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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암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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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1차 암흑기 (556, 1994년~1996년)
3.1. 원인3.2. 리빌딩3.3. 여담
4. 2차 암흑기 (99688378, 2016년~2023년)5. 같이 보기6. 둘러보기

1. 개요

삼성 라이온즈(이하 삼성)의 암흑기에 대하여 다루고 있는 문서.

삼성은 KBO 전구단에서 가장 꾸준히 호성적을 올렸던 팀이다. 삼성은 2023년 기준 KBO 리그와 삼성 스포츠에 현존하는 구단 중 유일하게 풀리그 최종 순위에서 최하위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팀이고[1][2] 한 술 더 뜨자면 신생팀인 NC 다이노스 KT 위즈도 각각 2018, 2015~2017년까지는 꼴지를 기록했었지만 삼성은 그렇지 않았다. 2022년 시즌까지 정규 시즌 누적 통산 승률이 0.548로 압도적 1위이다.[3] 포스트시즌 순위가 중심인 통산 순위 평균으로도 2021년 시즌 종료까지 삼성은 3.4위로 가장 좋다.

삼성 성적이 가장 꾸준하다고는 하나 늘 좋을 수는 없기에 암흑기는 존재하며, 본격적인 암흑기가 도래한 이후 창단 첫 최하위를 기록할 가능성도 적잖게 생기고 있다.

2. 상세

삼성은 창단 이후부터 지금까지 평균 성적이 가장 좋은 명문 구단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삼성에게도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하는 총 세 번의 암흑기가 있었다.[4] 비록 타 팀 대비 암흑기가 짧기는 하지만[5] 삼성이 워낙 잘하는 구단이므로 이 정도도 임팩트가 굉장히 크다.[6]

순위로 따졌을 때 삼성의 첫 암흑기라 하면 우용득 감독의 임기 중반인 1994년부터, 백인천 감독이 부임한 첫 해인 1996년까지의 순위를 가리킨다. 각각 1994년 5위, 1995년 5위, 1996년 6위를 기록하며 삼성은 3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였고, 이는 2000년대까지 삼성 라이온즈최다 연속 포스트시즌 실패 기록이며, 특히 1996년의 6위는 삼성 라이온즈 역사상 가장 낮은 순위였다. 그러나 이 기간동안 착실히 리빌딩을 해내며 1997년부터 이승엽이 홈런왕 대열에 들어서고 김한수, 최익성, 김태균, 정경배, 신동주 등이 자리를 잡으며 팀의 공격력이 강해지면서 이후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1985년 통합우승 이후 17년만에 이뤄낸 2번째 우승이자, 감격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하게 된다.

선동열 감독 시기인 2007년부터 2009년까지를 간혹 암흑기라고 부르는 삼성챈도 있다. 삼성 라이온즈의 전통적인 팀 컬러와는 맞지 않는 지키는 야구 성향, 2006년의 배영수 혹사[7], 2009 시즌까지 3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좌절, 2010년에는 양준혁의 갑작스러운 은퇴와 그 해 타격감이 좋았던 박한이를 두고 이유 없이 강봉규 플래툰으로 돌리는 등[8] 삼성 팬 입장에선 암흑의 시기라 일컬을 만한 여러가지 일들이 많긴 했기 때문에 성적과는 별개로 선동열 감독 재임 시기가 멍게강점기라는 의견이 삼성 팬들 사이에서는 공감을 많이 얻는 편이다. 실제로 선 감독 재임기의 삼성 관중 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그러나 선동열 감독 시기 팬들의 지지는 거의 0에 수렴했지만,[9] 리빌딩을 성공적으로 하여 이 시기 이후로 왕조가 발생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이 시기에 발굴해 낸 최형우, 채태인, 박석민이 2010년대 초중반에 최강의 클린업 트리오를 이루게 되고, 삼성의 토종 에이스가 될 윤성환[10] 강속구를 던지는 좌완투수 차우찬도 발굴해내면서 본격적으로 삼성 왕조의 기반을 다진 시기이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선동열 재임 시절에 2005년 한국시리즈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2회나 했고, 감독 마지막 해인 2010년에는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을 했다. 이 때 포스트시즌 탈락은 2009년 단 한 번에 불과했기에 이걸 암흑기라고 하면 다른 팀들로부터 '고작 한 번 못 나간 거 가지고 참 배부른 소리 한다'는 말이 바로 나온다. 사실상 윗동네의 푸념에 불과하므로 이 기간은 암흑기로 간주하지 않는다.

