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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01:13:15

삼성 라이온즈/팀 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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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플레이 스타일3. 운영 방식
3.1. '돈성' (~2005년)3.2. 육성의 힘 (2006년~2015년)3.3. ' 제일' 라이온즈 (2016년~2023년)3.4. 이종열 체제와 팀 체계 재건(2024년~)3.5. 선수 대우의 명과 암3.6. 육성 및 재활 체계의 흥망성쇠3.7. 아마야구 지원과 리틀야구단
4. 특이 사항
4.1. 좌타 왕국4.2. 삼성 선수단 내 저주
4.2.1. 외국인 선수 잔혹사
4.2.1.1. 대체 외국인
4.2.2. 군경팀 전역자 잔혹사
4.3. 삼성 출신 FA 이적 선수 징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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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BO 리그 소속 프로야구단 삼성 라이온즈의 팀 컬러에 대해 설명하는 문서이다.

2. 플레이 스타일

전반적으로는 작은 구장을 이용하는 타격의 팀이지만 시민구장 이상의 타자친화구장으로 꼽히는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로 이전한 홍준학 체제 이후에는 마운드도 타격도 모두 안 되는 팀이었다. 대체로 타격은 OPS 히터 등 장타자들이 분포하여 주루같은 디테일 야구보다는 타격 생산성으로 점수를 내는 팀이었고, 반면 투수 파트에서는 2000년대 JOKKA나 배영수를 빼면 파이어볼러가 비교적 적고 있어도 제대로 육성되지 않은 반면 상당수의 주축급 선발투수가 경기운영, 제구, 구위, 변화구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기교파 투수였다.

크게 왕조 시절 이전과 이후로 다른 모습을 보인다. 원래는 전체적으로 메이저 리그의 메타를 따르는 전형적인 현대야구식 구단이었다. 애초에 김응용 시절부터 메이저리그식 훈련법을 도입했으며, 김응용 본인부터 미친 수준의 빅볼 성애자이다보니 선수들 몸을 불리고 거포를 만들어야 한다는 식의 운영을 했다. 당시 수비코치로 재직한 류중일 LA 다저스의 수비 교범을 구해 번역본을 만들어 공부하면서 적극적으로 선진 야구를 수용할 정도였다. 또한 웨이트 트레이닝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이마양, 채최박 트리오 등 많은 파워 히터들을 배출했으며 타자 친화 구장인 홈구장을 잘 활용하는 구단으로 호평받다.

그러나 2016년부터 돌입한 암흑기를 거치며 급격히 팀의 지향점이 역행하여 현 시점에는 1980-90년대에나 유행했던 올드스쿨 야구를 지향하는 구단이 되어버렸다. 오히려 왕조 시절까지 보여줬던 2000년대 메이저리그를 따르는 팀 시스템과 운영 기조에서 답보세이거나, 어느 면에서는 그 이전으로 퇴보해버렸을 정도. 메이저리그 시스템은 홍준학 체제를 거치며 아예 사라졌으며 스몰볼을 시도하고 있었고 웨이트 트레이닝도 오승환같은 일부를 빼면 다소 약화된데다 기껏해야 2000년대 메이저리그 이론에서나 통하는 육성[1]으로 인해 팀이 전방위적으로 망가졌다. KBO 리그 자체도 전반적으로 현대야구에 뒤쳐진 행보로 비판받는데, 그러한 KBO 리그에서도 가장 극심한 올드스쿨 야구를 고수하는 구단으로 악명높았다.

전통적인 팀 컬러는 '백수(百獸)의 왕' 사자를 내세운 라이온즈답게 장타를 중심으로 한 빅볼 야구였다. WAR 기준으로 1982년부터 1990년까지 항상 공격력 리그 1위 또는 2위를 차지했고, 이후로도 2016년까지 2007-08년 두 시즌을 제외하면 공격력이 리그 4위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1980년대부터 이만수(1983~1985년), 김성래(1987, 1993년) 등 홈런왕을 여러 차례 배출했고, 리그 역사상 최고의 교타자로 평가받는 장효조도 리드오프로 활약했다. 1990년대에는 초반엔 양준혁이, 후반엔 이승엽이라는 슬러거가 혜성처럼 나타났으며 2002년부턴 롯데 자이언츠 출신 마해영까지 더해 이마양 트리오를 구축하면서 구단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특히 2003년에는 이 이마양 트리오가 도합 127홈런 295타점이라는 폭발적인 공격력을 보여주었다. 이후 이승엽이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하고 마해영도 KIA 타이거즈로 FA 이적하여 이마양 트리오는 해체되었고, 2000년대 중반에 출범한 선동열 감독 체제에선 강속구 선발 에이스 쌍권총 계투진, 그리고 리그 최정상급 마무리 투수로 이어지는 강력한 지키는 야구를 통해 이기는 팀이 되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된 중심 타자들의 이탈로 인해 팀의 공격력은 크게 약화되었고, 이 때문에 80-90년대부터 삼성 야구를 봐온 올드팬들에겐 '재미없는 야구'라고 혹평받기 일쑤였다. 그러나 2008년부터 채최박으로 대표되는 타선 리빌딩이 시작되며 2009-10년엔 공격력이 리그 2, 3위에 올라섰고, 이 시기 안지만의 각성과 윤성환의 선발진 안착, 장원삼의 영입까지 이루어지며 투수진 또한 한층 더 깊이가 생긴 모습을 보였다.

이후 2011년 취임한 류중일 감독 재임기에 들어 최형우, 박석민 등 새로운 파워 히터들이 전성기를 맞으면서 공격 야구의 시대가 돌아왔다. 사실 2011년에는 WAR 기준 타선 4위, 투수진 1위였기에 이때 달성한 정규시즌, 한국시리즈, 아시아 시리즈 트리플 크라운은 타선보단 투수진의 힘이 컸고, 이승엽이 일본에서 복귀한 2012년부터 진짜 공격 야구가 다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특히 2014년에는 비록 역대급 타고투저의 흐름을 타긴 했으나 1987년 삼성의 팀 타율 0.300을 넘어서는 0.301의 신기록을 세웠고, 이듬해인 2015년에 곧바로 0.302로 경신했다. 2015년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도 팀 타율 3할에 도전했으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만난 삼성이 9이닝 1안타로 넥센 타선을 잠재우며 몸소 3할 아래로 떨어뜨려줬고, 2017년 KIA 타이거즈가 달성하기 전까진 팀 타율 3할을 기록한 팀은 삼성이 유일했다.[2] 4년 연속 통합우승, 5년 연속 정규시즌 우승을 이룩한 삼성 왕조의 원동력은 그야말로 불을 뿜는 타선이었다고 할 수 있었고, 호성적과 더불어 파워 히터는 아니지만 배영섭, 이지영, 박해민, 구자욱 등 준수한 신인 야수들도 꾸준히 등장했다. 그러나 2015년 말부터 2016년 말까지 1여 년의 시간동안 박석민, 최형우가 FA를 통해 타 팀으로 이적했고, 야마이코 나바로도 삼성을 떠나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했으며 채태인도 트레이드로 팀을 떠나면서 순식간에 타선이 붕괴되었다. 이후로는 구자욱과 외국인 타자( 다린 러프- 호세 피렐라)를 주축으로 겨우 타선을 지탱하고 있으며 이원석, 강민호, 오재일 등 내부 육성보단 외부 FA 영입을 통해 타선 강화를 꾀하고 있다.

2024년에는 어퍼스윙, 풀히팅, 적극적 타격, 쿠세 읽기, 팀배팅 거부 등의 메이저리그식 타격이론을 극단적으로 신봉하는 이진영 코치를 영입하며 다시 라팍을 이용하는 빅볼야구가 부활, 용병 타자가 10개 구단 중 가장 망한 팀임인데도 KBO 리그 전체 팀 홈런 수 압도적 1위를 달성했다. 이로 인해 출루율이 크게 낮아지며 이진영 코치는 삼성 팬덤에게 비판을 받았지만 적어도 타자 파트는 메이저리그식 야구이론을 신봉하던 2000년대 김응용 시절로 어느 정도는 회귀한 셈이다.

팀 컬러가 잠시 스몰볼+지키는 아구로 바뀐 선동열 시대를 빼면 극단적 빅볼야구를 구사하는 구단답게 도루가 매우 적다. 왜냐하면 굳이 아웃이나 부상의 리스크가 있는 도루를 하면서 상대 배터리를 흔들지 않아도 타선의 엄청난 파괴력으로 손쉽게 대량 득점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구의 클린업 타자 양준혁이 193도루로 팀 통산 도루 1위였을 만큼 준족 성향의 선수가 드물었고, 2010년대 이전까지의 리드오프였던 류중일 박한이도 전형적인 리드오프라기엔 주력이 모자란 선수들이었다.[3] 어쨌거나 삼성은 전통적으로 소총부대보다는 대포부대의 이미지가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4] 오죽하면 팀의 첫 도루왕이 창단 32년만인 2014년에 나왔을까. 하지만 류중일 감독 시기에 어느 정도 체질 개선이 이뤄지면서 첫 도루왕 배출 이후 2015-18년 박해민이 4년 연속 도루왕을 차지했고, 2015년 1군에 데뷔한 구자욱도 어렵지 않게 두 자릿수 도루를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

투수진의 경우 역대 최고수준의 타선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편. 이는 피네스 피처 중시 성향이 문제라는 의견도 있으나, 우수한 피네스 피처들이 많이 배출된 2010년대 초중반을 감안하면 그냥 팀이 투수를 상대적으로, 특히 20세기까지는 상당히 못 키운 것에 가깝다. 20세기 삼성은 레전드급 타선이 분포한 극단적 타격의 팀이었는데, 투수진은 그에 비해서 리그 평균에 미치지 못했다.[5] 1982년 창단 이후 김응용 감독 취임 직전인 2000년까지 19시즌동안 타선은 단 한번도 상위권을 벗어난 적이 없지만, 투수진은 다섯 시즌(1982, 1984, 1985, 1993, 1990)을 제외하면 줄곧 하위권에 머물렀다. 그래서 1980-90년대 당시 선동열을 필두로 막강한 투수진을 갖추고 있었던 해태 타이거즈에게 한국시리즈에서 번번히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고,[6] 투타 밸런스가 비로소 맞기 시작한 200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인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2000년대 중후반 선동열 감독 재임기에는 권오준 오승환으로 대표되는 불펜진이 중심이었지만, 2010년대 초반 류중일 감독 재임기에는 윤성환- 장원삼 원투 펀치를 앞세운 선발진 중심으로 전환했다. 따라서 두 감독의 투수 운용 방식에는 차이가 있었는데, 선동열은 선발 투수를 퀵후크하고 불펜을 일찍 가동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면 류중일은 선발 투수를 되도록 길게 끌고 가면서 이닝을 많이 먹이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선동열 재임기의 불펜진이 어디 가진 않아서 ' JOKKA 라인'으로도 불렸던 막강한 불펜진은 2012년 5월 24일 LG전부터 2014년 5월 27일 롯데전까지 7회 리드시 144연승이라는 절대 깨지지 않을 대기록을 세웠다. 또 앞서 언급했듯이 류중일 재임기에 선발 중심 야구로 전환하면서 2013-15년에는 리그 역사에 남을 수준의 선발진을 구축하게 되었다. 2013년에는 배영수(14승)- 윤성환(13승)- 장원삼(13승)- 차우찬(10승)이라는 토종 10승 투수 4명을 배출하였고, 외국인 투수들이 부상에 시달리지 않고 분발했다면 5명의 10승 투수를 배출하는 흔치 않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2014년에는 오승환이 일본으로 떠나 공석이 된 마무리 투수 자리를 맡게 된 임창용이 크게 부진하면서 불펜진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 와중에도 지옥 수준의 타신투병에서 9개 구단 중 유일하게 선발 5명 전원이 100이닝을 소화해 투수진 WAR 리그 1위를 기록했다. 2015년에는 팀 타선의 역대급 득점 지원까지 힘입어 윤성환(17승)- 알프레도 피가로(13승)- 차우찬(13승)- 타일러 클로이드(11승)- 장원삼(10승), 선발 5명 전원이 10승을 달성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2015년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터진 원정 도박 스캔들로 인해 임창용이 시즌 종료 후 계약 해지되었고, 이후 2016년 시즌 중 안지만이 도박 관련 추가 혐의가 드러나 방출되어 투수진이 급격히 붕괴했다. 사실 이미 2015년부터 투수진 붕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선발진이 5명 전원 10승을 달성했다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외국인 투수 피가로-클로이드의 후반기 부진과 장원삼의 노쇠화라는 어두운 이면이 있었고, 불펜진은 이전부터 권오준, 정현욱, 오승환, 권혁이 차례로 이탈하면서 셋업맨 안지만과 마무리 임창용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아진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도박 스캔들로 인해 셋업맨과 마무리가 이탈했으니 남은 필승조 투수인 심창민이 혹사당하는 것은 필연적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선발진도 2016-17년 외국인 투수들이 전혀 제 몫을 해주지 못하면서 2016년엔 --패패패, 2017년엔 -패패패패 수준으로 전락했다. 암흑기엔 그나마 오랜 기간 부진했던 백정현이 2017년 이후 선발의 새로운 한 축으로 떠올랐고, 2018년엔 비록 한 해뿐이지만 최충연의 각성을 필두로 불펜진 WAR 리그 1위, 투수진 WAR 4위까지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위안거리였다.

