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ea0029><tablebgcolor=#ea0029> |
KIA 타이거즈 관련 문서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bordercolor=#002561> |
KBO 리그 구단별 팀 컬러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wiki style="color:#181818" |
|||||
KIA 타이거즈 |
LG 트윈스 |
두산 베어스 |
|||
NC 다이노스 |
키움 히어로즈 |
}}}}}}}}}}}} |
[clearfix]
1. 한국시리즈 최강자
KBO 리그 한국시리즈 통산 최다 우승 구단이자 준우승이 없는 구단이다. 일단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기만 하면 그 방법이 7차전 9회말 끝내기 홈런이든, 정규 시즌 상대전적이 열세였던 팀을 한국시리즈에서 압도적 우세로 역제압해버리든 간에 어떤 방법으로든 우승했다.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 시절부터 한국시리즈 12연승을 달리고 있으며 현재까지 한국시리즈 승률 100%다. 개별 경기로만 따져도 64전 48승 2무 14패 승률 0.774(역대 팀 중 1위)로 4경기 하면 1경기만 지는 수준으로 압도적 승률을 보여주고 있다.한국시리즈 불패 기록이 오히려 선수들에게는 큰 부담이 되고 있다는 신호도 있다. 2010년대 타이거즈의 에이스로 자리잡은 양현종도 이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 선배들이 만들어놓은 한국시리즈 전승불패 대기록을 우리가 잘못해 깨버릴까 불안해 선수들이 더욱 긴장하게 된다고 한다.[1]
전통적인 팀 컬러는 해태 창단 초기부터 이어온 끈끈한 팀워크와 찰떡 조화를 이룬 투수진과 야수진의 기량이 꼽힌다. 선수들의 기량보다 더 값진 특징을 꼽으라면 끈끈한 팀워크가 꼽히는데 프로 원년부터 15명도 안 되는 초미니 선수단을 가지고 4위에 올랐던 것은 강력한 팀워크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팀워크의 핵심은 김봉연, 김준환, 김성한, 김일권 등 초창기 핵심 선수들 다수가 같은 학교 출신 선후배였고 이후에도 광주·전남·전북 등 연고지 출신 선수들 간의 유대 관계가 매우 밀접했기 때문이다. 또 해태제과가 모기업이던 시절에는 재정적으로 여유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큰 분란 없이 팀이 잘 굴러간 것 역시 팀워크와 타이거즈 특유의 정신력이 든든한 기반이 됐다는 해석도 있다.
투수진에서는 원년부터 활약한 구단 초대 에이스 '원자탄' 이상윤을 비롯해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 '팔색조' 조계현, '가을 까치' 김정수, '최강의 잠수함' 이강철, '에이스 오브 에이스' 이대진, '언터처블' 윤석민, '대투수' 양현종에 이르기까지 팀의 마운드를 책임지는 투수들이 꾸준히 등장했다.[2]
타선에서는 시대에 따라 모양이 다소 달라졌는데 1980년대에는 빠른 발을 앞세운 이순철의 첨병 능력과 김봉연, 김성한, 김준환, 김종모 등이 중심타선에 위치한 장타력 중심의 KKK타선이 조화를 이루며[3] 우승을 경험했다면 1990년대에는 슈퍼스타 이종범과 호타준족 홍현우, 컨택의 장인으로 꼽히는 장성호 등이 팀을 이끌었다.
2. 한국시리즈를 빼면 한없이 약해지는 가을야구
한국시리즈에서는 패배를 허락하지 않는 그야말로 무적의 팀이지만 이상하게 한국시리즈를 제외한 나머지 시리즈, 특히 KBO 준플레이오프에서는 힘을 못 쓴다. 1989년 플레이오프에서 태평양 돌핀스를 상대로 승리한 이후 30년이 넘게 한국시리즈를 제외한 나머지 시리즈를 승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KBO 플레이오프에서는 1987년과 1989년에 승리한 이후 4번의 플레이오프에서 모두 업셋 당했으며, 통산 4회 진출한 KBO 준플레이오프에서도 정규리그에서 3위가 됐건 4위가 됐건 전부 상위 시리즈에 올라가지 못하고 탈락했다. 통산 3번 진출한 KBO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도 상위 시리즈에 나간 적이 없다.[4] 때문에 12승 무패의 압도적인 한국시리즈 전적을 포함해도 통산 포스트시즌 시리즈 전적은 14승 11패에 그치며(승률 0.540), 바꿔서 말하면 한국시리즈를 제외하면 통산 2승 11패(승률 0.154)로 압살당했다는 소리가 된다.페넌트레이스 2위는 1989년, 1990년, 1992년, 2002년, 2003년으로 꽤 있는데, 이 중에서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년도는 업셋 우승을 한 1989년이 유일하며, 이후로는 전부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다. 1989년에는 페넌트레이스를 2위로 마감해서 플레이오프에서 태평양 돌핀스를 스윕했고, 한국시리즈에서는 페넌트 레이스 1위 빙그레 이글스를 4승 1패로 꺾고 KBO 최초로 한국시리즈 4연패에 성공했다. 1990년에는 시즌 막판까지 LG 트윈스[5]와 선두 경쟁을 하다[6] 뒤집히면서 분위기가 꺾였고 결국 삼성 라이온즈에게 플레이오프에서 스윕당했다. 선동열이 어깨부상으로 빠진 1992년에는 롯데 자이언츠와 만났는데 5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2승 3패로 패했고 2002년에도 LG 트윈스에 2승 3패로 패했다. 이듬해에는 창단 4년 차인 SK 와이번스에 스윕당했다.
