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민의 선수 경력 | ||
통합 선수 경력: 박해민/선수 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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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LG 트윈스 소속 외야수 박해민의 선수 경력을 정리한 문서.2. 아마추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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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중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야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에 부천에 살다가 초등학교 1학년때 서울로 다시 이사를 왔다. 전학을 오면 집에서 가까운 학교로 배정해주는데 약간 멀지만, 야구부가 있는 학교로 배정을 받았다. 어머니가 일주일간 구청에 전화하셔서 항의했지만 똑같은 대답만 들을 뿐이었다. 만약 집에서 가까운 학교로 배정됐으면 그 학교에는 축구부가 있었기 때문에 축구를 할 뻔했다고 한다.[1] 산만하고 가만히 못 앉아있었고 의자에 앉아서 공부하는 걸 끔찍하게 싫어했다 인터뷰 영상
서울 영중초등학교 6학년 때는 달랑 9명[2]뿐인 곧 해체될 야구부라 포수도 본 적이 있었으나, 주로 동창인 백용환이 포수 마스크를 썼다. 포수뿐만 아니라 투수, 유격수, 3루수까지 다 소화했다.[3] 6학년이던 2001년에는 팀의 주장을 맡아 '제1회 박찬호기 전국초등학교 야구대회' 개막 경기에서 시구자였던 박찬호의 공을 받았다.
양천중[4]을 거쳐 한서고등학교로 진학했다가 1학년을 마치고 팀이 해체되면서 신일고등학교로 전학했으며 신일고 재학 당시만 하더라도 내야수(주로 2루수)를 봤다. 스스로 밝히길 이맘때 이도 저도 아닌 선수였고 지명될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한양대학교 생활스포츠학부 2008학번으로 진학했다. 1학년 때, 필리핀 전지훈련에서 입스가 찾아와 공을 자신의 발등에다 던질 정도였다. 제대로 던져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오히려 말도 안 되는 곳에 던지기도 했다. 펑고 받는 시간을 너무 두려워했고 병살 플레이를 위해 송구하던 중 공을 발 옆에다 던져 공이 우익수 쪽으로 굴러간 적이 있다. 이 때문에 훈련장에 있는 큰 나무 뒤에 숨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자신의 실력 때문에 펑펑 울었다. 1학년을 마치며 쫓겨나듯이 외야수로 전향했다.
외야수로 전향한 뒤, 가까운 거리보다 먼 거리를 던졌을 때 실수하더라도 사람들이 이해해주는 편이라 심리적인 여유가 생겼고 입스를 극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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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때부터 여유로운 개인 시간에 놀기보다는 개인 연습에 몰두하면서부터 타격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 당시 감독인 천보성은 다른 학교 야구부 감독과 달리 선수들이 자유롭게 훈련하는 것을 선호했으며, 거의 프로야구 선수들 일정과 비슷하게 일정을 짜놓아서 개인시간이 많았으며, 선수들이 좋아하는 축구 대회 일명 한데스리가를 열기도 했다고 한다.[5] 4학년 때인 2011년에 70타수 30안타 타율 0.429를 기록, 대학리그 타자 우수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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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25일 신인드래프트 날, 이때는 당연히 프로 지명을 받을 거라 예상하며 자동차를 사주겠다는 아버지와 함께 차를 고르며 큰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2012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했다.[7] 스스로 생각했을 때 내야수에서 외야수로 전향한 지 2~3년밖에 되지 않아 수비도 아마 잘 안 됐을 것이고 입스를 극복한 후 자신감이 붙어 외야에서 자주 강하게 송구를 하다 3학년 때부터 어깨가 아팠지만 참고 던져 4학년 때까지 아픔이 이어졌고 스카우트 사이에 어깨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 돌면서 지명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 말한다.[8]
드래프트 후 바로 삼성에서 천보성 당시 한양대 감독에게 신고선수 입단 제의를 하는 연락이 왔다.[9][10] 또한, 당시 한양대학교 코치였던 김기덕이 과거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여서 SK에 인맥이 있어 입단 기회를 알선해주겠다고 했다. 두 팀 모두 입단 제의를 했으나 천보성 감독이 '신인드래프트를 끝낸 후에 삼성은 바로 오라고 했고 SK는 김기덕 코치의 부탁을 받아 오라고 한 거였기 때문에 삼성으로 가는 게 더 나을 것'이라 조언했고 결국 아버지의 뜻대로 본인의 연고지도 아닌 대구의 삼성 라이온즈에 신고선수 테스트를 받고 입단해 삼성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이 당시에 사실 박해민의 아버지는 박해민 몰래 삼성 입단을 결정시켰지만 정작 박해민은 지명을 받지 못한 것에 크게 상심하여 신인드래프트 날은 계속 울며 야구를 더 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11]또한 삼성에 신고선수로 입단하기로 한 후, 마지막 야구 월드컵이었던 2011년 파나마 야구월드컵 국가대표로 뽑혀 도미니카전 때 9회초 2아웃 상황에서 동점 3점 홈런을 때렸다.