전반적으로 발 느린 거포, 파워히터를 선호하는 타선과는 이미지가 맞지 않게도 전성기 김상엽과 배영수[7]를 빼면 역사적으로 경기운영과 제구가 뛰어난 피네스 피처를 선호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사실 중간 계투 마무리 투수는 보직 특성상 당연히 임창용, 안지만, 오승환 등 구위가 압도적인 선수들이 많았지만, 선발 투수 2000년대 초중반 배영수를 제외하면 파워 피처보다는 피네스 피처가 흔한 것이 특징이다. 그 배영수마저도 혹사의 여파로 구속이 하락하면서 2000년대 후반 이후 피네스 피처로 전향했고, 마침 이즈음부터 윤성환- 장원삼 두 피네스 피처가 팀의 토종 1, 2선발로 자리잡아 왕조를 이끌었으며 왕조 이후로도 백정현, 최채흥, 원태인 등 대부분의 토종 선발 투수가 피네스 피처다. 20세기부터 성준, 전병호 등 흑마구 투수들이 다수 배출되는 등 최근 암흑기의 투수 육성 기조를 비판하는 시선에서의 편견과는 달리 투수 파트 쪽에서의 팀 컬러는 암흑기 이전부터도 전반적으로 경기운영이 좋은 피네스 피처가 크게 우세했다.

다만 타선에서 암흑기 이후 죄다 작전수행능력이 뛰어난 교타자 위주로 지명하는 방향으로 틀어버린 것과 달리 암흑기 시절부터는 극도로 피네스 피처 경향이 심해져버렸다. 김한수 시절에 최충연과 장필준이 필승조로 활약했으나 이들이 혹사로 망하자 투수들을 죄다 피네스 피처로 뽑고 JOKKA 중 하나인 정현욱이 그 선수들을 코칭으로 망치며 팀 투수진 팜 전체가 나락을 가버렸다. 즉 이 기간동안에는 경기운영이 좋다고 알려진[8] 공 느린 무툴 투수들과 역시나 쌕쌕이 위주의 강한울식 슬랩 히터로 상위지명을 도배해 팜 전체가 멸망했으며 이로 인해 2023년까지는 운동능력이 떨어지거나 운동능력이 있어도 BQ가 회생불가인 선수들만 팜에 잔뜩 쌓여서 단체로 썩어가는 충격적인 투타 팜을 자랑했었고 이는 투수 파트 한정으로 팀 개편 이후 리빌딩이 진행되며 타선이 뻥야구 체제로 전환된 2024년에도 현재진행형이다. 투수 파트가 육성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걸 감안해야겠지만.

또한 류중일, 김한수, 이승엽, 박석민, 채태인, 김상수, 박해민 등 수비가 뛰어난 야수들이 대대로 많이 배출되었다. 여기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선수들이라도 삼성 야수진은 전통적으로 수비 기본기가 좋은 편이며, 이는 선수들의 타고난 재능과 피 나는 연습 덕도 있지만 2000년대에 이미 MLB의 수비 교범을 들여왔으며 수비의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해온 코칭스태프진의 역할도 컸다.[9]

10개 구단 최고 수준의 훌륭한 통산 성적과는 별개로, 전통적으로 포스트시즌에 약한 팀이다. 우선, 삼성은 2024년 기준으로 KBO 리그 역대 최초 포스트시즌 단일 팀 통산 100패를 달성했다.[10] KBO 리그 통산 승률 1위의 명문 구단에 7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 팀이 무슨 포스트시즌에 약하냐고 여길 수 있겠지만, 삼성의 포스트시즌 통산 승률은 현존 10개 구단 중 한화 다음가는 9위이다. 심지어 가을을 많이 못 간 한화[11]와는 달리 삼성은 가을야구에 많이 진출했기에 가을야구에서의 부진이 더욱 두드러진다. 2010년대 이후로 LG나 키움의 팬덤이 자 팀이 포스트시즌에서 약하다는 불평을 하지만, 삼성보다는 포스트시즌 승률이 높은 편이다. 이것도 그나마 2002년-2014년에 상당수 끌어올려놓은 것. 특이사항으로 삼성은 준플레이오프에는 강하지만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에서는 열세를 보이며, 이는 해태-KIA 타이거즈와 정반대의 요소이다.[12]

삼성이 포스트시즌에서 약세를 보이게 된 데에는 1980년대부터 이어진 달구벌의 저주가 상당히 컸는데, 이 기간동안 KBO 리그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가을에 약한 투수였던 김시진과 가을야구에서 클러치 실책을 잦게 한 장효조[13] 등의 문제로 포스트시즌, 특히 한국시리즈 승률이 몹시 좋지 않았다. 결국 2002년 백투백 홈런으로 따낸 우승 전까지 한국시리즈 우승은 하지 못했으며, 각 기간동안에도 팀에 포스트시즌에서 못하는 것으로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 한두명쯤은 꼭 있을 정도.[14] 왕조때 윤성환/장원삼 등 빅게임 피처가 있었던 것과는 정반대.

삼성에 굵직굵직하게 포스트시즌에서 부진한 선수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상당히 나쁜 통산 포스트시즌 성적의 근본 원인은 삼성 선수들이 전반적으로 새가슴이라서라기보다는 삼성이 전통적으로 타격 위주로 팀을 꾸렸기에 발생했던 문제로, 단기전에서는 기본적으로 마운드의 위상이나 비중이 훨씬 커지는데 반해 삼성이 한창 가을야구에서 죽을 쑤던 20세기까지는 삼성의 마운드 뎁스가 팀 성적에 비해 좋지 않은 편이었기에 매번 가을에서 물을 먹었다. 타격의 경우 컨디션이나 멘탈리티에 따라 기량이 널을 뛰는 편이고 안 그래도 한국시리즈 우승 가뭄으로 전반적인 부담이 심했던 상황에서 삼성의 타자들이 포스트시즌, 특히 한국시리즈 등 투수력과 집중력이 매우 높아지는 무대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삼성이 포스트시즌에서 그나마 강해진 2000년대 이후로 김응용 시기와 선동열 시기를 거치며 마운드가 개선되었고 이들이 상당수 미스터 옥토버 기질까지 있어 그렇게 가을야구에서의 약점까지 사라지며 삼성 왕조가 건설된 것이다. 그러나 암흑기가 시작된 2015년 한국시리즈 이후로는 다시 포스트시즌에 강한 팀이라고 보기도 어려워졌으므로,[15] 최고의 명문 구단 중 하나로 꼽히는 삼성이 앞으로도 8년간의 암흑기를 떨쳐내고 그 위상을 잡으려면 차츰 해결해나가야 하는 문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3. 운영 방식

크게 돈성 시절, 왕조 시절, 암흑기 시절로 나뉜다. 돈성 시절에는 돈을 많이 썼을 뿐만 아니라 육성 능력도 리그 최상위 수준으로 좋았지만 정작 외부 영입은 먹튀가 상당히 많았던 구단으로 회자되며, 왕조 시절에는 이전처럼 돈을 많이 쓰지 않아도 팀 전력을 최대한 활용해 리그를 제패한 팀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이 시기부터 육성에 소홀해져 암흑기 시절부턴 과도하게 강해진 프런트의 힘으로 그릇된 운영을 하는 구단으로 손꼽히고 있다.

시기 무관 모기업 삼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부유한 이미지의 구단이다. 통칭 돈성. 삼성이 가장 가난하다고 인식된 2015-2016년에도 평균 연봉은 리그 중위권 이상이었으며, 홍준학 체제가 한참 지나간 2020년대에는 다시 중상위권이 되었다. 이 기간동안 대놓고 자립경영을 선포했는데도 말이다. 또한 암흑기 이전에는 전력은 좋지만 운영은 삼성그룹 고위층의 생각에 의해 좌우되는 구단이었다.[16] 현재는 팬덤의 입김도 세졌고 프런트 내부의 지속적인 반성을 거쳐 선수들을 잘 대우해주는 팀으로 변모했지만, 과거엔 비싸게 사와서 쓰다가 필요 없어지면 갖다 버리는 전형적인 삼성식 운영으로 악명이 높았었다. 이와 같은 철혈식 운영으로 인해 김태한, 박충식, 김상엽 등 에이스 투수들이 쉴 새 없이 구르다 버려졌고, 이만수, 김시진, 장효조 등 팀 프랜차이즈 스타를 넘어 한국 야구 역사에 남을 전설이었던 선수들까지도 매몰차게 내쳐졌다.[17] 삼성은 팀 육성 기조에서 MLB를 닮아왔지만, 팀 선수 대우같은 면에서도 MLB를 닮아버린 씁쓸한 면이 있다. 원년부터 활동하며 스타 선수를 여럿 배출했음에도 공식 은퇴식을 치러준 선수가 류중일, 김현욱, 김한수, 전병호, 김재걸, 양준혁, 이승엽, 권오준까지 고작 여덟 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삼성 구단이 선수들을 어떻게 생각해왔는지 방증한다. 그마저도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삼성의 뿌리깊은 우승 콤플렉스가 해소되기 전까지 은퇴식을 경험한 선수는 류중일 딱 한 명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2002년 V2 이후로는 구단과 팬덤 내에 만연했던 우승제일주의가 충족되면서 더 이상 저런 행보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우승 이후 프런트는 기존 프랜차이즈 스타들의 대우를 개선하는 데 힘을 기울여서 2003년에는 뒤늦게나마 이만수를 영구 결번자로 지정해주었으며,[18] 은퇴한 레전드들을 코치로 기용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은퇴식도 신경써서 치러주는 것은 당연해졌다.

김응용 감독 시절까지는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적극적인 선수 영입으로 한국의 뉴욕 양키스 같은 올스타 팀 이미지였는데,[19] 선동열 감독 부임 이후 선수 영입을 자제하여 그 이미지가 희석되었다. 가장 큰 계기는 2004년 우승팀 현대 유니콘스 출신 FA 심정수 박진만을 각각 4년 최대 60억, 4년 최대 39억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으로[20] 영입하여 2005년 우승을 이룬 이후, "그렇게 돈 써서 우승 못하는 팀이 어디 있냐"는 김재박 현대 감독의 비아냥에 자존심이 상한 선동열 감독이 더 이상 FA 영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그 이후 류중일 감독이 취임하고 6년간 네 번의 통합우승을 이끌었지만 외부 FA 영입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프런트는 FA 영입은커녕 '합리'를 외치면서 정현욱, 배영수, 권혁 등 집토끼마저 하나 둘씩 놓치기 시작했고,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팀 자체가 붕괴될 수준은 아닌데다 배영섭, 박해민, 구자욱 등의 신규 내부 육성 선수들도 꾸준히 나오며 빈 곳을 메꿔 괜찮았었는데 원정도박 사건으로 팀에 대한 지원 자체가 완전히 끊겨버리고 2016년 1월 제일기획 이관을 전후하여 FA 신분이 된 박석민, 최형우, 차우찬을 모두 타 팀으로 떠나 보내면서 전력 유출이 매우 심각해졌다. 더군다나 팜에 대한 지원도 아예 없어져 팀이 총체적으로 붕괴했다. 이로 인해 감독 계약 마지막 해인 2016년에는 구단 역사상 최하위인 9위로 추락했다. 이때부터 그동안의 '돈성' 프레임이 완전히 벗겨지고 '거지성'이라는 팬덤의 한탄이 시작되었다.

그러다 2017년 출범한 홍준학 단장 체제에선 이원석(4년 27억), 우규민(4년 65억), 강민호(4년 80억), 오재일(4년 50억) 등 외부 FA 영입에 다시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 육성 시스템 구축이 아니라 노쇠한 30대 선수들을 FA 영입하는 방식으로만 전력 강화를 꾀하고 있기 때문에 구단 성적은 여전히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외부 FA 영입 자체는 오히려 홍준학 시대때 돈성 시절 이후로 압도적으로 많이 이루어졌으나 상당수 실패한 영입이 되었다. 이종열 체제 역시 육성에 신경을 쓸 뿐 거금을 들여 외부 자원을 영입하는 데 결코 주저하는 성향이 아니다. 종합적으로 삼성은 구단 운영비가 다른 그룹보다 많은 편인 빅클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구단 운영 방식은 바로 삼성그룹의 전체를 이끌었던 이건희 회장의 영향이 크며 생전에도 이건희 본인은 야구사랑이 각별하여 후진 양성을 위해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라는 2군 구장을 설립하기도 하였고 돈성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을 만큼 엄청난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3.1. '돈성' (~2005년)

2002년 전까지 준우승을 일곱 번이나 하며 번번이 한국시리즈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고,[21] 이 때문에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타 구단들의 경영난을 틈타 무지막지한 자금력으로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당시 현대 유니콘스와 함께 야구계를 돈으로 양분하기도 했다. 야구 팬들과 언론사는 앞다투어 '한국의 뉴욕 양키스'라는 별명을 안겨주었다. 즉, 한 마디로 당시 야구판의 공공의 적이라는 소리를 듣기까지 했다는 말이다.

