 교대의식, 남한산성, 공주 공산성 수문장교대식 등 전국 각지의 도성/관아 유적 관광명소에서도 수문장 교대의식을 시행하고 있다.

2. 행사 시간

행사시간은 사정에 의해 변경 가능,[1] 우천 시에는 취소되며 우장(비옷)을 착용하고 광화문에 배치만 된다.

3. 직책

3.1.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

직책명 품계 역할 복식 무장
수문장 무관 4품 궁성문 수호 책임자 철릭, 방령더그레, 경번갑(동절기 또는 특별행사시) 등채, 환도
종사관 무관 7품 주장 보좌 철릭, 방령더그레, 경번갑(동절기 또는 특별행사시) 등채, 환도
수종장[4] 무관 5품 대종고 관리 감독 요선철릭, 경번갑(동절기 또는 특별행사시) 등채, 환도
갑사 5~8품 궁성문 파수 철릭, 황동두정갑(동절기 또는 특별행사시) 대도, 동개,시복, 환도
전루군[5] - 궁성문 파수 및 신호 전달 철릭, 방령더그레 환도, 휘[6]
정병 - 궁성문 파수 철릭 장검, 환도
대졸 - 궁성문 파수 철릭 장창,원패[7],환도
총통군[8] - 궁성문 파수 철릭 팔전총통, 죽관요대, 화약통, 화약다지개, 화약숟가락, 환도
기수 - 궁성문 파수 철릭 의장기[9], 환도
취라치 - 군악 연주 및 신호 전달 철릭 -
서운관생도[10] - 대종고 타종 단령[11] -
파일:경복 수문장.jpg 파일:경복 종사관.jpg 파일:경복 수종장.jpg
수문장 종사관 수종장
파일:경복 갑사(철릭).jpg 파일:경복 갑사(황동두정갑).jpg 파일:경복 전루군.jpg
갑사(철릭) 갑사(황동두정갑) 전루군
파일:경복 정병.jpg 파일:경복 대졸.jpg 파일:경복 기수.jpg
정병 대졸 기수
파일:경복 취라치.jpg 파일:경복 서운관생도.jpg 파일:경복 수문장(경번갑).jpg
취라치 서운관생도 수문장,종사관,수종장(경번갑)

3.2. 덕수궁 수문장 교대의식

직책명 품계 역할 복식 무장
수문장 무관 7~9품 궁성문 수호 책임자 동다리, 전복, 두석린갑주(동절기) 등채,환도,동개,시복[12]
참하 무관 7~9품 주장 보좌 동다리, 전복, 두석린갑주(동절기) 등채,환도,동개,시복
수문군[13] - 궁성문 파수 동다리, 전복, 두정갑주 월도,능장,환도,영기,의장기,동개, 시복
승정원 주서 문관 정 7품 군호 전달 및 교대의식 감독·감찰 흑단령(단학) -
액정서 사약[14] 잡직 종 6품 순장패 전달 및 약시함 관리,교대의식 감독·감찰 홍철릭 환도
엄고수 - 신호 전달 홍주의 또는 군복[15] -
취타집사 - 취라치 지휘 철릭 또는 군복[16] 등채
취라치 - 군악 연주 및 신호전달 철릭 또는 협수,전복[17] -
파일:덕수 수문장.jpg 파일:덕수 수문군.jpg 파일:덕수 승정원주서.jpg
수문장 수문군 승정원주서
파일:덕수 액정서 사약.jpg 파일:덕수 취라치.jpg 파일:덕수 엄고수.jpg
액정서 사약 취라치 엄고수

3.3. 창덕궁 수문장 호위의식

직책명 품계 역할 복식 무장
수문장 무관 7~9품 궁성문 수호 책임자 동다리,괘자 등채,환도,동개,시복
종사관 무관 7품 주장 보좌 동다리,괘자 등채,환도,동개,시복
근장군사 - 궁성문 파수 협수, 전복 등채,환도[18]
조총수(포수) - 궁성문 파수 협수, 호의 환도,조총[19],죽관요대,오구(환낭),귀약통 등
등패수 - 궁성문 파수 협수, 호의 환도, 등패
기수 - 궁성문 파수 협수, 전복 환도,의장기(문기,사방기)
순령수 - 궁성문 파수 협수, 전복 환도, 의장기(순시기)
창검군 - 궁성문 파수 협수, 호의 환도,사모 또는 요구창[20]
취라치 - 군악 연주 및 신호전달 협수, 호의 -
파일:창덕 수문장.jpg 파일:창덕 종사관.jpg 파일:창덕 근장군사.jpg 파일:창덕 조총수.jpg
수문장 종사관 근장군사 조총수
파일:창덕 등패수.jpg 파일:창덕 기수.jpg 파일:창덕 순령수.jpg 파일:창덕 창검군.jpg
등패수 기수 순령군 창검군

3.4. 숭례문 파수의식

직책명 품계 역할 복식 무장
호군 무관 4품 도성문 수호 책임자 협수, 전복 환도, 조총
파수군 - 도성문 파수 협수, 전복 환도, 조총[21]

4. 파수의식

4.1. 광화문 파수의식

화요일을 제외한 매일 11시, 13시에 경복궁 광화문 앞에서 파수의식을 진행한다. 엄연한 교대식은 맞지만 규모가 작으며, 수문장이 적간(摘奸)[22]이라는 절차를 통해 당직 및 교대 수문군을 관리, 점검하는 의식이기도 하다. 그래서 교대시 취타대 4명과 당직 파수군과 교대 파수군 12명이 나와 교대를 한다. 10분 정도 걸리는 교대식이다.

2023년 10월, 광화문 월대 공사가 마무리 되어 국민들에게 개방됨에 따라 2024년 초부터는 광화문 월대를 폭 넓게 활용하여 행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4.2. 숭례문 파수의식

옛날부터 있었던 행사로, 2008년 숭례문 방화사건 이후 중단되었다가 2016년 다시 재개되었다. 숭례문 방화사건 이전에는 수문장 1명과 파수군 2명으로 구성되어있었으며, 숭례문 복구 이전부터는 호군 1명과 파수군 2~3명이 함께 근무를 선다. 오전 10시부터 대략 30분 간격으로 파수군이 교대한다. 다른 파수의식보다 규모가 매우 작다. 화재 이전에는 동다리와 전복을 갖추고 있었으나, 숭례문 복구 이후에는 협수를 입고 그 위에 붉은색, 노란색, 푸른색의 전복을 착용하고 있다. 운이 좋으면 덕수궁 왕궁 수문장 교대의식의 출연자들이 순라 행렬을 숭례문으로 올 경우 덕수궁 수문군들과 숭례문 파수군들이 잠깐 같이 근무를 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4.3. 돈화문 파수의식

제 7회 궁중문화축전을 맞아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19로 인해 입직근무로 대체되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대외적으로 공개된 바는 없다. 그러나 2022년 10월 1일부터 16일까지 창덕궁 수문장 호위의식이 부활함에 따라 돈화문 파수의식도 진행되었다. 행사의 구성과 순서는 경복궁 수문장의 광화문 파수의식과 거의 유사하며 당직 군사와 교대 군사가 도열하면 적간을 행하는 약식 수문장 교대의식 행사다.

