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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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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법률상으로는 죽음으로 인정되지 않으나, 의학계에서는 죽음의 기준으로 봄. }}}}}}}}}


1. 개요2. 특징3. 과거의 사형4. 세계의 사형제 현황5. 존폐 논란6. 마지막 식사7. 범죄와 무관하게 선고 및 집행이 불가능한 경우8. 사형의 종류9.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들10. 기타11. 관련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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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형(死刑, Capital punishment[1], Death Penalty, Execution)은 수형자를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키기 위해 생명을 박탈, 즉 죽음에 이르게 하는 형벌을 일컫는 말이다. 생명을 박탈하기 때문에 생명형, 생명박탈이라고도 한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arl_Morgenschweis_prays_for_Franz_Strasser.jpg
교수형 집행을 위해 올가미를 쓴 나치 독일 전범 '프란츠 슈트라서(Franz Strasser)'의 처형 장면. 나치당 군구지휘자였던 그는 2명의 미합중국 육군 장병 기관총으로 사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후 란츠베르크 교도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져 사망하였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40px-Electric_Chair_at_Sing_Sing-noborder.jpg
영화 <Carolina Skeletons>에서 재연한 누명을 쓰고 전기의자형 집행을 위해 의자에 묶이는 조지 스티니의 모습. 향년 14세였던 스티니는 백인 여아 두명을 살해한 혐의로 졸속재판을 통해 사형을 선고받고 같은 해 사형되었다. 스티니는 70년 뒤 2014년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 집행 방법은 형법에선 교수형, 즉 목을 매달아 사망하게 함으로 한정하고 군형법에선 전통적으로 무기에 의한 처형을 우선시하므로 총살 즉 총을 쏘아 사망하게 함으로 한정한다. 군형법이 일반 형법에 비해 특별법이기 때문에 특별법 우선의 원칙이 적용된다. 여타 광의의 형법의 사형 집행 방법은 형법상의 교수형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따라 그 외의 방식의 집행은 일절 허용되지 않는다. 사고나 여러 가지 문제로 사형장에서 법령에 정해진 사형 이외의 방식으로 죽게 생긴 경우에도 얼른 구조한 뒤 회복시키고 나서 다시 사형 집행일을 잡고 규정대로 집행하는 것이 원칙이며 어차피 죽을 거라고 그냥 방치해 죽게 만들면 현장의 교도관 등이 직무유기 등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따라서 교정 당국은 사형수가 자살을 시도할 가능성을 기를 쓰고 막으려고 한다.

미국에서는 사형 방식이 다른데 전기의자형, 약물주사형, 가스형, 총살형(미군, 유타주) 등이 있다.

2. 특징

현대에 와서 사법체계가 범법자의 처벌에서 계도를 중심으로 바뀌고 인권문제가 부각됨에 따라 사형제에 광한 찬반양론이 매우 분분하며 지금도 식을 줄 모르는 논란의 중심에 있다. 사형제를 폐지한 나라에서는 부활[2],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현재까지 법정 최고형으로 사형을 인정하는 국가는 91개국으로, 통념과 달리 사형제 폐지 국가가 더 많다.(104개국).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형제가 존재하는 국가에 사는 사람의 인구가 더 많다.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 10개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 인도네시아, 브라질,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방글라데시, 멕시코 가운데 러시아 브라질, 멕시코를 빼고 모두 사형제가 존재한다. 브라질은 평시에는 사형제 폐지이나 헌법 5-47조에 의거해 전시에 저질러진 심각한 군사적 성격의 범죄에는 사형이 적용될 수 있고 러시아는 "무기한 연기"라고 하지만 "완전한 폐지"와는 다르다. 즉, 사형제 허용의 범위를 최대한으로 넓히면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10개국 중 멕시코를 제외한 9개국에서 모두 사형제가 존속하고 있다.[3]

같은 사형이라도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여서 어떤 방식으로 죽느냐, 어떤 사람에 의해 죽느냐에 따라 취급이 달랐던 묘사가 세계 곳곳에서 현재까지 발견되고 있다. 우선 조선 시대를 예로 들자면 양반 및 왕족들은 사약으로 사사하고 대역죄인일 때만 참수형이나 교수형으로 처분하지만 중인 이하는 사약 따윈 없고 참형이나 교수형이 기본이며 대역죄인이면 능지처참이나 거열형으로 가는 등의 차이를 두었다. 유럽에서는 검으로 죽냐 도끼로 죽냐에 따라 차이가 있었는데 검으로 죽는 것은 전장에서 싸우다가 영예롭게 죽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도끼로 죽는 것은 명예롭지 못한 죽음이라 여겼다. 이는 후대에도 영향을 끼쳐서 헤르만 괴링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 교수형이 선고되었는데 " 총살형으로 바꿔달라"고 탄원했다가 기각되자 숨겨둔 독극물로 자살했다. 이는 군인 신분이란 괴링의 신분과 군인의 상징인 무기가 검에서 총으로 넘어간 영향이며 그가 총살형을 원한건 전근대의 전사명예의식 때문이라고 추측 가능하다.

