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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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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 변동 집단명 동일인 계열사 수 자산총액 (조 원)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대기업)
1 (-) 파일:Samsung_Logo.svg
삼성
이재용 63 566.8
2 (-) 파일:SK 로고.svg
SK
최태원 219 334.3
3 (-) 파일:현대자동차그룹 로고.svg 파일:현대자동차그룹 로고 화이트.svg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70 281.3
4 (-) 파일:LG 로고.svg 파일:LG 로고 화이트(활용형).svg
LG
구광모 60 177.9
5 (▲1) 파일:포스코 CI.svg 파일:포스코 흰색 로고.svg
포스코그룹
포스코홀딩스(주) 47 136.9
6 (▼1) 파일:롯데 로고.svg
롯데
신동빈 96 129.8
7 (-) 파일:한화 로고.svg 파일:한화 로고 화이트.svg
한화
김승연 108 112.4
8 (▲1) 파일:HD현대 로고.svg 파일:HD현대 로고 화이트.svg
HD현대
정몽준 29 84.7
9 (▼1) 파일:GS그룹 로고.svg 파일:GS그룹 로고 화이트(활용형).svg
GS
허창수 99 80.8
10 (-) 파일:농협 로고.svg 파일:농협 로고.svg
농협
농업협동조합중앙회 73 78.4
11 (-) 파일:신세계 영문 CI_좌우.svg 파일:신세계 영문 CI_좌우 White(1).svg
신세계그룹
이명희 53 62.0
12 (-) 파일:KT 로고.svg 파일:KT 로고 화이트.svg
KT
(주)KT 48 46.8
13 (-) 파일:CJ 로고.svg 파일:CJ 로고 화이트.svg
CJ
이재현 55 39.8
14 (-) 파일:한진그룹 로고.svg 파일:한진그룹 로고 화이트.svg
한진그룹
조원태 34 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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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김범수 128 35.1
16 (-) 파일:LS그룹 로고.svg 파일:LS그룹 로고 화이트.svg
LS그룹
구자은 67 31.9
17 (-) 파일:두산 로고.svg
두산그룹
박정원 22 26.9
18 (-) 파일:DL그룹 로고.svg 파일:DL그룹 로고 화이트.svg
DL그룹
이해욱 45 26.7
19 (▲8) 파일:셀트리온 로고.svg 파일:셀트리온 로고 화이트.svg
셀트리온
서정진 8 25.6
20 (▼1) 파일:HMM CI.svg 파일:HMM CI.svg
HMM
HMM(주) 5 25.5
21 (▼1) 파일:중흥그룹 로고.svg 파일:중흥그룹 로고 화이트.svg
중흥그룹
정창선 53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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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셋금융그룹
박현주 30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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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이해진 54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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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백화점그룹
정지선 27 22.1
25 (▲2) 파일:S-OIL 로고.svg
S-OIL
(주)S-OIL 2 21.6
26 (▼3) 파일:부영그룹 로고.svg
부영그룹
이중근 21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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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쿠팡(주) 13 17.6
28 (▼1) 파일:금호아시아나 로고.svg 파일:금호아시아나 로고 화이트.svg
금호아시아나
박삼구 24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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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그룹
김홍국 45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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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오현 58 17.0
31 (▼1) 파일:HDC 로고.svg
HDC
정몽규 35 16.9
32 (▼3) 파일:영풍그룹 로고.svg
영풍그룹
장형진 28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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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그룹
조현준 57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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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열 39 16.0
35 (▲13) 파일:DB그룹 로고.svg
DB그룹
김준기 25 15.7
36 (▼1) 파일:KT&G 로고.svg
KT&G
(주)KT&G 14 14.9
37 (▼1) 파일:KCC 로고.svg
KCC그룹
정몽진 14 14.2
38 (▼1) 파일:장금상선 로고.svg
장금상선
정태순 27 14.2
39 (▲13) 파일:교보생명 로고.svg
교보생명
신창재 14 13.2
40 (▼1) 파일:코오롱그룹 로고.svg
코오롱
이웅열 48 13.0
41 (▼3) 파일:OCI 로고.svg
OCI그룹
이우현 24 12.7
42 (▼2) 파일:태영 심볼.svg
태영그룹
윤세영 82 12.3
43 (-) 파일:넥슨 로고.svg 파일:넥슨 로고 다크.svg
넥슨
유정현 19 11.9
44 (▼2) 파일:세아그룹 로고.svg
세아그룹
이순형 26 11.7
45 (▼1) 파일:LX그룹 로고.svg
LX그룹
구본준 17 11.3
46 (▼5) 파일:넷마블 로고.svg 파일:넷마블 로고 화이트.svg
넷마블
방준혁 35 11.3
47 (▲15) 파일:에코프로 로고.svg
에코프로
이동채 23 11.2
48 (▼3) 파일:이랜드그룹 로고.svg
이랜드그룹
박성수 31 10.9
공시대상 기업집단(준대기업)
49 (▼3) 파일:한국앤컴퍼니 로고.svg 파일:한국앤컴퍼니 로고 화이트.svg
한국앤컴퍼니
조양래 24 10.3
50 (▲1) 파일:태광산업 로고.svg
태광그룹
이호진 20 9.6
51 (▼2) 파일:금호석유화학그룹 로고.svg 파일:금호석유화학그룹 로고 화이트.svg
금호석유화학그룹
박찬구 14 9.5
52 (▼2) 파일:다우키움그룹 로고.svg
다우키움그룹
김익래 48 9.5
53 (▲6) 파일:두나무 로고.svg
두나무
두나무(주) 12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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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그룹
이만득 47 9.4
55 (▼2) 파일:동원그룹 로고.svg
동원그룹
김남정 26 9.3
56 (▼2) 파일:KG그룹 로고.svg 파일:KG그룹 로고 컬러 화이트.svg
KG그룹
곽재선 34 9.1
57 (▼2) 파일:HL그룹 CI.svg 파일:HL그룹 CI_white.svg
HL그룹
정몽원 13 8.8
58 (▼2) 파일:제너럴 모터스 로고.svg 파일:제너럴 모터스 로고.svg
한국GM
한국지엠(주) 3 8.8
59 (▼2) 파일:아모레퍼시픽 로고.svg 파일:아모레퍼시픽 로고 화이트.svg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13 8.3
60 (▼2) 파일:대방건설 CI.svg 파일:대방건설 CI 화이트.svg
대방건설
구교운 42 8.1
61 (-) 파일:한국항공우주산업 CI_가로.svg 파일:한국항공우주산업 CI_가로.svg
한국항공우주산업
(주)한국항공우주산업 42 8.1
62 (▲1) 파일:애경그룹 로고.svg
애경그룹
장영신 31 7.1
63 (▲2) 파일:엠디엠 CI.svg 파일:엠디엠 CI 화이트.svg
엠디엠
문주현 15 7.0
64 (▲3) 파일:크래프톤 로고.svg 파일:크래프톤 로고 화이트.svg
크래프톤
장병규 8 6.9
65 (▲1) 파일:삼양그룹 로고(2024).svg 파일:삼양그룹 로고 화이트(2024).svg
삼양그룹
김윤 13 6.9
66 (▲3) 파일:보성그룹 로고.svg
보성그룹
이기승 65 6.8
67 (▼4) 파일:동국제강그룹 CI.svg 파일:동국제강그룹 CI 화이트.svg
동국제강그룹
장세주 12 6.7
68 재지정 파일:현대해상 CI.svg 파일:현대해상 CI 화이트.svg
현대해상
정몽윤 13 6.7
69 (▼10) 파일:중앙그룹 로고.svg 파일:중앙그룹 로고 화이트.svg
중앙그룹
홍석현 54 6.6
70 (-) 파일:글로벌세아 CI.svg
글로벌세아그룹
김웅기 20 6.3
71 (▼3) 파일:아이에스동서 CI.svg
아이에스동서
권혁운 36 6.3
72 (▼5) 파일:유진그룹 로고.svg
유진그룹
유경선 60 6.2
73 신규 파일:영원무역 로고.svg
영원무역
성기학 50 6.0
74 (▼2) 파일:DN오토모티브 CI.svg
DN그룹
김상헌 8 5.8
75 (▼7) 파일:고려해운 로고.svg
고려해운
박정석 24 5.8
76 (▼3) 파일:OK금융그룹 로고.svg 파일:OK금융그룹 로고(화이트).svg
OK금융그룹
최윤 16 5.8
77 (▲4) 파일:BGF그룹 로고.svg
BGF그룹
홍석조 18 5.8
78 신규 파일:대신증권 로고.svg
대신증권
양홍석 117 5.7
79 (▼4) 파일:하이트진로 CI.svg
하이트진로그룹
박문덕 11 5.5
80 (▼2) 파일:농심그룹 로고.svg 파일:농심그룹 로고 화이트.svg
농심그룹
신동원 23 5.4
81 (▼10) 파일:신영그룹 CI.svg 파일:신영그룹 CI 화이트.svg
신영그룹
정춘보 33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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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그룹
조동길 21 5.3
83 (▼3) 파일:반도건설 로고.svg 파일:반도건설 로고 화이트.svg
반도건설
권홍사 18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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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표그룹
정도원 33 5.2
85 신규 파일:HYBE 로고.svg 파일:HYBE 로고 화이트.svg
HYBE
방시혁 15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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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소노그룹
박춘희 23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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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
이용한 54 5.0
88 신규 파일:파라다이스 그룹 로고.svg
파라다이스 그룹
전필립 14 5.0
※ 2024년 기준
※ 동일인이 법인인 기업: (주)포스코홀딩스, 농업협동조합중앙회, (주)케이티, 에이치엠엠(주), (주)케이티앤지, 한국항공우주산업(주) 6개사
※ 동일인이 외국인인 기업: 에쓰-오일(주), 오씨아이(주), 쿠팡(주), 한국지엠(주) 4개사
※ 다음 업종의 기업 중에서 중소기업법에서 정하는 중소기업의 규모보다 더 큰 기업(가. 금융업, 나. 보험 및 연금업, 다. 금융 및 보험 관련 서비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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斗山 | Doo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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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다국적 기업)
창립일 1896년 8월 1일([age(1896-08-01)]주년)
( 조선, 건양 원년)
본사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단로 275 ( 을지로6가, 두산타워)
창업주 박승직
회장 박정원
규모 대기업
매출액 19조 1,301억원[1]
영업이익 1조 4,363억원[2]
자산총액 28조 2,868억원[3]
링크 파일:두산 로고.svg