현금 트레이드로 데려온 임창용 조계현(해태), 김기태 김현욱(쌍방울). 2000년 FA 제도가 도입되면서 이강철(해태)과 김동수(LG)를 영입한 것을 시작으로 2002년에는 양준혁(LG)을 재영입, 2004년에는 박종호(현대)를, 2005년에는 가장 임팩트가 큰 심정수 박진만(현대)를 FA로 영입했다. 이외에도 해태에서 방출된 이순철을 영입하거나 선수협 파동으로 소속 팀과 갈등을 빚은 마해영을 트레이드해 데려오는 등, 한동안은 우승만을 위해서 외부 자원들을 마구잡이로 영입하기도 했다.

이렇듯 투자를 가장 많이 하는 팀임에도 불구하고 2002년 전까지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했다.[22] 분명 삼성의 공식 첫 우승은 1985년임에도, 삼성이 콩라인을 탈출한 건 김응용 감독이 온 후의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알고 있는 야구 팬들이 적지 않다. 심지어 삼성 구단과 선수들, 팬들조차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며 첫 한국시리즈 우승 뒤에야 1985년 우승 기록도 자신 있게 우승 기록으로 얘기하게 된다.

그나마 삼성이 돈성의 오명을 벗은 것은 김재박 당시 현대 유니콘스 감독이 '돈으로 누가 우승 못 해'라며 삼성을 향해 디스를 걸었고[23] 이 말을 듣고 열 받은 선동열 감독이 FA 영입을 자제한 이후부터다. 사실 심정수 박진만 영입 후, 2009년 장원삼(히어로즈) 30억 현금 트레이드설 전후 타 팀에서 큰 돈을 들여가며 데려온 선수는 없다. 트레이드로 데려온 KIA의 손지환, 한화의 심광호 정도. 김재박 감독의 발언 후 2009년에도 처음으로 데려온 선수가 트레이드로 영입한 두산의 채상병. 이 경우는 좌완 투수 지승민과의 1:1 트레이드였으니 돈과는 상관없다. 그리고 심광호 채상병의 트레이드 역시 진갑용 현재윤의 부상만 아니었으면 당연히 하지 않았을 트레이드였다.[24]

김재박 감독의 발언 후 자체적으로 짜임새 있는 투타 라인을 리빌딩하면서 돈성 오명에서 벗어난 상태였으나 2008년 11월 14일, 히어로즈 장원삼을 30억에 지르며 돈성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후 다른 6개 구단의 반발로 인해 트레이드 승인 불가를 받아 장원삼을 돌려보냈지만, 1년 후에 결국 영입했다.

선동열 감독도 FA 영입을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었다. 2010년 거포 FA 김태균도 영입하려 했으나 엔화에 밀려 실패했다.

하여간 이런 인터뷰가 개그 소재가 될 정도로 삼성의 머니 파워는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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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KBS '미디어 포커스'에서의 전화 인터뷰 장면 캡쳐. 여담이지만 이 당시 프로그램에서는 케이블 스포츠 채널 3사에서 삼성 경기의 중복 중계가 심각함을 제시했고, 스포츠 방송사들은 삼성 구단과의 계약(= 몇 경기 이상 중계하는 조건으로 돈 얼마를 받는 조건) 때문이라 주장했다. 이 장면은 그에 대한 반박[25]. 이 당시 삼성 라이온즈의 중복 중계는 심각한 수준이어서, 지금처럼 한 경기당 하나의 채널이 확보되지도 않은 환경이었고 당시 신생 채널이었던 엑스포츠는 MLB만 중계하던 상황에서 삼성 경기 중계율은 100%를 초과했고 다른 팀들이 피해를 입었다. 특히 상대적 비인기 구단인 현대, SK(당시 중계율 7, 8위)가 많이 중계되지 못했다.

3.2. 육성의 힘 (2006년~2015년)

그러나 선동열 감독 취임 첫 해인 2005년 심정수 박진만을 영입한 것을 끝으로 2016년 후임 류중일 감독이 물러날 때까지 10년 넘게 외부 FA 영입에 돈을 전혀 쓰지 않으면서, 팬들로부터 "돈성이라 놀림 받아도 좋으니 제발 외부 영입 좀 해라"는 아우성이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통합 3연패를 달성한 2013년 한국시리즈 송삼봉 단장이 외부 FA 50억이면 그 돈으로 2군에 투자할 수 있다는 인터뷰로 올해도 FA 영입은 없다고 쐐기를 박으면서 팬들은 "이제 우린 돈성이 아니라 거지성이다"라고 농반진반으로 자조하곤 했다.

사실 팬들이 이렇게 엄살을 부렸지만 내부 FA 단속은 잘 했다. 비록 정현욱이 떠났고 배영수 권혁도 떠났지만, 정현욱과 배영수의 경우 프런트가 굳이 오버페이 하기 싫어서 보내준 것이고 권혁은 더 많은 등판 기회를 얻고자 떠난 것이라 감독이 기용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프런트가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이 중 권혁은 한화 이글스에서 '불꽃남자'로 거듭나며 준수한 활약을 했지만, 정현욱과 배영수는 이적한 팀에서 먹튀가 된지라 결과론적으로 삼성 프런트의 판단이 틀렸다고 볼 수 없다. 또 잡아야 할 집토끼는 웬만해선 모두 단속했는데, 2013년 말 장원삼을 4년 60억에, 박한이를 4년 28억에 잡았고 2014년 말엔 투수진 핵심 전력인 윤성환 안지만을 각각 4년 80억, 4년 60억에 잔류시켰으며 내야 유틸리티 자원인 조동찬도 4년 28억에 계속 푸른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한국에선 프로야구가 독재자 한 명 정치적 이익을 위해 대기업들을 반강제 참여시켜 출범한 것이기에 태생부터 기형적이었고, 때문에 수익성은 거의 없으며 단순한 기업간,[26] 지역간[27] 자존심 대결이거나 오너 일가의 비싼 취미생활,[28] 좋게 봐줘야 재벌의 사회 환원에 불과한 만년 적자 사업이기 때문에 모기업에 손을 벌려 고액 FA를 영입하는 것보다 내부 육성에 집중하는 것이 더 옳은 선택일 수 있다. 실제로 삼성은 선동열 시대에 채최박이라는 클린업 트리오와 안지만, 윤성환, 차우찬이 육성되었고, 류중일 시대엔 이들의 기량이 한층 더 성장함과 동시에 배영섭, 이지영, 박해민, 구자욱 등 새로운 야수진과 심창민이라는 젊은 필승조 자원이 발굴되었다. 정규시즌 5연패, 통합 4연패의 삼성 왕조는 이러한 육성의 힘에서 나온 것이지, 당시까지 남아있던 세간의 '돈성' 이미지처럼 단순히 돈을 많이 써서 이룬 성과가 아니었다. 프런트가 꼭 잔류시켜야 할 내부 FA를 다 놓쳐 놓고 육성 핑계를 댄다면 문제가 되었겠지만, 잡을 집토끼는 알뜰하게 다 잡았고 외부 영입 없이도 전무후무한 호성적을 올렸기에 삼성 프런트의 판단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팬들의 '거지성'이라는 한탄은 그저 추가적인 전력 보강을 원하는 여론이었을 뿐이었다.[29]

반면 이 시기 내부에서 육성된 최채박, JOKKA 등은 KBO 리그를 대표하는 대선수들로 성장하며, 삼성 왕조의 주요 원동력이 되었다. 즉 이 기간동안의 삼성의 내부 육성은 동기간 두산이나 2010년대 키움 수준의 역대 최고수준이었다는 것이다.[30] 특히나 삼성 왕조는 장원삼 등 극소수를 빼면 대부분의 선수가 내부 육성자 출신이기에 고평가를 받는데, 이로 인해 2000년대 중반 자체부터 성적 자체는 2000년대 말 왕조 대비 리빌딩으로 인한 선동열 시대 암흑기 몇 년 정도를 빼면 여전히 굉장히 좋았다.

3.3. ' 제일' 라이온즈 (2016년~2023년)

그러나 2014년 8월[31] 안현호 단장 부임부터 2023년 10월 홍준학 단장 퇴진까지 1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삼성이 자랑해왔던 시스템이 초토화되면서 구단 역사상 유례가 없는 최악의 암흑기, 잃어버린 10년을 겪고 말았다. 2014년에는 통합 4연패의 눈부신 호성적에 가려 문제점이 당장은 드러나지 않았으나, 본격적인 트리거인 원정도박사건이 터진 2015년 말부터 몰락의 서막이 열리기 시작했다. 두산 베어스와의 2015년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터진 원정 도박 사건 윤성환, 안지만, 임창용이 연루되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되었고, 투수진 전력의 절반 이상이 떨어져 나간 탓에 타선에도 심한 부담감을 안기면서 결국 투타 모두 무너져 통합 5연패 달성에 실패했다. 그리고 이걸 기점으로 삼성그룹 차원에서 야구단에 대한 관심을 끊어버리며 팀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그 해 연말 스토브리그에선 FA 자격을 얻은 프랜차이즈 스타 박석민을 놓쳤고,[32] 2014-15년 삼성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타자였던 야마이코 나바로 워크에식을 이유로 재계약하지 않았으며 이런 와중에 단장은 "외부 FA 영입은 없다"고 선언해버렸다. 거기에 2016년 말에는 팀의 4번 타자이자 역사상 최고의 좌타자 중 하나인 최형우를 KIA에, 좌완 선발 에이스 차우찬을 LG에 뺏기게 되며 거지성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급격한 전력 유출의 배경에는 2016년부터 삼성 라이온즈가 삼성그룹 계열사의 지위를 잃고 제일기획 산하 구단으로 격하된 탓이 크다. 모기업 없이 구단 명명권 판매와 각종 광고 수입으로 연명하는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가 자리를 잡은 2013년 이후로 삼성 구단 수뇌부에서도 '넥센을 본받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곤 했지만 당시에는 그저 지나가는 말로 여겨졌는데, 어쩌면 '돈 없는 구단'이라는 현실이 삼성 라이온즈에게 닥쳐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미 2014년부터 삼성스포츠의 다른 종목 구단들은 제일기획으로 하나 둘씩 이관되고 있었고, 2015년 들어 삼성 라이온즈도 제일기획 산하로 옮겨진다는 말이 돌다가 연말부터 빠르게 가시화되어 결국 2016년 1월 1일부로 제일기획에 이관되었다. 제일기획 이관이 갑자기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3년간 순차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추가적으로 5년의 자생 준비 기간을 줄 것이라고는 하나, 이건희 회장과 달리 이재용 부회장은 "프로스포츠가 흑자를 내지 못해 매년 수백 억씩 지원을 받는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보는 사람인 만큼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대규모 자금 동원은 불가능하다고 봐야한다. 그러나 젊은 시절부터 야구광의 모습을 보여줬던 이재용 부회장이 아버지처럼 강력한 지원을 통해 명문 구단의 역사를 이어갈 것이라 기대했던 많은 팬들은 그간 익숙하지 않았던 긴축 운영에 격렬한 배신감을 느끼며 프런트와 이 부회장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그룹에선 "최대주주가 제일기획으로 바뀌었을 뿐, 그룹의 지원 등 지금까지 운영과 달라지는 점은 없다"라고 강조했으나 당장 2016년 스프링 캠프에서 선수 훈련수당부터 줄어들었다. 본래 삼성 구단은 1차 스프링 캠프 장소인 에서 약 86만 원, 2차 스프링 캠프 장소인 오키나와에서 약 110만 원씩 선수들에게 지급했으나, 2016년엔 괌에서 약 62만 원, 오키나와에서 약 55만 원으로 감액되었다. 뿐만 아니라 삼성 트레이닝 센터도 그 해 전반기도 끝나지 않은 시점에 제일기획 프랑스 매각설이 기사화되면서 '올해가 삼성 라이온즈의 마지막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까지 확산되었고, 정규시즌 디펜딩 챔피언이 최종 9위로 마감하는 망신까지 당한 여러모로 상처 많은 한 해였다.

2017년 홍준학 단장 체제가 출범하고 FA 시장에서 내야수 이원석을 4년 27억에, 투수 우규민을 4년 65억에 영입했으나,[33] 최형우 차우찬을 놓친 마당에 이는 철저히 팬심 달래기 목적의 기만에 불과하다. 단순히 표면상 금액 차이만 봐도 이원석과 우규민은 도합 92억이지만, 최형우(4년 100억)와 차우찬(4년 95억)은 도합 195억으로 100억 이상 아낀 것을 알 수 있다. 그래 놓고 이원석과 우규민, 그리고 김헌곤 등으로 최형우와 차우찬의 공백을 메꿀 수 있다고 언론플레이를 했지만, 결과는 승률 4할에도 못 미치는 9위라는 팀 역사상 최악의 성적을 내고야 말았다. 오히려 92억이나 쓰고 팀이 망해버렸기에 고비용 저효율 막장 정책이었던 셈.[34] 이후 '저비용 고효율' 정책을 폐기를 선언하고 2017년 말 FA 시장에서 포수 강민호를 4년 80억에 영입하며 다시 '돈성' 시절의 위엄을 재현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2016년 제일기획 이관 이래 수년 간 삼성 구단의 위상 하락은 분명히 나타났다. 선수단 운영비만 봐도 2014년 398억, 2015년 423억이었지만, 제일기획 이관 후 2016년 329억, 3017년 370억, 2018년 267억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35] '저비용 고효율'을 외쳤던 2016-17년에는 라이온즈 구단 사장의 직급도 부사장급으로 격하되었었다. 실제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사장을 지냈던 김인은 사장급이었으나 2016년부터 부사장급 인사인 김동환이 맡았고, 2018년부턴 임대기(2018~2020)- 원기찬(2020~2023)- 유정근(2024~)으로 이어지는 사장급 사장들이 다시 나타났다.

