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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싱가포르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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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단순 비교3. 역사적 관계
3.1. 21세기 이전3.2. 21세기
4. 상호 교류
4.1. 왕래4.2. 인프라4.3. 문화4.4. 언어4.5. 왕래 및 통혼4.6. 스포츠4.7. 종교
5. 페드라 브랑카 영토 분쟁6. 주의할 점7. 관련 문서8.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의 관계.

2. 단순 비교

국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국내총생산[1] 4308.9억 달러
(36위)
4973.4억 달러
(32위)
인구[2] 3,393만 8,221명
(45위)
563만 7,022명
(113위)

말레이시아가 국토와 인구를 비롯하여 더 큰 나라이기 때문에 경제 규모 자체는 말레이시아가 크지만,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보다 경제 수준은 월등히 높다. 말레이시아는 개발도상국이고 싱가포르는 선진국 상태이다. 인구는 도시 국가인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에 비해 더 적지만, 싱가포르의 경제 규모가 말레이시아의 경제 규모보다 더 크다. 다만 경제 규모는 싱가포르가 더 크지만, 식수, 전기, 석유, 식량 등 아쉬운 부분이 나름 많아 일방적 갑을관계가 아니고 상호 보완적 관계다.

인구는 싱가포르가 적다. 싱가포르 500만 명 중에서 영주권자/장기비자 소지자 200만 명을 빼면 싱가포르 국적자는 300만 명에 불과하다. 다만 싱가포르가 1개 도시이긴 해도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도시인 관계로[3] 도시 국가-영토 국가를 비교하는 것치고는 1:6 정도로 생각보다 비율 차이가 크진 않은 편이다.

3. 역사적 관계

3.1. 21세기 이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는 대략 1957년까지 과거 영국의 식민지로 있었다. 정확히는 해협식민지의 일원인 싱가포르 자치령으로서 페낭 말라카와 같은 배를 탔다. 그래서 리콴유 - 과걱추 부부는 싱가포르 독립 이전 영국 해협식민지 - 말레이시아 국적을 가졌던 것이다.

싱가포르 1957년 말레이시아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말레이시아 연방에 가입해 말레이시아의 싱가포르 주로 연방에 속했던 적[4]이 있었다. 그러나 1965년 인종 문제로 인해서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이탈 및 탈퇴를 사실상 당하고 분리독립을 선포하여 지금의 독립된 싱가포르 공화국이 되었다.

이런 이유로 양국관계는 일반적인 대국-소국의 관계와 다소 차이를 보인다. 주민 대 주민 교류로서는 매우 가까운 사이지만, 한 국가로서 지내는 데에 말레이시아 측이 부담을 느낀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툰쿠 압둘 라만 말레이시아 총리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는 사적으로 가까운 사이였고, 툰쿠 압둘 라만은 "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일부라면 갈등을 피할 수 없지만 다른 나라라면 우방이다"라고 발언했다.[5]

만약 말레이시아가 싱가포르를 노리고 있고 서방 등의 외력으로 점령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면 군사적 긴장이 흘렀겠지만, 말레이시아 측에서 추방한 것이니 말레이시아 측에서 군사적 대립을 일으킬 이유도 없다. 되려 말레이시아는 초창기 싱가포르에 엄청나게 원조를 해준 나라다. 물론 초기에는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를 경계했지만 그 것 역시 정치권의 갈등 문제 때문이지 인도-파키스탄 관계 수준은 아니었다.

비록 페드라 블랑카 분쟁이나 영해 분쟁 등 사소한 분쟁이 있었지만 양국은 서로를 적으로 인식하지 않았으며 1987년~ 1990년 사이 싱가포르가 대외적으로 선진국으로 공식 인정받으며 경제력 격차까지 커지자 말레이시아 측에서 '우리보다 잘 살고 군사력도 강한 싱가포르를 우리가 굳이 쳐들어갈 이유가 없다'며 공식적으로 싱가포르를 적대시하지 않음을 강조했다.

양국은 냉전 시기 미국 영국에 의해 반공전선으로서 묶여 일찍이 군사동맹이었으며 싱가포르가 처음 독립한 뒤 말레이시아는 대규모 원조를 해주기도 하였다. 2020년대 들어서는 중국의 부상으로 남중국해 문제가 걸리면서 양국 사이가 더욱 긴밀해졌다. 특히 일대일로를 무기로 동남아시아로 뻗어오는 중국을 견제해야 해서 양측의 연대는 더 중요해졌다.

3.2. 21세기

4. 상호 교류

4.1. 왕래

말레이시아 - 싱가포르는 상호 간 출입국이 매우 간편하며 양국은 자동출입국심사 시스템을 개방했으며, 개발도상국에 비자를 요구하는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 여권 소지자에게는 개방했다. 싱가포르인 말레이시아인들은 각자 상호 국가의 자국민 출입국 심사 레인에서 심사를 받아 출입국이 가능하다.