3.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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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내용은 박해민/선수 경력/삼성 라이온즈 문서 참고하십시오. |
삼성 라이온즈에서의 10시즌 동안 1096경기 4573타석 3994타수 1144안타(170 2루타 54 3루타) 42홈런 1548루타 414타점 706득점 318도루 87도실 414볼넷 23사구 676삼진 .286/.354/.388 OPS .742 wRC+ 91.9 WAR 26.80이라는 스탯을 기록했다.
3.1. FA
2021 시즌을 순조롭게 보내고 있고 올림픽에서도 맹활약을 해 여기저기 눈도장을 찍으면서 FA 전망이 매우 밝아졌다. 굳이 감점요인을 찾으라면 비슷한 타입의 정수빈이 거액 계약 직후 완전히 폭망했다는 것 정도.[12]중견수 자리가 구멍인 팀으로는 한화와 KIA 정도가 있고, 성민규 단장의 계획에 따라 경기장을 넓히면서 외야가 광활해지는 롯데[13]도 있어서, 삼성과 경쟁할 가능성이 있다. 김재유, 추재현, 신용수 등이 있고 고승민도 전역하고 신인인 조세진 등 유망주들은 많지만 확실하진 않다.
그러나 수도권 팀 이적설이 활발하게 퍼져나오면서 삼성 팬들은 정말로 박해민이 떠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시선도 점점 늘고 있다.
결국, 12월 14일, 4년 총 60억원(계약금 32억원, 연봉 6억원, 인센티브 4억원)에 고향팀 LG 트윈스로 이적한다고 발표가 나옴으로써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로 이전 후 첫 가을야구 경험과 동시에 팀을 떠나게 됐다.[14]
삼성의 주장이자 대표 프랜차이즈 스타 중 하나였던 지라 삼성 팬들은 "60억이면 보내주는 게 맞다."고 납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많이들 아쉬워하고 있다. 박해민이 LG로 이적한 후에도 인스타에 자필 손편지를 올리며 삼성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남기자 팬들은 "LG에 가서도 선수 생활 잘하고 우리랑 할 때는 살살 해주세요." 등의 반응을 보였다.[15]
12월 15일 오후 6시, 대구에서의 마지막 인터뷰를 가진 영상이 LIONS TV에 올라왔다. 본인도 많이 아쉬운지 인터뷰 내내 울먹거리는 목소리였고, 결국 마지막 질문, 삼성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할 때 눈물을 보였다. # 다만 이 영상에 관한 팬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물론 박해민에 대한 비난은 아니었고, 대부분 팬들은 박해민에게 수고했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타의에 의해 트레이드로 이적한 심창민의 영상을 올려주는 게 맞지 자의로 직접 이적한 선수의 영상이 왜 올라오냐는 반응. 라이온즈TV도 비난을 의식했는지는 몰라도 박해민의 마지막 인사 영상을 업로드하고 며칠 뒤에 심창민과 김응민의 마지막 인사 영상도 업로드했다.