5. 역사

1996년 당시 서울시 문화과장이었던 이노근[23]이 '우리도 영국처럼 왕궁에서 수문장 교대의식을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에서 덕수궁 수문장 교대의식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서울시 내부에서도 고증 부실에 따른 비판이 우려돼 처음에는 반대에 부딪혔다. 하지만 소관 부서를 관광과로 넘겨, 외국인 관광객용 이벤트로 시작을 할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이노근 의원은 후에 우연한 기회에 시작됐지만, 세월이 흘러 고증자료가 하나 둘 쌓이면서 역사적 의미도 갖게 됐고, 연간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서울의 명물로 자리 잡지 않았느냐고 말했다.[24]

1996년 5월 29일 최초 리허설을 시작으로 6월 15일 첫 행사를 시작하였으며, 다음 해인 1997년 4월부터 주말 상설행사로 정착하였다. 이후 1999년 10월부터 현재와 같이 주6일 행사로 운영되고 있다.

반면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은 2002년 5월경 월드컵 개최와 궁궐활용 문화콘텐츠 확대 기조가 맞물려, 문화재청과 산하 공공기관인 국가유산진흥원이 경복궁에서 진행하였다. 국가유산청은 덕수궁 수문장 교대의식과 차별성을 두기 위하여, 시대를 조선 전기로 설정하고 복식과 의장물(무기) 재현을 전문 문화재위원들과 함께 출토복식과 유물, 기록 등을 연구하여 진행하고 있다.

5.1.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수문장

조선왕조에서 제정한 수문장 제도의 첫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예종 1년( 1469년)에 등장한다. 건국 이후 조선왕조의 궁궐문은 호군(護軍-중앙군 오위의 무관)들이 순서에 따라 돌아가면서 지켰다. 그러나 예종시기 남이 역모 사건 등 왕권이 위협받는 사건이 일어나자 아무리 정예 중앙군이더라도 여러명이 돌아가며 지키는 방식 보다는, 임금의 신뢰를 받는 확실한 궁궐문 책임자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궁궐 경비 체계에 대한 개편이 진행된 결과 수문장 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된다.(1469년)
예종실록 (예종 1년 5월 18일) / 궁성의 문마다 수문장을 세우고, 수문장패를 만들게 하다.

전교하기를, "궁성의 문마다 비록 수문(守門)하는 호군(護軍)일지라도 어찌 파문(把門)하는 갑사(甲士)와 다를 것이 있느냐? 이제부터 별도로 수문장을 세우고, 또 수문장 패(守門將 牌)를 만들어 날마다 낙점(落點)하여 수문하게 함이 어떻겠는가?" 하니, 승지 등이 대답하기를, "성상의 교지가 매우 마땅합니다." 하여, 드디어 그대로 따랐다.

위 실록 기록에 보이듯이 초창기 수문장은 국왕이 직접 낙점하여 임명하였다. 예종실록의 기록과 ' 경국대전 - 병전 입직'에 있는 기록[25]을 함께 참고해보면, 이 당시의 수문장은 병조의 추천을 받은 서반(무반) 4품 이상의 고위 관원들 중 국왕의 신뢰도에 따라 임명되는 방식이었다.
특히 '날마다' 낙점 했다는걸 보면, 수문장은 국왕의 신뢰도 또는 왕실의 안보를 위하여 자주 교체 하였던 것으로 보이므로 임시직이거나 겸직의 형태 였을 것이다.

다만 경국대전에서 '4품 이상자' 라고 못을 박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직을 수행해야 하는 수문장이 힘든 직무인데다가, 교대해야 할 4품 이상의 고위 관원들의 수가 적었기에 업무기피 예종의 뒤를 이은 성종의 재위 당시에는 4품보다 낮은 품계의 관원들이 자주 임명되었던 모양이다.

심지어 성종 이후에는 충의위, 충찬위[26]와 족친위[27] 등 특정 중앙군에서 차출하여 수문장으로 임명하는 사례까지 생겼다. 충찬위나 족친위의 군인들은 높은 신분 출신으로 중앙군 중에서도 근위병 역할을 맡고 있었지만, 이들의 신분 특성상 무과나 취재 같은 시험을 거치지 않는 특례를 받은 군인들이었다. 즉, 수문장 직의 기준인 4품 보다 품계도 낮은데 능력 검증까지 안된 사람들이 궁궐문의 책임자로 임명되었던 것이다.낙하산 그 때문인지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다른 고위 관원에게 시비가 걸려 구타당하거나, 전립이 벗겨지는 등의 모욕을 당하는 사례도 있다.(...)

이러다 보니, 조선 중기 무렵에는 제도를 폐지하자는 의견도 있었는데, 폐지하자니 경국대전을 뜯어 고쳐야 했으므로 결국 제도 자체는 유지되었다.

이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조정에서는 왜적의 수급을 베거나 공을 세운 이들에게 관직을 남발하였는데, 이때 수문장 직도 남발되어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 전국에서 수문장의 직을 가진 이들이 430여명에 달했다. 당연히 수문장 제도는 크게 훼손되어 혼란을 겪었는데,이는 조선후기 영조대에 가서야 재정비 되어 안정된다.

영조 대에 이르면 수문장이 임시직이 아닌 정직(正職)으로 제정되고, 수문장청(守門將廳)이라는 담당 관청을 신설하여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하였다.[28] 그리고 지나치게 늘어나 있던 수문장의 정원을 줄여 종 6품직 5명, 종 9품직 18명 등 총원 23인으로 정하였는데, 이후 고종대에 총원 29명으로 다시 늘어나게 된다. 서울의 궁궐문 외에도 전주의 조경묘(肇慶廟)·경기전(慶基殿)·선원전(璿源殿) 등에 각각 종 9품직 각전수문장을 1명씩 배치하였다.

이렇게 변천을 거듭한 수문장 제도는 고종 대에 이르러 관직 개편에 따라 폐지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5.2. 경국대전에 기록된 수문장의 근무와 교대

조선왕조의 법전인 경국대전에는 수문장을 포함한 궁궐을 지키는 금군의 근무/교대와 관련된 규정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러한 내용이 다수 반영되어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을 재현하고 있다.
경국대전 권4, 병전 / 입직
- 수문장은 서반 4품 이상 관원중에서 임금의 낙점을 받아 임명한다.[29] 궁궐의 입직(경비)하는 장사(장수와 군사)들은 3일 마다 교대한다.[30]

- 궁궐에 입직하는 겸사복은 3개 번(番), 내금위는 5개 번으로 나누어 교대한다. 상호군, 대호군, 호군은 5개 번으로 나누어 교대한다[31]

- 교대하는 날에는 여러 장수들이 예를 갖추는 의식을 하고(숙배례[32]), 궁궐에서 '패(군사를 검열할 때 지니는 표신)'를 수령하거나 반납한다.[33]

- 선전관 2명은 형명(임금을 상징하는 깃발, 악기)을 지니고 임금이 머무는 궁궐에서 수직한다. 취라적(군악대)도 함께 입직한다 [34]

『경국대전주해』의 주석에서는 형명을 "각종 깃발, 대장기, 꽹과리, 북" 으로 설명하고 있다.
『오위진법』에서는 "형은 깃발, 명은 악기로써 대각(大角)·소각(小角)·고(鼓)·금(金)·정(鉦)·비(鼙)·탁(鐸) 7종"으로 설명한다.[35]


경국대전 권4 병전 / 적간
- 장사들이 궁궐에 입직 할때는 병조와 도총부의 통제를 받아 무기 등을 점고 받는다.[36]


경국대전 권4 병전 / 계성기
- 각 궁궐문과 종묘문은 갑사, 정병, 대졸[37] 을 보내어 지키게 한다. 입직하는 장수와 군사들의 숫자, 이름을 자세히 적어 병조에 보고한다.

