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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애틀랜타 올림픽/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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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4년, 1988년 대회는 시범 종목.
<rowcolor=#202020> 23회 24회 25회 26회 2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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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로스엔젤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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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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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바르셀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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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애틀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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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시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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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
파일:WBSC 쿠바 국기.png 쿠바
(전승)
파일:WBSC 미국 국기.png 미국
<rowcolor=#202020> 28회 29회 32회 34회 3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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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아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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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베이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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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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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 로스앤젤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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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2 브리즈번
파일:WBSC 쿠바 국기.png 쿠바 파일:WBSC 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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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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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ffffff,#191919><tablebgcolor=#ffffff,#191919>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모자 로고 2.svg 대한민국 아마야구 국가대표팀
역대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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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 주요 대표팀 | 역대 로스터 | 역대 감독 | 역대 주장 | 역대 유니폼 | 역대 BI | 세대별 대표팀 | 논란
<rowcolor=#ffffff> 1975
대륙간컵
1976
하를럼 베이스볼 위크
1976
세계 야구 선수권
1977
대륙간컵
1978
하를럼 베이스볼 위크
김계현호
1975
|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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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
김응룡호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1977년|
1977
]] 파일:트위터 금메달 이모지.svg |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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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1978
세계 야구 선수권
1980
서울컵
1980
세계 야구 선수권
1981
월드 게임
1981
대륙간컵
김응룡호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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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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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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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홍호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1981년|
1981
]] 파일:트위터 은메달 이모지.svg |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1981년/대륙간컵|
1981
]]
<rowcolor=#ffffff> 1982
세계 야구 선수권
1983
대륙간컵
1984
세계 야구 선수권
1984
LA 올림픽
1985
대륙간컵
어우홍호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1982년|
1982
]] 파일:트위터 금메달 이모지.svg |
1983
한을룡호
1984
김청옥호
1984
성기영호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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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1986
세계 야구 선수권
1987
대륙간컵
1988
IBAF 야구 월드컵
1988
서울 올림픽
1989
IBAF 대륙간컵
성기영호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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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빈호
1987
김병우호
1988
김충남호
1989
<rowcolor=#ffffff>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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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
1991
IBAF 대륙간컵
1993
IBAF 대륙간컵
1994
IBAF 야구 월드컵
강문길호
1990
