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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명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포스코홀딩스 주식회사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Posco Holdings In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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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창립일 | 1968년 4월 1일 |
2022년 3월 2일 (지주사 출범일) | |
창립자 | 박태준 |
대표자 | 장인화(회장), 정기섭(사장) |
업종명 | 지주회사 |
기업 규모 | 대기업 |
그룹 | 포스코그룹 |
자산 | 98조 4,067억원 (2022년 12월 기준) |
부채 | 40조 1,493억원 (2022년 12월 기준) |
매출액 | 84조 7,502억원 (2022년 12월 기준) |
영업이익 | 4조 8,500억원 (2022년 12월 기준) |
당기순이익 | 3조 5,604억원 (2022년 12월 기준) |
상장 여부 | 상장기업 |
상장 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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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코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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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총액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34조 8,856억원 (2024년 1월 기준) |
소재지 |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동해안로 6261(괴동동)[3]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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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스코그룹의 지주회사.1.1. 지주회사 전환 공식화
2021년 12월 10일 포스코는 이사회에서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의결했으며 2022년 1월 주주총회에서 승인받을 예정이다. 지주회사로의 전환 사유는“지속성장과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왔으며 가장 성공적이고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그룹의 미래 신사업을 발굴하고, 사업 및 투자 관리를 전담하는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라 판단”이며 존속 지주회사 포스코홀딩스(가칭)를 상장사로 유지하고, 신설 철강 사업회사 포스코(가칭)로 물적 분할할 계획이다. 포스코홀딩스가 사업회사 포스코 지분을 100% 보유하되, 사업회사 포스코는 비상장사로 두는 구조다. 그런데 포항시에서 포스코홀딩스 본사를 포항이 아닌 서울로 할까봐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포항시청 외에도 일방적인 물적분할 결정으로 인해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상당히 거센 상황이다. 네이버 포스코 종목게시판 #토론방이나, 포스코 소액주주 카페 #네이버 링크 등에서는 몇천명 이상의 주주들의 반대표 인증과 성토가 이어지고 있으며, 대다수 소액주주들이 물적분할과 국민연금의 물적분할 찬성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증권거래소, 포스코 본사, 국민연금 앞에서 시위까지 하면서 항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후폭풍이 일어나고 있다.
2022년 1월 28일 임시주주총회에서 철강 사업부 분할 및 지주회사 전환 안건이 통과됐다. 기존 포스코는 3월 2일부로 상장 지주회사 포스코홀딩스로 다시 출범한다. 포스코홀딩스는 포스코그룹 계열사를 지배 및 관리하며 수소·전기차 배터리 등 신사업 투자와 발굴 등의 업무를 할 예정이다.
2022년 포스코그룹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위해 기존 포스코를 지주회사인 포스코홀딩스(존속법인)와 사업회사인 포스코(신설법인)로 물적분할하는 안이 추진되었고 주주총회를 통해 3월 2일부로 분할이 확정되었다. 분할이 완료되면 포스코홀딩스가 포스코 및 포스코케미칼, 포스코건설 등 기존 자회사들을 지배하며 그룹의 사업 발굴 및 투자를 주도하고, 분할 설립된 (신)포스코는 본업인 철강사업에만 집중하게 된다.
2. 역사
2.1. 창업 및 포항제철소 건설
포스코의 경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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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에 건설된 포항제철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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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종합제철공장 착공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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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종합제철 제2기 설비공사 준공식 및 화입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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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종합제철, 제 3기 설비확장공사 준공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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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종합제철, 제 4기 설비 준공식 |
박정희 대통령은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준비하고 있던 중 기초산업으로 철강 산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경제사정으로 볼 때 국내 자금만으로 종합제철소를 짓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제철소 건설을 위해 주식을 공모했지만, 목표액 33억 원의 0.4%인 1,300만 원만 모였을 뿐이었다. 종합제철소 건설 계획은 다들 무모한 일이라며 반대를 했고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들과 국제단체에서는 이를 두고 과시용 사업이라고 보았다.
종합제철소 건립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1965년이었다. 그 해 5월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 피츠버그 철강단지를 방문해 제철소 건립에 대한 의지를 더욱 더 다지게 되었고 미국의 제철소 건설 기술 용역회사인 코퍼스(Koppers Co. Inc)의 포이(F. Foy) 회장을 만나 이 의견을 피력하였다. 포이 회장은 국제제철차관단을 만들어 종합제철소 건설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였다.