3. 포수 기근
리그를 주름잡던 초대형 포수들이 마르지 않고 나오던 두산 베어스와 대척점에 서 있는 팀.사실 김무종, 장채근, 정회열, 최해식, 김상훈 등 꽤 걸출한 선수들이 타이거즈 역사에서 꽤 나오긴 했지만[7] 사실 타이거즈에서 가장 취약한 포지션은 포수였다. 다만 강민호 이탈 이후 포수 자리가 무주공산이 된 롯데 자이언츠보다는 살짝 묻히는 경향이 있는 편.
얼마나 포수 자리가 취약하냐면 통산 WAR이 10 이상 넘는 선수가 1980년대의 장채근과 2000년대의 김상훈 뿐이다. 그나마도 장채근과 김상훈의 WAR은 16, 11이다. 현역인 양의지나 강민호, 은퇴 선수들인 이만수, 김동수, 박경완처럼 통산 WAR 50 이상을 찍으며 공수겸장 최고 포수 소리를 듣던 선수는 구단 역사상 아예 없었다. 수비 능력이 되는 포수들은 꽤 있었으나 공격형 포수는 정말 없었다. KIA에서 고작 반년 있었던 박동원 정도가 전부.
KIA의 포수 기근은 2010년대 중반 이후 심각해졌다. 백용환, 이홍구, 한승택 등 어딘가가 매우 부족한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안방을 꿰차다보니 팀 전력에도 문제가 많았다. 백용환은 타격에서 어느 정도 능력을 인정 받았지만 포수로서의 능력이 거의 낙제점 수준이었고 이홍구는 송구 능력에서 문제점을 드러냈다. 한승택은 끔찍한 수준으로 타격이 약한 점이 흠.
더 큰 문제는 좋은 포수들이 지역 팜에 있었음에도 제대로 데려오지 못한 점이다. 결과론적으로 KIA 입장에서는 가장 통탄스러운 일이 2006년 신인드래프트였는데 광주일고에서 주전 포수를 봤던 강정호와 진흥고에서 주목을 받았던 양의지가 나왔음에도 둘 다 놓쳤다. 강정호는 어쩔 수 없었다고 치더라도 양의지에게는 KIA 구단 측이 "대학을 졸업하면 너를 데려가겠다"면서 양의지 영입에 소극적으로 나섰다. 결과론적이기는 하지만 만약 KIA가 양의지를 고졸 신인 포수로 데려갔다면 KIA의 포수 기근 상황이 달라졌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백용환, 이홍구, 한승택 정도로는 우승이 힘들다고 판단한 구단이 대권 도전의 적기로 맞이한 2017년 우승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어느 정도 수비가 보장되는 포수를 영입하려 나섰고 결국 SK와 충격의 노수광 ↔ 김민식 트레이드를 진행했다. 이 트레이드로 김민식을 데려와 한국시리즈 우승의 꿈을 이뤘지만 김민식도 한계가 있는 포수임이 드러나면서 그를 친정팀인 SSG로 다시 보냈다.
