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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04:40:52

이슬람/여성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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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회 활동 제한3.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4. 성차별5. 이슬람에서의 여성 인권
5.1. 역사 속 여성 무슬림의 사회 참여5.2. 현대의 여성 인권 억압5.3. 현대의 무슬림 여성 지도자
6. 여성 인권을 강조하는 이슬람 일파 및 조직

1. 개요

이슬람 문화권에서의 남녀의 성 역할과 여성 권리 등에 대해 다룬 문서.

2. 사회 활동 제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샤리아가 도입되면 강간 매춘이 전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여성이 강간이나 사별로 인해 남편을 잃어도 샤리아로 인해 사회 참여가 극히 제한되어 재혼이 어려우면 매춘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많으며 샤리아로 인해 아내에 대한 남편의 가정폭력과 구타가 합법화되기도 한다.
2005년 아프가니스탄 방송 톨로 TV의 '샤리마 레자위'라는 여성 앵커가 명예 살인으로 죽었다. 이 여성 앵커는 얼굴을 드러내고 남성 앵커와 단둘이 방송에 나온다는 이유로 오빠에게 명예 살인 당했다. 당시 카불 시내에 있던 샤리마의 집에서 그녀의 아버지와 오빠를 만날 수 있었다. 샤리마의 오빠는 생각보다 엘리트였다. 카불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연합군의 공식 통역으로 일할 만큼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여동생을 죽인 살인자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샤리마는 나의 세 누이 중 가장 아름답고 영리했다. 공부도 대학까지 마쳤고 영어도 유창했으며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여성 운전자 중 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샤리마가 자랑스러웠다"고 회상했다. 그런데도 여동생을 죽인 까닭은 뭘까? 그는 "샤리마는 방송국에 취직한 후 너무 유명해졌다. 우리 부모님이나 나는 보수적인 사람이 아니다. 샤리마에게 운전과 영어를 가르쳐준 사람도 바로 나다. 하지만 유명해지면서 샤리마가 입방아에 오르기 시작했다. 나쁜 소문이 돌았다. 히잡을 짧게 쓰고 나온 날이면 샤리마가 창녀라는 소문이 나고, 방송에 함께 출연하는 남자를 자동차에 태우고 다닌다는 수군거림도 있었다. 사람들이 아버지와 나를 욕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우리 집에 돌을 던지는 사람이 생기는가 하면 가족을 몰살한다는 협박도 해왔다. 샤리마 밑에 있는 두 여동생의 혼삿길도 막혔다. 사람들은 우리가 샤리마를 죽이고 가족의 명예를 회복할 것을 원했다"라고 말했다. "샤리마가 죽었다는 것을 알자 이웃들이 다시 우리 가족에게 친절해졌다. 친척 한 사람은 우리를 찾아와 잘한 일이라고 칭찬했다. 그렇게 우리 집안의 명예가 회복됐다. 가족들은 샤리마를 그 누구보다 사랑한다. 하지만 그 아이가 희생함으로써 가족 모두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그래서 후회는 없다"고 오빠는 덧붙였다.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냐는 질문에 샤리마의 아버지는 "전혀 없다. 가족의 명예가 회복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샤리마도 우리를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샤리마의 아버지와 오빠는 한 달 남짓 경찰서에 구금됐다가 재판 절차 없이 석방됐다. 이 사건을 처리한 샤다흐라는 이름의 경찰관은 "샤리마의 죽음은 명백한 명예 살인이다. 큰 죄가 아니다. 가족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그런 부분까지 개입할 수는 없다. 구금 당시에도 그들은 필요하면 경찰서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우리 또한 그들을 죄인 취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카불 시내에서 무작위로 시민들에게 샤리마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전자제품을 파는 오마르는 "당연히 죽어야 했다. 내가 오빠라도 똑같이 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산부인과 여성 의사 막그답도 "행실이 바르지 못한 게 문제다. 외간 남자와 어깨를 나란히 마주하고 방송에 나온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행위다. 샤리마의 죽음은 가문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다"라고 대답했다. #
이라크에서는 미스 이라크 대회에 참가 신청한 150여명의 여성 중 15명이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살해 협박을 받고 중도 사퇴하기도 했으며 43년만에 탄생한 미스 이라크 당사자에게 "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에 가입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협박이 들어오가도 했다. '43년 만에 탄생' 미스 이라크에 "IS 가담하라" 협박

이는 예언자 무함마드"여성이 남성을 유혹할 목적으로 신체를 드러낼 경우 그 여자는 천국의 향기조차 맡을 수 없을 것이니라."라고 가르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3.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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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 사회에서는 하류층 남성이 상류층 여성을 성폭행한 경우 무조건 극형을 받았지만 반대로 상류층 남성이 하류층 여성을 성폭행한 경우는 처벌이 흐지부지됐고 성폭행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일어나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사실상 중세 동로마법과 페르시아법에 기반한 샤리아도 명목상으로는 평등을 추구하지만 실질적인 법 적용은 전근대의 다른 문화권과 다를 바 없다. 즉, 성범죄 피해자가 수치심에 침묵하는 동안 가해자는 일가 친척들을 동원해 발뺌하고 변명하면 샤리아가 이를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심지어 피해자가 간통 혐의를 뒤집어쓰게 된다. 그래서 투석형이나 태형에 처해지는 경우마저 일어난다. 실제로 나이지리아 북부에 위치한 잠파라 주에서는 혼전임신을 한 17세 여성에게 태형 180대 판결이 내려져 국제사회의 공분을 사기도 했으며, 2002년 3월에는 성폭행을 당한 32세의 나이지리아 여성 아미나 라왈이 낳은 아이가 혼외출산아라는 이유로 샤리아 법원에서 투석형을 내리자 국제사회와 인권단체의 노력으로 간신히 집행을 막은 적이 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지역 유지들이 사촌에게 강간 당한 14살 소녀에게 혼전 성관계의 죄를 지었다며 샤리아에 따라 채찍 101대형을 내려 살해한 일도 있다.

사우디에선 성폭행 당한 여성이 간통으로 징역 6개월에 태형 200대형 받기도 했다. 혼전동거[1]는 벌금형과 태형, 쇼핑 몰에서 키스를 했다는 이유로 태형 90대와 징역 4개월에 처했고, 상점 주인의 부인에게 단순한 친밀감의 표시로 윙크와 손가락 키스를 보냈다는 이유로 태형 15대를 선고했으며, 아랍에미리트에서는 필리핀 출신 외국인 노동자가 어느 여인과 옷이 스쳤다는 이유로(!!) 6개월 징역살이를 하고 추방당했다. 심지어 자국민도 아닌 외국인 노동자들끼리의 사생활 속 자유연애조차도 징역 3년을 때리고 출소 후 바로 추방한다.

4. 성차별

이란에서는 호메이니의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후로 40년간이나 여성의 경기장 출입과 관람을 금지했고, 단순히 남자 배구경기를 관전했을 뿐인 영국계 여성을 샤리아를 어겼다면서 체포하고 징역형으로 처벌했으며 월드컵에서 자국을 응원하며 춤을 추고 노래한 사람들을 타락했다며 체포하는 등 극악의 인권탄압을 자행했다. 이 여성 경기장 출입금지 조치는 2019년 경기장에 몰래 출입했다는 이유만으로 기소되자 절망감에 자살한 한 여성으로 인해 이란 민중과 국제사회의 초강경 비난이 쏟아지고 나서야 겨우 해제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엘리베이터도 탈 수 없다.

어느 종교이든 사상이든 간에 과거 역사에 잘했건 못했건 과거와는 별개로 지금 당장, 현대에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가 중요하며, 이슬람 역시 과거에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는 현대에 와선 크게 중요하지 않다. 실제로 이슬람 발흥기인 7세기 기준 여성에 대한 코란의 관점은 당시 기준으로는 선진적이었고 중세에 이슬람 문화권에서 중세 유럽이나 동아시아보다 여성 인권을 잘 보장했다고 해서 오늘날 이슬람 문화권의 여성 차별의 면벌부가 되지는 않는다.[2] 오늘날 기준으로 중요한 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 이에 동조하는 무슬림들이 이슬람을 빌미 삼아 21세기에 보이는 여성 차별과 박해의 현실은 매일 같이 해외 토픽을 장식한다는 점이다. 기독교나 불교 경전에서도 원론적으로는 여성의 인권을 보장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전근대에는 제대로 지키지 않았을 뿐이다. 효도나 남녀평등 같은 내용은 사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원론적으로는 권장하는 상황이다. 즉, 평등이나 인권 관련 이상이 얼마나 잘 지켜지는지 여부는 해당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 수준에 달린 것인데, 오늘날의 이슬람 근본주의는 그 무슬림들의 의식 수준 개혁을 중세만큼도 못하게 퇴행시키고 그 발전을 적극 방해하는 가장 심각한 요인이다.

심지어 이민자로서 정착한 나라에서도 일부다처제, 사촌간 혼인[3], 여성과 악수 금지[4] 등을 이슬람의 관습이니 허락하거나 용인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다. 대표적 예로 유럽 공항에서 보안상 이유로 부르카 니캅 같이 전신을 감싸는 복식 착용을 금지하자, 이에 종교적 차별이라 반발했다. 대안이라 내놓은 것이 히잡 착용 여성의 남편이나 미혼녀의 경우는 남성 가족이 바깥 어디서나 동행하면서 신분을 보증하고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는 것. 여성과 아내에 대한 소유권이 남편이나 가족에게 있었던 중세 이슬람이나 전근대 서구세계라면 이게 먹혔겠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니 당연히 기각됐다. 남존여비는 기본적으로 깔고 있는, 여자는 집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는 사고 방식을 21세기에 적용하자고 주장하니 인권을 중요시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미성년 여성을 강제로 결혼시키거나 감금하는 등 현재의 인권 의식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행태도 드물지 않다. 프랑스 무슬림 가정에서 불이 났는데 가장이 여자들이 밖에 다니면 서양물 먹어 다루기 어려워진다고 못 나오게 가둬둔 탓에 갇힌 여성들이 죄다 구조되지 못하고 질식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 이슬람 선교사들은 자신들을 후원해주는 이슬람 근본주의 후원 세력의 눈치를 보며 일부만의 문제일 뿐이라고 얼버무릴 뿐 구체적인 대책은 내놓지 않는다.