매우 암울했던 2016-17년을 지난 후론 모기업의 구단에 대한 대우는 다시 괜찮아졌지만, 홍준학 체제 들어 가장 큰 문제는 구단의 자금 지원이 아닌 답이 없는 육성 성과와 프런트의 운영 행태였다. 홍준학 단장은 30년 가까이 구단의 마케팅 부서에서 일한 인물답게 구단의 상업성 증대에는 확실히 강점이 있지만, 팀의 운영과 육성 문제에서 심각한 약점을 드러냈는데 타격 파트에서는 작전수행능력, 투수파트에서는 경기운영만 중시하는 올드스쿨한 모습으로 운동능력을 극단적으로 경시해 구단 팜을 말 그대로 초토화시켰다. 이로 인해 이 기간동안 삼성의 육성은 말이 필요없는 10개 구단 최악으로 악명이 높았다. 특히 장기적 안목에 입각한 선수 육성과 시스템 구축이 아니라 어중간한 급의 FA 영입과 트레이드를 통해 전력을 보강하여 한두 번의 가을야구를 노려보는 한탕주의식 운영을 했으며, 홍준학 체제 7년간 성적이 9688378이란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그 결과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예를 들어 2017년 FA 영입한 투수 우규민의 경우 허리 문제가 있음에도 지나치게 오버페이하여 영입했고, 결국 당초 기대했던 토종 2선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며 구단 역사에 남을 먹튀로 남았다. 2018년 FA 영입한 포수 강민호도 실제 금액 92억(표면상 80억)에 원소속팀 롯데에 지급한 보상금 20억까지 112억이나 투자했음에도 4년간 WAR을 약 11.5 쌓는데 그쳤으며, 2021년 4년 50억에 영입한 1루수 오재일도 3년간 누적 WAR이 6을 겨우 넘기고 계약 마지막 해엔 WAR이 음수일 정도로 부진하다가 5월 말에 kt wiz 박병호와 트레이드되었다. 트레이드에서도 사실상 데드암 상태에 놓인 심창민을 NC 포수 김태군과 바꾼 성과는 있었지만, 그 전인 2019년 공인구 반발계수 하락으로 투고타저가 예상됨에도 포수 이지영을 희생하여 공갈포 타입의 김동엽을 데려와 실패한 트레이드가 없었다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되었을 트레이드였다. 또한 원래 삼성이 외국인 선수를 고르는 눈이 나쁘다고는 하지만 홍준학 체제 초기인 2017년부터 2019년까진 다린 러프를 제외하면 모두 실패였고, 2020년에는 데이비드 뷰캐넌 하나만 건졌으며 2021년 호세 피렐라가 합류한 이후 2022-23년 일명 '--' 트리오가 결성되며 그나마 체면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신인 드래프트 지명에서도 2019년 노시환 거르고 이학주, 문보경 거르고 양우현, 2022년 윤동희 거르고 차동영 등 실링을 무시한 헛발질을 반복해 현재 삼성 2군 팜에는 '작은 육각형' 타입의 야수들만 넘쳐 나고 있으며, 투수진에서도 언더 사이즈의 피네스 피처를 지명하길 거듭하고 정현욱 등 코치진의 무능까지 겹친 탓에 홍준학 체제 7년간 원태인 외에 키워낸 투수가 단 하나도 없다. 이렇듯 홍준학 체제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실책을 저질렀고 팀 성적은 수년 간 바닥을 기었지만 단 하나, 마케팅 실적만큼은 좋았기 때문에 그룹 수뇌부의 개입 없이 구단 운영을 할 수 있었다.

한편, 이런 상황에서 2021년 2월 28일 SSG 랜더스의 구단주이자 범삼성가의 일원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클럽하우스 인터뷰를 통해 " 삼성그룹 일가는 더 이상 야구에 관심이 없다."고 언급한 이후 삼성 팬덤에선 분노와 허탈함을 드러내는 이들이 다시 많아졌다. 특히 그 당시 야구단 매각 의사가 있다는 지방 명문 구단이 결국 삼성이었냐는 얘기도 적지 않다.[36] 분노한 팬덤의 의견은 대부분 "역시 그럴 줄 알았다", " 병상에서도 야구 중계 틀던 회장님[37]이 돌아가셨다고 이렇게 엿을 먹이냐"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다만 "정용진이 외가 식구들 일을 그렇게 함부로 말하겠느냐"는 의견도 있으며 "그룹에서 정말 관심이 없었다면 거물급 임원에게 사장직을 맡기고 외부 FA 영입도 그렇게 척척 해줬겠느냐"는 정용진의 주장에 대한 반박도 있다. 물론 정용진이 저 말을 한 것도 본인이 재계에서 제일가는 야빠이기 때문이며,[38][39] 실제로 삼성그룹은 프로스포츠 중 그나마 야구에 여전히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여하튼 2014~2023년 약 10년동안 팀 운영은 롯데 자이언츠 한화 이글스, 암흑기 LG 트윈스와 비견되거나 이들을 능가하는 수준의 역대 최악급이었다.

3.4. 이종열 체제와 팀 체계 재건(2024년~)

결국 팀의 전방위적인 붕괴를 받아들인 삼성은 홍준학 단장 퇴진을 기점으로 팀을 개편하기로 했고, 이종열 해설위원을 단장으로 들여오는 반면 FA, 2군 육성시스템, 트레이닝파트 등의 기초공사부터 자금을 대거 투자하여 다른 팀에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개선하고 있다.

이종열 단장은 메이저리그 이론을 따르는 이진영과 정대현을 코칭스태프로 영입했으며 이들은 각자 논란은 있지만[40] 그 이론을 팀에 적용시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도 트레이닝 파트나 드라이브라인 등 육성시스템에서 개선된 모습을 보여주며 2024시즌을 안현호-홍준학 체제의 이전 시즌들에 비해 알차게 치루고 있다.

3.5. 선수 대우의 명과 암

삼성 라이온즈는 전반적으로 삼성 그룹과 선수 대우 방식이 거의 똑같다. 즉 고대우+고복지+무노조에, 쓸모없으면 정이고 뭐고 바로 내치는 스타일. 이는 안현호-홍준학 시대 이전까지 계속해서 일어났던 일이다.[41] 선수들의 평균 연봉이 높고[42] 신인 선수들에 대한 계약금과 연봉에도 후한 편이다. 매년 팀 성적이 상위권이다 보니 뛰어난 선수를 뽑기 어려워 상위 라운드 지명자의 계약금은 타 팀과 비슷하거나 적을 때도 있지만, 4라운드부터는 타 팀 지명자보다 계약금을 좀 더 주는 편이다. 2010년 선수들 최저 연봉이 2천만 원에서 2천 4백만 원으로 오르자, 신고선수들 연봉도 똑같이 2천 4백만 원으로 올렸다. 타 팀의 경우엔 신고 선수라고 그들의 연봉을 최저 연봉보다 더 적게 주는 경우가 제법 된다.

국내 구단 중 대우가 가장 좋은 곳이지만, 그 대신 필요가 없어지면 칼같이 정리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만수, 김시진, 장효조, 양준혁, 배영수.[43][44][45] 팬들의 목소리와 참여도가 커진 2000년 이후엔 많이 좋아졌지만 옛날 삼성은 그 어떤 프랜차이즈 스타라도 필요없다고 생각되면 가차없이 내치기로 유명했다. 또한 선수협 창단 때는 김기태를 앞세워 선수단 전원을 불참시켰고, 2009년 선수 노조 창단 때에도 삼성 그룹의 무노조 원칙 때문인지 선수들을 전원 불참시켰다. 이와 같은 현상은 LG 트윈스도 마찬가지였지만.

또한 일정 규격 이상의 FA 계약이나 연봉은 지급하지 않는다. FA 몸값이 폭증하던 시기에도 삼성은 초대형 FA 계약을 맺느니 FA를 포기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보다 조금 전 돈성 시기에도 리그에서 최고 부자 구단 중 하나였건만 연봉은 7억 이하로 억제되었다. 현재도 이대호의 25억이나 손아섭의 20억같은 연봉을 삼성에서 기대하긴 어렵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점은 한 때 숙적이라 할 수 있던 해태에서 온 김응용 감독이 선수 대우를 개선하는 데 크게 일조했다는 것이다.[46][47] 또한 일부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제외하고는 타 팀과 마찬가지로 은퇴한 삼성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위주로 코치로 전향시키면서도 높게 대우해 주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로 류중일, 김현욱, 김한수, 전병호, 김재걸은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이면서 은퇴식까지 치른 후 현재 삼성의 감독이나 코치직을 지냈다. 류중일이 감독으로 취임한 뒤 이승엽, 임창용 등 해외로 진출했던 레전드 스타들이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삼성의 레전드 잔혹사는 일단 끝이 났다.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의 마지막 경기에서 그동안 삼성 구단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던 이만수가 시포를 맡은 것은 삼성의 레전드 대우 개선을 상징하는 사례로 꼽힌다.

2020 시즌 종료 후 윤성환을 방출시켜 비난 여론이 생기기도 했으나 구단 측에서 채무 및 승부조작과 관련된 정황을 포착하고 선제조치를 했으며, 혹시라도 사실이 아닐 경우 선수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구단 측이 언급을 자제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재평가되기도 했다. 현재 기소 중인 내용이 사실일 경우 방출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면 윤성환의 다음 등판 경기에서 승부조작이 일어날 뻔 했다. 윤성환/논란 및 사건 사고 참고.

3.6. 육성 및 재활 체계의 흥망성쇠

2010년대 중반까지 육성/트레이닝 파트가 리그에서 가장 우수했던 팀으로 꼽혔다. 구단에서 지원이 줄어들어 어쩔 수 없이 시스템을 붕괴시킬 수밖에 없었던 안현호 체제부터 무능한 운영을 자랑한 홍준학 체제까지 시스템 파트는 10개 구단 최고에서 최악으로 전락했으나 2024년 대개편으로 그나마 다른 구단에 뒤처지지 않는 수준으로 나아진 상황이다.[48]

KBO 리그 최초의 단일구단 전용 훈련장인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 용인시에 있는 삼성 트레이닝 센터가 그것.[49] 통칭 STC로 2010년대 중반부터는 퇴색되었지만 한때 국내 최고 트레이닝파트로 명성이 높았던 곳이다.

1984년 삼성 라이온즈는 신인 육성 및 원활한 선수 수급을 위해, OB 베어스에 이어 두 번째로 2군을 창설했다. 고졸 연습생들을 영입해 2군을 만든 OB와 달리, 삼성은 코칭 스태프까지 따로 영입하며 2군 체제를 확립시켰다. 1987년에는 현재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경산 볼파크)의 모태인 경산 훈련장이 완공되었고, 1990년대에는 2군 선수들을 일본 추계 훈련이나 미국 교육 리그에 보내는 등 선수 육성에 힘써 왔다. 특히 1995년 시즌 후에는 2군 선수단 전원이 미국 교육 리그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런 투자로 2군 리그에서 남부 리그 5년 연속(1994~1998)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말 외환 위기 2군 투자가 줄었고 결정적으로 매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실패하면서, 성공 여부가 미지수인 신인 육성보다는 성적이 보장된 외부 선수 영입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돈성'이라는 별명이 붙여질 정도로 외부 선수 영입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면서,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삼성이 오랜 기간 2군에 투자해 왔다는 사실은 묻혔다.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하고, 지나친 외부영입과 육성 미비로 또 한국시리즈에서 탈락하자 선수 발굴과 육성 필요성을 느끼면서 다시 2군에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이후 배영섭이나 최형우 등 2군에서 올라온 선수들이 우수한 활약을 펼쳐 주면서[50] 화수분 야구라 불리는 두산 베어스와 함께 우수한 선수 육성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후 롯데 자이언츠에서도 김해에 상동 야구장을 짓는 등 2군 육성의 필요성을 일깨워 준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선술한 것처럼 악명높은 안현호-홍준학 체제가 시작되며 팜에 대한 투자 축소로 육성이 붕괴했다. 이때까지만 하도 안현호 시절에 단순히 FA 선수만 못 잡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지원금의 급감으로 팜에 대한 투자 역시 아예 사라졌다. 이로 인하여 팀 시스템이 방치되며 오히려 육성/트레이닝파트는 10년간 리그 독보적 최악 수준으로 굴러떨어져버렸다.[51]

2011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계기로 3군을 신설하여 무한 경쟁 체제를 갖추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고, 2012년 8월 포항 야구장의 완공 이후 향후 2군 선수단 이름 자체를 포항 삼성 라이온즈로 변경하며 모든 2군 경기를 포항에서 가질 계획을 세웠다. 이리하여 1군(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 2군(포항 야구장) - 3군 및 잔류·재활군(경산 야구장)으로 이어지는 육성 체계를 구축하려고 했으나 무산되었고 그 뒤 노후화된 경산 야구장 대신 청도군에 500억 원을 들여 2군 훈련장 및 클럽하우스를 신축하고 이후에 2군을 경산시에서 청도군으로 변경할 계획이였으나 도박사건 이후 잠정 중단 되었고 청도의 2군 신축구장 부지도 처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9개 구단이 2군에 투자를 점차 늘리고 새 2군 신구장을 건설하고 있으나 유독 삼성만 1군과 함께 2군의 투자를 대폭 줄이면서 한 때 가장 좋은 2군 구장을 보유하던 팀에서 가장 질 낮은 구장을 보유한 팀으로 바뀌었다. 많은 팬들은 자생을 하려면 좋은 2군 구장과 2군에 많은 투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전혀 없어 답답해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 문제로 기존부터 좋지 않았던 선수 선구안[52]과의 악성 시너지가 나서 신진 선수들을 전혀 키워내지 못해 99688378이 시작된다. 유능한 코칭스태프를 데려오지 못하거나, 데려온다 해도 낙후된 팀 시스템으로 인해 이들이 죄다 무능한 철밥통 코치로 전락한 것은 덤.

