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나다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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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나다 Grenad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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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 국장 | ||||
Ever Conscious of God We Aspire, Build and Advance as One People 하느님을 경외하며 하나되어 전진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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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 |||||
국가 | Hail Grenada | ||||
역사 | |||||
1974년
2월 7일
영국으로부터 독립 1979년 3월 13일 그레나다 인민혁명정부 수립 1983년 10월 25일~ 10월 29일 그레나다 침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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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 최대도시 | ||||
세인트조지스 | |||||
면적 | |||||
344km² | |||||
내수면 비율 | |||||
1.6% | |||||
인문 환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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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총인구 | 108,146명 | ||
민족구성 |
흑인 82.4% 혼혈[1] 13.3% 인도계[2] 2.2% 기타 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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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밀도 | 324.6명/km² | ||||
출산율 | 1.70명(2017년) 출처 | ||||
언어 | 영어(공용어) | ||||
종교 |
가톨릭 53% 성공회 14% 기타 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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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 그레나다군 | }}}}}}}}} | |||
하위 행정구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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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 6교구 | }}}}}}}}} | ||
정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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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 영연방 왕국,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 |||
민주주의 지수 | 해당 사항 없음 | ||||
국왕(국가원수) | 찰스 3세 | ||||
국가 요인 | 총독 | 세실 라 그레나드 | |||
총리 | 디콘 미첼 | ||||
여당 | 국민민주회의 | }}}}}}}}} | |||
경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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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 ||||
명목 GDP | 전체 GDP | $12억 8,000만(2022년 10월) | |||
1인당 GDP | $11,160(2022년 10월) | ||||
GDP (PPP) |
전체 GDP | $22억 5,000만(2022년 10월) | |||
1인당 GDP | |||||
수출입액 | 수출 | $2,400만(2020) | |||
수입 | $3억 8,300만(2020) | ||||
외환보유액 | $2억 3,600만(2019) | ||||
신용 등급 | S&P BBB- | ||||
통화 | 동카리브 달러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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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코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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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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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연호 | 서력기원 | |||
시간대 | UTC-4 | ||||
도량형 | SI 단위 | }}}}}}}}} | |||
외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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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수교현황 |
대한민국 1974년 8월 1일 수교 1979년 3월 관계 동결[3] 1984년 5월 관계 정상화 북한 1979년 5월 9일 수교 1985년 1월 15일 단교 1991년 9월 20일 재수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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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가입 | 1974년 9월 17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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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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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그레나다는 중앙아메리카 동 카리브해 소앤틸리스 제도에 속하는 작은 섬나라로, 수도는 세인트조지스(St. George's)이다. 국토면적 340㎢, 인구 약 10만 명의 미니 국가이다. 면적만 따진다면 강화군이나 몰타와 같은 크기이고, 인구 역시 나주시와 비슷하다.
석류라는 이름의 지명이다.
포르투갈의 지원을 받은 콜롬버스가 콘셉시온이라고 명명했으나 하필이면 동료였던 포르투갈/ 스페인 항해사 및 선원들이 스페인의 도시 이름이기도 한 그라나다[4]라는 이름으로 고쳐불러 이 이름이 정착되었다. 이러한 까닭에 아직도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로 이 섬은 그라나다 섬으로 불리며, 후에 영국과 프랑스가 섬의 자치권을 두고 분쟁을 겪은 끝에 영국에 귀속되고, 영어식 발음인 그레나다가 공식명칭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 과정을 거쳤기에 공식 명칭을 옛 명칭이자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명칭인 그라나다로 잘못 기재하는 경우가 가끔 발생하기도 한다.
2. 상징
2.1.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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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1950년대에 카리브해에 있는 모든 영국 영토의 연방을 제안했지만, 더 큰 영토(특히 자메이카와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별도의 주권국으로서의 독립을 원했다. 수세기 동안 존재해온 식민지 지위를 유지하는 대안으로, 영국은 그레나다를 포함하여 남아있는 더 작은 섬들에 "관련 국가 지위(Associated statehood)"를 제안했다. 비록 군사력과 외교권은 없었지만,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국가들은 내부적으로 완전히 자치적이게 되었다. 참고로 그레나다는 1967년 협정에 가입했다.
일부 카리브해 국가들은 완전한 독립을 달성한 후에도 계속 사용할 국기를 채택했지만, 그레나다는 임시 디자인만 사용했다. 이 시절 그레나다의 국기는 섬의 주요 생산물 중 하나인 육두구를 중앙에 표현한 청황록색 가로줄무늬가 있었다.
