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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3 22:37:17

미사

파일:다른 뜻 아이콘.svg   이 문서는 가톨릭 교회의 성체성사이자 성찬례인 미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른 뜻에 대해서는 아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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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 거양
1. 개요2. 용어 정리
2.1. '미사(Missa)'의 어원2.2. '미사'와 '전례'의 관계2.3. '미사'와 '성체성사'와 '성찬례'와 '성찬 전례'와 '영성체'의 관계2.4. 말씀'의' 전례? 성찬'의' 전례?
3. 성체성사(미사)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3.1. 누가 언제 어떻게 왜 제정하였는가?3.2. 성체와 성혈: 말씀과 성령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현존3.3. 실재와 상징: 성체성사의 실재적 요소와 상징적 요소3.4. 교회 생활의 원천이며 정점인 성찬례3.5. 성체성사 거행의 과정: 모든 세기에 걸쳐 거행되어 온 미사3.6. 성체성사의 집전자와 거행자3.7. 감사와 기념의 희생 제사인 미사3.8. 잔치로서의 미사
4. 미사의 효과5. 미사 거행에 사용되는 책
5.1. 전례서5.2. 참고서
6. 미사 거행에 쓰는 빵과 포도주
6.1. 제병6.2. 포도주6.3. 포도주와 물을 착각했을 때6.4. 특별한 경우에 대한 배려6.5. 남은 성체와 성혈 처리, 그리고 성체나 성혈을 떨어뜨렸다면
7. 미사의 종류8. 미사의 구조
8.1. 시작 예식(Ritus Initiales)8.2. 말씀 전례(Liturgia Verbi)8.3. 성찬 전례(Liturgia Eucharistica)8.4. 마침 예식(Ritus Conclusionis)
9. 미사에 사용되는 음악10. 미사 전례에 임하는 합당한 자세11. 오늘날 미사(바오로 6세 미사)에 관한 여러 오해
11.1. 그날 미사의 고유 기도와 독서가 전 세계가 모두 같은가?11.2. 라틴어 미사는 금지되었다?11.3. 벽 제대는 트리엔트 미사만의 요소이다?
12. 여담
12.1. 혼인 미사에 참석하는 비신자들의 어려움12.2. 부득이 미사에 참여할 수 없을 때: 대송
13. 관련 어록1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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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리 구세주께서는 팔리시던 그 밤에 최후 만찬에서 당신 몸과 피의 성찬의 희생 제사를 제정하셨다. 이는 다시 오실 때까지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세세에 영속화하고, 또한 그때까지 사랑하는 신부인 교회에 당신 죽음과 부활의 기념제를 맡기시려는 것이었다. 이 제사는 자비의 성사이고 일치의 표징이고 사랑의 끈이며, 그 안에서 그리스도를 받아 모시어, 마음을 은총으로 가득 채우고 우리가 미래 영광의 보증을 받는 파스카 잔치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 거룩한 공의회」 47항. 원문 열람.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23항. 원문 링크.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2항. 전자책 링크. 전례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미사'(Missa)는 가톨릭 교회에서 성찬례를 일컫는 표현이다.

성체성사요 성찬례인 '미사(Missa)'는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 구원을 위해 당신 자신을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바친 것을 기념하고 재현하는 제사이며,[1] 가톨릭 교회 생활 전체의 원천이자 정점이다.[2] 가톨릭 교회의 모든 직무나 사도직 활동과 마찬가지로 다른 여러 성사들은 성찬례와 연결되어 있고 성찬례를 지향하고 있다.[3]
※ 일러두기: 원칙적으로 '미사'와 '성체성사'는 동의어이다. 따라서 성사적으로 유효한 모든 성체성사는 설령 정교회의 것이라도 모두 '미사'의 정의에 부합하지만, 이 문서에서는 '미사'라는 단어를 즐겨쓰는 가톨릭 관점에서의 '미사'를 다룬다.

2. 용어 정리

2.1. '미사(Missa)'의 어원

"본래 ‘Missa’라는 용어는 교회안에서 처음 사용된 것이 아니라, 로마시대 일반 사회에서 통용되던 것이다. 즉 ‘Ite, Missa est’라는 관용어는 법정에서 ‘재판이 끝났다’는 것을 선포한다든지 혹은 황제나 제후, 고관대작들을 알현한 뒤 ‘알현이 끝났다’는 것을 알려주는 말이었다."[4] 여기서 ‘Missa’라는 라틴어는 ‘보내다’, ‘떠나 보내다’, ‘파견하다’의 뜻을 가진 ‘mittere’ 동사에서 파생된 단어 'missio'(보냄)의 다른 형태이다.

교회는 일반 사회에서 통용되던 이 라틴어 어휘를 수용하여 성찬례의 성격을 드러내는 말로 재해석해 사용한다. 요컨대, 가톨릭에서 성찬례를 일컫는 말인 미사(Missa)는 '파견'이라는 의미로, '미사성제(Missa聖祭)'는 '파견의 거룩한 제사'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32항은 "구원의 신비를 이루는 이 전례는 일상생활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도록 신자들을 파견missio함으로써 끝나기 때문에"(quia liturgia in qua mysterium completur salutis, per missionem concluditur fidelium, ut ipsi Dei voluntatem in sua vita adimpleant quotidiana.) '미사'라 불린다고 언급한다. 곧, '미사'라는 이름은 성찬례가 가진 다양한 성격 중 '파견'에 초점을 찍은 이름으로, "세상의 소금"(마태 5,13)인 교회의 파견 사명과 사도직, 선교, 적극적 신앙을 드러낸다.

'Missionem'이라는 단어에서 매우 익숙한 영어 단어가 떠오를 것이다. 바로 'mission'이다. 실제로 'missio'로부터 생겨난 '파견', '보냄'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가 몇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중 하나가 바로 'missile (미사일)'이다. 가톨릭 교회의 미사에 평화의 의미가 함께 있음을 생각한다면, missile이라는 단어를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지 여러 해석이 나올 것이다.

2.2. '미사'와 '전례'의 관계

전례(典禮)라는 말은 본래 '공적인 일', '백성들의, 백성들을 위한 봉사'를 뜻한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의 일”에 참여함을 의미한다. 우리 구속주이시고 대사제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전례를 통해서, 당신 교회 안에서, 교회와 더불어, 교회를 통하여 우리의 속량을 위한 일을 계속하신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069항. 원문 링크.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미사를 비롯하여 천주교의 공식적인 경신례(敬神禮)를 전례(典禮)라고 합니다. 전례는 교회 공동체가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공적 예배를 뜻합니다. 전례를 통하여 신자들은 하느님을 공적으로 흠숭하고 그분께 영광을 드리며,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거룩하게 됩니다. 또한 신자들은 형제적 사랑을 나누고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를 이룹니다.
『한국 천주교 예비 신자 교리서』(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제3판, 2018년) 40면. 전자책 링크.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종종 '미사'와 '전례'를 동일하게 여기곤 한다. 그러나 전례는 교회가 성경이나 성전(聖傳)에 의거해 공인한 의식으로, 성체성사(미사)를 포함한 일곱 성사 및 준성사, 성무일도(시간 전례), 성체 현시와 강복 예식 등을 모두 포함한다.[5] 예를 들어 성금요일 성토요일에 미사는 없지만, 주님 수난 예식이나 시간 전례와 같은 전례는 여전히 지낸다.

또한 가톨릭 교회는 신부가 부족한 지역에서 신자들이 성찬 전례 없이 교구장 주교의 규정에 따라 거행되는 말씀 전례에 참여하라고 권장한다.[6] 이때 신자들이 참여한 예식은 비록 미사는 아니지만 분명히 전례이다.

2.3. '미사'와 '성체성사'와 '성찬례'와 '성찬 전례'와 '영성체'의 관계

제목에서 언급하는 단어들의 라틴 말 표현은 다음과 같다.
'성체성사'에 대해 설명하는 굉장히 많은 비공인 문서들은 '성찬 전례'나 '영성체'만을 성체성사라고 지칭한다. 그러나 성찬 전례와 영성체는 성체성사를 구성하는 여러 순서 중 일부일 뿐이다. 가톨릭 교회는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이 성사(성체성사)는 어떻게 불리는가?

성체성사의 무한한 풍요로움은 이 성사를 부르는 여러 가지의 이름들에서 나타난다. 이 이름들은 각기 성체성사의 어떤 측면들을 환기시킨다.

성찬례(Eucharistia: 감사제).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 행위이기 때문에 (중략)

주님의 만찬.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중략)

빵 나눔.. 예수님께서 특히 최후의 만찬 때 (중략)

성찬 모임(synaxis). (중략)

주님의 수난과 부활의 기념

거룩한 희생 제사. 성체성사가 구세주 그리스도의 유일한 제사를 재현하고 교회의 봉헌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 미사성제(聖祭), “찬양 제물”(히브 13,15), 영적 제물, 깨끗하고 거룩한 제물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제사가 구약의 모든 제사를 완성하고 이를 능가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거룩한 전례. 모든 교회의 모든 전례가 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중략)

친교(영성체). 우리는 이 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일치하며 (중략)

거룩한 미사(Missa). 구원의 신비를 이루는 이 전례는 일상생활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도록 신자들을 파견(missio)함으로써 끝나기 때문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28~1332항. 원문 링크: 1328, 1329, 1330, 1331, 1332.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성체성사를 또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성체성사의 무한한 풍요로움은 여러 가지의 이름들에서 나타난다. 이 이름들은 각기 성체성사의 어떤 측면들을 환기시킨다. 보통 쓰이는 이름들은 성찬례, 미사성제, 주님의 만찬, 빵 나눔, 성찬 모임, 주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기념, 거룩한 희생 제사, 하느님의 거룩한 전례, 거룩한 신비, 지극히 거룩한 제단의 성사, 영성체(친교) 등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 제275항. 전자책 링크.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따라서 '성체성사 = 성찬례 = 미사'이다. 물론 이 말은 '성체성사 = 성찬례 = 미사'가 지칭하는 대상이 같다는 뜻이지 각 단어가 환기시키는 영성마저 같다는 뜻은 아니다. 위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28~1332항이 말하듯 '성찬례'와 '미사'는 각각 '성체성사'의 감사 행위와 파견의 성격을 조금 더 분명히 드러내는 말이며, 결국 그 지칭 대상은 한 가지이다. 마치 가톨릭 신자인 '김 아무개'의 여러 면모를 드러내기 위해 그를 가키리는 말로 'OO 형제님/자매님', 'OO야', 'OO 선생님', 'OO씨'처럼 형태와 뜻이 다른 갖가지 말이 있지만, 결국 지칭 대상은 '김 아무개'가 되는 것과 같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출판한 『간추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보다 분명한 어조로 '성체성사 = 성찬례 = 미사'임을 알려 준다.
성체성사는 축성된 빵과 포도주, 곧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미사성제'를 말한다. 성체성사는 성찬례라고도 불리는데, 이것은 그리스 말 '에우카리스티아'를 번역한 것으로, 원래는 '감사'라는 뜻이다.
『간추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2과 성체성사,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전자책 링크.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성찬 전례는 말씀 전례와 더불어 '성체성사 = 성찬례 = 미사'의 하위 개념이며, '성체성사 = 성찬례 = 미사'를 이루는 여러 순서 중 하나이다. 이는 성찬례의 기본 구조에 대한 다음의 설명으로부터 알 수 있다.
성찬례는 오랜 세월을 통하여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온 기본 구조에 따라 진행된다. 이 전례는 기본적으로는 하나를 이루는 두 가지의 주요 부분으로 진행된다.

