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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세 부르고뉴와 프로방스에 있었던 왕국이다. 제1왕국을 부르군트 왕국, 제2왕국을 아를 왕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2. 부르군트 제1왕국
로마-게르만 왕국 Barbarian Kingdom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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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속 기간 | 411 ~ 534 |
언어별 명칭 | |
라틴어 | Regnum Burgundionum |
독일어 | Königreich Burgund / Burgunderreich |
프랑스어 | Royaume des Burgondes[1] / Burgondie[2][3] |
영어 | Kingdom of the Burgundians / Kingdom of Burgundy |
게르만족의 일파인 부르군트족이 세운 왕국이다.
원래 라인강 상류 지역에 원주하던 부르군트족은 게르만족의 대이동 시기에 남하하여 부르군트 왕국을 세웠다. 정확히 406년 12월로 추정되는 시기에 얼어붙은 라인강을 도하하여 로마 제국 영내로 침입하였고, 남하하여 이곳에 정착하여 411년 나라를 세웠다. 부르군트 왕국은 북동쪽의 훈족과 남동쪽의 동고트 왕국 및 북서쪽의 프랑크 왕국 사이에 끼어서 고생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알프스 산맥이 동고트 왕국으로부터 보호해주었지만 문제는 훈족과 프랑크 왕국, 그리고 서로마 제국과의 불안정한 관계였다.
435(436)년, 부르군트 왕 군터(군다하르)가 서로마의 벨기카 프리마 속주를 공격했다가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의 로마군에 패했다. 436(437)년 아에티우스가 불러들인 훈족 용병과 군터의 싸움에서 군터가 패하고 전사해 부르군트족이 큰 위기를 겪었다. 이 사건은 중세 게르만 신화이자 대서사시 《 니벨룽의 노래》의 배경이 되었다. 다만 이 서사시에서는 훈족의 왕 아틸라와의 전쟁에서 군터가 전사한 것으로 묘사되는데, 시기상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군터가 맞선 훈족 군대가 아틸라가 이끈 것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후 아틸라가 사망하면서 훈족이 약화되고 서로마 제국이 몰락하면서 국왕 군도바트(Gundobad, 452 ~ 516)의 치하에서 사부아 지역을 중심으로 다시 부르군트 왕국이 재건, 부흥되었다.
부르군트 왕국은 처음에는 아리우스파 기독교를 믿고 있었고 로마 제국과는 형식적인 동맹-신종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군도바트 시기에 정식으로 가톨릭으로 개종하면서 서고트 왕국과 같이 법전을 편찬하였다(법전의 정식 명칭은 《Lex Burgundionum》, 즉 《부르군트법》). 또한 군도바트는 아들 지기스문트를 동고트 왕국의 테오도리크 대왕의 딸 오스트로고타와 결혼시키는 동맹을 통해 프랑크 왕국의 위협에서 벗어나려고 했다.[4]
하지만 군도바트가 죽은 후인 523년에 프랑크 왕국의 영웅 클로비스 1세의 네 아들[5]이 부르군트 왕국에 침입하였으며, 이들은 부르군트군을 굴복시키고 군도바트의 후임 왕 지기스문트와 그의 아내 오스트로고타 및 아들 세르게릭(Sergeric)을 모두 살해했다.
오스트로고타와 세르게릭은 각각 테오도리크의 딸과 외손자였기 때문에 분노한 테오도리크는 부르군트를 돕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아서(이유는 테오도리크 대왕 문서 참조) 직접 군사행동을 벌이는 대신 살해된 지기스문트의 동생 고토마르(Godomar)를 왕으로 세우고 지원해 주었는데, 무능한 고토마르는 전혀 프랑크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으며, 결국 534년 고토마르가 도망치다 죽은 직후에 부르군트 왕국은 프랑크 왕국에 합병되었다.
이후 부르군트는 메르센 조약으로 프랑크가 분열될 때까지 프랑크의 속국으로 지냈지만 프랑크 안에서 나름대로의 독립성은 유지했다. 프랑크 왕국은 한 명의 군주가 온전히 통치하는 통일 왕국의 시절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으며 대부분은 게르만족 특유의 분할 상속에 의해 여러 통치자들이 독립적으로 분할 통치했다. 프랑크 왕국은 크게 아우스트라시아, 네우스트리아, 알레마니아/슈바비아( 슈바벤), 아키타니아( 아키텐), 부르군디아(부르군트)로 나뉘어 있었고 각 지역은 어느 정도 독립성과 고유성을 유지한 채 존속되었다. 이러한 고유성과 독립성은 프랑크 왕국 멸망 후까지도 지속된다.
