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28일 발매되는 디지털 싱글에 대한 내용은 Eureka(호시노 겐) 문서 참고하십시오.
- [ 도서 목록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4><width=1000><tablebgcolor=#fff,#1f2023><tablecolor=#373a3c,#ddd><rowbgcolor=#083354> {{{#!wiki style="font-size: .85em" {{{#fff '''단독 저서'''}}}}}} || ||<-2><width=50%>{{{#!wiki style="word-break: keep-all" [[そして生活はつづく]][br]{{{-2 {{{#gray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br]{{{-1 (2009)}}}}}} ||<-2><width=50%>[[働く男]][br]{{{-2 {{{#gray 일하는 남자}}}}}}[br]{{{-1 (2013)}}} || ||<-2><width=50%>{{{#!wiki style="word-break: keep-all" [[よみがえる変態]][br]{{{-2 {{{#gray 되살아나는 변태}}}}}}[br]{{{-1 (2014)}}}}}} ||<-2><width=50%>[[생명의 차창에서|いのちの車窓から]][br]{{{-2 {{{#gray 생명의 차창에서}}}}}}[br]{{{-1 (2017)}}} || ||<-2><width=50%>{{{#!wiki style="word-break: keep-all" [[생명의 차창에서 2|いのちの車窓から 2]][br]{{{-2 {{{#gray 생명의 차창에서 2}}}}}}[br]{{{-1 (2024)}}}}}} || || ||<-4><bgcolor=#083354> {{{#!wiki style="font-size: .85em" {{{#fff '''대담집'''}}}}}} || ||<-2><width=50%>{{{#!wiki style="word-break: keep-all" 星野源 雑談集1[br]{{{-2 {{{#gray 호시노 겐 잡담집 1}}}}}}[br]{{{-1 (2014)}}}}}} ||<-2><width=50%>{{{#!wiki style="word-break: keep-all" [[地平線の相談]][br]{{{-2 {{{#gray 지평선의 상담}}}}}}[br]{{{-1 (2015)}}}}}} || ||<-2><width=50%>{{{#!wiki style="word-break: keep-all" 星野源 音楽の話をしよう[br]{{{-2 {{{#gray 호시노 겐 음악 이야기를 하자}}}}}}[br]{{{-1 (2018)}}}}}} ||<-2><width=50%>{{{#!wiki style="word-break: keep-all" 星野源 ふたりきりで話そう[br]{{{-2 {{{#gray 호시노 겐 단 둘이 이야기하자}}}}}}[br]{{{-1 (2019)}}}}}} || ||<-4><bgcolor=#083354> {{{#!wiki style="font-size: .85em" {{{#fff '''개인 잡지'''}}}}}} || ||<-4><bgcolor=#ffffff> {{{#!wiki style="margin: 7px 0px" [[YELLOW MAGAZINE+#YELLOW MAGAZINE|YELLOW MAGAZINE]] (2016 ~ )}}} ||
- [ 주요 출연작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4><width=1000><tablebgcolor=#fff,#1f2023><tablecolor=#373a3c,#ddd><rowbgcolor=#206FAC> {{{-1 {{{#fff '''冠番組 (이름을 건 방송)'''}}}}}} || ||<-2><rowbgcolor=#206FAC><rowcolor=#ffffff> {{{#!wiki style="font-size: .85em" '''라디오'''}}} || {{{#!wiki style="font-size: .85em" '''예능''' }}} || {{{#!wiki style="font-size: .85em" '''교양'''}}} || ||<width=50%><-2> {{{-1 호시노 겐의 레디컬 아워 (2013)}}} ||<width=25%><|2> {{{-1 [[오겐상과 함께]] (비정기 / 2024)}}} ||<width=25%><|2> {{{-1 [[호시노 겐의 음악 공론]] (2022 / 2024)}}} || ||<width=50%><-2> {{{-1 [[호시노 겐의 올 나이트 닛폰|호시노 겐의 올 나잇 닛폰]] (2016 ~)}}} || ||<-4><bgcolor=#000000> '''[[넷플릭스|{{{#e50914 넷플릭스}}}]] {{{#ffffff 호시노 겐 컬렉션}}}''' || ||<-2><rowbgcolor=#000000><rowcolor=#e50914> {{{#!wiki style="font-size: .85em" '''예능'''}}} ||<-2> {{{#!wiki style="font-size: .85em" '''콘서트''' }}} || ||<-2><|2> [[라이트하우스(예능)|라이트하우스]][br](2023) ||<-2> {{{-1 [[호시노 겐/공연 및 행사#s-5.1|DOME TOUR 'POP VIRUS' in TOKYO DOME]]}}} || ||<-2> {{{-1 [[호시노 겐/공연 및 행사#s-5.2|Gen Hoshino Concert Recollections 2015 - 2023]]}}} || ||<-4><rowbgcolor=#a0a0a0> {{{-1 {{{#fff '''주요 출연 작품'''}}}}}} || ||<width=25%><bgcolor=#a0a0a0> {{{#!wiki style="font-size: .85em" {{{#fff '''주요 무대'''}}} }}} ||<width=525><-3>{{{-1 PARCO 제작「텍사스-TEXAS-」(2012) '''·''' 大人の新感線 『ラストフラワーズ(라스트 플라워즈)』(2014)}}} || ||<width=25%><bgcolor=#a0a0a0> {{{#!wiki style="font-size: .85em" {{{#fff '''주요 영화 / 애니'''}}} }}} ||<width=525><-3>{{{-1 [[지옥이 뭐가 나빠]](2013) '''·''' [[묻지마 사랑]](2013) '''·'''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애니메이션)|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2017) '''·''' [[미래의 미라이]](2018) '''·''' [[죄의 목소리|罪の声]] (죄의 목소리, 2020)}}} || ||<width=25%><bgcolor=#a0a0a0> {{{#!wiki style="font-size: .85em" {{{#fff '''주요 드라마'''}}}}}} ||<width=525><-3>{{{-1 [[코우노도리(드라마)|코우노도리]](2015 / 2017) '''·''' [[사나다마루(드라마)|사나다마루]](2016) '''·'''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드라마)|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2016 / 2021) '''·''' [[플라쥬]](2017) '''·''' [[이다텐 ~도쿄 올림픽 이야기~]](2019) '''·''' [[MIU404]](2020)}}} || ||<width=25%><bgcolor=#a0a0a0> {{{#!wiki style="font-size: .85em" {{{#fff '''예능'''}}}}}} ||<width=525><-3>{{{-1 LIFE! 〜인생에 바치는 콩트〜 (2012 ~ 2017)}}} || ||<width=25%><bgcolor=#a0a0a0> {{{#!wiki style="font-size: .85em" {{{#fff '''인터넷 방송'''}}}}}} ||<width=525><-3>{{{-1 사케노 사카나 (2011 ~ 2014)}}} '''·''' {{{-1 [[호시노 겐/방송 활동#YELLOW MAGAZINE+ 토크 방송|YELLOW MAGAZINE+ 토크 방송]](2023 ~)}}} ||
- [ 관련 문서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4><width=1000><tablebgcolor=#fff,#1f2023><tablecolor=#373a3c,#ddd><rowbgcolor=#083354> {{{-1 {{{#fff '''관련 문서'''}}}}}} || ||<width=175><colbgcolor=#083354> {{{#!wiki style="font-size: .85em" {{{#fff '''활동'''}}} }}} ||<width=525><-3>[[호시노 겐/음악 활동|음악 활동 내역]] '''·''' [[호시노 겐/디스코그래피|솔로 디스코그래피]] ([[호시노 겐/노래방 수록 목록|한국 노래방 수록곡]] / [[호시노 겐/타이업 및 악곡 참여|타이업 및 악곡 참여]]) ---- [[호시노 겐/공연 및 행사|공연 및 행사]] '''·''' [[호시노 겐/방송 활동|방송 활동]] ---- [[호시노 겐/수상 경력 및 기록|수상 경력 및 주요 기록]] '''·''' [[호시노 겐/사건 사고|사건 사고]] '''·''' [[호시노 겐/여담|여담]] || ||<width=25%> {{{#!wiki style="font-size: .85em" {{{#fff '''멤버십'''}}}}}} ||<width=525><-3>[[YELLOW MAGAZINE+]] || ||<width=25%> {{{#!wiki style="font-size: .75em" {{{#fff '''문서가 존재하는 부캐'''}}}}}} ||<width=525><-3>[[니세 아키라]], [[오겐상]] || ||<width=25%> {{{#!wiki style="font-size: .85em" {{{#fff '''특징'''}}}}}} ||<width=525><-3>[[호시노 겐/음악 스타일|음악 스타일]] '''·''' [[호시노 겐/창작 활동의 세계관|세계관 및 사상]] '''·''' [[호시노 겐/음악 변천사|음악 변천 과정]] || ||<width=25%> {{{#!wiki style="font-size: .85em" {{{#fff '''관련 항목'''}}}}}} ||<width=525><-3>[[SAKEROCK]] ([[SAKEROCK/디스코그래피|디스코그래피]]) ---- 배우자 [[아라가키 유이]] ||
호시노 겐의 주요 수상 이력과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주요 수상 이력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역대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 ||||
스포니치 그랑프리 신인상 | |||||
제67회 ( 2012년) |
→ |
제68회 ( 2013년) |
→ |
제69회 ( 2014년) |
|
히가시데 마사히로 미요시 아야카 |
→ |
호시노 겐 하마다 코코네 |
→ |
토사카 히로오미 코마츠 나나 |
|
역대 일본 아카데미상 | ||||
신인배우상 | ||||
제36회 (2013년) |
→ |
제37회 (2014년) |
→ |
제38회 (2015년) |
니카이도 후미 외 6인 | → | 호시노 겐 외 7인 | → | 코마츠 나나 외 5인 |
역대 갤럭시상 | ||||
라디오 DJ 퍼스널리티 상 | ||||
제53회 (2015년) |
→ |
제54회 (2016년) |
→ |
제55회 (2017년) |
오기우에 치키 (오기우에 치키·Session-22) |
→ |
호시노 겐 ( 호시노 겐의 올 나이트 닛폰) |
→ |
무라야마 히토시 (아사카라!) |
역대 CD샵 대상 | ||||
대상 | ||||
2015년 | → | 2016년 | → | 2017년 |
BABYMETAL < BABYMETAL> |
→ |
호시노 겐 < YELLOW DANCER> |
→ |
우타다 히카루 < Fantôme> |
2018년 | → | 2019년 | → | 2020년 |
요네즈 켄시 < BOOTLEG> |
→ |
호시노 겐 < Pop Virus> |
→ |
Official髭男dism < Traveler> |
오리사카 유타 <平成> |
카네코 아야노 <燦々> |
역대 빌보드 재팬 뮤직 어워드 | ||||
올해의 아티스트 | ||||
<rowcolor=#000> 2016년 | → | 2017년 | → | 2018년 |
AKB48 | → | 호시노 겐 | → | 요네즈 켄시 |
Hot 100 of the Year | ||||
<rowcolor=#000> 2016년 | → | 2017년 | → | 2018년 |
AKB48 「 翼はいらない」 |
→ |
호시노 겐 「 恋」 |
→ |
요네즈 켄시 「 Lemon」 |
이타미 주조상(伊丹十三賞) 수상자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rowcolor=#ffffff> 2009년 | 2010년 | 2011년 | 2012년 |
이토이 시게사토 (카피라이터, 에세이스트, 게임 제작자) |
타모리 ( 게닌, MC) |
우치다 다쓰루 (철학 연구자, 무도가, 사상가) |
모리모토 치에 (아트 디렉터, 그래픽 디자이너) |
|
<rowcolor=#ffffff> 2013년 | 2014년 | 2015년 | 2016년 | |
이케가미 아키라 (언론인, 저널리스트) |
릴리 프랭키 (소설가, 디자이너, 배우) |
아라이 토시노리 (편집자, 인터뷰어) |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감독) |
|
<rowcolor=#ffffff> 2017년 | 2018년 | 2019년 | 2020년 | |
호시노 겐 (배우, 음악가, 문필가) |
이소다 미치후미 (역사학자, 에세이스트) |
타마가와 나나후쿠 (낭곡사) |
쿠도 칸쿠로 (각본가, 배우) |
|
<rowcolor=#ffffff> 2021년 | 2022년 | 2023년 | 2024년 | |
시미즈 미치코 (탤런트, 배우) |
코이케 카즈코 (디렉터, 카피라이터) |
미타니 코키 (각본가, 감독, 배우) |
논 (배우, 가수) |
역대 호치영화상 | ||||
남우조연상 | ||||
제44회 (2019년) |
→ |
제45회 (2020년) |
→ |
제46회 (2021년) |
나리타 료 ( 사랑이 뭘까 / 굿바이, 입술 / 치와와) |
→ |
호시노 겐 ( 죄의 목소리) |
→ |
스즈키 료헤이 (고독한 늑대의 피: 레벨 2) |
호시노 겐의 소속
|
||||||||||||||||||||||||||||||||||||||||||||||||||||||||||||||||||||||||||||||||||||||||||||||||||||||||||||||||||||||||||||||||||||||||||||||||||||||||||||||||||||||||||||||
|
}}} ||
<colbgcolor=#9A006C><colcolor=#fff> 호시노 겐
[ruby(星, ruby=ほし)][ruby(野, ruby=の)] [ruby(源, ruby=げん)]|Gen Hoshino |
|||||
출생 | 1981년 1월 28일 ([age(1981-01-28)]세) | ||||
사이타마현 와라비시 | |||||
출신 | 사이타마현 카와구치시[1]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168㎝, 60㎏, AB형 | ||||
가족 | 부모님[2] | ||||
배우자
아라가키 유이 (
2021년 결혼 ~ 현재) 반려견[3] |
|||||
학력 | 지유노모리가쿠엔고등학교[4] (졸업) | ||||
직업 | |||||
소속사 | 음악 |
KAKUBARHYTHM[5] (2005년 ~ 2015년) 아뮤즈 (2015년 ~) |
|||
배우 | 극단 오토나케이카쿠 (2003년 ~) | ||||
레이블 | SPEEDSTAR RECORDS[6](2011년 ~) | ||||
주 장르 | J-POP, 댄스 팝, 네오 소울[7], R&B, 팝 록, 포크 | ||||
그룹 경력
|
SAKEROCK (2000 ~ 2015) | ||||
포지션 | 리더, 기타, 퍼커션[8], 플랫 만돌린[9] | ||||
데뷔 | 음악 |
2001년 3월
SAKEROCK EP [[sakerock| ]][[sakerock#| ]][[sakerock#s-| ]][10](데뷔일로부터 약 [dday(2001-03-20)]일, [age(2001-03-20)]주년) (그룹) |
|||
2010년 6월 23일 정규 1집 (데뷔일로부터 [dday(2010-06-23)]일, [age(2010-06-23)]주년) (솔로) |
|||||
배우 |
무대연극:
2001년 「ワークインタイムマシン」 미디어: 2003년 「WATER BOYS」 (미디어 데뷔일로부터 [dday(2003-07-01)]일, [age(2003-07-01)]주년) |
||||
멤버십
|
[[YELLOW MAGAZINE+| | ]][[YELLOW MAGAZINE+#| ]][[YELLOW MAGAZINE+#s-| ]]||||
링크 | | | [11] | | |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정보 더 보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9A006C><colcolor=#fff> 담당 악기 |
기타[12], 마림바[13]호시노 겐의 라이브 퍼포먼스에서 기타 다음으로 자주 볼 수 있었던 악기다. 그의 솔로 데뷔 앨범인
정규 1집에서부터 마림바가 자주 나오며,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
化物(도깨비)」와「
IDEA」 M/V. 그 외에 사용된 일부예시는
이 스포티파이 재생목록 참고. 참고로 마림바를 두드리는 스틱은 말렛(mallet)이라고 한다. 한국에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악기이지만, 그나마 KBS 제1라디오의 날씨 음악으로 유명하다. 매 시각 58분마다 방송하는 날씨 시그널음악이 바로 이 악기의 연주다. ], 만돌린, 밴조[14], 산신[15], 드럼[16], 베이스 기타[17], TR-08[18], MPC, 마림바 외의 체명악기 |
|||
건반 악기[19], MIDI Recording | |||||
대표 부캐
|
니세 아키라, 오겐상, 우소타로, 오모에몽 | ||||
좌우명 | '모르는 것'을 알자![20] |
[clearfix]
1. 개요
{{{#!wiki style="margin: -20px -10px -16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800080> |
세계가 점점 변화하면서 제 역할도 계속 달라지겠죠. 그 순간순간마다 제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고 싶습니다. 2020년
동아일보 인터뷰 중
|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21], 편곡가, 프로듀서 및 음악 프로듀서, 배우, 문필가, 라디오 DJ, 방송인.
배우와 음악, 집필, 이 모든 분야에서 인디 및 무명 생활을 다 거쳐 당시 대중가요 및 연예계를 꽉 잡고 있던 일본 아이돌 시장의 튼튼함 속에 파죽지세로 올라가[22] 음악, 배우, 방송인, 작가 이 모든 부분에서 상을 타고 메가히트친 대표작들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대중적으로 모두 다 성공해본 경험이 있다.
상당히 암흑기였던 2010년대 일본 대중음악이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주는 국민적 팝 아이콘 중 한 명이었고, 요네즈 켄시와 함께 일본 남성 솔로 싱어송라이터 입지 확립의 재시작을 열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역대 일본 남성 솔로로서는 5번째로 종합 33만명을 동원한 '5대 돔 투어'를 실시하고, 예매 당일 모든 돔의 좌석을 전석 매진시키며 일본 내에서 대중적으로 유명하고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 중 한 명[23]으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코로나 사태 이후부터는 음악 및 배우 활동에 이전과 다른 다양한 변화를 주고 있으며, 2021년 아라가키 유이와의 결혼을 발표해 큰 화제가 되었고, 2024년 현재도 메이저 가수 겸 배우 중 한 명의 입지를 가지고 있다. 호시노 겐의 라디오 청취자가 10대부터 60대까지 있을 정도로 청년층부터 중장년층까지 고루고루 팬이 많은 연예인이기도 하다.
음악가로서의 앨범 대표작은 정규 4집 YELLOW DANCER(2015)와 정규 5집 POP VIRUS(2018)이며, 배우로서는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2016)와 MIU404(2020)가 대표적이다. 한국에서는, 음악가 측면에서 恋(사랑, 2016), Pop Virus(2018), 그리고 喜劇(희극, 2022)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2. 데뷔 전 생애
2.1. 유년기 ~ 학창시절
'호시노 겐(星野源)'이라는 이름은 본명[24]인데, 부모님은 '한자 한 글자', '외국인도 부르기 쉽다', '비 오는 수요일에 태어났기 때문에 물에 관계가 있는 한자'라는 이유로 '겐( 源)'이라고 이름을 지어줬다고 한다.원래부터 부모님이 굉장한 음악 애호가였다. 생계 때문에 사이타마현의 어느 한 시골 동네에서 청과물 가게를 운영했던 서민 집안이었으나 부친은 재즈 피아노가 취미였고 스피커 및 LP 매니아[25]였으며, 모친은 과거에 재즈 보컬리스트가 꿈이었던지라 산처럼 쌓인 재즈 레코드와 업라이트 피아노와 음악이 있는 환경에서 자랐다고 한다. 재즈와 소울 음악이 완전히 그의 생활 속에 있었다.[26] 그렇게 어릴 때는 뭔지 잘 모른 채 여러 블랙 뮤직과 다양한 음악들( 토미 플래너건, 쳇 베이커, 니나 시몬, 마이클 잭슨, 아이즐리 브라더스, 마빈 게이 등)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가장 처음 좋아하게 된 아티스트는 토미 플래너건이었다고.[27] 부친은 'SIGNAL' 이라는 동네의 재즈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었고, 밴드활동을 하기도 했어서, 부모님이 여러 뮤지션이나 앨범들을 호시노 겐에게 소개해주거나, 같이 재즈 바나 조그만 라이브 공간에도 자주 갔었다고 한다.