장순조호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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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길호
1991
장순조호
1993
김충남호
1994
<rowcolor=#ffffff>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1995
IBAF 대륙간컵
1996
애틀랜타 올림픽
1998
IBAF 야구 월드컵
1999
IBAF 대륙간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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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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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우호
1995
김충남호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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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
1999
<rowcolor=#ffffff> 2002
IBAF 대륙간컵
2003
IBAF 야구 월드컵
2005
IBAF 야구 월드컵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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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AF 야구 월드컵
주성노호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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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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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권영호호
2006
강문길호
2007
<rowcolor=#ffffff>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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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IBAF 대륙간컵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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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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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김정택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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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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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환호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2015년|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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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환호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2017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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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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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아시아 야구 선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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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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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명호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2023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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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이 분기점이 되는 이유는 KBO 리그 소속 선수 선발을 책임지는 KBO가 참여하기 시작한 대표팀이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이기 때문이다.
1998년 이후 A급 야구 대표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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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996 애틀랜타 올림픽 로고.svg
올림픽 야구
파일:1996 애틀랜타 올림픽 야구 픽토그램_블랙.png
<colbgcolor=#4d756b><colcolor=#ffffff> 종목 <colbgcolor=#FCFCFC,#444444> 야구
참가 인원 160명
참가국 8개국
기간 1996년 7월 20일 ~ 8월 2일
경기장 애틀랜타-풀턴 카운티 스타디움
1. 개요2. 경기장3. 참가국4. 예선 풀리그
4.1. 7월 20일
4.1.1. 1경기 : 미국 4 : 1 니카라과4.1.2. 2경기 : 쿠바 19 : 8 호주 (8회 콜드게임)4.1.3. 3경기 : 일본 12 : 2 네덜란드 (7회 콜드게임)
4.2. 7월 21일
4.2.1. 1경기 : 대한민국 1 : 2 이탈리아4.2.2. 2경기 : 일본 7 : 8 쿠바 (10회 연장전)
4.3. 7월 22일
4.3.1. 1경기 : 네덜란드 16 : 6 호주 (8회 콜드게임)4.3.2. 2경기 : 이탈리아 2 : 7 니카라과4.3.3. 3경기 : 대한민국 2 : 7 미국
4.4. 7월 23일
4.4.1. 1경기 : 네덜란드 2 : 18 쿠바 (7회 콜드게임)4.4.2. 2경기 : 니카라과 8 : 3 대한민국4.4.3. 3경기 : 호주 9 : 6 일본
4.5. 7월 24일
4.5.1. 1경기 : 미국 15 : 3 이탈리아 (7회 콜드게임)4.5.2. 2경기 : 쿠바 14 : 11 대한민국
4.6. 7월 25일
4.6.1. 1경기 : 니카라과 5 : 0 네덜란드4.6.2. 2경기 : 이탈리아 12 : 8 호주4.6.3. 3경기 : 미국 15 : 5 일본 (7회 콜드게임)
4.7. 7월 27일
4.7.1. 1경기 : 일본 13 : 6 니카라과4.7.2. 2경기 : 이탈리아 6 : 20 쿠바 (7회 콜드게임)4.7.3. 3경기 : 호주 5 : 15 미국 (7회 콜드게임)
4.8. 7월 28일
4.8.1. 1경기 : 네덜란드 3 : 11 대한민국4.8.2. 2경기 : 쿠바 10 : 8 미국4.8.3. 3경기 : 호주 0 : 10 니카라과 (8회 콜드게임)
4.9. 7월 29일
4.9.1. 1경기 : 네덜란드 8 : 7 이탈리아4.9.2. 2경기 : 니카라과 7 : 8 쿠바4.9.3. 3경기 : 대한민국 4 : 14 일본 (7회 콜드게임)
4.10. 7월 30일
4.10.1. 1경기 : 미국 17 : 1 네덜란드 (7회 콜드게임)4.10.2. 2경기 : 이탈리아 1 : 12 일본 (8회 콜드게임)4.10.3. 3경기 : 호주 11 : 8 대한민국
4.11. 예선라운드 순위
5. 결선토너먼트
5.1. 준결승 1경기 : 니카라과 1 : 8 쿠바5.2. 준결승 2경기 : 일본 11 : 2 미국5.3. 동메달 결정전 : 미국 10 : 3 니카라과5.4. 결승전 : 일본 9 : 13 쿠바
6. 최종 성적7. 한국팀 관련
7.1. 대회 전 분위기7.2. 대회 개막, 그리고 부진7.3. 부진 원인7.4. 대회 이후
8. 외국팀 관련9. 여담