2022년에는 키움 히어로즈와의 트레이드로 박동원을 영입했으나 FA 협상 경쟁에서 LG 트윈스에 밀려 반년만에 놓쳐버렸고 결국 2023년에 삼성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류지혁을 넘기는 조건으로 김태군을 영입했다. 2024년 시즌 전에는 김태군과 3년 25억원의 다년계약을 체결했다. 아무리 봐도 오버페이란 말이 많지만 이 팀의 포수난이 엄청나게 심각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25억원은 어쩔 수 없었다는 평가다.[8]
동성고 출신 신범수가 KIA의 거물 포수가 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을 심어줬지만 많은 팬들과 기자들의 설레발로 끝났고 결국 2024년 2차 드래프트를 통해 SSG 랜더스로 떠났다. 그나마 2024년부터 또 다른 동성고 출신 포수 한준수가 괜찮은 수비력과 강한 좋은 공격력을 보여주고 있어 팬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는 있다. 워낙 전방위에 걸쳐 포수 유망주 설레발이 심했던 팀이라 이번에는 진짜로 포수 잔혹사를 끊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4. 여름 불방망이
7 ~ 8월 기간에 팀의 타격 능력이 급상승하는 이상한 일을 겪고 있다. 잠깐 그러는 것도 아니고 팀 순위에 상관없이 매 시즌마다 계속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어 의문을 자아낸다. 단순 착각이 아닌게, 이미 KIA 팀 내부에서도 그간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러한 현상이 실제로 있음을 파악한 상태라고 한다. 설마했으나 이범호 감독의 예상대로 7월이 되자 타자들이 리그를 폭격하기 시작하면서, 2024년에도 7-8월 불방망이 현상이 유효하게 적중했다. #5. 고마워요 한화
한화 이글스에서 기량을 펼치지 못 하던 선수가 KIA에만 오면 갑자기 포텐셜을 터뜨려 엄청난 재능의 선수로 돌변하는 일이 자주 있다. 오죽하면 '한화는 KIA의 또 다른 2군', '호남팜 말고도 한화팜'이란 소리도 있다. 한화 팬들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어 우리가 사기만 당하는 거 같다고 KIA랑 트레이드도 하지 말자는 볼멘소리도 자주 나온다.송은범의 보상 선수로 한화에서 KIA로 이적한 임기영은 6이닝은 거뜬하게 먹는 리그 최강 4선발 에이스가 되어 KIA의 2017년 우승을 견인했다. 2군을 전전하던 김도현도 트레이드를 통해 KIA에 오자 4·5선발 투수로 각성해 KIA의 2024년 통합 우승에 큰 기여를 했다. 변우혁도 2할을 치던 타자가 트레이드로 KIA에 오니 3할을 치는 타자로 성장했다. '노토바이'라는 별명으로 KIA 팬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은 리드오프 노수광도 당연히 한화에서 넘어온 선수이며, 신종길과 오준혁, 김다원, 한승택, 애매하지만 변우혁도 KIA로 넘어온 다음 기량이 발전해 주전을 뛰었다.
안영명은 이범호의 FA 보상선수로 금방 다시 한화로 돌아가긴 했지만, 한화로 트레이드 된 타자들을 역으로 때려잡고 한화 타선을 폭격하고 다녀 한화 팬들의 분노 유발 선수가 되었다.
불만 지른다고 '김광 숯'이라고 매일같이 욕 먹던 김광수는 KIA로 오더니 갑자기 부활해 마무리 투수로 선수 생활의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한화에서 전력외로 분류된 선수가, KIA로 가더니 화려하게 부활해 한화 타선을 폭격하고 다녀 한동안 한화 팬들 사이에선 금기어 취급을 당했다.
한화 이적생이었던 이범호가 KIA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되고 우승 감독도 하게 되면서 '역시 믿고 쓰는 한화 출신' 이미지가 강해졌다. 다만 이범호는 FA 이적 당시 수비를 많이 못한다는 평은 있었어도 타격은 이미 수준급이었다.
6. 거물 FA를 노리는 팀
시즌 종료 후에 펼쳐지는 스토브리그에서는 관망하는 스탠스를 유지한다. 다른 팀들이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FA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과 달리, 유독 기아 타이거즈는 FA 외부 영입에 적극적이지 않은 스타일이다. 시장 상황을 관망하다가 지를 땐 소위 'S급 선수'들로 불리우는 대어들에 확실하게 지르는 스타일이다. 팀에 꼭 필요한 확실한 거물 아니면 안 산다는 기조다. 설령 B급을 비싼 값에 모셔왔다고 욕을 먹더라도, 정작 영입하고 나면 B급 선수가 S급으로 돌변한다는 점에서 외부 FA 보는 눈은 확실한 편이다.주로 내부 FA를 잡는 것을 중점에 두고 스토브 리그를 운영하는데, 매년 많은 금액을 사용하며 외부 영입에 적극적인 한화 이글스나 롯데 자이언츠와는 정반대의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다. 외부 FA는 거의 안하는데 트레이드는 또 엄청 선호한다는 점에서 SK 와이번스 - SSG 랜더스와 비슷한 면모가 있다.
