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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15:31:14

모가미급 중순양함

모가미급 경순양함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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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역선 아스카C, 아타다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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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가미급 중순양함 最上型重巡洋艦
1번함
모가미 最上
2번함
미쿠마 三隈
3번함
스즈야 鈴谷
4번함
쿠마노 熊野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cde2eecfc40501d5a71bd5bf4de353c8.jpg
파일:Mogami-1.jpg
最上型重巡洋艦

1. 개요2. 제원3. 개함우월주의4. 순양함의 대형화5. 문제점6. 실전
6.1. 모가미의 함생6.2. 자매함들의 함생
7. 함정 목록8. 평가
8.1. 처참한 활약상8.2. 일본 경순양함의 몰락에 기여하다8.3. 아오바와의 비교8.4. 후계함
9. 대중매체에서 등장하는 모가미급10. 모형화11. 관련 서적12. 관련 문서

1. 개요

일본 제국 해군 중순양함. 함명을 지을 때 1번함 모가미()는 야마가타현의 모가미 강에서 유래한 명칭이며 2번함 미쿠마(三隈), 3번함 스즈야(鈴谷), 4번함 쿠마노(熊野) 모두 강의 이름[1] 에서 명칭을 따왔다. 모가 미쿠 마노

모가미급은 잘생긴 외형에다 개선된 주포 배치, 최고 37 노트의 준수한 속력을 가져 일본 제국 해군 순양함들 중에서 최상이라는 이름답게 가장 우수한 성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준공 당시 여러 가지 크고 작은 트러블이 있었고 실전에서도 여러가지 문제로 큰 활약을 하지 못하였다. 즉, 고유의 설계 사상(개함우월주의)으로 인해 근본적으로 기대만큼의 성능을 내기 어려운 순양함이었다.

2. 제원[2]

파일:모가미급 중순양함.jpg
모가미급 중순양함
最上型重巡洋艦
함 종 경순양함 → 중순양함
이전함급 타카오급 중순양함
다음함급 토네급 중순양함
배 치 4척
건조기간 1931년 - 1937년
운용기간 1935년 - 1944년
배수량
기 준 공 식 8 500 t[3]
실 제 12 400 t
만 재 공 식 10 980 t[4]
실 제 15 057 t[5]
크 기
전 장 갑 판
LOA
200.6 m
흘수선
LWL
197 m → 198.31 m
198.06 m [스즈야ㆍ쿠마노]
수선간장
LBP
184 m 이상 [스즈야ㆍ쿠마노]
전 폭 갑 판 20.60 m [모가미ㆍ미쿠마]
19.20 m [스즈야ㆍ쿠마노]
흘수선 18 m → 18.92 m?
어뢰벌지 9 m (공 통) → 20.51 m [모가미ㆍ미쿠마] / 20.20 m [스즈야ㆍ쿠마노]
흘 수 5.50 m → 6.1 m [모가미ㆍ미쿠마]
5.96 m → 6.06 m [스즈야ㆍ쿠마노]
건 현[14] 5.25 m → 4.65 m [선수ㆍ선미부]
동 력
방 식 증기 터빈
기 관 로호함본식 대형 보일러 (8기) (+ 소형 (2기) [모가미ㆍ미쿠마])
함본식 증기터빈 (4축 4기)
추 진 프로펠러 (4기)
연 료 중유 2 280 t
기관부 출력 152 000 shp
최대속력 37 노트 → 35 노트
항속거리 8 000 해리 (14 노트 순항 시)
레이더 및 광학장비
통 합 (없 음) → 3식 1호 3형 레이더, 3식 2호 2형 레이더
대함사격통제 14식 6 m 측거의
대공사격통제 4.5 m 고각측거의 (2기)
탐조등 92식 110 cm 탐조등 (3기)
무 장
주함포 3년식 155mm 60구경장 함포 (3연장 5기, 15문) → 3년식 20cm 50구경장 함포 (연장 5기, 10문)
대공포 89식 12.7cm 40 구경장 함포 (연장 4기, 8문)
5식 40 mm 고각기총 (4) → 96식 25 mm 고각기총 (8)[17], 13.2 mm AA guns (4)
어 뢰 610 mm 산소어뢰발사관 (3연장 4기,적재탄 24발) → (4연장 어뢰관으로 변경)
기타사항
승조원 944명 [모가미ㆍ미쿠마] / 874명 [스즈야ㆍ쿠마노]
항공시스템 캐터펄트 (2기)
탑재항공기 아이치 E13A 수상기 (3기)
단면도(펼치기/접기)
파일:모가미스즈야단면.png

설계도(펼치기/접기)
파일:스즈야호 도면 01.png
파일:스즈야호 도면 02.png

참조: 모가미급 중순양함 설계도면(대용량 주의)

3. 개함우월주의

파일:external/wiki.gcdn.co/%D0%9C%D0%BE%D0%B3%D0%B0%D0%BC%D0%B8_%D0%B8%D1%8E%D0%BB%D1%8C_1935.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ogami_running_trials_in_1935.jpg
구레 항구에 정박한 모가미급 경순양함 1번함 모가미[20] 1935년 시험항해 중인 모가미급 경순양함 1번함 모가미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제국 해군의 건함사상은 각각의 함정들이 타국의 동급 군함들보다 우월해야 한다는 '개함우월주의'였다. 이는 1922년에 발효된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과 1930년에 발효된 런던 군축조약에 의해 일본이 영국과 미국에 비해 더 적은 수의 함정만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예를 들어 런던 군축조약에서 일본이 건조할 수 있는 중순양함은 12척이었으나 미국은 중순양함 18척을 건조할 수 있었다. 상당한 수적 열세를 강요받게 된 일본은 그 대처로 자국의 모든 함선이 무조건 적국의 함선보다 뛰어난 성능을 갖출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였다. 물론 오히려 일본 입장에서는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이 발효되는 것이 더 나았는데 미국이 당시에 계획하고 있던 함선 건조 수량은 전함만 30척이 넘게 뽑아 낼 생각이었고 실제로 이걸 가능하게 할 만큼의 돈과 생산력은 있었다. 경재력에서 미국의 체급에 10분의 1에 공업제조 생산력에서 당시 전 세계 생산량의 70퍼센트를 혼자 감당하던 미국을 상대로는 일본 입장에서는 군축조약이 체결 된 것이 다행이었던 셈. 어찌 됐건 일본 입장에서는 이 군축 조약으로 인해 미국과의 함상 전력 차이를 약 60퍼센트 정도로 묶어둘 수 있었지만 태평양을 건너 올 미국을 생각해 봤을 때 일본은 최소한 미국의 70퍼센트 정도의 함상 전력을 가져야 언젠가 맞붙을 미국과의 전투에서 해볼만 한 체급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 모자란 10퍼센트를 추가하기 위해 한 짓이 바로 개함우월주의이다.

