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노나 라이더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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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A3637><colcolor=#ffffff> 위노나 라이더 Winona Ryd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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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위노나 로라 호로위츠 Winona Laura Horowitz |
출생 | 1971년 10월 29일 ([age(1971-10-29)]세) |
미국 미네소타 주 위노나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61cm, 45kg |
직업 | 배우 |
데뷔 | 1986년 영화 《루커스 Lucas》 |
학력 |
Petaluma High School American Conservatory Theater (연극학 석사) |
가족 |
아버지 마이클 호로비츠[1] 어머니 신시아 팔머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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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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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가위손(1990)》에서[2] |
미국의 배우. 20세기 말엽을 풍미한 배우로, X세대 할리우드의 대장격 되는 인물이다.
1990년대 전성기 시절은 그야말로 레전드로 평가받으며, 이 시절 가위손이나 순수의 시대, 작은아씨들, 처음 만나는 자유 등의 유명작에 출연하며 최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허나 2001년 절도 사건으로 한때 나락을 갔고 이로 인해 커리어에 위기를 겪었으나, 2016년 복귀작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가 그야말로 초대박을 터트리며[3] 성공적으로 재기했다.[4] 나이 50이 넘은 현재에도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고있다.
2. 어린시절
1971년 10월 29일 미네소타 주 옴스테드라는 도시에서 유대계 히피 부모의 딸로 태어났다. 히피들은 자식의 이름을 괴상하게 짓는 경우가 많았는데 눈치 챘겠지만 위노나 라이더도 부모가 도시의 이름을 그대로 붙여준 케이스.[5] 이후 10살 때까지 히피 사회에서 자랐다.원래의 성인 호로위츠에서 라이더(Ryder)로 바꾼 계기는 첫 영화 출연작인《루커스 Lucas》(1986)에 출연했을 때였다. 라이더의 에이전트가 영화 크레딧에 어떻게 이름을 올릴지를 요청하였는데, 이때 그녀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미치 라이더'라는 록가수의 성을 따서 라이더로 바꿔 사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10살이 됐을 때, 라이더는 도시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간다. 당시 위노나는 짧은 머리를 하고 다녔는데 미모는 어딜가지 않아서 학교에 전학하자마자 남학생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학교에 입학한 지 일주일도 안 지나서, 몇몇 동급생들에게 "호모"라고 놀림당하고 사물함에 얼굴이 쳐박히는 등의 폭행을 당하게 된다.[6]그 이후로 그녀는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에서 홈스쿨링을 하다가 1983년 샌프란시스코 근처의 American Conservatory Theater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연기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3. 활동
1986년 부터 2009년의 위노나 라이더 필모그래피[7]3.1. 데뷔 초창기 아역 시절(1986년~1990년)
1985년이 되던 해, 그녀는 《데저트 블룸 Desert Bloom》이라는 영화를 위해 연기장면이 기록된 비디오를 오디션에 보낸다. 배역을 따내는데는 결국 실패했지만, 이를 인상깊게 본 감독인 데이비드 셀처(David Seltzer)에 의해 1986년 드디어 《루커스 Lucas》(1986)에 캐스팅 된다. 분량은 작았으나, 첫 영화출연을 달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후 출연한 《스퀘어 댄스 Square Dance》(1987)를 통해 '인상적인 데뷔' 등의 호평을 얻는다.하지만 라이더를 널리 알린 작품은 바로 팀 버튼 감독의 《 비틀쥬스 Beetlejuice》(1988)라 할 수 있는데 지나 데이비스, 알렉 볼드윈, 마이클 키튼 등과 출연한 영화는 대박을 쳤고, 라이더도 주가를 높여가기 시작했다. 《루카스》에 출연한 위노나 라이더를 인상깊게 본 버튼이 직접 캐스팅했다고 한다.
이후 크리스천 슬레이터와 함께 열연한 《 헤더스 Heathers》(1989)[8] 제리 리 루이스의 전기 영화 《열정의 로큰롤 Great Balls of Fire》(1989), 보이시한 여주인공을 맡아 제프 다니엘스와의 연기 조합이 인상적이었던 《록시 Welcome Home, Roxy Carmichael》(1990)에 연달아 출연하며 대중들과 평단의 주목을 받는다. 이후 당시 연인이었던 조니 뎁, 그리고 팀 버튼 감독과 다시 만나 《 가위손 Edward Scissorhands》을 찍었다. 가위손은 비평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이 때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 대부 3》에 출연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지나친 스케줄에 지쳐서 휴식을 이유로 취소하였다.[9] 그 대신 동년에 가족 코미디인 《귀여운 바람둥이 Mermaid》(1990)에 크리스티나 리치, 셰어와 함께 출연하였다. 이 영화를 통해 라이더는 이 해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에 지명되지만, 수상은 실패하였다.[10]
3.2. 전성기(1991년~2000년)
리즈 시절. 1992년 《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출연 당시 모습이다.
위노나 라이더는 1991년에 거장 짐 자무쉬 감독의 《지상의 밤 Night on Earth》을 통해 영화계에 복귀했다.
이후 1992년에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 드라큘라 Dracula》,[11] 1993년에는 자신이 '가장 위대한 감독'으로 손꼽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순수의 시대 The Age of Innocence》에 출연하는 등 거장들의 영화에 잇따라 출연하며, 핫한 배우의 커리어를 이어간다. 특히 《순수의 시대》는 미셸 파이퍼, 다니엘 데이루이스와 함께 출연한 작품으로서, 이 작품을 통해 라이더는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 수상 및 아카데미 동부문에 노미네이트[12] 되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비록 영화는 상업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배우로서의 라이더에게 대성공을 안겨준 작품이다.