- 모임과, 독서와 강론과 보편 지향 기도로 이루어지는 말씀 전례.
- 빵과 포도주의 봉헌, 축성의 감사 기도, 영성체로 이루어지는 성찬 전례.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는 함께 “하나의 예배 행위를” 이룬다. 실제로 성찬례에서 우리를 위하여 차려진 상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식탁이며 동시에 주님의 몸을 받아 먹는 식탁이기 때문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46항. 원문 링크.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성체성사 거행의 과정에 대해 『가톨릭 교회 교리서』가 설명하는 다음의 내용에서도 '성체성사 = 성찬례 = 미사'가 성찬 전례나 감사 기도나 영성체 예식보다 상위 개념임을 확인한다. 만일 성체성사가 성찬 전례나 영성체 예식만을 가리켰다면 아래와 같은 내용 구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래까지 모두 이해한 이들은 미사 중의 말씀 전례도 성체성사의 한 부분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성사 거행의 과정

모두 모임. 그리스도인들은 성찬례를 위하여 한곳에 모인다. …… (중략)
말씀 전례는 '예언자들의 문헌'인 구약 성경과, '사도들의 비망록', 곧 서간문들과 복음서들을 포함한다. …… (중략)
예물 봉헌. 이때, 흔히 행렬을 지어, 빵과 포도주를 제대에 바친다. …… (중략)
감사 기도(anaphora), 곧 감사와 축성의 기도로 성찬례 거행이 그 핵심과 정점에 이르게 된다. …… (중략)
주님의 기도와 빵을 쪼갠 뒤 영성체(Communio)에서 신자들은 '하늘의 빵'과 '구원의 잔',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해”(요한 6,51) 당신을 내어 주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신다. …… (중략)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48-1355항. 1348항, 1349항, 1350항, 1351항, 1352항, 1353항, 1354항, 1355항.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영성체(Communio)는 넓은 의미로는 성체성사의 동의어로 사용되지만[7] 좁은 의미로는 전례에 참여한 이들이 성체 혹은 성혈을 영하는 것을 말한다.[8] 일상 언어에서는 거의 대부분 후자의 의미, 곧 좁은 의미로 쓰인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31항이 성체성사를 가리키는 한 가지 표현으로써 '친교(영성체)'를 제시하지만, 이는 넓은 의미의 영성체의 범위가 미사 전체를 아우를 수 있다는 뜻이지 성체성사의 뜻이 좁은 의미의 영성체에 국한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또 좁은 의미의 영성체는 본디 미사 성찬 전례를 이루는 순서 중 하나이지만, 미사 밖에서 행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좁은 의미의 영성체는 성체성사와 구별된다. 이는 가톨릭 교회의 여러 전례의 세부 구조와 명칭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가령 주님 수난 성금요일 주님 수난 예식의 제3부는 '영성체'이다. 그러면 '영성체'가 있으므로 이 전례 중에 성체성사를 거행한다고 간주할 수 있을까? 『로마 미사 경본』은 다음과 같이 주님 수난 성금요일과 성토요일에 성체성사를 거행하지 않는다고 지시한다. 이렇게 성체성사와 구별된 의미로 영성체(Communio)란 말이 쓰인다.
이날과 다음 날에는 오랜 관습에 따라 교회는 고해성사와 병자 도유를 제외하고 모든 성사를 거행하지 않는다.
『로마 미사 경본』 336면, 주님 수난 성금요일 1항. 전자책 링크. 전례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세례성사와 병자성사 중 영성체 예식을 진행한다는 점을 통해서도 영성체가 성체성사와 구별됨을 알 수 있다. 영성체 자체가 성체성사였다면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인[9] 성체성사가 세례성사와 병자성사의 하위 순서가 되는 이상한 구도가 잡힐 것이다. 그러나 영성체가 성체성사 자체가 아니고 성체성사를 구성하는 일부라면 세례성사와 병자성사 중 영성체를 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물론 성체성사와 협의의 영성체가 불가분의 관계임은 분명하다.
전례는 수많은 기도들에서 이러한 희생 제사와 영성체의 불가분적 관계를 표현한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83항. 원문 링크.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이상으로부터 이 문단 제목이 가리키는 용어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각 용어가 있는 셀은 색으로 칠한다. 먼저 '성체성사' 또는 '성찬례'는 '미사' 자체를 지칭한다. 그 성체성사이자 미사의 한 부분이 성찬 전례이며, 그 성찬 전례의 한 부분이 영성체이다.
성체성사 = 미사 = 성찬례
( 시작 예식) 말씀 전례 성찬 전례 ( 마침 예식)
예물 봉헌 감사 기도 영성체 예식
주님의 기도
평화 예식
빵 나눔, 하느님의 어린양
영성체 전 기도, 영성체
감사 침묵 기도
영성체 후 기도

2.4. 말씀'의' 전례? 성찬'의' 전례?

한국의 많은 본당이나 수도회 혹은 여러 공동체에서 아직도 '말씀 전례' / '성찬 전례'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나 『로마 미사 경본』이나 『매일미사』와 같은 전례서에 적힌 공식 용어는 ' 말씀 전례' / ' 성찬 전례'이다.

3. 성체성사(미사)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1322항부터 1419항에 걸쳐 성체성사를 누가 언제 어떻게 왜 제정하였는지, 가톨릭 교회는 이 성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거행하는지 가르친다. 아래 내용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22~1419항의 요약지만, 가급적 원문(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웹문서 또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전자책)을 읽는 것을 권한다. 또 가톨릭 교회 교리서 문서에는 가톨릭 교회가 공인한 여러 교리서들이 있으니, 이들도 함께 추천한다.

3.1. 누가 언제 어떻게 왜 제정하였는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원문 열람
1337항
이 성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수난 전날 저녁 최후의 만찬을 거행하며 제정하였다. 그 핵심 과정은 공관 복음( 주님의 수난기 참고)에 '성찬례를 제정하시다'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으며, 그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시간이 되자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자리에 앉으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고난을 겪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파스카 음식을 먹기를 간절히 바랐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파스카 축제가 하느님의 나라에서 다 이루어질 때까지 이 파스카 음식을 다시는 먹지 않겠다.”
그리고 잔을 받아 감사를 드리시고 나서 이르셨다. “이것을 받아 나누어 마셔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제부터 하느님의 나라가 올 때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마시지 않겠다.”
예수님께서는 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루카 복음 22,14-20. 원문 링크.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가톨릭 교회의 미사 때마다 항상 듣는 성찬 제정과 축성문들은 모두 세 권의 공관 복음서와 사도 바오로의 1코린 11,23-26에 근거를 둔다. 가톨릭 교회 구성원들은 미사에 참례함으로써 성체성사 제정 과정을 늘 묵상한다.

왜 제정하였는지는 이미 위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37항이 언급한다. 미사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 그게 곧 '왜 제정하였는가?'에 대한 추가 답변이 될 수 있으며, 가톨릭 교회는 이를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원문 열람
1340항
1341항

3.2. 성체와 성혈: 말씀과 성령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현존

가톨릭 신자들 중 제법 많은 이들이 여전히 성체와 성혈을 그저 하나의 상징으로만 이해하고 있다. 미국 가톨릭 신자들의 70%가 성체와 성혈을 단순한 상징으로 받아들인다는 통계도 있다.[10] 만일 성체와 성혈이 단순한 상징이라면 가톨릭 교회가 하는 모든 행위도 연극 같은 상징적 행위에 불과할 것이다.[11] 지금까지 그렇게 알고 있었던 가톨릭 신자라면, 정말 진지하게 반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성체를 '단순 상징'으로만 보는 견해는 교부들과 스콜라학자들의 견해와도 거리가 멀며, 심지어는 츠빙글리라는 극단파를 제외하면 개신교의 견해조차 아니다. 마르틴 루터이든 장 칼뱅이든 성체성사에 그리스도께서 진실로 현존하신다는 것은 믿었으며, 가톨릭 교회는 '실체변화'라는 용어까지 써가며 개신교보다도 훨씬 단호하게 그리스도의 현존을 확신한다.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이 성사에 현존하시게 된다. 교부들은 이러한 변화를 이루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의 활동이 지니는 효력에 대한 교회의 믿음을 확고하게 단언하였다. 예컨대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성체의 형상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는 방식은 독특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체성사를 모든 성사 위에 들어 높이시고 “영성 생활의 완성과 모든 성사가 지향하는 목적으로” 삼으신다.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 안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혼과 천주성과 하나 된 몸과 피가, 따라서 온전한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실재적으로, 그리고 실체적으로 담겨 계신다.” “이 현존이 '실재적'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다른 현존 방식이 실재적이 아니라는 배타적인 의미가 아니라, 그 현존이 탁월하게 실체적이라는 의미이다. 분명코, 하느님이시며 인간이신 그리스도께서 전적으로 또 완전하게 현존하신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75항과 1374항. 원문 링크: 1375항, 1374항.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그리스도께서는 성체가 축성되는 순간부터, 성체의 형상이 존속하는 동안 계속 그 안에 현존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체의 두 가지 형상 안에 각각 온전히 현존하며, 또 그 각 부분에도 현존하시므로 빵을 나누어도 그리스도께서는 나뉘지 않으신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77항. 원문 링크.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미사 중에 어떠한 과정을 통해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할까? 다음을 참고하자.
『가톨릭 교회 교리서』 원문 열람
1333항
1353항
가톨릭 교회에서 성체와 성혈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 가톨릭 교회가 봉헌하는 미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실제로 살아 있다는 것이 가톨릭 교회가 믿는 바이다.[12]

모든 기독교인들은 '내 앞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시면 좋겠다.'라고 생각할 때가 있을 것이다. 가톨릭 신자들은 이를 매일 거행되는 미사를 통해 체험할 수 있으므로 그 신비의 고귀함을 아는 가톨릭 신자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3.3. 실재와 상징: 성체성사의 실재적 요소와 상징적 요소

주의를 주자면, 성체성사에서 '상징'이라는 키워드가 아예 잘못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애당초 가톨릭 신학에서 말하는 성사(sacramentum)는 '상징적인 표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징'이라는 키워드를 배제해버리면 '성사'라는 말 자체에 대한 이해에 문제가 생긴다.