다소 종교색이 약한 소수의 이슬람 문화권 국가들, 주로 튀르키예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서구적인 여성 평등이 일단 형식적이고 제도적으로라도 명시되고 보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이 국가들에서 여성 인권이 그나마 신장된 것은 이슬람이 쿠란에 나온 남녀평등 가치관을 존중하고 착해져서 그런 것이 절대로 아니며, 세속주의 세력과 국가의 주도로 이슬람이 사회에 대한 주도권을 잃어버렸기에 상대적으로 현대적인 가치가 쉽게 들어와 여성 인권 상황이 나아진 것이다.

이들을 제외한, 근본주의자들이 기득권으로 집권한 굉장히 많은 이슬람 국가들과 이슬람주의가 보편적 국민 정서에 가까운 수 많은 이슬람 문화권 나라들에서는 경제적 빈곤까지 겹치는 경우 여성 인권 상황이 정말 과장이 아니고 시궁창 자체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는 지경이다. 심지어 이런 나라의 여성들은 이슬람의 남존여비 사상에 세뇌를 단단히 당해서, 여성인권 상황을 개선하려는 약간의 시도조차 "타락한 서구화와 여성 해방이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핑계로 가로막히기 일쑤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의 사회 참여 기회는 매우 적으며, 특히 걸프 아랍 왕정 국가의 경우 교육 시스템도 일방적으로 이슬람 신학 쪽에 몰빵이 되어 있다. 자연과학과 공학이 신학에 비해 밀려 4차산업이 발달하지 못한 경우가 상당수이며, 인문학 관련 상황은 훨씬 처참하고[5] 실업까지 만연해 있다. 일자리가 적다 보니 남성에 비해 사회적 약자인 여성은 설령 일자리 차지를 위한 경쟁에 참가하더라도 절반 정도의 임금만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며 남성 고용주의 성착취 위협[6]에 노출된다. 농촌 주민들의 인식구조도 중세 수준에 머물러 있다. 현대 민주주의의 성장 원동력인 '동일 노동 동일 권리'와는 아주 먼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이는 대부분의 이슬람 문화권 국가들에 해당하는 문제이며, 이로 인해 여성 차별, 인권 유린에 대한 인식이 많이 뒤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강제적으로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근대화를 추진해도 '머리로는 외워서 아는데 정서적으로는 전혀 납득을 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으니, 이슬람 근본주의에 얼마나 심각한 반인륜적 문제가 있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여성 인권이 서구 사회와 비슷한 수준으로 보장된다고 여겨지는 사회는 많이 잡아봐야 11개국[7] 정도이다. 그 외의 지역에서는 남녀평등을 요구해도 사실상 제자리 또는 달팽이 걸음만 하거나 요구할 엄두조차 못 내는 것이 현실이다. 종교의 발전과 변화는 사회의 발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사회의 발전이 높은 수준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당연히 이슬람의 발전과 변화도 다른 종교에 비해 더디며, 이 속에서 반서구주의를 바탕으로 반인륜적 사상이 가득한 이슬람 극단주의와 근본주의가 등장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나마 북아프리카 국가들에서 교육이 꾸준히 개선되고 서비스업이 발달하면서 조금씩 여성 인권 상황의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걸프 국가들은 일방적으로 이슬람 신학 관련 교육만 이루어지고 여성의 취업은 국가의 재정지원을 통해서만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제3세계의 여성인권이 선진국보다 열악한 수준인 건 어느 종교나 문화권의 국가이든지 비슷하다. 하지만 남미 아프리카 같이 낙후한 점이 많은 제3세계 기독교 문화권 국가들에서도 최소한의 여성인권 존중과 여성들의 자유, 서구적인 남녀평등의 가치는 적어도 법적으로 보장되고 어느 정도는 지켜지고 있으며, 이는 동남아시아 동아시아 불교 문화권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다. 힌두교 시크교 등 토착 종교에 충실하고, 수구적인 농촌 문화가 문제가 되는 인도 역시 파키스탄이나 방글라데시보다는 더 나은 여성 인권과 평등을 민주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여성 교육권을 위해 투쟁한 파키스탄의 여성 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 탈레반에 총격을 당하고, 극적으로 살아나 노벨상을 받은 후에도 파키스탄에서는 "말랄라가 이슬람을 모독했다."라면서 말랄라의 평등권 투쟁에 반대하는 근본주의자들이 국민적 지지를 얻으며 설치는 실정이다. 이집트 카이로의 세계적인 이슬람 명문 대학교인 알 아즈하르 대학에서는 첫 여성 총장이 "이슬람에서 여성에게 취업 제한을 가하거나 참정권을 제한하고 히잡 니캅을 강요하는 것, 여성 구타, 불합리한 일부다처제를 강요하는 것 등은 쿠란의 가르침에도 맞지 않는 이슬람 문화의 악습이다."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견해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극단주의자들에게 살해협박을 받았다. 그 외에도 말랄라 유사프자이 같이 여성의 인권 신장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살해당하거나 살해 협박을 받는 여성 운동가들은 넘쳐난다.

그러나 이슬람 근본주의에 휘둘리는 수 많은 서아시아, 남아시아,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여성들은 복장의 자유조차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며,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와하브파를 찍어누르고 개혁을 시도한 2018년 전까지 여성들이 운전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여성 운전을 허용해달라고 주장하는 시위에 참석한 이슬람 여학교 교수들에게 같은 이슬람 여학생들이 연구실로 처들어와서 욕설을 퍼붓고 머리채를 끌어당기는 만행을 저지르지 않나, 여성 운전에 반대하는 여성들이 이슬람 가치에 따라 여학교를 폐지하라는 주장을 하면서 모스크 등지에서 분노에 찬 시위를 벌이는 충격적인 광경이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독일 같이 개인의 철저한 자유가 법적으로 보장되는 선진국에서도 슬라 샤힌이라는 터키계 여성이 플레이보이 잡지에 나오자 많은 무슬림들이 그를 맹비난하며, "그가 우리 가족이었으면 당장 명예살인을 해버렸을 거다!" 라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극단주의자들로부터 쉴 틈 없이 살해 협박을 받는 등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여성들에게 자유란 개념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행각을 보여주고 있다.

명예살인이 토착 문화의 영향이므로 이슬람과는 관계 없다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주장이 많이 보이는데, 명예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 중 절대 다수가 이슬람 근본주의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거기다 여성에 대한 돌팔매질과 공개투석형, 개종자에 대한 명예살인 권장 등은 샤리아에 규정된 조항이다! 매년 5,000명 이상의 이슬람 문화권 여성들이 명예살인으로 처참하게 죽어간다는 조사가 2000년 UN 추산 공식 통계이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오히려 이집트의 근본주의자들은 그 토착 문화의 영향으로 이집트의 여성 할례 악습을 옹호하는 이중적인 면모를 보인다.

또한 이슬람 남성이 타종교 여성과 결혼하면 좋은 일로 여기지만 이슬람 여성이 타종교 남성과 결혼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 점이다. 물론 이는 여성을 잠정적 소유물로 여기는 가치관으로 개인의 인권보다 가문의 권위가 중시되는 후진적인 지역들에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다.[8][9] 이런 결혼을 두고 근본주의적 성향의 가정들은 반이슬람적이고 대단히 불명예스러운 일로 여겨 명예살인 같은 중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영국인 사랑한 이라크 여성, 아버지가 살해 (한겨레) 게다가 이슬람 항목의 '문화 갈등' 항목에도 설명되어 있듯이 한국에서도 무슬림 남성과 결혼한 여성에게 이슬람으로 개종할 것을 강요하며 폭행을 일삼는가 하면 자식에게는 이슬람을 강요하는 모습까지 나와서 사회 문제로 부각된 적도 있다. 소위 '남의 여자는 빼앗아올수록 좋지만 우리 여자는 빼앗기고 싶지 않다.'라는 이런 심리는 인간을 포함한 짐승에게서 나타나는 성적인 경쟁심리에서 비롯된 것인데, 종교적인 삶을 강조하는 집단에서 정작 지극히 세속스럽다 못해 원초스럽기까지 한 본성을 억누르기는커녕 더욱 발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중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점이 하나 있는데, 명예살인이 많이 일어나는 곳의 특징 중 하나로는 '이슬람이 정치 권력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명예살인이 정말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슬람 문화권 권력자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를 방지하기 위한 강력한 처벌법률을 제정하고 전국민적인 캠페인 역시 펼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방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방관하는 권력자가 무슬림이라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더 나아가서 대다수 이슬람 문화권 국가들에게 이슬람은 단순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생활 자체이다. 이슬람은 21세기에 갑자기 나온 종교도 아니고 몇 백 년, 어떤 곳들은 천 년 넘게 그 지역에서 활동해온 종교이다. 정치 권력도 있고, 문화적 영향력도 막강한 종교가 고작 보여주는 모습이 토착 풍습 탓을 하는 것 자체가 '무능'을 드러내는 것밖에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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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리아에서 주로 간통죄에 대해서 집행하도록 되어 있는 투석형. 고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지나치게 큰 돌을 사용하지 않도록 자세한 시행 규칙까지 묘사되어 있다.