그때 저는 아무 꿈도 없고, 맨날 일단 그냥 살았던 것 같은데 재즈 뮤지션의 영상이 나오거나 해외 R&B/소울 뮤지션의 곡을 들으면 막
춤을 추고 그랬어요. 저는 그때 그 음악들 때문에 너무 구원을 많이 받아서. (앞으로의 꿈은) 제 음악으로 말하면, 어디 가 본 적이 없는 나라의 가정에 있는 아이가 제 곡으로
춤을 추고 있는 모습들을 보고 싶습니다. 뭔가 그때의 보답을 하고 싶어요.
A-Studio+ 방송 출연 당시 (2023)
어릴 때 식탁에서 밥을 기다릴 때 젓가락을 양손에 하나씩 갖고 기다릴 수 없어서 식기를 젓가락으로 두드리고,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많아 이에 부모님이 '그렇게 식기를 두드리고 싶다면
드럼을 두드려라'는 말에 드럼을 초등학생 때 배우기 시작했다고 하며
# 통지표에 '독특하지만 침착성이 없습니다'라고 계속 받은 적도 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학업적인 공부머리도 남들만큼 좋지는 않았다고.A-Studio+ 방송 출연 당시 (2023)
호시노 겐은 소학교 및 중학교 시절 대인 관계에서도 큰 어려움을 겪었고, 엄청나게 내성적이었으며, 따돌림과 망신을 계속 당하며 불안장애와 공황장애를 겪은 적이 있고, 학업측면에서도 거의 꼴지였을 정도로 다른 학생들보다 많이 부족했으며, 위축되거나 맨날 땅만 보고 걸었던 시절이 많았다.[28] 학교를 빠지는 날도 많이 생겨 그렇게 그는 일반 학교에 익숙해지지 못했고 점점 더 고독하고 어두운 성격으로 고립하게 된다.
그 당시의 일은 별로 떠올리지 않으려 하고 있다. 싫은 기억들이었기 때문에 어찌 되었든 잊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확실히 그 때의 나 자신을 돌아보자고 생각했다. (중략)
나에게는 슬픈 기억들만 남아 있을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지금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부모님께 속았거나 같이 놀았거나 하는 우습고 뭔가 시시하지만 즐거운 일들뿐이었다. (중략)
얼마 전에 어렸을 때 일들을 어머니께 물었다.
“사실은 겐, 네가 주변을 의식해서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지 못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야. (중략) 학교에 갔다 올 때마다 네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는 거야. 그걸 억지로 열심히 하라고 말하는 것도 어쩐지 싫더라고. 그래서 적어도 집 안에서만은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나름대로 여러 노력을 했던 거지.”
그래도 그렇지 왕자라느니 여왕이라느니 욕조로 빨려 들어간다느니, 너무 유치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제야 깨달았다. 나는 부모님의 장난감이었던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놀아주셨다는 사실을 말이다. 부모가 된다는 사실에는 아직 변함없이 불안한 마음이 들지만 만약 이렇게 조금은 유치한 추억을 남길 수 있다면 나도 아이와 같이 놀아보고 싶다.
일단 욕조 배수구에 빨려 들어가는 것은 반드시 하고 말 테다. 그리고 아이가 나를 욕조에서 구해준다면 눈높이를 맞추고 진심을 담아 “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정중하게 인사를 할 것이다.
『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2009)
집에는
업라이트 피아노가 있었고 피아노를 간간히 쳐보기는 했으나, 호시노 겐은 중학교 때 다들
기타를 치기 시작하여 본인도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래도 음악한다니까 부친이 쓰던 기타를 내주는 등 남들보다 시작하기 쉬운 환경이었던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이 어릴 때부터 계속 들어왔던
재즈와
소울 음악을 듣는 사람이 주변에 없었기 때문에, 학창 시절 재즈와 소울을 듣기는 했으나, 자신의 취향을 공유하지 못하고 당시 거의 모두가 들었던
록 음악을 연주하며 연습했다.
유니콘,
B'z,
KIRINJI,
라디오헤드 등의 록 밴드들을 좋아했고, 집에서 혼자
블루 하츠의 곡들이나
에릭 클랩튼의 「
Tears in Heaven」,
레니 크래비츠의 「
Are You Gonna Go My Way」
#,
익스트림(Extreme)의 「
More Than Words」 같은 곡을 듣고 카피하면서 놀았다고 한다.나에게는 슬픈 기억들만 남아 있을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지금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부모님께 속았거나 같이 놀았거나 하는 우습고 뭔가 시시하지만 즐거운 일들뿐이었다. (중략)
얼마 전에 어렸을 때 일들을 어머니께 물었다.
“사실은 겐, 네가 주변을 의식해서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지 못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야. (중략) 학교에 갔다 올 때마다 네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는 거야. 그걸 억지로 열심히 하라고 말하는 것도 어쩐지 싫더라고. 그래서 적어도 집 안에서만은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나름대로 여러 노력을 했던 거지.”
그래도 그렇지 왕자라느니 여왕이라느니 욕조로 빨려 들어간다느니, 너무 유치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제야 깨달았다. 나는 부모님의 장난감이었던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놀아주셨다는 사실을 말이다. 부모가 된다는 사실에는 아직 변함없이 불안한 마음이 들지만 만약 이렇게 조금은 유치한 추억을 남길 수 있다면 나도 아이와 같이 놀아보고 싶다.
일단 욕조 배수구에 빨려 들어가는 것은 반드시 하고 말 테다. 그리고 아이가 나를 욕조에서 구해준다면 눈높이를 맞추고 진심을 담아 “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정중하게 인사를 할 것이다.
『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2009)
작곡은 14살 때 집에 있던 낡은 거트 기타로 단순한 노래를 가장 처음 만들어봤으며, 고등학생 때 반에서 인기 많은 친구가 "겐, 기타 치는 거면 내 가사에 곡 좀 붙여줘"(源君、ギター弾けるんだったら、僕の詞で曲を作ってよ)라고 부탁해서 곡을 본격적으로 쓴다. 이후 자기 곡도 여러 개 썼지만 부끄러워서 발표 같은 건 하지 않았다고 한다. 라이브도 고3 때까지 부끄러워서 못 했다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몹시 서툴러서,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라이브는 할 수 없었습니다. 단지 집 안에서... 학교 생활로 쌓여간 온갖 생각들을, 별로 사람들에게는 들려주지 않고, 카세트 테이프에 담고 있었습니다.
안 그러면 미칠 것 같아서, 저주투성이 같은 곡들이 많이 생겼었어요. (중략)
중학생 때 최초로 혼자 만든 노래는 욕이 가득 담긴 지독한 것이었지만, 그냥 스트레스가 가득 찬 노래라도 조금만 궁리하면 듣기 좋은 보편적인 노래가 되기도 합니다. (중략) 그렇게 저를 건강한 방향으로 이끌어준 이 일이 너무 좋아요.
『 일하는 남자』 (2013)
중학교 1학년 시절에 음악 뿐만 아니라 연극에도 관심을 가져서 연기 연습도 했는데, 고등학생 때 극단
오토나케이카쿠의 연극을 보고, 당시 내성적이었던 호시노 겐은 감동과 충격을 받아 이 극단의 워크숍에 참석하고, 연기에 대한 꿈을 더 강하게 가지게 된다.안 그러면 미칠 것 같아서, 저주투성이 같은 곡들이 많이 생겼었어요. (중략)
중학생 때 최초로 혼자 만든 노래는 욕이 가득 담긴 지독한 것이었지만, 그냥 스트레스가 가득 찬 노래라도 조금만 궁리하면 듣기 좋은 보편적인 노래가 되기도 합니다. (중략) 그렇게 저를 건강한 방향으로 이끌어준 이 일이 너무 좋아요.
『 일하는 남자』 (2013)
처음 연기를 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 기타를 시작한 것과 같은 시기입니다. 친구의 권유로 학교 안에서 대사가 하나만 있는 역할을 받았어요. 맨 앞에 나올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역할이라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대사를 하는 순간, 내 안에 안고 있던 답답함이 일순간에 사라진 것 같았어요. (중략) 내성적이어서 내 마음을 전할 수 없었던 제가 구원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걸로 다시 살아갈 수 있어!'
'과장같은데?'라는 말을 들을 것 같습니다만, 정말로 그렇게 생각이 들었어요. (중략)
다른 일들과 마찬가지로, 고등학생 때부터 "호시노 군에게 배우의 재능은 없어"라고 계속 말을 들어 왔습니다.
그렇지만 계속 하고 있습니다. 좋아하니까.
연기는 저를 해방시켜 주었고, 살게 해 주었습니다.
『 일하는 남자』 (2013)
'이걸로 다시 살아갈 수 있어!'
'과장같은데?'라는 말을 들을 것 같습니다만, 정말로 그렇게 생각이 들었어요. (중략)
다른 일들과 마찬가지로, 고등학생 때부터 "호시노 군에게 배우의 재능은 없어"라고 계속 말을 들어 왔습니다.
그렇지만 계속 하고 있습니다. 좋아하니까.
연기는 저를 해방시켜 주었고, 살게 해 주었습니다.
『 일하는 남자』 (2013)
2.2. 고등학교 이후
학교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던 호시노 겐은, 부모님의 교육관에 따라 일반 학교랑은 다른 사립 대안학교인 지유노모리가쿠엔고등학교[29]에 입학한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장애적인 증세가 있어 학교를 빠지고 집에서 못 나가는 날도 많았었다고 한다. 자유로운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기분은 초졸인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고등학생 때부터 호시노 겐은 독립하여 자취를 시작하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지유노모리가쿠엔고교를 다니고 연기 연습과 음악 연습을 계속한다. 이 당시에는 핫피 엔도, 호소노 하루오미[30], 오오타키 에이이치, 넘버 걸[31]등의 음악을 많이 들었다고. 가장 처음 살았던 방이 바퀴벌레랑 곱등이가 나오는 3평짜리, 월세 3.8만엔의 단칸방이었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독립하고 생계를 꾸리던 그에게 힘이 되었던 것은 음악이었다. 궁핍하던 시절에도 앨범을 구매해 들었던,
YMO의 멤버이자 히피 감성과 Exotica(이국적인 느낌의
이지 리스닝 음악)의 대가였던
호소노 하루오미의 오르가닉 스타일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열심히 돈을 모아
마림바를 구매하여 자신의 작은 방 안에 (식탁 대용으로) 넣어둔 것도 이 덕분이다. 현재(2018)의 호시노 겐을 대표하는 트랙 중 하나인
恋(사랑)과
時よ(시간이여), '
Continues' 모두 Exotica를 대중 친화적으로 녹여낸 곡들이다.
#
음악을 본격적으로 한 건 20세 때 자신이 리더가 되어 고등학교 동급생을 모아 인스트루멘탈 밴드
SAKEROCK을 2000년에 결성했을 때부터다. 처음부터 인스트루멘탈 밴드를 하려고 한 건 아니고, 원래는 오히려
유니콘처럼 시원시원하게 지르는 걸 좋아하고,
라디오헤드의 영향도 꽤나 받아서 그런 곡들을 여러 개 썼지만 테이프에 녹음된 자기 노랫소리를 들은 후 급좌절해 본인의 목소리가 싫었고, 노래하고 싶다고 말을 못해 보컬의 꿈을 접었다.[32] 또한
클리퍼드 브라운&맥스 로치의 앨범「
Study In Brown(1955)」에 수록되어 있는 곡들에도 상당한 영향을 받고 인스트루멘탈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외적인 체형을 포함해 뭐 하나 특출난 게 없었던 호시노 겐 특성상 스카우트 제의는 전혀 오지 않았고, 그렇게 여러 아르바이트는 물론이고 음악 활동을 병행하면서 프리랜서로서 여러 연기 오디션을 보고 일부 연극에 참여하게 되며 잡지의 난외에 노게런티로 잡문을 쓰는 일을 찾아다니며 하게 되었다.
저는 그 아사가야에 사는 동안 자전거로 나카노의 아르바이트 장소에 갈 때까지 고엔지를 통과해서, 고가 밑을 자전거로 달리면서 "꼭 팔리고 말겠어!"라고, 이미 모두 다 저주하고 있었던 것 같은 그런 시기였어요. (중략)
음악은 소위, 당시에는 인터넷 같은 것들도 잘 되어있지 않았으니까, 오디션 같은 곳에 데모 테이프를 보낼 수밖에 없지만, 자꾸 떨어지고, 자꾸 떨어지고. "아니, 오디션은 이제 됐어! 이제 스스로 라이브를 할 거야." 이러면서 (소속사도 없이) 직접 CD, 자체제작반을 만들고 이랬었는데, 당시에는 자체제작반을 만드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서... (중략) 뭐 어쨌든 열심히 했지만 아무것도 보답받지 못하고, 팔리지 않고.
소속사도 없이 프리로 배우도 하는 와중에 오디션을 봐서 극단에 가서 그 연극의 대사를 받기도 하고, 별로 없는 대사를 하나라도 더 받으려고 애쓴다던가, 아니면 찾아가서 "뭐든지 할게요, 뭐든지 시켜주세요! 스태프라도 할게요!"라고 청한다던가 뭔가 그런 시기였거든요. (제가) 전혀 안 팔렸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들을 계속해도 돈이 없고.
이제 집에서 자다가 '추우' 소리에 잠이 깨서 옆으로 돌아보니 쥐와 베개를 같이 했습니다(웃음). 뭔가 그때의 느낌은 정말 이 세상에서 나만 혼자인 것 같은 그런 느낌?
그런데 잘 때 말고는 여러 가지로 계속 혼자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는 것이 새삼 생각났네요. '어떻게 하면 이걸 제대로 일할 수 있을까?', '좋은 곡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좋은 가사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연극의 대사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돼?' 이런 것들.
그러니까, 정말로 원한이 길에 새겨져 있어요! (중략) 그 당시 걷고 있을 때 계속 고민도 하고 생각도 하고. 중간에 공원 같은 데를 다녔는데, 그 공원 벤치에서 벌써 절망적인 마음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었죠. (중략)
그래서 (오랜만에 다시 갔을 때) 그 벤치에 앉고 싶었지만, 그 공원에 왠지 비슷한 느낌의 젊은이가 5명 정도 있어서, 한 발짝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하하하하하! 무서워서요(웃음). (후략)
호시노 겐, 17년 만에 방문한 아사가야에서 불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난 이야기 (2021)
음악은 소위, 당시에는 인터넷 같은 것들도 잘 되어있지 않았으니까, 오디션 같은 곳에 데모 테이프를 보낼 수밖에 없지만, 자꾸 떨어지고, 자꾸 떨어지고. "아니, 오디션은 이제 됐어! 이제 스스로 라이브를 할 거야." 이러면서 (소속사도 없이) 직접 CD, 자체제작반을 만들고 이랬었는데, 당시에는 자체제작반을 만드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서... (중략) 뭐 어쨌든 열심히 했지만 아무것도 보답받지 못하고, 팔리지 않고.
소속사도 없이 프리로 배우도 하는 와중에 오디션을 봐서 극단에 가서 그 연극의 대사를 받기도 하고, 별로 없는 대사를 하나라도 더 받으려고 애쓴다던가, 아니면 찾아가서 "뭐든지 할게요, 뭐든지 시켜주세요! 스태프라도 할게요!"라고 청한다던가 뭔가 그런 시기였거든요. (제가) 전혀 안 팔렸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들을 계속해도 돈이 없고.
이제 집에서 자다가 '추우' 소리에 잠이 깨서 옆으로 돌아보니 쥐와 베개를 같이 했습니다(웃음). 뭔가 그때의 느낌은 정말 이 세상에서 나만 혼자인 것 같은 그런 느낌?
그런데 잘 때 말고는 여러 가지로 계속 혼자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는 것이 새삼 생각났네요. '어떻게 하면 이걸 제대로 일할 수 있을까?', '좋은 곡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좋은 가사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연극의 대사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돼?' 이런 것들.
그러니까, 정말로 원한이 길에 새겨져 있어요! (중략) 그 당시 걷고 있을 때 계속 고민도 하고 생각도 하고. 중간에 공원 같은 데를 다녔는데, 그 공원 벤치에서 벌써 절망적인 마음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었죠. (중략)
그래서 (오랜만에 다시 갔을 때) 그 벤치에 앉고 싶었지만, 그 공원에 왠지 비슷한 느낌의 젊은이가 5명 정도 있어서, 한 발짝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하하하하하! 무서워서요(웃음). (후략)
호시노 겐, 17년 만에 방문한 아사가야에서 불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난 이야기 (2021)
3. 음악가 활동
2019년 '5대 돔 투어'의 도쿄 돔 2일차 30분 편집본[33] ( 넷플릭스 사이트) |
{{{#!wiki style="margin: -20px -10px -17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2CB05> |
'음악적 완성도'와 '사회적 영향력'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본다면 일본의 2010년대를 대표하는 뮤지션은 호시노 겐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뮤직 매거진 2021년 3월호, '
2010년대 일본 음악 앨범 베스트 100 특집'의 24위
YELLOW DANCER 선출에 관한 코멘트
#
|
{{{#!wiki style="margin: -20px -10px -17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2CB05> |
후지하라 사토시:
NHK 홍백가합전에서 호시노 겐님을 처음 만나서, 저희 CD를 드리고 이야기를 잠깐 나누고.. (중략) 나라자키 마코토: 저는 긴장해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마츠우라 마사키: (저도) 엄청 긴장해서... 학창시절부터 팬이었고, 노래방에 가서도 (그의 곡을) 노래했고, 그의 존재는 저에게 있어서 마치 신 같은 존재기 때문에요. 오오이즈미 요: 다가가기 힘든 그런 아우라 같은 거랑 다르지 않나요? 후쿠야마 마사하루처럼 그런 것도 아니고. 후지하라 사토시: 그 분위기는.. 엄청나게 대중적이고 유명한 음악이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건 그 사람밖에 할 수 없어요. 그래서 무서워요.
Official髭男dism이 출연한 2022년 6월 23일자
SONGS 중
|
상당히 암울했던 2010년대의 메이저 제이팝이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주는 아이콘 중 하나였으며, 아이돌 시대 속 적어졌던 남성 솔로 싱어송라이터의 입지를 다시 확립되는 시대를 열었던 인물 중 한 명이기도 하다. Official髭男dism, 요네즈 켄시, YOASOBI, Creepy Nuts, imase, 츠네타 다이키(King Gnu), 바운디, 마카로니 엔피츠, WurtS, 쿠지라 등 여럿 후배 아티스트와 뮤지션들에게 샤라웃을 받고 있다.
30대 중후반의 나이에 발매한 그의 대표적인 앨범들인 정규 4,5집 YELLOW DANCER와 Pop Virus 앨범은 2010년대 J-POP 메인스트림 팝 씬에서는 독보적인 스타일을 가졌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 이 두 앨범 모두 상업적 성공을 크게 이룬 동시에 뮤직 매거진이 선정한 역대 일본음악 명반 순위에 각각 95위, 138위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음악가 측면에서, 恋(사랑, 2016), Pop Virus(2018), 그리고 스파이 패밀리 애니메이션 1기 1쿨 엔딩곡인 喜劇(희극, 2022)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조금 더 깊게 파고들면, アイデア(아이디어), SUN, 不思議(불가사의) 등이 그 다음으로 유명한 편이다.
그러나 음악가적인 측면만 본다면 2020년대인 지금 한국에서의 일반적인 선호도는 그가 쌓아온 커리어에 비해 적은 편이다. J-POP이 가장 인기없고 배척당했을 때와 노재팬 당시에 일본 내에서 메가히트친 뮤지션이고, 현재 나이도 이미 40 중반에 가깝긴 하니.