1. 개요2. 역사
2.1. 100년 역사의 시작(1896~)2.2. 가업을 버리다(1991~)2.3. 중공업 분야로의 진출 (2000~)2.4. 위기 (2012~2020)
2.4.1. 밥캣의 위기2.4.2. 두산건설의 위기2.4.3. 기타 사업부문의 위기2.4.4. 일시적 회복 후의 구조조정
2.5. 부활 (2021~)
3. 기업정신
3.1. 1978~19933.2. 1993~20123.3. 2012~ : 두산 Credo
4. 오너 일가5. 역대 경영진6. 역대 로고7. 계열사
7.1. (주)두산7.2. 스포츠단7.3. 부속기관7.4. 기타 계열사7.5. 과거 계열사
8. 논란 및 사건 사고
8.1. 박가분의 납 성분 함유8.2.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8.3. 형제의 난8.4. 경영상의 악습
9. 기타10. 참고/관련 문헌

[clearfix]

1. 개요

파일:resize_대표_doota2021ci_수정본.jpg
두산타워(두타)
파일:분당두산타워간삼건축.jpg
분당두산타워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집단.[4] 2022년 기준으로 재계서열 16위다.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6가 두산타워가 본사이며, 쇼핑몰이 함께 있다.[5] 창업주는 박승직이며, 1896년 8월에 서울 종로에서 창업한 '박승직 상점'이 시초다. 2016년 3월 25일부터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이 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6] 두산(斗山)이라는 이름은 그룹의 창업주인 박승직이 "쌀을 한 말() 두 말 쌓아서 큰 뫼()를 이루라"는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7]

2. 역사

2.1. 100년 역사의 시작(1896~)

구한말인 1896년 8월, 창업주 매헌 박승직이 한성부(현 서울) 종로에 세운 '박승직 상점'이 모태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다. 다만 현 모기업 (주)두산은 존속법인이 다를 뿐더러[8] 업종 변경이 있다는 이유로 정통성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동화약품을 최장수 기업으로 꼽기도 한다. 동화약품은 설립 당시부터 현재까지 줄곧 한 상호와 한 업종과 한 제품으로 한 자리를 지켜 왔다.[9] 비슷한 역사를 가진 기업으로는 동화약품과 닌텐도가 있는데 동화약품은 1년 늦은 1897년에, 닌텐도는 7년 앞선 1889년에 설립됐다. 조흥은행 역시 1897년에 창립됐는데 2006년 존속법인 지위를 유지한 채 신한은행과 대등합병되면서 동화약품과 신한은행이 국내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기업이 된 상태다.