이후 삼성 라이온즈는 정5통4로 불리는 왕조 시기를 거치며 승승장구했지만, 2015년 벌어진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을 기점으로 생각보다 빠르게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2016년 2017년에 2년 연속으로 9위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구단 역사상 가장 낮은 최종 순위이다. 특히 다른 때와는 달리 삼성그룹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연루로 인해 구단 시스템 자체가 불안해진 상황이라 리빌딩과 인기 둘 다 제대로 잡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낳고 있었다. 게다가 KBO 리그 심판 최규순 금전요구 사건에도 엮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구단에 대한 팬들의 신뢰마저 흔들리게 되었다. 이러한 점으로 인하여 2016 ~ 2020년까지 진행된 2차 암흑기는 재미도 없고 성적도 못 내는 삼성 라이온즈 역대 최악의 암흑기로 평가 받는다. 한화의 암흑기는 당시 한화가 워낙에 심각하게 못했기에 답이 없는 한화의 수비로 대표되는 재미있는(?) 실책으로 인해 타 팀 팬들에게 웃음이라도 주었지, 삼성은 가을야구는 절대 갈 수 없지만 그렇다고 프로 수준이 아닌 것은 아닌지라 어정쩡하게 못해서 질 땐 무기력하게 지고, 이겨도 찜찜하게 이기는 등 삼성 팬들은 3차 암흑기 기간 내내 답답하고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었다.

그나마 연속 가을야구 실패 기록 자체는 일단 5년에서 끝난 것이 다행이다. 그러나 여전히 야수진의 고령화 문제는 산재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지켜봐야 한다.

왕조 이전까지 삼성의 암흑기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경기 때는 욕을 먹더라도 유망주는 꾸준히 수집하고 리빌딩을 차근차근 이어간다는 것. 명문 구단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체감상 암흑기를 견뎌내기 어려워서 그렇지 모범적으로 리빌딩을 하는 편이다. 당장 556 당시에는 백인천이 팀 자체를 아예 뒤집어엎으며 2000년대강팀의 초석을 쌓았고,[11] 멍게강점기 시기에도 리빌딩 자체는 착실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2차 암흑기 시기에는 비슷한 시기의 롯데 자이언츠[12]나 LA 에인절스처럼 전형적인 윈나우 탱킹 구단의 행보를 걷고 있다. 선수 영입도 대부분 당장의 구멍 메꾸기에만 몰두하고 있고 신인 픽은 신인 픽대로 실패하는 등 암흑기가 장기화될 조짐이 크게 보이고 있다.[13] 그래서 돈은 돈대로 쓰고도 성과는 시원찮은 상황이다. 아예 삼성 팬들조차 구단이 돈을 안 써서 지지부진한 거라고 착각하고 있을 정도로 투자의 성과가 밋밋하다. 사실상 KBO 버전 LA 에인절스가 되어가는 중으로 팬들은 이럴거면 아예 한화처럼 고강도 탱킹이나 하라는 의견이 많다.[14]에인절스는 오타니, 트라웃 보는 맛이라도 있다. 오죽하면 팬들이 에인절스마냥 목표가 우승이 아닌 팀이라며 까고 있고 메이저리그에 능통한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삼성이 현재 KBO 리그에서 가장 암울한 구단 중 하나라는 혹평을 아끼지 않고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술한 상황은 앞으로 정말 오랜 기간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이므로 FC 바르셀로나, 롯데 자이언츠처럼 인고의 기간을 거쳐야할 것으로 전망하는 팬들이 많다.

3. 1차 암흑기 (556, 1994년~1996년)

삼성 라이온즈가 1994년부터 1996년까지 5위, 5위, 6위를 기록한 것을 의미하는 숫자. 이 3시즌은 삼성의 최다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기록이었으며, 같은 기간 8개 구단 중 유일하게 포스트시즌 진출에 모두 실패했다.[15] 특히 1996년 6위 (0.448)는 삼성 역사상 네 번째[16]로 가장 저조했던 성적이다. 삼성이 창단 이래 꾸준히 강팀의 위치에서 매년 우승을 노리던 팀이었기 때문에, 겨우 3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것만으로도 삼성 팬들은 이 시기를 흑역사 취급한다. 하지만 당당하게 8888577, 6668587667, 5886899678이라는 비밀번호를 가진 타 팀의 팬들에게는 '겨우 556을 찍은게 무슨 흑역사냐' 며 비아냥 소리를 듣기도 한다.