3.1. 생애 및 음악 활동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음악 활동 문서 참고하십시오.3.2. 디스코그래피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디스코그래피 문서 참고하십시오.관련 문서: SAKEROCK/디스코그래피
3.2.1. 타이업 및 악곡 참여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타이업 및 악곡 참여 문서 참고하십시오.3.2.2. 노래방 수록 목록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노래방 수록 목록 문서 참고하십시오.3.2.3. 커버곡 / 리믹스
SAKEROCK 활동 포함(콘서트 제외). 라디오에서나 오겐상이 커버한 곡은 작성하지 않았다.
{{{#!wiki style="margin-bottom: -1.5%"
(호시노 겐의 보컬이 나오는 경우는 제목 옆에 ★ 표시)
<rowcolor=#fff> 원곡 제목 및 원곡자 | 참여 인물 | 커버 링크 |
2004년 | ||
いかれたBaby (이카레타Baby) (원곡자 : 피쉬만즈) |
SAKEROCK | [34] |
|
||
2006년 | ||
薔薇と野獣 (장미와 야수)★ (원곡자 : 호소노 하루오미) |
타카다 렌 & 호시노 겐 | [35] |
Pom Pom 蒸気 (Pom Pom 증기)★ (원곡자 : 호소노 하루오미) |
SAKEROCK ALL STARS | |
はじまりは いつも雨 (시작은 언제나 비) (원곡자 : ASKA) |
SAKEROCK ALL STARS | |
Eight Melodies (게임 MOTHER 시리즈의 BGM) |
SAKEROCK | |
スーダラ節 (수다라부시)★ (원곡자: 하나 하지메와 크레이지 캣츠) |
SAKEROCK | |
Duerme Negrito ( 라틴 아메리카 민속 자장가) |
SAKEROCK | |
2007년 | ||
All Things Must Pass★ (원곡자: 조지 해리슨) |
中納良恵(나카노 요시에) & 호시노 겐 | [36] |
2008년 | ||
日本の人 (일본의 사람)★ (원곡자: HIS[37]) |
SAKEROCK ALL STARS & 寺尾沙穂(테라오 사호) |
[38] |
Thousand Knives (원곡자: 사카모토 류이치) 메인 BGM (게임 요괴도중기의 BGM) |
SAKEROCK |
[39] [음원] [라이브] |
2011년 | ||
Rosenkranz (게임 사가 프론티어 2의 BGM) |
SAKEROCK | [40] |
2020년 | ||
Good In Bed (Gen Hoshino Remix)[41] (원곡: Dua Lipa - Good in Bed) |
호시노 겐 | 리믹스 |
{{{#!wiki style="margin-bottom: -1.5%"
<rowcolor=#fff> 연도별 분류 (스포일러 주의) | |||
{{{#!folding [ 2010 - 2012년 ] |
<rowcolor=#fff> 원곡 | 등장 콘서트 | 비고 |
2010년 | |||
冬越え (겨울 지나) (원곡자: 호소노 하루오미) |
風呂ロック | ||
君の犬 (너의 개) (원곡자: キセル(키세루)) |
|||
2011년 | |||
襟裳岬 (원곡자: 모리 신이치) |
星野源の別エピソード「部屋(友達編)」 | ||
機関車 (기관차) (원곡자: 小坂忠) |
|||
雪が降る町 (눈이 내리는 거리) (원곡자: UNICORN) |
|||
帰れない二人 (돌아갈 수 없는 두 사람) (원곡자: 이노우에 요스이) |
[42] | ||
中央線 (중앙선) (원곡자: THE BOOM) |
|||
2012년 | |||
透明少女(투명소녀) (원곡자: 넘버 걸) |
히비야 야외 대음악당 원 맨 라이브 난바 Hatch 원 맨 라이브 호시노 겐의 SHIWASU |
[43] |
{{{#!folding [ 2014 - 2016년 ] |
<rowcolor=#fff> 원곡 | 등장 콘서트 | 비고 |
2014년 | |||
透明少女(투명소녀) (원곡자: 넘버 걸) |
STRANGER IN BUDOKAN 호시노 겐의 부화아아아알! 요코하마 아레나 2 Days 「투 비트」 두번째 날 히토츠엣지 in 무도관(2015) |
||
君は薔薇より美しい (그대는 장미보다 아름다워) (원곡자: 布施明(후세 아키라)) |
니세 아키라 | ||
冬越え (겨울 지나) (원곡자: 호소노 하루오미) |
요코하마 아레나 2 Days 「투 비트」 첫 날 | ||
透明少女(투명소녀) (원곡자: 넘버 걸) |
|||
さすらい (원곡자: 오쿠다 타미오) |
[44] | ||
MOTHER (원곡자: PUFFY) |
|||
2016년 | |||
スーダラ節 (수다라부시) (원곡자: 하나 하지메와 크레이지 캣츠) |
LIVE TOUR 2016 「YELLOW VOYAGE」 | ||
君は薔薇より美しい (그대는 장미보다 아름다워) (원곡자: 布施明(후세 아키라)) |
니세 아키라 | ||
Firecracker (원곡자: Martin Denny) |
호소노 하루오미 A Night in Chinatown (게스트 출연) |
트레일러 | |
Sake Rock (원곡자: Martin Denny) |
|||
Get Up I Feel Like Being A Sex Machine (원곡자: 제임스 브라운) |
{{{#!folding [ 2017 / 2023년 ] |
<rowcolor=#fff> 원곡 | 등장 콘서트 | 비고 |
2017년 | |||
Firecracker (원곡자: Martin Denny) |
LIVE TOUR 2017「Continues」 | ||
透明少女(투명소녀) (원곡자: 넘버 걸) |
|||
Bridge Over Troubled Music (원곡자: YMO) |
(밴드 + ELEVENPLAY) | ||
Mad Pierrot (원곡자: YMO) |
|||
君は薔薇より美しい (그대는 장미보다 아름다워) (원곡자: 후세 아키라) |
|||
2023년 | |||
君は薔薇より美しい (그대는 장미보다 아름다워) (원곡자: 후세 아키라) |
Gen Hoshino presents “Reassembly” (오사카) | 니세 아키라 | |
なめとんか (나메톤카) (원곡자: 야시키 다카진) |
|||
君は薔薇より美しい (그대는 장미보다 아름다워) (원곡자: 후세 아키라) |
Gen Hoshino presents “Reassembly” (가나가와) | ||
夏のクラクション (여름의 경적) (원곡자: 이나가키 준이치) |
|||
スーダラ節 (수다라부시) (원곡자: 하나 하지메와 크레이지 캣츠) |
LIVE THE SPEEDSTAR |
3.3. 뮤직비디오
뮤직비디오 재생목록앨범 판매량, 차트 성적, 그리고 음원 다운로드 수에 비해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현저하게 낮은 편이다. 그의 최전성기가 음원 다운로드 시대의 후반부 끝자락이었기도 하고, 해외보다는 일본 내에서만 크게 히트친 것 또한 한몫하지만, 가장 큰 이유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 마치 뮤직비디오를 앨범 광고로 쓴 듯한, 노래를 건너뛰고 대신 나오는 중간 앨범 광고와 곡이 끝나고 나오는 호시노 겐의 개인 코멘터리. 상당히 파격적이고 잘 사용하지 않는 구성들의 뮤직비디오라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편이다.
아뮤즈에 소속되어있지 않았던 솔로 극 초기와 인디 밴드 후반 시절에서부터 호시노 겐 혼자 계속해왔는데, 한 마디로 솔로 초기부터 2019년까지 앨범 또는 싱글 타이틀 곡의 뮤직비디오를 앨범 광고로 직접적으로 사용한 셈이다. 그가 대중적인 히트를 치기 시작할 때도 여전히 중간에 넣었으나 분량은 예전보다 줄어들었다. 뮤직비디오는 광고로 대신 나오는 부분까지 전부 다 촬영하지만, 유튜브에서는 그게 나오지 않고 관계자 인터뷰를 합쳐서 뮤직비디오 수록 DVD로 따로 나왔었다. Pop Virus에서는 노래가 다 끝나고 광고가 3분동안 나온다. 2021년 이후에는 이 광고가 다른 영상으로 따로 분리되었다.
중간 광고가 없어져도 그의 개인 콘텐츠인 간단한 코멘터리는 여전히 지금까지 계속 등장하고 있다.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손꼽아 기다리는 컨텐츠가 되었기도 하다.
그러나 2024년 11월 쯤부터 앨범 프로모션(중간 광고)가 있던 기존 일부 MV들의 앨범 프로모션을 삭제하고 풀버전 영상으로 변환하기 시작했다. 광고가 없어진 걸 아쉬워하는 팬들을 위해 삭제되었던 중간 광고 모음집 동영상도 올렸다. 추가로, 일부 뮤직비디오들에 호시노 겐과 영상 디렉터 야마기시 산타에 의한 코멘터리가 뮤직비디오의 추가 음성 트랙으로 등록되었다.
3.4. 공연 및 행사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공연 및 행사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주 등장하는 곡 #====
(발매일 순 정렬)
- 리허설 및 밴드 사운드 체크 곡으로는 Down Town이 자주 나오는 편이다.
- 세트리스트가 길다면 어쿠스틱 기타로 히키가타리를 하는 곡 한두 개 정도가 나오는데, 호시노 겐의 솔로 극초기 대표곡들인 くせのうた(습관의 노래), ばらばら(뿔뿔이), くだらないの中に(시시함 속에) 중에 하나가 자주 나오는 편이다.
-
夢の外へ(꿈 밖으로)(2012)
호시노 겐이 처음으로 음악 방송에 나가게 된 곡으로, 솔로 초기의 대표곡 중 하나이다. 예전에는 자주 나왔으나 2020년대 이후로는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2022년에 발매한 喜劇(희극)이랑 세대교체가 된 듯하다
2017년 사이타마 아레나 라이브
-
化物(바케모노)(2013)
정규 3집의 타이틀 곡. 곡 길이도 2분 27초 정도로 짧아서[45] 오프닝 곡으로 꽤 등장하는 편이다. 2013년 지주막하출혈 당시의 '호시노 겐'과도 닮아있는 곡.
2022년 포트나이트 라이브 / 2016년 VIVA LA ROCK 라이브
-
地獄でなぜ悪い(지옥이 뭐가 나빠)(2013)
호시노 겐이 창작활동으로 말하고자하는 주제 및 주제의식 중 여러가지가 가장 복합적으로 드러난 곡이며, 얼터너티브 펑크를 가미한 팝 특유의 신나는 분위기도 있어 오프닝이나 엔딩 가릴 것 없이 엄청 자주 나오는 단골 곡.
2019년 도쿄 돔 라이브
-
桜の森(벚꽃 숲)(2014)
이 곡이 세트리스트에 있다면 기타를 치는 호시노 겐을 거의 100% 확률로 볼 수 있다.
벚꽃 숲 라이브 인트로 모음집 / 벚꽃 숲 라이브 아웃트로 모음집 / 2021년 라이브
-
SUN(2015)
호시노 겐을 메이저 히트 뮤지션으로 올라가게 해준 대표곡 중 하나 및 그의 첫 NHK 홍백가합전 출장곡이라 자주 등장한다.
2017년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 라이브 / 2022년 포트나이트 라이브
2019년 도쿄 돔 라이브
-
Week End(2015)
엔딩 및 앙코르 단골 곡.
2019년 도쿄 돔 라이브 / 2016년 오사카 성 홀 라이브
-
恋(사랑)(2016)
호시노 겐하면 떠오르는 대표곡이기 때문에 팬클럽 전용 콘서트가 아닌 이상 거의 99%의 확률로 등장한다. 코이댄스를 간략하게 추는 호시노 겐을 볼 수 있다.
- ドラえもん(도라에몽)(2018)
-
Pop Virus(2018)
<rowcolor=white> Pop Virus 도쿄 돔 라이브
-
Hello Song(2018)
정규 5집의 쿠키 영상같은 곡이며 엔딩 및 앙코르 곡으로 자주 나온다.
2019년 도쿄 돔 라이브 / 2020년 라이브
-
번외:
넘버 걸의 透明少女(투명소녀) 커버
호시노 겐이 좋아하는 밴드인 넘버 걸의 透明少女(투명소녀)를 콘서트에서 히키가타리로 커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넘버 걸이 재결합해서 그 당시에는 안하다가, 결국 넘버 걸이 2022년에 다시 해산해서,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라이브에서 다시 커버하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다.
2012년 라이브[46]
3.5. NHK 홍백가합전
호시노 겐의 출장과는 별개인 오겐상의 홍백가합전 무대는 이 문서를 참고.<rowcolor=#fff> 연도 |
출장 횟수 |
곡명 |
2015 | 初 | SUN |
2016 | 2 | 恋 (사랑) |
2017 | 3 | Family Song |
2018 | 4 | アイデア (아이디어) |
2019 | 5 | Same Thing |
2020 | 6 | うちで踊ろう(집에서 춤추자) |
2021 | 7 | 不思議 (불가사의) |
2022 | 8 | 喜劇 (희극) |
2023 | 9 | 生命体 (생명체) |
2024 | 10 | ばらばら (뿔뿔이)[47] |
호시노 겐이 홍백가합전에 나옴으로써 아라가키 유이 혼자 1월 1일 새해를 맞이 하는데, 그래서 호시노 겐에게 노래하면서 집에 가라는 드립이 있기도 하다.
3.6. 음악 스타일
그의 20대 음악생활인 SAKEROCK에서는 재즈와 소울 음악에 큰 영향을 받고, 쿠바 음악, 스카, 힙합, 포스트 록, 컨트리 뮤직, 포크, 라틴 음악, 오키나와 음악, 쇼와 시대의 가요 등 세계 여러나라 음악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이지 리스닝적인 인디 팝 음악으로 드러난다. (여기서는 솔로 활동 위주로 서술되어있다.)이후 솔로로서 지금까지 발표한 극히 일부 곡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곡들과 음반들을 직접 작사, 작곡, 편곡, 프로듀싱했다.[49]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이기도 하고, 인디 밴드 SAKEROCK의 프로듀서 역할을 하기도 했었으며, 이후로도 전반적인 편곡, 그리고 총괄 프로듀서 겸 메인 프로듀서 역할을 담당하다보니, 기타와 건반, 그리고 타악기 및 전자 악기 쪽은 호시노 겐 본인이 다룰 수 있는 악기가 상당히 다양하다. 다룰 수 없는 현악기와 관악기 등은 편곡할 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편.
그의 인생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악기가 드럼이라 기본적으로 리듬과 비트를 중요시하며, 전체적으로 음악의 사운드와 악기와 리듬을 상당히 복잡하거나 컬러풀하고 풍부하게 사용하면서도 여유롭거나 부담없이 들을 수 있다는 큰 특징이 있다. 이는 언뜻 들으면, 생고음을 그다지 지르지 않는 그의 창법 및 음색과 합쳐져, 악기나 코드나 여러 사운드를 복잡하거나 불규칙적이게 많이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아티스트들의 곡들보다 상당히 무난하거나 무해하거나 슴슴하게 느껴진다는 이야기가 일부 사람들에게서 종종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전반적인 건강함과 담백함 속, 그의 고집이 담겨있는 리듬과 비트와 컬러풀한 사운드'가 그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
호시노 겐: 일단 제가 제일 먼저 시작한 악기가 드럼이거든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리듬, 비트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힙합은 여러 가지 요소가 있는데 랩도 포함해서 리듬의 예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멜로디나 리프의 훌륭함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어떤 사운드로 비트가 울리는지, 베이스 소리가 어느 순간에 사라지는지,
스네어가 어떤 순간에 울리는지, 그 스네어와 무엇이 함께 울리는지 그것만으로 전혀 다릅니다. 스네어 음색이
롤랜드인지
코르그인지
야마하인지 그런 부분만으로도 분위기가 확 달라지기도 하구요.
힙합의 성립(역사)을 책으로 읽거나 하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그런 부분도 대단할 것 같은데 그냥 역시 리듬이 굉장히 중요한 음악인 것 같으니까. 그러니까 힙합을 듣다 보면 리듬에 아이디어를 느껴요. (힙합은) 리듬, 비트에 대해서 '제대로 마주하고 있다'고 할까... 그런 느낌입니다. 그래서 저도 제대로 비트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고집을 부리고, 제대로 마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6) #
음악의 전반적인 콘셉트는 (전부 다 그렇지는 않지만) 일상과
생활의 일부분을 묘사하거나, 혹은 어둠과 고통과 고뇌와 황폐함에 기반한
빛과 따뜻함과 생명력과 풍부함을 다양한 형태로 표현한다.[50] 본인이 직접 언급하기를 본인은 굉장히 밝은 사람이 아니지만, 부정적인 것들에 기반해 사람들로 하여금 힘이 되거나, 재밌는 것들을 표현해 내고 싶다고 말한다. 밝고 신나며 건강한 노래도 힘든 삶과
염세주의 및 절망 속에서의
회복탄력성이나
위버멘쉬를 지향하는 노래가 많아 우스갯소리로 '빛 속에 어둠이 있다'고 이야기되기도 하며, 잔잔한 노래는 어두운 곳과 절망 속에서 일날의 희망이나
발버둥을 노래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빛과 어둠은 서로 이분법적인 존재가 아니라 유기적이며, 궤를 같이한다고도 말한다. '
희극'과 '
비극'은 서로 나누어진 말이 아니라,
'희극'이란 말에는 이미 '비극'이 포함되어있다는 그의 말처럼.힙합의 성립(역사)을 책으로 읽거나 하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그런 부분도 대단할 것 같은데 그냥 역시 리듬이 굉장히 중요한 음악인 것 같으니까. 그러니까 힙합을 듣다 보면 리듬에 아이디어를 느껴요. (힙합은) 리듬, 비트에 대해서 '제대로 마주하고 있다'고 할까... 그런 느낌입니다. 그래서 저도 제대로 비트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고집을 부리고, 제대로 마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6) #
자신의 이야기가 너무 암울하고 설명을 나열하는 듯한 가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악곡에 자신의 직접적인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는 편이며, '호시노 겐의 관점을 바탕으로, 호시노 겐의 가치관 및 세계에 맞는 새로 생성된 인물 및 화자(話者)들'의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경우도 꽤 있다. 문인다운 시적인 가사로 '문과 여고생들의 아이돌'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어서 표면적인 의미로 해석 불가능한 경우도 있으며,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나 '미래를 춤추자', '무위(無爲)가 춤을 춰', '愛と変えるの'[51] 같이 조사를 기본적인 문법에 어긋나게 사용하거나, 이중적인 의미를 담아내는 경우도 많은데, '~(으)로, 을(를), 은(는), ~도, 이(가)' 등 여러 조사와 관련된 상세한 일부 해석은 ' 조사로 알 수 있다!「호시노 겐」가사 강좌' 글을 참고.
자신의 히트 친 음악을 반복하는 걸 '뭔가 설레지 않는다'며, 비록 대중적인 반응이 좋지 않더라도, 여러 음악적 도전 및 도전하는 방향성의 다양화를 좋아하며 꾸준히 많이 하고 있다.
세션은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공연장이나 곡에 따라 상당히 유기적이며, 음원이랑 사용된 악기가 같더라도 대부분 편곡을 살짝 다르게 해서 음원이랑 다르게 하는 라이브가 엄청 많다. 단독 콘서트의 경우에는 여러 종류의 현악기, 퍼커션, 관악기, 건반 악기, MPC 같은 전자 악기 등 작은 오케스트라를 연상케하는 규모의 세션을 동원하지만, 소규모 콘서트에서는 간단한 밴드 형식 + 일부 간단한 악기(대부분 색소폰 또는 플루트)으로만 동원해서 곡을 어레인지해서 부르며, 그 외에도 어쿠스틱 기타를 치며 히키가타리를 하기도 한다. 2023년에는 음악 방송에서 이때까지 호시노 겐이 했던 라이브 최초로 밴드나 어쿠스틱 기타 없이 MR을 틀고 혼자 서서 빛의 흔적을 부르기도 했다.
