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 | |||
|
|||
출생 | 1482년 | ||
사망 | 1521년 9월 15일 (향년 39~40세) | ||
왈라키아 공국 쿠르테아 데 아르게슈 | |||
재위기간 | 왈라키아 보이보드 | ||
1512년 ~ 1521년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000><colcolor=#fff> 부모 |
아버지: 파르부 크라이오베스쿠 또는
바사라브 4세 어머니: 네아가 |
|
형제 | 프레다, 파르부 2세 | ||
배우자 | 밀리카 데스피나 | ||
자녀 | 스타나, 테오도시에, 룩산드라, 요안, 앙겔리나, 페트루 | ||
가문 | 크라이오베슈티 가문 | ||
종교 | 기독교 | }}}}}}}}} |
[clearfix]
1. 개요
왈라키아 공국 제25대 보이보드. '바사라브 5세(Basarab V)'로도 일컬어진다.2. 생애
아버지 퍄르부 크라이오베스쿠는 왈라키아 공국에서 가장 강력한 보야르로 손꼽히는 크라이오베슈티 가문의 가주였으며, 국가의 내정을 관리하는 보니치를 역임했다. 그는 네아가와 결혼해 네아고에 외에도 프레다[1], 파르부 2세[2]을 두었다. 네아고에는 나중에 자기 어머니 네아가가 왈라키아 공국 제19대 보이보드 바사라브 4세와 간통해 자신을 낳았다고 주장했지만, 진위는 불분명하다.네아고에는 일찍이 그리스어 및 슬라브어를 익혔으며, 여러 중부 유럽 국가와 오스만 제국을 여행했다. 1501년 1월 28일 포스텔닉에 선임되어 1509년까지 역임했고, 1510년 4월 24일부터 1511년 11월 28일까지 대위원을 역임했다. 1511년 연말, 왈라키아 공국 제24대 보이보드 블라드 5세는 네아고에가 보이보드에 오르려 한다고 의심해 그를 체포했다. 이에 크라이오베슈티 가문 인사들은 니코폴리스 베이인 메흐메트 베그 미할로글루에게 달려가서 블라드 5세가 보야르들에게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겠다고 한 맹세를 어겼으니 무장 지원을 요청했다. 1512년 1월, 오스만 제국군이 왈라키아를 침공해 부쿠레슈티로 진군했다. 블라드 5세는 부쿠레슈티 인근에서 맞서 싸웠지만 끝내 패배하고 생포된 직후 목이 베어졌고, 그의 수급은 부쿠레슈티 성채에 매달렸다. 그 후 보이보드에 선임된 네아고에 바사라브는 그의 유해를 수습해 델루 수도원에 안장했다.
네아고에는 보이보드에 선임된 후 무역과 공예를 장려했고, 오스만 제국의 충실한 가신을 자처하면서도 헝가리 왕국과도 우호 관계를 이어가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도 베네치아 공화국, 교황령과도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정교회와 가톨릭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려고 노력했다. 1519년 몰다비아 공국의 통치자 슈테판 4세와 함께 로마에 사절단을 보내, "바사라브와 그의 선택된 아들 테오도시에와 페테르, 슈테판과 그의 아들들은 다른 기독교 군주들과 함께 십자군에 참여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교황은 "투르크족의 폭군 셀림 1세에 대한 거룩한 원정"을 유럽 각지에 선포했다. 하지만 그는 십자군에 직접 뛰어들지 않고 오스만 제국의 봉신으로 남았다.
네아고에는 왈라키아, 발칸 국가들,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청, 예루살렘 및 시내 산 등 각지의 정교회 수도원에 관대하게 기부했으며, 1517년 쿠르테아 데 아르게슈에 수도원 단지와 교회를 설립했다. 또한 남유럽 문학의 고전 걸작으로 손꼽히는 <네아고에 바사라브가 그의 아들 테오도시에에게 가르친 책>을 집필했다. 그는 이 책에서 국가의 정치적 정부 원칙, 청소년 교육의 도덕적 원칙, 영적 향상의 원칙을 기술하고, 아들 테오도시에에게 이 가르침을 함양하여 훌륭한 통치자가 되라고 권고했다. 이 저서는 슬라브어로 작성되었지만, 17세기 중반에 루마니아어로 번역되었다.
1521년 9월 15일 쿠르테아 데 아르게슈에서 사망했고, 아들 테오도시에가 뒤이어 왈라키아 보이보드에 선임되었다. 그러나 테오도시에는 1521년 10월 라두 5세의 정변으로 축출되었고, 왈라키아 공국은 또다시 혼란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