이렇게 되자 일본은 런던 조약의 허점을 이용하였다. 바로 배수량을 여유롭게 늘린 경순양함을 건조하는 것으로, 경순양함의 최대 배수량(1만 톤 미만) 안에서 6척의 중순양함만큼 큰 경순양함을 건조하는 계획이었다. 런던 조약은 경, 중순양함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주포 구경 6.1인치(155 mm)와 8인치(203 mm)만 두었을 뿐, 배수량에는 제한을 두지 않았다. 때문에 일본은 조약 탈퇴 이전까지는 6.1인치(155 mm) 함포를 모가미급에 장착하여 경순양함으로 건조를 시작했으나, 유사시 바로 8인치 함포로 환장할 수 있도록 바벳 크기를 동일하게 만드는 등 중순양함 개장을 위한 사전 작업을 건조 시작 단계부터 진행했다.

이런 사례는 커레이저스급 대형 경순양함과 유사하지만, 커레이저스급은 "전쟁 중이니 경순양함 초과의 대형함을 건조할 돈이 없다"며 버티는 자국의 짠돌이 재무성 때문에 그런 이름을 달았을 뿐이고 실제로는 순양전함에 가까운 케이스였다. 게다가 전쟁 중, 그리고 무엇보다도 위 두 군축조약 이전에 건조되었으며 군축조약에선 깔끔하게 주력함에 포함되어 분류되고 조약의 허용사항에 의해 항공모함으로 개조된 케이스라 국제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요소는 전혀 없었다. 모가미급의 문제는 반대로 조약에서 허용하지 않는 중순양함 쿼터를 피하기 위해 조약파기 이전에 이미 파기할 경우를 염두에 두고 수를 썼다는 것이다.[21]

물론 이 때문에 모가미급의 덩치는 자연스럽게 커질 수 밖에 없었고 경순양함이라는 놈의 체급 수준이 중순양함급이니 이 정보를 들은 영국의 방산청 등지에서는 "이건 배가 마분지로 만들어 진게 아니면 불가능한 스팩"이라고 대놓고 비꼬았다.

4. 순양함의 대형화

파일:external/i286.photobucket.com/1c588029-1.jpg

1934년에 군축조약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 있던 일본의 군부는 조약에서 탈퇴할 것을 선언하였고 이후 2차 조약 또한 거부하면서 조약에 제한을 받지 않게 된다. 일본은 조약형 경순양함인 모가미급(건조시 기준)을 건조했고 조약 탈퇴 후 계획했던 대로 8인치 함포로 교체하여 중순양함으로 변경하였다.[22] 당시 일본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배수량은 8 500 톤이었으나 영국 해군성에서는 실제 배수량은 이보다 더 클 것으로 보고 있었다.[23] 일단 설계상으로는 9 600 톤이었지만 실물은 11 169 톤이었다고 한다.[24] 8인치 함포로 교체하고 그 외 벌지 등이 추가되어 최종적으로는 기준 배수량이 13 670 톤을 넘어가지만 이 때는 이미 조약 파기 이후였다. 8인치 함포를 교체한 후에도 서류상으로 모가미급은 여전히 경순양함이었다.[25]
1930년 런던 군축조약 이후 기준 배수량 1만 톤 이상 중순양함[26]
연도 국가 함급 기준배수량 만재배수량
1935년 일본 모가미급 중순양함 11 196 톤 15 057 톤 이상
1939년 독일 아드미랄 히퍼급 중순양함 16 170 톤[27] 18 200 톤
1943년[28] 미국 볼티모어급 중순양함 14 733 톤 17 273 톤
1948년 미국 디모인급 중순양함 15 653 톤 18 991 톤

확실한 것은 일본이 모가미급을 건조하면서 기준 배수량 1만 톤을 넘는 순양함을 건조하여[29] 조약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중순양함급으로 설계해 건조하면서 주포만 조약에서 정한 6.1인치를 탑재하여 경순양함인척 하다가, 조약을 탈퇴하고는 주포를 변경하자 중순양함이 되었다.

모가미급은 대단한 파문을 불러왔다. 함급상 경순양함은 중순양함보다 작은 배이지만 군축조약에서 그 크기를 특별히 제한하지 않았기 때문에 군축조약의 허점이 되었고, 모가미급에 의해 군축조약의 다른 당사자들도 그 허점을 알게 되었다. 이후 미국과 영국도 미국과 영국도 모가미급에 대응하여 클리블랜드급 경순양함, 타운급 경순양함대형 경순양함을 조약상 배정된 물량 내에서 빠른 속도로 건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러한 영국이나 미국의 대형 경순양함 건조에 대응할 수 없었다. 애초에 중순양함을 몇 대 더 가지려고 경순양함으로 위장해 만들었던 것이지 기존 경순양함들을 대형화할 생각도 아니었고 일본의 경제규모로는 그럴 여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군축조약이 군함 건조에 들어가는 과도한 비용이 부담이 되어 상호간 군함 보유량을 제한한 것이었는데, 일본은 미국과 영국에 비해 경제규모가 매우 작았으므로 본인들이 모가미로 불을 붙인 대형 경순양함 건함 경쟁을 따라갈 수 없었다. 군축조약 상의 수적 열세를 만회해보고자 꼼수를 썼으나 미국과 영국도 동일한 꼼수를 쓰면서 오히려 그 차이가 더 벌어지는 결과를 낳았다고도 할 수 있다.