설립 당시에는 포목점으로 시작했다. 당시 창업주였던 매헌 박승직은 넓은 안목으로 조선 내에서 생산되는 포목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 생산되던 고가의 수입산 포목까지 취급하여 박승직상점은 늘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박승직은 박승직상점의 주요 단골들에게 사은품으로 화장품을 제공했는데 이게 반응이 좋자 1916년 화장품 공장을 만들고 ' 박가분'이란 화장품으로 히트시켰다.[10] 이 성공으로 종로의 거상이 된 박승직 사장은 일제로부터 우리 상권을 지키기 위해 광장시장의 대표로 취임했으며 1925년 박승직상점을 주식회사로 개편했다. 1933년 박승직 사장은 쇼와기린맥주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해 주식 200주를 소유하고 쇼와기린맥주 대리점을 열었다.

다만 사업 과정에서 1909년 이토 히로부미 국민대추도회 발기인을 지낸 것을 비롯해 1940년 박승직 사장이 창씨개명을 하고 '미키상사'로 바꾼 후, 조선인 강제징용 일본군 위안부 모집에 앞장서고 국방헌금을 내는 등 친일에 앞장섰던 흑역사가 있었다. 자세한 것은 박승직 문서 참조.[11] 1945년 8.15 광복 후 박승직상점은 문을 닫았으나, 박승직의 아들 연강 박두병이 1946년 두산상회를 다시 세웠다. 귀속재산 쇼와기린맥주 관리인으로 선임되어 주류 생산에 뛰어들었고, 1952년에 후신인 동양맥주를 정부로 부터 귀속재산 불하받아 그 약자인 OB라는 이름의 브랜드를 출범시켰다. 그래서 1978년 이전까지 그룹명도 두산그룹이 아닌 'OB그룹'이었다.

1969년 박두병 동양맥주 사장이 회장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후 삼성에서 돌아온 정수창이 사장이 되면서 전문경영인 운영체제가 확립됐고, 1973년 박두병 사후 1975년 동양맥주 기획실을 '그룹운영위원회'로 개편하면서 산하 사무국으로 '그룹기획실'을 신설한 후 1977년부터 정수창 사장이 그룹회장이 되어 국내 최초로 전문경영인 출신 총수 시대를 열었다. 같은 해 서울 강동구 길동에 두산연수원(현 DLI-연강원)을 신설했다. 1981년 박용곤이 회장이 되어 3세 경영체제를 확립하고 1983년 을지로 신사옥으로 이전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기술소재사업, 정보유통사업, 생활문화사업 등, 주로 경공업 위주의 포트폴리오로 짜여져 있었다. 이 당시 계열사가 병뚜껑을 만드는 삼화왕관, 코카콜라를 유통하던 두산음료, OB맥주, 두산백화, 두산경월 같은 소비재 기업이었고, 두산상사는 폴로 랄프 로렌 및 월풀의 수입사로도 유명했다. 한때는 유가공사업(두산유업)[12]이나 즉석김치 사업(두산종합식품)까지 각각 손댄 적도 있었다. 1982년에 프로야구단 OB 베어스를 창단했고, 1985년 동아출판사 및 동아인쇄공업을 인수해 출판/인쇄업에도 손을 뻗었다.

참고로 두산그룹의 발상지 터가 종로구에 표시되어 있다. 종로4가 세운스퀘어 맞은편 효성주얼리시티와 매헌빌딩 사이에 있다. 두산그룹의 로고가 크게 보이며 발상지 기념 조형물이 세워져있다.

2.2. 가업을 버리다(1991~)

1991년 이전까지 두산의 주력 사업분야는 현재의 중공업 분야가 아닌 소비재 중심, 특히 주류산업이였다. 그룹의 모태나 다름없었던 OB맥주의 경우 창립 당시부터 꾸준히 업계 1위를 고수했으며 1982년에는 상표 이름을 딴 야구단까지 창단할 정도로 OB는 인기를 독차지했다. 심지어 후발주자인 크라운맥주는 OB맥주의 아성에 밀려 도매상에게 홀대받기 일수였다.

그렇게 잘 나가고 있었던 그때, 1991년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두산전자(현 두산 전자BG)가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을 발생시켜 낙동강 라인인 대구 경북, 부산 경남 지역으로부터 두산 불매 운동 대상이 되어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당시 두산그룹은 OB맥주, 코카콜라, 버거킹, KFC(이하 두산음료), 네슬레, 코닥, 3M 등 소비재 사업을 주로 하던 기업이였기에 타격이 만만치 않았으며 무엇보다 100여년을 이어온 OB맥주가 직격탄을 맞게 된다. 주류의 특성상 물 맛이 중요한데 같은 계열사인 두산전자가 거하게 사고를 치는 바람에 이미지가 거하게 깎여나간데다 경쟁사인 크라운맥주가 이를 겨냥하듯 천연암반수를 강조한 하이트를 출시하면서 시장 1위의 자리를 빼앗긴 것도 모자라 매출이 곤두박질쳤다. 이 사건 이후 당시 회장이던 박용곤이 물러나고 기업 이미지 쇄신을 위해 두산종합기술원을 세우고 1993년 새 경영이념을 제정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너무나 뼈 아팠던 시절인 1995년에는 적자 규모 9,000억원, 부채비율 625%로 창사 이래로 최대 위기가 찾아왔다.

1996년 동생 박용오가 회장으로 취임했고 두산가 3세들은 그룹의 미래를 건 가족회의를 열게 된다. 그룹의 뿌리나 다름없는 소비재 산업에 대한 운명을 결정하는 회의였다. 당시 큰형이던 박용곤, 둘째 박용오는 소비재 산업을 버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집안의 뿌리나 다름없는 OB를 버리는 것은 가문의 정체성을 집어던지는 것이라며 완강히 반대했고 셋째 박용성, 막내 박용만 등은 다 죽게 생겼는데 가업이 무슨 소용이냐며 되받아쳤다. 특히 박용성은 우리에게 필요없는 것은 다 걸레로 봐야 한다는 소위 '걸레론'을 내세우며 기존의 소비재 산업을 깎아내렸고 형제 간의 갈등이 폭발하며 그룹 전체로 번져나갔다. 3남 박용성, 5남 박용만이 차남 박용오를 회장 자리에서 퇴출시켰고 박용오는 박용성과 박용만을 비자금 조성과 탈세로 고발하는 등 난타전을 벌였다.
"지금 이 상태로라면 3개월 안에 그룹이 망할 수도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OB맥주를 매각하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 미국 컨설팅 업체 맥킨지&컴퍼니 -