위노나 라이더는 이어 《청춘 스케치 Reality Bites》(1994)에 벤 스틸러, 에단 호크와 함께 출연했다. 소위 X세대라고 불리던 당시 청년층의 모습을 훌륭하게 그려내어 한국에서도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바로 《 작은아씨들》(1994)의 조세핀 마치 역을 통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지명되기도 했으나, 역시나 수상은 실패.[13]
90년대 당시 위노나 라이더는 배우 데뷔 이후 꾸준히 소위 거장들과 비평가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던 당대의 배우였다. 비록 1995년에 출연한 《아메리칸 퀼트 How to Make an American Quilt》에서 한차례 흥행, 비평면에서 실패를 겪으며 승승장구하던 행보가 한풀 꺾이고 1996년에 출연한 《보이즈 Boys》(1996)에서 또 다시 흥행, 비평면으로 참패를 겪였지만 커리어에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당시 라이더에게는 기묘한 면이 있었는데 흥행력이 결코 좋지 않은, 정직하게 말하면 상업성이 동시대 여배우들보다도 뒤지는데도 유명 감독들의 캐스팅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보이즈 Boys》의 흥행 실패 후 뒤이어 출연한 알 파치노가 감독을 맡은 다큐멘터리 겸 드라마인 《뉴욕 광시곡 Looking for Richard》에서도 만족스러운 흥행을 거두지 못했고.[14] 영국 국립극장과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에서 연출가로 활약하면서 영화 《조지 왕의 광기》로 평단을 흔들어놓은 니콜러스 하이트너 감독과 손잡고 다니엘 데이루이스와 공연한 《 크루서블The Crucible》도 비평은 괜찮았지만 흥행은 큰 실패를 겪게 되었다. 이후, 장 피에르 주네 감독의 《 에이리언 4》에 출연해[15] 연기는 괜찮은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영화가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아버렸다. 그러나 이후에도 우디 앨런의 《셀러브리티 Celebrity》(1998)에 출연하는 등 동시대 어떤 여배우보다도 더 많이 거장들과 작업했다.
게다가 1999년에는 직접 영화 제작에도 영역을 넓혀, 주연 및 제작자를 맡으며 제작한 《 처음 만나는 자유 Girl, Interrupted》에서 자신이 간신히 출연을 성사시킨 당시 무명이었던 안젤리나 졸리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을 받게 하기도 했다.
2001년까지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흑백영화에서 컬러영화까지, 하층민에서 귀족까지, 시대극에서 현대극까지, 극사실주의 영화에서 SF와 판타지까지, 욕망의 화신에서 순진무구한 역할까지, 그야말로 다방면에서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는 입체적인 매력을 가진 배우였다.
다만 전성기엔 연기면에서는 감정 표현에서 어색한 부분이 있다고 평가받았고 동안이라는 문제점이 겹쳐, 1995년 이후로는 좀 주춤한 모양새였다. 조숙한 천재 소녀 이미지 때문에 성인 연기자로써 진통을 겪고 있었던 것. 그나마 처음 만나는 자유에서 발전했다는 평을 받았지만...
3.3. 절도 혐의 및 재판으로 인한 공백기[16] (2001년~2005년)
최악의 어두운 과거. 당시 전성기를 누리던 그녀는 이 사건으로 한 방에 무너졌었다.
그녀의 가장 큰 죄라 할 수 있는 절도 사건이 2001년에 터지고 만다. 이 사건으로 북미는 물론이고 온 세계 대중들에게 가식적인 위선자라는 이미지가 말뚝처럼 박혔다.
2001년 위노나 라이더는 디자이너 샵에서 고가의 의류와 악세사리의 태그를 몰래 떼고 숨겨 나가다가 경비원들에게 붙잡혔다. 처음에 그녀는 "다음 배역을 위해 연습 중이었다"라는 헛소리를 했는데, 절도는 둘째치고 이 거짓말 때문에 그녀는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대중들에게 "너 지금 연기하는 거지?"라는 비아냥을 듣게 되었다.
또,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은 당시 횡설수설하는 모습에 마약 투여를 의심해 약물 검사까지 했다. 또 당시도 유명했고 지금도 마이클 잭슨 사망사건을 변호할 정도인 유명 형사전문 변호사를 고용했는데 이는 대중들에게 돈을 이용해서 처벌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준다. 약물검사 결과 진통제를 복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일반적인 경우에 처방 받을 수 있는 적정량의 처방이 아니었다. 라이더는 이에 팔 부상으로 의사에게 처방받아 복용했으며 적정량은 의사의 소관이지 자신은 알 수 없다면서 절도 당시 약기운에 이성이 약해진 상태였다고 주장했으나 이는 대중들에게 책임을 남에게 돌린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약물 과다복용에 대해서는 혐의가 풀렸으나 이미지는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
또 재판에서 그녀는 검은색의 정숙한 고전적 정장을 입고 창백한 화장을 하고 선처를 호소했는데 이게 오히려 반발을 불렀다. 통계적으로 미녀가 유죄를 받을 확률은 일반적으로 낮지만, 미모를 이용한 범죄이거나 배심원들이 피고가 자신의 미모를 이용해 영향을 주려고 한다는 인상을 받으면 일반적인 경우보다 가혹하게 형량을 매긴다는 결과가 있는데 딱 그 꼴이었다. 자유로운 사생활과 잘 나가는 커리어를 밟던 화려한 여배우가 이렇게 나오자 오히려 연기한다는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심어버린 것이다. 재판도중에 라이더가 이전에도 절도로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이 나와 월경전증후군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매체에서 나왔지만 그녀는 이를 주장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부정했다. 어쨌든 또 이미지 훼손.
