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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7 07:34:00

한중혼혈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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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혼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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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한중혼혈 연예인 하희라.[1]
1. 개요2. 대한민국의 인식3. 국적4. 중국인 또는 대만인과 결혼한 한국인5. 유명 인물
5.1. 한국인5.2. 중국인5.3. 대만인5.4. 제3국 국적자
6. 같이 보기

1. 개요

한중혼혈()이란 한국인 중국인( 한족) 또는 대만인 혼혈을 말하며 같은 한민족 한국인 조선족이 결혼한 경우는 포함하지 않는다.

이미 고조선 시대부터 인적인 교류가 잦았고 중국이 혼란기에 빠질 때마다 대륙으로부터 이민 유입이 이루어진 관계로 조상 DNA 테스트 시에는 혈통상 반반 한중혼혈로 나오지 않지만 일반적으로는 단순히 부모 중 한 명은 한국인이고 한 명은 중국인이라는 정보를 알리기 위해 한중혼혈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만주족, 북방계 한족을 제외하면 외양적으로 한민족과 차이가 있고 50여 개가 넘는 소수민족이나 대만 원주민 등은 확연히 차이가 나기 때문에 중국 국적자와의 혼혈은 외양적으로 일반적인 한민족과 편차가 클 수도 작을 수도 적을 수도 있다.

역사적 유례를 따지자면 춘추전국시대 초한쟁패기 고조선으로 들어온 중국계 유이민들이 시초라고 할 수 있겠으며 후기 고조선( 위만조선)의 한 구성원이 되기도 한 데다 이후에도 한사군 시기와 삼국시대에 걸쳐 중국계 이주민이 꾸준히 들어오기도 했고 고려 시대에도 소수이지만 한족들이 들어오면서 정착하기도 했으며 명나라가 멸망하면서 명나라 유민들이 조선으로 들어오는 일도 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한민족에 흡수되었기 때문에 귀화 성씨로 그 존재가 남아 있다.

화교들이 이주해 오면서 한중혼혈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부계주의 국적법에 따라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화교 여성 자녀는 한국인이 되었고 화교 남성과 한국인 여성 사이의 자녀는 중국인이 되었다. 중국이 아니더라도 혼혈들은 아버지 쪽 국적을 부여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중국 국적을 가진 화교 한중혼혈 여성들 가운데는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경우가 많은데 하희라 주현미 등이 있다.

북한이탈주민 여성 가운데 중국에서 중국인과의 결혼으로 태어난 한중혼혈 아이도 있다.[2] 대부분 호구를 등록받지 못하고 무국적자로 살고 있다. 혼혈이어도 일부는 다행히 중국 국적을 가진 아이들도 있다. 한국 정부 헌법상 이들을 외국인이 아닌 자국민으로 보고 있지만 중국에 호구를 등록한 순간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한 것으로 간주한다. 왜냐하면 중국이 법적으로 복수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태생이고 중국 호구를 정식으로 등록한 아동이라고 할지라도 부모 중 한 명이 북한이탈주민이라는 것만 확인된다면 아동이 한국으로 입국한 후 보호자가 원할 경우 아무 문제 없이 국적회복 제도를 통한 대한민국 국적 부여를 허용하고 있다.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화교와 한국인 간의 한중혼혈, 대만의 중화민국인이나 홍콩인과 한국인 간에 연애결혼이나 중매에 의한 한중혼혈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한중 수교 이후에는 중국 본토인과 한국인과의 한중혼혈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미국에서는 한국계 미국인 중국계 미국인이나 대만계 미국인과 결혼하기도 한다. 러시아에서도 고려인이나 사할린 한인 중국계 러시아인과 결혼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2. 대한민국의 인식

한일혼혈과 비슷하게 겉모습으로는 티가 크게 나지는 않기 때문에 적어도 외모로 차별당하는 경우는 적다.