부지 선정에서도 잡음이 있었는데, 당시 경제기획원 경제협력국장이었던 황병태[4] 등의 이야기에 의하면 당시 대한중석 사장이던 박태준이 종합제철추진단장으로 사업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제철소 후보지는 충남 서천(비인)[5], 경남 울산[6][7], 삼천포[8] 등 3곳이었고, 포항은 후보에도 없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도 고향 챙기기는 여전해서 충남 출신인 공화당 김종필 의장과 김용태 원내총무(현재의 원내대표격)가 서천을 밀고, 이후락 대통령비서실장이 울산을 밀고, 박정희의 대구사범학교 동창 서정귀[9]가 삼천포를 밀고 있었다.[10] 큰 돈이 들어가는 사업인 만큼 박정희는 세 부지를 둘러보고 신중히 결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황병태만 있는 자리에서 슬쩍 물어보고 포항에 대한 설명[11]을 들은 후 연극을 하자고 했다고 한다. 이후 열흘쯤 후 경제동향 보고회 자리에서 뜬금없이 황병태를 찾은 후 제철소 부지 설명을 요구하고 포항 이야기를 하게 하더니 즉석에서 포항으로 낙점했다고 한다.[12]
종합제철소 건설은 시작부터 장애물이 많은 상황이었다. 세계은행은 채산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국내외의 많은 기관이나 회사들도 마찬가지로 제철소 건설을 회의적이라 보았다. 그러나 산업화 초입에 들어선 입장에서 철강의 자체생산은 필수불가결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제철소 건설을 성사시켜야 했었다고 한다.
1969년 1월 하순 하와이. 박태준은 와이키키 해변을 걷고 있었다. 종합제철소 건설에 쓸 자금 조달을 위해 미국 워싱턴까지 날아갔지만 믿었던 국제제철차관단(KISA)의 프레드 포이 대표에게 퇴짜를 맞았다. 세계 철강업계와 금융기관들은 이름조차 낯선 후진국 대한민국에다 종합제철소를 짓는 것이 성공할 수도 없고, 필요하지도 않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박태준은 쏜살같이 콘도로 돌아와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국에서 협상은 실패했지만 마지막 방법이 있습니다. 대일 청구권 자금을 전용(轉用)하는 것입니다.
농수산 지원 용도 등으로 사용하기로 한 자금을 제철소 건설로 돌려서 활용하자는 이야기였다.이 말을 들은 박정희 대통령은
기막힌 아이디어군. 대일 청구권 자금이 1억달러는 남아 있을 거야. 일본 정부는 임자가 설득해.
당시 정치권은 농수산 지원 용도로 쓰일 자금을 전용하는 데 반대했다. 많은 국회의원이 농촌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정희와 박태준은 국가의 농수산업 대신 제철소를 선택했다.
[영남일보를 통해 본 현대사] <7> 구미공단·포항제철 건설일본 정부를 설득하라는 언급에는 다음과 같은 연유가 있다. 대일 청구권 자금은 현금으로 지급된 게 아니라, '동등한 가치를 가지는 일본국의 생산물 및 일본인의 용역'을 10년에 걸쳐 지급한 것이다. 그렇기에 자금을 운용하여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일본 기업을 사실상 반드시 고용할 필요가 있었고, 일본은 한국 내에서의 영향력 확대와 시장 확보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상으로 지급된 차관은 갚아야 할 부채였다.
1969년은 일본의 기업과 정부에 의한 태도변화로 한국철강공업에서 결정적인 전환이 있었던 해이었다. 이러한 전환의 원인으로 기존에 크게 3가지 주장과 증언이 인용되고 있으나 본 고는 보다 객관적인 사회경제적 이유를 찾아보았다. 그 결과 일본이 한국의 종합제철공장 건설에 협조적 자세로 전환한 배경으로 3가지를 찾아내었다. 첫째는 미국이 주도권을 잡았던 KISA 협약이 붕괴됨으로써 종합제철 건설에서 일본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둘째는 이 시기 철강공업 등 산업공해문제는 일본의 중요한 이슈의 하나로 되기 시작하였고 이에 일본은 향후 철강공업 재구성, 자본재생산설비 과잉문제 처리를 위해서는 철강공업설비를 판매할 크고 안정적이며 중장기적인 프로젝트가 필요하였기 때문이었다. 셋째는 장기간 준비하고 기술을 축적해 온 한국의 능력과 의지, 점점 표준화되고 있는 세계 철강공업의 노하우를 고려할 때 어차피 한국의 종합철강공장은 포기되는 것이 아니라 건설이 시작된다는 판단이 분명히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한국의 대응이 중요하였다.