그렇다면 성체성사에서 무엇이 상징적인 것이고 무엇이 실재적인 것일까? 천사적 박사의 간단명료한 설명을 살펴보자.
Una ratio est, quia tria sunt in hoc sacramento: unum quod est sacramentum tantum, aliud quod est res tantum, aliud quod est sacramentum et res. Sacramentum tantum sunt species panis et vini, res tantum est effectus spiritualis, res et sacramentum est corpus contentum.
왜냐하면 이 성사에는 세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sacramentum tantum(단지 성사)이고, 다른 하나는 res tantum(단지 실재)이며, 다른 하나는 res et sacramentum(실재 겸 성사)이다. 빵과 포도주의 형상(species)은 sacramentum tantum(단지 성사)이며, 영적인 효과는 res tantum(단지 실재)이며, [그리스도의] 몸은 res et sacramentum(실재 겸 성사)이다.
토마스 데 아퀴노, 《Super Evangelium S. Matthaei lectura》(마태오 복음서 주해) Caput 26 Lectio 4
in hoc sacramento tria considerare possumus, scilicet id quod est sacramentum tantum, scilicet panis et vinum; et id quod est res et sacramentum, scilicet corpus Christi verum; et id quod est res tantum, scilicet effectus huius sacramenti.
이 성사 안에서 세 가지를 고려할 수 있다: 즉 sacramentum tantum(단지 성사)은 빵과 포도주, res et sacramentum(실재 겸 성사)은 그리스도의 진실한 몸, 마지막으로 res tantum(단지 실재)은 이 성사의 효과이다.
토마스 데 아퀴노, 《신학대전》 제3부 73문 6절

즉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ㄱ. 빵과 포도주의 형상(species): 이것은 실체변화 후에도 그대로 남아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는 res(실재)를 상징한다. 즉 빵과 포도주의 형상은 '상징적인 표지'일 뿐이다. 그렇기에 sacramentum tantum(단지 성사)이다.

ㄴ. 그리스도의 몸과 피: 이것은 형상(species)이 가리키는 res(실재)이며, 또한 그 형상(species)들 안에 들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빵과 포도주의 형상(species)이라는 sacramentum(성사)을 먹는 사람은 그 안에 담긴 '몸과 피'라는 res(실재)를 정말로 먹는 것이다. 그런데 '몸과 피'는 '그리스도와 신자가 한 몸을 이루는 것', 곧 '교회'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몸과 피'는 형상(species)이 가리키는 res(실재)인 동시에, '그리스도와 신자가 한 몸을 이루는 것'을 가리키는 sacramentum(성사)이다. 따라서 '몸과 피'는 res et sacramentum(실재 겸 성사)이다.

ㄷ. 그리스도와 신자가 한 몸을 이루는 것: 이것은 '몸과 피'가 상징하는 res(실재)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모신 신자는 그 효력에 의해서 정말로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결합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성체성사가 지향하는 최종적인 효과이다. 이것은 무언가를 상징하지 않으므로 res tantum(단지 실재)이다.
빵과 포도주의 분리는 몸과 피의 분리의 성사적 상징이다. 성사는 바로 그 본성상 하나의 '표지(signum)'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축성이 이루어진 다음에 두 가지는 각기 그리스도의 몸과 피 및 그분의 영혼과 신성 전체를 담게 된다. 형상(species)에 의해 지시된 실재(res)는 우리가 지금 흠숭하고 경배하는 참된 하느님이다. 그러나 이 실재는 또한 그리스도의 구원의 '결실'로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총과 영광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 세 가지 측면들은 모두 12세기 신학자들의 연구의 대상들이었다. 그들은 성사론에서, 성사 자체(sacramentum trantum), 실재와 성사(res et sacramentum), 실재 자체(res tantum) 등 전문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성사란, 그 내밀한 본성 때문에, 하나의 상징, 즉 그 성사 내면에 있는 어떤 것의 표지이다. 세례성사에서 '성사 자체'는 물을 붓는 행위 자체와 (영혼의 내면 정화를 지시하기 위해 선언되는) 말뜻이다. 세례성사의 특성은 '실재와 성사'이다. 그 궁극의 실재('실재 자체')는 영혼이 선물로 받게 되는 은총인 신적 생명이다. 성체성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성사 자체'는, 축성의 말을 통해 몸과 피 사이의 분리를 의미하게 되는 가견적(可見的) 형상들(빵과 포도주)이다. 그러나 일단 축성되면, 빵과 포도주는 각자 피에서 분리된 몸과 몸에서 분리된 피를 상징하게 된다. 이 성사적 분리는 갈바리아 산상에서 죽은 그리스도 자신(Christus passus)이 되고 과거의 기념이 된다. 각각의 형상 속에 온전히 현존하는 살아 있는 그리스도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흠숭하고 있는 하느님으로서, 바로 '실재와 성사'이다. 실상 그것은 성사에 의해서 의미되는 실재(res)일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다른 어떤 것의 상징(et sacramentum)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재 자체'는 모든 은총의 주인께서 나누어 주는 은총과 영광이다.
James A. Weisheipl, OP., 《토마스 아퀴나스 수사: 생애, 작품, 사상》Friar Thomas D'Aquino: his life, thought, and works, 이재룡 옮김, 성바오로, 2012, pp.288-289
이 구분을 이해한다면, 양형 영성체에 대해서 교도권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도 간단하게 이해 가능하다.
영성체는 성체와 성혈 양형으로 할 때에 표지로서 더 충만한 형태를 지닌다. 양형 영성체로 성찬 잔치의 표지가 한층 더 완전하게 드러나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새롭고 영원한 계약이 주님의 피로 맺어졌다는 사실이 더욱 뚜렷이 표현되며, 성찬 잔치와 아버지 나라에서 이루어질 종말 잔치의 관계가 더욱 분명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281항. 전자책 링크. 전례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res tantum은 단형 영성체이든 양형 영성체이든 동일하다. 그리스도와 신자를 결합시켜 한 몸을 이루게 한다는 점에서는 단형이든 양형이든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러나 표지라는 면에서는, 곧 빵의 형상이 몸을 상징하고 포도주의 형상이 피를 상징한다는 면에서는, 둘 다 영하는 것에서 더욱 "드러나고" "표현되며" "나타나기 때문"에, 양형 영성체는 "더 충만한 형태"이다.

안타깝게도 스콜라학자들과 천사적 박사의 설명이 오늘날 가톨릭 신자들에게도 충분히 교육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모든 평신도들이 질료(materia), 형상(forma), 형상(species), 우유(accidens), 실체(substantia) 같은 스콜라학 용어들을 학습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형이상학 용어니까 그냥 넘어가자'는 식으로 실질적으로 아예 교육 시도조차 안하고 있으므로 문제이다. 그렇기에 쉽게 '성체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배제하는 의미에서) 상징이다'라거나 '성변화 때 (현대 물리학적 의미에서) 물질적 구조가 바뀐다'는 식의 극단주의로 빠지거나 '의미변화'나 '목적변화' 같은 유행하는 설명에만 의존한다. 비록 후자(의미변화, 목적변화)는 이단적인 설명이 아니며 제대로만 학습된다면 천사적 박사의 성사론과 모순되지 않고 오히려 이해를 깊게 해주지만, 정작 무게중심을 잡아줘야 할 토마스주의 성사론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실종되면 공허해질 뿐이다. 실천적인 면만 보더라도, 교육의 실종은 성사론과 교회론의 불가분적 연결을 망각시켰고, 양형 영성체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으며, 성찬의 개인주의화를 가져왔다.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전례에서 쇄신하고자 했던 바로 그것이다. 곧,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쇄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고전적인 설명들을 케케묵었다며 치워버릴 게 아니라 오히려 교부들과 스콜라학자들의 재발견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인 ressourcement(원천으로의 회기)이다.

3.4. 교회 생활의 원천이며 정점인 성찬례

성체성사와 다른 성사의 관계를 살피기 위해 먼저 가톨릭 교회의 일곱 성사를 다시 한 번 떠올리자. 『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일곱 성사를 다음과 같이 세 그룹으로 묶는다.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를 완결 짓는다. 세례성사로 왕다운 사제 품위에 올려지고, 견진성사로 그리스도를 더욱더 닮게 된 사람들은 성찬례를 통하여 온 공동체와 함께 주님의 희생 제사에 참여한다.[13]
『가톨릭 교회 교리서』 원문 열람
1324항
위에 열거한 일곱 성사 중 성체성사를 제외한 나머지 여섯 성사가 어떻게 성체성사와 연결되는지는 금방 생각해낼 수 있을 것이다. 세례성사를 받아야 성체성사 중 행하는 영성체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으며, 견진성사는 세례성사를 완성한다.[14] 중죄를 자각하는 이는 먼저 고해성사를 받아야[15] 성체를 영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 성체성사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다. 성체성사 중에 축성된 빵, 곧 성체는 영성체 후 감실에 옮겨 모셨다가 병자성사 때 병자가 영한다. 뿐만 아니라 병자 성유 축성이 이루어지는 때가 바로 여러 성체성사(미사) 중 하나인 성유 축성 미사이다. 성품성사를 통해 여러 성체성사를 집전할 수 있는 사제가 탄생하며, 그 사제가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일단 남녀가 혼인성사를 통해 성가정을 이루어야 한다.

그래서 가톨릭 교회는 성체성사요 성찬례인 미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원문 열람
1325항
1326항
1327항

3.5. 성체성사 거행의 과정: 모든 세기에 걸쳐 거행되어 온 미사

우리는 순교자 유스티노 성인의 증언으로 2세기 때부터의 개략적인 성찬례 거행 과정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모든 전례 전통에까지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 다음은 "155년경 유스티노 성인이 이교도 황제인 안토니누스(138-161년)에게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쓴 글"[16]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원문 열람
1345항
이 글의 각 부분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곧, 미사는 일단 모두 한 곳에 '모여야' 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빵과 포도주를 봉헌하고, 이들을 축성하는 감사 기도를 바친 후 성체를 받아 모시는 과정을 기본으로 한다. 비록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같은 과정을 통하여 미사 거행 방식이 대폭 바뀌는 과정을 가톨릭 교회가 몇 차례 거쳤다고는 하나, 이와 같은 '모임 - 말씀 전례 - 성찬 전례'의 기본 골격은 그대로이다. 특히 놓치기 쉬운 부분이 바로 한 곳에 모여야 한다는 점이다. 신체 건강한 사람이 방송 미사 시청한 것만으로는 미사 참례 의무를 다했다고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지금의 『로마 미사 경본』은 미사의 기본 구조가 무엇인지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주님의 만찬인 미사에서 하느님의 백성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제가 주례하는 주님의 기념제인 성찬의 희생 제사를 거행하도록 함께 모이라고 부름을 받는다. 거룩한 교회의 이러한 지역 모임에서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마태 18,20)고 하신 그리스도의 약속이 가장 뚜렷하게 실현된다. 실제로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재현하는 미사 거행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회중과 집전자의 인격과 당신 말씀 안에 참으로 현존하시며, 성찬의 형상들 아래 실체로서 계속 현존하신다.

미사는 말씀 전례 성찬 전례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이 두 부분은 서로 밀접히 결합되어 오직 하나의 예배 행위를 이룬다. 이렇게 미사에서 하느님 말씀의 식탁과 그리스도의 몸의 식탁이 마련되어 신자들은 가르침과 양식을 얻는다. 그리고 미사에는 시작 예식 마침 예식이 있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27항과 28항. 전자책 링크. 전례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3.6. 성체성사의 집전자와 거행자

이렇게 성찬례 제정해 주셨네.
오로지 사제만 그 직무 받아서
몸과 피 모시고 나누어 주면서
당신의 백성을 섬기게 하셨네.
성 토마스의 성체 찬미가 거룩한 잔치들(Sacris solémniis) 중.
성찬례의 주인공이신 그리스도께서 몸소 이 모임을 앞장서 이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대사제이시다. 모든 성찬 거행을 보이지 않게 주재하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시다. 주교나 사제는 그분을 대신하여(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in persona Christi Capitis) 모임을 주재하고, 독서 후에는 강론을 하며, 봉헌물을 받아들이고, 감사 기도를 바친다. 그리고 모두들, 곧 독서자, 예물 봉헌자, 성체 분배자, 그리고 '아멘'으로 참여를 표현하는 전체 회중은 각자 나름대로(suo modo) 전례 거행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48항. 원문 링크.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48항에서는 suo modo가 "각자 나름대로"라 번역되었다. 그러나 한국 가톨릭의 평신도 학자인 최현순 데레사 교수( 그레고리오 대학교 교의신학 박사)에 의하면, "라틴어 suo modo는 '그 고유의 방식으로'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옳은데, '나름대로'라는 말이 갖는 소극적 뉘앙스 때문이다."(최현순, 『시노달리타스』, 바오로딸, 2022, p.195
성체와 성혈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부분이 미사와 다른 그리스도교 예식의 근본 차이라면, 형식이 성립하기 위한 여러 차이 중 하나는 바로 직무 사제가 미사를 집전한다는 점이다.