새로운 깃발이 만들어졌을 때에도 육두구 상징은 유지되었다. 공식적으로 1974년 2월 6일/7일 자정에 게양된 이 특이한 디자인은 식물을 나타내는 녹색과 지혜와 태양을 나타내는 노란색으로 대각선으로 나뉜 배경을 가지고 있다. 가장자리 주변에는 조화와 단결을 상징하는 빨간색 테두리가 있다. 7개의 노란색 별은 그레나다의 원래 행정 구역을 나타낸다.
이와 같은 디자인은 많은 카리브해 국가가 보다 일반적인 수직 및 수평 삼색기를 피하기 위해 선택한 눈에 띄는 새로운 패턴의 전형이다.
2.2.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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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연
열대 기후의 전형이다.3.1. 지리
그레나다 섬은 안틸레스 제도의 최남단 섬으로 , 동카리브해와 서대서양에 접하고 있으며, 베네수엘라와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북쪽으로 약 140km 떨어져 있다. 그레나다 섬의 남쪽에는 그레나딘의 남부 지역을 구성하는 카리아쿠 섬, 쁘띠 마르티니크 , 롱드 섬 , 카일 섬 , 다이아몬드 섬 , 라지 섬 , 살린 섬 , 프리깃 섬 이 있다. 북쪽에 있는 나머지 섬은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에 속하는데,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과 영토 분쟁 중인 섬도 있다. 대부분의 인구는 그레나다 섬에 몰려 있으며, 그레나다 섬 외의 주요 도시는 카리아쿠의 힐스버러가 있다.그레나다 섬은 화산섬이다. 토양과 산악 내륙은 화산섬의 특징이 드러나며 Antoine 호수, Grand Etang 호수 , Levera 연못 등을 포함한 여러 폭발 분화구가 존재한다.
그레나다에서 가장 높은 곳은 해발 840m의 세인트 캐서린 산이다. 다른 산으로는 그랜비 산(Mt. Granby) 등이 있으며 폭포가 있는 여러 개의 작은 강이 이 산에서 바다로 흐른다. 해안선에는 여러 개의 만이 있으며, 특히 남부 해안에는 여러 개의 작은 반도와 곶이 있다.
3.2. 기후
열대 기후를 띤다. 건기에는 덥고 습하고 우기에는 적당한 강우로 ~쾨펜의 기후 구분으로는 As, Aw에 해당한다. 강우량도 많아 연 평균 1800mm 이상을 기록한다. 이 동네가 다 그렇듯 습할 때는 한국의 여름과는 비교가 안되는 꿉꿉함을 느낄 수 있다.
그레나다는 열대 저기압이 주로 발생하는 카리브 해에 위치하고 있어, 허리케인에 의한 피해가 크다. 2004년 9월 7일에 발생한 허리케인 이반으로 인해 3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심각한 경제적 피해를 입은 바 있다. 이때는 주로 그레나다 남부에 피해가 집중되었는데 2005년 7월 14일에 발생한 허리케인 에밀리는 7월 16일에 대카리브해 지역에서 5등급 허리케인으로 정점을 찍은 채로, 허리케인 이반의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은 카리아쿠 섬와 그레나다 북부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3.3. 생물
카리브해의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그레나다에는 대형 동물의 개체수가 부족하다. 그러나 토종 주머니쥐, 아르마딜로, 모나원숭이와 몽구스 등은 흔하다. 세계 조류 목록에 따르면 2024년 7월 그레나다의 조류상에는 총 199종이 있다 . 이 중 하나는 고유종(그레나다 비둘기), 다른 하나는 인간에 의해 도입된 종( 바위 비둘기 )이며 130종은 희귀하거나 우연히 발견된, 주로 그레나다에 서식하지는 않는 종이다.4. 문화
그레나다의 문화는 대부분의 그레나다인이 유래된 아프리카와 그레나다를 지배했던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또 그레나다 문화에 대한 프랑스의 영향은 다른 카리브해 국가들에 비해 적지만 프랑스어로 된 지명은 그대로 남아 있으며 일상 언어에는 프랑스어 단어와 현지 크리올어 또는 파투아어가 엮여 있다. 또 일부 프랑스 건축물이 여전히 남아 있다.4.1. 언어
자세한 내용은 그레나다 크레올 프랑스어 문서 참고하십시오.자세한 내용은 그레나다 크레올어 문서 참고하십시오.