한국 종합제철 건설과 일본, 박영구, 2013.5. #
한국 종합제철 건설과 일본, 박영구, 2013.5. #
그렇게 1970년부터 제철소 건설에 들어갔다. 이 때 박태준 회장은 첫 삽을 뜰 때 “실패하면 역사와 국민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그때는 우리 모두 우향우 해 영일만에 몸을 던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예정보다 일정을 1개월 앞당긴 1973년 6월 9일 마침내 용광로에서 첫 쇳물이 흘러나왔는데 이는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용의 3배에 해당하는 1,205억원의 자금을 쏟아부은 결과물이었다. 조업 첫해인 1973년 포항제철은 매출액 1억달러, 순이익 1,200만달러(약 46억원)를 달성했다. 이로써 포항제철은 세계 철강 역사에서 제철소를 가동한 첫해부터 이익을 낸 유일한 기업이 됐다. 하지만 아직 국제규모에 크게 밀리는 기업이라 확장이 절실했고 제철소 4기가 완성될 때까지 13년이 걸렸다.
1978년, 중국의 최고실세로 떠오른 덩샤오핑(鄧小平)이 신일본제철을 방문해 중국에 포항제철 같은 제철소를 지어달라고 요청했는데 이나야마 신일본제철 회장은 “제철소는 돈과 기술로만 짓는게 아니라 사람이 짓습니다. 박태준 같은 사람이 없으면 포항제철과 같은 제철소는 지을 수 없습니다. 포항제철은 기적입니다.”라고 정중하게 거절한 일화가 있다.
2.2. 광양제철소 건설
1987년 광양제철소 1기 준공식
1988년 광양제철소 2기 준공
1990년 광양제철소 3기 준공
1992년 광양제철소 4기 준공
현대차그룹의 현대제철과의 치열한 경합 끝에 포항제철 측이 제2제철소 사업권을 갖게 되었고[13], 지리적인 영향을 다각도로 종합해서 전두환 정권 때 광양만에 있는 금호도가 제2제철소 부지로 결정되었다. 다른 후보지[14]인 울진은 너무 북쪽에 있어 안보 위협이 문제가 되고, 서산시· 태안군의 아산만은 수심이 얕고 조수 간만의 차가 크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반면 광양만은 수심이 깊고 조수간만의 차도 그다지 크지 않았을 뿐더러 전라도에 있다는 점에서 균형발전에도 들어맞아 높은 점수를 받았다.
실제로는 광양만이 최적의 입지인데도 아산으로 하라는 압박이 있었다고 한다. 부지가 광양만으로 정해진 이후에도 포철 고위직들이 "호남인데..."라며 난색을 표하면서 광양만에서도 하동군에 짓자는 개소리를 했으나, 박태준 회장의 직권으로 광양으로 결정했다고 한다.[15] 이러한 이야기들이 보여주듯이 박태준이라는 상식과 합리적인 사고를 갖춘 유력자가 없었다면, 광양제철소는 세워지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16] 부지조성작업을 거쳐 1985년 시작된 광양제철소 건설은 1992년 4기 공사가 완결됨으로써 포스코는 조강생산 2,080만 톤(연간)을 달성하게 되었다.
제철소 부지가 굉장히 크다. 대지 넓이가 무려 2,080만㎡(630만평)[17]로 세계 최대 규모의 제철소이며 대한민국 기업이 운영하고 있는 생산공장 중 단일부지로는 제일 넓다.[18] 1992년 제철소가 세워진 이후에도 잦은 간척 사업이 이뤄지면서 넓이가 더 넓어졌다. 여의도 면적의 7배에 달하며 기초자치단체인 서울 성동구의 경우 면적이 1,684만㎡ 정도인 것을 볼 때 일개 제철소 규모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철소 견학을 가 보면 공장 안내를 해주는 간부직원이 "포항제철소는 주조부터 압연까지의 공정이 U자 형태로 돌아나오게 배치되어 있지만, 광양제철소는 그보다 뒤에 지은지라 신기술이 적용되었고 부지도 훨씬 넓어서 용광로 주물부터 압연까지 전체 공정이 일자형으로 설계되어 있다"고 설명해주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제철소 뒤에 있는 금호동 사원 주택단지까지 합치면 조그마한 신도시라 불릴 정도다. 실제 제철소와 광양 시내는 교량으로 연결된 또 다른 도시처럼 구성되어 있다.
여담으로 이 광양제철소가 들어선 광양만 지역은 본래 어업, 특히 김 양식이 대단히 발달한 지역이었다. 마침 김(金)과 철을 뜻하는 한자가 같아서 호사가들이 이에 대한 말을 많이 하는 편. 광양제철소 한켠에 이를 기념하는 비석이 남아 있으며 현지 어민들은 이주 보상금 및 제철소 취업의 우선권 등의 보상을 받고 광영동 등에 이주했다.