3.6.1. 세부적인 특징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음악 스타일 문서 참고하십시오.3.7. 가수로서의 캐릭터
배우, 음악, 집필, 방송 등 다방면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여러가지 모습 또한 큰 셀링포인트이나, 가수 측면에서는 '호감가는 웃는 모습'과 '노골적이지 않은 귀여움'을 캐릭터성으로 가지고 있고, 무대 장악력 또한 가지고 있어 이 부분에서도 다수의 팬들을 만들어냈다. 자신의 생각과 행보와 가치관을 음악으로 표현하면서 음악성을 갈고닦는 뮤지션적인 바탕에, 아이돌적인 면모도 드러나 팬 성향의 범위가 다양한 편이며, 새로 유입되는 10대 ~ 20대 팬의 비율 또한 높다.호시노 겐하면 떠오르는 코이댄스 또한 귀여운 콘셉트의 안무이고, 불혹이 넘고 결혼을 한 지금까지도 손가락 하트, 볼 하트, 볼 콕[52], 윙크 등등을 음악 방송에서나 배우 활동, 라이브 토크 방송 등에서 지나가듯이 가끔씩 하는데, 꽤나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일종의 팬서비스 중 하나.
그렇다보니 특정 층의 충성도 및 굿즈 구매력이나 콘서트 티켓파워 또한 꽤나 강한 편이며, 다람쥐나 파밀리쥐 그리고 메타몽 등[53]으로 모에화되기도 한다. 귀여운 캐릭터성은 소비자층에서만 한정되어있지 않고, 연예계에서도 주변 인물들로부터 귀여움을 받고 있다. 심지어 연하한테까지 받고 있다. #
자신이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음악으로 한다는 '아티스트 겸 프로듀서'가 밑바탕이기 때문에, '밝음과 완벽함과 기분이 좋음'을 무조건적으로 연기해야하는 아이돌적인 분위기에 완전히 함몰되지 않는 것 또한 큰 장점. 일종의 친근함과 자신의 서브컬함을 보여주는 특징이 그 부분을 상쇄시키기도 했다.
그 외에도 노래부르면서 무대에서 드러눕는 등 상당히 괴짜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며, 자신의 상황 및 노래에 따라 귀여움뿐만이 아니라 감성적인 분위기나, 혹은 색기 있는 콘셉트를 잡기도 한다.
4. 배우 활동
배우로서도 2013년에 좋은 유의미한 성과를 보여 일본 아카데미상 신인상[54],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신인상을 비롯한 여러 신인상을 받았고, 이후로도 시청률 20% 이상을 돌파하고 사회현상을 일으킨 드라마에 주연으로 참여했으며, 2017년에는 장래 유망한 배우들에게 주는 엘란도르상을 수상[55]했을 정도로 배우로서 자리잡았고, 오구리 슌, 아야노 고 등 여러 배우들과도 여러 합을 맞췄기에 배우로도 일본에 잘 알려져 있을 정도이다.같은 세대의 전업 배우들에 비하면 참여 작품은 조금 적은 편이지만, 다른 배우들에 꿀릴 것 없는 커리어와 코믹부터 시리어스까지 소화하는 연기 스펙트럼과 팬을 가지고 있어, '배우 호시노 겐'을 먼저 알게 되거나, 혹은 '음악가 호시노 겐'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작품들이 다른 이름 있는 배우들에 비해 적어서[56], 순박한 초식계 너드남과 능력이 뛰어난 냉혈한 형사를 보여준 그의 대표작들에 비해 한국에서는 팬들을 제외하고 다른 필모그래피가 그닥 많이 돋보이지는 않긴 하지만.
4.1. 활동 내역
4.1.1. 2001 ~ 2013
음악활동을 병행하며, 오디션을 보고 일부 연극에 참여하며 그때마다 연기하는 나날을 보내던 중, 극단 오토나케이카쿠에서 '악기를 칠 수 있는 배우'가 필요하게 되면서, 호시노 겐은 이 역할로 2003년, 무대 연극 『ニンゲン御破算』에 출연하였다. 이전에도 여러 연극에 참여하였으나, 이 작품이 첫 큰 무대였다고 한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오토나케이카쿠에 배우로서 계약을 맺고 들어가게 된다."그때 용기를 내서 소속사에 넣어 달라고 사정했어요. 계속 동경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더니 '좋아요.'라고 답하셔서. '이렇게 간단해도 되나?'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담판을 짓고 소속된 사람은 저뿐이래요."
이미 음악 활동을 하고 있던 호시노 씨는 "지금 밴드도 하고 있는데, 괜찮을까요?"라고 사장에게 물었다. 그러자 "전혀 문제없어. 오히려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는 게 재미있지."라고, 그런 식으로 말해주는 사람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
이미 음악 활동을 하고 있던 호시노 씨는 "지금 밴드도 하고 있는데, 괜찮을까요?"라고 사장에게 물었다. 그러자 "전혀 문제없어. 오히려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는 게 재미있지."라고, 그런 식으로 말해주는 사람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
H(호시노 겐): 음악도 연극도 중학교 때부터 쭉 하고 있어서요, '계속하면 언젠가 좋은 일이 있겠지'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극단
오토나케이카쿠에 들어간 때(2003)부터네요. 그때까지는 연기도 음악도 칭찬받지 못했고, '둘 중 하나만 해'라고 자주 들었습니다. 차츰 '연기 재밌네', '음악 좋네'라고도 듣게 되었어요.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2009)
그렇게 오토나케이카쿠 연극에 여럿 참여하게 되고, 드라마 쪽에서는 2003년 『WATER BOYS』(후지 테레비)에서 경음악부에 속해있는 부원이자 기타를 들고 나오는 호시야마 배역으로 데뷔했다. 극중 경음악부로 연주했던 곡들은 본인이 직접 작사ㆍ작곡했다고 한다. 첫 드라마 주연은 2007년, 『지난해 르누아르에서』라는 짧은 단편 드라마이다. 이 작품에서 겉으로는 대사가 거의 없지만 속으로는 여러 망상과 마음의 소리를 들려주는 ‘나’로 주변 목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표정이 변하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후 『 타이거&드래곤 』(TBS), 『 게게게의 마누라 』(NHK) 등의 인기작들에 조연으로 등장하기도 했다.『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2009)
'지옥이 뭐가 나빠'의 하시모토 코지 | '묻지마 사랑'의 아마노시즈쿠 켄타로 |
정석적인 공연, 영화, 드라마 외에 코미디 콩트에도 여러 번 나왔는데, 특히 LIFE!〜人生に捧げるコント〜(라이프! 인생에 바치는 콩트)[57]에 시즌0(2012)부터 시즌4(2017)까지 고정 출연진 중 한 명으로 꾸준히 출연하며 여러 가지 캐릭터를 보여주고 망가지는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예시
4.1.2. 2015 ~ 2019
그렇게 배우로서 이름을 서서히 알리기 시작한다. 코우노도리 시리즈에서는 상당히 차가워보이지만 실상은 따뜻한 의사인 '시노미야 하루키' 역으로 아야노 고와 합을 맞추었으며, 처음으로 출연해보는 NHK 대하드라마인 사나다마루에서는 에도 막부의 제2대 쇼군인 도쿠가와 히데타다 역할을 맡았다.<rowcolor=#fff>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의 츠자키 히라마사 |
작년 드라마 '
코우노도리'에서 배우로서의 다양한 매력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츠자키의 성실하고 못생겼지만, 귀여움도 함께 살고 있는 절묘한 분위기를 내 주시는 것은 호시노 씨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부탁했습니다. (중략) 2명이 동거하는 가운데 프로 독신을 관철하려고 하지만, 조금씩 그녀에게 끌린다는, 그 츠자키의 내면을 호시노씨가 어떻게 표현할지, 기대됩니다.
두 사람의 사랑이 깊어졌다가 엇갈렸다가, 그런 무뚝뚝한 마음을 밝고 애틋하게 표현해주는 것은 아티스트로서의 호시노 겐. 배우로서 그를 캐스팅할 때부터 느끼고 있었어서 주제가로도 섭외했습니다. (후략)
-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프로듀서 코멘트 #
그 이후에도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받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2017)에서는 '선배'역으로,
미래의 미라이(2018)에서는 '아빠'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플라쥬에서는 각성제를 사용해 체포당하고 집행유예로 풀려나 셰어하우스 플라쥬에서 살게 되는 회사원인 '요시무라 타카오'역으로 wowow 드라마 첫 주연을 맡았다. 또한 「이사 다이묘!(引っ越し大名!)」 (2019)에서 카타기리 하루노스케 역을 맡아 제 43회 일본 아카데미상 배우부문 화제상을 받았다.두 사람의 사랑이 깊어졌다가 엇갈렸다가, 그런 무뚝뚝한 마음을 밝고 애틋하게 표현해주는 것은 아티스트로서의 호시노 겐. 배우로서 그를 캐스팅할 때부터 느끼고 있었어서 주제가로도 섭외했습니다. (후략)
-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프로듀서 코멘트 #
4.1.3. 2020 ~
호시노 겐은 배우로서 언뜻보면 무기질적이고 무난한 인상이다. 다만 그가 창조하는 음악처럼 저온화상[58] 같은, 언뜻 냉정해 보이지만 사실 열정적인 면이 느껴진다. 젊었을 때는 그러한 면이, 순박하거나 모태솔로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활용되어 왔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세상을 냉정하게 보고 마음에 무언가를 안고 감정을 닫는 캐릭터로 이어졌고, 이제는 젊은 사람이나 동료를 한발 물러선 위치에서 지켜보는 입장 역할을 하는 인상으로 변해갔다. (중략)
호시노가 배우로 인정받은 것이 2013년 영화 '묻지마 사랑'과 '지옥이 뭐가 나빠'. (중략) 그리고 2016년 '도망부끄'에서 연기한 '츠자키 히라마사' 역으로 대히트. (중략) 그런 호시노가 새로운 배우상을 구축한 것이, 2020년의 드라마 「MIU404」이다. (후략)
'17세의 제국'의 냉정한 연기로 보여준 새로운 설득력
전반적으로 주인공의 주변 친구나, 호구, 귀여운 오타쿠, 모태솔로, 순박한 인물, 찌질하지만 인정이 있는 역할, 죄의 무게를 잘 눈치채지 못하는 서민, 웃거나 귀여운 매력이 있어 호감이 가는 역할, 망가지면서까지 열연을 보이는 B급 코미디성이 짙은 역할, 어딘가 미덥지 못한 역할 등을 주로 했었다. 그러나 이후 냉혈한, 마음 속 어둠을 숨기고 있는 인물, 관찰자 등 어릴 때와 다른 역할들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다.호시노가 배우로 인정받은 것이 2013년 영화 '묻지마 사랑'과 '지옥이 뭐가 나빠'. (중략) 그리고 2016년 '도망부끄'에서 연기한 '츠자키 히라마사' 역으로 대히트. (중략) 그런 호시노가 새로운 배우상을 구축한 것이, 2020년의 드라마 「MIU404」이다. (후략)
'17세의 제국'의 냉정한 연기로 보여준 새로운 설득력
MIU404의 시마 카즈미 |
이와 관련하여 2020년, 자신의 라디오에서, MIU404에서 형사 역할을 해보며 새로 알아가는 게 굉장히 많다고 생각해서, 기존에 하지 못한 여러 직업의 사람들을 연기함으로써 여러 가지 일을 체험해보고 싶다고 언급했으며, 나쁜 인물이나, 히어로 등의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도 언급했다. 음악과 관련된 역할[60]도 어디선가 해보고 싶다고 한다. #
'죄의 목소리'의 소네 토시야 | '17세의 제국'의 타이라 키요시 |
어이없을 정도로 우연한 고백. 호기심과 고뇌가 동시에 존재하는 복잡한 인간성. 변박자다. 게다가 은은하게 츤데레 매력이 있어, 사랑스러운 하드보일드함은 오구리 슌과의 2인 연기 때 명료하게 나타난다. (중략)
오구리 슌을 후방지원하는 가드로서의 단짝감. 관계자와 자신과 가족의 과거를 바라보는 멀리서(소년시절부터)의 시선. 비극의 색채에 기대지 않고 현재의 가혹함을 받아들일 각오. 산뜻한 댄디즘. 심플하면서 다채로운 '사운드'가, 거기에 있다. #
이에 더해 2022년, 청춘 SF 정치 드라마인 『
17歳の帝国(17세의 제국)』[61]에서는 차기 총리 자리에 가장 가까우면서도 욕망이 있는 내각관방 부장관[62]이자 Utopi-AI 프로젝트의 핵심 매니저인 타이라 키요시 역으로, 배후자이기도 하면서, 주인공에게 충고해주고 도움을 주는
조력자이기도 한 복잡미묘한 인물을 맡았다. 조연으로 표기되었으나, 사실상
서브 주인공의 비중을 가지며 기존 그의 배우상과 차이나는[63] 역할로, 그의 연기 생활 및 배우상에 또 다른 설득력을 부여해준 역할이기도 하다. 또한,
여학교의 별 OVA에서는
호시 미쓰히코 역으로 이때까지 기존에 맡았던 애니메이션 역할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오구리 슌을 후방지원하는 가드로서의 단짝감. 관계자와 자신과 가족의 과거를 바라보는 멀리서(소년시절부터)의 시선. 비극의 색채에 기대지 않고 현재의 가혹함을 받아들일 각오. 산뜻한 댄디즘. 심플하면서 다채로운 '사운드'가, 거기에 있다. #
4.2. 출연 작품
4.2.1. 무대
- Penguin Pull Pale Piles vol.2 「워크인 타임머신」(2001)
- 시어터 코쿤 온 레퍼토리 2003 「인간 파산」(2003)
- Penguin Pull Pale Piles vol.8 「246번지의 분위기」(2004)
- 어른계획 우만리브 vol.8 토도로키텐 VS 미나토 카오루 (2004)
- M&O plays 프로듀스 「아이스크림맨」(2005)
- 어른계획 우만리브 Vol.9 「일곱 명의 연인」 (2005)
- 어른계획 우만리브 「우먼리브 선생님」 (2006)
- PARCO 제작 뮤지컬 「카바레」 (2007)
- PARCO 제작 「LOVE LETTERS 2008 SPRING SPECIAL」(2008)
- 시어터 코쿤 「여교사는 두 번 안겼다」(2008)
- 어른계획 우만리브 vol.11 「일곱명은 나의 연인」(2008)
- 어른계획 「삿짱의 내일」 (2009)
- PARCO 제작「텍사스-TEXAS-」(2012)[64]
- 시스 컴퍼니 「미야자와 겐지가 전하는 것」(2012)
-
大人の新感線[65] 「라스트 플라워」 (2014)
인터뷰 동영상
4.2.2. 영화
- 「 新しい予感(새로운 예감)」[66] (2002)
-
「69 Sixty Nine」 (2004) - 나카무라 조(中村譲)
「69 Sixty Nine」 - 「논코 36세(ノン子36歳)」 (2008) - 마사루(マサル)
-
「소년 메리켄사쿠(少年メリケンサック)」 (2008) - ‘GOA’[67] 기타 보컬
あいまい模様(애매한 모양) - 「 묻지마 사랑(箱入り息子の恋)」 (2013) - 아마노시즈쿠 켄타로(天雫健太郎)
- 「지옥이 뭐가 나빠(地獄でなぜ悪い)」 (2013) - 하시모토 코지(橋本公次)
- 「러브 앤 피스(ラブ&ピース)」 (2015) - PC-300 (목소리 출연)
-
「이사 다이묘!(引っ越し大名!)」 (2019) - 카타기리 하루노스케(片桐春之介)
「이사 다이묘!」 웹사이트 - 「 죄의 목소리(罪の声)」 (2020) - 소네 토시야
- 「 라스트 마일(ラストマイル)」 (2024) - 시마 카즈미
관련 이미지 |
|
4.2.3. 드라마
연도 | 방송사 | 제목 | 활동 | 배역 | 비고 |
2003 |
WATER BOYS WATER BOYS |
조연 |
호시야마 (星山) |
||
맨하탄 러브스토리 (マンハッタンラブストーリー) |
조연 |
카제마루 (風丸) |
6화 출연 | ||
2004 |
돌하우스 (ドールハウス) |
조연 | 3화 출연 | ||
여자들의 죄와 벌 (女達の罪と罰) |
조연 | ||||
이혼변호사 (離婚弁護士) |
조연 | 2화 출연 | |||
토키오 아버지에게의 전언 (トキオ 父への伝言) |
조연 |
오쿠보 코지 (大久保浩二) |
1화 출연 | ||
동생 (弟) |
조연 | 2화 출연 | |||
2005 |
상냥한 시간 (優しい時間) |
조연 |
아마노 히로카즈 (天野洋一) |
3화 출연 | |
극단연기자 「잠자는 숲 속의 시체」 (劇団演技者。「眠れる森の死体」) |
조연 |
히로미 (ヒロミ) |
8회 | ||
타이거 앤 드래곤 (タイガー&ドラゴン) |
조연 |
돈츠쿠 (林屋亭どんつく) |
|||
2006 |
아키하바라@딥 (アキハバラ@DEEP) |
조연 |
타이코 (タイコ) |
||
또 하나의 슈가 앤 스파이스 (もうひとつのシュガー&スパイス) |
조연 |
코야마 나루지 (小山成司) |
4화 출연 | ||
2007 |
도쿄 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빠 (東京タワー 〜オカンとボクと、時々、オトン〜) |
조연 |
사와다 타마오 (澤田玉夫) |
||
탐정학원Q (探偵学園Q) |
조연 |
네코다 형사 (猫田刑事) |
|||
작년 르누아르에서 (去年ルノアールで) |
주연 |
나 (私) |
|||
2008 |
미래강사 메구루 (未来講師めぐる) |
조연 |
에구치 히데오 (江口秀夫) |
||
주간 마키요코 「나비인 채로」 週刊真木よう子 「蝶々のままで」 |
조연 |
이노우에 히로시 (井上ヒロシ) |
|||
2009 |
고스트프렌즈 (ゴーストフレンズ) |
게스트 |
신지 (信二) |
5화 출연 | |
2010 |
게게게의 여보 (ゲゲゲの女房) |
조연 |
오이카와 타카시 (及川貴司) |
||
축녀 시즌2 (祝女〜shukujo〜) |
게스트 | 5회 출연 | |||
[68] |
내가 처음 만든 드라마 - 괴물을 부르는 남자 - (私が初めて創ったドラマ -怪獣を呼ぶ男-) |
주연 |
소에지마 코타 (副島広太) |
||
2011 |
11명이나 있어! (11人もいる!) |
조연 |
사나다 히로유키 (真田ヒロユキ) |
||
2014 |
어젯밤의 카레, 내일의 빵 (昨夜のカレー、明日のパン) |
조연 |
테라야마 카즈키 (寺山一樹) |
||
2015 |
홍백이 태어난 날 (紅白が生まれた日) |
조연 |
조지 마부치 (ジョージ馬淵) |
||
코우노도리 시즌 1 (コウノドリ 第1シリーズ) |
조연 |
시노미야 하루키 (四宮春樹) |
|||
2016 |
사나다마루 (真田丸) |
조연 |
도쿠가와 히데타다 (徳川秀忠) |
||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逃げるは恥だが役に立つ) |
주연 |
츠자키 히라마사 (津崎平匡) |
|||
2017 |
플라쥬 (プラージュ) |
주연 |
요시무라 타카오 (吉村貴生) |
||
코우노도리 시즌 2 (コウノドリ 第2シリーズ) |
조연 |
시노미야 하루키 (四宮春樹) |
|||
2019 |
이다텐 ~도쿄 올림픽 이야기~ (いだてん~東京オリンピックの噺~) |
조연 |
히라사와 카즈시게 (平沢和重) |
||
2020 |
MIU404 (ミュウ ヨンマルヨン) |
주연 |
시마 카즈미 (志摩一未) |
||
2021 |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신춘 스페셜 (逃げるは恥だが役に立つ 新春スペシャル) |
주연 |
츠자키 히라마사 (津崎平匡) |
||
2022 |
17세의 제국 (17才の帝国) |
조연 |
타이라 키요시 (平清志) |
||
2025 |
슬로우 트레인 (スロウトレイン) |
조연 |
모메키 켄 (百目鬼見) |
관련 이미지 |
|
4.2.4. 애니메이션
연도 | 제목 | 활동 | 배역 |
2013 |
<colbgcolor=#daeef5,#191922>
세인트☆영멘 (聖☆おにいさん) |
주연 | 붓다 |
2015 |
치에리와 체리 (ちえりとチェリ) |
체리 | |
2017 |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 선배 | |
2018 | 미래의 미라이 | 조연 | 아빠 |
2022 |
여학교의 별 (女の園の星) |
주연 | 호시 미쓰히코 |
4.2.5. 나레이션
- + COLOR (2005년 4월 3일 ~ 9월 25일, 후지TV)
- 나의 10가지 룰 (2009년 4월 7일 ~ 9월 22일, TBS)
- 야자와 에이키치 & 이토이 시게사토 ~아마추어 사장 두 사람 지금이야말로 ... 돈 이야기 ~ (2010년 8월 1일, NHK E)
- 과외수업 어서오세요 선배님 (2011년 4월 9일, NHK종합)
- 여행의 힘 '내슈빌 28세의 테네시 왈츠 가수 우에무라 카나' (2011년 9월 13일, NHK BS 프리미엄)
-
No Smoking (2019)
호소노 하루오미의 50주년을 기념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4.3. 이야깃거리
{{{#!wiki style="margin: -20px -10px -17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b1eb> |
(호시노 겐은) 공식적으로 혼자서 노래를 부르기 전에 다른 사람을 연기했다. 그가 연기자인 것은 음악가인 그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그리고 그가 연주가였던 것은 그의 연기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지금 상호작용으로서 각각을 서로 보완하고 있다. (중략) ' 죄의 목소리' 당시 같이 합을 맞추었던 오구리 슌은 기본적으로 '누르는' 연기자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피하고, 때로는 '밸런스 볼'처럼 유연성으로 작용하는, 호시노 겐적 표현의 배경성에 시너지를 일으킨다. (중략) 호시노 겐이 가능한 '배경'으로서의 연기는, 심플하면서 다채로운 '사운드'가, 거기에 있다. (중략) 그의 연기에는, 보란 듯이 '연출'이 전무하다. 스타일은 바뀌지만, 본질 자체는 일상의 인접한 발화에 의해 뒷받침된다. (후략) |
20~30대 때는 비주류적인 작품 속 개성이 넘치는 배역이나, 비주류적인 감성, 또는 배우로서 상당히 부담스럽거나 망가지거나 다사다난한 배역을 많이 맡았었다.