사건 초기에는 연예계 뉴스 정도의 가십성이었는데[17] 이게 점점 논란이 되더니 나중에는 미국에서 오사마 빈 라덴의 생포 임박소식을 밀어내고 위노나 라이더의 재판이 TV뉴스의 헤드라인 앞자리를 차지할 정도가 되었다. 우디 앨런 감독이 자신이 희망했던 위노나 캐스팅을 포기해야 했다. 당초 자신의 영화인 《멜린다 앤 멜린다》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라이더에게 제안을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자는 배우 보험[18] 문제로, 후자는 절도 문제로 인해 캐스팅에 난항을 겪었다고 회고한 적도 있다. 확고한 위치의 감독조차 라이더의 출연은 도저히 영화사를 설득할 수가 없었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녀의 네임밸류가 얼마나 하락했는지 알 만 하다.
결국 이 사건은 2002년에 집행유예 3년과 사회봉사 480시간, 절도에 대한 배상과 벌금을 선고받는 것으로 마무리되었고, 형 집행은 2005년에 완료되었다.
이러한 과정으로 인해 위노나는 리차드 기어와 공연한 《뉴욕의 가을》 이후 꾸준히 내리막을 걸었다. 게다가 《뉴욕의 가을》도 흑역사급 퀄리티에 제대로 폭망해버려 치명적이였다. 사건이 발생할 즈음 개봉한 《미스터 디즈》도 만만치 않은 졸작이었다. 다만, 애덤 샌들러 버프를 받아 영화의 흥행은 꽤 성공해서 위노나 라이더가 출연한 영화들 중 미국내에서 가장 많은 돈(미국에서만 1억 2600만 달러)을 벌여들였다.[19] 이 기간 동안 영화 출연은 했지만 비중은 급격히 줄어들어 《시몬》(2002)에서 밥맛없는 유명 여배우 니콜라 앤더스 역할로 카메오 급 조연으로 영화에 얼굴을 내밀었다.
3.4. 차차 재기하던 시기(2006년~2011년)
형이 완료된 후 워너 브라더스의 《 스캐너 다클리 Scanner Darkly》(2006)에 주조연급으로 출연해서 칸 영화제에 초청까지 받았으나 인터뷰 공포증이 생겨 참석하지 않았다. 2007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절도 사건에 대해 사람을 다치게 한 건 아니니까 죄책감 까지는 느끼진 않는다고 말해 또 다시 폭풍까임을 당하게 된다. 이후 메이저 영화에는 거의 출연하지 못하고 저예산 영화나 단편영화에 출연한다.그렇게 추억의 배우로 잊혀져 가던 그녀의 이름을 다시 각인시킨 작품은 아마 J.J. 에이브럼스 감독의《 스타트렉 Star Trek》(2009)과 대런 애러노프스키의《 블랙 스완 Black Swan》(2010)일 것이다. 전자에서는 비록 카메오 수준에 그치긴 했지만, 절도 사건 이후 침체되어 있던 라이더의 활동을 기대하게 만드는 신호탄이었다. 그리고 후자에서는 잊혀지고, 늙어가며 결국 발레단 주연을 빼앗기는 극중 캐릭터를 연기하였다. 얄궂게도 과거의 영광에서 잊혀져 서서히 주연과 멀어지던 실제 배우로서의 삶을 사는 라이더가 자신의 처지와 너무도 닮아있는 이 캐릭터를 연기하며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지. 여러모로 배역이 라이더와 똑같은 모습이라, 많은 팬들이 씁쓸해했다.
이후 론 하워드 감독의 《 딜레마 The Dilemma》(2011)를, 그리고 크리스 에반스, 마이클 섀넌, 레이 리오타와 함께 출연한 《아이스맨 The Iceman》는 2013년에 개봉 하는 등, 배우로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는 중이다.
2012년에는 프랑켄위니의 배역을 맡아 성우로 참가했다.
3.5. 두 번째 전성기 시작(2016년~현재)
2016년 7월 15일에 넷플릭스의 SF 공포 드라마 《 기묘한 이야기( Stranger Things)》의 주역으로 참여했는데 이 드라마가 미국과 유럽에서 대성공을 거두며 재기에 성공했다. 조나단과 윌의 어머니 역할로 열연을 펼치며 호평을 듣고 있다.기묘한 이야기 개봉 후 위노나 라이더의 제2의 전성기가 시작됐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20] 전성기 20대 시절에 비해 예전에 절도 사건 때문에 좀 묻혔지만 47세가 된 2019년[21]에 기묘한 이야기를 통해서 다시 많이 알려지고 있는 점에서는 대단하다.
이후 2020년 플롯 어게인스트: 미국을 향한 음모에 출연해 드라마가 호평을 얻으면서 순조롭게 활동 중이다.