2.3. 이후 부진
이후 포스코는 1993년 김영삼 정부의 세무조사로 박태준 회장이 일본으로 떠나는 등[19] 체제가 흔들리면서 부진을 겪을 뻔 했으나 다행히 위기를 모면했다. 박태준 회장은 1997년경 재보선으로 복귀했고 DJP연합으로 정권교체를 이루고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기업은 다시 안정되었다. 그 사이 1994년에는 뉴욕증권거래소, 1995년에는 런던증권거래소에 각각 상장되는 등 기업가치를 높였으며, 외환위기 이후 2000년에는 정부지분을 완전 매각함으로써 민영기업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2002년에는 공식 회사명을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에서 "포스코"로 변경[20]하였고, 덩달아 CI도 변경했다.2007년에는 차세대 제선 공법인 파이넥스 상용화 설비를 준공하여 운영 중이며, 인도와 베트남을 중심으로 해외 사업을 진행 중이다.
포스코의 경우 외부에서 그룹 회장이 온 경우는 단 한 번, 김영삼 정부 시절 박태준 사단을 퇴출하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임명한 김만제 전 회장 뿐이다.[21] 이외에는 모두 포스코 내부 인사가 임명되었는데, 특히 이구택 전 회장은 포스코 공채 1기이다. 하지만 공기업에서 출발한 기업이니만큼, 여전히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편이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박태준 사단은 대거 복귀하였는데 김대중 정부 시기 5대 유상부 회장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6대 이구택 회장에게 자리를 내주고 이구택 회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7대 정준양 회장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회장 교체 과정에서 모두 정치권 개입이 있었다는 잡음이 있었다. 그리고 정준양 회장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사퇴했고 후임으로 권오준 회장이 취임했다. 그리고 권오준 역시 문재인 정부 성립 11개월만에 사임하며 그 전통을 이어갔다.
1995년 여름 대치동 포스코센터의 완공과 함께 사무실을 을지로 금세기빌딩에서 이주하였다.
2.4. 2018년 이후 수익이 호전되다
7년만에 최고 수익을 갱신했다. 오랜 적자 속에서 나온 흑자로 포항시, 광양시의 경제가 좋아질 것으로 보고있다. 이후 새로 취임한 회장의 현장경영의 원칙 따라 중요 부서가 광양과 포항으로 이동된다. 서울로 가지고 갔던 전 회장과는 다른 행보이다.철강업계 '10일 조업중지'에 "사실상 운영중단 처분" 초비상(종합2보)
철강업계, '10일 조업중지'에 강력 반발
철강업계, 지자체 조업정지 10일 처분에 "문 닫으라는 얘기냐"
'10일 조업정지' 선고한 지자체…논란 확산
2019년에는 충청남도, 전라남도, 경상북도 등 여러 지자체에서 포스코와 경쟁사인 현대제철의 제철소 핵심 설비인 고로(용광로)에 대해 10일 조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이에 업계는 철강산업 전반적으로 천문학적인 손실이 날 위기에 처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경쟁사인 현대제철은 이번 조치로 보수 비용을 제외하고도 8,000억원의 손실을 예상했다. 환경단체들은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제철과정에서 생긴 오염물질을 저감시설 없이 블리더[22]를 통해 공기 중에 배출해왔다"며 민원을 제기했고, 지자체는 대기환경보전법을 적용해 행정처분을 결정했다.
하지만, 블리더 말고는 대체제가 없기 때문에 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한국철강협회는 "고로 안전밸브 개방은 전 세계 제철소가 지난 100년 이상 적용해온 안전 프로세스"라며 "조업정지 이후 고로를 재가동한다 해도 현재로선 기술적 대안이 없다"고 했다. 협회는 세계철강협회(WSA)에 문의한 결과, "안전밸브를 열어 배출되는 소량의 잔여가스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해결 방안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전했다.
또 환경단체와 지자체는 법령 위반의 근거로 대기환경보전법 제31조 2항을 들었는데, 여기서는 방지 시설을 거치지 않고 오염물질을 배출할 수 있는 공기조절 장치를 설치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다만 ‘화재나 폭발 등의 사고를 예방할 필요가 있어 시·도지사가 인정하는 경우’라는 예외조항이 있는데 블리더는 화재나 폭발 등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로, 정확히 이 예외조항에 해당한다.
그리고 10일 조업정지 처분이 실질적으로는 10일 동안 공장을 멈추는 정도가 아니라, 연간 400만 톤의 쇳물을 생산하는 고로가 멈추면 쇳물이 굳어져 복구 작업에만 3개월 이상이 걸린다.