게다가 당연하게도 설계 자체부터 감당이 안될 정도로 거대한 결함을 안고 있었는데...

5. 문제점

이렇게까지 큰 문제를 만들어낼 정도로 성능에 집중했다면 능력도 뛰어나고 실전에서도 활약을 해야 하는데, 모가미급 중순양함의 실제 활약은 안타깝게도 전혀 그렇지 못했다.

일단 제아무리 경순양함인 척하고 중순양함을 만들었다고 해도, 일본군 내부에서도 구분이 있기에 일본군의 중순양함보다는 약간 배수량이 적었는데 배수량에 비해 무장과 기타 장비류, 기관이 무거워 함체 복원성에 상당한 문제가 생겼다. 풍랑이라도 만나면 침수되거나 심하면 전복될 위험이 컸던 것이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uzuya1944.png
모가미급 3번함 스즈야

결국 이 문제는 제4함대사건에서 함수부 외판이 떨어지고 균열이 발생하는 큰 사고를 겪은 후 추가로 벌지를 부착하고 배수량을 2천톤 이상 늘리면서 함체를 강화하고 부력을 키워 개선했고, 이 과정에 함내 구성도 바꾸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배수량이 늘어났으므로 최대 37노트에 달하던 속도는 35 노트로 줄어들었다. 건조 중이던 3번함 스즈야, 4번함 쿠마노에도 그런 개량을 적용했고, 보일러도 로호 함본식 대형 보일러 8기 소형 보일러 2기를 대형 보일러 8개로 정리하면서 흡기구와 연돌의 수를 줄였다. 이와 같이 외형적 변화가 꽤 컸기에 자료에 따라서는 3번함부터 따로 스즈야급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성능을 늘리기 위해서 아직 실험단계였던 전기용접을 건조 중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적용했다. 전기용접 자체는 기존의 리벳 접합식보다 중량을 줄이면서도 튼튼하게 접합할 수 있고 작업속도도 빨랐다. 이 기술을 도입한 것 자체는 모가미 급에게는 좋은 일이었으나, 정작 일본제국의 당시 공업기술은 미국에 비해 현저히 질이 떨어졌다. 과무장으로 인한 복원력 등등을 감안하더라도, 태풍에 순양함의 함수부의 외판이 손상되는일도 있었을 정도. 상정된 최고속도인 37노트를 내려고 하면 함체가 진동하거나, 항해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용접면을 포함한 선체 각부에 균열이 발생하는 등 큰 문제가 발생했다. 역시 이 문제로 인해 다시 도크에 들어가서 벌지를 부착하는 작업과 함께 균열이 일어난 부위를 교체하고 다시 용접을 실시했다.

3, 4번 주포탑이 종종 선회불능이 되어 사용하기 힘들었다. 이는 선체 중앙부에 한 계단 더 높은 고각포 갑판을 강도 갑판 (피칭, 롤링시 인장력을 견디는 갑판)으로 하고 이 전후단을 3, 4번 주포탑의 바벳에 직결한 구조를 채택한 탓에, 온도 변화에 따라 선체가 팽창하거나 수축하면서 뒤틀림이 발생한 것이 포탑 작동을 막아버리는 일이 생긴 것이다. 즉 뜨거운 햇빛을 몇 시간 맞으면 그냥 주포탑 2개를 쓰지 못하게 되는 것으로, 화력이 격감한다는 문제가 터진다. 결국 이 문제도 고각포 갑판과 바벳을 분리하는 개장을 실시한 이후에나 해결되었다. 더위 먹은 모가미 여기에 3번과 4번 주포탑의 간격이 너무 좁았는데 어쩔 수 없는게 경순양함 쿼터를 써먹어서 중순양함으로 환포 시키겠다는 꼼수를 썼던터라 당연히 쓸 수 있는 경순양함 배수량에서 최대한 뭘 해보기라도 해야 했으니 제대로 된 중순양함 보다는 체급과 덩치가 작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3번 주포탑은 반대 편으로 회전 시 주포의 포신을 위로 들어 올린 채 돌려야 하는 그야말로 치명적인 결함을 가졌고 이는 끝까지 해결 될 수도 할 수도 없었다.

6. 실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inking_of_japanese_cruiser_Mikuma_6_june_1942.jpg
1942년 6월 6일, 미 해군 항공대의 공습을 받아 침몰하기 직전인 미쿠마.[30]
어찌되었든 겉으로 보기에는 훌륭한 중순양함이었으므로 모가미급은 개전하자마자 중순양함으로 사용되었다.

6.1. 모가미의 함생

1번함 모가미는 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 식민지를 공격하는 임무에서 자바 섬에 상륙하는 선단을 호위하던 중, 미국 중순양함 휴스턴이 습격해오자 휴스턴을 향해 어뢰를 날렸는데, 정작 목표물은 명중시키지 못하고 아군 수송선만 몇 척 격침시켰다. 게다가 그 중 한 척은 상륙부대의 기함인 신슈마루라는 일본군 육군 소속 강습상륙함이었고, 이 배에는 자바 방면 육군 사령관 이마무라 히토시가 승좌하고 있었기에 육군 사령관이 바다에 빠지는 대형 사고를 만들었다. 당시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을 생각해보면 난리가 나도 아주 큰 난리가 날법했지만 물에 물탄듯 넘어갔다. 자바 해전에선 육군이 요청한 것 이상으로 해군이 대대적으로 상륙지원을 해주었고, 이에 육군 지휘관인 이마무라가 없는 일로 치자며 넘어가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당연하게 같은 국가의 군대로써 애초에 해야할 일을 했다고 팀킬을 봐주는 것만 봐도 이 당시의 일본 육해군의 갈등은 정신나간 수준이었다.