1. 개요

1996년 올림픽 종목으로 애틀랜타에서 7월 20부터 8월 2일까지 애틀랜타-풀턴 카운티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이전과 같이 대륙별 예선을 거치고 올라온 8개국이 경기를 치렀다.

1996 애틀란타 올림픽에 참가했던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으로, 아마추어 선수들만으로 올림픽에 출전한 마지막 대표팀이기도 하다.[1] 당시 대표팀은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야구 대표팀의 일원으로 참여했던 문동환(현대 피닉스), 손민한, 진갑용(이상 고려대)을 포함한 이병규(단국대), 강혁(한양대), 김선우(이상 고려대), 조인성(연세대), 임선동[2] 등 대학 선수와 현대 피닉스의 선수들로 구성되었다.
대표팀 사령탑은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김충남(연세대 감독)이 맡았고 코치로 장순조(경성대 감독), 조두복(고려대 감독), 최한익(현대 피닉스 감독)이 선임되었다.

2. 경기장

Atlanta–Fulton County Stadium
파일:애틀랜타-풀턴_카운티_스타디움.jpg
애틀랜타-풀턴 카운티 스타디움 (52,000석)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위치해 있던 야구장으로 다목적 용도로 사용된 구장이었다. 애틀랜타 올림픽 야구 전경기를 이 경기장에서 치렀다. 과거 MLB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NFL 애틀랜타 팰컨스의 홈구장으로 사용했다. 팰컨스는 1992년 조지아 돔으로 홈구장을 옮겼고 올림픽 주경기장으로 사용된 센테니얼 올림픽 스타디움을 올림픽이 끝난 후 터너 필드라는 이름의 야구장으로 개조해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새홈구장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결국 계획대로 풀턴 카운티 스타디움은 올림픽이 끝난후 1997년 철거해서 현재는 터너 필드의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3. 참가국

파일:오륜기(여백X)_흰색.svg
애틀랜타 올림픽 참가국
출전자격 출전확정일자 진출횟수 최근 출전 최고성적 WBSC 랭킹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개최국 자동진출 1990년 9월 18일 2회 1992 4위 -
파일:쿠바 국기.svg 쿠바 1995 팬아메리칸 게임 우승 1995년 3월 26일 2회 1992 파일:트위터 금메달 이모지.svg -
파일:니카라과 국기.svg 니카라과 1995 팬아메리칸 게임 준우승 1995년 3월 26일 1회 첫 출전 첫 출전 -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네덜란드 1995 유럽야구선수권대회 우승 1995년 7월 16일 1회 첫 출전 첫 출전 -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이탈리아 1995 유럽야구선수권대회 준우승 1995년 7월 16일 2회 1992 7위 -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1995 BFA 아시아선수권 우승 1995년 9월 23일 2회 1992 파일:트위터 동메달 이모지.svg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1995 BFA 아시아선수권 준우승 1995년 9월 23일 1회 첫 출전 첫 출전 -
파일:호주 국기.svg 호주 1995 오세아니아-아프리카 PO 1위 1995년 12월 31일 1회 첫 출전 첫 출전 -

4. 예선 풀리그

당시 대표팀은 (쿠바는 어렵지만) 미국과 일본 중 한팀만 잡으면 메달획득은 가능할거라고 판단했지만,[3] 최종 성적은 1승 6패로 최하위였다. 대표팀은 이해 대회에서 네덜란드에게 11:3으로 승리한 것이 이 대회 유일한 승리였을 정도로 부진했는데, 당시 제대로 된 야구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이탈리아 호주에게도 패하며 "아무리 아마추어라지만 너무한거 아니냐!"라는 반응을 얻었다. 이해 대회에도 일본 대표팀과의 맞대결이 있었는데 4대14로 7회 콜드게임을 당하는 충격적인 결과를 받아들였다.

4.1. 7월 20일

4.1.1. 1경기 : 미국 4 : 1 니카라과

4.1.2. 2경기 : 쿠바 19 : 8 호주 (8회 콜드게임)

4.1.3. 3경기 : 일본 12 : 2 네덜란드 (7회 콜드게임)

4.2. 7월 21일

4.2.1. 1경기 : 대한민국 1 : 2 이탈리아


한국대표팀 라인업
선발투수 : 문동환
타선
1번 : 이병규(우익수)
2번 : 최만호(중견수)
3번 : 강혁(1루수)
4번 : 강필선[4](3루수)
5번 : 진갑용(포수)
6번 : 안희봉(지명타자)
7번 : 이동욱(2루수)
8번 : 조경환(좌익수)
9번 : 채종국(유격수)

본 경기에서 한국대표팀은 타선이 5안타 1득점으로 힘을 쓰지 못하며 1:2로 패배했다. 문동환은 8이닝 2실점 삼진 11개를 잡으며 호투했지만 완투패를 당했고 상대 이탈리아 투수인 로베르토 카발리스티[5]는 한국 대표팀을 상대로 9이닝 1실점 완투승 거두었다.

4.2.2. 2경기 : 일본 7 : 8 쿠바 (10회 연장전)

4.3. 7월 22일

4.3.1. 1경기 : 네덜란드 16 : 6 호주 (8회 콜드게임)

4.3.2. 2경기 : 이탈리아 2 : 7 니카라과

4.3.3. 3경기 : 대한민국 2 : 7 미국

미국과의 경기에서 대표팀은 2:7로 패배했다. 당시 미국 대표팀에는 트로이 글로스, 브랜든 루퍼, 자크 존스, 크리스 벤슨,[6][7] 트래비스 리,[8] 제프 위버, R.A. 디키등이 포진되어 있었고 이중 한국전 선발투수로 등판했던 세스 그레이싱어[9]는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6번재로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 지명된 유망주였고 6이닝 7피안타 2실점으로 한국 타선을 막아내며 승리를 거두었다. 제프 위버가 나머지 3이닝을 무실점으로 깔끔하게 막았고 한국 대표팀은 손민한이 수비진들의 실책에 흔들리며 7이닝 6실점(4자책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 타선에서는 4타수 2안타 1홈런을 기록한 강혁과 3타수 2안타 1볼넷을 기록한 진갑용이 유이한 멀티 안타를 치며 활약했다.