비슷한 시기에, 중국의 스테인리스강 제조업체 칭산(靑山)철강이 한국에 대규모 냉연공장 건설을 추진하면서 # 이번 조치가 궁극적으로 중국에 국내 철강 시장을 내어 주는 상황을 초래한다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한대정 민주노총 포스코 지회장도 해당 조치에 대해 "블리더는 노내 압력을 정상상태인 2.3~2.7 Bar(기압 단위)로 조절하는 안전밸브로, 노내 압력이 급격히 올라갈 경우,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자동 또는 주기적으로 열어 철광석과 코크스를 녹일 때 사용하는 석탄에서 나오는 일부 일산화탄소와 압력을 맞추기 위해 주입하는 수증기를 배출한다. 고로에서 배출되는 이들 물질은 평소에는 회수해 발전소의 전력 생산 자원으로 보내지고 있어 고의로 오염물질을 대기에 내보낼 이유가 전혀 없다. 다만 밸브가 자동으로 열리면 의도하지 않는 상태에서 오염물질이 대기로 배출되는 문제는 있지만,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밝히고 이 문제를 정치 쟁점화하지 말고 노사정 대화를 통해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조업정지 처분에 대해 경쟁사인 현대제철은 2019년 6월 7일 국민권익위원회 산하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집행정지와 행정심판을 청구하였으며, 이후 조업정지 처분에 이르게 된 데 대해 ''지자체 및 지역 환경 단체들과 소통이 부족했다"고 사과하면서도 "철강 산업은 국가 기간산업이며 자동차, 조선, 건설 등 경제 중심 산업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만큼 제철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가운데 우리가 미흡한 점을 보완해 나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 결과 6월 10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현대제철의 집행정지 신청에 대해 인용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7월 15일부터 10일간 내려질 예정이었던 고로 조업정지 행정처분은 보류됐다. 또한 향후 3~5개월 뒤에 열릴 행정심판도 현대제철의 손을 들어준다면, 조업정지 10일 행정처분은 없던 일이 된다. 포스코 역시 같은 행정처분을 받았으므로 동일한 혜택을 볼 가능성이 있다.
2.5. 광양제철소 폭발 사고
2019년 12월 24일, 전라남도 광양시에 소재한 포스코 광양제철소 내부의 폐열 자가발전시설의 가동을 시험하던 중 돌연 폭발하여, 5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는 등 인명피해가 발생하였으며, 폐열 자가발전시설 전체가 형체를 간신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완전히 파괴될 만큼의 엄청난 폭발이 발생했다. 이 폭발음은 무려 직선거리로만 10km 넘게 떨어진 전라남도 여수시에서도 확인될 만큼 엄청나게 컸으며, 광양시 일대에 매우 짙은 연기가 퍼져 나갔다. 화재를 진압하기 위하여 광양소방서 측에서 소방대응 제 4단계로 격상하여 진화 작업을 서둘렀으며, 사고로부터 20여분 뒤, 큰불이 진압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 여파로 1m 크기의 쇳조각이 이순신대교로 날아와 다리 난간이 찌그러지고 40분 가량 대교 출입이 통제되기도 했다. #1 #2 #32020년 11월 24일 16시 2분경 또 다시 폭발 사고가 일어나 근로자 3명이 사망했다.[23] 20여분 만에 자체 진화를 완료 했으나 2명은 현장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되었고 나머지 1명은 출동한 소방관들의 수색으로 2시간 만에 발견되었다. #1 #2 #3 #4
정확한 사고 원인은 규명중에 있지만 광양제철소 측은 당시 1고로 부대설비인 산소 배관 설비에서 필요한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배관을 여는 작업을 하는중 균열로 고압 산소가 강하게 새면서 화재로 추정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고 주장한다. 완진 이후에도 추가 폭발 위험을 우려해 현장을 통제했으며 신고 시각이 16시 45분경으로 40분 정도의 공백이 존재하여 이에 대해서도 조사중이다.
연이은 사고로, 2021년 2월 22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산업재해 청문회에서 최정우 회장이 국회의원들에게 크게 질타를 받았다. #
2.6. 리튬 호수 매입
POSCO가 2018년 8월 3,119억원에 인수한 아르헨티나 옴브레 무에르토 리튬 염호에서 채굴 가능한 리튬의 추정 누적 매출이 35조원에 달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구입 당시 예상 리튬 매장량은 220만톤이었지만, 2020년 말 최종 확인된 매장량은 예상치의 6배인 1,350만톤이라는 것이다.[24]신한금융투자 리포트에 따르면, 예상 연간 매출액은 2023년 3,400~5,100억원에서 2030년 1.1~3.7조원이다. 당기순이익은 2023년 680~1,020억원에서 2030년 2,275~7,380억원이다. #
2018년 8월에 3,119억원에 인수한 것을 감안한다면 큰 수익이 기대되지만, 35조원이라는 숫자에 대해 큰 기대감을 갖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2.7. 물적분할
2022년 포스코그룹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위해 기존 포스코를 지주회사인 포스코홀딩스(존속법인)와 사업회사인 포스코(신설법인)로 물적분할하는 안이 추진되었고 주주총회를 통해 3월 2일부로 분할이 확정되었다. 분할이 완료되면 포스코홀딩스가 포스코 및 포스코케미칼, 포스코건설 등 기존 자회사들을 지배하며 그룹의 사업 발굴 및 투자를 주도하고, 분할 설립된 (신)포스코는 본업인 철강사업에만 집중하게 된다.한편, 포스코홀딩스의 법적 본사를 서울에 두기로 한 주총 결정에 포항시 지역사회가 크게 반발하며 정치적인 문제로까지 비화된 상태다. 2019년 현대중공업 물적분할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다.