대체로 전임 감독 김성근이 개판치고 떠난 팀을 후임인 우용득, 백인천 감독이 수습하느라 욕을 먹던 시기로 이해된다. 한마디로 김성근의 저주의 주요 사례. 특히 백인천 감독은 당시 이만수를 비롯한 올드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홀대한다고 비난 받으면서도[17][18] 이승엽 양준혁으로 대표되는 젊은 선수들을 과감하게 기용하는 리빌딩으로 2000년대 삼성 전성기의 발판을 만들어 놓았다. 나중에 성적만 보고 이때를 암흑기라 칭하는 경우도 있으나, 나름대로 인기도는 높았다. 이 시기에는 삼성 특유의 화끈한 공격야구가 대구아재들을 환장하게 하며 빛을 발하면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 구름 관중이 몰려들었다.[19]

3.1. 원인

삼성이 556의 순위를 찍게 된 원인으로는 보통 1991년부터 1992년까지 삼성 감독이었던 김성근 책임론이 거론된다.

김성근 감독이 첫 해 3위, 2년차 4위로 생각만큼 성적을 내지 못하면서 경질된 후 556을 찍게 되었기 때문에, 이를 김 감독의 투수혹사 경향과 엮어서 언급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사람도 아닌 김성근 본인이 자서전에서 인정한 바 있는데, 프런트가 최대한 지원해줬는데 본인이 엘리트 의식에 빠진 선수들을 휘어잡지 못한 실책의 결과라 시인했다. 다시 말해 선수단 장악에 문제가 있었다는 뜻. 거기에 급격하게 추진한 리빌딩과 조범현을 비롯한 자신의 제자 중용 등으로 선수들과 마찰이 심했다고 한다. 웬만해선 김성근식 감독야구를 옹호하는 김은식 작가조차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김성근의 방식이 삼성에는 맞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또한 직전 감독이었던 정동진 감독을 1990년 한국시리즈에서 재계 라이벌인 LG를 상대로 스윕패하면서 우승에 실패한 것을 구실로 경질해버린 프런트의 조급함이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리고 그 전년도에는 최동원- 김시진 트레이드라는 병크도 있었고.

대구, 경북 팜에서 이승엽 이전까지 괜찮은 선수들이 나오지 않았던 것도 이 암흑기의 원인이다.[20] 당시 양준혁이 중심타선에서 팀타선을 캐리하기는 했지만 그를 받쳐줄 선수들이 부족했다.

3.2. 리빌딩

비밀번호(?)를 끊은 감독이 바로 롯데 팬 한정으로 금지어 백인천이다. 또한 베이징 올림픽의 퍼펙트 골드 감독인 김경문이 이 시기의 산증인이다. 미국에서 지도자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후 삼성 라이온즈의 배터리코치로 영입되어 이 때 코치 실전 수업을 받았다. 그것도 정확하게 1차 암흑기 동안.

일부는 부임 첫 해에 6을 찍었다는건 함정이라느니 비하하기도 하지만, 백인천의 잘못이라고만 보긴 어렵다. 김성근 감독이 추진했던 리빌딩과 자신의 제자들의 주전화 등으로 팀 케미스트리가 망가지자 우용득 감독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장들을 방출하면서 세대교체가 너무 급격하게 진행되었고 부임 첫해인 1993년에는 이 세대교체 효과가 있었으나 많은 선수들이 소포모어 징크스에 걸린 후 극복을 해내지 못하는 등 이래저래 문제가 많았고, 하필 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만수 등 경험 있는 고참은 리빌딩 과정에서 전멸하다시피하는 바람에 삼성 팀의 분위기가 상당히 망가져있던 상황. 오히려 고작 1년만에 팀을 추스리고 유망주를 발굴한 걸 높게 평가하는 게 맞다.

사실 성적만 놓고 보면 556의 시기를 암흑기라 여길 수 있긴 하지만, 타팀 팬 입장에서는 겨우 3년 정도 가을야구를 못 가고, 그것도 꼴찌도 하지 않고 리빌딩이 착착 진행되며 기대를 모으던 시기를 어떻게 암흑기라 할 수 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물론 우승 아니면 의미가 없던 당시 삼성으로서는 충분히 암흑기였다고 말할 근거가 있겠지만. 그리고 꼴찌를 한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관중 수 신기록을 쓰는 등 흥행은 했기 때문에 당시 야구를 봤던 삼성 팬[21]들 또한 이 시기를 암흑기라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통 90년대부터 야구를 봐온 삼성팬들이 손꼽는 진짜 1차 암흑기는 556 시기가 아니라 김성근 강점기인 1991~1992년이다.

