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핀란드어의 동부 방언에 해당하는 카렐어를 쓰는 민족. 핀란드와 면한 러시아 카렐리야 공화국의 명목 민족으로 러시아에는 6만명 정도[3] 핀란드에는 1만명 정도가 거주1994년 통계하고 있다. 핀인, 에스토니아인, 리보니아인과 같은 발트핀족에 속한다.카렐은 "농사짓는 목장"이라는 뜻이다.
2. 역사
오늘날의 핀란드의 남동부와 카렐리야 공화국 남부지역은 모피가 많이 생산되는 부유한 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고대 노르드어로 '뱌르말란드(Bjarmaland)', 러시아어로는 '비아르미야(Биармия)'라고 불렸으며 주민들은 비아르미야인이라고 칭해졌다. 10~11세기 카렐인의 조상은 라도가 호수와 오네가 호수 인근까지 확장했으며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던 사미인이나 벱스인과 혼혈되기 시작했다. 카렐리야 남부는 11세기부터는 노브고로드 공국에 지배를 받게 되었다. 12세기 중반 노브고로드인들은 이들을 '코렐라(Корела)'라고 칭하기 시작한다.13세기 북유럽의 강대국 스웨덴이 카렐리야에 관심을 보이며 노브고로드 공국과 전쟁을 벌였다. 서부 카렐리야가 스웨덴의 지배를 받게 된 이후에도 이 지역을 사이에 둔 러시아와 스웨덴과의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노브고로드 연대기에 따르면 14세기 초반 토속신앙을 믿던 카렐인이 정교회 선교에 반발하여 대규모로 봉기하면서 카렐리야 지역의 기독교인들을 학살했다고 한다. 그 여파로 카렐리야 일대의 노브고로드 공국의 영향력이 약화되었다. 결국 스웨덴이 이 틈을 노리고 14세기 중반 무렵부터 카렐리야 서부 일대를 장악하였다. 17세기에 초반 스웨덴이 카렐리야 전역을 장악하고 카렐리야 동부의 정교회를 믿는 카렐인들을 박해하기도 했으나 18세기 대북방전쟁의 패전으로 스웨덴 왕국의 힘이 약해지면서 카렐리야는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되었고, 이번에는 카렐리야 서부의 루터교회를 믿는 카렐인들이 박해를 받게 되었다.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 도중 러시아와 스웨덴 사이의 전쟁이 다시 일어나며 핀란드 전체가 러시아의 영토가 되자 서로 언어가 비슷했던 카렐인들과 핀란드인들 사이의 교류가 강화되었다. 카렐인 대다수는 정교회를 믿으나 민족 정체성은 핀란드에 더 가까웠고, 핀란드 독립 이후 핀란드와 소련의 국경 분쟁 당시 상당수의 카렐인들이 핀란드로 이주하였다.
이후의 역사는 겨울전쟁 문서 참고. 소련의 개방과 붕괴 이후 카렐인 중 상당수가 핀란드로 이주하였다.
3. 문화
핀란드계 아니랄까봐 사우나를 아주 좋아한다.이들이 개발해서 핀란드와 러시아에 보급된 악기로 칸텔레가 있다.
카렐인들이 쓰는 카렐어는 핀란드어와 매우 가까워서 핀란드어 화자와는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하는 편이다.
식문화가 주로 생선 요리를 중심으로 발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