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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경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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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32130><colcolor=#fff> 여경래
呂敬來| Lu Ching Lai
파일:여경래 셰프 사진.jpg
출생 1960년 7월 4일 ([age(1960-07-04)]세)
경기도 수원시
국적
[[대만|]][[틀:국기|]][[틀:국기|]][1]
가족 배우자 이수화(1965년생)
장남 여민(1990년생)
차남 여융(1991년생)
남동생 여경옥
소속 홍보각 (총괄오너셰프)
경기대학교 평생교육원 (주임교수)
세계중국요리협회 (비상근 부회장)
이금기유한공사 (요리고문)
SNS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여가네[2]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중식 요리사, 교수.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대만 국적 한중혼혈 화교이며, 세계 중국요리협회 부회장 겸 한국 중식연맹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 하이엔드 중식의 틀을 사실상 완성시켰다는 평가를 받으며, 경력만 50년에 달하는, 한국 중식계에서는 그야말로 전설적인 인물이다. 한국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존경받는 세계적인 중식 대가 중 한 명이다.

2. 활동

지난 100년간 중화 요리 화교가 주도해서 발전시켰습니다. 앞으로 100년은 우리 한국인들이 주도하여 중화 요리를 발전시켜야 합니다.
중국 산동성 출신인 대만 국적의 재한 화교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김영례 사이에서 태어났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쭉 자란 대만 국적의 화교 2.5세이다.[3]

아버지는 6살에 당시 눈 앞에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으며,[4] 16살 때 홀로 상경해 스승님인 왕서방을 따라 중식당에 취직해 일을 시작하면서 중식의 길을 걸었다. 당시 받은 돈을 모두 집안에 가져다줬기 때문에, 식당 안에서 숙식을 하면서 일했는데, 요리에 대한 배움의 열망이 강해서, 직접 노트에 손으로 일일이 음식의 모양을 그리고[5] 새벽 세네시가 넘도록 레시피를 적으면서 공부했다고한다.[6] 상경 후 3년의 시간이 지나 19살이 되자, 마찬가지로 3살 차이인 동생 여경옥도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더 이상 진학이 어려워지자, 여경래가 직접 자신이 일하던 중식당에 동생을 소개해 데려왔고, 그렇게 형제는 함께 중식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여경래 자신은 대만을 배경으로 한 요리대결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에는 정작 대만은 10번 내외로만 가 봐서 자주 가는 중국 본토에 비해 잘 모른다고 한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대한민국에 뿌리 내린 대만 국적 화교의 대다수는 공산화 이전 중국 대륙에서 건너와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강제로 대만 국적이 되어버린 케이스이다.[7] 여경래 셰프의 아버지도 대다수의 국내 화교 1세대의 출신지인 산둥성 출신이다.

학창시절에 화교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중국어가 유창하고 화교로서의 자부심이 강하다. 수요미식회에서 중국을 “ 우리” 또는 “ 우리나라”라고 여러 번 호칭했으며[8] 영문 이름도 Lu Chinglai(뤼징라이)로 표기한다. 다만 세계테마기행에서 중국 여행을 할 때는 반대로 한국 우리나라라고 호칭하기도 했다.[9]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08112715260130003800-001.jpg

1970년대엔 중식 레스토랑 홍보석[10] 왕춘량, 허인[11], 팔래스 호텔 중식 레스토랑 서궁의 조창인 등 당대 최정상 중식 요리사에게 요리를 배웠다.

하지만 왕춘량 셰프가 한국 방문했을 때 같이 촬영한 유튜브에서, 정작 본인은 홍보석에서 일을 안 해봤으며 홍보석 출신의 셰프들과 일을 해서 홍보석파가 된 것이라고 설명하는 부분이 나온다. (5분 53초 부분 참고)



하지만, 같은 유튜브에서 왕춘량 셰프도 여경래 셰프를 칼판 4~5번째로 기억하는 것으로 봐서, 일을 안 해봤다는 것은 홍보석에서 제대로 된 요리를 배워서 한 게 아니라 말단이라서 그렇게 표현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12]