- 궁궐 문을 지키는 군사는 큰 문(도성문, 광화문, 종묘 대문)에 30명[38], 중간 문에 20명, 작은 문은 10명씩 배치하여 지키게 한다.


경국대전 권4 병전 / 문개폐[39]
- 각 문을 열고 닫거나, 근무 교대할때는 문의 열쇠를 병조에서 수령하거나 반납한다. 궁성문을 열고 닫을때 '표신'을 사용한다.

- 임금이 궁궐 밖으로 행차할때는 수문장이 궁궐문 열쇠를 관리한다. 긴급한 일이 있을때는 호군이나 오원이 궁성문 문틈으로 서신을 받아서 전달한다.

경국대전의 기록이 다소 쪼개져 있지만 '근무 교대하는 장수들의 숙배례' / '병조에서 패를 수령하거나 반납하는것' / '군사들의 무기나 태도를 점고하는것' 등의 기록을 종합해 볼때, 수문장의 근무, 교대 시에도 유사한 절차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6. 절차 및 영상

6.1.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


1. 당직수문군이 광화문에 배치된 후 초엄이 울리면, 교대 수문군이 출발하여 광화문에 도착한다.

2. 이엄이 울리면 교대 수문장과 당직 수문장이 군례 및 신분 확인을 한다.

3. 교대 수문군이 수문장의 호령으로 광화문에 배치되고, 광화문 경계 상황과 수문군의 근태를 점고한다.

4. 당직 수문장과 수문군이 퇴장준비를 하고 삼엄이 울리면, 수문장의 지휘 하에 퇴장한다.

자세한 용어까지 같이 보고 싶다면 이하 링크 참조.
https://www.chf.or.kr/c1/sub2_tab3.jsp

6.2. 덕수궁 수문장 교대의식


군호하부의식, 군호응대, 초엄, 이엄, 삼엄, 예필, 순라의식 순으로 진행된다.

6.3. 창덕궁 수문장 호위의식



행사의 모든 모습이 공개된 것은 아니고 문화재청 대학생 기자단들이 2021년 수문장 호위의식 행사의 일부 모습을 편집하여 공개한 것이다.

행사의 전체 영상은 이 영상을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wc6VjAc9CeY&list=LL

1. 돈화문 월대 중앙에 배치된 취라치가 대각을 불어 행사의 시작을 알림

2. 양 측의 수문장과 호위군들이 돈화문 월대 아래 양쪽으로 나뉘어 배치됨

3. 당직 수문장과 교대 수문장이 서로 군례를 나누고, 당직 종사관이 교대 종사관에게 군호 10장을 인수인계함.

4. 당직 수문장과 군사들이 퇴장을 위해 월대 아래로 이동.

5. 교대 수문장과 군사들이 돈화문 수위를 위해 작문(作門)을 행함.

6. 교대 수문장과 군사들의 배치가 완료되면 당직 수문장과 군사들이 퇴장하여 행사 종료.

7. 체험행사 및 기념품

7.1. 체험행사

경복궁과 덕수궁 둘다 수문장 및 수문군과 사진 촬영은 가능하다. 경복궁은 수문군이 광화문 앞을 지킬 때만 사진 촬영이 가능하지만, 덕수궁은 수문장교대식 중간에 포토타임이 따로 마련도 되어있다.

경복궁 수문장 관련 체험행사 역시 다양하니 참여를 원하는 사람들은 한국문화재재단 홈페이지 - 공지사항을 참고하면 참여에 도움이 된다. 체험 참여시 제공되는 기념품 또한 고품질이기에 참여자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7.1.1. 경복궁

7.1.2. 덕수궁

7.1.3. 어린이 수문장 교대의식

여기서 확실히 경복궁보다 덕수궁은 개방되어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2017년부터 시작된 행사로 수도권 초등학생 4~6학년들이 대상이다. 16명부터 행사진행이 가능한데, 어린이들이 대체하지 못하는 역할들을 빼고는 모두 어린이들이 진행한다. 그렇기에 아침부터 모여서 연습을 진행한다. 체험하면 서울시에서 체험증명서도 발급해준다. 이후 잠시 중단되었다가 2019년에 다시 재개 되었다. 아이들의 점심식사도 제공된다.

7.2. 기념품

파일:수문장기념품1.jpg
파일:수문장기념품2.jpg
파일:수문장기념품3.jpg

사진과 같이 경복궁에서는 수문장 기념품을 판매한다. 수정전 앞에 있는 문화상품점에서 구매할 수 있다. 수문장들이 그려져있는 기념품을 판매한다. 궁궐에서만 판매해서 그런지, 대부분 가격대가 좀 있다. 이것들 외에도 볼펜, 연필, 공책 등 다양한 기념품들이 마련되어있다.

8. 고증

덕수궁 수문장이 우리한테 익숙한 무관복인 군복(흔히 사극에서 사또가 입는 복식)인 반면 경복궁 수문장은 겉에는 방령더그레를, 그리고 안에는 철릭을 착용하며 안쪽 철릭에 혁대(정공청 장군 요대 재현품)와 환도, 수문장 패를 패용하고 있다. 또한 교대식에서 대한문은 한 명 한 명 맞교대하는 '면대면' 교대인 반면, 광화문은 부대와 부대가 열을 지어 들어가고 나가는 식이다.
다만 영, 정조 시기를 재현중인 덕수궁 수문장은 덕수궁(경운궁)의 역사를 생각해 볼 때 장소와 시대 재현 기준이 과연 적절하냐는 지적이 많다.[40] 아예 덕수궁에서의 조선시대 재현행사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거나 덕수궁 수문장 교대의식을 구한말 시기의 시위대[41] 교대의식으로 하자는 의견이 있을 정도.

덕수궁 왕궁 수문장 교대의식의 고증과 관련해서는 당시 연출을 맡았던 김지욱 한국의장 前 대표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알쓸신잡 조선시대 이야기 [42]에서 공개한 바 있다. 연출자들도 덕수궁 왕궁 수문장 교대의식에서 재현되고 있는 고증 오류에 대하여 인지하고 있는 부분은 분명하나 연출자로서 권한의 한계가 있음을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파일:월대재현.jpg
문화재청 덕수궁 관리소 역시 2021년 대한문 월대 재현 공사에 착수하며 공식적으로 대한제국기 황궁의 정문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덕수궁 수문장의 역사적 관련성과 고증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실 덕수궁 수문장 교대의식 처럼 영, 정조 시대 기준으로 재현행사를 하려고 한다면 창덕궁에서 하는 것이 옳다.

결국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의 주도로 2021년 4월 23일부터 제 7회 궁중문화축전을 맞아 창덕궁 수문장 호위의식을 시작하였다.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 측과 연계된 이 행사는 조선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정조시대를 배경으로 하였으며, 복식·무기·의장 등을 전문가의 고증을 토대로 유물이나 그림상으로만 남아있던 전건(戰巾)·대각(大角)·전립(戰笠)·홍마목(紅馬木)·등패(藤牌)·조총(鳥銃) 및 관련 부속품 등을 재현하여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조선 후기 주력으로 부상하였던 조선 후기 조총수(포수)들의 복식과 무기를 잘 갖춘 모습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군사 복식 매니아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은 편이다.

8.1. 의복

수문장을 비롯한 재연배우들의 의복에 관해서는 고증을 맞출려는 노력이 있었다. 조선 시대 순라군 복식을 잘 재현했는데 특히 일반 사극에서 간과되는 환도의 패용 방법은 수문장 교대식에서 만큼은 철저히 고증대로 따라갔다.