직무 사제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in persona Christi) 미사를 집전한다. 여기서 말하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는 신부가 오만하게 처신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교리서의 표현대로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참사제이시고, 다른 사제들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일 뿐"[17]이라는 의미이다. "사제는 자신의 인격 안에서 축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축성하는 것"[18]이다.
미사에서 집전자는 온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이름으로 말한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미사가 머리와 지체의 한 희생 제사라고 말할 수 있고 그렇게 말하여야 한다. 우리는 모두 사제와 함께 봉헌한다. 그러나 오로지 주교나 신부인 그 거행의 직무자만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고 그 순간부터 축성된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는 것이다.

사제가 모든 이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사제가 축성할 때, 곧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빵과 포도주 위에 그분의 말씀을 되풀이할 때에는 더 이상 기도하는 공동체의 이름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회중 앞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분의 직접적인 도구이고 대표로 있는 것이다. 곧, 그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in persona' Christi) 말하고 행동한다.'''
마르코 스피리치Msgr. Marco Spirizzi, 『앙리 드 뤼박: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De Lubac: L'identità ecclesiale del cristiano, 박성희 옮김, BOOKK, 2018, pp.141-142

따라서 가톨릭 교회에서는 아무리 작은 공동체에서 거행하는 작은 규모의 예식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미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직무 사제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가톨릭에서는 평신도 가족끼리만 모여 기도한다고 '가정미사'라고 할 수 없다. 이는 가족끼리 모여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찬송가를 부르는 신앙활동을 '가정예배'라고 부르는 개신교와 다른 점이다.
본당 사목구 주임 사제가 상주하지 않고 순회하며 사목하는 본당 사목구 내 구역 신자들의 공동체를 공소라고 한다.[19] 공소가 존재하고, 공소 예식이 존재하는 이유도 사제 수가 부족해서이다. 사제의 수가 적고 교통이 불편한 지역에서는 한 명의 사제가 모든 공동체의 미사를 다 담당하기가 물리적으로 힘들다. '주일이나 의무 축일에 미사 참례의 의무를 이행할 수 없는 신자는 공소 예식으로 그 의무를 대신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20]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성찬(성체)의 성사를 이룰 수 있는 집전자는 유효하게 수품된 사제뿐이다.
『교회법』 900조 ①항. 원문 링크.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가톨릭 신자들이 사제를 소중히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한 장소에 수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모여있다고 해도, 직무 사제가 단 한 명도 없다면 미사 거행을 할 수 없다. 그리고 여전히 사제 수는 부족하다. 가톨릭 교회가 신자들에게 사제를 위한 기도를 자주 바치라고 권하는 한 가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평신도가 미사에서 아무 역할도 없다는 뜻은 아니다.
교회는 지상에서 어떻게 전례를 거행하는가?

교회는 지상에서 사제직을 받은 백성으로서 전례를 거행한다. 전례 안에서 각 신자는 성령으로 하나 되어 각자의 고유한 임무에 따라 행동한다. 세례 받은 이들은 자기 자신을 영적 희생 제물로 바치고, 성품을 받은 봉사자들은 교회의 모든 구성원을 섬기고자 받은 품계에 따라 전례를 거행하며, 주교와 사제들은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행동한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 제235항. 전자책 링크.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미사의 집전자(minister)는 신부이지만, 거행(celebrate)은 직무 사제인 신부와 보편 사제인 신자[정확히 말하면, 이는 평신도라는 의미가 아니라 직무 사제를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을 말한다. 곧 신부는 직무 사제이면서 동시에 보편 사제이다.] 모두가 각각 "그 고유의 방식으로"(suo modo) 한다. 따라서 평신도는 분명히 미사 중 역할이 있다.
교회는 성찬례의 희생 제사에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는가?

성찬례에서 그리스도의 제사는 그 신비체의 지체들의 제사이기도 하다. 신자들의 삶, 찬미, 고통, 기도, 노동 등은 그리스도의 그것들과 결합된다. 희생 제사로서 성찬례는 산 이와 죽은 이들의 죄에 대한 보상으로도 바치는 것이며, 하느님께 영적이거나 현세적인 은혜를 얻으려고도 바치는 것이다. 천상의 교회도 그리스도의 봉헌에 결합된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 제281항. 전자책 링크.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신자들이 일상에서 겪는 삶이 그리스도의 삶과 결합되고, 그것이 십자가 대속의 제사에서 제물로 봉헌된다. 가톨릭 교리가 모든 신자들을 '보편 사제'라 하는 것은 단지 듣기 좋으라고 하는 립서비스가 아니라, 평신도가 정말로 삶을 제물로 봉헌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제사를(祭) 맡은(司) 자', 곧 '사제(司祭)'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비록 이 보편 사제직이 성품된 신부들의 직무 사제직과는 "본질에서 다르기는 하지만"[21] 보편 사제직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미사의 희생 제사적 의미도 밝혀진다.

가령 '고통'이라는 주제를 보자. 신자들이 일상에서 겪는 고통은 미사를 통해 AD 1세기의 십자가 대속에서 그리스도의 고통과 결합되어 제물로 봉헌된다. 이를 통해서 '고통'은 무의미하고 알 수 없는 현상을 넘어 진정으로 가치를 가진다. 만약 미사가 희생 제사적 성격이 없다면, 혹은 신자들은 보편 사제가 아니라 단지 미사를 관람하는 관객에 불과하다면, 고통은 그냥 고통일 뿐 그 어떤 가치도 가지지 않는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의 삶과 아무 상관이 없는 남남이 되며, 십자가형은 그저 끔찍한 처형일 뿐 대속의 희생 제사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 제사는 미사를 통해 현재화되고, 신자의 삶은 '현재화된 십자가 희생 제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삶과 결합되어 제물이 된다.
성찬례는 우리의 고통을 희생 제사로 변모시키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고통을 겪을 필요가 없도록 하기 위해 고통을 겪으신 것이 아니다. 이는 단순히 대속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우리를 대신하여 이루신, 그러면서도 우리 모두가 당신께서 이루신 일에 참여케 하는 신비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겪는 고통이 구원의 가치를 지닐 수 있도록 고통을 겪고 돌아가셨다. ... 구원을 가져다주는 고난은 우리의 위대한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다. 이는 바로 우리가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게 된다는 의미다. 성령의 힘에 의해 우리의 고통은 사랑을 정화한다. 우리의 사랑이 우리가 겪는 고통을 살아 있는 희생 제물로 변화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 살아 있는 제뮬은 하느님께서 우리 삶에서 당신의 방식을 취하시도록 이끈다.
스콧 한Scott Hahn, 『네 번째 잔의 비밀』The Fourth Cup, 가톨릭출판사, 2023, pp.206-209.
가톨릭의 보편 사제직 교리는, 성찬례의 제사성을 부정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만인사제설'을 부정하고 오히려 '그리스도인 그 누구도 사제가 아니다'라는 논리적 결론을 함의한 개신교와 달리, 회중을 정말로 '제사를(祭) 맡은(司) 자', 곧 '사제(司祭)'로 본다.
신자들은 ... 사제의 손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사제와 하나 되어 흠 없는 제물을 봉헌하면서 자기 자신을 봉헌하는 법을 배우고, 중개자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날이 갈수록 하느님과 일치하고 또 서로서로 일치하여 하느님께서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시도록 하여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 거룩한 공의회」 48항. 원문 열람.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영원한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평신도들을 통해서도 당신의 증거와 당신의 봉사를 계속하기를 바라시기에, 당신의 성령으로 그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온갖 좋은 일과 완전한 일을 하도록 끊임없이 재촉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생명과 사명에 밀접히 결합시키신 평신도들에게 당신 사제직의 일부도 맡기시어, 하느님의 영광과 인류 구원을 위하여 영신적인 예배를 드리게 하셨다. 그러한 까닭에 평신도들은 그리스도께 봉헌되고 성령으로 도유된 사람들로서 놀랍게도 언제나 그들 안에서 성령의 더욱 풍부한 열매를 맺도록 부름을 받고 또 가르침을 받는다. 그들의 모든 일, 기도, 사도직 활동, 부부 생활, 가정생활, 일상 노동, 심신의 휴식은, 성령 안에서 그 모든 일을 하고 더욱이 삶의 괴로움을 꿋꿋이 견뎌 낸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이 되고(1베드 2,5 참조), 성찬례 거행 때에 주님의 몸과 함께 정성되이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된다. 또한 이와 같이 평신도들은 어디에서나 거룩하게 살아가는 경배자로서 바로 이 세상을 하느님께 봉헌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 인류의 빛」 34항. 원문 열람.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교회헌장」은 이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모든 활동 곧, 기도, 사도직 활동, 가정생활, 노동, 휴식 등이 '성령 안에서' 이루어질 때 그 모든 것이 영적 제물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삶에서 고통스러운 상황을 '성령 안에서' 살아낼 때 그것은 하느님께 바치는 탁월한 제물이 된다. 따라서 영적 제물이 되지 못하는 삶의 순간이란 죄 말고는 없다. 물론 죄 이후에 발해지는 통회는 하느님께서 더없이 기쁘게 받으시는 제물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공의회 문헌에서 언급한 일상의 제물을 바치는 이는 평신도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다.
최현순, 『시노달리타스』, 바오로딸, 2022, pp.116-117.

3.7. 감사와 기념의 희생 제사인 미사

먼저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스도교에서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단 하나만이 존재한다. 십자가 대속만이 유일한 참 제사라는 것은 신약 성경의 깊은 확신이다. 그리스도가 자신을 '향기로운 예물과 희생제물로 우리를 위하여 바치신'(에페 5,2) 다음부터는 다른 희생제물이 필요 없게 되었다(히브 10,18).

그런데도 가톨릭에서는 미사를 '제사' 혹은 '희생 제사'라 부르는데,['제사'와 '희생 제사'는 라틴어를 비롯한 서양말들에서는 구별되지 않는다. 라틴어에서는 둘 다 Sacrificium이고, 영어에서는 둘 다 Sacrifice이다.] 이는 역사상 개신교에서 가톨릭을 비판하는 주요 요인이었다.

하지만 가톨릭에서도 오직 십자가 대속만이 '유일한' 제사임을 부정하지 않는다.[22] 미사를 '제사'라 부르는 것은 미사가 '십자가 대속'이라는 '유일한 제사'의 재현(라: repraesentat, 영어: re-present), 현재화(라: praesens reddit, 영어: make present), 기념, 적용이기 때문이다.
성찬례는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재현(현재화)하고, 이를 기념하며, 그 결과를 실제로 적용시키기 때문에 희생 제사이다.

