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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고등학교 야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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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고등학교 야구부
(Hanseo High School)
창단 1987년 8월
해체 2005년
소속 리그 -
감독 -
연고 구단 두산 베어스
LG 트윈스
우승 기록[1] 0회
대회 우승 준우승 4강
대통령배 - - -
청룡기 - - -
황금사자기 - - 3회(1990,91,93)
봉황대기 - - -

1. 개요2. 연혁3. 출신 인물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고교 야구부였으나 2005년을 끝으로 해체됐다.

2. 연혁

한서고가 개교한지 2년 후 1987년에 창단되어 창단 2년차인 1989년에 봉황대기 8강에 진출하며 돌풍을 일으켰고 1990년 황금사자기에서 4강[2]에 오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듬해 1991년에는 에이스 김영복[3]을 앞세워 대통령배 16강, 청룡기 8강, 황금사자기 4강을 기록하며 신흥 명문 야구고의 반열에 오르는 것 아니냐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한서고의 활약은 그것이 끝이었다. 1991년 돌풍을 일으켰던 한동수 감독[4]이 물러난 후 학교측의 적극적인 지원에도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했다. 유능한 인재들을 모으기가 쉽지 않았고 그나마도 있던 인재들도 빠져나갔다.[5] 한서고 야구부는 2005년 황금사자기 16강에 오른 것을 마지막으로 해체되며 역사 뒷편으로 사라졌다. 한서고 야구부 졸업생은 마지막 졸업생이었던 홍명찬이 2015 시즌을 끝으로 방출되면서 더는 남아 있지 않지만 2024 시즌 기준 오승환[6] 박해민[7]이 한서고를 거쳐 간 선수 중 남아 있는 현역 선수의 맥을 잇고 있다.

1999년 군산상고와의 게임에서 폭력 사태를 일으킨 적이 있다. # #

3. 출신 인물[8]

이름 포지션 프로 입단 경력
김민국 투수 1994년 2차 1라운드 건국대- 쌍방울(1994~1998)
양회열 내야수 1991년 신고선수 입단 태평양(1990)- 해태(1991~1996)
김해님 투수 1997년 2차 9라운드 인하대- 한화(1997~2007)
이동훈 포수 2005년 2차 7라운드 동의대- 롯데(2005~2012)
김준호[9] 투수 - 동의대
홍명찬 내야수 2006년 2차 2라운드 SK(2006~2015)


[1] 4대 메이저 + 협회장기 [2] 우승 충암고, 준우승 배재고, 공동 3위 대구상고 [3] 한서고와 원광대를 거쳐 1996년 1차 지명으로 2억원의 계약금을 받으며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으나 혹사로 인한 팔꿈치 수술을 받았고 이후 1998년 방출되어 은퇴했다. 조성민, 임선동, 차명주, 박재홍, 박찬호와 함께 청소년 대표팀 투수로 선발될 정도로 출중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4] 성균관대 감독 재임 후 한서고 창단 감독으로 부임했다. 한서고 감독 사임 후 광주일고 감독으로 부임하여 이호준, 김필중을 지도했다. [5] 학교측에서 특별 스카우트를 해왔던 채병용 오승환은 각각 2학년이 되던 해에 신일고 경기고로 전학을 갔다. 채병용이 스톡킹에 출연해 당시 감독(최인수 감독)이 중학교 유망주들을 많이 수집했고 1학년들이 주전으로 게임에 많이 나서자 2-3학년 학부모들의 불만과 견제가 심해져 결국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다고 술회했다. 그리고 채병용은 집안 형편이 좋지 못해 야구회비를 면제시켜주고 잘 먹여준다는 말에 군산중 졸업 후 한서고로 올라왔고 다시 신일고로 떠났다. [6] 2000년 경기고로 전학. [7] 팀 해체 후 신일고로 전학. [8] 나무위키 등록 선수만. 졸업 연도 순. [9] 동방신기 JYJ의 멤버인 김준수의 쌍둥이 형으로 대학교때까지 선수생활을 이어나갔다. 우완 사이드암 투수로 주로 불펜으로 출전했으며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해 동의대에 진학한 이후 부상으로 야구를 접고 김무영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이후 연예계를 벗어나 김준수가 제주도에 설립한 '토스카나 호텔'의 CEO로 재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