형제들 간의 싸움은 결국 이 권고를 기점으로 마무리됐고 큰형인 박용곤이 맥주를 비롯한 소비재 산업에서의 철수를 결정하면서 두산은 OB맥주를 비롯해 코카콜라, 버거킹, 3M 등의 계열사를 매각 혹은 사업 철수를 통해 구조조정하여 소비재 산업에서 떠났고[13][14], 1998년에 기존 OB맥주 법인이 모기업이던 두산상사, 두산정보통신, 두산동아, 두산경월 등을 합병해 '(주)두산'으로 탈바꿈한 후, 을지로 사옥을 하나은행에 매각하고 동대문 두산타워로 본사를 이전했다. 하지만 적지 않았던 타격 탓에 여전히 그룹의 미래는 불투명했고 형제들 간의 갈등도 아물지 않아서 둘째 박용오가 형제들과 의절하는 등 진통을 겪어야했다.

2.3. 중공업 분야로의 진출 (2000~)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수합병과 비주력 사업부문의 매각을 통해 우리가 알고있는 중공업, 플랜트 건설 기업으로 변했다.

2000년대 10년 남짓한 기간 동안 두산이 보여준 행보는 그야말로 공격적이다. IMF 전에 그룹을 이끌던 박용성 전 회장의 걸레론, '나에게 걸레면 남에게도 걸레이기 때문에 사지 않을 것이다'라는 인수합병에 대한 생각에 따라 돈 되는 주력 기업들, 국내에서 영위하던 해외 프랜차이즈 식당 기업들과 종가집 김치까지 몽땅 비싸게 팔아넘기며 꽤 상당한 실탄을 장전했다. 2000년 네오플럭스를 세운 뒤 2001년에 대아건설 등으로 이뤄진 스페코컨소시엄을 제치고 한국중공업을 인수하면서 중공업 그룹으로의 토대를 마련했는데, 이때 5조 원의 자산가치를 가진 한국중공업을 3,057억원에 두산에 민영화하면서 헐값 매각이니 특혜니 하는 의혹이 퍼지기도 했다.[15] 2003년 고려산업개발, 2005년 대우종합기계[16]를 인수한 두산은 해외에서도 엄청난 인수 러시를 벌였는데,

등을 인수해 건설중기, 해수 담수화, 발전 플랜트 분야에서 상당한 내공을 쌓게 됐다.

이 외에도 원전설비 세계 1위인 웨스팅하우스가 매물로 나왔을 때 두산도 물망에 올랐었지만, 결국 도시바에 인수되었다. 하지만 두산에 원전 기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래 전부터 국내에 건설 중이거나 건설 예정인 모든 원자력 발전소에는 두산의 설비가 들어갔고, UAE 원전 수출처럼 정부가 밀어주는 사업 말고도 세계 각지에 원전기자재를 수출하고 있다.

그 와중에도 두산은 2008년에 롯데 등을 제치고 중앙대학교 재단을 인수했다. 두산은 중앙대 인수 후 박용성 회장이 직접 이사장을 맡아서 구조조정에 나섰다.'학문단위 재조정'의 명분으로 기업식 구조조정을 단행해서 사실상 학과 계열[23]을 대폭 폐지, 축소하고 경영/경제 계열을 대규모로 확대하는 개편을 단행했다. 이러한 개편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 단위의 극심한 반발이 있었으며 총학 및 교수들과도 갈등을 빚었다. 다만 그동안 지나치게 세분화돼서 난립했던 일부 학과 단위를 재조정한 것은 필요한 일[24]이지만, 폐과된 학생들의 수업축소 문제와 학문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인기 학과 위주로의 통폐합이라는 비판도 있다.[25] 하지만 재단 인수 후에 신교사 건축과 도서관 리모델링 등 학교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확실히 대폭 늘어났다. 그러나 서울캠퍼스에 한해서만 투자가 이루어져 안성캠퍼스는 방치에 가까운 수준이라는 비판이 있다.[26] 여담이지만, 두산그룹이 재단에 들어오면서 중앙대학교는 대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기초회계를 교양필수과목으로 이수하게 했는데, 처음에는 대학을 직업훈련소로 만드냐는 비판이 많았지만, 회계는 모든 기업의 기본이기 때문에 지금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한편, 2007년 인수한 밥캣이 6조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인수했음에도 엄청난 적자를 보고 있어 발목을 잡고 있다. 또한 인수 당시 밥캣의 부채를 떠안은 것이었으며, 그리고 인수자금 조달원 중 자기자본 1조원을 제외한 나머지를 외부에서 조달해 이에 대한 이자가 만만찮다는 것이 많은 부담으로 작용하고있다. 덕분에 2007년 30조원에 가깝던 두산그룹의 시가총액은 2011년 16조원 수준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것 때문에 그룹 차원에선 밥캣의 정상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으며 계열사 정리를 통해 재무구조 개선을 꾀하고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두산그룹의 골칫거리라고 할 수 있겠다.

2011년 포츈지 선정(매출기준) 세계 500대 기업에 489위로 이름을 올렸다.

2.4. 위기 (2012~2020)

2009년부터 사람이 미래다라는 슬로건 캠페인을 전개, 2011년 iPhone을 언박싱하는 영상을 올리며 얼리어답터로서 젊은 대학생들에게 호감을 얻던 박용만 회장의 이미지가 인기 있는 회사였지만 두산의 위기는 이전부터 시작됐다.

2012년 서울시내 주요 대학에서 열린 채용설명회는 고려대학교에 박용만 회장, 성균관대학교에는 두산중공업 한기선 사장, 인하대학교에는 두산인프라코어 김용성 사장이 직접 참가했고 취준생에게도 인기 있는 회사였다.[27] 그리고 여기까지가 두산이 이름있는 회사로서 최소한 대중들에게 날리던 시절이었다.

두산의 위기는 소비재 중심의 기업에서 중공업 중심 기업으로 체질 개선을 하면서[28] 한때 성공적인 혁신이라 추켜세운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면에는 M&A와 경영진의 경영 실패에서 본격적인 위기가 도래하기 시작한다.