5년동안 SNL스러운 일본의 코미디 콩트 프로그램에 고정크루였을 뿐더러, 그의 예전 필모그래피를 여럿 보다보면, 피칠갑되는건 기본이고, 망신당하거나 알몸이 노출되는 장면은 꽤나 흔하며[69], 여러가지 종류의 격한 키스씬과 베드신 연기 유경험자이기도 하고, 심지어 마약 하는 연기 유경험자이기도 하다. 하나같이 대역없이 이루어진 걸 보면 연기 스펙트럼이 꽤 있는 셈.[70]
그래서인지 그가 점점 네임벨류가 커졌을 때도 본인이 완전히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으로 돋보인다기보다는, 다른 배우들이 자신의 강점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밑바탕과 배경을 만들어주면서도 동시에 자기의 개성을 일부 챙기는 '비중이 많은 조연 역할'이 많다. 상대 배우나 주인공의 옆에 존재하는 역할, 평소에는 우유부단하거나 순박하거나 가벼우면서도 한없이 진중할 땐 진중해지는 경향의 역할, 분위기를 띄우는 캐릭터, 모태솔로, 염세주의적이거나 절망적이지만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하는 인물, (호시노 겐의 표현을 빌리자면) '안 된 인물'[71]의 역할, 겉으로는 부드러우면서도 속에는 열정(이글거림)이 있는 역할 등이 꽤 많은 편이었다.
2020년 이후, 불혹을 넘기고 MIU404의 형사 '시마 카즈미', '17세의 제국'의 정치인 '타이라 키요시' 등 20~30대 때와는 전반적으로 다른 배역들을 하고 있다. 마음 속에 말하지 못하는 사연 또는 깊은 어둠을 가지고 있거나, 특정 인물의 행보에 대해 지켜보고 남몰래 반응하는 배역, 또는 전반적으로 차가워보이는 배역들이 많아졌는데, 그래서 '조용하면서도 내면의 어둠과 슬픔을 표현하여 압도하거나 휘몰아치는 눈빛 연기'에 대한 호평이 많아졌다. #1 #2
노기 아키코는 그가 작가 활동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언어 능력이 높아 각본에 대한 독해력이 높다고 평가했다. 퇴고 중에 이 대사를 넣을까 뺄까 고민하고 뺀 대사를 호시노 겐이 애드리브로 유사하게 넣은 적이 있었다고.
그 밖의 여러 여담들은 호시노 겐/여담 문서의 연기 및 작품 관련 문단을 참고.
5. 작가 활동
십 년 정도 꾸준히 에세이를 쓰면서 깨달은 바는 문장 전문가란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글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점입니다.
인간에게는 전달 욕구가 있으며 그 안에는 다양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히 문장을 구사할 때는 "이걸 전달함으로써 이런사람으로 보이고 싶다."하는 자기 인정 욕구에서 기인한 에고와 나르시시즘의 과잉이 일어나기 쉽고 음악도 그러하지만 표현과 타인에게 전하고 싶다는 바렘에는 늘 불순물이 따릅니다.
그것과 싸우며 한도 끝도 없이 덜어 내는 작업이야 말로 아마추어에게는 특히 어려우며, 프로 중의 프로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다양한 책을 읽은 지금에야 겨우 깨닫게 되었습니다.
작가 경력과 관계없이 문장력을, 자신의 욕망을 발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에고와 나르시시즘을 없애기 위해 사용하는 사람.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입니다.
느긋하게, 꾸준히 글을 쓰면서 조금이라도 '불순물을 걸러 낼 수 있는' 작가에 다가가고 싶습니다.
『 생명의 차창에서』
인간에게는 전달 욕구가 있으며 그 안에는 다양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히 문장을 구사할 때는 "이걸 전달함으로써 이런사람으로 보이고 싶다."하는 자기 인정 욕구에서 기인한 에고와 나르시시즘의 과잉이 일어나기 쉽고 음악도 그러하지만 표현과 타인에게 전하고 싶다는 바렘에는 늘 불순물이 따릅니다.
그것과 싸우며 한도 끝도 없이 덜어 내는 작업이야 말로 아마추어에게는 특히 어려우며, 프로 중의 프로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다양한 책을 읽은 지금에야 겨우 깨닫게 되었습니다.
작가 경력과 관계없이 문장력을, 자신의 욕망을 발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에고와 나르시시즘을 없애기 위해 사용하는 사람.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입니다.
느긋하게, 꾸준히 글을 쓰면서 조금이라도 '불순물을 걸러 낼 수 있는' 작가에 다가가고 싶습니다.
『 생명의 차창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어떤 풍경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는가? 그 마음의 움직임은 어떤 모습이었는가? 거기에서 무엇을 생각했는가? 아무리 시시한 일이라도 그것을 글로 잘 표현할 수 있을 때 마음속이 깨끗하게 정돈되었다. 이제 막 청소한 욕조에 들어가 말끔히 몸을 씻어 낸 것처럼 기분이 상쾌해졌다. (중략)
앞으로의 과제는 더 간결하면서도 자유롭게 떠들되 상대에게 진심을 그대로 전할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이다.
『 생명의 차창에서』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전하는 것이 서툴렀기 때문에 22,23살(2003년) 때 '문필을 계속 하면 혹시 억지로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편집자를 찾아다녔고 잡지의 난외에 100글자나 200글자로 잡문을 쓰는 일을 노개런티로 맡게 된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당초에는 쓰는 것이 고통스러웠지만, 점차 부탁되는 글자 수가 증가하고, 2009년에는 첫 에세이집 『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가 편찬된다.앞으로의 과제는 더 간결하면서도 자유롭게 떠들되 상대에게 진심을 그대로 전할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이다.
『 생명의 차창에서』
여러 에세이집이 40만 부 이상이 팔리고, ' 생명의 차창에서'는 여러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하고 북로그 에세이 부문 대상을 받으며 한국에서도 공식적으로 번역판이 들어오게 되었다.
5.1. 저서
<rowcolor=#fff> 『
そして生活はつづく』 (2009)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
『
働く男 』 (2013) 일하는 남자 |
『
よみがえる変態』 (2014) 되살아나는 변태 |
<rowcolor=#fff> 『いのちの車窓から』 (2017)[72] 생명의 차창에서 |
『いのちの車窓から 2』 (2024) 생명의 차창에서 2 |
|
5.2. 대담집
<rowcolor=#fff> 『星野源 雑談集1』 (2014) 호시노겐 잡담집 |
『地平線の相談』 (2015)[73] 지평선의 상담 |
『星野源 音楽の話をしよう』 (2018)[74] 호시노겐 음악 이야기를 하자 |
|
|
|
<rowcolor=#fff> 『星野源 ふたりきりで話そう』(2019) 호시노겐 단둘이 이야기하자 |
||
5.3. 연재
- シアターガイド 「나의 이번 달」
- Quick Japan 「식물인간도 춤출 수 있는 음악」, 「오늘의 사이타마」
- 소년문예 「빙글빙글 파아코」
- 미래창작 vol.1 단편소설 「찻주전자」
- bounce.com[75] 「호시노 겐의 노래하는 소설」
- H (에이치) 「우메보시의 픽션 대마왕」
- 텔레비전 브로스「호소노 하루오미와 호시노 겐의 지평선의 상담」[76]
- TSUTAYA 프리 페이퍼 "VA" 「호시노 겐의 그리고 SAKEROCK은 계속된다」
- 매거진하우스 "ウフ"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 POPEYE 「무릎 위의 영화관」[77], 「호시노 겐의 12명의 무서운 일본인」
- GINZA 「 긴자철도의 밤」
- 다빈치
- 「호시노 겐의 잠자코 나를 따라와」 (2012 ~ 2013)
- 「생명의 차창에서」 (2014 ~ 2023)
- AERA
- 「음악 이야기를 하자」
- 「단둘이 이야기하자」
역대 호시노 겐의 다빈치 게재호 일람
6. 방송 및 그 외 활동
음악가이고, 배우이고, 글 쓰는 일을 하고 있어서 말하는 것이 본업은 아니지만, 매주 닛폰 방송까지 가서 뭔가 특별한 수다를 떨 수 있느냐고 하면 딱히 아무것도 없고요, 단지 청취자가 보내주는 메일이나 사연에 껄껄 웃고 있을 뿐이에요. 그냥 즐기러 가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갤럭시상 라디오 퍼스널리티 상 수상소감 중 (2017) #
갤럭시상 라디오 퍼스널리티 상 수상소감 중 (2017) #
호시노 겐: 「
오겐상의 서브스크당」을 기획한 것도, "왜 TV에서는 '기술'이나 '팔리는 방법'의 문맥 밖에 음악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인가? 그냥 순수하게 좋아하는 음악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스탠다드'가 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인가, 라고 하는 것에 대한
반발, 그리고, 그것을 알리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저에게 있어서의
창작입니다.
#
6.1. 방송 활동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방송 활동 문서 참고하십시오.6.2. 잡지 표지
여러가지 직업을 가지고 있다보니 록킹 온 재팬, 롤링 스톤 재팬, MUSICA 등 음악 잡지는 물론이고, '다빈치'같은 도서 잡지, '키네마 순보'같은 영화 잡지 등 여러 방면의 잡지 표지에 오르는 경우도 많으며, 더 나아가 anan, ELLE 재팬, NYLON 재팬, GQ 재팬 등 패션잡지의 화보 및 표지에 올라간 경우도 있다.2018년 3월에는 일본의 패션잡지인 「装苑(장원)」에 1936년 1월 창간 이래 사상 처음으로 남성 단독 표지에 올랐다. # 덧붙여 호시노 겐 표지 및 특집으로 발행한 다빈치 2018년 12월호는 며칠만에 완판점이 속출해 잡지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중판(重版) 결정이 나기도 했다. #
- 촬영 비하인드 유튜브 영상 (일부)
{{{#!wiki style="margin-bottom: -1.5%"
연재 소설 「石の刃(돌의 칼날)」 요네자와 호노부 × 호시노 겐, 크리에이터 2인의 꿈의 공동 창작이 시동! ( 공식 SNS)
[인터뷰] 연재소설 '돌의 칼날' 요네자와 호노부×호시노 겐 콜라보레이션의 전모란
토라노몬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는 변호사 에지마에게 방문 약속을 잡지 않은 고객이 찾아온다. 이야기를 듣기 위해 사무실의 부하 직원인 산조는 에지마와 함께 응접실로 향하지만, 기업 관련 법무가 많은 에지마 로펌에서 그것은 전문 분야가 아닌 의외의 의뢰였다.
월간지 '小説 野性時代(소설 야성시대)'에서 2024년 11월 22일부터
요네자와 호노부의 새로운 연재소설인 石の刃(돌의 칼날)이 연재된다. 호시노 겐은 원고를 받아보고, 주인공인 변호사 에지마(絵島)의 모습을 이미지화하여 연기하면서 표지와 속표지들을 촬영, 순차적으로 공개하는 기획이다. 어떻게 본다면 소설들의 겉표지, 일러스트 등을 호시노 겐이 대신 연기하며 사진을 촬영한 것.6.3. 광고 / CF
{{{#!wiki style="margin-bottom: -1.5%"
- 시세이도 아넷사 「미소가 반짝(笑顔キラリ)」 편 (2012) - 나레이션, 「夢の外へ」 CM
- 아사히 맥주 「ノンアルコールビールテイスト(무알콜 맥주 테이스트)」 (2016) - 나레이션, 「SUN」 CM
-
AC 재팬 「ライバルは、1964年」 (2016) - 나레이션, 「Hello Song」 CM
「ライバルは、1964年(라이벌은, 1964년)」 - 스카파! 「 리우 2016 패럴림픽 전문 채널 CM」 - 나레이션, 「Continues」 CM
{{{#!wiki style="margin-bottom: -1.5%"
-
맥도날드 「朝マック」 (2006)
「朝マック(맥모닝)」 -
오츠카제약 「ファイブミニ」 (2007 - 2008)
「ファイブミニ(화이브미니)」 -
도쿄가스 「長男の結婚」 편 (2012)
「長男の結婚(장남의 결혼)」 - 시세이도 마키아쥬 웹무비 「Snow Beauty」 (2015)
-
u-can 통신강좌 (2016) CM
「ユーキャンの通信講座(유캔통신강좌)」 - 하우스 우콘노치카라 (2016 - 2017)
-
닛신식품 「日清のどん兵衛(닛신의 돈베에)」 (2017 ~ 2022)[78]
{{{#!folding [ CM목록 펼치기 · 접기 ]
닛신 돈베이 CM 「どんぎつね 篇 (돈베이 여우편)」
닛신 돈베이 CM 「どんぎつね出てきません 篇 (돈베이 여우가 나오지 않습니다 편)」
닛신 돈베이 CM 「どんぎつねの嫉妬 篇 (돈베이 여우의 질투 편)」
닛신 돈베이 CM 「耳は正直 篇 (귀는 정직해 편)」
닛신 돈베이 CM 「編んでいる 篇 (뜨개질하는 편)」
닛신 돈베이 CM 「ふっくらマフラー 篇 (통통 머플러 편)」
닛신 돈베이 CM 「一番好きなもの 篇 (가장 좋아하는 것 편)」
닛신 돈베이 CM 「ツキを招く月見そば 篇 (츠키오 초래 달맞이 소바 편)」
닛신 돈베이 CM 「月見ポケット 篇 (달맞이 포켓 편)」
닛신 돈베이 CM 「大晦日のうそ 篇 (섣달 그믐 날의 거짓말 편)」
닛신 돈베이 CM 「恋七味 篇 (사랑 양념 편)」
닛신 돈베이 CM 「いつもと違うどんぎつね 篇 (평소와는 다른 돈베이 여우 편)」
닛신 돈베이 CM 「そばにキミ 篇(곁에 그대 편)」
닛신 돈베이 CM 「レシート 篇 (영수증 편)」
닛신 돈베이 CM 「煩ぎつね 篇 (번여우 편)」
닛신 돈베이 CM 「寝言 篇 (잠꼬대 편)」}}} -
삿포로 맥주 블랙라벨 「大人エレベーター(어른 엘리베이터)」 제28탄 (2017)
「36歲 星野源系列(36세 호시노 겐 계열)」 - 카오 Biore-u 바디워시 (2017)
-
삿포로 맥주 麦のくつろぎ 「ノンアルを変える」 편 (2018~ )
「ノンアルを変える(무알콜을 바꾸다)」
「香りが好き(향기가 좋아)」 - NTT docomo (2018 ~ 2021)[79]
-
닌텐도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35주년 기념광고 (2020)[80]
スーパーマリオブラザーズ35周年 TVCM - UCC 우에시마 커피 (2021~)
- 「COFFEE CREATION」シリーズ (2021.11~) 특설 사이트
- 「UCC GOLD SPECIAL PREMIUM」(2022.09~)
- 기린 맥주 담려 그린 라벨 (2023~)
-
세키스이 하우스 GRANDE MAISON (2023~)
그랜드 스토리
관련 이미지 |
|
6.4. 부캐
-
니세 아키라
주 장르로 엔카와 트로트를 부르는 가수이다. 2014년부터 호시노 겐의 여러 콘텐츠에 감초같이 등장하고 있다. 느끼한 말투도 가지고 있고 잔망스럽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개그 캐릭터 포지션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
오모에몽
'과하다'는 뜻 + 도라에몽
7. 엔터테이너로서의 호시노 겐
7.1. '친근한 도전자'로서의 행보
과거 연예인은 동경하며 흉내를 내는 등 '먼 존재'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었지만, 자신답게 사는 것이 침투한 현재는 '친근한 존재'인 것 또한 인기인이 되기 위한 전제. (중략) 호시노는 좀처럼 성공하지 못한 시기가 있었던 것 등도 포함해,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친숙한 연예인이 되고 있다. (중략)
「음악가, 배우, 문필가」등의 직함으로 활동하는 엔터테이너. 중학생 때 음악과 연극을 동시에 시작해, '어느 쪽으로 좁히는 것이 좋다'라고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양립을 계속해, 게다가 (20대에) 문필도 시작해 현재의 성공을 쟁취했다. (중략)
호시노 겐이 현재와 같은 엔터테이너가 된 요인 중 하나로서 절대로 빠지면 안 되는 것은, 전례없는 행동력. (중략)
레이와 시대에 들어와서 흔들리지 않는 호시노 씨의 활동 스탠스를 드디어 시대가 따라잡고, 코로나가 찾아옴으로써 그 대단함이 돋보인 것은 아닐까? '부담없이 말을 걸 수 있을 것 같은 친근감을 풍기면서, 막상 일이 되면, 다양한 스킬을 발휘해 간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호시노는, 엔터테이너 뿐만이 아니라 비즈니스 퍼슨에 있어서도, 레이와 시대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호시노 겐이 압도적인 존재로 올라선 납득 가능한 이유 (2020)
「음악가, 배우, 문필가」등의 직함으로 활동하는 엔터테이너. 중학생 때 음악과 연극을 동시에 시작해, '어느 쪽으로 좁히는 것이 좋다'라고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양립을 계속해, 게다가 (20대에) 문필도 시작해 현재의 성공을 쟁취했다. (중략)
호시노 겐이 현재와 같은 엔터테이너가 된 요인 중 하나로서 절대로 빠지면 안 되는 것은, 전례없는 행동력. (중략)
레이와 시대에 들어와서 흔들리지 않는 호시노 씨의 활동 스탠스를 드디어 시대가 따라잡고, 코로나가 찾아옴으로써 그 대단함이 돋보인 것은 아닐까? '부담없이 말을 걸 수 있을 것 같은 친근감을 풍기면서, 막상 일이 되면, 다양한 스킬을 발휘해 간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호시노는, 엔터테이너 뿐만이 아니라 비즈니스 퍼슨에 있어서도, 레이와 시대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호시노 겐이 압도적인 존재로 올라선 납득 가능한 이유 (2020)
배우를 하면서 음악을 하는 사람은 많이 있다. 다양한 재능을 구사하고 다양한 표현을 하는 사람이 많다. 개인적으로도 몇 명 알고 있다. 하지만 호시노 군의 표현 스타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뉴타입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이상한 자기주장이나 시비가 없는 것, '나, 뭐든지 해버리니까 멋있지'라고 하는 기운이 전혀 없다. 실로 냉정하게 행동하면서, 주위의 상황을 판단하고, 그러면서도 표현은 뜨겁게 하는 이상적인 표현자인 것이다. (중략) 그러면서, 마음의 뿌리 부분에는 걸쭉한 마그마가 끓고 있다.