이슬람 문화권은 가정 내부에서도 가부장적 문화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이슬람 신자들과 결혼한 타문화권 여성들이 가정폭력과 가부장적 남편들에 의한 핍박을 호소하는 증언이 많이 나오기도 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남편의 평생에 걸친 가정폭력과 구타를 이기지 못한 여성 수백 명이[10] 분신자살로 삶을 끝낼 정도이다. 기사

인도에서는 사회적으로 핍박받는다는 인도의 무슬림들이 정작 가정에서 벌이는 폭력이 적나라하게 알려져 무슬림들이 비난거리가 되기도 했으며, 이러한 사실을 용감하게 알리고 증언한 방글라데시 출신의 타슬리마 나스린 같은 이슬람 여성 운동가에게 극단주의자들이 죽여버리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하고, 여성인권운동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여성인권운동가 인형을 태워버리기도 했다. 이러한 비참한 현실이 벌어지는 배경과, 나아가 부추기는 것이 이슬람 극단주의 이슬람 근본주의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렇다고 여성들을 탄압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본인 스스로는 경건하고 깨끗한 생활을 하느냐면 많은 경우 그것도 아니다. 세속국가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마약, 매춘 등 온갖 죄를 저지른다고 주장하며 이슬람 여성들에게 니캅을 강요하고 남성에게 종속하는 노예 처지로 살 것을 강요하고, 서구권 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탄압하는 그들이지만, 정작 이슬람 근본주의 지도자들도 사람들에게는 이슬람 교리를 엄격하게 따를 것을 주장하면서 자신들은 성매매, 마약, 음주를 즐기는 것이 알려져 빈축을 사기도 하였다. 수구적이고 극단적인 이슬람 율법 강요로 유명한 이란 이슬람 공화국에서도[11] 혁명 수비대의 고위직 자녀들이 비키니 파티를 즐기고 서구 명품을 수집하면서 가난한 일반인들을 조롱하는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세계적으로 큰 비웃음과 분노를 사기도 했다.

이와 약간 관련된 사건으로 2016년 쾰른 집단 성폭행 사건이 있다. 난민들이 저지른 성폭행 사건 후에는 무슬림 사회가 사과를 한 것은 물론 아니었고, 되려 집단 성범죄 사건이 제일 심각했던 쾰른의 이맘이 여성들이 복장을 경솔하게 입었기 때문에 성범죄를 당한 것이라는 망언을 일삼기까지 했다. 당시는 한겨울이었는데 이런 말을 한 것은 니캅을 안 쓰면 성폭행을 당해도 할 말이 없다는 주장이기도 했다. 해당 사건 발생 몇 달 후 프랑스의 이슬람 선교 단체에서는 그 해에 "비키니가 성범죄를 부추긴다."[12] 같은 캠페인을 벌이면서 물타기를 시전하고 어그로를 끌었다.
파일:Iran 1970.jpg
이슬람 근본주의 독재 정권 전에는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의 도시 여성들의 복장의 자유 등 권리가 신장되고 있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이 집권하기 전 1970년대에도 파슈툰족이 사는 시골 지역은 여성 인권 실태가 시궁창 급이었다. 이는 폐쇄적인 부족 문화 때문에,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 생명보다는 가문의 권위가 더 중요하게 여겨졌던 사회 분위기 때문.

결론적으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여성의 복장과 처녀성 등을 가문의 권위를 빛내주는 수단 쯤으로 여기고 있다. 이슬람에서는 혈연과 지연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걸 금지한다지만,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이중 잣대를 가지고 혈연과 지연으로 사람을 차별한다.

남녀 할 것 없이 매우 보수적이며, 동시에 기독교나 힌두교 문화권[13]과 달리 남성만이 4명까지 아내를 둘 수 있는 일부다처제가 허용된다. 다만 일부다처제는 어디까지나 '허용'이지 '권장'은 절대 아니다.

이슬람에서 여성만 성적으로 방종하지 않아야 한다고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쿠란은 남성도 성적으로 방종하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야동이나 자위행위 같은 것은 많은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사실상 금지되어 있다.

원체 현 중동 분쟁 지역에 지하드 알 니카와 같은 극단적으로 왜곡된 형태의 성범죄가 발생해서 무슬림 남성은 비무슬림 여성과는 프리 섹스를 즐겨도 문제가 없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고, 실제로도 그렇게 해석하는 막 나가는 극단적 무슬림들도 있지만, 정통 율법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이교도 이성과의 혼외 성관계 역시 마찬가지로 교리상 간음으로 간주된다. 각종 율법 소개 사이트 등에서는 비무슬림 여성이 머리카락이나 신체 일부를 내보였다면 그것을 보아도 상관은 없으나 속으로 음탕한 생각을 하거나 옷으로 가리고자 했던 부분을 보고자 하는 행위[14]는 죄악임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사상적으로는 원리주의를 표방함에도 불구하고 사실 극단주의 테러리스트 중 상당수는 고등교육은커녕 중등교육조차도 제대로 받지 못해 율법에 대한 이해도가 그다지 높지 못하다. 무아트 알 카사스베 중위 분살[15] 같은 짓을 저질렀는데 ISIL이 저질렀다고 해서 이걸 이슬람 율법을 따랐다고 볼 수 없듯, 왜곡된 성관념과 욕구불만에 싸인 몇몇 무슬림 남성들이 성범죄와 삐끼 짓을 한다고 해서 샤리아 자체가 무슬림 남성과 비무슬림 여성의 강제적인 성관계에 눈 감아 주는 것은 아니다.

세속적인 이슬람 국가인 터키의 주류 해석은 무슬림과 비무슬림의 관계라도 혼전 관계나 결혼 후 이미 배우자가 있는 상황에서 하는 연애조차도 간통(Zina)으로 간주되며, 터키 공화국 형법에는 간통죄가 없으므로 세속적으로는 처벌이 불가능하나, 이슬람적 관점에서는 간통자로 여겨지며, 이슬람에서 불신자로 간주한다고 보고 있다. 물론 터키는 샤리아를 적용하는 종교 국가가 아니라 세속국가이므로 이슬람 차원에서 이들을 비난만 할 뿐, 처벌할 방법도 딱히 없기는 하다. 그러나 중혼이나 조혼은 터키 공화국 헌법으로 분명히 금지하고 있으며 상당히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

초창기 이슬람, 즉 9~14세기의 이슬람 세계만 해도 동성애에 관해서 타문화권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하였다.[16] 샤리아에서 동성애는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놓고는 못했지만, 동성애를 해도 거의 처벌을 받지 않고 쉬쉬하는 분위기였으며 상류층의 경우에는 동성 애인을 갖는 게 유행이기도 했다.

그러나 18~19세기 이슬람 근본주의의 대두와 함께 동성애는 배척받고 처벌받기 시작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자유주의의 확대로 비교적 처벌이 느슨해져 터키 등 몇몇 세속 국가에서는 처벌을 하지 않지만 아직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파키스탄을 포함한 수 많은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심각한 사회적 터부 내지는 중범죄로 여겨져 감옥행이고 이란, 사우디 아라비아 같은 극단주의 국가에서는 채찍형에 처한다. 간통까지 했을 경우에는 사형이다. 이란에서는 국가 주도로 투석형까지 시행했을 정도.

현재의 지구가 서기 2024년이라고 80억 전세계 인구가 모두 2024년에 사는 것이 아니다. 인간도 사회적이고 집단적이고 권력지향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인간 역시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권력 유지라는 이유 하나로 문명을 석기시대로 얼마든지 돌릴 수 있다. 현재 이슬람 근본주의 및 극단주의는 자기 지역의 경제적, 문화적 빈곤을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에서 자기의 권력을 내려놓지 않기 위해 자신의 지역과 세계관 전체를 중세만큼도 못한 과거로 돌려 약자를 탄압하여 자기들의 권위를 과시하는 것이고, 그것이 근대 이후 타문화권에서는 줄어들고 있는 여성 억압이 그대로 남게 된 결과다.