2.4.1. 밥캣의 위기

두산그룹의 위기설은 위에 상술한 밥캣 인수부터 시작한다. 2008년 밥캣 인수를 위해 과다한 차입금을 지불하면서 운없이 서브프라임 사태로 건설 경기가 맛이 가버렸다. 그로인해 기업가치가 폭락하면서 부채 문제가 도래했고, 이를 영구채로 전환시켜 한숨 돌린다. 2012년 11월 초 계열사 두산인프라코어가 발행한 영구채(신종자본증권)가 금융위원회에서 '부채로 판단해야 한다'라는 판단이 나와서 논란이 되고 있는 중이다. 금융감독원, 한국산업은행 측에서는 두산인프라코어의 영구채를 자본으로 인정했고 IFRS 자본분류 기준으로도 자본으로 판단했으나 금융위원회는 인정하지 않고 있는 중. 11월 8일 한국회계기준원 연석회의에서 부채인지 자본인지가 결단날 듯 했으나 이 날 회의에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결국 12월 13일 자본으로 결정나며 두산은 한시름 놓게 됐다.

2.4.2. 두산건설의 위기

또 다른 문제는 밥캣 인수와 동시기인 두산건설의 PF 부실이 두산그룹을 위기속으로 몰아넣는다. 2013년 11월 26일 두산건설이 오전에는 자본 감소를,[29] 오후에는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사실 두산건설은 몇 년 전부터 적자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특히나 일산에 짓고 있던 위브 더제니스 주상복합 단지 미분양 물량이 쏟아지면서 맛이 가 버렸다.[30] 그래도 일산 위브 더제니스는 2016년 기준 미분양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2018년에도 대형평수는 여전히 시망, 용인시에 지어놓은 용인 행정타운 두산위브 아파트는 2012년에 준공 이후 2016년까지 미분양률이 80%, 1293가구 단지에 1034가구가 여전히 미분양 상태이다. 그래서 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에서 돈을 쏟아부었는데, 문제는 실패했다는 것이며 현재진행형이다. 2018년에도 용인 행정타운 분양을 6,000만원을 깎아주면서 미분양을 해소하려 애썼지만 결과는 시망했다.

즉 일산 위브 더제니스의 미분양으로 1,646억원의 손해를 보았다. 더 골때리는 점은 일산 더제니스 미분양은 워낙 유명하고 잘 알려진 것이지 그것만으로 두산건설만 아니라 두산그룹을 늪으로 밀어넣는 정도는 아니다. 진짜 시작은 2006년 PF에 보증 1,550억원을 건 울산 대현 주택사업은 10년 만인 2015년 분양했지만 1,437억원의 적자를 보았다. 용인 삼가, 천안 청당, 화성 반월 등의 PF 보증도 2019년 2월 기준 대여금을 포함해 7,705억원 규모인데 아직 미분양 상황이다. 여기에 맥쿼리는 흑자를 안정적으로 땅짚고 버는 지하철 사업을 두산건설은 신분당선을 가지고 있음에도 누적적자가 4천억에 육박해서 매각까지 고려하지만 신통치 않다.

온갖 미분양과 사업적자가 발생하니 당연히 적자는 천문학적으로 증대되어 2011년부터 두산건설은 적자를 3,000억원, 2012년은 무려 적자를 6,500억원이나 기록하며 현재까지 단 한번도 흑자를 낸적이 없다. 2018년에도 적자 4,200억원을 내며 답이 없으니 2019년에 상장폐지 크리를 밟는다. 계열사가 1년만 수천억대의 적자가 나도 웬만한 재벌은 분위기 매우 안 좋아지며 이 회사의 전문경영인들은 당연히 목이 날아간다. 무려 10년 동안 두산건설이 연간 수천억에 총 수조가 넘는 적자를 내는 것을 두산이 살리려고 하니 그룹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결국 두산건설은 혼자서 그룹 자금 1조 7,000억원을 빨아먹은 블랙홀이 되고 말았다. #

당연히 경영적 판단으로는 하루라도 빨리 두산건설을 정리 매각해야 했다. 각종 언론과 시장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두산건설은 어떻게든 빨리 정리했어야 하는데 계열사의 재무 악화와 알짜 자산 매각에 부실 전이까지 감수하며 무리하게 살리려다 이런 참사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두산건설을 쉽게 처리하지 못했던 건 건설사 특성상 비자금 조성의 필수요소라는 음모론적인 시각 외에도 형제가 돌아가며 경영권을 맡는 두산그룹의 사촌경영 구조가 원인이었다는 시각도 있다. #

물론 두산도 자금마련을 위해 사업 매각을 통해 자금확보를 했다. 일례로 두산중공업은 알짜중에 알짜인 배열회수보일러(HRSG) 사업부를 두산건설에게 넘겨주며 두산건설의 위기를 해소하려 했다. 그러나 유일한 알짜였던 HRSG를 두산건설은 결국 2017년에 3,000억원에 GE에 매각해버리고, 보유한 두산DST 지분 51%를 3,500억원에, 논현동 사옥조차 빚갚는다고 매각해버린다.[31] 거기에 두산그룹이 중앙대에 온갖 공사를 해서 죄다 두산건설에 몰아준 것은 덤. 이럼에도 두산건설의 부실은 상술했듯이 꾸준해서 2018년에,도 적자 4,200억원을 기록했고, 급기야 두산중공업과 같이 유상증자로 9,500억원을 그 해에 조달했지만 결과는 알다시피 두산건설의 상장폐지 - 두산중공업 자회사 편입으로 사망테크를 탔다. [32] 2013년부터 두산중공업이 두산건설에 쏟아부은 지원금은 1조 9,252억원이다. 당연히 두산이 삼성도 아니고 휘청거릴 수 밖에 없다. 1조 9,000억원을 보존했으면 두산의 상황이 어떠했을까? 유동성 위기로 매각한 온갖 알짜 자산들을 가지고 있다면 그룹이 이렇게 핀치에 몰리지 않는다. 또 두산인프라코어의 진짜 알짜중에 알짜인 공작기계 사업부도 1조 1,000억원에 매각한 후 두산 밥캣 상장으로 3,000억을 끌어모았는데 여기서도 실패한 결과물이 됐다. 두산공작기계는 두산이 MBK에 판지 3년만에 2019년 M&A 매물로서 무려 2조 8,000억원부터 몸값이 시작하며 두산의 마음을 다시 한번 울렸으며[33] 밥캣 상장도 밥캣의 규모에 비해 그저그런 실적이었다. 그리고 맥킨지&컴퍼니 컨설팅의 LG그룹과 더불어 컨설팅 실패의 양대산맥으로 꼽히고 있다. [34]