99688378 문서의 육성 파트 관련을 가보면 알겠지만 삼성의 육성과 팜에 대한 평가는 홍준학 체제는 물론이요 이종열로 단장을 바꾸고 난 뒤에도 뒤에서 1-2위 정도이다. 그나마 트레이닝파트의 개선으로 부상 선수가 비약적으로 감소했다...가 7월 들어 모든 선수들이 다시 터져나가고 있다. 물론 이것도 2023년까지에 비해선 나은 편이며, 현재 삼성은 개선의 과정에 있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3.7. 아마야구 지원과 리틀야구단

대체적으로 암울했던 2000년대 대구·경북 팜[53] 에 대해 삼성 구단이 아마야구 지원에 인색했던 것이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그도 그럴 것이 김응용이 삼성 사장으로 있는 동안 모교 개성고 야구부 발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침체에 빠진 모교 지원에는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사이 연고지의 경주고 야구부와 구미전자공고 야구부가 해체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연고지 야구부의 해체를 온전히 삼성 측의 잘못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것이, 구단의 지원 못지 않게 학교 차원에서의 야구부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지만 경주고는 타 학교에 비해 학교 차원의 지원이 부족했었고[54], 구미전자공고의 경우에는 마이스터고로 전환되면서 불가피하게 야구부를 해체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연고지 고교야구부 해체에 후술할 삼성기 대회 폐지나 리틀야구단 해체 등이 연달아 벌어지면서 아마야구 지원에 대해 소홀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2010년대 중반에 글로벌선진학교, 도개고, 영문고가 새로 야구부를 창단했지만 글로벌선진학교는 학교 특성상 소수 인원으로만 운영 중이며 도개고와 영문고는 새로 창단한 학교의 다수가 그렇듯 학생 수가 적은 소규모 학교라는 한계에 스카웃의 열세로 상당수의 선수를 전학생으로 채우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삼성이 그 이전에도 아마야구 지원에 손을 놓고 있었던 아니고 실제로 1990년대에는 아마야구 지원을 했었다. 1992년부터 유소년 및 고교야구 활성화를 목적으로 대구·경북 지역 초중교를 대상으로 한 삼성기 대회를 열었다. 삼성기는 1993년에는 고교까지 참가하는 대회로 확장했다가 IMF 사태로 축소됐다. 그 여파로 2000년에는 대회를 열지 않았고, 2005년을 끝으로 폐지됐다가 2011년부터 초중교를 대상으로 다시 부활했다. 2014년부터는 삼성의 1차 지명 대상지로 확장된 강원 영동 지역 초중교도 참가한다. 2011년 사망한 장효조 2군 감독을 기리기 위해 2012년 대회부터 타격 1,2위 선수들에게 주는 상을 '장효조 타격상'으로 명명했다.

1990년에는 프로구단으로는 최초로 구단에서 운영하는 리틀야구단을 만들었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이전부터 진행해 온 어린이 여름야구교실이 큰 인기를 끌어 아예 리틀야구단을 만들어 야구에 소질이 있으나 소속 학교에 야구부가 없어 선수가 될 기회가 없는 유소년 유망주들을 조기에 발굴·육성해 야구부가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보내든지, 중학교로 진학시켜 야구선수로 육성하기 위해서였다. 삼성이 리틀야구단을 만들기 전에는 대구 지역에는 리틀야구단이 없었지만 이를 계기로 대구 지역에도 하나둘 리틀야구단이 생겨났다. 당시 스카우트를 맡으며 현장에서 멀어졌던 장효조가 명예 감독으로 있었고, 이밖에도 선수 출신 구단 직원들이 코치로 선수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선수들의 정신적인 성장을 목표로 두고 성적에 연연하지 않아 전국 규모의 큰 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둔 적은 없지만 현재 나무위키에 등록된 전현직 프로선수 중 강영식, 김인태, 손형준, 용덕한, 우동균, 유선정, 이상민, 이상호, 이정호, 임현준, 정병곤, 최민구 등 12명이 삼성 리틀야구단 출신이다. 이밖에 과거 고양 원더스 소속으로 청각장애인 프로야구선수를 꿈꿨던 박병우도 삼성 리틀 출신.

이렇듯 리틀야구단을 통해 프로선수가 된 사례도 여럿 있었으나, 리틀야구단이 활성화되면서 다른 리틀야구단과의 지원에 대한 형평성을 두고 학부모들간 갈등이 조장되자 2008년을 끝으로 구단이 리틀야구단 운영을 포기했고, 2009년부터는 라이온즈 이름을 계승한 리틀야구단이 단독으로 운영하고 있다. #

4. 특이 사항

4.1. 좌타 왕국

LG 트윈스보다 훨씬 뛰어난 왼손잡이 선수들을 많이 배출했다. 특히 왼손잡이 타자의 경우 독보적이다. 이에 삼성 팬들은 이를 좌타대두라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당장 1983년에 입단하여 삼성 초창기 최고의 교타자로 활약했던 장효조를 시작으로 1993년에 입단하여 은퇴까지 삼성팬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양준혁, 그리고 좌완 투수로 입단했다가 타자로 전향한 뒤 현역 최고의 슬러거가 된 이승엽이 있다. 또한 입단 후부터 19년간 지금까지 꾸준히 활약하여 양준혁에 이어 동률인 KBO 역대 두번째 16년 연속 100안타를 기록하며 외야 한 자리를 지켰던 박한이, 삼성 왕조시절 4번을 항상 책임졌던 최형우, 한 때는 채럼버스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으나 2013, 2014, 2015 정규시즌 3연패와 한국시리즈 2연패에 혁혁한 공을 세운 채태인 등이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그리고 2015년에 등장하여 지금도 항상 라인업에서 빠지지 않는 구자욱도 있으며 2020년대에도 김영웅, 김성윤, 김지찬, 김현준, 윤정빈 등 젊은 좌타자들이 등장했다. 반대로 초창기에는 이만수, 김성래, 강기웅으로 이어졌던 뛰어난 오른손잡이 타자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박석민 아랫동네로 이적한 이후 삼성의 뛰어난 오른손 타자는 사실상 전멸한 상황이다.[55]

반대로 왼손잡이 투수의 경우는 좀 다르다. 오히려 창단 초창기에 이선희와 프로 최초 100세이브를 달성한 권영호 등 뛰어난 좌완들이 많았던 편이지만 성준 이래로 삼성은 왼손 투수 갈증에 늘 시달렸다. 성준이 삼성 역대 좌완 투수 중 가장 많은 승수(97승)를 올렸지만 구위보다는 제구 위주의 기교파 투수였고, 그나마 성준 이후 장원삼이 삼성으로 트레이드로 오기 전까지는 김태한, 전병호 정도가 활약한 것이 유일했다. 그나마 1990년대 삼성 투수 트리오 중에 김태한이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해보면 썩 좋은 편은 아니었으며, 그나마도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마구 굴린 탓에 조로한 경향이 있으며, 롱런한 전병호도 흑마구로 대표되는 기교파 투수였다. 그러다가 2010년부터 당시 넥센에서 트레이드된 장원삼이 삼성의 전통인 좌완 기교파 선발 투수로 2015년까지는 준수하게 활약했다.[56] 그러고보면 삼성의 경우 유독 좌완 스터프형 투수보다는 좌완 기교파 투수들로 계보가 이어져 왔는데, 2017년 시점에서 좌완 스터프형 투수로는 백정현 정도다. 그나마 백정현 역시 와일드씽 시절에는 만년 유망주로만 있다가 피네스 피쳐로 변신한 후에야 뒤늦게 각성한 케이스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는 차우찬도 스터프형 투수로 있었는데, 서울로 상경했으며 불펜에도 권혁이 있었지만 역시 한화로 이적했다. 하지만 최채흥이 2020년 11승을 거두고 당초 문승원이 기록할거라 많은 사람들이 예측을 했던 토종 선발 평균자책점 1위[57]를 기록하면서 좌투 계보를 잇게 되었으며 2024년부터 좌완 이승현이 선발로 정착했다.

우타자의 경우 이만수, 박석민 등 레전드가 있기는 한데 좌타에 비해 많이 빈약하며 이로 인해 전통적으로 팀 타선이 좌상바이다. 그나마 2024년 들어서는 강민호 외에도 우타자 대표주자로 이성규, 이재현 등이 나오고 있고 김헌곤이 부활했으며 박병호가 트레이드로 영입되며 좌/우 스플릿이 완화된 축에 드나 애초에 이들에게 장기적인 주축 타자를 맡기기는 어려운만큼[58] 새로운 우타자를 발굴할 필요가 있다. 애초에 팀 타선이 너무 좌타자 위주이다보니 타선이 전반적으로 좌상바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4.2. 삼성 선수단 내 저주

이렇듯 삼성은 전통적으로 위의 긍정적인 팀 컬러를 바탕으로 장기적으로 우수한 성적을 올렸으나 2014년 이후의 사무국의 방만한 경영과 무능한 코칭스태프들의 부임으로 해당 장점들은 거의 다 퇴색되었다. 그리고 시스템 붕괴와 더불어 선수단 내에서 후술할 잔혹사들이 터지며 장기적 암흑기가 지속되고 있다.[59][60]

그나마 외국인 투수 잔혹사는 어느 정도는 탈피해가는 분위기이나, 나머지 두 잔혹사는 시점까지 깨지지 않은 저주이다. 롯데의 포수/유격수 잔혹사에 버금가는 강력한 저주.

2024년에는 김윤수 루벤 카데나스가 저주를 해결할 후보로 들어왔으나, 해결되기는커녕 역대 최악의 저주 사례로 전락하며[61] 삼성 팬덤의 뒷목을 잡게 했다.

4.2.1. 외국인 선수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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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구단 체제 이후 전 구단별 최고의 용병진, 최악의 용병진의 WAR 총합 비교. 출처

외국인 선수는 전통적으로 삼성의 가장 큰 약점으로 평가받는다. 삼성이 전반적으로 FA 영입, 신인 스카우팅에서도 약점을 드러내며 선수를 보는 안목이 매우 나쁘다고 여겨지지만, 그 중에서도 외국인 선수는 용병 제도 시행 이래 내내 삼성 팬들의 답답함을 머리끝까지 폭발시킨 최악의 약점으로 평가된다.

특히 용병 제도가 도입된 1998년 이후 독보적으로 최악의 외인투수 스카우팅으로 악명높다. 특히 2016~2017 시즌간 뛴 선수들은 웹스터 4승, 벨레스터 0승, 레온 0승, 플란데 2승, 그리고 페트릭 3승, 레나도 2승으로 두 시즌동안의 모든 용병 투수들이 쌓은 승수가 겨우 11승밖에 되지 않는다. 여기서 설명하는 선수들 외에도 톰 션, 카리대 등의 선수나, 온갖 말썽을 일으켰던 베이커 갈베스[62] 있었다.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쌓은 외국인 투수도 지금까지 제이미 브라운 데이비드 뷰캐넌이 유이하며 3년 이상의 기록은 뷰캐넌이 유일하다.

그래도 왕조 시절의 밴덴헐크, 피가로는 에이스의 몫을 다해줬고, 탈보트, 고든, J.D. 마틴, 클로이드 정도도 무난한 수준이었다. 고든은 SK에서 1년 뛴 선수 재활용이어서 삼성 외국인 스카우트 능력이라고 보기는 좀 그렇다. 마틴은 넥센한테 호구 잡히긴 했지만 무난했고, 탈보트는 1시즌 뿐이었지만 잘해줬으며 한화에서도 그 실력을 입증했다. 클로이드는 나름 이닝 먹어주긴 했는데 외국인 용병이 4~5선발급 수준이었다는게 함정.

무엇보다 팀 역사적으로도 벤 라이블리 이전까지 22년 동안이나 3년 이상 활약해준 용병 투수가 단 한 명도 없었다.[63] 1999년 외국인 용병제가 실시된 이후 약 20년 동안 특급 에이스급이 아니어도 선발 로테이션 자리를 꾸준히 지켜오며 여러 해 활약해준 외국인 투수가 삼성을 제외한 각 팀마다 한 명씩은 있어왔다. 한화 바티스타나 kt 피어밴드같이 시즌 도중에 영입되어 꾸준히 활약해준 경우도 삼성에는 단 한번도 없었다.