- 오오네 히토시 (감독) (2014) #
그의 신체적인 조건은 '일반적인 타
연예인들'과 비교해봤을 때 키도 작으며, 얼굴도 막 크게 잘생기지는 않았고, 몸매도 빼어나지는 않으며,
가창력도 크게 빼어나지는 않았다. 개그맨이나 실력파 배우가 아닐 경우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하는 연예계에서 이는 치명적인 단점이며, 신체적 조건으로 인해 혜택을 하나도 볼 수 없었고 오히려 불이익을 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호시노 겐을 거의 처음 본 사람들의 경우 '호시노 겐이 왜 팔리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호시노 겐은 여러 꽃미남 배우들과 아이돌들이 한창 활동할 당시에 그 시장 속에서 몸집이 커졌기 때문에 더더욱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호시노 겐은
스카우트 제의를 받지 못했던 사람이었기에 과거에는 계속 발로 뛰며 일을 찾아다녔었고, 그의 과거 행보는 밝지 않았으며, 상황이 그렇게 좋지 못했다.이상한 자기주장이나 시비가 없는 것, '나, 뭐든지 해버리니까 멋있지'라고 하는 기운이 전혀 없다. 실로 냉정하게 행동하면서, 주위의 상황을 판단하고, 그러면서도 표현은 뜨겁게 하는 이상적인 표현자인 것이다. (중략) 그러면서, 마음의 뿌리 부분에는 걸쭉한 마그마가 끓고 있다.
- 오오네 히토시 (감독) (2014) #
그러나 그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넓은 연령층의 고정 팬층이 존재하며, 연예계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방송이나 고정출연, 그리고 광고를 여럿 찍었을 정도로 일본의 최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예인 중 한 명이다. 당시 연예계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사례여서 힐난하는 안티들도 꽤 있으나, 호시노 겐이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1명의 성과라고 보기에는 힘든 그의 다양한 성과와 작업물, 그의 ' 재능'에 기반한 실행력과 태도, 그의 신체적 불이익을 능가하는 어느 정도 이상의 실력, 무엇보다 각 업계들에서 부딪혀가며 진심으로 계속 임하고 있다는 일부 관계자들과 스태프들의 평가 및 대외적인 평판으로 쌓아온 방송계의 인맥들, 멀리서 보는 잘생기고 예쁜 연예인이 아니라 호시노 겐만의 차별화된 사랑받는 매력, 그리고 40대가 되어서도 '음악가, 배우, 문필가'의 활동을 여전히 지금까지 꾸준히 계속 이어오고 있으며 발생되는 그의 여러 직업 사이의 차이에서 나오는 그의 매력 등 여러 작용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호시노 겐은 본인의 목표에 있어서는 야망과 욕망이 크며, 고유의 세계관이 뚜렷하고, 반골 기질이 크며, 마이페이스가 크지만 남을 대할 때만큼은 배려나 설득력을 발휘해 큰 피해는 끼치도록 놔두지는 않는 인물이며, 상냥함과 광기가 공존하는 인물이다. 거기에다가 추가로 그는 현실적인 자신의 한계를 알고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한정짓지 않는 담대함, 실행력 및 끈기, 궤도 수정은 확실하게 하자는 그의 좌우명, 기획 및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 및 개인의 프로듀싱 자체에도 적극적으로 임하는 모습, 아이디어와 목표를 발효해가는데 싸우고 도전함, 그리고 그의 다채로운 색채와 여러가지 행보 및 작업물들로 제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비록 실패를 맛보더라도 (시대의 변화에 따른) 변화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그의 자세를 앞세웠다. 그는 세상에 대한 반항심 및 재미를 추구해가는 마이페이스적인 자신을 꾸준히 표현하고 있으며, 빛처럼 밝게 빛나는 온화함과 상냥함 및 스타적인 면모와 팬들과의 소통을 챙기고, 동시에 완벽한 게 아닌, 본인 안에 남아있는 그림자적인 어두운 분위기 또한 미세하게 풍기며 인간적인 인물상을 보여준다. 그렇게 호시노 겐은 엔터테이너로서 사랑받는 매력을 가진 동시에 사람들의 '친근함을 불러일으키거나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는 부분을 계속 만들어갔다.
그의 과거와 이야기는 고유의 스토리텔링적인 부분이 되었고, 그 이후 그가 만들어나간 '개성있는 그의 독자적인 셀프 브랜딩 및 프로듀싱'은 (실패한 부분도 있지만) 꽤나 성공적으로 작용하여 다양한 재미를 추구하는 그의 추후 행보에도 설득력을 계속 부여하고 있다. 물론 그가 완전히 이것을 의식하고 있었다기보다는, 그의 마음이 가는대로 진심으로 자신의 목표와 여러 일에 열심히 임하고 있는 와중에 자연스레 생기고, 이후 점점 크게 만들어나갔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약 10년 이상의 인디 활동 이후 일본 4대 대형기획사인 아뮤즈로 이적했을 때 매니지먼트 팀 및 A&R팀과의 합이 전반적으로 잘 맞은 것 또한 클 것이다.)
그렇게 세대 교체 또한 빠르게 가속화되면서 이제 호시노 겐은 국민적 팝 아이콘에서 상대적으로 멀어지게 되었고, 그의 작업물들은 변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대중들을 설득시키는데에 전부는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의 내면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호시노 겐은, 이런 것으로는 끝나지 않으니까'라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미하엘씨. 매우 인상에 남아 있었습니다만, 정말 그렇게 되었네요."
감탄한 표정으로 말하는 후배 앞에서 나는 그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를 떠올렸다. 이 청년은 다재다능하다, 이 사람은 재능덩어리라고 순순히 느꼈다. (중략) 이미 뮤지션으로서뿐만 아니라 배우, 집필업 등 다양한 활동을 하셨는데 무엇보다 '자기자신을 프로듀싱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처음 봤을 때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호시노 겐이라는 사람은, 앞으로도 서프라이즈를 많이 전해 줄 거야, 분명"이라고. (중략)
그는, 사람의 재능을 꿰뚫어 보는 날카로운 촉이 잘 작용한다. (중략) 재능이 있는 사람은 점점 세상에 나오기를 바라는 호시노씨의 생각이, 결실을 맺어 가는 과정을 몇개나 봐 왔다.
호시노 겐이라는 사람은 섬세하고 감수성이 매우 풍부하며 노력가다. 계속 변하지 않는 뛰어난 능력의 하나로서, 순간적으로 '제3의 눈'이 열리는 타이밍이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고 있다. (중략) 앞으로도, 노력은 물론, 그 직감력, 판단력, 그리고 재능이, 운이 오르는 좋은 만남을 불러와, 유례없는 공적을 만들어 갈 것이다. #
감탄한 표정으로 말하는 후배 앞에서 나는 그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를 떠올렸다. 이 청년은 다재다능하다, 이 사람은 재능덩어리라고 순순히 느꼈다. (중략) 이미 뮤지션으로서뿐만 아니라 배우, 집필업 등 다양한 활동을 하셨는데 무엇보다 '자기자신을 프로듀싱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처음 봤을 때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호시노 겐이라는 사람은, 앞으로도 서프라이즈를 많이 전해 줄 거야, 분명"이라고. (중략)
그는, 사람의 재능을 꿰뚫어 보는 날카로운 촉이 잘 작용한다. (중략) 재능이 있는 사람은 점점 세상에 나오기를 바라는 호시노씨의 생각이, 결실을 맺어 가는 과정을 몇개나 봐 왔다.
호시노 겐이라는 사람은 섬세하고 감수성이 매우 풍부하며 노력가다. 계속 변하지 않는 뛰어난 능력의 하나로서, 순간적으로 '제3의 눈'이 열리는 타이밍이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고 있다. (중략) 앞으로도, 노력은 물론, 그 직감력, 판단력, 그리고 재능이, 운이 오르는 좋은 만남을 불러와, 유례없는 공적을 만들어 갈 것이다. #
7.2. 상당한 행동력과 작업량
호시노 겐은 어떤 사람인가? (중략) 제가 대표이사로 있는 소속사인 KAKUBARHYTHM[82]에서는 겐군의 음악 전반의 일만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음악에 한정된 이야기를 하자면, (중략) 정말 음악과 정면으로 부딪치고 있습니다. 그다지 열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지만, 마음은 굉장한 끓어오름과 하고싶은 일이 넘쳐나곤 합니다. 옛날에도 "카쿠바리씨, 이런 걸 하고 싶어요"라고, 당시의 우리에게 있어서는 조금 큰 목표도, 실제로 곧바로 실행해보고 달성해 오거나 해요. (중략)
재능도 물론이지만 자신 안의 목표를 넘어서려는 노력과 행동력과 확고한 의지가 있습니다. 아, 몇 번이나 들을 수 있는 악곡의 퀄리티와 내구성, 절묘한 어레인지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것도 필수로 주목할 점입니다.
정말 잇달아 아이디어도 나오고, 작품을 재미있게 하는 것, 작품으로서 얼마나 좋게 할 것인가 하는 데에 타협은 일절 하지 않습니다. 작품이 좋아진다면, 토가 나와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부딪힙니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기쁘게 받을 수 있는 즐거움이라고 할까, 전해져 가는 것의 중요성도 이해하고 있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작년 9월 정도에 뮤직비디오 촬영을 밤새 한 후 아침에 '데니스'에서, 겐 군과 '궤도 수정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겐군은 "역시 끝까지 해낼 수 있지만, 그만큼, 냉정하게 궤도 수정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이야기해서, 이 밸런스 감각이야말로 호시노 겐이라고, 소속사 사장이 소속사 아티스트를 너무 칭찬하는 감상이지만(웃음), 굉장히 감탄하며 영향을 받아 '담대하게 하면서, 궤도 수정도 확실히!'를 사훈으로 했던 것입니다(웃음).
POPEYE 2013년 3월호
여러 일을 하는 엔터테이너로서 연예계에 자리잡았음에도 불구하고, 타 전업 아티스트들이나 싱어송라이터들의 작업량에 꿀리지 않을 정도로 작업량이 꽤 있으며, 일본 내 최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예인 중 한 명이 되어버린 이후에도 계속해오고 있다.재능도 물론이지만 자신 안의 목표를 넘어서려는 노력과 행동력과 확고한 의지가 있습니다. 아, 몇 번이나 들을 수 있는 악곡의 퀄리티와 내구성, 절묘한 어레인지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것도 필수로 주목할 점입니다.
정말 잇달아 아이디어도 나오고, 작품을 재미있게 하는 것, 작품으로서 얼마나 좋게 할 것인가 하는 데에 타협은 일절 하지 않습니다. 작품이 좋아진다면, 토가 나와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부딪힙니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기쁘게 받을 수 있는 즐거움이라고 할까, 전해져 가는 것의 중요성도 이해하고 있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작년 9월 정도에 뮤직비디오 촬영을 밤새 한 후 아침에 '데니스'에서, 겐 군과 '궤도 수정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겐군은 "역시 끝까지 해낼 수 있지만, 그만큼, 냉정하게 궤도 수정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이야기해서, 이 밸런스 감각이야말로 호시노 겐이라고, 소속사 사장이 소속사 아티스트를 너무 칭찬하는 감상이지만(웃음), 굉장히 감탄하며 영향을 받아 '담대하게 하면서, 궤도 수정도 확실히!'를 사훈으로 했던 것입니다(웃음).
POPEYE 2013년 3월호
고등학교 시절 독립 후부터 여러 아르바이트, 밴드 생활, 프리랜서 배우, 집필 다 병행한 건 물론이고, 뜨기 전까지 '재능이 없다'와 '하나에만 집중해라'는 말을 자주 들었었지만, 그때 당시 소속사에는 '이런 일이 직접 왔다' 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스스로 직접 발로 뛰며 일을 찾고 일을 하고 있었다는 일화도 있다. 다만 이런 행동력이 그에게 있어 안 좋은 영향을 끼칠 때도 있었는데, 그가 솔로 데뷔 초중반에 걸렸던 조증과 지주막하출혈은 30대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수면 시간을 엄청나게 줄여가며 몸을 혹사시키고 여러 방면의 작업과 일을 계속할 때 걸린 병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예전 노래들 가사들을 보며 심적으로 위안을 받고, 여러 다른 노래들을 들으며 투병생활을 견뎠고, 이 지주막하출혈 투병생활 이후 그의 인생관은 변화를 맞이하고 메이저 히트 가수로 점점 올라가게 되는 작용이 되었기도 하다.
아침부터 영화나 드라마 촬영, 장시간 음악 레코딩을 하고 나서
닛폰 방송에 온다. 옆에서 봐도 완전히 지쳐 있다. 그런데도 방송에 임하고, 즐기고, 오히려 기운을 차리고 돌아가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그때 내 자신이 얼마나 편하게 응석 부리고 있는지를 통감한다. 호시노 씨의 앞에서 바쁘다는 등의 말은 절대로 할 수가 없다. (중략)
일이 바빠져서 대충 하게 될 때, 언제나 호시노 씨의 얼굴이 떠오른다. 더 바쁜데도 더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다.
이시이 히카루(전 올 나이트 닛폰 디렉터)의 에세이
그의 행동력은
YELLOW DANCER와
Pop Virus로 음악적 측면, 상업적 측면 모두 대히트치고, 참여한 여러 드라마가 히트치며 30대 중후반에 뒤늦게 성공한 이후에도 계속되는데, 2019년
번아웃 증후군이 왔을 당시 '그것을 타파할 다른 돌파구를 찾았다'는 그 결과물로서
Same Thing EP를 발매했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고.일이 바빠져서 대충 하게 될 때, 언제나 호시노 씨의 얼굴이 떠오른다. 더 바쁜데도 더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다.
이시이 히카루(전 올 나이트 닛폰 디렉터)의 에세이
그렇게 작사, 작곡, 편곡, 프로듀싱을 직접 계속 하고 있고, 라디오 진행, 집필, 본인이 진행하는 여러 방송, 영상 기획 및 연출, 이름을 밝히지 않은 사운드클라우드 및 유튜브 채널과[83] 광고 및 예능까지 하고 있기도 하며, 필모그래피는 같은 세대의 전업배우에 비하면 조금 적은 편이지만, 배우업도 계속 하고 있다. 또한 팬들과의 이벤트나 공연 라이브, 토크 스트리밍 라이브도 종종 하고 있으며 콜라보나 협업 하는 사람들 또한 그의 멀티 엔터테이너적 행보 때문에 여러 방면에 걸쳐있다. 더군다나 연기 활동은 그 배역에 대한 해석과 몰입 때문에 머릿속에 있는 풍경과 이미지를 담아내는 그의 음악 제작 활동과 병행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3년으로 솔로 데뷔 13년 차인 그의 디스코그래피는 리믹스나 피쳐링, 콜라보, 음원으로 내지 않은 CM음악 등을 제외하고 '정규 5개[84]에, EP같은 곡 횟수를 가진 싱글 13개, 디지털 EP 2개, 디지털 싱글 9곡'이다. 물론 싱글 수록곡 중 일부가 정규 앨범에 포함되기도 하지만. 인디밴드 활동을 포함하여 20년을 보면 여기에다가 밴드 명의로 발매한 '정규 6개, 미니 앨범 1개, 사운드트랙 EP 5개'가 추가되는 셈이다. 거기다가 현재까지도 1년에 한 곡은 어떻게든지 무조건 만들어야 하는 소소한 이벤트도 있다.
또한 2020년 코로나 사태로 대외적인 활동이 불가능해지자 오히려 이 코로나 사태의 위기를 기회삼아 40살에 DAW 작곡 공부를 제대로 시작하고 그 작업에 몰두하며 그에게 있어 또 다른 새로운 재시작을 표방하는 여러 작업물을 냈다. 실제로 호시노 겐의 2021년 이후 노래는 DAW로 제작된 것이 많은 걸 감안하면, 그의 전성기 때 만큼은 아니지만, 그가 10~20살 차이나는 후배들과 같이 아직까지 현역으로 계속 뛰게 만들어준 또 다른 발판이 된 셈.
40대가 된 2020년 이후부터 컨디션 관리에 예전보다 탄력이 덜 붙으며, 2021년에는 결혼까지 해서 작업시간이 더 줄어들었고, 가정 및 생활에도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예전에 비해 작업량은 줄어들었다. 이제는 본인만의 오리지널 곡들보다는 의뢰형식의 곡들을 많이 만들고 있으나 '의뢰를 받아 일을 만들면 곡을 더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그의 생각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심리적으로 가장 위험했을 때 生命体(생명체)와 光の跡(빛의 흔적) 악곡을 만들고 가사를 쓰면서 극복해나갔고 이후 꽤 건강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7.3. 그의 원동력과 목표?
결국은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에 하고 싶은 것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단지 그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요. (중략)
문필도 음악도 연기도, 따로 일을 하지 않아도 취미로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돈이 발생하지 않는 표현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표현에 대가가 발생하고, 그 돈의 교환이 있는 가운데의 엄격함 속에서 하고 싶은 것을 추구해 가고 싶다, 그것이 제가 하고 싶은 겁니다.
일하는 남자 (2013)
문필도 음악도 연기도, 따로 일을 하지 않아도 취미로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돈이 발생하지 않는 표현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표현에 대가가 발생하고, 그 돈의 교환이 있는 가운데의 엄격함 속에서 하고 싶은 것을 추구해 가고 싶다, 그것이 제가 하고 싶은 겁니다.
일하는 남자 (2013)
어두컴컴하고, 움직이지 못하고, 아프고, 매스꺼움은 엄청나고. 정말 절망스러웠지만 지금 저는 이렇게 재밌게 여러 가지 일들을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힘들었던 것들을 말하는 것도 중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어떻게 그 이후 즐겁게 살았을까'라는 것.. 뭐랄까, '그런 부류의 사람도 있구나'라는 것이 제가 겪었던 것들과 비슷한 상황이 된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떠올랐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사람 재밌어보였지', '그러고보니 음악방송에서 해맑게 " 안녕하세요! 호시노 겐 입니다~!"라고 말했었지' 처럼요.
저는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음악을 만드는 것에 즐거움과 기쁨이 있어요.
연기를 할 때도 저의 에고가 사라져가는 쾌감이 엄청 있고,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제 무언가를 글과 말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워요.
제가 일들을 하는 의미라는 건 어쩌면 없을지 모르지만, 지금 즐겁거나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계속하고 싶어요. 즐거움을 갱신하는 것이, 100% 괴롭고 절망적이었던 그날들의 제게 할 수 있는 격려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포기하지 않길 잘했다'라면서요. (2021) #
그의 셀프 브랜딩 및 프로듀싱은 여러 애정깊은 팬들을 만들어내거나 대외적으로 상당히 외향적이고 유쾌하고 그러니까 힘들었던 것들을 말하는 것도 중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어떻게 그 이후 즐겁게 살았을까'라는 것.. 뭐랄까, '그런 부류의 사람도 있구나'라는 것이 제가 겪었던 것들과 비슷한 상황이 된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떠올랐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사람 재밌어보였지', '그러고보니 음악방송에서 해맑게 " 안녕하세요! 호시노 겐 입니다~!"라고 말했었지' 처럼요.