근대까지는 군주에게 있던 사형 허가권이 현대에는 각국의 법무당국 수장에게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은 대한민국 법무부 법무부장관(군인의 사형은 국방부장관), 일본은 법무성의 법무대신에게 있다. 하지만 중대한 사안인 만큼 실제로는 대통령 혹은 총리가 사형 집행 가부를 결정하고 법무부장관은 그저 결재만 맡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2004년과 2006년 각각 김승규 김성호 법무부장관이 사형 집행을 하려고 하였으나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이 이를 막아 사형 집행이 무산됐다. 이명박 정부 시절 이귀남 법무부장관도 사형 집행을 했으나 결국 사정에 막혀 무산되었고 후임자 권재진 장관은 한 국민에 의해 직무유기로 고발된 적도 있었으나 검찰에서 각하 처분했다.[4] 홍준표 19대 대선 20대 대선 당시 사형제 부활을 공약으로 내건 적이 있었다.

현대 사회의 사형은 어디까지나 피형자의 사회 격리가 목적이므로 비공개적이며 최대한 고통을 안 느끼게 하는 사형 방법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북한이나 중국처럼 사회통제적인 목적으로 사형을 실시하는 나라도 있고 예전 같은 잔인한 사형법을 택하지는 않으나 공개처형 제도가 몇몇 나라들에서 아직 남 아있다. 북한에서는 이러한 공개 처형은 주로 총살이다. 가끔식 개에게 먹이로 주거나 몸의 피부만 벗기는 잔인한 형벌도 집행된다. 이란 아프가니스탄은 석형(石刑) 또는 투석형(投石刑)이라고 하는 사형법을 실행하고 있는데 수형자를 반쯤 생매장한 뒤 돌을 던져 처형하는 방법이다. 이에 대한 인권단체들의 비판이 거세다. 특이하게도 혹시나 수형자가 생매장에서 탈출하면 집행을 멈추는데 남성은 허리까지, 여성은 가슴까지 묻는다. 이란은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최근에는 교수형으로 대체하는 추세인데 투석형을 없앴을 뿐 인권개념이 원래 없기 때문에 교수형도 최대한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집행하고 있다.

미국 텍사스 주는 교정국 홈페이지에 사형수 명단과 죄명, 범죄 내용, 사형수의 사진이 포함된 개인 신상정보를 모두 공개하며 사형 집행 예정일, 사형 집행 시 유언, 사형 집행일 등을 모두 공개한다.

3. 과거의 사형

사형은 18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징역형보다 더 일반적인 형법으로, 수직관계가 많았던 사회구조에서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공포로 지배하기 위하여 약간만 무거운 죄상이여도 남발하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절도나 기타 가벼운 범죄의 경우는 민중의 반감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사용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고 주로 반역, 살인, 성범죄 등 당시 민중들도 "이것은 매우 큰 죄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죄목을 이렇게 다루었다. 이 중 반역은 정치적인 이유로 남발되기 쉬웠는데 주로 지배층의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정치적인 적대세력을 모함하여 제거하는데 합법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서 상당히 애용됐다. 전근대 사회의 사형은 사회통제의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로 공개적인 방식을 사용하며 방법도 매우 잔인했다. 공개성/잔학성의 둘 중 하나의 요소는 대개 포함되며 둘 다 포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표적 예로 화형) 몽골에서는 나무로 된 상자 안에 가둬놓고 굶겨 죽이는 무시무시한 방법도 있었다. 사실 이건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실제로 1913년에 여자 사형수가 이 방식으로 처형당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있다. 다만 잔학성은 인권 인식의 발달에 따라 교수형의 끊임 없는 개량, 약물주사형의 고안 및 집행, 단두대의 발명 등으로 사형이 점차 범법자의 고통을 줄이고 신속하게 사형을 집행하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많이 줄어들었다.[5] 현재의 일반적인 국가의 사형 방식도 대부분 그런 방향으로 고안된 것이다.[6]

전근대 사회에서 사형의 특이점은 형식적으로라도 군주가 명령을 내려야 사형이 가능했다는 점이다. 즉, 범죄에 대한 수사와 재판은 신하가 한다 하더라도 사형을 내리는 주체는 군주였으며 이는 군주만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왕권 강화의 한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수틀리면 별거 아닌 트집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을 할 경우 폭군 취급을 당해 심할 경우 쫒겨나기도 하지만 마음대로 죽일 수 있다는 권리는 엄청난 권리였다. 이러한 특이점은 군주의 권한을 강화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말하면 사람의 생명은 지존인 군주의 허락이 있어야만 빼앗을 수 있을 정도로 엄격한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조선시대도 개인의 재산인 노비일지라도 함부로 죽이면 그 양반이 처벌을 받을 정도로 엄격하게 대응했다.[7] 경국대전의 형전에 따르면 조선은 사형수에 대해선 반드시 3심제를 거쳐야 했다. 최초로는 관찰사가 보낸 차사원이 해당 고을의 원과 함께 한차례 심리하고 다시 관찰사가 차사를 2명 임명하여 심리를 하며 마지막으로 관찰사가 최종적으로 직접 신문하여 그 결과를 왕에게 보고해야 했다. 조선의 왕들은 8도의 관찰사들과 형조에서 사형을 청원하는 장계가 올라오면 일일이 읽고 사형을 최종적으로 결정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미심쩍은 것이 보이면 사형을 보류하기도 하고 재조사를 명하기도 했는데 이런 사례를 보인 왕으로는 세종대왕이 유명하다.