2.4.3. 기타 사업부문의 위기

2015년에 당시 황금알 거위 취급받던 면세점 사업권을 따내 동대문 두산타워에 면세점을 개장했지만 면세점 사업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치 않으며, 실제로 사업권을 따낸 직후 주가가 급락했다. 결국 2019년 말, 두산은 면세사업 면허를 반납하며 사업을 접었다. 그러나 중앙대 특혜 논란, 인프라코어 쪽에선 영업이익을 상회하는 이자 때문에 지속적으로 적자가 누적되어 주가는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중이고 경영문제 때문인지 사원, 대리 직급까지 비자발적 명예퇴직을 신청 받는다는 소문이 '언론에까지' 나도는 등 악재도 터지고 있다. 다만 이 부분은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되자 회장이 직접 나서 철회했다. 하지만 실제로 사원, 대리 직급의 정규직 사원들의 수는 급감했으며 현재(2022년) 사원~대리 : 과장~차장 직급의 비율은 2:8정도며 과장급이 각 팀의 막내역할을 하고 있다. 상당히 비정상적인 비율이며 사원, 대리 직급은 비정규직(계약직)을 채용하여 일반계약직인 경우 2년 사용 후 계약 해지 수순을 밟으며, 프로젝트계약직의 경우 프로젝트가 끝날때까지 사용하나 대한민국 비정규직법을 잘 이용하여 2년이상 근무 시 무기계약직 전환이나 정규직 전환은 프로젝트계약직의 경우 예외인 사항이기에 거의 모든 계약직 사원들은 프로젝트계약직으로 계약하게 된다.

2.4.4. 일시적 회복 후의 구조조정

2012년에 새로운 고유 경영체계 '두산 Credo'를 전파해서 변화의 계기를 마련, 2014년 퓨얼셀파워 인수합병과 2017년 두산로보틱스 설립으로 신사업 개척에 진력하며 2018년 들어서는 두산중공업, 두산밥캣, 두산인프라코어의 흑자전환으로 그룹 분위기가 한숨 나아졌다. 특히 두산인프라코어는 자회사인 밥캣과 중국시장에서의 성공으로 영업이익이 1조에 육박하는 성과를 내었다. 하지만 영업이익 성과는 흑자일지언정 영구채의 이자와 당기순손실이 누적돼서 당기순이익은 계속 적자였다. # #

이와중에 두산중공업이 2018년 3분기까지는 순이익을 올리다 갑자기 4분기에 순손실 5,000억원이라는 대형사고를 치고 급하게 유상증자를 하자 주가는 땅을 뚫고 내려가고 있다. 그래도 순손실의 원인이 시장에서 실패해 손실이 난건 아니고 위에 자세히 설명한 두산건설 살리기 위해 투입한 출자금에 대한 대손충당금 설정에 의해 생긴 손실이라 한다. 하지만 전세계적인 탈석탄 트랜드에 의해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커 두산중공업의 전망이 매우 좋지 않다. 2017년부터 3년동안 두산중공업의 주요 사업인 원전과 화력발전의 수주 감소로 급격히 줄어들었으며 규모는 10조원에 달하는 수주가 취소되면서 영업이익이 2012년과 비교해서 17% 수준에 불과한 상황이다. 여기에 순손실이 1조원이 넘어가니 2018년 3분기 말 두산중공업의 차입금은 무려 5조원에 육박하면서 두산중공업이 버틸 수 없는 상황에 몰린 것이었다. 두산건설에 큰돈을 쏟았지만, 전세계적으로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가속화된 탈석탄 추세에 의해 소모된 자본과 시너지가 나서 완전히 늪에 빠져버린것이다. 2010년대 초반 두산인프라코어의 위기보다 지금 두산중공업의 위기가 더 심각한 상황이다. 결국 2020년 2월 직원 2,600여명을 명예퇴직 시킨다고 발표했으며 3월 11일에 무려 회사 휴업까지 검토한다는 뉴스까지 나온 상황이다. #

4월 1일에는 아예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었다. # 산업은행과 채권단에서는 우선 1조원을 지원해주기로 하여 잘 이루어지면 급한 불은 끌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채권단에서는 당연히 경영 책임을 물어 지배구조 개편을 요구하고 있으며 특히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밥캣의 계열분리를 요구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의 부실 전이를 막기위한 방법. 두산중공업이 두산의 중간지주회사라서 채권단 요구대로 연결고리가 끊어지면 두산그룹은 금호그룹처럼 중견 그룹으로 떨어지게 된다.[35] 두산 경영진은 두산건설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지만 너무 비싸게 팔려고 하는 바람에 엎어지고 말았다. # 고육지책으로 알짜 계열사까지 팔려 하지만 문제는 이미 알짜 계열사들을 모조리 팔아버렸다.

전세계적으로 친환경 트렌드 때문에 석탄발전이 사양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두산중공업은 석탄 발전에 목을 매 미래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 다른 에너지발전에 다방면 투자를 해야 했으나 원자력에 올인을 했고, 이는 두산중공업의 패착이 됐다. 내수시장 아파트 건설에만 올인한 경영전략의 실패로 그룹의 돈을 막대하게 빨아먹는 암덩어리가 된 두산건설 때문에 두산은 많이 약해진 상태였고, 한국과 유럽의 탈원전 추세는 두산중공업에겐 너무나 아픈 타격이었다. 두산중공업은 석탄과 원자력 말고는 주력 먹거리가 없는 상황이었고, 결국 실적부진으로 두산중공업의 영업손실액이 불어나자 두산건설과 함께 그룹 전체의 위기로까지 번진게 현재의 두산 위기이다. 미국에너지경제 재무분석연구소가 말하는 두산이 무너진 이유

결국 두산중공업을 제외한 모든 자산을 매각하는 3년 약정 체결 기사가 나왔다. 단독]"두산重 뺀 모든 자산 매각"..채권단, 두산과 3년간 특별약정체결

2020년 6월 16일 두산그룹의 핵심인 두산인프라코어가 매물로 나왔다. #

2.5. 부활 (2021~)

2020년 9월 두산타워를 마스턴투자운용에 매각, 12월 3일 재무구조가 나아지고 있는 상태다.[36] 두산중공업은 1.2조의 유상증자에 성공하여 현재 그 금액은 빚을 갚는데 사용한다고 한다.