다음은 각 팀별 역대 한 팀에서 3년 이상 활약한 투수들이다.
[목록 보기]
* NC

외국인 타자들의 경우엔 투수의 경우와는 달리, 찰스 스미스, 훌리오 프랑코, 매니 마르티네스, 틸슨 브리또, 야마이코 나바로, 다린 러프, 호세 피렐라 등 준수하게 뽑아오는 편이다. 하지만 외국인 타자에서도 역시 다년간 활약한 선수가 다린 러프를 빼면 아무도 없었다. 구단 역사상 최초로 3년 이상을 뛴 용병이 2019년에야 처음 나왔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삼성 구단 자체가 외국인 프렌차이즈와는 거리가 멀었던 팀이었음을 증명해주는 셈.

정확하게 외국인 투수들을 잘 뽑지 못 했던 것은 외국인 스카우트를 맡았던 이문한이 2008년 즈음에 그만둔 이후 롯데 자이언츠로 가면서 외국인 선수 통역을 맡았던 이충무가 대신 외국인 스카우트를 맡게 된 후부터다. 이충무는 미국의 한 에이전트 사에서 한국과 일본 프로구단의 외국인 선수 계약 및 스카우트 업무를 맡아왔고, 추신수의 에이전트로도 일하기도 했다. 그러한 이충무의 경력 탓에 삼성이 그에게 외국인 스카우트를 맡였으나 이충무는 원래 스포츠 마케팅이 전공이라 현장과는 거리가 있어 스카우트로서 적합한 인물은 아니었다. 결국 삼성에 외국인 잔혹사만 선사한 이충무는 2013년 중반 kt 위즈로 옮겨가면서 외국인 잔혹사는 막을 내리나 싶었으나, 전병호 카리대를 데려오면서 제대로 폭망했지만 이후 한동안 잠잠했다.

2016년을 기점으로 왕조시대가 저물고 팀이 암흑기로 접어들면서 외국인 잔혹사는 다시 그 명맥을 이어가고야 만다. 그리고 2018년에는 드디어 조금이나마 사람 구실을 하는 용병 투수를 데려왔다. 아니, 이전 두 시즌에 비하면 완전히 환골탈태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2018년 삼성의 외국인 투수 조합인 아델만 - 보니야 조합은 역대 삼성 단일 시즌 용병 투수 이닝 소화 1위를 기록했으며, 아델만 보니야 각각 한 명의 승수가 2016년, 2017년 각 해의 외국인 투수 총 승수보다 더 많다. 한 마디로 저 조합이 삼성 최근 외국인 투수의 2년치 승수를 뽑아준 셈. 그만큼 삼성의 외국인 투수 성적이 처참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이만큼 활약해준 외인 듀오를 포기하고 삼성은 또다시 모험을 선택하였고, 결과는 어김없이 처참했다.

삼성이 외인 투수 영입을 실패하는 패턴은 매번 일정하다. 시즌이 끝나고 "외인 투수는 신중히 고른다"라는 내용의 기사가 올라오곤 해를 넘기도록 소식 하나 없다 결국 외인구성은 해를 넘기고 만다. 그러고 1~2월이 되어서야 겨우 저가형 용병을 데리고 오면서 "라팍에 최적화된 땅볼형 투수. 다양한 구종으로 땅볼을 유도해내는 데 능숙하다."며 언플을 한다. 하지만 막상 시즌이 시작되고 뚜껑을 열어보면 땅볼 유도형 투수라고 데리고 온 투수는 땅볼 유도는 커녕 그냥 배팅볼형 투수나 다름없는 경우가 허다하고, 그렇게 시즌이 끝나고 그 투수를 방출하고 또다시 형편없는 투수를 데리고 오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드물게 속전속결로 데려오는 외인도 부상 등으로 제대로 뛰지 못 하고 흑역사가 되고 만다. 즉 외국인 투수들은 애초에 퀄리티가 떨어지는 선수들을 데려오며 예정된 수순대로 멸망하는 경우가 잦다.

반대로 외국인 타자의 경우 의외로 평타 정도는 치는 편으로, 2010년대 이후의 나바로, 러프, 피렐라는 물론 옛날에도 프랑코, 브리또같은 성공 사례가 많았다. 다만 가코, 발디리스, 살라디노, 팔카, 맥키넌같은 지뢰들도 당연히 영입된다. 삼성의 망한 외국인 타자들은 애초에 급이 떨어지는 독립리그 선수들을 데려와 망하는 투수들과 달리 살라디노 정도를 빼면 다들 기대를 많이 받았으나 커리어 하락세일 때 영입되어 망한 케이스[72]나 KBO 적응에 실패한 케이스[73]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타 구단에서 뛰다가 트레이드 대상에 올라 있다거나 결별 수순을 밟고 있는 검증된 선수들의 기사나 KBO 리그 진출을 희망한다는 외국리그 소속 투수들의 기사가 올라오면 여지없이 "삼런트 뭐하냐. 빨리 모셔와라", "니들이 그동안 데려온 걔네보다는 잘할 거다" 등의 댓글이 올라오곤 한다.

2019년 한화한테만 극강이던 맥과이어를 방출한 뒤, 대체선수로 들어온 라이블리가 준수한 활약을 펼쳐서 오랜만에 재계약에 성공한 외국인 투수가 되었다. 2020년 라이블리는 7월까지 부상으로 결장하고 복귀해서 한 달간 흔들렸지만, 리그 후반기 완벽한 피칭을 보이며 재계약에 성공했다. 그러나 라이블리는 유리몸이라는 심각한 단점이 있었고 결국 2021년에 부상을 당하며 퇴출되었고 대체외인인 몽고메리도 결국 실패작이 되었다.

그리고 2020년에 NPB에서 활약하던 데이비드 뷰캐넌을 영입했다. 삼성팬들은 영입당시에는 회의적이었으나 뷰캐넌은 데뷔년도에 174이닝을 던져 15승 ERA 3점대라는 훌륭한 성적을 내며 에이스가 되었고 다음년도인 21년에는 16승을 거두며 삼성 라이온즈 최초 외국인 다승왕이 되며 삼성 라이온즈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가 되었다.

타자의 경우 맥 윌리엄슨을 시작으로, 살라디노는 6월 한달 반짝하고 허리부상으로 시즌아웃, 팔카를 영입했지만 선풍기급 활약을 펼치며 외국인 타자 잔혹사가 시작될 위기에 놓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피렐라의 등장으로 끊겼다가, 피렐라는 그저 삼성판 로베르토 라모스임이 드러났고 곧이어 삼성판 보루갈 데이비드 맥키넌, 루벤 카데나스가 영입되며 외국인 잔혹사가 타자쪽으로 옮겨붙었다.

2022 시즌 드디어 외국인 투수 잔혹사가 끊겼다. 뷰캐넌과 같은 테크를 타고 있는 알버트 수아레즈를 영입했는데 리그 정상급 활약을 보이면서, 리그에서 외국인 3명이 모두 최정상급 활약을 보인 팀은 삼성이 유일하다. 같은 팀에 야쿠르트 시절 동료였던 뷰캐넌과 어릴적부터 야구를 같이 했던 피렐라로 외인이 구성되어 있어, 시너지 효과도 크다.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잔혹사가 이어졌는데 수아레즈가 나오는 날이면 타자들의 득점지원이 떨어지고 불펜들도 실점을 반복해, BW 11개를 기록하며 불운의 끝판왕을 달렸다.

홍준학 체제가 끝난 2024년 코너 시볼드, 데니 레예스, 데이비드 맥키넌을 영입했으나 맥키넌은 기대치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지만 코너, 레예스는 기대 이하의 모습이다. 특히 코너는 페디를 소환할 정도의 기대를 받고 있으나 정작 보여주는 모습은 앤서니 레나도, 마이크 몽고메리 등 홍준학 체제를 통틀어 최악의 외국인 금지어 수준이기에 삼팬들의 뒷목을 붙잡게 하고 있다. 그런데 여름 들어서 외국인 투수 두 명이 적응하며 성공적인 피칭을 계속 하는 등 나아진 반면 맥키넌이 가코급으로 망했다. 결국 후반기 시작과 동시에 맥키넌은 방출. 오히려 코레듀오는 나아진 반면 용병 타자가 매우매우 심각하다. 루벤 카데나스가 와서 끝내기 홈런을 치며 엄청난 호응을 받았는데 곧바로 드르렁으로 멸망. 이 맥카 듀오는 보이는 스탯만 좋을 뿐이지 실제로는 보루갈급으로 평가된다. 이후 코너, 레예스는 모두 11승씩 거두며 정규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고 코너의 경우, 부상으로 인해 포스트시즌은 나서지 못했지만 레예스는 포스트시즌 3경기 3승[74] 및 플레이오프 MVP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으로 9년만의 한국시리즈 준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타자 역시 카데나스 퇴출 후 대체자로 들어온 르윈 디아즈가 포스트시즌에서만 5홈런[75]을 기록해 성공적인 대체자 영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4.2.1.1. 대체 외국인
이들 중에서도 특히 대체 외국인은 KBO 리그 구단들 중 가장 처참하다. 르윈 디아즈 이전까지 삼성의 대체 외국인 중 확실한 성공 사례는 2011년의 저스틴 저마노/ 덕 매티스가 마지막이며, 이들을 피네스 피처라는 이유로 버린 뒤에는 전설적인 카리대를 시작으로 삼성의 모든 대체 외국인 선수가 13년동안 애매한 라이블리 빼고 전부 실패했다. 2012년 이후로 삼성의 대체 외국인 목록은 다음과 같다. 에스마일린 카리대, 아놀드 레온, 요한 플란데, 벤 라이블리, 맥 윌리엄슨, 다니엘 팔카, 마이크 몽고메리, 테일러 와이드너, 루벤 카데나스. 이들 중 벤 라이블리 빼면 모두 확실한 실패 사례이다. 이것도 그냥 실패도 아니고, 평타 라이블리, 그리고 다소 실패한 와이드너나 윌리엄슨만 빼면 션 오설리반, 스캇 반슬라이크, 저스틴 보어, 테일러 모터, 브라이언 오그레디, 버치 스미스급의 해당 시즌 리그에서 가장 실패한 외인들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인성은 좋았던 보어, 오그레디와는 달리 이들은 대부분 인성도 몹시 좋지 않았다. 무려 13년간 1평타 9실패로, 이 정도면 외국인 교체->먹튀 수준의 참담한 성공률이다.

각 선수들의 결과를 나열하자면, 카리대와 레온은 그냥 의료 관광객이었고, 플란데는 처음에 잘했으나 결국 나중에는 내내 털리며 끔찍한 기록을 세웠다. 라이블리는 그나마 잘해주었으나 부상이 너무 많았고, 윌리엄슨 역시 선구안이 무너지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팔카와 몽고메리는 메이저에서 유의미한 경력을 냈던 선수들 중 라이언 가코와 더불어 역사상 최악의 성적을 올렸다.[76]

그나마 NC에서 전반기에 뛰어 리스크가 적은 테일러 와이드너의 경우 해당 시즌 극약이었던 삼성 타선에게 라팍에서 두들겨맞을 정도로 라팍에 약한 선수임이 밝혀지며 나쁜 홈 구장 성적을 기록, 바로 방출되었다. 결국 성공 사례가 아예 없다. 카데나스가 등장해 오자마자 맹활약하며 저주를 깨나 했지만, 곧바로 드러누우며 저주의 명맥을 잇고 있다.

르윈 디아즈가 2024년 정규/포스트시즌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어느 정도는 깨졌다.

4.2.2. 군경팀 전역자 잔혹사

2010년대 이후로 유독 군경팀에 다녀온 선수들이 입대 이전에 비해 기량이 망가지며 다시 반등하지 못하고 끝없이 부진하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첫 시즌에는 잘한 적이 거의 없다 봐도 무방하다.

대표적인 사례로 정인욱, 배영섭[77], 심창민, 최채흥 등이 있다. 정인욱은 혹사[78]로 망했고, 배영섭이야 살이 찌며 주력이 감소한 영향이 있는데다 리즈로 인한 사구 헤드샷 부상 트라우마가 겹치며 선수를 일찍 접었고, 심창민은 입대 전 대비 구속과 제구가 하락하고, 최채흥은 자기관리가 망하며 입대 이전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79]

2024시즌에는 김윤수 역시 상무 시절 압도적 포스로 기대를 모았으나, 정작 1군에 등판한 첫 경기에서 볼 비율이 70%가 넘는 환장할 투구를 보여주며 경기를 터뜨린데다 이후 부상으로 재활군으로 내려가면서 군경팀 전역자 징크스는 끊어지지 않고 있다.

이들 뿐만 아니라 현재는 해체된 경찰 야구단과 삼성 투수들과의 궁합은 최악이었다. 주로 삼성은 당시 1.5군 혹은 2군급 투수들이 경찰 야구단에 입대한 경우가 많다 보니 이들의 경찰에서의 혹사 사례는 잘 회자되지는 않는데,[80] 경찰 야구단이 창단부터 해체될 때까지 당시 삼성 소속으로 복무한 투수 13명인데 이중 홍정우 단 1명만 전역 직후에도 정상적으로 등판했고, 나머지는 전역 직후 수술로 전역 첫 해를 재활로 보냈다거나 경찰 복무 당시 당한 부상으로 전역 후 그대로 선수 생활을 접은 경우도 있다.

4.3. 삼성 출신 FA 이적 선수 징크스?