심지어 오토바이 자전거를 탄 상태에서도 국경을 넘을 수 있다.[9] 아예 싱가포르의 우드랜드(Woodlands) 검문소는 오토바이 전용 창구를 마련하고 있으며 싱가포르에서 말레이시아 번호판을 단 오토바이, 차량[10]을 보는 것은 쉽다.

이렇게 왕래가 편한 덕분에 지금 당장에도 수많은 말레이시아인들이 조호르 주에서 버스를 타고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사이를 출퇴근하고 있다.

4.2. 인프라

전기, 수도, 식량, 각종 천연자원 등은 말레이시아에서 싱가포르로 공급된다. 조호르바루에서 싱가포르로 놓여진 코즈웨이 대교를 지나다 보면 말레이시아에서 싱가포르로 이어진 상하수도관을 구경할 수 있다. 다리 밑으로 파이프 같은 게 지나가는 그게 상수도관이다. 싱가포르에서는 앞서 언급한 노동력과 각종 인프라에 대한 대가로 말레이시아에 투자를 해주고 있다.
특별히 큰 문제가 불거지진 않지만 위 2018년 물값 논란에서 보듯 잠재적 갈등 요소이기는 하다. 한 국가라면 국민의 기본적인 복지를 위해 전기, 수도 같은 것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공급해야 하지만 말레이시아에게 싱가포르는 타국이므로 충분히 비용 인상 요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 측에서도 싱가포르와의 관계를 상호 보완 관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자주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싱가포르 측에서는 장기적으로 의존도를 낮추려는 계획을 짜지 않을 수 없다.

4.3. 문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프라나칸이라는 독특한 전통 문화, 의복, 음식 등 많은 것들을 공유한다. 다만 말레이 문화색을 강화한 말레이시아의 부미푸트라 정책으로 인해 영국 문화, 중화권 문화의 유산은 싱가포르가 더 강한 편이다.
싱가포르 요리는 대부분이 말레이시아 요리에서 기원해서 겹친다. 바쿠테, 칠리크랩, 락사, 딤섬 중국계 요리와 피시 헤드 커리 및 로티 프라타 등 인도계 요리는 물론 나시고랭, 나시 짬뿌르 등 말레이 요리들도 모두 마찬가지이며 심지어 노천식당인 호커 센터도 원조는 말레이시아여서 둘 사이에 가끔 서로 자기들이 원조라고 주장하다 기싸움도 생긴다.

4.4. 언어

양국은 한족 혈통의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이 많기 때문에 화어, 광동어, 민어, 객가어가 쓰이고 있고 영어도 널리 쓰이고 있다. 양국에는 모두 원주민 말레이인들도 있기 때문에 말레이어가 국어로 지정되어 있다.
다만 영어는 싱가포르에서 훨씬 더 보편적으로 쓰인다. 말레이시아는 부미푸트라 정책의 결과 제1언어가 말레이어로 정착하였고, 이 정책의 수혜자인 말레이인들은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잘 못 하고 부미푸트라 정책에서 소외된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인도계 말레이시아인들만이 영어를 능숙히 하는 편이다.

한편 싱가포르는 영어를 제1언어로 앞세워 영어에 능숙하다. 1980년대 이후 출생한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은 아예 영어가 제1언어이고 중국어는 제2언어로 영어 원어민화되었고 싱가포르의 언어 환경에서 영어의 언어 잠식이 심하다. 당연히 싱가포르의 말레이인들은 말레이시아의 말레이인들보다 영어를 잘 한다.

4.5. 왕래 및 통혼

싱가포르 영주권의 경우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이 굉장히 많이 받았다. 싱가포르에 귀화한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도 굉장히 많다.

심지어 조호르바루에 살고 싱가포르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도 많으며, 싱가포르 시민권자들도 부동산 가격이 저렴한 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에서 출퇴근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싱가포르인 사업가들이 말레이시아, 특히 지하자원과 수목 자원이 풍부한 동말레이시아 내에서 후추, 기름야자, 마호가니, 고무 농장, 석유 사업에 대거 투자하거나 공장을 소유하는 경우가 많으며 말레이시아에서도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 주축인 엘리트들도 싱가포르에서 많이 근무한다.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이 싱가포르에서 일하거나 싱가포르에 건너와서 중국계 싱가포르인과 결혼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같은 한족 혈통이라 서로 말도 통하고 정서도 가까워 말이 국제결혼이지 독일인 - 오스트리아인, 호주인 - 뉴질랜드인 결혼과 같다.