혹독한 구조조정과 산업용 로봇 계열사인 두산로보틱스의 약진 덕분에[37] 2021년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도 대비 무려 403%나 증가했다고 하며, 계열사인 두산중공업 역시 최고 558%가 급증하면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

2021년 1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일로 115에 신사옥을 세우고 11월 그룹 위기의 중심인 두산건설 지분권을 사모 펀드에 매각했다. 이로 인해 두산건설은 두산에서 계열 분리되었다. # 이로써 두산의 구조조정 및 재무구조 개선 작업은 사실상 거의 마무리됐고, 신성장 산업을 중심으로 그룹 구조를 재편할 계획이라고 한다.

2022년 2월 27일에는 지난 2020년 채권단과 체결한 3년 특별약정이 종료된 것으로 보인다. # 재무지표 개선 등 전통적인 기준뿐만 아니라 국가 기간산업인 '에너지 분야의 대표기업'으로서의 중요성도 감안하여 채무단이 약정을 종결한 것으로 보인다.

두산이 부활하면서 두산 베어스 팬들은 더 이상 팀 해체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고, 구단이 FA 선수 계약에 신경쓸 수 있게 됐다며 행복해했다.[38]

3. 기업정신

3.1. 1978~1993

3.2. 1993~2012

3.3. 2012~ : 두산 Credo

4. 오너 일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범두산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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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역대 경영진

이하 내용은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주)두산 다트공시 등지 참고.

6. 역대 로고

파일:과거_두산그룹_로고1978_1.jpg 파일:두산 로고(1996-2021).svg 파일:두산 로고.svg
<colcolor=#fff> 1978년 ~ 1995년[41] <colcolor=#fff> 1996년 ~ 2021년[42] <colcolor=#fff> 2022년 ~ 현재[43]

7. 계열사

지배구조. 출처 두산그룹은 지배구조가 상당히 안정적인 편이다. 지주회사 (주)두산이 거의 모든 핵심 계열사를 종속회사로 두고 있어 실적을 계산하기도 아주 편하다. 연결기준의 지주회사에 다른 계열사들의 실적이 모두 반영되기 때문이다. (주)두산은 사업지주회사로 계열사들을 지배하는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자체적으로도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7.1. (주)두산

자체 사업군을 영위하는 사업 지주회사이며, 범용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는 아니지만 자체적으로 사업부문을 규모에 따라 'BG(Business Group)' 혹은 'BU(Business Unit)'로 구분하고 있다. BG가 좀 더 큰 사업부문이고 BU가 상대적으로 소규모 사업부문을 뜻한다.

상술했듯 거의 모든 계열사를 종속회사로 두고 있기 때문에 연결기준의 실적은 곧 두산그룹 전체의 실적이다.

이하는 그룹 홈페이지의 계열사 설명란 요약.

7.2. 스포츠단

7.3. 부속기관

7.4. 기타 계열사

7.5. 과거 계열사

이하 내용은 <두산그룹사(1988)>, 상장계열사별 다트공시 등지에서 확인.

8. 논란 및 사건 사고

8.1. 박가분의 납 성분 함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박가분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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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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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형제의 난

8.4. 경영상의 악습

최근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국내 투자자들에게 알려지며 주주들을 등한시하는 계열사들의 악습이 부각되고 있다.