4.4. 7월 23일

4.4.1. 1경기 : 네덜란드 2 : 18 쿠바 (7회 콜드게임)

4.4.2. 2경기 : 니카라과 8 : 3 대한민국

니카라과와의 경기에서 선발 김선우가 3이닝 4실점, 문동환이 2이닝 4실점으로 각각 무너지며 3:8로 완패했다. 남은 경기에서 다 승리해야 4강이 가능하지만 쿠바, 일본 등과의 경기가 남아있어서 사실상 4강은 힘들어 졌다.

4.4.3. 3경기 : 호주 9 : 6 일본

4.5. 7월 24일

4.5.1. 1경기 : 미국 15 : 3 이탈리아 (7회 콜드게임)

4.5.2. 2경기 : 쿠바 14 : 11 대한민국

페드로 라조와 에두아르도 파레트, 호세 콘트레라스가 소속되어 있던 아마 야구 최강팀 쿠바와 맞붙은 대표팀은 의외의 난타전을 펼쳤고 최종 11:14로 패배했다. 한국 대표팀은 선발 사이드암 전승남을 비롯해 김선우, 오철민, 임선동, 김영수 등 5명의 투수를 투입했으나 김영수를 제외한 모든 선수가 난타를 당하며 실점을 했다. 누구하나 3이닝 이상 투구를 하지 못했다. 반면 타선은 강혁이 4타수 3안타 2타점 1볼넷, 안희봉이 3타수 2안타 3타점 1볼넷 등 진갑용 백재호를 제외한 선발 공격진이 안타를 기록하며 활약했다.

4.6. 7월 25일

4.6.1. 1경기 : 니카라과 5 : 0 네덜란드

4.6.2. 2경기 : 이탈리아 12 : 8 호주

4.6.3. 3경기 : 미국 15 : 5 일본 (7회 콜드게임)

4.7. 7월 27일

4.7.1. 1경기 : 일본 13 : 6 니카라과

4.7.2. 2경기 : 이탈리아 6 : 20 쿠바 (7회 콜드게임)

4.7.3. 3경기 : 호주 5 : 15 미국 (7회 콜드게임)

4.8. 7월 28일

4.8.1. 1경기 : 네덜란드 3 : 11 대한민국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대표팀은 11:3으로 대회 첫승을 거둔다. 선발로 나온 조진호가 3회를 넘기지 못하고 2실점으로 강판 당했으나 이후에 나온 김영수와 4이닝 1실점으로 막은 전승남이 타선의 지원을 받고 잘 마무리 해서 쉽게 승리했다. 공격에서 5타수 3안타 3타점의 최만호와 5타수 4안타 3타점의 이병규가 이끄는 테이블 세터진이 공격을 이끌며 활약 했다.

4.8.2. 2경기 : 쿠바 10 : 8 미국

4.8.3. 3경기 : 호주 0 : 10 니카라과 (8회 콜드게임)

4.9. 7월 29일

4.9.1. 1경기 : 네덜란드 8 : 7 이탈리아

4.9.2. 2경기 : 니카라과 7 : 8 쿠바

4.9.3. 3경기 : 대한민국 4 : 14 일본 (7회 콜드게임)

올림픽에서 열린 한일전. 영상 3분 27초부터.

당시 일본 대표팀 후쿠도메 고스케, 마쓰나카 노부히코, 이구치 타다히토, 이마오카 마코토, 다니 요시토모[10]가 버티고 있었기에 올림픽 당시 대표팀이 가장 주목해야 할 경기로 꼽았다.