반면 내부 FA는 냉정한 선수 가치 평가를 넘어 그냥 아주 냉혹한 수준이라고 말이 많았다. 김선빈과 나지완을 4년 40억에 잔류시킨건 계약이 성사되었단 사실 자체가 놀랍단 말이 나왔을 정도로 굉장한 몸값 후려치기란 평가가 많았다. 두 선수의 능력치를 보면 팀에 대한 충성심이 엄청나지 않는 한 다른 선수면 돈 보고 다른 팀으로 이적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계약이었다. 실제로 다른 팀들은 훨씬 높은 몸값을 불렀으나 선수들이 원클럽맨과 프랜차이즈 선수로 남고 싶어 이를 고사했다. 다른 프랜차이즈 스타 양현종을 상대로는 FA 권리 행사를 사실상 1년 보류시키는 초유의 단년 계약을 성사시켜 말이 많았다. 양현종이 아닌 다른 선수였으면 기분 상해서 다른 팀 갔을거란 말이 나왔을 정도다.
자팀 FA 후려치기, 냉혹한 내부 FA 기조를 고수하다 결국 일이 터지고 만다. 내부 FA는 반드시 잡으려고 하는 기조는 2019 시즌이 끝나고 안치홍의 롯데 이적 사건 이후 더욱 강화되었다. 당시 안치홍의 롯데 이적으로 인해 프런트를 향한 타이거즈 팬들의 분노와 원성이 상당했던 것도 한몫 했다고 볼 수 있다. 자팀 선수들에게 너무 냉혹하단 말이 많았는지 이후 103억에 양현종을 잡는 등 점점 내부 FA에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9]그런데 장정석 뒷돈 요구 사건으로 내부 FA인 박동원을 놓치면서 또 사고를 쳤다. 내부 FA인 장현식도 놓쳤는데, 장현식에 50억 이상의 오버페이를 지불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의사[10]만 확인돼 역시 내부 FA 몸값 책정엔 그 누구보다도 냉정한 팀이란 이미지를 남기는 중이다.
역대 타이거즈 구단 역사상 외부 FA 영입은 조규제, 마해영, 이범호, 김주찬, 이대형, 최형우, 나성범 7명 밖에 없다. 신생 구단인 kt wiz가 8회, NC 다이노스가 10회의 외부 FA 영입을 한 것과 비교하면 KIA가 얼마나 외부 FA 영입을 잘 안하는지 알 수 있다. [11]
조규제는 소액 FA라 존재감도 없었고, 마해영은 먹튀 계약이란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이 때 일로 많이 반성했는지 이범호를 시작으로 팀에 꼭 필요한 거물 FA만 물어오기 시작한다.
김도영 이전 타이거즈 주전 3루수였던 이범호는 말할 것도 없고, 야구를 멋있게 한다고 인기가 많았던 김주찬도 B급 매물이란 평가를 본인이 박살내며 S급 실력을 보여 성공한 FA란 평가를 받았다.
2014 시즌, 잦은 부상과 타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외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당한 의문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이대형을 4년 24억에 계약하며 과감하게 뎁스 문제를 해결했다. 역대 최악의 FA, 호구 거래란 악평을 들었으나 신기하게도 처음이자 마지막 기아에서의 커리어를 보낸 이대형은 이 해 프로 통산 유일한 장타율 4할을 기록한 것과 더불어 풀타임을 소화하며 초기 의문과 비판의 목소리를 뒤집는 완벽한 혜자 FA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7 시즌 삼성 최형우와의 KBO역사상 최초의 100억 FA계약을 체결했으며, 명실상부 2017 시즌 기아 타이거즈의 통합 우승의 주역이라 평가받았고, 이후로도 에이징 커브로 인해 주춤거리는 시즌이 있었지만 이적 이후 매년 두 자릿 수 홈런을 기록, 23 시즌부터는 다시금 부활하며 마침내 다시 한 번 2024 시즌 타이거즈의 통합 우승에 지대한 공헌을 기록하였다. 역사상 최고의 FA라는 것에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최고의 선수이며 타이거즈 팬들 사이에서도 역대 최고 혜자 계약이란 평에 의문을 달지 않는다.