5. 이슬람에서의 여성 인권

쿠란 16:97
옳게 행동하는 자는 남자이건 여자이건 그가 바로 믿는 자이고, 따라서 우리는 그에게 좋은 삶을 보장할 것이며, 우리가 그들이 행하였던 것 중 최선의 것으로 그들에게 보상할 것이다.
아래의 글을 읽기 전에 확실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현재 이슬람교를 믿는 지역에서 타 종교 지역에 비해 여성에 대한 차별이 크게 심각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허나 이 문단을 읽은 후에 이슬람교가 무조건적으로 여성을 강력 탄압하는 종교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중세 기준으로 예외적으로 이혼 및 여성의 재산권을 보장한 것은 물론, 전근대 기준 여성 인권에 가장 개방적인 문화권으로 꼽히는 고대 로마법에서조차 성폭행 피해자의 신분 및 직업에 따라 처벌의 경중을 다르게 한 것[17]에 비하면 이슬람법은 최소한 명목상이나마 신분 상의 제한 없는 평등을 추구하였다. 심지어 초기 이슬람교 사회는 오히려 여성 인권이 지금의 일부 이슬람 국가보다도 많이 존중되는 편이었다. 예를 들면 무함마드는 남녀가 함께 기도하며 자신의 교리를 들을 수 있게 하였고 남녀 간의 동등한 교육을 주장하였다. 쿠란 3:195에서는 남자건 여자건 동등하다 하였고, 쿠란 4:32에는 남녀에게 동일한 경제적 권리를 줄 것을 명시해 놓았다. 쿠란 9장에서는 지속적으로 '남녀 믿는 자들'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이처럼 이슬람의 여성인권이 언제 어디서나 극도로 억압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래에 서술되어 있는 내용들도 분명 현대 이슬람교의 커다란 문제점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슬람의 문제점을 가지고 과도한 혐오성 인식에 빠지거나, 아니면 역으로 초기 이슬람이나 일부 왕조, 여성지도자의 사례만을 들어 이슬람이 여성인권을 지금까지도 훌륭히 보장하는 종교라는 식으로 왜곡하는 태도는 둘 다 지양해야 할 것이다.
남성은 여성의 보호자라 이는 하나님께서 여성들보다 강한 힘을 주었기 때문이라 남성은 여성을 그들의 모든 수단으로써 부양하나니 건전한 여성은 헌신적으로 남성을 따를 것이며 남성이 부재 시 남편의 명예와 자신의 순결을 보호할 것이라 순종치 아니하고 품행이 단정치 못하다고 생각되는 여성에게는 먼저 충고를 하고 그 다음으로는 잠자리를 같이 하지 말 것이며 셋째로는 때려 줄 것이라[18][19] 그러나 다시 순종할 경우는 그들에게 해로운 어떠한 수단도 강구하지 말라 진실로 하나님은 가장 위대하시니라
파하드 국왕 쿠란 출판청에서 쓴 '성 쿠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 4장 34절. ( 마침표는 원문에도 없음)
Allah’ın, (iki cinse) birbirinden farklı özellik ve lütuflar bahşetmesi ve mallarından harcama yapmaları sebebiyle erkekler kadınların yöneticisi ve koruyucusudurlar. Sâliha kadınlar Allah’a itaatkârdır; Allah'ın korumasına uygun olarak, kimsenin görmediği durumlarda da kendilerini korurlar. (Evlilik hukukuna) baş kaldırmasından endişe ettiğiniz kadınlara öğüt verin, onları yataklarda yalnız bırakın ve onları dövün. Eğer size itaat ederlerse artık onların aleyhine başka bir yol aramayın; çünkü Allah yücedir, büyüktür.
하나님께서 (두개의 성별이) 서로서로 다른 특성과 영광에 대해 언급하시었고, 재산의 소비로 인하여 남성들은 여성들의 관리자 및 보호자이다. 정숙한 여성들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이니 하나님의 보호에 있어 적절하게 아무도 보지 아니하는 상황에서도 그녀들은 스스로를 지키는 자들이다. 그대는 (결혼 법에) 대항할 것이 우려되는 여성들에게 훈계하고, 그녀들을 침대에서 홀로 있도록 할 것이며, 그녀들을 때려라. 그녀들이 그대에게 순종하는 경우에는 더이상 그녀들에 대해 어떠한 다른 방법도 강구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하나님은 위대하며, 크신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피파를 따르는 튀르키예 국가종무청에서 쓴 '성 쿠란 의미의 튀르키예어 번역'의 동일한 구절 #[20]

이슬람은 그 당시의 아랍권 민족의 문화 혹은 관습(사실은 인습)보다는 상대적으로 여성의 권리를 존중했던 편이었다. 하지만 근대를 지나도 대다수 신자들이나 기득권층들이 여전히 그 시대에 머물며 개선을 거부하려 드는 태도가 완고하게 지속된 결과, 21세기가 된 현재는 어떤 종교보다도 여성을 혹독하게 차별하는 종교가 되어 버렸고 관련한 비판도 많이 받고 있다.
꾸란 4:3
만일 너희들이 고아에게 공정하지 못할 것같이 생각되면 누군가 마음에 드는 두 명, 세 명, 네 명의 여자와 결혼해도 좋다.[21] 만일 공평하지 못한 생각이 들게 된다면 한 명으로 하든가 너의 오른손에 소유하고 있는 것[22][23]으로 하라. 그러는 것이 불공평하게 될 염려가 없다.
꾸란 4:43
믿는 자들이여, 너희가 아프거나 여행 중일 때 화장실에서 돌아왔을 때, 여성을 만졌을 때 물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는 깨끗한 흙위에 따이얌뭄(이슬람식 세정의식)을 하고 너희 얼굴과 양손을 문질러 깨끗이 하라.[24]
꾸란 33:59
예언자여, 그대의 아내과 딸들과 믿는 여성들에게 베일을 쓰라고 이르라. 그때는 외출할 때라. 그렇게 함이 가장 편리한 것으로, 그렇게 알려져 간음(강간)되지 않도록 함이라. 실로 하나님은 관용과 자비로 충만하심이라.
이를 토대로 현실에서 적용되는 샤리아 율법에서도 아내에 대한 체벌을 포함한 성차별 논란이 되는 규율들을 규정하기도 한다. 일단 이론적으로는 위의 조항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여성에 비해 우월한 육체적 조건을 이용하여 여성을 부양하는 반대급부로서의 권리 보장이며, 여성이 남성에 헌신하는 것도 이러한 남성의 역할에 대한 보답 형태라고 경전에 규정되어 있긴 하다. 그리고 심지어 그 중에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듯한 대목까지 있어 다른 종교로부터의 비난 대상이 됨은 물론 무슬림끼리도 견해가 갈리는 등 항상 비판의 대상이 된다. 아내를 때릴 때에도 에티켓이 있다는 동영상(영어 자막)도 참조.[25][26]

경전상에 이와 같은 차별 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은 오히려 아라비아 반도 지역의 여성 인권을 크게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이슬람 교리 이전부터 중동지방의 민족 전통이었다.[27][28] 이슬람 이전에는 여성은 남성 소유의 물건 정도의 취급을 받았고, 남성은 재력이 허용하는 한 아내를 원하는 만큼 거느릴 수 있었다. 이를 무함마드가 "너희는 그 많은 아내들을 모두 만족시켜 주지 못할 것"이라며 4명까지로 제한하자 아라비아 귀족들이나 부유층들은 불만을 가지고 이슬람에 반대하는 경우도 꽤 많았다.[29] 그 밖에도 쿠란 4장의 니싸아에서 결혼 시 지참금 지급, 재산 상속, 분명한 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학대 금지, 아내 편애 금지,[30] 여성을 간음죄로 고발 시 4명의 증인 필요 등 여러 구절을 통해 여성의 지위를 보장하였고,[31] 심지어 이를 지키지 못할 거면 결혼을 하지 말라고까지 못박아뒀다. 히잡, 니캅, 부르카 등 현대에는 반대 여론이 심각한 여성 옷차림도 당시 기준으론 무슬리마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그러나 보호의 순기능이 불필요한 현대사회에까지도 수구적으로 계속되는 강요로 여성들을 옥죄는 탄압의 굴레라는 평가가 많다.

5.1. 역사 속 여성 무슬림의 사회 참여

역사상 이슬람에서의 여성은 사회 주도적인 역할을 맡기도 하였다. 우선 무함마드의 가족들 중 딸 파티마와 마지막 부인 아이샤는 무함마드 사후 '신도들의 어머니'로서 이슬람 공동체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전자는 알리와 결혼한 후 많은 하디스를 전하며 쉬아 이슬람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따라서 그녀는 파티마 앗 자흐라 (고귀한 파티마)로 불리며 쉬아파에게선 성인 취급 받는다. 괜히 유일한 쉬아 칼리파 왕조인 파티마 제국이 그녀의 이름을 딴 것이 아니다. 후자인 아이샤는 반대로 알리와 대립하며 수니파 공동체의 원로가 되었다. 그녀는 이슬람 내전인 1차 피트나가 터지자 첫 전투에서 몸소 낙타에 올라 반군을 지휘하였다. 따라서 이 전투는 그녀를 기리며 낙타 전투로 명명되었다.[32]

한편 시아파 형성의 발단이 된 카르발라 참극 후 우마이야 조의 수도 다마스쿠스로 압송된 후세인 빈 알리의 후예들도 후세인의 여동생 제이납이 칼리파 야지드 1세 및 장군들에 맞서 열변을 토하고 여론의 지지를 이끌어 내었기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따라서 시아파에서는 그들이 추앙하는 이맘들을 구한 제이납을 신성시하고 있다. 애초에 시아파에서는 이맘의 아들과 딸 모두를 신성시 하는 편이다. 이란에서 마슈하드 다음가는 쉬아 성지이자, 호메이니를 비롯한 현 신정정치의 실세들이 공부한 도시 역시 8대 이맘 알리 레자의 여동생 파티마 메수메가 안장된 곳이다.

이후 칼리파 제국인 아바스 왕조 파티마 왕조에서는 태후들의 시대가 열리기도 하였다. 9세기 초반 아바스 조의 카이주란은 두 아들을 칼리파를 추대하고 정사를 보았다. 그중 후자는 천일야화 하룬 알 라시드인데, 카이주란이 사망하자 그는 맨발로 진흙탕 길을 걸으며 장례 행렬을 따랐다. 11세기 초반 파티마 조의 공주 시트 알 물크는 오빠 알 하킴을 폐하고 정치를 주도하였다. 십자군 전쟁기인 12세기 다마스쿠스의 튀르크계 부리 왕조에선 태후 주무루드가 두 아들들을 아미르로 옹립한 후 권력을 독점하기도 하였다. 오스만 제국 역시 휘렘 술탄을 시작으로 16세기 후반 ~ 17세기 전반 시기, 태후들이 정사를 주도하여 여성 술탄 시대라 불린다. 이 시기를 다룬 작품으로, 위대한 세기 : 쾨셈이 있다.