한국대표팀은 선발투수로 오철민이 등판했다. 그렇지만 1대0으로 앞선 3회, 오철민이 다니 요시토모에게 역전 2점홈런을 허용하면서 끌려가기 시작한다. 이후 후속투수 손민한이 1⅓이닝동안 4실점하며 무너졌고, 뒤이어 올라온 김선우가 6회 마쓰나카 노부히코에게 1점홈런 허용 및 1이닝 6실점(4자책)을 기록하는 등,[11] 투수진이 난타당하며 졸전 끝에 7회 4:14 콜드게임 패배를 당했다.

4.10. 7월 30일

4.10.1. 1경기 : 미국 17 : 1 네덜란드 (7회 콜드게임)

4.10.2. 2경기 : 이탈리아 1 : 12 일본 (8회 콜드게임)

경기 주요영상.

4.10.3. 3경기 : 호주 11 : 8 대한민국

호주와의 경기에서 대표팀은 8:11로 패배했다. 초반 7:0 으로 앞서 있어 쉽게 이길 것 같았으나 4회초 선발 임선동이 흔들리며 대량실점의 빌미를 마련했고 뒤이어 나온 전승남도 불을 끄지 못하며 4회에만 대거 8실점으로 역전을 당해 경기에 흐름을 내주었다. 한국 대표팀은 이날 패배로 대회 최하위를 기록하며 쓸쓸하게 귀국해야 했다.

4.11. 예선라운드 순위

경기 득점 실점 승률 승차 승자승 비고
파일:쿠바 국기.svg 쿠바 7 7 0 97 49 1.000 4강 진출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7 6 1 81 27 .857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7 4 3 69 45 .571 3 1승 0패
파일:니카라과 국기.svg 니카라과 7 4 3 44 30 .571 3 0승 1패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네덜란드 7 2 5 32 76 .286 5 2승 0패 조별예선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이탈리아 7 2 5 33 71 .286 5 1승 1패
파일:호주 국기.svg 호주 7 2 5 37 78 .286 5 0승 2패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7 1 6 40 59 .143 6

5. 결선토너먼트

5.1. 준결승 1경기 : 니카라과 1 : 8 쿠바

5.2. 준결승 2경기 : 일본 11 : 2 미국

경기 주요영상.

일본은 (미국선발 크리스 벤슨을 상대로) 오쿠보 히데아키, 이마오카 마코토, 다카바야시 다카유키[12] 등이 각각 홈런을 기록하면서 경기초반부터 앞서나갔고, 이후 미국의 후속투수들을 상대로도 마쓰나카 노부히코, 이구치 다다히토가 각각 홈런을 기록하는 등, 총 5개의 홈런으로 미국 마운드를 초토화시키면서 결승에 진출한다.

5.3. 동메달 결정전 : 미국 10 : 3 니카라과

5.4. 결승전 : 일본 9 : 13 쿠바

경기 풀영상.

일본은 5회 마쓰나카 노부히코의 동점 만루홈런, 링크. 경기후반인 7회와 9회 다니 요시토모의 연타석 홈런 영상 6분 58초부터. 등으로 선전했지만, 경기는 쿠바의 승리로 끝난다.

쿠바는 결승전 승리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이어 올림픽야구 2연패 달성에 성공했다.

본 대회 결승전 헹가래 투수페드로 루이스 라조[13]이다.

6. 최종 성적

순위 국가 경기 비고 최종 성적
파일:트위터 금메달 이모지.svg 파일:쿠바 국기.svg 쿠바 9 9 0 금메달
파일:트위터 은메달 이모지.svg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9 5 4 은메달
파일:트위터 동메달 이모지.svg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9 7 2 동메달
4 파일:니카라과 국기.svg 니카라과 9 4 5 4위
5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네덜란드 7 2 5 2-0 조별리그
6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이탈리아 7 2 5 1-1 조별리그
7 파일:호주 국기.svg 호주 7 2 5 0-2 조별리그
8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7 1 6 조별리그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우승
파일:쿠바 국기.svg
두번째 우승 쿠바