4. 사생활
사생활에 상당히 염문들이 많았다. 특히, 롤링스톤지에서 "소년들이 위노나 라이더와의 데이트를 위해 로커의 길을 선택한다"는 글을 올릴 정도로 신예 로커와의 염문설이 잦았다. 정켓 락매거진에서는 위노나를 일컬어 "락커와 사귀면서 다이아 반지를 요구하지 않기에 인기가 많은 부자 여배우. 락커들을 사랑하는 여배우로서는 리브 타일러와 쌍벽을 이룰 것이기에 젊은 락커들에 인기가 많을 것이다."라며 꼬집기도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위노나가 웃으면서 '그건 오해다. 원나잇 스탠드를 원한 것도 아니다. 도대체 왜 모두가 사이 좋게 지낼 수는 없는 건지.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들에게 매달려 농담을 건네거나 장난치는건 그날 같이 자겠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다'라는 소감을 남기기도.아무튼, 위노나 라이더가 당시 신예 로커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었음을 엿볼 수 있는 루머라 할 수 있겠다.
여담으로, 90년대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영화판의 인지도가 높으면서 락커로 활동하기도 한 조니 뎁과의 관계도 잘 알려진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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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노나 라이더와
조니 뎁은 1989년 영화 시사회에서 처음 만나 1990년에 약혼했으나, 위노나의 멘탈이 약해지던 시기와 조니 뎁의 인지도가 한층 상승하던 1993년에 서로에 대한 성격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수 차례의 다툼 끝에 갈라서고 말았다. 약혼이 깨진 후 뎁이 오른팔의 Winona FOREVER 문신을 Wino[23] FOREVER로 바꾼 사실은 너무도 유명하다.
그러니까 문신은 신중하게 합시다
- 이후 1993년 소울 어사일럼[24]의 프론트맨 데이브 퍼너를 만난다. 그는 부자 여친을 자랑하는 태도가 없어 보이며 위노나는 매력적이고 특별한 사람이기에 바쁜 스케줄도 이해하겠다는 태도로 주목받았으며 3년 간 만나 결혼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유명 여배우의 인지도에 기댄다는 악의적인 여론이 끊이지 않은데다 영화 촬영장과 투어 스케줄 장소가 멀어 전화로 데이트를 해야 하는 등, 서로의 생활에 접점이 없어 서서히 멀어진 끝에 1996년 들어 깨졌다.
- 1998년에는 맷 데이먼과 2년간 교제하는 등 다사다난했다. 맷 데이먼과의 결별 후 연애로 자기 자신을 찾으려는 생각은 버려야 하며 인생은 결국 혼자라는 뉘앙스의 인터뷰를 하거나, 직접적으로 결별사유를 묻자 인터뷰를 중지할 정도로 현타가 심했던 듯.
그러나 2001년 절도 사건 이후에는 열애설들이 모조리 사라졌고 심지어 사건이 발생한지 10년 가까이 이렇다할 스캔들이나 열애설도 없었다.
- 2011년부터 패션 디자이너 스콧 맥킨레이(Scott Mackinlay)와 연애 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위노나 라이더는 헐리우드의 유명 감독과 유명 남성 배우들이 서로 짜고 캐스팅 더블이나 단역 배우에게 데이트를 빙자한 원나잇 스탠드를 요구하거나, 신인 여배우를 캐스팅 단계에서 농락하는 관례를 비꼬고 메스껍다며 비판한 일이 많았는데, 절도 사건 이후로는 자중하는 모습을 보이자 일부 언론들이 증거도 없이 비판하더니 이제야 식욕을 되찾았냐며 조롱했다. 그러나 하비 와인스틴의 범죄이력이 사실로 밝혀진 후에는 동정 여론이 생겼다. 와인스타인의 범죄 가능성을 경고했던 코트니 러브와 함께, 요즘은 재평가를 받아 악녀나 말썽꾸러기 이미지를 많이 벗은 편이다.
여담으로 코트니 러브와도 일화가 있는데, 알려지지 않은 락 매거진에서 그런지락의 황제 커트 코베인이 위노나에게 반해 코트니를 떠날 것이라는 가십 기사를 썼기 때문. 위노나는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코트니는 무대에서 어쩌면 커트는 정말로 내게 마음이 떠나서 그럴 지도 모르겠다고 팬들에게 말했다는 후속 가십 기사마저 나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커트 사망 이후 코트니가 이런 커트를 고의로 살해했다는 음모론이 뜨고 다큐멘터리까지 제작되어 코트니는 궁지에 몰리게 되었으며, 함께 언급된 위노나 또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세간의 비난에 시달리던 코트니는 <래리 플랜트>로 연기에 호평을 받고, 가십이 가라앉은 한참 후에 파티장에서 위노나를 만나 안부를 물으며 그간의 회포를 풀었다. 개싸움을 예상하던 여론과 달리 둘은 젠틀하게 마무리했다고 한다.
5. 배역 후보 논란
《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프리 프로덕션 시기에 위노나 라이더는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캐스팅 되었고 실제로 위노나 라이더가 입을 의상 제작까지 마친 상태였다. 그렇게 제작진들이 촬영 시작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영화가 크랭크인 하기 직전 갑작스럽게 여주인공이 귀네스 팰트로로 바뀌었고, 이 역할로 팰트로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게 된다.[25] 유튜브의 수상장면 댓글에는 다른 배우가 받았어야 했다, 아카데미 역사상 최악의 여우주연상 수상자이다, 말하면서 징징대지 좀 마라... 등등 까는 댓글이 거의 반 이상이다.귀네스 팰트로가 위노나 라이더 집을 방문해서 시나리오를 보고 위노나 몰래 감독과 제작사에게 접근해서 위노나 라이더의 역할을 가로챘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위노나 라이더가 여주인공으로 유력했다 해도 배우를 결정하는 건 감독의 재량인데다 대본을 몰래 보고 역할을 가로채는 것은 소송으로 번질 수도 있는 큰 일이기에 루머일 가능성이 크다. 결국 위노나 라이더와 귀네스 펠트로는 절교하게 됐지만 말이다.(....)