경복궁 수문장은 운영 주체가 공공기관 이다보니, 출토복식을 고증을 통해 先 복원하고 後 활용 한다는 점에서 특색이 있다. 조선 중기의 무신(武臣)인 이응해의 방령포와 철릭 등 출토복식을 여러 전통복식 자문위원들의 참여하에 재현하였으며, 요대와 같은 소품의 경우 역시 조선중기 무신인 정공청의 유품 실물을 연구하여 재현하여 사용중에 있다.[43]

덕수궁 수문장의 경우 영,정조 시대의 복식을 재현했다고 하였으나, 2009년 초까지는 환도와 동개, 시복 등의 무장과 복식이 고증에 어긋난 상태로 재현되어있었다. 수문장과 참하, 능장수는 곡선인 도(刀)가 아니라 직선인 검(劍)형식으로 된 칼을 등에 차고 다녔으며, 동개, 시복은 참하만 차는 형식이었다. 이에 대한 고증 문제가 자꾸 논란이 되자 2009년 상반기부터 전문가[44]의 고증 자문을 토대로 갑주, 환도, 동개, 시복, 전립, 군복, 요대 등을 모두 새롭게 제작하여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갑주의 경우 그 해 겨울부터 착용하기 시작하였는데, 단갑(緞甲)의 일종으로 연화당초문이 직금 되어있는 홍색 두정갑주를 수문장이 착용하였으며, 운보문단으로 된 적색 두정갑주는 참하가 착용하였다. 그 외에도 월도수는 수문장과 같이 연화당초문이 직금된 녹색, 황색 두정갑주를 착용하였다. 이때가 어떻게 보면 품계엔 맞지 않게 화려한 점이 있긴 해도 덕수궁 수문장 교대의식에서 가장 복식 형태를 잘 재현한 해였다고 평가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환도의 경우 갑주 차림시에는 얇은 가죽 요대를 허리에 차고 거기에 띠돈을 걸어서 환도를 패용하기도 하였으나, 겨드랑이에 트임을 주어 겨드랑이에 환도를 차는 모습을 재현하기도 하였다. 이때 저고리 위에 웨이빙끈을 이용해 가슴팍에서 고정시키는 벨트가 있었는데, 겨드랑이 부분에 고리를 달아서 그곳에 환도에 달린 고리를 다는 형식으로 재현하였다. 이는 전통 복식 중 유물 중 단배자(短背子)에 달린 고리가 달린 것이 있는데 이것이 환도를 차기 위함이라는 속설[45]이 있다. 그러나 착용자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하여 단배자를 옷으로 만들지 않고 간단한 소품으로 대신하여 환도 패용을 적용시킨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2010년부터는 갑옷 착용 확장을 위하여 수장기, 순시기, 수문장, 참하, 월도수, 능장수 모두 갑옷을 착용하였는데, 수문장은 두석린갑주를, 그 외의 수문군은 모두 황색, 청색으로 된 두정갑주를 입어왔다. 다시 2011년부터는 두석린갑이 수문장과 참하 모두에게 착용되기 시작하였는데 수문장은 새로 만든 두석린갑을, 참하는 2010년에 만든 두석린갑을 물려 받아 착용하였으며, 수문군의 두정갑은 꾸준히 이어져왔다. 군복의 경우 동다리는 홍수의 비율이 철종 임금의 어진을 참고하여 팔꿈치에 이르는 정도로 줄였으나, 실제 정조 시대의 동다리 속 홍수는 더 짧은 것으로 확인되므로 오류라고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용이나 호랑이 문양의 자수가 새겨진 요대, 비갑이 사용되면서 고증도 중요하지만 화려한 복식을 갖추게 하려는 의도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덕수궁 수문장 교대의식은 최근 동다리 등의 복식을 살펴봤을 때 복식 형태를 2009년 고증 작업 이전으로 되돌리는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덕수궁 수문장 교대의식이 서울시에서 주최하긴 하지만 주관 업체는 해마다 공개 입찰을 통해 바뀌고 있기 때문에, 기존 업체가 새로운 무기나 복식 디자인을 개발하여 적용시켜도 그 다음 해에 들어온 업체가 복식과 무기 디자인을 모두 바꿔버리기 때문에 복식, 무장 재현의 연속성이 다소 결여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는 복식의 기본 구성이 20여년째 잘 바뀌지 않는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의 모습과는 많이 비교되는 사항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기본 복식외에 덕수궁 수문장 교대의식에는 두석린갑 두정갑을 사용하며, 경복궁에서는 세종실록오례의에 나오는 경번갑과 황동두정갑을 사용하고 있다. 봄~가을 사이에는 기온이 높을때라 갑주 입은걸 볼 수 없지만, 동절기(12월~2월)와 특별행사(10월) 때는 경번갑이나 수은갑 등 보기 어려운 갑주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직접 가서 경번갑 등의 갑주를 보고 싶을때는 반드시 갑주를 착용하는 시기 인지를 확인하고 가야한다.[46]

창덕궁 수문장 호위의식에서는 덕수궁 수문장 교대의식과 재현 시기(정조 시대)가 겹치는만큼 동다리 괘자, 그리고 협수 호의, 전복을 착용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해당 복식의 경우 원행을묘정리의궤 반차도와 성운 이창운 선생의 군복본 초상화 등의 자료를 참고한 것으로 보이는데 동다리의 소매 끝에 달린 홍수(紅袖)의 형태나 괘자의 형태 등을 봐도 원형 자료에 조금 더 근접하게 재현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민족학박물관에서 소장중인 전건(戰巾)을 재현하여 출연자에게 적용한 사례는 처음이라 주목해볼 필요가 있으며 일부 출연진들의 경우 둥그런 모정이 아니라 원뿔형의 모정이 달린 전립을 착용하고 있다. 이는 역시 해당 운영 주체가 역시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과 동일한 한국문화재재단이다보니 여러 분야 전문가의 고증을 토대로 복원하고 활용하는 작업을 통하여 재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파일:돈화문.png

9. 취타대

9.1. 경복궁 수문군 취타대


15명의 취라척들이 나오며, 복장은 붉은색 철릭에 초립을 쓰고 있다. 연주곡은 대취타, 무령지곡을 비롯하여 국립국악원 김관희 선생의 창작 국악 여러곡이 연주된다. 나발, 나각, 태평소, 용고, 운라, 자바라, 징으로 구성되어있다.

연주곡은 무령지곡, 한강수타령, 경복궁타령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9.2. 덕수궁 수문군 취타대


8~18명[47] 정도로 구성되어있으며, 악기 편성은 경복궁 취타대와 같다. 노란색 철릭을 입는다. 경복궁과는 다르게 취타대에 지휘자가 있다. 연주곡도 다양하며, 타악기로만 연주하는 곡도 있다. 교대의식 중간에, 취타대만 앞으로 나와 연주 퍼포먼스를 하는 시간도 있다.

연주곡은 매번 비슷하지만 약간씩 다르다. 무령지곡, 한강수타령, 여명, 용고마치, 대정창의 등을 연주한다. 여명, 용고마치, 대정창의는 중간 취타대 연주 타임에 연주한다. 용고마치는 타악기만을 사용한 곡이고, 대정창의는 영화 이재수의 난에서 나온 삽입곡인데, 덕수궁의 분위기에 맞게 편곡한 곡이다. 연주곡은 때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여담으로 크리스마스에는 산타복장을 하고 크리스마스 캐럴과 울면안돼를 연주한적이 있다.