1942년 4월, 모가미가 속한 제7 전대는 제4 전대와 함께 나구모 함대의 일원으로 실론 해전에 참가, 여객선과 증기선 등을 격침시켰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모가미급 중순양함 2번함 미쿠마를 들이받아 손상을 입혔다. 다만 모가미의 책임이라고 하기 뭐한게, 기함이었던 모가미급 4번함 쿠마노가 코앞에서 미 해군 잠수함을 발견하고 충돌을 피하기 위해 급히 좌현 45° 변침 명령을 내렸다. (잠수함을 그냥 받아버리면 킬카운트도 새기고 좋은 거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꽁지빠져라 도망가는 상태에서 잠수함을 들이받았다가는 선수에 생긴 파공 때문에 속도가 느려져 도망치다 잡히는 건 물론 모가미의 불량한 전기용접 상태까지 고려해보면 침몰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긴급한 회피기동 중 쿠마노 본인은 처음 45도가 모자라 보이자 추가로 좌현 45도를 전대에 더 지시해서 총합 좌현 90°로 변침하였다. 하지만 똑같은 신호를 두 번 보내는 바람에 "아까 보낸 지시를 확인하나 보다"라고 판단한 제7전대가 그냥 좌현 45°로 키를 꺾었기에 대혼란이 일어난 것. 어쨌든 명령대로 했다가 쿠마노와 충돌할 코스로 들어간 3번함 스즈야는 급히 우현으로 항로를 틀어서 충돌을 면했고, 미쿠마도 좌현으로 급선회해서 쿠마노와 충돌함을 피했다. 그러나 가장 뒤에서 따라가던 모가미는 쿠마노를 신경쓰다가 미쿠마를 놓쳤고, 결국 두 배는 충돌하고 말았다. 이 충돌로 인해 미쿠마는 속도가 떨어지면서 미군에게 따라잡혀 공습을 당했고, 산소어뢰가 유폭을 일으켜 침몰로 이어졌다. 더 큰 피해를 입은 모가미는 산소어뢰를 죄다 버려서 미쿠마보다 한발 더 얻어맞았지만 만신창이로 겨우 생존했다.

파일:항공순양함.jpg

그 이후 간신히 살아돌아온 모가미도 손상을 입어서 대수리가 필요하자, 5번 포탑도 나갔겠다. 마침 정규 항공모함을 손실하여 부족해진 항공력을 보충하는 겸 모가미 후방을 개조해서 작은 비행갑판을 깔고 수상기를 운영하는 항공순양함을 만들었다. 이는 이세급 전함을 항공전함으로 만든 것과 같은 이유였다. 하지만 일본군의 역량으로는 항공순양함이나 항공전함에 실릴 함재기를 양산하고 거기에 맞는 조종사를 배치하는 것도 힘들었기 때문에 함재기가 없는 항공순양함이 되어 사실상 별 쓸모도 없게 되었다. 이후 수송선단 호위에 종사하다가 1943년 11월 5일 항공모함 사라토가 소속 함재기들이 공습하면서 500 파운드 폭탄을 맞고 화재가 발생, 19명이 전사했다.

필리핀 해 해전에서는 항공모함 히요를 호위했으나, 히요는 미군 공습 하에 침몰했다.

레이테 만 해전에서는 조공이자 구식 수상함 위주로 구성된 니시무라 함대에 배속되어 작전을 하던 중에 이후 수리가오 해협에서 모가미가 처음으로 맞닥뜨린 제대로 된 체급의 적인 중순양함 포틀랜드와 포격전을 벌였지만 제대로 된 개장을 거치면서 강화된 조약형 중순양함인 포틀랜드가 8인치를 4발이나 모가미에게 클린히트 시키면서 이전의 사건으로 후방 포탑이 갈아엎어져 펀치력이 내려간 모가미는 그대로 상부구조물이 갈려나가 사실상 제대로 된 중순양함 포격전에서 조차 패배로 끝났다. 이후 전투지역에서 빠져나와 도주하던 도중에 지원함대 소속인 묘코급 중순양함 나치와 충돌하면서 손상을 추가로 입었고 그 후 미군이 다시 추격을 개시하자 더 이상 도망쳐봤자 소용없음을 깨닫고 자침하는 것으로 함생을 마쳤다.

6.2. 자매함들의 함생

2번함 미쿠마는 자바 섬에 상륙하던 선단을 호위하던 중, 미군 중순양함 휴스턴에게 피격되어 6명이 전사하고 11명이 부상당했다. 모가미가 휴스턴을 잡겠다고 어뢰를 발사했다가 일본군 수송선들을 무더기로 침몰시킨 팀킬을 벌인 바로 그 전투다. 심지어는 이 수송선 중 하나는 일본 육군의 강습사령관도 탑승해 있었으며 당연히 이후 지휘체계는 그야말로 개판, 그냥 팀킬이 아니라 작전을 말아 먹는 수준의 팀킬이다.

이후 미드웨이 해전에 참가해 미드웨이 섬을 향한 포격을 가하러 모가미급 4척이 전부 제 7전대 소속으로 출동했는데 미드웨이 섬 서쪽 해상 약 90KM 지점에서 야마모토 제독의 명령하에 포격중지 및 작전 취소와 후퇴 명령이 떨어졌다.

이 말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의 항모가 전부 미국 항모에게 개박살 나서 공중 지원을 못받으니 지금 바로 철수하라는 소리나 다름 없었고 미군의 함재기가 가진 우월한 정찰 능력에다가 너무 깊숙히 들어와 있는 이 상황에서 모가미급 4대는 전부 철수를 한다.