실제로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이 싱가포르로 이민가거나 취업하고 중국계 싱가포르인들 중에서 말레이시아에 가서 사업하는 사람들은 싱가포르와 가까운 조호르바루에 사무실을 얻거나 조호르 주에 거주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중국계 싱가포르인 중에서 2020년대 기준으로 48세~60세 정도 되는 기성세대에서는 아예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다. 그 밑의 밀레니얼세대나 Z세대도 부모 중 한쪽이나 양친 모두가 말레이시아가 고향인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은 많아서 말레이시아는 이래저래 싱가포르인에게 친근한 나라다.

4.6. 스포츠

싱가포르에서는 자국 대표팀이 일찍 광탈하거나 출전하지 못한 대회에서는 말레이시아 대표팀을 대리 응원하고는 한다.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는 게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의 인구가 너무 적어서 선수 수급이 어려워서 어쩌다가 한 두명 정도 재능있는 스포츠 스타가 나오는 정도[11]인 반면 인구가 많은 말레이시아는 인재 풀도 그만큼 넓어서 국제 대회에서 꽤 성과를 거두기 때문이다.[12]
1994년부터 말레이시아 프로축구 리그에 싱가포르 팀인 Lions XII 구단이 들어가 있었다. 다만 말레이시아 대표로 AFC컵에 나갈 수는 없었다. 그간 MOU에 따라 기간을 연장해가며 리그에 있었으나, 2015년 11월에 연장을 하지 않아서 싱가포르 팀이 리그에서 쫓겨나버렸다. 다만 타 구단들은 지금도 말레이시아 리그에서 뛰는데 이는 AS모나코가 독립국 모나코의 프로팀이지만 프랑스 프로축구에 소속된 것과 유사하다.[13]

4.7. 종교

종교 비율은 양국이 비슷해보이지만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싱가포르는 절반 이상의 말레이인은 전원 이슬람교를 믿고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개신교, 불교, 유교, 도교, 무종교가 혼합되고 인도계 싱가포르인은 대다수가 힌두교를 믿는 말레이시아의와 마찬가지로 다문화 사회로서 종교가 다양한 편이라서 불교, 도교, 유교를 믿는 50대 이상 기성세대 중국계 싱가포르인, 무종교이거나 개신교를 믿는 40대 이하 젊은 세대 중국계 싱가포르인, 힌두교 이슬람교, 시크교를 믿는 인도계 싱가포르인, 이슬람이 곧 정체성인 말레이인의 각기 다른 그룹이 공존한다.

그러나 50%가 말레이인이라 주류 종교는 어쨌든 압도적으로 이슬람교인 말레이시아와 달리 중국계 싱가포르인이 다수고 말레이인도 상당수라서 중국계의 기독교, 불교와 말레이인의 이슬람교까지 3교가 골고루 세를 형성하고 있고 여기에 인도계 싱가포르인도 7% 정도로 소수치고는 꽤 많은지라 5% 정도의 힌두교 및 1% 정도 시크교도 공존한다. 싱가포르에서 잊을 만 하면 시크교 사원이나 터번과 수염으로 외양이 구분되는 시크교도들이 보인다.

기독교인 비율은 중국계 싱가포르인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보다 월등히 높다. 개신교 교회의 경우 싱가포르 내 신학교에서 목사 양성에 힘써서 말레이시아에 목사를 파송한다. 싱가포르 신학교[14]이 대표적으로 싱가포르에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로 선교사 파송을 위해 중국계 싱가포르인은 물론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및 인도네시아의 기독교계 소수민족 목사 양성에도 힘쓰며 성공회의 경우 싱가포르 관구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내 성공회 교회들을 치리한다.

이슬람교 여성의 복장인 히잡에 대해서는 양국의 입장이 사뭇 다른 편이다. 싱가포르에선 히잡 착용 허용을 둘러싸고 청원이 진행되는 반면, 말레이시아에선 히잡이 의무가 아니라는 외침이 커지고 있다. #

5. 페드라 브랑카 영토 분쟁

양국 사이의 영토 분쟁 중 유명한 사례로는 페드라 브랑카 분쟁이 있다.

2019년 1월 12일에 조호르 해협간의 영토문제가 재점화되면서 장관급 회담이 연기되었다. 1월 14일에 싱가포르의 외무장관은 말레이시아가 싱가포르의 영해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면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19년 2월에는 싱가포르 앞바다에서 그리스 상선과 말레이시아 상선이 충돌하자 파장이 일었다. # # #

다행히 2020년대에 들어서는 양측이 협의하여 해결했다. 사실 중공군이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가 갈등하는 것은 이들의 동맹국 미국, 영국의 국익에 굉장히 해로운 일이라 미국, 영국이 기겁하고 호주, 뉴질랜드 등을 중재자로 세워 양측을 중재했다.