부르군트는 게르만족의 주요 부족 국가 가운데 하나였고, 단순히 지도상으로 볼때 독일 슈바벤(알레마니아)[6]과 길게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하지만 슈바벤과의 국경 대부분은 사실상 알프스 산맥에 의해 단절되어 있었고, 북쪽으로는 프랑크 왕국의 본국 역할을 하는 아우스트라시아와 네우스트리아가 각각 절묘하게 부르군트와 독일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때문에 부르군트는 이후로 독일의 다른 5대 부족 공국들과 교류가 뜸해졌고 서서히 문화적으로 독자성을 띄게 되었다. 차라리 초기에는 한때 아키텐까지 진출했던 이베리아의 서고트 왕국과 엮인 일이 많았다.
결정적으로 나중에 베르됭 조약 때 다른 독일 부족들과 달리 로트링기아에 포함되어 버렸다. 로트링겐 역시 처음에는 로트링기아에 속했지만 메르센 조약에 의해 플란데런 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로트링겐이 동프랑크(독일)에 귀속된 반면, 부르군트는 이탈리아(북부)와 함께 로트링기아를 구성하는 것이 확정되었기 때문에 이후로 독일(동프랑크)의 5대 부족 공국과는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부르군트는 지형적으로 분지로 둘러싸인 고립된 지역이었기 때문에 아키텐이나 나중에 프랑스의 중심지가 되는 네우스트리아, 그리고 이탈리아와도 지리적으로 단절되어 있었다. 때문에 프랑스나 이탈리아와도 이질적인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해 나갔다.
3. 부르군트 제2왕국 / 아를 왕국
프랑크 왕국의 분열 및 영토 변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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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속 기간 | 933 ~ 1378 |
언어별 명칭 | |
라틴어 | Regnum Burgundiae / Regnum Arelatense |
독일어 | Burgund Zweites Königreich / Königreich Arelat |
프랑스어 | Second royaume de Bourgogne / Royaume d’Arles[7] |
영어 | Kingdom of Burgundy / Kingdom of Arles |
한국어 | 부르군트 제2왕국 |
정식 명칭은 부르군트 왕국이다. 하지만 윗 항목의 왕국과 구별을 위해 후대에는 부르군트 제2왕국이라 구별하여 부르며, 이마저도 혼동되어 아를 왕국이라는 별도의 명칭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부르군트 제1왕국은 프랑크 왕국에 병합되었지만 이후에도 프랑크령 부르군디아 지방으로 어느 정도의 독자성을 유지한 채 존속했다. 프랑크 왕국은 분할 상속에 의해 여러 명의 군주가 각 지방을 독자적으로 통치할 때가 많았기 때문에 부르군디아의 고유성이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카롤루스 대제 사망 이후 제국이 분열되는 과정에서 부르군트도 다시 왕국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카롤루스 제국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부르군트 지방은 대체로 로타링기아( 중프랑크)[8]에 속하게 되었으나, 손강 이서 지역만은 서프랑크 왕국으로 넘어가게 되면서 분리되었는데, 이 손강 이서 지역은 프랑스 왕국의 구성국인 부르고뉴 공국이 되었다.
서프랑스로 넘어간 부르고뉴 공국을 제외한 나머지 부르군트 지역은 고지 부르군트(상부르군트, 오늘날의 프랑슈콩테 지방과 스위스 서부)와 저지 부르군트(하부르군트, 프로방스 지방)로 나뉘어 각자 왕국을 선언하고 카롤링거 왕조로부터 독립했다.