우리 하느님이시며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을 위해 영원한 속량을 실현하시려고 십자가의 제단 위에서 중개자로서 돌아가심으로써, 당신 자신을 단 한 번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셨다. 그러나 그분의 죽음으로 그 사제직이 끝나서는 안 되었으므로(히브 7,24.27), “잡히시던 날 밤”(1코린 11,23) 최후의 만찬에서 사랑하는 당신 신부인 교회에게 (인간의 본성이 요구하는) 눈에 보이는 제사를 남겨 주고자 하셨다. 그 제사에서는 십자가 위에서 단 한 번 이루어진 피의 제사가 재현될 것이며, 그 기념이 세상 끝 날까지 계속될 것이고, 그 구원적 효과는 우리가 날마다 저지르는 죄의 용서에 적용될 것이었다.[23]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66항. 원문 링크.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이는 '사제'라는 단어의 용법과도 상응한다. '제사'와 마찬가지로, 가톨릭 교리상 그리스도교 사제는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곧 오직 십자가 대속의 희생 제사를 봉헌한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사제일 뿐이다.(참고: 히브 5,10; 6,20; 10,14) 그러나 신부들과 신자들이 "각기 특수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에 참여"[24]함으로써 직무 사제직과 보편 사제직을 각각 이룬다.
속량을 위한 그리스도의 제사는 단 한 번에 완결된 유일한 제사이다. 그러나 그 제사는 오늘날 교회의 성찬 제사 안에 현존한다.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의 사제직은 그 유일성이 손상되지 않으면서도 직무 사제직을 통해 현존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참사제이시고, 다른 사제들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일 뿐이다."[25]
『가톨릭 교회 교리서』 1545항. 원문 링크.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당연히 직무 사제(신부)가 일상에서 '사제'라 불리고 보편 사제(신자)가 성경에서 '사제'라 불리는 것(1베드 2,9)은 히브리서가 확신하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직무 사제직에 대해서는 개신교에서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신자들이 보편 사제직을 이룬다는 것은 개신교에서도 결코 부정하지 않으며, 그 어떤 개신교 신자라도 이를 히브리서가 확신하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과 모순된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렇기에 '제사'라는 용어도 똑같은 원리로 미사에 적용할 수 있다. 실제 사례로 이미 AD 100년경의 초대 교회에서도 미사(성찬례)는 제사(θυσία)라고 불렸다.
주님의 주일마다 여러분은 모여서 빵을 나누고 감사드리십시오(εὐχαριστήσατε). 그러나 그 전에 여러분의 범법들을 고백하여 여러분의 제사가(θυσία) 깨끗하게 되도록 하시오.
『디다케』(AD 100년경) 14장 1절, 정양모 역주.

※ εὐχαριστήσατε: eucharistēsate
※ θυσία: thysia
따라서 미사를 가리키는 '희생 제사'라는 말은 십자가 대속이 '유일한 희생 제사'임을 절대로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역사(役事)가 역사(曆史) 속에서 계속됨을 충만하게 드러낸다.

특히 현대인들이 놓치기 쉬운 요소가 있다. 오늘날 '제사'라는 말에서 느끼는 '고리타분하다'는 인상과 달리, 유다인들에게 예루살렘 성전 제사는 신자들을 종교적으로 고양시키고 가슴 벅차게 하는 매우 즐거운 신심 행위였다. 심지어 탈출기에서 이집트를 탈출하려는 동기를 모세는 정말 간단명료하게 '제사를 지내고 싶어서'라고 밝힐 정도였다.
히브리인들의 하느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니 저희가 광야로 사흘 길을 걸어가, 주 저희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탈출기 5장 3절. 원문 링크.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바로 이런 이유로 바빌론과 로마 제국에 의한 예루살렘 성전 파괴는 유다인들에게 재앙으로 취급됐다. 그런데 만약 히브리서가 말하고자 한 바가 '이제 제사는 끝장났으니 그리스도인들은 제사를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였다면, "십자가 대속 때문에 정작 그리스도인들이 구약만도 못한 신심 행위를 해야 한다"는 매우 이상한 결론이 나와버린다. 그 어떤 유다인이라도 제사가 사라지는 건 재앙으로 생각했지 축복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히브리서가 말하고자 한 것은 역사상 유일무이한 최고의 제사가 십자가에서 행해졌고, 인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십자가 대속으로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는 것이다.
그렇기에 미사를 '유일한 희생 제사의 현재화'로 생각해야 히브리서의 논지(대속 효과의 충만함)와 그리스도교적 상식(신약의 신심 행위는 구약을 넘어선다)과 유다인의 신심(제사가 사라지는 건 재앙이지 축복이 아니다)에 모두 부합한다.

만약 미사가 '희생 제사'라 불리는 것이 십자가 희생 제사의 유일성을 부정한다면, 신자들을 사제라 부르는 베드로 1서는 오직 십자가 대속만을 제사로 보는 히브리서와 모순된다는 부당한 결론이 나올 뿐이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도 이것을 분명히한다.
성찬의 희생 제사가 지닌 이러한 보편적 사랑의 측면은 구세주 자신의 말씀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면서 그저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라고만 말씀하시지 않고,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흘릴 피다.”(루가 22,19-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제자들에게 먹고 마시라고 주시는 것이 당신의 몸과 피라고만 단순히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닌 희생 제사적 의미를 분명히 하셨으며,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곧 바쳐지게 될 당신의 희생 제사를 성사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미사는 십자가의 희생 제사가 영속되는 제사적 기념이며, 동시에 또 이와 분리할 수 없이,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거룩한 친교의 잔치입니다.”[26]
교회는 구원의 희생 제사에서 자신의 생명을 끊임없이 길어 옵니다. 교회는 신앙으로 충만한 기억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접촉을 통해서 이 희생 제사에 다가갑니다. 이 희생 제사는 축성된 집전자의 손으로 그 제사를 드리는 모든 공동체 안에 성사적으로 영속하면서 언제나 새롭게 현존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체성사는 현대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모든 세대의 인류를 위하여 단 한 번에 이루신 화해를 가져다 줍니다.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희생 제사와 성찬의 희생 제사는 동일한 제사입니다.”[27]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이를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우리는 오늘은 이 희생양을, 내일은 또 다른 희생양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똑같은 희생양을 바칩니다. 그러므로 희생 제사는 언제나 동일한 것입니다. …… 지금도 우리는 단 한 번 바쳐졌으며 결코 없어지지 않을 희생 제물을 바칩니다.”[28]
미사는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재현하며, 그 희생 제사에 다른 것을 덧붙이지도, 그것을 늘리지도 않습니다.[29] 되풀이되는 것은 그 제사를 기념하는 의식, 곧 “기념의 표명”(memorialis demonstratio)[30]이며, 이로써 그리스도의 하나이며 결정적인 구원의 희생 제사가 시간이 흘러도 언제나 현존하게 됩니다. 따라서 성찬 신비의 희생 제사적 성격을 십자가와 별개인 독립된 것으로 여기거나 아니면 해골산의 희생 제사를 단지 간접적으로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ECCLESIA DE EUCHARISTIA) 12항. #cbck #archive

이 희생 제사가 '감사'(eucharistia)와 '기념'(anamnēsis)의 희생 제사라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성찬 제정 말씀에서 이 제사를 '감사'(eucharistia)와 '기념'(anamnēsis)의 제사라고 말하고 있다.
23ὁ κύριος Ἰησοῦς ἐν τῇ νυκτὶ ᾗ παρεδίδετο ἔλαβεν ἄρτον 24καὶ εὐχαριστήσας ἔκλασεν καὶ εἶπεν· τοῦτό μού ἐστιν τὸ σῶμα τὸ ὑπὲρ ὑμῶν· τοῦτο ποιεῖτε εἰς τὴν ἐμὴν ἀνάμνησιν.
[로마자 전사] 23ho kyrios Iēsous en tēi nykti hēi paredideto elaben arton 24kai eucharistēsas eklasen kai eipen· touto mou estin to sōma to hyper hymōn· touto poieite eis tēn emēn anamnēsin.
23주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24감사를(eucharistēsas)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anamnēsin) 이를 행하여라.”
코린토 1서 11장 23-24절. 원문 링크.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다음은 그 각론이다.

감사 제사
『가톨릭 교회 교리서』 원문 열람
1360항
1361항
성찬례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εὐχαριστία(eucharistia)는 문자 그대로는 '감사'라는 의미이다.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 행위이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31]

이 에우카리스티아(εὐχαριστία)라는 "명칭의 유래에 관해서 가장 합당한 가설은 다음과 같다. 유다교에서 회식을 시작할 때, 가장 또는 주빈이 빵을 들고 찬양기도(berakah, בְּרָכָה)를 드렸다. 이 말을 그리스어로 옮길 때 찬양이라는 뜻을 지닌 에우로기아( εὐλογία)로 직역할 수도 있지만, 감사로 번역되는 에우카리스티아(εὐχαριστία)로 의역할 수도 있다. 시편의 경우를 보아도 찬양 시와 감사 시는 그 구조와 내용이 거의 같다. 그래서 마르코 계열의 최후만찬 기사에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32](마르 14,22=마태26,26)이라고 표현한 반면, 바오로 계열에서는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33](1코린 11,23~24=루카 22,19)이라고 표현했다."[34]

우리는 신경을 통해 하느님이 '하늘과 땅과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임을 고백한다. 그 창조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교회는 미사 성제에서 이 모든 것들에 감사한다. 희생 제사가 제단에서 거행될 때마다 미사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구원 활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35]

기념 제사
『가톨릭 교회 교리서』 원문 열람
1362항
앞서 발췌한 1코린 11,23-24의 구절에서 보듯, 성찬례는 한국어 기념(=기억)으로 번역되는 ἀνάμνησις(anamnēsis)의 제사이다. 라틴어로는 memoria, 영어로는 memorial로 번역된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기념(기억)'은 통상적인 의미의 기념(=기억)보다 훨씬 강한 의미의 단어이다. "히브리적 사고에 의하면, 기억이란 과거의 일을 단순히 정신적으로 회상하고 기억한다는 의미 외에 예배에서는 과거의 사건, 특히 출애굽 사건을 현재의 사건으로 재현하고 체험한다는 의미를 지닌다(탈출 12,14~20; 신명 6,20~25)."[36] 특히 미사가 신약의 파스카 제사이며, 구약의 파스카가 출애굽 사건 '기념'(anamnēsis)이라는 걸 감안하면, '기념'은 그 자체로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결부된 단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성찬례에서 말하는 기억(anamnēsis)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들을 기억하는 것을 넘어서서[37] 그리스도의 파스카를 현재화한다.[38]
그리스 교부들은 성체성사에서 나타나는 '기억' 개념과 함께 예수 시대에 유다교에서 모든 축제일을 통해 자명하게 기린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즉, 지난 사건은 과거 안에 머물러 있지 않으며, 지나간 것의 형태로 현재 안에서 나타나지도 않는다. 그것은 축제를 지내는 이스라엘 백성과 통교하는 것이다. '기억'은 이스라엘에서 역사책을 넘기는 것이나 혹은 자신의 정체성을 떠올리는 것 그 이상이다. 기억은 먼저 이스라엘에서, 그다음에는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계약의 하느님이 하시는 행동을 자신의 행동과 계획, 생각하는 것이나 고통당하는 것으로 옮기는 것이다.
칼-하인츠 멘케Karl-Heinz Menke 신부, 『가톨릭교회의 교회론 -성사성-』Sakramentalität: Wesen und Wunde des Katholizismus, 조한규 옮김, 수원가톨릭대학교 출판부, 2022, p.200.