유망주급들이 타 팀으로 이적하면 개화하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보이는 것과 달리 유난히 삼성 출신에 타팀으로 이적한 FA 선수는 먹튀로 변질되는 경우가 잦다. FA 특성 상 노쇠화의 위험이 있다지만, 첫 번째 FA인데 먹튀로 변질 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선수들의 공통점은 FA 협상이 가능한 시즌부터 뭔가 조짐이 있었다.

최형우 박해민은 예외인데, 이 둘은 이적 후에도 구매한 팀이 만족할 만한 성적을 뽑아줬기 때문이다. 굳이 팀 플랜이 꼬이게 했다는 것까지 넣으면, (본인의 의도는 전혀 없지만) 박해민[81]이 해당은 될 수도 있다. 그나마 박해민의 경우 2024시즌 초를 말아먹으며 들어가나 했지만 어느 정도 시즌이 지나며 탈피해가는 분위기. 김상수의 경우 성적은 많이 개선되었으나 2023년 한국시리즈에서의 끝내기 병살로 인하여 아직 kt 팬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웃긴 것은 이 선수들은 대부분 이적하고 나서 삼나쌩이 된다는 것이다. 즉, 기량은 떨어져도 삼성 상대로 잘한다. 트레이드로 간 이학주나 이지영, 박계범, 김태군 등도 마찬가지.
[1] 대표적으로 회전수 이론, 체감구속 이론 등을 통한 정현욱 코치의 팔각도 높이기 코칭이 있는데 사실 회전수와 체감구속, 익스텐션은 2020년대 시점에서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걸 위해 팔각도를 높이며 제구와 구속을 모두 크게 희생시키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결론이 내려진 상황이다. 단 2000년대 당시에는 클레이튼 커쇼, 팀 린스컴같은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 이 즈음은 평균구속 증가세가 둔화되던 시기로 체감구위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던 시절이라 메이저리그에서도 저런 투구폼이 주류였다. [2] 2017년 KIA의 팀 타율은 0.302로 2015년 삼성과 공동 최고 기록이었다. [3] 사실 류중일은 타격도 나쁘지 않았지만 유격수였던 만큼 수비에서 더 강점을 보였던 선수였다. 당시 삼성 타선은 장타에 특화된 타자들이 여럿 포진되어 있었기에 팀 내에서 출루 능력과 주루 센스가 돋보이는 류중일이 리드오프로 기용되었다. 하지만 준수한 주루 센스와 달리 단순 주력은 그다지 빠르지 않아서 20개 이상 도루를 기록한 시즌은 1990년 딱 한 번뿐이었다. 박한이는 컨택 면에선 자타가 공인하는 수준급 타자였고, 발도 결코 느리진 않았으나 주루 센스가 꽤 나빴다. 괜히 김응용 감독이 농반진반으로 "박한이는 정신병자다"라고 언급한 게 아닌데, 주루에서 본헤드 플레이가 잦았기 때문이었다. [4] 이러한 팀 컬러와 대척점에 서 있는 팀이 LG 트윈스다. LG는 홈런왕 배출 경험은 단 한번도 없지만 MBC 청룡 시절부터 김인식, 김재박, 이해창, 유지현, 이대형 등 기본적으로 발이 빠르고 주루 센스가 훌륭한 선수들이 대대로 배출되었고, 1990년대에는 대포보다는 집중력 있는 연속 안타로 상대를 흔드는 '신바람 야구'로 인기를 얻었던 팀이었다. LG가 암흑기에서 벗어나 부흥기에 들어선 2020년대에도 홍창기, 문성주, 신민재 등 이런 타입의 선수들이 타선에 많이 포진되어 있다. 삼성이 2024년 들어 홈구장을 이용하는 뻥야구를 하는 것과는 정반대. [5] 실제로 팀 타선 올타임 레전드의 경우 20세기나 21세기나 모두 분포해있는 반면 배영수, 윤성환, 장원삼, JOKKA 등의 레전드 투수들은 거의 다 21세기 선수들이다. [6] 정규시즌 우승을 위해선 타선이 중요하지만, 한국시리즈 우승을 위해서는 투수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래서 삼성은 타선의 힘으로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해놓고도 한국시리즈에서 미끄러지는 일이 잦았다. 해태 에이스들인 조계현, 선동열, 이강철 등에게 탈탈 털린 것은 물론이거니와 오히려 한국시리즈에선 저런 에이스급들이 아닌 다른 백업급 선수들에게도 심하게 농락당하며 준우승만 여러 차례 달성했다. [7] 전성기 배영수는 안우진과 비슷한 스타일이었으며 이마저도 토미존을 받은 뒤에는 구속 10km가 날아가 다른 삼성 투수들처럼 기교파가 되었다. [8] 윤성환, 장원삼처럼 실제 경기운영이 좋은 투수가 아니다! 실제 경기운영이 좋은 투수는 구창모, 윤영철 등의 사례. 전형적인 왕조 시절까지의 삼성 스타일인 투수들이다. [9] 특히 유격수 출신 감독이었던 류중일은 수비 기본기가 갖춰지지 않은 유망주는 잘 기용하지 않았다. 이건 국대 감독 시절에도 마찬가지. 마찬가지로 유격수 출신인 박진만 감독도 스프링캠프에서 혹독하게 펑고를 쳤다. 둘 다 삼성 레전드 유격수 출신이다. [10] 포스트시즌 단일 팀 통산 첫 100승은 2021년 플레이오프에서 두산 베어스가 달성했다. 공교롭게도 2021년 플레이오프도 삼성과 했다. [11] 한화는 2006년까지는 나름 준 단골 수준으로 가을에 많이 갔으나 이쪽도 빙그레 시절 해태한테 매년 두들겨맞으며 가을야구 성적이 나쁘다. [12] 해태-KIA 타이거즈는 한국시리즈에서는 극강이나, 플레이오프-준플레이오프 성적은 매우 좋지 않다. 특히 준플레이오프는 통산 전적이 2승 9패에 불과하다. [13] 장효조가 아예 가을에 못하는 선수라는 오해가 있으나 장효조의 통산 포스트시즌 타격성적은 역대 최고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14] 대표적으로 20세기 김시진, 2000년대 김진웅, 2018년 이후엔 강민호가 삼성 소속이었다. [15] 가을야구에 많이 못 나갔을뿐더러 나갔을 때의 성적도 안 좋았다. 2015년 한국시리즈 1승 후 4연패로 탈락, 2021년 타이브레이커-플레이오프 3연패. 2024년엔 플레이오프에서 LG를 3승 1패로 꺾고 올라왔으나 한국시리즈에서 바로 선수들이 극심한 집단 새가슴 기질을 보이며 원정 두 경기를 내줬다. [16] 현명관 전 구단주의 증언에 따르면, 2001년 새로 부임한 김응용 감독에게 "삼성이 돈을 가장 많이 쓰는데 한국시리즈 우승을 못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구단에 돈을 주는 여러 계열사 사장들이 운영에 간섭하기 때문이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당연히 계열사 사장들뿐만 아니라 이건희 전 회장을 비롯한 삼성 오너가 전체도 구단에 엄청난 관심을 쏟았었다. 다만 2014년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코마 상태에 빠지고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재용 부회장이 휘말린 이후로는 오너가의 관심도가 많이 떨어졌다. 결국 역대급 최악의 시즌으로 평가되는 2023년까진 홍준학이 사실상 독재적으로 팀을 운용했으며, 해당 시즌을 끝으로 홍준학은 제 발로 단장 자리를 떠났고 문제점을 진단한 그룹측에서 이종열을 단장으로 선임한 뒤 본격적으로 성적과 리빌딩에서 성과를 내라는 주문을 올리고 있다. [17] 이만수는 말년에 기량이 하락하자 은퇴식도 없이 방출되어 커리어를 끝마쳤고, 김시진은 큰 경기에 약하다는 이유로 롯데 자이언츠로 트레이드 되었으며 장효조도 선수협 문제로 구단과 갈등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롯데로 보복성 트레이드를 당했다. [18] 그러나 이 시기 화이트삭스 코치로 활동하고 있던 이만수에게 삼성 코치직 및 차기 감독직을 제안했다가 갑자기 없던 일로 하는 추태를 저지르기도 했다. [19] 조계현, 임창용, 김현욱, 김기태 등을 현금 트레이드로 데려오고 김동수 이강철을 FA로 영입했다. [20] 특히 심정수의 4년 60억은 무려 9년동안이나 FA 최고액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가 2013년에 가서야 깨졌다. [21] 해태 타이거즈에서 아홉 번이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김응용 감독조차 삼성에서는 2001년 생애 처음으로 준우승을 맛 봐야 했다. [22] 물론 전후기 리그 통합우승이 있었고, 1987년 통합 1위가 있었다. 하지만 당대 사람들이 인정하는 우승 팀은 한국시리즈 우승 팀뿐이었다. 1985년 한국시리즈는 열리지 않았고, 1986년부터 바뀐 룰에 의해 전후반기를 모두 휩쓴 팀도 2위 팀과 한국시리즈를 치르게 되었는데, 당장 1987년 한국시리즈가 그러했다. 당시 삼성은 전후반기 1위 팀이라는 위치에 맞지 않게 2위였던 해태 타이거즈한테 0-4 셧아웃을 당하면서 한국시리즈 우승은 무산되었다. 다만 1987년 한국시리즈는 해태에게 휴식일로 8일이나 주어졌기 때문에 오히려 경기감각면에서 삼성이 불이익을 본 시리즈였다. [23] 물론 디스 건 그 감독 돈으로 우승한 적이 있었다. [24] 당시 부상으로 재활 중이었지만 두산에 부족한 좌완 계투를 내주면서 두산 포수 중 서열이 떨어지는 채상병을 데려온 것에 분노하는 삼성 팬들도 많았지만, 두산 이적 후 지승민의 행보를 생각하면 어딜 봐도 삼성이 남는 장사를 했다. [25] 화면에 나온 '구단이 돈이 없다'는 말은 '프로야구단 법인이 적자를 기록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는 의미 [26] 예시: 해태 타이거즈 vs 롯데 자이언츠 (제과업계 라이벌리), 삼성 라이온즈 vs 현대 유니콘스 (양대 재벌 라이벌리). [27] 예시: KIA 타이거즈 vs 삼성 라이온즈 or 롯데 자이언츠 (영호남 라이벌리). [28] 쉽게 말해 서민들은 모바일 게임으로 돈을 쓰지 않거나 비교적 적은 돈을 들여 스마트폰 속에서 선수단을 만들지만, 이재용은 1년에 수백 억을 써가며 현실에서 구단을 운영하는 것이다. [29] 냉정하게 보면 2013년 말 FA 시장에서 삼성에게 필요한 것은 취약 포지션인 2루수를 강화할 수 있는 정근우뿐이었는데, 이마저도 크게 나쁘지 않은 대체 자원들이 이미 있었기에 별로 필요치 않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당장 정근우의 나이만 봐도 기존 2루수인 조동찬 김태완과 비슷하고, 도리어 내줘야 하는 보상선수로 인한 전력 출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결론적으로 정근우가 4년 70억이라는 거금을 받고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고, 2014년 새로 영입한 외국인 타자 야마이코 나바로가 삼성의 2루수 고민을 깨끗하게 지워버리면서 "정근우를 샀어야 했다"는 여론은 완전히 사라졌다. 포수도 필요했을 수 있으나 노쇠한 진갑용에 이어 이지영으로의 세대 교체가 잘 이루어지고 있었고, 당시 강민호가 일찌감치 원소속팀과 재계약하면서 시장에 나오지도 않아 기회가 없었다. [30] 아이러니한 것은 두산, 키움 모두 2024년 시점에서는 야수 육성이 제대로 망가져버린 상황에 투수 육성의 경우에도 두산은 매우 우수하나 키움은 아직 애매하다는 것이다. 결국 육성과 팜 상황은 돌고 도는 것. [31] 그나마 2015년까진 팀 성적도 좋았고 박해민, 구자욱 등의 내부 육성 선수들이 나오며 육성 강국의 명성을 유지했으나 도박 사건이 터진 뒤인 2016년부터 팀 자체가 제대로 망가졌다. [32] 이때 상당히 많은 팬들이 분노했다. 대구 출신 로컬 보이에 본인이 "삼성에서 감독까지 하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로 팀에 대한 애정이 강한 선수였는데도 불구하고 이적했다는 것은 구단 사정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흉흉한 소문도 돌았다. 당시 4년 96억에 NC 다이노스로 이적했으며 삼성은 4년 60억을 제시했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2024년 차우찬에 의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박석민은 좀 덜 받더라도 무조건 삼성에 잔류하길 원했지만 프런트가 금액 제시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이건 어쩔 수 없는 게, 저때 하필 도박사건이 터지고 여러 구설수에 시달리면서 그룹 차원에서 지원을 없앤 직후라 저렇게 홀대한 것이다. 