9. 기타

10. 참고/관련 문헌



[1] 2023년 기준 [2] 2023년 기준 [3] 2023년 기준 [4] 현재 재벌 중 시가총액 1위인 삼성은 1938년이고, 한때 최상위권 재벌이었던 현대그룹은 1947년이다. 다른 기업집단들이 대부분 20세기 출신인 반면 두산은 19세기 출신이다. [5] 두산의 사옥이면서 쇼핑몰의 이름이기도 한 경우이다. 줄여서 두타라고 부른다. [6] 참고로 두산그룹은 형제 경영을 추구하며 장남 박용곤 전 회장을 시작으로 차례로 차남 박용오 - 3남 박용성 - 4남 박용현 - 5남 박용만이 회장직을 맡아 왔다. [7] 관련 기사 [8] 현 (주)두산은 구 OB맥주가 모태며, 1896년 설립된 박승직상점을 모태로 한 두산상사는 1998년 소멸법인으로서 합병됐다. 하지만 기업 자체가 없어지거나 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최초 기업으로 본다. [9] 2014년부터 재개발 때문에 임시로 본사를 옮겼지만, 구 본사 자리는 현재도 동화약품 소유지로, 2024년 말 새 건물이 완공되면 복귀가 가능하다. [10] 그러나 박가분의 재료는 다름아닌 이였다. 사실 예전에는 납이나 수은같은 중금속이 화장품으로 쓰이던 시대니 놀라운 일은 아니다. [11] 이 때문에 두산그룹이 한국 기업임에도 전범기업/일본 제국 분류가 붙었다. [12] 프랑스 유가공업체인 ' 다논(Danone)'의 국내 판매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었다. [13] OB맥주 매각 과정에서 잔류했던 주류BG(비 맥주부문, 구 두산경월/두산백화)나 KFC, 버거킹, 두산동아 등은 2000년대 후반 ~ 2010년대 초반에 최종 매각되었다. [14] 이 과정에서 1999년 1월에는 프로야구 OB 베어스 두산 베어스로 구단명을 변경했다. [15] 물론, 당시 한국중공업의 주가와 액면가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매입한 것이긴 하다. 그리고 기업의 자산이란 것은 자기자본에 부채를 더한 개념이고, 자산과 기업가치는 별개의 문제인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총자산 5조원 중에서 순수 자기 자본은 1조 원이고 부채는 4조원이다. [16] HD현대인프라코어. 두산이 인수후 두산인프라코어로 변경했으나, 2021년 구조조정으로 다시 16년만에 현대중공업에 매각했다. [17] 전세계에서 화력 발전 원천기술을 가진 단 3개 회사중 하나다. [18] 북미지역 소형중장비시장에서 밥캣은 상당한 네임드다. [19] 순환유동층 보일러, 탈황설비 등 친환경 발전 원천기술을 보유. [20] 연성회로기판(FCCL, Flexible CCL) 등 동박적층판(CCL, Copper Clad Lamintes)용 동박 제조 기술을 보유. [21] 건물용 연료전지 원천기술 보유. [22] 에너지저장장치(ESS, Energy Storage System 이하 ESS) 소프트웨어 원천기술 보유. [23] 학과 구조조정이라고 해서 인문학 계열을 대폭 줄였다는 오해를 많이 받는데, 사실 구조조정의 대부분은 안성캠퍼스를 본교화시키면서 중복학과를 통폐합한 것이고, 서울캠퍼스의 인문대학에서 폐과된 것은 한 학부의 세부전공 하나뿐이다. 참고로 서울캠퍼스 인문대의 정원은 오히려 늘어났다. [24] 일례로 그 이전까지는 사실상 똑같은 내용을 교육하는 사회복지학과, 아동복지학과, 청소년학과 3곳이 병립했다. 과거부터 학과 간의 기득권 문제로 번번히 통합이 무산됐는데 2010년 사회복지학부로 전격 통합했다. [25] 아시아문화학부의 경우 일어일문학과, 중국어학과, 민속학과가 합쳐지고 국어국문학과는 제외됐고, 유럽문화학부의 경우 불어불문학과, 독어독문학과, 노어학과가 합쳐지고 영어영문학과는 제외됐다. 줄어든 정원은 경영경제대학에 배정됐다. [26] 반면 운동부에 대한 투자는 이전만 못하다는 평. 전통의 강호이자 2010년 대학 농구를 평정했던 중앙대학교 농구부는 09학번 5인방(장재석, 임동섭, 유병훈, 김현수, 정성수)이 졸업하는 2013년부터 하락세를 보일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고 실제로 2013년에는 6강 플레이오프에도 오르지 못했다. 중앙대학교 야구부는 2008년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 우승 이후 2022년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 공동우승까지 14년의 세월이 걸렸을 정도로 실적을 내지 못했다. [27] 2012년에는 채용설명회 USB 메모리가 기념품으로 엄청 퍼졌다. 채용설명회 10번을 가면 4~5번 정도는 USB를 받아 처치곤란이라는 사람도 있을 정도. 두산정보통신, 스마일게이트, 나비스오토모티브가 16GB짜리를 주었다. 8기가짜리도 많았고 오히려 4기가짜리가 적었다. 그 시각에 수업이 있었던 학생들은 아쉬워했다. 재밌는건 두산산업차량 채용상담회에선 4GB USB를 줬다. 그러니 두산산업차량 채용상담을 받고, 설명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졸지에 두산에서 USB를 두 개씩 준 셈이다. [28] 그래도 주류 부분은 남겼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두산이 체질 전환에 성공했다고 여겨질 때는 무슨 소리냐는 듯이 묵살됐지만 맥주 부분을 가져간 AB InBev와 소주 부분을 가져간 롯데주류가 잘 나가는 것을 보면 결과론적으로는 안 파는 게 맞았다. 주류는 안전 사고가 없는 한 꾸준한 실적을 내기 때문이다. 적어도 소주 부분은 안 파는 게 좋았을 것이다. [29] 그냥 감자도 아니고 90%다. 한마디로 말해서 두산건설 자본이 1/10로 토막이 났다는 것이다. [30] 그것도 미분양 물량을 그룹 임직원들에게 밀어냈다는 루머가 있을 정도로 막아보려 했지만, 부동산 불패 신화에 금이 가기 시작한 2010년대에 제대로 된 메리트도 없는 곳에 누가 가려고 할까 의문이다. [31] 논현동 사옥을 세일앤리스백으로 매각해서 자금을 확보하려 했는데, 두산분당센터가 지어지면서 두산건설이 두산분당센터에 임대차 계약을 새로 맺어 얻은거 없는 삽질이 됐다. 사옥을 매수한 하나은행과 임대차 해지는 답없으니 두산건설이 다시 논현동 사옥을 하나은행에게 사서 되팔아야 하는 삽질이 진행중이다. [32] 더 갑갑한 점은 두산건설의 순차입금이 2020년 현재 6,000억원에 육박하며 이 때문에 가뜩이나 실적 안 좋은 두산중공업에 부담이 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33] 두산을 울린 M&A 매물은 역시 뭐라해도 OB맥주이다. 박씨 일가는 OB맥주를 적절하게 잘 팔았다고 인터뷰했지만 OB맥주가 두산에게 팔리고 난 뒤 6조 2,000억에 실거래로 팔리고, 현재 몸값이 9조원을 왔다갔다 하고 있으니 속이 안 아플수가 없다. 한진의 S-OIL 지분 매각과 버금가는 밑지는 거래였다. [34] 유동성 위기는 두산그룹이 2000년대 초반 중공업 중심으로 체질변화를 꾀하며 인수했던 기업들의 실적부진에서 비롯된 탓에, 중공업 중심으로의 체질변화를 주문했던 맥킨지는 20여년 전의 컨설팅 결과 때문에 두산 위기의 주범 내지는 종범 정도의 취급을 받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 구조조정 위기 ‘일파만파’ [35] 두산중공업과 두산건설의 자산이야 많지만 빚잔치로 쌓은 자산일뿐이다. [36] 구조조정도 거의 완료됐다. http://www.newspim.com/news/view/20201203000892 [37] 두산로보틱스는 산업용 로봇 분야에서 점유율 국내 1위, 세계 5위를 기록하고 있는 기업이다. [38] 그 전까지는 잘하는 자팀 선수를 고액 계약을 잘 못해서 타 팀에 내주는 경우가 많았다. 모기업인 두산이 살아난 결과 양의지를 다시 두산으로 불러오는데 성공했고, 2021년부터 박건우를 제외하면 다른 FA 선수들도 팀에 잔류시키는데 성공했다. [39] 1978년 이전에도 사용. # [40] 2022년부터 대표이사 선임. [41] 두산산업의 경우 빨간 방패모양의 레이아웃에 斗山 도안 대신 'DSI'라는 사명 약어 알파벳이 들어간 버전이다. 사명도 당시 몇몇 대기업처럼 한자 표기가 우선이었다. [42] 한글서체는 2006년 경 HY견고딕으로 교체되었다. [43] 폰트 자체는 동일하나, 3개의 사각도형이 사라지고 블루 컬러 로고로 바뀌였다. [44] 에너빌리티(Enerbility)는 에너지(Energy)와 서스텐빌리티(Sustainbility, 지속가능성)를 결합한 조합어이며, 그 결합을 가능하게 한다는 '엔에이블(Enable)'의 의미도 내포되고 있다. [45] 주로 사업형 지주회사인 (주)두산의 자체 사업부문 중 일부 [46] https://biz.newdaily.co.kr/site/data/html/2023/09/27/2023092700139.html [47] 두산에너빌리티 사원숙소, 게스트하우스 등 [48] 두산타워, 분당타워, 두산베어스파크, 두산아트센터 등 [49] 삼성동 삼성이 관계없는 것과 같다. [50] 前 야구선수 이승엽이 거주하는 아파트로 알려져 있다. 공교롭게도 그 이승엽은 현재 두산 베어스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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