4. 세계의 사형제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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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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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한민국은 사형제를 유지하지만, [age(1997-12-30)]년째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어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된다. 인위적으로 생명을 박탈하지만 않을 뿐 절대적 종신형과 다를 바 없이 운영되고 있으며[8] 사형수가 사망할 때까지 사회 복귀를 영구적으로 불허하고 있기 때문에 가석방 가능성이 이론상으로나마 존재하는 무기징역보다 원칙적으로는 여전히 더 강력한 형벌이라고 볼 수 있다.[9]

대한민국에서는 형법 군형법을 비롯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성폭력특별법 등 많은 광의의 형법이 사형을 형벌로 규정하고 있다. 1948년 대한민국 제1공화국 출범 이후 1949년 7월 14일 살인범을 사형에 처한 것을 시작으로 1997년 12월30일까지 모두 920명에 대한[10] 사형이 집행되었으며 1997년 12월 30일 사형 집행을 마지막으로 1998년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사형제 폐지를 공약[11]했던 대통령의 뜻에 따라 사형을 선고하되 집행하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사형집행을 부활하려는 시도가 수차례 있었으나 논란이 거센 사안이라 족족 무산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형법에서 집행할 수 있는 형벌은 9가지가 있는데[12] 형벌이 제한하는 권리를 기준으로 분류해 보면 이는 생명형, 신체형, 자유형, 명예형, 재산형의 5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자유형 이하 3개 항목은 일반적인 법치국가라면 대부분 집행된다. 신체형은 일부 동남아시아 이슬람권 등 전근대적인 형법체계를 가진 국가에서나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 해당국이 아니면 별 논란이 없다.[13] 그러나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역시 사람의 기본권 중 가장 근간을 이루는 생명을 박탈하는 생명형, 즉 사형이다. 사형은 국가의 이름으로 당사자의 생명을 제한하는, 불가역성을 가진 형벌이기 때문이다.[14] 이 때문에 사형 판결은 매우 신중하게 진행되며 대한민국에서 형사소송법에 의해 피고측은 상소를 포기할 수 없는데 이는 심지어 헌법으로 유일하게 단심을 허용하는 경우조차 예외가 아니다. 즉, 사형 판결은 반드시 3심을 모두 거쳐 확정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10조
④ 비상계엄하의 군사재판은 군인·군무원의 범죄나 군사에 관한 간첩죄의 경우와 초병·초소·유독음식물공급·포로에 관한 죄중 법률이 정한 경우에 한하여 단심으로 할 수 있다. 다만, 사형을 선고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
형사소송법 제349조
검사나 피고인 또는 제339조에 규정한 자는 상소의 포기 또는 취하를 할 수 있다. 단, 피고인 또는 제341조에 규정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나 무기금고가 선고된 판결에 대하여는 상소의 포기를 할 수 없다.
군사법원법 제406조
군검사, 피고인 또는 제396조에 규정된 사람은 상소의 포기 또는 취하를 할 수 있다. 다만, 피고인 또는 제398조에 규정된 사람은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가 선고된 판결에 대하여 상소의 포기를 할 수 없다.
사형은 어떤 상황이 되었건 집행하는 측에서는 피집행자가 죽어야 하는 이유를 확실히 하고 공개적인 절차를 밟아서 사망시켜야 한다. 과거에는 권력관계에서의 정치적인 이유의 사형도 있었으나 대부분 율법이라는 것을 덧씌워야 정당성이 부여되므로 그렇게 하여서 실시하였다. 대한민국의 경우에도 형법에 명시된 9가지 형벌[15] 중 사람의 생명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최고형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형법상 범죄는 내란죄, 외환죄, 여적죄, 간첩죄, 폭발물사용죄, 현주건조물방화치사죄, 살인죄, 존속살해죄, 강간살인죄, 강도살인죄, 해상강도치사•강간죄 등으로 매우 중한 죄에만 극히 한정되어 있다.

대한민국 군형법에는 사형을 법정형으로 하는 범죄가 꽤 많으나 평시에는 살인죄에만 사형이 선고되는 편이다. 적전상황에서 탈영해도 군법관이 판단에 따라 사형말고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할 수 있다. 심지어 법정형에 사형이 있다고 하더라도 양형기준이라는 것이 있다. 쉽게 말해서 살인자체를 즐기기 위해서 무고하고 선량한 시민을 죽인 연쇄살인마와 진짜로 수 년간 지속적으로 학교폭력을 당한 학생이 복수를 위해 연쇄 살인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면? 심지어 수사과정에서 학교폭력을 당한 학생이 살의를 품고 공격했으나 공격당한 학생들을 살리기 위해서 119에 신고하고 112에 자수하는 등의 모습을 취한 것이 드러난다면 아무리 결과값이 연쇄살인이지만 동일한 처벌을 하라고 강하게 주장하긴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전자는 미X놈, 싸이코패스라고 욕하는 반면 후자는 아무리 그랬어도 그런 선택을 하진 말았어야지 이 정도가 일반적일 것이다.

형법도 마찬가지다. 법정형에 사형, 무기, 10년이상의 징역 이런 식으로 정해놨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사형을 때리진 못하며 범죄의 동기, 범죄후의 정황, 피해회복을 위한 노력, 임의적 감경요인, 법률상 감경요인 등 모든 것을 고려하여 판단하게 된다. 따라서 그냥 악랄한 놈이라고 해서 판사의 마음대로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가끔 포털 사이트 등지에서 지들이 맘에 안 든다 싶으면 왜 사형을 안 때리느냐고 무조건 판사를 욕하는 댓글들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대부분 대한민국 양형기준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며 언론보도의 영향도 한 몫 하는데 언론보도 특성상 자극적으로 기사를 작성해야 돈이 되므로 피의자가 한 행동들에 대해서 드라마처럼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잦기 때문에 언론에서 보여주는 모습만 보고 분개하는 경우도 있다.