2022년 2월 25일, 포스코가 지주사 포스코홀딩스와 미래기술연구원 모두 포항에 설립할 것으로 입장을 급선회했다. 서울 설립 결정을 백지화하기로 한 것이다. # 2023년 3월 17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본사 소재지를 서울에서 포항으로 이전하는 안건이 통과됐다.
2.8. 회장 선임
2023년 12월 국민연금공단이 최정우 회장의 연임을 반대하면서 주주총회 표 싸움 가능성까지 점쳐졌던 상황 속에서 2024년 1월 3일, CEO추천위원회는 4차 회의에서 그가 제외된 8인의 평판조회대상자를 만장일치로 승인하며 3연임이 무산되었다. # 최정우 회장은 3월 8일자로 퇴임한다.2024년 1월 31일에 열린 CEO후보추천위원회(후추위)에서 파이널리스트를 선정 발표하였다. 권영수 전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 김동섭 현 한국석유공사 사장, 김지용 포스코홀딩스 미래기술연구원장, 우유철 전 현대제철 부회장, 장인화 전 포스코 사장(기술총괄), 전중선 전 포스코홀딩스 사장(전략기획본부장) 등 6명이 리스트에 포함됐다. 2월 7~8일 후보자별 심층면접을 통해 1명을 선정하여 공개하고 3월 21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차기 회장 선임안을 상정예정이다. 관련기사 후추위에서는 2024년 2월 8일 오후 장인화 前 포스코 사장을 차기 회장 후보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설 연휴를 마치고 장인화 회장 후보자는 출근하여 업무를 파악하고 있으며 포스코인터내셔널, 포스코이앤씨, 포스코휴먼스 등 계열사 사장단 인사를 일부 단행했다. 2024년 3월 18일 최정우 회장의 이임식이 개최됐다.
3. 지배구조
주주명 | 지분율 | 비고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국민연금공단 |
6.7% |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블랙록 |
5.39% |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자사주 |
10.58% | |
2024년 8월 기준 |
3.1. 이사회
4. 역대 슬로건
- 우리의 기업/우리의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포항제철 (1991 ~ 1992)
- 다음 세대의 번영을 생각하는 포항제철 (1992 ~ 1993)
- 신한국 건설에 앞장서는 포항제철 (1993)
- 통신보국시대를 준비하는 포항제철 (1993)
- 세계제일의 철강기업 (1995 ~ 1998)
- 믿음직한 국민의 기업 (1998)
- 철강으로 나라사랑 (1998~1999)
- 소리없이 세상을 움직입니다 (2000 ~ 2011)
- 아는 만큼 가까워집니다 (2012)
- 세상의 베이스가 되다 (2013)
- 위대함을 향해 갑니다 (2014)
- Unlimit the Limit (2018)
- The Power of With (2019 ~ 2023)
- 미래를 여는 소재, 초일류를 향한 혁신(2024 ~ 현재)
5. 역대 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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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 1994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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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 2022년 ~ 현재 |
6. 역대 임원
6.1. 명예회장
- 박태준 (1992 ~ 1993 / 2001 ~ 2011)
6.2. 대표이사 회장
{{{#!wiki style="margin:14px" | <tablebordercolor=#05507d><tablebgcolor=#05507d><tablealign=center> |
포스코그룹 회장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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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대
황경로 (1992 ~ 1993) |
제3대
정명식 (1993 ~ 1994) |
||
제5대
유상부 (1998 ~ 2003) |
제6대
이구택 (2003 ~ 2009) |
|||
현재 총 10명의 역대 회장 중 8명이 본사 사원 출신이다.