4. LG 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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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내용은 박해민/선수 경력/LG 트윈스 문서 참고하십시오. |
5.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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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민의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경력 | |
2011 | 2011 파나마 야구 월드컵 2라운드 |
2018 |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 |
2021 | 2020 도쿄올림픽 야구 종목 4위 |
2023 |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1라운드 |
현재 연금점수는 18점.
5.1. 2011 야구 월드컵
2011년 파나마에서 개최된 제39회 야구 월드컵[16]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17] 등번호는 51번을 달았다.베네수엘라와의 개막전에서 안타를 기록한 뒤 다음 독일과의 예선 2차전에서는 6회 2타점 역전 적시타로 대한민국의 6-5 끝내기 승에 기여했다. 호주와의 예선 3차전에서 좌익수로 출장해 호수비를 선보였으며 1타점 내야안타도 기록하며 8-0 승리에 힘을 보탰다. 도미니카 공화국과의 예선 최종전에서는 9회초 2아웃 1-4로 뒤지던 상황에서 동점 3점 홈런을 기록하며 연장 역전승의 주역이 됐다[18]. 이 승리로 대한민국은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예선 2라운드에 진출하게 되었다. 기사
이후 미국 경기에서 선취점을 헌납하는 실책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대한민국은 예선 2라운드에서 2승 5패를 기록하며 대회를 마무리했다.
5.2.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경기 | 선발 | 타수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도루 | 삼진 | 4구 | |
6 | 1 | 7 | 3 | 0 | 0 | 0 | 2 | 2 | 0.429 | 0.556 | 0.429 | 0.985 | 2 | 1 | 2 |
2018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선발됐다. 하지만 엔트리 공개 이후 오지환과 함께 큰 비판을 받았다. 빠른 발과 훌륭한 중견수 수비를 갖췄지만 빈약한 타격 성적은 누가 봐도 국가대표 감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해민은 대표팀은 물론 규정 타석을 채운 KBO리그의 외야수 중 wRC+ 단독 꼴지를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 KBO리그에서 맹활약 중인 동 포지션의 이정후를 밀어낸 결과라 더 납득이 불가하다.[19] “대표팀 타자 13명의 성적표” 1위 이정후, 13위 오지환 이러한 엔트리 선발에 선동열 감독은 신성한 국가대표팀 엔트리를 KBO리그 선수 병역 면제용으로 사용한다며 국민적인 비판을 받고 있다.
대회 첫 경기인 대만전에서 9회에 대주자로 나와 국가대표팀 공식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2루 도루에 성공하며 추격의 불씨를 살렸다. 하지만 후속 타자들이 모두 아웃당하며 박해민이 만든 기회를 어이없게 날려버려 득점에는 실패했다. 결국 팀도 대만에 패했다.
이후 아시안게임에서 보여준 모습은 주전 외야수들보다 낫다, 손아섭과 김현수가 1할대에서 허덕이고 있을 때[20] 7타수 3안타라는, 단기전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을 보여줬다. 비록 타구 질은 좋지 못했으나 두번이나 내야안타로 출루했고, 2타점 싹쓸이 2루타까지 쳤다. 평소 지적받은 선구안도 2볼넷으로 개선된 모습을 보여주는 중, 도루도 2개 기록했다. 최소한 박해민은 본인의 임무를 모두 수행했다. 하지만, 여론은 여전히 야구 대표팀에 냉소적이다. 특히 병역특례와 관련해서 오지환과 더불어 항상 거론이 되면서 국가대표로서 좋은 활약을 하고도 욕을 먹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결국 대한민국은 중국과 일본을 꺾고 아시안 게임에서 우승해 병역특례를 받는 것에 성공했다.
5.3. 2020 도쿄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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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 선발 | 타수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도루 | 삼진 | 4사구 |
7 | 7 | 25 | 11 | 2 | 0 | 0 | 5 | 7 | 0.440 | 0.563 | 0.520 | 1.083 | 1 | 5 | 7 |
솔직하게 저런 타자 있으면 몸에 맞춰서 내보내고 싶습니다.