이슬람 사상 최초의 여왕은 12세기 예멘에서 나왔다. 무려 38년간 북 예멘을 통치한 말리카툰 (여왕) 아르와 앗 술라이히가 그 주인공인데, 그녀는 금요 예배 (쿠트바)에서 언급된 첫 여성이었다. 12세기 말 터키 살투크 왕조의 마마 하툰 역시 10년간 독자적으로 통치하였다. 여성 술탄, 즉 술타나 중에선 13세기 아이유브 왕조를 청산하고 맘루크 왕조를 개창한 샤자르 알 두르 (Shajar al-Durr)가 있다. 그녀는 남편 앗 살리흐의 죽음을 숨기고 7차 십자군에 대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비록 압바스 칼리파의 반발로 백일도 가지 못했지만 일반적인 군주에 부합하는 권력을 행사하였다.[33]

이란에서는 13세기 후반 일 칸국의 제후국인 쉬라즈 살구르 왕조 케르만 쿠틀루그 칸국에서 여왕들이 나타났다. 전자의 아비쉬 하툰과 후자의 투르칸 등은 쿠트바 (금요 예배)에서 일 칸 다음으로 언급되는 등 명실상부한 군주로 인정되었다. 중동 지방과 달리 남아시아 지역에서는 수십명의 여성 군주들이 출현하였다. 대표적으로 델리술탄왕조 라지아 술타나가 있다. 몰디브에서는 술타나가 여럿 있었고, 자바의 파사이 술탄국에서도 술타나가 있었다. 아체 술탄국에서는 4명의 술타나가 연달아 즉위하였다. 인도 중부에서는 무굴 제국 붕괴 후 출현한 지방 왕조들 중 여성 군주가 드물지 않게 있었다.

정치적 측면 외에 여성들은 사회, 문화 (학문)적으로도 많은 역할을 하였다. 무함마드 시대의 사하바 여성들 중 일부는 메카 군대에 대한 지하드에 참가하였다. 우후드 전투에 참전한 누사이바 빈트 카압의 경우처럼 직접 싸운 경우 보다는 전장에서 부상자를 돌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루피다 알 아슬라미야는 이슬람 최초의 간호원을 세워 활약하였고, 현재 바레인 대학에서는 매년 간호 분야의 우수 학생에게 그녀의 이름을 붙인 상을 수여한다. 또한 수니파 이슬람의 4대 법학파 중 하나인 샤피이파의 창건자 이맘 무함마드 앗-샤피이는 이집트에서 하산 빈 알리의 증손녀인 사이다 나피사의 강의를 들었으며, 그녀의 애제자로서 사망한 후 유언에 따라 장례 예배를 스승께 맡기기도 하였다. 그외에 이슬람권, 그리고 세계 역사상 첫 대학으로 평가받는 모로코의 알 카라위인 대학 역시 피흐리 가문의 상속녀 파티마 알 피흐리에 의해 설립되었다.

애초에 무함마드가 남성 뿐만 아니라 여성 역시 교육에 정진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한국에서 고려가 세워지던 918년에 압바스 조의 바그다드에선 세속 법원장으로 여성인 투말이 임명되어 5년간 재임하였다. 위키피디아 문서 남성 울라마들 중에선 12세기 이슬람권의 대학자 이븐 루시드(아베로에스)가 여성과 남성의 완전한 평등을 주장하였다. 무슬림 / 무슬리마 외에 비무슬림 중에서도 10세기 루브나의 경우 코르도바의 칼리파 알 하캄 2세의 비서로 활약하였고 그 황후인 수훕은 후에 태후로서 막후에서 정치를 주도하는 등 종교를 떠나 여성 자체로서 활약한 경우도 있었다.

현대와 비교하여 중세 당시에는 전사, 즉 남성의 몸을 가진 이들만이 약육강식의 강자였다. 그러나 현대로 오며 육체적인 폭력이 제한됨과 동시에 사람들은 육체의 힘이 아닌 두뇌의 힘을 활용하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하고, 이에 따라 여성의 인권의 부분이 크게 성장하였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옛날 옛적, 전사들의 전쟁이 숱하던 당시 육체가 남성에 비해 약한 여성들은 부속품이나 동물 취급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았고, 쿠란에 명시되어 있는 것들은 그 당시 여성의 인권을 한 단계나마 끌어올리고자 노력했다고 봐야 한다. 1단계에서 2단계로 뛰는 것은 비교적 타협이 가능하지만, 1단계에서 갑자기 4단계로 뛸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다른 문명권이 여성인권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거나[34] 최소한 개선하려는 시늉이라도 내가는 식으로 끊임없이 개혁을 추구했던 때[35]에 정작 이슬람은 이슬람 근본주의로 대표되는 수구사상에 빠져들어 개혁과 인권상승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버렸다는 것이다.

5.2. 현대의 여성 인권 억압

여성 인권 문제가 제대로 해동되기 시작한 현대에 와서는 이슬람의 교리가 오히려 여성의 권리를 억압한다고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는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고자 한 제도들의 진정한 의미를 외면한 채 수구적인 기득권 이슬람 학자들이 "경전에 명시된 것이 여성에 대한 권리의 전부"라고 주장한 데에서 비롯되었다.[36] 이로 인해 과거에 혁신적이었던 여성 보호 조치들의 시대와 동떨어지게 된 요소들을 현대사회에서 그대로 적용함에 따라 오히려 여성차별적인 논란을 불러 일으킬 수밖에 없다.

특히 샤리아 정교일치 체제인 이슬람 국가에서는 국법 자체에 이러한 여성차별적 논란이 되는 요소들이 포함되기 때문에 이슬람 외부에서 볼 때는 여성 인권에 대해 큰 비판과 우려를 가지고 있다. 일단 근본주의가 대세인 이슬람 주류 대중에게 씨알도 안 먹혀서 그렇지 여성의 권리부분을 재해석하는 학파들이나 학자들도 일부 존재는 하며, 이슬람 페미니즘도 있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정치와 주류 사회에 거의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종종 여성에 대한 인권 침해가 다른 문화권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지경으로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서 문제가 되고 있다. 명예살인의 경우 2010년 명예살인의 세계적 추세 연구에 따르면 현재는 그 수가 더욱 증가하고 국가별로 제대로 집계도 되지 않아 신뢰할 수 있는 추산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전까지(2000년도 UN 추산) 1년에 무려 약 5천 명의 무슬리마들이 이슬람과 가부장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살해당했으며[37] 전 세계 명예살인의 90%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소행이었다. 애초에 인권이 뭐고, 민주주의가 뭐고, 평등이 뭐고, 생명 존중 사상이 뭔지를 알면 악습이 줄어들겠지만 이런 상식적, 인권적인 관점조차 서구 세력의 반이슬람 사상으로 여기는 이슬람 근본주의 무슬림이 많다. 오히려 서구식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너무 적은 탓에, 아랍의 봄을 겪었던 여러 나라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서구식 민주주의 도입이 오히려 근본주의자들의 합법적 정계진출 등을 조장하여 사회의 근본주의화와 여성차별을 더 낳는 결과까지 보여주고 있다. 당장 무슬림 여성들조차 쿠란은 남성의 길과 여성의 길을 딱딱 나눠서 가르치고 있으니 쿠란의 가르침대로만 살아야 하며 서구 문화에 물든 남녀평등주의자들의 선동에 놀아나지 말라고 주장하는 답이 없는 상황이 계속 심해지고 있다. 단, 세속적인 국가에서 비무슬림 가정에서 자라다가 정상적인 신앙 활동을 위해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람의 경우 어릴 때 국가에서 받은 세속주의적 교육에 의해 자기 스스로 교리와 현실의 차이를 인식하여 개방적인 인식을 보인다. 한 한국인 무슬림 개종자의 증언에 의하면 전근대적인 이슬람권에서 자란 무슬림보다는 비무슬림인 한국인과 사상적으로 훨씬 더 동질성을 느낀다고 한다. 이들 중에서는 자이툰 부대에 파병갔다가 이슬람교로 개종한 군인들도 있었는데, 조국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것이 지하드라고 느끼기도 한다. 뭐 같이 종교 민족이 달라도 같은 나라에 살면서 부대끼는 만큼 당연한 일이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된 갤럽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샤리아를 실정법으로 반영해야 하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한 찬반 비율이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남녀간의 차이는 크지 않아, 무슬리마는 샤리아로 인해 특별히 차별을 받고 있지 않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하며, 갤럽은 이를 통해 무슬림의 여성 인권에 대한 태도는 생활 수준이나 취업률 등 경제적, 사회적 요인이 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 결론을 내렸던 적이 있다. 이 조사에서 여성이 먼저 이혼을 요청할 권리를 허용해야 하는지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여성 인권에 대한 견해에 종교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응답한 쪽은 찬반 의견이 5:5였으나 종교가 영향을 끼친다고 응답한 쪽은 7:3으로 나와, 대다수 무슬림들은 이슬람 교리에 따른 가치판단을 하는 사람이 보다 여성 인권을 보장한다고 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설문조사는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종교가 가치판단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대답한 사람은 실제로는 자기 스스로의 가치관과 종교 사이의 갈등을 겪지 않은 사람(즉, 응답자인 이슬람권 상당수 여성들의 사고방식 자체가 이미 이슬람 및 남존여비적인 문화에 젖어있어 자기들이 명백히 이슬람 교리에 따라 불합리한 처우를 받고 있음에도 이슬람이 여성차별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즉, 이런 식의 편향성 짙은 조사만 가지고 이슬람권의 명백한 여성차별 행태에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전혀 책임이 없다고 보는 식의 견해는 큰 무리가 있다.

2015년 3월 발표된 여성 인권에 대한 UN 보고서에서도 이슬람 국가와 비이슬람 국가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례들을 나열하며 극단주의와 보수주의의 대두가 여성 인권의 장애라고 명시하였고, 이를 인용한 많은 기사가 "이슬람이 아닌"이라는 설명을 제목에 달았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애초에 서구나 비이슬람권에서 이슬람교의 특정 사건사고나 테러 등에 대해 이슬람포비아로 몰리지 않기 위해, 또는 이슬람권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이슬람의 본래 모습은 그렇지 않다"는 식의 일부 이단식 정치적 올바름 수사를 쓰는 것은 권위자나 언론, 정치계를 가리지 않고 상투적일 만큼 흔한 일이며, 원인으로 지목된 소위 '수구적인 사상'이나 '극단주의의 대두' 역시 결국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그 자양분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 명백한 현실이고, 주된 이유로 '기득권 남성'을 언급하나, 결국 그 기득권 남성들의 여성탄압 관련 수단으로 명백히 악용돼서 쓰이고 있으면서 제대로 된 광범위한 개혁조차 시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이슬람계 주류라는 것은 아무리 '일부' 예외사례를 들어도 합리화되기 힘들다는 점은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다.