9.3. 창덕궁 수문군 취타대

창덕궁 취타대는 2021년 행사에서는 총 11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한 입직근무 기간에는 3명[48]만 출연하고 있다. 2022년 행사에서는 2명이 줄어든 9명으로 구성되었다. 그 구성은 중고에 2명, 용고에 2명, 대각에 2명, 나발에 2명, 탁에 1명이 있었다.

특이하게도 특별한 국악 연주 없이 진행된다. 경복궁과 덕수궁을 비롯한 지방의 수문장 재현 행사와는 다른 악기와 방식이다. 정형화 되어있는 악기를 지닌 다른 수문장 재현행사들의 취타대와는 달리 북과 징, 최소한의 관악기만을 사용하는데. 특히 '대각' 이라는 대형 관악기는 조선시대 회화자료와 악학궤범 등 기록에만 남아있는 것을 복원하여 재현행사로는 최초로 사용되는 악기이다.
중저음의 중형 북과 대각, 징을 사용하기 때문에 의외로 분위기를 무겁게비장하게 만든다.

10. 채용과 운영

10.1. 채용

경복궁과 창덕궁은 국가유산진흥원에서 오디션을 거쳐 전문 배우로 채용한다. 기본적으로 '수문군'과 '파수군' 이란 배역으로 배우를 채용하는데 채용된 수문군 중 키가 180cm를 넘는 사람들은 '파수군' 배역으로 변경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공식적인 이야기이다. 실제로는 인원이 부족하면 180cm 미만자도 파수군으로 근무 할 수 있다.[49] 무엇보다도 오래 서있을 수 있는 강한 체력이 있어야한다. 경복궁과 창덕궁의 배우들은 국가유산진흥원이 주관하는 궁궐 및 종묘 등 각종 재현행사에도 출연할 수 있는데, 출연 여부는 본인의 자유이며 출연 시 추가 수당이 지급된다.

덕수궁은 서울시의 위탁을 받은 업체 소속으로 채용되어 운영하고 있으며 월급제로 운영된다. 덕수궁은 일반인이 직접 행사에 참여할 수 도 있다. 직접 수문장 복장을 착용한 후 교대식에 출연할 수 있다. 외국인 상대로 인기가 많다.

10.2. 운영

경복궁 수문장 배우들은 협생문 쪽 건물이 쉼터이자 근무지이다. 쉼터 내부에는 출연진들이 냉난방과 샤워, TV 시청이나 누워서 쉴 수 있는 휴식공간이 있고 식사와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그리고 매일 출장 배식으로 점심식사가 무료 제공된다.

창덕궁 수문장 배우들은 창덕궁 내 '규장각'과 '책고(冊庫)' 근처의 별도의 공간에서 휴식 한다.

경복궁과 창덕궁 배우들이 출연하는 일정 외 나머지 시간은 자유시간이다. 수문장 교대의식 출연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외출 및 공부, 운동, 수면 등 모든게 허용된다.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 프로그램 중 매일 오전 9시 35분과, 오후 1시 35분에는 협생문 밖 공터에서 약 10여분간 '수문군 공개훈련'을 진행한다. 이는 관람객에게 수문장 교대의식 연습 장면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경복궁과 창덕궁 수문장 교대의식은 공공기관인 국가유산진흥원에서 직영하며, 덕수궁 수문장 교대의식은 서울시가 주최하고 예문관을 비롯한 사설 재현행사 업체가 위탁을 받아 운영한다.

덕수궁은 출연진 대기실이 구대기실과 신대기실이 있다. 서소문청사 5동에 위치해있다. 휴식 공간이 인원에 비해 협소하며 쉼터에서 점심 식사가 제공되지 않아 출연진들의 불편이 많은편이다.

11. 공항 수문장 교대의식

인천공항 탑승동 121번 게이트 앞에서 수문장 교대의식을 하는데 현대적 의미의 국가관문인 인천공항을 수호하는 존재로서 절도 있는 모습에
다양한 전통문화 퍼포먼스가 더해진 종합예술공연이다.
수문장 교대식의 기본 뼈대와 전통은 가지고 관광객이 친숙하게 접할수 있는 포퍼먼스로 눈길을 끈다.
상설공연이고 하루 세번 10:00, 11:30, 13:30에 하고 공연시간은 30분 가량 진행된다.
공연이 다끝나고 관광객과 촬영하는 시간을 가져 출국하기 직전 사람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기도 한다.
경복궁 수문장과 같은 국가유산진흥원이 운영하기 때문에 복장은 경복궁 수문군 과 비슷하다.

https://www.instagram.com/reel/C7E04F1i3dy/?igsh=MWhjNnc0NmpmZ2phMg== 수문장 교대식 공연중 한부분이다.

12. 전주 경기전 수문장 교대의식

전주한옥마을에 위치한 경기전 입구에서도 수문장 교대의식이 진행된다. 대략 15분정도가 소요되며, 복장과 절차는 덕수궁 왕궁수문장교대의식과 거의 비슷하다. 교대의식을 하러 오는 거리에서 취타대가 연주를 하며 행진한다.

2024년 기준 행사가 폐지되어 더 이상 시행되지 않고 있다.

13. 제주목관아 수문장 교대의식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위치한 제주목관아에서도 수문장 교대의식이 진행된다. 매년 5월·10월 매주 일요일 오후 4시에 진행된다.[50] 1부와 2부로 나눠서 진행하는데 1부는 다른 지역처럼 수문장 교대의식을 하고 1부가 끝나자마자 바로 2부인 무예공연을 진행한다. 무예공연의 스토리는 을묘왜변 문서의 2차 침공 단락을 참조. 수문장의 군복과 절차는 덕수궁 왕궁수문장교대의식과 거의 비슷하나 수문군의 복장은 자체적으로 제작한 듯 하다.[51] 제주목관아 행랑채에 마련된 목관아 전시관에서 수문장의 군복과 똑같은 군복을 입어볼 수 있다.[52]

14. 여담


경복궁 수문장의 도깨비 마스크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해당 제품을 판매하는 박물관 기념품 샵은 문의가 폭주하여 마비되었을 정도였다. 저열한 품질의 짝퉁 도깨비 마스크까지 난립할 정도. 이제는 경복궁 수문장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수궁 수문장 또한 경복궁 수문장을 벤치마킹 했는지 지금은 연분홍색의 전통문양 마스크를 제작하여 사용하고 있다. 현재는 수원화성을 비롯하여 지방 재현행사에도 전통문양이 들어간 마스크나 복면을 사용하고 있다. 경복궁 수문장이 선구적인 역할을 한 셈. 수제 제품이라 가격이 상당히 비싼 편이며 마스크에 탈부착이 가능한 방역 필터가 5장 포함되어 있다. 고궁박물관 기념품 샵 및 각 궁궐 기념품 샵에서 판매중이다.

파일:도깨비 마스크.jpg

경복궁 수문장은 교대의식이 중단된 대신 광화문과 근정문에 수문군을 나누어 배치하였는데, 출퇴근 시간 / 근무 시간 / 근무 장소를 최대한 조정하여 분산 근무를 함으로써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면서도 배우들이 정상 출연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코로나 19 사태가 장기화되고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발령되자 한동안 교대의식이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2021년 11월 1일부터 위드 코로나(with 코로나)가 시행되면서 수문장 교대의식 및 광화문 파수의식이 정상적으로 시행되었다.

14.1.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 여담

2020년 경복궁 수문장과 온양 민속박물관이 협업하여 조선시대 비옷인 "우장"을 최초로 재현하여 수문장 교대의식 행사에 활용하고 있다. #

우장은 머리에 쓰는 '지삿갓'과 '갈모' 그리고 몸에 걸치는 '유삼'으로 구분되는데. 모두 온양박물관의 협조를 받아 소장중인 유물을 실측하여 재현하였다. 단순하게 보여도 전통방식의 물에 젖지 않는 재료와 우장 특유의 질감을 재현하는데 상당히 고생했다고. 우장은 비 또는 눈이 내릴 때 광화문에서 전원이 착용한 것을 볼 수 있다.