7. 한국팀 관련

7.1. 대회 전 분위기

7.2. 대회 개막, 그리고 부진

7.3. 부진 원인

7.4. 대회 이후

8. 외국팀 관련

9. 여담



[1] 아마추어 선수들만으로 구성된 마지막 대표팀은, 1998년 7월 이탈리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대표팀이다. 그해 12월 방콕 아시안게임부터는 프로선수들의 국제대회 참가가 허용하면서 실제로 프로선수들이 대표팀의 주축을 이룬다. [2] 임선동은 원래 1996년 2월에 졸업해야 했으나 졸업 이수 학점 미달로 졸업을 하지 못했다. 이와는 별개로 다이에 호크스와의 계약 건으로 올림픽 출전 자격이 되는지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3] 1996년 9월 월간스포츠매거진 <루키>에 게재된 허구연 칼럼에 의하면, 올림픽 출국 직전 대한야구협회 관계자가 허구연에게 이와 같은 말을 하면서 자신만만해했다고 한다. [4] 연세대 91학번 출신. 올림픽 당시는 실업팀 현대 피닉스 소속이었다. 올림픽 이후에는 상무를 거쳐 KBO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하지만, 큰 활약은 펼치지 못하고 은퇴한다. [5] 이탈리아 야구리그 소속의 리미니 베이스볼팀에서 뛰는 선수였다. [6] 1999~2010년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며 70승 75패를 기록한 우완투수다. 올림픽 출전 당시는 클렘슨 대학교 소속이었다. [7] 일본과의 준결승에 선발등판했지만 패전투수가 된다. [8] 1998~2006년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했던 좌완투수다. 올림픽 출전 당시는 샌디에이고 주립대학교 소속이었다. 데뷔 당시 김병현과 애리조나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9] 올림픽 3경기에 나서 3승으로 공동 다승왕. [10] 일본 유도의 여왕 다무라 료코(결혼후 다니 료코)의 남편으로 유명한 야구선수. 올림픽 당시 .421 4홈런 11타점으로 맹활약 했으며 2000 시드니 올림픽, 2004 아테네 올림픽에도 일본 대표팀에 차출되며 활약했다. 참고로 부인과 자신의 메달(은1개, 동1개)을 모두 합치면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로 총 6개의 올림픽 메달을 가지고 있었다. [11] 마지막투수로 등판한 선수는 문동환이다. [12] 다카바야시는 직전해인 1995년 9월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결선리그 한국전에서, 임선동을 상대로 끝내기 희생플라이를 기록하면서, 일본의 우승에 공헌한 적이 있다 [13] 약칭은 라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결승 한국전에도 구원투수로 등판했었다. 라조에 관한 더 자세한 사항은, 하단의 외국팀 항목 참조. [14] 야구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부터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그렇지만 한국 야구대표팀은 1991년 9월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탈락한 관계로 본선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15] 애틀랜타 올림픽 아시아예선도 겸한 대회였다. [16] 9회말 시작 때까지는 2대1로 한국이 리드했으나, 9회말에 역전당한다. 이 경기에서 한국의 선발투수는 문동환이었으나, 경기 초반 2실점 후 조기강판당했고, 후속투수 임선동이 호투했으나 9회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패배했다. [17] 언급된 한일전 2경기 모두 임선동의 호투가 있었다. [18] 정확하게는 한미 야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 것이다. [19] 그 과정에서 수비실책도 다수 발생. [20] 1996년 9월 월간스포츠매거진 <루키>에 게재된 허구연 칼럼 중. [21] 경기에서도 지고 매너에서도 지다. 1996년 9월 월간스포츠매거진 <루키>에 게재된 허구연 칼럼 중. [22] 올림픽 지역예선도 겸한 대회였다. [23] 1995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당시는 (그 전까지 에이스였던 91학번 문동환보다) 92학번 임선동의 활약이 더욱 돋보였다. 하나 덧붙이자면, 92학번들 외에 93학번 이병규도 대만전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24] 1994년까지는 91학번인 문동환 심재학의 맹활약도 함께 있었다. [25] 퍼스. [26] 우승 일본. 