저는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음악을 만드는 것에 즐거움과 기쁨이 있어요.
연기를 할 때도 저의 에고가 사라져가는 쾌감이 엄청 있고,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제 무언가를 글과 말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워요.
제가 일들을 하는 의미라는 건 어쩌면 없을지 모르지만, 지금 즐겁거나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계속하고 싶어요. 즐거움을 갱신하는 것이, 100% 괴롭고 절망적이었던 그날들의 제게 할 수 있는 격려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포기하지 않길 잘했다'라면서요. (2021) #
그렇지만 호시노 겐이 가장 최우선 목표로 두고 있는 건 엔터테이너로서, 또는 '호시노 겐'이라는 이름으로서의 그저 단순한 명성이나 돈이나 권력이나 인기가 아니고, 그것들은 그에게 있어 ' 자신의 목표와 소망'을 달성하도록 바탕이 되어주는 도구임을 그는 꾸준히 그의 행동과 음악과 콘서트와 말과 글로서 간접적으로 계속 이야기해왔다.
7.4. 관련 일화
이사를 하기로 했다.
이제 세탁실이 따로 있는 이 집과는 안녕이다. (중략) 창가에 대량의 벌레들의 사체가 떨어져 있는 이 집과 이제는 완전 바이바이다. (중략) 또, 점점 나무 바닥이 벗겨져서 플로링이 아닌 거의 합판 수준이 되어 버린 이 바닥과도 헤어진다. (중략)
그날 나는 대충 들어갔던 부동산에서 상당히 좋은 집을 발견했다. (중략) 계약을 하기로 하고 부동산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밝은 갈색 머리의 젊은 남자가 질문을 했다.
“죄송합니다. 전혀 관계없는 일을 좀 여쭙겠습니다만, 직업은요?”
직업?
“아, 네, 자격 심사를 해야 해서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다. 계약할 때 방을 빌리려면 심사가 있고 빌리는 사람이 집세를 잘 낼 수 있는 급여를 받고 있는지, 제대로 된 직업이 있는지를 묻고 그 집에 적합한지 여부를 판단한다. 어쩌지.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서 마음이 조급했다. 나는 직업이 몇 개 있다.
배우.
음악가.
문필가.
촬영 감독.
전부 수입이 고정적이지 못하다. 이 직업들을 동시에 진행시켜 바쁘게 일을 하고 있어서 일단 수입은 안정되어 있지만 이런 엔터테이너의 일이란 언뜻 겉만 번지르르한 꿈을 좇는 직업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이 직업들을 지금 이 상황에서 이야기해도 설득력이 결여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중간한 일이 아니며 배우라는 직업 하나만 보더라도 주어진 일을 정확히 해내야 하며 때로는 기다리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을 찾아야 할 때도 있고 자신의 작은 실수가 소속사에 지대한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아주 막중한 책임이 있는, 즉 회사원과 다를 바가 없는 직업인 셈이다. 덧붙이자면 우리 극단은 굉장히 엄격해서, 지각을 하거나 하면 무서운 후폭풍이 몰아친다.
음악도 그렇다, 우리 밴드는 내가 중심이어서 밴드의 책임=나의 책임이기 때문에 그 압박감도 생각보다는 크고, 소속된 소속사 겸 레이블도 큰 회사가 아닌 작은 인디 회사여서 권리관계 같은 것도 공부해 둬야 하고 음악 업계에는 나쁜 사람들이 지이~인짜 산더미만큼 있으므로 이 또한 항상 사기를 당하지 않도록 태세를 갖추고 경계해야 한다. 정말 NO MUSIC NO LIFE 혹은 음악만 있으면 된다! 같은 멋진 기분이 되기는 좀처럼 힘든, 내 머릿속은 NO WORK NO MONEY라는 생각으로 가득찼다.
하지만 내 나이 정도쯤의 사람들 중에 이런 직업을 가지려 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더 많다.
이렇게 고민을 하는 사이에도 그의 얼굴 표정은 굳어져만 갈 뿐이었다. 여기서 입을 다물고 있으면 자연스레 ‘무직’으로 흘러가버릴 수 있으므로 일단 대답을 해보기로 했다.
“음, 그러니까……여러 가지 있는데요. (중략) 저는 배우와 밴드를 동시에 하고 있고 가끔 글도 쓰고 뮤직비디오 촬영도 합니다.” (중략)
옛날부터 딱 한 가지만을 추려내는 것이 서투른 아이였다. 옛날 동화를 읽을 때도 왜 작은 상자하고 큰 상자 중에서 하나밖에 고르면 안 되는 걸까 생각했었고 (중략) 그 버릇은 어른이 되어서도 바뀌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은 다 하고 싶고, 가지고 싶은 것은 전부 가지고 싶다. 그래서 음악과 연극을 시작했을 때도 동시에 이 두 가지를 하는 건 좋지 않다고 주변 사람들이 말려서 깜짝 놀랐다.
“하나만 해. 이 세계에서 양쪽을 다하는 건 안 좋아.”
엄마도 말했다. “너 제대로 잘 못하잖니, 항상 부업이 되잖아.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한 마리도 못 잡는 법이야.”
사실 그렇긴 하다.
하지만 늘 ‘짚신을 두 개씩 신으면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현실적으로 짚신 위에 짚신을 하나 더 신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니 그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 보고 싶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엄청 빠르게 도망치는 두 마리의 토끼를 한 사람이 잡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현실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절대 무리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두 마리를 다 잡아 버린다면 멋지지 않은가.
둘 다 실현하기 힘든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모두가 절대로 안 될 거라고 말하는 일들을 최대한 노력해서 해보려 하고, 만약 가능해진다면 훨씬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왜 다들 그렇게 안 하는 것일까. 언제나 생각하는 소박한 의문점이다.
또, 예전에는 '겐은 연기보다는 음악에 더 소질이 있는 것 같으니 배우보다 음악에 전념하는 편이 좋겠다'고 자주 들었고 글 쓰는 재능도 그다지 없으니까 이제 그만두라는 말도 자주 들었다.
이 또한 맞는 말이다.
연기를 하는 재능도 글을 쓰는 재능도 딱히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알고 있으니까 잘 할 수 있게 되고 싶은 거였고 잘 못하기 때문에 동경했다. 처음부터 잘하면 그야 그 나름대로 좋겠지만 잘 못했던 일들을 잘 하게 될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한 일이고 실제로 후자 쪽이 더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중략)
그 후 내가 하는 일들을 그에게 자세히 설명하면서 극단 사무소 선배 중에 쿠도 칸쿠로씨가 있다고 말하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점장이 슥 나와서 자기가 그분 드라마를 자주 본다며 유명한 분이 있는 사무소니까 괜찮지 않겠냐며 이야기를 거들어 주어 결과적으로 계약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쿠도 씨 덕분에 무사히 이사를 하게 된 것이다. 간접적으로 내 인생을 지탱해 주고 있는 쿠도 씨는 여러분들이 다 아시다시피 배우이자 밴드맨이자 각본가로, 이 모든 일들을 온전히 해내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댄 애크로이드 같은 사람이다, 라고 이 글을 쓰면서 지금 알았다.
"오~ 배우와 밴드를 하고 글을 쓰고 뮤직비디오도 찍나요?"
이 말을 아주 큰 소리로 들었을 때, 윽, 지조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여겨져, 내가 하는 일을 솔직히 말 한 것을 후회하는 와중에 그는 얼굴이 거무칙칙해지면서도 웃는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대단하신데요”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2009)
이제 세탁실이 따로 있는 이 집과는 안녕이다. (중략) 창가에 대량의 벌레들의 사체가 떨어져 있는 이 집과 이제는 완전 바이바이다. (중략) 또, 점점 나무 바닥이 벗겨져서 플로링이 아닌 거의 합판 수준이 되어 버린 이 바닥과도 헤어진다. (중략)
그날 나는 대충 들어갔던 부동산에서 상당히 좋은 집을 발견했다. (중략) 계약을 하기로 하고 부동산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밝은 갈색 머리의 젊은 남자가 질문을 했다.
“죄송합니다. 전혀 관계없는 일을 좀 여쭙겠습니다만, 직업은요?”
직업?
“아, 네, 자격 심사를 해야 해서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다. 계약할 때 방을 빌리려면 심사가 있고 빌리는 사람이 집세를 잘 낼 수 있는 급여를 받고 있는지, 제대로 된 직업이 있는지를 묻고 그 집에 적합한지 여부를 판단한다. 어쩌지.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서 마음이 조급했다. 나는 직업이 몇 개 있다.
배우.
음악가.
문필가.
촬영 감독.
전부 수입이 고정적이지 못하다. 이 직업들을 동시에 진행시켜 바쁘게 일을 하고 있어서 일단 수입은 안정되어 있지만 이런 엔터테이너의 일이란 언뜻 겉만 번지르르한 꿈을 좇는 직업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이 직업들을 지금 이 상황에서 이야기해도 설득력이 결여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중간한 일이 아니며 배우라는 직업 하나만 보더라도 주어진 일을 정확히 해내야 하며 때로는 기다리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을 찾아야 할 때도 있고 자신의 작은 실수가 소속사에 지대한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아주 막중한 책임이 있는, 즉 회사원과 다를 바가 없는 직업인 셈이다. 덧붙이자면 우리 극단은 굉장히 엄격해서, 지각을 하거나 하면 무서운 후폭풍이 몰아친다.
음악도 그렇다, 우리 밴드는 내가 중심이어서 밴드의 책임=나의 책임이기 때문에 그 압박감도 생각보다는 크고, 소속된 소속사 겸 레이블도 큰 회사가 아닌 작은 인디 회사여서 권리관계 같은 것도 공부해 둬야 하고 음악 업계에는 나쁜 사람들이 지이~인짜 산더미만큼 있으므로 이 또한 항상 사기를 당하지 않도록 태세를 갖추고 경계해야 한다. 정말 NO MUSIC NO LIFE 혹은 음악만 있으면 된다! 같은 멋진 기분이 되기는 좀처럼 힘든, 내 머릿속은 NO WORK NO MONEY라는 생각으로 가득찼다.
하지만 내 나이 정도쯤의 사람들 중에 이런 직업을 가지려 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더 많다.
이렇게 고민을 하는 사이에도 그의 얼굴 표정은 굳어져만 갈 뿐이었다. 여기서 입을 다물고 있으면 자연스레 ‘무직’으로 흘러가버릴 수 있으므로 일단 대답을 해보기로 했다.
“음, 그러니까……여러 가지 있는데요. (중략) 저는 배우와 밴드를 동시에 하고 있고 가끔 글도 쓰고 뮤직비디오 촬영도 합니다.” (중략)
옛날부터 딱 한 가지만을 추려내는 것이 서투른 아이였다. 옛날 동화를 읽을 때도 왜 작은 상자하고 큰 상자 중에서 하나밖에 고르면 안 되는 걸까 생각했었고 (중략) 그 버릇은 어른이 되어서도 바뀌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은 다 하고 싶고, 가지고 싶은 것은 전부 가지고 싶다. 그래서 음악과 연극을 시작했을 때도 동시에 이 두 가지를 하는 건 좋지 않다고 주변 사람들이 말려서 깜짝 놀랐다.
“하나만 해. 이 세계에서 양쪽을 다하는 건 안 좋아.”
엄마도 말했다. “너 제대로 잘 못하잖니, 항상 부업이 되잖아.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한 마리도 못 잡는 법이야.”
사실 그렇긴 하다.
하지만 늘 ‘짚신을 두 개씩 신으면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현실적으로 짚신 위에 짚신을 하나 더 신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니 그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 보고 싶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엄청 빠르게 도망치는 두 마리의 토끼를 한 사람이 잡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현실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절대 무리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두 마리를 다 잡아 버린다면 멋지지 않은가.
둘 다 실현하기 힘든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모두가 절대로 안 될 거라고 말하는 일들을 최대한 노력해서 해보려 하고, 만약 가능해진다면 훨씬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왜 다들 그렇게 안 하는 것일까. 언제나 생각하는 소박한 의문점이다.
또, 예전에는 '겐은 연기보다는 음악에 더 소질이 있는 것 같으니 배우보다 음악에 전념하는 편이 좋겠다'고 자주 들었고 글 쓰는 재능도 그다지 없으니까 이제 그만두라는 말도 자주 들었다.
이 또한 맞는 말이다.
연기를 하는 재능도 글을 쓰는 재능도 딱히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알고 있으니까 잘 할 수 있게 되고 싶은 거였고 잘 못하기 때문에 동경했다. 처음부터 잘하면 그야 그 나름대로 좋겠지만 잘 못했던 일들을 잘 하게 될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한 일이고 실제로 후자 쪽이 더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중략)
그 후 내가 하는 일들을 그에게 자세히 설명하면서 극단 사무소 선배 중에 쿠도 칸쿠로씨가 있다고 말하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점장이 슥 나와서 자기가 그분 드라마를 자주 본다며 유명한 분이 있는 사무소니까 괜찮지 않겠냐며 이야기를 거들어 주어 결과적으로 계약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쿠도 씨 덕분에 무사히 이사를 하게 된 것이다. 간접적으로 내 인생을 지탱해 주고 있는 쿠도 씨는 여러분들이 다 아시다시피 배우이자 밴드맨이자 각본가로, 이 모든 일들을 온전히 해내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댄 애크로이드 같은 사람이다, 라고 이 글을 쓰면서 지금 알았다.
"오~ 배우와 밴드를 하고 글을 쓰고 뮤직비디오도 찍나요?"
이 말을 아주 큰 소리로 들었을 때, 윽, 지조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여겨져, 내가 하는 일을 솔직히 말 한 것을 후회하는 와중에 그는 얼굴이 거무칙칙해지면서도 웃는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대단하신데요”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2009)
저는 중학교 1학년때부터 연극과 음악을 시작하고, 고3때부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에 각자 마음대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음악과 연기는 학교 안에서 처음으로 시작이 되어, 점점 일이 되었고, 그리고 글쓰기는 어른이 되고나서 점점 일이 됐어요.
그 와중에 연극 현장에 가면 "음악 업계 쪽 사람이지?"라는 말을 듣고, 그리고 음악 현장에 가면 "연극 쪽 사람이지?"라고 해서...
어느 현장에 가도 허탕을 치는 느낌이랄까, "내가 있을 곳이 없구나" 라는 식으로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요. 거기에 더해 글쓰기까지 시작했기 때문에, '하나로 좁히지 않아?'라든가, '뭐가 제일 하고 싶어?'라고 하셨죠.
어렸을 때 부터 그야말로 여러사람의 활동을 보고 있는 도중 든 생각이 있습니다. 제가 동경하는 사람들은 그렇게나 많은 것을 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다들 하나로 좁히는 게 낫다고 하는 걸까요?
물론 두 켤레의 짚신을 대충 하면 안 될 것 같아 '어느 일이든 정말로 좋아하고, 이제 이것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필사적으로 임하다가 점점 일이 되어갔다, 그런 감각이 있어서, 왠지 굉장히 쓸쓸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어떤 그룹에 속하는 것으로 동경하고는 있었지만, 대체로 항상 조금은 어긋나 있었습니다. (중략) 정말로 동경하는 듯한, 멀리에, 계속 등대처럼 이타미 씨가 불빛을 비춰주시는데 아무래도 거기에는 못 가게 되어 있고, 큰 바다가 저희 섬과 이타미 씨의 섬 사이로 흐르고 있었죠.
그것을 뒤쫓으려 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점점, 그게 아니라 자기 자리를 만들라고, 너는 너의 장소를 만들어라, 그런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0대 후반부터 어쨌든 좋아하는 것에 제 몫을 제대로 하고 싶은 그런 마음으로 어느 일이나 하다 보니 이런 멋진 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타미씨에게, "그것이 너의 장소야."라는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아서 되게 기뻤습니다. (중략)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정말로 추구하고, 따지고, 그것을 모두에게 소개하거나 실천함으로써 주변 사람들이 굉장히 즐거워하거나, 일본이라는 곳을 보는 사람들이 (일본을) 모두가 신나게 놀거나, 즐겁다고 생각하거나, 마음이 좀 바뀌기도 하는 것. 그거는 대단한 거라고 생각해요.
분노조차도 재미있는 것으로 바꾸고, 모두에게 보여주면서 다 기분 나쁠 수 있는 게 아니라 굉장히 재미있었다는 생각으로 극장을 나서게 만들거나, 텔레비전의 스위치를 끄기도 하는, 그런 표현을 하는 사람은, 너무 너무 멋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사람이 언젠가 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실은 굉장히 밝은 사람이 아니지만, 재미있는 것들을 전달해도 좋다고 생각이 들었다고 할까요.
그런 제가 받은 것이라고 하는 것은 무조건 어떤 형태로든 연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죽어도, 그것을 모두가 이야기하거나, 이어나가거나, 자신의 필터를 통해 뭔가 이야기를 하거나 표현함으로써, 유전자는 연결되어 갑니다. 그런 유전자를 저도 받고 있기 때문에, 뭔가 저의 표현이라는 형태로, 제대로 저의 필터를 통한 형태로, 그 유전자를 연결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후략)
이타미 주조상 수상 연설 일부 #
그 와중에 연극 현장에 가면 "음악 업계 쪽 사람이지?"라는 말을 듣고, 그리고 음악 현장에 가면 "연극 쪽 사람이지?"라고 해서...
어느 현장에 가도 허탕을 치는 느낌이랄까, "내가 있을 곳이 없구나" 라는 식으로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요. 거기에 더해 글쓰기까지 시작했기 때문에, '하나로 좁히지 않아?'라든가, '뭐가 제일 하고 싶어?'라고 하셨죠.
어렸을 때 부터 그야말로 여러사람의 활동을 보고 있는 도중 든 생각이 있습니다. 제가 동경하는 사람들은 그렇게나 많은 것을 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다들 하나로 좁히는 게 낫다고 하는 걸까요?
물론 두 켤레의 짚신을 대충 하면 안 될 것 같아 '어느 일이든 정말로 좋아하고, 이제 이것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필사적으로 임하다가 점점 일이 되어갔다, 그런 감각이 있어서, 왠지 굉장히 쓸쓸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어떤 그룹에 속하는 것으로 동경하고는 있었지만, 대체로 항상 조금은 어긋나 있었습니다. (중략) 정말로 동경하는 듯한, 멀리에, 계속 등대처럼 이타미 씨가 불빛을 비춰주시는데 아무래도 거기에는 못 가게 되어 있고, 큰 바다가 저희 섬과 이타미 씨의 섬 사이로 흐르고 있었죠.
그것을 뒤쫓으려 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점점, 그게 아니라 자기 자리를 만들라고, 너는 너의 장소를 만들어라, 그런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0대 후반부터 어쨌든 좋아하는 것에 제 몫을 제대로 하고 싶은 그런 마음으로 어느 일이나 하다 보니 이런 멋진 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타미씨에게, "그것이 너의 장소야."라는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아서 되게 기뻤습니다. (중략)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정말로 추구하고, 따지고, 그것을 모두에게 소개하거나 실천함으로써 주변 사람들이 굉장히 즐거워하거나, 일본이라는 곳을 보는 사람들이 (일본을) 모두가 신나게 놀거나, 즐겁다고 생각하거나, 마음이 좀 바뀌기도 하는 것. 그거는 대단한 거라고 생각해요.
분노조차도 재미있는 것으로 바꾸고, 모두에게 보여주면서 다 기분 나쁠 수 있는 게 아니라 굉장히 재미있었다는 생각으로 극장을 나서게 만들거나, 텔레비전의 스위치를 끄기도 하는, 그런 표현을 하는 사람은, 너무 너무 멋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사람이 언젠가 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실은 굉장히 밝은 사람이 아니지만, 재미있는 것들을 전달해도 좋다고 생각이 들었다고 할까요.