참고로 전술한 형법 제93조 여적죄는 법정형으로 사형만을 규정하고 있는 대한민국 형법의 유일한 범죄다. 적국과 합세하여 대한민국에 항적(抗敵)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범죄인데 판례는 커녕 기준 자체가 없다.[16] 군형법으로 들어가면 전지 강간[17], 불법전투개시[18], 적진으로 도주[19] 등 법정형이 사형인 범죄는 더 늘어난다. 다만 위처럼 법정형이 사형뿐인 범죄라고 해도 법관이 반드시 사형을 선고해야 하는 것은 아닌데 법관이 여러 정황을 보고 마지막에 단 1번만 형을 감경할 수 있는 작량감경(또는 정상 참작)이 있어서 사형을 무기징역이나 20년 이상 50년 이하의 유기징역으로 감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인 사형수의 사형 집행에서는 군종장교가 형장에 참관하러 오며 군인의 전통적 사형법인 총살형 직전에 설교 등을 하게 된다.

대한민국에서는 법률상 평일에만 사형을 집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 조항은 1997년 사형 집행 이후 생긴 조항이라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형이 집행될 당시에는 국가경축일(국경일), 일요일, 공휴일에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토요일에 사형이 집행된 사례로는 황태성 사건의 당사자인 황태성이 있다. 저 당시에는 토요일도 반나절 근무하고, 학생들도 반나절 등교하던 시기였기에 특이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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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존폐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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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마지막 식사


미국이나 유럽 기독교 문화권에는 사형 집행 전 사형수에게 원하는 음식을 제공하는 전통이 있다. 이 같은 전통은 유럽에서 사형수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만찬을 제공해주는 전통이 북미 신대륙에 들어온 유럽 이민자들을 통해서 전파된 것이다. 다만 벨라루스를 제외한 모든 유럽 국가와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을 비롯한 서구권 국가의 대다수가 사형을 폐지한 지금은 사실상 미국만의 전통으로 남아 있다.

미국에서는 사형을 집행하는 주들은 사형수의 마지막 식사에 대한 예산을 책정해 두고 그 금액 범위 내에서 사형수로부터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을 가져다 준다. 보통 40달러 이내로 하며 사형수의 주문은 아래와 같은 예시들이 있었다.
미국의 몇몇 주는 마지막 식사를 그냥 그날 교도소의 식단에 맞춰 주는데 이는 '로런스 러셀 브루어'라는 사형수 때문이다. 증오 범죄 및 살인죄[23]로 사형을 선고받은 그는 마지막 식사로 닭튀김, 스테이크, 치즈버거, 채소튀김, 바비큐, 아이스크림과 땅콩 등 호화스러운 잔치를 연상케 할 만큼 대량의 음식을 요구했지만 막상 사형 당일 이것들에 손가락 끝도 안 댄 채 사형장으로 끌려갔는데 마지막까지 교도소 관계자들을 엿먹이려는 심산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하여 "사형수에게 더 이상의 특혜를 주지 말자"고 주장했고 텍사스 주 상의 의원인 존 휘트마이어는 이 소식을 듣고 매우 극대노해서 "저런 악질적이고 마지막까지 뻔뻔한 놈에게 들어가는 국민의 세금이 아깝다"며 공감하면서 분노했고 2011년 이후부터는 텍사스 주에서 '마지막 식사' 관행을 없애고 나머지 죄수들과 똑같이 급식한다.

물론 예외도 있어서 호화로운 만찬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플로리다에서 스트립 클럽 매니저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고 2006년에 처형된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사형수 앙헬 니에베스 디아스(Angel Nieves Diaz)는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면서 최후의 만찬을 거부했고 평범한 식단을 대신 제공하려 했지만 이것도 거부했다.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의 주범인 티모시 맥베이는 2001년 사형 집행 직전 2파인트 크기의 민트초코 아이스크림만을 주문했다. 뉴욕의 한 술집에서 일어난 강도 사건에 살인을 저지른 혐의로 1963년에 처형된 뉴욕 주의 마지막 사형수 에디 리 메이스(Eddie Lee Mays)는 필립 모리스 社 펠 멜(Pall Mall)이라는 담배 한 갑만을 요청했으며, 메이스와 같은 해에 살인 및 납치 혐의로 처형된 아이오와 주의 마지막 사형수 빅터 페구어(Victor Feguer)는 자신의 무덤에서 올리브나무가 자라게 하고 싶다며 올리브 1알만을 주문했는데 사형 집행 이후 올리브 알은 그의 옷주머니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1 #2 #3

중국에도 비슷한 문화가 있어서 사형 전날 저녁으로 마지막 식사를 제공한다. 특기할 만한 점으로는 사형수의 마지막 식사에 생고기 한 점을 넣어준다는 것이다. 같은 중화권인 대만에서는 형장에서 마지막 아침 식사를 금문고량주와 함께 제공한다.[24]

마지막 식사와 관련된 유머들이 있는데 생존 시기를 늘려 살 날을 연장하고 혹시 모를 무죄 판결도 대비해 미래에 구할 수 있는 음식을 주문한다는 내용이 많다. 한 사형수가 마지막 식사로 딸기가 먹고 싶다고 하자 교도관이 지금은 겨울이라 딸기가 없으니 봄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반박했는데 사형수는 그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한다. 물론 요즘엔 겨울에도 딸기는 물론이고 각종 과일들을 구할 수 있어 안 통하는 수법이다.