6. 출연작
6.1. 영화
연도 | 작품 | 배역 | 감독 |
1986년 | 루카스 (Lucas) | 리나 (데뷔작) | 데이비드 셀처 |
1987년 | 스퀘어 댄스 (Square Dance) | 젬마 | 다니엘 페트리 |
1988년 | 비틀쥬스 (Beetlejuice) | 리디아 | 팀 버튼 |
1969 | 베스 카 | 어니스트 톰슨 | |
1989년 | 헤더스 (Heathers) | 베로니카 | 마이클 레만 |
열정의 로큰롤 (Great Balls of Fire) | 마이라 게일 브라운 | 짐 맥브라이드 | |
1990년 | 록시 (Welcome Home, Roxy Carmichae) | 딩키 보세티 | 짐 아브라함스 |
가위손 (Edward Scissorhands) | 킴 보그스 | 팀 버튼 | |
귀여운 바람둥이 (Mermaids) | 샬롯 플락스 | 리차드 벤자민 | |
1991년 | 지상의 밤 (Night on Earth) | 코르키 | 짐 자무쉬 |
1992년 |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Bram Stoker's Dracula) | 미나 하커 |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
1993년 | 순수의 시대(The Age of Innocence) | 메이 웰랜드 | 마틴 스코세이지 |
영혼의 집 (The House of the Spirits) | 블랑카 트루에바 | 빌레 아우구스트 | |
1994년 | 청춘 스케치 (Reality Bites) | 릴레이나 피어스 | 벤 스틸러 |
작은 아씨들 (Little Women) | 조세핀 마치 | 질리안 암스트롱 | |
1995년 | 아메리칸 퀼트 (How to Make an American Quilt) | 핀 도드 | 조슬린 무어하우스 |
1996년 | 보이즈 (Boys) | 패티 베어 | 스테이시 코크란 |
뉴욕 광시곡 (Looking for Richard) | 앤 | 알 파치노 | |
크루서블 (The Crucible) | 애비게일 윌리엄스 | 니콜러스 하이트너 | |
1997년 | 에이리언 4 (Alien Resurrection) | 애널리 콜 | 장 피에르 주네 |
1998년 | 셀러브리티 (Celebrity) | 놀라 | 우디 앨런 |
1999년 | 처음 만나는 자유 (Girl, Interrupted) | 수잔나 케이슨 | 제임스 맨골드 |
2000년 | 뉴욕의 가을 (Autumn in New York) | 샤롯 필딩 | 조앤 첸 |
엑소시즘 (Lost Souls) | 마야 라킨 | 야누시 카민스키 | |
2002년 | 미스터 디즈 (Mr. Deeds) | 베이브 베넷 / 팜 도버 | 스티븐 브릴 |
2009년 | 스타트렉 : 더 비기닝 | 아만다 그레이슨 | J.J. 에이브럼스 |
2010년 | 블랙 스완 (Black Swan) | 베스 매킨타이어 | 대런 애러노프스키 |
2012년 | 프랑켄위니 | 엘사 반 헬싱 (목소리) | 팀 버튼 |
2023년 | 헌티드 맨션 | 저스틴 시미엔 | |
2024년 | 비틀쥬스 비틀쥬스 (Beetlejuice Beetlejuice) | 리디아 디츠 | 팀 버튼 |
6.2. 드라마
연도 | 작품 | 배역 | 연출 |
2016년 ~ | 기묘한 이야기 |
7. 기타
- 아버지의 친구인 히피 비트족 학자이자 약물, LSD예찬론자인 티모시 리어리가 대부이다. 하지만 뜻밖에도 리어리는 대녀를 대할 때 아날로그적인 사고와 양육방식을 갖고 있었다고 하며, 위노나는 그와의 시간들에 대해 마약이 아닌 [26] 호롱불과 촛불 아래 동화와 소설책을 읽어 잠들게 해주었다며, 수많은 베드타임 스토리들로 어린 자신에게 따스한 시간을 선물했다고 기억한다. 또한 자녀들에게 독서 습관을 만들어 준 아버지는 딸이 편견없이 자라기를 바라며 유머감각까지 있어 딸에게 태어난 동네의 이름을 붙여 주었으나, 보통 여성의 이름에 쓰이는 위노나의 두 번째 철자는 y로 붙이는 것이 정설이다. 지명 이름인 i 그대로를 쓸 경우 콜걸들의 예명짓기가 바로 고향 이름을 따서 붙이는 것이기에 이는 대표적인 미국식 작명 불용문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위노나는 유년기 추억이 있는 고향을 좋아하고 자신의 이름에 긍지를 갖고 있었기에, 미들네임인 로라 대신 본명인 위노나의 철자에 손대지 않고 예명으로도 밀 정도라 오디션과 촬영장에서 여배우들이 흔히 감내하는 콜걸 농담을 들으면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코폴라 감독의 영화에서 벌어진 일은 후술. '프리 위노나' 운동으로 법정에서의 위노나를 옹호하던 사람들은 이 사건 이후로 위노나가 영화판에서 미운털이 박혀 사소한 잘못도 확대시켰다고 주장하며 티셔츠와 로고를 만들어 배포했다. 이 디자인은 카피레프트로서 한국 동대문 보세숍에도 FREE WINONA 티셔츠가 유행한 적이 있다.