힌두교 신자가 80% 이상에다 이슬람권과 마찬가지로 종교 근본주의, 성차별적 악습이 심각한 인도의 사례를 들면서 물타기를 시도하거나, 반대로 이슬람 국가인 튀니지 우즈베키스탄( #)의 인권탄압 내지는 명예살인 문제가 적은 몇몇 국가 사례를 드는 경우도 있는데, 인도는 힌두교도 문제지만 인도 내부의 여성인권 문제에는 인구의 18%나 되는 인도 무슬림들의 가정폭력, 여성인권탄압 문제 역시 한몫 하고있는 것이 현실이며 파키스탄 항목에서도 확인 가능하지만 인도 내부에서도 무슬림 가정의 남성 가장들이 힌두교, 기독교 같은 타종교보다 여성폭력 비율이 높다. 튀니지나 우즈베키스탄 같은 나라 역시 이쪽의 무슬림들이 성차별적 태도에서 많이 벗어난 이유는 물론 이슬람을 비교적 널널하게 나이롱으로 믿던 문화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해당 지역의 이슬람 지도자나 신자들이 개념있어서라기보다는 아랍 사회주의 독재정권이나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세속적 분위기가 많이 정착되어서(즉 이슬람이 목소리를 크게 낼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아서)인 이유도 무시할 수 없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도 무슬림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종교근본주의나 성차별이 심하지 않다는 근거로 내세워지는 것들[38]도 반박이 가능한 주장인데,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에도 여성인권 억압을 주장하는 근본주의 이슬람은 국민들 사이에 거대한 조류를 이루고 있으며, 과거부터 세속주의(판카실라)를 내세운 독재정부에 의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지속적으로 탄압을 받고 세속적인 분위기를 강제로 유지한 결과 그나마 이렇게 된 것이고, 애초에 그쪽 기후는 과하게 습한 특성 때문에 잘해봐야 무슬리마들에게 히잡 이상(니캅이나 부르카)을 강요하기가 힘들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또 여성 정치인들의 집권을 가지고 괜찮다는 듯 주장하기에도 힘든 것이, 최악의 여성인권을 자랑하는 파키스탄에서도 부토같은 여성 집권자가 등장한 적 있지만 아무도 파키스탄 이슬람계가 여성인권을 존중한다고는 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여성정치인 한두명이나 아이돌 그룹같은게 아니라 이슬람이라는 종교 자체가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세계 많은 지역에서 세속 정권에게 탄압, 제재나 견제를 받지 않는 이상 근본주의와 차별적 악습을 버리지 못하고 집권자, 근본주의적 대중의 악습에 기름을 붓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교적 세속적이고 종교적 색채가 옅은 편인 터키, 모로코, 요르단에서조차 명예살인 뉴스가 간간이 들린다. 이런 사실로 볼 때 이슬람 이전부터 중동 일대에 존재하던 악습이 큰 개선도 없이 이슬람의 이름으로 현재도 행해지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중동의 대부분 국가들에 이슬람이 퍼져 있는데다 그 역사가 하루 이틀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계속 명예살인 문제를 통제하기 어려워하는 것만 봐도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여성인권 문제의 책임을 면피시키기는 어렵다. 이란만 하더라도 서구적 근대화를 추진하고 지금보다 여권이 보장된 팔라비 왕조 때에도 여전히 이를 무시하는 근본주의자들의 명예살인은 있었다.

단, 많은 이슬람 학자나 지도자들은 간통자에 대한 명예살인에 대해서는[39] 이슬람 종교 정신에 위배된다고 비판한다.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Khamenei)는 명예살인은 이슬람의 정신에 위배되며, 만일 간음과 같은 죄를 저지르더라도 관대한 처벌에 그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집트 아즈하르 대학교 신학자 셰이크 아티야 사끄르(Sheikh Atiyyah Saqr)는 "이른바 명예 살인이라고 불리는 행태는 도덕과 법을 무시한 무지의 소치에 불과하다. 이러한 관행은 일벌백계로 다스리지 않으면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질책의 목소리를 높였다. 출처 하메네이가 저 말을 한 게 60년 이전인데 그때는 이란에 투석형이 남아있던 시절이다. [40]

명예살인이 가장 빈번한 파키스탄에서 최근에 처벌 강화 법안이 통과되었다. 이것이 명예살인을 뿌리뽑는 단초가 될지, 여성 인권에 대한 근본적인 의식 개선이 없는 채로 진행되어 성과를 거두지 못할지는 지켜봐야 할 일.

결론적으로, 21세기 현재 많은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낮은 것은 사실이다. 아랍권 민주화 운동에서 여성들이 큰 활약을 하면서 이들의 발언권이 어느 정도 커졌고 덕분에 여권 신장이 느리게나마 진행되고 있지만, 민주화 이후 사회 혼란을 틈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뿌리를 내리는 지역이 많아지는 데다가, 진작에 깊게 뿌리 내린 견고한 남존여비, 이슬람 근본주의의 벽은 쉽게 깨지지 않고 있어 한숨을 내쉬게 한다. 이집트 새 헌법, 여성 권리 제한 논란 (연합뉴스) 아프간 여성, 취직했다고 두 눈 흉기에 찔려 실명 (연합뉴스))

5.3. 현대의 무슬림 여성 지도자

20세기 세속주의와 이슬람 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여성 정치인들이 근근히 배출되고 있다. 특히 방글라데시의 경우 10 ~ 13대 총리가 모두 여성이다. 1991년부터 2023년 현재까지 33년간 두명의 여성 지도자가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대권에 도전하는 제1야당 대표 로샨 에르샤드 역시 여성이다. 다만 로샨 에르샤드는 현 총리 셰이크 하시나와 손을 잡았다.

아랍에서는 튀니지가 여성 총리를 두고 있으나 대통령 중심제라 국가 원수는 아니다. 여성의 정치 참여는 커녕 운전도 못하던 사우디는 2019년 여성 외교관 리마 빈트 반다르 알 사우드를 미국 대사로 임명하였다.

무슬림 다수 국가인 키르기스스탄은 3대 대통령으로 여성인 로자 오툰바예바를 두었다. 다만 그녀가 무슬림인지 여부는 애매하다. 그외에 여성의 정치 참여가 활발한 (혹은 했던) 이슬람권 국가로 아프가니스탄 왕국, 아제르바이잔, 이집트 등이 있다. 2024년 현재 국가 원수가 여성인 무슬림 다수 국가는 탄자니아, 코소보이다.

6. 여성 인권을 강조하는 이슬람 일파 및 조직

비록 주류 이슬람에서 이단 취급 당하는 소수이지만, 이슬람권에서도 여성 인권을 강조하며 여성에 대한 교육과 권리 향상 등을 주장하거나 정책적으로 시행한 지도자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 지휘관이였던 아흐마드 샤 마수드와 터키의 초대 대통령 케말 아타튀르크, 튀니지 초대 대통령 하비브 부르기바, 전 알제리 대통령이었던 후아리 부메디엔, 전 오만 국왕인 카부스 빈 사이드 알사이드 등이 있다. 대체로 석유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낮을수록 여성의 지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자원의 이득 없이도 국가경제를 꾸려나가야 하므로 여성의 사회 참여 기회도 늘어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49][50]

이란은 70년대까지 독재적인 서구화 정책으로 성 자유주의가 유입되는 것 같았지만 80년대에 이슬람 혁명으로 사실상 무산되었으며 여성이 히잡 벗는 것이 금지될 정도이다. 그래서인지 이란의 여성 모델은 모두 히잡을 착용하고 있다.

이란 뿐만 아니라 다른 중동권 국가들도 히잡을 법제화하지 않고 있지만[51] 성보수주의가 심해 히잡 안 쓴 여성을 창녀로 간주할 정도이다. 게다가 미인대회, 모델조차 금지되어 있다.[52]

예외적으로 시리아, 레바논, 튀니지, 이집트, 알제리, 모로코, 이스라엘, 튀르키예는 성 자유주의가 있는데, 시리아, 레바논, 튀니지는 세속주의자 장기집권, 이집트는 엘시시군부의 샤리아 폐지, 모로코는 국왕의 여성 사회활동 추진을 지지했으며 이스라엘 유럽 유대인[53]들이 이주해서 만든 국가이며 튀르키예는 공화국 수립 이후 철저히 세속주의를 내세운 국가이다. 다만, 위에 언급된 국가들 사이에서도 차이는 존재해서 대체적으로 이스라엘 튀르키예 도시에서 만큼은 서구와 준하는 성 자유주의가 보장받는 반면에[54] 시리아, 레바논. 튀니지, 이집트, 모로코, 알제리는 아무리 도시라도 서구에 비해서 미치지 못하는 편이다. 물론 다른 중동권 국가들에 비해서는 나은 편인 것은 사실이다. 이스라엘 옆의 팔레스타인은 성 보수주의 수준이 다른 아랍 국가와 별 다를 바가 없다.[55]

이슬람주의자들은 여성의 노출을 금지하고 있고 서구내에서도 이슬람주의자들이 히잡을 정당화하려고 온갖 프로파간다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이 프로파간다를 유지하기 위해 서양의 성적 자유주의를 타락한 문화로 선전하면서 페미니즘도 탄압하는 경우가 많다. 이게 극단주의로 경도되면 히잡을 안 썼다고 사형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케이스의 대표적인 주자가 바로 ISIL, 알 샤바브, 보코하람 등 극단주의 단체들이다.[56]

여담으로 똑같이 이슬람주의가 상당히 세가 있는 경우라도 여성의 노출에 대한 억압의 정도가 천차만별이다. 대표적으로 소말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같이 종교에 의지해야 될 정도로 빈곤하거나 내전이 일어나서 치안이 불안정하다면 이슬람주의의 수준이 극우 파시즘이라고 해도 무방할 지경이다. 실제로 이슬람 극단주의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곳도 바로 저렇게 저개발이고 빈곤한 국가인 경우가 많다. 그나마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인 경우는 이슬람주의가 강세이긴 해도, 여성의 노출을 금지하지만 속에 란제리를 입는 것까지 금지하지 않는다. 물론 터키 같이 이슬람주의 정당의 독재에도 불구하고 세속주의가 강하다면 히잡조차 안 쓰는 경우도 있다.