그러던 도중 전대의 선두에서 순항 중이던 4번함 쿠마노의 앞에 갑자기 미군 잠수정이 부상 그대로 가다간 들이 받을 상황이었기 때문에 쿠마노는 전대 전체에 45도 선회를 하달 했으나 잠수정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재차 45도를 더 추가해서 총 90도 선회를 전달했다. 하지만 전대 내에서는 이게 45도를 재차 확인하는 건지 합쳐서 90도를 선회하라는 건지 혼란이 발생했고 이 상황에서 2번함 미쿠마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쿠마노에게만 정신이 팔려있다가 함체 좌측에서 다가오는 모가미를 보지 못해 그대로 모가미와 대충돌하면서 모가미의 선수 앞이 대파되는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모가미에 비해서 미쿠마의 손상은 적은 편이어서 미쿠마는 함내에 있던 산소어뢰를 버리지 않았으나 선수가 아예 아작나 속도가 급격히 떨어진 모가미는 조금이라도 속도를 늘리기 위해 산소어뢰를 버렸고 이렇게 후퇴하던 중인 1942년 6월 5일에 미군의 공습을 당했다. 미쿠마와 모가미는 6월 6일에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의 함재기들에게 공습을 당했고 모가미는 6발, 미쿠마는 5발의 폭탄을 맞았다.

타격은 모가미가 더 많이 입었으나 미쿠마의 내부에 탑재된 산소어뢰가 이 폭격으로 인해 유폭되어 내부 유폭으로 미쿠마는 그대로 격침되어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 중순양함 중 처음으로 격침 된 함선이 되고 말았다. 모가미는 겨우 살아남아 수리 후 수리가오 해협에서 미 해군 제 7함대와 교전했는데 자신들이 러일 전쟁에서 써먹은 T자 진형에 역으로 털렸다.

이 때 모가미에게 8인치 주포를 4발이나 클린 히트시켜 전투 불능으로 만든 함선이 조약을 충실히 지켜서 건조된 포틀랜드급 1번함 포틀랜드 중순양함인 걸 생각하면 실제 교전시 모가미급이 얼마나 제대로 된 성능을 내지 못했는지 여실히 알 수 있다. 이 때 모가미는 주포탑 절반이 와해되어 이걸 수리하지 않고 정찰기를 실어서 함재기함으로 운용했는데 정찰기로 전투력이 올라갈 일이 없으니 펀치력만 떨어진 삽질이 되었으며 이 때 모가미를 발라버린 포틀랜드는 이후 개장을 하면서 레이더 사통 장치등 첨단 장비들을 넣으며 더 강력해진 걸 감안하면 답이 없다.

이 상태에서 영혼의 맞다이로 장렬하게 격침 된 것도 아니고 도주하다가 당시 함대 기함이던 묘코급 중순양함 나치에게 들이 박혀서 또 선수가 아작나 속도가 떨어진 바람에 함재기에 의해 격침되어버렸다. 이후 자매함들 중 가장 막내인 쿠마노는 이런 모가미급의 삽질을 만회하려는지 그 미군을 미끼로 끌어들여서 야마토를 위시한 전함의 함포전으로 끌고 가겠다는 그야말로 성대한 작전인 레이테만 해전에서 구리다 함대의 선봉함으로 참전했다. 그 이후로는 당연히 알다시피 구리다 함대는 태피3라는 호위항모 6척에 구축함 7척으로 구성된 미해군 함대와 맞닥뜨렸고 굉장한 전력적 열세인 태피3 함대가 자신들을 상대로 분전하자 함대 제독 구리다는 지금 상대하는 것이 미해군 최강의 해군 7전대라고 오판, 미끼 작전이 실패했다고 지례 짐작해 후퇴를 명령하는 이른바 '구리다 턴'을 감행했다.

여기에서 플래쳐급 구축함 3대가 호위항모를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야마토가 포함된 구리다 함대를 향해 공격을 감행했고 이러는 와중 쿠마노는 이 플래쳐급을 제대로 상대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어뢰에 맞아 함교 구조물과 함수가 박살나는 대 망신을 당했다. 3번함 스즈야 또한 자매함이 어뢰로 만신창이가 된 것을 피하려고 선회하다가 호위항모 따위가 날린 함재기에 제대로 폭격을 당했고 2번함 미쿠마처럼 어뢰가 유폭되어 곧바로 격침되었다.

이후 언니들을 전부 잃고 모가미급 최후의 생존함이 된 쿠마노는 대실패로 끝난 레이테만 해전에서 탈출하기 위해 한달 동안 수차례의 폭격을 버티며 꾸역꾸역 함내 수리를 하며 버텼으나 마지막 공습에서 무려 114대의 초대규모 공습에 걸려서 어뢰와 폭격을 도합 9대나 맞아 소멸하며 저주받은 모가미급의 최후를 장식했다. 오죽하면 진주만의 참상을 보고 "이번 전쟁이 끝나면 일본이라는 단어는 과거에나 쓰는 말이 될거다"라고 일본을 극렬히 증오했던 윌리엄 홀시조차도 "내가 만약 죄책감을 느낄 수 있는 일본 함선이 있다면 딱 하나 쿠마노뿐이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처참하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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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함 스즈야 : 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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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함 쿠마노 : 문서 참조.

7. 함정 목록

|| 하위 함급 || 함번 || 이름 || 건조사 || 착공 || 진수 || 완공 || 침몰 || 제적 ||
모가미급 ? 모가미 (最上) 구레 해군공창 1931. 10.27 1934. 3.14 1935. 7.28 1944. 10.25 1944. 12.20
? 미쿠마 (三隈) 미쓰비시 나가사키 조선소 1931. 12.24 1934. 5.31 1935. 8.29 1942. 6.7 1942. 8.10
스즈야급 ? 스즈야 (鈴谷) 요코스카 해군공창 1933. 12.11 1934. 11.20 1937. 10.31 1944. 10.25 1944. 12.20
? 쿠마노 (熊野) 가와사키 고베 조선소 1934. 4.5 1936. 10.15 1937. 10.31 1944. 11.25 1945. 1.20
개스즈야급
(건조취소)
300 이부키 (伊吹) 구레 해군공창 1942. 4.24 1942. 5.21[31] - - -
301 -[32] 미쓰비시 나가사키 조선소 1942. 6.1[33] - - - -

8. 평가

8.1. 처참한 활약상

의도하지 않게 경순양함 설계 사상을 바꾸어 버렸으나 정작 당사자인 일본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중순양함으로 교체하였으나 별 활약도 못한 함선이다. 전함들이 놀고 있어서 그 틈을 메우느라 과부하가 걸린 중순양함들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모가미급 같은 최신형 중순양함이 전투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기존 중순양함들의 부담은 더욱 늘어날 뿐이다.