- 13살 이후론 항상 내 돈이 있었으며 많든 적든 먹고 사는데는 충분하고 원하는 것을 살 수 있었기에 돈 때문에 출연작을 결정하진 않는다고 말한다. 돈보다는 친구가 없을 때 슬픔을 느끼며, 샌프란시스코에서 빈곤하게 지낼 때도 있었지만 가난보다는 어떤 파티에도 초대받지 못하는 일 년 남짓했던 시간이 눈물나게 외롭고 서러웠다고 한다.
- 염색을 자주해서 본래의 머리색이 미스테리인 배우다. 결국 팬들의 궁금증에 답을 했는데, 어린아이일 때의 머리색은 뚜렷한 금발이었으나 그 이후로는 갈색으로 변했다고 한다. 가위손을 비롯한 몇몇 초기 영화에서 금발로 등장하긴 했지만, 옅은 금발, 딸기색 금발 등등 영화마다 색이 달라서 그때의 금발들도 염색일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당시 영화보다 어린시절에 찍은 사진을 보면 이미 갈색에 가까운 금발로 머리색이 변했다.
- 물 공포증이 있다고 한다. 12살 때 익사할 뻔한 경험때문에 생긴 외상. 이 때문에 《에이리언 4》에서 물속에서 촬영하느라 무척 애를 먹었다고. 공교롭게도 이 공포증이 조금 나아진 것은 이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액션 씬을 연습하며 엄청난 웨이트와 식이요법에 들어가고부터였다. 마르고 예민한 인조인간을 연기하기 위해 인스턴트를 전부 끊고 샐러드와 구운 닭고기, 생선만을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마침 아시아 컵라면에 푹 빠져 있던 시기라, 컵라면 금지가 이 물 공포증을 압도할 정도로 견디기 힘들었다고. 이 영화 촬영 후엔 친한 사이가 된 시고니 위버와 <베이비 부다>등 중화요리나 면요리 전문 레스토랑에 자주 출몰하며 참았던 식욕을 달랬다.
- 10대 시절 심각한 불면증과 우울증을 앓았다. 학교폭력 이후 통신수업으로 학점을 따고 꾸미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요정이나 미스 유니버스같은 별세계의 이미지를 보여주어야 했기에 현실의 자신과 괴리감을 느꼈다고. 촬영 중에는 짐가방 하나로 호텔을 전전하면서 무리한 스케줄을 감내하였기에, 고향과 가족,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일기를 썼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고 한다. 마침내 피로로 인한 감기몸살을 거하게 앓은 후 새벽 5시까지 잠들지 못하는 불면증으로 언제나 퀭하고 여윈 채로 다니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 담배를 배워 불면과 우울함을 달랬으며, 마약보다는 담배가 더 낫다고 말하곤 했다. 당시 촬영 중인 영화의 상대역인 가수 존 도는 위노나에게 신선한 쥬스와 오렌지 바구니를 선물로 보내며 비타민 섭취를 권했으나, 우울한 밤이 계속되며 당연하게도 몸은 나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아이스팩 대용으로 오렌지를 늘어놓고 잤다가 열이 내리지 않아 마침내 나는 이렇게 살다 죽고 말 거라는 절망적인 생각에 고질적인 불면증이 찾아왔다고 한다. 더 나아가, 증세가 심해져 출세가 예고된 코폴라 감독의 <대부 3>캐스팅을 마다하고 요양을 해야 했다고.
- 건강을 회복한 후 코폴라 감독의 차기작 출연이 결정되었으나, 주조연 여배우 중 유일하게 전라 노출을 거부하고 잠옷 차림으로 촬영을 하던 중 감독이 현장의 관능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키고자 자신이 맡은 윌헬미나 역의 침실 장면을 매춘부, 창녀처럼 연기하라는 요구에 분노하여 이런 촬영현장에선 일하고 싶지 않다고 비아냥거려 보수적인 보드진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이후 이 일에 대해 별달리 언급하고 싶지 않다고 정켓 인터뷰에서 답변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노출 없이 다른 시대극을 촬영한 감독들에게는 대단히 협조적이었으며 골든 글로브, 오스카 노미네이트를 이뤄내 이들과는 기회가 되면 또다시 일하고 싶다며 애정어린 반응을 보였다.
- 1993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페탈루마에서 폴리 클라스(Polly Hannah Klaas)라는 12세[27] 소녀가 페도필리아에게 납치당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클라스와 같은 동네에서 자랐던 위노나는 이 소식을 듣고 범인의 검거를 위해 현상금 20만 달러를 제공하며 적극적으로 나섰다. #실종 제보 프로그램에 출연한 위노나 영상 그러나 안타깝게도 클라스는 실종 두 달 뒤 사체로 발견되었다.[28] 위노나가 작은 아씨들 영화화에 출연하게 된 것도 평소 작은 아씨들을 좋아했던 클라스를 추모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참고로 범인 리차드 앨런 데이비스(Richard Allen Davis)는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현재까지 복역 중이다.