공용어는 영어이지만,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적도 있어서 프랑스어 크레올도 사용한다. 그레나다에서 쓰이는 프랑스어 크레올은 그레나다 크레올로 불린다. 게다가 영어 크레올인 그레나다 크레올 영어도 있다. 그 외에도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앞선 식민지 경합과정때문에 영연방에 가입되어 있고 프랑스어 크레올도 쓰이는 등 프랑스의 영향도 남아 있다.
4.2. 식문화
자세한 내용은 그레나다 요리 문서 참고하십시오.열대 기후 국가답게 빵나무 열매, 바나나 등의 과일과 향신료 사용이 도드라지며 섬나라라는 장점[5] 덕분에 다양한 해산물과 물고기를 이용한 요리가 발달했다.
영국의 식민지배와 서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의 영향으로 원주민인 카리브인들의 식문화에 더불어 영국 요리와 아프리카 요리의 영향을 받아 융합적으로 발달하게 되았다.
한국에서는 그레나다라는 나라 자체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보니 그레나다 요리 또한 굉장히 접근성이 좋지 않으나 그레나다의 식문화가 상당히 훌륭하고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독특한 요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열대 문화권 요리가 입에만 잘 맞는다면 충분히 만족하며 즐길 수 있다.
4.3. 음악
카리브 국가답게 레게의 인기가 많다. 또한 전 세계 어느 나라가 안 그렇겠냐만은 젊은 층에서는 힙합의 인기도 많다.4.4. 성문화
중남미 국가답게 개방적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의외로 기독교가 주류인 국가답게 동성애는 불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물론 그 외에는 몇몇 중남미 국가들에 비해서는 보수적일 뿐이지 대한민국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에 비해서는[6] 확실히 개방적이기는 한 편이다.5. 사회
그레나다의 사회는 전반적으로 안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카리브해의 국가들 중에서는 확실히 선진적인 편이다. 왜냐하면 그레나다가 면적도 작고 인구도 굉장히 적은 소국이기 때문으로, 갱단과 같은 범죄 조직이 생기기도 어렵고 적은 인구와 1차 산업 위주의 산업 구조 덕분에 불평등이 심화되지는 않기 때문이다.[7][8]5.1. 치안
카리브 국가치고는 안정된 치안을 가지고 있다. 워낙 소국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정도 규모의 소국이면 범죄 집단이 기승을 부릴 수 없는 것이, 나라 자체가 워낙 작으니 범죄로 얻을 수 있는 이득도 얼마 없기 때문이다. 마약 문제도 별로 없다. 물론 이건 그레나다가 특별히 뭘 잘해서 그런것은 아니고 그냥 주변에 있는 멕시코같은 나라가 심각하게 엉망진창인 것 뿐이긴 하다. 그래도 범죄율이 높게 나오는 다른 카리브 섬나라인 세인트키츠 네비스, 세인트루시아, 트리니다드 토바고에 비하면 좋은 편이다.6. 행정구역
(시계 반대방향으로)
행정구역이 다소 독특한데, 최상위 행정구역이 교구(敎區, Parish)이다. 그레나다에는 교회가 총 6곳 있는데, 이들이 국토를 6개의 교구로 나누어 운영하던 것이 그대로 6개의 행정구역이 된 것이다. 국민 대부분이 기독교 신자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각 교회와 교구의 이름은 모두 성자의 이름을 땄다.[9]
위 그림에 표시되어 있지 않은 카리아쿠 섬과 쁘띠 마르티니크(Petite Martinique) 지역은 속령의 지위를 가진다.
7. 역사
확실한 증거 및 역사적 사료는 부족하지만 그레나다 섬에는, 고대 시대에 남아메리카에서 온 선주민들이 처음으로 거주한 것으로 여겨진다. 가장 초기의 인간 거주는 기원전 36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호수 중심 심층부의 증거가 발견되어 최소 기원전 3600년 이전부터 기원함이 증명되었다. 비일시적이고 영구적인 거주지들은 기원전 100년에서 200년경에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인구는 750년에서 1250년 사이에 정점을 찍었고, 이후 지역적인 가뭄과 잦은 전쟁의 결과로 유의미한 감소를 겪게 된다.1498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세 번째 아메리카 항해 중에 그레나다를 목격했다는 최초의 보고를 했고, 그것을 '라 콘셉시온(La Concepción)'이라고 이름 지었지만,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1499년에 그레나다 섬을 재발견하였으나 '마요(Mayo)'라고 다시 이름 지었다. 공식적으로 그레나다 섬은 스페인 왕의 소유물로 여겨졌지만, 서류상 소유하는것에 불과할 뿐 실제로 이 시기 스페인 사람들이 정착을 시도했다고 암시하는 기록은 없다. 그러나 이후로도 다양한 유럽인들이 거쳐갔고,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인들은 그레나다 섬의 토착민들과 싸웠고 무역했다고 알려져 있다. 최초로 알려진 정착 시도는 1609년 영국인들이 추진한 모험이었지만, 그들은 원주민인 "카리브" 민족에 의해 학살되고 쫓겨나고 만다.