게다가 건조과정에서부터 상당한 문제점이 나타났으며 이걸 해결하려고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여서 다시 개보수하는 일이 잦았고 후기에는 항공순양함으로 개장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실전에서의 결과가 한심해서 모든 비용과 노력이 허공으로 사라졌다는 것은 모가미급의 평가를 더더욱 깎아먹었다.

모가미급 4척이 모두 팀킬을 당했거나, 팀킬 가해자였기에 트롤러라고 불리기도 한다. 모가미급 이전에 나온 일본군 중순양함들이 모두 수훈함 목록에 이름을 올렸음을 생각하면 대단히 한심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8.2. 일본 경순양함의 몰락에 기여하다

스스로의 활약상도 형편없었지만, 모가미급은 일본 경순양함의 몰락에 크게 기여했기에 평가가 더 깎였다.

모가미급 경순양함이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모가미급을 본 미군과 영국군은 경악했다. 미군과 영국군은 모가미급이 일본군의 신형 경순양함이라고 보았고, 모가미급을 자신들의 경순양함이 이겨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장래는 더 암담했는데, 당연히 일본군은 모가미급을 생산한 후에는 모가미급을 기반으로 모가미-2급 경순양함 같은 초고성능 경순양함을 개발하여 37 노트를 넘는 엄청난 속도와 155 mm 15문의 어마어마한 화력에서 나오는 강력한 대함 및 대공능력 그리고 자함포에 대해선 무적방어를 상정한 듯한 중순양함급의 내구력을 가진 초함(超艦)을 찍어낼 것이었다. 이런 놈을 상대로 미군과 영국군의 기존 경순양함은 적수가 못 될 게 분명했다.

우선 일본군의 입장에서, 모가미-2급을 만드는 것은 간단하다. 모가미급 설계에서 약간만 손보면 되기에 가성비부터 준수할 것이고, 실전에서도 미군과 영국군이 이를 상대하기 위해선 모가미-2급의 더럽게 좋은 맷집과 화력 때문에 미군과 영국군의 구축함, 경순양함은 모가미-2급의 주포에 녹아날 것이니 경순양함 잡는다고 중순양함 이상의 군함을 보내게 되는데 이때 모가미-2급의 엄청난 속력은 적의 중순양함 이상은 쫓아오지도 못할 뿐더러, 심지어 구축함들도 모가미-2급을 쫓아오지 못한다. 프랑스의 팡타스크급 구축함 같은 경순양함급의 대형 구축함이라면 모가미-2급 이상인 39노트의 속력을 낼 수 있지만 미군과 영국군에는 그런 구축함이 없었다.

그래서 미군과 영국군은 모가미급에 대항할 대형 경순양함들을 잇달아 건조하긴 했지만 미군과 영국군의 경순양함들은 32노트 정도였고 모가미급은 설계 결함을 보완하려고 함체를 보강한 탓에 35노트로 줄어들기는 했어도 여전히 3노트가 더 빨랐다. 당연히 미군과 영국군에게는 심각한 위협일 수밖에 없었지만 이들이 놓친 사실이 있었다. 일본군은 모가미-2급을 만들지 않고, 아가노급 경순양함 같은 성능도 딸리는 이상한 것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 덕에 일본 경순양함들은 재앙을 맞았다. 기술력도 우월하고 덩치도 큰 미군과 영국군의 경순양함을 상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신형이라는 아가노급은 화력과 방어력, 대공화력까지 수준미달이었다. 속도는 35노트로 나름대로 준수했지만 미군과 영국군의 경순양함과 정면대결을 할 때에는 그다지 돋보이는 장점이 되지 못했다. 심지어 미군과 영국군의 경순양함은 수적으로도 일본군 경순양함을 압도했다. 그렇다고 일본군의 중순양함이 미국과 영국에 비해 수적으로 우위인 것도 아니었다. 중순양함들이 경순양함을 도와주기 힘들다는 뜻이다. 가뜩이나 경량급이라서 얻어터지고 있는데 신형 경순양함도 경량급에 저성능이라면 얻어터지는 배가 늘어날 뿐이었으며 이는 일본 해군이 추구한 소수정예, 개함우월주의 철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었다. 결국 일본군 경순양함들은 불리한 싸움을 강요당하다가 격침당할 수밖에 없었다. 모가미급이 미군과 영국군 좋은 일만 시켜줬다는 혹평을 받는 이유가 이것이다.

물론 모가미-2급을 일본군이 양산한다고 해도 미군과 영국군의 대형 경순양함을 상대로 우세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속도는 분명히 우위에 있지만, 공격력과 방어력에서 충분히 우세를 점한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사격통제장치와 레이더, 포탑 장갑 두께 등 여러 면에서 뒤지는 부분이 많다. 수적으로도 열세다. 그렇더라도 꿈도 희망도 없는 아가노급보다는 훨씬 나았다. 일본군은 자신들이 찾아낸 최선의 방안을 포기한 것이다.