- 박태준 (1981 ~ 1992)
- 황경로 (1992 ~ 1993)[25]
- 정명식 (1993 ~ 1994)[26]
- 김만제 (1994 ~ 1998)[27]
- 유상부 (1998 ~ 2003)
- 이구택 (2003 ~ 2009)[28]
- 정준양 (2009 ~ 2014)
- 권오준 (2014 ~ 2018)
- 최정우 (2018 ~ 2024)[29]
- 장인화 (2024 ~ )
6.3. 부회장
- 황경로 (1990 ~ 1992)
- 정명식 (1992 ~ 1993)
- 김학동 (2022)
6.4. 대표이사 사장
- 박태준 (1968 ~ 1981)
- 고준식 (1981 ~ 1985)
- 안병화 (1985 ~ 1987)
- 정명식 (1987 ~ 1992)
- 박덕표 (1992 ~ 1993)
- 조말수 (1993 ~ 1994)
- 김종진 (1994 ~ 1998)[30]
- 이구택 (1998 ~ 2003)
- 강창오 (2003 ~ 2006)
- 윤석만 (2006 ~ 2009)[31]
- 이윤 (2006 ~ 2008)
- 정준양 (2007 ~ 2009)
- 이동희 (2009 ~ 2010)[32]
- 최종태 (2009 ~ 2012)[33]
- 박한용 (2012 ~ 2013)[34]
- 권오준 (2012 ~ 2014)
- 김준식 (2013 ~ 2014)
- 박기홍 (2013 ~ 2014)[35]
- 김진일 (2014 ~ 2017)
- 황은연 (2016)[36]
- 오인환 (2017 ~ 2018)[37]
- 최정우 (2017 ~ 2018)[38]
- 장인화 (2018 ~ 2021)
- 김학동 (2021)[39]
- 전중선 (2022 ~ 2023)
- 정기섭 (2023 ~ )
6.5. 대표이사 부사장
- 정준양 (2006 ~ 2007)
- 전중선 (2021)[40]
7. 광고
포스코는 주력 업종이 'B2B(기업간 거래)'성격을 가진 기업으로서, 일반 소비자와 직접 거래할 일이 거의 없다. 때문에 기업 이미지 광고에 주력하고 있는데, 좀처럼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수준 높은 광고를 여러차례 선보인 바 있다.관련 홈페이지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전광판 광고
5달러 자전거 광고
I AM #STEELSTRONG 광고
포스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및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광고
숫자로 보는 포스코 광고
포스코 창립 50주년 기념 광고
8. 논란
한편, 포스코홀딩스의 법적 본사를 서울에 두기로 한 주총 결정에 포항시 지역사회가 크게 반발하며 정치적인 문제로까지 비화된 상태다. 2019년 현대중공업 물적분할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다.2022년 2월 25일, 포스코가 지주사 포스코홀딩스와 미래기술연구원 모두 포항에 설립하겠다는 입장으로 급선회했다. 서울에 설립한 이후 2023년까지 이전 한다는 입장을 밝혀 지역민들 사이에선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듣고 있다. #
2022년 1월 05일 주주서한을 통해 2022년까지 연결배당성향 30% 수준을 유지할 것, 자사주 소각할 것이라고 약속하였지만 2022년 5월 13일 현재까지 2분기동안 계속해서 한번도 지키지 않고 있다.
2021년 연간 연결지배지분순이익(6조 6,170억원)의 30%는 1조 9,851억원이지만, 실제 배당금 1조 2,856억원 이고, 연결배당성향 19%이다.
2022년 1분기 연결지배지분순이익(1조 7,000억원)의 30%는 5,100억원이지만, 실제 배당금 3,033억원이고, 연결배당성향 17.7%이다
9. 관련 문서
[1]
포스코홀딩스가 아닌 POSCO홀딩스로 상장되어있다.
[2]
1개가 1/4 보통주인 ADR 형태로 상장됐다.
[3]
명목상 소재지이며, 2023년 3월 17일 주주총회를 통해 포스코홀딩스 본사의 주소가 서울특별시에서 포항시로 변경됐다. 그러나 서류상의 이전일뿐 조직 및 인원의 이동은 없어 포항시의 반발이 거세다.
[4]
경북 예천 출신으로 경제기획원 운영차관보, 한국외대 총장, 주 중국 대사, 통일민주당 부총재 등을 지냈으며 노태우 정권기에 서울 강남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김영삼 정권 말기 문경·예천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5]
서해안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으므로 종합제철소 건립에 따른 파급효과가 전국적으로 골고루 미칠 것을 내세웠다고 한다. 반면, 약점으로는 바다의 수심이 얕아 화물선의 출입이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6]
이미 다른 공장들이 들어서고 있었으므로 제철소가 추가로 들어선다면 경제적인 상승효과를 낼 것이라는 장점을 어필하였다고 한다. 약점으로 이미 다른 공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상태여서 대단위 부지를 필요로 하는 종합제철 사업에서는 터를 잡기가 곤란하고 정유, 비료공장과 같은 기간산업체들과 한데 있어야 한다는 위험부담도 존재했다고 한다.
[7]
당시는 광역시가 아니라 경상남도 울산시였다.
[8]
현재의 사천시로 기존의 항만 시설을 확장하는 식으로 제철공장 부지를 마련할 경우 개발비용이 적게 들어간다는 것을 앞세웠다고 한다. 약점으로 연관공장이나 야적장을 마련할 만한 배후지가 부족하다는 것이 지적되었다.