1649년 자크 딜 뒤 파르케가 이끄는 마르티니크 출신 203명의 프랑스 원정대가 그레나다에 영구적인 정착지를 세웠다. 그들은 카리브해의 수장 카이로앙과 평화협정을 맺었지만 몇 달 안에 프랑스인 공동체와 카리브 원주민 사이에 갈등이 발생했다. 이 갈등은 그레나다 섬이 프랑스의 지배력이 공고해진 1654년까지 지속되었다. 1600년대 그레나다의 프랑스군과 현재 도미니카 공화국,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과 그레나다 원주민 사이에 전쟁이 계속되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그레나다의 대표적인 산업으로는 초콜릿 플렌테이션이 있었는데, 초콜릿은 1714년에 코코아 콩의 도입과 함께 그레나다로 유입되었다.
프랑스인들은 그들의 새로운 식민지를 "라 그레나다(La Grenada)"라고 이름 지었고, 처음에는 아프리카 노예들을 대거 동원한 사탕수수와 인디고 플렌테이션을 기반으로 한 경제를 유지했다.
프랑스인들은 포트 로얄(현재의 세인트조지스)이라고 알려진 수도를 세웠다. 허리케인으로부터 피하려고, 프랑스 해군은 종종 그 수도의 천연 항구로 피신했는데, 근처의 프랑스 섬들에는 포트 로얄의 것과 비교할 만한 천연 항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레나다는 1763년 파리 조약에 의해 공식적으로 영국에 양도되었다. 프랑스는 1779년 7월 그레나다 전투에서 승리한 후 미국 독립 전쟁 동안 이 섬을 다시 점령했으나 1783년 베르사유 조약으로 다시 섬은 영국에게 귀속되었다. 10년이 지난 1793년, 영국의 통치에 대한 불만족으로 인해 1795년에서 1796년의 2년 간 줄리앙 페돈이 이끄는 친프랑스 반란이 일어났으나, 이 반란은 영국에 패배하여 영국은 그레나다의 지배를 공고히 했다.
그레나다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점점 더 많은 아프리카 노예들이 이 섬으로 강제로 끌려갔다. 그러나 1807년 영국은 대영제국 내에서 노예 무역을 금지했고, 1833년에는 노예제도를 완전히 폐지했으며, 1838년에는 노예가 된 모든 사람들이 해방되었다. 이에 따라 인도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노동력 부족을 완화하기 위해 그레나다로 이주했다.
1843년 동인도 제도에서 영국으로 향하던 상선을 통해 육두구가 그레나다에 도입되었다. 이 배에는 소량의 육두구 나무가 실려 있었는데, 그레나다에 남겨둔 육두구 나무가 이 배에 실려 있었으며, 이것이 그레나다가 현재 전 세계 연간 육두구 공급의 거의 40%를 차지하는 그레나다 육두구 산업의 시초가 되었다.
18세기말에 영국과 프랑스는 그레나다를 두고 그레나다 해전을 치른 적이 있었다. 프랑스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후에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으며, 영국령 윈드워드 제도의 일부로 있다가 1974년 영연방 왕국으로 독립했다.
독립 이후에는 에릭 게리(Eric Gairy) 총리의 강권 독재통치 아래에서 혼란을 겪다가 1979년 모리스 비숍[10]이 쿠데타를 일으켜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부인 그레나다 인민 혁명 정부를 선포하여 신보석운동(New Jewel Movement)이 집권당이 되어 입헌군주국 하의 공산주의 정권이라는 기묘한 정부
이후 쿠바군까지 끌어들이며 동구권 국가들과 친하게 지내는 등의 좌경적 행동을 보이며 미국의 눈밖에 나다가 끝내 1983년 그레나다 침공으로 미군에게 점령당하고 정부가 뒤집어졌다. 이후 임시정부를 거쳐 1984년 신국민당(New National Party)의 허버트 블라이즈(Herbert Blaize)가 새 총리로 당선되었고 이후 보수파 신국민당과 중도좌파 국민민주회의(National Democratic Congress)의 양당제가 이어지고 있다.