대신 전년도 바르셀로나올림픽 은메달팀인 대만을 2번이나 격파했고, 그 중 한번은 임선동의 1실점 완투승도 있었다. [27] 버팔로. [28] 우승 쿠바. 참고로 박찬호가 미국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다저스에 입단하는 계기가 되었던 대회이기도 하다. [29] 마나과. [30] 우승 쿠바. 결승 쿠바전은 조성민 임선동이 이어던졌다. 참고로 준결승 일본전에서는 문동환의 완봉승으로 8대0 승리했다. [31] 히로시마 히로시마 시민구장. [32] 우승 일본. 결승 일본전은 91학번 문동환과 92학번 조성민이 이어던졌다. [33] 후쿠오카 후쿠오카 돔. [34] 우승 쿠바. 참고로 쿠바전 당시 조성민의 호투가 있었고, 요미우리 자이언츠 입단 계기가 되기도 한다. [35] 후쿠오카 후쿠오카 돔. [36] 우승 쿠바. 결승 쿠바전은 93학번 손민한과 92학번 조성민이 이어던졌다. [37] 쿠라시키. [38] 우승 일본. 참고로 결선리그 일본전에서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투수 임선동의 호투가 인상적이었고, 이는 임선동 다이에 호크스와 계약을 맺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39] 아바나. [40] 우승 쿠바. [41] 대학에 진학했다면 94학번. [42] 대학에 진학했다면 95학번. [43] 고교시절 이승엽은 탑클래스 투수였다. 물론 타자로서의 재능도 있었지만, 고교시절에는 투수로 더 유명했다. [44] 고교시절 임창용은 무명선수였지만, 나름 잠재성이 있었다고 한다. [45] 청소년대표+비청소년대표 포함 대학을 졸업한 95학번 전체로 범위를 넓혔을 때, 훗날 프로에서 가장 성공한 선수는 타자 쪽의 홍성흔(고교시절 비청소년대표)이다. 상대적으로 투수 쪽은 박정진, 송신영 정도가 프로에서 불펜투수로 성공했고, 선발투수로 성공한 선수는 (대학 중퇴생) 황두성이 유일하다. 그리고 언급된 선수들 가운데, ( 박정진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청소년대표 경력이 없다. 결국 1994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우승 멤버들 중, 프로에서도 살아남은 95학번 혹은 1976년생 선수는 이승엽 박정진 정도라고 할 수 있다(또다른 우승멤버인 김선우는 이들보다 한학년 아래인 96학번이다). [46] 투수 쪽은 조진호 단 1명이었다. [47] 반면, 92학번-93학번들 중 재능있는 선수들은 대학 1학년 때부터 국가대표에 발탁되어 각종 국제대회에서 활약을 펼쳤었다. [48] 김선우는 1994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한국 우승 당시, 고등학교 2학년 신분으로 대표팀에 발탁되었던 적이 있다. [49] 공교롭게도 부진의 시작이 실업팀 현대 피닉스 입단과 맞물린다. [50] 특히 허구연 해설위원이 이러한 점들을 많이 비판했다. [51] 이 대회에서 일본은 우에하라 고지 다카하시 요시노부 등의 활약으로 쿠바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 [52] 프로 12명, 아마 10명. [53] 프로 17명, 아마 5명. [54] 프로 23명, 아마 1명. 참고로 아마추어 1명의 주인공이 바로 정대현이다. [55] 손민한은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획득으로 비로소 병역혜택을 받게 된다. [56] 김선우는 WBC 4강 진출로 비로소 병역혜택을 받게 된다. [57] 이병규는 2007년 12월에 펼쳐진 올림픽 아시아예선에 참가했고, 손민한 김선우는 2008년 3월에 펼쳐진 올림픽 대륙별 플레이오프에는 참가했지만, 이 3명 모두 8월 올림픽 본선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58] 약칭은 라조. 쿠바리그 개인통산 200승 투수이기도 하며, 1996년 올림픽 당시는 쿠바대표팀의 최연소 선수였다고 한다. [59] 구원등판해 호투했지만, 6회 수비에서 한국의 이용규에게 쇄기 2루타를 허용하기도 했다. [60] 이후 일본 야구대표팀의 올림픽 첫 금메달은 2021년 도쿄 올림픽에 가서야 나온다. [61] 심지어 시드니 올림픽 당시 한국 야구대표팀은 프로올스타로 구성된 최정예멤버였음에도, 그 팀을 맞아 승리(5대3)한 것이었다. [62] 물론 2013년 WBC에서는 한국이 호주에 승리(6대0)한 적이 있다. [63] 특히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크리스 옥스프링의 호투 등에 힘입어 1대0으로 승리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64] 1996년 7월 23일. [65] 단, 2020~2021 시즌은 코로나19 여파로 올스타전이 열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