- 박찬호, 2021년 8월 2일 이스라엘전 해설 中
- 박찬호, 2021년 8월 2일 이스라엘전 해설 中
2020 도쿄 올림픽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됐다. 당초 김경문 감독이 2018 아시안게임 당시 논란이 됐던 오지환과 박해민을 선발하지 않겠다고 공표했음에도 둘 모두 선발해서 논란이 됐다. 물론 지난 아시안게임 때와 달리 여론은 박해민의 선발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KBO 리그에서 3할의 타율과 8할에 육박하는 OPS로 커리어하이 시즌을 향해 달려가는 동시에 넓은 중견수 수비와 훌륭한 주루 플레이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표팀에서는 주전을 차지하기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 아시안게임처럼 주로 대주자 또는 대수비 요원으로 활약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정작 대회가 시작하니 대표팀의 1번 타자 겸 주전 중견수 자리를 차지했다. 단기전 특성상 수비력을 강조하는 김경문 감독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다.
실제로 오프닝 라운드 1차전 이스라엘전부터 1번 타자 겸 중견수로 선발출전했다. 1회부터 리드오프 안타를 때려내며 이번 대표팀의 첫 안타, 첫 출루를 기록했다. 이후에도 볼넷을 하나 얻어내며 3타수 1안타, 1볼넷으로 제 역할을 100% 이행했다. 자신의 강점인 중견수 수비 역시 안정적이었다.
1차전의 활약에 힘입어 오프닝 라운드 2차전 미국전 역시 1번 타자 겸 중견수로 출전했다. 이 날도 첫 타석부터 제몫을 해냈다. 일본프로야구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닉 마르티네스를 상대로 리드오프 안타를 때려냈다. 평범한 내야 땅볼이었지만, 특유의 빠른 발로 안타를 만들어냈다. 이후 이정후의 단타 때 빠른 발로 3루까지 진루했고 김현수의 2루 땅볼 때 득점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후 세 타석에서는 모두 범타로 물러나며 출루에 실패했다.
녹아웃 스테이지 1차전 도미니카 공화국전 역시 1번 타자 겸 중견수로 출전했다. 1회부터 상대 투수 라울 발데스를 상대로 깔끔한 안타를 치고 출루했다. 이후 양의지의 희생 플라이 때 동점 득점에 성공했다. 2회 2사 2루에서 맞이한 두 번째 타석 역시 볼넷을 얻어내며 좋은 컨디션을 보여줬다. 3-1로 뒤지던 9회 무사 2루 상황에서 적시타를 터트리며 추격의 불씨를 되살렸고, 강백호가 병살타성 타구를 쳤음에도 좋은 주루로 2루에 먼저 들어가 병살을 모면했다. 그 뒤에는 이정후의 2루타에 득점하며 동점에도 기여했다. 그리고 경기는 김현수의 끝내기 안타로 극적으로 4-3 역전승을 따냈다.
녹아웃 스테이지 2차전 이스라엘과의 경기도 1번 타자 겸 중견수로 선발출전했다. 이 날도 1회 첫 타석부터 상대 선발 조이 와그만을 상대로 안타를 뽑아냈다. 무려 이번 대회 전 경기 1회 리드오프 안타를 기록 중이다. 이후 이정후의 희생 플라이 때 홈을 밟아 팀의 선취 득점에 성공했다. 이후 다음 두 타석에서 볼넷, 그 다음 타석에선 무사 만루에서 2타점 적시타를 때려냈다! 마지막 타석에서도 볼넷을 골라내어 100% 출루 경기를 완성하머 리드오프로서 최고의 활약을 보여줬다.
준결승 일본과의 경기 역시 1번 타자 겸 중견수로 선발출전했다. 1회부터 야마모토 요시노부를 상대로 볼넷을 얻어냈다. 이번 올림픽에서 5경기 전부 1회 리드오프 출루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이후 이정후의 2루타 때 3루까지 밟았지만, 양의지, 김현수가 연이어 삼진을 당하며 득점에는 실패했다. 6회초 공격에서는 선두타자로 나서 단타를 때려냈고 좌익수의 수비 미스를 놓치지 않고 2루까지 진출했다. 이후 강백호의 적시타 때 홈을 밟았다.[21] 다만 9회초에는 오지환이 출루했으나 2루수 땅볼로 물러나면서 경기의 마지막 타자가 되었다.