단순히 퍼포먼스만을 보여주는데 집중하는 다른 재현 행사들과 달리, 전통문화를 복원하고 또 그것을 활용하는 시도가 언론 및 SNS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경복궁 수문장은 개최 당시엔 수문장 교대의식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지만, 가장 처음 행사 구성은 《경국대전》 기록에 따라 수종장과 서운관생도가 광화문 문루 위에 자리한 종을 쳐서 문을 열고 닫을 시간임을 알리면, 도총부 당하(경력)[54], 승정원 주서, 액정서 사약이라는 관리 세 명이 흥례문에서 광화문으로 이동하여 개문패(開門牌) 또는 폐문폐(閉門牌)를 보여주고, 직접 그들이 감독하는 자리에서 약시함에 담긴 궁성문의 열쇠[55]를 주고 받으며 궐문을 엄숙히 열고 닫는 궁성문 개폐의식도 함께 연출되었다.

뿐만 아니라 궁성문을 열면 조선 초기 관복 차림을 한 문무백관들이 출근하는 입궐 절차, 그리고 궁성문을 닫을 땐 문무백관들이 퇴근하는 퇴궐 절차, 끝으로 요령이라는 종을 들고 궁성 주변을 순찰하는 요령장과 요령군이 개문 절차에는 순라를 마치고 궐 안으로 들어왔었다.

폐문 절차에는 순라를 하기 위해 궐 밖으로 나가는 장면 등을 함께 연출하여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였으나, 광화문 복원 공사가 시작된 이후, 광화문 공사로 인한 연출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도총부 경력과 승정원 주서, 액정서 사약이 흥례문에서 나와 수문장에게 개문패, 또는 폐문패를 보여준 후 군례를 주고 받는 궁성문 개폐 절차에 따른 예비 절차만 공개하는 형식으로 보여주다가 이후에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광화문 복원 공사 이후에는 관람객의 통행 불편에 따른 민원 때문인지 현재까지 수문장 교대의식만 연출되고 있다.

다른 행사로는 한국문화재재단에서 주관하는 '궁궐, 일상을 걷다'라는 프로그램을 신청하기 바란다. 창경궁과 경복궁에서 진행되었으며 창경궁은 궁중문화축전 시기에, 경복궁은 10월에 진행되었다. 체험자 소감을 들어보니 시간이 막연히 긴 것도 아니고 복식체험도 하니 만족스럽다고 한다. 경직된 자세를 굳이 유지해야되는 것은 아닌지라 무기를 패용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또 지정된 자리를 이탈하지 않는 한, 관광객과의 대화나 사진 촬영은 가능하다고 한다.

2021년 11월 기준, 수문장 교대의식의 특별행사로서 경복궁 야간 개방 기간인 11월 10일부터 29일까지 왕가의 산책이 연출되었는데, 해당 행사에서는 조선 전기 왕실의 겨울철 복식(이엄,토수) 등을 재현하여 행사에 적용하였다. 알록달록한 예쁜 색으로 복원하여 관람객들의 호응도가 높은 편이다.

수문장 교대식은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의 4개국어[56]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해설 방송과 함께 진행된다. 다른 왕조 국가들처럼 전통적으로 계승되는 의식을 수행하는 게 아니라 그냥 현대에 부활한 재현 행사라는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다양한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다는 변호 의견도 있지만 위엄과 웅장함이 떨어지고 교대식을 조잡하게 보이게 만든다고 비판하는 의견 또한 많다. 논외로 한국어 안내 방송의 경우 KBS 성우 남도형 강한별이 성우로 데뷔하기 전 수문장 교대의식 안내 방송을 맡았던 적이 있다.

매년 3월 말에는 경복궁 흥례문 광장에서 수문장임명식 행사가 진행된다. 조선시대에 국왕이 수문장을 낙점하던 행사로,행사 중 명예수문장도 낙점한다. 첩종과 같이 주요 수문장 행사 중 하나이다.

매년 10월에는 경복궁 광화문에서 수문장 교대의식의 특별행사로 " 첩종"이라는 재현 행사도 열린다. 총 출연자는 200명 내외이며, 조선시대의 전술체계인 오위진법 시연, 전통무예시연 등을 보여주며 국궁 쏘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된다.[57]

옛날에 수문군이 교대하러 광화문 광장까지 나갔던 적이 있었다. 아마 매번 그런 것은 아니고 특별한 날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과 경복궁 수문장 교대식을 둘다 보면, 확실히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경복궁은 약간 멀리서 보는 형식적인 느낌에 그치지만, 덕수궁은 관광객과 수문군의 거리가 바로 앞이라 더 가깝게 느껴진다.[58]

광화문 광장이 공사 이후 재개방됨을 홍보하기 위하여 2022년 8월 6일부터 8월 14일까지 10시 수문장 교대의식을 마친 후 모든 출연자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나아가 광장 주변을 순찰하는 순라의식을 한 적이 있다. 광화문 광장 북쪽에서 남쪽으로 행진하여 다시 되돌아와서 광장 북쪽에서 관람객들과 기념 사진 촬영을 하는 형식으로 운영되었으며 행사 진행 시간은 약 4~50분이 소요되었다. 당시 순라군 역할을 맡았던 수문장은 2사람이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은 시민체험자를 선발하여 명예수문장으로 임명하여 순라를 체험하는 형식으로 운영하였다. 순라 행사 영상은 다음 영상을 참고하기 바란다. https://youtu.be/f3ue49PerLg

2022년은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이 시행된지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에 따라 한국문화재재단에서는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 제주목관아, 인천공항 등의 지역에서 시행되는 수문장 교대의식 출연자들이 모여 전국수문장 임명의식이라는 행사를 기획하였다고 한다. 각 지역의 수문장들이 임금 앞에 모여 수문장직을 임명 받는 의식인데 각 행사 주관처가 다른만큼 여러 곳에서 모여있음이 의미 있다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2023년 12월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에 팔전총통을 든 총통군이 처음 등장하였다. 흑색 철릭에 립을 쓰고 허리에는 환도, 화약 숟가락, 죽관요대, 화살 등 팔전총통을 발사하기 위하여 필요한 장비를 착용한 모습으로 고증되었다.

2024년 3월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의 부대행사로서 주말, 공휴일에 2022년 광화문 광장 개방 때 진행되었던 수문군 순라의식이 다시 진행된다고 한다. 다만 장소는 광화문 광장이 아니라 경복궁 광화문 월대에서 출발하여 동십자각을 거쳐 송현공원, 인사동으로 이동하는 경로로 진행되며, 북인사마당에서는 수문장, 수문군과 함께 기념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 관람객들의 반응이 호의적이다.

14.2. 덕수궁 수문장 교대의식 여담

덕수궁의 3시 30분 교대식을 마치고 원래는 서울시청 광장을 순라하는 의식인 순라행렬이 있지만, 시청광장에는 보통 맨날 행사나 전시물들이 점거하고 있어, 진행이 자주 안 된다.

수문장 교대식을 진행하러 대한문 앞 광장으로 나올 때, 덕수궁 안에서 나올 때도 있고 돌담길 쪽인 밖으로 나올 때도 있다. 퇴장은 대부분 돌담길 쪽으로 한다.