2022시즌 NC 나성범과의 6년 150억이라는 초대형 계약 등[12], 큰 거 한 방 스타일을 유지 중이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a, b급 선수 3명을 살 돈으로 S급 선수 한 명에 올인"이라고 볼 수 있겠다.
여담으로 KIA가 정말 가지고 싶었는데 잡지 못한 S급 선수가 있었으니, 그 선수가 양의지다. 프런트에서도 양의지를 굉장히 영입하고 싶어했는데, 1차 FA는 시기적으로 최형우, 나지완, 양현종의 FA가 같은 해 겹쳐 이 3사람의 FA비용을 대느라 125억 원을 마련할 수 없어 양의지를 포기했다고 한다. 2차 FA 때도 프런트에선 양의지 영입을 천명했으나 샐러리 캡에 걸리는 바람에 양의지 영입에 또 실패했다. #
[1]
비슷한 사례가 타 종목에도 존재하는데
1988 서울 올림픽 이후 역대 모든 올림픽 대회에서 단체전 불패 신화를 이룩했던
대한민국 여자 양궁 국가대표팀. 여자 양궁 대표팀도
2024 파리 올림픽 우승 이후 "선배들이 단체전 불패 신화를 썼는데 우리가 잘못해서 망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위기감과 부담감 때문에 경기에 더욱 집중한다"고 말한 바 있다.
[2]
위의 언급된 투수 중에서 윤석민을 빼고는 모두 타이거즈의 연고 지역인 호남 출신 선수들이기도 하다.
[3]
KKK포 외에도 '
김씨 타선', '가장 한국적인 타선'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김일권부터 시작해서 앞서 언급된 김준환, 김봉연, 김성한, 김종모 등에 1980년대 중반까지는 포수에
김무종까지 앉아있는 등 유독 해태 라인업에 김씨 성을 가진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시절에는 감독마저 김씨(
김응용)였다.
[4]
세 번 다 시즌 5위 자격으로 WC 결정전에 나갔는데 역대 WC 결정전 사례를 봐도 5위가 4위를 뒤집고 올라간 업셋 사례는
2024년 와일드카드 결정전 딱 한 번 있다. 그래도 KIA가 처음으로 와일드카드에서 1승이라도 해본 5위이고, 이후에도 키움과 kt 밖에 없다는 점은 흥미로운 부분.
[5]
당시 LG는 시즌 초반 한때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가 중반부터 무서운 상승세를 타고 결국 1위로 페넌트 레이스를 마쳤다.
[6]
타이거즈와 LG의 라이벌 의식은 1990년 8월 26일
잠실야구장 패싸움 사건 이후로 견고해지기 시작했고,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악의
불구대천이 되었다.
[7]
앞서 언급한 포수 중 재일교포였던 김무종을 빼고는 전부 타이거즈의 연고 지역인 호남 출신 선수들이다. 장채근, 정회열, 김상훈은 광주 출신이고 최해식은 전북 익산 출신.
[8]
이후 김태군은 2024 한국시리즈에서 만루포를 때려내며 25억의 가치를 증명했다.
[9]
옵션이 거의 절반인 48억이라 짠돌이 계약이란 말이 많다. 양현종도 몸값 후려치기에 질렸는지 2021년 FA 때 구단에 정말 서운하다는 감정을 내비쳐, '양서운'이라는 별명이 붙는 계기가 되었다.
[10]
후일담에 따르면 그래도 50억에 가까운 매우 큰 금액을 제시했다고 한다. 다만 옵션을 덕지덕지 붙인 KIA와 다르게 LG 트윈스는 52억을 무옵션 전액보장 한다는 엄청 파격적인 계약을 들고와 도저히 머니게임으론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장현식이 어린 시절 좋아했던 팀이 LG 트윈스(엘린이)인데 대우마저 훨씬 좋으니 LG행이 거의 확실한 상황이었다.
[11]
그런데 해태-KIA 타이거즈는 KBO에서 역대 가장 많은 트레이드를 단행한 팀으로, FA영입과 다르게
트레이드는 또 엄청 많이 한다. 2024 시즌까지 타이거즈의 트레이드 횟수는 총 89건이다.
[12]
김도영-최형우-나성범으로 이어지는 압도적인 클린업 타선을 완성하며 주장으로 부임한 24시즌 타이거즈의 우승의 주역 중 한 명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다만 잦은 햄스트링 부상으로 인해 150억이라는 거액에는 다소 아쉽다는 반응이 있는 편. 다행히 24시즌 통합 우승을 차지하며 아쉽다는 평가를 크게 줄이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