[9]
1958년에서 1961년까지 통영 지역구 민의원으로 활동했고, 재무부 정무차관도 역임했다.
[10]
사실 이렇게 따지면 TK출신 박정희와 황병태가 TK챙기기를 했다고 볼 여지도 있다.
[11]
6·25 당시 미8군 사령관으로 작전을 지휘했던 밴플리트 장군이 육군대장으로 예편한 뒤 웨스팅하우스의 고문을 맡으면서 미국 기업 대표들로 방한 투자단을 구성해 종합제철소 예비조사를 실시한 후 포항을 추천했다고 한다. 또한, 포항 바다가 깊어 추가로 준설을 하지 않아도 10만 톤급의 화물선이 드나들 수 있었던 데다 배후지도 넓었다는 장점을 들었다.
[12]
예정에 없던 이야기라 김종필 의장은 다른 일정으로 참석하지 않았고 장기영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박충훈 상공부 장관, 구태회 공화당 정책의장도 당황했다고 한다.
[13]
현대는 이후 인천제철과 한보철강을 인수한 뒤 현대제철을 출범시킴으로써 일관제철소를 갖게 된다.
[14]
추가적으로 삼천포도 있었다.
[15]
국영기업 고위직들에게서 이런 말이 나올 정도인 걸 보면 당시에 호남에 대한 지역차별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16]
이 부지선정을 두고, 포항제철소 설립시부터 포스코 측과 합작관계를 맺어 온 일본 기업인 도멘(동양면화: 원래 미쓰이물산의 레이온 사업부 였다가 훗날 종합상사로 독립) 서울지사장이었던 모모세 타다시는 자서전에서 "하동 쪽으로 붙여 지으려는 것에 대해 내가 반대 의견을 낸 적 있다"라고 써놓기도 했다.
[17]
서울
도봉구의 면적과 비슷하며, 광양 도심 보다 더 크다.
[18]
포항
포스코 부지 넓이는 약 1,200만㎡,
울산
현대중공업 공장 넓이는 약 500만㎡로 알려져 있다.
[19]
심지어 박태준 명예회장 라인인 황경로 회장을 대신하여 새로 선임된 정명식 회장과 조말수 사장은 나름의 개혁을 시도했고 박태준 색채 지우기를 시도했으나 결과적으로 자기들끼리 내분을 일으키며 1994년초에 동반 경질되었다.
[20]
이전에도 대내외적으로 POSCO라는 명칭은 사용되긴 했다.
[21]
1994~1998년 재임.
전두환 정부에서 재무부 장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냈다.
[22]
고로/용광로 최상부에 설치하는 안전 밸브로, 압력이 비정상적으로 올라갈 때 가스를 배출해 설비 가동을 안정시키고 작업자의 안전을 보호한다. 제철, 제강 산업에서는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 설비로 분류된다.
[23]
포스코 직원 A씨(40) 협력업체 직원 B씨 (32) C씨 (53)
[24]
매장량이 리튬 광산 및 관광지로 유명한
우유니 사막의 무려 2.5배에 달한다!
[25]
박태준의 군 선배로 동부그룹에서 고위 임원을 지내고 다시 포스코 부회장으로 복귀한 케이스.
[26]
포스코 사장, 부회장 출신. 원래 박태준의 심복이었으나 정권교체 이후에는 반 박태준 행보에 함께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말수 사장과의 갈등으로 사임했다.
[27]
첫 외부인 대표이사 회장.
[28]
공채 1기 출신 회장.
[29]
두번째 임기에서 중도 낙마했던 선대 회장과 달리 두번째 임기 완주에 성공했다.
[30]
배우 이상엽의 외조부로, 단, 김종진 사장의 초반임기는 등기이사 신분이 아닌 그냥 '사장'이었다. 전임사장인 조말수와 전임회장인 정명식의 갈등관계를 본 김만제 회장의 조치였다고 전해진다. 퇴임 후 동국제강 대표를 맡다가 2001년 헬기 추락사고로 순직했다.
[31]
역임 후 포스코건설 회장으로 이동
[32]
역임 후 대우인터내셔널 부회장으로 이동
[33]
역임 후 포스코경영연구소 부회장으로 이동
[34]
재임 중 포스코교육재단 이사장으로 선출. 2019년 사망
[35]
사장 퇴임 후 4년 뒤 포스코에너지 사장으로 복귀 후 퇴임
[36]
사장 퇴임 후 포스코에너지 사장으로 이동
[37]
역임 후
포스코인재창조원 원장으로 이동
[38]
역임 후 포스코켐텍 사장으로 이동 후 포스코 대표이사 회장 선출
[39]
2022년 부회장으로 승진
[40]
2022년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