예전에 교대식 끝나고 광화문 광장까지 나가서 순라를 한적이 있었다. 한두번 한것은 아니었다. 요즘은 그게 번거로운지 그냥 시청 앞에 잠깐 순라하거나 남대문시장을 순라한다. 이마저도 자주는 안하는 듯하다.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은 토요일 오후 교대식은 진행되지 못한다. 박사모들이 집회한다고 대한문 광장을 점거하기 때문이다. 매주 집회하다보니 관광하러 오는 관광객들 불편이 없을리가.

오전 11시 교대식을 마치고 숭례문에 파수의식을 하러 순라행렬을 한다. 숭례문에 도착해서 파수의식을 진행한 후 남대문시장에도 가서 순라행렬을 하고 다시 덕수궁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남대문시장 상인들의 민원으로 남대문시장은 순라하지 않고, 숭례문을 갔다가 그냥 바로 덕수궁으로 돌아온다.

오전 9시 30분부터 수위군[59]이 대한문 앞을 지키며, 30분 마다 교대를 한다. 이 때 교대는 교대식이 아닌 그냥 말그대로 교대다. 참고로 12시부터 13시까지는 점심시간이라 수위군이 없다. 수위군이 근무를 서는 시간은 수문장 교대의식을 전후로 진행되는데, 자세한 근무 시간은 아래 사진을 통해 확인할 것.

파일:수위군.jpg

오전 10시경에 대한문 앞에서 교대식 출연자들이 연습을 하는 모습을 목격해볼 수도 있다.

15. 경복궁 수문장 임명의식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수문장 임명의식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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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3월 말에 경복궁 흥례문 앞 광장에서 거행되는 수문장을 낙점하는 의식이다. 국왕이 직접 행차하여 궁성문을 지키는 수문장을 임명한다. 또한 현대 대한민국 사회에 공헌하거나 모범이 된 시민에게 명예수문장이라는 것도 임명한다.

본래 조선시대 수문장은 4품 이상의 무관 중 병조에서 몇 배수 이상의 인원의 이름이 적힌 명단을 국왕께 바치면, 국왕이 이 들 중 맘에 드는 인물을 골라 낙점(落點)하는 형식으로 등용하였다. 이에 수문장으로 임명된 장수는 어전으로 나아가 국왕에게 숙배례(肅拜禮)를 올린 후 수문장패를 하사 받는 절차로 임명되었다. 해당 행사에서는 수문장이 임명되면 무원(舞員)들이 나와 궁중 악무를 추는데, 실제 이러한 장면들은 없었다. 다만 수문장 임명에 따른 절차를 토대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재현하되, 보는 이들로 하여금 흥미를 느끼게 할 수 있도록 연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22년은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이 시행된지 2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10월 3일 오후 2시에 경복궁, 덕수궁, 제주목관아, 인천공항, 창덕궁의 수문장들이 모여 국왕에게 수문장직을 임명 받는 전국수문장 임명의식이 진행되었다. 아쉽게도 행사일에 폭우가 쏟아져 비를 맞으며 행사를 진행하여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아쉬움이 남았다.

16. 경복궁 수문장 특별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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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5월 궁중문화축전 때와 10월경에 경복궁 흥례문 앞 광장에서 진행되는 조선시대 사열의식이다. 한마디로 조선시대 군사훈련이라 보면 된다. 2011년부터 현재까지 10년간 진행중인 재현행사로 약 200명의 출연진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퀄리티가 어느정도 높다.

17. 왕궁수문장교대의식 20주년 기념행사

1996년 대한문에서 수문장 교대의식을 시작한 이래, 2016년 6월 23일에 20주년을 맞아 서울시청 광장에서 교대의식 및 대열의식을 진행했던 행사이다. 출연진은 덕수궁 수문군과 육군의 장병 지원, 통제영무예공연단의 지원 등으로 이루어졌다.

국왕의 군대 사열 재현이란 면에서 경복궁 첩종과 유사한 성격의 행사였는데, 군대 사열이나 진법 형성 콘텐츠 역시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다만 화살이 날아다니고 무기와 방패가 박살나는 등 동적이고 극적인 요소가 많은 첩종에 비해 느린 템포와 다소 정적인 동작으로만 진행되었다. 그리고 전통무예 시범을 추가로 선보였다.