애초에 당시 일본의 레이더 탐지기술이나 대공사격 기술, 그리고 하드 스팩을 떠나서 어쩔 수가 없는 배수량 쿼터의 한계로 인한 과무장 오버밸런스는 근본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했고 당연히 모가미급을 더 뽑는다는 생각이나 이걸 개량해본다는 생각은 저 멀리 날아간지 오래였다. 왜냐면 이미 치도리급 어뢰정에 150미리급 주포를 달아서 써먹는 과무장을 했다가 그대로 배가 홀라당 뒤집히는 바람에 승무원들 중 에어포켓에 갇힌 고작 14명만 살아 남는 대 참사가 전쟁 전부터 있었기 때문이다. 이 대참사 때문에 부랴부랴 사건 조사를 했던 일본군이 발견한 건 당연히 과무장으로 인한 오버 밸런스였고 이 상태에서 이미 신형 함선으로 취역한 모가미급의 설계를 지금부터 바꾸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 아니나 다를까 부족한 기술력으로 시도한 전기용접에 더불어서 함선이라는 놈이 태풍에 살이 부스러지는 제 4함대 사건에 모가미도 당했는데 이때 당시 모가미는 취역한지 겨우 2개월 밖에 안되는 최신형 함선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군이 모가미급에게 더 이상의 무언가를 바라는 건 애초부터 글렀다는 것..... 그래도 함포전 시작 때는 충분히 활약을 해줬기 때문에 일단 주력급 함선으로 굴려먹었지만 4대중 1대는 용궁으로 가고 나머지 한대는 아예 주포탑 절반이 아작난 순양모함으로 내려가 주포 난타전에는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는 걸 감안하면 일본군 입장에서 모가미급에게 기대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게 맞다.

8.3. 아오바와의 비교

와레 아오바로 유명한 아오바와 비교되기도 하나, 와레 아오바 일화에 신빙성이 없음이 밝혀진 후에는 그렇지도 않다. 전쟁기간 내내 수많은 수훈을 세운 아오바와, 팀킬만 일삼은 모가미급은 비교 자체가 안된다.

굳이 비교하자면 아오바는 모가미급보다 배수량이 낮다. 아오바가 중순양함으로 분류된 이유는 주포가 8인치 포라는 것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체급부터 성능까지, 모든 면에서 모가미급이 아오바보다 우수하다. 결함투성이인 모가미는 그렇다 쳐도, 스즈야와 쿠마노는 스즈야급으로 부르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로 많은 부분이 개량되었기에 성능 면에서도 확실히 우수해졌다. 그렇다면 아오바보다 모가미급이 더 활약해야 했겠지만, 현실은 완벽하게 정반대였다. 전설의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 문서를 보면 아오바는 강력한 적으로 언급되지만 모가미급은 보이지도 않는다. 활약한 게 없으니 언급할 일이 없는 것이다.

레이테 만 해전 이후, 아오바와 모가미급 4번함 쿠마노가 둘 다 대파당하면서 일본으로 탈출하던 중 서로를 만났다. 미군 잠수함 집단을 만났을 때 아오바는 6노트밖에 안 나오는데도 7발의 어뢰를 모두 피했지만, 쿠마노는 24노트로 달렸는데도 어뢰 2발을 맞고 함수가 박살나서 탈출에 실패했다. 이후 쿠마노는 미군에게 쫓기다가 격침되었지만, 아오바는 본토까지 살아 돌아가 구레 군항 공습에서 미 항모전단과 육군항공대의 집중공격을 당하면서도 최후까지 싸웠다. 대파착저되고 불타는 아오바를 보면서도 미군과 일본군 모두 아오바는 건재하다고 확신했고, 아오바는 미군의 공격으로 선체가 쪼개질 때까지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

8.4. 후계함

모가미급 중순양함 이후, 일본군은 그 뒤를 잇는 새로운 중순양함을 기획한다. 이번에도 중순양함이면서 경순양함이라고 사기를 친 끝에 2척을 건조했는데, 불행히도 모가미급보다 못한 녀석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그게 바로 일본 패망의 원흉 중 하나이자 졸전과 전쟁범죄, 책임회피로 악명을 떨친 토네급 중순양함이다. 특히 토네 너! 이 녀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배가 전설의 구축함 아라시일 정도이니 꿈도 희망도 없다.

일본군은 토네급 외에도 신형 중순양함을 개발했는데, 이부키급 중순양함이 그것이다. 스즈야의 강화판으로 기획되었으므로 모가미급의 후계함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전황의 악화로 항공모함으로의 개장이 결정된다. 그러나 이부키급은 실전에 투입되지 못했으며 전후에 해체된다.

9. 대중매체에서 등장하는 모가미급

1943 미드웨이 해전의 첫 스테이지 보스는 분명 이름은 토네급 중순양함 토네인데 막상 생김새를 보면 모가미급의 모습을 하고 있다.

네이비필드에서는 경순양함, 중순양함, 항공 순양함 사양이 모두 등장한다. 함포전우선으로 디자인된 게임 성격상, 그리고 일본 군함에 공통적인 실전에서의 문제는 게임에 거의 반영되지 않기에, 성능이 꽤 좋은 배로 여겨졌다.

높은 성의 사나이 드라마판에서 전함 야마토호와 함께 금문교 밑을 지나간다.

배틀스테이션 시리즈에서 2번째 중순양함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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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오브 워쉽 일본 순양함 트리의 8티어로 나온다. 위 모델링처럼 155 mm 3열포나 203 mm 쌍열포를 장착할 수 있다. 203을 쓰면 평범한 일본 중순양함이지만, 155를 쓰면 워쉽 내에서 2번째로 많은 포문 수를 자랑하는[34] 커다란 경순양함이 된다. 일본 트리 특유의 고화력 고폭탄과[35] 고폭탄 관통력을 올려주는 함장스킬과 조합하면 매 사격마다 뼈저리게 아픈 데미지를 입힐 수 있다.
콘솔 버전인 월드 오브 워쉽 레전드에서는 최종 7티어 순양함으로 나오며 203 mm 쌍열포만 사용 가능한 중순양함으로 나온다.