돈이 부족한 키움이나 두산 역시 팀 레전드인 박병호와 김현수에게 제대로 된 금액 제시조차 하지 못했고 그들은 그대로 라이벌 구단으로 이적했다. [33] 삼성 구단으로선 2005년 심정수 박진만 이후 무려 12년만의 FA 영입이다. [34] 단 이원석은 손에 꼽히는 혜자가 되었으며 마지막까지 불펜 김태훈을 선물하고 팀을 떠났다. [35] 그러나 덕분에 이재용 부회장의 바람대로 프런트는 2018년 첫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36] 원래 현대자동차그룹 KIA 타이거즈를 매각하려고 야구단에 관심을 보인 신세계그룹에 접촉했으나 수도권 팀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는 말이 돌았다. 물론 KIA 구단에선 이를 부인했지만, 이쪽은 범현대가가 야구보단 축구에 더 관심이 많아 가능성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37] 실제로 이건희는 프로 원년부터 2001년까지 20년간 라이온즈 구단주 직함을 달고 있었으며 1993년 신(新)경영 선언 후엔 야구를 삼성그룹의 3대 스포츠로 지정했고, 경산 볼파크 건립까지 직접 지시할 만큼 단순한 금전적 지원을 넘어 구단에 매우 큰 애착을 갖고 있었다. 또한 2014년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에도 삼성서울병원 VIP병실에서 삼성 라이온즈 경기 중계를 틀었고, 이승엽의 극적인 3점 홈런 때는 잠깐이지만 눈까지 번쩍 뜨면서 그룹에서 이승엽에게 감사를 전한 적도 있었다. [38] 한화 이글스 김승연, 롯데 자이언츠 신동빈 등 야구에 관심이 많은 재벌 총수들은 몇몇 있으나 정용진에 비할 바는 못 된다. 당연히 그런 정용진이 보기에는 삼성 오너가가 야구에 무관심해 보일 수 있는데, 일단 삼성은 라이온즈를 몹시 좋아했던 이병철- 이건희 선대 회장들의 유훈 때문에라도 야구단을 함부로 처분할 수 없으며, 실제로 여전히 야구단에는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일례로 2022년 삼성이 13연패를 했을 때에도 이재용 "우승까지 바라는 건 아니지만, 13연패는 너무 심하다"고 언급하자 허삼영 감독이 사실상 경질되었으며, 다른 때엔 지나가는 말로 "우리가 제일 많이 지원했는데..."라고 하기도 했다. [39] 그리고 정용진의 SSG 역시 김원형 경질 이후 김성용의 더거+이숭용+김강민 퇴출 3연타로 위기를 겪고 있다. 결국 이숭용이 2024년 그대로 팀을 말아먹으며 SSG 팬덤에게 엄청난 비판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 [40] 이진영의 경우 출루율이 너무 떨어져 비판 여론이 있으나 김영웅 타법과 같은 메이저리그식 타격이론을 통해 홈런을 늘린 장점이 있으나 정대현같은 경우 연습 투구 최소화 등 최근의 트렌드는 맞지만 팀 사정에 맞지 않는 이론을 너무 무분별하게 적용시킨다는 비판 여론이 있다. [41] 안현호-홍준학 시대에는 이상한 철밥통들과 오버페이가 급증했으며 반대로 레전드 홀대도 더 심하졌다. 즉 이 기간동안에는 팀 공헌도보다 정치질이나 누구 라인에 잘 서냐가 팀에게 대우받는 지름길이었다. [42] 한 예로 2012년 시즌 후 심창민은 연봉 협상 전 전년도에는 재활 때문에 최저연봉 2,400만 원을 받았다가 올해는 1군에 올라왔으니 5,000 만원을 받자고 생각했었는데, 협상 과정에서 프런트가 처음부터 "내년 연봉은 5,500만 원으로 하자."라 말해 당황한 나머지 "6,000만 원 주세요."라고 말실수를 했다가 프런트가 "그래."라고 답해 놀랐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밖에 롯데 시절 매년 연봉 협상에 프런트와 대립각을 세웠던 신명철은 삼성 이적 후 늘 그랬듯이 연봉 협상 때 연봉 고과와 관련된 자료를 잔뜩 준비해 갔으나, 본인이 예상한 금액보다 구단 제시 금액이 더 높아 군말 없이 바로 계약을 체결했다는 일화도 있다. [43] 이만수는 은퇴식도 없이 방출당했고, 김시진과 장효조는 선수협 파동으로 롯데로 트레이드가 됐다. 양준혁은 야구를 잘해도 불펜이 필요함에 따라 가차없이 트레이드를 당했고, 배영수는 기량이 쇠퇴하자 FA때 좋은 대우를 받지 못 했다. [44] 물론 배영수의 경우엔 부상 이후 기량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구단 역사상 이례적으로 대우를 잘해주긴 했다. 다만 배영수의 이적은 단순히 금전적인 대우가 아닌 점은 존재하고, 구단 전통의 레전드 홀대와 배영수의 자존심이 빚어낸 갈등이었기 때문이다. [45] 윤성환은 비슷한 경우인 줄 알았으나, 이후 승부조작으로 구속되며 재평가받았다. [46] 김응룡 감독은 구단 측에서 별로 불러오고 싶지 않아 했던 양준혁을 다시 삼성으로 불러들이는 데 큰 공을 세웠다. [47] 예외야 있겠지만 대부분의 삼성 팬들은 김응룡 감독이 처음 삼성에 부임했을 때는 크게 반발했지만 첫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에는 그러한 여론은 수그러들었고 선동열 감독과는 다르게 싫어하지 않는다. 일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이었던 2002년 한국시리즈의 이미지가 워낙 좋고 이후에도 부임하고 있는 동안 포스트시즌은 꾸준히 진출한 데다 팀 정체성을 딱히 바꾼 것도 아니라 삼성 팬들의 김응룡 감독에 대한 이미지는 나쁘지 않다. 또한 그가 공들이거나 그의 임기 중에 데려온 많은 유망주들이 2010년대 우승에 일조했고, 감독 퇴임 후에도 6년 간이나 삼성 라이온즈 사장을 맡는 등 삼성에 대한 애정을 쏟아줬기 때문에 오히려 이미지가 좋은 편이다. [48] 이것도 야구단 기준으로 트레이닝파트가 나아진 것이지, 삼성스포츠 전체로 치면 그닥 큰 변화는 없다. [49] 삼성 트레이닝 센터의 경우에는 삼성스포츠단 뿐 아니라 삼성에서 후원하는 기타 스포츠 종목의 선수들도 이 곳에서 훈련과 재활을 한다. 국내에서는 가장 체계적인 최첨단 훈련 시설을 갖췄다고 평가받는다. [50] 엄밀히 말하면 배영섭은 지명 후 부상으로 한 시즌을 날렸고 최형우는 경찰청 입대 후 방출당하고 제대 후 재영입한 케이스라 삼성 2군에서 성장한 경우라고 보기는 힘들다. [51] 이 기간동안 삼성만큼 육성/트레이닝 시스템이 구렸던 팀은 이윤원 시절 롯데가 끝이다. 롯데가 단장을 성민규로 바꾼 2020년부터 2023년까지는 육성과 트레이닝이 독보적으로 리그 최악이었다. [52] 김거김 사례에 삼성이 아주 많은데 사실 삼성은 FA 먹튀도 옛날부터 많았고 외국인 투수도 못 뽑았으며 신인고 거르고 지명이 아주 많은 등 스카우팅 파트는 줄곧 최악이었다. [53] '05 백준영, '06 김효남, '07 김동명 등 1차 지명자들이 모두 성장에 실패했다. 많은 기대를 모았던 '08 우동균은 기대에 못미쳤고 '09 김상수가 프랜차이즈 플레이어로서 제 몫을 해주고 있다. '10~'13 드래프트에는 1차지명이 폐지됐다가 '14년 드래프트부터 부활했다. '14 이수민도 크지 못했고, '15 김영한은 대구-경북팜이 아닌 속초시의 설악고 선수였다. [54] 비단 경주고 뿐만 아니라 대구·경북 고교야구부에 대한 학교 차원의 지원이 점점 줄어 가면서, 이에 대구·경북 중학야구 유망주들 중 몇몇 선수는 지원이 후한 타 지역 고교로 진학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삼성 리틀야구단 출신임에도 천안북일고로 진학한 김인태가 있다. [55] 사실 KBO에서도 현재 뛰어난 우타 거포는 많이 희귀한 편이다. 리그 정상급 우타 거포는 박병호 최정 정도다.박병호 삼성이잖아 [56] 이후 2016~2018년은 선발보다는 불펜으로 더 많이 등판했고 계속 부진했다. [57] 3.58, 리그 전체 8위 [58] 이성규, 박병호, 김헌곤, 강민호는 나이가 찼고 이재현은 체력 소모가 매우 심한 유격수이다. [59] 사실 삼성 팀 사정을 보면 저런 저주들이 팀에 끼치는 악영향은 생각보다는 미미하다. 대체 외국인 잔혹사를 빼면. 어차피 군경팀 전역자가 팀 전력에 미치는 영향은 작다. 문제는 이로 인해 삼성 팬덤은 '신인 선수는 무조건 병역특례'라는 얘기를 할 정도가 되었다는 것. [60] 그러나 팀에 미치는 악영향과는 별개로 이제 삼성 팬덤은 유망주를 군경팀에 보내거나, 부진한 외국인을 갈아치우는 것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못하는 외국인도 끌고 가려는 경우가 많고 유망주들도 무조건 병역특례라는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61] 김윤수: 등판 첫 경기 제구 난조 이후 2군에서도 부진, 이후 부상. 카데나스: 몇 경기 뛰지도 않고 전치 없는 자체 부상으로 10일 드르렁, 이후 경기 태업. 김윤수의 경우 상무 전역자들 중에서도 최채흥보다도 첫 해가 최악이며, 카데나스는 역대 대체 외국인은커녕 2016년 이래 최악의 용병으로 전락했다. 이들은 전열에 돌아온 지 한 달 동안 김윤수는 두 경기, 카데나스는 실질적으로 6경기 나왔으며 그 이후로 부상으로 드러누웠다. 하지만 김윤수의 경우 플레이오프에서 맹활약하며 재평가의 여지를 남겼고 카데나스로 이어지는 징크스 역시 그의 대체인 르윈 디아즈가 어느정도 끊어냈다. [62] 이 둘은 성적만 놓고보면 성공작이긴 하다. 특히 베이커는 2021년 데이비드 뷰캐넌 이 16승을 거두기 전까지 역대 삼성 외국인 투수 중 최다 승수를 보유하고 있었다. [63] 사실 벤 라이블리도 2019년 대체용병으로 들어온 이후 2020년, 2021년 모두 부상으로 인해 리그를 풀타임으로 소화하지 못하였다. 2021년 초반에는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었지만 타선과 불펜이 도와주지 못하면서 승을 쌓지 못하였고 결국 부상으로 인해서 방출되었다 [64] 시즌 중 KIA에서 영입 [65] 시즌 중 넥센에서 방출 후 kt로 영입 [66] 시즌 중 재영입 [67] 시즌 중 대체선수로 영입 [68] 시즌 중 두산으로 이적 [69] 시즌 중 재영입 [70] 시즌 중 재영입 [71] 시즌 중 대체선수로 영입 [72] 즉 타자 버전 이반 노바로, 대표적 사례로 가코가 있다. [73] 대표적 사례로 발디리스와 맥키넌이 있다. 둘다 NPB에서 나쁘지 않았으나 KBO에서는 적응 문제로 망했다. 발디리스 본인은 본인 스스로 적응에 실패했다고 인정했다. [74] 플레이오프 2승+한국시리즈 1승 [75] 플레이오프 3홈런+한국시리즈 2홈런 [76] KBO에서 악명높은 에디슨 러셀보다도 더 심각하며, 성적상으로만 보자면 스캇을 넘어서 라이언 가코와 함께 가장 실망스러운 외국인 두 명으로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망했다. 마침 러셀도 첫 시즌은 대체 외국인 선수로 들어왔는데 망했으나, 있느니만 못했던 팔카, 몽고메리보다는 훨씬 나았다. 첫 시즌은 저 둘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고, 복귀 시즌은 딱 맥키넌 수준. 그리고 루크 스캇은 성적 자체는 가코, 팔카, 몽고메리에 비할 바는 아니며 OPS 9할로 준수하나 해당 시즌이 KBO 역대 타고투저 최강으로 꼽히는 2014시즌이었고, 결정적으로 이만수 감독에게 항명하며 팀케미를 크게 해쳤기에 순수 성적은 팔카와 몽고메리가 더 처참한데도 저 둘보다 훨씬 낮은 평가를 받는다. [77] 이쪽은 리즈로 인해 발생한 사구 부상의 트라우마가 겹쳤다. 그나마 추락폭이 다른 선수들보다는 적으나, 주력이 느려지는 문제점이 있었고 결국 정신적 내상을 이기지 못해 선수 생활을 일찍 그만두었다. [78] 입대 1년차인 2013년 148⅓이닝을 소화하면서 남부리그 최다 이닝 기록을 경신했다. [79] 다만 심창민과 최채흥은 앞서 정인욱의 사례와 달리 상무 시절 전혀 혹사받지를 않았다. [80] 경찰 야구단 출신 타자들의 성공 사례로 유승안 감독에 대한 이미지가 좋았다 보니 대다수 팬들은 상무의 투수 혹사만 문제 삼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동시기 경찰의 투수 혹사가 더욱 심했다. [81] FA 보상선수로 김재성이 삼성행, 선수단 운영 문제로 이형종이 퓨처스 FA 자격을 얻고 타 팀으로 이적, LG의 샐러리캡이 빡빡해져서 구단의 FA 플랜이 꼬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