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도니아 왕국의 필리포스 5세는
로마가 일리리아를 점령하고 그리스에 진출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 바르카가 이끄는 카르타고군이 로마와의
칸나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어 남부 이탈리아의 영토를 일부 획득하였다. 한니발과 동맹을 맺고 싶어했던 필리포스가 이탈리아로 사절을 보내 한니발과 동맹을 맺고
제2차 포에니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필리포스는 일리리아의 로마 세력을 공격하였고 마케도니아가 한니발을 지원하는 것을 두려워한 로마는 한니발이 이탈리아를 종횡무진하는 상황에서도 집정관급 사령관과 군단을
그리스에 파견하였다.
기원전 214년, 마케도니아군이 아폴로니아를 포위하자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라이비누스가 이끄는 로마 함대는 타렌툼을 출항하여 오리쿰에 상륙하였다. 로마군은 필리포스의 진군을 저지하다가 마케도니아와 평화 협정을 맺은 아이톨리아 연맹과 동맹을 맺었다. 라이비누스의 로마군이 육지에서 싸우는 동안 아이톨리아 연맹은 해군을 지원하기로 하였고 라이비누스는 겨울을 지내기 위해 코르키라로 철수하였다.
아이톨리아가 로마에 가담했다는 소식을 들은 필리포스는 오리쿰과 아폴로니아에서 일리리아를 침략하고 군대를 이끌고 남하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210년 봄이 되자 라이비누스는 그리스 동맹군으로 구성된 함대와 코르키라를 출항하였다. 이탈리아에서는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막시무스가 이끄는 로마의 지원군이 마케도니아 전선에 합류하였고 에게 해에 진입한 술피키우스는 동맹국 페르가몬에게 35척의 함대를 지원받았다.
기원전 205년,
푸블리우스 셈프로니우스 투디타누스가 35척의 함대와 1만 1천의 병력을 가지고 그리스에 상륙한다. 투디타누스가 아폴로니아를 포위하자 필리포스는 투디타누스의 로마군을 향해 진군했고 아폴로니아의 포위 공격을 중단한 로마군은 철수한다. 이 무렵 필리포스가 한니발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하는 목적을 달성한 로마는 마케도니아에 강화를 제안한다. 일리리아 지역을 획득한 필리포스가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서(포이니케 조약) 로마와 마케도니아의 첫 번째 전쟁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제2차 마케도니아 전쟁은 아테네에서 개최한 엘레우시아 비의 행사 도중 발생한 한 사건이 원인이 된다.
기원전 201년에 열린 엘레우시아 비의 행사 도중 2명의 아카르나니아인이 데메테르 신전에 무단 입장하였고 이 행동을 신성 모독으로 간주한 아테네는 이 두 젊은이를 사형한다. 이에 아카르나니아는 필리포스 5세에게 지원을 요청했고 마침내 아티카 지역으로 진입한 마케도니아군이 약탈을 벌이자 페르가몬, 로도스와 동맹을 맺은 아테네는 전쟁을 선포한다.
필리포스는 엘레우시스를 기습했지만 로마와 그리스의 연합 함대가 피라이우스를 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퇴각하였으며, 엘레시우스의 연합군을 유인해 공격하려고 했던 필로클레스의 부대가 매복에 실패하고 성을 공격했으나 마찬가지로 후퇴한다.
기원전 199년, 로마와 그리스 연합군은 동시에 네 방향에서 마케도니아를 공격했으나 테살리아를 압박하던 아이톨리아 연합군이 패주하면서 마케도니아를 포위 공격하겠다는 로마의 전략은 실패한다. 하지만 연합군의 주력인 술피키우스의 로마군이 펠리온을 점령하고 로마와 페르가몬의 연합 함대는 에우보이아의 항구 도시인 오레오스를 함락시켰다. 오레오스의 함락은 필리포스에게 치명적인 것이었는데 마케도니아와 남부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아이톨리아 연맹이 테르모필레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케도니아는 에우보이아를 거쳐 로크리스나 보이오티아 등지로 건너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에우보이아와 연계할 수 없게 된 필리포스는 에페이로스의 영토를 흐르는 아오스 강의 협곡 지대에 진을 치고 로마에 승부수를 던졌지만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가 이끄는 로마군에게 패배한다.(
아오이 스테나 전투)
이 전투로 인해 필리포스를 배반한 아카이아 연방은 로마에 가담하였고 마침내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가 이끄는 로마 연합군과 필리포스 5세가 이끄는 마케도니아군은
키노스케팔라이 전투에서 결전을 벌인다. 전투 초기에는 안개가 걷힐 무렵, 연합군이 밀리는 형세에 있었으나 마케도니아군이 팔랑크스 진형을 갖추기 어려운 구릉지대에 진입하고 진형이 붕괴되어 패배하였다.[1]
결국 마케도니아는 그리스, 트라키아, 에게 해 연안 일대의 모든 점령지를 상실한다. 필리포스는 둘째 왕자 데메트리우스를 로마에 인질로 제공하고 1000탈렌트의 배상금을 지불하면서 강화를 맺는다.
로마에 인질로 보내졌다가 친로마 성향이 되어 마케도니아 본국으로 돌아온 둘째 왕자 데메트리우스를 처형한 필리포스 5세가 병사하자 필리포스의 첫째 아들인
페르세우스가 재위에 오르게 된다. 반로마 성향을 가진 페르세우스는 로마에 적대적인 셀레우코스, 에페이로스와 동맹을 맺었고 일리리아와 트라키아의 부족들, 그리스의 몇몇 도시와 조약을 맺는다. 마침내 페르가몬의 지원을 요청받은 로마가 마케도니아에 전쟁을 선포하자 페르세우스는 당시 총독이던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를 공격해 패퇴시킨다.
크라수스는 팔라나에서 페르세우스와 대치하였고 이듬해 집정관으로 파견된
퀸투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가 마케도니아 영토로 진입하다가 보급 문제로 후퇴한다. 마침내 로마는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마케도니쿠스를 집정관으로 선출하여 마케도니아 전선으로 보냈고
피드나 전투에서 페르세우스 왕이 이끄는 마케도니아군이 파울루스의 로마군에게 패배하면서 마케도니아의 안티고노스 왕조는 멸망을 맞이한다.
안티고노스 왕조는 멸망했지만 로마는 마케도니아를 당장 속주화하지는 않고 4개의 공화정 속국으로 나눠놓았다. 하지만 페르세우스 왕의 아들을 자칭하는 프리텐더
안드리스코스가 반란을 일으켜 옛 마케도니아 왕국을 회복하려 시도하였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마케도니쿠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2차 피드나 전투에서 안드리스코스의 반란군을 섬멸하였고, 이후 마케도니아는 속주화되었다. 한편 이에 자극받은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아카이아 동맹이 직후 로마에
전쟁을 선포했는데, 마케도니아 왕국조차 멸망시킨 로마를 상대로 훨씬 약한 아카이아 동맹이 상대가 될 리 없어 쉽게 진압되며,
코린트는 본보기로 도시 전체가 파괴된다. 이후 그리스 전역이 완전히 로마의 지배권 아래 들어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