5분 후 의외의 결말 시리즈 중 '5초 후 의외의 결말 - 판도라의 빨간 상자'에 나오는 에피소드에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감옥에서 수감되다가 간수가 찾아와 지금까지의 행동을 반성하고 검소하게 살겠다고 다짐하면 형 집행이 유예될지도 모른다고 했고 오늘 식사는 원하는 것으로 할 수 있다고 하자 왕비는 오늘이 사형 집행일인 줄 알고 5년 뒤의 와인이 마시고 싶다는 의미로 1798년산 와인을 부탁했지만 간수는 마지막 순간까지 생산연도를 제멋대로 정한다며 처형해 버린다.

실제 사례로는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 성왕이 있는데, 성왕은 태자를 교체하려다가 오히려 아들이 선수를 치는 바람에 사로잡히는 신세가 되었다. 이때 마지막 소원이라고 한 말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웅장을 먹고 죽고 싶구나."였다. 성왕의 속내는 며칠씩 삶아야 하는 웅장의 특성을 이용해서 지방의 진압군이 달려올 때까지 시간을 벌려는 것이었는데, 태자는 그걸 눈치채서 "곰 발바닥은 익히기가 힘들지 않소!"라는 말로 대응했다. 결국 버틸 수 없게 된 성왕은 흰 비단으로 목을 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7. 범죄와 무관하게 선고 및 집행이 불가능한 경우

8. 사형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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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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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기타

조선은 절기, 계절 등에 상당히 민감했는데 우선 생명이 생동하고 성장하는 여름, 추수기에는 아무리 살인범이라 해도 기본적으로 사형을 집행할 수 없었다. 단, 예외적으로 십악대죄는 사형이 확정되는 즉시 바로 집행됐다.[26] 어쨌든 계절만 뺀다면 문제가 없었지만 진짜 문제는 국가에서 제정한 금형일(禁刑日)이었다. 우선 현대인들은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있는 24절기 날에는 사형집행이 불가능했다. 더욱이 그 중 춘분 추분 사이에는 집행을 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월별로 보자면 매월 1일, 8일, 14일, 15일, 18일, 21일은 태일신선이 선악을 살피기 위해 지상을 관찰하는 날인 명진재일(明眞齋日)이라 하여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가 오는 날은 하늘이 슬퍼하시는 것이라고 하여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고 왕실의 사람들이 죽었거나 출생했을 때, 대소신료들이 사망한 정조시일(停朝市日)도 전 관청이 애도를 위해 업무를 중단하므로 집행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를 어기면 조선시대 형법에선 태형 40번이었기 때문에 귀찮다고 무시할 수도 없었다. 이 같은 쓸데없이 치밀한 금형일 때문에 얼핏 사형수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한다면 그것도 아닌 듯 하다. 생각하면 당연한데 사형이 정해졌는데 그게 자꾸 미뤄지면 초조해지지 않겠는가? 이에 관련된 실화가 있다.

연산군 10년( 1504년), 강원도 관찰사 '이복선(李復善)'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폭정을 펼치고 강간죄에 공금 횡령까지 저지른 악인임에도 불구하고 조정에는 '제 덕분에 여기는 그냥 만만세'라고 거짓 보고를 보내다가 결국 꼬리를 잡혀 조사 끝에 그동안의 악행이 발각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문제는 십악대죄에 해당되지 않아 금형일에는 사형집행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금형일을 피하기 위해 10월로 집행일을 정했더니 앞서 말했던 명진재일이었고, 다시 날 잡으니 그 날은 또 24절기인 추분이고, 다시 간신히 잡았더니 그 날은 또 연산군의 생일. 또또 잡았더니 웬걸, 하필이면 그 날 좌의정 허침(許琛, 1444~1505)이 사망해 정조시일이 되어 버렸다. 드디어 아무 날도 겹치지 않은 날 사형일을 잡아 사형장으로 일단 끌고 왔는데 이번에는 비가 쏟아져서 결국 감옥으로 다시 보내야 했다.

이쯤 되니 형을 집행해야 하는 관리들의 울화통이 아주 잿더미가 되도록 터져나간 건 둘째치고, 당사자인 이복선의 멘탈이 말이 아니었다. 집행일이 코앞으로 다가올 때마다 자꾸 집행일이 미뤄지니 본인은 거꾸로 자꾸 속이 타들어간 것이다. 사형집행한다고 끌려나와 망나니가 옆에서 언월도 들고 대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집행정지 통보를 받고, 또 며칠 뒤 다시 집행될 상황에 처했다가 또 정지되고 하면 멘탈이 멀쩡할까? 이쯤 되니 아예 본인이 " 답답해 미치겠단 말이에요 저 좀 빨리 사형시켜 주세요"라고 간청했지만 관리들조차 "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며 거절하는 상황이었고 결국 그는 사형 집행날을 제대로 잡지도 못하고 공포감과 초조함으로 화병을 앓다가 옥사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보면 화병이 사형을 집행해 준 꼴인데, 관리들도 사형을 집행하고 싶었을 리가 없으니 오히려 다행으로 여겼다고 한다.[27]

인류 선사시대부터 사형을 꾸준히 시행했는데 이는 자기가축화 효과가 있었다.