3.3. 여담

당시 창단 이래 최하위였던 6위를 찍은 1996년에는 전년도에 포스트시즌에 탈락하던 다섯 팀[22] 중 네 팀이 올랐는데 유일하게 못 오른 게 바로 이 암흑기에 있던 삼성이다. 사실 삼성도 이만수의 후계자로 진갑용에 군침을 흘리면서 잠실을 안방으로 쓰는 두 팀과 함께 서로 꼴찌하려는 추태를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시즌에는 양준혁의 활약 때문에 말짱 물거품이 되고 말았고, 결국 진갑용을 트레이드로 기어이 얻어오면서 왕조 구축에 결국 성공했다.

4. 2차 암흑기 (99688378, 2016년~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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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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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태현/암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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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BO 한국시리즈 최다 우승팀인 KIA 타이거즈는 꼴찌를 2번 기록했다. 또 통산 6회 한국시리즈 우승에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기록을 세운 전통의 명문 두산 베어스조차 OB 시절 3번이나 꼴찌를 했다. SSG 랜더스 역시 SK 와이번스로 창단한 첫 해인 2000년 꼴찌를 한 적이 있고, 해체된 명문 현대 유니콘스는 전신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가 밥먹듯 꼴찌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최하위를 무려 9번씩이나 한 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2] 삼성 스포츠도 서울 썬더스는 첫 시즌부터 최하위, 용인 블루밍스는 2019-20 시즌 최하위, 대전 블루팡스는 2022-23 시즌 최하위, 수원 블루윙즈는 2023년 최하위로 굴러떨어졌다. [3] 사실 2015년까지만 해도 통산 승률이 무려 5할 6푼대였는데 내려와서 이 정도이다. 그 뒤로는 SSG 랜더스 (0.524. SK 와이번스 시절 포함), 두산 베어스 (0.522), KIA 타이거즈 (0.517), 키움 히어로즈 (0.507. 넥센 시절 포함) LG 트윈스 (0.494), 롯데 자이언츠 (0.470), 한화 이글스 (0.462) 순이다. 1군 참여한지 이제 10년 된 구단인 NC는 통산 승률 0.521이고, kt는 0.461이다. [4] 사실 가을야구에 가지 못했던 시즌은 한 시즌 더 있다. 1983년으로 전기 5위, 후기 2위, 종합 4위로 한국시리즈에 가지 못했다. 그러나 앞뒤 시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던 점, 단 한 시즌인 점 등으로 암흑기로 보지 않는다. [5] 가장 혹독하고 긴 암흑기였던,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원히 진행될 것 같아보였던 2020년까지의 사례 99688이 가장 긴 기간이었다. 이마저도 비밀번호 생성 기준인 6년에 미치지 못한다. 99688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던 kt의 AAA96또한 5년짜리 비밀번호인데 이 비밀번호를 겪고 나서 kt wiz도 삼성처럼 우승권 구단이 되었으므로 이 둘은 일반적인 비밀번호 구단의 사례와는 다르단 것을 알 수 있다. [6] 당장 이런 3년 정도의 가을야구 진출 실패는 롯데 자이언츠, LG 트윈스, 한화 이글스 같은 팀의 경우는 물론이요 SSG 랜더스 키움 히어로즈, NC 다이노스 같은 숨은 강호 구단들도 자주 겪는다. 삼성이 구단 운영 자체의 성공으로 그동안 잘 겪지 않은 것. [7] 토미 존 서저리 수술 후 예상보다 빨리 복귀한 배영수는 전성기 시절의 구위를 잃어버린다. 토미 존 서저리 수술 이전 팔꿈치 상태가 가장 안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재활이 짧았다. [8] 강봉규는 2009시즌 20-20을 달성하긴 했으나 2010시즌 타격이 다시 폭망하였다. [9] 실제로 선동열은 김한수 이전 삼성 라이온즈 역대 최악의 감독 1~2위로 김성근과 함께 꼽혔다. [10] 윤성환은 2004년에 데뷔하기는 했으나 본격적으로 선발로 기용되기 시작했던 시기는 2008년부터였다. [11] 다만 백인천은 롯데에서도 이 짓을 하다가 말아먹어서 팀 운영을 그냥 내팽개쳐버렸는데, 이로 인해서 백인천의 감독 경력은 절대 좋은 평가를 못 받는다. 