칼의 기술이 최소 100개는 넘는다고 알려져 있는데, 칼판장 출신이어서 그렇다. 대다수 중화요리 장인처럼 커리어를 철가방에서 시작해 칼판 막단에서 실력으로 칼판장까지 올랐으며, 이후 주방장까지 자수성가했다. 다만 칼판장 출신이라 그런지 면을 삶을 때 냄비 주변에 기름을 바르면 넘치지 않은다는 팁을 보고 "이게 가능하면 성을 간다"고 했다가 실제로 가능하자 당황해하면서 박은영 제자에게 박씨로 바꿔야 하냐면서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중식도 측면으로 마늘 다지기나 탕탕 소리를 내는 끊어치는 썰기도 잘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측면 마늘다지기는 튀는게 너무많고 탕탕소리를 오래들으면 시끄러워서 마늘은 그냥 편으로 썰고 일반 식재료도 밀어 썰기로 조용하게 한다고 한다.

서울 그랜드앰버서더 호텔에서 중식당 홍보각을 오픈하면서 총괄셰프를 맡기도 했다. 또한 동생 여경옥과 함께 중식당 루이의 오너셰프이기도 하다. 2021년 12월, 앰버서더 호텔이 리모델링 후 재개관하면서 홍보각은 재계약없이 폐업하면서 자동적으로 총괄셰프직도 종료되었으나, 강남 노보텔 엠베서더에 홍보각이 다시 생기면서 이곳에서 오너셰프로 근무 중이다. #

2005년부터 세계적으로 유명한 중식 소스 회사 이금기의 고문을 맡고 있다.

동생 여경옥 역시 유명한 중식 셰프로 롯데호텔 중식당 도림의 셰프이자 롯데호텔 상무이사이다. 사실 업계에서의 명성은 동생이 더 대단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창 방송가에서 요리 프로그램이 왕성히 만들어지던 때 SBS Plus '강호대결 중화대반점'을 통해 이미 냉장고를 부탁해를 통해 많이 알려진 이연복과 함께 유방녕, 진생용 셰프와 더불어 중식계의 4대문파라는[13] 타이틀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이후 EBS 최고의 요리비결에 출연한 적이 있으며 2018년 5월, 세계테마기행에서 '중국 소수민족 음식기행' 편에 '세계 중국요리 협회 부회장'이라는 자격으로 나레이션 및 출연을 하였다. 이전에도 중국요리기행이라는 주제로 사천요리를 찾아 사천지방여행의 큐레이터로서 참여하신 적이 있다. 중국요리 마니아라면 필견인 영상. 참고로, 한국어나 중국어도 하지만 영어도 할 줄 안다.

또한 중국 정부에서 인정한 100대 중국요리 명인에 선정될 만큼, 오히려 한국보다 중국 요리계에서 더욱 유명한 셰프이다. 수천만명(!)의 중식 요리사 중에서 100명이라는 것이다. 세계중국요리협회 부회장직도 그렇고 커리어가 엄청나다. 다만 본인이 소개하는 세계중국요리협회 설명을 보면 회원 수가 약 천오백만명이고, 이중 중식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약 900만명이고, 그중 명인으로 인정되는 것이 약 500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중국에 본부를 두고 있다보니, 실제 직책명은 부회장이 아니라 부주석이라고 한다. # 다만 이후 직책명이 바뀌었는지 회원증에 명시 된것과 다르게 세계 중국요리협회 홈페이지 #에선 직함이 부회장(副会长)으로 되어 있다.

세계테마기행을 보면 중식 셰프들이 여경래를 만나는 것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40초 부분 참조

사실 대가 본인의 대중적인 지명도는 요리 방송이 아닌 요리책으로 얻었으며, 그 시기도 훨씬 이른 편이다. 동생인 여경옥 항목에서 공동 저술한 책들이 소개되어 있다.

요리 방송들을 보면 설명을 상당히 쉽게 하는 편인데, 학교에서 요리 강연 경력도 20년 가량 되기 때문이다. 현재 경기대학교 관광교육원에서 교수를 맡고 있다.

시그니처 메뉴로는 모자새우[14], 짜춘권[15], 탕수육, 불도장 등이 꼽힌다.

방송에서는 오세득과 함께 아재개그의 달인으로 나온다. 오세득 셰프가 인터넷 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아재개그를 친다면, 여경래 셰프는 관록에서 우러나오는 진짜 아재개그를 선보이는 것이 특징 "이건 주방장의 친구 두반장이거든요." "역시 여경래라는 감탄사가 많이 나오는 건 제가 여(ㄱ)씨 라서..."

