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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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라두 레온 Radu L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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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
사망 | 미상 (향년 ?세) | |||
재위기간 | 왈라키아 보이보드 | |||
1664년 12월 ~ 1369년 3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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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부모 |
아버지:
레온 톰샤 어머니: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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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 | 톰샤 가문 | |||
종교 | 기독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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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왈라키아 공국 63대 보이보드.2. 생애
왈라키아 공국 56대 보이보드 레온 톰샤의 아들이다. 1664년 11월 왈라키아 보이보드 그리고레 1세 기카가 오스만 제국 궁정에 의해 폐위된 뒤, 그해 12월 오스만 제국 대재상 파질 아흐메트 파샤에게 거액의 뇌물을 건네는 대가로 왈라키아 보이보드로 선임되었다. 그는 왈라키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칸타쿠지노 가문을 억누르기 위해 그들을 적대하는 스트로에 레우르데아누, 니콜라에 소피알룰, 발라사크를 고위 관직에 앉혔다. 이에 칸타쿠지노 가문 인사들은 오스만 제국 궁정에 라두 12세가 폭정을 일삼고 있다고 보고했다. 특히 그는 보야르조차 면제되지 않는 세금을 도입했다고 비난받았다.이에 라두 12세는 칸타쿠지노 가문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2가지 법령을 반포했다. 첫번째 법령은 그리고레 1세 기카 치세 때 살해된 콘스탄틴 칸타쿠지노가 결백하다고 선포했다. 두번째 법령은 왈라키아로 이주한 그리스인들에 의해 소개된 모든 "새롭고 사악한 관습"을 폐지하고 새로 이주한 그리스인들을 국가에서 추방하기로 했다. 그러나 두 법령 중 어느 것도 시행되지 않았고, 콘스탄틴 칸타쿠지노를 살해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스트로에 레우르디아누는 처벌받지 않았으며, 그리스 출신의 고위 인사들은 보야르 의회에 계속 자리를 잡았다. 이에 칸타쿠지노 가문은 그가 앞뒤가 다른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난하고 계속 맞섰다.
1668년 왈라키아에서 반그리스 폭동이 발발했다. 1669년 초, 칸타쿠지노 가문과 그들을 추종하는 보야르들은 라두 12세의 폭정을 규탄하고 폐위할 것을 요청하고자 대표단 200명을 코스탄티니예로 파견했다. 오스만 제국 궁정이 아가(Aga: 오스만 제국 궁정 관리의 호칭)를 파견해 진상을 파악하게 하자, 칸타쿠지노 가문은 아가에게 뇌물을 주었고, 아가는 라두 12세에게 불리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 결과 라두 12세는 폐위되었고,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이후 안토니에 딘 포페슈티가 칸타쿠지노 가문의 추천에 힘입어 보이보드에 선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