함대 컬렉션 같은 경우에도 굉장히 애매한 포지션의 중순양함으로 나왔다. 연비는 후루타카/카코 자매에게 밀리고, 성능으로는 타카오급 4형제에게 밀리고, 그나마 항공순양함으로서의 메리트도 if 개장이 나온 토네/치쿠마 자매에게 밀린다. 게다가 일반해역 드랍으로 자주 튀어나오는 모가미를 제외하면 미쿠마/스즈야/쿠마노 모두 쓸데없이 레어도가 높아서 관련 퀘스트나 해역 고정 루트의 발목을 잡는 주범이 되었다. 다만 스즈야, 쿠마노의 경우 2차 개장+경항모로의 컨버트 개장이 이루어지면서 재평가되었다. 나머지 자매함은 모가미, 미쿠마 문서 참조.

Naval front line에서 일본트리 경/중 순양함으로 나온다. 경순양함 모가미와 중순양함 모가미가 공존하는데 경순양함 모가미를 얻고 난 뒤 개조하면 중순양함 모가미가 된다.

파일:Naval Creed 모가밍.png

Naval Creed:Warships에서 4티어 프리미엄 순양함으로 나온다, 155 mm와 203 mm를 자신의 입맛대로 선택이 가능하고 어뢰또한 좋은성능을 지녔으나 물장에 후방을 보는 어뢰각이 크게 붙잡는 함선, 잘 운용하면 장거리 포격으로 적함에게 곶통과 화재를 안겨주는 불뿌리개, 못몰면 포탄 맞고 단번에 터지는 폭죽이 되는 함선.

전함소녀에서 모가미, 미쿠마, 스즈야, 쿠마노가 모두 등장한다. 개장하면 항공순양함이 된다.

벽람항로에서는 대형이벤트 '홍염의 방문자'에서 모가미 미쿠마가 같이 나왔고 이후에 스즈야, 3주년 기념 방송 때 쿠마노까지 공개되면서 모든 자매함이 나왔다. 모가미와 미쿠마는 경순으로 실장되었으나 모가미는 개장시 중순으로 함종이 변경되며, 스즈야와 쿠마노는 처음부터 중순양함으로 구현되었다. 다만 미쿠마는 오래토록 개조가 실장되지 못해 경순에 머물러있다.

워 썬더에서도 1.91 업데이트로 추가되었다.

어비스 호라이즌에 1번함인 모가미와 2번함 미쿠마가 등장한다.

Hearts of Iron IV에서 1936년형 일본 경순양함, 중순양함으로 경 모가미급과 중 모가미급이 등장한다.

10. 모형화


11. 관련 서적

12. 관련 문서



[1] 당시 일본군은 함명 명명방식상 중순양함은 산의 이름, 경순양함은 강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지었다. 이는 아래에서도 서술되었듯이 중순양함급인데도 대외적으로는 경순양함으로 발표했던 것이 그 이유로 후속함인 토네급 중순양함 또한 강 이름을 따서 함명을 지었다. [2] 처음 성능 → 개조 후 성능 으로 표기함. 아래의 사진은 8인치포로 탑재버전이다. [3] # [4] # [5] 모가미급 실제 만재배수량 정보 [스즈야ㆍ쿠마노] [스즈야ㆍ쿠마노] [모가미ㆍ미쿠마] [스즈야ㆍ쿠마노] [모가미ㆍ미쿠마] [스즈야ㆍ쿠마노] [모가미ㆍ미쿠마] [스즈야ㆍ쿠마노] [14] 흘수선에서 갑판 위 까지 높이 [선수ㆍ선미부] 기준, 중앙갑판은 이보다 2.5 m 더 높다. [모가미ㆍ미쿠마] [17] 전쟁 후반엔 50 정으로 증설 [모가미ㆍ미쿠마] [스즈야ㆍ쿠마노] [20] 잘 보면 야마토급 전함 부포로도 사용된 3년식 155 mm 3연장 포탑을 단 경순양함 시절이다. [21] 조약이 어떤 의도로 체결되었는가와 실세 세부 항목을 생각하면 커레이저스급과 모가미급은 완전히 반대 케이스다. [22] 처음 사용했던 주포와 주포탑은 야마토급 전함의 부포로 사용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야마토의 방어력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야마토급 전함 참고 [23] 당시 해군성의 해군 건설 국장(Director of Naval Construction)은 이에 대해서 배를 마분지로 만들었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는게 분명하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24] 영어 위키피디아에서는 브라운의 'Nelson to vanguard'를 출처로 제시하고 있다. [25] 히에이도 연습전함인채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고 연습전함인 채 최후를 맞이했다. [26] 취역시기 기준. [27] # [28] 이 시점에서 조약은 효력을 상실했으므로 제한이 없음. [29] 영문 위키피다아에서는 초기 설계는 9 600 톤이지만 실제로 건조했더니 11 169 톤을 넘겼다고 하고 출처로 브라운의 'Nelson to vanguard'를 제시하고 있다. [30] 아마도 태평양 전쟁의 해전 사진 중 가장 유명한 사진일 것이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어뢰 유폭의 여파로 선체 측면에 어뢰발사관이 삐져나와 있는 것이 보인다. [31] 이후 동년 12월에 경항공모함으로 함종 변경. [32] 일본어 위키백과에서 쿠라마(鞍馬)라는 설을 언급하긴 하나 출처를 알 수 없는 상태이며, 무엇보다도 야마토급 4호기의 사례를 보아하니 착공하자 마자 바로 스크랩한 배에 미리 이름을 주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33] 착공한지 얼마 안가서 해체되었다. [34] 미국 경순양함 트리의 헬레나와 공동 2위. 1위는 프랑스 7티어 전함 리옹으로 무려 16문이나 탑재했다. [35] 155 mm인데도 타국가 203 mm 고폭탄에 근접한 화력을 낸다. [36] 후반부에 모가미와 미쿠마의 충돌사건 및 뒤이은 미군 공격대와의 전투경과 서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