3. 방송

3.1. 냉장고를 부탁해

이연복 라이벌 관계인 스페셜 셰프로 출연한다. 물론 제대로 따져 보면 이연복도 한국에서 최고 수준의 중식 요리사는 맞지만 객관적으로 여경래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요리사로서의 경력은 약간 처지는 편이다. 몰론 이런 대립 구도는 어디까지나 비교질 하기 좋아하는 타인만의 시각임을 유의해야 한다. 여경래와 이연복은 방송 등을 통해 서로의 요리 실력을 인정하며 비교질을 하거나 좋아하지도 않는다. 애초에 같은 중식이지만 그 안에서 둘의 문파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비교대상도 아니다. #

자세한 사항은 여경래/냉장고를 부탁해 문서 참조.

3.2. 수미네 반찬

프로그램의 안방마님인 김수미의 레시피에 따라 요리를 하는 컨셉. 본인에게 낯선 한식을 하는 것과 스승인 김수미가 알려주는 비법이 정량이나 세세한 요소들을 가르쳐 주는 경우가 적은 만큼, 감에 의존해야 하는 게 포인트다. 최현석은 양식셰프치고 한식대첩의 심사위원을 맡을 정도로, 한식에 대한 조예가 깊은 편이다. 허나, 여경래는 한식에서 미카엘보다 좀 더 아는 정도지 전문 지식이 많지는 않다.

3.3. 세계테마기행


세계중국요리왕국제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하여 요리를 평가하는 영상.

보통 중국 각지방에 특색있는 요리들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며, 약 10편 내외의 회차를 찍어 볼거리가 많다. 유튜브에는 대략 5편 가량 공개되어 있다.

3.4.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3.5.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백수저 20인 중 1명으로 참가한다. 이금기 요리 대회 심사[16], 세계중국요리왕국국제대회 심사 등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경력이 국내 중식계에서는 최정상급이기에 참가자보다는 오히려 심사위원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많은 편이다.

그래서 실제로 본인도 처음에는 출연을 고사했으나 숙고 끝에 '다른 중식계 참가자에게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고, 나를 돌아볼 계기도 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떨어지면 더 재밌겠다.' 라는 생각에 다시 연락하여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본인의 제자인 박은영 셰프가 흑수저 80인 중 1명으로 참가하기 때문에 사제 대결이 벌어질 가능성도 생겼다. 흑수저 80인 중 20명을 뽑는 1라운드에 박은영 셰프가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리자 누구보다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17]

2라운드 1대1 대결에서는 흑수저 요리사 중 중식을 전문으로 하는 3인에게 모두 도전을 받았다. 그 중 '나도 철가방 출신이다'[18]라며 철가방 요리사를 대결 상대로 선택했고, 소꼬리를 주제로 대결했으나 2대0으로 패배해 탈락했다.[19]

원래 정지선 셰프와의 대결에서 박은영 셰프가 먼저 떨어지는 바람에 사제대결이 무산되는 듯 했으나, 박은영 셰프가 백종원의 슈퍼 패스로 추가 합격했고, 오히려 본인이 2라운드에서 떨어지면서 제자를 3라운드에 보낸 모습이 되었다.

충격적인 전개와 별도로 여경래에 대한 시청자의 평은 매우 좋은 편이다. 흑백대결 중 자신의 제자인 박은영을 정지선이 직접 떨어트렸음에도 정지선이 중식계의 탑이 될거라고 추켜세우는 한편, 1대1 대결 선정에서도 본인도 철가방 출신이었다는 훈훈한 이유로 철가방 요리사를 택하였고, 2:0으로 패배하여 자존심이 구겨졌을법한데도 오히려 젊은 사람이 많이 해야 한다며 격려를 해주고 후련하게 퇴장하는 등 최정상급 셰프에 걸맞은 품격을 보여줬다는 평이다.