그런 제가 받은 것이라고 하는 것은 무조건 어떤 형태로든 연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죽어도, 그것을 모두가 이야기하거나, 이어나가거나, 자신의 필터를 통해 뭔가 이야기를 하거나 표현함으로써, 유전자는 연결되어 갑니다. 그런 유전자를 저도 받고 있기 때문에, 뭔가 저의 표현이라는 형태로, 제대로 저의 필터를 통한 형태로, 그 유전자를 연결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후략)
이타미 주조상 수상 연설 일부 #
8. 수상 경력 및 음반 주요 기록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수상 경력 및 기록 문서 참고하십시오.9. 사건 사고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사건 사고 문서 참고하십시오.10. 여담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여담 문서 참고하십시오.
[1]
와라비시에서는 태어나기만 하고 성인이 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카와구치시에서 보냈다.
[2]
외동아들이다. 본인 외에 태어났을 예정이던 여동생이 있었으나 유산이나 사산으로 추정되는 이유로 결국 태어나지 못했다. 그 여동생을 생각해서 호시노 겐이 만든 곡이 있는데, 곡 소개에 '그 아이의 몫까지 2인분의 몫으로 살아있다고 생각하면,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적혀있기도 하다.
[3]
아라가키 유이는 결혼 전부터 '코코'라는
닥스훈트를 기르고 있었고, 애견인으로도 유명하다. 결혼 후에 서로 같이 기르는 강아지가 존재한다는 것은 아라가키 유이의 인터뷰나 호시노 겐의 에세이에서 알 수 있지만, 이름이 나오지 않아 여전히 코코인지는 정확히 단정지을 수 없다.
[4]
사이타마현에 위치한, 점수로 학생을 평가하는 테스트나 성적표가 없는 사립 대안학교이다. 등교를 안해도 딱히 강제적인 체벌이 없으며, 여러가지 다양한 분야의 수업이나 동아리들도 많고, 급식이 맛있다고 한다.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거의 곧바로 밴드 활동으로 데뷔했고, 일반학교보다 더 자유로운 학교였기 때문에 기분은
초졸인 것 같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5]
cero,
키세루 등이 소속된 일본의 인디 레이블 겸 소속사. 이후 아뮤즈라는 큰 곳으로 소속사를 옮겼어도 여기에서 만난 일부 뮤지션들과의 인연들은 현재(2024년)까지도 여전히 이어나가고 있으며, 사장님하고도 여전히 친하다. 라디오에 게스트로 꽤 나왔을 정도.
사진
[6]
JVC 켄우드 빅터 엔터테인먼트 산하. 솔로에서의 활동에 한정된 레이블이다.
[7]
스포티파이 플레이리스트 참고.
[8]
마림바,
비브라폰,
글로켄슈필,
토이 피아노,
탐탐, 탬버린 등 (
스포티파이 재생목록 참고)
[9]
만돌린이 현대적으로 개량되어 사용되고 있는 악기이다. 밴드 시절 '일본풍 느낌'을 유사하게 내기 위해 자주 쓴 악기로, 호시노 겐이 가장 좋아하는 악기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 싼 값에 샀던 플랫 만돌린은 지금(2023년)까지도 집에 고이 놔두고 있다고 한다. (사용 예시는
스포티파이 재생목록 참고)
[10]
SAKEROCK으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이어가게 된 음반은
2003년 3월 10일에 발매한 '
YUTA'라는 앨범이다.
[11]
유일하게 본인이 직접 운영한다. 다만 일 관련 게시글이 대부분이고 사생활이나 일상 사진은 거의 없는 편이다.
[12]
어쿠스틱 기타, 일렉트릭 기타, 랩 스틸 기타(
하와이안 기타),
클래식 기타
[13]
인디 밴드(
SAKEROCK) 시절 자주 사용한 악기이자 2020년
DAW 제작을 시작하기 이전까지
[14]
컨트리 장르 등지에서 자주 사용되는 악기이다.
灰空(잿빛 하늘),
七拍酒(칠박주) 등의 악곡에서 볼 수 있다.
[15]
19세 때부터 4년 정도, 삼선의 명수로 알려진 주인장 선술집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한 그는 매일 오키나와 민요를 듣고 류큐 무용을 배웠다. 밴드 시절에도 이 악기를 종종 사용했으며, 그의 솔로 곡에서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YELLOW DANCER」에 수록된 인스트루멘탈 곡인
Nerd Strut에서 이 악기를 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
[16]
호시노 겐이 가장 먼저 시작한 악기가 드럼이다.
[17]
호시노 겐이 20살 무렵, SAKEROCK와는 다른 레게 밴드의 여성 보컬에게 불려 그 밴드의 베이스 담당이 될 것 같았지만, 그 밴드가 자연 소멸해 실현되지 않았다.
[18]
TR-08은
TR-808을 현대적으로 복각한 머신인데,
호시노 겐의 음악 공론에서는
TR-808 머신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호시노 겐 본인이 엄청 좋아하고 귀엽다고 느끼는 머신이라고 한다. 호시노 겐의 다른 여러 곡들 외에도 집에서 하루 안에 혼자 곡을 만들어본다는 호시노 겐의 시리즈인 'House ver. 시리즈'에서
어쿠스틱 기타와 함께 아주 자주 쓰이는 머신이기도 하다.
[19]
기본 피아노나 아날로그
신디사이저,
오르간 외에도
월리처 일렉트릭 피아노 등을 종종 쓴다. 그 악기가 사용된 대표적인 예시가
Sapiens. 또한, 2020년부터
DAW 곡 제작을 시작하고, 2021년 '
不思議(불가사의)' 이후 작품을 거듭할수록 (마림바랑 만돌린이랑 밴조는 거의 없어졌고) 키보드의 존재가 커지고 있다. 이는 호시노 겐의 가장 큰 음악적 변화 중 하나.
[20]
자신이 모르는 특정 부분을 점점 배우고 익혀가겠다는 의미도 있고, 사람들의 마음 속이나 여러 현상 속에 담겨져 있는, 말로서 표현 불가능한 그 '모르는 것들(알 수 없는 것들)'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소중히 한다는 뜻을 더 크게 담고 있다. "사회와 타인의 기준에 맞춘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속에 있는 '알 수 없는 것'을 소중히 하는 것이
아트다."라는 말도 비슷한 맥락인데, 호시노 겐의 곡과 에세이와 콘서트에 꽤 자주 등장하는
실존주의적 사상이 여기서도 유사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21]
여러 악기가 가능하지만 연주자로서는
기타리스트와
퍼커셔니스트로서 활동을 많이 했었으며, 퍼커션에서는 대체적으로
마림바,
비브라폰,
글로켄슈필,
토이 피아노, 탬버린 등을 담당했다. 솔로 활동 시작 이후에도
히키가타리 및 레코딩은 물론이고 라이브에서
기타와, '드럼을 제외한
퍼커션' 연주자로도 자주 참여한다.
[22]
2020년대는
쟈니스 사무소의 몰락과 세계화 및 여러 소셜미디어 등의 발달로 완전히 뒤바뀌었지만, 호시노 겐이 한창 활동할 때 및 그의 최전성기때는 솔로 싱어송라이터 시장의 암흑기였다. 그에게 솔로 데뷔를 권유한
호소노 하루오미도 호시노 겐의 지금(2017년)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었다고 한다.
#
[23]
2023년 기준 일본 남자 연예인 연간 CF 출연료 목록에서 상당히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24]
여담이지만, 이름을 일본어 훈독으로 읽으면 '
별의
근원'이 된다. 이름이 예뻐서 일본에서도 가끔 별의 근원이라는 그의 이름이 회자되기도 한다. 배우
오구리 슌은 처음에 호시노 겐의 이름을 보고
별의 커비를 떠올렸다고 하며, 오조네 마코토는 2020년경에 호시노 겐에게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
Origin of The Stars(별의 근원)' 이라는 곡을 만들기도 했다.
[25]
그렇다보니 돈이 거의 없을 시절인
SAKEROCK 극초기 작업물의
믹싱은 아버지의 스피커를 이용하여 호시노 겐이 직접 기계를 조작하며 하고 나머지 멤버들과 의논하는 방식이었다.
[26]
상당히 중요한 부분인 것이, 그의 음악에는
재즈요소와
소울 음악&
가스펠적 요소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재즈 및 소울 자체가 여러 대중음악에 큰 영향을 준 부분도 있다.
[27]
더 자세한 그의 인생에서의 여러 음악 감상 관련은
호시노 겐/여담 문서의
감상 관련 문단을 참고.
[28]
그렇다보니 그의 곡들과 에세이에는
집단과 고독(소외)이라는 키워드가 종종 꽤 나온다.
[29]
시험 및 성적표가 없을 뿐더러, 등교를 안해도 딱히 체벌이 없다고 한다. 기존 수업들에서 벗어난 여러가지 다양한 수업들이나 동아리도 많았다.
[30]
사실상 20~30대 시절 호시노 겐의 음악적 스승이라고 할 정도로 그의 영향이 크다. 호소노 하루오미와는 대담으로 여러 번 만나서 친구이자 사제지간으로 이어져 오기도 했다.
[31]
호시노 겐/여담 문서에도 나오지만 본인의 라디오에서 '이 사람들을 모르면 꼭 한 번은 찾아보라'고 이야기했을 정도로 넘버 걸의 엄청난 팬이기도 하다. 넘버 걸의 보컬인 무카이 슈토쿠와 같이 라이브 이벤트를 하기도 했었다. 넘버 걸에 대해 '이후 흉내를 내거나 겉모습만 따라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절대로 그것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버린 대단한 밴드'라고 평하고 있다.
[32]
본인의 라이브에서
넘버 걸의
透明少女(투명소녀)를 커버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
2012년 라이브) 이 사례로 그가 왜 좌절했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원곡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33]
Pop Virus,
地獄でなぜ悪い(지옥이 뭐가 나빠),
Pair Dancer,
くせのうた,
SUN,
Week End,
Hello Song
[34]
피쉬만즈 트리뷰트 앨범 「Sweet Dreams for Fishmans」에 수록되었다.
[35]
타카다 렌의 앨범 12 Notes에 수록되었다.
[36]
비틀즈가 남긴 주옥의 명곡을
자장가 편곡으로 수록하는 "사과의 자장가" 앨범 시리즈 (りんごの子守唄 Apple of the best eye) 백판의 수록곡.
[37]
호소노 하루오미, 이마와로 키요시노,
사카모토 후유미
[38]
호소노 하루오미 트리뷰트 앨범에 수록되었다.
[39]
두 곡의 멜로디 코드를 합쳐서 재편곡 하였다. 어떻게 본다면 밴드 형식으로
매쉬업 및 어레인지를 한 곡. 작곡가 크레딧에는 (당연하게도) 원곡자들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40]
스퀘어 에닉스의 게임 BGM들을 커버&리믹스한 트리뷰트 앨범인
More SQ에 수록되었다.
[41]
두아 리파의 리믹스 앨범인 CLUB FUTURE NOSTALGIA 수록곡.
[42]
시미즈 미치코랑 듀엣
[43]
호시노 겐의 SHIWASU (
시부야 공회당)
[44]
오쿠다 타미오와 듀엣
[45]
호시노 겐은 싱글 3집 '
꿈 밖으로'로 처음으로
음악 방송에 나가게 되었는데, 신인들에게 할당되는 시간이 적었기 때문에 기존의 곡을 짤라서 부를 수 밖에 없었다. 그 과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곡을 짜르지 않아도 되도록 짧게 만들었다고 한다.
[46]
넘버 걸의 투명소녀 (透明少女) 라이브 중에 보컬인 '무카이 슈토쿠'가 멘트를 하고 노래가 시작되는데, 그것과 비슷하게 호시노 겐도 멘트를 하며 노래를 시작한다. 다만 기타를 치며 3분동안 이야기를 풀어놓는 멘트를 한다
[47]
히키가타리 버전.
地獄でなぜ悪い(지옥이 뭐가 나빠)를 부를 예정이었으나 변경되었다.
[48]
A: 에, 호시노 겐 아직 8살이야? B: 8살이 아니라 8번째
[49]
솔로 데뷔 앨범인 정규 1집의 13번 트랙인
ただいま 같은 경우에는 일본의 유명한 뮤지션인
호소노 하루오미가 작곡했다. 개그(
ギャグ)라는 세인트 영맨 애니메이션 노래는 호시노 겐이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져
카메다 세이지에게 편곡을 맡겼다.
[50]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유기적이거나 섞인 듯한 가사 및 뮤직비디오가 많으며(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바케모노(2013),
아이디어(2018)), 호시노 겐의 뮤직비디오 중 꽤나 많이 어둡게 보이는
일상(2011),
Crazy Crazy(2014),
CUBE(2021) 등 또한 예외가 아니고, 상당히 밝음 그 자체로 보이는
SUN(2015),
희극(2022) 또한 예외가 아니다.
[51]
'사랑으로 바꾸는 것', '사랑과 바꾸는 것', 이렇게 두 가지로 해석 가능하다.
[52]
[53]
2024년 11월 23일
YELLOW MAGAZINE+ 토크 생방송에서
메타몽과
마자용
# 흉내를 냈다(!)
[54]
이때 같이 받은 배우들은
아야노 고,
스다 마사키,
쿠로키 하루 등이다.
[55]
엘란도르상은 해에 6명을 선발하는데, 이때 뽑힌 다른 인물들은
사카구치 켄타로,
타카하타 미츠키,
딘 후지오카,
하루,
히로세 스즈이다.
[56]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MIU404,
코우노도리는 여러
OTT에서 볼 수 있어 접근성이 엄청나게 높지만, 호시노 겐에게 있어서 다른 대표작들이나 주연 참여작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다른 필모그래피는 거의 전무하다시피하다. 그나마 그의 필모그래피가 가장 많은 한국 OTT조차도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MIU404,
코우노도리,
묻지마 사랑,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치에리와 체리,
미래의 미라이밖에 없다. 예시로 나열한 것 중 3개는 애니메이션이다.
[57]
인생을 테마로 한 여러 코미디 콩트를 고정 출연진들과 게스트들이 선보이는 NHK의 프로그램이다. 아주 간결하고 쉽게 비유하자면 ‘인생을 주제로 한
SNL 코리아’랑 얼추 비슷하다.
[58]
일반적으로
화상을 유발하는 온도보다는 낮은 40도 이상의 온도에 비교적 장시간 노출되면서 발생하는 화상을 일컫는 용어이다. 사람이 아주 뜨겁다고 느끼는 온도에 미치지 않기 때문에 회피 반응이 없어 장시간 노출됨에 따라 피부 조직에 열이 축적되어 피부 세포의 손상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
[59]
제4기동수사대 형사 버디물.
요네즈 켄시의
Kanden(감전)이 주제가로 사용된 드라마로도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호시노 겐의 필모그래피에서 접근성이 뛰어나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와 같이 입문 추천작으로 가끔씩 소개되어 지기도 한다.
[60]
그가 음악 관련 역할로 나온 건 데뷔 초기 비중이 거의 없는 단역이나 조연이 많았다. 이름이 알려지고 난 이후에는, 2022년 기준,
모태솔로 직장인,
의사,
도쿠가와 히데타다,
마약 초범,
형사, 양복점 가게 주인, 내각관방 부장관 등 음악과는 멀었다.
[61]
극심한 경기침체 때문에 '프로젝트 Utopi-AI'를 실행하고, 그 프로젝트의 핵심인 정치 AI, '솔론'이 직접 선별하여 뽑은 젊은 사람들이 쇠퇴해가는 지방 도시에 내각으로 구성되면서, 그 내각이 자신들의 도시를 미래 도시로 변모시키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그린 청춘 SF 정치드라마. 죄의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는 정식으로 볼 방법이 없다.
[62]
내각관방은 내각총리대신을 직접 보좌하는 곳으로, 한국으로 치자면 내각관방 부장관은 대통령비서실 차장이랑 비슷하다.
[63]
타이라 키요시는 정치인으로서 내각관방 부장관까지 오는 과정 때문에 부패하게 되며 처음에 가지고 있던 자신의 이상을 잃어버렸으나, 정치 부패(아버지의 사건)를 막고 싶다는 일말의 이상으로 'AI프로젝트'를 추진해오면서도 여전히 부패한 인물이다. 그렇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이상을 잃어버리고 정치(현실)에 찌들었다'는 것을 주인공의 존재로 인해 직접적으로 직시하게 되고,
이상을 말하는 주인공이 성장할 수 있게 도움이 되어준 인물인 동시에, 주인공에게 영향을 받아 초심을 되새기는 완성형 캐릭터. 진지하면서도 복잡하고 숨기는 게 많고 여러가지 생각을 담고 있으며, 특정 인물의 행보에 대해 남몰래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드라마는 그다지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64]
무대극 첫 주연작.
[65]
오토나케이카쿠와
극단☆신칸센이 서로 손을 잡고 합동으로 만든 공연이라는 걸 나타내는 이름
[66]
PFF에 출품된 독립영화
[67]
Generation Of Animation
[68]
방송 당시에는 NHK BS-hi였으나 현재는 BS2와 통합하여 BS 프리미엄이 되었다.
[69]
영화나 드라마 뿐만 아니라 무대 연극에서 90분동안
전라인 상태로 있었던 적도 있었다.
[70]
그러나 한국에 들어온 작품들은 비주류적인 감성이 아닌 역할, 그리고 수위가 낮은 역할들이 많아, 상당히 한정적이다. 당장 위에서 말한 예시를 거의 하나도 볼 수 없을 정도다. 한국에서 들어온 것 중에 그나마 제일 비주류적인 건
묻지마 사랑과,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71]
영웅의 그림자에 가려진 인물, 재능이 없는 인물, 성공하지 못한 인물, 모자라보이거나 미덥지 않은 인물.
[72]
제5회 북로그 에세이・논픽션 부문 대상, 한국어 번역판 존재
[73]
호시노겐의 롤모델이자 존경하는 뮤지션
호소노 하루오미와의 좌담집
[74]
AERA에 연재한
바나나맨,
이쿠타 토마,
딘 후지오카,
아리무라 카스미,
노기 아키코 등의 게스트와 호시노 겐의 인터뷰 모음집.
[75]
타워 레코드 주식회사가 발행하는 무료 월간 음악 정보지.
[76]
호소노 하루오미와의 대담 연재
[77]
영화 에세이
[78]
결혼 전까지
요시오카 리호와 함께 출연중이었다.
[79]
하마베 미나미와 초기부터 출연중이었으며, 최근에 웹무비로 만들어진 광고에서
하시모토 칸나도 함께 출연중이었다.
[80]
직접 기념 노래를 만들었다. 참고로, 2021년 2월 17일
닌텐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35주년 TV광고로 선공개되었던 노래인 EP
創造가 공개되었다.
M/V
[81]
요시오카 리호와 함께 출연중이다.
[82]
cero,
키세루 등이 소속된 일본의 인디 레이블 겸 소속사로, 2005년부터 2015년까지 호시노 겐은 음악가로서 이 소속사 소속 아티스트였다.
[83]
호시노 겐 본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완전히 다른 이름으로 지금까지 영상을 계속 올리고 있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고 본인이 언급했었다. 그 유튜브 채널은 음악 쪽은 아니라고 한다.
사운드클라우드에도 본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계정으로 곡을 만들어 가끔씩 올린다고 한다.
[84]
다만 2018년 12월에 낸 정규 5집 이후로 디지털 싱글이나, 디지털 EP, 싱글은 종종 냈으나, 새로운 정규 앨범이 나오고 있지 않고 있다.
[85]
실제로 그의 일부 발언들은 일본 SNS상에서 "연예인들의 사진 사용과 저작권 가능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라이브 콘서트를 즐기는 방법에 있어서의 '자유'란?" 등의 네티즌들의 여러 갑론을박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리고 안티도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