도미니카와의 동메달 결정전에서도 도미니카에게 끌려가는 팀을 김현수와 함께 멱살잡고 동점을 만들었다. 특히 5회말 이정후의 타석에서 기습적인 3루 도루 후에 상대 폭투로 동점 득점하는 장면이 백미. 하지만 8회 오승환이 5실점하며 불을 질러 빛이 바랬다.
이정후, 김현수와 함께 좋은 컨디션을 바탕으로 타선을 이끌었다. 1번 타자로서 높은 출루율와 적절한 시기에 터져주는 안타와 타점, 그리고 상대 투수를 지치게 하는 커트 신공으로 1번 타자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미국전에서 부진했던 김현수와 동메달전에서 부진했던 이정후와는 다르게 첫 경기부터 마지막 경기까지 모든 경기에서 안타를 치며 기복 없는 경기력으로 이번 역대 대표팀의 단일 대회에서 가장 빼어난 활약을 보인 1번 타자가 되었다.
그러나 본인이 저번 아시안게임 당시 먹었던 욕[22]을 원금에 이자까지 후하게 쳐서 갚은 정도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결국 대표팀은 메달을 따지 못했다. 같은 팀에서 차출된 오승환, 원태인, 오재일 모두 영 좋지 못한 활약을 하는 와중 활약했기에 더욱 두드러지는 편. 그래도 뛰어난 활약을 보이면서 김현수와 함께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이 선정한 2020 도쿄 올림픽 포지션별 베스트 라인업에 포함되었다. #
5.4.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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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 타수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도루 | 삼진 | 4구 | 상세 |
4 | 5 | 3 | 0 | 0 | 0 | 0 | 3 | .600 | .667 | 0.600 | 1.267 | 1 | 0 | 1 | - |
4번째 국가대표 차출이자 도쿄 올림픽에 이어 WBC 대표팀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주전, 대주자, 대수비 모두 요긴하게 활용될 수 있는 카드이다. 그동안 참가했던 국제대회에서의 타격 성적이 매우 좋았기 때문에 공격에서도 기대를 가질 수 있다.
2월 17일(이하 한국시간) 애리조나 투손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평가전에서 4회말 1번타자 이정후의 대타로 출전했다. 1타점 2루타를 포함해 3타수 2안타 1타점 1득점으로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2월 20일 진행된 KIA 타이거즈와의 평가전에서는 최지훈과 함께 대주자로 투입되었다가 빠지기를 반복했다.[23] 타석에서는 2루타 하나를 기록했다.
3월 4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SSG 랜더스와의 평가전에서 10번 지명타자[24]로 출전해 기습번트 안타와 득점을 기록했다. 5회에 안타성 타구를 날렸으나 호수비에 막히기도 했다.
3월 6일 진행된 오릭스와의 평가전과 7일 한신과의 평가전에서 모두 1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3월 9일 호주와의 1차전에서 8회 무사만루 상황에서 1루 주자로 출루한 박병호의 대주자로 경기에 투입된 뒤 2루까지 진출했다. 1사 만루 상황에서 오지환의 2루 땅볼 때 포수가 홈을 비웠지만 홈에 들어가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으며 논란이 되었다.[25] 3루코치인 김민호가 박해민을 멈췄기에 박해민만의 잘못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두 사람의 아쉬운 행동이었기에 강백호에 묻히긴 했지만 여론은 매우 나쁘다.
3월 10일 일본과의 1차전에서 박병호 대타로 출전하였다. 비록 출루하지는 못 했으나 큰 점수차로 지던 상황 한국 투수진들의 제구 난조로 김윤식이 라스 눗바를 빈볼을 맞추고 이후 이의리가 오타니 쇼헤이에게 사구를 맞출뻔한 몸쪽 공이 날라오자 오타니 쇼헤이가 매우 흥분하며 화를 내는 제스쳐를 보냈고 볼넷 판정을 받았을 때도 굳은 얼굴로 진루했는데 이때 1루수 수비를 보던 박해민이 이야기를 거는 장면이 나왔고 이후 이의리의 투구를 보고 그제서야 웃는 오타니의 모습을 보아하니 오타니의 오해를 풀어준 것으로 보인다.