성찬 전례의 성찬 제정과 축성문 순서 다음에 "신앙의 신비여!"를 기도한다. 이어서 나오는 사제의 감사 기도는, 감사 기도 어느 양식을 사용하든, 그 미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죽음, 부활, 승천을 기념함을 언급한다. 그리고 생명의 빵과 구원의 잔을 봉헌함을 고백한다.

3.8. 잔치로서의 미사

미사는 파스카의 '잔치'(convivium)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주님께서 군중을 먹이시려고 빵을 축복하시고 떼어서 제자들을 시켜 나누어 주신 빵의 기적은, 당신 성찬의 이 유일한 빵이 말할 수 없이 풍요함을 예시한다.[39] 카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한 표징은[40]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때’를 이미 예고하고 있으며,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변한 새로운 포도주를 마시게 될[41] 하느님 나라 혼인 잔치(convivii)의 실현을 나타낸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35항. 원문 링크.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교리서에서 '잔치'의 원문인 라틴어 convivium은 사회적이고 즐거운 만찬을 일컫는 말[42]로, 여기서 강조점은 뭔가를 먹고 마신다는 점에 있다. 카나의 혼인 잔치(요한 2,1-10)에서 좋은 포도주가 넘쳐나는 풍요로운 만찬 이미지가 바로 convivium에 부합한다. 미사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혼인이며, 성체/성혈은 이 혼인의 풍성한 만찬 음식이니 당연히 convivium으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또한 한국어 번역인 '잔치'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1. 기쁜 일이 있을 때에 음식을 차려 놓고 여러 사람이 모여 즐기는 일. 2. ‘결혼식’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풀이되어 있는데, 이 역시 성찬례가 먹고 마시는 성사라는 점, 특히 그리스도와 교회의 혼인 잔치라는 점을 잘 드러낸다.

4. 미사의 효과

영성체는 우리와 그리스도의 일치를 증진시켜 준다.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써 얻는 주요한 효과는 예수 그리스도와 긴밀하게 일치하는 것이다. 실제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6).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의 토대는 성찬의 잔치에 있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요한 6,57).
신자들이 주님의 축일에 성자의 몸을 받을 때, 그들은 천사가 막달라 여자 마리아에게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살아나셨다!” 하고 말했던 것처럼, 생명의 보증을 받았다는 기쁜 소식을 서로 선포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스도를 받아 모시는 사람에게는 생명과 부활이 주어진다.[43]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91항. 원문 링크.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미사, 곧 성체성사의 "효과는 인간과 그리스도의 결합이다."[44] 곧, "성자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저희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한마음 한 몸이 되게"[45] 하는 성사이다. 이러한 원리에서, 천사적 박사는 미사를 '교회적 일치의 성사'(sacramentum ecclesiasticae unitatis)[46]라 불렀다. 그렇기에 '교회'와 '미사(=성찬례)' 사이의 연결은 "교회가 성찬례를 이루고, 성찬례가 교회를 이룬다"L'Église fait l'Eucharistie, l'Eucharistie aussi fait l'Église[47]고 말해야 할 정도로 매우 심오하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날 '교회'를 나타내는 신학 정식인 '그리스도의 신비적 몸'(=그리스도의 신비체)corpus Christi mysticum과 성체를 나타내는 신학 정식인 '그리스도의 참된 몸'corpus Christi verum은 서로 정식을 바꿔서 교환 가능할 정도로 밀접하게 상호 연관되어 있다. 실제로 두 정식은 중세에 서로 반대로 교환되었다. 유사하게 영성체를 뜻하는 라틴어 Communio는 문자 그대로는 '친교' 혹은 '공동체'를 의미한다. 여기서도 성찬례의 교회론적 의의가 드러난다.

한국에서 흔히 가톨릭 신앙을 '성당 다닌다'고 표현하는데, 이러한 일상적인 표현에서도 미사가 곧 가톨릭 신앙의 핵심임을 매우 정확하게 암시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말해서, “초기 교회 때부터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주님의 날’(주일)을 지키며 산다는 뜻이었다.”[48] 다시 말헤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혹은 교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주일 미사에 참례하는 것과 처음부터 하나였다.”[49]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후 로마 미사에는 감사 기도 세 가지가 새롭게 도입되었는데, 이 감사 기도들 각각에 붙어있는 두 번째 성령 청원 기도(epiclesis)는 미사의 효력을 아름답게 요약한다. 모두 근본적으로 동일한 내용이므로 여기서는 제4양식으로 인용한다:
주님, 몸소 교회에 마련하여 주신 이 제물을 굽어보시고
같은 빵과 같은 잔을 나누어 받으려는 저희가 모두
성령으로 한 몸을 이루고
그리스도 안에서 산 제물이 되어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소서.
「미사 통상문」 122항, 감사 기도 제4양식, 제2 에피클레시스. 전례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5. 미사 거행에 사용되는 책

5.1. 전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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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문단을
미사에 사용되는 전례서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2. 참고서

아래의 책들은 위에서 언급한 『로마 미사 경본』(Missale Romanum)과 『미사 독서』(Lectionarium)만큼의 권위는 없지만, 미사 전례 거행에 도움을 준다. 이 책들은 미사 전례에 관한 정식 전례서가 아니므로 이 책에 수록된 내용이 현행 미사 전례 거행 방식에 대한 확실한 권위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대림 제3주일에는 『로마 미사 경본』 147면에 있는 본기도, 예물 기도, 영성체 후 기도를 바쳐야 한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장례 미사 때의 화답송으로는 『가톨릭 성가』 50번 1절과 3절을 불러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낭설일 뿐이다. "그때는 ……를 사용해야 한다."와 같은 당위적 문장을 위와 같은 참고서에 수록된 가사나 곡조에 대해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위적 문장의 근거와 적용 범위는 정식 전례서로 국한된다.

6. 미사 거행에 쓰는 빵과 포도주

지성한 성찬 제헌은 빵과 물을 조금 섞은 포도주로 봉헌되어야 한다.
『교회법』 924조 ①항. 원문 링크.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주님의 잔치를 거행하는 데에 언제나 빵과 포도주를 물과 함께 써 왔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319항. 전자책 링크. 전례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6.1. 제병

미사 중에 축성을 하기 전의 빵을 제병(祭餠, Hostia, Host)이라고 한다.[50] 이 제병이 그리스도의 말씀 성령 청원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된다.[51]

라틴 에법 가톨릭 교회는 아래와 같이 '누룩 없는 빵'을 사용한다는 일관된 원칙 하에 미사에 사용되는 제병을 준비한다. 이는 성찬 제정 날짜가 파스카, 곧 무교절(누룩 없는 빵을 먹는 날)이었다는 공관 복음서의 증언을 따르기 때문이다.
무교절 첫날 ...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마태 26,17-19)
무교절 첫날 곧 파스카 양을 잡는 날에 ... 그들은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마르 14,12-16)
파스카 양을 잡아야 하는 무교절 날이 왔다. ... 그들은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루카 22,7-13)

특히 라틴 예법에서는 누룩 없는 빵의 의미를 영성적으로도 이해한다.
그리스도 우리의 파스카 양으로 희생되셨으니, 순결과 진실의 누룩 없는 빵으로 축제를 지내세. 알렐루야.
1코린 5,7-8 참조, 『로마 미사 경본』 400면,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 영성체송. 전자책 링크. 전례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빵은 순수한 밀가루로 빚고 새로 구워 부패의 위험이 전혀 없어야 한다.
사제는 성찬 거행 때에 어디서 봉헌하든지 라틴 교회의 옛 전통에 따라 누룩 없는 빵을 사용하여야 한다.
『교회법』 924조 ②항과 926조. 원문 링크: 924조, 926조.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성찬례 거행에 쓰일 빵은 순수하게 밀가루로 만든 신선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라틴 교회의 오랜 전통에 따라 누룩 안 든 빵이어야 한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320항. 전자책 링크. 전례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한국 천주교에서는 대구광역시 가르멜 봉쇄수녀원에서 만든 미사용 제병을 일괄 사용한다. 바로 위의 '누룩 없는 빵'이라는 원칙에 따라 밀가루와 물 외에는 아무 것도 넣지 않고 제조된다. 한국 농업 기술이 현대화되지 않았던 옛날에는 밀 경작지가 적었고 수확량 저조했으므로 수입 밀가루를 썼다. 그러다가 1991년 11월에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가 수도원에 국산 밀로 제분한 밀가루를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오늘날에는 국산 밀가루로 만든 제병을 쓴다. 최근엔 기계화 시설이 갖춰져 한국 내에서 충분히 쓰고도 남을 만한 양의 제병을 대량으로 제조할 수 있다.

제병을 만들 때 나오는 자투리나 분류과정에서 나온 파손품들은 버리지 않는다. 따로 모아서 계란+설탕+소금을 첨가해 버무린후 오븐에 구워 일종의 쿠기를 만들어 신자들에게 나눠주거나 극히 일부는 외부에 판매한다.

제병의 크기로 분류하자면 일반 신자들에게 제공되는 소형 제병과 일반 미사에서 사제가 쓰는 중형 제병, 매우 많은 사람이 모이는 미사 중에 사제가 쓰는 대형 제병이 있다.

한편 가톨릭 동방 예법 교회들에서는 누룩 있는 빵을 사용한다. 이는 요한 복음서가 만찬 날짜를 공관 복음서와 다르게 증언하기 때문이다.[52] 이렇듯 라틴 예법과 동방 예법의 누룩 여부는 둘 다 성경에 근거하므로 어느 한쪽이 틀렸다고 말하기 어렵다.

6.2. 포도주

포도주는 포도로 빚은 천연의 것으로 부패하지 아니하여야 한다.
『교회법』 924조 ③항. 원문 링크.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성찬례 거행에 쓰일 포도주는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루카 22,18 참조) 것으로, 다른 물질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천연 포도주여야 한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322항. 전자책 링크. 전례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미사에 쓰이는 포도주를 '미사주'라고 부른다. 이 미사주에는 위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322항에 언급된 것처럼 첨가물을 넣지 않는다. 예전에는 성당 혹은 수도원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걸 사용했으나 현대에는 공급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대부분 대량 계약한 제품을 사용한다. 양조장이 있어야 미사주를 자체적으로 만들 수 있는데 일부 수도원을 제외하면 현대의 대부분의 성당에는 이런 시설이 없다.

미사에 사용하는 포도주의 색 자체는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즉 적포도주이든 백포도주이든 무방하다. 현대 한국 가톨릭에서는 대부분 화이트 와인을 쓴다. 색이 있는 포도주를 사용했다가 제의에 튀어서 얼룩이 남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빨래를 못하는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축성 후에 튀었다면 이는 성혈이 튄 상황이기에 당연히 함부로 빨래할 수 없다. 한국 천주교에서는 1977년부터 롯데칠성음료에 커스텀 오더를 넣는다. 미사주의 상표는 마주앙이지만 성당에만 공급되는 상품은 따로 있다. 아황산을 첨가할 수 없어 변질을 막기 위해 국산 포도로만 제작되며 다른 첨가물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 외 것은 마주앙과 같아서 마주앙 브랜드를 붙여서 나오는 듯 하다.