-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크리스천 슬레이터와 함께 《 헤더스》의 후속편을 찍고 싶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헤더스》는 1990년대 청춘 영화의 상징이었던 크리스천 슬레이터와 위노나 라이더의 풋풋하고 젊었던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 본인은 아마 《 비포 선라이즈》가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 순으로 시리즈화된 것처럼 자신들의 소위 리즈 시절이었던 그때의 시절이 퍽 생각나는 모양인듯 하다. 프로젝트에 대한 공식적인 언급은 아직 없지만, 둘 다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고, 제 2의 전성기가 시작되었으니 가능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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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 기타를 배워 《청춘 스케치》, 《처음 만나는 자유》에 적극 활용했다. 취미기타 수준이지만 음악을 좋아한다. 그렇게 음악을 하면서 맥주 한 두 잔 하는 것이 낙인데, 아쉽게도 알쓰에 가까워 맥주 500cc 정도면 벌써 취기가 돈다. 술버릇은 끊임없이 대화하고 말을 거는 것. 술 한 잔 하고 횡설수설 메모나 일기를 쓰기도 한다. 위노나에게 초대받아 술 한 잔에 성공한 《프리미어 USA》의 기자에 따르면 매우 귀엽다고 한다. 그리고 해당 기자는 술김에 술술 푸는 13세부터 15세 무렵의 연애사도 들었는데, 가정학습 기간에도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으며 안타깝게도 학창시절 폭행당한 이유도 어처구니없게 이러한 인기로 인해 게이나 부치 성향의 레즈비언 등으로 오해를 받아서라나.
그럼 게이나 부치는 맞아도 되느냐는 틴에이지 위노나의 울분은 덤
- 귀네스 팰트로와 히피 기질을 공유하는 맞담배 친구로서 친했으나 위노나 라이더의 차기작으로 예정되어 있었고 위노나 본인도 가장 애착이 가는 시나리오라고 밝힌 《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여주인공 자리를 귀네스 팰트로가 뺏은 일로 절교했다. 위노나 라이더의 신체에 맞춰서 그녀가 입을 의상까지 만들어져 있었고 크랭크인에 돌입하기 직전이었는데 갑자기 영화의 감독이 여주인공 배우를 위노나 라이더에서 귀네스 팰트로로 바뀐 것이어서 당시에도 큰 논란거리였었다. 이후 귀네스 팰트로 대신 신성 브리트니 머피와 소울메이트로 지냈으나 브리트니와 남편 사이먼 몬잭이 의문의 처방약 부작용과 폐질환으로 차례차례 사망하자 몹시 안타까워했다.
- 카고 아이가 은퇴를 마음먹고 파파라치를 피해 외국에서 지냈던 당시, 위노나 라이더를 동경해 미국에 있었는데 그때 직접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위노나는 "아직도 엄청 어려 그러니까 지금부터야"라며 많은 격려를 해주었다고 한다. #
- 2000년 10월 6일 할리우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통산 2165번째 배우다.
- 한국에서는 함수정과 박영희가 전담 성우로 각각 KBS, MBC에서 방영된 여러 작품들을 맡았다. KBS에서 방영된 에이리언 4, 미스터 디즈, 시몬에서는 이선이 맡았으며 SBS에서 방영된 처음 만나는 자유에서는 은영선이 맡았다.
- 데이비드 하버와 위노나 라이더가 본인들의 이름을 검색(?)하는 인터뷰를 했다. https://youtube.com/watch?v=nsEO8LALcyo
- 배역들중 쫒기거나 굴러다니는 역할이 꽤 많은 편이다. 비틀쥬스에선 악마랑 결혼할 뻔하고 가위손에선 양아치 남자때문에 에드워드와 헤어지는등 마음고생도 하고 드라큘라에선 드라큘라에게 유혹당하거나 영혼의 집에서 군부 세력에 끌려가서 얻어 터지고 고문 당하는 역할을 하거나 에이리언 4에선 에일리언들에게 쫒기고 엑소시즘에서 사탄때문에 고생. 프랑켄 위니에선 박쥐고양이에게 쫒기고 기묘한 이야기에선 베크나 등 초자연적 존재들에게까지 위협을 받는 등의 고생을 많이 한다. 육체적 고생을 하지 않더라도 묘하게 망가진 이미지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처음 만나는 자유(영화)에서는 정신병으로 정신병동에 간 소녀, 스캐너 다클리에서는 마약 중독자, 블랙 스완에서는 한물 가서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발레리나로 나온다.
[1]
1938년생 작가이자 사업가.
영문판 위키피디아에 개인 항목이 개설되어 있다.
[2]
이 영화에는 위노나의 전남친인
조니 뎁이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사실 여기서 만나서 교제하기 시작한 거다.
[3]
넷플릭스 컨텐츠 전체 조회수 1위
[4]
기묘한 이야기로
밀리 바비 브라운과
핀 울프하드를 비롯한 아역 배우들은 미국에서 가장 핫한 셀럽으로 등극했고, 위노나 라이더를 비롯한 다수의 배우들도 전성기에 오르게 되었다.
[5]
위노나는
미네소타의 도시 이름으로, 그녀가 태어난 옴스테드와 인접해 있다.
[6]
후일담으로 몇 년 후 위노나가 비틀쥬스 흥행으로 유명해지자 그녀를 괴롭혔던 동급생 중 한 명이 위노나에게 사인을 요청했는데 위노나는 그 동급생을 알아보고 내가 누군지 아냐고 하며 너가 나를 괴롭혔던거 기억하냐고 묻자 그 동급생은 가해자답게 모른다고 했고 위노나는
"좆까(Fuck you)"라고 말하며 자기 갈 길을 갔다고 하였다.
[7]
1988년 영화
비틀쥬스는 위노나 라이더가 주연으로 출연한 작품인데, 동영상에는 안나왔다...