[1] 심지어 명백히 연애 상황이 아닐 때에도 무조건. [2] 실제로 무함마드 제자들 중 여성 제자도 있었다. [3] 이 경우는 유럽 국가에서는 기존부터 허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충돌할 여지는 없다. 다만 최근 유럽이나 북미에서 이루어지는 사촌간 혼인의 상당수가 무슬림 이민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는 간혹 있다. [4] 해당 사건이 불거진 후 공교롭게도 쾰른 집단 성폭행 사건이 터지면서 무슬림들이 여성을 경멸하기 때문에 여성과의 신체 접촉을 거부한다는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가 퍼졌다. [5] 냉전 시기 공산권의 우수한 학생들이 인문학은 검열이 너무 심하므로 대신 공학, 자연과학을 주로 공부했던 것을 생각하면 된다. 문제는 이슬람 문화권의 근본주의 성향 검열은 실사판 1984 수준으로 동구권의 문학 예술 검열조차 아득히 넘어선다는 것. [6] 인도네시아가 이 쪽으로 유명하다. [7] 중앙아시아 5개국, 튀르키예, 아제르바이잔, 북키프로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알바니아, 코소보 [8] 과거 냉전 시기 공산권 지역에서는 무슬림 여성과 비무슬림 남성의 결혼도 드물지는 않았지만, 오늘날에는 비무슬림 남성과 무슬림 여성의 결혼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9] 세속주의 성향의 무슬림들은 이를 철저히 지키지 않는 경우도 있다. [10] 한 해에 300명 꼴로. [11] 혁명이 한창 벌어지던 시기 모든 공직에서 여성들을 추방했었다. [12]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이슬람 문화권 출신 난민이 많은 프랑스에서는 해변에서 젊은 여성을 상대로 성희롱을 하는 문제가 꽤 심각해서 프랑스 여성들이 해변에서 선탠 하고 싶으면 자기 나라 해변 대신에 스페인이나 크로아티아로 간다는 의견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은 여성 본인이 성범죄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지 해변 복장이 성범죄를 불러일으킨다는 식으로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발언은 합리화할 수 없다. [13]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힌두교 문화권도 대표적인 일부일처제 문화권이다. 마하트마 간디 같은 인물도 평생 일부일처제를 지켰다. [14] 치마 속을 몰래 훔쳐본다든지. [15] 이슬람에서는 신의 형벌이 불을 통해 가해진다고 믿으므로, 죽은 사람을 화장하는 것조차 극도로 꺼린다. [16] 쿠란엔 동성애 전반에 대한 직접적인 금지 조항은 없다고 하나, 쿠란에 준하는 이슬람의 율법 레퍼런스인 하디스에 동성애 금지가 나와 있기에 사실상 동성애는 이슬람 교리상 큰 죄다. [17] "만일 누군가 가솔 노예처럼 옷을 입은 젊은 여자에게 같이 자자고 제안한다고 하더라도 크게 잘못된 일은 아니다. 지체 높은 부인처럼 입지 않고 매춘부처럼 옷을 입은 경우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 출처: 로마법 학설집 47.10.15.15.
"사람들 말에 따르면 당신과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아티나의 한 소도시에서 무언극 여배우를 강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배우를 강간하는 것은 사나이들의 오래된 권리입니다. 대도시를 벗어난 시골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플란키우스 변호 30( 키케로의 친구 중 한 명인 플란키우스는 젊었을 때 무언극 여배우를 집단 강간했다가 법정에 서게 된 적이 있었는데, 당시 플란키우스의 변호사는 위와 같은 말로 플란키우스의 무죄를 주장하였다.)
[18] 이 구절은 남편의 아내에 대한 구타가 무죄가 되는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대단히 위험한 구절이다. 일부 학자들은 무함마드가 아내를 때린 남편을 규탄하였다는 기록을 근거로 때리는 것이 아닌 이혼을 제안하라는 말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때리다가 맞다는 주장이 유력하다. 영문 위키 문서 위키이슬람 문서 참조. [19] 아랍어로 '아드라부 안후나'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현대 아랍어 문법으로는 해석이 애매하다. 아드라부란 문구로 시작할 경우는 보통 '멀리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뒤에 안후나라는 부분이 구분하는 한정성 때문에 사전대로라면 이 문구는 '때리다', '후드려패다'라는 문구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또한 한국어 쿠란에서는 저 아내를 때리라는 단락에 '가볍게'라는 원문에도 없는 첨언을 달아 번역했다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 다만 튀르키예 국가종무청의 공식 주석에서는 해당 구절에 대해 남편이 여성을 때리는 것이 허용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주석에서는 메디나로 이주한 선지자 무함마드와 무하지룬들이 메디나의 부인들이 기가 세서 남편들을 무시하고 가정의 의무를 소홀히 하고 있음을 보고, 또 그러한 메디나인의 풍습이 무하지룬 사이에서도 퍼져나가려는 것을 보고는 가정의 질서를 세워야함을 언급하는 것을 언급한다. 또한 알 부하리가 전한 하디스"Nikâh",93절에서 선지자 본인이 남편은 아내를 결코 구타해서는 안된다는 말이 있음을 상기시키며, 이는 아랍인들 사이에서 만연했던 가정폭력을 해결하려던 선지자의 의지가 들어가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구타에 있어서도 "남편의 분노를 표출할 수 있을 정도의 상징적인 표현"이며, 구타의 도구 또한 미스박(아랍인들이 양치할때 쓰는 작은 나뭇가지)정도로 제한되어야 한다는 프크흐(Fıkıh)를 인용한다. 결론적으로 해당 구는 남성이 가정부양의 의무를 맡고 있으며, 결혼법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여성을 훈계하고 계도할 수는 있지만 과도하게 처신해서는 안된다는 제한이 붙는다고 본다. [21] 우스운 사실은, 이 쿠란의 규정을 어긴 당대의 유일한 무슬림이 무함마드 본인이었다(!). 그는 정치적인 필요(예를 들어 정략 결혼한 아이샤 빈트 아부 바크르 등)나 개인의 음욕을 충족하려는 목적으로(대표적으로 양자의 며느리였으나 간통하여 결혼한 자이납 빈트 자흐시, 적 부족장의 아내로 강간에 가까운 강제결혼을 했던 샤피야 빈트 후야이 등) 죽을 때까지 '본인에게만 허용된 신의 특별 계시'라는 미명하에 무려 13명이나 되는 아내를 두었다. 또 이 아내들을 공평하게 대하라고 본인이 말해놓고 정작 자신은 아내들을 공평하게 대하지 않았으며, 일부 아내만 편애(대표적으로 마리아 빈트 샤문)하는 바람에 아내들끼리 거짓 고발과 다툼이 있게 방조하기도 했다(...) 무함마드 문서 참고. [22] 여종 혹은 포로로 잡히거나 사온 이교도 여자. [23] 성노예라는 주석은 적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쿠란과 하디스의 다른 내용들을 보면 결혼과 성관계에 대한 자세한 조건들이 열거되어 있는데 이슬람 율법으로 성관계는 오직 결혼한 이성과만 가능하고, 그렇지 않은 모든 관계는 전부 간통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또한 간통에 대한 죄는 당시 아랍인의 관습법으로나 고대 유대 율법이나, 고대 유대 율법을 참고한 샤리아법으로도 모두 사형이다. 또한 무슬림의 결혼은 전적으로 남녀가 모두 자발적으로 동의하고 혼인증서에 서명하고, 신랑이 신부에게 상당한 금액을 지불해야만 가능하다. (일부 학파의 해석에 따르면 종교지도자의 허가와 증인도 필요함) 때문에 성적 착취를 위한 노예의 소유는 그 자체가 이슬람법으로 볼때 불법이다. 하렘의 사례를 보고 이런 말이 나오는거 같은데, 하렘은 튀르크 문화권에서, 그것도 군주나 소유하고 있던 극히 예외적인 사례이다. [24] 만일 주위에 물이 있다면 소위 '깨끗한 상태'가 되기 위해선 우두(팔, 다리와 얼굴을 씻기), 혹은 구쓸(샤워)를 해야 한다. 여성과의 사심 없는 가벼운 접촉 정도는 괜찮다지만(무함마드도 예배 전에 부인과 가벼운 키스를 했다는 기록 때문에 괜찮다고 주장) 조금이라도 사심이 있었다면 바로 세정의식을 다시 해야된다. 한마디로 이슬람에서 여성을 대하고 만졌을 때는 화장실에서 똥을 쌀 때와 마찬가지로 더러운 상태로 취급된다는 것(!). [25] 아내를 때릴 때는 얼굴을 포함한 머리 부분을 때려서는 안 되고, 때리며 아내한테 욕해서도 안 되고, 열 대 이상 때려서도 안 되고, 아내를 다치게 해서도 안 되고, 손을 가슴 높이 위로 처들어서도 안 되고, 몸에 자국을 남길 정도로 세게 때려서도 안 되고, 연속으로 때려서도 안 된다. 막대기로 때릴 때는 작은 막대기로 때릴 수 있고, 때리는 것은 가장 마지막에 택하는 방법이어야 하고, 이전에는 말로 타이르거나, 동침을 거부함으로써 경고하라고 한다. [26] 현재는 증오심 표현 문제로 삭제되었다. [27] 헤로도토스가 살던 시절에도 나온 걸 보면 이슬람이 생기기 아득한 옛날부터 있었던 걸 알 수 있다. 가령 중왕국 아시리아의 경우, 여성 외출 시 기혼은 베일 착용, 미혼과 창녀는 미착용이 의무였다. 창녀가 위반 시 곤장 50대와 끓는 물 세례를 받았다. 