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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3 13:59:06

언어 사대주의

1. 개요2. 어형3. 언어 사대주의의 예시4. 원인5. 언어 사대주의를 가진 인물 및 단체6. 같이 보기

1. 개요

언어 사대주의(言語事大主義)는 모국어, 특히 한국인 한국어가 열등하다는 의식을 갖고 동시에 상대적으로 다른 어느 언어가 우등하다는 의식을 지녀, 모국어를 폄하하고 질이 낮은 언어로 생각하고 멸시하며, 타국의 언어나 언어 문화를 맹목적으로 추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고를 말한다. 역사적으로 강대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해당 국가의 사상과 문물, 학술을 받아들였을 경우에 자주 발생한다.

2. 어형

'언어 사대주의'라는 말은 '언어'와 '사대주의'를 결합시킨 조어한국 국내에서 주장되고 사용된 개념이다. 물론 외국에도 유사한 현상을 비판하는 의식은 존재하나, 한국에서 거론되는 '언어 사대주의'와 완전히 동일한 것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한국의 언어 사대주의 담론은 비단 언어학 또는 문화학적인 개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역사적 특수성 및 한반도와 이를 둘러싼 강대국의 세력이라는 지정학적 요소까지 고려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영어를 포함한 대부분의 외국어로는 ' 사대주의'라는 개념을 명확히 번역하거나 일대일 대응시키는 것이 어렵다.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사대주의를 'flunkeyism' 또는 'toadyism'이라고 해 놓았는데, 엄밀히는 다른 뜻이다. 저 두 표현들은 ' 아부, 아첨'에 포커스가 있지, 한국의 '사대주의'처럼 다른 것을 높이고 자기네 것을 깎아내리는 형태와는 거리가 있다. 그 때문에 아예 영어 위키백과에서는 사대주의를 'sadaejuui' 또는 'serving-the-great-ism'으로 표현해 놓았으며, '한국의 고유 철학'이라 분류해 놓기도 했다.

문화를 바라보는 태도(관점) 역시 자문화 중심주의 문화 상대주의는 각각 \'ethnocentrism', \'cultural relativism'으로 표현하지만 타문화 중심주의의 경우 구글 등에서 그 검색 결과 자체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이 같은 맥락에서 언어 사대주의 또한 \'language flunkeyism'이라는 표현은 존재하지 않고, 아예 영어로 옮기는 것 자체가 어렵다. 굳이 옮기면 위백식 표현을 이용해서 \'language sadaejuui' 정도로 옮기는 편이 낫다.

맥락에 따라서 snobbism이나 inferiority complex 등의 표현으로 옮기는 방법도 있겠으나, 전자는 당사자가 외국어를 차용하거나 사용하며 우월의식을 느끼는 경우에는 적용할 수 있어도 그 외에는 적용하기 어렵다. 후자는 반대로 종주국이나 그 문화에 대해 느끼는 열등감은 표현할 수 있어도 그 외의 개념은 포괄하지 못한다. 동아시아에서의 '사대주의'는 이 두 가지의 혼합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실 '언어 사대주의'라는 개념어는 '사대주의'가 지닌 원래 뜻[1]과 맥락이 많이 달라진 상태다.

따라서 이상의 담론을 종합하면 '언어 사대주의'는 오늘날 대한민국에서의 영어 사대주의를 예로 들 때 차라리 'obsession with English (영어에 대한 집착)' 정도로 옮기는 게 알맞다고 할 수 있다. 굳이 영어에 국한짓지 않는다면 'English'를 'foreign languages'로 바꾸면 된다.