8.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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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나다 의회 원내 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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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왼쪽에서부터 상원 · 하원 의석 수 순서) | ||
여당 | 야당 | ||
[[국민민주회의(그레나다)|국민민주회의 10석 / 9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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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국민당|신국민당 3석 / 6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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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적 13석 / 15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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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레나다는 찰스 3세를 국가 원수로 하는 입헌군주제 국가이며 여타 영연방 왕국이 그렇듯 이곳에도 총독이 있다. 물론 총독의 존재는 의례적일 뿐 그레나다의 대표자는 총리이다.
하원은 전체 16석 중 1석은 의장, 나머지는 소선거구제를 선출한다. 임기는 5년이며 권한은 영국 하원과 비슷하다. 의회 해산시 총독이 행사할 수 있게 한다.
상원은 10석은 총리에 따라 임명하고, 그 중 3석은 의장 선출 후 다시 협의해서 선출한다. 나머지 3석은 야당 대표에 따라 임명가진다.
9. 경제
중앙아메리카 및 카리브해의 경제 | |||||||||||||||||||||||||||||||||||||||||||||||||||||||||||||||||||||||||||||||||||||||||||||||||||||||||||||||||||||||||||||||||||||||||||||||||||||||||||||||||||||||||||||||||||||||||||||||||||||||||||||||||
중앙아메리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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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니다드 토바고/경제| 트리니다드 토바고]] |
1차 작물 재배가 국가 경제의 핵심인 나라다. 별명부터가 향신료의 섬 (Spice Island)이며, 그 외로 육두구 생산지로 잘 알려져 있다. 1차 산업 외에는 조세피난처로서 국적을 판매해 상당한 돈을 벌어들인다. 중국과 러시아를 무비자로 갈 수 있으며, 친미국가에게만 체결된 미국 E2 비자를 위한 교두보로 사용할 수 있는 점이 주요 세일즈 포인트라고 한다. 그러나 정치가 안정되어 있어 꾸준한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고, 최근에는 국민소득이 $10,000를 넘겼다.
육두구 수출을 통해 대부분의 외화를 벌어들이며 대다수의 주민이 육두구 생산을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 많은 그레나다 주민들이 소규모 자영농으로, 육두구 농업이 그레나다인들에게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전체 재배자의 3%가 전체 그레나다 육두구 판매량의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대기업에 의한 독점이 심한, 바나나 공화국에 가까운 양상이다.
관광업 또한 농업과 함께 그레나다 경제의 주요 산업으로 대부분의 관광지는 수도인 세인트 조지스를 비롯한 남서부에 몰려 있다. 그레나다에는 해안선을 따라 많은 해변이 있는데 이 중 세인트 조지스의 그랜드 앙스 해변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해변 외에는 애넌데일(Annandale)폭포도 꽤 유명한 편이라고 한다. 또 바하마의 명성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미국인 부자들이 크루즈 여행을 오는 경우도 많다.
10. 교통
그레나다는 워낙 작은 섬나라의 한계 때문에 육상 교통은 별로 발달하지 못했다. 부설할 환경도 안 되고 굳이 있어야 할 필요도 없으니 철도도 당연히 없다. 도로 교통의 경우 영국의 식민지였던 과거가 있기 때문에 영국을 따라 좌측통행이다.섬나라답게 주로 해양을 통해 교통이 이루어진다. 공항이 필요할 정도로 영토가 크거나 섬과 섬 사이의 거리가 멀지 않고 개발도상국이다 보니 항공 수송을 주로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어 해양 교통이 가장 발달하게 되었다.
모리스 비숍(Maurice Bishop) 국제공항이 있어 다른 카리브해 섬, 미국, 캐나다, 유럽과 연결한다. 또한 카리악우 섬에는 로리스턴(Lauriston) 공항이 있어 항공 교통 기능을 담당한다.
11. 군사
자세한 내용은 그레나다군 문서 참고하십시오.그레나다는 1983년 군대를 해체하여 현대는 군대 미보유국이다. 위의 그레나다군은 1970년부터 1983년까지 존대했던 그레나다의 인민혁명군을 의미한다.