자세한 사항은 백인천/지도자 경력 참조. [12] 롯데는 2023 시즌 스토브리그에서 좋은 평을 받았으나, 삼성도 2021시즌, 2022시즌 스토브리그에서 호평받았으며 암흑기 탈출이 기정사실화된 것으로 여겨졌지만 실상은 FA 선수들의 반짝활약으로 간신히 비밀번호를 막아냈다는 것이 밝혀졌으므로 아직 롯데도 속단하기 어려우며, 롯데는 특히나 그동안 오랫동안 가을야구에 못 나갔기에 최소한 몇 년간은 가을야구 경쟁을 계속해야 윈나우 탱킹의 오명을 벗을 수 있다. [13] 99688 시기동안 2차 드래프티중 가장 성공한 게 김지찬이다. 게다가 김지찬 특성상 실링보다는 기술적으로 완성된 선수라 어차피 알아서 클 선수이므로, 팀의 육성능력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토종 선발로 활약하는 원태인, 최채흥 그리고 역대급 실링으로 큰 기대를 받는 좌완 이승현은 아예 지명 이전부터 육성 자체가 필요없는 완성형 선수들이었기에 이들이 성공한 것을 절대로 삼성 육성시스템이 좋아서라고 해석할 수가 없으며, 말 그대로 바보라도 1차지명에서 뽑았을 선수들이다. 이외에도 이재현, 황동재, 최충연 등 1군에서 얼굴을 보인 선수들은 대다수 1차지명이었고 이들의 활약도 애매한데다 결정적으로 2차지명은 거의 전멸에 가까울 정도로 초토화되었다. 기껏해야 박승규, 이해승, 허윤동 정도가 1군에 얼굴을 비추고 있고 이마저도 많이 아쉬운 편, 이런 상황에서 리빌딩을 하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울 정도. 애초에 픽도 문제이지만 이들을 키워내는 능력 자체가 아예 없다. [14] 실제로 한화는 2024시즌부터 류현진, 문동주, 김서현으로 이루어진 철벽 투수진이 기대받고 있다. [15] 해태는 1994, 1996년, 현대(태평양 포함)는 1994, 1996년, 한화는 1994, 1996년, 롯데는 1995년, LG는 1994, 1995년, OB는 1995년, 심지어 1990년대 만년 하위팀이던 쌍방울도 1996년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16] 2016 시즌의 승률이 0.455로 더 높긴 한데 kt발 승률 인플레가 존재했으며 순위도 6위보다 한참 낮은 9위인 터라 2016 시즌을 세 번째로 저조한 성적으로 친다. 참고로 가장 저조했던 연도는 2017 시즌(0.396), 두 번째는 2019 시즌(0.420). [17] 결국 이만수는 1997년 시즌을 마치고 은퇴식도 치르지 못하고 팀에서 쫓겨나다시피 은퇴한다. [18] 천재 2루수로 불렸던 강기웅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시켰던 것도 1996년의 일이다. 그러나 강기웅은 결국 현대로의 트레이드를 거부하고 은퇴해버리고 만다. 정확히는 트레이드 직후 현대가 강기웅을 임의탈퇴 조치했다. [19] 1990년대 KBO 리그의 최고 전성기로 꼽히는 1995년의 관중 동원 기록은 540만6374명으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우승과 이듬해 WBC 준우승의 영향으로 592만5285명이라는 관중 동원 신기록을 경신하기 전까지 단일 시즌 최다 관중 동원 기록으로 남아있었다. 1995년 삼성 라이온즈의 대구 홈경기 관중 동원 기록은 62만3970명으로 경기당 평균 관중이 무려 9904명에 달했다. 이 당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의 관중석 숫자가 1만2000석인 것을 감안하면 1995년의 좌석 점유율은 무려 83%에 이른다. 관중 기록은 새 야구장으로 이사를 간 2016년에서야 깨졌지만 83%의 좌석 점유율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최근 이 팀 하는 꼬라지 봐서는 기록 경신이 절대 불가능해 보인다. [20] 이 시기 삼성의 1차 지명 선수를 보면 1994년 감병훈, 1995년 안윤호 등 큰 활약을 하지 못하고 은퇴한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고졸 우선지명 선수에서도 재미를 보지 못했던 시기였다. 반대로 이 시기 강팀으로 올라온 LG, 태평양, OB의 경우 류지현, 김재현, 서용빈, 심재학, 최상덕, 위재영, 이숭용, 진필중 등 향후 5~10년 간 팀의 주축이 된 선수들을 많이 확보했던 시기이다보니 더욱 비교가 될 수 밖에 없다. [21] 그러니까 지금 와서 당시 성적 보고 그때가 암흑기였구나 하는 팬들 말고 진짜 그 당시에 야구를 본 삼성 올드팬들이라 보면 된다. [22] 1993~1998년 시즌의 경우 3위와 4위 승차가 3.5경기 이상이면 4위는 탈락하고 3위가 2위팀과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방식이 도입되었다. 이 중 1995년은 3위인 롯데와 4위인 해태가 4.5게임의 승차였기 때문에 해태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면서 1995년의 포스트시즌은 OB, LG, 롯데 이렇게 3개 팀만이 참가하게 되었다.