3. 언어 사대주의의 예시

4. 원인

언어 사대주의의 원인은 국가에 대한 사대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강대국의 문물이 선진 문물이라는 생각에 그 나라에서 쓰는 언어마저 선진 언어이고 우수한 언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색안경을 끼고 언어를 바라보고 자국어를 폄하하며, 자국어는 불분명하고 비논리적이지만, 외국어(특히 한국인에게는 영어)는 분명하고 명확하며, 논리적이라는 생각을 지니게 된다.[9] 이미 역사적으로, 대한민국은 1945년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 후 빠른 광복으로 인해 자주적 독립에 실패했고,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서 과거 청산 없는 민주주의 국가 건설로 인해, 거대한 미국의 군사력을 등에 업은 친미로 갈아탄 친일파들이 득세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건국 때부터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또 다른 원인으로 언어 콤플렉스를 들 수 있다. 이는 최근 20대의 미국이나 호주 등의 영미권 국가에 대한 갈망과 맞물리는데, 영어 공부의 부담감으로 발생한다. 언어 콤플렉스의 예로는 모국어의 문법은 굳이 세밀하게 배우지 않고 외국어 문법은 세밀하게 배우는 점이 있을 것인데, 한국인은 한국어 문법을 지엽적으로 배우지 않는다. 배워 봐야 비교적은 굵직한 영역과 일부 어문 규범 정도만 배울 뿐이다( 자주 틀리는 한국어의 원인이기도 하다). 영어를 배울 때와 같이 세세한 문장 구조나 각종 예외적 구문, 단어의 어감적 차이( 뉘앙스) 등은 학습하지 않는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미국이 강대국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한국인 입장에서는 배우기가 매우 어려운 영어를 그들이 쓰니 영어는 한국어와 달리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언어라는 편견이 생기고, 이게 곧 영어에 대하는 열등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영어를 쓰는 사람이면 굳이 영어 학습에 열을 올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더욱 영어에 대하는 부러움을 갖게 되고, 이게 곧 언어 사대주의로 이어진다.

실제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일단은 능력자이자 부러움의 대상이 되며, 동시에 질투와 시기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단순히 한국에서 나고 자라서 영어를 잘하는 것을 두고 그러는 게 아니고 영어권에서 태어나 자라서 영어를 하는 게 익숙한 청소년기에 주변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무엇이 다르고 우등하고 공부를 잘할 것이라는 편견 + 미국 국적이 있으면 그 이득까지 가질 수 있어서 멸시의 대상이 되는 해외 귀국 자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괜히 있어 보이려는 사람들이 영어를 섞어 쓰는 일도 잦다. 이와 같은 오해를 하는 이들에게는 영어는 곧 지식의 수준을 가늠하고 사람의 품격을 가르는 기준이다. 조선시대 한자와 똑같은 대우.

물론, 이와 같은 현상은 대한민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한국이랑 더불어 영어 사대주의가 심한 나라로는 일본을 꼽을 수 있다.[10]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개화하고 경제발전을 시작한 나라답게 영어 사대주의적 행태 역시 한국보다 20~30년 먼저 일어났는데, 1970년대 이전부터 영어를 노래 등에 기본 수준으로 남발해왔고, 거품경제 시절 광고들 중 " I feel Coke"(...) 같은 사례는 꽤 유명하며, 심지어 공영방송인 NHK의 심야뉴스 프로그램조차 제목을 외국인 목소리까지 곁들여가며 'Midnight Journal'로 쓰던 역사까지 있다. 지명이랑 역명에도 마찬가지로 ' 미나미알프스시'랑 ' 타카나와게이트웨이역', ' 카나자와 시사이드라인' 같은 사례가 있고, 한자로 적고 영어로 읽는 등의 ' A라고 쓰고 B라고 읽는다'도 있다. 영어의 종주국인 영국에서도 그 옛날 귀족들이 프랑스어를 고풍스럽게 생각한 까닭에 자기들끼리는 프랑스어 위주의 생활을 한 적이 있고, 이는 오늘날 영어 어휘의 상당수가 중세 프랑스어에서 기원한 단어로 구성되어 있는 원인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고급 어휘의 어원이 대부분 자국어로 이뤄진 유럽의 다른 언어들과 다르게 영어의 고급 어휘는 프랑스어 + 그리스어가 추가로 끼얹어져 있다. 재미있게도 프랑스, 이탈리아 같은 이탈리아어파 국가들에서는 영어의 위상이 20세기 말 이후로 급등하면서 역으로 자기네들이 영어 단어들을 수입하고 있다. 물론 그 영어 단어에는 이탈리아어파에서 기원한 단어들이 다수 섞여 있다.

그리고 한국어와 영어는 언어 유형과 어족부터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의 언어를 배우기가 극과 극으로 어렵다. 이와 같은 언어 사대주의, 특히 한국에서는 영어 사대주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기회에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한국어 동사 활용 등과 관련해 겪는 어려움을 접할 때 적지 않은 정신적 충격을 받기도 한다. 이들은 그제서야 '아, 우리도 정말 복잡하고 어려운 언어를 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때가 적지 않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에서'와 '', '(으)로'의 차이가 뭐예요?"라고 여러분에게 질문했다고 생각해 보라. 언어 사대주의를 갖고 있던 사람들의 상당수가 이러한 기회를 통해 자신이 그동안에 잘못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반대로 상술된 것처럼 한국어는 영어보다 비경제적이라는 편견을 가질 수도 있지만. 이는 '비효율의 숙달화'와 비슷하기도 하다. ' 경로의존성' 문서, ' 규범주의와 기술주의' 문서의 "몇몇 경우에서는 언어 규범을 제정할 때 언어 규칙에 따르는 것을 위주로 할 때도 있다." 부분 참고.