12. 스포츠
크리켓은 그레나다의 국민 스포츠이다. 카리브의 영연방 국가들에서 전반적으로 크리켓의 인기가 높은데, 그레나다도 그 중 하나이다. 서인도 크리켓 대표팀인 윈디즈(Windies)에 소속되어 국제 대회에 출전하는데, 지역 경기에서는 그냥 그레나다 팀으로 경기를 치르기도 한다.[12]세인트 조지스의 국립 크리켓 경기장에서 국제 대회를 주최하며 2007년에는 다른 카리브 국가들과 함께 2007년 크리켓 월드컵을 공동 개최했다.[13]
축구도 그레나다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 중 하나이며 그레나다에는 그레나다 축구 국가대표팀이 있다. 다만 인기와는 별개로 FIFA랭킹은 170위 정도로 매우 낮은 편이다.
야구의 경우 인기가 저조하다.[14] 몇몇 고등학교 팀이 존재하기는 하나 프로 리그도 없고 메이저리그 등에 진출한 선수도 없다.
소국이지만 카리브 국가여서 그런지 올림픽 실적은 나쁘지 않다. 육상에서 키라니 제임스가 남자 육상 400m 경기에서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12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은메달, 2020 도쿄 올림픽, 2015 베이징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그 이후 2024 파리 올림픽에서도 남자 10종경기와 창던지기에서 동메달을 각각 획득해서 인구 10만 국가인데도 메달 총합이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이다.
13. 외교
자세한 내용은 그레나다/외교 문서 참고하십시오.14. 기타
- 자메이카를 비롯한 카리브의 영국령 영토들과 함께 한 나라로 독립할 뻔 했다. 이 계획은 애저녁에 무산되기는 했으나 이 지역에는 경제 규모가 작은 소국들이 대부분이라 동카리브 달러라는 같은 화폐를 공유하여 어느정도 연결점은 있다.
- 카리브 해의 주변국들이 허리케인에 많은 피해를 입은 적 있는 반면에 의외로 그레나다는 허리케인에 의한 피해가 자주 발생하지 않았다. 이는 그레나다 섬이 허리케인의 남쪽 외곽에 위치해 있기 때문으로 그레나다의 허리케인 관측 이래 여태껏 3번 밖에 피해가 없다고 한다. 다만 허리케인에서 완전히 안심할 수는 아닌 것이, 1995년 허리케인 자넷은 그냥 그레나다를 스쳐가기만 했음에도 엄청난 피해를 안긴 바 있고 가장 최근의 허리케인으로는 2004년 7월 강타했던 허리케인 이반(Ivan)으로서 카리아쿠 섬이 큰 피해를 봤으며 그레나다의 북쪽 지방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 '그래, 나다'와 같은 개드립을 치는 경우도 있다. 영미권에서는 Grenada가 grenade, 즉 수류탄과 표기가 비슷해서 이걸로 드립을 치기도 한다.
[1]
흑인과
카리브 원주민 및 인도계와의 혼혈 전체
[2]
대부분
쿨리의 후손이다.
[3]
그레나다에 공산정권이 수립되자 단교 바로 전 단계인 관계 동결 조치를 취하였다.
[4]
1970년대 후반에
현대자동차에서 수입했던
포드의 동명의 세단의 이름 역시 여기서 유래했다.
[5]
요리에 있어
바다의 유무는 그 차이가 상당히 크다.
[6]
일본은
성진국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세계적인 측면에서 성문화가 개방적인 국가는 아니다.
[7]
같은
카리브
바하마처럼 심각한 빈부격차가 있지는 않은 것이, 그레나다는 다같이 못사는 편에 더 가깝다.
[8]
부의 불평등은 어디에서든 사회 분열의 심지이다.
[9]
마찬가지로 카리브 해에 위치하고 있는
몬트세랫도 행정 구역 명칭이 교구이며, 전부 성자의 이름을 땄다.
[10]
참고로 이 양반의 둘째아들 이름이
블라디미르 레닌 비숍(1978~1994)이다.
[11]
그래서 서구에선 반란이라고 까이고 동구권에선 왕권과 결탁하는 수정주의자라고 까여 결국 인민 혁명 정부를 인정하는 나라가 거의 없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다만, 쿠바와는 협력 관계라 많은 도움을 받았다.
[12]
소규모 지역 경기에서는 가끔 이렇게도 한다
[13]
이 대회의 개막식에서
중화민국 (ROC, 대만)의 국가가 실수로
중화인민공화국(PRC, 중국) 국가 대신 연주되어 고위 관리들이 해고되는 촌극이 있었다.
[14]
사실
중남미에서
야구 인기가 많은 것은 사실이나 카리브 국가들의 경우 워낙 야구로 유명한
쿠바나
도미니카 공화국 정도를 제외하면 딱히 야구의 인기가 대단한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