미사 집전 중에는 미사주가 술병에 담긴 상태로 나오지 않는다. 미사 시작 전에 '주수병'이라는 두 개의 작은 병에 각각 미사주와 물을 따로 담는다.

6.3. 포도주와 물을 착각했을 때

사제가 성체 축성 다음에 또는 영성체할 때에 포도주 대신 물을 썼음을 알게 되면, 그 물을 다른 그릇에 따르고, 성작에 포도주를 붓고 물을 섞은 다음 성혈 축성에 관한 성찬 제정문을 다시 읽으며 축성해야 한다. 그러나 빵은 다시 축성할 필요가 없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324항. 전자책 링크. 전례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미사 시작 전에 미리 주수병 두 개에 각각 포도주와 물을 넣어야 한다. 바로 앞 문단 동영상에도 나오듯, 주수병 두 개는 비슷하게 생겼다. 그래서 가끔 봉사자가 주수병을 착각하여 포도주와 물을 서로 바꿔 준비한다. 위 규정은 바로 그럴 때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6.4. 특별한 경우에 대한 배려

신앙교리성에서는 “성찬례의 재료로 소량의 누룩을 넣은 빵과 포도즙의 사용에 관하여 주교회의 의장들에게 보내는 회람”을 통하여, 다양하고 중대한 이유로 일반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빵이나 통상적 방식으로 발효된 포도주를 섭취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거행하는 성체성사를 위하여 「영성체 형태에 관한 규범」(2003년 7월 24일, 문서번호: 89/78-17498)을 발표하였습니다.

ㄱ. 글루텐이 전혀 없는 제병은 성찬례 거행에 사용할 수 없다. 저(低) 글루텐(부분적으로 글루텐이 없는) 제병은 유효하다. 다만, 이질적인 물질을 첨가하거나 빵의 본질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절차를 이용하지 않으면서 빵 제조에 필요한 충분한 양의 글루텐을 얻는다는 조건에서이다(가. 1-2).

ㄴ. 신선한 포도즙이거나, 본질은 변화시키지 않고 발효만 막는 방법으로 보존된(예를 들면, 냉동) 포도즙(mustum)은 성찬례 거행에 유효하다(가. 3).

ㄷ. 직권자는 개별 신부나 평신도가 저 글루텐 제병이나 포도즙을 성찬례에서 사용하도록 허락할 권한이 있다. 허락이 주어진 상황이 계속되는 한 지속적으로 허용될 것이다(다. 1).
「경신성사성 회람」 성찬례에 쓰는 빵과 포도주에 관하여 주교들에게 보내는 회람.
알코올을 섭취하면 신체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체질이거나 건강상 이유로 술을 마실 수 없는 신부들은 위 규정에 따라 포도주 대신 특별 제조된 포도즙으로 대체할 수 있다. 다만 미사에서 쓰는 포도주가 소량인 데다 미량이지만 물도 섞으므로 어지간히 알코올에 약한 신부들도 그냥 미사주를 쓴다고 한다.

6.5. 남은 성체와 성혈 처리, 그리고 성체나 성혈을 떨어뜨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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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영성체 후 성체와 성혈 처리 부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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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미사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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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미사의 구조


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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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통상문」,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라틴 말/영어 대조 미사 통상문 (악보 첨부) 영어 미사 통상문

8.1. 시작 예식(Ritus Initia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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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말씀 전례(Liturgia Ver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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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성찬 전례(Liturgia Eucharist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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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마침 예식(Ritus Conclusion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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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미사에 사용되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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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미사 전례에 임하는 합당한 자세

파일:다른 뜻 아이콘.svg   미사 전례에 임하는 이들이 갖춰야 할 합당한 자세 전반적인 사항에 대한 내용은 아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다른 뜻 아이콘.svg   그리고 미사를 구성하는 세부 순서 중의 자세에 대해서는 아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 오늘날 미사(바오로 6세 미사)에 관한 여러 오해

11.1. 그날 미사의 고유 기도와 독서가 전 세계가 모두 같은가?

바오로 6세 미사만 놓고 보더라도 전 세계가 완벽히 다 같다고 할 수 없으나, 그 다름은 같은 질서 안에서 이루어진다.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가톨릭 교회가 전 세계적으로 일치되어 있음을 강조하려다보니 미사의 고유 기도와 말씀마저 모든 지역에서 다 같다는 식으로 단순하게만 생각한다. 물론 "대체로 같은가?"라고 묻는다면 어느 정도 맞는 말이지만, "완벽히 같은가?" 하면 그렇지 않다.

지금 보편적으로 거행되는 바오로 6세 미사, 곧, Novus Ordo의 각 요소를 어떻게 정하는지 살펴보자. 한국 천주교 신자들이 쓰는 『매일미사』에 있는 그 달의 고유 기도문은 『로마 미사 경본』에서 뽑으며, 이 책은 『Missale Romanum』 라틴어 표준판을 따른다. 『매일미사』의 그 달의 말씀(독서, 화답송, 복음 환호송, 복음)은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편찬한 『미사 독서』 I~IV권에서 뽑으며, 이 책에 있는 말씀 배열은 바티칸에서 1981년에 편찬한 『Ordo Lectionum Missae』를 따른다. 이는 다른 나라의 가톨릭 교회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전 세계가 기본적으로 『Missale Romanum』으로 부터 만든 라틴 말 혹은 모국어 미사 경본을 사용하고 『Ordo Lectionum Missae』를 참고하여 만든 라틴어, 혹은 모국어 독서집을 활용한다.

그런데 같은 미사 경본과 같은 독서집을 활용할 뿐이지, 그날 전 세계의 모든 성당의 바오로 6세 미사 중에 울려퍼지는 고유 기도와 독서가 마냥 같다는 뜻은 아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때에 따라 짧은 독서나 복음을 봉독한다. 한국 천주교에서도 이를 이미 『매일미사』를 통해 경험한다.
  2. 어떤 전례일은 독서 목록을 여러 개 제시하고 사제가 그중에서 선택해서 봉독하라고 지시한다. 대표적 사례가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의 독서이다. 지금의 전례서는 구약에서 뽑은 일곱 개를 제시하지만 이중에서 제3독서를 포함한 몇 개를 선택해서 봉독할 수 있다. 자연히 1,3,5,7독서를 선택한 성당과 2,3,4,6독서를 선택한 성당에서 듣는 독서는 다르다.
  3. 특정 지역에서만 지내는 성대한 축제일에는 그 지역과 그 외의 지역의 말씀이 다를 수 있다. 한국의 설이나 한가위, 6월 25일에 지내는 남북통일 기원 미사, 7월 5일에 지내는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 미사가 여기에 해당한다.
  4. 대축일, 축일, 의무 기념일도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가령 9월 20일에 지내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에 관한 전례일은 다른 지역에서는 기념일(의무 혹은 선택)이지만 한국 교구들에서는 대축일이다. 이러한 차이가 반영되면 같은 9월 20일이라도 한국 바깥과 한국에서 듣는 독서는 다르다. 보편 전례력에 있는 성모 마리아, 성 요셉, 성 요한 세례자,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등에 관한 대축일, 축일, 의무 기념일마저 그 지역의 공휴일 상황에 따라 가까운 다른 날로 이동하여 지낼 때도 있다. 이렇게 지낸 지역에서 그 즈음 며칠간의 미사 중 실제로 사용된 고유 기도문과 독서는 다른 지역과 어떻게든 달라지기 마련이다.
  5. 교구의 주요 수호자 축일이나 성당의 주보 대축일에는 전례일의 등급과 순위 표에 따라 그 축일이나 대축일 미사를 거행한다. 그러면 인근 교구나 성당의 미사 내용과 달라진다.

결국 미사 중의 고유 기도문과 말씀은 지역마다 약간의 차이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이 차이는 『Missale Romanum』과 『Ordo Lectionum Missae』가 정하는 질서 안에서 발생한다.

한편 바오로 6세 전례의 영역을 벗어나서 트리엔트 미사나 암브로시우스 전례 등의 다른 전례와 비교하면 더 달라질 수 있다. 이들에 관한 설명은 관련 문서의 내용으로 갈음한다.

11.2. 라틴어 미사는 금지되었다?

(중략) 이제는 라틴 말로 거행하는 거룩한 예식의 합법성과 유효성을 부정할 가톨릭 신자가 없으므로, 공의회는 전례에서 "모국어의 사용이 백성에게 크게 유익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모국어 사용을 허락하였다. (중략)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12항. 전자책 링크. 전례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위 12항에서 '허락하였다.'라는 표현에 주목하자. 여전히 '라틴 말 미사가 원칙이요 모국어 미사가 허용'이다. 이 12항은 라틴 말로 거행하는 미사가 합법적이고 유효하다는 전제를 깔고 미사의 신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모국어 미사도 허용한다는 뜻이다. 아직도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라틴 말로는 미사를 드릴 수 없고 모국어로만 미사를 거행할 수 있다고 잘못 안다. 아래에 설명할 언론 보도들은 이러한 잘못된 인식을 더욱 부추겼다.

2021년 7월 교황 프란치스코는 자의 교서 「전통의 수호자들」(Traditionis Custodes)를 통해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기준을 강화했다 ( 한국어, 영어, 이탈리아어). 트리엔트 미사를 어느정도 규제한 조치이며, 사제가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하기가 전보다 어려워졌다. 그런데 이를 두고 많은 언론에서 아래와 같이 '라틴어'라는 단어를 너무 강조하여 "교황 프란치스코가 라틴어 미사를 제한하였다."라고 받아들인 이들이 많았다. 이들은 모두 교황의 자의교서를 제대로 읽지 않고 낸 뉴스 기사들이다. 위에 링크된 교황의 자의 교서 「전통의 수호자들」을 자세히 보자. 트리엔트 미사 중의 독서들은 라틴어 대신 현지 언어로 봉독하라는 제한 사항이 있을 뿐, 바오로 6세 미사의 라틴어 사용 여부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있다. 트리엔트 미사 문서에서 알 수 있듯 트리엔트 미사는 지금의 바오로 미사와 세부적인 순서에서 많은 차이가 있으며, 라틴어 사용은 트리엔트 미사의 여러 특징 중 하나일 뿐이다.

즉 교황 프란치스코가 이런저런 규제를 통해 제한한 것은 어디까지나 트리엔트 미사이다. 바오로 미사를 거행하는 언어로서 라틴어 사용을 제한한 적은 없으며, 그럴 수도 없다. 라틴어 사용을 제한한다면 당장 교황 자신이 주례하는 미사에서 라틴어로 기도하는 모습은 어떻게 설명하며, 모국어 『로마 미사 경본』이 라틴어 표준판 『Missale Romanum』의 번역본이라는 점은 어떻게 설명한다는 말인가. 바오로 미사를 라틴어로 거행할 수 없다면, 이는 라틴어 표준판 『Missale Romanum』은 사용할 수 없고 그것들의 번역본만 쓰라는 이상한 이야기가 된다. 그 말대로라면 한국 천주교 신자들이 즐겨 부르는 『가톨릭 성가』 101번 '글로리아 높으신 이의 탄생'이나 『가톨릭 성가』 276번 '하늘의 여왕'도 후렴에 각각 'Glória in excélsis Deo.'와 'Salve, María'(Salve, Regina)가 나오므로 부를 수 없다는 뜻이 된다. 무엇보다도 지금 미사 중 자비송이나 보편 지향 기도 응답으로 그리스어인 Kýrie, eléison도 버젓이 사용되는데 (심지어 자비송 문서의 언급처럼 가톨릭 교회는 Kýrie, eléison이라는 그리스어 사용을 장려하는데), 정작 라틴어 사용을 제한한다? 결국 이 모든 정황은 "앞으로 미사 중 라틴어 쓸 수 없대."라는 식의 이해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단적으로 보여 준다.