3월 13일 중국와의 경기에서는 1번 1루수로 출전하였다. 첫 타석에서는 중국 선발 앨런 카터를 상대로 볼넷으로 출루하였고 2구째에 뛰어 2루를 훔쳐 냈으며 이후에 이정후의 중전 안타로 팀의 선취 득점을 올렸다.
2번째 타석에서는 앨런 카터의 2구를 받아쳐 좌전 안타를 만들어 냈으며 이 안타로 중국의 선발 앨런 카터를 끌어내렸다.
3번째 타석에서는 왕시 왕의 초구에 번트를 대는 동작을 취하다가 배트를 거둬들였음에도 몸 맞는 볼 판정을 받지 못하였고, 타석으로 돌아와 기어코 최지훈에 이어 연속 번트 안타를 성공 시키며 출루에 성공하였다. 이후 이정후의 2루타로 득점에 성공하였다.
이후 3회 초에 이정후의 대주자로 나섰던 박병호가 1루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포지션인 중견수로 포지션을 옮겼다.
6. 연도별 주요 성적
- 붉은 글씨는 리그 1위 기록.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기록.
박해민의 역대 KBO 기록 | ||||||||||||||||||
<rowcolor=#fff> 연도 | 소속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wRC+ | sWAR |
2012 | 삼성 | 1군 기록 없음 | ||||||||||||||||
2013 | 1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 | - | - | - | - | 0.00 | |
2014 | 119 | 373 | 92 | 11 | 4 | 1 | 65 | 31 |
36 (5위) |
37 | 45 | .297 | .381 | .368 | .749 | 90.2 | 1.82 | |
2015 |
144 |
608 | 154 | 22 |
7 (1위) |
0 | 96 | 47 |
60 (1위) |
56 | 126 | .293 | .362 | .362 | .724 | 88.1 | 2.60 | |
2016 | 141 | 641 | 169 | 26 |
12 (2위) |
4 | 109 | 61 |
52 (1위) |
49 | 87 | .300 | .357 | .410 | .767 | 90.9 | 2.73 | |
2017 |
144 |
638 (3위) |
162 | 25 |
8 (공동 2위) |
7 | 96 | 54 |
40 (1위) |
50 | 78 | .284 | .338 | .393 | .731 | 75.8 | 1.82 | |
2018 |
144 |
649 (1위) |
172 | 30 |
10 (1위) |
9 |
114 (공동 2위) |
68 |
36 (1위) |
56 | 99 | .299 | .360 | .432 | .792 | 94.1 | 2.91 | |
2019 |
144 |
581 | 121 | 16 | 7 | 5 | 64 | 44 | 24 | 58 | 82 | .239 | .318 | .328 | .646 | 76.5 | 2.10 | |
2020 | 132 | 541 | 142 | 18 | 5 | 11 | 84 | 55 |
34 (2위) |
39 | 77 | .290 | .345 | .415 | .760 | 93.5 | 3.25 | |
2021 | 127 | 542 | 132 | 22 | 1 | 5 | 78 | 54 |
36 (3위) |
69 | 82 | .291 | .383 | .377 | .760 | 109.6 | 3.34 | |
<rowcolor=#fff> 연도 | 소속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wRC+ | sWAR |
2022 | LG | 144 |
636 (4위) |
165 | 20 |
8 (2위) |
3 |
97 (2위) |
49 |
24 (5위) |
44 | 85 | .289 | .347 | .368 | .715 | 107.0 | 4.17 |
2023 | 144 | 558 | 138 | 14 | 2 | 6 | 80 | 59 | 26 | 45 | 74 | .285 | .348 | .359 | .707 | 103.4 | 3.35 | |
2024 | 144 | 553 | 127 | 16 | 6 | 6 | 72 | 56 |
43 (4위) |
46 | 101 | .263 | .336 | .359 | .695 | 86.1 | 2.05 | |
KBO 통산 (12시즌) |
1528 | 6320 | 1574 | 220 |
70 (3위) |
57 | 955 | 578 |
411 (5위) |
549 | 936 | .285 | .351 | .381 | .732 | 93.5 | 30.16 |
[1]
축구를 했으면 주급을 3억 받았을 텐데 연봉을 3억 받아서 억울하다며 언급. 축구를 꽤나 잘하는 듯 하다.
