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종파 (마드하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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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8세기의 이슬람 학자였던 아부 하니파 안누만( 699년 ~ 767년)에 의해 결성된 수니파 법학파의 한 갈래로, 가장 역사가 긴 학파이고 가장 영향력이 크다. 튀르키예,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 이집트와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및 남아시아에 널리 퍼져 있다. 발칸반도에 거주하는 무슬림 집단이나 중국의 후이족도 하나피파에 속한다.2. 역사
4대 정통 칼리파인 알리가 이슬람 제국의 수도를 이라크의 한 도시인 쿠파로 옮겼기 때문에 하나피파의 많은 가르침도 그곳에서 전승되었고 초기엔 쿠파 학파, 이라크 학파로 불리기도 하였다. 아부 하니파는 쿠파에서 태어났지만 할아버지가 카불 출신이었고 아랍어 외에도 페르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였다. 압바스 칼리프조 2대 칼리파였던 알 만수르는 아부 하니파에게 대법관의 지위를 주려고 했으나 그가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제자인 아부 유수프와 무함마드 알 하산 앗 샤이바니는 칼리파 하룬 알 라시드 때 사법부 고위직을 지냈으며 하나피파를 체계화하고 발전시켰다. 따라서 이 둘을 하나피파의 진정한 설립자로 볼 수도 있다. 하나피파는 압바스 칼리프조 내내 가장 지배적인 학파였으며 오스만 제국에서도 지배적인 학파가 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전 세계 무슬림의 1/3이 수니파 하나피파에 속해 있다.이슬람권에서 가장 관용적인 학파로 꼽힌다. 실제로 지방민들의 토착 관습을 존중하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었으며 아부 하니파의 가계가 카불 출신인 것도 있고 해서 특히 페르시아어권에 널리 퍼졌다. 인도 북서부와 오늘날의 파키스탄 일대의 주류 학파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튀르크인들이 중앙아시아에서 중동으로 유입되고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과정에서도 하나피파를 받아들였는데 근세 이란이 사파비 제국의 영향으로 시아파로 개종한 것과 다르게 아나톨리아와 중앙아시아의 튀르크인들은 수니파 하나피파를 유지하였다.
서구의 자유민권 사상의 유입을 가장 찬성하는 학파이기도 한데 "법은 불가변적인 것이 아니며 환경과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라는 것이 논지다. 그 근거로 이들은 쿠란의 2:185절에 나오는 "하나님께서는 너희에게 편의를 주시길 원하시기 곤란을 주기를 원하지 않으시니...( 쿠란 제 2장 185절)"가 있다. 문제는 해석에 따라 현지의 부정적인 관습법도 똑같이 존중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는 아프가니스탄이나 파키스탄 북부의 상황을 보면 안다.
3. 특징
이지마(إجماع, Ijmāʿ)를 높게 쳐주는 학파기도 하다. 이지마는 직역하면 합의라는 뜻으로, 쿠란이나 하디스에 언급돼 있지 않더라도 금지된 것이 아니라면 무슬림 공동체에서 임의로 합의한 사항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민주주의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며[1] 실제로 하나피파가 우세한 국가들은 상당수가 세속화되었는데 튀르키예가 대표적이며 파키스탄도 1970년대까지는 상당히 세속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1970년대 파키스탄 카라치나 라호르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완전히 서양식 복식을 하고 있고 히잡을 쓴 여성은 찾아볼 수도 없으며 콜라나 맥주를 즐기는 모습도 심심찮게 찍혀 있다. 현재도 신드 주나 이슬라마바드 수도권 같은 지역은 한발리파· 와하브파가 주류인 국가에 비하면 훨씬 세속적이고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가 남아 있다.[2]기타 특징으로는 해산물 중 비늘이 없는 물고기(문어나 새우 같은)는 하람으로 금지한다는 점, 예배를 예외없이 제 시각에 수행하여야 한다는 점, 위트르(صلاة الوتر, Ṣalāh al-Witr)라고 하는 여섯번째 예배가 있는 점[3], 결혼하는 데 종교 지도자의 허락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들이 있다.
[1]
쿠란에 직접민주주의에 대해 언급되어 있기 때문에 보수주의자라고 하더라도 민주주의 자체에 악감정을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수십명이 끼리끼리 모여살던 씨족 사회가 더 이상 아니므로 이를 적용하기는 힘들다. 보수주의자들은 간접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2]
파키스탄이 지금과 같은 꼴통 이슬람주의 국가가 된 것은 1970년대 이후 정권을 잡은 군부가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 강력한
이슬람주의 정책을 펴서 + 북서부 지역의
탈레반의 득세로 인한 것이다. 정부군의 통제가 제대로 미치는 수도권은
아프가니스탄 같은 막장 동네보단
인도와 비슷한 정도의 사회 분위기다.
[3]
강력한 권고사항이지만 의무사항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