중국 여자 사형수 사형집행 동영상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데 이 중 95% 이상이 실제 상황이 아닌 연기다. 진짜 사형집행을 하는 동영상은 몇 없다. 이유인 즉 사형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조잡하고[28] 무엇보다도 동일인물이 여러 사형집행 동영상에 꾸준히 나온다. 이 사람은 사형 집행 컨셉의 영화를 촬영하는 배우이지 사형수가 아니다.

사형을 집행했으나 여러 이유로 살아남은 경우가 있다. 미국의 Willie Francis이란 사형수는 1946년에 전기의자형을 집행받았으나 전기의자가 불량이라 치사량의 전류가 흐르지 않아 살아남았다.[29] 일본의 타나카 토사쿠란 사형수는 1872년에 교수형을 집행했으나 당시는 교수형 도입 초기였던 영향으로 제대로 집행되지 않은 영향으로 사형장에서 4km 지점에서 숨이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해 정부는 사형은 이미 집행되었다며 호적을 복원했다.[30] 2013년에도 이란에서 비슷하게 사형 재집행이 취소된 사례가 존재한다.

폭군들과 독재국가가 사형을 정치범 탄압에 악용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간과되기 쉽지만 의외로 악질 독재국가인데도 사형을 집행하지 않거나 사형을 폐지한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에리트레아[31], 투르크메니스탄[32], 적도 기니[33], 짐바브웨[34]가 있다. 넷 다 북한과 동급으로 평가받은 적이 있을 정도의 악질 독재국가들이다.[35]

사형을 폐지한 국가라도, 권위주의 독재국가일 경우 혹독한 자연 속에 던져넣거나 의문사 시켜버리는 등 사실상의 사형이 벌어지기도 한다. 알렉세이 나발니 사망 사건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당연하지만 당연하겠지만 세상에 사형이라는 제도를 자랑거리로 생각하는 나라는 없다. 아무리 사형수가 악인이더라도 국가에서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간다는 것은 절대로 자랑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36] 전술한 권위주의 독재국가에서도 많은 나라가 표면적으로는 사형을 폐지한 건 사형을 집행한다는 것 자체가 부정적인 이미지만 남을 일이지 긍정적인 이미지로는 절대로 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37]

11. 관련 작품

사형제와 관련된 작품도 많지만 대부분은 죄인 개개인에 대한 동정심이나 반감을 자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영화나 드라마 등지에서는 억울한 사람이 사형을 당하는 전개가 꽤 많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영화에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나 데이비드 게일, 그린 마일, 그리고 7번방의 선물 등이 있다. 물론 집행자 교도관 나오키와 같이 찬반 양론을 떠나서 사형제 자체에 대한 깊은 고찰을 이끌어내는 만화도 있다. 오노 후유미의 판타지소설 십이국기 낙조의 감옥에서는 사형제를 부활시킬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류국 관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창작물의 사형수들은 각종 비인도적인 극비 실험에 이용당하고는 한다. '이 실험으로 네가 죽으면 죽는 거고, 죽지 않는다면 사형을 면해주겠다' 라는 조건을 걸어 실험에 참가시키는 설정을 한 SCP 재단의 D계급 인원들이 그 예이다. 사형수이기 때문에 실험을 실행하는 쪽의 죄책감이 현저히 떨어지기도 하고. 간혹 D계급 인원이 SCP-1983의 D-14134처럼 매우 큰 활약을 한 경우 사회로 복귀하게 해 주거나 재단으로 포섭하기도 한다.

사형을 집행한 것으로 위장하고 사형수를 빼돌려서 어떠한 비밀 조직에서 일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그 사람은 공식적으로는 죽은 것이 된다. 비밀 유지를 위해 사형 제도를 이용하는 것이다.