[8]
조찬 클럽 같은 존 휴즈류 1980년대 하이틴 코미디에
시계태엽 오렌지를 뒤섞은 패러디물에 가까운 영화로, 조찬 클럽과 함께 X세대 컬트 영화로 유명하다. 다만 개봉 당시 흥행은 실패했고 2차 시장에서 명성을 얻은 케이스로 꼽힌다.
[9]
당시 위노나 라이더 대신 출연한 당시 대부 시리즈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딸이자 현재 배우가 아닌 영화감독으로 대성한
소피아 코폴라의 발연기를 보면... 위노나의 결정이 아쉽기만 하다...
[10]
수상자는
우피 골드버그의 《
사랑과 영혼》.
[11]
앞서 휴식을 위해 대부 3에 예정된 출연을 취소했던 것에 대한 사과의 뜻에서 제작자에게 코폴라 감독을 추천한 것은 물론 프리 프로덕션 때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12]
수상자는 《
피아노》의
애나 패퀸.
[13]
수상자는 《
블루 스카이》의
제시카 랭.
[14]
이 작품에서 알 파치노는 위노나 라이더를 주연 중 하나로 앤으로 기용했다. 재밌는 점은 알 파치노가 2002년 영화 시몬에서 극초반에 작중 유명 여배우로 나오는 위노나 라이더에게 퇴짜 맞는 감독으로 나온다는 점이다. 당시 위노나 라이더는 2001년 절도 사건으로 영화에 제대로 나오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15]
그녀의 오빠가 에이리언 시리즈의 팬인 것이 출연을 결정한 이유 중 하나였다고 한다.
[16]
위키백과에서는 Hiatus라고 표현했다.
[17]
실제로 당시 위노나 라이더는
SNL 시즌 27의 마지막 호스트로 출연해서 본인이 직접 자신의 절도 스캔들로 자학 개그를 하기도 했다.
[18]
영화에 캐스팅된 배우들에게는 촬영 전에 영화 제작사가 보험을 들어 주는데, 로버트는 당시 한창 마약 중독으로 온갖 사건사고를 일으키고 다녀서 보험료가 엄청나게 치솟아 제작비에 무리를 줄 정도가 되어 아예 제작사에서 그의 섭외를 포기하게 되었다.
[19]
다만 전세계 흥행까지 보면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약간 더 많다.
[20]
기묘한 이야기는 현재 전세계인들이 좋아하는 미드 중 하나이기도 하다.
[21]
2019년 10월 29일에 꼬박 48세가 된다.
[22]
모 락 칼럼니스트가 락계 뉴스를 전한다면서
"위노나 라이더는 '그런지 락커의 재산이 발톱의 때만도 못하다' 했다더라"라고 발언한 적이 있었다. 저 당시 우리나라는 해외와는 달리 락이 인싸 음악이 아니었고 오히려 배척받았기 때문에, 락꼰대들의 피해의식이 겹쳐 이러한 루머가 생성된 것으로 짐작된다. 90년대 당시에는 이렇게 출처도 없이 뇌피셜로 나온 발언이 그대로 매스컴을 탔다. 참고로 2000년대 초반까지 국내 인터넷상에 퍼졌다 사그라든
엑스재팬 요시키의 태극기 훼손 루머도 비슷한 시기에 이 자의 입에서 나왔는데, 엑스재팬 팬들이 항의하자 '일본 락뿐만 아니라 국내 락도 많이 들어달라'라며 사과 같지 않은 사과를 한 적도 있다. 이렇듯, 90년대 당시 해외 유명인의 경우 이렇게 국내 한정 가짜뉴스가 은근 많아서 덕질을 할 때 유의해야 한다(...)
[23]
주정뱅이
[24]
1990년대 인기를 얻은 얼터너티브 밴드로, 대표곡으로는 Runaway Train이 있다. 위노나 라이더는 Without a Trace라는 곡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기도 했다.
[25]
참고로 팰트로는 이것 때문에 엄청나게 까인다. 후보였던
콩라인의 여왕인
메릴 스트립,
케이트 블란쳇과 에밀리 왓슨, 페르난다 몬테네그로 등 쟁쟁한 배우들 가운데 연기력이 출중하지 못한 펠트로가 마치 상을 강탈해갔다는 인상이 강했기 때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제작/배급사의 정치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꼽힌다. 《
셰익스피어 인 러브》를 배급했던 회사는 미라맥스인데 당시 미라맥스의 수장이었던
하비 와인스틴은 제작자로서의 능력도 뛰어났지만, 오스카 캠페인을 잘 하기로도 소문이 나있었다(...)
[26]
사실 리어리는 마약 문화에 옹호적이었지만 그렇기에 약물 면허 제도가 필요하다고 관련 청문회에서 말할 정도로 어느 정도 통제에 대한 자각이 있던 사람이었다. 또한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리어리는 의외로 나이가 많았다. 히피 세대보다 훨씬 웃세대인데 위노나가 태어났을 무렵엔 50살을 넘겼을 정도.
[27]
1981년 1월 3일생, 1993년 10월 1일 사망하여 향년 12세로, 살아 있다면 현재 [age(1981-01-03)]세이다.
[28]
현재 미국에서 미성년자 실종 및 납치 사고 발생시 발령되는
앰버 경보(Amber alert)는 1996년 앰버 양 피살을 계기로 2003년에 도입되었으니 클라스가 사망한 지 10년이나 뒤에 생긴 것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경보가 울리는 것도 따로 없으니 실종 수색이 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