부인은 전쟁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으면 2년을 기다려야 했고, 그 뒤 재혼해 새로 애까지 낳았어도 옛 남편이 갑툭튀하면 홀로 그에게 돌아가야 했다. [28] 인도 토속 종교가 카스트 지참금 같은 힌두교의 신분제도, 여성 인권침해 등의 요소들을 죄다 받아들여 여성차별 종교가 되어버린 사례에 비추어 볼 때, 이슬람이 없었더라도 아랍 전통적 여성 차별 인식으로부터 또다른 여성 탄압 종교가 탄생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29] 이슬람에선 도 금지다. 동등한 지위의 아내 4명의 제한만 허용되며, 자식들 또한 소생에 구분없이 양육해야한다. 다만 일부 왕조의 궁정에서는 하렘을 운영했는데, 해당 항목 설명을 보면 알겠지만 지극히 예외적인 사례이다. 군주를 미혼으로 유지시킴으로써 혹시 가능할 수 있는 결혼동맹의 여지를 남겨두고 여자들이 경쟁적으로 왕자를 육성해서 경쟁하게 하여 더 나은 후계자를 키우려는 목적이 큰 제도다. [30] 잠자리 횟수까지 모든 것을 공평하게 해야 한다고 명시하였다. [31] 학파에 따라 다르지만 한발리파의 해석을 따르면 여자는 0.5명(...)분의 증인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에 남자가 아무도 증인으로 나서주지 않을 경우 총 8명의 증인이 필요했고, 그중 단 한 명만 부족해도 해당 사건은 증거불충분 처리가 됐다. 즉, 개선이 되었건 안되었건 이 교리 자체가 여성 차별 규정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차별 규정은 현대까지도 '훌륭한 선지자 무함마드의 가르침'이라는 식으로 변화가 불가능하게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하나피파 시아파는 여성의 증거 또한 남성과 동일하게 쳐주는 등 이것도 학파마다 해석의 차이가 있다. [32] 비록 패하였지만 알리의 사면으로 그냥 은퇴하는 정도의 처벌에 그쳤다 [33] 샤쟈르 알 두르의 재위기간은 80일로 극히 짧았는데 이는 7차 십자군 전쟁 중 남편이던 원 술탄이 병사하자 병사의 사기를 고려해 그의 죽음을 숨긴 채 대리 정치를 행한 것. 이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그녀를 기준으로 아이유브 왕조가 끝나고 맘루크 시대가 열렸으며 학자에 따라선 그녀가 맘루크 시대의 첫 번째 술탄이라 평가하기도 한다. 실제로 술탄의 권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34] 무슬림들과 이슬람을 지나치게 옹호하는 사람들이 명백한 이슬람권의 여성차별을 변명할 때 쓰는 주된 논리가 "전근대 불교 기독교도 이슬람과 별 다를것 없었다. 그러니 이슬람을 비판하지 말라"는 식의 양비론인데, 사실 이슬람 창설기에도 동로마 제국 문화권이나 중화 문화권, 게르만 문화권 등 불교 및 기독교 문명은 이슬람에 비해 딱히 두드러지게 성차별적이지도 않았으며, 또한 근현대 이후 사상적으로 변화해가는 지역의 문화권에 유연하게 적응하여, 현재 불교나 기독교의 경우 여성 사제/목사 문제나 비구[57] 비구니간 차별 등 종교 내적인 차별은 있어도 재가 신자들의 실천교리 상으로는 여성을 사회적/생활적으로 차별하는 교리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된다. 반면 이슬람은 21세기에도 쿠란/하디스 및 샤리아에 있는 복장규정, 일부다처제 및 각종 여성차별을 문자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를 시행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이슬람이라는 종교 자체를 거의 잠식해가는 수준이다. [35] 율법이나 실천에서 이슬람과 상당히 비슷한 유대교의 경우도 토라에 간통자에 대한 투석형, 일부다처제를 했던 왕들과 지도자들, 각종 전근대적 처벌 규정 등 샤리아를 연상시키는 율법들이 많고, 지금도 실정법이지만(사실 이는 무함마드와 우스만 등 초기 무슬림들이 이슬람법을 만들 때 토라의 율법을 어수룩하게 변형하여 섞었기 때문이다) 유대교는 이미 11세기에 일부다처제를 폐지했으며, 근대에도 현대에도 개혁파나 정통파는 말할것도 없고, 하시딤파나 하레디 같은 극정통파마저도 간통자에 대한 투석형이나 개종자에 대한 살해 등 반인권적 율법은 사실상 사문화시켜두고 실천하지 않는다. 물론 유대교 등도 근본주의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나, 현대에까지 샤리아 처벌 강요를 전세계적으로 바득바득 우겨대는 무슬림(근본주의자)들과는 아예 문제의 심각성부터가 다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종교를 들먹이는 것은 마치 초등학생들이 "왜 나한테만 그래"라고 하는 것과 같은 책임 회피하기 수법과 다를 바가 없는 논리이므로 타 종교가 어떻든 간에 현재 이슬람의 성차별과 여성을 억압하는 악습이 심각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36] 쿠란의 해석은 후대의 해석을 따르도록 쿠란이 지시하고 있어서 여성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해석해도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남성의 기득권 유지가 목적이라는 분석이 있다. [37] 그 이유도 가관인 게, 외간 남성에게 말을 걸었다거나, 서구권 남성이랑 연애를 했다던지 비무슬림과 결혼했다는 이유 그리고 다른 종교로 개종하거나 조금이라도 진보적으로 나가 밉보였다는 이유(!) 등이다. 사실상 답이 없는 수준. [38] 예를 들면 인도네시아는 여성 대통령도 집권했었고, 아이돌 여가수 그룹도 대놓고 히잡을 안 쓰고 공연, 활동하는 등 이슬람교의 본산인 중동이나 아랍 국가들보다는 여성 인권이 꽉 막혀있지는 않다는 예시 [39] 반면 이슬람을 믿다가 타종교로 개종한 사람들에 대한 사형이나 살해는 긍정하거나 칭송하는 성직자들이 아주 많다. [40] 무엇보다 하메네이는 상당히 보수적인 이슬람 학자인데도 그런말을 하였다. [A] 사실상 여성부 장관 [A] [A] [44] 2016년 방한해 박근혜와 만났다. [A] [46] 다만 루마니아는 무슬림 비율이 1% 내외에 불과하다. 그녀는 크림 타타르족 출신. [47] 이는 헤즈볼라의 특성이 이슬람주의 단체의 탈을 쓰고는 있지만 실상은 시아파 아랍 민족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탈레반이나 알 카에다 같은 세력보다는 온건한 편이다. 자살특공도 웬만하면 하지 말 것을 권장하는데 하더라도 신중히 여러 번 고려해서 자발적으로 하겠다고 나선 사람만이 한다.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공격은 금지하고 전사자에 대한 예우를 극진히 하는 데다 이스라엘과 미국을 까는 방송을 래퍼들이 송출하는 녀석들이다. [48] 쿠르드계라 할 수 있는 아이유브 조에서도 여성들의 지위가 높았다. 다만 쿠르드족은 험준한 산악에 마을이나 촌락을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루며 사는 경우가 대단히 많기 때문에 쿠르드족 사이에서도 방언이 대단히 심하고 문화적 차이도 심하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여성 인권에 진보적인 쿠르드족이 존재하는가 하면 반대로 여성에 억압적인 쿠르드족이 존재한다. 특히 튀르키예 동부에서 거주하는 쿠르드인 경우 서부 튀르키예인에 비하면 대단히 보수적이다. [49] 예시를 들자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 덕분에 경제적으로 삶이 윤택해졌지만 이와는 모순되게 종교적으로는 와하비즘으로 대표되는 이슬람 근본주의와 극단주의가 존재한다. [50] 다만 꼭 그런건 아닌게 아프가니스탄만 해도 지하자원이 거의 없지만 현재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게 먹혔을 정도이며, 반대로 지하자원이 많은 카자흐스탄은 이슬람권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세속적인 축에 속하는 나라이다. [51] 아프가니스탄, 브루나이는 이란처럼 법제화 되어있다. [52] 북아프리카와 파키스탄, 팔레스타인은 야동, 성매매는 불법이지만 히잡 안 쓴 모델이 활동할 수 있다. 그러나 속옷 모델은 안된다. [53]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유대인은 유럽계의 아슈케나짐과 셰파라딤이 다수이다. [54] 물론 서구와 똑같은 성문화가 보장되는 수준까지는 아니고 자유연애를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는 분위기까지는 가능한 수준이다. [55] 후다 나카시가 비키니 모델로 나선 적이 있었다. [56] 재밌게도 보수 기독교 사회와 비슷한 점을 엄청 많이 찾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상류층, 혹은 상층부의 성적으로 문란한 사생활이라던지, 낮은 성범죄 신고율, 비일비재한 성폭력 등이 바로 그런 것이다. 하지만 성적 보수주의자들은 이러한 상류층의 부패가 특정 종교만의 현상이 아닌 견제와 감시가 이루어지지 않는 폐쇄적인 사회적 공간에서 인간의 원죄가 발현된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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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남자 승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