간혹 성적으로 응용되는 경우도 있다. 중국 관영통신에서 "사형의 암울한 면"을 주제로 한 여성 사형수 사진을 홈페이지에 게재하였는데 알고 보니 그 사진이 사형을 컨셉으로 한 사진이었다는 일이 있었다. #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 러시아 제국 황제의 농간으로 사형 직전까지 갔다 온 뒤 사상까지 바뀐다. 그가 그의 형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사형대에 선 죄수가 받는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인지 간접적이나마 느낄 수 있다.
[1] 영어 "Capital punishment"의 'Capital'은 라틴어의 'Capitalis'에서 유래한 것으로, ' 수도(首都)'라는 뜻의 "Capital" 에서도 볼 수 있듯이 '머리의'라는 뜻이 있다. 그러니 직역하면 ' 참수형'이 되겠으나 시대가 시대인 만큼 현대에는 참수형을 넘어서 목숨을 끊는 형벌이면 무엇이든 포함된다. [2] 사형제가 폐지된 유럽의 국가 벨기에에서는 연쇄살인범 마르크 뒤트루가 어린 소녀들을 납치해 잔혹하게 살해한 일이 있었는데 그를 처벌하기 위해 반드시 사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적극적으로 제기되었다. [3] 연방제인 미국은 50개 가운데 32개 주에서는 사형이 존속하고 있고 18개 주에서는 사형이 폐지되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연방정부에서는 사형을 선고/집행하는 데다 사형제가 없는 주에서 발생한 범죄도 테러 등 일부 범죄에 대해 연방 정부 차원에서 직접 재판하거나 사형제가 있는 주에서 재판하여 사형 폐지를 무력화하는 꼼수를 쓸 수 있다.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 사건의 범인 조하르 차르나예프는 사형 폐지주인 매사추세츠 주에서 테러를 벌였지만 연방정부가 재판하고 사형을 선고했다. [4] 직무유기죄는 정당한 이유 없이 직무 수행을 거부하거나 유기한 경우에만 성립한다. 검찰은 1998년 들어서부터 집행이 없었던 것, 유럽연합 등과의 합의 등에 따라 섣불리 재개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은 권 장관이 집행 명령을 하지 않고 둘 이유로 정당하다고 판정한 것이다. [5] 다만 이는 인권 존중의 휴머니즘 같은 문제 때문만은 아니고 워낙 사형수가 많아서 신속하게 사형을 집행할 필요성도 생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잔인하게 처형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지켜보는 사람과 집행자에게도 만만찮은 심적 고통을 가져다 주는 경우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사형을 공개 집행하는 경우에는 대중이 사형수가 저지른 범죄의 잔학성에 주목하지 않고 사형수를 동정하거나 정부나 사법부에 반감을 품는 역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사형을 시행하더라도 가급적이면 덜 잔혹하고 신속하게 집행하고 외부에 그 과정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가 되었다. 물론 일부 이상한 유사 국가 집단들은 예외다. [6] 하지만 미국은 사형 집행 시 그 사형수가 저지른 살인의 피해 유가족들을 참관인으로 초대하는 경우가 많다. 사형수가 자신이 저지른 살인의 대가로 죽는 모습을 보면서 유족들이 겪는 PTSD가 완화되는 효과가 크다고 한다. [7] 사실 노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노예라고 해도 무슨 고대 전쟁 포로나 인도에서 불가촉천민 보듯 인간 미만의 존재로 인식하지는 않았으며 해당 인물의 권리가 어느정도 제약될 뿐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는 존재하였다. [8] 가석방은 물론이고, 귀휴도 불가능하며, 형집행정지로 교도소를 나올 수도 없다. 사형수는 법무부장관의 형집행명령이 내려와야 사형 집행이 개시되는 것이어서 구금상태로 형집행을 기다리는 신분일 뿐이라 '정지'할 형이 없다. 감형이나 사면만으로 가능한데, 2007년 이후에는 사례가 전혀 없다. [9] 대중의 법 감정이 살인의 죄는 목숨으로 치러야 한다는 인식이 다수이기는 하지만 고통스럽고 잔혹하게 죽이는 형벌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화형 같이 최대한 고통스러운 방식을 쓰자고 주장하며 특히 연좌제를 들먹이며 범죄자가 존재했다는 증거를 없애고 싶어하는 극단적인 사상을 가진 자도 존재한다. [10] 법무부가 한나라당 박민식 의원에게 낸 국정감사 자료에 따른 수치다. 기사 박정희 414명, 이승만 335명, 전두환 76명, 노태우 60명, 윤보선 14명, 김영삼 12명 집행. [11] 시사저널 [12] 사형, 징역, 금고, 자격상실, 자격정지, 벌금, 구류, 과료, 몰수 [13] 거세형도 신체형의 일부임을 감안하면 성폭력 사범들에게 화학적 거세를 드물게나마 실시하는 대한민국도 신체형을 실시한다고 볼 수 있다. [14] 이 때문에 만약 어떤 사람이 누명을 쓰고 사형당했다면 유족에게는 배상이 가능하더라도 사형된 사람은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기는커녕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저세상 사람이 된다. 사형수에게 유족마저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방법으로도 억울함을 배상할 길은 없어진다. [15] 사형, 징역, 금고, 자격상실, 자격정지, 벌금, 구류, 과료, 몰수. [16] 애초에 형법이 6.25 전쟁 휴전 이후에 만들어진 만큼 휴전이 끝나고 전쟁에 돌입하면 판례가 나올 수도 있다. 형법이 있기 전, 즉 6.25 전쟁 당시에는 보통 즉결처분이나 간이재판으로, 북한 치하의 경우에도 인민재판을 빙자한 간이재판으로 죽어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17] 적국의 부녀자 강간한 경우. 규정상으로는 무조건 사형만 해당된다. [18] 시키지도 않은 일인데, 북한을 향해서 포탄이나 총탄을 날리는 경우. 