[2]
전문적으로 했던 선수는 다섯 명, 나머지 네 명은 체육 선생님이 반을 돌아다니면서 "야구 할 사람?"하고 물어봐 데려온 일반 학생들이었다.
[3]
이들이 졸업한 후 해당 야구부는 해산했고 그 마지막 야구부원 9명 중 2명이나 프로선수가 되었다.
[4]
당시
이형종과 동창이었다.
[5]
1,2학년때는 본인과 여러 선수들도 이게 좋아서 자주 놀기도 했지만 3학년때부터는 개인 훈련에 집중했다고 한다.
[6]
삼성에서 동료가 되기도 했다.
[7]
어느 순위에서라도 지명이 됐을거라 생각해 인터넷 기사로 드래프트 지명자 명단에 본인의 이름이 있을거라 생각하고 계속 둘러봤는데, 없었다고 한다. 기자가 이름을 잘못썼을 것 생각해 새로고침을 계속 해봤지만 결과는 똑같았다고.
[8]
이것과 프로 입단 후 어깨 부상이 겹쳐 프로에서도 딱히 강한 송구를 보여주진 못하고 있다.
[9]
공교롭게도 천보성은 삼성에서 프로선수생활을 했고 프로 1호 타자이기도 하다.
[10]
결과적으로 이 박해민 삼성 입단 주선은 천보성의 한양대 감독 시절 최대 업적으로 꼽힌다.
[11]
아마 이때 둘 다 선택하지 않았다면 군대로 갔을 것이라 회상한다.
[12]
그나마 그 정수빈마저도 포스트시즌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13]
거기에 좌익수
전준우와 우익수
손아섭이 모두 수비력이 좋지 않고, 2021 시즌 기회를 받은 팀 내 중견수 자원들은 전부 조금씩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14]
2021 시즌 시작 전 인터뷰에서 FA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냐는 질문에 “다른 팀으로 가는 것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 일단 팀이 라팍에서 가을야구 하는 것을 팬분들께 보여드리는 게 목적”이라고 얘기를 했었는데, 정말 삼성 팬들의 소원을 이뤄주고 박해민 본인은 팀을 떠났다.
[15]
현재 자필 손편지는 삭제되었다.
[16]
이 대회를 끝으로
야구 월드컵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17]
당시 공식적으로는
한양대학교 소속이었으나
삼성 라이온즈
신고선수 입단이 확정된 상태였다.
[18]
전날까지 21타수 8안타를 기록하고 있었다.
[19]
다행히 이정후는 이후에 추가 발탁됐다.
[20]
손아섭은 슈퍼라운드 중국전 이전까지 무려 13타수 무안타였다!
[21]
이때 좌익수
곤도 겐스케가 악송구를 범한 바람에 포수인
카이 타쿠야가 잡지 못해서 다행이지 자칫하면 홈에서 자폭할뻔한 위험한 주루였다.
[22]
물론 아시안게임에도 나름 활약했지만 병역 혜택 관련으로 경기 외적인 비판이 컸다.
[23]
연습경기이기 때문에 선수 교체에 대한 규정이 엄격히 적용되지 않았다.
[24]
더 많은 선수들에게 출장 기회를 주기 위해 지명타자 포함 11명으로 선발라인업을 꾸렸다.
[25]
득점한 이정후와 덕아웃에 있던
김하성,
최정 등 여러 선수들은 박해민에게 빨리 들어오라는 사인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