하지만 2020년대를 기점으로 중국 정부의 패권주의 중화사상이 심해지고 이러한 중국 정부의 행태에 동조하는 중국인(한족, 조선족, 화교)들의 행태로 인한 반중 혐중 정서가 최고조를 찍으면서 본인이 한중혼혈임을 밝히거나 중국공산당에 우호적인 발언을 한다면 차별을 당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으며 한국어가 어눌한 경우에도 차별을 당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3. 국적

과거 한국에서는 부계주의 국적법 때문에 1998년 6월 13일 이전 출생자까지는 아버지 한국 국적인 경우에만 한국 국적을 받을 수 있었으므로 아버지가 대만 국적의 화교면 자신 스스로 화교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거의 전부였다. 왜냐하면 이런 경우 자녀는 오직 아버지 대만 국적만을 가질 수 있었으므로 어머니가 한국인이고 한국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외국인으로서 법적인 차별을 겪었기 때문이다.

1998년 6월 14일 출생자부터는 부모 양계주의 국적법을 적용하여서 아버지가 외국인이고 어머니만 한국인이어도 한국 국적을 부여하도록 개정되었다.[3] 따라서 한국 화교와 한국인이 결혼하면서 1998년 6월 14일 이후 출생한 자녀는 모두 중화민국(대만)과 대한민국 복수국적을 가지게 되었다. 2010년 5월부터 선천적인 복수국적자는 남녀 모두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을 하고 남자는 군복무를 하는 조건 하에 복수국적을 허용하도록 대한민국 국적법이 개정되었다. 대만도 출생 시부터 대만 국적을 가진 자에 한하여 복수국적을 허용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은 미성년자에게도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출생 이후 한국인 부 또는 모의 호적에 등록된 한 곳의 국적만 부여받는다. 부모가 어디에 출생신고를 하냐에 따라 한국 or 중국 국적만을 부여받는다.[4]

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의 자녀는 1978년 6월 14일부터 1998년 6월 13일 사이 출생자에 한하여 2001년 11월 ~ 2004년 12월 31일까지 신고하면 한국 국적을 부여받고 미성년자는 국적선택기한 이전까지 이중국적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기도 했다.

4. 중국인 또는 대만인과 결혼한 한국인

5. 유명 인물

나무위키에 등재될 정도의 저명성 있는 인물만 기록 가능합니다.

5.1. 한국인

한국 국적을 포함한 복수국적자의 경우에는 한국인 항목에 포함하고, 복수국적임을 표시합니다.

5.2. 중국인

5.3. 대만인

5.4. 제3국 국적자

6. 같이 보기


[1] 아버지가 중국인( 대만 국적의 한국 화교), 어머니가 한국인이다. 최수종 결혼하면서 대한민국으로 귀화하였다. [2] 당사자 간의 합의로 이루어진 결혼보다는 납치혼, 매매혼이 압도적으로 많다. 중국의 극단적인 남녀 성비 차이와 여성들의 이촌향도 현상 등으로 결혼 상대자를 찾지 못한 중국 시골 지역 노총각들이 탈북한 여성들을 강제로 아내로 삼기 때문이다. [3] 과거 한국은 부계주의 국적법을 택해서 아버지 한국 국적인 경우에만 한국 국적을 부여했는데 이는 성차별이며 UN 국제협약에서 벗어난다는 지적이 있어 왔고 무엇보다 미혼모 밑에서 태어난 자식들이 아버지의 호적에 등록되지 못하여서 무국적자가 되는 등 사회 문제가 다수 발생하였다. 그래서 1998년 6월 14일 이후 출생부터는 아버지가 외국인이고 어머니만 한국인이거나 미혼모의 자녀도 한국 국적을 부여하도록 바뀌었다. [4] 그런데도 몰래 불법으로 이중국적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5] 재한 화교가 아니다. [6] 중국 본토 출신이지만 배우 활동을 위해 홍콩 시민권을 취득했다. [7] 남편이 한국으로 건너와 동포를 위한 제약 사업을 할 때 본인은 의사로서 남편의 나라에 인술을 베풀었다. 생전에 부부 사이가 각별해서 유 회장이 유언장에서 장녀 재라에게 엄마를 잘 모셔달라고 당부했을 정도였다. 결혼한 계기부터 시작해서 결혼 생활 중에도 같은 이민자 출신으로서 미국에서 알게 모르게 고생하며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많이 느낀 모양이다. [8] 결혼 당시에는 대만 국적이었으며 이후 한국으로 귀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