고지 부르군디아의 왕 루돌프(로돌프)가 저지 부르군디아의 왕 우고(위그, 휴)를 이탈리아의 왕으로 인정하는 대신 우고는 루돌프를 양 부르군디아 연합 왕국의 왕으로 추대하여 933년 두 부르군디아의 연합 왕국이 형성되었다. 이것이 부르군트 제2왕국이다. 이 왕국은 수도가 아를이었으므로 '아를 왕국'이라고도 했다. 937년 루돌프가 사망하고 장남 콘라트 1세가 왕위를 이었으나 우고가 왕위계승권을 주장하며 분쟁이 일었다. 이때 독일 왕국의 국왕이자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가 되는 오토 대제가 콘라트 1세의 왕위 계승이 정당하며 콘라트를 지지하자 우고는 물러났고, 아를 왕국은 유지되었다. 이후 954년 마자르족의 침공으로 존망의 위기에 빠졌지만 오토 대제가 레히펠트 전투에서 마자르족을 궤멸시키며 위기에서 벗어났다. 이후 신성 로마 제국에 대한 종속이 더욱 심화되었고, 아를 왕국의 왕위의 후사가 끊어질 경우 신성 로마 제국 황제가 왕위를 물려받는다는 조약까지 맺었다. 1032년 루돌프 3세가 후사없이 사망하면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에게 왕위가 넘어갔고, 이로서 신성 로마 제국의 구성국이 되었다.
이후 부르고뉴 지역은 근대까지 수차례의 멸망과 재건을 반복했다. 중세 중기부터 근대에는 북부의 저지대 국가, 중부의 로렌 지역과 더불어 신성 로마 제국의 가장 서방 경계를 형성했다. 14세기까지 왕국이 유지되었다고는 하지만, 사보이아 백국처럼 11세기 초반부터 이 지역 영주들은 각자 거의 독립국에 가까운 자치를 누렸으며 1378년 제국의 대관식이 더 이상 아를 왕국의 영토에서 열리지 않은으로 명목상으로나마 존재하던 왕국이 무너진 것으로 본다. 아를 왕국의 주요 영토였던 사보이아 백국- 사보이아 공국 등이 (명목상) 독일 왕국에 편입된 것이 이 즈음이었다.
16세기 이탈리아 전쟁 시기에 신성 로마 제국과 프랑스 왕국 간의 전쟁을 거쳐 프랑스 왕국에 귀속되었고 이후 중앙집권화된 프랑스 왕국의 주로 자리잡았다. 다만 부르군트족이라는 정체성과 언어는 진작에 사라졌지만 부르고뉴 지역은 계속 강한 독립성을 유지하였고 이런 분위기는 근대까지도 이어졌다. 오늘날에는 프랑스로 완전히 동화되어 분리주의는 거의 없다.
[1]
뷔르공드 왕국
[2]
뷔르공디
[3]
프랑크 왕국 시기의 부르군트 왕국은 위키피디아에서 'Royaume de Bourgogne (534-843)'(부르고뉴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서술되어 있다.
[4]
참고로 군도바트의 모친은 수에비족 출신으로
서로마 제국 말기의 권신이 된
플라비우스 리키메르의 여동생(이름은 불명)이었다. 따라서 군도바트는 리키메르의 외조카였다. 리키메르 항목에도 있지만 군도바트는 이런 인맥 덕분에 리키메르 사후 잠깐 동안 그의 후임 역할을 했다. 그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후 군도바트가 철저하게 부르군트 왕국의 로마화를 시도한 것을 보면 이 시기에 로마 문화를 제대로 접한 것으로 보인다.
[5]
게르만족의 전통에 따라 클로비스 1세는 자식들에게 땅을 분할해서 물려줬기 때문에 프랑크 왕국은 4명의 아들들이 분할 통치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전투종족 프랑크인답게 군사행동은 효율적으로 함께 했다.
[6]
14세기까지 슈바벤은 스위스의 상당부분을 포함하였다.
[7]
그 외 명칭
Royaume des Deux-Bourgognes(두 부르고뉴 왕국)
Royaume de Bourgogne-Provence(부르고뉴프로방스 왕국)
) [8] 카롤루스 대제의 장손 로타르의 왕국. 로타링기아라는 단어 자체가 로타르의 땅이라는 의미이며 오늘날 '로렌(로트링겐)'의 어원이기도 하다.
Royaume des Deux-Bourgognes(두 부르고뉴 왕국)
Royaume de Bourgogne-Provence(부르고뉴프로방스 왕국)
) [8] 카롤루스 대제의 장손 로타르의 왕국. 로타링기아라는 단어 자체가 로타르의 땅이라는 의미이며 오늘날 '로렌(로트링겐)'의 어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