11.3. 벽 제대는 트리엔트 미사만의 요소이다?

많은 이들, 특히 지금의 바오로 6세 미사만을 접한 이들에게 벽 제대를 이용한 미사 거행이 강한 인상으로 다가오다보니 이들은 벽 제대를 트리엔트 미사만의 요소로 여긴다. 심지어 제대의 위치 조정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과의 전부로 착각하는 사례도 있다.

그러나 벽 제대는 바오로 6세 미사에서 폐지되지 않았다. 아래 지침은 놀랍게도 바오로 6세 미사에 관한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의 지시 사항이다. 아래의 ㄴ) 항은 지금의 바오로 6세 미사도 벽에 붙은 제대를 이용하여 거행할 수 있음을 전제로 쓰여졌다.
(중략)
제대에 분향할 때에는 향로를 한 번씩 흔들어 아래와 같이 분향한다.
ㄱ) 제대가 벽에서 떨어져 있으면, 사제는 제대를 한 바퀴 돌면서 분향한다.
ㄴ) 그러나 제대가 벽에서 떨어져 있지 않으면, 사제는 먼저 오른쪽으로, 그다음에 왼쪽으로 지나가며 분향한다.
(중략)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277항. 전자책 링크. 전례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지금 미사의 순서와 기도문과 말씀을 그대로 사용하되 벽에 붙은 제대를 이용하여 미사를 거행하는 사례는 아래와 같다.
물론 지금의 바오로 6세 미사는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299항의 언급처럼 제대를 벽에서 떨어져 있도록 설치하라고 권하지만 거기에도 '가능한 곳에서는'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이는 벽에 붙어 있는 제대에서 거행하는 미사를 제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12. 여담

12.1. 혼인 미사에 참석하는 비신자들의 어려움

비신자들이 대거 참석하는 가톨릭의 미사 중 하나가 혼인 미사이다. 약 한 시간 정도 진행되는 이 미사에 참석하는 이들은 여러 번 앉고 서고 무릎을 꿇어야 하기에 비신자들에게는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다. 더군다나 미사 중 혼인성사라고 불릴 수 있는 부분의 분량은 매우 적고 나머지는 모두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로 채워져 있기에 미사의 의미를 모르는 비신자들은 혼인 미사를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혼인 당사자들이 비신자 하객들을 배려하고자 그들이 인사만 하고 바로 식당으로 가길 바라기도 한다. 반대로 가톨릭 혼인 미사의 위와 같은 특징을 이미 아는 비신자 하객들은 그런 번거로움과 지루함에 아랑곳 않고 미사에 참석하여 혼인 당사자들을 기쁘게 축하해 준다.

12.2. 부득이 미사에 참여할 수 없을 때: 대송

주일이나 의무 축일에 미사 참례의 의무를 이행할 수 없는 신자는 공소 예절로 그 의무를 대신할 수 있다.

미사나 공소 예절에도 참례할 수 없는 부득이한 경우에는 그 대신에 묵주 기도, 성서 봉독, 선행 등으로 그 의무를 대신할 수 있다.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74조 3항과 4항. 전자책 링크.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천재지변이나 전염병 창궐 등으로 부득이하게 미사에 갈 수 없다면, 대송(代誦)이라는 것으로 미사 참례 의무를 대신할 수 있다. 구체적인 방법은 위와 같다. 2020년 2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규모 전염 사태가 발생하자 천주교 전래 236년 만에 처음으로 전국 모든 교구의 성당과 성지에서 미사 거행이 일시 중단되면서 대송을 통한 미사 참례 의무 이행 당부가 나온 바 있다.

이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74조의 '부득이한 경우'란 다음과 같다.
먼저, '부득이한 경우'란 '직업상 또는 신체적 환경적 이유로 주일 미사에 일시적이건 지속적이건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주일 미사와 고해성사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 공동 사목 방안」, 주교회의 2014년 춘계 정기총회 승인.
또 '묵주기도, 성경 봉독, 선행'이 가리키는 바는 다음과 같다.
위 조항에서 주일 미사 참례 의무를 대신하는 것으로 '묵주기도'는 5단을 바치는 것으로 합니다. '성경 봉독'은 그 주일 미사의 독서와 복음 봉독을 의미합니다. '선행'은 희생과 봉사활동 등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방법으로 주일 미사 참례 의무를 대신할 경우 고해성사를 받지 않아도 됩니다.
부득이하게 주일 미사를 참례하지 못한 신자들에게는 평일 미사 참례를 적극 권장합니다.
「주일 미사와 고해성사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 공동 사목 방안」, 주교회의 2014년 춘계 정기총회 승인.
가령 학생이 시험공부를 위해 의무 축일 미사 참례 의무를 대송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 공식 문서가 그런 것까지 일일이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다음을 참고하면 좋다.
물론 주일 미사 참례는 신자로서의 최선의 의무이기에 이 부득이한 경우를 임의로 확대 해석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본당 주임 신부는 현 지침의 내용, 부득이한 경우의 해석 및 범위에 대한 교육을 반드시, 그리고 지속적으로 실시하여야 합니다.
「주일 미사와 고해성사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 공동 사목 방안」, 주교회의 2014년 춘계 정기총회 승인.

13. 관련 어록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anamnēsin) 이를 행하여라.
예수 그리스도.[53]
"미사는 골고타와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미사는 치명적인 대죄를 지은 죄인에게는 회개의 은총을, 올바르게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소죄의 사함과 죄로 인한 고통을 면하게 하는 은총을 가져다 줍니다. 미사는 각자에게 필요한 특별 은총 외에 일상적으로 필요한 은총 또한 더해 줍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
"미사 중의 기적은 하늘의 별보다도, 또 세상에 있는 모든 바다의 모래보다도 많다. 미사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기적이다."
성 보나벤투라.
"이 세상의 선한 모든 일을 다 합하여도 미사의 가치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가 미사를 집전할 때, 천사들은 그를 둘러싸고 미사를 돕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
"하느님의 성자가 사제의 손에 들린 채 제대 위에 나타나실 때면 인간은 전율하고, 세계는 떨며, 모든 천상은 깊은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미사에 참례할 때는 그대의 눈앞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신비에 온 정신을 집중시켜라. 그것은 곧 구원이요, 하느님과 그대의 영혼과의 화해이다."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미사가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지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멸망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사만이 하느님의 진노의 팔을 거두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기 예수의 성녀 소화(小花) 데레사.

14. 관련 문서


[1] 가톨릭 영상 교리 13 미사 1: 미사의 의미,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2]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24항. [3]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24항. [4] 『가톨릭대사전』, '미사' 문서. [5] 전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6] 『교회법』 1248조 2항. [7]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31항: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 275항. [8]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55항;1383항. [9]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24항. [10] 성체성사: 아레오파고스 31강, 천주교 서울대교구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 [11] 성체성사: 아레오파고스 31강, 천주교 서울대교구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 [12] 『한국 천주교 예비 신자 교리서』(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제3판, 2018년) 147면, 한국천주교주교회의. [13]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22항. [14]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04항. [15] 『교회법』 916조. [16]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45항. [17] 『가톨릭 교회 교리서』 1545항. [18] 바티스타 몬딘Battista Mondin, 『성 토마스 개념사전』Dizionario Enciclopedico del Pensiero di San Tommaso d'Aquino, 이재룡 안소근 윤주현 옮김, 한국성토마스연구소, 22021, p.348. [19] 천주교 용어집. [20]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74조 3항. [21] 『가톨릭 교회 교리서』 1547항. [22] 『가톨릭 교회 교리서』 1545항. [23] (교리서 내 주석) 트리엔트 공의회, 제22회기, 미사성제에 관한 교리, 제1장: DS 1740. [24] 『가톨릭 교회 교리서』 1547항. [25] 성 토마스 데 아퀴노, 「히브리서 주해」, c. 7, lect. 4, Opera omnia, 21권(파리, 1876), 647. [26]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82항. [27]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67항. [28] 「히브리서 강론」(In Epistolam ad Hebraeos, Homiliae, Hom.) 17,3: 「그리스 교부 총서」(Patrologia Graeca) 63,131. [29] 트리엔트 공의회, 제22회기, 지극히 거룩한 미사의 희생 제사에 관한 교리(Doctrina de ss. Missae Sacrificio), 제2장: 「신앙, 도덕에 관한 선언, 규정, 신경 편람」(Enchiridion Symbolorum Definitionum et Declarationum de Rebus Fidei et Morum), 1743: “그때 십자가에서 자신을 봉헌하셨던 분께서 바로 지금 사제들의 직무를 통하여 하나의 동일한 희생 제물로서 자신을 봉헌하고 계신다. 봉헌의 방식만이 다를 뿐이다.” [30] 비오 12세, 회칙 「하느님의 중개자」(Mediator Dei), 1947.11.20.: 「사도좌 관보」 39(1947년), 548면. [31]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48항. [32] (발췌자 주석) λαβὼν ἄρτον εὐλογήσας[labōn arton eulogēsas] -마르 14,22 [33] (발췌자 주석) λαβὼν ἄρτον εὐχαριστήσας[labōn arton eucharistēsas] -루카 22,19 [34] 손희송, 『일곱 성사, 하느님 은총의 표지』,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1, p.144. [35]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64항. [36] 손희송, 『일곱 성사, 하느님 은총의 표지』,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1, p.145. [37]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63항. [38]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64항. [39] 마태 14,13-21; 15,32-39 참조. [40] 요한 2,11 참조. [41] 요한 2,11 참조. [42] Döderlein's Hand-book of Latin Synonymes by Ludwig von Doederlein. [43] 「안티오키아의 시리아 성무일도」, 축일 성무일도 제1권(모술, 1886), 237a-b면. [44] 피렌체 공의회 칙서 Exsultate Deo (덴칭거 1322항). [45] 「미사 통상문」 113항, 감사 기도 제3양식, 제2 에피클레시스. [46] 성 토마스 데 아퀴노, 『신학대전』 제3부 73문 3절. [47] 하느님의 종 앙리 드 뤼박Henri de Lubac 추기경, 『교회에 관한 묵상』Méditation sur l'Église, Paris, 1952 [48] 발터 카스퍼Walter Kasper 추기경, 『일치의 성사: 성체성사와 교회』Sakrament det Einheit: Eucharistie und Kirch, 조규만 조규홍 옮김, 분도출판사, 2013, p.17. [49] 발터 카스퍼 추기경, 같은 책, p.20. [50] 천주교 용어집. [51]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33항. [52] 요한 13,1 [53] 1코린 11,24. 원문 링크.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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