영미권 사람들의 입장에서 한국어는 전 세계에서 매우 배우기 어려운 언어의 범주인 카테고리 5에 들어간다. 그 난이도의 대부분이 한국어의 문법이다. 심지어 "단위 앞의 숫자를 한국식으로 읽는가 한자식으로 읽는가"에 대한 내용 하나가 한국어 교재의 한 장을 통째로 차지한다('1'~'10'까지는 대체로 한국식 고유 독법으로 수를 읽으나, '11'부터는 한자어이며, '리터'나 '미터' 같은 외래어 단위 앞에서는 무조건 한자어로 읽는다). 특히 존댓말은 한국인은 물론이고 한국을 어설프게 알고 있는 외국인들도 끝에 '요'만 붙이면 된다고 착각할 수 있는 요소인데, 아주높임인 격식체 합쇼체부터 아주낮춤인 해라체, 비격식체인 해체와 사물까지 상황과 청자/화자의 높낮이에 따라 다양한 표현(밥/식사/끼니/진지 등)을 쓸 수 있고, 어떤 표현을 쓰면 되고 안 되고 등으로 굉장히 복잡하다. 선교하러 온 외국인 목사가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예배 첫날에 " 암컷은 이쪽, 수컷은 이쪽에 앉으세요."라고 정중하게 안내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한국어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영어나 다른 언어들에도 다양한 문법적, 관례적 용법이 존재하는 만큼 섵불리 '어느 언어가 더 간단하다/복잡하다' 이런 식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한편으로 외국어는 자국어보다 새롭고 신선하다는 느낌을 주는 게 당연하다. 당장에 우리가 보기에는 별 것 아닌 한국의 전통 문화나 물품이 외국인들 사이에서는 신기하고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가 신비롭고 색다르다고 느끼는 각종 대중문화의 외국어로 도배된 명칭들도 정작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촌스럽고 별 것도 아니거나, 심지어 우스꽝스러운 표현으로 느껴질 수 있다. 실제로 코카콜라에서 한글 패턴이 들어간 티셔츠를 출시했지만 외국인들은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기는커녕 오히려 좋아했고, 서구권에서는 비록 그 의미는 모르지만 한자 한글이 새겨진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복고 세대 차와 비슷한 일이다. 위의 "각종 가요의 영어 가사" 내용처럼 낮설게 하기 같은 일도 있다.

5. 언어 사대주의를 가진 인물 및 단체

6. 같이 보기



[1] 생존을 위한 외교적인 저자세, 혹은 중화사상에서 파생한 명분론 등. [2] 그러나 영어와 여러 유럽 언어들은 불규칙 활용 등이 많아서 경제적과는 거리가 먼 편이다. [3] '용감하게 돈 떼먹는다'라는 의미다. [4] 공식 표기는 영문이지만, 실제 Apple Store의 간판은 어떠한 문자도 없이 Apple 로고만 있는 것이 대다수이다. Apple 가로수길의 모습 [5] 예전에는 < Dynamic Busan>이었는데, 슬로건을 <Busan is good>으로 바꾸면서 오히려 더 센스를 낮추었다는 혹평이 많다. [6] 가령 한국어에서 '나-저', '너-그대-자네-당신-귀하', '합니다-하오-해요-하네-한다-해' 같은 다양한 인칭대명사/어미의 변화가 있지만, 영어에는 그런 게 없어 한국어만큼의 다양한 느낌을 전달해 주지 못한다. 또한, 영어의 음절은 ' Marx'도 1음절인 것처럼 다채로움에 유리하나, 한국어의 음절은 1음절인 전자를 4음절인 '마르크스'로 적듯이 영어의 음절보다 불리하다. [7] 단, 이마저도 일부 와패니즈들이 일본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는 예외적으로 나타나는 일이 있다. [8] 당연하지만 고유어, 한자어를 외국어, 외래어로부터 지키려는 것과는 무관하다. [9] 사실 영어 쪽에서도 비논리적인 문장이나 예문들은 허다하게 등장한다. 어떤 언어가 본질적으로 논리적/비논리적인지를 따지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언어를 논리적인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훈련해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10] 다만 20세기 초까지는 중국 고전 등을 참고해서 외국어를 한자어로 대부분 번역해서 사용하는 등으로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