유튜브 채널에서 대회 참가 후기를 밝힌 바에 의하면, 환갑이 넘은 고령 탓에 촬영이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20] 그래서 다시 나가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며 웃었다. 실제 촬영이 새벽 2시에 할만큼 강행군이여서 너무 힘들었다고 승우아빠 나폴리 맛피아[21] 등 훨씬 젊은 다른 요리사들이 증언했고 레이먼 킴은 자기 나이대에는 할수없는 요리대회라고 생각하고 자문위원으로 참가했다. 게다가 이후에는 하루를 꼬박 새는 미션 등 더욱 체력적으로 힘든 과제들이 예정되어 있었으므로 여경래 부회장이 계속해서 다음 라운드로 진출했어도 체력적 한계 때문에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세트장이나 대회 형식이 너무 훌륭했다면서 이러한 대회에 대해 배웠다며 극찬했다. 이런 요리대회를 참가하기보다 주관하는 입장이라 흑백 요리사 대회 운영 및 진행에 큰 관심을 표명하며 다른대회에서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또한 흑백 요리사가 아시아권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대만에서의 폭발적인 인지도 상승도 얻게 되었다. 여경래 본인이 성원에 감사드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응원 문자와 사랑을 받았다고 했을 정도라고.[22]

3.6. 그 외

4. 저서

5. 여담


* 같이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제자 박은영과 화보를 찍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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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0년 인터뷰에서 한국으로 귀화할 계획이라고 언급했으나, 2019년 법무부 홍보 영상에 대만 국적자로 등장했다. 2024년 인터뷰에서 본인은 업무상 해외로 출장갈 일이 너무 많아서 귀화하지 못했고 배우자와 자녀들은 귀화를 진행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귀화 중 여권이 일시적으로 없어지면서 출국이 불가능해지는 것이 타격이 큰 모양이다. 재한화교로서 한국에서 살아가는 화교들의 불편함을 해소하는데 앞장서고 있기도 하다. [2] 과거 강호대결 중화대반점에도 함께 출연했던 수제자 박은영 셰프와 함께 운영한다. 그래서인지 여경래 셰프가 답을 할때 여가네 계정이 아닌 본인 계정으로 따로 답을 한다. [3] 과거 한국은 '부계주의 국적법'을 택하여 1998년 이전 출생자까지는 아버지가 한국 국적인 경우에만 자녀에게 한국 국적을 부여했으므로, 단독 대만 국적이다. [4] 금쪽상담소에서 당시 자신이 '엄마, 아버지 죽었어' 라는 말을 아직도 기억할 정도라고 한다. 그만큼 어린 나이에 트라우마가 된 것이다. 어머니께서 아버지가 과거 가정적인 분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5] 원래 미술을 배우고 싶어했으나 예체능이 그렇듯 돈이 매우 들고, 이를 뒷받침할 집안 형편도 가난했고 학교 성적도 부족했기 때문에 배우지 못해서 어머니가 중국인의 아들이니 중국 요리 배우라고 권유하셨다며 회고했다. [6] 이렇게 젊었을적 치열하게 요리를 공부했던 경험때문에, 여경래는 요리사로서 성공한 이후 동생과 함께 후학 요리사들이 보다 쉽게 배움의 갈망을 해소할 수 있도록 직접 여러 중식 요리책 저술활동에 전념했다고한다. [7] 이는 대한민국이 당시 중화인민공화국을 인정하지 않고 중화민국을 유일한 정부로 인정했기 때문에 화교들에게 중화민국 국적이 적용되었는데, 중화민국이 국공내전에서 밀리면서 대만으로 이동하고 내륙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면서 가본적도 없는 대만의 국적이 되어버린다. 이는 추후 화교들이 대한민국에 남게 되는 큰 이유가 된다. [8] 중국 음식을 소개하는 방송이었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중국은 중국 본토이다. [9] 아버지가 대만인이고 어머니가 한국인이며 한국, 중국, 대만의 언어와 문화를 접하며 자란 한국 화교로서 복합적인 정체성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10] 흔히 중화요리 4대 문파로 꼽혔던 곳 중 하나. 