다만 실수라면 징계 정도만 받는다. [19] 적진으로 도주해 봐야 적에게 피살되거나 적국의 포로로 끌려갈 확률이 매우 높으며 같은 편인 것을 인정하면 예외적으로 적국의 국민이 될 수도 있다. 6.25 전쟁 때 적진으로 도주했다가 한국으로 귀환한 사람이 여기에 해당된다. [20] 사형되기 전 교도관들에게 "이 올리브 씨가 제가 죽은 뒤 몸에서 자라나 저의 무덤에서 올리브나무가 싹트길바랍니다"라고 말하였다. [21] 피칸 파이는 "나중에 먹겠다."고 말하고 먹지 않았다. 렉터는 체포 직전 권총으로 자살 기도를 하다가 실패하고 머리에 총상을 입어서 전두엽이 파괴되었던 적이 있기 때문에 아마 저 발언은 이 일련의 사건 탓에 자신이 이후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 망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22] 덜 익은 토마토를 썰어 계란물과 빵가루를 입혀 튀기는 미국 남부 음식. [23] 1998년 6월 7일 텍사스 재스퍼에서 귀가 중이던 흑인 남성 제임스 버드 주니어(James Byrd Jr.)를 공범 2명과 함께 유인한 뒤 외진 곳으로 끌고 폭행한 후 트럭에 매달고 달리다 숨지게 한 죄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2011년 9월 21일에 형이 집행되었다. 다른 공범 1명도 2019년 4월 24일에 사형이 집행되었으며, 나머지 1명은 종신형을 선고받아 현재까지 복역 중이다. 버드 주니어의 딸은 아버지를 잃은 사건으로 인해 경찰학교에 지원에 현재는 경찰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24] 한 병 정도는 먹게 해 준다. 법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 6조 2항을 보면 된다. 요약하면 법의관이 주사 혹은 다른 적절한 방법으로 의식을 상실시키고 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25] UN 아동권리협약 제37조 "모든 아동은 고문이나, 잔혹행위, 위법적인 체포나 구금, 사형이나 종신형 등의 형벌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이것과 관련된 것이 바로 이란의 인권 문제다. 이란에서는 15세 이상을 성인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간혹 성인에 준하는 10대 후반 청소년들이 사형당하는 일이 벌어져서 문제가 되고 있다. # 북한도 마찬가지로 미성년자라고 할지라도 예외 없이 사형시키며 17세 이상을 성인으로 간주한다. 17세가 되면 반드시 조선인민군 초모(징병)되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미성년자에게 사형 선고를 내릴 수 없지만 이를 번복하고 반정부 시위에 나선 미성년자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 2022년 이전까지의 일본은 UN 기준보다 더 높은 만 20세까지를 미성년자로 규정하고 있었지만 세키 테루히코처럼 만 18세 이상은 사형 선고가 가능했다. [26] 이를 당시에는 부대시참(不待時斬)이라고 불렀다. 때를 기다리지 않고 즉시 (목을) 벤다는 뜻이다. [27] 실록을 보면 이복선이 죽기 전날 의금부에서 이복선이 시름시름 앓다가 오늘내일 할 것 같아서 연산군에게 어떻게 할지 묻자 연산군 왈, 설령 병에 걸려 오늘내일할지라도 지은 죄가 있으니 매를 친 뒤 서울 밖으로 쫓아내라 하교한다. 매를 맞으면 몸이 허약해진 상태라 얼마 못 버티고 죽을 몸이었지만 그래도 이복선의 시신은 온전히 보존할 수 있게끔 배려 아닌 배려를 해준 것이다. 그런데 하필 다음날 이복선이 죽자 연산군은 의금부의 일처리를 질책하면서 혹시나 약먹고 자살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어 시신을 검시하라 명한다. 영의정 유순의 건의로 직첩을 거둔 후 남은 가족들은 한성 밖으로 쫓아냈다. 실록에서는 상술한 구구절절한 사연은 없고 이복선이 금형일에 걸려 사형이 미뤄졌다고 간단하게 쓰여 있다. [28] 소총으로 쏴서 총살하는 건데도 총을 맞은 부위에 구멍만 나 있다. 실제로 소총에 머리를 맞게 되면 탄환이 관통한 부위가 점처럼 찍히는 수준이 아니라 탄환이 가진 강력한 운동에너지에 의해 머리가 박살난다. [29] 이후 사형수는 2번 집행할 수 없다고 면제를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1947년에 재차 사형이 집행되어 사망하였다. [30] 이후 행적은 불명이지만 교수형의 영향으로 후유증을 앓았다고 전해진다. [31] 독립 이전인 1989년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되었고 독립 이후 사형 집행은커녕 형식적인 사형 선고조차 없었다. [32] 1997년 마지막으로 사형을 집행한 후 1999년 대통령령으로 사형제를 폐지했다. [33] 2010년 정치범 4명에 대한 사법살인을 저지른 것이 국제적으로 엄청나게 욕을 먹자 2014년 살인범 4명을 처형한 것 외에는 사형을 집행하지 않다가 2022년 9월 19일 사형제를 폐지했다. [34] 로버트 무가베가 전성기(?)를 달리던 2005년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으며 2024년 2월 7일 사형제를 폐지했다. # [35] 짐바브웨는 과거에 북한도 뛰어넘는다는 악평을 받은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가 집권했고 나머지 세 국가는 독재와 인권 실태가 북한에 버금가는 국가들로 평가받는다. [36] 실제로 일본의 하나시 야스히로 법무 대신은 "법무상은 아침에 사형(집행) 도장을 찍는데, 낮 뉴스에 톱이 되는 것은 그럴 때 밖에 없는 밋밋한 자리"라는 말을 했다가 사람의 생명을 박탈하는 일을 희화화면서 자신의 직위를 스스로 비하했다는 비판을 받고 사임했다. 이것은 법무대신이라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을 희화화한 것 자체가 국가적 이미지에도 타격을 줄 정도로 문제가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37] 선진국 싱가포르에게 사형제가 있는 디즈니랜드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사형제라는 제도가 부정적인 이미지만 가져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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