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 | |||
출생 | 1397년 | ||
사망 | 1436년 6월 25일 (향년 39/40세) | ||
재위기간 | 왈라키아 보이보드 | ||
1431년 6월 ~ 1436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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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부모 |
아버지:
미르체아 1세 어머니: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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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 | 드라큘레슈티 가문 | ||
종교 | 기독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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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왈라키아 공국 제11대 보이보드.2. 생애
왈라키아 공국 제6대 보이보드 미르체아 1세의 사생아다. 형제로 미하이 1세, 블라드 2세, 라두 2세, 안나[1], 아리나[2]가 있었다. 1431년 6월 왈라키아 공국 제9대 보이보드 단 2세가 오스만 술탄국의 술탄 무라트 2세가 파견한 오스만 제국군과 맞서 싸우다가 전사한 뒤 오스만 제국에 의해 왈라키아 보이보드로 선임되었다. 헝가리 왕국의 국왕 지기스문트는 오스만 제국이 이대로 왈라키아를 복속하면 자국에 불리해질 거라고 여기고, 미르체아 1세의 또다른 아들인 블라드 2세를 트란실바니아의 시기쇼아라 시에 정착해 알렉산드루 1세와 대적하도록 했다.1432년, 알렉산드루 1세는 헝가리 왕국과 손잡고 반 오스만 정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지기스문트는 블라드 2세가 그를 상대로 적대행위를 하는 걸 금지했다. 그 해 6월 22일 몰다비아로 향하던 오스만 침공군을 헝가리군과 합께 격파했다. 이후 지우르지우, 드로베타-투르누 세베린 등 다뉴브 강변 요새들을 탈환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군의 반격으로 지기스문트가 격파되고 트란실바니아의 샤라 바르세 일대가 황페화되자, 그는 위협을 느끼고 오스만 술탄국과 조약을 갱신했다. 이에 따르면, 그는 오스만 술탄국에 매년 경의를 표하고 공물을 바치며, 헝가리로 향하는 오스만 제국군의 자유로운 이동을 허용하기로 했다.
그 후 알렉산드루 1세가 술탄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아드리아노폴리스로 향했을 때, 블라드 2세가 그에게 축출되었던 보야르들과 함께 왈라키아 공국에 침입했지만 알렉산드루 1세를 추종하는 보야르들에게 패퇴했다. 1435년 블라드 2세가 다시 침공했지만, 오스만 제국군이 알렉산드루 1세의 지원 요청을 받아들여 개입하는 바람에 격퇴되었다. 알렉산드루 1세는 1436년 6월 25일 병사했으며, 블라드 2세가 그제야 그의 뒤를 이어 왈라키아 보이보드에 선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