사천 중화요리를 처음으로 선보였으며 요리사들에게 꿈의 식당이었다고. 뿐만 아니라 당시 남진, 앙드레 김 등 가장 잘 나가던 유명인사들이 자주 가던 아지트였다고 한다. [11] 2020년 tv는 사랑을 싣고를 통해 재회했다. [12] 상술하듯 중식 4대 문파는 언론사에서 과장을 해서 그렇지 실제로는 매우 느슨하다고 한다. 파일:1553789054238.jpg 당장 여경래의 제자 타이틀로 팝업스토어까지 함께한 철가방 요리사는 중식을 여경래와 여경옥이 공저한 중식 요리책으로 중식을 시작해 여경래를 사부님으로 모시고 있으나 여경래가 운영하는 홍보각이나 루이키친, 블루상하이 등에서 일한 적은 없다. [13] 실제 중식계에선 저런 명칭은 없고 방송의 재미를 위해 붙여진 타이틀이라고 한다. 그 때문에 선배 요리사들에게 해명한다고 애를 먹었다고한다. [14] 작은 새우와 돼지고기, 물밤을 다져 완자를 만들고 큰 새우를 갈라서 안에 넣고 튀기는 고난도 새우튀김 요리. [15] 춘권의 만두피를 전병이 아닌 계란 지단으로 바꿔 튀긴 요리. [16] 심사를 1회 대회부터 현재까지 17년째 하고있다. [17] 동시에 박은영 셰프가 긴장해서 실수를 하는 모습 때문에 자기 자신도 크게 긴장한 모습이 보였었다. [18] 이때 네티즌들은 “이게 진짜 무협“이라는 늬앙스의 반응을 보였다. [19] 다만 탈락자도 이후 녹화는 모두 참여했다 밝혀져 얼굴은 계속 비출 것으로 추정된다. [20] 유명 셰프의 대명사인 고든 램지도 방송이나 개인 채널에서 가끔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 본인 소유의 레스토랑이나 식당에서는 주로 총괄과 검수를 주로 하지 현장에서 직접 요리하는 상황은 상당히 드물다. 이런 헤드 셰프들이 실제로 조리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실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체력적으로 비효율적이고 경력에 따른 최적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헤드 셰프를 맡고 있기 때문에 이미 10년 가까이 직접 조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총주방장(헤드 셰프)이라는 직위와 경력상 요리연구는 직접 하기때문에, 정말 조리를 하지않은건 아니지만, 다른 셰프들처럼 하루종일 주방을 누비며 조리를 하는 게 아니라 진짜 비상상황이 아닌 이상에야 실무에 나서지 않는 게 보통이다. 애초에 여경래 셰프 정도의 나이가 되면 일반적으로는, 사장으로서 직접 경영을 하며 후배들을 양성하고 주방의 총괄 지휘를 맡기 때문이다. 중화요리 자체의 조리 노동 강도가 상당하기 때문에 동네 중국집 주방장도 40대~50대에 은퇴하는 것이 보통이다. 게다가 촬영 당시에는 다른 셰프들과 달리 식당운영뿐만 아니라, 세계중국요리협회 관련으로 추정되는 해외활동까지 함께 소화해야 했기 때문에 고령의 나이로 여러 스케줄을 동시에 소화해야 해서 체력이 한계에 다다른 상태에서 촬영에 들어갔다고. [21] 대회 내내 찡그린 표정이었는데, 새벽 촬영으로 눈이 침침해 그런것이라고 말했다. [22] 대만에서는 백종원과 안성재 셰프가 대만에서 들렸던 음식점을 맛집 리스트로 정리해서 공유하고, 그 음식점들에 관광객이 아닌 원래 거주민들의 대기줄이 생길 정도로 흑백요리사가 흥행했다. [23] 현재는 절판되어 중고시장을 통해서만 구입할 수 있다. 또한 요식업계 관련 도서 중에서 베스트셀러로 4위를 기록했다. [24] 여경래 셰프가 유독 크게 다쳤다기보단, 낙상은 그 자체로 인간의 사고사 원인 중 2위를 차지할 정도로 큰일이다. 사람의 체중이 50 kg가 넘는 데다가 두 발로 일어서서 걷기 때문이다. 공수부대원이 지상에 낙하산 착지할 때 받는 충격이 1.2 m 정도에서 뛰어내릴 때 받는 충격과 비슷함에도 착지 과정에서 발목이나 무릎이 골절되는 것을 생각해보면 성인 남성 키에서 넘어져 머리를 부딪히는 건 굉장히 큰 충격이다. [25] 아버지인 여경래가 대만 국적이고 1998년 이전에 태어나서 그 역시 대만 국적만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