조선 후기 중앙군 사열의식이란 행사 답게 두정갑 및 두석린갑 등 갑주가 다수 등장하였으나, 두정갑은 상당히 조악한 형태 였으며. 군사들이 동개와 활을 등에 매달고 다니거나 고증 불명의 방패가 등장하고, 일부 출연진들이 환도를 패용하지 않고 손에 들고 다니는 등 기초적인 고증이 무시된 장면이 보여 아쉬움이 있었다.
[1] 경복궁의 휴궁일인 매주 화요일에는 행사가 없다. 그러나 명절 연휴가 화요일이거나 궁중문화축전 기간 중에는 화요일에 경복궁이 개관될 수 있으므로, 그때는 행사가 진행된다. [2] 숭례문 순라행렬은 월요일을 제외한 11시 교대식이 끝나고 진행된다. 우천 또는 폭염, 영하 -5도 이하로 내려갈 경우 시행되지 않는다. [3] 사실 수문장 교대의식은 2021년 5월부터 대한문 월대 재현 공사로 인해 중단되었었다. [4] 이전에는 광화문 문루 위에서 서운관생도와 함께 행사에 참여했다. 하지만 근래에는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행사에 출연하지 않는다. [5] 기병(騎兵)에 속하며, 경점군사(更點軍士)라고도 부른다. [6] 누군가의 '휘하(麾下)'에 들어간다고 할 때 쓰는 말로도 알려져 있는 바로 그 휘(麾)가 바로 깃발이라는 뜻이다. [7] 우천시 혹은 별도의 사유에 따라 장방패에 등장을 쥐고 출연하기도 한다. [8] 2023년 12월 말즈음부터 행사에 투입되었다. [9] 대체로 사방기(주작,현무,백호,청룡)와 전전대기, 홍문대기, 금자기, 고자기로 구성되어 있다. [10] 궁성문 개폐의식이 있을 때에는 오전 10시 개문의식과 오후 3시 폐문 의식 때 매번 출연하였으나 궁성문 개폐의식이 사라진 이후 현재 수문장 교대의식 행사에서는 출연하지 않고 궁궐 호위군 사열의식 첩종 행사에서만 볼 수 있다. [11] 이전에는 액주름을 입고 있었으나, 어느순간부터 단령으로 바뀌었다. [12] 어쩔 때는 동개,시복 없이 등채와 환도로만 무장하기도 한다. [13] 경복궁과는 달리 들고 있는 의장물이나 무기에 따라 직책명이 부여된다. 능장, 기수, 월도, 수장기와 같은 명칭으로 분류되므로 수문군으로 통합하여 정리하였다. [14] 참고로 내시부 산하의 관청에 액정서가 속해있으며, 사약은 내시의 관직이다. [15] 해마다 복식이 악사의 복식이었다가 무관의 복식이었다가 하면서 계속 뒤바뀌곤 한다. 장악원 소속으로 볼 것인지, 무관으로 볼 것인지가 불분명하여 생기는 사례인듯. [16] 엄고수와 마찬가지로 군복을 입었다가 철릭을 입었다가 하면서 자주 바뀐다. [17] 위와 동일 [18] 환도를 패용할 때도 있고 패용하지 않을 때도 있다. [19] 화승과 용두가 달린 전형적인 조선시대 화승총이다. [20] 4명 중 2명은 사모(蛇矛)를 들고 있고, 나머지 2명은 요구창(腰鉤槍)을 들고 있다. [21] 수석식 조총으로 보이는데, 해당 조총의 고증은 대충 넘기더라도 조총과 관련된 기타 부속 장비가 전혀 보이지 않는건 아쉬운 점이다. 조총은 부속 장비가 없으면 1회 사격 후 단순한 몽둥이가 된다. 일회용 [22] 실제 <경국대전>에 기록되어있는 절차로, 궁성문을 파수하기 전에 근무에 배치될 군졸들 중에서 과거에 범죄를 저질렀거나, 무기나 복장은 양호한지 확인하는 예비 절차를 말한다. [23]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24] 처음 수문장 교대의식을 준비하던 1996년 당시에는 인터넷 기술이 부족하여 자료 수집 시 방대한 원 사료를 직접 찾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자료 수집 자체가 어려웠기에 고증이 부실하여 비판을 피할 수 없었던 것. 물론 노력이 더 필요했던 담당 공무원들이 대충 추진한것도 문제였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인터넷이 발달하여 사료 원문을 인터넷으로도 검색이 가능해졌고, 연구가 확대되어 현재는 축적된 자료가 상당히 많아졌다. 아래 '실제 기록상에서의 수문장' 파트, '의복 고증 파트' 등 참고 [25] 수문장은 서반 4품 이상자로써 임명한다. [26] 공신들의 자손으로 구성된 군대 [27] 종친이나 왕비쪽 인척들로 구성된 군대 [28] 경복궁 광화문을 들어가면 좌우로 보이는 건물이 수문장청이다. 이러한 수문장청을 설치하기 전에는 병조로 가서 업무를 봐야 했다 [29] 금군의 친위대장격인 종2품 내금위장과 겸사복장도 수문장과 비슷한 절차로 임명되었다. 경복궁의 수문장 임명의식은 이 기록을 근거로 구성된 재현행사이다 [30] 군사들이 3일동안 궁궐 안에서 근무를 해야했기에, 근무 병력 내에서도 여러번 소규모 교대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금군들이 여러 조를 나누어 근무 교대한 경국대전 기록이 그 근거가 되는데, 이것이 반영된게 경복궁의 '광화문 파수의식' 으로 근무 병력의 소규모 교대를 재현한 것이다. 반대로 '수문장 교대의식'은 3일동안 근무했다 치고 전체 병력의 대규모 교대를 재현한 것. [31] 궁궐에 입직하는 금군의 교대에 세부 규정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목할 점은 '호군'인데 이들은 앞서 언급된바 있지만, 본래 궁궐문을 책임지던 무관이었고 수문장 설치 이후에도 궁궐문 경비 업무에 계속 관여하고 있었다. 수문장이 총 책임자라면 호군(또는 종사관)은 중간 관리자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이므로, 광화문에 배치된 군사들의 근무도 호군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32] 숙배란 임금에게 예를 표하는 것으로, 『경국대전주해』의 주석에 따르면 손을 들고 몸을 숙여 절하는 것과 비슷한 예법이었다. 궁궐의 금군 장수들이 교대 시 숙배례를 한것 외에, 무관 4품 이상 관직에 제수된 관원이나 지방관으로 파견되는 경우에도 숙배례를 해야했다. 수문장 교대의식에서는 수문장들이 서로 예를 표하는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33] 위의 예종실록에 보이는 '수문장 패'가 이것으로 추정된다 [34] 궁궐의 입직에 군악대인 '취라적'이 포함되어 있는것은 각종 악기를 이용한 명령 신호체계가 정립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경복궁이나 덕수궁 수문장 교대의식의 취타대도 경국대전을 반영, 각종 악기를 이용하여 수문군에게 명령 신호를 전달한다. [35] 대각, 소각은 나발의 종류 / 고, 비는 북의 종류 / 금과 정은 징 또는 꽹과리를 의미하며 / 탁은 작은 종을 말한다 [36] 광화문 파수의식에서 적간을 재현하고 있다 [37] 중앙군 오위에 소속된 군인들로, 역시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에서 재현하고 있다. 그 유명한 유자광이 경복궁 건춘문의 갑사로 배치되어 근무한 이력이 있다 [38]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의 인원 구성은 이 기록을 근거로 하고 있다. 광화문에 입직 근무하는 1개 조 인원을 경국대전 기록대로 30명으로 구성하며, 교대 인원까지 합치면 60여명. 여기에 악기를 연주하는 취라적을 합쳐 총원 75명 내외의 규모로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 인원을 구성하게 된다. [39]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에서 이 기록대로 ' 궁성문 개폐의식'을 함께 진행한 적이 있다. 덕수궁 왕궁 수문장 교대의식에서도 궁궐문 열쇠를 관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40] https://www.chosun.com/opinion/2021/05/12/S2TC3ZFVMJBLLOQF2QJLNFET6Q/?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aver-news&form=MY01SV&OCID=MY01SV [41] 대한제국의 근위대. 황실 경비와 궁궐, 수도방어를 담당했다. [42] https://www.youtube.com/watch?v=jyokL0nxS9c [43] 사족으로 사실 재현된 복식의 일부 사이즈는 고증에 부합하지 않는것도 있다. 수문장 교대의식 초창기에는 출토복식 규격이나 비율을 그대로 반영하여 재현 하였으나, 현대인의 키와 조선시대 당시 키 차이를 감안하지 않다보니 현대인이 입었을때 복식이 지나치게 짧아지는 문제가 발생하였던 것이다. 미니스커트 지금은 현대인의 키를 반영하여 사이즈를 조정하고 있으므로 그 점은 감안해서 봐야 할 것이다. [44]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측에서 고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45] 이훈종 선생이 쓴 <국학도감>에서 이와 같은 주장이 발견된다. [46] 지식인질문 [47] 최대일 때가 18명 정도이다. 최근은 8명 내외로 구성됨 [48] 용고 2인, 징 1인 [49] 파수군은 수문군보다 급여가 높은데, 상대적으로 근무 시간이 길다. 파수군을 직접 보면 크다는 인식이 생긴다. [50] 코로나 19 이전에는 혹서기를 제외한 매주 일요일에 진행했다. [51] 흔히 사극에서 포졸복이라며 나오는 정체불명의 저고리+전복 차림도 창덕궁 호위의식처럼 고증에 맞춘 군복도 아니다. 군복형태의 협수와 전복 모두 하늘색인 군복으로 보면 이해가 될 듯 싶다. [52] 대신 환도는 안전상의 문제로 구비되어 있지 않다. [53] 도깨비 마스크도 방역 필터가 달려 있지만, 마스크 안에 KF94 마스크를 한 장 더 착용한다. 즉 두 장의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것 [54] 오위도총부 소속 종 4품 관료 [55] 액정서의 잡직 관리인 사약(司鑰)이 관리한다. [56] 2024년 기준 덕수궁과 경복궁은 모두 외국어 안내 방송을 녹음본으로 대체하였다. [57] 수문장 역할을 해오시는 분이 몇년째 하시고 있는 것 같다. [58] 경복궁과 덕수궁의 관람객 차이와 공연장 규모 때문이다. 두 궁궐은 관람객 규모에서 비교가 불가능하며, 당연히 엄청난 인파가 몰리는 경복궁은 안전과 원활한 진행을 위하여 관람석과 공연장, 관람객 동선을 넓게 구분 할 수 밖에 없다. 덕수궁은 애초에 대한문 앞이 비좁기도 하고 그만큼 관람객 수가 적기 때문에 현재처럼 진행하고 있는것이다. [59] 1대에 두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