6. 주의할 점

양국은 매우 가까운 사이이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할 부분은 있다. 일단 싱가포르는 도시국가로서 말레이시아보다 체급이 훨씬 작기는 하지만 엄연히 독립국가라는 사실이다.

또한 싱가포르에 말레이인이 많다고는 해도 이는 혈통상의 구별이고, 이것을 말레이시아 국적자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민족 정체성이야 말레이인일지 몰라도 국가 정체성은 싱가포르인이라는 별개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즉 말레이시아 내 말레이인과 싱가포르의 말레이인의 기원은 같아도 영국계 미국인과 영국계 캐나다인[15]과 같이 서로를 구별한다.

마찬가지로 중국계 싱가포르인 역시 중국인과 전혀 다르다. 즉 영국인 영국계 미국인, 영국계 캐나다인[16], 영국계 호주인, 영국계 뉴질랜드인이 다른 정체성을 가진 것과 같다. 이들의 조상 세대가 중국 남부[17], 홍콩, 마카오 등에서 싱가포르로 정착한 지는 꽤 되었고, 중국-싱가포르 관계로 인해 중국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다. #[18]

7. 관련 문서

8. 관련 문서



[1] 2023년 IMF 기준 [2] 2022년 세계은행 기준 [3] 도시국가나 여타 미니 국가들은 대체로 하나뿐인 중심 도시에 인구가 몰려 규모가 크기는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안도라는 여러 마을로 구성되어있지만 인구는 10만도 채 되지 않으며, 모나코도 인구가 약 4만 명 정도이다. 한편 싱가포르는 세계 인구 50위권 안에는 충분히 들어갈 만한 거대도시이며, 쿠알라룸푸르 도시권과 얼추 비슷한 규모의 인구이다. [4] 연방이 세워진 것은 1963년이며 그전까지 싱가포르는 영국 자치령이었다가 같은 처지였던 페낭과 말라카, 그리고 동말레이시아 사바, 사라왁 등과 함께 통일 말레이시아 연방 가입을 선언했다. [5] 실제로 분리된 상태가 양국의 우호적인 관계에 기여하는 것일 수 있다. 홍콩 홍콩-본토 관계에서 보듯 2020년대 들어 본토와의 감정이 썩 좋지 못하다. 중국과 홍콩의 차이는 적지 않은데, 본토 측에서 지속적으로 본토화하려는 압력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말레이시아-싱가포르는 개별 국가로서 서로에게 과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기 때문에 평화로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6] 두 도시의 거리는 약 350km 가량으로 서울-부산보다 약간 가까운 정도이다. [7] 협상 과정에서 당시 말레이시아 총리 마하티르 모하마드 잠가라 밸브 카드까지 슬쩍 내보이며 싱가포르를 압박했다. [8] 뉴스에는 부킷 차가르 역이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JB 센트럴 역이 해당 지구에 있다. 싱가포르 쪽은 우드랜드 노스(woodlands north)역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MRT의 역 이다. [9] 출입국심사 문서에서 다루듯 이런 곳이 그리 많지 않다. 어지간히 개방적인 국경도 오토바이나 자전거는 내려서 보행 상태로 통과하게 하는 것이 보통이다. [10] 애초 둘은 같은 번호판을 쓴다. 싱가포르는 싱가포르를 상징하는 S자로 시작하고 말레이시아는 각 주별로 시작하는 로마자가 다 다르다. 예를 들어 조호르 주는 J로 시작한다. [11] 남자 수영선수 조셉 스쿨링이 간만에 나온 싱가포르의 스포츠 슈퍼스타였으나 2024년 은퇴했다. [12]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도 아시안 게임에서는 꽤 활약하는 편이다. 특히 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자타 공인 동남아시아의 복병이다. [13] 모나코도 싱가포르와 유사하게 도시국가다. 다만 대국 관계는 양상이 다른데, 모나코 프랑스 조약이 있는데다 프랑스 정부가 추천한 인사가 모나코 총리가 되는 구조라 사실상 보호국이다. 한편 말레이시아-싱가포르는 그런 종속 관계가 아니다. [14] Singapore Bible College/新加波神學院 [15] 잉글랜드계 캐나다인, 스코틀랜드계 캐나다인, 웨일스계 캐나다인 [16] 잉글랜드계 캐나다인, 스코틀랜드계 캐나다인, 웨일스계 캐나다인 [17] 광동, 호키엔, 테오추, 저장성, 장쑤성, 하이난, 상하이 [18] 대만인, 홍콩인에게 우호적이고, 대만에 대해 우호 관계에 있지만 중국계 싱가포르인은 그들과 대만인을 분리해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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